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Albert Camus — L’Étranger (1942)
엄마가 죽었다는 전보를 받은 다음 날, 뫼르소는 바다에 가서 헤엄치고 여자를 만나고 영화를 본다. 그리고 한여름 바닷가에서 햇빛에 떠밀리듯 방아쇠를 당긴다. 세상에 무심했던 한 사람과 그를 심판하는 세상의 이야기.
1부 1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에서 전보를 받았다. "모친 사망. 장례 내일. 삼가 조의." 이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양로원은 알제에서 80킬로미터 떨어진 마랑고에 있다. 두 시 버스를 타면 오후에 도착할 것이다. 그러면 밤샘을 하고 내일 저녁에 돌아올 수 있다. 사장에게 이틀 휴가를 달라고 했더니, 이런 사유로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는 달가운 얼굴이 아니었다. 나는 그에게 "제 탓이 아니잖습니까" 하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사과할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내게 조의를 표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마 모레, 상복을 입은 나를 보면 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엄마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장례가 끝나고 나면 반대로, 이 일은 처리가 끝난 일이 되고 모든 것이 좀 더 공식적인 모양새를 갖출 것이다.
나는 두 시 버스를 탔다. 무척 더웠다. 늘 그렇듯 셀레스트네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다들 나를 무척 안쓰러워했고, 셀레스트는 "어머니는 하나뿐이지" 하고 말했다. 내가 나설 때 그들은 문간까지 배웅해 주었다. 나는 좀 얼떨떨했다. 에마뉘엘네 집에 올라가 검은 넥타이와 완장을 빌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몇 달 전에 삼촌을 잃었다.
나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뛰었다. 그렇게 서두르고 뛴 탓에, 게다가 덜컹거림과 휘발유 냄새와 길과 하늘에서 되비치는 햇빛까지 겹쳐 아마 깜빡 잠이 들었을 것이다. 가는 내내 거의 잤다. 깨어 보니 나는 군인 하나에게 바짝 붙어 있었는데, 그가 웃으며 멀리서 오는 길이냐고 물었다. 더 말하기 싫어서 "네" 하고 대답했다.
양로원은 마을에서 2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나는 걸어서 갔다. 곧바로 엄마를 보고 싶었다. 그런데 경비원이 먼저 원장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원장이 바빠서 나는 조금 기다렸다. 그동안 줄곧 경비원이 떠들었고, 그러고 나서 원장을 만났다. 원장은 나를 자기 사무실로 맞아들였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단 작달막한 노인이었다. 그는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내 손을 잡았는데, 어찌나 오래 쥐고 있던지 손을 어떻게 빼야 할지 몰랐다. 그는 서류를 들춰 보더니 말했다. "뫼르소 부인은 삼 년 전에 여기 들어오셨네. 자네가 유일한 부양자였고." 나는 그가 나를 나무란다고 생각해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내 말을 끊었다. "변명할 것 없네, 젊은이. 어머님 서류를 읽어 보았네. 자네는 어머님을 돌볼 형편이 못 되었지. 어머님께는 곁에서 보살필 사람이 필요했고. 자네 봉급은 넉넉지 않고. 그리고 결국 따지고 보면 어머님은 여기서 더 행복하셨네." 나는 "네, 원장님" 하고 말했다. 그가 덧붙였다. "알겠지만 어머님께는 친구들이 있었네. 같은 또래 사람들 말이야. 그 사람들과는 지나간 시절의 관심사를 함께 나눌 수 있었지. 자네는 젊으니 어머님이 자네와 있으면 따분하셨을 걸세."
그건 사실이었다. 집에 있을 때 엄마는 말없이 눈으로 나를 좇으며 시간을 보냈다. 양로원에 들어간 처음 며칠 동안 엄마는 자주 울었다. 하지만 그건 습관 때문이었다. 몇 달이 지나자, 양로원에서 데리고 나왔다면 오히려 울었을 것이다. 그것도 습관 때문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거의 찾아가지 않은 데는 그런 까닭도 조금 있었다. 그리고 가려면 일요일을 통째로 써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버스 타러 가고, 표를 사고, 두 시간을 가는 수고는 셈에 넣지 않더라도.
원장은 또 무슨 말을 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거의 듣고 있지 않았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어머님을 뵙고 싶겠지." 나는 아무 말 없이 일어섰고 그는 앞장서서 문 쪽으로 갔다. 계단에서 그가 설명했다. "작은 영안실로 모셔 두었네. 다른 분들이 놀라지 않도록. 입소자가 한 분 돌아가실 때마다 다른 분들이 이삼 일은 신경이 곤두서거든. 그러면 일이 힘들어지지." 우리는 안뜰을 지났는데, 거기에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우리가 지나가자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우리 뒤에서 다시 이야기가 이어졌다. 앵무새들이 낮은 소리로 재잘거리는 것 같았다. 작은 건물 문 앞에서 원장이 나와 헤어졌다. "그럼 나는 가 보겠네, 뫼르소 군. 나는 사무실에 있을 테니 필요하면 찾게. 장례는 원래 오전 열 시로 잡혀 있네. 그러면 자네가 고인 곁에서 밤샘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 마지막으로 한 가지. 어머님이 교회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바람을 친구분들에게 자주 이야기하셨다고 하더군. 내가 알아서 필요한 준비를 해 두었네. 그래도 자네에게 알려 두고 싶었네." 나는 고맙다고 했다. 엄마는 무신론자는 아니었지만 살아서 종교를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환한 방이었다. 벽은 석회로 하얗게 칠해져 있고 지붕은 유리로 덮여 있었다. 의자들과 X자 모양의 받침대들이 놓여 있었다. 가운데 받침대 두 개 위에 뚜껑을 덮은 관이 얹혀 있었다. 호두나무 물을 들인 널빤지 위로, 박다 만 번쩍이는 나사못들만 도드라져 보였다. 관 옆에는 흰 가운을 입고 머리에 화사한 빛깔의 스카프를 두른 아랍인 간호사가 있었다.
그때 경비원이 내 등 뒤로 들어왔다. 뛰어온 모양이었다. 그는 조금 더듬거렸다. "덮어 놓긴 했는데, 보실 수 있게 나사를 풀어 드려야겠네요." 그가 관으로 다가가려는 걸 내가 말렸다. 그가 말했다. "안 보시겠어요?" 나는 "네" 하고 대답했다. 그는 하던 것을 멈추었고, 나는 거북했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요?" 하지만 나무라는 투가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묻는 것 같았다. 나는 "모르겠어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하얀 콧수염을 배배 꼬면서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는 눈이 예뻤다. 맑은 파란색이었고, 얼굴빛은 조금 불그레했다. 그는 내게 의자를 내주고, 자기는 내 조금 뒤쪽에 앉았다. 간호사가 일어나 출구 쪽으로 갔다. 그때 경비원이 내게 말했다. "저 사람은 궤양이 있어요." 무슨 말인지 몰라서 간호사를 보니, 눈 밑으로 머리를 한 바퀴 두르는 붕대를 감고 있었다. 코 높이에서 붕대가 납작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하얀 붕대만 보였다.
그녀가 나가자 경비원이 말했다. "혼자 계시게 해 드리지요." 내가 무슨 몸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나가지 않고 내 뒤에 서 있었다. 등 뒤에 누가 있다는 게 거북했다. 방은 늦은 오후의 아름다운 햇빛으로 가득했다. 말벌 두 마리가 유리 지붕에 부딪히며 윙윙거렸다. 그리고 나는 졸음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경비원 쪽으로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여기 오신 지 오래되셨어요?" 그가 곧바로 대답했다. "오 년이요." 마치 내가 그걸 묻기만을 줄곧 기다려 왔다는 듯이.
그러고 나서 그는 한참을 떠들었다. 자기가 마랑고 양로원의 경비원으로 늙어 가게 되리라고 누가 말했더라면 그는 무척 놀랐을 것이다. 그는 예순넷이었고 파리 사람이었다. 그때 내가 말을 끊었다. "아! 여기 분이 아니세요?" 그러고서 그가 나를 원장에게 데려가기 전에 엄마 이야기를 했던 게 생각났다. 그는 엄마를 아주 서둘러 묻어야 한다고 했다. 평지는 더운 데다 이 고장은 특히 덥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파리에서 살았고 그 시절을 잊기 힘들다고 알려 준 것도 그때였다. 파리에서는 죽은 사람과 사나흘씩 함께 있기도 한다. 여기서는 그럴 겨를이 없고, 벌써 관을 실은 마차 뒤를 따라 뛰어야 한다는 생각에 익숙해지지도 못한다. 그때 그의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그만해요, 이분께 할 이야기가 아니에요." 노인은 얼굴을 붉히며 사과했다. 나는 끼어들어 말했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나는 그의 이야기가 옳고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작은 영안실에서 그는 자기가 빈민으로 양로원에 들어왔다고 알려 주었다. 몸이 아직 성하다고 느껴서 이 경비원 자리를 맡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나는 그러니까 결국 당신도 입소자가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아니라고 했다. 나는 벌써부터 그가 입소자들을 두고 "그들", "다른 사람들", 그리고 드물게는 "노인들"이라고 말하는 게 눈에 띄었다. 그중 몇몇은 그보다 나이가 많지도 않았다. 하지만 물론 같은 처지는 아니었다. 그는 경비원이었고, 어느 정도는 그들에 대해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때 간호사가 들어왔다. 저녁이 갑자기 내려앉았다. 금세 유리 지붕 위로 밤이 짙어졌다. 경비원이 스위치를 돌리자 불빛이 갑자기 쏟아져 나는 눈이 부셨다. 그는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밀크커피를 한 잔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나는 밀크커피를 무척 좋아해서 그러자고 했고, 그는 잠시 뒤 쟁반을 들고 돌아왔다. 나는 마셨다. 그러자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하지만 엄마 앞에서 피워도 되는지 몰라서 망설였다. 생각해 보니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나는 경비원에게 담배 한 개비를 권했고 우리는 담배를 피웠다.
한번은 그가 내게 말했다. "그런데 어머님 친구분들도 밤샘을 하러 오실 거예요. 그게 관습이거든요. 의자하고 블랙커피를 가져와야겠네요." 나는 등 하나를 꺼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하얀 벽에 번쩍이는 불빛 때문에 피곤했다. 그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설비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다 켜거나 다 끄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 뒤로 나는 그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나갔다가, 돌아왔다가, 의자를 늘어놓았다. 그중 한 의자 위에 커피 주전자를 두고 둘레에 찻잔을 쌓아 올렸다. 그러고는 엄마를 사이에 두고 내 맞은편에 앉았다. 간호사도 안쪽에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팔을 움직이는 모양으로 보아 뜨개질을 하는 것 같았다. 날은 푸근했고, 커피로 몸이 따뜻해졌으며, 열린 문으로 밤 냄새와 꽃 냄새가 들어왔다. 나는 조금 졸았던 것 같다.
무언가 스치는 소리에 잠이 깼다. 눈을 감았다 뜬 탓에 방이 한층 더 하얗게 눈부셔 보였다. 내 앞에는 그림자 하나 없었고, 물건 하나하나, 모서리 하나하나, 모든 곡선이 눈을 찌를 듯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엄마의 친구들이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모두 열 명쯤 되었고, 눈부신 불빛 속으로 소리 없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의자 하나 삐걱거리지 않고 그들은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때까지 누구도 그렇게 본 적이 없을 만큼 그들을 또렷이 보았고, 그들의 얼굴이나 옷차림에서 무엇 하나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그들이 정말로 거기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여자들은 거의 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는데, 허리를 조이는 끈 때문에 불룩한 배가 더 도드라졌다. 늙은 여자들이 그렇게 배가 나올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때까지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남자들은 거의 다 몹시 말랐고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내 눈길을 끈 것은, 눈이 보이지 않고 주름 둥지 한가운데에서 빛바랜 희미한 빛만 보인다는 것이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그들은 대부분 나를 쳐다보고 거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가 없는 입속으로 입술이 다 말려 들어가 있어서, 그게 내게 인사하는 건지 버릇처럼 떨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인사하는 쪽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모두 경비원을 둘러싸고 내 맞은편에 앉아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것은 그때였다. 한순간 나는 그들이 나를 심판하려고 거기 있다는 우스운 느낌이 들었다.
얼마 뒤 여자 하나가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둘째 줄에 있었는데 앞의 다른 여자에게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작게 끅끅거리며 일정하게 울었다. 영영 그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풀썩 주저앉아 침울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관이나 자기 지팡이나 아무거나 바라보고 있었지만, 오로지 그것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는 계속 울었다. 나는 무척 놀랐다. 그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소리를 그만 듣고 싶었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그렇게 말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경비원이 그녀에게 몸을 숙여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뭐라고 웅얼거리고는 여전히 똑같이 일정하게 울었다. 그러자 경비원이 내 쪽으로 왔다. 그는 내 곁에 앉았다. 꽤 한참 뒤에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알려 주었다. "어머님하고 아주 가까웠던 분이에요. 여기서 하나뿐인 친구였는데 이제 자기한테는 아무도 없다는군요."
우리는 그렇게 오래 있었다. 여자의 한숨과 흐느낌이 차츰 뜸해졌다. 그녀는 코를 많이 훌쩍였다. 마침내 그녀가 조용해졌다. 나는 더는 졸리지 않았지만 피곤했고 허리가 아팠다. 이제는 그 모든 사람들의 침묵이 괴로웠다. 이따금 이상한 소리가 들렸는데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 만에야 나는 노인 몇이 볼 안쪽을 빨아들이다가 그 기묘하게 쩝쩝거리는 소리를 흘린다는 것을 짐작하게 되었다. 그들은 생각에 푹 빠져서 자기들이 그러는 줄도 몰랐다. 심지어 나는 그들 한가운데 누워 있는 이 죽은 여자가 그들 눈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잘못된 느낌이었다.
우리는 모두 경비원이 따라 주는 커피를 마셨다. 그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밤이 지나갔다. 한번은 눈을 떴는데, 노인들이 저마다 몸을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던 게 기억난다. 한 사람만은 예외였다. 그는 지팡이를 움켜쥔 두 손등에 턱을 괴고, 내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또 잠이 들었다. 허리가 점점 더 아파서 잠이 깼다. 유리 지붕 위로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조금 뒤 노인 하나가 깨어나 기침을 몹시 했다. 그는 커다란 체크무늬 손수건에 가래를 뱉었는데, 뱉을 때마다 무언가를 뜯어내는 것 같았다. 그 소리에 다른 노인들이 깨어났고, 경비원이 이제 가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일어섰다. 불편한 밤샘으로 그들의 얼굴은 잿빛이 되어 있었다. 나가면서 그들은 모두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몹시 놀랐다. 마치 서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 이 밤이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들어 주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나는 피곤했다. 경비원이 자기 집으로 데려가 주어서 간단히 씻을 수 있었다. 밀크커피를 또 마셨는데 무척 맛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날이 완전히 밝아 있었다. 마랑고와 바다 사이를 가로막은 언덕들 위로 하늘이 붉은빛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언덕 위를 넘어온 바람이 여기까지 소금 냄새를 실어 왔다. 좋은 날이 되려는 참이었다. 시골에 온 지 오래되었고, 엄마 일만 아니었다면 산책하면서 얼마나 즐거웠을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안뜰의 플라타너스 아래에서 기다렸다. 서늘한 흙냄새를 맡으니 더는 졸리지 않았다. 사무실 동료들이 생각났다. 이 시간이면 그들은 출근하려고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때가 언제나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그런 생각을 조금 더 하다가 건물 안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정신이 흩어졌다. 창문 너머로 한바탕 부산스러운 소리가 나더니 다시 모든 게 조용해졌다. 해가 하늘로 조금 더 올라와 있었다. 발이 뜨끈해지기 시작했다. 경비원이 안뜰을 가로질러 와서 원장이 나를 찾는다고 했다. 나는 원장 사무실로 갔다. 그는 나에게 서류 몇 장에 서명하게 했다. 보니 그는 줄무늬 바지에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가 수화기를 들더니 나를 불렀다. "장의사 사람들이 와 있은 지 좀 되었네. 와서 관을 닫으라고 해야겠네. 그 전에 어머님을 마지막으로 한 번 뵙겠나?" 나는 아니라고 했다. 그는 목소리를 낮춰 전화에 대고 지시했다. "피자크, 사람들에게 시작해도 된다고 전하게."
그러고 나서 그는 자기도 장례에 참석하겠다고 했고 나는 고맙다고 했다. 그는 책상 뒤에 앉아 짧은 다리를 꼬았다. 그는 자기와 나, 그리고 당번 간호사만 가게 될 거라고 일러 주었다. 원칙적으로 입소자들은 장례에 참석하지 않게 되어 있었다. 원장은 그들에게 밤샘만 허락했다. "인정상 그러는 걸세." 그가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엄마의 오랜 친구 한 사람에게 장례 행렬을 따라가도 좋다고 허락했다고 했다. "토마 페레즈." 여기서 원장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말했다. "자네도 알겠지만 좀 어린애 같은 감정이지. 그래도 그 사람과 자네 어머님은 거의 떨어지지 않았네. 여기서는 두 사람을 놀리곤 했지. 페레즈에게 '약혼녀분이시네요' 하고 말이야. 그는 웃었어. 두 사람 다 그걸 좋아했지. 사실 뫼르소 부인이 돌아가시고 그가 크게 상심했네. 허락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 하지만 양로원에 드나드는 의사가 권해서 어젯밤 밤샘은 못 하게 했네."
우리는 꽤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원장이 일어나 사무실 창밖을 내다보았다. 한번은 그가 말했다. "벌써 마랑고 신부님이 오셨군. 일찍 오셨네." 그는 교회가 마을 안에 있어서 걸어가려면 적어도 사십오 분은 걸릴 거라고 알려 주었다. 우리는 아래로 내려갔다. 건물 앞에 신부와 미사를 돕는 아이 둘이 있었다. 아이 하나는 향로를 들고 있었고, 신부는 몸을 숙여 은사슬의 길이를 맞춰 주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신부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나를 "형제여"라고 부르며 몇 마디 했다. 그가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를 따라갔다.
한눈에 관의 나사못이 모두 박혀 있고 방 안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넷이 있는 게 보였다. 동시에 원장이 마차가 길에서 기다린다고 말하는 소리와 신부가 기도를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부터 모든 게 아주 빨리 지나갔다. 남자들이 천을 들고 관 쪽으로 다가갔다. 신부와 그를 따르는 아이들, 원장과 나는 밖으로 나왔다. 문 앞에 모르는 부인이 한 사람 있었다. "뫼르소 씨일세." 원장이 말했다. 나는 그 부인의 이름을 듣지 못했고, 그녀가 양로원에서 보낸 간호사라는 것만 알아들었다. 그녀는 웃음기 없이 길고 앙상한 얼굴을 숙여 보였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관이 지나가도록 비켜섰다. 우리는 관을 멘 사람들을 따라 양로원을 나왔다. 문 앞에 관을 실을 마차가 있었다. 니스를 칠해 반들반들 윤이 나는 길쭉한 마차는 필통을 떠올리게 했다. 그 옆에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을 한 키 작은 장례 진행인과, 어색한 몸가짐을 한 노인이 서 있었다. 나는 그가 페레즈 씨라는 걸 알았다. 그는 정수리가 둥글고 챙이 넓은 부드러운 펠트 모자를 쓰고 있었고(관이 문을 지나갈 때 그는 모자를 벗었다), 바지가 구두 위로 꾸깃꾸깃 흘러내린 양복을 입었고, 커다란 흰 깃이 달린 셔츠에 비해 너무 작은 검은 천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검은 점이 박힌 코 아래에서 입술이 떨렸다. 꽤 가늘어진 흰 머리카락 사이로 이상하게 축 늘어지고 가장자리가 제대로 말리지 않은 귀가 비죽 나와 있었는데, 그 창백한 얼굴에서 핏빛처럼 붉은 귀의 색깔이 내 눈에 띄었다. 장례 진행인이 우리 자리를 정해 주었다. 신부가 맨 앞에서 걷고, 다음에 마차가 갔다. 마차 둘레로 남자 넷이 갔다. 그 뒤로 원장과 나, 그리고 맨 끝에 그 간호사와 페레즈 씨가 따랐다.
하늘은 벌써 햇빛으로 가득했다. 해가 땅을 짓누르기 시작했고 열기가 빠르게 올라갔다. 무슨 까닭인지 우리는 꽤 오래 기다린 뒤에야 걷기 시작했다. 어두운 옷 속이 더웠다. 모자를 다시 썼던 작은 노인이 또 모자를 벗었다. 내가 그쪽으로 조금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고 있는데 원장이 그 사람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저녁이면 엄마와 페레즈 씨가 간호사 한 명과 함께 마을까지 자주 산책을 나갔다고 했다. 나는 주위의 들판을 둘러보았다. 하늘 가까이 닿은 언덕들까지 이어진 사이프러스 나무들의 줄, 그 붉고 푸른 땅, 드문드문 또렷하게 선 집들을 보니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고장의 저녁은 서글픈 휴전 같았을 것이다. 오늘은 넘쳐흐르는 햇빛이 풍경을 떨게 해서, 풍경이 비인간적이고 숨 막히게 느껴졌다.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페레즈가 다리를 조금 전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그때였다. 마차가 조금씩 속도를 올리자 노인은 점점 뒤처졌다. 마차를 둘러싸고 가던 남자 중 하나도 뒤로 처져서 이제 내 옆에서 걷고 있었다. 나는 해가 하늘로 올라가는 속도에 놀랐다. 들판이 벌써 한참 전부터 벌레 우는 소리와 풀이 타닥거리는 소리로 웅웅거리고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땀이 뺨을 타고 흘렀다. 모자가 없어서 나는 손수건으로 부채질을 했다. 그때 장의사 직원이 내게 뭐라고 했는데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왼손에 든 손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면서 오른손으로는 모자챙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뭐라고요?" 그가 하늘을 가리키며 되풀이했다. "쨍쨍하네요." 나는 "네" 하고 말했다. 조금 뒤 그가 물었다. "저기 계신 분이 어머님이세요?" 나는 또 "네" 하고 말했다. "연세가 많으셨어요?" 나는 "그럭저럭요"라고 대답했다. 정확한 숫자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입을 다물었다. 뒤돌아보니 늙은 페레즈가 우리 뒤로 50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그는 펠트 모자를 쥔 팔을 흔들며 서둘러 오고 있었다. 나는 원장도 보았다. 그는 쓸데없는 몸짓 하나 없이 아주 위엄 있게 걷고 있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몇 개 맺혀 있었지만 그는 닦지 않았다.
행렬이 조금 더 빨리 걷는 것 같았다. 내 주위는 여전히 햇빛을 머금은 똑같이 환한 들판이었다. 하늘의 빛은 견딜 수 없었다. 한번은 얼마 전에 새로 포장한 길을 지나갔다. 햇볕에 아스팔트가 터져 있었다. 발이 그 안으로 빠졌다가 번들거리는 속살을 드러낸 채 빠져나왔다. 마차 위에서 마부가 쓴 딱딱한 가죽 모자는 이 검은 진창을 빚어 만든 것 같았다. 나는 파랗고 하얀 하늘과, 단조로운 색깔들, 드러난 아스팔트의 끈적한 검정, 옷의 칙칙한 검정, 마차의 윤나는 검정 사이에서 조금 멍해졌다. 그 모든 것이, 해와, 마차의 가죽 냄새와 말똥 냄새, 니스 냄새와 향냄새, 잠 못 이룬 밤의 피로가 내 시선과 생각을 흐려 놓았다. 나는 한 번 더 뒤돌아보았다. 페레즈가 아주 멀리, 뜨거운 아지랑이 속에 파묻혀 보이더니 이윽고 보이지 않았다. 눈으로 그를 찾아보니 그는 길을 벗어나 들판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내 앞에서 길이 굽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고장을 잘 아는 페레즈가 우리를 따라잡으려고 지름길로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퉁이에서 그는 우리를 따라잡았다. 그러다 우리는 다시 그를 놓쳤다. 그는 또 들판을 가로질렀고, 그러기를 여러 번 되풀이했다. 나는 관자놀이에서 피가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그다음은 모든 일이 너무나 서둘러, 너무나 확실하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지나가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마을 어귀에서 양로원 간호사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독특했다. 가락이 있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말했다. "천천히 가면 일사병에 걸릴 수 있어요. 그렇다고 너무 빨리 가면 땀이 나서 교회 안에서 오한이 들고요." 그녀 말이 옳았다.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그날의 장면 몇 가지는 아직 남아 있다. 이를테면 페레즈가 마을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우리를 따라잡았을 때의 얼굴. 속이 타고 괴로워서 흘린 굵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러나 주름 때문에 눈물은 흘러내리지 못했다. 눈물은 퍼지고 서로 합쳐져서 그 무너진 얼굴 위에 물로 된 니스를 칠했다. 그리고 교회와 보도 위의 마을 사람들, 묘지 무덤 위의 붉은 제라늄, 페레즈의 기절(마치 팔다리가 풀려 버린 꼭두각시 같았다), 엄마의 관 위로 굴러떨어지던 핏빛 흙, 그 흙에 섞여 있던 하얀 뿌리의 속살, 또 사람들, 목소리들, 마을, 카페 앞에서 기다리던 일, 끊임없이 윙윙대던 엔진 소리, 그리고 버스가 알제의 불빛 둥지 속으로 들어갔을 때, 이제 누워서 열두 시간을 자겠구나 하고 생각했을 때의 기쁨이 있었다.
1부 2장
잠에서 깨고서야 사장에게 이틀 휴가를 달라고 했을 때 그가 왜 못마땅한 얼굴이었는지 알았다. 오늘이 토요일이다. 말하자면 잊고 있었는데, 일어나면서 그 생각이 났다. 사장은 당연히, 그러면 내가 일요일까지 합쳐 나흘을 쉬게 된다고 생각했을 테고 그게 반가울 리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엄마를 오늘이 아니라 어제 묻은 건 내 탓이 아니고, 또 한편으로 나는 어차피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사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어제 하루 때문에 피곤해서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면도를 하면서 뭘 할까 생각하다가 수영을 하러 가기로 했다. 전차를 타고 항구의 해수욕장에 갔다. 거기서 물길로 뛰어들었다.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물속에서 마리 카르도나를 다시 만났다. 예전에 우리 사무실에서 타자수로 일하던 여자인데, 그때 나는 그녀를 갖고 싶었다. 그녀도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곧 그만두는 바람에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나는 그녀가 부표 위로 올라가도록 도와주었고, 그러다 그녀의 가슴을 스쳤다. 그녀가 벌써 부표 위에 엎드렸을 때 나는 아직 물속에 있었다.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머리카락이 눈을 덮고 있었고 그녀는 웃고 있었다. 나도 부표 위로 올라가 그녀 곁에 누웠다. 날씨가 좋았고, 나는 장난처럼 머리를 뒤로 젖혀 그녀의 배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그대로 있었다. 눈에는 하늘이 가득했는데, 파랗고 금빛이었다. 목덜미 아래로 마리의 배가 천천히 오르내리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반쯤 잠든 채 부표 위에 오래 있었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지자 그녀가 물로 뛰어들었고 나도 따라 들어갔다. 나는 그녀를 따라잡아 허리에 팔을 두르고 함께 헤엄쳤다. 그녀는 계속 웃었다. 부두에서 몸을 말리는 동안 그녀가 말했다. "내가 당신보다 더 탔네요." 나는 저녁에 영화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또 웃더니 페르낭델이 나오는 영화가 보고 싶다고 했다. 옷을 다시 입을 때 그녀는 내가 검은 넥타이를 맨 걸 보고 무척 놀란 얼굴로 상중이냐고 물었다. 나는 엄마가 죽었다고 했다. 그녀가 언제냐고 물어서 나는 "어제요"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조금 움찔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사장에게 이미 그 말을 했다는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건 아무 뜻도 없는 말이었다. 어쨌든 사람은 늘 조금은 잘못이 있는 법이다.
저녁이 되자 마리는 다 잊어버렸다. 영화는 군데군데 우스웠고, 나머지는 정말이지 너무 유치했다. 그녀는 자기 다리를 내 다리에 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영화가 끝나 갈 무렵 나는 그녀에게 입을 맞췄는데, 서툴렀다. 극장에서 나와 그녀는 우리 집으로 왔다.
깨어 보니 마리는 가고 없었다. 이모 댁에 가야 한다고 말했었다.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생각이 들자 따분해졌다. 나는 일요일이 싫다. 그래서 침대에서 돌아누워 긴 베개에서 마리의 머리카락이 남기고 간 소금 냄새를 찾다가 열 시까지 잤다. 그러고는 누운 채로 정오까지 담배를 피웠다. 늘 가던 셀레스트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틀림없이 이것저것 물어볼 텐데 나는 그게 싫다. 나는 달걀을 부쳐서 프라이팬째 놓고 먹었다. 빵은 없었다. 다 떨어졌는데 사러 내려가기 싫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조금 따분해져서 집 안을 서성거렸다. 엄마가 있을 때는 알맞은 집이었다. 지금은 나 혼자 쓰기에 너무 커서, 식당에 있던 식탁을 내 방으로 옮겨 놓아야 했다. 이제 나는 이 방에서만 지낸다. 조금 꺼진 짚 의자들, 거울이 누렇게 바랜 옷장, 세면대, 구리 침대 사이에서. 나머지는 버려 둔 채다. 조금 뒤, 뭐라도 하려고 오래된 신문을 집어 들고 읽었다. 크루셴 소금 광고를 오려서, 신문에서 재미있는 걸 붙여 두는 낡은 공책에 붙였다. 손도 씻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코니에 나가 앉았다.
내 방은 변두리 동네의 큰길 쪽으로 나 있다. 오후는 화창했다. 그런데도 포장도로는 번들거렸고, 사람들은 드문드문 있었는데 그마저도 바삐 지나갔다. 먼저 산책 나가는 가족들이 있었다. 무릎 아래까지 오는 반바지에 세일러복을 입고 뻣뻣한 옷 때문에 조금 거북해하는 사내아이 둘, 커다란 분홍 리본을 달고 반짝이는 검은 구두를 신은 계집아이 하나. 그 뒤로 밤색 비단옷을 입은 몸집이 엄청난 엄마와, 얼굴만 아는 꽤 연약해 보이는 작은 남자인 아빠가 따라갔다. 그는 밀짚모자를 쓰고 나비넥타이를 매고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가 아내와 함께 있는 걸 보니, 동네 사람들이 왜 그를 두고 점잖은 사람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조금 뒤에는 동네 젊은이들이 지나갔다. 머리에 기름을 번들번들 바르고, 빨간 넥타이를 매고, 허리가 쏙 들어간 윗옷 가슴 주머니에 수놓은 손수건을 꽂고, 앞코가 네모난 구두를 신고 있었다. 시내 극장에 가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일찍 나서서 큰 소리로 웃으며 전차 쪽으로 서둘러 가는 것이었다.
그들이 지나가자 거리는 조금씩 텅 비어 갔다. 어디서나 공연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거리에는 가게 주인들과 고양이들만 남았다. 길가의 무화과나무 위로 하늘은 맑았지만 빛은 없었다. 건너편 보도에서 담배 가게 주인이 의자를 들고 나와 문 앞에 놓더니, 두 팔을 등받이에 걸치고 거꾸로 올라탔다. 조금 전까지 꽉 차 있던 전차들이 거의 비어 있었다. 담배 가게 옆의 작은 카페 「피에로네」에서는 텅 빈 가게 안의 톱밥을 종업원이 쓸고 있었다. 정말로 일요일이었다.
나도 의자를 돌려 담배 가게 주인처럼 놓았다. 그렇게 하는 게 더 편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담배 두 대를 피우고, 안으로 들어가 초콜릿 한 조각을 가져와서 창가로 돌아와 먹었다. 조금 뒤 하늘이 어두워져서 여름 소나기가 오려나 했다. 그러나 하늘은 조금씩 다시 개었다. 그래도 구름이 지나가면서 비가 올 것 같은 기운을 거리에 남겨 놓아 거리가 더 어두워 보였다. 나는 오랫동안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섯 시에 전차들이 요란하게 들어왔다. 교외 경기장에서 돌아오는 관중들이 발판과 난간에 포도송이처럼 매달려 있었다. 다음 전차들은 선수들을 싣고 왔는데, 작은 가방을 들고 있어서 선수인 줄 알았다. 그들은 자기네 클럽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목청껏 소리 지르며 노래했다. 몇몇이 내게 손짓을 했다. 하나는 "우리가 이겼어요!" 하고 소리치기까지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하고 대꾸했다. 그때부터 자동차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루가 조금 더 기울었다. 지붕들 위로 하늘이 불그스름해졌고, 저녁이 오면서 거리가 다시 북적이기 시작했다. 산책 나갔던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왔다. 그 사이에서 점잖은 신사도 보였다. 아이들은 울거나 질질 끌려갔다. 거의 동시에 동네 극장들이 관객들을 거리로 한꺼번에 쏟아 냈다. 그중 젊은이들은 여느 때보다 몸짓이 거칠었고, 나는 그들이 모험 영화를 보고 나왔나 보다 했다. 시내 극장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은 조금 뒤에 왔다. 그들은 좀 더 진지해 보였다. 웃고는 있었지만 가끔씩 지치고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들은 건너편 보도를 오가며 거리에 남아 있었다. 모자를 쓰지 않은 동네 아가씨들이 팔짱을 끼고 걸었다. 젊은 남자들은 일부러 그들과 마주치도록 걸으면서 농담을 던졌고, 아가씨들은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그중 내가 아는 몇몇이 내게 손짓을 했다.
그때 가로등이 갑자기 켜지면서 밤하늘에 막 떠오르던 첫 별들을 흐리게 만들었다. 사람들과 불빛을 가득 실은 보도를 바라보고 있자니 눈이 피곤했다. 가로등 불빛에 젖은 포장도로가 번들거렸고, 전차가 일정한 간격으로 지나가며 반짝이는 머리카락이며 미소며 은팔찌 위에 불빛을 비추었다. 조금 뒤 전차가 뜸해지고 나무와 가로등 위로 밤이 벌써 새카매지자, 동네는 어느새 비어 갔고, 마침내 첫 고양이가 다시 텅 빈 거리를 천천히 가로질렀다. 그제야 저녁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의자 등받이에 기대 있었더니 목이 조금 아팠다. 나는 내려가서 빵과 파스타를 사 와서 요리를 하고 선 채로 먹었다. 창가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었지만 공기가 서늘해져서 조금 추웠다. 창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거울 속에 식탁 한 귀퉁이가 보였다. 알코올램프 옆에 빵 조각들이 놓여 있었다. 어쨌든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이제 땅에 묻혔고, 나는 다시 일하러 나갈 것이고, 결국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1부 3장
오늘은 사무실에서 일을 많이 했다. 사장은 친절했다. 너무 피곤하지 않으냐고 묻더니 엄마 나이도 알고 싶어 했다. 나는 틀리지 않으려고 "예순쯤이요"라고 했는데, 왜 그런지 그는 마음이 놓인 얼굴로 이제 다 끝난 일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내 책상에는 선적 서류가 수북이 쌓여 있어서 그걸 다 검토해야 했다. 점심 먹으러 사무실을 나서기 전에 손을 씻었다. 정오의 이 시간을 나는 좋아한다. 저녁에는 덜 즐겁다. 다들 쓰는 두루마리 수건이 하루 종일 쓰여서 흠뻑 젖어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사장에게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유감이긴 하지만 그래도 별것 아닌 일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조금 늦게, 열두 시 반에 발송부에서 일하는 에마뉘엘과 함께 나왔다. 사무실은 바다 쪽으로 나 있어서 우리는 햇볕에 달아오른 항구의 화물선들을 잠시 구경했다. 그때 트럭 한 대가 쇠사슬 소리와 엔진 터지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달려왔다. 에마뉘엘이 "타 볼까" 하고 물었고 나는 뛰기 시작했다. 트럭이 우리를 앞질러 가서 우리는 그 뒤를 쫓았다. 나는 소음과 먼지 속에 파묻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기중기와 기계들 사이로, 수평선에서 춤추는 돛대들과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배의 몸통들 사이로 정신없이 달리는 기세만 느껴졌다. 내가 먼저 손을 짚고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에마뉘엘이 올라앉도록 도와주었다. 우리는 숨이 턱까지 찼고, 트럭은 먼지와 햇빛 속에서 울퉁불퉁한 부두의 포장길 위를 덜컹거리며 튀었다. 에마뉘엘은 숨이 넘어가게 웃었다.
우리는 땀에 흠뻑 젖어 셀레스트네 식당에 도착했다. 셀레스트는 여전히 불룩한 배에 앞치마를 두르고 하얀 콧수염을 기른 채 거기 있었다. 그는 "그래도 괜찮은 거지?" 하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배가 고프다고 했다. 나는 아주 빨리 먹고 커피를 마셨다. 그러고는 집에 가서 조금 잤다.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이다. 깨어나니 담배가 피우고 싶었다. 늦어서 전차를 잡으려고 뛰었다. 오후 내내 일했다. 사무실은 무척 더웠고, 저녁에 나와서 부두를 따라 천천히 걸어 돌아오니 기분이 좋았다. 하늘은 초록빛이었고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곧장 집으로 갔다. 감자를 삶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컴컴한 계단을 올라가다가 같은 층에 사는 살라마노 영감과 부딪혔다. 그는 개를 데리고 있었다. 둘이 같이 다니는 걸 본 지 팔 년이 되었다. 스패니얼인 그 개는 피부병을 앓고 있는데, 아마 옴인 것 같다. 그 병 때문에 털이 거의 다 빠지고 온몸이 갈색 딱지와 얼룩투성이다. 작은 방에서 단둘이 같이 살다 보니 살라마노 영감은 결국 개를 닮아 버렸다. 영감의 얼굴에는 불그스름한 딱지가 앉아 있고 누렇게 바랜 머리카락은 듬성듬성하다. 개는 개대로 주인을 닮아 등을 구부정하게 굽히고 주둥이를 앞으로 내밀고 목을 쭉 뺀 모양새가 되었다. 둘은 같은 종자처럼 보이는데도 서로를 미워한다. 하루에 두 번, 열한 시와 여섯 시에 영감은 개를 산책시킨다. 팔 년 동안 그들은 산책길을 바꾼 적이 없다. 리옹 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을 볼 수 있는데, 개가 사람을 끌고 가다가 살라마노 영감이 발을 헛디딘다. 그러면 영감은 개를 때리고 욕을 한다. 개는 겁에 질려 바닥을 기며 질질 끌려간다. 이번에는 영감이 개를 끌고 간다. 개가 잊어버리고 또 주인을 끌고 가면 또 얻어맞고 욕을 먹는다. 그러면 둘은 보도에 멈춰 서서 서로를 쳐다본다. 개는 겁에 질려서, 사람은 미움에 차서. 날마다 그렇다. 개가 오줌을 누려고 하면 영감은 그럴 틈을 주지 않고 끌고 가서, 스패니얼은 뒤로 작은 오줌 방울을 줄줄이 흘리며 간다. 어쩌다 개가 방 안에서 일을 보면 또 얻어맞는다. 그렇게 팔 년째다. 셀레스트는 늘 "딱한 일이야"라고 하지만, 실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계단에서 마주쳤을 때 살라마노는 개에게 욕을 하고 있었다. "망할 놈! 썩을 놈!" 하고 퍼부었고 개는 낑낑거렸다. 나는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지만 영감은 계속 욕만 했다. 그래서 개가 무슨 짓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망할 놈! 썩을 놈!" 하고만 되풀이했다. 그가 개 위로 몸을 숙이고 목줄을 무언가 매만지고 있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나는 좀 더 크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속으로 삭이는 분노 같은 것을 담아 대답했다. "이놈은 늘 이렇다니까." 그러고는 네 발로 버티며 낑낑대는 개를 질질 끌고 가 버렸다.
바로 그때 같은 층에 사는 또 다른 이웃이 들어왔다. 동네에서는 그가 여자들 등을 쳐 먹고 산다고들 한다. 하지만 누가 직업을 물으면 그는 "창고 관리인"이라고 한다. 대체로 동네 사람들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는 자주 내게 말을 걸고, 가끔은 우리 집에 들러 한동안 있다 가기도 한다. 내가 그의 말을 들어 주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게다가 그와 말을 섞지 않을 이유도 없다. 그의 이름은 레몽 생테스다. 키가 꽤 작고, 어깨가 떡 벌어졌고, 코는 권투 선수 같다. 옷은 늘 아주 단정하게 입는다. 그도 살라마노 이야기를 하며 말했다. "딱하지 않아요!" 그는 역겹지 않으냐고 물었고,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위층으로 올라갔고, 내가 헤어지려는데 그가 말했다. "우리 집에 순대하고 포도주가 있는데요. 괜찮으면 같이 한술 뜨실래요?…" 저녁을 해 먹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그러자고 했다. 그의 집도 방 하나에 창문 없는 부엌이 딸려 있었다. 침대 위쪽 벽에는 희고 분홍빛인 석고 천사상과 운동선수 사진들, 벌거벗은 여자 사진 두어 장이 붙어 있었다. 방은 지저분했고 침대는 흐트러져 있었다. 그는 먼저 석유램프를 켜고, 주머니에서 좀 수상쩍은 붕대를 꺼내 오른손에 감았다. 나는 손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는 시비를 거는 놈과 한바탕 싸웠다고 했다.
"아시겠지만요, 뫼르소 씨," 그가 말했다. "내가 못된 놈이라서가 아니라, 성질이 좀 급해서요. 그놈이 그러더라고요. '사내놈이면 전차에서 내려.' 그래서 내가 '됐어, 가만히 있어'라고 했죠. 그랬더니 나더러 사내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려서 말했죠. '그만해, 그게 좋을 거다. 안 그러면 혼쭐을 내 줄 테니까.' 그놈이 '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 방 먹였죠. 그놈이 나자빠졌어요. 나는 일으켜 주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놈이 바닥에 누운 채로 발길질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무릎으로 한 번 찍고 주먹을 두 방 날렸죠. 그놈 얼굴이 피범벅이 됐어요. 이제 됐냐고 물었더니 '그래' 하더라고요."
그러는 내내 생테스는 붕대를 매만지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가 말했다. "보셨죠, 내가 먼저 건드린 게 아니라고요. 그놈이 먼저 나를 무시한 거예요." 그건 사실이었고 나도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마침 이 일로 내게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사내답고 세상 물정을 아니까 자기를 도와줄 수 있을 거고, 그러면 자기는 내 친구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는 자기 친구가 되고 싶지 않으냐고 또 물었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는 흡족한 것 같았다. 그는 순대를 꺼내 프라이팬에 굽고, 잔과 접시와 포크와 나이프, 포도주 두 병을 차려 놓았다. 그 모든 걸 말없이 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먹으면서 그는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금 머뭇거렸다. "내가 알던 여자가 하나 있는데요… 말하자면 내 애인이었죠." 그와 싸운 남자는 그 여자의 오빠였다. 그는 그 여자를 먹여 살렸다고 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는데 그는 곧바로, 동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만 자기는 떳떳하고 창고 관리인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내 이야기로 돌아가면요," 그가 말했다. "속임수가 있다는 걸 알아챘어요." 그는 그 여자에게 딱 먹고살 만큼만 주었다. 방세는 자기가 내 주고, 먹는 데 쓰라고 하루에 20프랑씩 주었다. "방세 300프랑, 먹는 데 600프랑, 가끔 스타킹 한 켤레, 그러면 천 프랑이었어요. 그리고 그 여자는 일을 안 했고요. 그런데 그 여자는 빠듯하다고, 내가 주는 걸로는 모자란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반나절만이라도 일을 하지 그래? 그런 자잘한 것들은 네가 좀 덜어 주면 나도 한결 나을 텐데. 이번 달엔 옷도 한 벌 사 줬지, 하루에 20프랑씩 주지, 방세도 내 주지, 그런데 너는 오후마다 친구들이랑 커피나 마시잖아. 커피랑 설탕은 네가 대 주고. 돈은 내가 대 주고. 나는 너한테 잘해 줬는데 너는 그걸 이렇게 갚는구나.' 그래도 그 여자는 일을 안 하고 늘 모자란다고만 했어요. 그래서 속임수가 있다는 걸 알아챈 거죠."
그러고 나서 그는 그 여자 가방에서 복권을 한 장 찾아냈는데 여자가 그걸 어떻게 샀는지 설명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조금 뒤에는 그 여자 집에서 전당포 표를 찾아냈는데, 팔찌 두 개를 잡혔다는 증거였다. 그때까지 그는 그런 팔찌가 있는 줄도 몰랐다. "속임수가 있다는 게 뻔히 보였죠. 그래서 헤어졌어요. 하지만 그 전에 두들겨 팼죠. 그러고 나서 할 말을 다 해 줬어요. 네가 원하는 건 그저 네 몸뚱이로 노는 것뿐이라고요. 내가 그랬거든요, 아시겠죠, 뫼르소 씨. '너는 세상이 내가 너한테 주는 행복을 샘내는 게 안 보여? 나중에 가서야 네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게 될 거다.'"
그는 그 여자를 피가 나도록 팼다. 전에는 때리지 않았다고 했다. "때리긴 했죠. 하지만 말하자면 다정하게요. 그 여자가 조금 소리를 지르면 나는 덧창을 닫았고, 늘 하던 대로 끝났어요. 그런데 이번엔 진짜예요. 그리고 내 생각엔 아직 벌을 덜 받았어요."
그래서 조언이 필요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말을 멈추고 그을음을 내는 램프 심지를 조절했다. 나는 계속 듣고 있었다. 포도주를 거의 1리터나 마셔서 관자놀이가 후끈거렸다. 내 담배가 떨어져서 레몽의 담배를 피웠다. 마지막 전차들이 지나가면서 이제는 멀어진 변두리의 소음을 싣고 갔다. 레몽은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를 괴롭히는 건 "그 여자 몸뚱이에 아직 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그 여자를 혼내 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 여자를 호텔로 데려가서 풍속계 경찰을 불러 소란을 피우고 창녀로 등록되게 할 생각을 했다. 그다음에는 뒷골목 세계에 있는 친구들에게 부탁했다. 그들은 아무 방법도 찾지 못했다. 레몽이 내게 짚어 말했듯이, 그러고서야 뒷골목에서 논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가 그렇게 말하자 그들은 그 여자 얼굴에 "흉터를 내 주자"고 했다. 하지만 그건 그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좀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 전에 내게 부탁할 게 있다고 했다. 그리고 부탁하기 전에 이 일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대답했다. 그는 속임수가 있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는데, 내가 보기에도 속임수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여자를 혼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내가 자기라면 어떻게 하겠는지도 물었다. 나는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가 그 여자를 혼내 주고 싶어 하는 건 이해한다고 했다. 나는 포도주를 조금 더 마셨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 여자에게 "발길질을 하면서도 동시에 후회하게 만드는 말을 담은" 편지를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 여자가 돌아오면 같이 자다가 "막 끝낼 때" 얼굴에 침을 뱉고 밖으로 내쫓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하면 그 여자가 벌을 받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레몽은 자기는 그런 편지를 제대로 쓸 자신이 없어서 나한테 써 달라고 할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는 지금 바로 써 주면 귀찮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포도주를 한 잔 마시고 일어섰다. 그는 접시들과 우리가 남긴 식은 순대 몇 조각을 밀어 놓았다. 식탁의 방수포를 꼼꼼히 닦았다. 머리맡 탁자 서랍에서 모눈종이 한 장, 누런 봉투 하나, 빨간 나무 펜대 하나, 보라색 잉크가 든 네모난 잉크병을 꺼냈다. 그가 여자 이름을 말했을 때 나는 그 여자가 아랍 여자라는 걸 알았다. 나는 편지를 썼다. 되는대로 썼지만 레몽의 마음에 들도록 애썼다. 그의 마음에 들지 않게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편지를 소리 내어 읽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더니 한 번 더 읽어 달라고 했다. 그는 아주 흡족해했다. 그가 말했다. "네가 세상 물정을 아는 줄 알았지." 처음에는 그가 내게 반말을 한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가 "이제 너는 진짜 내 친구야"라고 말했을 때에야 그게 눈에 띄었다. 그가 그 말을 되풀이했고 나는 "그래요"라고 했다. 그의 친구가 되든 말든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고, 그는 정말로 그러고 싶은 눈치였다. 그는 편지를 봉하고 우리는 포도주를 마저 마셨다. 그러고는 한동안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밖은 온통 조용했고, 자동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늦었네요"라고 했다. 레몽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시간이 빨리 간다고 했는데, 어떤 뜻에서는 맞는 말이었다. 나는 졸렸지만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내가 피곤해 보였는지 레몽은 축 처져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러자 그는 엄마가 죽은 걸 들었다고, 하지만 그건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내 생각도 그랬다.
내가 일어서자 레몽은 내 손을 아주 세게 쥐며 사내끼리는 언제나 서로 통하는 법이라고 했다. 그의 집에서 나와 문을 닫고, 나는 층계참의 어둠 속에 잠시 서 있었다. 건물 안은 조용했고, 계단 저 밑바닥에서 어둡고 축축한 바람이 올라왔다. 귓속에서 윙윙거리는 내 피가 뛰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런데 살라마노 영감의 방에서 개가 낮게 끙끙거렸다.
1부 4장
나는 한 주 내내 일을 열심히 했다. 레몽이 와서 편지를 보냈다고 했다. 에마뉘엘과 영화를 두 번 보러 갔는데, 그는 화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늘 알아듣지는 못한다. 그러면 설명을 해 줘야 한다. 어제는 토요일이었고, 약속한 대로 마리가 왔다. 그녀는 빨갛고 하얀 줄무늬가 있는 예쁜 원피스를 입고 가죽 샌들을 신고 있어서 나는 그녀가 몹시 갖고 싶었다. 단단한 가슴이 옷 너머로 짐작되었고, 햇볕에 그을린 얼굴은 꽃 같았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알제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해변에 갔다. 바위들 사이에 끼어 있고 뭍 쪽으로는 갈대가 둘러선 좁은 해변이었다. 네 시의 햇볕은 그리 뜨겁지 않았지만 물은 미지근했고, 길고 느릿한 잔물결이 일었다. 마리가 놀이를 하나 가르쳐 주었다. 헤엄을 치면서 물마루의 물을 들이마셔 입안에 거품을 가득 모았다가, 반듯이 누워 하늘을 향해 뿜는 것이었다. 그러면 거품이 레이스처럼 퍼졌다가 공중에서 사라지거나 미지근한 빗방울이 되어 내 얼굴로 떨어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자 짠맛 때문에 입안이 따가웠다. 그때 마리가 다가와 물속에서 내게 몸을 붙였다. 그녀가 내 입에 입을 댔다. 그녀의 혀가 내 입술을 식혀 주었고, 우리는 한동안 물결 속에서 뒹굴었다.
해변에서 다시 옷을 입을 때 마리는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그때부터 우리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끌어안았고, 우리는 서둘러 버스를 잡아 돌아와서 우리 집으로 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창문을 열어 두었더니 여름밤이 그을린 우리 몸 위로 흘러내리는 게 좋았다.
오늘 아침 마리가 가지 않고 남아 있어서, 나는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나는 고기를 사러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데 레몽의 방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뒤 살라마노 영감이 개를 꾸짖었고, 나무 계단 위로 구두 밑창 소리와 발톱 소리가 나더니, "망할 놈, 썩을 놈" 소리와 함께 둘이 거리로 나갔다. 마리에게 영감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그녀가 웃었다. 그녀는 소매를 걷어 올린 내 잠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가 웃으니 나는 또 그녀가 갖고 싶었다. 조금 뒤 그녀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지만 아닌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슬픈 얼굴이 되었다. 그런데 점심을 준비하다가 별일도 아닌 걸로 그녀가 또 웃는 바람에 나는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레몽의 방에서 싸우는 소리가 터져 나온 건 그때였다.
먼저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가 들리더니 레몽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날 무시했지, 날 무시했어. 날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 주마." 둔탁한 소리가 몇 번 나더니 여자가 비명을 질렀는데, 어찌나 끔찍하게 질렀는지 금세 층계참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마리와 나도 나갔다. 여자는 계속 소리를 질렀고 레몽은 계속 때렸다. 마리가 끔찍하다고 했지만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경찰을 불러 오라고 했지만 나는 경찰이 싫다고 했다. 그런데 이 층에 사는 배관공과 함께 경찰관 하나가 왔다. 그가 문을 두드리자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가 더 세게 두드렸고, 잠시 뒤 여자가 울기 시작하더니 레몽이 문을 열었다. 그는 담배를 문 채 능글맞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자가 문 쪽으로 뛰어나오더니 경찰관에게 레몽이 자기를 때렸다고 했다. "이름." 경찰관이 말했다. 레몽이 대답했다. "나한테 말할 때는 입에서 담배 빼." 경찰관이 말했다. 레몽은 머뭇거리더니 나를 쳐다보고는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그 순간 경찰관이 그의 뺨을 두툼하고 묵직한 손바닥으로 힘껏 후려쳤다. 담배가 몇 미터 밖으로 날아갔다. 레몽은 얼굴빛이 달라졌지만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꽁초를 주워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경찰관은 그래도 된다고 하면서 덧붙였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경찰을 우습게 보지 마." 그러는 동안 여자는 울면서 되풀이했다. "이 사람이 나를 때렸어요. 기둥서방이에요." 그러자 레몽이 물었다. "경관님, 남자한테 기둥서방이라고 하는 것도 법에 걸리지 않습니까?" 하지만 경찰관은 그에게 "아가리 닥치라"고 했다. 그러자 레몽은 여자 쪽으로 돌아서서 말했다. "기다려, 아가씨. 다시 보자고." 경찰관은 그만 입 다물라고 하면서, 여자는 돌아가고 레몽은 경찰서에서 부를 때까지 방에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떨 만큼 취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레몽이 설명했다. "취한 게 아닙니다, 경관님. 그저 경관님 앞에 이렇게 서 있으니 떨리는 거지요, 어쩔 수 없잖습니까." 그가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모두 돌아갔다. 마리와 나는 점심 준비를 마저 했다. 하지만 그녀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해서 거의 내가 다 먹었다. 그녀는 한 시에 갔고 나는 조금 잤다.
세 시쯤 누가 문을 두드리더니 레몽이 들어왔다. 나는 누운 채로 있었다. 그는 내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고, 나는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하려던 대로 했는데 여자가 뺨을 때려서 두들겨 팼다고 했다. 그다음은 내가 본 대로였다. 나는 이제 그 여자가 벌을 받은 것 같으니 그도 만족스러울 거라고 했다. 그도 그렇게 생각했고, 경찰이 아무리 그래 봤자 그 여자가 맞은 매가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자기는 경찰을 잘 알고 그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안다고 덧붙였다. 그러고는 경찰관이 뺨을 때렸을 때 자기가 되받아치기를 내가 기대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고 게다가 경찰은 싫다고 대답했다. 레몽은 무척 흡족한 얼굴이었다. 그는 같이 나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일어나서 머리를 빗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증인이 되어 줘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레몽 말로는 그 여자가 자기를 무시했다고만 말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증인이 되어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갔고 레몽이 브랜디를 한 잔 샀다. 그러고는 당구를 한 판 치자고 했는데 나는 아깝게 졌다. 그다음에 그는 사창가에 가자고 했지만 나는 그런 게 싫어서 싫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는 애인을 혼내 주는 데 성공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했다. 나는 그가 내게 무척 잘해 준다고 느꼈고,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멀리서 보니 살라마노 영감이 문간에 서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개가 없었다.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복도의 어둠 속을 들여다보려 하고, 앞뒤가 안 맞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작고 빨간 눈으로 다시 거리를 샅샅이 훑었다. 레몽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망할 놈, 썩을 놈"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고, 그는 계속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개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가 버렸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말을 쏟아 냈다. "늘 하던 대로 연병장에 데려갔지. 장터 천막들 주위에 사람들이 많더군. 나는 '탈출왕'을 구경하느라 멈춰 섰어. 그런데 다시 가려고 보니 그놈이 없는 거야. 물론 좀 작은 목줄을 사 줘야지 한 지는 오래됐지. 하지만 그 썩을 놈이 그렇게 가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러자 레몽이 개가 길을 잃었을 수도 있으니 돌아올 거라고 달랬다. 주인을 찾아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온 개들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런데도 영감은 더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그놈들이 데려갈 거야, 알겠나. 누가 거둬 주기라도 하면 모를까. 그럴 리가 없지, 그 딱지 때문에 다들 질색을 하니까. 경찰이 잡아갈 거야, 틀림없어." 그래서 나는 유기견 보호소에 가 보면 얼마간 돈을 내고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는 그 돈이 비싸냐고 물었다. 나는 몰랐다. 그러자 그는 화를 냈다. "그 썩을 놈 때문에 돈을 내라고. 흥! 뒈지든 말든!" 그러고는 개에게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레몽은 웃으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그를 따라 들어갔고 우리는 층계참에서 헤어졌다. 조금 뒤 영감의 발소리가 들리더니 그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그는 문턱에 잠시 서 있다가 말했다. "미안하네, 미안해." 들어오라고 했지만 그는 싫다고 했다. 그는 구두 끝만 내려다보았고, 딱지 앉은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마주 보지도 않고 물었다. "그놈들이 데려가진 않겠지, 응, 뫼르소 씨. 돌려주겠지. 안 그러면 나는 어떡하나?" 나는 보호소에서는 주인이 찾으러 올 수 있게 개를 사흘 동안 맡아 두고, 그다음에는 알아서 처리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는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잘 자게." 그는 문을 닫았고, 방 안을 서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침대가 삐걱거렸다. 그리고 벽 너머로 들려온 이상하고 작은 소리로 나는 그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 생각이 났다. 하지만 이튿날 일찍 일어나야 했다. 배가 고프지 않아서 저녁을 거르고 잠자리에 들었다.
1부 5장
레몽이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친구 하나가(그 친구에게 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알제 근처에 있는 자기 바닷가 오두막에서 일요일 하루를 같이 보내자고 나를 초대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가고 싶지만 그날은 여자 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했다. 레몽은 곧바로 그 여자도 같이 초대한다고 했다. 친구의 아내도 남자들 틈에 혼자 있지 않게 되어 무척 좋아할 거라고 했다.
나는 곧바로 전화를 끊고 싶었다. 사장이 시내에서 우리한테 전화가 걸려 오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몽은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초대 이야기는 저녁에 해도 되지만 다른 걸 알려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하루 종일 아랍인 무리에게 미행을 당했는데, 그중에 옛 애인의 오빠가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 저녁에 집에 올 때 그놈이 근처에 있으면 알려 줘." 나는 알았다고 했다.
조금 뒤 사장이 나를 불렀다. 순간 나는 전화를 줄이고 일을 더 잘하라는 소리를 하려나 싶어서 성가셨다. 그런데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는 아직 무척 막연한 계획이 하나 있는데 그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다. 그저 내 생각을 들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파리에 사무소를 하나 내서 그곳 일을 현지에서, 대기업들과 직접 처리할 생각이라며, 내가 거기 갈 마음이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러면 나는 파리에서 살 수 있고 일 년에 얼마 동안은 여행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자네는 젊으니까 그런 생활이 마음에 들 것 같은데." 나는 그렇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러자 그는 생활을 바꾸는 데 관심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사람은 결코 생활을 바꾸지 못하며, 어쨌든 어떤 생활이든 다 그게 그거고, 여기서의 내 생활도 전혀 싫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는 못마땅한 얼굴로, 나는 늘 엉뚱한 대답만 한다고, 야심이 없는데 그건 사업에서는 치명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하러 돌아갔다. 그를 언짢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 생활을 바꿀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학생일 때는 나도 그런 야심이 많았다. 하지만 공부를 그만두어야 했을 때 나는 그런 게 다 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저녁에 마리가 나를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전에 한 번 그랬던 것처럼,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지만 아마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럼 왜 나랑 결혼해?"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고 그녀가 바란다면 결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결혼하자는 건 그녀였고 나는 그러자고 한 것뿐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결혼은 중대한 일이라고 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고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녀는 다만 내가 똑같이 정이 든 다른 여자가 똑같은 제안을 했어도 받아들였을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물론이지"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가 나를 사랑하는지 모르겠다고 했고,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또 한참 말이 없다가 그녀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아마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것 같지만 언젠가는 같은 이유로 내가 싫어질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렸다. 더 할 말이 없어서 내가 잠자코 있자, 그녀는 웃으며 내 팔을 끼고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원하면 언제든 하자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사장이 한 제안 이야기를 했더니 마리는 파리에 가 보고 싶다고 했다. 한때 거기서 산 적이 있다고 했더니 그녀는 어떤 곳이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더러워. 비둘기가 있고 컴컴한 안뜰이 있지. 사람들은 살갗이 하얗고."
그러고 나서 우리는 걸었다. 큰길들을 따라 시내를 가로질렀다. 여자들이 예뻤고, 나는 마리에게 그런 게 눈에 띄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렇다고, 무슨 말인지 안다고 했다. 한동안 우리는 말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녀가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해서, 셀레스트네 식당에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그녀도 무척 그러고 싶었지만 할 일이 있다고 했다. 우리 집 근처까지 와서 나는 잘 가라고 했다.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긴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고, 그녀는 바로 그걸 나무라는 눈치였다. 그러자 쩔쩔매는 내 얼굴을 보고 그녀는 또 웃더니, 온몸을 내 쪽으로 기울여 입술을 내밀었다.
나는 셀레스트네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벌써 먹기 시작했을 때, 이상한 작은 여자가 들어와서 내 식탁에 앉아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물론 앉아도 됐다. 그녀는 몸짓이 뚝뚝 끊겼고, 사과 같은 작은 얼굴에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윗옷을 벗고 앉아서 들뜬 듯이 차림표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셀레스트를 불러, 또박또박하면서도 급한 목소리로 먹을 음식을 한꺼번에 다 주문했다. 전채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가방을 열어 네모난 작은 종이 한 장과 연필을 꺼내 미리 계산을 하더니, 조끼 주머니에서 팁까지 더한 정확한 액수를 꺼내 앞에 놓았다. 그때 전채가 나왔고 그녀는 그걸 눈 깜짝할 새에 먹어 치웠다. 다음 요리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가방에서 또 파란 연필과 그 주의 라디오 방송 순서가 실린 잡지를 꺼냈다. 그러고는 아주 정성스럽게 거의 모든 방송에 하나하나 표시를 했다. 잡지가 열두 쪽쯤 되어서 그녀는 식사하는 내내 꼼꼼하게 그 일을 계속했다. 내가 다 먹었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똑같이 열심히 표시를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일어나서, 기계처럼 똑같이 정확한 몸짓으로 윗옷을 다시 입고 나갔다. 나는 할 일이 없어서 나도 나가서 한동안 그녀를 따라가 보았다. 그녀는 보도 가장자리를 따라,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고 거침없이, 곁눈질도 뒤돌아보지도 않고 제 길을 갔다. 나는 결국 그녀를 놓치고 발길을 돌렸다.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금세 잊어버렸다.
우리 집 문간에서 살라마노 영감을 만났다. 나는 그를 안으로 들였고, 그는 개가 보호소에도 없으니 잃어버린 거라고 했다. 보호소 직원들은 차에 치였을지도 모른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경찰서에 가면 알아볼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런 일은 날마다 일어나서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나는 살라마노 영감에게 다른 개를 기르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그는 그 개에게 정이 들었다고 짚었고 그건 옳은 말이었다.
나는 침대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고 살라마노는 식탁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나를 마주 보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는 낡은 펠트 모자를 쓴 채였다. 누렇게 바랜 콧수염 밑으로 말을 토막토막 웅얼거렸다. 그가 조금 따분했지만 나는 할 일도 없었고 졸리지도 않았다. 뭐라도 말하려고 나는 그의 개에 대해 물었다. 그는 아내가 죽은 뒤에 개를 얻었다고 했다. 그는 꽤 늦게 결혼했다. 젊었을 때는 연극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군대에 있을 때 부대 희극에 출연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철도청에 들어갔는데 그걸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지금 얼마 안 되는 연금이라도 받으니까. 아내와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아내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아내가 죽자 그는 몹시 외로웠다. 그래서 작업장 동료에게 개를 하나 달라고 해서 아주 어린 그 개를 얻었다. 젖병으로 먹여 키워야 했다. 그런데 개는 사람보다 짧게 사니까 결국 둘이 함께 늙어 버렸다. "그놈이 성질이 고약했지." 살라마노가 말했다. "가끔 서로 티격태격했어. 그래도 좋은 개였네." 내가 좋은 품종이라고 했더니 살라마노는 흐뭇한 얼굴이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그가 덧붙였다. "자네는 그놈이 병들기 전 모습을 못 봤지. 그놈은 털이 제일 멋졌다네." 개가 그 피부병에 걸린 뒤로 살라마노는 저녁마다 아침마다 개에게 연고를 발라 주었다. 하지만 그의 말로는 진짜 병은 늙음이고, 늙음은 고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때 내가 하품을 하자 영감은 그만 가 보겠다고 했다. 나는 더 있어도 된다고, 개 일은 안됐다고 했다. 그는 고맙다고 했다. 엄마가 그의 개를 무척 좋아했다고 했다. 엄마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자네 가엾은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는 엄마가 죽은 뒤로 내가 무척 괴로웠겠다고 짐작해 말했고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아주 빠르게, 거북한 얼굴로, 내가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냈다고 동네 사람들이 나를 나쁘게 본다는 걸 알지만, 자기는 나를 알고 내가 엄마를 무척 사랑했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일로 사람들이 나를 나쁘게 보는 줄은 지금까지 몰랐다고, 하지만 엄마를 돌봐 줄 사람을 둘 만큼 돈이 없었으니 양로원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였다고 대답했다. "게다가," 나는 덧붙였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나한테 할 말이 없었고 혼자 따분해하셨어요." "그렇지," 그가 말했다. "양로원에 가면 적어도 친구는 생기니까." 그러고 나서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자고 싶다고 했다. 이제 그의 생활은 달라졌고, 그는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를 안 뒤로 처음으로 그가 슬그머니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의 살갗의 비늘 같은 딱지를 느꼈다. 그는 살짝 웃더니 나가기 전에 말했다. "오늘 밤엔 개들이 짖지 않으면 좋겠네. 나는 늘 그게 우리 개인 줄만 알거든."
1부 6장
일요일에 나는 잠이 잘 깨지 않아서 마리가 나를 부르고 흔들어야 했다. 일찍 수영을 하고 싶어서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속이 텅 빈 것 같았고 머리가 조금 아팠다. 담배는 쓴맛이 났다. 마리는 내가 "초상집 얼굴"을 하고 있다고 놀렸다. 그녀는 하얀 무명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풀어 내렸다. 예쁘다고 했더니 그녀는 좋아서 웃었다.
내려가다가 우리는 레몽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는 곧 내려가겠다고 대답했다. 거리에 나서자, 피곤한 데다 덧창을 열지 않고 있었던 탓에, 벌써 햇빛으로 가득 찬 한낮이 따귀처럼 나를 후려쳤다. 마리는 기뻐서 깡충거리며 날씨가 좋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기분이 나아졌고 배가 고프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말하자 마리는 우리 수영복 두 벌과 수건을 넣은 방수 천 가방을 보여 주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됐는데 레몽이 방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파란 바지에 반소매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밀짚모자를 써서 마리가 웃었고, 검은 털 아래 팔뚝이 무척 하얬다. 나는 그게 좀 역겨웠다. 그는 휘파람을 불며 내려왔고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내게 "잘 잤냐, 친구" 하고 인사하고, 마리에게는 "아가씨"라고 불렀다.
전날 우리는 경찰서에 갔고, 나는 그 여자가 레몽을 "무시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경고만 받고 풀려났다. 내 말이 맞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문 앞에서 우리는 레몽과 그 이야기를 하다가 버스를 타기로 했다. 해변이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그편이 더 빨랐다. 레몽은 우리가 일찍 가면 친구가 반가워할 거라고 했다. 막 떠나려는데 레몽이 갑자기 건너편을 보라고 손짓했다. 담배 가게 진열창에 기대선 아랍인 한 무리가 보였다. 그들은 말없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마치 우리가 돌멩이나 죽은 나무인 것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레몽은 왼쪽에서 두 번째가 그놈이라고 하면서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래도 이제 다 끝난 일이라고 덧붙였다. 마리는 무슨 일인지 잘 몰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레몽에게 앙심을 품은 아랍인들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녀는 당장 떠나자고 했다. 레몽은 허리를 펴고 웃으며 서둘러야겠다고 했다.
우리는 조금 떨어진 버스 정류장으로 갔고, 레몽이 아랍인들이 따라오지 않는다고 알려 주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우리가 막 떠나온 곳을 똑같이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버스를 탔다. 레몽은 완전히 마음이 놓인 듯 마리에게 쉴 새 없이 농담을 했다. 그가 마리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게 느껴졌지만 마리는 거의 대꾸하지 않았다. 이따금 그를 보며 웃기만 했다.
우리는 알제 교외에서 내렸다. 해변은 정류장에서 멀지 않다. 하지만 바다를 내려다보다가 해변 쪽으로 가파르게 내려가는 작은 언덕을 하나 건너야 했다. 언덕은 누르스름한 돌들과, 벌써 단단해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새하얀 아스포델 꽃으로 덮여 있었다. 마리는 방수 천 가방을 휘둘러 꽃잎을 흩뜨리며 놀았다. 우리는 초록이나 하얀 울타리를 두른 작은 별장들이 줄지어 선 사이로 걸었다. 어떤 집은 베란다째 타마리스크 나무에 파묻혀 있었고, 어떤 집은 돌밭 한가운데 휑하니 서 있었다. 언덕 끝에 닿기 전부터 벌써 잔잔한 바다가 보였고, 더 멀리에는 맑은 물에 잠긴 듯 졸고 있는 육중한 곶이 보였다. 고요한 공기를 타고 가벼운 엔진 소리가 우리한테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아주 멀리, 눈부신 바다 위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천천히 나아가는 작은 고깃배가 보였다. 마리가 바위붓꽃을 몇 송이 꺾었다. 바다 쪽으로 내려가는 비탈에서 보니 벌써 해수욕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레몽의 친구는 해변 맨 끝의 작은 나무 오두막에 살았다. 집은 바위에 등을 기대고 있었고, 앞쪽을 받치는 기둥들은 벌써 물에 잠겨 있었다. 레몽이 우리를 소개했다. 그의 친구 이름은 마송이었다. 키와 어깨가 우람한 덩치 큰 사내였고, 아내는 작고 동그랗고 상냥했는데 파리 말씨를 썼다. 그는 곧바로 편하게 있으라고 하면서, 아침에 자기가 잡은 생선을 튀겨 놓았다고 했다. 나는 집이 참 예쁘다고 했다. 그는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쉬는 날마다 여기 와서 지낸다고 알려 주었다. "아내하고 사이가 좋거든요." 그가 덧붙였다. 마침 그의 아내가 마리와 웃고 있었다. 아마 처음으로, 나는 내가 정말 결혼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송은 수영을 하고 싶어 했지만 그의 아내와 레몽은 가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 셋이 내려갔고, 마리는 곧장 물로 뛰어들었다. 마송과 나는 조금 기다렸다. 그는 말을 느릿느릿 했는데, 무슨 말을 하든 끝에 "더 말하자면" 하고 덧붙이는 버릇이 있었다. 사실은 문장의 뜻에 아무것도 보태지 않는데도 그랬다. 마리를 두고 그는 말했다. "끝내주는 아가씨네요, 더 말하자면, 매력적이에요." 그다음부터 나는 그 버릇에 신경 쓰지 않았다. 햇볕이 몸에 좋다는 걸 느끼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발밑의 모래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조금 더 참다가 결국 마송에게 말했다. "들어갈까요?" 나는 뛰어들었다. 그는 천천히 물에 들어가다가 발이 닿지 않자 몸을 던졌다. 그는 평영을 했는데 꽤 서툴러서, 나는 그를 두고 마리 쪽으로 갔다. 물은 차가웠고 헤엄치니 기분이 좋았다. 마리와 나는 멀리까지 나갔는데, 몸짓도 흐뭇함도 서로 잘 맞는 것 같았다.
먼바다에서 우리는 물 위에 반듯이 누웠다. 하늘을 향한 내 얼굴 위로 햇볕이 입안으로 흘러드는 마지막 물기를 걷어 냈다. 마송이 해변으로 돌아가 햇볕 아래 눕는 게 보였다. 멀리서 보니 그는 엄청나게 커 보였다. 마리가 같이 헤엄치자고 했다. 나는 그녀 뒤로 가서 허리를 잡았고, 그녀는 팔로 저어 나아가고 나는 발장구를 쳐서 도왔다. 물을 치는 작은 소리가 아침 내내 우리를 따라오다가 내가 지쳤다. 그래서 나는 마리를 두고 숨을 고르며 일정하게 헤엄쳐 돌아왔다. 해변에서 나는 마송 옆에 엎드려 모래에 얼굴을 묻었다. 그에게 "좋네요"라고 했더니 그도 그렇다고 했다. 조금 뒤 마리가 왔다. 나는 돌아누워 그녀가 걸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온몸이 짠물로 미끈거렸고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있었다. 그녀가 내 옆에 몸을 붙이고 누웠고, 그녀의 몸과 햇볕의 두 가지 열기에 나는 조금 졸았다.
마리가 나를 흔들더니 마송이 오두막으로 올라갔다고, 점심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배가 고파서 나는 곧바로 일어났지만, 마리는 아침부터 내가 자기한테 입을 맞추지 않았다고 했다. 그건 사실이었고, 그러고 싶기도 했다. "물로 와."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뛰어가 첫 잔물결 속에 몸을 던졌다. 몇 번 헤엄을 치자 그녀가 내게 몸을 붙였다. 그녀의 다리가 내 다리를 감는 게 느껴졌고 나는 그녀를 원했다.
우리가 돌아왔을 때 마송은 벌써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무척 배가 고프다고 하자 그는 곧바로 아내에게 내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빵이 맛있었고, 나는 내 몫의 생선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그다음에는 고기와 감자튀김이 나왔다. 우리는 모두 말없이 먹었다. 마송은 포도주를 자주 마셨고 내 잔에도 쉴 새 없이 따라 주었다. 커피를 마실 때쯤 나는 머리가 조금 무거웠고 담배를 많이 피웠다. 마송과 레몽과 나는 8월 한 달을 돈을 모아 함께 해변에서 보내자는 이야기를 했다. 마리가 갑자기 말했다. "지금 몇 신지 알아요? 열한 시 반이에요." 다들 놀랐지만 마송은 우리가 아주 일찍 먹은 거라고,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점심시간이란 배고픈 시간이니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말에 마리가 웃었다. 조금 과하게 마신 것 같았다. 그러자 마송이 나에게 함께 해변을 걷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점심 먹고 나면 늘 낮잠을 자요. 나는 그게 싫어요. 걸어야 하거든요. 그게 건강에 더 좋다고 늘 아내한테 말하죠. 하지만 뭐, 그건 아내 마음이니까." 마리는 남아서 마송 부인의 설거지를 돕겠다고 했다. 작은 파리 여자는 그러려면 남자들을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셋은 아래로 내려갔다.
해는 모래 위로 거의 수직으로 내리꽂혔고, 바다 위에 반사된 빛은 견딜 수가 없었다. 해변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언덕 가장자리에 늘어서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오두막들에서 접시와 수저 소리가 들렸다. 땅에서 올라오는 돌의 열기 속에서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처음에 레몽과 마송은 내가 모르는 일과 사람들 이야기를 했다. 둘이 오래전부터 알았고 한때는 함께 살기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물가로 가서 바다를 따라 걸었다. 이따금 다른 것보다 길게 밀려온 잔물결이 우리 천 신발을 적셨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모자도 없는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볕에 반쯤 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레몽이 마송에게 뭐라고 했는데 나는 잘 듣지 못했다. 그런데 동시에 해변 저 끝, 우리와 아주 먼 곳에서 파란 작업복을 입은 아랍인 둘이 우리 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레몽을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그놈이야." 우리는 계속 걸었다. 마송은 저놈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따라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우리가 해변 가방을 들고 버스를 타는 걸 저들이 봤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랍인들은 천천히 걸어왔는데 벌써 훨씬 가까워져 있었다. 우리는 걸음걸이를 바꾸지 않았지만 레몽이 말했다. "싸움이 붙으면 마송, 너는 두 번째 놈을 맡아. 나는 내 놈을 맡을게. 뫼르소, 너는 한 놈이 더 오면 그놈을 맡아." 나는 "그래"라고 했고 마송은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달아오른 모래가 이제는 빨갛게 보였다. 우리는 같은 걸음으로 아랍인들 쪽으로 나아갔다. 거리가 일정하게 줄어들었다. 서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이르자 아랍인들이 멈춰 섰다. 마송과 나는 걸음을 늦췄다. 레몽은 곧장 자기 상대에게 걸어갔다. 레몽이 그에게 뭐라고 했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자가 박치기를 하려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레몽이 먼저 한 방 치고 곧바로 마송을 불렀다. 마송은 자기가 맡은 놈에게 가서 온 체중을 실어 두 번 쳤다. 그 아랍인은 얼굴을 바닥에 박은 채 물속에 납작하게 엎어졌고, 머리 둘레의 수면 위로 거품이 터지는 채로 몇 초 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동안 레몽도 주먹을 날렸고 상대는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레몽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놈이 어떻게 되는지 봐." 나는 그에게 소리쳤다. "조심해, 칼 있어!" 하지만 벌써 레몽은 팔이 찢기고 입이 베여 있었다.
마송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하지만 다른 아랍인이 일어나서 칼을 든 놈 뒤에 섰다. 우리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칼로 우리를 겨눈 채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거리가 충분히 벌어졌다 싶자 그들은 아주 빨리 달아났고, 우리는 햇볕 아래 못 박힌 듯 서 있었고 레몽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팔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마송은 곧바로 일요일마다 언덕에 와서 지내는 의사가 있다고 했다. 레몽은 당장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말할 때마다 상처에서 나온 피가 입안에서 거품을 냈다. 우리는 그를 부축해 최대한 빨리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거기서 레몽은 상처가 깊지 않으니 의사에게 걸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마송과 함께 갔고 나는 남아서 여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마송 부인은 울었고 마리는 몹시 창백했다. 나는 그들에게 설명하는 게 귀찮았다. 결국 나는 입을 다물고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한 시 반쯤 레몽이 마송과 함께 돌아왔다. 팔에 붕대를 감고 입가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의사는 별것 아니라고 했다는데 레몽은 무척 어두운 얼굴이었다. 마송이 웃겨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레몽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가 해변으로 내려가겠다고 해서 나는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그는 바람을 쐬고 싶다고 대답했다. 마송과 나는 같이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화를 내며 우리에게 욕을 했다. 마송은 비위를 건드리지 말자고 했다. 나는 그래도 그를 따라갔다.
우리는 오랫동안 해변을 걸었다. 이제 해는 짓누르는 듯했다. 햇빛은 모래와 바다 위에서 조각조각 부서졌다. 레몽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마 잘못 본 것이었으리라. 해변 맨 끝에서 우리는 마침내 커다란 바위 뒤로 모래 속을 흐르는 작은 샘에 이르렀다. 거기서 그 두 아랍인을 찾아냈다. 그들은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누워 있었다. 아주 평온하고 거의 흡족해 보이기까지 했다. 우리가 왔는데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레몽을 찌른 놈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다른 하나는 작은 갈대 피리를 불면서, 곁눈으로 우리를 보며 그 악기에서 나오는 세 음을 쉬지 않고 되풀이했다.
그러는 내내 햇볕과 그 침묵, 그리고 샘물이 흐르는 작은 소리와 세 음만 있었다. 그러다 레몽이 권총을 넣어 둔 뒷주머니에 손을 댔지만 상대는 꼼짝하지 않았고 둘은 계속 서로를 노려보았다. 피리를 부는 놈의 발가락이 쫙 벌어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레몽은 상대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내게 물었다. "쏴 버릴까?" 안 된다고 하면 그가 혼자 흥분해서 틀림없이 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만 말했다. "저놈은 아직 너한테 아무 말도 안 했어. 이렇게 쏘면 보기 흉해." 침묵과 열기 한가운데서 물소리와 피리 소리가 또 들렸다. 그러자 레몽이 말했다. "그럼 욕을 해 주고, 저놈이 대꾸하면 쏴 버리지." 나는 대답했다. "그래. 하지만 저놈이 칼을 꺼내지 않으면 쏘면 안 돼." 레몽이 조금씩 흥분하기 시작했다. 다른 하나는 계속 피리를 불었고, 둘 다 레몽의 몸짓 하나하나를 지켜보았다. "아니야." 나는 레몽에게 말했다. "사내 대 사내로 붙어. 권총은 나한테 줘. 다른 놈이 끼어들거나 저놈이 칼을 꺼내면 내가 쏠게."
레몽이 내게 권총을 건넬 때 햇빛이 그 위로 미끄러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든 게 우리 둘레로 닫혀 버린 것처럼 여전히 꼼짝하지 않았다. 우리는 눈을 내리깔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았고, 바다와 모래와 햇볕 사이에서, 피리와 물의 이중의 침묵 속에서 모든 게 여기서 멈춰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쏠 수도 있고 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랍인들이 뒷걸음질로 바위 뒤로 스르르 사라졌다. 그래서 레몽과 나는 온 길을 되돌아갔다. 레몽은 좀 나아진 것 같았고 돌아가는 버스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를 오두막까지 데려다주었고, 그가 나무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첫 계단 앞에 서 있었다. 머리가 햇볕으로 쩌렁쩌렁 울렸고, 나무 계단을 한 층 올라가 또 여자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게 막막했다. 하지만 너무 더워서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빗줄기 아래 가만히 서 있는 것도 괴로웠다. 여기 있으나 떠나나 마찬가지였다. 잠시 뒤 나는 해변 쪽으로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똑같이 붉게 터지는 빛이었다. 모래 위에서 바다는 잔물결마다 빠르고 숨 막히는 숨을 몰아쉬며 헐떡였다. 나는 바위 쪽으로 천천히 걸었고, 햇볕 아래 이마가 부풀어 오르는 걸 느꼈다. 그 모든 열기가 나를 짓누르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았다. 뜨겁고 커다란 입김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바지 주머니 속에서 주먹을 쥐고, 햇볕과 햇볕이 퍼붓는 그 흐릿한 취기를 이겨 내려고 온몸을 곤두세웠다. 모래와 하얗게 바랜 조개껍데기와 유리 조각에서 빛의 칼날이 튀어 오를 때마다 내 턱이 굳어졌다. 나는 오랫동안 걸었다.
멀리 바위의 작고 어두운 덩어리가 보였다. 햇빛과 바다의 물보라가 그 둘레에 눈부신 테를 두르고 있었다. 나는 바위 뒤의 시원한 샘을 생각했다. 그 물이 졸졸거리는 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고, 햇볕과 수고와 여자들의 울음에서 달아나고 싶었고, 마침내 그늘과 그 쉼을 다시 찾고 싶었다. 그런데 더 가까이 가 보니 레몽을 찌른 놈이 돌아와 있었다.
그는 혼자였다. 그는 두 손으로 목덜미를 받치고 반듯이 누워 있었는데, 이마는 바위 그늘에 있고 몸은 온통 햇볕 속에 있었다. 그의 작업복에서 김이 올라왔다. 나는 조금 놀랐다. 나로서는 다 끝난 일이었고, 아무 생각 없이 거기 온 것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몸을 조금 일으키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나는 당연히 윗옷 속의 레몽의 권총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뒤로 몸을 눕혔지만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는 않았다. 나는 그에게서 꽤 떨어져 있었다. 10미터쯤이었다. 반쯤 감은 그의 눈꺼풀 사이로 이따금 눈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대개는 불타는 공기 속에서 그의 모습이 내 눈앞에서 일렁거렸다. 파도 소리는 한낮보다 더 느릿하고 더 잔잔했다. 여기까지 이어진 같은 모래 위에 같은 해가, 같은 빛이 있었다. 벌써 두 시간째 하루는 더 나아가지 않았다. 두 시간째 하루는 끓어오르는 쇳물의 바다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수평선으로 작은 증기선이 지나갔고, 나는 시야 가장자리로 그 검은 점을 어렴풋이 알아보았다. 아랍인에게서 줄곧 눈을 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로 돌아서기만 하면 끝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햇볕으로 떨고 있는 해변 전체가 내 등 뒤로 밀려들고 있었다. 나는 샘 쪽으로 몇 걸음 다가갔다. 아랍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아직 꽤 멀리 있었다.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 때문인지 그는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기다렸다. 햇볕의 화끈거림이 뺨으로 번졌고, 눈썹에 땀방울이 모이는 게 느껴졌다. 엄마를 묻던 날과 같은 햇볕이었고, 그때처럼 특히 이마가 아팠으며 이마의 핏줄이 모두 한꺼번에 살갗 밑에서 뛰었다. 더는 견딜 수 없는 그 화끈거림 때문에 나는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한 걸음 옮긴다고 햇볕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 걸음, 딱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도 않고 칼을 뽑아 햇볕 속에서 내게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로 튀었고, 그것은 기다랗게 번쩍이는 칼날이 되어 내 이마를 찔렀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고여 있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로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꺼운 막으로 눈을 덮었다. 눈물과 소금의 장막 뒤에서 내 눈은 멀어 버렸다. 이마 위를 두드리는 햇볕의 심벌즈 소리와, 여전히 내 앞에서 칼에서 뿜어져 나오는 번쩍이는 칼날만이 흐릿하게 느껴졌다. 그 불타는 칼날이 내 속눈썹을 갉아 먹고 아픈 눈을 후벼 팠다. 모든 것이 흔들린 것은 그때였다. 바다가 무겁고 뜨거운 입김을 실어 왔다. 하늘이 온 넓이로 활짝 열리며 불을 쏟아붓는 것 같았다. 내 온몸이 팽팽해졌고 나는 권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나는 매끈한 총자루의 배를 느꼈다. 그리고 거기서, 메마르면서도 귀를 먹먹하게 하는 소리 속에서 모든 게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햇볕을 털어 냈다. 내가 한낮의 균형을, 내가 행복했던 해변의 특별한 침묵을 깨뜨렸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래서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에 네 발을 더 쏘았다. 총알은 흔적도 없이 박혀 들어갔다. 그것은 내가 불행의 문을 짧게 네 번 두드린 것과 같았다.
2부 1장
체포되고 나서 곧바로 나는 여러 번 신문을 받았다. 하지만 신원을 확인하는 신문이라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처음 경찰서에서는 아무도 내 사건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여드레 뒤, 사건을 맡은 판사는 그와 반대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처음에 그는 내 이름과 주소, 직업, 생년월일과 태어난 곳만 물었다. 그러고는 변호사를 정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정하지 않았다고 하고, 변호사가 꼭 있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왜요?" 그가 말했다. 나는 내 사건이 아주 단순하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하나의 의견이지요. 하지만 법이 있습니다. 당신이 변호사를 정하지 않으면 우리가 국선 변호인을 붙여 줄 겁니다." 나는 법원이 그런 자잘한 일까지 맡아 준다니 아주 편리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그는 맞장구를 치며 법이 잘 만들어져 있다고 결론지었다.
처음에 나는 그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커튼을 둘러친 방에서 나를 맞았는데, 책상 위에는 전등이 딱 하나 있어서 나를 앉힌 안락의자만 비추고 자기는 어둠 속에 있었다. 나는 그런 장면을 이미 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서 이 모든 게 장난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마친 뒤에 그를 보니, 이목구비가 섬세하고 푸른 눈이 움푹 들어갔으며, 키가 크고, 긴 회색 콧수염에 거의 백발인 숱 많은 머리를 한 사람이었다. 그는 무척 합리적이고, 이따금 신경질적으로 입꼬리가 씰룩거리긴 했지만 대체로 호감이 가는 사람 같았다. 나가면서 나는 하마터면 그에게 손을 내밀 뻔했는데,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게 제때 생각났다.
이튿날 변호사 하나가 감옥으로 나를 만나러 왔다. 작고 통통하고 꽤 젊었으며, 머리를 착 붙게 빗어 넘기고 있었다. 날이 더운데도(나는 셔츠 바람이었다) 그는 짙은 양복에 빳빳한 깃을 세우고, 굵은 검은 줄과 흰 줄이 번갈아 있는 이상한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는 옆구리에 끼고 온 서류 가방을 내 침대 위에 내려놓고 자기소개를 하더니 내 사건 서류를 검토했다고 했다. 내 사건은 까다롭지만, 내가 자기를 믿어 주기만 하면 이길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했고 그가 말했다.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그는 침대에 앉아서, 수사하는 쪽에서 내 사생활을 알아보았다고 설명했다. 어머니가 얼마 전 양로원에서 죽었다는 걸 알아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랑고에 가서 조사를 했다. 수사관들은 엄마 장례식 날 내가 "무감각한 모습을 보였다"는 걸 알아냈다. "아시겠지만," 변호사가 말했다. "이런 걸 여쭙기가 좀 거북합니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내가 대답할 거리를 찾지 못하면 검사 쪽에 큰 무기가 될 겁니다." 그는 내가 도와주기를 바랐다. 그는 그날 내가 슬펐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무척 놀랐고, 내가 그런 걸 물어야 하는 처지였다면 몹시 거북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 버릇을 조금 잃어버려서 그에게 뭐라고 알려 주기가 어렵다고 대답했다. 물론 나는 엄마를 좋아했지만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기를 조금은 바란 적이 있다. 여기서 변호사가 내 말을 끊었는데 몹시 흥분한 것 같았다. 그는 그런 말은 법정에서도, 판사 앞에서도 하지 않겠다고 내게 약속하게 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원래 몸의 요구가 감정을 흐트러뜨리곤 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엄마를 묻던 날 나는 몹시 피곤했고 졸렸다.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엄마가 죽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변호사는 흡족한 얼굴이 아니었다. 그가 말했다.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그날 내가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눌렀다고 말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안 됩니다.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요." 그는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마치 내가 조금 역겨운 것 같았다. 그는 거의 심술궂게, 어쨌든 양로원 원장과 직원들이 증인으로 불려 나올 거라며 "그게 당신한테 아주 고약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일은 내 사건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짚었지만, 그는 내가 법원과 엮여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게 훤히 보인다고만 대답했다.
그는 화난 얼굴로 가 버렸다. 나는 그를 붙잡고 싶었다. 변호를 더 잘 받으려고가 아니라, 말하자면 그냥 자연스럽게, 그가 나를 좋게 봐 주었으면 한다고 설명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게 보였다.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나한테 조금 화가 나 있었다. 나는 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고, 정말로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고 그에게 분명히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건 결국 별 쓸모가 없었고, 나는 귀찮아서 그만두었다.
얼마 뒤 나는 다시 그 판사 앞에 불려 갔다. 오후 두 시였는데, 이번에는 그의 방이 얇은 망사 커튼으로 겨우 누그러진 햇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척 더웠다. 그는 나를 앉히더니 아주 정중하게, 내 변호사가 "사정이 생겨" 오지 못했다고 알려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변호사가 곁에 있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권리가 있다고 했다. 나는 혼자서 대답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책상 위의 버튼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젊은 서기 하나가 들어와 거의 내 등 뒤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둘 다 안락의자에 깊숙이 앉았다. 신문이 시작되었다. 그는 먼저 사람들이 나를 말수 적고 속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내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나는 할 말이 별로 없어서요. 그래서 잠자코 있는 겁니다." 그는 처음처럼 웃더니, 그게 가장 좋은 이유라고 하면서 덧붙였다. "어차피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입니다." 그는 입을 다물고 나를 바라보더니, 꽤 갑작스럽게 몸을 일으키며 아주 빠르게 말했다. "내가 관심 있는 건 당신입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라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당신이 한 행동에는," 그가 덧붙였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데가 있어요. 당신이 그걸 이해하도록 도와줄 거라고 믿습니다." 나는 모든 게 아주 단순하다고 했다. 그는 그날 하루를 다시 이야기해 보라고 재촉했다. 나는 이미 이야기했던 것을 다시 짚었다. 레몽, 해변, 해수욕, 싸움, 다시 해변, 작은 샘, 햇볕, 그리고 다섯 발의 총소리.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그는 "좋아요, 좋아요" 했다. 쓰러진 몸에 이르자 그는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똑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되풀이하는 게 지겨웠고, 평생 이렇게 말을 많이 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잠시 말이 없더니 그는 일어서서, 나를 돕고 싶다고, 내게 관심이 있다고, 하느님의 도움으로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전에 몇 가지 더 묻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아무런 연결도 없이 불쑥 내가 엄마를 사랑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네, 다른 사람들처럼요"라고 했는데, 그때까지 일정하게 타자를 치던 서기가 자판을 잘못 누른 모양이었다. 허둥대더니 앞으로 되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판사는 여전히 앞뒤 없이, 다섯 발을 잇따라 쏘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생각해 보고, 처음에 한 발을 쏘고 몇 초 뒤에 나머지 네 발을 쏘았다고 분명히 말했다. "첫 발과 둘째 발 사이에 왜 기다렸습니까?"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나는 또 한 번 붉은 해변을 보았고 이마에 타는 햇볕을 느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어진 침묵 내내 판사는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앉아서 머리를 쥐어뜯더니, 책상에 팔꿈치를 괴고 이상한 얼굴로 내 쪽으로 조금 몸을 숙였다. "왜, 왜 땅에 쓰러진 몸에 총을 쐈습니까?" 이번에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판사는 두 손으로 이마를 쓸고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왜요? 말해 줘야 합니다. 왜요?" 나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갑자기 그가 일어서더니 성큼성큼 방 한쪽 끝으로 걸어가 서류함 서랍을 열었다. 그는 거기서 은 십자가를 꺼내 휘두르며 내 쪽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완전히 달라진, 거의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이분을 압니까?" 나는 말했다. "네, 물론이죠." 그러자 그는 아주 빠르고 열정적으로, 자기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느님이 용서하지 못할 만큼 죄가 큰 사람은 없다는 게 자기 신념이라고, 하지만 그러려면 사람이 뉘우쳐서 영혼이 텅 비어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된 아이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온몸을 책상 위로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십자가를 거의 내 머리 위에서 흔들었다. 사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잘 따라가지 못했다. 우선 더웠고, 그의 방에는 굵은 파리들이 있어서 내 얼굴에 앉았고, 또 그가 조금 무서웠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게 우스운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어쨌든 죄인은 나였으니까. 그래도 그는 말을 이어 갔다. 대충 알아들은 바로는, 그가 보기에 내 진술에서 모호한 점은 딱 하나, 두 번째 총을 쏘기 전에 기다렸다는 것뿐이었다. 나머지는 다 괜찮은데 그것만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고집부릴 것 없다고, 그 마지막 점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가 내 말을 끊고 몸을 한껏 곧추세우더니 마지막으로 나를 타이르며, 하느님을 믿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는 분개해서 자리에 앉았다. 그럴 리가 없다고, 모든 사람은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느님의 얼굴을 외면하는 사람조차 믿는다고 했다. 그게 그의 신념이었고, 만약 그걸 의심하게 된다면 그의 삶은 더는 의미가 없을 거라고 했다. "당신은," 그가 소리쳤다. "내 삶이 의미가 없기를 바랍니까?" 내가 보기에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고 나는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벌써 책상 너머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내 눈앞에 들이밀며 앞뒤 없이 외치고 있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야. 나는 이분께 네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비는 거야. 이분이 너를 위해 고통받았다는 걸 어떻게 안 믿을 수가 있어?" 그가 내게 반말을 한다는 걸 나는 똑똑히 알아챘지만, 이제 질렸다. 더위는 점점 심해졌다. 반쯤 흘려듣는 사람을 떼어 내고 싶을 때 늘 그러듯이 나는 수긍하는 척했다. 놀랍게도 그는 의기양양해졌다. "거봐, 거봐." 그가 말했다. "너도 믿는 거지? 이분께 너를 맡기겠지?" 당연히 나는 또 한 번 아니라고 했다. 그는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몹시 지쳐 보였다.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고, 그동안 대화를 줄곧 따라 치던 타자기가 마지막 문장들을 마저 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조금 슬픈 눈으로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가 중얼거렸다. "당신처럼 굳어 버린 영혼은 본 적이 없습니다. 내 앞에 왔던 범죄자들은 이 고통의 형상 앞에서 늘 울었어요." 나는 그건 바로 그들이 범죄자였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려고 했다. 그런데 나도 그들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생각이었다. 그때 판사가 일어섰다. 신문이 끝났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는 다만 똑같이 조금 지친 얼굴로 내가 한 일을 후회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생각해 보고, 진짜 후회라기보다는 일종의 귀찮음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날은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그 판사를 자주 만났다. 다만 매번 변호사가 함께 있었다. 판사는 내가 전에 한 진술 가운데 몇 가지를 분명히 하게 하는 데 그쳤다. 아니면 변호사와 혐의를 두고 따졌다. 하지만 사실 그럴 때 그들은 나에게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쨌든 조금씩 신문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판사는 더는 나에게 관심이 없고, 말하자면 내 사건을 정리해 둔 것 같았다. 그는 더는 하느님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나는 첫날처럼 흥분한 그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의 만남은 더 다정해졌다. 몇 가지 묻고, 변호사와 이야기를 조금 나누면 신문이 끝났다. 판사가 쓴 말 그대로 내 사건은 "절차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가끔 이야기가 일반적인 쪽으로 흘러가면 나도 거기 끼워 주었다. 나는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 시간에는 아무도 나를 모질게 대하지 않았다. 모든 게 너무나 자연스럽고, 너무나 잘 짜여 있고, 너무나 담담하게 흘러가서, 나는 "한 식구가 된 것 같은" 우스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열한 달 동안 이어진 이 수사가 끝났을 때, 판사가 나를 자기 방 문까지 배웅하면서 어깨를 두드리고 다정한 얼굴로 "오늘은 이만하지요, 적그리스도 씨" 하고 말하던 드문 순간들 말고 다른 일로 내가 기뻐한 적이 있었던가 싶어 거의 놀랄 정도였다. 그러고 나면 나는 다시 헌병들 손에 넘겨졌다.
2부 2장
내가 이야기하기를 좋아한 적이 없는 것들이 있다. 감옥에 들어가고 며칠이 지나자 나는 내 삶의 이 부분도 이야기하기 싫어하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
나중에는 그런 꺼림칙함도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사실 처음 며칠 동안 나는 진짜로 감옥에 있는 게 아니었다.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막연히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게 시작된 건 마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면회를 온 뒤부터였다. 그녀의 편지를 받은 날부터(그녀는 내 아내가 아니라서 더는 면회를 허락받지 못한다고 했다), 그날부터 나는 이 감방이 내 집이고 내 삶은 여기서 멈춘다는 걸 느꼈다. 체포된 날 나는 먼저 이미 여러 명이 갇혀 있는 방에 들어갔는데, 대부분 아랍인이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웃었다. 그러더니 무슨 짓을 했느냐고 물었다. 아랍인을 죽였다고 하자 그들은 조용해졌다. 하지만 조금 뒤 저녁이 되었다. 그들은 내가 깔고 잘 돗자리를 어떻게 펴야 하는지 알려 주었다. 한쪽 끝을 말면 베개로 쓸 수 있었다. 밤새 빈대가 내 얼굴 위를 기어 다녔다. 며칠 뒤 나는 독방으로 옮겨져 나무 침상에서 잤다. 변기통 하나와 쇠 세숫대야 하나가 있었다. 감옥은 도시 맨 꼭대기에 있어서 작은 창문으로 바다가 보였다. 어느 날 내가 쇠창살에 매달려 얼굴을 빛 쪽으로 내밀고 있는데, 간수가 들어와 면회가 왔다고 했다. 마리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녀였다.
면회실로 가려고 나는 긴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지나고, 마지막으로 또 다른 복도를 따라갔다. 커다란 창으로 빛이 드는 아주 넓은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길이 방향으로 가로지른 커다란 철창 두 개 때문에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두 철창 사이에는 8미터에서 10미터쯤 되는 공간이 있어서 면회 온 사람들과 죄수들을 떼어 놓고 있었다. 맞은편에 줄무늬 원피스를 입고 얼굴이 그을린 마리가 보였다. 내 쪽에는 죄수가 열 명쯤 있었는데 대부분 아랍인이었다. 마리는 아랍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면회 온 여자 두 사람 사이에 서 있었다. 한 사람은 검은 옷을 입고 입술을 꽉 다문 작은 할머니였고, 다른 한 사람은 모자를 쓰지 않은 뚱뚱한 여자였는데 손짓을 크게 하며 무척 큰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철창 사이가 멀어서 면회 온 사람들과 죄수들은 아주 큰 소리로 말해야 했다. 내가 들어가자, 방의 크고 휑한 벽에 부딪혀 되울리는 목소리들과 하늘에서 유리창으로 쏟아져 방 안으로 튀는 날것의 빛 때문에 어지러웠다. 내 감방은 더 조용하고 더 어두웠다. 적응하는 데 몇 초가 걸렸다. 그래도 결국 한낮의 빛 속에 도드라진 얼굴 하나하나가 또렷이 보였다. 두 철창 사이 통로 끝에 간수 하나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아랍인 죄수들과 그 가족들은 대부분 서로 마주 보고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이렇게 시끄러운데도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서로 알아들었다. 더 낮은 데서 올라오는 그들의 웅얼거림은 그들 머리 위에서 엇갈리는 대화들의 밑바탕에 깔린 낮은 반주 같았다. 그 모든 걸 나는 마리 쪽으로 걸어가면서 재빨리 알아보았다. 벌써 철창에 바짝 붙어 선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내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무척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말해 주지는 못했다.
"어때?" 그녀가 아주 큰 소리로 말했다. "보다시피." "잘 지내? 필요한 건 다 있어?" "응, 다 있어."
우리는 입을 다물었고 마리는 계속 웃고 있었다. 뚱뚱한 여자가 내 옆 사람에게 고함을 치고 있었다. 아마 남편인 것 같았는데, 눈빛이 솔직한 키 큰 금발 사내였다. 이미 하던 이야기를 이어 가는 중이었다.
"잔이 그걸 안 맡겠대!" 그녀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그래, 그래." 남자가 말했다. "당신 나오면 다시 데려갈 거라고 했는데도 안 맡겠대!"
마리는 마리대로 레몽이 안부를 전한다고 소리쳤고 나는 "고마워"라고 했다. 그런데 내 목소리는 옆 사람이 "그건 잘 지내?" 하고 묻는 소리에 묻혀 버렸다. 그의 아내는 "그렇게 잘 지낸 적이 없어" 하며 웃었다. 내 왼쪽 옆 사람은 손이 가느다란 앳된 청년이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니 그는 작은 할머니와 마주 보고 있었고, 둘은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더 오래 지켜볼 겨를이 없었다. 마리가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소리쳤기 때문이다. 나는 "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원피스 위로 그녀의 어깨를 꽉 쥐고 싶었다. 그 얇은 천이 몹시 그리웠고, 그것 말고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지 나는 잘 몰랐다. 하지만 마리가 말하려던 것도 아마 바로 그거였을 것이다. 그녀는 계속 웃고 있었으니까. 이제 내 눈에는 그녀의 반짝이는 이와 눈가의 잔주름만 보였다. 그녀가 또 소리쳤다. "너 나오면 우리 결혼하자!" 나는 "그럴까?" 하고 대답했지만, 그건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한 소리였다. 그러자 그녀는 아주 빠르게, 여전히 아주 큰 소리로, 그렇다고, 나는 무죄로 풀려날 거고 우리는 또 수영을 하러 갈 거라고 했다. 그런데 다른 여자가 자기 쪽에서 고함을 지르며 접수처에 바구니를 맡겨 두었다고 했다. 그녀는 바구니에 넣은 걸 하나하나 늘어놓았다. 다 비싼 거니까 꼭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옆 사람과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발밑에서는 아랍인들의 웅얼거림이 계속되었다. 밖에서는 햇빛이 커다란 창에 부딪히며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속이 조금 메슥거려서 가고 싶었다. 소음 때문에 아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리가 곁에 있는 걸 조금 더 누리고 싶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마리는 자기 일 이야기를 했고 쉬지 않고 웃었다. 웅얼거림과 고함과 대화가 뒤엉켰다. 조용한 섬은 딱 하나, 내 곁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그 앳된 청년과 할머니뿐이었다. 조금씩 아랍인들이 끌려 나갔다. 첫 사람이 나가자마자 거의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작은 할머니가 창살 쪽으로 다가갔고, 그와 동시에 간수가 그녀의 아들에게 손짓했다. 아들이 말했다. "잘 가요, 엄마." 할머니는 창살 두 개 사이로 손을 내밀어 천천히, 오래도록 작게 손을 흔들었다.
할머니가 나가자 한 남자가 모자를 손에 들고 들어와 그 자리에 섰다. 죄수 하나가 들어왔고, 둘은 신이 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목소리는 낮췄다. 방이 다시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내 오른쪽 옆 사람을 데리러 왔고, 그의 아내는 이제 소리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채지 못한 듯 목소리를 낮추지도 않고 말했다. "몸조심하고 조심해." 그다음이 내 차례였다. 마리가 입을 맞추는 시늉을 했다. 나는 사라지기 전에 뒤돌아보았다. 그녀는 얼굴을 철창에 짓누른 채 꼼짝 않고, 찢어질 듯 굳어 버린 똑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녀가 편지를 보낸 건 그로부터 얼마 뒤였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하기 싫어하는 것들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다. 어쨌든 아무것도 부풀려서는 안 되고,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수월했다. 그래도 갇힌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아직 자유로운 사람의 생각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해변에 가서 바다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발바닥 밑으로 밀려드는 첫 물결 소리, 물속으로 들어가는 몸, 거기서 얻는 해방감을 떠올리다 보면, 갑자기 내 감방의 벽이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는지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몇 달이었다. 그다음부터는 죄수의 생각만 했다. 나는 날마다 안뜰을 걷는 산책 시간이나 변호사의 면회를 기다렸다. 나머지 시간은 아주 잘 보냈다. 그때 나는 자주 생각했다. 만약 나를 말라 죽은 나무줄기 속에서 살게 하고 머리 위 하늘의 꽃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아무 할 일도 없게 했더라도, 나는 조금씩 거기 익숙해졌을 거라고. 나는 여기서 변호사의 이상한 넥타이를 기다리듯이, 그리고 다른 세상에서 마리의 몸을 끌어안으려고 토요일까지 참고 기다렸듯이, 새들이 지나가거나 구름이 서로 만나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말라 죽은 나무 속에 있는 게 아니었다. 나보다 불행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은 결국 무엇에든 익숙해진다는 건 엄마의 생각이었고, 엄마는 그 말을 자주 되풀이했다.
게다가 평소에 나는 그렇게 멀리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처음 몇 달은 힘들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해야 했던 애씀이 그 몇 달을 넘기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를테면 나는 여자가 몹시 그리워서 괴로웠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젊었으니까. 딱히 마리를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어떤 여자를, 여자들을, 내가 알았던 모든 여자들을, 내가 그들을 사랑했던 모든 순간들을 너무 많이 생각해서, 내 감방은 온갖 얼굴들로 가득 찼고 내 욕망들로 북적였다. 어떤 면에서 그건 나를 흔들어 놓았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시간을 죽여 주었다. 나는 식사 시간마다 주방 일꾼을 데리고 오는 간수장의 호감을 사게 되었다. 여자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그였다. 다른 죄수들이 제일 먼저 불평하는 게 그거라고 했다. 나도 그들과 같다고, 이런 대우는 부당하다고 했다. "그런데요," 그가 말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당신들을 감옥에 넣는 거예요." "뭐라고요, 그것 때문에요?" "그럼요, 자유라는 게 바로 그거예요. 당신들한테서 자유를 빼앗는 거죠." 나는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맞장구를 쳤다. "그렇군요."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게 없으면 무슨 벌이겠어요?" "그래요, 당신은 뭘 좀 아는군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요. 하지만 결국 그 사람들도 자기 손으로 해결하죠." 그러고 나서 간수장은 가 버렸다.
담배도 있었다. 감옥에 들어갈 때 그들은 내 허리띠와 구두끈, 넥타이, 그리고 주머니에 든 모든 것, 특히 담배를 가져갔다. 감방에 들어가서 나는 담배를 돌려 달라고 했다. 하지만 금지되어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 며칠은 무척 힘들었다. 어쩌면 그게 나를 가장 무너뜨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침상 널빤지에서 뜯어낸 나뭇조각을 빨았다. 하루 종일 메스꺼움이 가시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그걸 왜 빼앗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야 그것도 벌의 일부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때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데 익숙해져서, 그 벌은 더는 내게 벌이 아니었다.
이런 괴로움만 빼면 나는 그리 불행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오로지 시간을 죽이는 것이었다. 기억하는 법을 익히고 나서부터 나는 전혀 따분하지 않게 되었다. 가끔 나는 내 방을 떠올리기 시작해서, 상상 속에서 한쪽 구석에서 출발해 가는 길에 있는 모든 것을 속으로 하나하나 세면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금방 끝났다. 하지만 다시 시작할 때마다 조금씩 길어졌다. 가구 하나하나가 기억났고, 가구마다 그 위에 놓인 물건 하나하나가, 물건마다 그 세세한 부분들이, 그 세세한 부분마다 박아 넣은 장식이며 금 간 자리며 이 빠진 가장자리며 그 빛깔과 결까지 기억났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목록을 짜는 실마리를 놓치지 않고 빠짐없이 세려고 애썼다. 그래서 몇 주가 지나자 나는 내 방에 있는 것을 세는 것만으로도 몇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모르고 지나쳤거나 잊어버린 것들을 더 많이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다. 그때 나는 단 하루만 산 사람도 감옥에서 백 년을 거뜬히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따분하지 않을 만큼의 기억은 가지고 있을 테니까. 어떤 의미에서 그건 이점이었다.
잠도 있었다. 처음에는 밤에 잠을 설쳤고 낮에는 아예 못 잤다. 조금씩 밤잠이 나아졌고 낮에도 잘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몇 달 동안은 하루에 열여섯 시간에서 열여덟 시간을 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여섯 시간이 남는데, 그 시간은 식사와 용변과 내 기억들과 체코 사람 이야기로 죽였다.
사실 나는 짚 매트리스와 침상 널빤지 사이에서 오래된 신문 조각 하나를 찾아냈었다. 천에 거의 들러붙어 있었고 누렇게 바래 비칠 만큼 얇았다. 앞부분이 떨어져 나간 사건 기사였는데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일인 것 같았다. 한 남자가 돈을 벌려고 체코의 한 마을을 떠났다. 스물다섯 해 뒤 그는 부자가 되어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의 어머니는 고향 마을에서 누이와 함께 여관을 하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을 놀래 주려고 아내와 아이를 다른 여관에 두고 어머니에게 갔는데, 그가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장난삼아 방을 하나 잡을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기 돈을 보여 주었다. 밤에 어머니와 누이는 돈을 훔치려고 그를 망치로 때려죽이고 시체를 강에 던졌다. 아침에 아내가 찾아와, 영문도 모른 채 그 손님이 누구였는지 밝혔다. 어머니는 목을 맸다. 누이는 우물에 몸을 던졌다. 나는 이 이야기를 수천 번은 읽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이야기였다. 어쨌든 나는 그 손님이 조금은 그런 일을 당할 만했고, 절대 장난을 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잠자는 시간과 기억과 사건 기사 읽기와 빛과 어둠이 번갈아 드는 가운데 시간이 흘렀다. 감옥에 있으면 결국 시간 감각을 잃는다는 걸 읽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길면서도 짧을 수 있는지 나는 몰랐다. 살아 내기에는 분명 길지만, 너무 늘어져서 결국 날들이 서로에게 넘쳐흐를 정도였다. 날들은 거기서 이름을 잃었다. 어제나 내일이라는 말만이 나에게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간수가 내가 여기 온 지 다섯 달이 되었다고 했을 때, 나는 그 말을 믿었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다. 나에게는 끊임없이 같은 하루가 내 감방으로 밀려들었고 나는 같은 일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날 간수가 나간 뒤 나는 양철 식기에 내 얼굴을 비춰 보았다. 웃어 보려고 하는데도 내 모습은 진지한 채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식기를 앞에서 흔들어 보았다. 웃었는데도 모습은 똑같이 엄하고 슬픈 얼굴이었다. 하루가 저물고 있었고, 내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시간, 이름 없는 시간이었다. 감옥의 모든 층에서 저녁의 소리들이 침묵의 행렬을 이루며 올라오는 시간. 나는 작은 창으로 다가가 마지막 빛 속에서 내 모습을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모습은 여전히 진지했는데, 그때는 나도 진지했으니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동시에,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내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그게 벌써 오래전부터 내 귓가에 울리던 목소리라는 걸 알아보았고, 그동안 내내 내가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엄마 장례식 날 그 간호사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 빠져나갈 길은 없었고, 감옥의 저녁이 어떤지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다.
2부 3장
돌이켜 보면 여름은 금세 다음 여름으로 바뀌었다. 첫 더위가 올라오면 나에게 무언가 새로운 일이 닥치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내 사건은 형사 재판의 마지막 회기에 잡혀 있었고, 그 회기는 6월과 함께 끝날 예정이었다. 재판은 바깥에 햇볕이 한가득 쏟아지는 날 열렸다. 변호사는 재판이 이삼 일을 넘기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다. "게다가," 그는 덧붙였었다. "법원도 서두를 겁니다. 이번 회기에서 당신 사건이 제일 중요한 건 아니거든요. 곧바로 뒤에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 있어요."
아침 일곱 시 반에 사람들이 나를 데리러 왔고, 호송차가 나를 법원으로 싣고 갔다. 헌병 둘이 나를 그늘 냄새가 나는 작은 방으로 들여보냈다. 우리는 문 옆에 앉아 기다렸다. 문 너머로 말소리, 부르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 온갖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서, 동네 잔치에서 음악회가 끝나고 춤을 추려고 방을 치우는 장면이 떠올랐다. 헌병들은 재판부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고, 한 사람이 담배를 권했지만 나는 사양했다. 조금 뒤 그가 "떨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재판을 구경하는 게 흥미로웠다. 살면서 그럴 기회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렇긴 한데," 다른 헌병이 말했다. "결국엔 지치게 돼요."
얼마 뒤 방 안에 작은 벨이 울렸다. 그러자 그들이 내 수갑을 풀었다. 그들은 문을 열고 나를 피고인석으로 들여보냈다. 법정은 터질 듯이 꽉 차 있었다. 블라인드를 내렸는데도 군데군데 햇빛이 스며들었고 공기는 벌써 숨이 막혔다. 창문은 닫아 둔 채였다. 내가 앉자 헌병들이 양옆에 섰다. 그때 내 앞에 한 줄로 늘어선 얼굴들이 보였다.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배심원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 어떻게 달랐는지는 말할 수 없다. 느낌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전차 좌석 앞에 서 있고, 이름 모를 승객들이 모두 새로 탄 사람의 우스운 데를 찾아내려고 엿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서 그들이 찾는 건 우스운 데가 아니라 죄였으니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건 나도 잘 안다. 그래도 별 차이는 없었고, 어쨌든 내게 떠오른 생각은 그랬다.
닫힌 법정에 가득한 그 많은 사람들 때문에 나는 조금 어지럽기도 했다. 나는 다시 법정을 둘러보았지만 얼굴 하나 알아볼 수 없었다.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려고 몰려들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던 것 같다. 평소에 사람들은 나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모든 소동이 나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 애를 써야 했다. 나는 헌병에게 말했다. "사람이 많네요!" 그는 신문 때문이라고 대답하며, 배심원석 아래 탁자 근처에 모여 있는 무리를 가리켰다. 그가 말했다. "저기 있네요." 내가 "누가요?" 하고 물었더니 그가 되풀이했다. "신문이요." 그는 기자 하나를 알고 있었는데, 그 기자가 그를 보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벌써 나이가 지긋하고 호감 가는 사람이었는데, 얼굴이 조금 찡그린 듯했다. 그는 헌병의 손을 무척 반갑게 잡았다. 그때 나는 모두가 서로 만나서 부르고 떠드는 게, 같은 부류의 사람들끼리 다시 만나 반가워하는 클럽 같다는 걸 알아챘다. 내가 여기 괜히 끼어든 사람, 불청객 같다는 묘한 느낌이 드는 까닭도 알 것 같았다. 그런데 기자가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그는 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바란다고 했다. 내가 고맙다고 하자 그가 덧붙였다. "사실 우리가 당신 사건을 좀 부풀렸어요. 여름은 신문에 비수기거든요. 그런데 쓸 만한 게 당신 이야기하고 아버지 죽인 사건밖에 없었어요." 그러고는 방금 떠나온 무리 가운데, 살찐 족제비처럼 생기고 검은 테를 두른 커다란 안경을 쓴 작은 남자를 가리켰다. 파리 신문사에서 보낸 특파원이라고 했다. "사실 당신 때문에 온 건 아니에요. 아버지 죽인 사건 재판을 보도하러 왔는데, 당신 사건도 같이 전보로 보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거죠." 이번에도 나는 하마터면 고맙다고 할 뻔했다. 하지만 그건 우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정하게 손을 살짝 흔들고 우리를 떠났다. 우리는 몇 분 더 기다렸다.
변호사가 법복을 입고 다른 변호사들에게 둘러싸여 도착했다. 그는 기자들 쪽으로 가서 악수를 했다. 그들은 농담을 하고 웃으며 아주 편안해 보였는데, 법정에 벨이 울리자 그쳤다.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변호사가 내게 와서 악수를 하더니, 질문을 받으면 짧게 대답하고, 먼저 나서지 말고, 나머지는 자기한테 맡기라고 일렀다.
왼쪽에서 의자를 뒤로 빼는 소리가 들렸고, 코안경을 쓰고 빨간 법복을 입은 키 크고 마른 남자가 법복을 조심스럽게 여미며 앉는 게 보였다. 검사였다. 법정 경위가 재판부가 들어온다고 알렸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선풍기 두 대가 웅웅 돌기 시작했다. 판사 셋이, 둘은 검은 옷, 하나는 빨간 옷을 입고 서류를 들고 들어와 법정을 내려다보는 높은 단 쪽으로 아주 빨리 걸어갔다. 빨간 법복을 입은 사람이 가운데 의자에 앉더니, 법모를 앞에 내려놓고 작고 벗어진 머리를 손수건으로 닦고는 개정을 선언했다.
기자들은 벌써 펜을 쥐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이 무심하고 조금 비꼬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중 훨씬 젊은 한 사람은 회색 플란넬 양복에 파란 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펜을 앞에 내려놓고 나를 보고 있었다. 조금 비대칭인 그의 얼굴에서 아주 맑은 두 눈만 보였는데, 그 눈은 뭐라고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그 때문에, 그리고 이곳의 관례를 몰랐기 때문에, 나는 그다음에 벌어진 일들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배심원을 추첨으로 뽑고, 재판장이 변호사와 검사와 배심원단에게 질문을 하고(그때마다 배심원들의 머리가 모두 한꺼번에 재판부 쪽으로 돌아갔다), 공소장을 빠르게 읽는데 거기서 나는 아는 땅 이름과 사람 이름을 알아들었고, 다시 변호사에게 질문을 하는 것 같은 일들이었다.
그런데 재판장이 증인들을 부르겠다고 했다. 법정 경위가 읽는 이름들이 내 주의를 끌었다. 조금 전까지 뭉뚱그려 보이던 방청객 사이에서 양로원 원장과 경비원, 토마 페레즈 영감, 레몽, 마송, 살라마노, 마리가 하나씩 일어나더니 옆문으로 사라졌다. 마리는 불안한 얼굴로 내게 작게 손짓했다. 그들을 왜 더 일찍 보지 못했을까 놀라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이름이 불린 셀레스트가 일어섰다. 그 옆에 식당의 그 작은 여자가 윗옷을 입고 똑 부러지고 단호한 얼굴로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재판장이 말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진짜 심리가 시작된다고 하면서, 방청객에게 조용히 하라고 당부할 필요는 없을 거라고 했다. 그의 말로는, 자기는 이 사건을 객관적으로 살피고 심리를 공정하게 이끌기 위해 여기 있다는 것이었다. 배심원단이 내리는 판결은 정의의 정신으로 내려질 것이며, 어떤 경우든 조금이라도 소란이 일면 법정에서 모두 내보내겠다고 했다.
더위가 올라갔고, 법정 안에서 사람들이 신문으로 부채질하는 게 보였다. 종이가 구겨지는 작은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재판장이 손짓하자 법정 경위가 밀짚을 엮은 부채 세 개를 가져왔고, 판사 셋은 곧바로 그걸 부쳤다.
곧바로 내 신문이 시작되었다. 재판장은 차분하게,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조금 다정한 기색까지 띠고 질문했다. 또 내 신원을 밝히게 해서 짜증이 났지만, 한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알고 재판하면 큰일이니 사실 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재판장은 내가 한 일을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세 문장마다 나를 보며 "그렇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변호사가 일러 준 대로 "네, 재판장님" 하고 대답했다. 재판장이 아주 꼼꼼하게 이야기해서 오래 걸렸다. 그러는 내내 기자들은 받아 적었다. 그 가운데 가장 젊은 기자와 작은 자동인형 같은 여자의 눈길이 느껴졌다. 전차 좌석 전체가 재판장 쪽으로 돌아앉아 있었다. 재판장은 기침을 하고 서류를 넘기더니 부채질을 하며 내 쪽으로 돌아앉았다.
그는 이제 내 사건과 상관없어 보이지만 어쩌면 아주 밀접할지도 모르는 문제들을 다뤄야겠다고 했다. 나는 그가 또 엄마 이야기를 하려나 보다 했고, 동시에 그게 얼마나 지겨운지 느꼈다. 그는 왜 엄마를 양로원에 보냈느냐고 물었다. 나는 엄마를 돌보고 보살필 사람을 둘 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 일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힘들었느냐고 물었고, 나는 엄마도 나도 서로에게, 아니 누구에게도 더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으며, 둘 다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재판장은 이 점을 더 따지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검사에게 달리 물을 게 없느냐고 물었다.
검사는 나에게 등을 반쯤 돌린 채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재판장이 허락한다면 내가 아랍인을 죽일 생각으로 혼자 샘 쪽으로 돌아갔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그럼 왜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왜 하필 그곳으로 돌아갔습니까?" 나는 우연이었다고 했다. 그러자 검사가 고약한 말투로 적었다. "지금은 이것으로 됐습니다." 그다음은 적어도 나에게는 좀 어수선했다. 하지만 몇 번 수군수군 의논하더니 재판장이 휴정을 선언하고 증인 신문은 오후로 미룬다고 했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람들이 나를 데리고 나가 호송차에 태워 감옥으로 싣고 갔고, 나는 거기서 밥을 먹었다. 아주 잠깐, 내가 피곤하다는 걸 알아챌 만큼의 시간이 지나자 또 나를 데리러 왔다. 모든 게 다시 시작되었고, 나는 같은 법정에서 같은 얼굴들 앞에 앉아 있었다. 다만 더위가 훨씬 심해져 있었고, 마치 기적처럼 배심원 한 사람 한 사람, 검사, 내 변호사, 기자 몇 사람이 모두 밀짚부채를 들고 있었다. 젊은 기자와 작은 여자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부채질을 하지 않았고, 여전히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얼굴을 덮은 땀을 닦았고, 양로원 원장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이곳과 나 자신을 조금 다시 의식했다. 사람들이 그에게 엄마가 나에 대해 불평을 했느냐고 물었고, 그는 그랬다고, 하지만 가족을 두고 불평하는 건 입소자들의 버릇 같은 것이라고 했다. 재판장은 엄마가 양로원에 보낸 걸 두고 나를 원망했는지 분명히 말하라고 했고, 원장은 또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 다른 질문에 그는 장례식 날 내가 너무 차분해서 놀랐다고 대답했다. 차분하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원장은 자기 구두 끝을 내려다보더니, 내가 엄마를 보려 하지 않았고, 한 번도 울지 않았으며, 장례가 끝나자마자 무덤 앞에서 묵념도 하지 않고 떠났다고 했다. 놀란 게 하나 더 있었다. 장의사 직원 하나가 원장에게, 내가 엄마 나이도 모르더라고 했다는 것이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재판장이 원장에게 지금 말한 사람이 바로 나냐고 물었다. 원장이 질문을 알아듣지 못하자 재판장은 "법이 그렇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재판장이 검사에게 증인에게 물을 게 없느냐고 묻자, 검사는 "아, 없습니다. 이걸로 충분합니다" 하고 외쳤다. 어찌나 우렁차게, 어찌나 의기양양한 눈길을 내 쪽으로 던지며 외쳤는지, 나는 여러 해 만에 처음으로 바보처럼 울고 싶어졌다. 이 사람들 모두가 나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느꼈기 때문이다.
배심원단과 내 변호사에게 물을 게 있느냐고 물은 뒤, 재판장은 경비원의 말을 들었다. 그에게도 다른 모든 증인과 똑같은 절차가 되풀이되었다. 들어오면서 경비원은 나를 한 번 보더니 눈길을 돌렸다. 그는 묻는 말에 대답했다. 내가 엄마를 보려 하지 않았고, 담배를 피웠고, 잠을 잤고, 밀크커피를 마셨다고 했다. 그러자 무언가가 법정 전체를 들썩이게 하는 게 느껴졌고, 나는 처음으로 내가 죄인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은 경비원에게 밀크커피 이야기와 담배 이야기를 한 번 더 하게 했다. 검사가 비꼬는 빛을 눈에 띠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내 변호사가 경비원에게, 당신도 나와 같이 담배를 피우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검사가 그 질문에 거세게 반발했다. "여기서 죄인이 누굽니까? 검찰 측 증인에게 흙탕물을 끼얹어서, 그래도 결정적인 증언을 깎아내리려는 이런 수법은 대체 뭡니까!" 그래도 재판장은 경비원에게 질문에 대답하라고 했다. 노인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잘못한 건 압니다. 하지만 이분이 권하는 담배를 차마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나에게 덧붙일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없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다만 증인 말이 맞습니다. 제가 담배를 권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자 경비원이 조금 놀란 얼굴로, 고마워하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밀크커피는 자기가 권한 거라고 말했다. 내 변호사는 요란하게 의기양양해하며 배심원들이 이 점을 판단해 줄 거라고 했다. 그런데 검사가 우리 머리 위로 벼락같이 외쳤다. "그렇습니다, 배심원 여러분께서 판단하실 겁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실 겁니다. 남은 커피를 권할 수 있지만, 아들이라면 자기를 낳아 준 사람의 시신 앞에서 그걸 거절했어야 한다고요." 경비원은 자리로 돌아갔다.
토마 페레즈의 차례가 되자, 법정 경위가 그를 증인석까지 부축해야 했다. 페레즈는 자기는 주로 내 어머니를 알았고, 나는 장례식 날 한 번 보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날 내가 무엇을 했느냐고 묻자 그는 대답했다. "아시겠지만 저 자신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요. 괴로워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한테는 아주 큰 슬픔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저는 기절까지 했어요. 그러니 이분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검사는 적어도 내가 우는 건 보았느냐고 물었다. 페레즈는 못 봤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검사가 말했다. "배심원 여러분께서 판단하실 겁니다." 그런데 내 변호사가 화를 냈다. 그는 내가 보기에 지나친 말투로 페레즈에게 "내가 울지 않는 걸 보았느냐"고 물었다. 페레즈는 "아니요"라고 했다. 방청객이 웃었다. 그러자 변호사가 한쪽 소매를 걷어붙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것이 이 재판의 모습입니다. 모든 게 사실이고, 아무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검사는 굳은 얼굴로 연필로 서류 제목을 콕콕 찍고 있었다.
오 분 동안 휴정하는 사이 변호사는 모든 게 아주 잘 되어 가고 있다고 했고, 이어서 변호인 측이 부른 셀레스트의 말을 들었다. 변호인 측이란 나였다. 셀레스트는 이따금 내 쪽을 흘끔거리며 두 손으로 파나마모자를 굴리고 있었다. 그는 일요일에 가끔 나와 경마장에 갈 때 입던 새 양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깃은 달지 못했는지 셔츠를 여미는 구리 단추 하나만 달려 있었다. 사람들이 내가 그의 손님이었느냐고 묻자 그는 "네, 하지만 친구이기도 했습니다"라고 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내가 사내라고 대답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는 그게 무슨 뜻인지는 다들 안다고 했다. 내가 속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느냐고 묻자, 그는 다만 내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만 인정했다. 검사는 내가 밥값을 꼬박꼬박 냈느냐고 물었다. 셀레스트는 웃으며 말했다. "그건 우리끼리 일입니다." 사람들은 또 내 범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두 손을 증인석 난간에 올려놓았는데, 무언가를 준비해 온 게 보였다. 그가 말했다. "제가 보기엔 불행한 일입니다. 불행이 뭔지는 다들 아시잖아요. 불행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됩니다. 그러니까! 제가 보기엔 불행입니다." 그가 말을 이어 가려는데 재판장이 됐다고, 고맙다고 했다. 셀레스트는 조금 어리둥절해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짧게 하라고 했다. 그는 또 불행이었다고 되풀이했다. 그러자 재판장이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그런 불행을 재판하려고 여기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셀레스트는 자기가 아는 것과 선의가 바닥났다는 듯이 내 쪽으로 돌아섰다. 그의 눈이 반짝이고 입술이 떨리는 것 같았다. 그는 자기가 또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내게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몸짓도 하지 않았지만, 살면서 처음으로 한 남자를 끌어안고 싶었다. 재판장이 다시 증인석에서 내려가라고 일렀다. 셀레스트는 법정 안에 가서 앉았다. 남은 재판 내내 그는 거기서 몸을 조금 앞으로 숙이고 무릎에 팔꿈치를 괸 채 파나마모자를 두 손에 쥐고 오가는 말을 모두 듣고 있었다. 마리가 들어왔다. 모자를 썼는데 그래도 예뻤다. 하지만 나는 머리를 풀어 내린 그녀가 더 좋았다. 내 자리에서도 그녀 가슴의 가벼운 무게가 짐작되었고, 늘 조금 도톰한 그녀의 아랫입술이 눈에 익었다. 그녀는 몹시 긴장한 것 같았다. 곧바로 사람들이 그녀에게 나를 언제부터 알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우리 회사에서 일하던 때를 댔다. 재판장은 그녀가 나와 어떤 사이인지 알고 싶어 했다. 그녀는 내 여자 친구라고 했다. 다른 질문에는 나와 결혼하기로 한 게 사실이라고 대답했다. 서류를 넘기던 검사가 불쑥 우리 관계가 언제부터였느냐고 물었다. 그녀가 날짜를 댔다. 검사는 무심한 얼굴로 그게 엄마가 죽은 이튿날인 것 같다고 짚었다. 그러고는 조금 비꼬는 말투로, 곤란한 처지를 더 캐고 싶지는 않고 마리가 망설이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여기서 그의 말투가 더 딱딱해졌다) 자기 의무상 체면 따위는 넘어서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마리에게 나와 만난 그날을 간추려 말해 보라고 했다. 마리는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검사가 다그치자, 우리가 수영하고 영화를 보러 가고 우리 집으로 돌아온 이야기를 했다. 검사는 마리가 수사 때 한 진술을 듣고 그날 극장 상영표를 확인해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어떤 영화를 했는지는 마리가 직접 말할 거라고 덧붙였다. 정말로 그녀는 거의 핏기 없는 목소리로 페르낭델 영화였다고 말했다. 그녀가 말을 마치자 법정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러자 검사가 일어나 아주 엄숙하게, 내가 듣기에 정말로 목이 멘 목소리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배심원 여러분, 어머니가 죽은 다음 날 이 사람은 해수욕을 하고, 떳떳하지 못한 관계를 시작하고, 희극 영화를 보며 웃으러 갔습니다. 더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는 여전히 조용한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마리가 울음을 터뜨리며, 그런 게 아니라고, 다른 게 있다고, 사람들이 자기한테 생각과 반대되는 말을 억지로 하게 했다고, 자기는 나를 잘 알고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장의 손짓에 법정 경위가 그녀를 데리고 나갔고 재판은 계속되었다.
그다음에는 사람들이 마송의 말을 거의 듣지도 않았다. 그는 내가 정직한 사람이고 "더 말하자면, 착한 사람"이라고 했다. 살라마노가 내가 자기 개에게 잘해 주었다고 말할 때도, 엄마와 나에 대한 질문에 내가 엄마에게 더는 할 말이 없어서 양로원에 보낸 거라고 대답할 때도 사람들은 거의 듣지 않았다. "이해하셔야 합니다." 살라마노가 말했다. "이해하셔야 해요." 하지만 아무도 이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나갔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 증인인 레몽의 차례가 되었다. 레몽은 나에게 작게 손짓하고는 곧바로 내가 무죄라고 했다. 하지만 재판장은 판단을 묻는 게 아니라 사실을 묻는 거라고 했다. 그는 레몽에게 질문을 기다렸다가 대답하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피해자와 어떤 관계였는지 분명히 하라고 했다. 레몽은 이 틈에, 피해자가 미워한 건 자기였다고, 자기가 그의 누이를 때린 뒤로 그랬다고 말했다. 그래도 재판장은 피해자가 나를 미워할 이유는 없었느냐고 물었다. 레몽은 내가 해변에 있었던 건 우연이었다고 했다. 그러자 검사가 이 비극의 발단이 된 편지를 어떻게 내가 쓰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레몽은 우연이었다고 대답했다. 검사는 이 사건에서 우연이 벌써 저지른 잘못이 많다고 받아쳤다. 그는 레몽이 애인의 뺨을 때렸을 때 내가 끼어들지 않은 것도 우연이었는지, 내가 경찰서에서 증인이 되어 준 것도 우연이었는지, 그 증언이 순전히 비위를 맞춰 준 것으로 드러난 것도 또 우연이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레몽에게 무엇으로 먹고사느냐고 물었고, 레몽이 "창고 관리인"이라고 대답하자 검사는 배심원들에게 이 증인이 여자들을 등쳐 먹는 포주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공범이자 친구라고 했다. 이 사건은 가장 저열한 부류의 추악한 사건이며, 게다가 상대가 도덕적 괴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무겁다고 했다. 레몽은 변명하려 했고 내 변호사는 항의했지만, 사람들은 검사가 말을 마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검사가 말했다. "덧붙일 게 별로 없습니다. 이 사람이 당신 친구였습니까?" 그가 레몽에게 물었다. "네." 레몽이 말했다. "제 친구였습니다." 그러자 검사가 나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고, 나는 레몽을 쳐다보았는데 그는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대답했다. "네." 그러자 검사는 배심원단 쪽으로 돌아서서 말했다. "어머니가 죽은 다음 날 더없이 부끄러운 방탕에 빠졌던 바로 그 사람이, 하찮은 이유로,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치정 문제를 해결하려고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앉았다. 그런데 참다못한 내 변호사가 두 팔을 번쩍 들며 외치는 바람에 소매가 흘러내려 풀 먹인 셔츠의 주름이 드러났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머니를 묻은 죄로 기소된 겁니까, 사람을 죽인 죄로 기소된 겁니까?" 방청객이 웃었다. 하지만 검사는 다시 몸을 곧추세우고 법복을 여미더니, 이 두 가지 사실 사이에 깊고 비통하고 본질적인 관계가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하려면 존경하는 변호인만큼 순진해야 할 거라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가 힘주어 외쳤다. "나는 이 사람이 범죄자의 마음으로 어머니를 묻었다고 고발하는 겁니다." 이 말은 방청객에게 상당한 효과를 낸 것 같았다. 변호사는 어깨를 으쓱하고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하지만 그 자신도 흔들린 것 같았고, 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재판이 끝났다. 법원을 나와 호송차에 오르면서 나는 아주 잠깐 여름 저녁의 냄새와 빛깔을 알아보았다. 달리는 감옥의 어둠 속에서, 마치 피로의 밑바닥에서 끌어올리듯, 내가 사랑하던 도시와 이따금 흡족함을 느끼던 어느 시간의 익숙한 소리들을 하나씩 다시 찾아냈다. 벌써 느슨해진 공기 속의 신문팔이들 외침, 광장의 마지막 새들, 샌드위치 장수들의 부르는 소리, 도시의 높은 모퉁이를 도는 전차의 삐걱거림, 그리고 밤이 항구 위로 기울기 전 하늘의 그 웅성거림. 그 모든 것이 감옥에 들어오기 전에 내가 잘 알던 길을,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을 다시 그려 주었다. 그렇다, 아주 오래전 내가 흡족함을 느끼던 시간이었다. 그때 나를 기다리던 건 언제나 꿈도 없는 얕은 잠이었다. 그런데도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다. 내일을 기다리며 내가 돌아간 곳은 내 감방이었으니까. 마치 여름 하늘에 그어진 익숙한 길들이 죄 없는 잠으로도, 감옥으로도 똑같이 이어질 수 있다는 듯이.
2부 4장
피고인석에 앉아서도 남이 내 이야기를 하는 걸 듣는 건 언제나 흥미롭다. 검사와 변호사가 변론하는 동안, 사람들은 나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고, 어쩌면 내 범죄보다 나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두 변론이 그렇게 달랐던가? 변호사는 두 팔을 들어 올리며 죄는 인정하되 사정을 봐 달라고 했다. 검사는 두 손을 내밀며 죄를 고발하되 사정은 봐주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가 어렴풋이 거슬렸다. 걱정스러운 와중에도 나는 가끔 끼어들고 싶었는데, 그럴 때마다 변호사는 "가만히 계세요, 그게 당신 사건에 좋습니다" 하고 말했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나를 빼놓고 이 사건을 다루는 것 같았다. 모든 게 내가 끼어들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 내 운명이 내 의견도 묻지 않고 정해지고 있었다. 가끔 나는 모두의 말을 끊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래도 피고인은 대체 누굽니까? 피고인이라는 건 중요한 겁니다. 그리고 나도 할 말이 있어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재미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이를테면 검사의 논고에는 금세 지쳤다. 전체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 몸짓들, 긴 말 몇 대목만이 내 눈길을 끌거나 관심을 일깨웠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의 생각의 핵심은 내가 범죄를 미리 계획했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걸 증명하려 애썼다. 그 자신이 말했듯이. "여러분, 저는 그걸 증명하겠습니다. 그것도 두 번 증명하겠습니다. 먼저 사실이라는 눈부신 빛 아래서, 그다음에는 이 범죄자의 영혼의 심리가 제게 비춰 줄 어두운 빛 속에서." 그는 엄마의 죽음부터 사실들을 간추렸다. 그는 나의 무감각을, 내가 엄마 나이도 몰랐다는 것을, 다음 날 여자와 해수욕을 한 것을, 영화와 페르낭델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리와 함께 집에 돌아간 것을 짚었다. 그때 나는 한참 뒤에야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가 "그의 정부"라고 했는데, 나에게 그녀는 마리였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는 레몽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나는 그가 사건을 보는 방식이 꽤 명쾌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은 그럴듯했다. 나는 레몽과 짜고 그의 애인을 꾀어내 "품행이 의심스러운" 남자에게 험한 꼴을 당하게 하려고 편지를 썼다. 나는 해변에서 레몽의 적들을 도발했다. 레몽이 다쳤다. 나는 그에게 권총을 달라고 했다. 나는 그걸 쓰려고 혼자 돌아갔다. 나는 계획한 대로 아랍인을 쏘아 쓰러뜨렸다. 나는 기다렸다. 그리고 "일이 확실히 끝났는지 확인하려고" 네 발을 더, 침착하게, 확실하게, 말하자면 곰곰이 생각한 끝에 쏘았다.
"자, 여러분." 검사가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똑똑히 알면서 사람을 죽이기까지 이른 사건의 흐름을 여러분 앞에 되짚었습니다. 이 점을 강조합니다." 그가 말했다. "이건 평범한 살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황을 봐서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생각 없이 저지른 짓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여러분, 이 사람은 똑똑합니다. 여러분도 들으셨지요? 이 사람은 대답할 줄 압니다. 말의 무게를 압니다. 이 사람이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행동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듣고 있었고, 사람들이 나를 똑똑하다고 판단한다는 걸 들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의 장점이 어떻게 죄인에게 결정적인 혐의가 될 수 있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게 내 눈길을 끌었고, 나는 그다음부터 검사의 말을 듣지 않다가 그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이 사람이 후회를 한 번이라도 드러낸 적이 있습니까? 한 번도 없습니다, 여러분. 수사 내내 이 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끔찍한 범행에 흔들리는 기색을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내 쪽으로 돌아서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계속 나를 몰아붙였는데, 사실 나는 왜 그러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의 말이 옳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한 일을 별로 후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구는 게 놀라웠다. 나는 그에게 다정하게, 거의 애정을 담아서, 나는 무언가를 정말로 후회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설명해 보고 싶었다. 나는 언제나 앞으로 일어날 일에, 오늘이나 내일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물론 사람들이 나를 몰아넣은 이 처지에서 나는 누구에게도 그런 말투로 말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다정함을 보이거나 선의를 가질 권리가 없었다. 그리고 검사가 내 영혼에 대해 말하기 시작해서 나는 다시 들어 보려고 애썼다.
그는 내 영혼을 들여다보았는데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배심원 여러분. 사실 나에게는 영혼이라는 게 아예 없으며, 인간적인 것은 아무것도, 사람의 마음을 지켜 주는 도덕 원칙은 단 하나도 나에게 닿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그가 덧붙였다. "그걸 이 사람 탓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얻을 수 없는 것을 갖지 못했다고 나무랄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 법정에서는 관용이라는 소극적인 미덕이, 쉽지는 않지만 더 높은 미덕인 정의로 바뀌어야 합니다. 더구나 이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마음의 공허가 사회를 삼킬 수도 있는 구렁텅이가 될 때는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엄마를 대하는 내 태도를 이야기했다. 그는 심리 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내 범죄를 이야기할 때보다 훨씬 길게 말해서, 결국 나는 그날 아침의 더위밖에 느끼지 못했다. 적어도 검사가 말을 멈추고, 잠시 침묵한 뒤 아주 낮고 감정이 깊이 밴 목소리로 다시 말할 때까지는 그랬다. "여러분, 바로 이 법정이 내일 가장 끔찍한 범행을 재판합니다. 아버지를 죽인 사건입니다." 그의 말로는 그 잔혹한 짓 앞에서는 상상조차 뒷걸음질 친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정의가 흔들림 없이 벌을 내리기를 감히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을 하기가 두렵지 않은데, 그 범죄가 자기에게 불러일으키는 공포도 나의 무감각 앞에서 느끼는 공포에는 거의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역시 그의 말로는, 도덕적으로 어머니를 죽인 사람은 자기를 낳아 준 사람에게 살인의 손을 뻗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간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앞의 사람은 뒤의 사람이 하는 짓을 준비하고, 말하자면 그걸 예고하고, 정당화한다는 것이었다. "여러분," 그가 목소리를 높이며 덧붙였다. "제가 이렇게 말해도 너무 대담한 생각이라고 여기지 않으시리라 확신합니다. 이 자리에 앉은 사람은 내일 이 법정이 재판할 살인에도 죄가 있습니다. 그에 맞게 벌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검사는 땀으로 번들거리는 얼굴을 닦았다. 마침내 그는 자기 의무가 고통스럽지만 굳건히 해내겠다고 했다. 그는 내가 가장 기본적인 규칙도 무시하는 사회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며, 가장 기초적인 반응조차 모르는 인간의 마음에 호소할 수도 없다고 했다. "나는 여러분께 이 사람의 목을 요구합니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요구합니다. 이미 긴 세월을 일하면서 사형을 구형한 적이 있지만, 오늘만큼 이 괴로운 의무가 거역할 수 없는 신성한 명령에 대한 자각으로, 그리고 괴물 같은 것밖에 읽히지 않는 한 인간의 얼굴 앞에서 느끼는 공포로 보상받고, 균형 잡히고, 환히 비춰진다고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검사가 다시 앉자 꽤 긴 침묵이 흘렀다. 나는 더위와 놀라움으로 어질어질했다. 재판장이 기침을 조금 하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덧붙일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일어섰고,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조금은 되는대로, 아랍인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그건 주장일 뿐이며, 지금까지 내 변론의 요지를 잘 모르겠으니 변호사의 말을 듣기 전에 내 행동의 동기를 분명히 말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말이 조금 뒤엉킨 채, 내가 우습게 보인다는 걸 알면서, 햇볕 때문이었다고 빠르게 말했다. 법정에서 웃음이 터졌다. 변호사는 어깨를 으쓱했고, 곧바로 그에게 발언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늦었고 자기는 몇 시간은 걸릴 테니 오후로 미뤄 달라고 했다. 재판부는 그러자고 했다.
오후에도 커다란 선풍기들은 여전히 법정의 탁한 공기를 휘젓고 있었고, 배심원들의 알록달록한 작은 부채들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변호사의 변론은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한순간 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내가 사람을 죽인 건 사실입니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나를 이야기할 때마다 "나"라고 하면서 그런 식으로 계속했다. 나는 몹시 놀랐다. 나는 헌병 쪽으로 몸을 숙여 왜 저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조용히 하라고 하더니 잠시 뒤 덧붙였다. "변호사들은 다 저래요." 나는 그게 나를 또 이 사건에서 떼어 놓고, 나를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어떤 의미에서는 나를 대신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이 법정에서 아주 멀리 가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변호사가 우스워 보였다. 그는 도발당한 것이라는 주장을 아주 빠르게 하고 넘어가더니, 그도 내 영혼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는 검사보다 재주가 훨씬 모자라 보였다. "나도," 그가 말했다. "이 영혼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존경하는 검사님과는 달리 나는 무언가를 찾아냈고, 펼친 책을 읽듯 그 영혼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거기서 내가 정직한 사람이고, 꾸준하고 지칠 줄 모르는 일꾼이고, 일하는 회사에 충실하고, 모두에게 사랑받고, 남의 불행을 딱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걸 읽었다고 했다. 그가 보기에 나는 할 수 있는 한 오래 어머니를 부양한 모범적인 아들이었다. 결국 나는 내 형편으로는 해 드릴 수 없는 편안함을 양로원이 늙은 어머니에게 해 드리리라 기대했다는 것이다. "여러분, 놀랍게도," 그가 덧붙였다. "사람들이 그 양로원을 두고 이렇게 떠들썩했습니다. 결국 이런 시설이 얼마나 쓸모 있고 훌륭한지 증거를 대야 한다면, 나라에서 직접 돈을 대 주고 있다는 걸 말해야 할 겁니다." 다만 그는 장례식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나는 그게 그의 변론에서 빠졌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긴 문장들 때문에, 사람들이 내 영혼 이야기를 하던 끝없는 날들과 시간들 때문에, 모든 게 빛깔 없는 물처럼 되어서 나는 거기서 현기증을 느꼈다.
마지막에 기억나는 건 변호사가 계속 말하는 동안, 거리에서부터 여러 방과 법정들을 가로질러 아이스크림 장수의 나팔 소리가 나에게까지 울려 왔다는 것뿐이다. 이제는 내 것이 아닌 삶, 하지만 그 안에서 내가 가장 보잘것없고 가장 끈질긴 기쁨들을 찾았던 삶의 기억들이 나를 덮쳤다. 여름 냄새, 내가 좋아하던 동네, 어느 저녁의 하늘, 마리의 웃음과 원피스들. 그러자 이곳에서 내가 하는 쓸데없는 모든 것이 목까지 치밀어 올랐고, 나는 오로지 빨리 끝나서 감방으로 돌아가 잠드는 것만 바랐다. 변호사가 마지막으로, 배심원들은 한순간 길을 잃은 정직한 일꾼을 죽음으로 보내고 싶지 않을 거라고, 내가 이미 가장 확실한 벌로 영원한 뉘우침을 끌고 다니는 범죄이니 정상을 참작해 달라고 외치는 소리도 나는 겨우 들었다. 재판부가 휴정했고, 변호사는 기진맥진한 얼굴로 앉았다. 그런데 동료들이 그에게 와서 악수를 했다. "훌륭했어, 이 친구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중 하나는 나를 증인으로 삼기까지 했다. "그렇죠?" 그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건 진심 어린 칭찬이 아니었다.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밖에서는 해가 기울고 더위가 누그러졌다. 들려오는 거리의 몇몇 소리로 저녁의 부드러움이 짐작되었다. 우리는 모두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기다리는 것은 오로지 나와 관계된 일이었다. 나는 다시 법정을 둘러보았다. 모든 게 첫날과 그대로였다. 회색 윗옷을 입은 기자와 자동인형 같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재판 내내 내가 한 번도 마리를 눈으로 찾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잊은 건 아니었지만 나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셀레스트와 레몽 사이에 그녀가 보였다. 그녀는 "드디어"라고 말하듯 나에게 작게 손짓했고, 조금 불안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닫혀 있는 걸 느꼈고 그녀의 웃음에 답할 수조차 없었다.
재판부가 돌아왔다. 아주 빠르게 배심원들에게 일련의 질문이 읽혔다. "살인죄"… "계획적"… "정상 참작" 같은 말이 들렸다. 배심원들이 나갔고, 사람들은 전에 기다렸던 작은 방으로 나를 데려갔다. 변호사가 와서 나와 함께 있었다. 그는 말을 몹시 많이 했고, 그 어느 때보다 자신만만하고 다정하게 말했다. 그는 모든 게 잘될 거라고, 나는 몇 년 징역이나 강제 노동으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판결이 불리하게 나오면 파기될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없다고 했다. 배심원단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게 그의 전략이었다. 그는 판결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파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건 당연해 보였고 나는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냉정하게 따져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쓸데없는 서류가 너무 많아질 것이다. "어쨌든," 변호사가 말했다. "상고가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아주 오래, 사십오 분 가까이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러자 벨이 울렸다. 변호사가 나를 떠나며 말했다. "배심원 대표가 답변을 읽을 겁니다. 당신은 판결을 선고할 때만 들어가게 될 거예요." 문들이 쾅쾅 닫혔다. 사람들이 계단을 뛰어다녔는데, 그게 가까운지 먼지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법정에서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읽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벨이 울리고 피고인석 문이 열렸을 때, 나를 향해 올라온 것은 법정의 침묵이었다. 그 침묵, 그리고 젊은 기자가 눈길을 돌렸다는 걸 알아챘을 때 느낀 그 묘한 느낌. 나는 마리 쪽을 보지 않았다. 볼 겨를이 없었다. 재판장이 이상한 형식으로, 나는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공공 광장에서 목이 잘릴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모든 얼굴에서 읽히는 감정을 알아본 것 같았다. 그건 틀림없이 존중이었던 것 같다. 헌병들은 나에게 무척 부드러웠다. 변호사가 내 손목에 손을 얹었다. 나는 더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재판장이 덧붙일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나는 말했다. "없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를 데리고 나갔다.
2부 5장
나는 세 번째로 교도소 신부의 면회를 거절했다. 그에게 할 말도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어차피 머지않아 보게 될 것이다. 지금 내 관심은 이 기계 장치에서 빠져나가는 것, 피할 수 없는 일에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나는 감방을 옮겼다. 여기서는 누우면 하늘이 보이는데, 하늘만 보인다. 나는 낮을 밤으로 데려가는 빛깔들이 그 얼굴 위에서 스러지는 것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다 보낸다. 누워서 두 손을 머리 밑에 받치고 기다린다. 사형수가 이 가차 없는 기계 장치에서 빠져나간 예가 있는지, 처형 전에 사라지거나 경찰의 포위를 뚫은 적이 있는지 나는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물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처형 이야기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걸 자책했다. 이런 문제에는 언제나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나도 남들처럼 신문에서 기사는 읽었다. 하지만 분명 전문적인 책들도 있었을 텐데, 그런 걸 찾아볼 호기심은 한 번도 없었다. 거기서라면 탈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 번은 바퀴가 멈췄다는 것을, 그 저항할 수 없는 계획 속에서 우연과 행운이 딱 한 번 무언가를 바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딱 한 번! 어떤 의미에서는 그걸로 충분했을 것 같다. 나머지는 내 마음이 알아서 했을 것이다. 신문들은 사회에 진 빚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신문들 말로는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상상력을 움직이지 못한다. 중요한 건 빠져나갈 가능성, 그 가차 없는 의식 밖으로 뛰어오르는 것, 희망의 모든 기회를 주는 미친 듯한 달음박질이었다. 물론 그 희망이란 달리는 도중에 길모퉁이에서 날아온 총알 한 방에 쓰러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 보면 나에게는 그런 사치도 허락되지 않았다. 모든 게 그걸 막았고, 기계 장치가 다시 나를 붙잡았다.
좋게 받아들이려 해도 나는 이 뻔뻔한 확실성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결국 이 확실성의 근거가 된 판결과, 그 판결이 선고된 순간부터 흔들림 없이 진행되는 과정 사이에는 우스꽝스러울 만큼 균형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판결이 오후 다섯 시가 아니라 저녁 여덟 시에 읽혔다는 것, 판결이 전혀 달랐을 수도 있다는 것, 속옷을 갈아입는 사람들이 판결을 내렸다는 것, 그 판결이 프랑스 국민(또는 독일 국민이나 중국 국민)이라는 그토록 막연한 개념의 이름으로 내려졌다는 것, 그 모든 게 그런 결정에서 진지함을 크게 덜어 내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나는 판결이 내려진 그 순간부터 그 효과가 내가 온몸을 짓누르며 기대고 있는 이 벽만큼이나 확실하고 진지해졌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때면 엄마가 아버지에 대해 들려주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아버지를 알지 못했다. 그 사람에 대해 내가 확실히 아는 거라곤 아마 그때 엄마가 해 준 이야기뿐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살인자가 처형되는 걸 보러 갔다. 거기 갈 생각만 해도 속이 메스꺼웠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갔고, 돌아와서는 아침나절 내내 토했다. 그때는 아버지가 조금 역겨웠다. 이제는 이해가 갔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사형 집행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는 것, 결국 그게 사람에게 정말로 흥미로운 유일한 일이라는 걸 나는 어떻게 몰랐을까! 혹시라도 이 감옥에서 나가게 된다면 나는 사형 집행이란 집행은 다 보러 갈 것이다. 그런 가능성을 생각한 건 잘못이었던 것 같다. 어느 이른 아침 경찰의 저지선 뒤에, 말하자면 반대편에 자유로운 몸으로 서 있는 나를, 구경하러 왔다가 나중에 토할 수도 있는 구경꾼인 나를 떠올리자 독이 든 기쁨이 가슴에 물밀듯 차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분별 있는 생각이 아니었다. 그런 가정에 빠져든 건 잘못이었다. 바로 다음 순간 끔찍하게 추워져서 담요 속에 몸을 웅크렸기 때문이다. 나는 참을 수 없이 이를 딱딱 부딪쳤다.
하지만 물론 늘 분별 있게 굴 수는 없다. 이를테면 또 어떤 때는 법안을 짰다. 나는 형벌을 개혁했다. 핵심은 사형수에게 기회를 주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천에 하나의 기회만 있어도 많은 게 해결되었다. 이를테면 먹으면 환자를(나는 환자라고 생각했다) 열에 아홉은 죽이는 화학 약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환자가 그걸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게 조건이었다. 곰곰이, 차분하게 따져 보니, 단두대 칼날의 결함은 아무런 기회도, 정말로 아무런 기회도 없다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환자의 죽음은 한 번에 완전히 결정되어 있었다. 처리가 끝난 일, 확정된 짜임, 다시 뒤집을 수 없는 합의였다. 혹시 칼날이 빗나가는 일이 생기면 다시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니 성가신 건, 사형수가 기계가 제대로 돌아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게 결함이라고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게 맞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나는 잘 짜인 조직의 비밀이 전부 거기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사형수는 도덕적으로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게 차질 없이 돌아가는 게 그에게도 이익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런 문제에 대해 내가 가진 생각이 옳지 않았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단두대에 가려면 처형대에 올라가 계단을 밟아야 한다고 믿었다. 1789년 혁명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런 문제에 대해 배우고 본 모든 것 때문에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떠들썩했던 처형 때 신문에 실린 사진 한 장이 생각났다. 사실 기계는 아주 간단하게 땅바닥에 바로 놓여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좁았다. 그걸 더 일찍 알아채지 못했다는 게 꽤 우스웠다. 사진 속 그 기계는 잘 마무리되어 번쩍이는 정밀한 제품 같은 모습으로 내 눈길을 끌었다. 사람은 모르는 것에 대해 늘 부풀린 생각을 한다. 오히려 모든 게 단순하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기계는 그리로 걸어가는 사람과 같은 높이에 있다. 사람은 누군가를 만나러 걸어가듯 기계에 다다른다. 그것도 성가셨다. 처형대로 올라가는 것, 하늘로 오르는 것이라면 상상력이 매달릴 데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기계 장치가 모든 걸 짓뭉개 버렸다. 사람은 조용히, 조금 부끄럽게, 아주 정확하게 죽임을 당했다.
내가 줄곧 생각하는 것이 두 가지 더 있었다. 새벽과 내 상고였다. 그래도 나는 스스로를 타이르며 더는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는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거기에 관심을 두려고 애썼다. 하늘이 초록빛이 되면 저녁이었다. 나는 생각의 흐름을 돌리려고 또 애를 썼다. 내 심장 소리를 들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나와 함께한 이 소리가 언젠가 멈출 수 있다는 걸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진짜 상상력이라는 걸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이 심장의 박동이 더는 내 머릿속으로 이어지지 않는 어느 한순간을 떠올려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헛일이었다. 새벽 아니면 상고가 거기 있었다. 결국 나는 억지로 참지 않는 게 가장 분별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게 되었다.
그들이 오는 건 새벽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 새벽을 기다리며 밤을 보냈다. 나는 불시에 당하는 걸 좋아한 적이 없다. 무슨 일이 닥칠 때 나는 그 자리에 깨어 있는 편이 좋다. 그래서 결국 낮에만 조금 자고, 밤새도록 하늘의 유리창에 빛이 트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게 되었다. 가장 힘든 건 그들이 흔히 일을 치르는 어스름한 시간이었다. 자정이 지나면 나는 기다리며 귀를 곤두세웠다. 내 귀가 그토록 많은 소리를 듣고 그토록 가냘픈 소리를 가려낸 적은 없었다. 게다가 어떤 의미에서 나는 그동안 내내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발소리를 한 번도 듣지 않았으니까. 사람은 결코 완전히 불행하지는 않다고 엄마는 자주 말했다. 감옥에서 하늘에 빛깔이 돌고 새로운 하루가 내 감방으로 미끄러져 들어올 때면 나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발소리가 들릴 수도 있었고, 그러면 내 심장이 터질 수도 있었으니까. 아주 작은 스침에도 문으로 몸을 날렸고, 나무 문에 귀를 대고 내 숨소리가 들릴 때까지 넋을 잃고 기다리다가 그 숨소리가 개가 헐떡이는 소리처럼 쉬어 있어서 겁에 질리기도 했지만, 결국 내 심장은 터지지 않았고 나는 또 스물네 시간을 번 것이었다.
낮 동안 내내 내 상고가 있었다. 나는 그 생각을 가장 잘 이용했다고 믿는다. 나는 효과를 계산했고 내 생각에서 가장 좋은 소득을 얻어 냈다. 나는 언제나 가장 나쁜 가정부터 했다. 상고가 기각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죽겠지." 남들보다 일찍, 그건 뻔했다. 하지만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건 누구나 안다. 사실 나는 서른에 죽든 일흔에 죽든 별 차이가 없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물론 어느 쪽이든 다른 남자들과 다른 여자들은 살아갈 것이고, 그것도 수천 년 동안 살아갈 테니까. 결국 이보다 명백한 건 없었다. 지금이든 이십 년 뒤든 죽는 건 언제나 나였다. 그때 내 추론에서 조금 거슬리는 건, 앞으로 살아갈 이십 년을 생각할 때 내 안에서 느껴지는 그 끔찍한 뛰어오름이었다. 하지만 이십 년 뒤 결국 그 지점에 이르러야 할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할지 상상하면서 그걸 짓눌러 버리기만 하면 됐다. 죽는 거라면 어떻게, 언제 죽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건 뻔했다. 그러므로(그리고 어려운 건 이 "그러므로"가 품고 있는 추론을 모두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상고 기각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때, 오직 그때에만 나는 말하자면 두 번째 가정으로 넘어갈 권리를 가졌고, 스스로에게 허락을 내렸다. 사면을 받는 것이었다. 성가신 건 미친 듯한 기쁨으로 눈을 찌르는 핏줄과 몸의 그 솟구침을 덜 격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외침을 누르고 타일러야 했다. 첫 번째 가정에서의 체념이 더 그럴듯해지도록, 이 가정에서도 자연스러워야 했다. 그렇게 해내면 한 시간의 평온을 번 것이었다. 그래도 그건 따져 볼 만한 일이었다.
바로 그런 때에 나는 또 한 번 신부의 면회를 거절했다. 나는 누워 있었고, 하늘이 조금 금빛을 띠는 것으로 여름 저녁이 다가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방금 내 상고를 기각했고, 핏줄의 물결이 내 안에서 규칙적으로 도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신부를 만날 필요가 없었다. 아주 오랜만에 나는 마리를 생각했다. 그녀가 편지를 보내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그날 저녁 나는 생각해 보다가, 어쩌면 그녀가 사형수의 애인 노릇에 지쳤는지도 모른다고 혼잣말을 했다. 그녀가 아프거나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제는 떨어져 있는 우리 두 몸 말고는 아무것도 우리를 이어 주거나 서로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겠는가. 게다가 그 순간부터 마리의 기억은 나에게 아무래도 좋은 것이 되었을 것이다. 죽었다면 그녀는 더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죽은 뒤 사람들이 나를 잊는 걸 아주 잘 이해하는 것처럼. 그들은 더는 나와 상관이 없을 테니까. 그게 생각하기 괴로운 일이라고조차 말할 수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신부가 들어왔다. 그를 보자 나는 몸이 조금 떨렸다. 그는 그걸 알아채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평소에는 다른 시간에 오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이건 그저 친구로서 찾아온 거고,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내 상고와는 상관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내 침상에 앉더니 옆에 와서 앉으라고 했다. 나는 싫다고 했다. 그래도 그가 아주 온화한 얼굴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는 팔뚝을 무릎에 올리고 고개를 숙인 채 자기 손을 내려다보며 한동안 앉아 있었다. 손은 가늘면서도 힘줄이 도드라져서, 날렵한 짐승 두 마리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두 손을 천천히 맞비볐다. 그러고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그렇게 너무 오래 있어서, 나는 한순간 그가 거기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왜," 그가 말했다. "내 면회를 거절합니까?"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는 정말 확신하느냐고 알고 싶어 했고, 나는 그런 건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고 했다. 나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문제로 보였다. 그러자 그는 뒤로 몸을 젖혀 벽에 기대고 두 손을 넓적다리 위에 펼쳐 놓았다. 거의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닌 것처럼, 그는 사람은 때때로 확신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짚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어쨌든 나는 내가 정말로 관심 있는 게 무엇인지는 확신하지 못할지 몰라도, 관심 없는 게 무엇인지는 완전히 확신했다. 그리고 바로 그가 하는 이야기가 나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눈길을 돌리고, 여전히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 내가 너무 절망해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절망한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저 두려울 뿐이고,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겁니다." 그가 짚었다. "당신 같은 처지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께 돌아섰어요." 나는 그건 그들의 권리라고 인정했다. 그건 그들에게 그럴 시간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나로서는 누가 나를 도와주는 걸 원하지 않았고, 관심 없는 것에 관심을 가질 시간이 바로 나에게는 모자랐다.
그때 그의 손이 짜증스러운 몸짓을 했지만, 그는 몸을 곧게 펴고 사제복의 주름을 매만졌다. 다 매만지고 나서 그는 나를 "친구여"라고 부르며 말을 걸었다. 자기가 이렇게 말하는 건 내가 사형수라서가 아니라고, 그가 보기에는 우리 모두가 사형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건 같은 게 아니고, 게다가 어떤 경우에도 그게 위안이 될 수는 없다고 말을 끊었다. "물론 그렇지요." 그가 수긍했다. "하지만 오늘 죽지 않더라도 당신은 나중에 죽을 겁니다. 그러면 똑같은 물음이 생기겠지요. 그 끔찍한 시련을 어떻게 맞이하겠습니까?" 나는 지금 맞이하는 것과 똑같이 맞이하겠다고 대답했다.
그 말에 그가 일어서더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내가 잘 아는 놀이였다. 에마뉘엘이나 셀레스트와 자주 하며 놀았는데, 대개는 그들이 먼저 눈을 돌렸다. 신부도 이 놀이를 잘 알고 있다는 걸 나는 곧 알아챘다. 그의 눈길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말할 때 그의 목소리도 떨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당신에게는 아무 희망도 없고, 당신이 통째로 죽어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앉았다. 그는 내가 가엾다고 했다. 사람으로서는 그걸 견딜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나는 그가 나를 지겹게 하기 시작했다는 것만 느꼈다. 이번에는 내가 돌아서서 작은 창 아래로 갔다. 나는 어깨를 벽에 기댔다. 잘 따라가지는 않았지만 그가 다시 나에게 묻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불안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감정이 복받쳐 있다는 걸 알고 나는 좀 더 귀를 기울였다.
그는 내 상고가 받아들여질 거라고 확신한다고 했지만, 나는 벗어던져야 할 죄의 무게를 지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로는 인간의 정의는 아무것도 아니고 하느님의 정의가 전부라는 것이었다. 나는 나에게 사형을 선고한 건 앞의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내 죄를 씻어 준 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나는 죄라는 게 뭔지 모른다고 했다. 사람들은 다만 내가 죄인이라는 걸 알려 주었을 뿐이다. 나는 죄인이었고, 대가를 치르고 있었고, 그 이상을 나에게 요구할 수는 없었다. 그때 그가 또 일어섰는데, 나는 이렇게 좁은 감방에서는 움직이고 싶어도 달리 방법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앉거나 서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나는 바닥에 눈을 박고 있었다. 그는 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오더니, 감히 더 다가오지 못하는 것처럼 멈춰 섰다. 그는 쇠창살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잘못 생각하는 겁니다, 형제여." 그가 말했다. "당신에게 더 요구할 수도 있어요. 어쩌면 요구하게 될 겁니다." "뭘요?" "보라고 요구할 수도 있지요." "뭘 보라는 겁니까?"
신부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갑자기 무척 지쳤다고 느껴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돌들이 모두 고통의 땀을 흘리고 있다는 걸 압니다. 나는 이 돌들을 볼 때마다 괴로웠어요. 하지만 나는 마음속 깊이 압니다. 당신들 가운데 가장 비참한 사람들도 그 어둠에서 하느님의 얼굴이 나타나는 걸 보았다는 걸요. 당신에게 보라고 요구하는 건 바로 그 얼굴입니다."
나는 조금 흥분했다. 나는 몇 달째 이 벽들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세상에 내가 이보다 더 잘 아는 것도, 더 잘 아는 사람도 없었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에 나는 거기서 어떤 얼굴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얼굴은 햇볕의 빛깔과 욕망의 불꽃을 띠고 있었다. 마리의 얼굴이었다. 나는 헛되이 그 얼굴을 찾았다. 이제는 끝난 일이었다. 그리고 어쨌든 나는 그 돌의 땀에서 아무것도 솟아나는 걸 보지 못했다.
신부는 슬픈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나는 벽에 완전히 등을 기대고 있었고, 햇빛이 이마 위로 흘러내렸다. 그는 내가 알아듣지 못한 말을 몇 마디 하더니, 아주 빠르게 나를 안아 줘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안 됩니다." 나는 대답했다. 그는 돌아서서 벽 쪽으로 걸어가더니 천천히 벽에 손을 쓸었다. "그렇게까지 이 땅을 사랑합니까?" 그가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꽤 오랫동안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가 거기 있는 게 나를 짓누르고 짜증 나게 했다. 가 달라고, 나를 내버려 두라고 말하려는데, 그가 갑자기 돌아서며 터지듯 외쳤다. "아니요, 나는 당신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 당신도 분명 다른 삶을 바란 적이 있을 겁니다." 나는 물론 그랬지만, 그건 부자가 되기를, 아주 빨리 헤엄치기를, 입이 더 잘생기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다 같은 종류였다. 그런데 그가 내 말을 막더니, 그 다른 삶을 내가 어떻게 그리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소리쳤다. "이 삶을 기억할 수 있는 삶이요." 그러고는 곧바로 이제 지겹다고 했다. 그는 아직 하느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나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마지막으로 설명하려 했다. 나는 그 시간을 하느님과 함께 잃고 싶지 않았다. 그는 화제를 바꾸려고, 왜 자기를 "신부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느냐고 물었다. 그 말에 나는 신경이 곤두서서, 그는 내 아버지가 아니라고, 그는 저쪽 사람들 편이라고 대답했다.
"아니요, 형제여."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나는 당신 편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걸 알 수 없어요. 당신 마음이 눈이 멀었으니까요.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러자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안에서 무언가가 터져 버렸다. 나는 목청껏 소리 지르기 시작했고, 그에게 욕을 퍼부었고, 기도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의 사제복 깃을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기쁨과 분노가 뒤섞여 솟구치는 가운데 마음속 밑바닥에 있던 것을 모두 그에게 쏟아부었다. 그는 너무나 확신에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그의 확신은 어느 하나도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 한 값어치도 없었다.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나는 빈손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에 대해 확신했고, 모든 것에 대해 확신했고, 그보다 더 확신했다. 내 삶에 대해, 다가올 이 죽음에 대해 확신했다. 그렇다, 나에게는 그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 진실이 나를 붙잡고 있는 만큼 그 진실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옳았고, 지금도 옳고, 언제나 옳았다. 나는 이렇게 살았고, 저렇게 살 수도 있었다. 나는 이걸 했고 저건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하지 않았는데 저런 일은 했다.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 마치 내가 그동안 줄곧 이 순간을, 내가 정당함을 인정받게 될 이 작은 새벽을 기다려 온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고, 나는 그 까닭을 잘 알고 있었다. 그도 그 까닭을 알고 있었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삶 내내, 내 미래의 밑바닥에서, 아직 오지 않은 세월을 가로질러 어두운 바람 한 줄기가 나를 향해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고, 그 바람은 지나가면서, 내가 살던 세월보다 조금도 더 진짜가 아닌 세월 속에서 사람들이 내게 내밀던 모든 것을 똑같이 평평하게 만들었다. 남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이 나에게 무슨 상관인가, 그의 하느님이, 사람들이 고르는 삶이, 사람들이 택하는 운명이 나에게 무슨 상관인가. 단 하나의 운명이 나를 택할 것이고, 나와 함께 그처럼 스스로 내 형제라고 부르는 수십억의 선택받은 사람들을 택할 텐데. 그는 그걸 알기나 할까? 모두가 선택받은 사람이었다. 선택받은 사람들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언젠가는 사형 선고를 받을 것이다. 그도 사형 선고를 받을 것이다. 살인죄로 기소되어,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된들 그게 무슨 상관인가? 살라마노의 개도 그의 아내만큼 값어치가 있었다. 자동인형 같은 작은 여자도 마송과 결혼한 파리 여자만큼, 나와 결혼하고 싶어 하던 마리만큼 죄가 있었다. 레몽이 셀레스트만큼 내 친구였다 한들, 셀레스트가 그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었다 한들 그게 무슨 상관인가? 마리가 오늘 새로운 뫼르소에게 입술을 내주고 있다 한들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이 사형수는 알기나 할까, 내 미래의 밑바닥에서… 이 모든 걸 외치다가 나는 숨이 막혔다. 하지만 벌써 사람들이 내 손에서 신부를 떼어 내고 있었고, 간수들이 나를 위협했다. 그런데 신부가 그들을 진정시키고는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그는 돌아서서 사라졌다.
그가 가고 나서 나는 평온을 되찾았다. 나는 기진맥진해서 침상에 몸을 던졌다. 얼굴 위로 별빛이 쏟아지는 가운데 깨어났으니 잠을 잔 것 같다. 들판의 소리들이 나에게까지 올라왔다. 밤과 흙과 소금의 냄새가 관자놀이를 식혀 주었다. 잠든 여름의 경이로운 평화가 밀물처럼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밤의 끝자락에서 뱃고동이 울부짖었다. 이제 나와는 영영 상관없는 세상으로 떠나는 출발을 알리는 소리였다. 아주 오랜만에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삶의 끝에서 엄마가 왜 "약혼자"를 두었는지, 왜 다시 시작하는 놀이를 했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저기, 저기서도, 생명들이 꺼져 가는 그 양로원 둘레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전 같았을 것이다. 죽음에 그토록 가까이 있었으니 엄마는 거기서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걸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를 두고 울 권리는 없었다. 그리고 나도 모든 걸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느꼈다. 마치 그 거대한 분노가 나에게서 악을 씻어 내고 희망을 비워 낸 것처럼, 신호와 별들로 가득한 이 밤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에 나를 열었다. 세상이 이토록 나와 닮았고, 마침내 이토록 형제 같다는 걸 느끼자, 나는 내가 행복했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걸 느꼈다. 모든 게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다고 느끼도록, 나에게 남은 바람은 내가 처형되는 날 구경꾼이 많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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