노인과 바다
Ernest Hemingway — The Old Man and the Sea (1952)
여든나흘째 고기 한 마리 못 낚은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홀로 멕시코 만류의 먼바다로 나가 배보다 큰 청새치를 건다. 사흘 밤낮을 버틴 끝에 고기를 배 옆에 묶고 돌아오는 길, 피 냄새를 맡은 상어들이 몰려온다.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혼자 고기를 잡는 노인이었고, 고기 한 마리 못 낚은 지 이제 여든나흘째였다. 처음 사십 일 동안은 한 소년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사십 일이 지나도록 고기가 없자 소년의 부모는 노인이 이제 틀림없이, 완전히 살라오가 되었다고 했다. 살라오란 운이 다할 대로 다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소년은 부모의 말에 따라 다른 배를 탔고, 그 배는 첫 주에 좋은 고기를 세 마리나 잡았다. 소년은 노인이 날마다 빈 배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팠고, 늘 바닷가로 내려가 감아 놓은 낚싯줄이나 갈고리와 작살, 돛대에 감아 둔 돛을 나르는 것을 거들었다. 돛은 밀가루 포대로 기워져 있었고, 감아 놓으면 영원한 패배의 깃발처럼 보였다.
노인은 깡마르고 수척했으며 목덜미에는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 뺨에는 열대 바다에 되비친 햇볕이 만드는, 해롭지 않은 피부암의 갈색 반점들이 있었다. 반점은 얼굴 양옆으로 한참 아래까지 번져 있었고, 두 손에는 줄에 걸린 무거운 고기를 다루느라 깊이 팬 흉터들이 있었다. 그러나 새 흉터는 하나도 없었다. 모두 물고기 없는 사막의 풍화된 자국만큼이나 오래된 것들이었다.
그에게서는 눈만 빼고 모든 것이 늙어 있었다. 바다와 같은 빛깔인 그 눈은 쾌활했고 패배를 모르는 눈이었다.
"할아버지." 배를 끌어 올려 둔 자리에서 둑을 올라오며 소년이 말했다. "저 다시 할아버지랑 나갈 수 있어요. 돈도 좀 벌었고요."
노인은 소년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쳤고, 소년은 노인을 사랑했다.
"안 된다." 노인이 말했다. "너는 운 좋은 배에 탔잖니. 거기 있어라."
"그래도 생각나세요? 여든이레 동안 한 마리도 못 잡다가, 그다음엔 세 주 동안 날마다 큰 놈을 잡았잖아요."
"생각나지." 노인이 말했다. "네가 나를 못 믿어서 떠난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
"아빠가 가라고 했어요. 저는 아이니까 아빠 말을 들어야 하고요."
"알다마다." 노인이 말했다. "그게 당연한 거다."
"아빠는 믿음이 별로 없어요."
"그래." 노인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있지. 안 그러냐?"
"네." 소년이 말했다. "테라스에서 제가 맥주 한잔 살게요. 그러고 나서 짐을 집에 갖다 놔요."
"좋지." 노인이 말했다. "어부끼리니까."
두 사람은 테라스에 앉았다. 어부들 가운데 여럿이 노인을 놀렸지만 노인은 화를 내지 않았다. 나이 든 어부들 중에는 노인을 보고 슬퍼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해류와 낚싯줄을 드리운 깊이와 이어지는 좋은 날씨와 바다에서 본 것들에 대해 점잖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고기를 잡은 어부들은 벌써 돌아와 청새치의 배를 갈라 손질한 뒤, 널빤지 두 장 위에 길게 눕혀서 널빤지 양 끝을 두 사람씩 비틀거리며 메고 생선 창고로 날랐다. 고기들은 거기서 얼음 트럭이 아바나의 시장으로 실어 가기를 기다렸다. 상어를 잡은 이들은 후미 건너편 상어 공장으로 가져갔다. 거기서 상어는 도르래에 매달려 올라가 간을 빼내고 지느러미를 자르고 가죽을 벗긴 다음, 살은 소금에 절이려고 길게 썰렸다.
동풍이 불면 상어 공장의 냄새가 항구 건너까지 넘어왔다. 하지만 오늘은 바람이 북쪽으로 돌았다가 잦아들어서 냄새가 희미하게만 났고, 테라스는 햇볕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할아버지." 소년이 불렀다.
"그래." 노인이 대답했다. 그는 잔을 쥐고 오래전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일 쓰실 정어리 잡아다 드릴까요?"
"아니다. 가서 야구나 해라. 노는 아직 내가 저을 수 있고, 그물은 로헬리오가 던져 줄 거다."
"가고 싶어요. 할아버지랑 같이 고기를 못 잡으면, 다른 걸로라도 거들고 싶어요."
"맥주를 사 줬잖니." 노인이 말했다. "너는 벌써 어른이다."
"할아버지가 저를 처음 배에 태웠을 때 제가 몇 살이었어요?"
"다섯 살. 내가 너무 팔팔한 고기를 끌어 올리는 바람에 그놈이 배를 산산조각 낼 뻔해서 너도 죽을 뻔했지. 기억나니?"
"꼬리가 철썩철썩 쾅쾅 치고, 가로대가 부러지고, 몽둥이로 내리치던 소리가 기억나요. 할아버지가 저를 젖은 낚싯줄 사려 둔 뱃머리로 던져 넣은 것도, 배 전체가 부르르 떨던 것도, 할아버지가 나무를 찍듯 그놈을 몽둥이로 내리치던 소리도, 들큼한 피 냄새가 온몸에 묻었던 것도 기억나요."
"정말 기억하는 거냐, 아니면 내가 이야기해 준 걸 듣고 그러는 거냐?"
"처음 같이 나간 날부터 다 기억나요."
노인은 햇볕에 그을린, 믿음직하고 다정한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네가 내 자식이라면 데리고 나가서 한번 걸어 보겠다만." 노인이 말했다. "너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식이고, 운 좋은 배에 타고 있다."
"정어리 잡아 와도 돼요? 미끼 넉 마리 구할 데도 알아요."
"오늘 쓰고 남은 게 있다. 상자에 소금 쳐서 넣어 뒀지."
"싱싱한 걸로 넉 마리 구해 올게요."
"한 마리." 노인이 말했다. 그의 희망과 자신감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산들바람이 일 때처럼 새로워지고 있었다.
"두 마리요." 소년이 말했다.
"두 마리." 노인이 따랐다. "훔친 건 아니겠지?"
"훔칠 수도 있어요." 소년이 말했다. "하지만 이건 산 거예요."
"고맙다." 노인이 말했다. 그는 너무 순박해서 자기가 언제 겸손을 얻게 되었는지 따져 보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가 겸손을 얻었다는 것은 알았고,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참된 자존심을 조금도 깎아 먹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해류가 이러니 내일은 좋은 날이 되겠다." 노인이 말했다.
"어디로 가실 거예요?" 소년이 물었다.
"멀리 나갔다가 바람이 바뀌면 들어올 거다. 날이 밝기 전에 나가 있고 싶구나."
"저도 아빠더러 멀리 나가자고 해 볼게요." 소년이 말했다. "그러면 할아버지가 정말 큰 놈을 걸었을 때 저희가 도우러 갈 수 있잖아요."
"그 사람은 너무 멀리 나가는 걸 싫어하지."
"맞아요." 소년이 말했다. "그래도 제가 아빠 눈에 안 보이는 걸 볼 거예요. 새가 고기를 쫓는 것 같은 걸요. 그러면 만새기 잡으러 나가자고 할 수 있어요."
"그 사람 눈이 그렇게 나쁘냐?"
"거의 장님이에요."
"이상하구나." 노인이 말했다. "거북잡이는 한 번도 안 했는데. 눈을 버리는 건 그거거든."
"할아버지는 모스키토 해안에서 몇 년이나 거북을 잡았는데도 눈이 좋잖아요."
"나는 별난 늙은이니까."
"그래도 지금 정말 큰 고기를 감당할 만큼 힘이 있으세요?"
"그럴 거다. 요령도 많고."
"짐을 집에 갖다 놔요." 소년이 말했다. "그래야 제가 투망을 가지고 정어리 잡으러 가죠."
두 사람은 배에서 도구를 챙겼다. 노인은 돛대를 어깨에 메고, 소년은 단단하게 꼰 갈색 낚싯줄을 사려 담은 나무 상자와 갈고리, 자루 달린 작살을 들었다. 미끼 상자는 배 고물 아래, 큰 고기를 배 옆에 끌어다 놓았을 때 숨을 끊는 데 쓰는 몽둥이와 함께 두었다. 노인의 물건을 훔쳐 갈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돛과 무거운 낚싯줄은 이슬에 상하니 집에 가져가는 게 나았다. 그리고 노인은 이 동네 사람 누구도 자기 것을 훔치지 않으리라고 굳게 믿으면서도, 갈고리와 작살을 배에 두는 것은 괜히 사람을 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함께 길을 올라 노인의 오두막에 이르렀고,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돛을 감은 돛대를 벽에 기대 세웠고, 소년은 그 옆에 상자와 다른 도구들을 내려놓았다. 돛대는 하나뿐인 오두막 방의 길이와 거의 맞먹었다. 오두막은 구아노라고 부르는, 대왕야자의 질긴 잎싹 껍질로 지은 것이었다. 안에는 침대 하나, 탁자 하나, 의자 하나가 있었고, 흙바닥 한쪽에 숯불로 밥을 짓는 자리가 있었다. 섬유질이 질긴 구아노 잎을 납작하게 펴서 겹쳐 댄 갈색 벽에는 예수 성심을 그린 색깔 그림 한 장과 코브레의 성모 그림 한 장이 걸려 있었다. 아내가 남긴 것들이었다. 전에는 벽에 아내의 채색 사진도 한 장 걸려 있었지만, 그것을 보면 너무 외로워져서 떼어 버렸다. 사진은 구석 선반 위, 깨끗한 셔츠 밑에 있었다.
"드실 건 뭐 있어요?" 소년이 물었다.
"생선 넣은 노란 밥이 한 솥 있다. 좀 먹을래?"
"아니요. 집에 가서 먹을게요. 불 피워 드릴까요?"
"아니다. 이따 내가 피우마. 아니면 그냥 찬밥으로 먹든지."
"투망 가져가도 돼요?"
"그럼."
투망은 없었다. 소년은 그것을 언제 팔았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날마다 이렇게 있는 척을 했다. 생선 넣은 노란 밥도 없었고, 소년은 그것도 알고 있었다.
"여든다섯은 운 좋은 숫자다." 노인이 말했다. "손질하고도 450킬로그램이 넘는 놈을 내가 끌고 들어오면 어떻겠냐?"
"투망 가지고 정어리 잡으러 갈게요. 문간에 앉아서 해 좀 쬐고 계실래요?"
"그래. 어제 신문이 있으니 야구 기사나 읽으마."
소년은 어제 신문이라는 것도 있는 척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노인은 침대 밑에서 신문을 꺼냈다.
"페리코가 보데가에서 줬다." 노인이 설명했다. 보데가는 술도 파는 동네 구멍가게였다.
"정어리 잡으면 올게요. 할아버지 것이랑 제 것을 같이 얼음에 재 뒀다가 아침에 나눠요. 돌아오면 야구 이야기 해 주세요."
"양키스는 질 수가 없다."
"그래도 저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무서워요."
"양키스를 믿어라, 얘야. 위대한 디마지오를 생각해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도 무섭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도 무서워요."
"조심해라. 그러다간 신시내티 레즈랑 시카고 화이트삭스까지 무서워지겠다."
"할아버지가 잘 살펴보시고 제가 오면 알려 주세요."
"끝자리가 85인 복권을 한 장 살까? 내일이 여든닷새째 날이니."
"그래요." 소년이 말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그 대기록, 87은요?"
"그런 일은 두 번 안 일어난다. 85를 구할 수 있겠니?"
"주문하면 돼요."
"한 장이면 2달러 50센트다. 그걸 누구한테 빌리지?"
"그건 쉬워요. 2달러 50센트쯤은 언제든 빌릴 수 있어요."
"나도 빌릴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빌리지 않으려고 한다. 처음엔 빌리지. 그다음엔 구걸하게 된다."
"따뜻하게 계세요, 할아버지." 소년이 말했다. "이제 9월이잖아요."
"큰 고기들이 오는 달이지." 노인이 말했다. "5월에는 누구나 어부가 될 수 있다."
"그럼 정어리 잡으러 갈게요." 소년이 말했다.
소년이 돌아왔을 때 노인은 의자에서 잠들어 있었고 해는 져 있었다. 소년은 침대에서 낡은 군용 담요를 걷어다 의자 등받이와 노인의 어깨 위에 덮어 주었다. 이상한 어깨였다. 아주 늙었는데도 여전히 힘이 있었고, 목도 여전히 굳셌다. 노인이 잠들어 고개를 앞으로 떨구고 있으니 주름도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다. 셔츠는 하도 여러 번 기워서 돛처럼 되어 있었고, 기운 조각들은 햇볕에 바래 저마다 다른 빛깔이었다. 그래도 노인의 머리는 아주 늙어 있었고, 눈을 감고 있으니 얼굴에 생기가 하나도 없었다. 신문은 무릎에 걸쳐져 있었는데, 저녁 바람에도 팔의 무게에 눌려 날아가지 않았다. 노인은 맨발이었다.
소년은 노인을 그대로 두고 갔다. 다시 돌아왔을 때도 노인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일어나세요, 할아버지." 소년이 노인의 한쪽 무릎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노인은 눈을 떴다. 잠깐 동안 그는 아주 먼 곳에서 돌아오는 듯했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었다.
"뭘 가져왔니?" 노인이 물었다.
"저녁이요." 소년이 말했다. "저녁 먹어요."
"별로 배가 안 고프구나."
"어서 드세요. 안 먹고 고기를 잡을 순 없잖아요."
"그래 왔다." 노인은 일어나 신문을 집어 접으면서 말했다. 그러고는 담요를 개기 시작했다.
"담요는 두르고 계세요." 소년이 말했다. "제가 살아 있는 한 할아버지는 굶고 고기 잡으러 못 나가요."
"그럼 오래오래 살고 몸조심해라." 노인이 말했다. "뭘 먹는 거냐?"
"검은콩 밥이랑 튀긴 바나나, 그리고 스튜 조금이요."
소년은 그것들을 테라스에서 이단 금속 찬합에 담아 왔다. 나이프와 포크와 숟가락 두 벌은 한 벌씩 종이 냅킨에 싸서 주머니에 넣어 왔다.
"누가 준 거냐?"
"마르틴 아저씨요. 주인이요."
"고맙다고 해야겠구나."
"제가 벌써 고맙다고 했어요." 소년이 말했다. "할아버지는 안 하셔도 돼요."
"큰 고기를 잡으면 뱃살을 갖다 줘야겠다." 노인이 말했다. "그 사람이 우리한테 이렇게 해 준 게 한 번이 아니지?"
"그런 것 같아요."
"그럼 뱃살보다 더 좋은 걸 줘야겠구나. 우리를 참 많이 생각해 주는구나."
"맥주도 두 병 보냈어요."
"나는 깡통 맥주가 제일 좋은데."
"알아요. 그래도 이건 병맥주예요. 아투에이 맥주. 병은 제가 돌려줄게요."
"고맙구나." 노인이 말했다. "먹을까?"
"아까부터 드시라고 했잖아요." 소년이 부드럽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준비되실 때까지 찬합을 안 열고 기다렸어요."
"이제 됐다." 노인이 말했다. "씻을 시간이 좀 필요했을 뿐이다."
어디서 씻으셨다는 걸까? 소년은 생각했다. 마을 수도는 길을 따라 두 블록 아래에 있었다. 여기 물을 갖다 놔 드려야겠어. 소년은 생각했다. 비누랑 좋은 수건도.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이 없을까? 셔츠도 하나 더 사 드리고, 겨울에 입을 재킷이랑 신발 같은 것도, 담요도 하나 더 있어야 하는데.
"스튜가 아주 맛있구나." 노인이 말했다.
"야구 이야기 해 주세요." 소년이 졸랐다.
"아메리칸 리그는 내가 말한 대로 양키스다." 노인이 신이 나서 말했다.
"오늘 졌어요." 소년이 말했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위대한 디마지오가 제 실력을 되찾았으니."
"팀에 다른 선수들도 있잖아요."
"당연하지. 하지만 그 사람이 판을 바꾼다. 다른 리그에서는 브루클린하고 필라델피아 중에 나는 브루클린을 고르겠다. 그런데 딕 시슬러가 생각나는구나. 옛 구장에서 날리던 그 굉장한 타구들 말이다."
"그런 건 다시 없었어요. 그 사람은 제가 본 중에 공을 제일 멀리 쳐요."
"그 사람이 테라스에 오던 때 기억나니? 고기 잡으러 같이 가자고 하고 싶었는데 너무 쑥스러워서 말을 못 했지. 그래서 너더러 말해 보라고 했는데 너도 쑥스러워서 못 했고."
"알아요. 큰 실수였어요. 같이 갔을지도 모르는데. 그랬으면 평생 두고두고 이야깃거리였을 텐데요."
"나는 위대한 디마지오를 데리고 고기 잡으러 가고 싶다." 노인이 말했다. "그 사람 아버지가 어부였다더구나. 어쩌면 우리처럼 가난했을지도 모르니 우리를 이해해 줄 거다."
"위대한 시슬러의 아버지는 한 번도 가난한 적이 없었어요. 그분은, 그러니까 그 아버지는 제 나이 때 벌써 큰 리그에서 뛰었대요."
"나는 네 나이 때 아프리카로 가는 가로돛 배에서 돛대 앞자리 선원으로 일했다. 저녁이면 바닷가에 사자들이 나와 있는 걸 봤지."
"알아요. 이야기해 주셨잖아요."
"아프리카 이야기를 할까, 야구 이야기를 할까?"
"야구요." 소년이 말했다. "위대한 존 J. 맥그로 이야기 해 주세요." 소년은 J를 스페인어로 '호타'라고 읽었다.
"그 사람도 옛날엔 가끔 테라스에 왔지. 그런데 거칠고 말을 함부로 했고, 술이 들어가면 다루기가 어려웠다. 야구만큼이나 말(馬)에 정신이 팔려 있었어. 아무튼 주머니에 늘 경주마 명단을 넣고 다녔고, 전화로 말 이름을 자주 불러 댔지."
"훌륭한 감독이었어요." 소년이 말했다. "우리 아빠는 그 사람이 최고였대요."
"여기를 제일 자주 왔으니까 그렇지." 노인이 말했다. "만약 듀로셔가 해마다 여기 왔다면 네 아빠는 그 사람이 최고의 감독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정말로 최고의 감독은 누구예요? 루케예요, 마이크 곤살레스예요?"
"둘이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최고의 어부는 할아버지고요."
"아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들을 안다."
"케 바, 말도 안 돼요." 소년이 말했다. "좋은 어부는 많고 훌륭한 어부도 몇 있어요. 하지만 할아버지 같은 사람은 할아버지뿐이에요."
"고맙다. 기분이 좋구나. 우리 말이 틀렸다는 걸 보여 줄 만큼 굉장한 고기가 나타나지 않으면 좋겠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아직 힘이 세시다면 그런 고기는 없어요."
"생각만큼 힘이 세지 않을지도 모르지." 노인이 말했다. "하지만 요령을 많이 알고, 각오가 되어 있다."
"이제 주무세요. 그래야 아침에 개운하시죠. 그릇은 제가 테라스에 갖다 줄게요."
"그럼 잘 자라. 아침에 깨우러 가마."
"할아버지는 제 자명종이에요." 소년이 말했다.
"내 자명종은 나이다." 노인이 말했다. "늙은이들은 왜 그렇게 일찍 깰까? 하루를 조금이라도 길게 살려고 그러는 걸까?"
"모르겠어요." 소년이 말했다. "제가 아는 건 어린애들은 늦게까지 곤하게 잔다는 것뿐이에요."
"나도 그때가 기억난다." 노인이 말했다. "늦지 않게 깨워 주마."
"저는 그 사람이 저를 깨우는 게 싫어요. 제가 아랫사람인 것 같아서요."
"안다."
"안녕히 주무세요, 할아버지."
소년이 나갔다. 두 사람은 탁자에 불도 켜지 않고 저녁을 먹었고, 노인은 바지를 벗고 어둠 속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는 바지 속에 신문을 넣고 둘둘 말아 베개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담요를 몸에 감고, 침대 스프링을 덮은 다른 헌 신문지들 위에서 잠들었다.
노인은 곧 잠이 들었고, 소년 시절에 본 아프리카 꿈을 꾸었다. 길게 뻗은 금빛 바닷가와, 눈이 아플 만큼 새하얀 바닷가와, 높은 곶과, 커다란 갈색 산들이 나왔다. 그는 이제 밤마다 그 바닷가를 따라 살았고, 꿈속에서 파도가 우르릉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그 파도를 타고 오는 원주민들의 배를 보았다. 자면서 갑판의 타르와 뱃밥 냄새를 맡았고, 아침이면 육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오는 아프리카의 냄새를 맡았다.
보통 그는 육지 바람 냄새를 맡으면 잠에서 깨어 옷을 입고 소년을 깨우러 갔다. 그런데 오늘 밤은 육지 바람 냄새가 아주 일찍 왔다. 그는 꿈속에서도 아직 너무 이르다는 것을 알았고, 계속 꿈을 꾸며 바다 위로 솟은 섬들의 하얀 봉우리를 보았고, 이어서 카나리아 제도의 여러 항구와 정박지 꿈을 꾸었다.
그는 이제 폭풍 꿈도, 여자 꿈도, 큰일이 벌어지는 꿈도, 큰 고기 꿈도, 싸움 꿈도, 힘겨루기 꿈도, 아내 꿈도 꾸지 않았다. 이제는 그저 여러 곳과 바닷가의 사자들 꿈만 꾸었다. 사자들은 어스름 속에서 새끼 고양이들처럼 뛰놀았고, 노인은 소년을 사랑하듯 그 사자들을 사랑했다. 소년 꿈은 한 번도 꾸지 않았다. 그는 그냥 잠에서 깨어 열린 문으로 달을 내다보고, 말아 둔 바지를 펴서 입었다. 오두막 밖에서 오줌을 누고 나서 소년을 깨우러 길을 올라갔다. 새벽 추위에 몸이 떨렸다. 하지만 떨다 보면 몸이 따뜻해지고, 곧 노를 젓게 되리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소년이 사는 집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노인은 문을 열고 맨발로 조용히 들어갔다. 소년은 첫째 방의 간이침대에서 자고 있었고, 지는 달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노인은 소년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는 소년의 한쪽 발을 살며시 잡고 소년이 깨어 돌아누워 자기를 볼 때까지 붙들고 있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소년은 침대 옆 의자에서 바지를 집어 침대에 앉은 채로 꿰어 입었다.
노인이 문을 나서자 소년이 뒤따라 나왔다. 소년이 졸려 하자 노인은 소년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미안하구나."
"케 바, 그런 말 마세요." 소년이 말했다. "남자라면 해야 하는 일인걸요."
두 사람은 노인의 오두막으로 길을 내려갔다. 길을 따라 내내, 어둠 속에서 맨발의 사내들이 저마다 배의 돛대를 메고 움직이고 있었다.
노인의 오두막에 이르자 소년은 바구니에 담긴 낚싯줄 뭉치와 작살과 갈고리를 들었고, 노인은 돛을 감은 돛대를 어깨에 멨다.
"커피 드실래요?" 소년이 물었다.
"도구를 배에 실어 놓고 마시자."
두 사람은 어부들을 상대로 새벽에 문을 여는 가게에서 연유 깡통에 담긴 커피를 마셨다.
"잘 주무셨어요, 할아버지?" 소년이 물었다. 이제 잠이 깨고 있었지만, 아직은 잠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었다.
"아주 잘 잤다, 마놀린." 노인이 말했다. "오늘은 자신이 있구나."
"저도요." 소년이 말했다. "이제 할아버지 정어리랑 제 정어리, 그리고 할아버지 싱싱한 미끼를 가져와야 해요. 우리 아빠는 자기 도구를 직접 날라요. 누가 뭘 들어 주는 걸 절대 안 좋아해요."
"우리는 다르지." 노인이 말했다. "나는 네가 다섯 살 때부터 짐을 들게 했으니."
"알아요." 소년이 말했다. "금방 올게요. 커피 한 잔 더 드세요. 여기는 외상이 돼요."
소년은 산호 바위 위를 맨발로 걸어 미끼를 넣어 두는 얼음 창고로 갔다.
노인은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오늘 하루 그가 먹을 것은 이게 다였고, 그는 이것을 마셔 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오래전부터 그는 먹는 일이 지겨워졌고, 점심을 싸 가는 일도 없었다. 배 이물에 물 한 병을 두었는데, 하루에 필요한 건 그것뿐이었다.
소년이 정어리와 신문지에 싼 미끼 두 마리를 가지고 돌아왔다. 두 사람은 발밑에 자갈 섞인 모래를 느끼며 오솔길을 따라 배로 내려갔고, 배를 들어 물에 밀어 넣었다.
"행운을 빌어요, 할아버지."
"행운을 빈다." 노인이 말했다. 그는 노에 감긴 밧줄 고리를 놋좆에 끼우고, 물속의 노깃이 밀어내는 힘에 맞서 몸을 앞으로 숙이며 어둠 속에서 항구 밖으로 노를 저어 나가기 시작했다. 다른 바닷가에서 나온 배들도 바다로 나가고 있었다. 달이 언덕 너머로 진 지금은 배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노인은 노가 물에 잠겼다가 밀어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따금 배에서 누군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대부분의 배는 노 젓는 소리 말고는 조용했다. 배들은 항구 어귀를 벗어나자 흩어졌고, 저마다 고기가 있으리라 기대하는 바다로 향했다. 노인은 자기가 멀리 나가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육지 냄새를 뒤로하고 맑은 새벽 바다 냄새 속으로 노를 저어 나갔다. 어부들이 '큰 우물'이라고 부르는 곳을 지날 때 그는 물속에서 모자반이 내는 인광을 보았다. 그곳은 갑자기 1,300미터 가까이 깊어지는 곳이라, 해류가 깎아지른 바다 밑바닥 벽에 부딪쳐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바람에 온갖 고기가 모여들었다. 여기에는 새우와 미끼 고기가 몰려 있었고, 가장 깊은 구덩이에는 이따금 오징어 떼도 있었다. 이것들은 밤이면 수면 가까이 떠올랐고, 떠도는 고기들이 모두 그것을 먹으러 왔다.
어둠 속에서 노인은 아침이 오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노를 저으며 그는 날치가 물을 박차고 나올 때의 떨리는 소리와, 날치의 빳빳하게 편 날개가 어둠 속으로 날아갈 때 내는 쉿쉿 소리를 들었다. 그는 날치를 무척 좋아했다. 날치는 바다에서 그의 가장 큰 친구였다. 그는 새들이 가여웠다. 특히 늘 날아다니며 찾아다니지만 거의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 작고 연약한 거무스름한 제비갈매기들이 가여웠다. 그는 생각했다. '새들은 우리보다 고단하게 산다. 남의 먹이를 빼앗는 새들이나 크고 힘센 새들은 빼고. 바다가 이렇게 잔인할 수 있는데 왜 저 바다제비들은 저렇게 연약하고 고운 몸으로 태어났을까? 바다는 다정하고 무척 아름답다. 하지만 아주 잔인해질 수도 있고, 그건 너무나 갑자기 닥친다. 작고 구슬픈 소리를 내며 물을 스치듯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는 저런 새들은 바다에서 살기에는 너무 연약하게 만들어졌다.'
그는 언제나 바다를 '라 마르'라고 생각했다. 스페인어로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다를 부르는 말이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이따금 바다를 나쁘게 말하지만, 그럴 때도 언제나 여자에 대해 말하듯 한다. 젊은 어부들 가운데 몇몇은, 상어 간이 돈이 많이 되던 시절에 사들인 모터보트를 타고 낚싯줄에 찌 대신 부표를 다는 이들은, 바다를 남성형인 '엘 마르'라고 불렀다. 그들은 바다를 경쟁 상대나 일터, 심지어 적처럼 말했다. 그러나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여성으로, 큰 은혜를 베풀기도 하고 거두기도 하는 존재로 생각했다. 바다가 거칠거나 못된 짓을 한다면 그건 바다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었다. 달이 여자에게 그러듯 바다에도 영향을 주는 거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꾸준히 노를 저었다. 자기 속도를 넘지 않았고, 이따금 해류가 소용돌이치는 곳 말고는 바다가 잔잔했기 때문에 힘이 들지 않았다. 그는 일의 삼분의 일을 해류에 맡기고 있었고,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 시각에 오리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벌써 더 멀리 나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깊은 우물에서 일주일을 일했는데 아무것도 못 잡았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오늘은 가다랑어와 날개다랑어 떼가 있는 데까지 나가 보자. 어쩌면 그 떼에 큰 놈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날이 아주 밝기 전에 그는 미끼를 내리고 해류를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미끼 하나는 70미터 아래에 있었다. 둘째는 140미터, 셋째와 넷째는 180미터와 230미터 아래 파란 물속에 있었다. 미끼는 모두 머리를 아래로 하고 매달려 있었다. 낚싯바늘 자루는 미끼 고기 몸속에 넣어 단단히 묶고 꿰매었고, 바깥으로 튀어나온 바늘의 굽은 데와 끝은 싱싱한 정어리로 덮었다. 정어리는 하나하나 두 눈을 꿰어서 튀어나온 쇠 위에 반쯤 걸린 꽃다발처럼 만들었다. 큰 고기가 건드려 볼 수 있는 바늘의 어느 부분도 냄새가 달콤하고 맛이 좋지 않은 곳이 없었다.
소년은 그에게 싱싱한 작은 다랑어, 그러니까 날개다랑어 두 마리를 주었고, 그것들은 가장 깊은 두 줄에 추처럼 매달려 있었다. 다른 두 줄에는 커다란 푸른 전갱이와 노랑 전갱이를 달았는데, 전에 한 번 쓴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상태가 좋았고, 훌륭한 정어리들이 냄새와 맛을 더해 주었다. 커다란 연필만큼 굵은 낚싯줄은 하나하나 물오른 푸른 막대에 고리로 걸어 두어서, 미끼를 조금이라도 당기거나 건드리면 막대가 휘어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 줄마다 70미터짜리 사리가 두 개씩 있어서 다른 여분의 사리에 이어 붙일 수 있었기 때문에, 필요하면 고기 한 마리가 550미터가 넘는 줄을 끌고 나갈 수도 있었다.
이제 노인은 배 옆으로 내민 막대 세 개가 휘는지 지켜보며, 줄이 위아래로 곧게 서서 제 깊이를 지키도록 살살 노를 저었다. 날이 꽤 밝았고, 이제 언제라도 해가 뜰 참이었다.
해가 바다에서 엷게 떠올랐다. 노인은 다른 배들을 볼 수 있었다. 배들은 물 위에 낮게, 훨씬 해안 쪽으로 붙어서 해류를 가로질러 흩어져 있었다. 이윽고 해가 더 밝아지자 물 위로 눈부신 빛이 깔렸고, 해가 말갛게 떠오르자 잔잔한 바다가 그 빛을 그의 눈으로 되쏘아서 눈이 몹시 아팠다. 그는 그쪽을 보지 않고 노를 저었다. 그는 물속을 내려다보며 어두운 물속으로 곧장 내려간 낚싯줄들을 지켜보았다. 그는 누구보다 줄을 곧게 드리웠다. 그래야 해류의 어둠 속 깊이마다 바로 그가 바라는 자리에 미끼가 기다리고 있다가 거기서 헤엄치는 고기를 맞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줄을 해류에 흘러가게 내버려 두어서, 어부들은 180미터 깊이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은 110미터에 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줄을 정확하게 드리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다만 이제 운이 없을 뿐이다. 하지만 누가 알겠나? 어쩌면 오늘일지도. 날마다 새날이다. 운이 좋으면 좋다. 하지만 나는 차라리 정확하고 싶다. 그래야 운이 왔을 때 준비가 되어 있다.
해가 이제 두 시간만큼 더 높이 올라서 동쪽을 바라봐도 눈이 그리 아프지 않았다. 이제 보이는 배는 세 척뿐이었고, 그것들도 아주 낮게, 멀리 해안 쪽에 보였다.
평생 아침 해가 내 눈을 아프게 했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도 눈은 아직 좋다. 저녁에는 해를 똑바로 쳐다봐도 눈앞이 캄캄해지지 않는다. 저녁 해가 더 세기도 하다. 그런데 아침에는 눈이 아프다.
바로 그때 그는 긴 검은 날개를 단 군함조 한 마리가 앞쪽 하늘에서 맴도는 것을 보았다. 새는 뒤로 젖힌 날개로 비스듬히 재빨리 내리꽂혔다가 다시 맴돌았다.
"뭘 찾았구나." 노인이 소리 내어 말했다. "그냥 둘러보는 게 아니야."
그는 새가 맴도는 쪽으로 천천히, 꾸준히 노를 저어 갔다. 서두르지 않았고, 낚싯줄은 위아래로 곧게 유지했다. 하지만 해류를 조금 더 바짝 타서, 여전히 제대로 고기를 낚으면서도 새를 이용하려 하지 않을 때보다는 더 빨리 나아갔다.
새는 하늘로 더 높이 올라가 날개를 움직이지 않은 채 다시 맴돌았다. 그러다 갑자기 내리꽂혔고, 노인은 날치들이 물에서 튀어나와 수면 위로 필사적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만새기다." 노인이 소리 내어 말했다. "큰 만새기야."
그는 노를 거둬들이고 이물 밑에서 작은 낚싯줄 하나를 꺼냈다. 철사 목줄에 중간 크기 바늘이 달린 줄이었다. 그는 바늘에 정어리 하나를 꿰어 배 밖으로 늘어뜨린 다음, 고물의 고리못에 단단히 맸다. 그리고 다른 줄에도 미끼를 꿰어 이물 그늘에 사려 두었다. 그는 다시 노를 저으며, 이제 물 위로 낮게 날며 먹이를 쫓는 날개 긴 검은 새를 지켜보았다.
지켜보는 사이 새는 다시 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내리꽂혔다가, 날치를 쫓으며 날개를 마구, 헛되이 휘저었다. 노인은 큰 만새기들이 달아나는 날치를 쫓느라 물이 살짝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만새기들은 날치가 날아가는 아래로 물을 가르며 따라가다가, 날치가 떨어질 때면 그 자리에서 빠른 속도로 덮칠 것이었다. 큰 만새기 떼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넓게 퍼져 있으니 날치들은 거의 가망이 없다. 새는 아예 가망이 없고. 날치는 새가 잡기엔 너무 크고 너무 빠르다.
그는 날치들이 거듭거듭 튀어 오르는 것과, 새가 헛되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저 떼는 놓쳤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너무 빨리, 너무 멀리 가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무리에서 떨어진 놈을 하나 건질지도 모르고, 어쩌면 내 큰 고기가 저 떼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 내 큰 고기는 어딘가에 꼭 있을 거다.
육지 위의 구름은 이제 산처럼 솟아 있었고, 해안은 뒤로 회청색 언덕을 거느린 긴 초록 선일 뿐이었다. 물은 이제 짙푸른 빛이었는데, 너무 짙어서 거의 자줏빛이었다. 물속을 내려다보니 어두운 물에서 붉은 플랑크톤이 체로 친 듯 흩어져 있었고, 해가 이제 이상한 빛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는 줄들이 물속으로 곧게 내려가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을 지켜보았고, 플랑크톤이 그렇게 많은 것을 보니 기뻤다. 고기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해가 더 높이 떠오른 지금 해가 물속에 만드는 이상한 빛은 날씨가 좋으리라는 뜻이었고, 육지 위 구름의 모양도 그랬다. 그러나 새는 이제 거의 보이지 않았고, 물 위에는 햇볕에 바랜 노란 모자반 몇 덩이와, 배 바로 옆에 떠 있는 고깔해파리의 자줏빛 공기주머니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지갯빛이 도는 젤리 같은 그 주머니는 반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옆으로 뒤집혔다가 다시 바로 섰다. 고깔해파리는 길고 치명적인 자줏빛 촉수를 물속에 1미터 가까이 늘어뜨린 채 거품처럼 명랑하게 떠 있었다.
"아구아 말라." 노인이 말했다. 고약한 물이라는 뜻이었다. "이 갈보 같은 것."
노에 가볍게 기대 흔들리던 자리에서 그는 물속을 내려다보았다. 늘어진 촉수와 같은 빛깔을 한 아주 작은 고기들이 촉수 사이로, 떠다니는 주머니가 만드는 작은 그늘 아래로 헤엄치고 있었다. 그것들은 독에 끄떡없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아서, 노인이 고기와 씨름하는 동안 촉수 몇 가닥이 낚싯줄에 걸려 끈적끈적한 자줏빛으로 들러붙어 있으면, 그의 팔과 손에는 옻이 올랐을 때 같은 부스럼과 상처가 생겼다. 그러나 아구아 말라의 독은 금세 퍼졌고, 채찍처럼 후려쳤다.
무지갯빛 주머니들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것들은 바다에서 가장 거짓된 것이었고, 노인은 커다란 바다거북들이 그것을 먹는 것을 보기를 좋아했다. 거북들은 그것을 보면 앞에서 다가가 눈을 감고 몸을 등딱지 속에 완전히 숨긴 다음 촉수째 먹어 치웠다. 노인은 거북들이 그것을 먹는 것을 보기를 좋아했고, 폭풍이 지난 뒤 바닷가에서 그것들을 밟으며 걷다가 굳은살 박인 발바닥 밑에서 그것들이 펑펑 터지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아했다.
그는 우아하고 빠르고 값도 많이 나가는 푸른바다거북과 매부리바다거북을 좋아했고, 덩치만 크고 어리석은 붉은바다거북은 다정하게 업신여겼다. 붉은바다거북은 누런 갑옷을 두르고, 짝짓기하는 꼴이 괴상하고, 눈을 감은 채 고깔해파리를 행복하게 먹어 치웠다.
그는 여러 해 동안 거북잡이 배를 탔지만 거북에 대해 신비로운 생각을 품지는 않았다. 그는 거북이 모두 가여웠다. 배만큼 길고 무게가 1톤이나 나가는 커다란 장수거북까지도. 사람들은 대개 거북에게 무정했다. 거북의 심장은 몸을 자르고 토막 낸 뒤에도 몇 시간이나 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인은 생각했다. 나한테도 그런 심장이 있고, 내 발과 손도 거북의 것과 닮았다. 그는 힘을 기르려고 흰 거북알을 먹었다. 9월과 10월에 정말 큰 고기를 상대할 만큼 튼튼해지려고 5월 내내 거북알을 먹었다.
그는 또 날마다 상어 간유를 한 잔씩 마셨다. 많은 어부들이 도구를 보관하는 창고의 큰 드럼통에 들어 있었는데, 원하는 어부는 누구나 마실 수 있었다. 어부들은 대부분 그 맛을 싫어했다. 하지만 어부들이 일어나는 꼭두새벽에 일어나는 것보다 더 고역은 아니었고, 온갖 감기와 독감에 아주 좋았고 눈에도 좋았다.
이제 노인이 고개를 들어 보니 새가 다시 맴돌고 있었다.
"고기를 찾았구나."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날치도 없었고 흩어지는 미끼 고기도 없었다. 그런데 노인이 지켜보는 사이, 작은 다랑어 한 마리가 공중으로 솟아올라 몸을 돌리더니 머리부터 물속으로 떨어졌다. 다랑어는 햇빛에 은빛으로 빛났고, 그놈이 물속으로 떨어지자 또 한 마리, 또 한 마리가 솟아올랐다. 다랑어들은 사방으로 뛰어오르며 물을 휘젓고, 미끼 고기를 쫓아 길게 도약했다. 그것들은 미끼 고기를 에워싸고 몰아붙이고 있었다.
저놈들이 너무 빨리 가지만 않으면 저 한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겠다,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는 다랑어 떼가 물을 하얗게 휘젓는 것과, 겁에 질려 수면으로 몰린 미끼 고기들 사이로 새가 내리꽂히며 물을 스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새가 큰 도움이 되는구나." 노인이 말했다. 바로 그때 고물에 드리운 줄이 발밑에서 팽팽해졌다. 그는 줄을 한 고리 발에 걸어 두고 있었다. 노인은 노를 놓고 줄을 단단히 붙든 채 끌어당기기 시작했는데, 작은 다랑어가 부르르 떨며 당기는 무게가 느껴졌다. 끌어당길수록 떨림이 세졌고, 노인은 배 안으로 휙 들어 올리기 전에 물속에서 고기의 푸른 등과 금빛 옆구리를 볼 수 있었다. 고기는 햇볕 속에 고물에 누워 있었다. 단단하고 총알 같은 모양이었고, 커다랗고 멍청한 눈을 부릅뜬 채 날렵하고 재빠른 꼬리로 배 바닥을 빠르게 부르르 떨며 쳐서 목숨을 다해 가고 있었다. 노인은 자비를 베풀어 머리를 내리쳤고, 아직 몸을 떨고 있는 그것을 발로 차서 고물 그늘로 밀어 넣었다.
"날개다랑어다."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멋진 미끼가 되겠다. 4.5킬로그램은 나가겠어."
혼자 있을 때 소리 내어 말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그는 기억나지 않았다. 옛날에는 혼자 있을 때 노래를 불렀다. 고깃배나 거북잡이 배에서 혼자 키를 잡고 밤 당번을 설 때면 이따금 노래를 불렀다. 혼자 있을 때 소리 내어 말하기 시작한 건 아마 소년이 떠난 뒤였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그와 소년이 함께 고기를 잡을 때는 대개 꼭 필요할 때만 말을 했다. 밤이나 궂은 날씨에 폭풍에 갇혀 있을 때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다에서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고, 노인도 늘 그렇게 여기며 그것을 지켰다. 그러나 이제 그는 성가시게 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생각을 소리 내어 말하는 일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소리 내어 말하는 걸 들으면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하지만 나는 미치지 않았으니 상관없다. 그리고 부자들은 배에 라디오가 있어서 라디오가 말을 걸어 주고 야구 소식도 전해 주지."
지금은 야구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은 한 가지만 생각할 때다. 내가 그걸 하려고 태어난 일 말이다. 저 다랑어 떼 근처에 큰 놈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먹이를 먹던 날개다랑어 떼에서 처진 놈 하나만 건졌을 뿐이다. 그런데 저놈들은 멀리,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오늘 수면에 보이는 것은 모두 아주 빠르게 북동쪽으로 간다. 하루 중 이맘때라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날씨의 조짐일까?
이제 해안의 초록빛은 보이지 않았고, 눈을 인 것처럼 하얗게 보이는 푸른 언덕 꼭대기들과, 그 위에 높은 설산처럼 보이는 구름들만 보였다. 바다는 아주 어두웠고, 빛이 물속에 프리즘을 만들었다. 셀 수 없이 많던 플랑크톤 알갱이들은 높이 뜬 해 때문에 이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노인에게 지금 보이는 것은 파란 물속의 크고 깊은 프리즘들과, 깊이가 1,600미터나 되는 물속으로 곧장 내려간 그의 낚싯줄들뿐이었다.
다랑어 떼는 다시 물속으로 내려갔다. 어부들은 이 종류의 고기를 모두 다랑어라고 불렀고, 팔거나 미끼와 바꿀 때만 저마다의 이름으로 구별했다. 해가 이제 뜨거웠다. 노인은 목덜미에 햇볕을 느꼈고, 노를 저으며 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냥 흘러가면서 잠을 자도 된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줄을 발가락에 한 고리 감아 두면 깰 테니까. 하지만 오늘은 여든닷새째 날이니 하루를 제대로 낚아야 한다.
바로 그때 줄들을 지켜보다가 그는 배 밖으로 내민 푸른 막대 하나가 홱 휘는 것을 보았다.
"그래." 그가 말했다. "그래." 그러고는 배를 흔들지 않게 노를 거둬들였다. 그는 손을 뻗어 줄을 잡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부드럽게 쥐었다. 당기는 힘도 무게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는 줄을 가볍게 쥐고 있었다. 그러자 다시 신호가 왔다. 이번에는 떠보듯 당기는 것이었는데, 단단하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그는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다. 180미터 아래에서 청새치 한 마리가, 작은 다랑어 머리에서 튀어나온 손으로 벼린 바늘의 끝과 자루를 덮은 정어리를 먹고 있었다.
노인은 줄을 섬세하고 부드럽게 쥔 채, 왼손으로 줄을 막대에서 풀었다. 이제 고기가 아무 당김도 느끼지 못하게 줄을 손가락 사이로 풀어 줄 수 있었다.
이렇게 먼바다에서, 이 달에는, 그놈은 엄청나게 클 거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먹어라, 고기야. 먹어. 제발 먹어라. 얼마나 싱싱하냐. 그리고 너는 거기 180미터 아래 어둡고 차가운 물속에 있잖니. 어둠 속에서 한 번 더 돌아서 와서 먹어라.
그는 가볍고 섬세하게 당기는 것을 느꼈고, 이어서 더 세게 당기는 것을 느꼈다. 정어리 머리가 바늘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서." 노인이 소리 내어 말했다. "한 번 더 돌아라. 냄새만 맡아 봐. 근사하지 않니? 이제 맛있게 먹어라. 그다음엔 다랑어가 있다. 단단하고 차갑고 근사하지. 수줍어하지 마라, 고기야. 먹어라."
그는 엄지와 손가락 사이에 줄을 쥔 채 기다리며, 그 줄과 다른 줄들을 함께 지켜보았다. 고기가 위로나 아래로 헤엄쳐 갔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시 아까처럼 섬세하게 당기는 손길이 왔다.
"먹을 거다." 노인이 소리 내어 말했다. "하느님, 저놈이 먹게 도와주소서."
그러나 고기는 먹지 않았다. 고기는 가 버렸고, 노인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가 버렸을 리 없어." 그가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아시듯 가 버렸을 리 없다. 돌고 있는 거다. 전에 바늘에 걸려 본 적이 있어서 뭔가 기억하는지도 모르지."
그때 줄에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고, 노인은 기뻤다.
"그냥 돌았던 거야." 그가 말했다. "먹을 거다."
부드럽게 당기는 느낌에 기뻐하고 있는데, 그다음에 뭔가 단단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무거운 것이 느껴졌다. 고기의 무게였다. 노인은 줄을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게 놓아주었고, 줄은 여분의 사리 두 개 가운데 첫째 것에서 풀려 나갔다. 줄이 노인의 손가락 사이로 가볍게 미끄러지며 내려가는 동안, 엄지와 검지로 쥐는 힘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약했는데도 그는 여전히 그 엄청난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대단한 놈이다." 그가 말했다. "지금 미끼를 입에 가로로 물고 가는 거다."
그러다 몸을 돌려 삼키겠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좋은 일을 말해 버리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게 얼마나 큰 고기인지 알았고, 그놈이 다랑어를 입에 가로로 문 채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가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 순간 고기가 움직임을 멈추는 것이 느껴졌지만 무게는 그대로였다. 그러다 무게가 더 늘어서 그는 줄을 더 풀어 주었다. 잠깐 엄지와 검지에 힘을 주자 무게가 더 늘더니 곧장 아래로 내려갔다.
"삼켰다." 그가 말했다. "이제 실컷 먹게 놔둬야지."
그는 줄을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뜨리면서 왼손을 아래로 뻗어, 여분의 사리 두 개의 풀린 끝을 옆 줄의 여분 사리 두 개의 고리에 단단히 이었다. 이제 준비가 되었다. 지금 쓰고 있는 사리 말고도 70미터짜리 사리가 세 개나 남아 있었다.
"조금 더 먹어라." 그가 말했다. "실컷 먹어라."
바늘 끝이 네 심장을 꿰뚫고 너를 죽이도록 먹어라, 하고 그는 생각했다. 순순히 올라와서 내가 작살을 꽂게 해 다오. 좋아. 준비됐니? 식탁에 충분히 오래 앉아 있었니?
"지금이다!" 그는 소리 내어 말하고 두 손으로 세게 낚아챘다. 줄을 1미터쯤 끌어당기고는 다시, 또다시 낚아챘다. 팔 힘을 다하고 몸을 축처럼 돌려 실은 무게를 다해, 두 팔로 번갈아 가며 줄을 당겼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기는 그저 천천히 멀어져 갈 뿐이었고, 노인은 그놈을 한 치도 끌어 올릴 수 없었다. 그의 줄은 질기고 무거운 고기를 낚으려고 만든 것이었다. 그는 줄을 등에 대고 버텼다. 줄이 너무 팽팽해져서 물방울이 튀어 오를 정도였다. 그러자 줄이 물속에서 느릿하게 쉬익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노인은 가로대에 몸을 버티고 당기는 힘에 맞서 뒤로 기댄 채 여전히 줄을 붙들고 있었다. 배가 천천히 북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기는 꾸준히 움직였고, 그들은 잔잔한 물 위를 천천히 나아갔다. 다른 미끼들은 아직 물속에 있었지만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 아이가 있으면 좋을 텐데." 노인이 소리 내어 말했다. "고기한테 끌려가고 있고, 나는 끌려가는 밧줄 말뚝 신세다. 줄을 배에 묶어 둘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러면 그놈이 줄을 끊을 수도 있다. 할 수 있는 한 붙들고 있다가, 놈이 꼭 필요할 때는 줄을 내줘야 한다. 다행히 놈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앞으로 가고 있구나."
놈이 아래로 내려가기로 하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놈이 깊이 잠수해서 죽어 버리면 어떻게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뭔가 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그는 줄을 등에 대고 붙든 채, 줄이 물속에 비스듬히 박힌 모양과 배가 꾸준히 북서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러다 놈이 죽겠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언제까지나 이럴 수는 없을 테니. 그러나 네 시간이 지나도 고기는 여전히 배를 끌고 꾸준히 먼바다로 헤엄쳐 가고 있었고, 노인은 여전히 줄을 등에 걸치고 단단히 버티고 있었다.
"놈을 건 게 정오였다." 그가 말했다. "그런데 아직 한 번도 놈을 못 봤다."
그는 고기를 걸기 전에 밀짚모자를 머리에 꾹 눌러썼는데, 그게 이마를 파고들고 있었다. 목도 말랐다. 그는 무릎을 꿇고, 줄이 홱 당겨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이물 쪽으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서 한 손으로 물병을 집었다. 병을 열고 물을 조금 마셨다. 그러고는 이물에 기대어 쉬었다. 그는 내려놓은 돛대와 돛 위에 앉아 쉬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견디려고 애썼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니 육지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상관없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아바나의 불빛을 보고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 해가 지려면 아직 두 시간이 있으니, 어쩌면 그 전에 놈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때 안 떠오르면 달이 뜰 때 떠오를지도 모르고. 그때도 안 떠오르면 해가 뜰 때 떠오를지도 모른다. 나는 쥐도 안 나고 힘도 있다. 입에 바늘이 걸린 건 저놈이다. 그런데 저렇게 끌어당기다니 대단한 놈이다. 철사 목줄을 입으로 꽉 물고 있는 게 틀림없다. 놈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무엇을 상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딱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
노인이 별을 보며 가늠할 수 있는 한, 고기는 그날 밤 내내 진로도 방향도 바꾸지 않았다. 해가 지자 추워졌고, 노인의 등과 팔과 늙은 다리에서 땀이 차갑게 말랐다. 낮에 그는 미끼 상자를 덮어 두었던 포대를 햇볕에 펴서 말려 두었었다. 해가 지자 그는 그 포대를 목에 묶어 등 위로 늘어뜨렸고, 이제 어깨에 걸친 줄 밑으로 조심조심 밀어 넣었다. 포대가 줄을 받쳐 주었고, 그는 이물에 대고 몸을 앞으로 기대는 방법을 찾아내서 거의 편안하다고 할 만한 자세를 잡았다. 사실 그 자세는 견딜 수 없는 것보다 조금 덜할 뿐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거의 편안하다고 여겼다.
나는 놈을 어쩌지 못하고, 놈도 나를 어쩌지 못한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놈이 이렇게 버티는 한은.
한번은 일어나서 뱃전 너머로 오줌을 누고, 별을 보며 진로를 확인했다. 줄은 그의 어깨에서 곧장 뻗어 나가 물속에 인광의 줄무늬처럼 보였다. 이제 그들은 전보다 더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고, 아바나의 불빛도 전만큼 밝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해류가 그들을 동쪽으로 실어 가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아바나의 불빛을 놓치면 우리가 더 동쪽으로 가고 있다는 뜻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고기의 진로가 그대로라면 앞으로 몇 시간은 더 그 불빛이 보여야 하니까. 오늘 큰 리그 야구는 어떻게 됐을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이걸 하면 근사할 텐데. 그러다 그는 생각했다. 늘 이 생각만 해라. 네가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해라. 어리석은 짓을 하면 안 된다.
그러고는 소리 내어 말했다. "그 아이가 있으면 좋을 텐데. 나를 도와주고 이걸 볼 수 있게."
늙어서 혼자 지내면 안 되는 법인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힘을 잃지 않으려면 다랑어가 상하기 전에 꼭 먹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자. 아무리 먹기 싫어도 아침에는 그걸 먹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마라. 잊지 마라, 하고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밤사이 돌고래 두 마리가 배 근처로 왔다. 노인은 돌고래들이 몸을 뒤채며 숨을 내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수컷이 숨을 내뿜는 소리와 암컷이 한숨처럼 내뿜는 소리를 구별할 수 있었다.
"좋은 놈들이다." 그가 말했다. "놀고 장난치고 서로 사랑하지. 날치처럼 우리 형제들이다."
그러다 그는 자기가 건 큰 고기가 가여워지기 시작했다. 놈은 훌륭하고 이상한 놈이다. 나이가 몇이나 되는지 누가 알겠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렇게 힘센 고기도, 이렇게 이상하게 구는 고기도 처음이다. 너무 영리해서 뛰어오르지 않는지도 모른다. 뛰어오르거나 미친 듯이 내달리면 나를 끝장낼 수도 있을 텐데. 하지만 어쩌면 전에도 여러 번 바늘에 걸려 봐서, 이렇게 싸워야 한다는 걸 아는지도 모른다. 상대가 한 사람뿐이라는 것도, 그게 늙은이라는 것도 놈은 알 수 없다. 그래도 정말 대단한 고기다. 살이 좋다면 시장에서 얼마나 받을까. 놈은 수놈답게 미끼를 물었고, 수놈답게 당기고, 싸움에 허둥대는 기색이 없다. 놈한테 무슨 계획이 있는 걸까, 아니면 나만큼이나 필사적인 걸까?
그는 청새치 한 쌍 가운데 한 마리를 걸었던 때를 떠올렸다. 수놈은 늘 암놈이 먼저 먹게 해 주는데, 그때 걸린 것은 암놈이었다. 암놈은 미친 듯이, 겁에 질려, 절망적으로 싸우다가 금세 지쳐 버렸다. 그동안 내내 수놈은 암놈 곁을 떠나지 않고 줄을 가로지르며 암놈과 함께 수면에서 맴돌았다. 수놈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노인은 그놈이 꼬리로 줄을 끊을까 봐 겁이 났다. 그 꼬리는 큰 낫처럼 날카로웠고, 크기와 모양도 거의 낫 같았다. 노인은 갈고리로 암놈을 찍고, 사포 같은 날이 선 쌍날칼 같은 주둥이를 붙잡고, 몸빛이 거울 뒷면 같은 빛깔이 될 때까지 몽둥이로 머리를 내리쳤다. 그러고는 소년의 도움을 받아 배 위로 끌어 올렸는데, 그동안에도 수놈은 배 옆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노인이 줄을 정리하고 작살을 준비하는 사이, 수놈은 암놈이 어디 있는지 보려는 듯 배 옆에서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랐다가, 가슴지느러미인 연보랏빛 날개를 활짝 펴고 넓은 연보랏빛 줄무늬를 모두 드러낸 채 깊이 내려가 버렸다. 그놈은 아름다웠고, 끝까지 곁에 머물러 있었다고 노인은 기억했다.
청새치를 잡으면서 본 것 가운데 그게 가장 슬픈 일이었다,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 아이도 슬퍼했지. 우리는 암놈에게 용서를 빌고 얼른 손질해 버렸다.
"그 아이가 여기 있으면 좋을 텐데." 그는 소리 내어 말하고, 이물의 둥근 널빤지에 몸을 기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어깨에 걸친 줄을 통해, 큰 고기가 제가 고른 어딘가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힘을 느꼈다.
한때 나의 속임수 때문에 놈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놈은 온갖 덫과 함정과 속임수가 닿지 않는 먼바다의 깊고 어두운 물속에 머물기로 했다. 나는 모든 사람들 너머로 놈을 찾으러 가기로 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 너머로. 이제 우리는 하나로 이어져 있고, 정오부터 줄곧 그랬다. 그리고 우리 둘 중 누구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
어쩌면 어부가 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을 하려고 태어났다. 날이 밝으면 다랑어를 꼭 먹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날이 밝기 얼마 전, 뭔가가 그의 뒤쪽에 드리운 미끼 하나를 물었다. 막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줄이 뱃전 너머로 쏜살같이 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그는 칼집의 칼을 풀고, 고기가 당기는 힘을 모두 왼쪽 어깨에 실은 채 몸을 뒤로 젖혀 뱃전의 나무에 대고 줄을 끊었다. 그러고는 자기와 가장 가까운 다른 줄도 끊고, 어둠 속에서 여분 사리들의 풀린 끝을 단단히 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 솜씨 좋게 일했고, 매듭을 조일 때는 사리를 발로 밟아 고정했다. 이제 여분의 사리가 여섯 개 생겼다. 끊어 낸 미끼 줄에서 두 개씩, 고기가 문 미끼 줄에서 두 개였고, 모두 이어져 있었다.
날이 밝으면 70미터 깊이에 드리운 미끼까지 가서 그것도 끊고 여분의 사리를 이어야겠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좋은 카탈루냐산 코르델 낚싯줄을 360미터나 잃게 되겠지. 바늘과 목줄까지. 그거야 다시 구하면 된다. 하지만 내가 다른 고기를 걸었다가 그놈 때문에 이 고기를 놓치면 누가 이 고기를 다시 구해 주나? 방금 미끼를 문 게 무슨 고기였는지는 모르겠다. 청새치였을 수도, 황새치였을 수도, 상어였을 수도 있다. 느껴 보지도 못했다. 너무 서둘러 떼어 내야 했으니까.
그는 소리 내어 말했다. "그 아이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 아이는 없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너한테는 너 자신뿐이다. 그러니 어둡든 말든 지금 마지막 줄까지 가서 그걸 끊고 여분의 사리 두 개를 잇는 게 좋겠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했다. 어둠 속이라 힘들었고, 한번은 고기가 갑자기 내달리는 바람에 그는 앞으로 고꾸라져 눈 밑이 찢어졌다. 피가 뺨을 타고 조금 흘러내렸다. 하지만 피는 턱에 이르기 전에 엉겨 말라붙었고, 그는 다시 이물로 돌아가 나무에 기대어 쉬었다. 그는 포대를 바로잡고, 줄이 어깨의 새로운 자리에 걸리도록 조심스럽게 옮긴 다음, 줄을 어깨로 단단히 받친 채 고기가 당기는 힘을 조심스럽게 느껴 보았다. 그러고는 손으로 배가 물속을 나아가는 것을 느껴 보았다.
놈이 왜 그렇게 홱 내달렸을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철사가 놈의 산 같은 등 위로 미끄러졌나 보다. 놈의 등이 내 등만큼 아플 리는 없다. 하지만 놈이 아무리 커도 이 배를 영원히 끌고 갈 수는 없다. 이제 말썽을 일으킬 만한 것은 다 치웠고 여분의 줄도 넉넉하다. 사람이 바랄 수 있는 건 다 갖춘 셈이다.
"고기야." 그가 부드럽게, 소리 내어 말했다. "죽을 때까지 너와 함께 있으마."
놈도 나와 함께 있겠지, 하고 노인은 생각하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동트기 전이라 이제 추웠고, 그는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나무에 몸을 밀어붙였다. 놈이 버티는 만큼 나도 버틸 수 있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첫 햇살 속에서 줄은 앞으로, 아래로 물속에 뻗어 있었다. 배는 꾸준히 나아갔고, 해의 첫 가장자리가 떠올랐을 때 해는 노인의 오른쪽 어깨 위에 있었다.
"북쪽으로 가고 있구나." 노인이 말했다. 해류가 우리를 동쪽으로 멀리 밀어냈겠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놈이 해류를 따라 방향을 틀면 좋겠다. 그러면 놈이 지쳐 가고 있다는 뜻일 텐데.
해가 더 높이 떠오르자 노인은 고기가 지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조짐은 딱 하나뿐이었다. 줄이 기운 각도를 보니 놈이 전보다 얕은 데서 헤엄치고 있었다. 그렇다고 꼭 뛰어오르리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래도 뛰어오를 수는 있었다.
"하느님, 놈이 뛰어오르게 해 주소서." 노인이 말했다. "놈을 다룰 만큼 줄은 넉넉합니다."
줄을 조금만 더 팽팽하게 당기면 놈이 아파서 뛰어오를지도 모른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제 날이 밝았으니 놈이 뛰어올라서 등뼈를 따라 있는 부레에 공기를 채웠으면 좋겠다. 그러면 깊이 내려가서 죽을 수가 없다.
그는 줄을 더 팽팽하게 당겨 보려 했다. 그러나 고기를 건 뒤로 줄은 줄곧 끊어지기 직전까지 팽팽했다. 몸을 뒤로 젖혀 당기자 거친 느낌이 들었고, 그는 더는 힘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절대 홱 잡아채면 안 된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잡아챌 때마다 바늘에 찢긴 상처가 넓어지고, 그러면 정작 놈이 뛰어오를 때 바늘을 털어 낼지도 모른다. 아무튼 해가 뜨니 기분이 좀 낫고, 이번만은 해를 마주 보지 않아도 된다.
줄에 노란 해초가 걸려 있었지만, 노인은 그게 짐을 조금 더 무겁게 할 뿐이라는 걸 알았기에 기뻤다. 밤에 그토록 많은 인광을 만들던 노란 모자반이었다.
"고기야." 그가 말했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무척 존경한다. 하지만 오늘이 가기 전에 너를 죽이고 말 거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자, 하고 그는 생각했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북쪽에서 배를 향해 날아왔다. 휘파람새였는데, 물 위로 아주 낮게 날고 있었다. 노인은 새가 몹시 지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새는 배 고물에 내려앉아 쉬었다. 그러다 노인의 머리 둘레를 한 바퀴 날더니, 더 편한 낚싯줄 위에 앉아 쉬었다.
"몇 살이냐?" 노인이 새에게 물었다. "처음 하는 여행이니?"
노인이 말하자 새가 그를 보았다. 새는 너무 지쳐서 줄을 살펴볼 겨를도 없었고, 가냘픈 발로 줄을 꼭 움켜쥔 채 그 위에서 휘청거렸다.
"그 줄은 튼튼하다." 노인이 새에게 말했다. "너무 튼튼하지. 바람 한 점 없는 밤을 지냈는데 그렇게 지치면 안 되지. 새들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새들을 맞으러 바다로 나오는 매들이 있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은 새에게 하지 않았다. 어차피 새는 알아듣지 못할 것이고, 매에 대해서는 곧 알게 될 테니까.
"푹 쉬어라, 작은 새야." 그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육지로 가서 사람이나 새나 고기나 다 그렇듯 네 운을 시험해 봐라."
말을 하니 기운이 났다. 밤사이 등이 굳어서 이제는 정말로 아팠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우리 집에 머물러도 된다, 새야." 그가 말했다. "지금 일기 시작한 산들바람에 돛을 올려 너를 데려다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하지만 나는 친구와 함께 있단다."
바로 그때 고기가 갑자기 홱 내달렸고, 노인은 이물 쪽으로 끌려가 고꾸라졌다. 몸을 버티며 줄을 조금 내주지 않았다면 배 밖으로 끌려 나갈 뻔했다.
줄이 홱 당겨질 때 새는 날아올랐고, 노인은 새가 가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는 오른손으로 줄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보다가 손에서 피가 나는 것을 알았다.
"그럼 뭔가가 놈을 아프게 했구나." 그는 소리 내어 말하고, 고기의 방향을 돌릴 수 있는지 보려고 줄을 뒤로 당겼다. 그러나 줄이 끊어지기 직전에 이르자 그는 그대로 버티며 줄이 당기는 힘에 맞서 뒤로 몸을 기댔다.
"이제 너도 아프구나, 고기야." 그가 말했다. "하느님이 아시듯, 나도 아프다."
그는 이제 새를 찾아 둘러보았다. 새가 곁에 있어 주면 좋았을 것이다. 새는 가고 없었다.
오래 머물지 않았구나,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네가 가는 곳은 해안에 닿을 때까지 더 험하단다. 그런데 나는 어쩌자고 놈이 한 번 홱 당긴 것에 손을 베였을까? 아주 멍청해지고 있나 보다. 아니면 작은 새를 보면서 새 생각을 하고 있었던 탓인지도 모르지. 이제 내 일에 정신을 차리고, 그다음에는 힘이 빠지지 않게 다랑어를 먹어야겠다.
"그 아이가 여기 있고, 소금이 좀 있으면 좋을 텐데."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그는 줄의 무게를 왼쪽 어깨로 옮기고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은 다음, 바닷물에 손을 씻고 1분 넘게 물속에 담그고 있었다. 피가 흘러가는 것과, 배가 나아가면서 물이 꾸준히 손에 부딪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놈이 많이 느려졌구나." 그가 말했다.
노인은 손을 바닷물에 더 오래 담가 두고 싶었지만, 고기가 또 갑자기 내달릴까 봐 겁이 나서 일어나 몸을 버티고 손을 해에 비춰 들어 보았다. 줄에 쓸려 살이 베인 것뿐이었다. 하지만 하필 손에서 일을 하는 부분이었다. 그는 이 일이 끝나기 전에 손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알았고, 시작도 하기 전에 손을 베인 것이 언짢았다.
"자." 손이 마르자 그가 말했다. "이제 작은 다랑어를 먹어야겠다. 갈고리로 끌어당기면 닿겠지. 여기서 편하게 먹자."
그는 무릎을 꿇고 고물 밑에 있는 다랑어를 갈고리로 찾아, 사려 둔 줄에 걸리지 않게 끌어당겼다. 다시 왼쪽 어깨로 줄을 받치고 왼손과 팔로 몸을 버틴 채, 그는 다랑어를 갈고리에서 빼고 갈고리를 제자리에 갖다 두었다. 그러고는 한쪽 무릎으로 고기를 누르고, 머리 뒤에서 꼬리까지 세로로 검붉은 살을 길게 저며 냈다. 등뼈 바로 옆에서 뱃살 가장자리까지 쐐기 모양으로 저민 살이었다. 여섯 조각을 저며 낸 뒤 그는 그것들을 이물의 나무 위에 펼쳐 놓고, 칼을 바지에 닦고, 다랑어 뼈를 꼬리째 들어 배 밖으로 던졌다.
"한 마리를 다 먹을 수는 없을 것 같구나." 그는 말하며 저민 살 한 조각에 칼을 그었다. 줄이 꾸준히 세게 당기는 것이 느껴졌는데, 왼손에 쥐가 나 있었다. 왼손이 무거운 줄을 쥔 채 오그라들어 굳어 버렸고, 그는 진저리를 치며 손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손이냐." 그가 말했다. "쥐가 나고 싶으면 나라. 새 발톱처럼 오그라들어 봐라. 그래 봐야 아무 소용 없다."
자, 하고 그는 생각하며 어두운 물속으로 비스듬히 박힌 줄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먹어라. 그러면 손에 힘이 생길 거다. 손 탓이 아니다. 고기하고 몇 시간이나 씨름했으니까. 하지만 너는 놈과 언제까지라도 버틸 수 있다. 이제 다랑어를 먹어라.
그는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먹을 만했다.
잘 씹어라, 하고 그는 생각했다. 즙을 남김없이 빨아 먹어라. 라임이나 레몬이나 소금을 조금 쳐서 먹으면 나쁘지 않겠다.
"좀 어떠냐, 손아?" 그는 시체처럼 거의 뻣뻣하게 굳은, 쥐 난 손에게 물었다. "너를 위해 좀 더 먹으마."
그는 둘로 자른 조각의 나머지 반을 먹었다. 꼼꼼히 씹고 나서 껍질을 뱉었다.
"어떠냐, 손아? 아니면 아직 알기엔 이르냐?"
그는 한 조각을 통째로 집어 씹었다.
"힘세고 피가 진한 고기다." 그는 생각했다. "만새기 대신 이놈을 잡은 게 운이 좋았다. 만새기는 너무 달다. 이건 단맛이 거의 없고 힘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도 실속을 챙기는 것 말고는 다 쓸데없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소금이 좀 있으면 좋을 텐데. 남은 걸 햇볕이 썩힐지 말릴지 모르니 배가 고프지 않아도 다 먹어 두는 게 낫겠다. 고기는 차분하고 꾸준하다. 다 먹고 나면 준비가 되겠지.
"참아라, 손아." 그가 말했다. "너를 위해 이러는 거다."
저 고기한테도 먹을 걸 줄 수 있으면 좋겠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놈은 내 형제다. 하지만 나는 놈을 죽여야 하고, 그러려면 힘을 지켜야 한다. 그는 쐐기 모양으로 저민 살을 천천히, 정성껏 모두 먹었다.
그는 허리를 펴고 손을 바지에 닦았다.
"자." 그가 말했다. "이제 줄을 놓아도 된다, 손아. 네가 그 바보짓을 그만둘 때까지 오른팔 하나로 놈을 다루마." 그는 왼손이 쥐고 있던 무거운 줄을 왼발로 밟고, 등에 걸린 당김에 맞서 몸을 뒤로 젖혔다.
"하느님, 쥐가 풀리게 도와주소서." 그가 말했다. "고기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그래도 놈은 차분해 보인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자기 계획대로 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놈의 계획은 뭘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내 계획은 뭐지? 놈이 워낙 크니 내 계획은 놈의 계획에 맞춰 그때그때 짜야 한다. 놈이 뛰어오르면 죽일 수 있다. 하지만 놈은 언제까지나 아래에 머문다. 그러면 나도 언제까지나 놈과 함께 버틸 수밖에.
그는 쥐 난 손을 바지에 문지르며 손가락을 달래 보려 했다. 그러나 손은 펴지지 않았다. 햇볕을 쬐면 펴질지도 모른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날로 먹은 기운 센 다랑어 살이 소화되면 펴질지도 모르고. 꼭 필요하면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펴겠다. 하지만 지금 억지로 펴고 싶지는 않다. 저절로 펴지고 저절로 돌아오게 두자. 아무튼 밤새 여러 줄을 끊고 잇느라 손을 많이 혹사했으니까.
그는 바다 건너를 바라보았고, 이제 자기가 얼마나 혼자인지 알았다. 그러나 깊고 어두운 물속의 프리즘과, 앞으로 뻗어 나간 줄과, 잔잔한 바다의 이상한 물결이 보였다. 이제 무역풍을 몰고 올 구름이 쌓이고 있었다. 앞을 바라보니 물오리 한 떼가 물 위 하늘에 또렷이 새겨졌다가, 흐려졌다가, 다시 또렷이 새겨지며 날아가는 것이 보였고, 그는 바다에서 사람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어떤 사람들이 작은 배를 타고 육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생각했고, 날씨가 갑자기 궂어지는 달에는 그들이 옳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허리케인의 달이었고, 허리케인이 없을 때 허리케인 달의 날씨는 한 해 가운데 가장 좋았다.
허리케인이 오면 바다에 있는 사람은 며칠 전부터 하늘에서 늘 그 조짐을 본다. 육지 사람들은 무엇을 봐야 하는지 몰라서 못 본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육지에서는 구름 모양도 다르겠지. 아무튼 지금은 허리케인이 오고 있지 않다.
하늘을 보니 하얀 뭉게구름이 정답게 쌓아 올린 아이스크림처럼 피어 있었고, 저 높이 9월의 높은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가늘게 깔려 있었다.
"브리사가 가볍게 부는구나." 그가 말했다. 브리사는 바닷바람을 뜻했다. "너보다는 나한테 좋은 날씨다, 고기야."
왼손은 아직 쥐가 나 있었지만, 그는 천천히 그것을 풀고 있었다.
쥐가 나는 건 질색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건 자기 몸이 자기를 배반하는 거다. 식중독으로 남들 앞에서 설사를 하거나 토하는 것도 창피한 일이다. 하지만 쥐는, 그는 쥐를 칼람브레라고 생각했는데, 특히 혼자 있을 때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그 아이가 여기 있으면 주물러서 팔뚝부터 풀어 줄 텐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풀릴 거다.
그때 그는 물속 줄의 기울기가 바뀌는 것을 보기도 전에 오른손으로 줄이 당기는 힘이 달라진 것을 느꼈다. 그러고는 줄에 몸을 기대고 왼손으로 허벅지를 세게, 빠르게 치는 동안, 줄이 천천히 위로 기울어 오르는 것이 보였다.
"놈이 올라온다." 그가 말했다. "어서, 손아. 제발 어서."
줄이 천천히, 꾸준히 올라오더니 배 앞쪽 바다가 불룩 솟아오르고 고기가 나왔다. 고기는 끝도 없이 솟아올랐고, 옆구리에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고기는 햇빛에 번쩍였다. 머리와 등은 짙은 자줏빛이었고, 햇빛 아래 옆구리의 줄무늬는 넓고 연한 보랏빛으로 보였다. 칼 같은 주둥이는 야구 방망이만큼 길었고, 펜싱 칼처럼 끝이 가늘어졌다. 놈은 온몸을 물 밖으로 드러냈다가 다이빙 선수처럼 매끄럽게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큰 낫의 날 같은 꼬리가 물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고, 줄이 쏜살같이 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배보다 60센티미터는 더 길구나." 노인이 말했다. 줄은 빠르지만 꾸준히 풀려 나갔고, 고기는 허둥대지 않았다. 노인은 두 손으로 줄이 끊어지기 바로 전까지만 버티려 애쓰고 있었다. 꾸준히 당겨서 고기의 속도를 늦추지 못하면 고기가 줄을 몽땅 끌고 나가 끊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대단한 고기다. 놈을 잘 구슬려야 한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놈이 제 힘을 알게 해서는 안 된다. 놈이 내달리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도 알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놈이라면 지금 있는 힘을 다 쏟아서 뭔가가 끊어질 때까지 내달릴 텐데. 하지만 다행히 고기들은 저들을 죽이는 우리만큼 영리하지 않다. 우리보다 더 고귀하고 더 능하긴 하지만.
노인은 큰 고기를 많이 보았다. 450킬로그램이 넘는 놈도 많이 보았고, 평생 그만한 놈을 두 마리 잡았다. 하지만 혼자 잡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혼자서, 육지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는 지금껏 본 것 가운데 가장 크고 들어 본 것보다도 큰 고기에 매여 있었고, 왼손은 여전히 무언가를 움켜쥔 독수리 발톱처럼 굳어 있었다.
그래도 풀릴 거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오른손을 도우려고 틀림없이 풀릴 거다. 형제가 셋 있다. 저 고기와 내 두 손이다. 풀려야 한다. 쥐가 나 있다니 손답지 못하다. 고기는 다시 느려져서 늘 가던 속도로 가고 있었다.
놈은 왜 뛰어올랐을까,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마치 자기가 얼마나 큰지 나한테 보여 주려는 것처럼 뛰어올랐다. 아무튼 이제는 안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놈한테 보여 줄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러면 쥐 난 손을 들키겠지. 놈이 나를 실제보다 더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두자. 그러면 나는 정말 그렇게 될 거다. 내가 저 고기라면 좋겠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놈은 가진 걸 다 가지고 나의 의지와 지혜에만 맞서고 있으니.
그는 나무에 편안하게 몸을 기대고 오는 고통을 오는 대로 받아들였다. 고기는 꾸준히 헤엄쳤고, 배는 어두운 물을 천천히 헤쳐 나갔다. 동쪽에서 바람이 일면서 잔물결이 일었고, 정오에는 노인의 왼손이 풀렸다.
"너한테는 나쁜 소식이다, 고기야." 그는 말하고, 어깨를 덮은 포대 위로 줄을 옮겼다.
그는 편안했지만 고통스러웠다. 다만 고통스럽다는 것은 조금도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믿음이 깊은 사람은 아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이 고기를 잡게 해 주신다면 주님의 기도 열 번과 성모송 열 번을 바치겠습니다. 이놈을 잡으면 코브레의 성모님께 순례를 가겠다고 약속합니다. 약속입니다."
그는 기계적으로 기도를 외기 시작했다. 이따금 너무 지쳐서 기도문이 생각나지 않을 때면, 저절로 나오도록 빨리 외웠다. 성모송이 주님의 기도보다 외기 쉽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그러고는 덧붙였다. "복되신 동정녀시여, 이 고기가 죽도록 빌어 주소서. 놈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요."
기도를 마치자 기분은 훨씬 나아졌지만 고통은 꼭 그만큼, 어쩌면 조금 더 심했다. 그는 이물의 나무에 기대어 기계적으로 왼손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들바람이 살살 일고 있었지만 해는 이제 뜨거웠다.
"고물 쪽에 드리운 작은 줄에 미끼를 다시 다는 게 좋겠다." 그가 말했다. "고기가 하룻밤 더 버티기로 하면 나도 또 먹어야 하는데, 병에 물도 얼마 안 남았다. 여기서는 만새기 말고는 잡을 게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싱싱할 때 먹으면 나쁘지 않을 거다. 오늘 밤 날치가 배로 뛰어들면 좋겠다. 하지만 날치를 꾈 불빛이 없구나. 날치는 날로 먹어도 아주 맛있고 썰 필요도 없지. 이제 힘을 모두 아껴야 한다. 맙소사, 놈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그래도 놈을 죽일 거다." 그가 말했다. "놈이 아무리 위대하고 영광스러워도."
불공평한 일이긴 하지만,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사람이 무엇을 견딜 수 있는지 놈에게 보여 주겠다.
"그 아이한테 나는 별난 늙은이라고 했지." 그가 말했다. "이제 그걸 증명해야 할 때다."
그가 지금껏 천 번이나 그것을 증명했다는 사실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제 그는 다시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매번이 새로운 한 번이었고, 그것을 하는 동안 그는 지난 일을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놈이 잠들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자면서 사자 꿈을 꿀 텐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왜 내게 남은 것 중에 사자가 제일 중요할까? 생각하지 마라, 늙은이야, 하고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이제 나무에 살며시 기대 쉬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라. 놈은 일하고 있다. 너는 될 수 있는 한 일을 적게 해라.
오후로 접어들고 있었고, 배는 여전히 천천히, 꾸준히 나아갔다. 그러나 이제 동풍 때문에 짐이 더 무거워졌고, 노인은 잔물결을 따라 살며시 흔들렸으며, 등에 걸린 줄의 아픔도 그에게 순하고 부드럽게 다가왔다.
오후에 한 번 줄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기는 조금 더 얕은 데서 계속 헤엄칠 뿐이었다. 해가 노인의 왼팔과 어깨와 등을 비추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고기가 북쪽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을 알았다.
한 번 보고 나니 이제 그는 고기가 자줏빛 가슴지느러미를 날개처럼 활짝 펴고, 꼿꼿이 선 커다란 꼬리로 어둠을 가르며 물속을 헤엄치는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었다. 저 깊이에서 놈은 얼마나 볼 수 있을까,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놈은 눈이 엄청나게 크다. 말은 눈이 그보다 훨씬 작은데도 어둠 속에서 볼 수 있지. 나도 한때는 어둠 속에서 꽤 잘 보았다. 칠흑 같은 어둠에서는 아니지만, 거의 고양이처럼 보았다.
햇볕과 꾸준히 손가락을 움직인 덕에 이제 왼손은 완전히 풀렸고, 그는 당기는 힘을 왼손으로 더 옮겨 싣기 시작했다. 그리고 등 근육을 으쓱거려 줄이 파고드는 아픔을 조금 옮겼다.
"네가 지치지 않았다면, 고기야."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너는 정말 별난 놈이다."
그는 이제 몹시 지쳤고, 곧 밤이 오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다른 일을 생각하려 애썼다. 그는 메이저리그를 생각했다. 그에게 그것은 그란 리가스였다. 그는 뉴욕 양키스가 디트로이트 티그레스, 그러니까 타이거스와 경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후에고스, 그러니까 경기 결과를 모르고 지나는 게 벌써 이틀째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자신감을 가져야 하고, 발뒤꿈치에 뼈 돌기가 나서 아픈데도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위대한 디마지오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뼈 돌기가 뭘까?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운 에스푸엘라 데 우에소. 뼈로 된 며느리발톱. 우리한테는 그런 게 없다. 그게 싸움닭의 며느리발톱이 발뒤꿈치에 박힌 것만큼 아플까? 나는 그런 걸, 아니면 싸움닭들처럼 눈 하나를 잃거나 두 눈을 다 잃고도 계속 싸우는 걸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사람은 위대한 새나 짐승에 비하면 대단한 게 못 된다. 그래도 나는 저 아래 어두운 바닷속에 있는 저 짐승이 되고 싶다.
"상어만 오지 않는다면."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상어가 오면 하느님, 놈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위대한 디마지오라면 내가 이 고기와 버티는 만큼 오래 고기와 버틸 수 있을까? 그는 생각했다. 틀림없이 그럴 거다. 젊고 힘이 세니 더 오래 버티겠지. 게다가 아버지가 어부였다. 하지만 뼈 돌기 때문에 너무 아프지 않을까?
"모르겠다."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나는 뼈 돌기가 나 본 적이 없으니."
해가 지자, 그는 자신감을 더 얻으려고 카사블랑카의 선술집에서 시엔푸에고스에서 온 덩치 큰 흑인과 팔씨름을 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 흑인은 부두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탁자 위에 분필로 그은 선에 팔꿈치를 대고 팔뚝을 곧게 세우고 손을 꽉 맞잡은 채 하루 낮 하루 밤을 버텼다. 저마다 상대의 손을 탁자에 눕히려고 애썼다. 내기가 많이 걸렸고, 석유 등불 아래로 사람들이 방을 드나들었다. 그는 흑인의 팔과 손과 얼굴을 바라보았다. 처음 여덟 시간이 지난 뒤로는 심판들이 잠을 잘 수 있게 네 시간마다 심판을 바꾸었다. 그와 흑인의 손톱 밑에서 피가 배어 나왔고, 두 사람은 서로의 눈과 손과 팔뚝을 바라보았다. 내기꾼들은 방을 드나들거나 벽에 붙은 높은 의자에 앉아 구경했다. 벽은 나무로 되어 있었고 밝은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는데, 등불이 그 위에 두 사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흑인의 그림자는 거대했고, 바람에 등불이 흔들릴 때마다 벽 위에서 움직였다.
밤새도록 승산이 이쪽저쪽으로 오갔고, 사람들은 흑인에게 럼주를 먹이고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그러면 흑인은 럼주를 마시고 엄청난 힘을 쓰려 했고, 한번은 노인을, 그때는 노인이 아니라 챔피언 산티아고였던 그를 8센티미터 가까이나 기울게 만들었다. 그러나 노인은 손을 다시 꼿꼿이 세워 비등하게 만들었다. 그때 그는 훌륭한 사내이자 대단한 운동선수인 그 흑인을 이겼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날이 밝아 내기꾼들이 무승부로 하자고 하고 심판이 고개를 젓고 있을 때, 그는 온 힘을 터뜨려 흑인의 손을 아래로, 아래로 눌러 마침내 나무 탁자에 닿게 했다. 시합은 일요일 아침에 시작되어 월요일 아침에 끝났다. 내기꾼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무승부로 하자고 한 것은 부두에 가서 설탕 포대를 싣거나 아바나 석탄 회사에 일하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들 끝장을 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는 누구도 일하러 가기 전에 시합을 끝냈다.
그 뒤로 오랫동안 모두가 그를 챔피언이라고 불렀고, 봄에 재시합이 있었다. 하지만 돈이 많이 걸리지 않았고, 그는 꽤 쉽게 이겼다. 첫 시합에서 시엔푸에고스 흑인의 자신감을 꺾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그는 몇 번 더 시합을 하고는 그만두었다. 마음만 단단히 먹으면 누구든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이 고기 잡는 오른손에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는 왼손으로 몇 번 연습 시합을 해 보았다. 그러나 왼손은 언제나 배신자였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왼손을 믿지 않았다.
이제 햇볕이 잘 구워 줄 거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밤에 너무 추워지지만 않으면 다시 쥐가 나지는 않겠지. 오늘 밤은 무슨 일이 있을까.
비행기 한 대가 마이애미로 가는 길에 머리 위로 지나갔고, 그는 비행기 그림자에 날치 떼가 놀라 흩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치가 이렇게 많으니 만새기가 있겠다." 그는 말하고, 고기를 조금이라도 끌어당길 수 있는지 보려고 줄에 대고 몸을 뒤로 젖혔다. 그러나 끌어당길 수 없었다. 줄은 끊어지기 직전의 그 단단함과, 물방울이 튀며 떨리는 상태 그대로였다. 배는 천천히 나아갔고, 그는 비행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았다.
비행기를 타면 정말 이상하겠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 높이에서 보면 바다가 어떻게 보일까? 너무 높이 날지만 않으면 고기들이 잘 보일 거다. 360미터 높이에서 아주 천천히 날면서 위에서 고기들을 보고 싶다. 거북잡이 배를 탈 때 돛대 꼭대기 가로대에 올라가곤 했는데, 그 높이에서도 많은 게 보였다. 거기서 보면 만새기는 더 초록빛으로 보이고, 줄무늬와 자줏빛 반점도 보이고, 떼 지어 헤엄치는 것이 다 보인다. 어두운 해류 속을 빠르게 다니는 고기들은 왜 다 등이 자줏빛이고, 대개 자줏빛 줄무늬나 반점이 있을까? 만새기가 초록빛으로 보이는 건 물론 실은 금빛이라서 그렇다. 하지만 정말 배가 고파서 먹이를 먹으러 오면 옆구리에 청새치처럼 자줏빛 줄무늬가 드러난다. 화가 나서 그럴까, 아니면 속도를 더 내서 그럴까?
어두워지기 바로 전, 그들이 커다란 모자반 섬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모자반 덩어리는 잔물결에 들썩이며 흔들려서, 마치 바다가 노란 담요 밑에서 무언가와 사랑을 나누는 것 같았다. 그때 만새기 한 마리가 그의 작은 줄을 물었다. 그는 만새기가 공중으로 뛰어올랐을 때 처음 그것을 보았다. 지는 햇살 속에서 진짜 금빛으로 빛나며 공중에서 몸을 구부리고 미친 듯이 퍼덕였다. 만새기는 겁에 질려 곡예를 하듯 거듭거듭 뛰어올랐고, 그는 고물 쪽으로 옮겨 가서 웅크린 채 오른손과 팔로 큰 줄을 붙들고 왼손으로 만새기를 끌어당겼다. 끌어당긴 줄은 그때마다 맨발인 왼발로 밟았다. 고기가 고물에 이르러 필사적으로 이리저리 곤두박질치며 물을 가를 때, 노인은 고물 너머로 몸을 숙여 자줏빛 반점이 박힌, 윤이 나는 금빛 고기를 고물 안으로 들어 올렸다. 고기는 턱을 경련하듯 놀리며 바늘을 빠르게 물어뜯었고, 길고 납작한 몸과 꼬리와 머리로 배 바닥을 쿵쿵 쳤다. 노인은 그 번쩍이는 금빛 머리를 몽둥이로 내리쳤고, 고기는 부르르 떨다가 잠잠해졌다.
노인은 고기에서 바늘을 빼고 정어리를 하나 더 꿰어 줄을 던졌다. 그러고는 천천히 이물로 돌아갔다. 왼손을 씻어 바지에 닦았다. 그다음 무거운 줄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기고, 해가 바다로 잠기는 것과 큰 줄의 기울기를 지켜보며 바닷물에 오른손을 씻었다.
"놈은 하나도 안 달라졌구나." 그가 말했다. 그러나 손에 부딪히는 물의 움직임을 지켜보니 눈에 띄게 느려져 있었다.
"노 두 개를 고물에 가로로 묶어 두면 밤에 놈이 느려질 거다." 그가 말했다. "놈은 오늘 밤도 끄떡없겠고 나도 그렇다."
만새기는 살에 피가 남아 있게 조금 이따가 배를 따는 게 낫겠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조금 이따가 그걸 하면서 노를 묶어 저항을 만들면 된다. 지금은 고기를 조용히 두고, 해 질 녘에 너무 건드리지 않는 게 좋겠다. 해 질 녘은 모든 고기한테 힘든 때니까.
그는 손을 바람에 말린 다음 그 손으로 줄을 쥐고 될 수 있는 한 몸을 편하게 하고는, 나무 쪽으로 몸이 앞으로 끌려가게 두었다. 그러면 배가 자기만큼, 아니 자기보다 더 많이 당김을 받아 냈다.
이제 요령을 터득하고 있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적어도 이 부분은. 그리고 놈은 미끼를 문 뒤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걸 기억해라. 놈은 덩치가 커서 먹을 게 많이 필요하다. 나는 다랑어 한 마리를 다 먹었다. 내일은 만새기를 먹을 거다. 그는 만새기를 도라도라고 불렀다. 손질하면서 조금 먹어 두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다랑어보다 먹기 힘들 거다. 하지만 쉬운 일은 하나도 없는 법이다.
"좀 어떠냐, 고기야?" 그가 소리 내어 물었다. "나는 괜찮다. 왼손도 나아졌고 하룻밤 하루 낮 먹을 것도 있다. 배를 끌어라, 고기야."
그는 정말로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등에 걸린 줄 때문에 생긴 고통이 이제 고통을 거의 지나 뻐근함으로 바뀌었는데, 그게 미덥지 않았다. 하지만 이보다 더한 일도 겪었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손은 조금 베였을 뿐이고 다른 손은 쥐가 풀렸다. 다리도 괜찮다. 게다가 이제 먹을 것 문제에서는 내가 놈보다 앞섰다.
9월에는 해가 지면 금세 어두워지듯이 이제 어두워졌다. 노인은 이물의 닳은 나무에 기대 누워 될 수 있는 한 쉬었다. 첫 별들이 나와 있었다. 그는 리겔이라는 이름은 몰랐지만 그 별을 보았고, 곧 별들이 모두 나와서 멀리 있는 친구들이 다 곁에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저 고기도 내 친구다."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저런 고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하지만 나는 놈을 죽여야 한다. 별들을 죽이려 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사람이 날마다 달을 죽이려 해야 한다고 생각해 봐라, 하고 그는 생각했다. 달은 달아나 버리겠지. 하지만 사람이 날마다 해를 죽이려 해야 한다고 생각해 봐라. 우리는 운 좋게 태어난 거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다 그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큰 고기가 가여워졌다. 그러나 놈을 가여워하는 마음 때문에 놈을 죽이겠다는 결심이 느슨해지지는 않았다. 놈이 몇 사람이나 먹여 살릴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놈을 먹을 자격이 있을까? 물론 없다. 놈이 하는 행동이나 놈의 위대한 품위를 보면 놈을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이런 것들을 모르겠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해나 달이나 별을 죽이려 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바다에 살면서 우리의 참된 형제들을 죽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자, 이제 저항 장치를 생각해야 한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위험한 점도 있고 좋은 점도 있다. 놈이 힘을 쓸 때 노로 만든 저항 장치가 그대로 있어서 배가 가볍게 움직이지 못하면, 줄을 너무 많이 잃어서 놈을 놓칠 수도 있다. 배가 가벼우면 우리 둘의 고통이 길어지지만, 그게 내 안전장치다. 놈은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은 엄청난 속도를 가지고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만새기가 상하지 않게 배를 따고, 힘을 내려면 조금 먹어 둬야 한다.
이제 한 시간만 더 쉬면서 놈이 꾸준하고 안정된 것을 확인한 다음 고물로 가서 일을 하고 결정을 내리자. 그동안 놈이 어떻게 구는지, 무슨 변화가 있는지 볼 수 있을 거다. 노는 좋은 수다. 하지만 이제는 안전하게 갈 때가 됐다. 놈은 아직 기운이 펄펄하다. 그리고 바늘이 놈의 입 가장자리에 걸려 있는 걸 봤는데, 놈은 입을 꽉 다물고 있다. 바늘이 주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배고픔이 주는 고통, 그리고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와 맞서고 있다는 것, 그게 전부다. 이제 쉬어라, 늙은이야. 다음 할 일이 올 때까지 놈이 일하게 두어라.
그는 두 시간쯤이라고 생각되는 동안 쉬었다. 이제 달은 늦게야 떠서 시간을 가늠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정말로 쉰 것도 아니었고, 그나마 덜 힘들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는 여전히 어깨로 고기가 당기는 힘을 받아 내고 있었지만, 왼손을 이물 뱃전에 얹고 고기에 맞서는 힘을 점점 더 배에 맡겼다.
줄을 배에 묶어 둘 수 있다면 얼마나 간단할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놈이 조금만 홱 당겨도 줄이 끊어질 수 있다. 줄이 당기는 힘을 내 몸으로 받아 주고, 언제든 두 손으로 줄을 내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너는 아직 한숨도 못 잤다, 늙은이야."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반나절과 하룻밤,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났는데 한숨도 못 잤다. 놈이 조용하고 꾸준할 때 조금이라도 잘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안 자면 머리가 흐려질 수도 있다."
머리는 충분히 맑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너무 맑다. 내 형제인 별들만큼 맑다. 그래도 자야 한다. 별들도 자고 달과 해도 자고, 바다도 해류가 없고 잔잔한 어떤 날에는 잔다.
하지만 잊지 말고 자라, 하고 그는 생각했다. 억지로라도 자고, 줄은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을 궁리해 둬라. 이제 고물로 가서 만새기를 손질해라. 자야 한다면 노를 저항 장치로 묶어 두는 건 너무 위험하다.
자지 않고 버틸 수도 있다, 하고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하다.
그는 고기를 홱 잡아당기지 않게 조심하면서 손과 무릎으로 기어 고물로 가기 시작했다. 놈도 반쯤 잠들어 있을지 모른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놈이 쉬는 걸 바라지 않는다. 놈은 죽을 때까지 끌어야 한다.
고물로 돌아온 그는 몸을 돌려 왼손으로 어깨에 걸린 줄의 당김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칼집에서 칼을 뽑았다. 이제 별이 밝아서 만새기가 똑똑히 보였다. 그는 만새기 머리에 칼날을 찔러 넣어 고물 밑에서 끌어냈다. 한 발로 고기를 밟고 항문에서 아래턱 끝까지 재빨리 갈랐다. 그러고는 칼을 내려놓고 오른손으로 내장을 훑어 깨끗이 긁어내고 아가미를 뜯어냈다. 손에 위장이 묵직하고 미끈미끈하게 느껴져서 그것을 갈라 보았다. 안에 날치가 두 마리 있었다. 싱싱하고 단단했다. 그는 날치들을 나란히 놓고, 내장과 아가미는 고물 너머로 던졌다. 그것들은 물속에 인광의 자취를 남기며 가라앉았다. 만새기는 이제 차가웠고, 별빛 아래서 문둥병에 걸린 듯한 잿빛 섞인 흰색이었다. 노인은 오른발로 고기 머리를 밟은 채 한쪽 껍질을 벗겼다. 그러고는 고기를 뒤집어 다른 쪽 껍질도 벗기고, 양쪽 살을 머리에서 꼬리까지 떠냈다.
그는 뼈를 배 밖으로 밀어 넣고, 물에 소용돌이가 이는지 지켜보았다. 그러나 뼈가 천천히 가라앉으며 내는 빛뿐이었다. 그는 몸을 돌려 떠낸 두 쪽 살 사이에 날치 두 마리를 끼우고 칼을 칼집에 넣은 다음, 천천히 이물로 돌아갔다. 등에 걸린 줄의 무게 때문에 허리가 굽었고, 그는 오른손에 고기를 들고 있었다.
이물로 돌아온 그는 떠낸 살 두 쪽을 나무 위에 펼쳐 놓고 그 옆에 날치를 놓았다. 그다음 줄을 어깨의 새로운 자리로 옮기고, 다시 왼손을 뱃전에 얹어 줄을 붙들었다. 그러고는 뱃전 너머로 몸을 숙여 날치를 물에 씻으면서, 손에 부딪는 물의 빠르기를 살폈다. 고기 껍질을 벗기느라 손에서 인광이 났고, 그는 물이 손에 부딪치며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물살은 전보다 약했고, 손 옆면을 배 널빤지에 문지르자 인광 부스러기들이 떨어져 나와 천천히 고물 쪽으로 흘러갔다.
"놈이 지쳤거나 쉬고 있구나." 노인이 말했다. "이제 이 만새기를 먹고, 좀 쉬고, 잠깐 눈을 붙이자."
별빛 아래, 밤이 점점 추워지는 가운데 그는 만새기 살 한 쪽의 절반과, 배를 따고 머리를 자른 날치 한 마리를 먹었다.
"만새기는 익혀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그가 말했다. "날로 먹으면 이렇게 형편없구나. 다시는 소금이나 라임 없이 배를 타지 않겠다."
머리가 좀 있었으면 하루 종일 이물에 물을 끼얹어 두었을 텐데. 그게 마르면 소금이 됐을 거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만새기를 건 게 거의 해 질 녘이었으니. 그래도 준비가 모자랐던 거다. 그래도 다 잘 씹어 먹었고 메스껍지도 않다.
동쪽 하늘이 구름으로 덮이고 있었고, 그가 아는 별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이제 마치 커다란 구름의 협곡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고, 바람은 잦아들었다.
"사나흘 뒤에는 날씨가 궂겠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오늘 밤도 내일도 아니다. 고기가 차분하고 꾸준할 때 잠을 좀 잘 채비를 해라, 늙은이야."
그는 오른손으로 줄을 꽉 쥐고, 이물의 나무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 기대면서 허벅지로 오른손을 눌렀다. 그러고는 줄을 어깨 조금 아래로 옮기고 왼손으로 줄을 받쳤다.
오른손은 받쳐 주기만 하면 줄을 쥐고 있을 수 있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자다가 오른손이 풀리면 줄이 풀려 나갈 때 왼손이 나를 깨워 줄 거다. 오른손한테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오른손은 고생에 익숙하다. 이십 분이나 삼십 분만 자도 좋다. 그는 온몸으로 줄을 감싸듯 웅크린 채 앞으로 엎드려, 오른손에 몸무게를 모두 싣고 잠이 들었다.
그는 사자 꿈은 꾸지 않았다. 대신 13킬로미터에서 16킬로미터나 이어진 엄청난 돌고래 떼 꿈을 꾸었다. 짝짓기 철이었고, 돌고래들은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랐다가 뛰어오를 때 물에 낸 바로 그 구멍으로 다시 들어가곤 했다.
그러고는 마을의 자기 침대에 누워 있는 꿈을 꾸었다. 북풍이 불었고 그는 몹시 추웠는데, 베개 대신 오른팔을 베고 있어서 오른팔이 저렸다.
그다음 그는 길게 뻗은 노란 바닷가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른 어스름에 첫 사자가 바닷가로 내려오는 것이 보였고, 이어서 다른 사자들도 왔다. 저녁의 뭍바람을 받으며 배가 닻을 내리고 있는 곳에서, 그는 뱃머리 나무에 턱을 괴고 사자들이 더 오는지 보려고 기다렸고, 그는 행복했다.
달이 뜬 지 오래였지만 그는 계속 잤고, 고기는 꾸준히 끌었고, 배는 구름의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오른 주먹이 홱 올라와 얼굴을 치는 바람에 깨었고, 줄이 오른손을 태우듯 쓸며 풀려 나가고 있었다. 왼손은 감각이 없었지만 그는 오른손으로 힘껏 줄을 잡아 멈추려 했고, 줄은 쏜살같이 풀려 나갔다. 마침내 왼손이 줄을 찾았고, 그는 줄에 맞서 몸을 뒤로 젖혔다. 이제 줄이 등과 왼손을 태웠고, 왼손이 당기는 힘을 다 받으며 심하게 베였다. 뒤돌아 사려 둔 줄을 보니 매끄럽게 풀려 나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고기가 바다를 크게 터뜨리며 뛰어올랐다가 육중하게 떨어졌다. 그러고는 다시, 또다시 뛰어올랐다. 줄이 여전히 쏜살같이 풀려 나가는데도 배는 빠르게 나아갔고, 노인은 끊어지기 직전까지 힘을 주었다가, 다시 또다시 끊어지기 직전까지 힘을 주었다. 그는 이물에 바짝 끌려가 엎드려 있었고, 얼굴은 저며 놓은 만새기 살에 처박혀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걸 기다렸던 거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니 이제 받아들이자.
줄 값을 치르게 해라, 하고 그는 생각했다. 놈이 줄 값을 치르게 해라.
그는 고기가 뛰어오르는 것은 보지 못하고, 바다가 터지는 소리와 놈이 떨어질 때 나는 육중한 첨벙 소리만 들었다. 줄이 풀려 나가는 속도 때문에 손이 심하게 베였지만, 그는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늘 알고 있었다. 그는 굳은살 박인 데로 줄이 쓸리게 하고, 줄이 손바닥으로 미끄러져 들어오거나 손가락을 베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그 아이가 여기 있으면 사려 둔 줄에 물을 적셔 줄 텐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 그 아이가 여기 있다면. 그 아이가 여기 있다면.
줄은 풀려 나가고 풀려 나가고 또 풀려 나갔다. 하지만 이제 느려지고 있었고, 그는 고기가 한 치 한 치를 힘들여 얻게 만들었다. 이제 그는 나무에서, 뺨에 짓눌린 고기 살 조각에서 머리를 들었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었다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줄을 내주고 있었지만 점점 더 느리게 내주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사려 둔 줄이 발에 느껴지는 데까지 뒤로 물러났다. 줄은 아직 넉넉했고, 이제 고기는 새로 풀려 나간 그 많은 줄이 물속에서 일으키는 저항까지 끌어야 했다.
그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제 놈은 열두 번도 넘게 뛰어올라서 등을 따라 있는 부레에 공기를 채웠으니, 내가 끌어 올릴 수 없는 깊은 데로 내려가 죽을 수는 없다. 놈은 곧 맴돌기 시작할 거고, 그러면 나는 놈을 다뤄야 한다. 놈이 왜 그렇게 갑자기 내달렸을까? 배가 고파서 필사적이 됐을까, 아니면 밤중에 뭔가에 놀랐을까? 갑자기 겁이 났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놈은 그렇게 차분하고 힘센 고기였고, 그렇게 겁 없고 자신만만해 보였는데. 이상한 일이다.
"너나 겁 없고 자신만만해지는 게 좋겠다, 늙은이야." 그가 말했다. "놈을 다시 붙들긴 했지만 줄을 끌어당길 수는 없다. 그래도 곧 놈은 맴돌 수밖에 없다."
노인은 이제 왼손과 어깨로 고기를 붙들고, 몸을 숙여 오른손으로 물을 떠서 얼굴에 묻은 짓이겨진 만새기 살을 씻어 냈다. 그것 때문에 속이 메스꺼워져서 토하고 힘을 잃을까 봐 겁이 났다. 얼굴을 씻고 나서 그는 뱃전 너머 물에 오른손을 씻고, 해가 뜨기 전 첫 빛이 오는 것을 지켜보며 바닷물에 손을 담가 두었다. 놈은 거의 동쪽으로 가고 있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지쳐서 해류를 따라가고 있다는 뜻이다. 곧 맴돌 수밖에 없을 거다. 그때 우리의 진짜 일이 시작된다.
오른손을 물에 충분히 오래 담갔다고 여겨지자 그는 손을 꺼내 들여다보았다. "나쁘지 않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사내에게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새로 베인 상처에 줄이 닿지 않게 조심해서 줄을 쥐고, 배 반대편 바다에 왼손을 담글 수 있게 몸무게를 옮겼다.
"쓸모없는 것치고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가 왼손에게 말했다. "하지만 너를 찾을 수 없던 순간이 있었지."
왜 나는 쓸 만한 두 손을 갖고 태어나지 못했을까?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저 손을 제대로 길들이지 않은 내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느님이 아시듯, 저 손은 배울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그래도 밤에는 그리 나쁘지 않았고 쥐도 한 번밖에 안 났다. 또 쥐가 나면 줄에 잘려 나가라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그는 자기 머리가 맑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만새기를 좀 더 씹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못 먹겠다, 하고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메스꺼워서 힘을 잃는 것보다는 머리가 어찔한 게 낫다. 그리고 얼굴을 처박았던 거라 먹어도 속에 담아 두지 못할 거다. 상할 때까지 비상용으로 남겨 두자. 하지만 이제 와서 먹을 것으로 힘을 내려 하기엔 너무 늦었다. 멍청하긴, 하고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남은 날치를 먹어라.
날치는 손질이 다 된 채 거기 있었다. 그는 왼손으로 그것을 집어 뼈까지 꼼꼼히 씹으며 꼬리까지 남김없이 먹었다.
날치는 다른 어떤 고기보다 영양이 많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적어도 내게 필요한 종류의 힘은. 이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놈이 맴돌기 시작하고 싸움이 오게 두자.
그가 바다로 나온 뒤 세 번째로 해가 떠오를 때 고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줄의 기울기만으로는 고기가 맴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 일렀다. 그는 그저 줄이 당기는 힘이 희미하게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고, 오른손으로 줄을 살살 당기기 시작했다. 줄은 늘 그랬듯 팽팽해졌지만, 막 끊어질 지점에 이르렀을 때 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줄 밑에서 어깨와 머리를 빼내고, 꾸준히, 살살 줄을 당겨 들이기 시작했다. 두 손을 번갈아 휘두르듯 당겼고, 될 수 있는 한 몸과 다리로 당기려 애썼다. 당기는 몸짓에 따라 그의 늙은 다리와 어깨가 축처럼 돌았다.
"아주 큰 원이구나." 그가 말했다. "그래도 맴돌고 있다."
그러다 줄이 더는 들어오지 않았고, 그는 햇빛 속에서 줄에서 물방울이 튀는 것이 보일 때까지 줄을 붙들고 있었다. 그러자 줄이 풀려 나가기 시작했고, 노인은 무릎을 꿇고 줄이 어두운 물속으로 마지못해 되돌아가게 놓아주었다.
"이제 원의 먼 쪽을 돌고 있구나." 그가 말했다. 할 수 있는 한 붙들고 있어야 한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당기는 힘 때문에 원이 매번 짧아질 거다. 어쩌면 한 시간 뒤면 놈을 볼 수 있을 거다. 이제 놈을 구슬리고, 그다음에 죽여야 한다.
그러나 고기는 계속 천천히 맴돌았고, 두 시간 뒤 노인은 땀에 흠뻑 젖고 뼛속까지 지쳐 있었다. 하지만 이제 원은 훨씬 짧아졌고, 줄이 기운 모양으로 보아 고기가 헤엄치면서 꾸준히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시간 전부터 노인의 눈앞에 검은 점들이 어른거렸고, 땀이 눈과 눈 위 상처와 이마의 상처에 짜게 스몄다. 그는 검은 점들은 두렵지 않았다. 이만큼 줄을 당기며 버티면 으레 생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번이나 정신이 아득하고 어지러웠는데, 그것이 걱정스러웠다.
"이런 고기를 앞에 두고 맥없이 무너져 죽을 수는 없다." 그가 말했다. "이제 놈이 이렇게 멋지게 다가오고 있으니, 하느님, 견디게 도와주소서. 주님의 기도 백 번과 성모송 백 번을 바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욀 수가 없습니다."
바친 셈 쳐 주세요,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나중에 외겠습니다.
바로 그때 두 손으로 쥐고 있던 줄이 갑자기 쾅쾅 치며 홱홱 당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날카롭고 단단하고 묵직한 느낌이었다.
놈이 창 같은 주둥이로 철사 목줄을 치고 있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럴 줄 알았다. 놈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놈이 뛰어오를지도 모르는데, 나는 지금은 놈이 계속 맴돌았으면 좋겠다. 뛰어오른 건 놈이 공기를 채우려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뛰어오를 때마다 바늘에 찢긴 상처가 넓어져서 놈이 바늘을 털어 낼 수도 있다.
"뛰지 마라, 고기야." 그가 말했다. "뛰지 마라."
고기는 철사를 몇 번 더 쳤고, 놈이 머리를 흔들 때마다 노인은 줄을 조금씩 내주었다.
놈의 고통을 지금 그대로 붙잡아 둬야 한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내 고통은 상관없다. 내 고통은 내가 다스릴 수 있다. 하지만 놈의 고통은 놈을 미치게 할 수 있다.
얼마 뒤 고기는 철사를 치는 것을 멈추고 다시 천천히 맴돌기 시작했다. 노인은 이제 꾸준히 줄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는 왼손으로 바닷물을 떠서 머리에 끼얹었다. 그러고는 더 떠서 끼얹고 목덜미를 문질렀다.
"쥐는 안 났다." 그가 말했다. "놈은 곧 올라올 거고 나는 버틸 수 있다. 너는 버텨야 한다.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라."
그는 이물에 무릎을 대고 앉아 잠시 다시 줄을 등에 걸쳤다. 놈이 원을 그리며 멀어지는 동안 쉬었다가, 놈이 다가오면 일어서서 다루자, 하고 그는 마음먹었다.
이물에서 쉬면서 줄을 하나도 거둬들이지 않고 고기가 혼자 한 바퀴 돌게 내버려 두고 싶은 유혹이 컸다. 그러나 당기는 힘으로 보아 고기가 배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을 알자, 노인은 일어서서 몸을 축처럼 돌리며 번갈아 당기기 시작했고, 그렇게 얻은 줄을 모두 거둬들였다.
이렇게 지친 건 처음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무역풍이 일고 있다. 하지만 놈을 끌고 돌아갈 때는 그게 좋겠지. 나한테는 그 바람이 꼭 필요하다.
"놈이 다음 바퀴에 멀어질 때 쉬자." 그가 말했다. "훨씬 기분이 낫다. 그러고 나서 두세 바퀴만 더 돌면 놈을 잡을 거다."
밀짚모자는 뒤통수로 한참 넘어가 있었다. 고기가 방향을 트는 것이 느껴지자 그는 줄이 당기는 대로 이물에 주저앉았다.
이제 네가 일해라, 고기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방향을 틀 때 내가 너를 잡겠다.
바다가 꽤 높아져 있었다. 그러나 날씨가 좋을 때 부는 바람이었고, 집에 돌아가려면 그 바람이 꼭 있어야 했다.
"남서쪽으로만 키를 잡으면 된다." 그가 말했다. "바다에서 사람은 절대 길을 잃지 않는다. 게다가 섬이 길쭉하니까."
고기를 처음 본 것은 세 번째 바퀴에서였다.
처음에 그것은 검은 그림자로 보였는데, 배 밑을 지나가는 데 너무 오래 걸려서 그는 그 길이를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야." 그가 말했다. "저렇게 클 리가 없다."
그러나 놈은 정말 그렇게 컸다. 그 바퀴가 끝날 무렵 놈은 겨우 30미터도 안 되는 데서 수면으로 떠올랐고, 노인은 물 밖으로 나온 놈의 꼬리를 보았다. 꼬리는 큰 낫의 날보다 더 높았고, 짙푸른 물 위에서 아주 연한 보랏빛을 띠었다. 꼬리는 뒤로 비스듬히 젖혀져 있었다. 고기가 수면 바로 아래로 헤엄칠 때 노인은 그 거대한 몸집과 몸을 띠처럼 두른 자줏빛 줄무늬를 볼 수 있었다. 등지느러미는 접혀 있었고, 커다란 가슴지느러미는 활짝 펴져 있었다.
이번 바퀴에 노인은 고기의 눈과, 그 둘레를 헤엄치는 잿빛 빨판상어 두 마리를 볼 수 있었다. 빨판상어들은 때로는 고기에 달라붙고, 때로는 쏜살같이 떨어져 나갔다. 때로는 고기의 그림자 속에서 느긋하게 헤엄쳤다. 두 마리 모두 길이가 90센티미터가 넘었고, 빨리 헤엄칠 때면 뱀장어처럼 온몸을 휘저었다.
노인은 이제 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햇볕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기가 차분하고 잔잔하게 한 바퀴씩 돌 때마다 그는 줄을 거둬들이고 있었고, 두 바퀴만 더 돌면 작살을 꽂을 기회가 오리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놈을 가까이, 가까이, 아주 가까이 끌어와야 한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머리를 노려서는 안 된다. 심장을 찔러야 한다.
"침착하고 굳세게, 늙은이야." 그가 말했다.
다음 바퀴에 고기의 등이 물 밖으로 나왔지만 배에서 조금 너무 멀었다. 그다음 바퀴에도 여전히 너무 멀었지만, 놈은 물 밖으로 더 높이 솟아 있었다. 노인은 줄을 조금만 더 끌어당기면 놈을 배 옆에 붙일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는 오래전에 작살을 채비해 두었다. 작살에 달린 가벼운 밧줄은 둥근 바구니에 사려 담겨 있었고, 그 끝은 이물의 말뚝에 단단히 매여 있었다.
고기는 이제 원을 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차분하고 아름다워 보였고, 큰 꼬리만 움직이고 있었다. 노인은 놈을 더 가까이 끌어오려고 있는 힘을 다해 당겼다. 아주 잠깐 고기가 옆으로 조금 기울었다. 그러다 다시 몸을 바로 세우고 또 한 바퀴를 돌기 시작했다.
"놈을 움직였다." 노인이 말했다. "방금 놈을 움직였어."
다시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그는 큰 고기에 할 수 있는 한 힘을 실어 붙들었다. 놈을 움직였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번에는 놈을 뒤집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겨라, 손아, 하고 그는 생각했다. 버텨라, 다리야. 나를 위해 버텨라, 머리야. 나를 위해 버텨라. 너는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 이번엔 놈을 뒤집겠다.
그러나 고기가 배 옆에 오기 한참 전부터 시작해서 온 힘을 다해 당겼는데도, 고기는 반쯤 뒤집혔다가 다시 몸을 바로 세우고 헤엄쳐 가 버렸다.
"고기야." 노인이 말했다. "고기야, 너는 어차피 죽어야 한다. 너는 나까지 죽여야 하겠니?"
그래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입이 너무 말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제 물병에 손을 뻗을 수도 없었다. 이번에는 놈을 배 옆에 붙여야 한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나는 몇 바퀴 더 버티지 못한다. 아니, 버틸 수 있다, 하고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너는 언제까지라도 버틸 수 있다.
다음 바퀴에 그는 거의 놈을 잡을 뻔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고기는 몸을 바로 세우고 천천히 헤엄쳐 가 버렸다.
너는 나를 죽이고 있구나, 고기야,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너한테는 그럴 권리가 있다. 형제여, 나는 너보다 더 위대하거나 아름답거나 차분하거나 고귀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자, 와서 나를 죽여라. 누가 누구를 죽이든 상관없다.
이제 머리가 흐려지고 있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머리를 맑게 지켜야 한다. 머리를 맑게 지키고, 사내답게 고통을 견딜 줄 알아라. 아니면 고기답게, 하고 그는 생각했다.
"맑아져라, 머리야." 그는 자기도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맑아져라."
두 바퀴 더 같은 일이 되풀이되었다.
모르겠다,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는 매번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모르겠다. 하지만 한 번 더 해 보겠다.
그는 한 번 더 해 보았고, 고기를 돌려세울 때 정신이 나가는 것을 느꼈다. 고기는 몸을 바로 세우고 큰 꼬리를 공중에 흔들며 다시 천천히 헤엄쳐 갔다.
다시 해 보겠다, 하고 노인은 다짐했다. 이제 손은 흐물흐물해졌고 눈은 이따금 번쩍할 때만 제대로 보였지만.
그는 다시 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래,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시작하기도 전에 정신이 나가는 것을 느꼈다. 한 번만 더 해 보겠다.
그는 자기의 모든 고통과 남은 힘과 오래전에 사라진 자존심을 모아 고기의 괴로움에 맞섰다. 그러자 고기가 옆으로 누워 배 쪽으로 다가왔다. 고기는 옆으로 누운 채 부드럽게 헤엄쳤고, 주둥이가 거의 배 널빤지에 닿을 듯했다. 그리고 배를 지나가기 시작했다. 길고, 두툼하고, 넓고, 은빛에 자줏빛 줄무늬가 있고, 물속에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몸이었다.
노인은 줄을 떨어뜨리고 발로 밟은 다음, 작살을 할 수 있는 한 높이 치켜들고, 온 힘과 방금 불러낸 더 큰 힘을 다해 고기의 옆구리에 내리꽂았다. 사람의 가슴 높이까지 공중에 높이 솟은 커다란 가슴지느러미 바로 뒤였다. 그는 쇠가 들어가는 것을 느꼈고, 작살에 몸을 기대 더 깊이 박아 넣은 다음 온몸의 무게를 실어 밀었다.
그러자 고기가 몸속에 죽음을 품은 채 살아났다. 놈은 물 밖으로 높이 솟아올라 그 엄청난 길이와 너비와 힘과 아름다움을 모두 드러냈다. 놈은 배에 탄 노인 위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노인과 배 전체에 물보라를 뒤집어씌우며 요란하게 물속으로 떨어졌다.
노인은 정신이 아득하고 속이 메스꺼웠으며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작살 밧줄을 정리하고 벗겨진 손 사이로 천천히 풀려 나가게 했다. 다시 눈이 보이자, 고기가 은빛 배를 위로 하고 뒤집혀 있는 것이 보였다. 작살 자루가 고기의 어깨에서 비스듬히 튀어나와 있었고, 바다가 놈의 심장에서 나온 붉은 피로 물들고 있었다. 처음에 피는 깊이가 1,600미터도 넘는 파란 물속에서 물고기 떼처럼 짙게 뭉쳐 있었다. 그러다 구름처럼 퍼져 나갔다. 고기는 은빛으로 고요히 파도에 떠 있었다.
노인은 겨우 보이는 눈으로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작살 밧줄을 이물 말뚝에 두 번 감고 두 손 위에 머리를 얹었다.
"머리를 맑게 지켜 다오." 그는 이물의 나무에 대고 말했다. "나는 지친 늙은이다. 하지만 내 형제인 이 고기를 죽였고, 이제 종처럼 고된 일을 해야 한다."
이제 올가미와 밧줄을 준비해서 놈을 배 옆에 묶어야 한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우리가 둘이서 배에 물을 채워 놈을 싣고 다시 물을 퍼낸다 해도, 이 배로는 놈을 실을 수 없다. 모든 걸 준비하고, 놈을 끌어와 잘 묶고, 돛대를 세우고, 집으로 돛을 올려야 한다.
그는 고기를 배 옆으로 끌어오기 시작했다. 아가미로 줄을 넣어 입으로 빼내서 머리를 이물 옆에 단단히 묶을 생각이었다. 놈을 보고 싶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만지고 느껴 보고 싶다. 놈은 내 재산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놈을 느껴 보고 싶은 건 그래서가 아니다. 놈의 심장을 느낀 것 같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작살 자루를 두 번째로 밀었을 때. 이제 놈을 끌어와서 단단히 묶고, 꼬리에 올가미를 걸고 몸통에도 하나 걸어서 배에 묶자.
"일해라, 늙은이야." 그가 말했다. 그는 물을 아주 조금 마셨다. "싸움이 끝났으니 이제 종처럼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이어서 자기 고기를 바라보았다. 그는 해를 유심히 보았다. 정오가 조금 지났을 뿐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무역풍이 일고 있다. 이제 줄은 다 상관없다. 집에 가서 그 아이와 함께 이으면 된다.
"이리 와라, 고기야." 그가 말했다. 그러나 고기는 오지 않았다. 고기는 이제 파도 속에 뒹굴며 누워 있었고, 노인이 배를 고기 쪽으로 끌고 갔다.
고기와 나란히 서서 고기의 머리를 이물에 대자 그는 그 크기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는 말뚝에서 작살 밧줄을 풀어 고기의 아가미로 넣어 턱으로 빼낸 다음, 칼 같은 주둥이에 한 번 감고, 다시 반대쪽 아가미로 넣어 주둥이에 한 번 더 감은 뒤, 두 겹 밧줄을 매듭지어 이물 말뚝에 단단히 맸다. 그러고는 밧줄을 자르고 꼬리에 올가미를 걸러 고물로 갔다. 고기는 본디의 자줏빛과 은빛에서 은빛으로 바뀌어 있었고, 줄무늬는 꼬리와 같은 연한 보랏빛을 띠었다. 줄무늬는 손가락을 활짝 편 사람 손보다 넓었고, 고기의 눈은 잠망경의 거울이나 행렬 속의 성인처럼 무심해 보였다.
"놈을 죽일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노인이 말했다. 물을 마신 뒤로 기분이 나아졌고, 이제 정신을 잃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머리도 맑았다. 지금 그대로도 680킬로그램, 그러니까 1,500파운드는 넘겠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훨씬 더 나갈지도 모른다. 손질해서 그 삼분의 이가 남는다 치고 파운드당 30센트면?
"그건 연필이 있어야 계산하겠다." 그가 말했다. "머리가 그렇게까지 맑지는 않구나. 하지만 오늘 위대한 디마지오도 나를 자랑스러워할 것 같다. 나는 뼈 돌기는 없었다. 하지만 손과 등은 정말 아프다." 뼈 돌기가 뭘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새 그게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고기를 이물과 고물, 그리고 가운데 가로대에 단단히 묶었다. 고기가 워낙 커서 훨씬 더 큰 배 한 척을 옆에 묶은 것 같았다. 그는 줄을 한 토막 잘라 고기의 아래턱을 주둥이에 묶었다. 입이 벌어지지 않아야 될 수 있는 한 매끄럽게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고는 돛대를 세우고, 갈고리 자루를 활대로 삼아 채비하자 기운 돛에 바람이 들었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는 고물에 반쯤 누운 채 남서쪽으로 배를 몰았다.
남서쪽이 어딘지 알려 줄 나침반은 필요 없었다. 무역풍의 느낌과 돛에 바람이 드는 것만 있으면 되었다. 스푼 미끼를 단 작은 줄을 내려서 먹을 것을 잡아 봐야겠다. 목도 축일 겸. 그러나 스푼 미끼는 찾을 수 없었고 정어리는 썩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지나가는 노란 모자반 한 덩이를 갈고리로 걸어 올려 흔들었다. 그러자 거기 숨어 있던 작은 새우들이 배 바닥으로 떨어졌다. 열두 마리가 넘었고, 갯벼룩처럼 튀고 버둥거렸다. 노인은 엄지와 검지로 새우 머리를 떼어 내고 껍질과 꼬리까지 씹어 먹었다. 아주 작았지만 영양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맛도 좋았다.
노인의 물병에는 아직 두 모금이 남아 있었는데, 새우를 먹고 나서 한 모금의 절반을 마셨다. 짐을 달고 있는 것치고 배는 잘 나아갔고, 그는 키 손잡이를 겨드랑이에 끼고 배를 몰았다. 고기가 보였다. 손을 들여다보고 고물에 등을 기대 보기만 해도 이 일이 정말로 일어났고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끝 무렵 몹시 괴로웠을 때, 한때는 이게 꿈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고기가 물 밖으로 솟아올라 떨어지기 전에 하늘에 꼼짝 않고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거기에 무언가 아주 이상한 것이 있다고 확신했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여느 때처럼 잘 보였다.
이제 그는 고기가 거기 있고, 손과 등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손은 빨리 낫는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피를 흘려 깨끗해졌고, 바닷물이 낫게 해 줄 거다. 진짜 만류의 검푸른 물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약이다. 머리만 맑게 지키면 된다. 손은 제 할 일을 다 했고, 우리는 잘 가고 있다. 놈은 입을 다물고 꼬리를 꼿꼿이 세운 채, 우리는 형제처럼 나란히 간다. 그러다 머리가 조금 흐려지기 시작했고, 그는 생각했다. 놈이 나를 데려가는 걸까, 내가 놈을 데려가는 걸까? 놈을 뒤에 매달고 끌고 간다면 물을 것도 없을 거다. 놈이 품위를 다 잃고 배 안에 실려 있다면 그것도 물을 것이 없겠지. 그러나 그들은 나란히 묶인 채 함께 가고 있었고, 노인은 생각했다. 놈이 그러고 싶다면 놈이 나를 데려가라지. 내가 놈보다 나은 건 속임수 덕분일 뿐이고, 놈은 나를 해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잘 나아갔고, 노인은 바닷물에 손을 담그며 머리를 맑게 지키려 애썼다. 높은 뭉게구름이 떠 있었고 그 위로 새털구름도 넉넉히 깔려 있어서, 노인은 바람이 밤새 이어지리라는 것을 알았다. 노인은 그게 정말인지 확인하려고 끊임없이 고기를 바라보았다. 첫 상어가 고기를 덮친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뒤였다.
그 상어는 우연히 온 것이 아니었다. 깊이가 1,600미터나 되는 바다에 검은 피의 구름이 가라앉아 흩어졌을 때, 상어는 깊은 물속에서 올라왔다. 놈은 너무 빠르게, 아무런 경계도 없이 올라오는 바람에 파란 수면을 뚫고 햇빛 속으로 튀어나왔다. 그러고는 다시 바닷속으로 떨어져 냄새를 찾아내고, 배와 고기가 지나간 길을 따라 헤엄치기 시작했다.
이따금 놈은 냄새를 놓쳤다. 하지만 다시 냄새를 찾아내거나, 아주 희미한 자취라도 잡아서 그 길을 따라 빠르고 거세게 헤엄쳤다. 놈은 아주 큰 청상아리였다. 바다에서 가장 빠른 고기만큼 빨리 헤엄치게 생겼고, 턱만 빼면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등은 황새치처럼 파랬고 배는 은빛이었으며, 가죽은 매끄럽고 보기 좋았다. 거대한 턱만 빼면 황새치와 똑같이 생겼는데, 지금 그 턱은 꽉 다물려 있었다. 놈은 수면 바로 아래를 빠르게 헤엄쳤고, 높은 등지느러미가 흔들림 없이 칼처럼 물을 갈랐다. 다물린 두 겹 입술 안에는 여덟 줄의 이빨이 모두 안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대부분의 상어가 가진 흔한 피라미드꼴 이빨이 아니었다. 갈퀴처럼 오그린 사람 손가락 모양이었다. 이빨은 노인의 손가락만큼이나 길었고, 양쪽에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날이 서 있었다. 바다의 모든 고기를 먹고 살도록 생겨난 고기였다. 너무 빠르고 힘세고 잘 무장해서 다른 적이 없는 놈이었다. 이제 더 싱싱한 냄새를 맡자 놈은 속도를 높였고, 파란 등지느러미가 물을 갈랐다.
노인은 놈이 오는 것을 보았을 때, 이것이 두려움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꼭 하고 마는 상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상어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며 작살을 준비하고 밧줄을 단단히 맸다. 고기를 묶느라 잘라 쓴 만큼 밧줄이 짧았다.
이제 노인의 머리는 맑고 좋았으며, 그는 각오로 가득 차 있었지만 희망은 거의 없었다. 너무 좋아서 오래갈 리가 없었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상어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며 큰 고기를 한 번 바라보았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걸, 하고 그는 생각했다. 놈이 덮치는 건 막을 수 없지만, 어쩌면 놈을 잡을 수는 있을 거다. 덴투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빨 큰 놈. 네 어미한테나 재앙이 내려라.
상어는 고물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놈이 고기를 덮칠 때 노인은 놈의 벌어진 입과 이상한 눈을 보았고, 놈이 꼬리 바로 위의 살로 파고들며 이빨을 딱딱 부딪쳐 물어뜯는 것을 보았다. 상어의 머리가 물 밖으로 나왔고 등도 드러나고 있었다. 큰 고기의 가죽과 살이 찢기는 소리가 들렸고, 그때 노인은 상어의 머리에 작살을 내리꽂았다. 두 눈을 잇는 선과 코에서 곧장 뒤로 뻗은 선이 만나는 자리였다. 그런 선은 없었다. 육중하고 날카로운 파란 머리와 커다란 눈과, 딱딱 부딪치며 밀고 들어와 무엇이든 삼키는 턱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거기가 뇌가 있는 자리였고, 노인은 그곳을 쳤다. 피범벅으로 짓이겨진 손으로 좋은 작살을 온 힘을 다해 내리꽂았다. 희망 없이, 그러나 각오와 철저한 증오를 담아 내리꽂았다.
상어가 몸을 뒤집었고, 노인은 놈의 눈이 살아 있지 않은 것을 보았다. 놈은 다시 한 번 몸을 뒤집으며 밧줄에 두 번 휘감겼다. 노인은 놈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상어는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상어는 등을 아래로 한 채 꼬리를 휘두르고 턱을 딱딱거리며 모터보트처럼 물 위를 갈아엎고 나아갔다. 꼬리가 치는 곳마다 물이 하얗게 일었고, 밧줄이 팽팽해지자 놈의 몸 사분의 삼이 물 위로 드러났다. 밧줄은 부르르 떨더니 끊어졌다. 상어는 잠시 수면에 조용히 누워 있었고, 노인은 놈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놈은 아주 천천히 가라앉았다.
"18킬로그램쯤 뜯어 갔구나." 노인이 소리 내어 말했다. 내 작살도 가져갔고 밧줄도 몽땅 가져갔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제 내 고기가 다시 피를 흘리니 다른 놈들도 올 거다.
고기가 물어뜯긴 뒤로 그는 고기를 더 보고 싶지 않았다. 고기가 물어뜯겼을 때 마치 자기가 물어뜯긴 것 같았다.
그래도 내 고기를 덮친 상어는 내가 죽였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놈은 내가 본 중에 가장 큰 덴투소였다. 하느님이 아시듯 나는 큰 놈들을 봐 왔다.
너무 좋아서 오래갈 리가 없었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제는 이게 꿈이었으면, 그래서 내가 고기를 걸지도 않았고 신문지 위에서 혼자 자고 있는 거라면 좋겠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려고 태어나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고기를 죽인 건 미안하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제 나쁜 때가 오고 있는데 나한테는 작살조차 없다. 덴투소는 잔인하고, 능하고, 힘세고, 영리하다. 하지만 내가 놈보다 더 영리했다. 아닐지도 모르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내가 무장이 더 잘 되어 있었을 뿐인지도.
"생각하지 마라, 늙은이야."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이 길로 배를 몰고, 오면 오는 대로 받아라."
하지만 생각을 해야 한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나한테 남은 건 그것뿐이니까. 그것과 야구. 내가 놈의 뇌를 내리친 솜씨를 위대한 디마지오가 봤다면 마음에 들어 했을까?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내 손이 뼈 돌기만큼 큰 짐이었다고 생각하나? 알 수 없지. 발뒤꿈치는 탈이 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헤엄치다가 노랑가오리를 밟아서 쏘였을 때만 빼고. 그때는 종아리 아래가 마비되고 견딜 수 없이 아팠다.
"즐거운 일을 생각해라, 늙은이야." 그가 말했다. "이제 일 분 일 분 집에 가까워지고 있다. 18킬로그램을 잃었으니 배도 그만큼 가벼워졌다."
해류 안쪽으로 들어서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는 아주 잘 알았다. 그러나 이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아니, 있다."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노 하나의 손잡이 끝에 칼을 묶으면 된다."
그래서 그는 키 손잡이를 겨드랑이에 끼고 돛 줄을 발로 밟은 채 그렇게 했다.
"자." 그가 말했다. "나는 여전히 늙은이다. 하지만 맨손은 아니다."
이제 바람이 상쾌했고, 그는 잘 나아갔다. 그는 고기의 앞부분만 바라보았고, 희망이 조금 돌아왔다.
희망을 갖지 않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게다가 그건 죄라고 나는 믿는다. 죄 생각은 하지 마라, 하고 그는 생각했다. 죄 말고도 지금 문제는 충분하다. 게다가 나는 죄가 뭔지 모른다.
나는 죄가 뭔지 모르고, 그걸 믿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고기를 죽인 건 죄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남고 많은 사람을 먹이려고 한 일이라 해도 죄였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모든 게 죄다. 죄 생각은 하지 마라. 이제 그러기엔 너무 늦었고, 그걸 생각하는 일로 돈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더러 생각하라고 해라. 고기가 고기로 태어났듯 너는 어부로 태어났다. 산 페드로, 그러니까 성 베드로도 어부였고, 위대한 디마지오의 아버지도 어부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얽혀 있는 모든 일을 생각하기를 좋아했고, 읽을 것도 없고 라디오도 없었기 때문에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그는 계속 죄에 대해 생각했다. 너는 살아남으려고, 먹을 것으로 팔려고만 고기를 죽인 게 아니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자존심 때문에, 그리고 네가 어부이기 때문에 죽였다. 너는 놈이 살아 있을 때도 놈을 사랑했고 그 뒤에도 사랑했다. 놈을 사랑한다면 놈을 죽이는 건 죄가 아니다. 아니면 더 큰 죄일까?
"너는 생각이 너무 많다, 늙은이야."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하지만 덴투소를 죽이는 건 즐거웠잖니, 하고 그는 생각했다. 놈은 너처럼 산 고기를 먹고 산다. 어떤 상어들처럼 썩은 고기를 뒤지는 놈도 아니고, 그저 돌아다니는 식욕 덩어리도 아니다. 놈은 아름답고 고귀하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당방위로 죽였다." 노인이 소리 내어 말했다. "그리고 잘 죽였다."
게다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 다른 모든 것을 죽인다. 고기잡이는 나를 살려 주는 것과 꼭 같은 만큼 나를 죽인다. 나를 살려 주는 건 그 아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너무 나를 속이면 안 된다.
그는 뱃전 너머로 몸을 숙여 상어가 물어뜯은 자리에서 고기 살 한 점을 뜯어냈다. 그것을 씹으며 그는 살의 질과 좋은 맛을 느꼈다. 고기처럼 단단하고 즙이 많았지만 붉지는 않았다. 질긴 힘줄도 없어서 그는 이것이 시장에서 가장 비싼 값을 받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냄새가 물에 퍼지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고, 노인은 아주 나쁜 때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람은 꾸준했다. 바람은 북동쪽으로 조금 더 돌아 있었는데, 그건 바람이 잦아들지 않으리라는 뜻이었다. 노인은 앞을 내다보았지만 돛 하나 보이지 않았고, 배의 선체도 연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물에서 솟아올라 양옆으로 날아가는 날치들과 노란 모자반 덩어리들뿐이었다. 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고물에서 쉬며 이따금 청새치 살을 조금씩 씹으면서, 쉬면서 힘을 내려 애쓰며 두 시간쯤 배를 몰았을 때, 상어 두 마리 가운데 첫 놈이 보였다.
"아이."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이 말은 옮길 말이 없다. 어쩌면 그저 손바닥에 못이 박혀 나무에 꽂히는 것을 느낄 때 사람이 저도 모르게 내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갈라노들이다."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그는 첫 지느러미 뒤로 두 번째 지느러미가 올라오는 것을 보았고, 갈색 세모꼴 지느러미와 꼬리를 크게 휘젓는 몸짓을 보고 그것들이 삽코상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놈들은 냄새를 맡고 흥분해 있었다. 몹시 굶주린 나머지 어리석어져서, 흥분한 채 냄새를 놓쳤다가 다시 찾곤 했다. 그러나 놈들은 줄곧 다가오고 있었다.
노인은 돛 줄을 단단히 매고 키 손잡이를 고정했다. 그러고는 칼을 묶은 노를 집어 들었다. 손이 아파서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가볍게 들었다. 그러고는 손을 풀려고 노를 쥔 손을 살짝 폈다 쥐었다 했다. 이제 고통을 받아 내고 움찔하지 않도록 손을 단단히 쥐고, 그는 상어들이 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제 넓적하고 납작하고 삽처럼 끝이 뾰족한 머리와, 끝이 하얀 넓은 가슴지느러미가 보였다. 놈들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썩은 고기를 뒤지면서 사냥도 하는 혐오스러운 상어였고, 배가 고프면 노나 배의 키도 물어뜯었다. 거북이 수면에서 잠들어 있을 때 다리와 지느러미발을 잘라 먹는 것도 이 상어들이었고, 배가 고프면 몸에 고기 피나 고기 비린내가 묻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물속에서 덮쳤다.
"아이." 노인이 말했다. "갈라노. 덤벼라, 갈라노."
놈들이 왔다. 하지만 청상아리처럼 오지는 않았다. 한 놈은 몸을 돌려 배 밑으로 사라졌고, 놈이 고기를 홱홱 잡아당기며 뜯는 바람에 배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다른 한 놈은 가느다랗게 째진 노란 눈으로 노인을 지켜보다가, 반달 모양의 턱을 쩍 벌리고 빠르게 다가와 이미 물어뜯긴 자리를 덮쳤다. 놈의 갈색 머리와 등 위로 뇌와 척수가 이어지는 자리의 선이 똑똑히 보였다. 노인은 노에 묶은 칼을 그 이음매에 꽂았다가 뽑아서, 다시 상어의 고양이 같은 노란 눈에 꽂았다. 상어는 고기를 놓고 미끄러지듯 가라앉으며, 죽어 가면서도 뜯어 간 것을 삼켰다.
배는 다른 상어가 고기를 망가뜨리느라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노인은 배가 옆으로 돌아서 상어가 배 밑에서 나오도록 돛 줄을 풀었다. 상어가 보이자 그는 뱃전 너머로 몸을 숙여 놈을 찔렀다. 살만 찔렀고 가죽이 단단해서 칼이 겨우 들어갔다. 그 일격에 손뿐 아니라 어깨까지 아팠다. 그러나 상어가 머리를 내밀고 빠르게 올라왔고, 놈의 코가 물 밖으로 나와 고기에 닿았을 때 노인은 놈의 납작한 정수리 한가운데를 정통으로 찔렀다. 노인은 칼날을 뽑아 꼭 같은 자리를 다시 찔렀다. 놈은 여전히 턱을 고기에 박은 채 매달려 있었고, 노인은 놈의 왼쪽 눈을 찔렀다. 상어는 그래도 매달려 있었다.
"안 놓겠다고?" 노인은 말하고, 등뼈와 뇌 사이에 칼날을 박아 넣었다. 이제는 찌르기가 쉬웠고, 그는 연골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노인은 노를 거꾸로 잡고 상어의 턱 사이에 칼날을 넣어 벌렸다. 칼날을 비틀자 상어가 미끄러져 떨어졌고, 그는 말했다. "가라, 갈라노. 1,600미터 아래로 미끄러져 가라. 가서 네 친구를 만나라. 아니, 네 어미일지도 모르겠다."
노인은 칼날을 닦고 노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돛 줄을 찾아 돛에 바람을 채우고 배를 다시 제 길로 돌렸다.
"놈들이 고기의 사분의 일을, 그것도 제일 좋은 살을 뜯어 갔겠구나."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이게 꿈이었으면, 그래서 놈을 걸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미안하다, 고기야. 모든 게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는 말을 멈추었고, 이제 고기를 보고 싶지 않았다. 피가 다 빠지고 파도에 씻긴 고기는 거울 뒷면의 은빛이었고, 줄무늬는 아직 보였다.
"그렇게 멀리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 고기야." 그가 말했다. "너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미안하다, 고기야."
자, 하고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칼을 묶은 끈을 살펴보고 끊어지지 않았는지 봐라. 그러고 나서 손을 추슬러라. 아직 더 올 테니까.
"칼 갈 숫돌이 있으면 좋을 텐데." 노 손잡이 끝에 묶은 끈을 살펴보고 나서 노인이 말했다. "숫돌을 가져왔어야 했다." 가져왔어야 할 게 많았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가져오지 않았잖니, 늙은이야. 이제 없는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라.
"좋은 충고를 많이도 해 주는구나."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이제 지겹다."
그는 키 손잡이를 겨드랑이에 끼고,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두 손을 물에 담갔다.
"마지막 놈이 얼마나 뜯어 갔는지는 하느님만 아시겠지." 그가 말했다. "하지만 배가 훨씬 가벼워졌다." 그는 물어뜯긴 고기의 아랫부분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상어가 홱홱 부딪칠 때마다 살이 뜯겨 나갔다는 것을, 이제 고기가 바다에 모든 상어를 위해 큰길만큼 넓은 자취를 남기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한 사람이 겨울 내내 먹고살 만한 고기였는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하지 마라. 그저 쉬면서, 남은 고기를 지킬 수 있게 손을 추스르려고 애써라. 물속에 그 많은 냄새가 퍼졌으니 이제 내 손의 피 냄새는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피도 많이 나지 않는다. 크게 베인 데는 없다. 피가 나면 왼손에 쥐가 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이제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다음 놈들을 기다려야 한다. 정말 꿈이었으면 좋았을걸,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누가 알겠나? 잘 끝났을 수도 있다.
다음에 온 상어는 삽코상어 한 마리였다. 놈은 돼지가 구유에 달려들듯 왔다. 사람 머리가 들어갈 만큼 입이 큰 돼지가 있다면 말이다. 노인은 놈이 고기를 덮치게 둔 다음 노에 묶은 칼을 놈의 뇌에 내리꽂았다. 그러나 상어가 몸을 뒤채며 뒤로 홱 물러나는 바람에 칼날이 부러졌다.
노인은 자리를 잡고 키를 잡았다. 그는 큰 상어가 물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으며 처음에는 제 크기로, 다음엔 작게, 나중엔 아주 조그맣게 보이는 것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노인은 늘 그 모습에 홀린 듯 빠져들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이제 갈고리가 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 없을 거다. 노 두 개와 키 손잡이와 짧은 몽둥이가 있다."
이제 놈들이 나를 이겼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나는 상어를 몽둥이로 때려죽이기엔 너무 늙었다. 하지만 노와 짧은 몽둥이와 키 손잡이가 있는 한 해 보겠다.
그는 다시 손을 물에 담갔다. 오후가 저물어 가고 있었고, 바다와 하늘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는 전보다 바람이 많았고, 그는 곧 육지가 보이기를 바랐다.
"지쳤구나, 늙은이야." 그가 말했다. "속까지 지쳤다."
상어들은 해 지기 직전까지 다시 덮치지 않았다.
노인은 고기가 물속에 남기고 있을 넓은 자취를 따라 갈색 지느러미들이 오는 것을 보았다. 놈들은 냄새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지도 않았다. 나란히 헤엄치며 곧장 배를 향해 오고 있었다.
그는 키 손잡이를 고정하고 돛 줄을 단단히 맨 다음, 고물 밑으로 손을 뻗어 몽둥이를 꺼냈다. 부러진 노의 손잡이를 75센티미터쯤으로 톱질해서 만든 것이었다. 손잡이 모양 때문에 한 손으로만 제대로 쓸 수 있어서, 그는 오른손으로 몽둥이를 꽉 잡고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상어들이 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둘 다 갈라노였다.
첫 놈이 고기를 단단히 물게 둔 다음 코끝이나 정수리를 정통으로 내리쳐야 한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두 상어가 함께 다가왔다. 그는 가까운 놈이 턱을 벌려 고기의 은빛 옆구리에 박는 것을 보자, 몽둥이를 높이 치켜들었다가 상어의 넓은 정수리에 묵직하게 내리쳤다. 몽둥이가 내려갈 때 고무 같은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뼈의 단단함도 느껴졌고, 그는 상어가 고기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때 다시 한 번 놈의 코끝을 세게 내리쳤다.
다른 상어는 들어왔다 나갔다 하더니 이제 턱을 쩍 벌리고 다시 들어왔다. 놈이 고기에 부딪쳐 턱을 다물 때, 노인은 놈의 입가에서 하얀 고기 살 조각들이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놈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머리만 쳤고, 상어는 그를 쳐다보며 살을 비틀어 뜯어냈다. 놈이 삼키려고 미끄러져 물러날 때 노인은 다시 몽둥이를 내리쳤지만, 묵직하고 단단한 고무 같은 것만 쳤을 뿐이었다.
"덤벼라, 갈라노." 노인이 말했다. "다시 들어와라."
상어가 돌진해 왔고, 노인은 놈이 턱을 다물 때 내리쳤다. 몽둥이를 들 수 있는 한 높이 들어 정통으로 내리쳤다. 이번에는 뇌 밑동의 뼈가 느껴졌고, 그는 같은 자리를 다시 내리쳤다. 상어는 굼뜨게 살을 뜯어내고 고기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노인은 놈이 다시 오나 지켜보았지만 두 상어 모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한 놈이 수면에서 맴돌며 헤엄치는 것이 보였다. 다른 놈의 지느러미는 보이지 않았다.
놈들을 죽일 거라고는 기대할 수 없었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한창때라면 죽였을 거다. 하지만 두 놈 다 크게 다치게 했으니 둘 다 기분이 좋지는 않을 거다. 두 손으로 방망이를 쓸 수 있었다면 첫 놈은 틀림없이 죽였을 텐데. 지금이라도,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고기를 보고 싶지 않았다. 고기의 절반이 망가졌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상어들과 싸우는 사이 해가 졌다.
"곧 어두워지겠다." 그가 말했다. "그러면 아바나의 불빛이 보일 거다. 너무 동쪽으로 와 있다면 새로 생긴 해수욕장들의 불빛이 보이겠지."
이제 그렇게 멀리 나와 있지는 않을 거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다들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걱정할 사람은 그 아이뿐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분명 나를 믿고 있을 거다. 나이 든 어부들도 많이 걱정하겠지. 다른 사람들도 많이,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나는 좋은 마을에 산다.
고기가 너무 심하게 망가져서 그는 더는 고기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그러다 무언가가 머리에 떠올랐다.
"반쪽짜리 고기야." 그가 말했다. "한때 고기였던 고기야. 너무 멀리 나가서 미안하다. 내가 우리 둘을 망쳐 버렸다. 하지만 너와 나는 상어를 여럿 죽였고 여럿을 망가뜨렸다. 늙은 고기야, 너는 지금까지 몇 마리나 죽였니? 머리에 그 창을 괜히 달고 있는 건 아닐 텐데."
그는 고기를, 그리고 고기가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다면 상어에게 무슨 짓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놈들과 싸우게 주둥이를 잘라 냈어야 했는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손도끼가 없었고, 그다음엔 칼도 없었다.
하지만 그걸 잘라서 노 손잡이 끝에 묶을 수 있었다면 대단한 무기가 됐을 거다. 그러면 우리 둘이 함께 놈들과 싸울 수도 있었을 텐데. 밤에 놈들이 오면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뭘 할 수 있지?
"싸워야지." 그가 말했다. "죽을 때까지 놈들과 싸울 거다."
그러나 이제 어둠 속에서, 불빛도 보이지 않고 등불도 없고 바람과 꾸준히 당기는 돛뿐이자, 그는 어쩌면 자기가 이미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두 손을 맞대고 손바닥을 느껴 보았다. 손은 죽지 않았고, 손을 폈다 쥐기만 해도 살아 있다는 고통을 불러올 수 있었다. 그는 고물에 등을 기대었고, 자기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어깨가 그렇게 말해 주었다.
고기를 잡으면 바치겠다고 약속한 그 기도들이 다 남아 있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지쳐서 욀 수가 없다. 포대를 가져다 어깨에 두르는 게 좋겠다.
그는 고물에 누워 키를 잡고, 하늘에 불빛이 비치기를 지켜보았다. 고기의 반은 남았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운이 좋아서 앞쪽 반은 가지고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한테도 운이 조금은 있어야지. 아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너무 멀리 나갔을 때 너는 네 운을 거스른 거다.
"바보 같은 소리 마라."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잠들지 말고 키나 잡아라. 아직 운이 많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운을 파는 데가 있다면 좀 사고 싶구나." 그가 말했다.
무엇으로 사지?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잃어버린 작살과 부러진 칼과 망가진 두 손으로 살 수 있을까?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가 말했다. "너는 바다에서 보낸 여든나흘로 그걸 사려고 했다. 거의 팔 뻔하기도 했고."
허튼 생각을 하면 안 된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운이란 여러 모습으로 오는 것이니 누가 그걸 알아볼 수 있겠나? 그래도 어떤 모습으로 오든 조금 받고 싶고, 달라는 대로 값을 치르겠다. 불빛이 보이면 좋겠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나는 너무 많은 걸 바란다. 하지만 지금 바라는 건 그거다. 그는 키를 잡기 편하게 자세를 고쳐 앉으려 했고, 아픔으로 자기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밤 열 시쯤 되었을 무렵 그는 도시의 불빛이 하늘에 비친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달이 뜨기 전 하늘에 비치는 빛처럼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바람이 세지면서 이제 거칠어진 바다 너머로 불빛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는 불빛 안쪽으로 배를 몰았고, 이제 곧 해류의 가장자리에 닿으리라고 생각했다.
이제 끝났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놈들은 아마 다시 덮쳐 올 거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무기도 없이 사람이 놈들을 상대로 뭘 할 수 있겠나?
이제 그는 몸이 뻣뻣하고 쑤셨으며, 상처와 무리한 온몸 구석구석이 밤 추위에 아팠다. 다시는 싸우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다시는 싸우지 않아도 되기를 정말 바란다.
그러나 자정 무렵 그는 싸웠고, 이번에는 싸움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놈들은 떼를 지어 왔고, 그에게 보이는 것은 지느러미가 물속에 그리는 줄과, 놈들이 고기에 달려들 때 내는 인광뿐이었다. 그는 머리들을 몽둥이로 내리쳤고, 턱이 딱딱 물어뜯는 소리와 놈들이 아래에서 물고 늘어질 때 배가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느끼고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을 향해 필사적으로 몽둥이를 휘둘렀는데, 무언가가 몽둥이를 낚아채는 것이 느껴지더니 몽둥이가 사라졌다.
그는 키에서 키 손잡이를 홱 뽑아내 두 손으로 잡고 거듭거듭 내리치고 찍었다. 그러나 놈들은 이제 이물까지 올라와서 하나씩, 또 한꺼번에 달려들었고, 다시 오려고 몸을 돌릴 때마다 바닷속에서 빛을 내는 살점들을 뜯어 갔다.
마침내 한 놈이 머리 자체를 덮쳤고, 그는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상어의 턱이 찢어지지 않는 고기 머리의 육중한 덩어리에 걸려 있었고, 그는 그 머리를 향해 키 손잡이를 휘둘렀다. 한 번, 두 번, 또다시 휘둘렀다. 키 손잡이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는 쪼개진 끝으로 상어를 찔렀다. 그것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고, 끝이 날카롭다는 것을 알았기에 다시 박아 넣었다. 상어는 고기를 놓고 굴러 떨어졌다. 그 떼에서 마지막으로 온 상어였다. 더는 놈들이 먹을 것이 없었다.
노인은 이제 숨을 쉬기도 힘들었고, 입안에 이상한 맛이 느껴졌다. 구릿빛 쇠 맛이 나면서 달큼했다. 그는 잠깐 그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많지는 않았다.
그는 바다에 침을 뱉고 말했다. "그거나 먹어라, 갈라노. 그리고 사람을 하나 죽였다는 꿈이나 꿔라."
그는 이제 마침내, 어찌할 도리 없이 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고물로 돌아가서 키 손잡이의 들쭉날쭉한 끝이 키의 구멍에 그런대로 맞아 배를 몰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어깨에 포대를 두르고 배를 제 길로 돌렸다. 이제 배는 가볍게 나아갔고, 그에게는 아무 생각도, 아무 느낌도 없었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지나 있었고, 될 수 있는 한 잘, 영리하게 배를 몰아 고향 항구로 향했다. 밤사이 상어들이 뼈만 남은 고기를 덮쳤는데, 누군가가 식탁에서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것 같았다. 노인은 놈들에게 신경 쓰지 않았고, 키를 잡는 것 말고는 아무것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옆에 큰 짐이 없어진 지금 배가 얼마나 가볍고 잘 나아가는지만 느꼈다.
좋은 배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튼튼하고, 키 손잡이 말고는 상한 데가 하나도 없다. 키 손잡이야 쉽게 갈 수 있다.
이제 해류 안쪽에 들어와 있는 것이 느껴졌고, 해안을 따라 늘어선 바닷가 마을들의 불빛이 보였다. 이제 그는 자기가 어디 있는지 알았고, 집에 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어쨌든 바람은 우리 친구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가끔은. 그리고 우리의 친구와 적들이 사는 큰 바다도. 그리고 침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침대는 내 친구다. 그냥 침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침대는 굉장할 거다. 지고 나면 쉬운 거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렇게 쉬운 줄은 몰랐다. 그런데 너를 이긴 게 뭐냐, 하고 그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내가 너무 멀리 나갔던 거다."
그가 작은 항구로 배를 몰고 들어왔을 때 테라스의 불은 꺼져 있었고, 그는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바람은 꾸준히 일어서 이제 세차게 불고 있었다. 그래도 항구 안은 조용했고, 그는 바위 아래 작은 자갈밭으로 배를 몰아 올렸다.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배를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배에서 내려 바위에 배를 단단히 묶었다.
그는 돛대를 뽑아 돛을 감고 묶었다. 그러고는 돛대를 어깨에 메고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는 자기가 얼마나 깊이 지쳤는지 알았다. 그는 잠깐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가운데 배 고물 한참 뒤로 고기의 큰 꼬리가 꼿꼿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하얗게 드러난 등뼈의 선과, 튀어나온 주둥이가 달린 머리의 검은 덩어리와, 그 사이의 앙상한 모든 것이 보였다.
그는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꼭대기에서 쓰러져 돛대를 어깨에 걸친 채 한동안 누워 있었다. 그는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너무 힘들어서 돛대를 어깨에 멘 채 앉아 길을 바라보았다. 고양이 한 마리가 길 건너편으로 제 볼일을 보러 지나갔고, 노인은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그저 길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는 돛대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는 돛대를 집어 어깨에 메고 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두막에 이르기까지 그는 다섯 번이나 주저앉아야 했다.
오두막 안에서 그는 돛대를 벽에 기대 세웠다. 어둠 속에서 물병을 찾아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침대에 누웠다. 그는 담요를 어깨까지, 그리고 등과 다리까지 끌어 덮고, 두 팔을 곧게 뻗고 손바닥을 위로 한 채 신문지 위에 엎드려 잠들었다.
아침에 소년이 문으로 들여다보았을 때 그는 자고 있었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고깃배들이 나가지 않을 터였기에, 소년은 늦게까지 자고 나서 아침마다 그랬듯 노인의 오두막으로 온 것이었다. 소년은 노인이 숨을 쉬고 있는 것을 보았고, 이어서 노인의 손을 보고는 울기 시작했다. 소년은 커피를 가져오려고 아주 조용히 밖으로 나갔고, 길을 내려가는 내내 울었다.
어부들이 많이 배 둘레에 모여 배 옆에 묶인 것을 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바지를 걷어 올리고 물에 들어가서 줄 한 토막으로 뼈의 길이를 재고 있었다.
소년은 그리로 내려가지 않았다. 아까 거기 가 보았고, 어부 한 사람이 소년 대신 배를 봐 주고 있었다.
"노인은 좀 어떠냐?" 어부 하나가 소리쳐 물었다.
"자고 있어요." 소년이 소리쳐 대답했다. 우는 모습을 사람들이 봐도 상관없었다. "아무도 깨우지 마세요."
"코에서 꼬리까지 5.5미터다." 고기를 재던 어부가 소리쳤다.
"그럴 거예요." 소년이 말했다.
소년은 테라스로 들어가 커피 한 깡통을 달라고 했다.
"뜨겁게요. 우유랑 설탕 듬뿍 넣어서요."
"더 필요한 건?"
"아니요. 나중에 할아버지가 뭘 드실 수 있는지 볼게요."
"대단한 고기더구나." 주인이 말했다. "저런 고기는 처음이다. 너도 어제 좋은 고기를 두 마리 잡았지."
"제 고기 따위 알 게 뭐예요." 소년은 말하고 다시 울기 시작했다.
"뭐라도 한잔 마시겠니?" 주인이 물었다.
"아니요." 소년이 말했다. "사람들한테 산티아고 할아버지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해 주세요. 다시 올게요."
"정말 안됐다고 전해 다오."
"고맙습니다." 소년이 말했다.
소년은 뜨거운 커피 깡통을 노인의 오두막으로 들고 올라가, 노인이 깰 때까지 곁에 앉아 있었다. 한번은 노인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노인은 다시 깊은 잠에 빠졌고, 소년은 커피를 데울 땔감을 빌리러 길 건너로 갔다.
마침내 노인이 깨어났다.
"일어나지 마세요." 소년이 말했다. "이거 드세요." 소년은 컵에 커피를 조금 따랐다.
노인은 그것을 받아 마셨다.
"놈들이 나를 이겼다, 마놀린." 노인이 말했다. "정말로 이겼다."
"그 고기가 할아버지를 이긴 건 아니에요. 그 고기는 아니에요."
"그래. 정말이다. 그 뒤의 일이었다."
"페드리코 아저씨가 배랑 도구를 봐 주고 있어요. 머리는 어떻게 할까요?"
"페드리코한테 잘게 썰어서 통발 미끼로 쓰라고 해라."
"그럼 창은요?"
"갖고 싶으면 네가 가져라."
"갖고 싶어요." 소년이 말했다. "이제 다른 일들도 계획을 세워야 해요."
"사람들이 나를 찾았니?"
"그럼요. 해안 경비대랑 비행기까지 나섰어요."
"바다는 아주 넓고 배는 작아서 찾기 어렵지." 노인이 말했다. 그는 혼자서, 바다에게만 말하는 대신 이야기할 상대가 있다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느꼈다. "네가 보고 싶었다." 그가 말했다. "너는 뭘 잡았니?"
"첫날 한 마리, 둘째 날 한 마리, 셋째 날 두 마리요."
"아주 잘했구나."
"이제 다시 같이 고기 잡아요."
"아니다. 나는 운이 없다. 이제 운이 없어."
"운 같은 거 알 게 뭐예요." 소년이 말했다. "운은 제가 가져갈게요."
"네 식구들이 뭐라고 하겠니?"
"상관없어요. 어제 두 마리 잡았어요. 그래도 이제 같이 고기 잡아요. 저는 아직 배울 게 많으니까요."
"숨을 끊을 좋은 창을 하나 구해서 늘 배에 싣고 다녀야겠다. 창날은 낡은 포드 자동차의 판스프링으로 만들면 된다. 과나바코아에서 갈면 되지. 날카롭되, 부러지지 않게 너무 단단히 담금질하지는 말아야 한다. 내 칼은 부러졌다."
"제가 칼도 하나 더 구하고 스프링도 갈아 올게요. 브리사가 세게 부는 날이 며칠이나 갈까요?"
"사흘쯤. 어쩌면 더."
"제가 다 준비해 놓을게요." 소년이 말했다. "할아버지는 손이나 낫게 하세요."
"손은 어떻게 돌보는지 안다. 밤에 뭔가 이상한 걸 뱉었는데, 가슴속에서 뭔가가 부서진 것 같더구나."
"그것도 낫게 하세요." 소년이 말했다. "누우세요, 할아버지. 깨끗한 셔츠 가져다 드릴게요. 드실 것도요."
"내가 없던 동안 나온 신문도 아무거나 좀 가져다 다오." 노인이 말했다.
"빨리 나으셔야 해요. 저는 배울 게 많고, 할아버지는 저한테 다 가르쳐 주실 수 있으니까요. 얼마나 고생하셨어요?"
"많이." 노인이 말했다.
"먹을 거랑 신문 가져올게요." 소년이 말했다. "푹 쉬세요, 할아버지. 약국에서 손에 바를 약도 사 올게요."
"페드리코한테 머리는 그 사람 거라고 꼭 전해라."
"네. 잊지 않을게요."
소년은 문을 나서서 닳은 산호 바위 길을 내려가며 다시 울었다.
그날 오후 테라스에 관광객 한 무리가 와 있었다. 한 여자가 빈 맥주 깡통과 죽은 꼬치고기들 사이로 물속을 내려다보다가, 끝에 거대한 꼬리가 달린 길고 하얀 등뼈를 보았다. 항구 어귀 밖에서는 동풍이 거센 파도를 꾸준히 몰아치고 있었고, 등뼈는 밀물을 따라 들렸다가 흔들렸다.
"저게 뭐예요?" 여자가 웨이터에게 물으며 큰 고기의 긴 등뼈를 가리켰다. 이제 그것은 썰물에 쓸려 나가기를 기다리는 쓰레기일 뿐이었다.
"티부론." 웨이터가 말했다. "에샤크." 상어라는 말이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려던 참이었다.
"상어 꼬리가 저렇게 멋지고 아름답게 생긴 줄은 몰랐네요."
"나도 몰랐어." 함께 온 남자가 말했다.
길 위쪽 오두막에서 노인은 다시 잠들어 있었다. 그는 여전히 엎드려 자고 있었고, 소년이 곁에 앉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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