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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 조영환 옮김

F. Scott Fitzgerald — The Great Gatsby (1925)

9장 · 282분

밤마다 파티를 여는 개츠비는 왜 만 건너편 초록 불빛을 바라볼까.

1장

지금보다 어리고 마음이 여리던 시절에 아버지가 나에게 충고를 하나 해 주었고, 나는 그 뒤로 줄곧 그것을 마음속에서 굴려 왔다.

"누구든 헐뜯고 싶어질 때면," 아버지는 말했다. "세상 사람이 다 너만큼 누리고 자란 건 아니라는 걸 기억해라."

아버지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부자는 말수가 적으면서도 유난히 잘 통하는 사이였고, 나는 아버지가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뜻했다는 것을 알아들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판단을 미뤄 두는 버릇이 들었는데, 그 버릇 덕에 별난 사람들이 여럿 나에게 속을 열었고 또 그 덕에 나는 이력이 붙은 지겨운 자들에게 적잖이 시달렸다. 보통 사람에게서 이런 성질이 드러나면 정상이 아닌 마음은 재빨리 그것을 알아채고 달라붙는다. 그래서 대학 시절에 나는 정치꾼이라는 부당한 소리를 들었다. 알지도 못하는 거친 자들의 은밀한 슬픔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속내 대부분은 내가 청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틀림없는 낌새로 속마음의 고백이 지평선에서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면 나는 자주 자는 척하거나 딴 일에 골몰한 척하거나 심술궂게 실없는 척했다. 젊은 사내들의 속마음 고백이란, 적어도 그것을 털어놓는 말투란 대개 남의 것을 베낀 데다 빤히 감춘 구석이 있어 볼썽사납기 때문이다. 판단을 미뤄 둔다는 것은 한없이 희망을 품는 일이다. 아버지가 잘난 척 넌지시 일러 주었고 나도 잘난 척 되풀이하는 말, 곧 사람의 기본이 되는 됨됨이는 태어날 때 고르지 않게 나눠진다는 말을 잊으면 무언가를 놓칠까 봐 나는 아직도 조금 겁이 난다.

이렇게 내 너그러움을 뽐내 놓고서, 이제 그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털어놓아야겠다. 사람의 처신은 단단한 바위 위에 서 있을 수도 있고 젖은 늪 위에 서 있을 수도 있지만, 어느 선을 넘으면 나는 그것이 무엇 위에 서 있든 상관하지 않는다. 지난가을 동부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세상이 제복을 입고 영원히 도덕적으로 차렷 자세를 하고 있기를 바랐다. 사람 마음속을 특별히 들여다보는 그런 어지러운 소풍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책에 제 이름을 준 사람인 개츠비만은 그 반발에서 예외였다. 내가 꾸밈없이 업신여기는 모든 것을 그대로 지닌 사람이 개츠비였는데도. 인격이라는 것이 성공한 몸짓의 끊이지 않는 이어짐이라면 그에게는 눈부신 데가 있었다. 삶이 건네는 약속에 대한 남다른 예민함이 있었다. 마치 만 리 밖의 지진을 기록하는 그 정교한 기계 가운데 하나와 친척이라도 되는 듯했다. 이 반응하는 힘은 「창조적 기질」이라는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불리는 그 물렁한 감수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것은 희망을 품는 남다른 재능이었고, 다른 어떤 사람에게서도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볼 것 같지 않은 낭만적인 채비였다. 아니 — 개츠비는 끝에 가서 괜찮았다. 내가 사람들의 어그러진 슬픔과 숨 짧은 들뜸에 한동안 관심을 닫아 버린 것은 개츠비를 파먹은 것 때문이었고, 그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떠 있던 그 더러운 먼지 때문이었다.

* * *

우리 집안은 삼 대째 이 중서부 도시에서 이름 있고 넉넉하게 살아왔다. 캐러웨이 집안은 그런대로 한 가문이라 할 만하고, 우리가 버클루 공작 가문의 후손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러나 우리 계통을 실제로 세운 사람은 할아버지의 형이었다. 그는 오십일 년에 이곳에 와서 남북전쟁에는 대리인을 보내고 철물 도매업을 시작했고, 그 일을 오늘 우리 아버지가 잇고 있다.

나는 이 큰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지만 내가 그를 닮았다고들 한다. 특히 아버지 사무실에 걸린 그 무뚝뚝한 초상화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1915년에 뉴헤이븐을 나왔는데 아버지보다 꼭 사반세기 뒤였고, 얼마 뒤 저 뒤늦은 게르만 민족 이동이라 불리는 대전에 참여했다. 나는 그 반격을 어찌나 신나게 즐겼던지 돌아와서는 좀이 쑤셨다. 중서부는 이제 세상의 따뜻한 한복판이 아니라 우주의 너덜너덜한 가장자리처럼 보였고, 그래서 나는 동부로 가서 채권 일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아는 사람은 죄다 채권 일을 하고 있었으니 홀몸 하나쯤 더 먹여 살릴 수 있으려니 여겼다. 고모와 삼촌들이 나를 예비학교에 넣기라도 하는 양 그 문제를 두고 의논하더니 마침내 아주 심각하고 미심쩍은 얼굴로 "그래, 뭐, 그러라지" 하고 말했다. 아버지가 한 해 동안 대 주기로 했고, 이런저런 미룸 끝에 나는 스물두 해 봄에 동부로 왔다. 아주 눌러살 생각이었다.

실속을 따지자면 시내에 방을 얻는 것이 옳았지만 철이 따뜻했고, 나는 넓은 잔디밭과 정다운 나무가 있는 고장을 막 떠나온 참이었다. 그래서 사무실의 젊은 친구가 통근하는 동네에 집을 하나 같이 얻자고 했을 때 그것이 아주 좋은 생각으로 들렸다. 그가 집을 찾아냈다. 한 달에 팔십 달러 하는, 비바람에 삭은 판잣집 같은 방갈로였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회사가 그를 워싱턴으로 보냈고 나는 혼자 시골로 나갔다. 나에게는 개가 한 마리 있었고 — 적어도 달아나기 전 며칠은 있었다 — 낡은 닷지 한 대와 핀란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내 잠자리를 봐 주고 아침을 지어 주었고, 전기 화덕 앞에서 혼자 핀란드 격언을 중얼거렸다.

하루 이틀은 쓸쓸했는데, 어느 아침 나보다 더 최근에 온 어떤 남자가 길에서 나를 붙들었다.

"웨스트에그 마을에 어떻게 갑니까?" 그가 난감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일러 주었다. 그리고 계속 걸어가면서 나는 더 이상 쓸쓸하지 않았다. 나는 길잡이였고, 길을 아는 사람이었고, 맨 처음 자리 잡은 사람이었다. 그는 무심코 나에게 이 동네의 시민권을 준 것이다.

그렇게 볕이 들고 나무마다 잎이 왈칵 돋아나는 것을 보면서, 빨리 돌린 영화에서 무엇이 자라나듯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여름과 함께 삶이 다시 시작된다는 그 낯익은 확신을 얻었다.

우선 읽을 것이 아주 많았고, 숨을 틔워 주는 그 젊은 공기에서 끌어내릴 좋은 건강이 아주 많았다. 나는 은행업과 신용과 투자 증권에 관한 책을 열두 권 샀고, 그것들이 조폐국에서 갓 나온 새 돈처럼 붉고 금빛으로 내 책꽂이에 섰다. 미다스와 모건과 마이케나스만이 알던 빛나는 비밀을 펼쳐 보여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그 밖에도 다른 책을 많이 읽겠다는 높은 뜻을 품고 있었다. 대학 시절 나는 꽤 문학 쪽이었다. 한 해는 예일 뉴스에 아주 엄숙하고 빤한 사설을 여러 편 썼다. 이제 그런 것들을 모두 내 삶으로 다시 들여와 온갖 전문가 가운데 가장 좁은 전문가, 곧 「두루 갖춘 사람」이 다시 될 참이었다. 이건 그저 재치 있는 말이 아니다. 삶이란 결국 창 하나로 내다볼 때 훨씬 잘 보이는 법이니까.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이상한 동네 가운데 하나에 내가 집을 얻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그곳은 뉴욕에서 정동쪽으로 뻗은 그 가늘고 소란스러운 섬에 있었다. 거기에는 여러 자연의 진기함 가운데 남다른 땅 모양이 둘 있다. 도시에서 이십 마일 떨어진 곳에서 윤곽이 똑같고 예의상 만이라 부르는 물줄기 하나로만 갈린 거대한 알 두 개가, 서반구에서 가장 길들여진 소금물인 롱아일랜드 해협이라는 그 크고 축축한 헛간 마당으로 튀어나와 있다. 완전한 타원은 아니다. 콜럼버스 이야기에 나오는 달걀처럼 둘 다 맞닿는 쪽이 납작하게 눌려 있다. 그러나 그 생김새가 닮은 것은 머리 위를 나는 갈매기들에게 끝없는 놀라움일 것이다. 날개 없는 자들에게 더 흥미로운 것은 모양과 크기 말고는 모든 점에서 그 둘이 닮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웨스트에그에 살았다. 둘 가운데 — 뭐랄까, 덜 세련된 쪽이었다. 다만 이것은 그 둘 사이의 기이하고 적잖이 불길한 차이를 나타내기에는 더없이 겉핥기인 딱지다. 내 집은 그 알의 맨 끝에 있어서 해협에서 오십 야드밖에 떨어지지 않았고, 한 철에 만이삼천 달러에 세를 놓는 거대한 집 두 채 사이에 끼여 있었다. 오른쪽 집은 어느 기준으로 보나 엄청난 물건이었다. 노르망디 어느 시청사를 그대로 본뜬 것으로 한쪽에 탑이 있었고, 갓 오른 담쟁이 수염이 얇게 덮인 채 번쩍번쩍 새것이었고, 대리석 수영장과 사십 에이커가 넘는 잔디밭과 정원이 있었다. 그것이 개츠비의 저택이었다. 아니 그보다, 나는 개츠비 씨를 몰랐으니 그런 이름의 신사가 사는 저택이었다. 내 집은 눈에 거슬리는 물건이었지만 작게 거슬리는 물건이었고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물을 내다볼 수 있었고, 이웃의 잔디밭을 얼마쯤 내다볼 수 있었고, 백만장자들이 가까이 있다는 위안을 얻었다. 이 모두가 한 달에 팔십 달러였다.

예의상 만이라 부르는 그 물 건너편에서는 세련된 이스트에그의 흰 궁전들이 물가를 따라 반짝였고, 그해 여름 이야기는 내가 톰 뷰캐넌 부부와 저녁을 먹으러 그리로 차를 몰고 간 그 저녁에서 정말로 시작된다. 데이지는 나에게 육촌 아래뻘이었고 톰은 대학 때부터 알던 사이였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되어 시카고에서 그들과 이틀을 보낸 적이 있었다.

데이지의 남편은 여러 가지 몸 쓰는 재주 가운데 뉴헤이븐에서 미식축구를 한 가장 힘센 엔드 중 하나였다. 어떤 면에서는 전국에 알려진 인물이었고, 스물한 살에 그토록 날카롭고 좁은 뛰어남에 이르러 그 뒤로는 무엇을 해도 김빠진 맛이 나는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집안은 엄청나게 부유해서 대학 시절에도 그가 돈을 헤프게 쓰는 것이 흉거리였다. 그런데 이제 그는 시카고를 떠나 사람 숨을 좀 멎게 하는 방식으로 동부에 왔다. 이를테면 레이크포리스트에서 폴로 조랑말을 한 무리 데려온 것이다. 내 또래 사내가 그런 짓을 할 만큼 넉넉하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았다.

그들이 왜 동부로 왔는지 나는 모른다. 그들은 별다른 까닭 없이 프랑스에서 한 해를 보냈고, 그다음에는 사람들이 폴로를 하고 함께 부유한 곳이라면 어디든 안절부절못하며 이리저리 떠다녔다. 이번에는 아주 옮겨 온 것이라고 데이지가 전화로 말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데이지의 속은 들여다볼 수 없었지만, 톰은 되찾을 수 없는 어느 미식축구 경기의 그 극적인 소용돌이를 얼마쯤 아쉬운 마음으로 찾으며 영영 떠다니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하여 따뜻하고 바람 부는 어느 저녁에 나는 거의 알지도 못하는 옛 친구 둘을 보러 이스트에그로 차를 몰았다. 그들의 집은 내가 짐작한 것보다도 더 공들인 것이었다. 만을 내려다보는, 붉고 흰 조지 왕조풍 식민지 양식의 밝은 저택이었다. 잔디밭은 바닷가에서 시작해 사분의 일 마일을 현관 쪽으로 달려왔다. 해시계와 벽돌 길과 타는 듯한 화단을 뛰어넘고, 마침내 집에 이르러서는 달려온 기세에 밀리기라도 한 듯 밝은 덩굴이 되어 벽을 타고 올라갔다. 정면은 줄지어 늘어선 프랑스식 창으로 끊겨 있었는데, 지금 그 창들은 되비친 금빛으로 빛나며 따뜻하고 바람 부는 오후를 향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승마복 차림의 톰 뷰캐넌이 다리를 벌리고 현관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뉴헤이븐 시절 이후로 달라져 있었다. 이제 그는 서른 살의 다부진 짚빛 머리 사내였고, 입매가 꽤 굳고 남을 깔보는 태가 있었다. 번득이는 오만한 두 눈이 그 얼굴을 장악해서, 그는 늘 공격하듯 앞으로 몸을 기울인 것처럼 보였다. 승마복의 계집애 같은 멋도 그 몸의 엄청난 힘을 감추지 못했다. 번쩍이는 장화를 어찌나 가득 채우는지 맨 위 끈이 팽팽했고, 얇은 웃옷 아래서 어깨가 움직일 때면 커다란 근육 덩어리가 옮겨 가는 것이 보였다. 어마어마한 지렛대 힘을 낼 수 있는 몸이었다. 잔인한 몸이었다.

그의 말소리는 걸걸하고 쉰 테너였는데, 그가 풍기는 시비조의 인상을 더했다. 거기에는 아버지가 아랫사람에게 하듯 깔보는 기색이 얼마쯤 있었다. 저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그랬다. 그래서 뉴헤이븐에는 그를 지독히 미워한 자들이 있었다.

"이런 일에 대한 내 의견이 최종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게." 그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내가 자네보다 세고 사내다운 것뿐이니까." 우리는 같은 4학년 클럽에 있었고, 가깝게 지낸 적은 없었지만 나는 늘 그가 나를 괜찮게 여기며 저 나름의 거칠고 고집스러운 아쉬움을 담아 내가 저를 좋아해 주기를 바란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는 볕 드는 현관에서 몇 분 이야기했다.

"여기 자리가 괜찮지." 그가 눈을 안절부절못하게 이리저리 번득이며 말했다.

그는 내 한쪽 팔을 잡아 몸을 돌리게 하고는 넓적한 손을 앞쪽 경치를 따라 훑었다. 그 손짓 안에 움푹 꺼진 이탈리아식 정원과 반 에이커의 짙고 향 강한 장미와 앞바다에서 물결에 부딪히는 뭉툭한 모터보트가 들어갔다.

"석유 하는 드메인 것이었어." 그가 다시 나를 정중하고도 불쑥 돌려세웠다. "안으로 들어가지."

우리는 높은 복도를 지나 밝고 장밋빛인 공간으로 들어갔다. 양쪽 끝의 프랑스식 창이 그 공간을 집에 위태롭게 붙들어 매고 있었다. 창들은 반쯤 열린 채 바깥의 싱그러운 풀을 배경으로 희게 빛났는데, 그 풀은 집 안으로 조금 자라 들어온 듯했다. 산들바람이 방을 지나며 한쪽 끝에서 커튼을 안으로 불어넣고 다른 쪽 끝에서 밖으로 불어냈다. 창백한 깃발처럼. 그러고는 커튼을 천장의 설탕 입힌 웨딩케이크 쪽으로 비틀어 올렸다가 포도줏빛 양탄자 위로 잔물결처럼 흘러가며, 바람이 바다에 그러듯 그 위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방 안에서 완전히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는 거대한 소파뿐이었는데, 그 위에 젊은 여자 둘이 닻을 내린 기구 위에 있는 것처럼 떠 있었다. 둘 다 흰옷을 입었고, 그 옷자락이 집 둘레를 잠깐 날다가 방금 불려 들어오기라도 한 듯 물결치며 나부꼈다. 나는 커튼이 채찍처럼 후려치고 탁탁거리는 소리와 벽에 걸린 그림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서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톰 뷰캐넌이 뒤쪽 창을 닫자 쿵 소리가 났고, 갇혀 있던 바람이 방 안에서 잦아들었고, 커튼과 양탄자와 두 젊은 여자가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둘 중 젊은 쪽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긴 의자 제 쪽 끝에 온몸을 쭉 뻗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턱을 조금 치켜들고 있었다. 마치 그 위에 떨어지기 쉬운 무언가를 얹어 균형을 잡고 있는 것처럼. 곁눈으로 나를 보았다 해도 그런 낌새를 조금도 내지 않았다. 나는 하마터면 들어와서 방해했다고 사과의 말을 웅얼거릴 뻔했다.

다른 쪽 여자, 데이지는 일어서려는 시늉을 했다. 성실한 표정으로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이다가 웃었다. 터무니없고 사랑스러운 짧은 웃음이었다. 나도 웃으며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행복해서 마-마비가 됐어요."

그는 아주 재치 있는 말이라도 한 듯 다시 웃고는 잠깐 내 손을 잡은 채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에서 나만큼 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약속하는 얼굴이었다.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그는 균형을 잡고 있는 여자의 성이 베이커라고 웅얼거리듯 흘렸다. (데이지가 웅얼거리는 것은 사람들이 저에게 몸을 기울이게 하려는 것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상관없는 흠잡기였고, 그래도 그것이 덜 사랑스러워지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베이커 양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그는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 나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고개를 다시 뒤로 젖혔다. 균형을 잡고 있던 그 물건이 조금 흔들려 놀란 것이 분명했다. 또 한 번 사과 비슷한 말이 내 입까지 올라왔다. 나는 완전한 자족을 내보이는 광경이라면 무엇에든 넋 놓고 경의를 표하는 편이다.

나는 다시 내 육촌을 보았고, 그가 낮고 가슴 뛰게 하는 목소리로 나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귀가 오르내리며 따라가게 되는 그런 목소리였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시는 연주되지 않을 음의 배열이기라도 한 듯이. 그의 얼굴은 서글프면서도 사랑스러웠고 그 안에 밝은 것들이, 밝은 눈과 밝고 뜨거운 입이 있었다. 그러나 그를 마음에 두었던 사내들이 잊기 어려워하는 어떤 들뜸이 그 목소리에 있었다. 노래하듯 사람을 끄는 힘이, 속삭이는 「들어 봐요」가, 방금 전까지 즐겁고 신나는 일을 했고 다음 한 시간 안에 또 즐겁고 신나는 일이 어른거리고 있다는 약속이 있었다.

나는 동부로 오는 길에 시카고에 하루 들렀다고, 열댓 사람이 나를 통해 안부를 보냈다고 말했다.

"그 사람들이 날 그리워해요?" 그가 황홀해하며 외쳤다.

"온 도시가 적막하지. 차마다 왼쪽 뒷바퀴를 상장처럼 검게 칠했고, 북쪽 해안에서는 밤새 곡소리가 그치질 않아."

"멋져라! 톰, 우리 돌아가요. 내일요!" 그러고는 상관없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 아기를 봐야 하는데."

"보고 싶은데."

"자고 있어요. 세 살이에요. 한 번도 못 봤죠?"

"한 번도."

"그럼 꼭 봐야 해요. 그 애는—"

방 안을 안절부절못하고 서성이던 톰 뷰캐넌이 멈춰 서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넨 뭐 하고 있나, 닉?"

"채권 일을 하네."

"어디서?"

내가 말해 주었다.

"들어 본 적 없는데." 그가 딱 잘라 말했다.

그 말이 거슬렸다.

"듣게 될 걸세." 내가 짧게 답했다. "동부에 계속 있으면 듣게 될 거야."

"아, 나야 동부에 있지, 걱정 말게." 그가 데이지를 흘끗 보았다가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무언가 더 있는지 살피는 듯이. "다른 데 가서 산다면 내가 빌어먹을 바보지."

이때 베이커 양이 "그럼요!" 하고 어찌나 불쑥 말했던지 나는 흠칫했다. 내가 방에 들어온 뒤로 그가 입 밖에 낸 첫마디였다. 나만큼이나 그 자신도 놀란 것이 분명했다. 그는 하품을 하더니 빠르고 능숙한 몇 번의 몸놀림으로 일어서서 방 안으로 나섰다.

"몸이 뻣뻣해요." 그가 투덜거렸다.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래 저 소파에 누워 있었어요."

"나를 보지 마." 데이지가 되받았다. "오후 내내 널 뉴욕에 데려가려고 했잖아."

"고맙지만 됐어요." 베이커 양이 방금 주방에서 나온 칵테일 넉 잔을 두고 말했다. "저는 지금 완전히 몸 만드는 중이라."

주인 남자가 못 믿겠다는 듯 그를 보았다.

"그렇겠지!" 그는 제 잔을 잔 밑바닥에 남은 한 방울이라도 되는 양 털어 넣었다. "자네가 대체 무슨 수로 뭐라도 해내는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군."

나는 베이커 양을 보며 그가 대체 무엇을 "해낸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나는 그를 보는 것이 즐거웠다. 가슴이 작고 호리호리한 여자였고, 몸가짐이 꼿꼿했는데 어린 사관생도처럼 어깨를 뒤로 젖혀 그것을 더 두드러지게 했다. 볕에 시달린 잿빛 눈이 창백하고 사랑스럽고 못마땅한 얼굴에서 정중한 맞궁금함을 담아 나를 마주 보았다. 그제야 나는 그를, 아니면 그의 사진을 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웨스트에그에 사신다면서요." 그가 업신여기듯 말했다. "저도 거기 아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개츠비는 아실 텐데요."

"개츠비요?" 데이지가 물었다. "무슨 개츠비?"

내 이웃이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저녁이 준비되었다는 말이 들려왔다. 톰 뷰캐넌은 팽팽한 팔을 명령하듯 내 팔 밑에 끼워 넣고는 장기 말을 다른 칸으로 옮기듯 나를 방에서 몰아냈다.

호리호리하고 나른하게, 손을 허리에 가볍게 얹은 채, 두 젊은 여자가 우리보다 앞서 장밋빛 현관으로 나갔다. 노을 쪽으로 열린 현관이었고, 잦아든 바람 속에서 탁자 위 촛불 네 개가 흔들렸다.

"촛불은 왜?" 데이지가 눈살을 찌푸리며 못마땅해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촛불을 하나씩 꺼뜨렸다. "두 주 뒤면 일 년 중 낮이 가장 긴 날인데." 그러고는 빛나는 얼굴로 우리를 둘러보았다. "다들 일 년 중 가장 긴 날을 기다리다가 그냥 놓쳐 버리죠? 난 늘 가장 긴 날을 기다리다가 놓쳐요."

"뭐라도 계획을 세워야겠네." 베이커 양이 하품하며 말했다. 침대로 들어가듯 탁자 앞에 앉으면서.

"좋아." 데이지가 말했다. "무슨 계획을 세우지?" 그러고는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은 무슨 계획을 세워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의 눈이 겁먹은 표정으로 제 새끼손가락에 박혔다.

"봐요!" 그가 하소연했다. "다쳤어."

우리 모두 보았다—손가락 마디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당신이 그런 거야, 톰." 그가 나무라듯 말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닌 줄은 알지만 그래도 당신이 그런 거예요. 짐승 같은 남자하고 결혼한 대가지. 덩치 크고 육중하고 우람한 짐—"

"'우람하다'는 그 말 나는 질색이야." 톰이 심통 사납게 말을 막았다. "농담이라도."

"우람하다니까." 데이지가 우겼다.

이따금 데이지와 베이커 양이 동시에 말했다. 티 나지 않게, 실없이 놀리듯, 그러면서도 결코 수다는 아닌 말투로. 그것은 두 사람의 흰 옷처럼,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무심한 눈처럼 서늘했다. 두 사람은 여기 있었고, 톰과 나를 받아들였으며, 즐겁게 해 주거나 즐거워해 주려는 정중하고 기분 좋은 노력만을 했다. 두 사람은 이윽고 저녁이 끝나고 조금 뒤에는 이 밤도 끝나서 아무렇지 않게 치워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부와는 사뭇 달랐다. 서부에서는 하룻밤이 이 대목에서 저 대목으로 서둘러 끝을 향해 떠밀려 갔다. 늘 어긋나는 기대 속에서, 아니면 그 순간 자체에 대한 순전한 신경질적 두려움 속에서.

"당신을 보면 내가 야만인 같아, 데이지." 코르크 맛이 나지만 제법 훌륭한 클라레 두 잔째를 비우며 내가 털어놓았다. "농작물 얘기 같은 건 못 하나?"

특별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는데 뜻밖의 방향으로 받아들여졌다.

"문명이 무너지고 있어." 톰이 사납게 말을 꺼냈다. "나는 세상일에 지독한 비관주의자가 됐네. 고더드라는 사람이 쓴 「유색 제국의 발흥」 읽어 봤나?"

"아니, 못 읽었네." 그 말투에 좀 놀라서 내가 대답했다.

"좋은 책이야, 누구나 읽어야 해. 요지는 이거야.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백인종이 아주—아주 잠겨 버린다는 거지. 전부 과학적인 얘기고, 다 증명된 거라네."

"톰이 아주 심오해졌어요." 데이지가 생각 없는 서글픔이 어린 얼굴로 말했다. "긴 낱말이 잔뜩 든 어려운 책을 읽거든요. 그 낱말이 뭐였더라, 우리가—"

"아무튼 이 책들은 다 과학적이야." 톰이 짜증스레 데이지를 흘겨보며 우겼다. "이 사람이 전부 다 계산해 놨어. 지배 인종인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지, 안 그러면 다른 인종들이 세상을 쥐게 된다는 거야."

"우리가 짓눌러 버려야지." 데이지가 이글거리는 해 쪽으로 사납게 눈을 찡긋하며 속삭였다.

"캘리포니아에 가서 사시—" 베이커 양이 말을 꺼냈지만 톰이 의자에서 육중하게 몸을 뒤척이며 말을 끊었다.

"요지는 우리가 노르딕 인종이라는 거야. 나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의 망설임 끝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데이지도 끼워 주었고, 데이지는 나에게 다시 눈을 찡긋했다. "—그리고 문명을 이루는 온갖 것을 우리가 만들어 냈지. 그러니까 과학이며 예술이며 그런 것들 말이야. 알겠나?"

그가 골똘해 있는 모습에는 어딘가 가련한 데가 있었다. 예전보다 더 날이 선 그의 자족이 이제는 스스로에게도 모자란 것처럼. 곧이어 안에서 전화가 울리고 집사가 현관을 떠나자, 데이지는 그 잠깐의 틈을 붙잡아 나에게 몸을 기울였다.

"집안 비밀을 하나 알려 줄게요." 그가 신이 나서 속삭였다. "집사의 코 얘기예요. 집사의 코 얘기 들을래요?"

"그거 들으려고 오늘 밤 온 건데."

"저 사람이 처음부터 집사는 아니었어요. 뉴욕에서 이백 인분 은식기를 갖춘 어느 집의 은 닦는 사람이었죠. 아침부터 밤까지 은을 닦아야 했는데, 그러다 끝내 코에 탈이 나기 시작해서—"

"갈수록 나빠졌겠네." 베이커 양이 거들었다.

"맞아. 갈수록 나빠져서 결국은 그 일을 그만둬야 했어요."

한순간 마지막 햇살이 낭만적인 애정을 담고 그의 빛나는 얼굴에 내려앉았다. 그의 목소리가 나를 숨죽인 채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다 그 빛이 스러졌고, 빛줄기 하나하나가 아쉬움을 끌며 그를 떠나갔다. 해 질 녘에 정다운 골목을 떠나는 아이들처럼.

집사가 돌아와 톰의 귀에 대고 무어라 웅얼거렸고, 톰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의자를 뒤로 밀고 말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없어지자 안에서 무언가 살아난 듯 데이지가 다시 몸을 기울였고, 목소리가 빛나며 노래하듯 흘렀다.

"내 식탁에 당신이 앉아 있는 게 참 좋아요, 닉. 당신을 보면 꼭—꼭 장미 같아. 완전히 장미. 안 그래?" 그는 확인을 구하듯 베이커 양을 돌아보았다. "완전히 장미 아냐?"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장미와는 눈곱만큼도 닮지 않았다. 그는 그저 즉흥으로 지어냈을 뿐이지만, 그에게서 사람을 흔드는 온기가 흘러나왔다. 그 숨 가쁘고 짜릿한 낱말 하나 속에 숨어서 그의 마음이 당신에게로 건너오려 하는 것처럼. 그러다 그는 갑자기 냅킨을 탁자에 던지고 양해를 구하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베이커 양과 나는 일부러 아무 뜻도 담지 않은 짧은 눈길을 주고받았다. 내가 입을 열려는 참에 그가 몸을 곧추세우더니 경고하듯 "쉿!" 했다. 저편 방에서 낮게 억눌린, 격한 웅얼거림이 들려왔고, 베이커 양은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몸을 기울여 들으려 했다. 웅얼거림은 말이 될락 말락 떨리다가 가라앉았고, 흥분해서 치솟았다가, 이내 뚝 그쳤다.

"말씀하신 그 개츠비 씨가 제 이웃인데—" 내가 말을 꺼냈다.

"말하지 마세요. 어떻게 되는지 듣고 싶어요."

"무슨 일이 있나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물었다.

"모른다는 말씀이에요?" 베이커 양이 정말로 놀라서 말했다. "다들 아는 줄 알았는데."

"모릅니다."

"저기—" 그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톰한테 뉴욕에 여자가 있어요."

"여자가 있다고요?" 나는 멍하니 되뇌었다.

베이커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시간에 전화할 만큼 염치가 없진 말아야 하는 거 아녜요? 안 그래요?"

내가 그 말뜻을 채 붙들기도 전에 옷자락 스치는 소리와 가죽 장화 밟는 소리가 났고, 톰과 데이지가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다.

"어쩔 수 없었어요!" 데이지가 팽팽한 명랑함으로 외쳤다.

그는 자리에 앉아 베이커 양을 살피듯 흘끗 보고 나를 흘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 "잠깐 밖을 봤는데, 밖이 아주 낭만적이에요. 잔디밭에 새가 한 마리 있는데 아무래도 큐나드나 화이트스타 선을 타고 건너온 나이팅게일 같아. 계속 노래하고 있어요—" 그의 목소리가 노래하듯 이어졌다. "낭만적이죠, 톰?"

"아주 낭만적이지." 그가 말하고는 비참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저녁 먹고 나서 아직 밝으면 마구간에 데려가고 싶은데."

안에서 전화가 놀랍도록 크게 울렸고, 데이지가 톰에게 단호히 고개를 젓자 마구간 이야기는, 사실은 모든 이야기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식탁에서 보낸 마지막 오 분의 부서진 조각들 가운데 나는 촛불이 아무 까닭 없이 다시 켜졌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모두를 똑바로 보고 싶으면서 동시에 누구의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데이지와 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지간히 단단한 회의를 몸에 익힌 듯한 베이커 양조차도 이 다섯 번째 손님의 날카로운 쇳소리 같은 다급함을 완전히 머리에서 지우지는 못했으리라. 어떤 기질이라면 이 상황이 흥미진진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내 본능은 당장 경찰에 전화하고 싶은 쪽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말 이야기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톰과 베이커 양은 몇 자쯤 되는 땅거미를 사이에 두고 서재로 어슬렁어슬렁 들어갔다. 손에 잡힐 듯 뚜렷한 시신 곁에서 밤을 새우러 가듯이. 나는 즐겁게 관심 있는 얼굴을 하면서 귀는 조금 어두운 척하며 데이지를 따라 이어진 베란다를 돌아 앞쪽 현관으로 갔다. 깊은 어스름 속에서 우리는 등나무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데이지는 제 얼굴의 어여쁜 모양을 더듬어 보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고, 눈은 차츰 벨벳 같은 땅거미 속으로 옮겨 갔다. 나는 그가 소용돌이치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알아보고, 마음을 가라앉혀 줄 만하다 싶은 질문을 그의 딸에 대해 몇 마디 던졌다.

"우린 서로 잘 모르잖아요, 닉." 그가 불쑥 말했다. "육촌이라 해도. 내 결혼식에도 안 왔잖아요."

"전쟁에서 아직 안 돌아왔었지."

"그렇죠." 그가 망설였다. "저기, 나는 아주 안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닉. 그래서 뭐든 다 시큰둥해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기다렸지만 그는 더 말하지 않았고, 잠시 뒤 나는 어설프게 그의 딸 이야기로 돌아갔다.

"이제 말도 하고, 밥도 먹고, 다 하겠네."

"응, 그럼요." 그가 넋 놓은 눈으로 나를 보았다. "들어 봐요, 닉. 그 애가 태어났을 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말해 줄게요. 듣고 싶어요?"

"아주."

"내가 이런저런 것들을 어떻게 여기게 됐는지 알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그 애가 태어난 지 한 시간도 안 됐고 톰은 어디 있는지 하느님이나 알 일이었죠. 나는 마취에서 깨어나면서 아주 내버려진 기분이었고, 곧바로 간호사한테 사내앤지 계집앤지 물었어요. 딸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고개를 돌리고 울었어요. '그래,' 내가 말했죠. '딸이라 다행이야. 그리고 그 애가 바보였으면 좋겠어—계집애가 이 세상에서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건 그거니까. 예쁘고 자그마한 바보.'

"보다시피 나는 어차피 뭐든 다 끔찍하다고 생각해요." 그가 확신에 찬 투로 말을 이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제일 앞서간 사람들은. 나는 알아요. 안 가 본 데 없고 못 본 것 없고 안 해 본 것 없으니까." 그의 눈이 도전하듯 사방으로 번득였다. 톰과 꽤 닮은 눈길이었다. 그리고 그는 짜릿한 경멸을 담아 웃었다. "세련됐지—맙소사, 나 세련됐어!"

그의 목소리가 끊겨 더는 내 주의를, 내 믿음을 붙들지 않게 된 그 순간, 나는 그가 한 말의 밑바닥에 깔린 불성실을 느꼈다.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저녁 내내가 나에게서 한몫의 감정을 뜯어내려는 무슨 속임수였던 것처럼. 나는 기다렸고, 아니나 다를까 잠시 뒤 그가 사랑스러운 얼굴에 완연한 능글맞은 웃음을 띠고 나를 보았다. 저와 톰이 속한 어지간히 이름난 비밀 결사의 회원임을 밝히기라도 한 듯이.

* * *

안에서는 진홍빛 방이 불빛으로 활짝 피어 있었다. 톰과 베이커 양은 긴 소파의 양 끝에 앉아 있었고, 그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를 톰에게 소리 내어 읽어 주고 있었다. 웅얼거리듯 억양 없는 낱말들이 서로 이어져 마음을 달래는 곡조가 되었다. 등불은 톰의 장화 위에서 환하고 그의 가을 잎 같은 노란 머리 위에서 흐렸는데, 그가 팔의 가느다란 근육을 파르르 움직이며 책장을 넘길 때 종이를 따라 반짝였다.

우리가 들어서자 그는 손을 들어 우리를 잠시 잠자코 있게 했다.

"다음 호에," 그가 잡지를 탁자에 던지며 말했다. "계속됩니다."

무릎을 안절부절못하게 움직이며 그의 몸이 저를 내세웠고, 그는 일어섰다.

"열 시." 그가 천장에서 시각을 찾아낸 듯이 말했다. "착한 아이는 잘 시간."

"조던이 내일 시합에 나가요." 데이지가 설명했다. "웨스트체스터에서."

"아—조던 베이커시군요."

이제야 나는 그 얼굴이 왜 낯익었는지 알았다. 애슈빌과 핫스프링스와 팜비치의 스포츠 생활을 찍은 숱한 그라비어 사진에서 그 기분 좋게 업신여기는 표정이 나를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었다. 흠잡는,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였는데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오래전에 잊어버렸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가 나직이 말했다. "여덟 시에 깨워 줘."

"네가 일어나기만 한다면."

"일어날 거야. 안녕히 가세요, 캐러웨이 씨. 머잖아 또 뵈어요."

"물론 또 볼 거예요." 데이지가 못 박았다. "사실 내가 아예 혼사를 하나 주선할까 봐요. 자주 놀러 와요, 닉. 그럼 내가 슬쩍—아—둘을 엮어 줄게. 알잖아요—실수인 척 두 사람을 벽장에 가둬 놓는다든가, 배에 태워 바다로 밀어 보낸다든가, 그런 것들 있잖아—"

"안녕히 주무세요." 계단에서 베이커 양이 외쳤다. "저는 한마디도 못 들었어요."

"괜찮은 아가씨지." 잠시 뒤 톰이 말했다. "저렇게 온 나라를 쏘다니게 두면 안 되는데."

"누가 안 되게 해요?" 데이지가 쌀쌀맞게 물었다.

"저 집 식구들이."

"저 애 식구라고는 천 살쯤 먹은 이모 하나예요. 게다가 닉이 돌봐 줄 거잖아, 그렇지, 닉? 저 애 이번 여름에 주말마다 여기 와서 지낼 거예요. 가정의 영향이 아주 좋을 것 같아."

데이지와 톰은 잠깐 말없이 서로를 보았다.

"뉴욕 사람인가?" 내가 얼른 물었다.

"루이빌 사람이에요. 우리의 새하얀 소녀 시절을 거기서 같이 보냈죠. 우리의 아름답고 새하얀—"

"베란다에서 닉하고 진솔한 얘기라도 나눴나?" 톰이 불쑥 물었다.

"내가?" 그가 나를 보았다.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노르딕 인종 얘기를 한 것 같아. 응, 틀림없이 그랬어. 어쩌다 슬그머니 그 얘기가 나와서, 정신 차려 보니—"

"듣는 걸 다 믿진 말게, 닉." 톰이 나에게 일러 주었다.

나는 아무것도 못 들었다고 가볍게 말했고, 몇 분 뒤 집에 가려고 일어섰다. 두 사람은 문까지 나와 환한 네모난 불빛 속에 나란히 섰다. 내가 시동을 걸자 데이지가 딱 잘라 불렀다. "잠깐만!

"물어볼 걸 깜빡했는데, 중요한 거예요. 서부에서 어떤 아가씨하고 약혼했다던데."

"맞아." 톰이 다정하게 거들었다. "약혼했다고 들었네."

"그건 명예훼손이지. 나는 너무 가난해."

"그래도 들었는걸." 데이지가 우겼다. 다시 꽃처럼 활짝 열리는 것이 나를 놀라게 했다. "세 사람한테 들었으니까 사실이겠죠."

물론 나는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았지만 나는 어렴풋이도 약혼한 적이 없었다. 소문이 벌써 혼인 공고까지 냈다는 것이 내가 동부로 온 까닭 가운데 하나였다. 헛소문 때문에 오랜 친구와 만나기를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소문에 떠밀려 결혼할 생각도 없었다.

두 사람의 관심이 어쩐지 내 마음을 건드렸고 그들을 그렇게 멀리 있는 부자로만 보이지 않게 했다. 그런데도 나는 차를 몰고 나오면서 혼란스러웠고 조금은 역겨웠다. 나로서는 데이지가 할 일이란 아이를 안고 그 집을 뛰쳐나오는 것 같았는데, 그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은 조금도 없는 것이 분명했다. 톰으로 말하자면, 그가 "뉴욕에 여자가 있다"는 사실보다 그가 책 한 권 때문에 우울해졌다는 사실이 실은 더 놀라웠다. 무언가가 그로 하여금 케케묵은 생각들의 가장자리를 갉아먹게 하고 있었다. 튼튼한 육체의 자기중심이 이제는 그의 제멋대로인 마음을 먹여 살리지 못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길가 술집 지붕 위에도, 길가 정비소 앞에도 이미 한여름이었다. 새빨간 새 주유기가 웅덩이 같은 불빛 속에 나앉아 있었다. 웨스트에그의 내 집에 이르러 나는 차를 헛간 밑에 넣고 마당에 버려진 잔디 롤러 위에 한참 앉아 있었다. 바람은 잦아들어 요란하고 환한 밤을 남겼다. 나무에서 날개 치는 소리가 났고, 땅의 커다란 풀무가 개구리들에게 생명을 잔뜩 불어넣는 동안 끈질긴 오르간 소리가 이어졌다. 움직이는 고양이의 그림자가 달빛을 가로질러 일렁였고, 고개를 돌려 그것을 보다가 나는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알았다—오십 보쯤 떨어진 곳에 이웃집 저택의 그늘에서 한 사람이 나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별들의 은빛 후춧가루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느긋한 몸짓과 잔디 위에 단단히 딛고 선 발이 그가 다름 아닌 개츠비 씨임을, 이 동네 하늘 가운데 제 몫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러 나온 것임을 일러 주었다.

나는 그를 부르기로 했다. 베이커 양이 저녁 자리에서 그의 이름을 꺼냈으니 인사말로는 그것으로 충분할 터였다. 그러나 나는 부르지 않았다. 그가 혼자 있는 것으로 족하다는 기색을 문득 내비쳤기 때문이다—그는 이상한 몸짓으로 어두운 물을 향해 두 팔을 뻗었고,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나는 그가 떨고 있었다고 맹세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바다 쪽을 흘끗 보았다—그리고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했다. 오직 초록빛 등 하나, 아주 작고 아득한, 어느 부두 끝일지도 모를 등 하나뿐이었다. 다시 개츠비를 찾았을 때 그는 사라지고 없었고, 나는 편치 않은 어둠 속에 다시 혼자였다.

2장

웨스트에그와 뉴욕의 딱 중간쯤에서 자동차 도로는 서둘러 철길에 붙어 사백 미터쯤 그 옆을 나란히 달린다. 어떤 황량한 땅뙈기에서 몸을 움츠려 떨어지려는 것이다. 여기가 재의 골짜기다—재가 밀처럼 자라 이랑이 되고 언덕이 되고 기괴한 정원이 되는 환상 속의 농장. 재가 집과 굴뚝과 피어오르는 연기의 꼴을 하고, 마침내는 초월적인 안간힘을 다해 잿빛 사람들의 꼴을 하는 곳. 그 사람들은 가루 같은 공기 속을 흐릿하게, 벌써 부서져 가면서 움직인다. 이따금 잿빛 화물칸 한 줄이 보이지 않는 선로를 따라 기어와서는 소름 끼치는 삐걱 소리를 내고 멈춘다. 그러면 곧바로 잿빛 사람들이 납빛 삽을 들고 몰려들어 뚫고 볼 수 없는 구름을 일으키고, 그 구름이 그들의 알 수 없는 작업을 당신의 눈에서 가려 준다.

그러나 잿빛 땅과 그 위를 끝없이 떠도는 스산한 먼지의 경련 너머로, 잠시 뒤 당신은 T. J. 에클버그 박사의 두 눈을 알아보게 된다. T. J. 에클버그 박사의 두 눈은 파랗고 거대하다—망막의 높이가 일 미터에 가깝다. 그 눈은 어떤 얼굴에서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있지도 않은 코 위에 걸린 커다란 노란 안경에서 내다본다. 어느 짓궂은 안경 장수가 퀸스 자치구에서 손님을 늘려 보려고 저기 세워 놓고는, 그 자신은 영원한 눈멂 속으로 가라앉았거나 아니면 잊어버리고 이사를 가 버린 모양이다. 그러나 볕과 비 아래 덧칠 없는 날들을 보내며 조금 흐려진 그 눈은 여전히 이 엄숙한 쓰레기터를 굽어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다.

재의 골짜기는 한쪽이 작고 더러운 강에 막혀 있는데, 바지선을 지나보내느라 도개교가 들려 있으면 기다리는 기차의 승객들은 삼십 분씩이나 그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들여다볼 수 있다. 거기서는 늘 적어도 일 분은 멈춘다. 내가 톰 뷰캐넌의 정부를 처음 만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에게 여자가 있다는 사실은 그를 아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사람들이 못 박아 말했다. 그가 이름난 카페에 그 여자를 데리고 나타나서는 여자를 탁자에 앉혀 두고 어슬렁거리며 아는 사람 아무하고나 지껄인다는 것을 그의 지인들은 못마땅해했다. 나는 그 여자를 보고 싶기는 했으나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그런데 만났다. 어느 날 오후 나는 톰과 함께 기차로 뉴욕에 올라가고 있었는데, 잿더미 옆에 섰을 때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 팔꿈치를 붙잡고 말 그대로 나를 객차 밖으로 끌어냈다.

"우린 내리네." 그가 우겼다. "내 여자를 자네한테 보여 주고 싶어."

점심에 꽤 퍼마신 모양이었고, 나를 데리고 다니겠다는 그의 고집은 거의 폭력에 가까웠다. 일요일 오후에 내가 달리 할 일이 있을 리 없다는 오만한 짐작이 깔려 있었다.

나는 그를 따라 낮은 회칠한 철도 울타리를 넘었고, 우리는 에클버그 박사의 집요한 눈길 아래 길을 따라 백 미터쯤 되돌아 걸었다. 보이는 건물이라고는 황무지 가장자리에 앉은 자그마한 노란 벽돌 건물 하나뿐이었다. 이 황무지를 섬기는 보잘것없는 큰길 같은 것이었고, 그 밖의 무엇과도 닿아 있지 않았다. 그 안에 든 세 가게 가운데 하나는 세를 놓았고, 하나는 재의 오솔길을 밟고 가야 하는 밤새 여는 식당이었다. 셋째가 정비소였다—「수리. 조지 B. 윌슨. 자동차 삽니다 팝니다.」—그리고 나는 톰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장사가 안 되는 티가 나고 휑했다. 보이는 차라고는 어둑한 구석에 웅크린 먼지투성이 포드 잔해뿐이었다. 이 그림자 같은 정비소는 눈속임일 뿐이고 위층에 호사스럽고 낭만적인 방들이 감춰져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막 들었을 때, 주인이 손수 폐천 조각에 손을 닦으며 사무실 문에 나타났다. 금발에 기운 없는 사내였고, 핏기가 없었으며, 어렴풋이 잘생겼다. 우리를 보자 그의 옅은 파란 눈에 축축한 희망의 빛이 번졌다.

"안녕한가, 윌슨." 톰이 유쾌하게 그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장사는 어떤가?"

"불평할 건 없죠." 윌슨이 미덥지 않게 대답했다. "그 차는 언제 저한테 파실 겁니까?"

"다음 주에. 지금 사람을 붙여 손보게 하고 있어."

"일이 꽤 더디군요, 그렇죠?"

"아니, 안 더뎌." 톰이 쌀쌀하게 말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다른 데 파는 게 낫겠군."

"그런 뜻이 아닙니다." 윌슨이 얼른 해명했다. "그저 제 말은—"

그의 목소리가 사그라들었고 톰은 못마땅한 눈으로 정비소를 둘러보았다. 그때 나는 계단에서 발소리를 들었고, 잠시 뒤 좀 두툼한 여자의 몸이 사무실 문의 빛을 가로막았다. 서른대여섯쯤 되었고 어렴풋이 살졌으나, 어떤 여자들이 그러듯 제 살을 관능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짙푸른 크레이프드신 물방울무늬 옷 위에 얹힌 얼굴에는 아름다움의 면도 빛도 없었지만, 곧바로 알아볼 수 있는 생기가 있었다. 몸의 신경이 끊임없이 이글거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천천히 웃고는 남편이 유령이기라도 한 듯 그를 뚫고 지나와 톰과 악수했다. 톰의 눈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면서. 그러고는 입술을 축이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부드럽고 거친 목소리로 남편에게 말했다.

"의자 좀 가져와요, 누가 좀 앉게."

"아, 그럼." 윌슨이 서둘러 대꾸하고는 자그마한 사무실 쪽으로 갔고, 곧바로 벽의 시멘트 빛깔에 섞여 들었다. 잿빛 흰 먼지가 그의 검은 양복과 창백한 머리에 너울을 씌우고 있었다. 그 언저리의 모든 것에 그랬듯이—오직 톰 곁으로 다가선 그의 아내만 빼고.

"당신 보고 싶어." 톰이 다잡아 말했다. "다음 기차를 타."

"알았어요."

"아래층 신문 가판대 옆에서 만나."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톰에게서 물러섰다. 마침 조지 윌슨이 의자 두 개를 들고 사무실 문에서 나오는 참이었다.

우리는 길 아래쪽 눈에 띄지 않는 데서 그를 기다렸다. 독립기념일을 며칠 앞둔 때였고, 잿빛의 비쩍 마른 이탈리아 아이 하나가 철길을 따라 폭죽을 한 줄로 늘어놓고 있었다.

"끔찍한 데지, 안 그런가." 톰이 에클버그 박사와 찌푸린 얼굴을 주고받으며 말했다.

"지독하군."

"저 여자한테는 빠져나오는 게 좋아."

"남편이 뭐라 안 하나?"

"윌슨 말인가? 저 여자가 뉴욕에 언니 보러 가는 줄 아네. 저 친구는 어찌나 멍청한지 제가 살아 있는 줄도 몰라."

그렇게 해서 톰 뷰캐넌과 그의 여자와 나는 함께 뉴욕으로 올라갔다—아니, 아주 함께는 아니었다. 윌슨 부인은 조심스레 다른 객차에 앉았기 때문이다. 톰은 기차에 타고 있을지 모를 이스트에그 사람들의 심기를 그만큼은 헤아려 준 것이다.

그는 옷을 갈색 무늬 모슬린으로 갈아입은 참이었는데, 뉴욕에서 톰이 그를 승강장으로 부축해 내릴 때 그 옷이 제법 넓은 엉덩이 위로 팽팽히 당겨졌다. 신문 가판대에서 그는 「타운 태틀」 한 권과 영화 잡지 한 권을 샀고, 역 안 약국에서는 콜드크림과 자그마한 향수병 하나를 샀다. 위층의 엄숙하게 울리는 차 대는 곳에서 그는 택시 넉 대를 그냥 보내고 나서야 한 대를 골랐다. 잿빛 시트를 댄 연보랏빛 새 차였다. 우리는 그 차를 타고 역의 덩어리를 빠져나와 이글거리는 햇살 속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창에서 홱 몸을 돌리더니 앞으로 기대어 앞유리를 두드렸다.

"저 개 하나 사고 싶어."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아파트에 둘 걸로 하나 사고 싶어. 있으면 좋잖아—개."

우리는 존 D. 록펠러를 어처구니없을 만큼 빼닮은 잿빛 노인 쪽으로 차를 물렸다. 목에 걸어 늘어뜨린 바구니 안에 품종을 알 수 없는 갓 난 강아지 열두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무슨 종이에요?" 노인이 택시 창으로 다가오자 윌슨 부인이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온갖 종이죠. 어떤 걸 원하십니까, 부인?"

"저 셰퍼드 같은 걸 하나 갖고 싶은데, 그런 건 없겠죠?"

노인은 미심쩍은 눈으로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더니 손을 쑥 집어넣어 한 마리를 목덜미째 버둥거리는 채로 끌어 올렸다.

"저건 셰퍼드가 아니야." 톰이 말했다.

"예, 정확히 셰퍼드는 아닙니다." 노인이 실망이 밴 목소리로 말했다. "에어데일 쪽에 가깝죠." 그는 걸레 같은 갈색 등을 손으로 쓸었다. "저 털 좀 보십쇼. 저만한 털이 없어요. 감기 걸려서 성가시게 할 일 없는 개랍니다."

"귀엽다." 윌슨 부인이 신이 나서 말했다. "얼마예요?"

"저 개요?" 노인은 감탄하는 눈으로 개를 보았다. "저 개는 십 달러 되겠습니다."

에어데일은—발이 놀랄 만큼 하얗기는 했으나 어딘가에 에어데일이 섞인 것은 틀림없었다—주인이 바뀌어 윌슨 부인의 무릎에 자리를 잡았고, 그는 황홀해하며 그 비바람에 끄떡없다는 털을 쓰다듬었다.

"수컷이에요, 암컷이에요?"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개요? 저 개는 수컷입니다."

"암캐야." 톰이 딱 잘라 말했다. "여기 돈 있소. 이걸로 개 열 마리 더 사시오."

우리는 오번가로 차를 몰았다. 여름 일요일 오후의 오번가는 따뜻하고 부드러웠고, 거의 목가적이었다. 하얀 양 떼가 모퉁이를 돌아 나온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잠깐." 내가 말했다. "나는 여기서 빠져야겠네."

"그럴 것 없어." 톰이 얼른 말을 막았다. "자네가 아파트에 안 올라가면 머틀이 서운해할 걸세. 안 그런가, 머틀?"

"가요." 그가 부추겼다. "언니 캐서린한테 전화할게요. 볼 줄 아는 사람들 말로는 아주 예쁘대요."

"글쎄, 그러고는 싶지만—"

우리는 계속 가서 공원을 가로질러 되돌아 웨스트 100번가 쪽으로 갔다. 158번가에서 택시가 길게 늘어선 흰 케이크 같은 아파트 건물들의 한 조각 앞에 섰다. 윌슨 부인은 임금님 같은 귀가의 눈길을 동네에 한 바퀴 던지고는 개와 나머지 물건들을 챙겨 도도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매키 부부를 올라오라고 해야지." 승강기가 올라가는 동안 그가 알렸다. "그리고 물론 언니한테도 전화하고."

아파트는 꼭대기 층이었다—작은 거실, 작은 식당, 작은 침실, 그리고 욕실. 거실은 방에 비해 터무니없이 큰 태피스트리 가구 한 벌로 문간까지 꽉 차 있어서, 움직인다는 것은 곧 베르사유 정원에서 그네 타는 귀부인들 위로 끊임없이 발이 걸린다는 뜻이었다. 그림이라고는 지나치게 확대한 사진 한 장뿐이었는데, 흐릿한 바위에 앉은 암탉처럼 보였다. 그러나 멀찍이서 보면 암탉은 챙 달린 모자로 풀려나고, 살진 노부인의 얼굴이 방 안을 환하게 내려다보았다. 탁자에는 「타운 태틀」 지난 호 몇 권과 「베드로라 불린 시몬」 한 권, 브로드웨이의 자잘한 추문 잡지 몇 권이 놓여 있었다. 윌슨 부인은 우선 개부터 챙겼다. 마지못한 승강기 소년이 짚을 채운 상자와 우유를 가지러 갔고, 제 딴에는 알아서 크고 딱딱한 개 비스킷 한 통까지 챙겨 왔다. 그중 한 개는 오후 내내 우유 접시 속에서 시들하게 풀어졌다. 그동안 톰은 잠긴 장롱 문에서 위스키 한 병을 꺼내 왔다.

살면서 술에 취해 본 것이 딱 두 번인데 두 번째가 그날 오후였다. 그래서 일어난 모든 일에 흐릿하고 뿌연 기운이 씌어 있다. 여덟 시가 넘도록 아파트는 명랑한 볕으로 가득했는데도. 윌슨 부인은 톰의 무릎에 앉아 전화로 여러 사람에게 걸었다. 그러다 담배가 떨어져서 내가 모퉁이 약국에 사러 나갔다. 돌아와 보니 둘 다 사라지고 없어서 나는 조심스레 거실에 앉아 「베드로라 불린 시몬」 한 장을 읽었다—형편없는 물건이었거나 아니면 위스키가 사물을 일그러뜨렸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나에게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톰과 머틀이 (첫 잔을 마신 뒤로 윌슨 부인과 나는 서로 이름을 불렀다) 다시 나타나는 바로 그때, 손님들이 아파트 문에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언니 캐서린은 서른쯤 된 호리호리하고 세상 물정에 밝은 여자였고, 붉은 머리를 굳고 끈적하게 단발로 붙여 놓았으며, 살빛은 젖처럼 희게 분칠해 두었다. 눈썹은 뽑아냈다가 더 멋들어진 각도로 다시 그려 놓았는데, 본래 자리로 되돌리려는 자연의 노력이 그 얼굴에 흐릿한 기운을 주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팔에서 숱한 도기 팔찌들이 오르내리며 쉼 없이 딸그락거렸다. 어찌나 제집인 양 서둘러 들어오고 어찌나 제 것인 양 가구를 둘러보는지 나는 그가 여기 사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물어보니 그는 지나치게 크게 웃고는 내 질문을 소리 내어 되뇌고 나서 여자 친구와 호텔에서 산다고 말했다.

매키 씨는 아래층에 사는 창백하고 여자 같은 사내였다. 방금 면도를 한 참이었는지 광대뼈에 흰 비누 거품 자국이 있었고, 방 안 모든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이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는 자기가 "예술 쪽 일"을 한다고 나에게 알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진사였고, 벽에 엑토플라즘처럼 떠 있는 윌슨 부인 어머니의 그 흐릿한 확대 사진을 만든 사람이었다. 그의 아내는 목소리가 째지고 나른하고 잘생겼고 끔찍했다. 그는 결혼한 뒤로 남편이 자기를 백스물일곱 번 찍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윌슨 부인은 어느새 옷을 갈아입어 이제는 크림빛 시폰의 공들인 오후용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방 안을 휩쓸고 다닐 때마다 그 옷에서 끊임없이 사그락 소리가 났다. 옷의 힘을 받아 그의 사람됨도 달라져 있었다. 정비소에서 그토록 두드러졌던 강렬한 생기가 위풍당당한 오만으로 바뀌어 있었다. 웃음도, 몸짓도, 하는 말도 순간순간 더 사납게 꾸며졌고, 그가 부풀어 오를수록 방은 그를 둘러싸고 좁아져서, 끝내는 그가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시끄럽게 삐걱대는 굴대를 축으로 빙빙 도는 것처럼 보였다.

"얘," 그가 언니에게 높고 새침한 목소리로 외치듯 말했다. "그 인간들 대개는 번번이 사람을 등쳐먹어. 머릿속에 돈밖에 없다니까. 지난주에 여자 하나를 불러서 발을 봐 달라고 했는데, 계산서를 내미는 걸 보니까 무슨 내 맹장이라도 떼어 낸 줄 알겠더라."

"그 여자 이름이 뭔데요?" 매키 부인이 물었다.

"에버하트 부인. 남의 집으로 돌아다니면서 발을 봐 줘요."

"그 옷 마음에 드네요." 매키 부인이 말했다. "정말 사랑스러워요."

윌슨 부인은 업신여기듯 한쪽 눈썹을 치켜올려 그 칭찬을 물리쳤다.

"이거야 그냥 낡아 빠진 거예요." 그가 말했다.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을 때나 가끔 걸치는 거지."

"그래도 언니한테 정말 잘 어울려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매키 부인이 물고 늘어졌다. "체스터가 그 자세로만 담을 수 있으면 뭔가 만들어 낼 수 있을 텐데."

우리는 모두 말없이 윌슨 부인을 보았고, 그는 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한 올을 걷어 내고 눈부신 미소로 우리를 마주 보았다. 매키 씨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얼굴 앞에서 손을 천천히 앞뒤로 움직였다.

"나라면 조명을 바꾸겠어요." 잠시 뒤 그가 말했다. "이목구비의 입체감을 살리고 싶군요. 그리고 뒷머리는 다 잡아 보겠습니다."

"조명을 바꾸다니 말도 안 돼요." 매키 부인이 소리쳤다. "내 생각엔 저게—"

남편이 "쉿!" 했고 우리는 모두 다시 그 피사체를 보았다. 그러자 톰 뷰캐넌이 들리게 하품을 하고 일어섰다.

"매키 씨 부부, 뭐 좀 마시죠." 그가 말했다. "얼음하고 탄산수 좀 더 가져와, 머틀. 다들 잠들기 전에."

"얼음은 그 애한테 말해 뒀어요." 머틀이 아랫것들의 게으름에 절망한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런 사람들이란! 노상 뒤를 밟고 있어야 한다니까."

그는 나를 보고 까닭 없이 웃었다. 그러고는 개에게 사뿐사뿐 다가가 황홀해하며 입을 맞추고, 주방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거기서 요리사 열둘이 제 분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한 태도로.

"롱아일랜드에서 괜찮은 걸 몇 점 찍었지요." 매키 씨가 힘주어 말했다.

톰이 멍하니 그를 보았다.

"그중 두 점은 아래층에 액자로 걸어 놨습니다."

"두 점 뭐요?" 톰이 물었다.

"습작 두 점요. 하나는 「몬토크곶—갈매기들」이라 부르고, 다른 하나는 「몬토크곶—바다」라고 부릅니다."

언니 캐서린이 소파에서 내 옆에 앉았다.

"댁도 롱아일랜드 쪽에 사세요?" 그가 물었다.

"웨스트에그에 삽니다."

"정말요? 한 달쯤 전에 거기 파티에 갔었는데. 개츠비라는 사람 집에요. 아세요?"

"바로 옆집에 삽니다."

"저기, 그 사람이 카이저 빌헬름의 조카인가 사촌인가라던데요. 돈이 다 거기서 나온 거래요."

"정말입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 사람 무서워요. 나에 대해 뭐라도 쥐게 되면 큰일이지."

내 이웃에 대한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매키 부인이 갑자기 캐서린을 가리키는 바람에 끊겼다.

"체스터, 이 사람으로도 뭔가 할 수 있겠어요." 그가 불쑥 말했지만 매키 씨는 심드렁하게 고개만 끄덕이고 톰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들어갈 길만 있다면 롱아일랜드에서 더 일해 보고 싶은데요. 첫발만 디디게 해 주면 됩니다."

"머틀한테 부탁하시오." 톰이 말했다. 윌슨 부인이 쟁반을 들고 들어오자 그는 짧게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소개장을 써 줄 거요. 안 그래, 머틀?"

"뭘 해요?" 그가 놀라서 물었다.

"매키한테 자네 남편 앞으로 소개장을 써 주라고. 남편 습작을 좀 찍게 말이야." 그는 지어내느라 잠시 입술을 소리 없이 움직였다. "'주유기 앞의 조지 B. 윌슨' 뭐 그런 걸로."

캐서린이 나에게 바싹 기대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 둘 다 제 배우자를 못 견뎌 해요."

"못 견뎌요?"

"못 견뎌요." 그가 머틀을 보았다가 톰을 보았다. "내 말은, 못 견디겠으면 왜 계속 같이 사느냐는 거죠. 나 같으면 당장 이혼하고 둘이 결혼하겠어요."

"저분도 윌슨을 좋아하지 않나요?"

이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질문을 엿들은 머틀에게서 나왔는데, 사납고 상스러웠다.

"보셨죠." 캐서린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그러고는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사실 둘을 갈라놓고 있는 건 저 남자 아내예요. 가톨릭이라 이혼을 안 믿는대요."

데이지는 가톨릭이 아니었고, 나는 거짓말이 그토록 공들여 지어진 것에 조금 놀랐다.

"결혼하고 나면," 캐서린이 말을 이었다. "잠잠해질 때까지 얼마간 서부에 가서 살 거예요."

"유럽에 가는 편이 눈에 덜 띌 텐데요."

"어머, 유럽 좋아하세요?" 그가 뜻밖에 큰 소리로 말했다. "나 몬테카를로에서 막 돌아왔는데."

"그렇습니까."

"바로 작년에요. 다른 여자애랑 같이 갔어요."

"오래 계셨나요?"

"아뇨, 그냥 몬테카를로 갔다가 돌아왔어요. 마르세유를 거쳐서요. 떠날 때 천이백 달러가 넘게 있었는데 특별실에서 이틀 만에 몽땅 털렸죠. 돌아오느라 아주 죽는 줄 알았어요, 정말이지. 세상에, 그 도시가 어찌나 밉던지!"

늦은 오후의 하늘이 잠시 창에서 지중해의 푸른 꿀처럼 피어올랐다—그러다 매키 부인의 째지는 목소리가 나를 다시 방 안으로 불러들였다.

"나도 하마터면 잘못될 뻔했어요." 그가 기운차게 늘어놓았다. "몇 년을 쫓아다니던 쬐그만 유대인 놈하고 결혼할 뻔했다니까요. 나보다 아래인 줄은 알고 있었죠. 다들 나한테 그랬어요. '루실, 그 남자는 너보다 한참 아래야!' 그래도 체스터를 안 만났으면 그놈한테 넘어갔을 거예요, 틀림없이."

"그래요, 그런데 들어 봐요." 머틀 윌슨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도 언니는 그 남자하고 결혼은 안 했잖아요."

"안 했지, 알아요."

"난 했거든요." 머틀이 알쏭달쏭하게 말했다. "그게 언니 경우하고 내 경우의 차이예요."

"왜 했는데, 머틀?" 캐서린이 따졌다. "아무도 억지로 시키지 않았잖아."

머틀이 생각에 잠겼다.

"신사인 줄 알고 결혼했지." 마침내 그가 말했다. "가정 교육이란 걸 좀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 신발 핥을 자격도 없는 인간이었어."

"한동안은 그 사람한테 홀딱 빠져 있었잖아." 캐서린이 말했다.

"홀딱 빠져?" 머틀이 못 믿겠다는 듯 소리쳤다. "누가 내가 홀딱 빠졌대? 저기 저 남자한테 빠진 것보다 더 빠진 적 없어."

그가 갑자기 나를 가리켰고, 모두가 나무라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애정 같은 걸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표정으로 알리려 애썼다.

"내가 미쳤던 건 그 사람하고 결혼한 그때뿐이야. 잘못했다는 걸 바로 알았지. 결혼식에 입으려고 남의 제일 좋은 양복을 빌려 왔으면서 나한테 말도 안 했어. 그러다 어느 날 그 사람 없을 때 임자가 찾으러 온 거야. '어머, 그게 댁 양복이에요?' 내가 그랬지. '난 오늘 처음 듣는데요.' 그래도 내주고 나서 드러누워 오후 내내 목 놓아 울었어."

"저 애는 정말 저 남자한테서 벗어나야 해요." 캐서린이 나에게 다시 말했다. "저 정비소 위에서 십일 년을 살았어요. 그리고 톰이 저 애가 가져 본 첫 애인이고요."

위스키 병은—두 번째 병이었다—이제 그 자리의 모두에게 끊임없이 불려 다녔다. 다만 캐서린만 빼고. 그는 "아무것도 안 마셔도 똑같이 기분 좋다"고 했다. 톰이 종을 울려 관리인을 불러 이름난 샌드위치를 사 오게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저녁 한 끼가 되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 부드러운 땅거미 속을 공원 쪽 동쪽으로 걷고 싶었지만, 가려고 할 때마다 무슨 사납고 시끄러운 말다툼에 얽혀 들어 밧줄에라도 끌리듯 다시 의자로 끌려왔다. 그래도 도시 높은 곳에서 우리 집의 노란 창 줄기는 어두워 가는 거리의 무심한 구경꾼에게 사람 사는 비밀의 한몫을 보태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나는 그 사람도 보았다, 올려다보며 궁금해하는 그를. 나는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밖에 있었고, 마르지 않는 삶의 온갖 모습에 홀리면서 동시에 밀쳐졌다.

머틀이 제 의자를 내 의자 가까이 끌어당겼고, 갑자기 그의 뜨거운 숨결이 톰과 처음 만난 이야기를 내 위로 쏟아 놓았다.

"기차에서 늘 맨 마지막까지 남는 그 마주 보는 조그만 자리 둘이었어요. 나는 언니 보러 뉴욕에 올라가서 하룻밤 자려던 참이었고요. 그 사람은 예복에 에나멜 구두를 신었는데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죠.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볼 때마다 나는 그 사람 머리 위 광고를 보는 척해야 했어요. 역에 들어설 때 그 사람이 내 옆에 있었고, 그 하얀 셔츠 앞자락이 내 팔에 눌렸어요. 그래서 내가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지만 그 사람은 내가 거짓말하는 걸 알았죠. 어찌나 들떴던지 그 사람하고 택시에 올라탈 때 내가 지하철에 타는 게 아니라는 것도 거의 몰랐어요. 머릿속에서 내내 되풀이한 건 이것뿐이었어요. '영원히 살 수는 없어, 영원히 살 수는 없어.'"

그가 매키 부인 쪽으로 돌아섰고, 방 안이 그의 꾸민 웃음소리로 가득 울렸다.

"얘," 그가 외쳤다. "이 옷 내가 다 입고 나면 너한테 줄게. 내일 하나 또 사야 해. 사야 할 것들을 다 적어 놔야겠어. 마사지하고 파마하고, 개 목걸이하고, 용수철을 누르면 되는 그 앙증맞은 재떨이하고, 여름 내내 갈 만한 검은 비단 리본 두른 화환 하나, 엄마 무덤에 놓을 거. 해야 할 일들을 안 잊어버리게 목록을 적어 놔야겠어."

아홉 시였다—그러고는 거의 곧바로 시계를 보니 열 시였다. 매키 씨는 두 주먹을 무릎에 꽉 쥔 채 의자에서 잠들어 있었다. 행동하는 사내를 찍은 사진처럼. 나는 손수건을 꺼내 오후 내내 나를 거슬리게 한 그의 볼의 마른 비누 거품 자국을 닦아 주었다.

작은 개는 탁자에 앉아 먼 눈으로 담배 연기 너머를 보며 이따금 희미하게 끙끙거렸다. 사람들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고, 어딘가 가자고 궁리했다가 서로를 잃어버리고, 서로를 찾다가, 두어 걸음 앞에서 서로를 찾아냈다. 자정 무렵 언젠가 톰 뷰캐넌과 윌슨 부인이 얼굴을 맞대고 서서, 윌슨 부인이 데이지의 이름을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는지를 두고 격한 목소리로 다투었다.

"데이지! 데이지! 데이지!" 윌슨 부인이 소리쳤다. "내가 부르고 싶을 때 부를 거야! 데이지! 데이—"

톰 뷰캐넌은 짧고 능란한 동작 한 번으로 편 손바닥을 휘둘러 그의 코를 부러뜨렸다.

그러고 나서 욕실 바닥에는 피 묻은 수건들이 널렸고, 여자들의 나무라는 목소리가 났고, 그 아수라장 위로 길게 끊기는 고통의 울부짖음이 높이 솟았다. 매키 씨가 선잠에서 깨어 얼떨떨한 걸음으로 문 쪽으로 갔다. 반쯤 가다가 그는 돌아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그의 아내와 캐서린이 나무라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응급 물품을 들고 빼곡한 가구 사이를 이리저리 비틀거리고 있었고, 소파 위의 절망한 사람은 피를 줄줄 흘리며 「타운 태틀」 한 권을 베르사유 풍경 태피스트리 위에 펼쳐 덮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고는 매키 씨가 돌아서서 문밖으로 계속 나갔다. 나는 샹들리에에서 모자를 집어 그를 따라갔다.

"언제 점심 같이 하시죠." 승강기가 신음하며 내려가는 동안 그가 말했다.

"어디서요?"

"아무 데서나."

"손 좀 손잡이에서 떼세요." 승강기 소년이 쏘아붙였다.

"이거 미안하오." 매키 씨가 점잖게 말했다. "만지는 줄 몰랐소."

"좋습니다." 내가 응했다. "기꺼이 그러지요."

…나는 그의 침대 옆에 서 있었고 그는 속옷 바람으로 이불 사이에 일어나 앉아 커다란 작품집을 손에 들고 있었다.

"「미녀와 야수」…「고독」…「늙은 식료품점 말」…「브루클린 다리」…"

그러고 나서 나는 펜실베이니아역의 차가운 아래층에서 반쯤 잠든 채 누워 조간 「트리뷴」을 들여다보며 네 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3장

여름밤이면 이웃집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의 푸른 정원에서 남자들과 아가씨들이 속삭임과 샴페인과 별들 사이를 나방처럼 오갔다. 오후 밀물 때면 나는 그의 손님들이 뗏목 위 다이빙대에서 뛰어드는 것을, 아니면 그의 모래밭 뜨거운 모래 위에서 볕을 쬐는 것을 보았다. 그동안 그의 모터보트 두 대가 해협의 물을 갈랐고, 거품의 폭포 위로 수상판을 끌었다. 주말이면 그의 롤스로이스가 합승 마차가 되어 아침 아홉 시부터 자정을 한참 넘긴 시각까지 사람들을 시내로 실어 나르고 실어 왔고, 그의 왜건은 부지런한 노란 벌레처럼 기차란 기차는 다 마중하러 종종거렸다. 그리고 월요일이면 정원사 한 명을 더 넣어 여덟 명의 하인이 자루걸레와 솔과 망치와 정원 가위를 들고 하루 종일 애를 썼다. 전날 밤의 난장판을 손보느라.

금요일마다 뉴욕의 과일 장수에게서 오렌지와 레몬 다섯 상자가 왔다—그리고 월요일마다 바로 그 오렌지와 레몬이 알맹이 없는 반쪽들의 피라미드가 되어 그의 뒷문을 나갔다. 주방에는 집사의 엄지로 조그만 단추를 이백 번 누르면 삼십 분 만에 오렌지 이백 개의 즙을 짜낼 수 있는 기계가 있었다.

적어도 보름에 한 번은 출장 요리사들이 몰려와 백 미터가 넘는 천막천과 개츠비의 거대한 정원을 크리스마스트리로 만들 만한 색색 전등을 들여왔다. 뷔페 상 위에는 반들거리는 오르되브르로 장식을 두르고, 향신료를 발라 구운 햄이 어릿광대 무늬 샐러드와 페이스트리 돼지와 짙은 금빛으로 홀린 칠면조에 부대끼며 놓였다. 큰 홀에는 진짜 놋쇠 난간을 두른 바가 차려졌고, 진과 온갖 술과, 하도 잊혀서 그의 여자 손님 대부분이 이름을 구별하기에는 너무 어린 리큐어들이 채워졌다.

일곱 시면 악단이 도착해 있다. 다섯 명짜리 빈약한 편성이 아니라 오보에와 트롬본과 색소폰과 비올과 코넷과 피콜로, 낮은 북과 높은 북이 한 구덩이 가득이다. 마지막으로 헤엄치던 이들도 이제 바닷가에서 들어와 위층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다. 뉴욕에서 온 차들이 진입로에 다섯 겹으로 서 있고, 벌써 복도와 응접실과 베란다는 원색으로, 낯설고 새로운 방식으로 자른 머리로, 카스티야의 꿈을 넘어서는 숄들로 요란하다. 바는 한창 붐비고, 떠다니듯 도는 칵테일 잔이 바깥 정원까지 스며들어, 마침내 공기가 지껄임과 웃음으로, 대수롭지 않은 빈정거림과 그 자리에서 잊히는 소개로, 서로 이름도 몰랐던 여자들의 열띤 반가움으로 살아난다.

지구가 해에서 비틀거리며 멀어짐에 따라 불빛은 더 밝아지고, 이제 악단은 노란 칵테일 음악을 연주하고, 목소리의 오페라는 한 음 더 높이 올라간다. 웃음은 분마다 헤퍼져 아낌없이 쏟아지고, 명랑한 말 한마디에 기울어 흘러넘친다. 무리는 더 빨리 바뀌고, 새로 온 사람들로 부풀고, 같은 숨결 속에서 흩어졌다 뭉친다. 벌써 떠도는 이들이 있다. 자신만만한 아가씨들이 더 살지고 더 붙박인 사람들 사이를 누비다가, 날카롭고 즐거운 한순간 어느 무리의 한복판이 되었다가, 그러고는 승리에 들떠 끊임없이 바뀌는 불빛 아래 얼굴과 목소리와 빛깔의 바다 같은 뒤바뀜 속으로 미끄러져 간다.

문득 그 집시들 가운데 하나가, 떨리는 오팔빛 옷을 입고, 허공에서 칵테일을 낚아채 용기를 내려고 들이켜고는, 프리스코처럼 두 손을 놀리며 천막천 무대 위로 혼자 춤추며 나선다. 잠깐의 정적. 악단장이 그를 위해 선선히 박자를 바꿔 주고, 그가 「폴리스」의 길다 그레이 대역이라는 잘못된 소식이 돌면서 지껄임이 왁자하게 터진다. 파티가 시작된 것이다.

개츠비의 집에 처음 간 그 밤에 나는 실제로 초대받은 몇 안 되는 손님 가운데 하나였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초대받는 것이 아니었다—그냥 갔다. 그들은 자동차에 올라탔고 그 차가 그들을 롱아일랜드로 실어 갔으며, 어찌어찌하다 개츠비의 문 앞에 이르러 있었다. 일단 거기 오면 개츠비를 아는 누군가가 그들을 소개해 주었고, 그 뒤로 그들은 놀이공원에나 어울리는 행동 규칙을 따라 굴었다. 더러는 개츠비를 아예 만나지도 않고 왔다 갔다. 파티를 보러 마음 하나만 단순하게 먹고 왔는데, 그 단순함이 곧 입장권이었다.

나는 실제로 초대를 받았다. 그 토요일 아침 일찍 울새알빛 파란 제복을 입은 운전기사가 내 잔디밭을 가로질러 왔는데, 놀랍도록 격식을 갖춘 주인의 쪽지를 들고 있었다. 오늘 밤 자신의 「작은 파티」에 와 준다면 그 영광은 오롯이 개츠비의 것이라고 쪽지는 말했다. 그동안 나를 여러 번 보았고 진작 찾아뵈려 했으나 남다른 사정이 겹쳐 그러지 못했다고—제이 개츠비, 위엄 있는 필체의 서명이었다.

흰 플란넬 옷을 차려입고 나는 일곱 시 조금 넘어 그의 잔디밭으로 건너갔고, 모르는 사람들의 소용돌이와 맴돌이 사이를 꽤 거북하게 떠돌았다—더러는 통근 기차에서 눈여겨본 얼굴도 있었지만. 나는 곧바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젊은 영국 사내들의 수에 놀랐다. 하나같이 잘 차려입었고, 하나같이 조금 굶주려 보였으며, 하나같이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다부지고 잘사는 미국인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무언가를 팔고 있다고 확신했다. 채권이든 보험이든 자동차든. 적어도 그들은 이 언저리의 헤픈 돈을 뼈아프게 알아차리고 있었고, 알맞은 가락으로 몇 마디만 하면 그 돈이 제 것이 되리라 믿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주인을 찾아보려 했지만, 그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본 두어 사람이 하도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그의 행방 따위 알 리 없다고 하도 펄쩍 뛰며 부인하는 바람에, 나는 슬그머니 칵테일 탁자 쪽으로 물러났다. 정원에서 혼자인 남자가 목적 없고 외로워 보이지 않으면서 서성일 수 있는 유일한 자리였다.

순전한 무안함으로 곤드레만드레 취하려던 참에 조던 베이커가 집에서 나와 대리석 계단 꼭대기에 서서, 몸을 조금 뒤로 젖히고 업신여기는 흥미를 담아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반가운 사이든 아니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살가운 말을 걸기 시작하기 전에 누군가에게 붙어야만 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그에게 다가가며 우렁차게 말했다. 정원을 건너가는 내 목소리가 유난히 큰 것 같았다.

"여기 계실 것 같더라니." 내가 다가가자 그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바로 옆집에 사신다고 하셨으니—"

그는 곧 나를 챙겨 주겠다는 약속처럼 무심하게 내 손을 잡은 채, 계단 아래에 멈춰 선 똑같은 노란 옷차림의 두 아가씨에게 귀를 기울였다.

"안녕하세요!"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못 이기셔서 어떡해요."

골프 대회 얘기였다. 그는 지난주 결승에서 졌다.

"저희가 누군지 모르시겠지만," 노란 옷의 한 아가씨가 말했다. "한 달쯤 전에 여기서 뵈었어요."

"그 뒤로 머리를 물들이셨네요." 조던이 말했고 나는 흠칫했지만, 아가씨들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 버린 뒤라 그의 말은 때 이른 달을 향한 것이 되었다. 그 달도 저녁상처럼 출장 요리사의 바구니에서 꺼내 온 것이 틀림없었다. 조던의 가느다란 황금빛 팔을 내 팔에 걸친 채 우리는 계단을 내려가 정원을 어슬렁거렸다. 칵테일 쟁반이 땅거미를 헤치고 우리 쪽으로 떠 왔고, 우리는 노란 옷의 두 아가씨와 남자 셋이 앉은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우물우물 씨」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소개되었다.

"이런 파티에 자주 오세요?" 조던이 옆자리 아가씨에게 물었다.

"지난번이 바로 댁을 뵌 그 파티였어요." 아가씨가 또렷하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고는 동행에게 돌아섰다. "너도 그렇지, 루실?"

루실도 그랬다.

"난 오는 게 좋아요." 루실이 말했다. "내가 뭘 하든 신경 안 쓰니까 언제나 즐겁죠. 지난번에 여기 왔을 때 의자에 옷이 걸려 찢어졌는데, 그 사람이 내 이름하고 주소를 묻더라고요—일주일도 안 돼서 크루아리에에서 소포가 왔는데 새 야회복이 들어 있었어요."

"그래서 가지셨어요?" 조던이 물었다.

"그럼요. 오늘 밤에 입으려고 했는데 가슴이 너무 커서 고쳐야 했어요. 가스 불꽃 같은 파랑에 연보라 구슬이 달렸죠. 이백육십오 달러짜리."

"그런 짓을 하는 사람한테는 어딘가 수상한 데가 있어요." 다른 아가씨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하고도 말썽이 나기를 바라지 않는 거예요."

"누가요?" 내가 물었다.

"개츠비요. 누가 나한테 그러던데—"

두 아가씨와 조던이 은밀하게 머리를 맞댔다.

"누가 그러는데, 저 사람이 옛날에 사람을 죽였을 거래요."

우리 모두에게 짜릿한 것이 지나갔다. 「우물우물 씨」 셋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열심히 들었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루실이 미심쩍은 듯 반박했다. "그보다는 전쟁 때 독일 첩자였다는 쪽이지."

남자 하나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에 대해 다 아는 사람한테 들었소. 독일에서 같이 자랐다더군." 그가 힘주어 우리를 안심시켰다.

"어머, 아니에요." 처음 아가씨가 말했다. "그럴 리 없어요. 전쟁 때 미군에 있었으니까요." 우리의 곧이곧대로 믿는 마음이 다시 그에게로 돌아오자 그는 신이 나서 몸을 기울였다. "아무도 자기를 안 본다고 생각할 때 저 사람을 한번 보세요. 틀림없이 사람을 죽였어요."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몸을 떨었다. 루실도 몸을 떨었다. 우리는 모두 돌아서서 개츠비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이 세상에 속삭일 만한 일이 별로 없다고 여기던 이들조차 그에 대해서는 속삭인다는 것, 그것이 그가 불러일으키는 낭만적인 억측의 증거였다.

첫 번째 저녁상이—자정 뒤에 또 한 상이 나올 터였다—이제 차려지고 있었고, 조던은 나에게 제 일행에 끼자고 했다. 정원 건너편 탁자를 빙 둘러앉은 이들이었다. 부부가 세 쌍이었고, 조던의 짝은 끈질긴 대학생이었는데 걸핏하면 사나운 빈정거림을 늘어놓았고, 조만간 조던이 크든 작든 제 몸을 자기에게 내주리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 뻔했다. 이 무리는 흩어져 돌아다니는 대신 점잖은 한통속을 지키면서, 시골 지주 귀족의 진중함을 대표하는 노릇을 제 몫으로 삼고 있었다—이스트에그가 웨스트에그에게 겸양을 베풀면서 그 분광기 같은 들뜸에 조심스레 방벽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나가요." 어쩐지 아깝고 어울리지 않는 삼십 분이 지난 뒤 조던이 속삭였다. "나한테는 너무 점잖아요."

우리는 일어섰고, 그는 우리가 주인을 찾으러 간다고 설명했다. 내가 그를 한 번도 못 만나서 마음이 불편해한다고. 대학생이 냉소적이고 우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들여다본 바는 붐볐지만 개츠비는 거기 없었다. 조던은 계단 꼭대기에서도 그를 찾지 못했고, 베란다에도 없었다. 우리는 혹시나 해서 중요해 보이는 문 하나를 열고 천장 높은 고딕식 서재로 들어갔다. 조각을 새긴 영국산 참나무로 벽을 두른 방이었고, 아마도 바다 건너 어느 폐허에서 통째로 옮겨 온 것이리라.

올빼미 눈 같은 커다란 안경을 쓴 살진 중년 사내가 커다란 탁자 가장자리에 좀 취해서 걸터앉아, 흔들리는 눈으로 책장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그는 들뜬 몸짓으로 홱 돌아서더니 조던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살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대뜸 물었다.

"뭘요?"

그가 책장 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저것 말이오. 실은 굳이 확인해 볼 것 없소. 내가 확인했으니까. 진짜요."

"책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진짜요—책장도 있고 다 있소. 나는 그럴듯하게 오래가는 판지일 줄 알았지. 그런데 완전히 진짜요. 책장이 있고—여기! 보여 드리리다."

우리가 못 믿으리라 넘겨짚고 그는 책장으로 달려가 「스토더드 강연집」 제1권을 들고 돌아왔다.

"보시오!" 그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틀림없는 인쇄물이오. 나를 속였다니까. 이 친구는 아주 벨라스코요. 대단한 성취지. 얼마나 철저한가! 얼마나 사실적인가! 게다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도 알았어—책장을 자르지 않았거든. 그러니 무엇을 더 바라겠소? 무엇을 더 기대하겠소?"

그는 내 손에서 책을 낚아채 서둘러 제자리에 꽂았다. 벽돌 하나를 빼면 서재 전체가 무너져 내릴 판이라고 중얼거리면서.

"누가 데려왔소?" 그가 따져 물었다. "아니면 그냥 왔소? 나는 데려와졌소. 대개는 데려와지지."

조던은 대답 없이 또렷하고 명랑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나는 루스벨트라는 여자가 데려왔소." 그가 말을 이었다. "클로드 루스벨트 부인. 아시오? 어젯밤 어디선가 만났지. 나는 한 일주일째 취해 있는데, 서재에 앉아 있으면 술이 좀 깰까 싶었소."

"깨셨어요?"

"조금은, 아마도. 아직은 모르겠소. 여기 온 지 한 시간밖에 안 됐으니. 내가 저 책들 얘기 했던가? 진짜요. 저건—"

"하셨어요."

우리는 그와 엄숙하게 악수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제 정원의 천막천 위에서는 춤이 벌어지고 있었다. 노인들이 젊은 아가씨들을 뒤로 밀며 영원히 볼품없는 원을 그렸고, 잘난 짝들은 서로를 배배 꼬듯 멋들어지게 붙들고 구석을 지켰다—그리고 숱한 아가씨들이 혼자서 춤을 추거나, 잠깐 악단에게서 밴조나 드럼의 짐을 덜어 주었다. 자정 무렵에는 흥이 더 올랐다. 이름난 테너가 이탈리아어로 노래했고, 악명 높은 콘트랄토가 재즈로 노래했으며, 곡과 곡 사이에는 사람들이 정원 곳곳에서 「묘기」를 부렸고, 행복하고 텅 빈 웃음이 여름 하늘로 터져 올랐다. 무대 쌍둥이 한 쌍이—알고 보니 노란 옷의 그 아가씨들이었다—의상을 갖춰 입고 아기 촌극을 했고, 샴페인은 핑거볼보다 큰 잔에 담겨 나왔다. 달은 더 높이 떠올랐고, 해협에는 은빛 비늘의 삼각형이 떠서 잔디밭의 뻣뻣하고 깡깡한 밴조 소리에 맞춰 조금씩 떨렸다.

나는 여전히 조던 베이커와 함께였다. 우리는 나와 비슷한 나이의 남자, 그리고 조금만 건드려도 걷잡을 수 없는 웃음에 넘어가는 소란스러운 작은 아가씨와 한 탁자에 앉아 있었다. 이제 나는 즐거웠다. 샴페인을 핑거볼로 두 잔 마셨고, 눈앞의 광경은 무언가 뜻깊고 근원적이고 심오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여흥이 잠시 멎었을 때 그 남자가 나를 보고 웃었다.

"얼굴이 낯익군요." 그가 정중하게 말했다. "전쟁 때 제1사단에 계시지 않았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제28보병연대에 있었지요."

"나는 1918년 6월까지 제16연대에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뵌 것 같더라니."

우리는 잠시 프랑스의 축축하고 잿빛인 작은 마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근처에 사는 것이 분명했다. 방금 수상 비행기를 한 대 샀고 아침에 시험 삼아 타 보려 한다고 했으니까.

"같이 가겠나, 친구? 해협 기슭 가까이만."

"몇 시에요?"

"자네한테 제일 좋은 시간이면 언제든."

그의 이름을 물어보려는 말이 혀끝까지 올라왔을 때 조던이 돌아보고 웃었다.

"이제 좀 즐거우세요?" 그가 물었다.

"훨씬 낫습니다." 나는 다시 새로 알게 된 사람 쪽으로 돌아섰다. "저한테는 별난 파티라서요. 주인 얼굴도 아직 못 봤습니다. 저는 저기 사는데—" 나는 멀리 보이지 않는 울타리 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개츠비라는 이 사람이 운전기사를 보내 초대장을 주더군요."

잠깐 그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사람처럼 나를 보았다.

"내가 개츠비요." 그가 불쑥 말했다.

"뭐라고요!" 내가 소리쳤다. "아, 이거 실례했습니다."

"아시는 줄 알았네, 친구. 아무래도 내가 그리 좋은 주인은 못 되는 모양이군."

그는 알겠다는 듯 웃었다—알겠다는 것을 훨씬 넘어서는 웃음이었다. 영원한 안심의 기운이 담긴, 평생에 네댓 번쯤이나 마주칠까 말까 한 그런 드문 웃음 가운데 하나였다. 그것은 한순간 영원한 세계 전체를 마주했다—아니, 마주하는 것처럼 보였다—그러고는 저항할 수 없이 당신 편으로 기울어진 편애를 담아 당신에게 모였다. 그것은 당신이 이해받고 싶은 딱 그만큼 당신을 이해했고, 당신이 스스로를 믿고 싶은 그대로 당신을 믿었으며, 당신이 가장 좋은 상태에서 전하고 싶었던 바로 그 인상을 자기가 당신에게서 받았다고 확인해 주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것은 사라졌다—그리고 나는 서른을 한두 해 넘긴 우아한 건달 하나를 보고 있었다. 공들인 말투의 격식이 우스꽝스럽기 직전에서 아슬아슬하게 비켜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자기를 밝히기 얼마 전부터 나는 그가 낱말을 조심스레 고르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개츠비 씨가 자기 신분을 밝힌 거의 그 순간에 집사가 서둘러 그에게 다가와 시카고에서 전화가 왔다고 알렸다. 그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차례로 아우르는 가벼운 목례로 양해를 구했다.

"뭐든 필요하면 말만 하게, 친구." 그가 나에게 권했다. "실례하네. 이따 다시 오지."

그가 가 버리자 나는 곧바로 조던 쪽으로 돌아섰다.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그에게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어서. 나는 개츠비 씨가 불그레하고 뚱뚱한 중년일 줄 알았던 것이다.

"저 사람 누굽니까?" 내가 물었다. "아세요?"

"그냥 개츠비라는 사람이죠."

"어디 출신이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합니까?"

"이제 그 얘기를 시작하시는군요." 그가 흐릿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언젠가 자기가 옥스퍼드 출신이라고 하더군요."

그의 뒤로 어렴풋한 배경이 모양을 잡기 시작했지만, 조던의 다음 말에 그것이 흐려져 버렸다.

"그렇지만 난 안 믿어요."

"왜요?"

"모르겠어요." 그가 우겼다. "그냥 거길 다녔을 것 같지 않아요."

그의 말투에 있는 무언가가 아까 그 아가씨의 "저 사람 사람을 죽인 것 같아요"를 떠올리게 했고, 내 호기심을 부추겼다. 개츠비가 루이지애나의 늪지에서 나왔다거나 뉴욕 로어 이스트사이드에서 나왔다는 말이었다면 나는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젊은 남자가—적어도 내 시골뜨기 경험으로는—어디선가 태연히 흘러나와 롱아일랜드 해협에 궁전을 사들이지는 않는 법이었다.

"아무튼 파티는 크게 열죠." 조던이 구체적인 것을 꺼리는 도회적인 태도로 화제를 돌렸다. "나는 큰 파티가 좋아요. 아주 은밀하잖아요. 작은 파티에서는 사생활이 없거든요."

큰북이 둥 울렸고, 악단장의 목소리가 정원의 되뇌는 소리들 위로 문득 쩌렁쩌렁 울렸다.

"신사 숙녀 여러분." 그가 외쳤다. "개츠비 씨의 청으로 블라드미르 토스토프 씨의 최신작을 연주해 드리겠습니다. 지난 5월 카네기홀에서 그토록 큰 관심을 끈 곡입니다. 신문을 읽으셨다면 대단한 화제였던 걸 아실 겁니다." 그는 유쾌하게 겸양을 부리며 웃고는 덧붙였다. "아주 대단한 화제였죠!" 그러자 모두가 웃었다.

"이 곡의 제목은," 그가 우렁차게 맺었다. "「블라드미르 토스토프의 세계 재즈사」입니다!"

토스토프 씨의 작품이 어떤 곡인지는 내 머리에 남지 않았다. 곡이 시작되는 바로 그때 내 눈이 개츠비에게 갔기 때문이다. 그는 대리석 계단에 혼자 서서 이 무리 저 무리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볕에 그은 피부가 얼굴에 보기 좋게 팽팽히 당겨져 있었고, 짧은 머리는 날마다 다듬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서 나는 아무런 음험한 데도 볼 수 없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를 손님들에게서 갈라 세우는 데 한몫하는지 궁금했다. 흥청거리는 무람없음이 커질수록 그는 더 반듯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계 재즈사」가 끝났을 때 아가씨들은 강아지처럼 스스럼없이 남자들의 어깨에 머리를 얹고 있었고, 아가씨들은 장난스레 남자들의 팔 안으로, 심지어 여러 사람 사이로 뒤로 넘어지고 있었다. 누군가 제 넘어짐을 받아 주리라는 것을 알고서. 그러나 아무도 개츠비 위로 넘어지지 않았고, 어떤 프렌치 보브도 개츠비의 어깨에 닿지 않았고, 개츠비의 머리를 한 고리로 삼은 노래하는 사중창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실례합니다."

개츠비의 집사가 문득 우리 옆에 서 있었다.

"베이커 양이십니까?" 그가 물었다. "실례합니다만 개츠비 씨께서 따로 말씀을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저하고요?" 그가 놀라서 외쳤다.

"예, 그렇습니다."

그는 천천히 일어서면서 놀랍다는 듯 나에게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집사를 따라 집 쪽으로 갔다. 나는 그가 야회복을, 아니 그의 모든 옷을 운동복처럼 입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맑고 서늘한 아침의 골프장에서 처음 걸음마를 배운 것 같은 경쾌함이 그의 몸놀림에 있었다.

나는 혼자였고 두 시가 다 되어 갔다. 얼마 전부터 테라스 위로 튀어나온 창 많고 긴 방에서 어수선하고 궁금증을 돋우는 소리들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지금 코러스걸 둘과 산부인과 이야기에 빠져서는 나에게 끼라고 조르는 조던의 대학생을 따돌리고,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큰 방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노란 옷의 아가씨 하나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고, 그 옆에는 이름난 합창단 출신의 키 큰 붉은 머리 아가씨가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샴페인을 잔뜩 마신 참이었고, 노래를 부르는 동안 서투르게도 모든 것이 아주아주 슬프다고 마음먹은 터였다—그는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울고도 있었다. 노래에 틈이 생길 때마다 그는 그 틈을 헐떡이는 끊긴 흐느낌으로 채웠고, 그러고는 떨리는 소프라노로 다시 가사를 이어 갔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다만 거침없이 흐르지는 않았다. 구슬을 잔뜩 매단 속눈썹에 닿는 순간 잉크빛을 띠고, 남은 길을 느린 검은 실개천이 되어 흘러갔기 때문이다. 누군가 우스개로 얼굴에 적힌 음표를 노래해 보라고 하자, 그는 두 손을 번쩍 들고 의자에 주저앉아 술기운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자기 남편이라는 남자하고 싸웠대요." 내 팔꿈치 옆의 아가씨가 알려 주었다.

나는 둘러보았다. 남아 있는 여자들 대부분이 이제 제 남편이라는 남자들과 싸우고 있었다. 조던의 일행, 이스트에그에서 온 그 네 쌍조차 다툼으로 갈가리 찢겨 있었다. 남자들 가운데 하나가 젊은 여배우에게 이상하리만치 열을 내며 말을 걸고 있었고, 그의 아내는 점잖고 무심하게 그 상황을 웃어넘기려 애쓰다가 아주 무너져 옆구리 공격에 나섰다—이따금 성난 다이아몬드처럼 문득 남편 옆에 나타나 그의 귀에 대고 쉿쉿거렸다. "약속했잖아요!"

집에 가기 싫어하는 것은 제멋대로인 남자들만이 아니었다. 지금 현관은 딱하게도 맨정신인 남자 둘과 몹시 분개한 그들의 아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아내들은 조금 높아진 목소리로 서로를 동정하고 있었다.

"내가 즐거워하는 걸 보기만 하면 집에 가자고 한다니까."

"평생 그렇게 이기적인 소린 처음 들어요."

"우린 늘 제일 먼저 가요."

"우리도 그래요."

"글쎄, 오늘 밤엔 우리가 거의 꼴찌인데." 남자 하나가 겸연쩍게 말했다. "악단이 삼십 분 전에 갔어."

그런 악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아내들이 뜻을 모았는데도 다툼은 짧은 몸싸움으로 끝났고, 두 아내는 발버둥 치는 채로 들려 밤 속으로 나갔다.

현관에서 모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서재 문이 열리고 조던 베이커와 개츠비가 함께 나왔다. 그는 그에게 마지막 무슨 말을 하던 참이었는데, 몇 사람이 작별 인사를 하러 다가오자 그 몸짓에 어려 있던 간절함이 문득 격식으로 굳어졌다.

조던의 일행이 현관에서 조바심을 내며 그를 부르고 있었지만, 그는 잠시 남아 나와 악수했다.

"방금 세상에서 제일 놀라운 얘기를 들었어요." 그가 속삭였다. "우리가 저 안에 얼마나 있었죠?"

"글쎄요, 한 시간쯤."

"그건… 그야말로 놀라웠어요." 그가 넋 놓은 채 되뇌었다. "그런데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해 놓고 이러고 서서 당신 애를 태우고 있네요." 그가 내 얼굴에 대고 우아하게 하품했다. "저 좀 보러 오세요… 전화번호부… 시고니 하워드 부인 이름으로… 우리 이모예요…" 그는 말하면서 벌써 서둘러 가고 있었다—문간에서 제 일행 속으로 녹아들며 갈색 손을 흔들어 경쾌한 인사를 보냈다.

첫걸음에 이렇게 늦게까지 있었던 것이 좀 부끄러워서 나는 개츠비를 둘러싸고 있는 마지막 손님들 틈에 끼었다. 저녁 초입에 그를 찾아다녔다고 설명하고, 정원에서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을 사과하고 싶었다.

"말도 말게." 그가 서둘러 못 하게 했다. "다시는 생각도 말게, 친구." 그 다정한 말은 내 어깨를 안심시키듯 쓸어 준 손보다 더 다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일 아침 아홉 시에 수상 비행기 타러 가는 것 잊지 말고."

그때 그의 어깨 뒤에서 집사가 말했다.

"필라델피아에서 전화 왔습니다."

"알았네, 곧 가지. 곧 간다고 전하게… 잘 가게."

"안녕히 계십시오."

"잘 가게." 그가 웃었다—그러자 문득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 축에 든 것이 기분 좋은 뜻을 지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내내 그러기를 바라기라도 했던 것처럼. "잘 가게, 친구… 잘 가게."

그러나 계단을 내려가면서 나는 이 밤이 아직 다 끝나지 않았음을 보았다. 문에서 오십 보쯤 떨어진 곳에서 열두어 개의 전조등이 기괴하고 소란스러운 광경을 비추고 있었다. 길가 도랑에 새 쿠페 한 대가 바로 선 채로, 그러나 바퀴 하나가 사납게 뜯겨 나간 채로 처박혀 있었다. 이 분도 되기 전에 개츠비의 진입로를 나선 차였다. 담벼락이 날카롭게 튀어나온 데가 바퀴가 떨어져 나간 까닭이었고, 그 바퀴는 지금 호기심 많은 운전기사 여섯쯤의 대단한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제 차를 길에 세워 둔 채 나온 터라 뒤쪽에서 거칠고 어긋나는 소음이 아까부터 울리며 이미 사나운 그 난장판에 얹히고 있었다.

긴 먼지막이 외투를 입은 사내가 그 잔해에서 내려와 이제 길 한복판에 서서, 차에서 타이어로, 타이어에서 구경꾼들로 시선을 옮기며 유쾌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시오!" 그가 설명했다. "도랑으로 들어갔소."

그 사실이 그에게는 한없이 놀라운 모양이었다. 나는 먼저 그 남다른 놀라움의 결을 알아보았고, 그다음에 사람을 알아보았다—아까 개츠비의 서재에 있던 그 손님이었다.

"어쩌다 그랬습니까?"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기계라고는 도무지 모르오." 그가 딱 잘라 말했다.

"그런데 어쩌다 그랬냐고요? 담벼락을 들이받았습니까?"

"나한테 묻지 마시오." 올빼미 눈이 이 일에서 아예 손을 씻으며 말했다. "운전이라고는 아는 게 거의 없소—전혀 없다시피 하오. 이렇게 됐고, 내가 아는 건 그것뿐이오."

"운전이 서투르면 밤에는 몰지 말았어야죠."

"나는 몰려고 하지도 않았소." 그가 분개해서 설명했다. "몰려고 하지도 않았다니까."

구경꾼들 사이에 겁먹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자살하고 싶으신 거요?"

"바퀴 하나로 끝난 게 다행인 줄 아쇼! 운전은 서툰데 몰려고 하지도 않았다니!"

"모르시는군." 죄인이 설명했다. "내가 몬 게 아니오. 차에 다른 사람이 있소."

이 선언에 뒤따른 충격은 쿠페의 문이 천천히 열리는 동안 길게 늘어지는 "아—" 소리로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이제는 사람들 무리였다—저도 모르게 물러섰고, 문이 활짝 열렸을 때 유령이 나올 듯한 뜸이 있었다. 그러다 아주 조금씩, 부분 부분, 창백하게 늘어진 사람 하나가 잔해에서 나왔다. 크고 갈피 못 잡는 무도화로 땅을 더듬거리면서.

전조등 불빛에 눈이 멀고 끊임없는 경적 소리에 정신이 없어서, 그 유령은 먼지막이 외투를 입은 사내를 알아보기까지 잠시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무슨 이리요?" 그가 태연히 물었다. "기름 떨어져쓰까?"

"보시오!"

여섯쯤 되는 손가락이 잘려 나간 바퀴를 가리켰다—그는 잠시 그것을 들여다보더니,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처럼 위를 올려다보았다.

"떨어져 나갔소." 누가 설명해 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서 있는 주도 모라써."

뜸. 그러고는 길게 숨을 들이쉬고 어깨를 펴더니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유소가 어딘지 아르켜 주시겠소?"

적어도 열두어 사람이, 그중 몇은 그보다 조금 나은 처지였는데, 바퀴와 차가 이제 그 어떤 물리적인 끈으로도 이어져 있지 않다고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뒤로 뺍시다." 잠시 뒤 그가 제안했다. "후진에 넣으시오."

"바퀴가 떨어졌다니까요!"

그가 머뭇거렸다.

"해 봐서 나쁠 건 없지." 그가 말했다.

울부짖는 경적들이 절정에 이르렀고, 나는 등을 돌려 잔디밭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했다. 한 번 돌아보았다. 얇은 과자 같은 달이 개츠비의 집 위에서 빛나며 밤을 아까처럼 곱게 만들고 있었고, 웃음소리와 아직 환한 그의 정원의 소리보다 오래 남아 있었다. 문득 창들과 커다란 문들에서 텅 빈 기운이 흘러나와, 현관에 서서 격식을 갖춘 작별의 몸짓으로 손을 들고 있는 주인의 모습에 온전한 외따로움을 입히는 것 같았다.

* * *

지금까지 쓴 것을 다시 읽어 보니, 몇 주씩 사이를 둔 세 밤의 일들이 나를 사로잡은 전부인 듯한 인상을 준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 그것들은 바쁜 여름의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었을 뿐이고, 한참 뒤까지도 내 개인의 일들보다 한없이 덜 나를 사로잡았다.

거의 언제나 나는 일을 했다. 이른 아침이면 로어 뉴욕의 흰 골짜기를 서둘러 내려가 프로비티 신탁으로 갈 때 해가 내 그림자를 서쪽으로 던졌다. 나는 다른 사무원들과 젊은 채권 판매원들을 이름으로 불렀고, 그들과 어둡고 붐비는 식당에서 작은 돼지 소시지와 으깬 감자와 커피로 점심을 먹었다. 심지어 저지시티에 살면서 경리부에서 일하는 아가씨와 잠깐 사귀기도 했는데, 그 오빠가 나를 사납게 흘겨보기 시작해서 그가 7월에 휴가를 떠났을 때 조용히 흘려보냈다.

저녁은 대개 예일 클럽에서 먹었다—어째서인지 그것이 내 하루에서 가장 우울한 일이었다—그러고는 위층 도서실로 올라가 한 시간쯤 성실하게 투자와 유가증권을 공부했다. 대개 주변에 시끄러운 무리가 몇 있었지만 도서실에는 들어오지 않아서 일하기에 좋은 자리였다. 그러고 나서 밤이 부드러우면 매디슨가를 걸어 내려가 옛 머리힐 호텔을 지나 33번가를 건너 펜실베이니아역까지 갔다.

나는 뉴욕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밤이면 감도는 그 짜릿하고 모험 같은 기운이, 남자들과 여자들과 기계들의 끊임없는 명멸이 안절부절못하는 눈에 주는 만족이 좋아졌다. 나는 오번가를 걸어 올라가며 무리 속에서 낭만적인 여자들을 골라내고, 몇 분 뒤면 내가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리라고, 아무도 결코 알지도 못하고 나무라지도 않으리라고 상상하기를 좋아했다. 이따금 나는 머릿속에서 그들을 따라 숨은 골목 모퉁이의 아파트까지 갔고, 그들은 돌아서서 나에게 웃어 보이고는 문을 지나 따뜻한 어둠 속으로 스러졌다. 홀린 듯한 대도시의 땅거미 속에서 나는 이따금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꼈고, 남들에게서도 그것을 느꼈다—혼자 식당에서 저녁 먹을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며 진열창 앞을 서성이던 가난한 젊은 사무원들에게서, 어스름 속의 젊은 사무원들에게서, 밤과 삶의 가장 애틋한 순간을 흘려보내던 그들에게서.

여덟 시가 되어 40번가 대의 어두운 골목마다 극장가로 가는 택시들이 부르릉거리며 다섯 겹으로 늘어설 때면 나는 다시 가슴이 내려앉았다. 기다리는 택시 안에서 사람의 형체들이 서로 기울어 있었고, 목소리들이 노래했고, 들리지 않는 우스개에 웃음이 났고, 불붙은 담배가 안에서 알 수 없는 원을 그렸다. 나도 흥겨움을 향해 서두르고 있으며 그들의 은밀한 들뜸을 함께 나누고 있다고 상상하며 나는 그들이 잘되기를 빌었다.

한동안 조던 베이커를 보지 못하다가 한여름에 다시 만났다. 처음에는 그와 함께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 우쭐했다. 그가 골프 챔피언이었고 누구나 그 이름을 알았으니까. 그러다 그 이상의 무엇이 되었다. 실제로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일종의 다정한 궁금함을 느꼈다. 그가 세상을 향해 내미는 지루하고 오만한 얼굴은 무언가를 감추고 있었다—겉꾸밈은 처음에는 아니더라도 결국에는 대개 무언가를 감추게 된다—그리고 어느 날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함께 워릭에 있는 별장 모임에 갔을 때 그는 빌린 차를 지붕을 연 채 빗속에 세워 두고는 그것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그러자 문득 데이지의 집에서 그날 밤 내 기억을 비켜 갔던 그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의 첫 큰 골프 대회에서 하마터면 신문에까지 오를 뻔한 소동이 있었다. 준결승에서 그가 자리가 나쁜 공을 옮겨 놓았다는 말이 나왔던 것이다. 일이 추문의 크기에 가까워졌다가—사그라졌다. 캐디 하나가 진술을 거두었고, 단 한 사람뿐인 다른 목격자는 자기가 잘못 보았을지도 모른다고 인정했다. 그 사건과 그 이름은 내 머릿속에 함께 남아 있었다.

조던 베이커는 본능적으로 영리하고 눈치 빠른 남자들을 피했다. 이제 나는 그 까닭을 알았다. 규범에서 벗어나는 일 따위 있을 수 없다고 여겨지는 자리에서라야 그가 더 안전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구제할 길 없이 정직하지 못했다. 불리한 처지에 놓이는 것을 견디지 못했고, 그렇게 견디지 못하는 이상, 세상을 향해 그 서늘하고 건방진 미소를 계속 내밀면서도 제 단단하고 경쾌한 몸의 요구를 채우자면 아주 어릴 때부터 얼버무리는 재주를 부리기 시작했으리라고 나는 짐작한다.

나에게는 아무래도 좋았다. 여자의 정직하지 못함은 결코 깊이 탓하게 되지 않는 것이다—나는 무심코 안됐다고 여겼고, 그러고는 잊었다. 우리가 자동차 운전에 대해 묘한 이야기를 나눈 것도 바로 그 별장 모임에서였다. 그가 인부들 옆을 하도 바싹 지나가는 바람에 우리 흙받기가 한 사람의 외투 단추를 튕겨서 시작된 이야기였다.

"운전이 형편없군요." 내가 항의했다. "더 조심하든가, 아예 몰지 말든가 해야겠어요."

"난 조심해요."

"아니, 안 하세요."

"글쎄, 다른 사람들이 조심하니까요." 그가 가볍게 말했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다들 내 앞을 비켜 줄 테니까요." 그가 우겼다. "사고는 둘이 있어야 나는 거예요."

"당신만큼 조심성 없는 사람을 만나면 어쩌시려고요."

"그런 일은 없기를 바라죠." 그가 대답했다. "난 조심성 없는 사람이 싫어요. 그래서 당신이 좋고요."

볕에 시달린 잿빛 눈은 곧장 앞을 보고 있었지만, 그는 일부러 우리 사이를 옮겨 놓은 것이었고, 나는 한순간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더디고 내 욕망에 제동을 거는 속의 규칙들로 가득한 사람이라서, 먼저 고향의 그 얽힌 일에서 확실히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쓰며 「사랑을 담아, 닉」이라고 서명해 왔는데, 정작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그 아가씨가 테니스를 칠 때 윗입술에 희미한 땀의 수염이 돋던 모습뿐이었다. 그래도 자유로워지려면 요령 있게 끊어 내야 할 어렴풋한 약속 같은 것이 있었다.

누구나 자기에게 적어도 하나쯤은 으뜸 미덕이 있다고 여기는데, 내 것은 이것이다. 나는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정직한 사람 가운데 하나다.

4장

일요일 아침, 바닷가 마을들에 교회 종이 울리는 동안 세상과 그 정부가 개츠비의 집으로 돌아와 그의 잔디밭에서 떠들썩하게 반짝였다.

"밀주업자래요." 아가씨들이 그의 칵테일과 그의 꽃들 사이 어딘가를 거닐며 말했다. "한번은 자기가 폰 힌덴부르크의 조카고 악마의 육촌이라는 걸 알아낸 사람을 죽였대요. 장미 하나 집어 줘요, 자기, 그리고 거기 저 크리스털 잔에 마지막 한 방울만 따라 줘요."

한번은 그 여름 개츠비의 집에 온 사람들의 이름을 시간표 빈칸에 적어 둔 적이 있다. 이제는 접힌 자리마다 삭아 가는 낡은 시간표이고, 머리에 「1922년 7월 5일부터 이 시간표를 적용함」이라고 적혀 있다. 그래도 그 잿빛 이름들은 아직 읽을 수 있고, 개츠비의 환대를 받아들이면서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은근한 경의를 그에게 바친 사람들에 대해 내가 뭉뚱그려 하는 말보다 더 나은 인상을 줄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트에그에서는 체스터 베커 부부와 리치 부부, 예일에서 알던 번슨이라는 사람, 그리고 지난여름 메인주에서 물에 빠져 죽은 웹스터 시벳 박사가 왔다. 그리고 혼빔 부부와 윌리 볼테르 부부, 늘 한구석에 모여 있다가 가까이 오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염소처럼 코를 쳐들던 블랙벅이라는 집안 전체. 그리고 이즈메이 부부와 크리스티 부부(아니, 정확히는 휴버트 아우어바흐와 크리스티 씨의 부인), 그리고 어느 겨울 오후 아무 까닭도 없이 머리가 목화처럼 하얗게 세어 버렸다는 에드거 비버.

클래런스 엔다이브도 내 기억으로는 이스트에그에서 왔다. 딱 한 번, 흰 니커보커스 차림으로 와서 정원에서 에티라는 부랑자와 싸움을 벌였다. 섬의 더 먼 쪽에서는 치들 부부와 O. R. P. 슈레이더 부부, 조지아주의 스톤월 잭슨 에이브럼스 부부, 피시가드 부부와 리플리 스넬 부부가 왔다. 스넬은 감옥에 가기 사흘 전에도 거기 있었는데, 자갈 깔린 진입로에 곤드레가 되어 뻗어 있다가 율리시스 스웻 부인의 자동차에 오른손을 치였다. 댄시 부부도 왔고, 예순이 훌쩍 넘은 S. B. 화이트베이트, 모리스 A. 플링크, 해머헤드 부부, 담배 수입상 벨루가와 벨루가의 아가씨들도 왔다.

웨스트에그에서는 폴 부부와 멀레디 부부, 세실 로벅, 세실 쇤, 주 상원의원 굴릭, 필름스 파 엑설런스를 쥐고 있던 뉴턴 오키드, 에크하우스트, 클라이드 코언, 돈 S. 슈워츠(아들), 아서 매카티가 왔는데, 모두 이런저런 식으로 영화와 얽힌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캣립 부부와 벰버그 부부, 나중에 제 아내를 목 졸라 죽인 그 멀둔의 형제인 G. 얼 멀둔. 흥행업자 다 폰타노도 왔고, 에드 르그로와 제임스 B. ("싸구려 독주") 페럿과 드 종 부부와 어니스트 릴리도 왔다—이들은 도박을 하러 왔는데, 페럿이 정원으로 어슬렁어슬렁 나오면 그건 그가 몽땅 털렸다는 뜻이었고, 이튿날 어소시에이티드 트랙션 주가가 짭짤하게 출렁여 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클립스프링어라는 사람은 어찌나 자주 와 있던지 「하숙생」이라는 이름으로 통했다—그에게 따로 집이 있었는지나 모르겠다. 연극 쪽 사람으로는 거스 와이즈, 호러스 오도너번, 레스터 마이어, 조지 덕위드, 프랜시스 불이 있었다. 뉴욕에서는 또 크롬 부부, 백히슨 부부, 데니커 부부, 러셀 베티, 코리건 부부, 켈러허 부부, 듀어 부부, 스컬리 부부, S. W. 벨처, 스머크 부부, 지금은 이혼한 젊은 퀸 부부, 그리고 타임스스퀘어에서 지하철 앞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은 헨리 L. 팔메토가 왔다.

베니 매클레너핸은 늘 아가씨 넷을 데리고 왔다. 몸으로 보면 한 번도 꼭 같은 아가씨들은 아니었지만 서로 어찌나 똑같은지 전에도 와 본 사람들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름은 잊어버렸다—재클린이었던 것 같고, 아니면 콘수엘라, 아니면 글로리아나 주디나 준이었고, 성은 꽃이나 달 이름처럼 가락이 고운 것이거나 아니면 미국 대자본가들의 더 엄한 이름이었는데, 다그쳐 물으면 그 대자본가들의 사촌이라고 털어놓곤 했다.

이들 말고도 파우스티나 오브라이언이 적어도 한 번은 왔던 것이 기억나고, 베데커 아가씨들, 전쟁에서 코가 날아간 젊은 브루어, 앨브럭스버거 씨와 그의 약혼녀 하그 양, 아디타 피츠피터스, 한때 미국 재향군인회장이었던 P. 주잇 씨, 운전기사라고들 하는 남자를 데리고 온 클로디아 힙 양, 그리고 무슨 나라의 왕자라던 사람도 기억난다. 우리는 그를 공작이라고 불렀는데, 이름은 알았다 해도 잊어버렸다.

이 모든 사람들이 그 여름 개츠비의 집에 왔다.

* * *

7월 말의 어느 아침 아홉 시, 개츠비의 호화로운 차가 바위투성이 진입로를 덜컹거리며 올라와 내 문 앞에 서더니, 세 음짜리 경적에서 가락 한 줄기를 터뜨렸다.

그가 나를 찾아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그의 파티에 두 번 갔고, 그의 수상 비행기에도 올라 보았으며, 그의 간곡한 권유에 그의 바닷가를 자주 쓰고 있었는데도.

"좋은 아침일세, 친구. 오늘 나하고 점심 먹기로 했잖나. 같이 차 타고 올라가면 어떨까 싶어서."

그는 차의 발판 위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있었다. 유난히 미국적인, 그 재빠르고 꾀바른 몸놀림으로—어려서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일을 하지 않은 데서, 그리고 그보다 더 우리의 신경질적이고 들쑥날쑥한 놀이들이 주는 꼴 없는 우아함에서 오는 것이리라. 이 기질이 그의 깍듯한 태도를 뚫고 끊임없이 안절부절못함의 꼴로 비어져 나왔다. 그는 한 번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늘 어딘가에서 발을 톡톡 굴리거나 조바심치며 손을 폈다 쥐었다 했다.

그는 내가 감탄하는 눈으로 그의 차를 보고 있는 것을 알아보았다.

"예쁘지, 친구?" 그는 내가 더 잘 볼 수 있게 뛰어내렸다. "전에 본 적 없나?"

본 적이 있었다. 누구나 본 적이 있었다. 짙은 크림빛에 니켈로 번쩍였고, 괴물 같은 길이의 여기저기가 의기양양한 모자 상자와 도시락 상자와 연장 상자로 불룩했으며, 태양 열두 개를 비추는 앞유리의 미로가 계단처럼 층을 이루고 있었다. 초록 가죽을 댄 온실 같은 곳에 여러 겹의 유리 뒤로 앉아 우리는 시내로 출발했다.

지난 한 달 동안 그와 여섯 번쯤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실망스럽게도 그는 할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가 뭐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어떤 중요한 인물이라는 내 첫인상은 차츰 흐려졌고, 그는 그저 옆집의 공들인 유흥 여관 주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그 당혹스러운 드라이브가 있었다. 웨스트에그 마을에 닿기도 전에 개츠비는 우아한 문장들을 끝맺지 않고 내버려 두기 시작했고, 캐러멜빛 양복의 무릎을 망설이듯 손바닥으로 쳤다.

"이보게, 친구." 그가 놀랍게도 불쑥 말했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

좀 압도당해서 나는 그런 질문에 걸맞은 뭉뚱그린 얼버무림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럼 내 삶에 대해 좀 얘기해 주겠네." 그가 말을 끊었다. "자네가 여기저기서 듣는 온갖 이야기로 나를 잘못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서."

그러니까 그는 제 집 복도에서 오가는 이야기에 양념을 치던 그 기괴한 혐의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께 맹세코 사실만 말하겠네." 그의 오른손이 문득 하늘의 벌에게 대기하라고 명령했다. "나는 중서부 어느 부잣집 아들이야—이제는 다 죽었지만. 미국에서 자랐지만 교육은 옥스퍼드에서 받았네. 우리 조상들이 여러 해 동안 다 거기서 교육을 받았거든. 집안 전통이지."

그가 곁눈으로 나를 보았다—그리고 나는 조던 베이커가 왜 그가 거짓말을 한다고 믿었는지 알았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교육받았다」는 말을 서둘러 넘기거나, 삼키거나, 거기서 목이 메었다. 그 말이 전에도 그를 괴롭힌 적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의심과 함께 그의 진술 전체가 산산이 흩어졌고, 나는 결국 그에게 어딘가 음험한 데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중서부 어디요?" 내가 무심한 척 물었다.

"샌프란시스코."

"그렇군요."

"우리 식구는 다 죽었고, 나한테 꽤 큰돈이 들어왔지."

그의 목소리는 엄숙했다. 한 집안이 느닷없이 끊겨 버린 기억이 아직도 그를 따라다니는 것처럼. 잠깐 그가 나를 놀리는 게 아닌가 의심했지만, 그를 한번 흘끗 보고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로는 유럽의 온갖 수도에서 젊은 인도 왕족처럼 살았네—파리, 베네치아, 로마—보석을 모으면서, 주로 루비였지, 큰 짐승 사냥도 하고, 그림도 조금 그리고, 오로지 나를 위한 것들이었네, 그리고 오래전에 나한테 일어난 아주 슬픈 일을 잊으려고 애쓰면서."

나는 애써 믿지 못하겠다는 웃음을 참았다. 그 말들 자체가 어찌나 닳고 닳았는지 떠오르는 모습이라고는 하나뿐이었다. 터번을 쓴 「인물」 하나가 온 땀구멍에서 톱밥을 흘리며 불로뉴 숲에서 호랑이를 쫓는 모습.

"그러다 전쟁이 났지, 친구. 크게 한시름 놓았고, 나는 죽으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아무래도 마법에 걸린 목숨을 타고났나 봐. 전쟁이 시작되자 중위 임관을 받아들였네. 아르곤 숲에서 나는 기관총 대대의 남은 병력을 이끌고 어찌나 멀리 나아갔던지 우리 양옆으로 보병이 따라오지 못한 팔백 미터씩의 빈틈이 생겼지. 우리는 거기서 이틀 낮 이틀 밤을 버텼네. 백서른 명이 루이스 기관총 열여섯 정을 가지고. 마침내 보병이 올라왔을 때 그들은 쌓인 시체 더미 속에서 독일군 세 개 사단의 휘장을 찾아냈지. 나는 소령으로 진급했고, 연합국 정부마다 나한테 훈장을 줬네—몬테네그로까지도, 저 아드리아해의 작은 몬테네그로까지도!"

작은 몬테네그로! 그는 그 말을 들어 올려 그것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그 미소와 함께. 그 미소는 몬테네그로의 험난한 역사를 헤아렸고, 몬테네그로 사람들의 용감한 몸부림에 공감했다. 몬테네그로의 따뜻하고 작은 가슴에서 이런 경의를 끌어낸 나라 사정의 사슬을 온전히 이해했다. 내 불신은 이제 매혹 속에 잠겨 버렸다. 잡지 열두어 권을 서둘러 훑어 넘기는 것 같았다.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리본에 매단 쇠붙이 하나가 내 손바닥에 떨어졌다.

"그게 몬테네그로에서 받은 거네."

놀랍게도 그것은 진짜처럼 보였다. 둥글게 새긴 글귀가 적혀 있었다. 「다닐로 훈장, 몬테네그로, 국왕 니콜라」.

"뒤집어 보게."

"제이 개츠비 소령." 내가 읽었다. "비범한 용맹을 기려."

"이것도 내가 늘 지니고 다니는 거네. 옥스퍼드 시절 기념품이지. 트리니티 안뜰에서 찍었는데—내 왼쪽 사람이 지금 동커스터 백작이야."

블레이저를 입은 청년 여섯 명이 아치 길목에서 빈둥거리는 사진이었고, 그 아치 너머로 뾰족탑이 숱하게 보였다. 개츠비도 있었다. 조금, 아주 조금 더 어려 보였다—손에 크리켓 방망이를 들고.

그렇다면 모두 사실이었다. 나는 대운하 가의 그의 궁전에서 이글거리는 호랑이 가죽들을 보았다. 그가 루비 상자를 열어 그 붉게 빛나는 깊이로 부서진 마음을 갉아먹는 아픔을 달래는 모습을 보았다.

"오늘 자네한테 큰 부탁을 하나 할 참이네." 그가 흡족한 얼굴로 기념품들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그러니 나에 대해 좀 알아 두는 게 좋겠다 싶었지. 내가 그냥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했네. 알다시피 나는 대개 낯선 사람들 틈에 있게 되거든. 나한테 일어난 슬픈 일들을 잊으려고 여기저기 떠돌다 보니." 그가 망설였다. "오늘 오후에 그 얘기를 듣게 될 거네."

"점심때요?"

"아니, 오늘 오후에. 자네가 베이커 양하고 차 마시러 간다는 걸 어쩌다 알게 됐네."

"베이커 양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아니, 친구, 그렇지 않네. 그런데 베이커 양이 고맙게도 이 일에 대해 자네한테 얘기해 주겠다고 했어."

「이 일」이 무엇인지 나는 어렴풋이도 알 수 없었지만, 흥미가 동하기보다는 짜증이 났다. 제이 개츠비 씨 이야기를 하려고 조던에게 차를 마시자고 한 게 아니었다. 틀림없이 터무니없는 부탁일 것 같았고, 잠깐 나는 그의 사람 넘치는 잔디밭에 발을 들여놓은 것을 후회했다.

그는 한마디도 더 하지 않았다. 시내가 가까워질수록 그의 반듯함은 더해 갔다. 우리는 포트 루스벨트를 지났는데, 붉은 띠를 두른 원양선들이 언뜻 보였다. 그러고는 빛바랜 금박의 1900년대 풍 어두운, 그러나 손님이 끊이지 않은 술집들이 늘어선 자갈 깔린 빈민가를 쏜살같이 달렸다. 그러자 재의 골짜기가 양옆으로 펼쳐졌고, 우리가 지나갈 때 정비소 주유기 앞에서 헐떡이는 생기로 용을 쓰고 있는 윌슨 부인이 언뜻 보였다.

날개처럼 펼친 흙받기로 우리는 아스토리아의 절반에 빛을 흩뿌렸다—절반뿐이었던 것은, 고가 철도의 기둥들 사이를 굽이굽이 빠져나갈 때 귀에 익은 오토바이의 "부릉부릉 탕!" 소리가 들리더니 잔뜩 성이 난 경찰관이 우리 옆에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알았네, 친구." 개츠비가 외쳤다. 우리는 속도를 늦췄다. 그는 지갑에서 흰 카드 한 장을 꺼내 경찰관 눈앞에 흔들었다.

"예, 알겠습니다." 경찰관이 모자를 살짝 들며 수긍했다. "다음엔 알아뵙겠습니다, 개츠비 씨. 실례했습니다!"

"그게 뭡니까?" 내가 물었다. "옥스퍼드 사진인가요?"

"경찰청장한테 한번 도움을 준 적이 있는데, 해마다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오지."

거대한 다리를 건넜다. 철골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달리는 차들 위에 끊임없이 깜박였고, 강 건너에서는 도시가 흰 무더기와 각설탕으로 솟아올랐다. 모두 냄새 안 나는 돈으로 소원을 담아 지은 것들이었다. 퀸스버러 다리에서 보는 도시는 언제나 처음 보는 도시다. 세상의 모든 신비와 아름다움을 약속하는 그 첫 번째 거친 약속 속의 도시.

꽃을 수북이 쌓은 영구차에 실린 죽은 이가 우리 곁을 지나갔고, 그 뒤로 차양을 내린 마차 두 대가, 그리고 벗들을 태운 좀 더 명랑한 마차들이 따라갔다. 벗들은 동남부 유럽 사람들의 비극적인 눈과 짧은 윗입술로 우리를 내다보았고, 나는 개츠비의 화려한 차를 본 것이 그들의 침울한 휴일에 끼게 되어 기뻤다. 블랙웰섬을 건널 때 흰 사람 운전기사가 모는 리무진 한 대가 우리를 지나쳤는데, 그 안에는 멋을 부린 흑인 셋이, 사내 둘과 아가씨 하나가 앉아 있었다. 그들의 노른자 같은 눈알이 오만한 도전을 담아 우리 쪽으로 굴러올 때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이 다리를 미끄러져 건넜으니 이제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 나는 생각했다. '무슨 일이든…'

개츠비라는 일조차, 별다른 놀라움 없이, 일어날 수 있었다.

* * *

요란한 한낮. 선풍기가 잘 도는 42번가의 어느 지하 식당에서 나는 점심을 먹으러 개츠비를 만났다. 바깥 거리의 눈부심을 눈을 깜박여 떨쳐 내자, 대기실에서 다른 남자와 이야기하고 있는 그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캐러웨이 씨, 이쪽은 내 친구 울프심 씨일세."

코가 납작한 작은 유대인이 커다란 머리를 들고, 양쪽 콧구멍에서 무성하게 자란 멋진 털 두 줄기로 나를 살폈다. 잠시 뒤에야 나는 어스름 속에서 그의 조그만 두 눈을 찾아냈다.

"—그래서 내가 그놈을 한번 쳐다봤지." 울프심 씨가 내 손을 진지하게 흔들며 말했다. "그러고 내가 어떻게 했을 것 같소?"

"어떻게 하셨는데요?" 내가 예의 바르게 물었다.

그러나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던 게 분명했다. 그는 내 손을 놓더니 그 표정 풍부한 코로 개츠비를 덮었다.

"캣스포한테 돈을 건네주고 이랬지. '됐어, 캣스포, 저놈이 입 다물 때까지 한 푼도 주지 마.' 그놈은 그 자리에서 입을 다물었소."

개츠비가 우리 둘의 팔을 하나씩 잡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울프심 씨는 막 시작하려던 새 문장을 삼키고 몽유병자 같은 멍함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이볼로 하시겠습니까?" 수석 웨이터가 물었다.

"여기도 괜찮은 식당이오." 울프심 씨가 천장의 장로교도 같은 요정 그림들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나는 길 건너가 더 좋아!"

"그래, 하이볼로." 개츠비가 응하고는 울프심 씨에게 말했다. "거긴 너무 더워요."

"덥고 좁지—그렇지." 울프심 씨가 말했다. "그래도 추억이 가득하지."

"거기가 어딘데요?" 내가 물었다.

"옛날 메트로폴이오."

"옛날 메트로폴." 울프심 씨가 침울하게 곱씹었다. "죽고 없는 얼굴들로 가득하지. 이제 영영 가 버린 친구들로 가득하지. 거기서 놈들이 로지 로젠탈을 쏜 밤을 나는 살아 있는 한 못 잊을 거요. 탁자에 우리 여섯이 있었고, 로지는 저녁 내내 잔뜩 먹고 마셨소. 거의 아침이 됐을 때 웨이터가 이상한 얼굴로 다가와서는 밖에서 누가 할 말이 있다고 합디다. '알았어.' 로지가 그러고는 일어서려는 걸 내가 의자에 도로 앉혔지.

"'그 개자식들이 자네를 원하면 여기로 들어오라고 해, 로지. 하지만 자네는, 제발, 이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마.'

"그때가 새벽 네 시였소. 차양을 걷었으면 날이 밝은 게 보였을 거요."

"나갔습니까?"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물었다.

"그럼 나갔지." 울프심 씨의 코가 분개해서 나를 향해 번득였다. "문간에서 돌아서더니 이럽디다. '저 웨이터가 내 커피 치우지 못하게 해!' 그러고는 보도로 나갔는데, 놈들이 그 불룩한 배에 세 발을 쏘고는 차를 몰고 가 버렸소."

"그중 넷이 전기의자에서 처형됐지요." 내가 기억을 더듬어 말했다.

"베커까지 다섯이오." 그의 콧구멍이 관심 있다는 듯 나를 향했다. "사업 연쭐을 찾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두 말이 나란히 놓이니 섬뜩했다. 개츠비가 나 대신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그가 소리쳤다. "이 사람이 아니에요."

"아니오?" 울프심 씨는 실망한 것 같았다.

"그냥 친구입니다. 그 얘기는 다음에 하자고 했잖습니까."

"실례했소." 울프심 씨가 말했다. "사람을 잘못 봤군."

먹음직한 해시가 나왔고, 울프심 씨는 옛날 메트로폴의 더 감상적인 분위기는 잊고 사납도록 섬세하게 먹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눈은 아주 천천히 방 안을 한 바퀴 돌았다—그는 몸을 돌려 바로 뒤에 앉은 사람들까지 살펴서 그 호를 마저 그렸다. 내가 없었더라면 우리 탁자 밑도 한 번 짧게 흘끗 들여다보았으리라.

"이보게, 친구." 개츠비가 나에게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아침에 차에서 내가 자네를 좀 화나게 한 것 같군."

그 미소가 다시 떠올랐지만 이번에는 나는 버텼다.

"저는 수수께끼가 싫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원하시는 걸 왜 솔직하게 털어놓고 말씀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왜 모든 게 베이커 양을 거쳐야 합니까?"

"아, 뒤가 구린 일이 아닐세." 그가 나를 안심시켰다. "베이커 양은 훌륭한 운동선수 아닌가. 떳떳하지 않은 일은 절대 안 할 사람이야."

그는 문득 시계를 보더니 벌떡 일어나 서둘러 방을 나갔다. 나를 울프심 씨와 함께 탁자에 남겨 둔 채.

"전화를 해야 한다오." 울프심 씨가 눈으로 그를 좇으며 말했다. "훌륭한 친구지, 안 그렇소? 보기에 잘생겼고 완벽한 신사요."

"그렇지요."

"옥쓰퍼드 출신이오."

"아!"

"영국의 옥쓰퍼드 대학에 다녔소. 옥쓰퍼드 대학 아시오?"

"들어 봤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이름난 대학 가운데 하나요."

"개츠비를 오래 아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몇 해 됐지." 그가 흐뭇하게 대답했다. "전쟁 끝나고 곧 알게 되는 기쁨을 누렸소. 그런데 한 시간쯤 얘기해 보고는 가정 교육 훌륭한 사람을 찾아냈다는 걸 알았지. 속으로 이랬소. '저런 사람이야말로 집에 데려가서 어머니하고 누이한테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가 말을 멈췄다. "내 소맷단추를 보고 계시는군."

보고 있지 않았지만 이제는 보았다. 묘하게 낯익은 상아 조각들로 만든 것이었다.

"사람 어금니 가운데 가장 훌륭한 표본들이오." 그가 알려 주었다.

"이런!" 나는 그것을 살펴보았다. "아주 흥미로운 착상이군요."

"그렇지." 그가 소매를 외투 밑으로 쓱 걷어 넣었다. "그래, 개츠비는 여자 문제에 아주 조심하오. 친구 아내한테는 눈길 한 번 안 줄 사람이지."

이 본능적인 신뢰의 대상이 식탁으로 돌아와 앉자 울프심 씨는 커피를 홱 들이켜고 일어섰다.

"점심 잘 먹었소." 그가 말했다. "너무 오래 눌러앉아 반가움이 가시기 전에 두 젊은이한테서 물러가야겠소."

"서두르지 마세요, 마이어." 개츠비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울프심 씨는 축복이라도 내리듯 손을 들었다.

"아주 예의 바르시군. 하지만 나는 다른 세대 사람이오." 그가 엄숙하게 밝혔다. "두 사람은 여기 앉아서 운동 얘기며 아가씨들 얘기며 또—" 그는 손을 한 번 더 흔들어 상상 속의 명사를 채워 넣었다. "나로 말하자면 쉰 살이니 더는 폐를 끼치지 않겠소."

악수를 하고 돌아설 때 그의 비극적인 코가 떨리고 있었다. 내가 무슨 기분 상할 말이라도 했나 싶었다.

"이따금 아주 감상적이 되지." 개츠비가 설명했다. "오늘이 그 감상적인 날 가운데 하루야. 뉴욕 바닥에서는 꽤 알아주는 인물이지—브로드웨이 터줏대감이랄까."

"그래서 누굽니까? 배우인가요?"

"아니."

"치과 의사?"

"마이어 울프심이? 아니, 도박꾼이야." 개츠비는 머뭇거리다가 태연하게 덧붙였다. "1919년에 월드시리즈를 조작한 사람이지."

"월드시리즈를 조작했다고요?" 내가 되뇌었다.

그 생각에 나는 휘청했다. 물론 1919년에 월드시리즈가 조작되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해도 그저 일어난 일, 피할 수 없는 어떤 사슬의 끝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한 사람이 오천만 명의 믿음을 가지고 놀기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금고를 폭파하는 강도처럼 한 가지 마음만 품고서.

"어쩌다 그런 일을 하게 됐답니까?" 잠시 뒤 내가 물었다.

"그저 기회를 봤을 뿐이지."

"왜 감옥에 안 갔습니까?"

"못 잡아넣어, 친구. 영리한 사람이거든."

내가 우겨서 계산을 했다. 웨이터가 거스름돈을 가져올 때 나는 붐비는 방 건너편에서 톰 뷰캐넌을 보았다.

"잠깐 같이 가시죠." 내가 말했다. "인사할 사람이 있어서요."

우리를 보자 톰은 벌떡 일어나 우리 쪽으로 대여섯 걸음 걸어왔다.

"어디 있었나?" 그가 반갑게 따졌다. "자네가 전화를 안 해서 데이지가 잔뜩 화났네."

"이쪽은 개츠비 씨, 이쪽은 뷰캐넌 씨."

두 사람은 짧게 악수했고, 개츠비의 얼굴에 긴장되고 낯선 당혹의 빛이 번졌다.

"그래, 어떻게 지냈나?" 톰이 나에게 물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와서 밥을 먹나?"

"개츠비 씨하고 점심 먹었네."

나는 개츠비 씨 쪽으로 돌아섰지만 그는 이미 거기 없었다.

* * *

1917년 10월의 어느 날—

(그날 오후 플라자 호텔의 찻집 정원에서, 곧은 의자에 아주 꼿꼿이 앉아 조던 베이커가 말했다)

—나는 이리저리 걸어가고 있었어요. 반은 보도로, 반은 잔디밭으로. 잔디밭이 더 좋았어요. 영국에서 온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밑창에 고무 돌기가 있어서 부드러운 땅을 콱콱 물었거든요. 새 격자무늬 치마도 입고 있었는데 바람에 조금씩 날렸고, 그럴 때마다 집집마다 앞에 걸린 빨강 하양 파랑 깃발들이 뻣뻣하게 펴지면서 못마땅하다는 듯이 쯧쯧쯧쯧 소리를 냈죠.

깃발 가운데 제일 큰 것과 잔디밭 가운데 제일 넓은 것은 데이지 페이네 집 것이었어요. 데이지는 막 열여덟 살이었고, 나보다 두 살 위였고, 루이빌의 아가씨들 가운데 단연 제일 인기가 많았죠. 흰 옷을 입었고, 조그만 흰 로드스터가 있었고, 그 집에서는 하루 종일 전화가 울렸어요. 캠프 테일러에서 온 들뜬 젊은 장교들이 그날 밤 데이지를 독차지할 특권을 달라고 졸라 댔거든요. "어쨌든 한 시간만이라도!"

그날 아침 내가 그 집 맞은편에 이르렀을 때 흰 로드스터가 연석 옆에 서 있었고, 데이지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중위 하나와 그 안에 앉아 있었어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어찌나 빠져 있던지 데이지는 내가 두어 걸음 앞에 올 때까지도 나를 못 봤죠.

"안녕, 조던." 데이지가 뜻밖에 나를 불렀어요. "이리 좀 와 봐."

데이지가 나한테 말을 걸고 싶어 한다는 게 우쭐했어요. 언니들 가운데 내가 제일 동경하던 사람이었거든요. 적십자에 붕대 만들러 가느냐고 묻더군요. 가는 길이었죠. 그럼 오늘은 자기가 못 온다고 전해 주겠느냐고요. 데이지가 말하는 동안 그 장교는 데이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여자애라면 누구나 언젠가 한 번쯤 받고 싶은 그런 눈길로요. 그게 낭만적으로 보여서 나는 그 뒤로 내내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 사람 이름이 제이 개츠비였어요. 그리고 나는 사 년 넘게 그 사람을 다시 못 봤죠—롱아일랜드에서 만나고 나서도 같은 사람인 줄 몰랐어요.

그게 1917년이었어요. 이듬해에는 나한테도 남자 친구가 몇 생겼고 시합에 나가기 시작해서 데이지를 자주 보지는 못했어요. 데이지는 조금 나이 든 무리하고 어울렸어요—누구하고든 어울리기라도 할 때는요. 데이지에 대해 거친 소문들이 돌았어요—어느 겨울밤 데이지가 뉴욕에 가서 바다 건너가는 군인한테 작별 인사를 하려고 가방을 싸다가 어머니한테 들켰다는 둥. 결국 막혔지만, 데이지는 몇 주 동안 식구들하고 말도 안 했대요. 그 뒤로는 군인들하고 더는 어울리지 않고, 아예 군대에 못 들어간 평발에 근시인 동네 청년 몇하고만 놀았어요.

이듬해 가을에는 다시 명랑해졌어요, 예전처럼 명랑하게. 휴전 뒤에 사교계에 첫선을 보였고, 2월에는 뉴올리언스 남자하고 약혼했다는 말이 돌았어요. 6월에는 시카고의 톰 뷰캐넌하고 결혼했는데, 루이빌이 그때껏 본 적 없을 만큼 떠들썩하고 성대했죠. 톰은 전용 객차 넉 량에 백 명을 태우고 내려와서 뮐바흐 호텔 한 층을 통째로 빌렸고, 결혼식 전날 데이지한테 삼십오만 달러짜리 진주 목걸이를 줬어요.

나는 들러리였어요. 신부 만찬 삼십 분 전에 데이지 방에 들어갔더니,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6월 밤처럼 사랑스럽게 침대에 누워 있더라고요—그리고 원숭이처럼 곤드레만드레 취해서요. 한 손에는 소테른 한 병을, 다른 손에는 편지 한 통을 들고 있었어요.

"추카해 줘." 데이지가 웅얼거렸어요. "술은 한 번도 안 마셔 봤는데, 아 정말 좋다."

"왜 그래, 데이지?"

정말이지 겁이 났어요. 여자애가 그러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자, 얘들아." 데이지는 침대 위에 끌어다 놓은 휴지통을 더듬거리더니 진주 목걸이를 꺼냈어요. "이거 아래층에 가져가서 임자한테 돌려줘. 데이지가 마음을 바꿨다고 다들한테 말해. '데이지가 마음을 바꿨대요!' 하고."

그러고는 울기 시작했어요—울고 또 울었어요. 나는 뛰쳐나가서 데이지 어머니의 하녀를 찾았고, 우리는 문을 잠그고 데이지를 찬물 욕조에 넣었어요. 데이지는 편지를 놓으려 하지 않았어요. 욕조까지 가지고 들어가서 젖은 공처럼 꽉 쥐어 뭉쳤고, 그게 눈처럼 부스러지는 걸 보고서야 비누 접시에 놓아두게 해 주었어요.

그런데 데이지는 그 뒤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암모니아 정신을 맡게 하고 이마에 얼음을 대고 드레스 뒤 고리를 채워 주었어요. 그리고 삼십 분 뒤 우리가 방을 나설 때 진주는 데이지 목에 걸려 있었고 그 일은 끝나 있었죠. 이튿날 다섯 시에 데이지는 떨지도 않고 톰 뷰캐넌하고 결혼해서 석 달짜리 남태평양 여행을 떠났어요.

돌아왔을 때 샌타바버라에서 두 사람을 봤는데, 그렇게 제 남편한테 푹 빠진 여자는 처음 본다 싶었어요. 톰이 잠깐만 방을 비워도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면서 "톰 어디 갔어?" 하고, 톰이 문으로 들어오는 게 보일 때까지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모래밭에 앉아 톰의 머리를 무릎에 얹고 몇 시간이고 손가락으로 톰의 눈을 쓰다듬으면서 헤아릴 수 없는 기쁨으로 톰을 바라보곤 했죠.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걸 보면 뭉클했어요—숨죽인 채 홀려서 웃게 됐죠. 그게 8월이었어요. 내가 샌타바버라를 떠나고 일주일 뒤 어느 밤 톰이 벤투라 가는 길에서 짐마차를 들이받아 차 앞바퀴 하나가 뜯겨 나갔어요. 같이 있던 여자도 신문에 났어요. 팔이 부러졌거든요—샌타바버라 호텔의 객실 청소부였어요.

이듬해 4월에 데이지는 딸을 낳았고, 두 사람은 일 년 동안 프랑스에 갔어요. 어느 봄에 칸에서 봤고, 나중에 도빌에서 봤고, 그러고는 시카고로 돌아와 자리를 잡았죠. 아시다시피 데이지는 시카고에서 인기가 많았어요. 둘은 젊고 돈 많고 거친 사람들, 노는 속도가 빠른 무리하고 어울렸는데, 데이지는 흠 하나 없는 평판을 지키고 빠져나왔어요. 아마 술을 안 마셔서일 거예요. 술 잘 마시는 사람들 틈에서 안 마신다는 건 대단한 이점이거든요.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있고, 게다가 자기의 사소한 일탈을 딱 알맞은 때에 맞출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다 눈이 멀어서 보지도 않고 신경도 안 쓸 때에요. 어쩌면 데이지는 연애 같은 건 아예 안 했는지도 몰라요—그래도 그 목소리에는 뭔가가 있어요…

그런데 여섯 주쯤 전에 데이지가 몇 해 만에 처음으로 개츠비라는 이름을 들은 거예요. 내가 당신한테—기억나세요?—웨스트에그의 개츠비를 아느냐고 물었을 때요. 당신이 집에 가고 나서 데이지가 내 방에 들어와 나를 깨우더니 "무슨 개츠비?"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반쯤 잠든 채로—그 사람 생김새를 말해 줬더니, 데이지가 세상에서 제일 이상한 목소리로 자기가 알던 그 남자가 틀림없다고 했어요. 그제야 나는 이 개츠비와 데이지의 흰 차에 타 있던 그 장교를 이어 붙였죠.

* * *

조던 베이커가 이 이야기를 다 마쳤을 때 우리는 플라자를 나선 지 삼십 분이 지나 있었고, 빅토리아 마차를 타고 센트럴파크를 지나고 있었다. 해는 50번가 서쪽 영화배우들의 높은 아파트 뒤로 넘어가 있었고, 벌써 풀밭에 귀뚜라미처럼 모여 앉은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가 뜨거운 땅거미를 뚫고 올라왔다.

「나는야 아라비아의 족장이라네…」

"묘한 우연이군요." 내가 말했다.

"우연 같은 게 전혀 아니었어요."

"왜요?"

"개츠비는 데이지가 바로 만 건너편에 있게 하려고 그 집을 산 거예요."

그렇다면 그 6월의 밤에 그가 갈망했던 것은 별들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목적 없는 호화로움의 태 속에서 문득 풀려나와 나에게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다.

"개츠비는 알고 싶어 해요." 조던이 말을 이었다. "당신이 어느 오후에 데이지를 당신 집에 초대하고 자기가 건너오게 해 줄 수 있는지."

그 요구의 소박함이 나를 흔들었다. 그는 오 년을 기다렸고, 지나가는 나방들에게 별빛을 나누어 주는 저택을 샀다—어느 오후 낯선 사람의 정원으로 「건너오기」 위해서.

"그런 작은 부탁 하나 하려고 내가 이걸 다 알아야 했단 말입니까?"

"겁이 난 거예요. 너무 오래 기다렸으니까. 당신이 기분 나빠할까 봐 그랬대요. 알고 보면 그 사람 속은 여간 여리지 않아요."

무언가가 마음에 걸렸다.

"왜 당신한테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하지 않았죠?"

"데이지가 자기 집을 봤으면 하는 거예요." 그가 설명했다. "그리고 당신 집이 바로 옆이잖아요."

"아!"

"어느 밤 데이지가 파티에 흘러들어 오지 않을까 반쯤은 기대했나 봐요." 조던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데이지는 한 번도 안 왔죠. 그래서 사람들한테 데이지를 아느냐고 슬쩍슬쩍 묻기 시작했는데, 내가 처음으로 걸린 사람이었어요. 파티에서 나를 부른 게 바로 그날 밤이었는데, 그 얘기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공들여 에둘러 가는지 들으셨어야 했어요. 물론 나는 곧바로 뉴욕에서 점심을 먹자고 했죠—그랬더니 그 사람이 미쳐 버리는 줄 알았어요.

"'나는 유별난 짓은 하나도 하고 싶지 않소!' 계속 그러더라고요. '바로 옆집에서 그 사람을 보고 싶소.'

"당신이 톰과 특별히 가까운 친구라고 했더니 계획을 통째로 접으려 하더군요. 톰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데이지 이름이라도 언뜻 볼까 해서 몇 해째 시카고 신문을 읽어 왔다면서도요."

이제 어두워졌고, 작은 다리 밑으로 내려갈 때 나는 조던의 황금빛 어깨에 팔을 두르고 끌어당기며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문득 나는 더는 데이지와 개츠비를 생각하지 않았다. 온 세상을 의심하며 사는 이 깔끔하고 단단하고 한정된 사람을, 내 팔이 그리는 원 안에 딱 맞게 경쾌하게 몸을 기대 오는 이 사람을 생각했다. 어떤 구절 하나가 머리가 핑 돌 듯한 들뜸과 함께 내 귀에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쫓기는 자, 쫓는 자, 바쁜 자, 지친 자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데이지도 삶에 뭔가 있어야 해요." 조던이 나에게 웅얼거렸다.

"데이지는 개츠비를 보고 싶어 합니까?"

"데이지는 몰라야 해요. 개츠비가 데이지가 모르길 바라요. 당신은 그냥 차 마시자고 초대만 하면 돼요."

어두운 나무들의 울타리를 지나자 59번가의 건물 앞면이, 섬세하고 창백한 빛의 한 구역이 공원을 환하게 내려다보았다. 개츠비나 톰 뷰캐넌과 달리 나에게는 어두운 처마 돌림띠와 눈부신 간판을 따라 몸 없는 얼굴이 떠다니는 여자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곁의 여자를 끌어당기며 팔에 힘을 주었다. 그의 흐릿하고 비웃는 입이 웃었고, 그래서 나는 그를 다시 더 가까이, 이번에는 내 얼굴 쪽으로 끌어당겼다.

5장

그날 밤 웨스트에그로 돌아왔을 때 나는 잠깐 우리 집에 불이 난 줄 알았다. 새벽 두 시인데 반도 모퉁이 전체가 불빛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 빛이 덤불 위에 비현실적으로 내려앉았고 길가 전깃줄에 가늘고 길게 늘어지는 번쩍임을 만들었다. 모퉁이를 돌고 나서야 그것이 탑부터 지하실까지 불을 켠 개츠비의 집임을 알았다.

처음에는 또 파티인 줄 알았다. 흥청대던 난장판이 결국 「숨바꼭질」이나 「정어리 통조림」 놀이로 번져서 온 집을 놀이판으로 활짝 열어 놓은 것이려니. 그런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뿐이었고, 그 바람이 전깃줄을 흔들어 불빛이 꺼졌다 켜졌다 했다. 집이 어둠을 향해 눈을 깜박이는 것처럼. 택시가 신음하며 떠나갈 때 개츠비가 잔디밭을 가로질러 나에게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댁이 무슨 만국박람회 같군요." 내가 말했다.

"그런가?" 그가 넋 놓은 눈으로 그쪽을 돌아보았다. "방 몇 개를 들여다보고 있었네. 코니아일랜드에 가세, 친구. 내 차로."

"너무 늦었어요."

"그럼 수영장에 한번 뛰어들면 어떤가? 여름 내내 한 번도 안 썼는데."

"자야 합니다."

"알았네."

그는 억누른 간절함을 담고 나를 보며 기다렸다.

"베이커 양하고 얘기했습니다." 잠시 뒤 내가 말했다. "내일 데이지한테 전화해서 여기 차 마시러 오라고 하겠습니다."

"아, 그건 괜찮네." 그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자네를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

"어느 날이 좋으세요?"

"자네는 어느 날이 좋은가?" 그가 얼른 고쳐 말했다. "자네를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다니까."

"모레는 어떻습니까?"

그는 잠시 생각했다. 그러고는 마지못한 듯이 말했다. "잔디를 좀 깎아야겠는데."

우리는 둘 다 잔디를 내려다보았다—내 텁수룩한 잔디밭이 끝나고 그의 더 짙고 잘 가꾼 잔디가 펼쳐지는 곳에 날카로운 경계선이 있었다. 그가 말한 것이 내 잔디가 아닌가 싶었다.

"또 한 가지 작은 일이 있는데." 그가 자신 없게 말하다가 머뭇거렸다.

"며칠 미룰까요?" 내가 물었다.

"아, 그 얘기가 아닐세. 적어도—" 그는 이렇게 저렇게 말머리를 더듬었다. "그러니까, 내 생각엔—그러니까, 이보게, 친구, 자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

"많이는 못 법니다."

이 말이 그를 안심시킨 듯했고, 그는 좀 더 자신 있게 말을 이었다.

"그럴 것 같더라니,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실은 내가 곁다리로 작은 사업을 하나 하고 있거든, 부업 같은 거지, 알겠나. 그래서 자네가 많이 벌지 못한다면—채권을 팔고 있지, 친구?"

"팔아 보려고 하지요."

"그렇다면 이 일에 관심이 갈 걸세. 시간도 별로 안 들고 돈도 쏠쏠하게 만질 수 있을 거야. 마침 좀 은밀한 성격의 일이라서."

지금 생각하면, 사정이 달랐더라면 그 대화는 내 삶의 고비 가운데 하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제안이 너무 뻔하고 눈치 없이 앞으로 해 줄 일에 대한 대가였기 때문에, 나는 거기서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일이 벅찹니다." 내가 말했다. "정말 고맙지만 일을 더 맡을 수는 없어요."

"울프심하고 무슨 거래를 할 필요는 없네." 점심때 나온 그 「연쭐」에서 내가 뒷걸음질 친다고 생각한 게 분명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그를 안심시켰다. 그는 내가 무슨 이야기라도 꺼내기를 바라며 잠시 더 기다렸지만, 나는 너무 딴 데 정신이 팔려 응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는 마지못해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은 나를 어질어질하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현관문을 들어서면서 곧장 깊은 잠 속으로 걸어 들어갔던 것 같다. 그래서 개츠비가 코니아일랜드에 갔는지, 그의 집이 요란하게 이글거리는 동안 몇 시간이나 「방을 들여다봤는지」 나는 모른다. 이튿날 아침 나는 사무실에서 데이지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마시러 오라고 청했다.

"톰은 데려오지 마." 내가 일러두었다.

"뭐라고?"

"톰은 데려오지 말라고."

"'톰'이 누군데?" 그가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약속한 날에는 비가 퍼부었다. 열한 시에 비옷을 입은 남자가 잔디 깎는 기계를 끌고 와 현관문을 두드리더니, 개츠비 씨가 내 잔디를 깎으라고 보냈다고 했다. 그 바람에 우리 집 핀란드 여자에게 다시 오라는 말을 깜빡했다는 것이 생각나서, 나는 차를 몰고 웨스트에그 마을로 가서 질척한 회칠 골목들을 뒤지며 그를 찾았고, 찻잔과 레몬과 꽃도 좀 샀다.

꽃은 필요 없었다. 두 시에 개츠비네에서 온실 하나가 통째로 왔고, 그것을 담을 그릇도 셀 수 없이 딸려 왔기 때문이다. 한 시간 뒤 현관문이 초조하게 열리더니 흰 플란넬 양복에 은빛 셔츠, 금빛 넥타이 차림의 개츠비가 서둘러 들어왔다. 얼굴이 창백했고 눈 밑에 잠 못 잔 거뭇한 흔적이 있었다.

"다 괜찮은가?" 그가 들어서자마자 물었다.

"잔디 말씀이라면 보기 좋습니다."

"무슨 잔디?" 그가 멍하니 물었다. "아, 마당 잔디." 그는 창밖으로 그것을 내다보았지만, 표정으로 보아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아주 좋아 보이는군." 그가 흐리멍덩하게 말했다. "어느 신문에서 네 시쯤 비가 그칠 거라더군. 「저널」이었던 것 같아. 필요한 건 다 있나, 그러니까—그러니까 차 쪽으로?"

나는 그를 식료품실로 데려갔고, 그는 핀란드 여자를 좀 나무라는 눈으로 보았다. 우리는 함께 식료품 가게에서 사 온 레몬 케이크 열두 개를 꼼꼼히 살폈다.

"이거면 되겠습니까?" 내가 물었다.

"물론, 물론이지! 훌륭하네!" 그러고는 공허하게 덧붙였다. "…친구."

세 시 반쯤 비는 식어 축축한 안개가 되었고, 그 속을 이따금 가느다란 빗방울이 이슬처럼 헤엄쳐 다녔다. 개츠비는 멍한 눈으로 「클레이 경제학」을 넘겨 보다가, 주방 바닥을 울리는 핀란드 여자의 발소리에 흠칫흠칫 놀랐고, 보이지는 않지만 불안한 일들이 바깥에서 줄줄이 벌어지고 있기라도 한 듯 이따금 뿌연 창밖을 살폈다. 마침내 그는 일어나 자신 없는 목소리로 집에 가겠다고 알렸다.

"왜요?"

"아무도 차 마시러 안 와. 너무 늦었어!" 그는 다른 데서 급히 그를 부르는 일이라도 있는 듯 시계를 보았다. "하루 종일 기다릴 수는 없네."

"바보 같은 소리 마세요. 네 시 이 분 전인데."

그는 내가 떠밀기라도 한 듯 비참한 얼굴로 주저앉았고, 동시에 차 한 대가 우리 집 골목으로 꺾어 드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둘 다 벌떡 일어났고, 나도 좀 애가 타서 마당으로 나갔다.

물방울 떨어지는 앙상한 라일락 나무 아래로 커다란 지붕 없는 차 한 대가 진입로를 올라오고 있었다. 차가 멈췄다. 연보라빛 삼각 모자 밑에서 옆으로 기울어진 데이지의 얼굴이 밝고 황홀한 미소로 나를 내다보았다.

"여기가 정말 당신이 사는 데예요, 내 사랑?"

그 목소리의 들뜨게 하는 물결은 빗속에서 거친 강장제 같았다. 무슨 말이든 알아듣기 전에 나는 잠깐 귀만으로 그 소리를 따라 오르내려야 했다. 젖은 머리카락 한 줄기가 푸른 물감을 한 획 그은 듯 그의 뺨에 걸쳐 있었고,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우려고 잡은 그의 손은 반짝이는 물방울로 젖어 있었다.

"나를 사랑하는 거예요," 그가 내 귀에 대고 낮게 말했다. "아니면 내가 왜 혼자 와야 했죠?"

"그게 랙렌트 성의 비밀이야. 운전기사한테 멀리 가서 한 시간 있다 오라고 해."

"한 시간 뒤에 와요, 퍼디." 그러고는 엄숙하게 웅얼거렸다. "저 사람 이름이 퍼디예요."

"휘발유 때문에 코에 탈이 나진 않나?"

"안 그런 것 같은데." 그가 아무것도 모르고 말했다. "왜요?"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너무나 놀랍게도 거실은 텅 비어 있었다.

"거참, 이상하네." 내가 소리쳤다.

"뭐가 이상해요?"

현관문에서 가볍고 점잖은 노크 소리가 나자 그가 고개를 돌렸다. 나가서 문을 열었다.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개츠비가 추라도 단 듯 두 손을 외투 주머니에 푹 찔러 넣은 채 물웅덩이에 서서 비극적인 눈으로 내 눈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두 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은 채 성큼성큼 나를 지나 현관으로 들어오더니, 줄에 매달린 인형처럼 홱 돌아서서 거실로 사라졌다.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내 심장이 크게 뛰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거세지는 비를 막으려고 문을 당겨 닫았다.

삼십 초 동안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러다 거실에서 목이 멘 듯한 웅얼거림과 웃음 한 토막이 들렸고, 이어서 맑고 꾸민 음정의 데이지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뵙게 돼서 정말 너무 반가워요."

뜸. 끔찍하게 길었다. 현관에서 할 일도 없어서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개츠비는 여전히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벽난로 선반에 기대 있었다. 더없이 편안한 척, 심지어 지루한 척하는 억지 흉내였다. 머리를 어찌나 뒤로 젖혔는지 멈춰 버린 벽난로 선반 시계의 판에 닿아 있었고, 그 자세로 그의 혼란스러운 눈이 데이지를 내려다보았다. 데이지는 겁먹었지만 우아하게 딱딱한 의자 끝에 앉아 있었다.

"전에 만난 적이 있지요." 개츠비가 웅얼거렸다. 그의 눈이 잠깐 나를 흘끗 보았고, 입술이 웃으려다 만 채 벌어졌다. 다행히 바로 그때 시계가 그의 머리에 밀려 위태롭게 기울었고, 그는 돌아서서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붙잡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러고는 뻣뻣하게 앉아 소파 팔걸이에 팔꿈치를 대고 손으로 턱을 괴었다.

"시계는 미안하네." 그가 말했다.

이제 내 얼굴은 열대의 햇볕에 덴 것처럼 새빨개져 있었다. 머릿속에 든 흔해 빠진 말 천 가지 가운데 단 하나도 끌어낼 수가 없었다.

"오래된 시계예요." 내가 바보같이 말했다.

한순간 우리 모두 그 시계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고 믿었던 것 같다.

"우리 여러 해 동안 못 만났죠." 데이지가 말했다. 목소리가 더할 수 없이 사무적이었다.

"오는 11월이면 오 년이오."

개츠비의 대답이 기계처럼 튀어나오는 바람에 우리 모두 적어도 일 분은 더 뒷걸음질 쳤다. 나는 절박하게 부엌에서 차 끓이는 걸 도와 달라고 해서 두 사람을 일으켜 세웠는데, 바로 그때 귀신 같은 핀란드 여자가 쟁반에 차를 받쳐 들고 들어왔다.

찻잔과 케이크의 반가운 어수선함 속에서 어떤 몸가짐의 체면이 자리를 잡았다. 개츠비는 그늘 속으로 들어가 앉았고, 데이지와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긴장되고 불행한 눈으로 성실하게 우리 둘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나 차분함이 목적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틈이 나자마자 핑계를 대고 일어섰다.

"어디 가나?" 개츠비가 대번에 겁에 질려 물었다.

"금방 올게요."

"자네가 가기 전에 할 말이 있네."

그는 정신없이 나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는 비참하게 속삭였다. "아, 하느님!"

"왜 그러세요?"

"이건 끔찍한 실수야." 그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했다. "끔찍하고, 끔찍한 실수야."

"그냥 쑥스러우신 거예요. 그뿐입니다." 그러고는 다행히 이렇게 덧붙였다. "데이지도 쑥스러워해요."

"그 사람이 쑥스러워한다고?" 그가 못 믿겠다는 듯 되뇌었다.

"딱 당신만큼요."

"그렇게 크게 말하지 말게."

"꼭 어린애처럼 구시네요." 내가 참다못해 쏘아붙였다. "그뿐 아니라 무례하세요. 데이지가 저 안에 혼자 앉아 있잖아요."

그는 손을 들어 내 말을 막고는 잊을 수 없는 원망의 눈길로 나를 보더니, 조심스레 문을 열고 저쪽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뒷문으로 나갔다—삼십 분 전 개츠비가 초조하게 집 둘레를 한 바퀴 돌 때 그랬던 것처럼—그리고 커다랗고 검은 옹이투성이 나무 쪽으로 뛰어갔다. 빽빽한 잎들이 비를 가리는 천막이 되어 주었다. 다시 비가 퍼붓고 있었고, 개츠비의 정원사가 말끔히 깎아 놓은 내 울퉁불퉁한 잔디밭은 작은 진흙 늪과 선사 시대의 습지로 가득했다. 나무 밑에서 볼 것이라고는 개츠비의 거대한 집뿐이어서, 나는 교회 첨탑을 바라보던 칸트처럼 삼십 분 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십 년 전 「시대 양식」 열풍 초기에 어느 양조업자가 지은 집이었는데, 그가 이웃 오두막 주인들이 지붕을 짚으로 이면 그 집들의 세금을 오 년 치 대신 내 주겠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들이 거절한 것이 가문을 세우겠다는 그의 계획에서 기운을 빼 버렸는지도 모른다—그는 곧바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의 자식들은 검은 조화가 아직 문에 걸려 있는 채로 집을 팔았다. 미국 사람들은 농노가 되는 것은 기꺼이, 심지어 열렬히 받아들이면서도 소작농이 되는 것에는 언제나 완강했다.

삼십 분이 지나자 해가 다시 났고, 식료품 가게 차가 하인들의 저녁거리를 싣고 개츠비의 진입로를 돌아 들어갔다—그는 한 숟갈도 먹지 않으리라고 나는 확신했다. 하녀 하나가 그 집 위층 창문들을 열기 시작했는데, 창마다 잠깐씩 나타나더니 가운데 커다란 돌출창에서 몸을 내밀고 생각에 잠긴 듯 정원에 침을 뱉었다. 돌아갈 때였다. 비가 오는 동안에는 그 소리가 두 사람의 웅얼거림 같았다. 이따금 감정이 몰아칠 때마다 조금씩 높아지고 부풀어 오르는. 그러나 새로 찾아온 고요 속에서 나는 집 안에도 고요가 내려앉았다고 느꼈다.

나는 들어갔다—난로를 넘어뜨리는 것만 빼고 부엌에서 낼 수 있는 소리는 다 낸 뒤에—그러나 두 사람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소파 양 끝에 앉아, 무슨 질문이 던져졌거나 아니면 허공에 떠 있기라도 한 듯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고, 쑥스러움의 흔적은 모조리 사라지고 없었다. 데이지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자 벌떡 일어나 거울 앞에서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츠비에게 일어난 변화는 그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그는 말 그대로 빛나고 있었다. 기뻐 날뛰는 말 한마디, 몸짓 하나 없이 새로운 행복감이 그에게서 뿜어져 나와 작은 방을 가득 채웠다.

"아, 안녕한가, 친구." 그가 몇 해 만에 나를 보는 것처럼 말했다. 잠깐 악수라도 하려는 줄 알았다.

"비가 그쳤어요."

"그런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방 안에 햇살의 방울 소리가 반짝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그는 기상 예보관처럼, 되돌아온 빛의 황홀한 후원자처럼 웃고는 데이지에게 그 소식을 되풀이했다. "어떻소? 비가 그쳤다오."

"다행이에요, 제이." 저리고 서러운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그의 목에서는 뜻밖의 기쁨만이 흘러나왔다.

"자네하고 데이지가 우리 집에 와 줬으면 하네." 그가 말했다. "데이지한테 집을 구경시켜 주고 싶어."

"정말 저도 가길 바라세요?"

"물론이지, 친구."

데이지는 세수를 하러 위층으로 올라갔고—너무 늦게야 나는 우리 집 수건들을 떠올리며 창피해졌다—개츠비와 나는 잔디밭에서 기다렸다.

"우리 집 멋지지, 안 그런가?" 그가 물었다. "앞면 전체가 빛을 받는 것 좀 보게."

나는 훌륭하다고 맞장구쳤다.

"그렇지." 그의 눈이 아치형 문 하나하나와 네모난 탑 하나하나를 훑었다. "저걸 산 돈을 버는 데 딱 삼 년 걸렸네."

"물려받으신 줄 알았는데요."

"그랬지, 친구." 그가 기계적으로 말했다. "그런데 큰 공황 때 대부분 잃었어—전쟁 때 난 공황 말일세."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거의 모르는 것 같았다. 무슨 사업을 하느냐고 묻자 "그건 내 일일세" 하고 대답하고 나서야 그게 적절한 대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아, 이것저것 해 봤지." 그가 고쳐 말했다. "약품 사업을 하다가 석유 사업을 했네. 그런데 지금은 둘 다 안 해." 그가 좀 더 주의 깊게 나를 보았다. "그러니까 그날 밤 내가 제안한 걸 곰곰이 생각해 봤다는 건가?"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데이지가 집에서 나왔고, 그의 옷에 달린 두 줄의 놋쇠 단추가 햇빛에 반짝였다.

"저기 저 커다란 데요?" 그가 가리키며 외쳤다.

"마음에 드오?"

"정말 좋아요. 그런데 저기서 어떻게 혼자 사는지 모르겠어요."

"밤낮으로 늘 흥미로운 사람들로 채워 두지. 흥미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 이름난 사람들."

해협을 따라가는 지름길 대신 우리는 길로 내려가 커다란 뒷문으로 들어갔다. 데이지는 매혹적인 웅얼거림으로 하늘을 배경으로 선 봉건 시대 같은 윤곽의 이쪽저쪽을 감탄했고, 정원을, 노랑수선화의 반짝이는 향기와 산사나무와 자두꽃의 거품 같은 향기와 「문간에서 입 맞춰 줘요」 꽃의 창백한 금빛 향기를 감탄했다. 대리석 계단에 이르렀는데 문을 드나드는 화사한 옷자락 하나 없고 나무 사이 새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그리고 안에서, 마리 앙투아네트 풍 음악실과 왕정복고 양식 응접실을 거닐 때, 나는 소파와 탁자 뒤마다 손님들이 숨어 있다가 우리가 지나갈 때까지 숨죽이고 잠자코 있으라는 명령을 받은 것만 같았다. 개츠비가 「머튼 칼리지 도서관」의 문을 닫을 때 나는 올빼미 눈의 사내가 유령 같은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맹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위층으로 올라가 장미빛과 연보라빛 비단을 두르고 새 꽃으로 화사한 시대 양식 침실들을 지나고, 드레스룸과 당구장과 바닥에 파묻은 욕조가 있는 욕실들을 지났다—그러다 한 방에 불쑥 들어갔는데, 파자마 차림의 흐트러진 남자가 바닥에서 간 운동을 하고 있었다. 「하숙생」 클립스프링어 씨였다. 그날 아침 그가 굶주린 얼굴로 바닷가를 떠도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개츠비 자신의 방들, 침실 하나와 욕실 하나, 그리고 애덤 양식의 서재에 이르렀고, 거기 앉아 그가 벽장에서 꺼낸 샤르트뢰즈를 한 잔씩 마셨다.

그는 한 번도 데이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제 집의 모든 것을 그 사랑하는 눈이 보여 주는 반응의 크기에 따라 다시 매기고 있었던 것 같다. 이따금 그는 멍한 얼굴로 제 소유물들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의 실제의, 놀라운 존재 앞에서 그 어느 것도 더는 진짜가 아닌 것처럼. 한번은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그의 침실은 모든 방 가운데 가장 수수했다—다만 화장대에는 흐릿하게 빛나는 순금 화장 도구 한 벌이 놓여 있었다. 데이지가 기뻐하며 빗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자, 개츠비는 주저앉아 손으로 눈을 가리고 웃기 시작했다.

"정말 우스운 일이야, 친구." 그가 들떠서 말했다. "나는 도무지—내가 해 보려고 하면—"

그는 눈에 띄게 두 단계를 지나 세 번째 단계로 들어서고 있었다. 당혹과 까닭 없는 기쁨을 지나, 이제 그는 데이지가 거기 있다는 사실에 대한 경이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그토록 오랫동안 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것을 끝까지 꿈꾸었으며, 말하자면 이를 악물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팽팽하게 기다려 왔다. 이제 그 반작용으로 그는 너무 감아 놓은 시계처럼 풀려 가고 있었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린 그는 우리에게 커다란 특허 옷장 두 개를 열어 보였다. 양복과 실내복과 넥타이가 빼곡했고, 셔츠는 벽돌처럼 열두 장씩 층층이 쌓여 있었다.

"영국에 내 옷을 사 주는 사람이 있네. 철마다, 봄가을로 초에 한 벌씩 골라서 보내 주지."

그는 셔츠 한 무더기를 꺼내 우리 앞에 한 장씩 던지기 시작했다. 얇은 리넨과 두꺼운 비단과 고운 플란넬 셔츠들이 떨어지면서 개킨 자국을 잃고 탁자를 여러 빛깔로 어지럽게 덮었다. 우리가 감탄하는 동안 그는 더 가져왔고, 부드럽고 호사스러운 더미가 점점 높아졌다—산호빛과 풋사과빛과 연보라와 옅은 주황에 줄무늬와 소용돌이무늬와 격자무늬가 있고, 인디고 파랑으로 머리글자를 수놓은 셔츠들. 문득 데이지가 목멘 소리를 내며 셔츠 속에 얼굴을 묻더니 폭풍처럼 울기 시작했다.

"너무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 그가 두꺼운 주름 속에 목소리가 묻힌 채 흐느꼈다. "이렇게—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슬퍼요."

* * *

집을 본 다음에는 정원과 수영장과 수상 비행기와 한여름의 꽃들을 보기로 되어 있었다—그러나 개츠비의 창밖에서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우리는 나란히 서서 주름진 해협의 수면을 바라보았다.

"안개만 아니면 만 건너 당신 집이 보일 텐데." 개츠비가 말했다. "당신 집 부두 끝에는 늘 밤새 켜 두는 초록 불빛이 있잖소."

데이지가 불쑥 그의 팔에 제 팔을 끼웠지만, 그는 방금 자기가 한 말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 불빛의 거대한 의미가 이제 영영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를 데이지에게서 갈라놓았던 먼 거리에 비하면 그 불빛은 그에게 데이지와 아주 가까이, 거의 닿을 듯이 있는 것처럼 보였었다. 달 곁의 별만큼 가까워 보였었다. 이제 그것은 다시 부두 위의 초록 불빛일 뿐이었다. 그의 마법에 걸린 물건들의 수가 하나 줄었다.

나는 방 안을 거닐며 어스름 속에서 이런저런 모호한 물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의 책상 위 벽에 걸린, 요트복 차림의 나이 든 남자를 찍은 커다란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이분은 누굽니까?"

"그거? 그건 댄 코디 씨일세, 친구."

어렴풋이 들어 본 이름 같았다.

"지금은 돌아가셨지. 오래전에 내 가장 좋은 친구였네."

장롱 위에는 역시 요트복 차림인 개츠비의 작은 사진이 있었다—도전하듯 고개를 뒤로 젖힌 개츠비, 열여덟 살쯤에 찍은 것 같았다.

"정말 좋다." 데이지가 외쳤다. "퐁파두르 머리! 퐁파두르 머리를 한 적 있다는 얘기는 한 번도 안 했잖아요—요트가 있었다는 얘기도."

"이것 좀 보오." 개츠비가 얼른 말했다. "여기 스크랩이 잔뜩 있소—당신에 관한."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그것을 살폈다. 내가 루비를 보여 달라고 하려는 참에 전화가 울렸고, 개츠비가 수화기를 들었다.

"그래… 글쎄, 지금은 얘기 못 하네… 지금은 얘기 못 한다니까, 친구… 작은 도시라고 했잖나… 작은 도시가 뭔지는 그 친구도 알 거 아닌가… 글쎄, 디트로이트가 작은 도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우리한테 쓸모가 없어…"

그가 전화를 끊었다.

"빨리 이리 와 봐요!" 창가에서 데이지가 외쳤다.

비는 아직 내리고 있었지만 서쪽 하늘에서 어둠이 갈라져 있었고, 바다 위로 분홍빛과 금빛의 거품 같은 구름이 물결치고 있었다.

"저것 좀 봐요." 그가 속삭였고, 잠시 뒤에 말했다. "저 분홍 구름 하나를 가져다가 당신을 거기 태우고 이리저리 밀고 다니고 싶어."

나는 그때 가려고 했지만 두 사람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있어서 두 사람이 더 흡족하게 둘만 있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뭘 할지 알겠네." 개츠비가 말했다. "클립스프링어한테 피아노를 치게 하지."

그는 "유잉!" 하고 부르며 방을 나가더니, 몇 분 뒤 거북해하는 좀 초췌한 젊은 남자를 데리고 돌아왔다. 대모갑 테 안경을 쓰고 금발이 성긴 남자였다. 이제는 목을 풀어 헤친 「운동 셔츠」에 운동화, 흐릿한 빛깔의 면바지로 점잖게 차려입고 있었다.

"운동하시는 걸 방해했나요?" 데이지가 예의 바르게 물었다.

"자고 있었습니다." 클립스프링어 씨가 거북함에 경련하듯 외쳤다. "그러니까, 자다가요. 그러다 일어나서…"

"클립스프링어는 피아노를 치네." 개츠비가 그의 말을 끊었다. "안 그런가, 유잉, 친구?"

"잘 못 칩니다. 저는—거의 못 쳐요. 연습을 통 못 해서—"

"아래층으로 가세." 개츠비가 말을 끊었다. 그가 스위치를 탁 켜자, 집 안이 불빛으로 가득 빛나면서 잿빛 창들이 사라졌다.

음악실에서 개츠비는 피아노 옆의 등 하나만 켰다. 그는 떨리는 성냥으로 데이지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고, 방 건너편 멀리 있는 소파에 그와 함께 앉았다. 거기엔 반짝이는 마룻바닥이 복도에서 되비쳐 들이는 빛 말고는 아무 빛도 없었다.

클립스프링어는 「사랑의 둥지」를 치고 나서 의자에 앉은 채 돌아서서 어둑한 데서 불행한 얼굴로 개츠비를 찾았다.

"보시다시피 연습을 통 못 해서요. 못 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연습을 통 못 해—"

"말이 너무 많군, 친구." 개츠비가 명령했다. "치게!"

(피아노에서 유행가 「Ain't We Got Fun」이 흘러나온다)

밖에서는 바람이 요란했고 해협을 따라 희미한 천둥이 흘렀다. 이제 웨스트에그에 불이 모두 켜지고 있었다. 사람들을 태운 전차가 빗속을 뚫고 뉴욕에서 집으로 곤두박질치듯 달려오고 있었다. 사람의 삶이 깊이 바뀌는 시간이었고, 공기 속에서 들뜸이 일어나고 있었다.

(노래는 계속된다)

작별 인사를 하러 다가갔을 때 나는 개츠비의 얼굴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돌아와 있는 것을 보았다. 지금의 행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희미한 의심이라도 떠오른 것처럼. 거의 오 년! 그날 오후에도 데이지가 그의 꿈에 못 미친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데이지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환상이 지닌 엄청난 생명력 때문에. 그 환상은 데이지를 넘어, 모든 것을 넘어가 버렸다. 그는 창조하는 열정으로 거기에 몸을 던졌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태며, 제 쪽으로 날아오는 빛나는 깃털이란 깃털로 그것을 꾸몄다. 한 사람이 제 유령 같은 마음속에 쌓아 둘 수 있는 것에는 어떤 불길도, 어떤 싱그러움도 맞설 수 없다.

내가 지켜보는 동안 그는 눈에 띄게 조금 자세를 고쳤다. 그의 손이 데이지의 손을 잡았고, 데이지가 그의 귀에 대고 무어라 낮게 말하자 그는 감정이 북받쳐 그쪽으로 돌아섰다. 그를 가장 붙든 것은 그 목소리였던 것 같다. 오르내리는 열띤 따스함을 지닌 그 목소리는 아무리 꿈꾸어도 지나칠 수가 없었으니까—그 목소리는 죽지 않는 노래였다.

두 사람은 나를 잊고 있었지만, 데이지가 고개를 들어 손을 내밀었다. 개츠비는 이제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한 번 더 그들을 보았고 그들도 나를 마주 보았다. 아득하게, 강렬한 삶에 사로잡힌 채. 그러고 나서 나는 방을 나와 대리석 계단을 내려가 빗속으로 나섰다. 두 사람을 거기 함께 남겨 두고.

6장

이 무렵 어느 아침, 뉴욕에서 온 야심 찬 젊은 기자 하나가 개츠비의 집 문 앞에 나타나 무슨 하실 말씀이 없느냐고 물었다.

"무엇에 대해 할 말 말이오?" 개츠비가 정중하게 물었다.

"그러니까—밝히실 입장 같은 거요."

어리둥절한 오 분이 지나고 드러난 바로는, 그 사람이 자기 사무실 언저리에서 개츠비의 이름을 어떤 일과 얽혀 들었는데, 그게 무슨 일인지는 밝히려 하지 않거나 아니면 저도 잘 몰랐다. 그날은 그의 쉬는 날이었고, 그는 칭찬할 만한 적극성으로 「보러」 서둘러 나온 것이었다.

닥치는 대로 쏜 한 발이었지만 기자의 본능은 옳았다. 개츠비의 악명은 그의 환대를 받아들이고 그 덕에 그의 과거에 대한 권위자가 된 수백 명이 퍼뜨리면서 여름 내내 불어나, 이제는 뉴스가 되기 직전이었다. 「캐나다로 이어진 지하 송유관」 같은 당대의 전설들이 그에게 달라붙었고, 그가 집이 아니라 집처럼 생긴 배에서 살며 그 배를 몰래 롱아일랜드 해안을 따라 오르내리게 한다는 끈질긴 이야기도 있었다. 이런 지어낸 이야기들이 왜 노스다코타의 제임스 개츠에게 흡족함의 원천이었는지는 말하기 쉽지 않다.

제임스 개츠—그것이 그의 진짜 이름, 적어도 법적인 이름이었다. 그는 열일곱 살에, 그의 출세가 시작되는 것을 지켜본 바로 그 순간에 이름을 바꾸었다—댄 코디의 요트가 슈피리어호에서 가장 음흉한 여울 위에 닻을 내리는 것을 보았을 때였다. 그날 오후 찢어진 초록 스웨터와 면바지 차림으로 바닷가를 빈둥거리던 것은 제임스 개츠였지만, 노 젓는 배를 빌려 투올로미호까지 저어 가서 바람이 불면 삼십 분 안에 배가 두 동강 날 수도 있다고 코디에게 알린 것은 이미 제이 개츠비였다.

그는 그때도 이미 오래전부터 그 이름을 준비해 두었던 것 같다. 그의 부모는 게으르고 되는 일 없는 농사꾼이었다—그의 상상력은 그들을 부모로 제대로 받아들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실 롱아일랜드 웨스트에그의 제이 개츠비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플라톤적인 관념에서 솟아 나온 사람이었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이었다—이 말이 무슨 뜻이 있다면 바로 그 뜻이다—그리고 그는 아버지의 일을, 광대하고 속되고 겉만 번지르르한 아름다움을 섬기는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열일곱 살 소년이 지어낼 법한 딱 그런 제이 개츠비를 지어냈고, 끝까지 그 관념에 충실했다.

일 년 넘게 그는 슈피리어호 남쪽 기슭을 따라 조개 캐는 사람으로, 연어 잡는 사람으로, 아니면 먹을 것과 잠자리를 주는 일이면 무엇으로든 떠돌며 살았다. 볕에 그을려 단단해져 가는 그의 몸은 상쾌한 날들의 반은 사납고 반은 게으른 노동을 자연스럽게 살아 냈다. 그는 일찍 여자를 알았는데, 여자들이 그를 떠받들었기 때문에 그는 여자들을 업신여기게 되었다. 어린 처녀들은 무지해서, 다른 여자들은 그가 압도적인 자기도취 속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두고 법석을 떨어서.

그러나 그의 마음은 끊임없이 요동치는 반란 속에 있었다. 가장 기괴하고 환상적인 공상들이 밤마다 침대에 누운 그를 따라다녔다. 세면대 위에서 시계가 째깍거리고 달이 바닥에 뒤엉킨 그의 옷을 젖은 빛으로 적시는 동안, 말로 할 수 없이 현란한 우주가 그의 머릿속에서 저절로 자아져 나왔다. 그는 밤마다 공상의 무늬에 무언가를 보탰고, 그러다 졸음이 어느 선명한 장면 위로 망각의 포옹을 하며 내려앉았다. 한동안 이 몽상들은 그의 상상력에 배출구가 되어 주었다. 현실이 비현실이라는 흡족한 암시였고, 세상의 바위가 요정의 날개 위에 단단히 세워져 있다는 약속이었다.

장래의 영광을 향한 본능이 몇 달 전 그를 미네소타 남부의 작은 루터교 대학인 세인트올래프로 이끌었다. 그는 거기 두 주 머물렀다. 제 운명의 북소리에, 아니 운명 자체에 대한 그곳의 사나운 무관심에 낙담했고, 학비를 벌려고 해야 하는 관리인 일을 경멸했다. 그러고는 슈피리어호로 흘러 돌아왔고, 댄 코디의 요트가 기슭의 얕은 물에 닻을 내린 그날에도 여전히 할 일을 찾고 있었다.

코디는 그때 쉰 살이었고, 네바다 은광과 유콘과 75년 이래의 온갖 금속 붐이 빚어낸 사람이었다. 그를 몇 번이나 백만장자로 만든 몬태나 구리 거래 무렵 그는 몸은 튼튼했으나 정신은 물러지기 직전이었고, 그걸 눈치챈 셀 수 없이 많은 여자들이 그에게서 돈을 떼어 내려 했다. 신문기자 엘라 케이가 그의 약점을 잡고 맹트농 부인 노릇을 하며 그를 요트에 태워 바다로 내보낸, 그리 향기롭지 못한 곡절들은 1902년 과장 투성이 신문들의 공공연한 이야깃거리였다. 그가 제임스 개츠의 운명으로 리틀걸만에 나타났을 때는 너무나 손님을 반기는 해안들을 따라 오 년째 떠돌고 있던 참이었다.

노에 기대어 쉬며 난간 두른 갑판을 올려다보던 젊은 개츠에게 그 요트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대표했다. 그는 코디에게 웃어 보였을 것이다—웃으면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아마 알아냈을 테니까. 어쨌든 코디는 그에게 몇 가지를 물었고(그중 하나가 그 새 이름을 끌어냈다) 그가 눈치 빠르고 터무니없이 야심만만하다는 것을 알았다. 며칠 뒤 코디는 그를 덜루스로 데려가 파란 윗옷 하나와 흰 면바지 여섯 벌과 요트 모자 하나를 사 주었다. 그리고 투올로미호가 서인도 제도와 바르바리 해안을 향해 떠날 때 개츠비도 함께 떠났다.

그는 딱히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개인 수행원으로 고용되었다—코디 곁에 있는 동안 그는 차례로 승무원, 항해사, 선장, 비서, 심지어 간수 노릇까지 했다. 맨정신의 댄 코디는 술 취한 댄 코디가 머잖아 무슨 헤픈 짓을 벌일지 알고 있었고, 그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개츠비에게 점점 더 많은 신뢰를 맡겼기 때문이다. 그 관계는 오 년 동안 이어졌고, 그동안 배는 대륙을 세 번 돌았다. 어느 밤 보스턴에서 엘라 케이가 배에 오르고 일주일 뒤 댄 코디가 손님 대접도 없이 죽어 버리지만 않았더라면 끝없이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개츠비의 침실에 걸려 있던 그의 초상이 기억난다. 딱딱하고 텅 빈 얼굴을 한 잿빛의 불그레한 남자였다—미국 삶의 한 시기에 변경의 매음굴과 술집의 야만적인 폭력을 동부 해안으로 도로 실어 온 개척자 난봉꾼. 개츠비가 술을 거의 마시지 않은 것은 간접적으로 코디 때문이었다. 흥겨운 파티 중에 여자들이 그의 머리에 샴페인을 문질러 대기도 했다. 그 자신은 술을 멀리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리고 그가 돈을 물려받은 것도 코디에게서였다—이만오천 달러의 유산이었다. 그는 그 돈을 받지 못했다. 자기에게 쓰인 법적 수단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지만, 수백만 달러 가운데 남은 것은 고스란히 엘라 케이에게 갔다. 그에게 남은 것은 그에게 유난히 걸맞은 교육이었다. 제이 개츠비의 어렴풋한 윤곽이 한 사람의 실체로 채워져 있었다.

* * *

그가 이 모든 이야기를 나에게 한 것은 한참 뒤였지만, 나는 그의 내력에 대한 그 처음의 황당한 소문들을, 어렴풋이도 사실이 아니었던 그 소문들을 깨뜨리려고 여기에 적어 둔다. 게다가 그가 이 이야기를 한 것은 혼란스러운 때, 내가 그에 대해 모든 것을 믿고 동시에 아무것도 믿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래서 나는 개츠비가, 말하자면, 숨을 고르던 이 짧은 멈춤을 틈타 이 오해들을 치워 둔다.

그것은 그의 일에 내가 얽힌 과정에서도 하나의 멈춤이었다. 몇 주 동안 나는 그를 보지도, 전화로 그의 목소리를 듣지도 못했다—나는 대개 뉴욕에서 조던과 돌아다니며 그의 늙은 이모의 환심을 사려 애쓰고 있었다—그러다 마침내 어느 일요일 오후 그의 집에 갔다. 도착한 지 이 분도 안 되어 누군가 톰 뷰캐넌을 한잔하러 데리고 들어왔다. 나는 물론 놀랐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그런 일이 그때껏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말을 탄 세 사람이었다—톰과 슬론이라는 남자, 그리고 전에도 와 본 적 있는 갈색 승마복 차림의 예쁜 여자.

"와 주셔서 반갑습니다." 개츠비가 현관에 서서 말했다. "들러 주셔서 기쁩니다."

그들이 그런 걸 신경이나 쓴다는 듯이!

"어서 앉으시지요. 담배나 시가 드시겠습니까?" 그는 방 안을 빠르게 돌아다니며 초인종을 울렸다. "금방 마실 것을 내오겠습니다."

그는 톰이 거기 있다는 사실에 깊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들에게 무언가를 내놓기 전까지는 어차피 불안했을 것이다. 그들이 온 것은 오로지 그것 때문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니까. 슬론 씨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레모네이드는? 아니, 됐소. 샴페인 조금은? 아무것도 필요 없소, 고맙소… 미안하오—

"즐겁게 타셨습니까?"

"이 근처는 길이 아주 좋군."

"아무래도 자동차들이—"

"그렇지."

억누를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개츠비는 톰에게로 돌아섰다. 톰은 처음 보는 사람으로서 소개를 받은 참이었다.

"전에 어디선가 뵌 것 같습니다, 뷰캐넌 씨."

"아, 그렇지요." 톰이 퉁명스럽게 예의를 차리며 말했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뻔했다. "그랬지요. 아주 잘 기억합니다."

"두 주쯤 전이었지요."

"맞소. 여기 닉하고 같이 있었지."

"부인을 압니다." 개츠비가 거의 공격적으로 말을 이었다.

"그렇소?"

톰이 나에게로 돌아섰다.

"자네 이 근처에 사나, 닉?"

"바로 옆집일세."

"그런가?"

슬론 씨는 대화에 끼지 않고 거만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여자도 아무 말이 없었다—그러다 하이볼 두 잔을 마시고 나서 뜻밖에 살가워졌다.

"다음 파티에 우리 다 올게요, 개츠비 씨." 그가 말했다. "어때요?"

"물론이지요. 와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그거 좋겠군." 슬론 씨가 고마운 기색 없이 말했다. "자—이제 집에 가 봐야겠소."

"서두르지 마십시오." 개츠비가 붙잡았다. 이제 그는 마음을 가다듬었고, 톰을 더 보고 싶어 했다. "저녁을—저녁을 드시고 가시지요? 뉴욕에서 다른 분들이 들를지도 모릅니다."

"우리 집에 저녁 드시러 오세요." 여자가 신이 나서 말했다. "두 분 다."

나까지 포함한 말이었다. 슬론 씨가 일어섰다.

"갑시다." 그가 말했다—다만 여자에게만.

"진심이에요." 여자가 우겼다. "오시면 정말 좋겠어요. 자리도 넉넉하고요."

개츠비가 묻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는 가고 싶어 했고, 슬론 씨가 그를 오지 못하게 하기로 작정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럼 당신이라도 오세요." 여자가 개츠비에게 몰두하며 부추겼다.

슬론 씨가 여자의 귀에 대고 무어라 웅얼거렸다.

"지금 떠나면 안 늦어요." 여자가 소리 내어 우겼다.

"저는 말이 없습니다." 개츠비가 말했다. "군대에서는 말을 탔지만 말을 산 적은 없어서요. 차로 뒤따라가겠습니다. 잠깐만 실례하겠습니다."

나머지 우리는 현관으로 걸어 나갔고, 거기서 슬론과 여자는 한쪽으로 비켜 격한 대화를 시작했다.

"맙소사, 저 친구 정말 올 모양이군." 톰이 말했다. "여자가 원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나?"

"원한다고 하잖나."

"여자는 큰 만찬을 여는데 저 친구는 거기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거야."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어디서 데이지를 만났는지 모르겠군. 정말이지, 내 생각이 구식인지는 몰라도 요즘 여자들은 너무 쏘다녀서 마음에 안 들어. 온갖 괴상한 물건들을 다 만나고 다니지."

갑자기 슬론 씨와 여자가 계단을 내려가 말에 올랐다.

"가세." 슬론 씨가 톰에게 말했다. "늦었어. 가야 해." 그러고는 나에게 말했다. "기다릴 수 없었다고 전해 주겠소?"

톰과 나는 악수를 했고, 나머지와는 쌀쌀한 목례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말을 몰아 진입로를 내려가 8월의 나뭇잎 아래로 사라졌다. 바로 그때 개츠비가 모자와 가벼운 외투를 손에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톰은 데이지가 혼자 쏘다니는 것이 분명히 마음에 걸렸던지, 다음 토요일 밤 데이지와 함께 개츠비의 파티에 왔다. 어쩌면 그가 있었기 때문에 그 밤에 유난히 숨 막히는 기운이 돌았는지도 모른다—그 밤은 그 여름 개츠비의 다른 파티들 가운데 내 기억에 두드러진다. 똑같은 사람들이, 적어도 똑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고, 똑같이 넘쳐 나는 샴페인과 똑같이 여러 빛깔 여러 음정의 소란이 있었지만, 나는 공기 속에서 불쾌함을, 전에는 없던 사방에 스민 거칠음을 느꼈다. 아니면 그저 내가 거기 익숙해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웨스트에그를 그 자체로 완결된 세계로, 제 나름의 기준과 제 나름의 큰 인물들을 가진, 그렇다는 의식이 없기에 무엇에도 뒤지지 않는 세계로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이제 그것을 다시, 데이지의 눈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제가 애써 적응해 온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일은 언제나 서글프다.

그들은 땅거미 질 무렵 도착했고, 반짝이는 수백 명 사이로 우리가 거닐 때 데이지의 목소리는 목 안에서 웅얼거리는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이런 데 오면 너무 설레." 그가 속삭였다. "오늘 밤 아무 때나 나한테 키스하고 싶으면, 닉, 말만 해. 기꺼이 마련해 줄게. 내 이름만 대. 아니면 초록 카드를 내밀든가. 초록 카드를 나눠 주고 있—"

"둘러보시오." 개츠비가 권했다.

"둘러보고 있어요. 정말 멋진—"

"이야기로만 듣던 사람들 얼굴을 많이 보게 될 거요."

톰의 오만한 눈이 사람들 사이를 훑었다.

"우리는 별로 안 돌아다녀서요." 그가 말했다. "사실 막 여기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던 참이오."

"저 부인은 아실지도 모르겠군요." 개츠비가 흰 자두나무 아래 위엄 있게 앉아 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화려하고, 사람이라기보다 난초에 가까운 여자였다. 톰과 데이지는 그때까지 유령 같던 영화 스타를 알아볼 때 따라오는 그 묘하게 비현실적인 느낌을 안고 바라보았다.

"아름답네요." 데이지가 말했다.

"그 위로 몸을 숙인 남자가 그 여자의 감독이오."

그는 격식을 갖춰 그들을 이 무리에서 저 무리로 데리고 다녔다.

"뷰캐넌 부인… 그리고 뷰캐넌 씨—" 잠깐 머뭇거린 뒤 그가 덧붙였다. "폴로 선수이십니다."

"아, 아니오." 톰이 얼른 반박했다. "나는 아니오."

그러나 그 울림이 개츠비의 마음에 든 게 분명했다. 톰은 그 밤 내내 「폴로 선수」로 남았다.

"이렇게 많은 유명인은 처음 만나 봐요." 데이지가 외쳤다. "그 남자 마음에 들던데—이름이 뭐였죠?—코가 좀 파란 사람."

개츠비가 그가 누구인지 알려 주며 작은 제작자라고 덧붙였다.

"아무튼 난 그 사람 마음에 들었어요."

"나는 폴로 선수는 좀 안 했으면 좋겠소." 톰이 유쾌하게 말했다. "이 유명인들을 다—다 이름 없이 구경하는 편이 낫겠소."

데이지와 개츠비는 춤을 췄다. 그의 우아하고 점잖은 폭스트롯에 놀랐던 것이 기억난다—그가 춤추는 것을 그때 처음 보았다.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우리 집으로 어슬렁어슬렁 건너가 삼십 분 동안 계단에 앉아 있었고, 나는 데이지의 부탁으로 정원에서 망을 보았다. "불이 나거나 홍수가 나거나," 데이지가 설명했다. "천재지변이 날지도 모르니까."

우리가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앉을 때 톰이 이름 없음에서 나타났다. "나 저쪽 사람들하고 먹어도 되겠소?" 그가 말했다. "어떤 친구가 우스운 소리를 늘어놓고 있어서."

"그래요." 데이지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주소라도 적어 두고 싶으면 여기 내 조그만 금 연필 있어요." …잠시 뒤 데이지는 둘러보더니 그 아가씨가 "천하지만 예쁘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개츠비와 단둘이 있었던 삼십 분을 빼면 데이지가 즐겁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유난히 취한 사람들의 탁자에 앉아 있었다. 내 잘못이었다—개츠비는 전화를 받으러 불려 갔고, 나는 겨우 두 주 전에 바로 이 사람들을 즐겁게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나를 즐겁게 했던 것이 이제는 공기 중에서 곪아 가고 있었다.

"기분이 어떠세요, 베데커 양?"

그 말을 들은 아가씨는 내 어깨에 기대 쓰러지려다 잘 안 되던 참이었다. 그 물음에 그는 몸을 일으켜 눈을 떴다.

"뭐어?"

내일 동네 클럽에서 같이 골프를 치자고 데이지를 조르던, 덩치 크고 굼뜬 여자가 베데커 양 편을 들었다.

"아, 이제 괜찮아요. 칵테일을 대여섯 잔 마시면 늘 저렇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니까. 끊으라고 해도 말이지."

"끊었어요." 피고인이 공허하게 주장했다.

"네가 고함치는 게 들리길래 여기 시벳 박사한테 그랬지. '박사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어요.'"

"그야 고마워하겠지." 다른 친구가 고마운 기색 없이 말했다. "그런데 머리를 수영장에 처박는 바람에 옷이 다 젖었잖아."

"내가 제일 싫은 게 머리가 수영장에 처박히는 거야." 베데커 양이 웅얼거렸다. "뉴저지에서 한번 빠져 죽을 뻔했거든."

"그러니까 끊어야지." 시벳 박사가 받아쳤다.

"당신이나 끊어요!" 베데커 양이 사납게 소리쳤다. "손을 벌벌 떨면서. 당신한테는 수술 안 받아!"

그런 식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거의 마지막 장면은 데이지와 함께 서서 영화감독과 그의 스타를 바라보던 것이다. 두 사람은 여전히 흰 자두나무 아래 있었고, 그 사이에 창백하고 가느다란 달빛 한 줄기만 남기고 얼굴이 닿아 있었다. 그가 이만큼 가까워지려고 저녁 내내 아주 천천히 그에게 몸을 숙여 온 것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내가 지켜보는 동안에도 그는 마지막 한 치를 더 숙여 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저 여자 좋다." 데이지가 말했다. "정말 사랑스러워."

그러나 나머지는 데이지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그리고 그건 따질 것도 없이, 그것이 몸짓이 아니라 감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데이지는 웨스트에그에 질려 버렸다. 브로드웨이가 롱아일랜드의 어촌에 낳아 놓은 이 전례 없는 「동네」에—낡은 완곡어법 아래서 짜증스레 들썩이는 그 날것의 활기에, 그리고 그곳 주민들을 무에서 무로 가는 지름길로 몰아가는 너무나 드러난 운명에 질려 버렸다. 데이지는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바로 그 단순함 속에서 무언가 끔찍한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이 차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들과 함께 현관 계단에 앉아 있었다. 이 앞쪽은 어두웠다. 환한 문만이 부드럽고 검은 새벽 속으로 한 평 남짓한 빛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이따금 위층 드레스룸의 차양에 그림자가 움직였다가 다른 그림자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보이지 않는 거울 앞에서 연지를 바르고 분을 두드리는 그림자들의 끝없는 행렬이었다.

"그래서 이 개츠비라는 작자는 대체 누군가?" 톰이 불쑥 물었다. "무슨 큰 밀주업자인가?"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나?" 내가 물었다.

"들은 게 아니라 짐작한 거지. 이런 벼락부자들 상당수는 그냥 큰 밀주업자야, 알잖나."

"개츠비는 아닐세." 내가 짧게 말했다.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진입로의 자갈이 그의 발밑에서 자박거렸다.

"그렇다 해도 이 동물원을 끌어모으느라 무던히 애를 썼겠군."

산들바람이 데이지의 모피 깃에 서린 잿빛 안개를 흔들었다.

"적어도 우리가 아는 사람들보다는 재미있잖아요." 데이지가 애써 말했다.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 않던데."

"재미있었어요."

톰이 웃으며 나에게로 돌아섰다.

"그 아가씨가 자기를 찬물 샤워기 밑에 넣어 달라고 할 때 데이지 얼굴 봤나?"

데이지가 음악에 맞춰 허스키하고 박자 있는 속삭임으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낱말 하나하나에서 그전에는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는 없을 뜻을 끌어내면서. 가락이 올라가면 그의 목소리는 콘트랄토 목소리가 그러듯 가락을 따라 달콤하게 부서졌고, 음이 바뀔 때마다 그의 따뜻한 사람의 마법이 조금씩 허공으로 쏟아졌다.

"초대받지 않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데이지가 불쑥 말했다. "그 아가씨도 초대받지 않았어요. 그냥 밀고 들어오는데 그 사람은 너무 예의가 발라서 뭐라 하지 못하는 거예요."

"나는 그 작자가 누구고 뭘 하는지 알고 싶어." 톰이 우겼다. "그리고 꼭 알아낼 작정이야."

"지금 당장 알려 줄 수 있어요." 데이지가 대답했다. "약국을 몇 개 가지고 있었대요. 아주 많이. 자기 힘으로 일군 거래요."

늑장 부리던 리무진이 진입로를 굴러 올라왔다.

"잘 자, 닉." 데이지가 말했다.

데이지의 눈길이 나를 떠나 불 켜진 계단 꼭대기를 찾았다. 그 해의 말쑥하고 서글픈 작은 왈츠 「새벽 세 시」가 열린 문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개츠비의 파티가 지닌 바로 그 무심함 속에는 데이지의 세계에는 전혀 없는 낭만적인 가능성들이 있었다. 저 위의 노래 속에서 데이지를 다시 안으로 부르는 듯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제 흐릿하고 헤아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어쩌면 믿을 수 없는 손님이 올지도 모른다. 한없이 드물고 경탄할 만한 누군가가, 개츠비를 한 번 싱그럽게 바라보고 한순간 마법처럼 마주치는 것만으로 흔들림 없던 오 년의 헌신을 지워 버릴, 진정으로 빛나는 어느 젊은 아가씨가.

나는 그날 밤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개츠비가 자기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해서, 나는 빠지지 않는 수영 무리가 오들오들 떨면서도 들뜬 채 검은 바닷가에서 뛰어 올라올 때까지, 위층 손님방들의 불이 꺼질 때까지 정원을 서성였다. 마침내 그가 계단을 내려왔을 때 볕에 그은 피부가 여느 때보다 팽팽하게 얼굴에 당겨져 있었고, 눈은 빛나면서도 지쳐 있었다.

"데이지가 싫어했어." 그가 대뜸 말했다.

"당연히 좋아했지요."

"싫어했어." 그가 우겼다. "즐겁지 않았다고."

그는 말이 없었고, 나는 그의 말로 할 수 없는 우울을 짐작했다.

"그 사람이 멀게 느껴지네." 그가 말했다. "이해시키기가 어려워."

"파티 말씀인가요?"

"파티?" 그는 손가락을 한 번 튕겨 자기가 연 모든 파티를 물리쳤다. "친구, 파티는 중요하지 않네."

그가 데이지에게 바라는 것은 톰에게 가서 "당신을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 그보다 덜한 것은 아니었다. 데이지가 그 한 문장으로 사 년을 지워 버리고 나면, 두 사람은 더 현실적으로 밟아야 할 조치들을 정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중 하나는 데이지가 자유로워지면 루이빌로 돌아가 데이지의 집에서 결혼하는 것이었다—꼭 오 년 전인 것처럼.

"그런데 그 사람이 이해를 못 해." 그가 말했다. "예전엔 이해할 수 있었는데. 우린 몇 시간이고 앉아서—"

그는 말을 끊고, 과일 껍질과 버려진 파티 선물과 짓밟힌 꽃들이 널린 황량한 길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세요." 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과거를 되풀이할 수는 없어요."

"과거를 되풀이할 수 없다고?" 그가 못 믿겠다는 듯 외쳤다. "아니, 당연히 할 수 있지!"

그는 과거가 여기, 제 집 그늘 속에, 손이 닿을락 말락 한 곳에 숨어 있기라도 한 듯 미친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걸 전과 똑같이 되돌려 놓을 거네." 그가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두고 보면 알 거야."

그는 과거 이야기를 많이 했고, 나는 그가 무언가를 되찾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데이지를 사랑하는 데 들어가 버린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관념을. 그 뒤로 그의 삶은 뒤엉키고 어지러웠지만, 어느 출발점으로 한 번만 돌아가 모든 것을 천천히 되짚어 갈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낼 수 있으리라…

…오 년 전 어느 가을밤, 낙엽이 지는 거리를 걷던 두 사람은 나무가 없고 보도가 달빛으로 하얀 곳에 이르렀다. 그들은 거기 멈춰 서서 서로를 향해 돌아섰다. 서늘한 밤이었고, 해가 두 번 바뀌는 무렵에 찾아오는 그 신비로운 설렘이 깃들어 있었다. 집집마다 조용한 불빛이 어둠 속으로 윙윙거리며 흘러나왔고, 별들 사이에서는 무언가 술렁이며 부산했다. 개츠비는 곁눈으로 보도의 돌들이 실은 사다리를 이루어 나무들 위의 어느 비밀스러운 곳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혼자 오른다면 그는 거기까지 오를 수 있었고, 일단 거기 이르면 삶의 젖꼭지를 빨고, 비길 데 없는 경이의 젖을 들이켤 수 있었다.

데이지의 하얀 얼굴이 그의 얼굴로 다가오자 그의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아가씨에게 입을 맞추고, 말로 할 수 없는 제 환상들을 그의 스러질 숨결에 영원히 묶어 버리면, 제 정신이 다시는 하느님의 정신처럼 뛰놀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기다렸다. 별에 부딪혀 울린 소리굽쇠의 소리에 잠시 더 귀를 기울이며. 그러고 나서 그는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이 닿자 데이지는 그를 위해 꽃처럼 피어났고, 화신은 완성되었다.

그가 한 모든 말을 들으며, 그 끔찍한 감상 속에서도, 나는 무언가를 떠올렸다—오래전 어디선가 들었던, 잡힐 듯 달아나는 가락을, 잃어버린 말의 한 조각을. 한순간 어떤 구절이 내 입에서 모양을 이루려 했고, 내 입술은 말 못 하는 사람의 입술처럼 벌어졌다. 놀란 공기 한 줄기보다 더 많은 것이 거기서 몸부림치고 있기라도 한 듯이. 그러나 입술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고, 거의 떠올릴 뻔했던 것은 영영 전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7장

개츠비에 대한 호기심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어느 토요일 밤 그의 집에 불이 켜지지 않았다—그리고 시작될 때만큼이나 흐릿하게 트리말키오로서의 그의 이력은 끝났다. 기대에 차서 그의 진입로로 꺾어 들던 자동차들이 딱 일 분만 머물다 뾰로통하게 떠나간다는 것을 나는 아주 조금씩 알아차렸다. 그가 아픈 게 아닌가 싶어 알아보러 건너갔더니—험상궂은 얼굴의 낯선 집사가 문간에서 수상쩍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보았다.

"개츠비 씨 편찮으신가요?"

"아뇨." 잠시 뒤 그는 늑장 부리듯 마지못해 "선생님"을 덧붙였다.

"통 뵐 수가 없어서 좀 걱정이 됐습니다. 캐러웨이가 왔었다고 전해 주세요."

"누구요?" 그가 무례하게 물었다.

"캐러웨이요."

"캐러웨이. 알았어요, 전하죠."

그는 느닷없이 문을 쾅 닫았다.

우리 집 핀란드 여자 말로는 개츠비가 일주일 전에 집의 하인을 모조리 내보내고 다른 사람 여섯쯤으로 갈아 치웠다고 했다. 새로 온 사람들은 웨스트에그 마을에 나가 상인들에게 뒷돈을 받는 일도 없이, 필요한 물건을 적당히 전화로만 주문한다고 했다. 식료품 가게 심부름꾼은 부엌이 돼지우리 같더라고 전했고, 마을 사람들은 대체로 새로 온 사람들이 하인이 전혀 아니라고들 했다.

이튿날 개츠비가 전화를 걸어왔다.

"어디 떠나십니까?" 내가 물었다.

"아니, 친구."

"하인들을 다 내보내셨다면서요."

"입이 무거운 사람들이 필요했네. 데이지가 꽤 자주 오거든—오후에."

그러니까 그 대상 숙소 전체가 데이지 눈 속의 못마땅함에 카드로 쌓은 집처럼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울프심이 뭐라도 해 주고 싶어 하던 사람들이야. 다들 형제자매지. 전에 작은 호텔을 했었네."

"그렇군요."

그는 데이지의 부탁으로 전화한 것이었다—내일 데이지의 집에 점심 먹으러 와 줄 수 있느냐고. 베이커 양도 올 거라고 했다. 삼십 분 뒤 데이지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고, 내가 온다는 것에 안도하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들이 하필 이런 자리에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리라고는—특히 개츠비가 정원에서 그려 보인 그 꽤 괴로운 장면을 벌이리라고는—믿을 수 없었다.

이튿날은 찌는 듯이 더웠다. 거의 마지막 여름날이었고, 틀림없이 가장 더운 날이었다. 내 기차가 굴을 빠져나와 햇빛 속으로 나올 때, 한낮의 들끓는 정적을 깨는 것은 내셔널 비스킷 회사의 뜨거운 기적 소리뿐이었다. 객차의 밀짚 좌석은 금방이라도 불이 붙을 것 같았다. 옆자리 여자는 한동안 흰 블라우스 속으로 얌전하게 땀을 흘리다가, 손가락 밑에서 신문이 축축해지자 쓸쓸한 비명과 함께 절망적으로 깊은 더위 속에 빠져들었다. 그의 지갑이 바닥에 철썩 떨어졌다.

"어머, 이런!" 그가 헐떡였다.

나는 지친 몸을 굽혀 그것을 집어 돌려주었다. 딴마음이 없다는 것을 보이려고 팔을 쭉 뻗어 모서리 맨 끝을 잡고서—그런데도 그 여자를 비롯해 근처의 모두가 똑같이 나를 의심했다.

"덥네요!" 차장이 낯익은 얼굴들에게 말했다. "날씨 한번! …덥다! …덥다! …덥다! …이만하면 덥죠? 덥죠? 이만하면…?"

내 정기권은 그의 손에서 묻은 검은 얼룩을 달고 돌아왔다. 이 더위에 누가 누구의 달아오른 입술에 입을 맞추든, 누구의 머리가 제 심장 위 파자마 주머니를 적시든,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이 있다니!

…뷰캐넌네 현관 복도를 희미한 바람이 지나가며, 문간에서 기다리는 개츠비와 나에게 전화벨 소리를 실어 날랐다.

"주인님의 몸을요?" 집사가 송화기에 대고 고함쳤다. "죄송합니다, 부인, 내드릴 수가 없습니다—이 한낮엔 너무 뜨거워서 손을 댈 수가 없거든요!"

실제로 그가 한 말은 이랬다. "네… 네… 알아보겠습니다."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조금 번들거리는 얼굴로 다가와 우리의 뻣뻣한 밀짚모자를 받았다.

"마님께서 응접실에서 기다리십니다!" 그가 쓸데없이 방향을 가리키며 외쳤다. 이 더위에 불필요한 몸짓 하나하나는 생명의 공동 비축분에 대한 모욕이었다.

차양으로 그늘을 잘 드리운 방은 어둡고 서늘했다. 데이지와 조던은 커다란 소파에 누워 있었다. 선풍기의 노래하는 바람에 맞서 제 흰 옷을 누르고 있는 은빛 우상들처럼.

"우린 못 움직여."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그을린 살갗 위에 흰 분을 바른 조던의 손가락이 잠시 내 손에 머물렀다.

"그럼 운동선수 토머스 뷰캐넌 씨는?" 내가 물었다.

동시에 현관 복도 전화에서 퉁명스럽고 먹먹하고 쉰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개츠비는 진홍빛 카펫 한가운데 서서 홀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데이지는 그를 보며 웃었다. 달콤하고 설레게 하는 웃음이었다. 그의 가슴께에서 자그마한 분가루가 한 줄기 허공으로 날렸다.

"소문으로는," 조던이 속삭였다. "저 전화가 톰의 여자래요."

우리는 입을 다물었다. 복도의 목소리가 짜증으로 높아졌다. "좋소, 그럼 차는 아예 안 팔겠소… 나는 당신한테 아무 의무도 없소… 그리고 점심시간에 이 일로 귀찮게 하는 건 절대 못 참소!"

"수화기를 누른 채로 저러는 거야." 데이지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내가 데이지를 안심시켰다. "진짜 거래야. 내가 어쩌다 알게 됐어."

톰이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두툼한 몸으로 잠시 문간을 막아서더니 서둘러 방으로 들어왔다.

"개츠비 씨!" 그는 잘 감춘 혐오를 담고 넓적한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선생… 닉…"

"시원한 것 좀 만들어 줘요." 데이지가 외쳤다.

그가 다시 방을 나가자 데이지는 일어나 개츠비에게 가서 그의 얼굴을 끌어내려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내가 사랑하는 거 알죠." 데이지가 웅얼거렸다.

"여기 숙녀가 있다는 걸 잊었구나." 조던이 말했다.

데이지가 미심쩍은 듯 둘러보았다.

"너도 닉한테 키스해."

"이런 천박하고 상스러운 애 좀 봐!"

"상관없어!" 데이지가 외치고는 벽돌 벽난로 위에서 탭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그러다 더위를 떠올리고 겸연쩍게 소파에 앉았다. 바로 그때 갓 빨아 다린 옷을 입은 보모가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축-복받은 내 보-배." 데이지가 두 팔을 벌리며 노래하듯 말했다. "너를 사랑하는 네 엄마한테 오렴."

보모의 손을 떠난 아이는 방을 가로질러 달려와 엄마의 옷자락에 수줍게 파고들었다.

"축-복받은 내 보-배! 엄마가 네 노오란 머리에 분을 묻혔니? 이제 일어서서 인사하렴—안녕하세요."

개츠비와 나는 차례로 몸을 숙여 마지못해 내미는 작은 손을 잡았다. 그 뒤로도 그는 놀란 눈으로 아이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때까지 그 아이가 있다는 것을 정말로 믿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점심 전에 옷 입었어." 아이가 들뜬 얼굴로 데이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엄마가 너를 자랑하고 싶었거든." 데이지의 얼굴이 작고 하얀 목에 하나뿐인 주름 속으로 파묻혔다. "꿈 같은 것, 너. 정말 꿈같이 작은 것."

"응." 아이가 차분하게 인정했다. "조던 이모도 흰 옷 입었어."

"엄마 친구들 어때?" 데이지가 아이를 돌려세워 개츠비를 마주 보게 했다. "예쁘다고 생각해?"

"아빠는 어디 있어?"

"애가 아빠를 안 닮았어요." 데이지가 설명했다. "나를 닮았죠. 머리칼하고 얼굴형이 나랑 똑같아."

데이지가 소파에 등을 기댔다. 보모가 한 걸음 나서며 손을 내밀었다.

"가요, 패미."

"잘 가, 우리 아가!"

잘 길든 아이는 아쉬운 듯 뒤를 돌아보며 보모의 손을 잡고 문밖으로 끌려 나갔다. 바로 그때 톰이 돌아왔다. 얼음을 가득 채워 딸그락거리는 진 리키 넉 잔을 앞세우고.

개츠비가 제 잔을 들었다.

"정말 시원해 보이는군요." 그가 눈에 띄게 긴장한 채 말했다.

우리는 길고 게걸스럽게 들이켰다.

"어디서 읽었는데 해가 해마다 더 뜨거워진다더군." 톰이 상냥하게 말했다. "머잖아 지구가 해 속으로 떨어질 모양이야—아니 잠깐—정반대지—해가 해마다 더 식어 간다는 거였어.

"밖으로 나가시지요." 그가 개츠비에게 권했다. "집 구경을 시켜 드리고 싶군요."

나도 그들과 함께 베란다로 나갔다. 더위 속에 고여 있는 초록빛 해협 위로 작은 돛배 하나가 더 시원한 바다를 향해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었다. 개츠비의 눈이 잠시 그것을 좇았다. 그가 손을 들어 만 건너편을 가리켰다.

"제가 바로 건너편에 삽니다."

"그렇군요."

우리 눈길은 장미 화단과 뜨거운 잔디밭과 한여름 바닷가의 잡초 덮인 쓰레기 위로 올라갔다. 배의 흰 날개가 파랗고 서늘한 하늘 끝을 배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 앞에는 물결무늬 바다와 넘치도록 축복받은 섬들이 놓여 있었다.

"저게 바로 운동이지." 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 시간쯤 저 사람하고 저기 나가 있고 싶군."

우리는 역시 더위를 막으려고 어둡게 해 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고, 차가운 에일과 함께 신경질적인 명랑함을 들이켰다.

"오늘 오후엔 뭘 하지?" 데이지가 외쳤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그리고 앞으로 삼십 년은?"

"우울하게 굴지 마." 조던이 말했다. "가을이 되어 공기가 서늘해지면 삶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돼."

"그래도 너무 덥잖아." 데이지가 울음이 터질 듯 우겼다. "그리고 다 너무 뒤죽박죽이야. 다 같이 시내에 가자!"

데이지의 목소리가 더위를 뚫고, 더위에 부딪치며, 그 무의미함을 이런저런 꼴로 빚어 나갔다.

"마구간을 차고로 만들었다는 얘기는 들어 봤겠지만," 톰이 개츠비에게 말하고 있었다. "차고를 마구간으로 만든 건 내가 처음일 겁니다."

"시내 갈 사람?" 데이지가 끈질기게 물었다. 개츠비의 눈이 데이지 쪽으로 떠갔다. "아," 데이지가 외쳤다. "당신은 정말 시원해 보여요."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그들은 텅 빈 공간에 둘뿐인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았다. 데이지가 애써 식탁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당신은 언제나 정말 시원해 보여요." 데이지가 되풀이했다.

데이지는 그를 사랑한다고 말한 것이었고, 톰 뷰캐넌은 그것을 보았다. 그는 아연했다. 입이 조금 벌어졌고, 그는 개츠비를 보았다가 다시 데이지를 보았다. 아주 오래전에 알던 누군가를 방금 알아보기라도 한 것처럼.

"꼭 그 광고에 나오는 남자 같아요." 데이지가 천진하게 말을 이었다. "그 광고 남자 알잖아요—"

"좋아." 톰이 얼른 끼어들었다. "시내에 가는 거 나는 얼마든지 좋아. 자—다 같이 시내에 가자고."

그가 일어섰다. 눈은 여전히 개츠비와 제 아내 사이를 번득이며 오갔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가자니까!" 그의 성미가 조금 금이 갔다. "대체 왜들 그래? 시내에 갈 거면 출발하자고."

자제하려 애쓰느라 떨리는 손으로 그는 에일 잔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을 입으로 가져갔다. 데이지의 목소리가 우리를 일으켜 세워 이글거리는 자갈 진입로로 내보냈다.

"그냥 이렇게 가요?" 데이지가 반대했다. "이대로? 담배 한 대 피울 틈도 안 주고?"

"점심 내내 다들 피웠잖아."

"아, 좀 즐겁게 지내요." 데이지가 톰에게 애원했다. "야단법석 떨기엔 너무 더워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음대로 해요." 데이지가 말했다. "가자, 조던."

두 사람은 채비하러 위층으로 올라갔고, 우리 남자 셋은 뜨거운 자갈을 발로 밀어 대며 거기 서 있었다. 서쪽 하늘에 벌써 은빛 초승달이 떠 있었다. 개츠비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마음을 바꿨는데, 그 전에 톰이 홱 돌아서서 기대하는 얼굴로 그를 마주 보았다.

"마구간이 여기 있습니까?" 개츠비가 애써 물었다.

"길 따라 사백 미터쯤 내려가면 있소."

"아."

뜸.

"시내에 가자는 게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톰이 사납게 내뱉었다. "여자들이란 이런 생각을 머리에 넣고는—"

"마실 거 좀 가져갈까?" 위층 창문에서 데이지가 불렀다.

"위스키를 좀 가져가지." 톰이 대답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개츠비가 뻣뻣하게 나에게로 돌아섰다.

"그 사람 집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겠네, 친구."

"데이지는 목소리가 경솔해요." 내가 말했다. "그 목소리엔—" 나는 머뭇거렸다.

"그 목소리엔 돈이 가득하지." 그가 불쑥 말했다.

바로 그것이었다. 전에는 한 번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돈이 가득했다—그 목소리 속에서 오르내리던 마르지 않는 매력, 그 짤랑거림, 그 심벌즈의 노래가 그것이었다… 하얀 궁전 높은 곳의 왕의 딸, 황금의 아가씨…

톰이 1리터들이 병을 수건에 싸서 들고 집에서 나왔고, 그 뒤로 금속 실로 짠 작고 꼭 끼는 모자를 쓰고 가벼운 망토를 팔에 걸친 데이지와 조던이 따라 나왔다.

"다 같이 제 차로 가실까요?" 개츠비가 제안했다. 그는 좌석의 뜨거운 초록 가죽을 만져 보았다. "그늘에 세워 둘 걸 그랬군요."

"수동 변속입니까?" 톰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당신이 내 쿠페를 타고, 내가 당신 차를 몰고 시내에 가지요."

개츠비는 그 제안이 싫었다.

"기름이 별로 없을 텐데요." 그가 반대했다.

"기름은 넉넉하오." 톰이 떠들썩하게 말했다. 그는 계기판을 보았다. "떨어지면 약국에 들르면 되지. 요즘은 약국에서 뭐든 살 수 있으니까."

얼핏 아무 뜻 없어 보이는 이 말 뒤로 침묵이 흘렀다. 데이지가 눈살을 찌푸리며 톰을 보았고, 뭐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표정이 개츠비의 얼굴을 스쳤다. 분명히 낯설면서도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는, 말로만 묘사를 들어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가자, 데이지." 톰이 손으로 데이지를 개츠비의 차 쪽으로 떠밀며 말했다. "내가 이 서커스 마차에 태워 줄게."

그가 문을 열었지만 데이지는 그의 팔이 그리는 원 밖으로 빠져나왔다.

"당신은 닉하고 조던을 태워요. 우린 쿠페로 따라갈게요."

데이지는 개츠비 곁으로 바싹 걸어가 손으로 그의 윗옷을 만졌다. 조던과 톰과 나는 개츠비 차의 앞자리에 탔고, 톰은 낯선 기어를 이리저리 밀어 보더니, 우리는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두 사람을 보이지 않는 뒤편에 남겨 두고.

"자네 봤나?" 톰이 물었다.

"뭘?"

그가 날카롭게 나를 보았다. 조던과 내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네는 내가 꽤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그가 넌지시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한테는—거의 육감 같은 게 있어서, 가끔 뭘 해야 할지 알려 준다네.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과학이—"

그가 말을 멈췄다. 당장 눈앞의 일이 그를 덮쳐, 이론의 심연 가장자리에서 그를 끌어당겼다.

"이 작자에 대해 좀 알아봤지." 그가 말을 이었다. "알았더라면 더 깊이 캘 수도 있었는데—"

"무당한테라도 다녀왔다는 거예요?" 조던이 익살스럽게 물었다.

"뭐?" 우리가 웃자 그가 어리둥절해서 쳐다보았다. "무당?"

"개츠비에 대해서요."

"개츠비에 대해서! 아니, 그런 데 안 갔어. 그 작자 과거를 좀 알아봤다고 했잖아."

"그래서 옥스퍼드 출신이라는 걸 알아냈겠죠." 조던이 거들어 주듯 말했다.

"옥스퍼드 출신!" 그는 믿지 않았다. "옥스퍼드 좋아하네! 분홍 양복을 입는 작자가."

"그래도 옥스퍼드 출신이에요."

"뉴멕시코주 옥스퍼드겠지." 톰이 경멸하듯 코웃음을 쳤다. "뭐 그런 거."

"이봐요, 톰. 그렇게 속물이면서 왜 점심에 그 사람을 초대했어요?" 조던이 성을 내며 따졌다.

"데이지가 초대했지. 우리 결혼하기 전부터 알던 사이야—어디서 알았는지는 하느님이나 알겠지!"

에일 기운이 가시면서 이제 우리는 모두 짜증이 나 있었고, 그걸 알기에 한동안 말없이 차를 몰았다. 그러다 T. J. 에클버그 박사의 빛바랜 눈이 길 저편에 보이자, 나는 기름에 대한 개츠비의 경고가 떠올랐다.

"시내까지 갈 만큼은 있어." 톰이 말했다.

"그래도 바로 여기 정비소가 있잖아요." 조던이 반대했다. "이 찌는 더위에 차가 서 버리면 싫어요."

톰이 성급하게 두 브레이크를 한꺼번에 밟았고, 우리는 먼지를 일으키며 윌슨의 간판 아래 미끄러지듯 급히 섰다. 잠시 뒤 주인이 가게 안에서 나와 퀭한 눈으로 차를 바라보았다.

"기름 좀 넣어!" 톰이 거칠게 외쳤다. "경치 구경하려고 선 줄 아나?"

"아파요." 윌슨이 꼼짝도 하지 않고 말했다. "하루 종일 아팠어요."

"어디가?"

"기운이 하나도 없어요."

"그럼 내가 넣을까?" 톰이 따졌다. "전화할 땐 멀쩡하더니."

윌슨은 애써 문간의 그늘과 버팀에서 떨어져 나와, 숨을 몰아쉬며 기름 탱크 뚜껑을 돌려 열었다. 햇빛 속에서 그의 얼굴은 퍼렇게 질려 있었다.

"점심을 방해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그가 말했다. "그런데 돈이 몹시 필요해서요. 전에 타시던 차를 어떻게 하실 건지 궁금했습니다."

"이 차는 어떤가?" 톰이 물었다. "지난주에 샀지."

"멋진 노란 차네요." 윌슨이 손잡이에 힘을 주며 말했다.

"사고 싶나?"

"그럴 리가요." 윌슨이 희미하게 웃었다. "아니요, 그래도 다른 차로는 돈을 좀 벌 수 있을 거예요."

"갑자기 돈은 뭐에 쓰려고?"

"여기 너무 오래 있었어요. 떠나고 싶어요. 아내하고 서부로 가려고요."

"자네 아내가 말인가!" 톰이 놀라서 외쳤다.

"십 년째 그 얘기를 해 왔어요." 그는 잠시 주유기에 기대어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런데 이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가게 됐어요. 제가 데리고 갈 겁니다."

쿠페가 한바탕 먼지를 일으키며, 흔드는 손을 번쩍이며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얼마인가?" 톰이 거칠게 물었다.

"지난 이틀 동안 좀 이상한 걸 알게 됐어요." 윌슨이 말했다. "그래서 떠나려는 거예요. 그래서 차 문제로 성가시게 해 드린 거고요."

"얼마냐니까?"

"일 달러 이십 센트요."

사정없이 두들겨 대는 더위에 나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고, 그의 의심이 아직 톰에게 가 닿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잠깐 아찔했다. 그는 머틀이 자기와 떨어진 다른 세상에서 무슨 삶을 따로 산다는 것을 알아냈고, 그 충격에 몸이 병든 것이었다. 나는 그를 보았고, 그다음에 한 시간도 안 되기 전에 똑같은 발견을 한 톰을 보았다—그러자 사람들 사이에서 지능이나 인종의 차이라 해도 병든 사람과 성한 사람의 차이만큼 깊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윌슨은 너무 아파서 죄지은 사람처럼,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사람처럼 보였다—가엾은 처녀를 방금 임신이라도 시킨 것처럼.

"그 차 자네한테 넘기지." 톰이 말했다. "내일 오후에 보내 주겠네."

그 동네는 오후의 환한 햇살 아래서도 늘 어딘가 불안했는데, 이제 나는 뒤에서 무언가를 조심하라는 경고라도 받은 듯 고개를 돌렸다. 잿더미 위에서 T. J. 에클버그 박사의 거대한 눈이 여전히 밤을 새우듯 지키고 있었지만, 잠시 뒤 나는 다른 눈들이 여섯 걸음도 안 되는 곳에서 이상하리만치 강렬하게 우리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비소 위층 창문 하나의 커튼이 조금 걷혀 있었고, 머틀 윌슨이 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찌나 빠져 있던지 자기가 누군가에게 보이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였고, 천천히 현상되는 사진에 물체가 떠오르듯 감정이 하나씩 차례로 그의 얼굴에 스며 나왔다. 그 표정은 묘하게 낯익었다—여자들의 얼굴에서 자주 보던 표정이었는데, 머틀 윌슨의 얼굴에서는 목적도 설명도 없어 보였다. 그러다 나는 알아차렸다. 질투 어린 공포로 휘둥그레진 그의 눈이 톰이 아니라, 그가 톰의 아내라고 여긴 조던 베이커에게 박혀 있다는 것을.

* * *

단순한 머리의 혼란만 한 혼란은 없다. 우리가 차를 몰고 떠날 때 톰은 공황의 뜨거운 채찍질을 느끼고 있었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안전하고 손댈 수 없던 그의 아내와 정부가 그의 손아귀에서 곤두박질치듯 빠져나가고 있었다. 본능이 그에게 가속 페달을 밟게 했다. 데이지를 따라잡는 것과 윌슨을 뒤에 떨어뜨리는 것, 두 가지 목적으로. 우리는 시속 팔십 킬로미터로 아스토리아를 향해 달렸고, 마침내 거미줄 같은 고가 철도 철골 사이로 느긋하게 달리는 파란 쿠페가 보였다.

"50번가 근처 큰 영화관들은 시원해요." 조던이 말했다. "나는 다들 떠나고 없는 여름 오후의 뉴욕이 좋아요. 뭔가 아주 관능적인 데가 있어요—무르익다 못해, 온갖 신기한 과일이 손안으로 떨어질 것 같은."

「관능적」이라는 말이 톰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그가 무슨 반박을 지어내기도 전에 쿠페가 멈췄고, 데이지가 나란히 대라고 손짓했다.

"어디 가요?" 데이지가 외쳤다.

"영화 보러 갈까?"

"너무 더워요." 데이지가 투덜댔다. "당신들이나 가요. 우린 드라이브하다가 나중에 만나요." 애써 그의 재치가 희미하게 살아났다. "어느 모퉁이에서 만나요. 나는 담배 두 대를 한꺼번에 피우는 남자로 있을게."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수는 없어." 뒤에서 트럭 한 대가 욕하듯 경적을 울리자 톰이 성급하게 말했다. "센트럴파크 남쪽, 플라자 앞으로 따라와."

그는 여러 번 고개를 돌려 그들의 차를 찾았고, 차가 막혀 그들이 늦어지면 그들이 보일 때까지 속도를 늦췄다. 그들이 옆길로 휙 빠져 영영 그의 삶에서 사라질까 봐 겁이 났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더 설명하기 어려운 조치를 취했다. 플라자 호텔 스위트룸의 응접실을 빌린 것이다.

우리를 그 방으로 몰아넣는 것으로 끝난 그 길고 소란스러운 말다툼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러는 동안 속옷이 축축한 뱀처럼 자꾸 다리를 휘감아 올라왔고, 이따금 땀방울이 등을 타고 서늘하게 달렸던 것이 몸으로 또렷이 기억난다. 그 생각은 욕실 다섯 개를 빌려 찬물 목욕을 하자는 데이지의 제안에서 시작되어, 「민트 줄렙 마실 곳」이라는 좀 더 구체적인 꼴을 갖추었다. 우리는 저마다 「미친 생각」이라고 몇 번이고 말했다—모두 한꺼번에 어리둥절한 직원에게 떠들어 대면서, 우리가 무척 재미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척했다…

방은 넓고 숨 막혔다. 벌써 네 시였는데도 창문을 열자 공원에서 뜨거운 덤불 냄새만 훅 들어왔다. 데이지는 거울 앞으로 가서 우리에게 등을 돌린 채 머리를 매만졌다.

"근사한 스위트룸이네요." 조던이 공손하게 속삭였고, 모두가 웃었다.

"창문 하나 더 열어요." 데이지가 돌아보지도 않고 명령했다.

"더는 없어."

"그럼 도끼를 가져오라고 전화하는 게 낫겠—"

"더위는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야." 톰이 짜증스레 말했다. "투덜대면 열 배는 더 더워져."

그가 수건에서 위스키 병을 풀어 탁자에 놓았다.

"그냥 내버려 두시오, 친구." 개츠비가 말했다. "시내에 오자고 한 건 당신이잖소."

잠깐 침묵이 흘렀다. 전화번호부가 못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철퍼덕 떨어졌고, 그러자 조던이 "실례"라고 속삭였다—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내가 줍지." 내가 나섰다.

"내가 주웠네." 개츠비는 끊어진 끈을 살펴보더니 흥미롭다는 듯 "흠!" 하고 중얼거리고는 전화번호부를 의자에 던졌다.

"그거 대단한 말버릇이오, 안 그렇소?" 톰이 날카롭게 말했다.

"뭐 말이오?"

"그 '친구' 타령 말이오. 그런 건 어디서 주워들었소?"

"잠깐만요, 톰." 데이지가 거울에서 돌아서며 말했다. "사람 두고 뭐라 할 거면 나 여기 일 분도 안 있어요. 전화해서 민트 줄렙에 넣을 얼음이나 주문해요."

톰이 수화기를 들자 눌려 있던 열기가 소리로 터져 나왔다. 아래층 연회장에서 멘델스존의 결혼 행진곡이 불길한 화음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더위에 결혼을 하다니!" 조던이 음울하게 외쳤다.

"그래도—난 6월 한가운데 결혼했잖아." 데이지가 떠올렸다. "6월의 루이빌! 누가 기절했지. 누가 기절했더라, 톰?"

"빌럭시." 그가 짧게 대답했다.

"빌럭시라는 남자였어. 「블록스」 빌럭시, 상자를 만드는 사람이었지—진짜야—테네시주 빌럭시 출신이었고."

"그 사람을 우리 집으로 옮겼어요." 조던이 덧붙였다. "우리 집이 교회에서 두 집 건너였거든요. 그러고는 삼 주를 눌러앉아 있다가 아빠가 나가 달라고 했죠. 그 사람이 떠난 다음 날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잠시 뒤 불경하게 들렸을까 봐 그가 덧붙였다. "아무 상관은 없었어요."

"멤피스 출신 빌 빌럭시라는 사람을 안 적이 있는데." 내가 말했다.

"그게 그 사람 사촌이에요. 그 사람이 떠나기 전에 집안 내력을 다 들었거든요. 알루미늄 퍼터를 하나 줬는데 지금도 그걸 써요."

예식이 시작되면서 음악이 잦아들었다가, 이제 창으로 긴 환호가 흘러들었고, 이따금 "와—아—아!" 하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마침내 춤이 시작되며 재즈가 터져 나왔다.

"우리 늙어 가나 봐." 데이지가 말했다. "젊었으면 일어나서 춤을 췄을 텐데."

"빌럭시를 생각해." 조던이 경고했다. "그 사람 어디서 알았어요, 톰?"

"빌럭시?" 그가 애써 생각을 모았다. "나는 몰랐어. 데이지 친구였지."

"아니야." 데이지가 부인했다. "난 그 사람 그때 처음 봤어. 전용 객차를 타고 내려왔더라고."

"글쎄, 그 사람은 당신을 안다던데. 루이빌에서 자랐다고 했어. 에이사 버드가 마지막 순간에 데려와서는 자리가 있느냐고 물었지."

조던이 웃었다.

"아마 공짜로 얻어 타고 집에 가던 길이었을 거예요. 나한테는 자기가 예일에서 당신네 학년 대표였다고 하던데."

톰과 나는 멍하니 서로를 보았다.

"빌럭시가?"

"우선 우리는 학년 대표 같은 게 없었는데—"

개츠비의 발이 짧고 안절부절못하는 박자를 굴렀고, 톰이 문득 그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개츠비 씨, 옥스퍼드 출신이시라고 들었소."

"꼭 그렇지는 않소."

"아, 그래도 옥스퍼드에 다니셨다고 들었는데."

"그렇소—거기 다녔소."

뜸. 그러고는 믿지 못하겠다는, 모욕하는 톰의 목소리.

"빌럭시가 뉴헤이븐에 다닐 때쯤 다니셨겠구려."

또 한 번의 뜸. 웨이터가 노크를 하고 으깬 박하와 얼음을 들고 들어왔지만, 그의 "감사합니다"와 조용히 문 닫히는 소리에도 침묵은 깨지지 않았다. 이 엄청난 세부 사항이 마침내 밝혀질 참이었다.

"거기 다녔다고 했잖소." 개츠비가 말했다.

"들었소. 그런데 언제인지 알고 싶군."

"1919년이었소. 다섯 달밖에 안 있었지. 그래서 옥스퍼드 출신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소."

톰은 우리도 자기처럼 믿지 않는지 보려고 둘러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개츠비를 보고 있었다.

"휴전 뒤에 장교들 일부에게 준 기회였소." 그가 말을 이었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어느 대학이든 갈 수 있었지."

나는 일어나서 그의 등을 두드려 주고 싶었다. 전에도 겪었던, 그를 온전히 다시 믿게 되는 그런 순간이었다.

데이지가 희미하게 웃으며 일어나 탁자로 갔다.

"위스키 따요, 톰." 데이지가 명령했다. "내가 민트 줄렙 만들어 줄게. 그럼 당신도 스스로가 그렇게 바보 같아 보이지 않을 거야… 박하 좀 봐!"

"잠깐." 톰이 쏘아붙였다. "개츠비 씨한테 하나만 더 묻고 싶어."

"물어보시오." 개츠비가 정중하게 말했다.

"대체 우리 집에서 무슨 소동을 일으키려는 거요?"

마침내 모든 것이 드러났고, 개츠비는 흡족했다.

"이 사람이 소동을 일으키는 게 아니에요." 데이지가 절박하게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당신이 소동을 일으키는 거지. 제발 좀 참아요."

"참으라고!" 톰이 기가 막힌다는 듯 되뇌었다. "요즘 유행은 가만히 앉아서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 같은 작자가 제 아내한테 수작 거는 걸 보고만 있는 건가 보군. 그게 요즘 생각이라면 난 빼 줘… 요즘 사람들은 가정생활과 가정 제도를 비웃는 데서 시작해서, 다음엔 모든 걸 바다에 내던지고 흑인과 백인이 서로 결혼하게 될 거야."

제 격한 헛소리에 얼굴이 벌게진 채 그는 자기가 문명의 마지막 방벽에 홀로 서 있다고 여겼다.

"여기엔 다 백인뿐인데." 조던이 웅얼거렸다.

"내가 인기가 별로 없다는 건 알아. 큰 파티를 열지 않으니까. 친구를 사귀려면 제집을 돼지우리로 만들어야 하나 보지—요즘 세상에선."

나도, 우리 모두도 화가 났지만,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웃음이 나오려 했다. 난봉꾼에서 도덕군자로의 변신이 어찌나 완벽한지.

"당신한테 할 말이 있소, 친구—" 개츠비가 말을 꺼냈다. 그러나 데이지가 그의 뜻을 짐작했다.

"제발 그러지 마요!" 데이지가 속수무책으로 말을 막았다. "제발 다 집에 가요. 다 같이 집에 가면 안 돼요?"

"좋은 생각이야." 내가 일어섰다. "가세, 톰. 아무도 술 생각 없어."

"개츠비 씨가 나한테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듣고 싶네."

"당신 아내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소." 개츠비가 말했다.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소. 데이지는 나를 사랑하오."

"당신 미쳤군!" 톰이 반사적으로 외쳤다.

개츠비가 흥분으로 생생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데이지는 당신을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소, 알아듣겠소?" 그가 외쳤다. "내가 가난했고 나를 기다리다 지쳤기 때문에 당신과 결혼했을 뿐이오. 끔찍한 실수였지만, 데이지는 마음속으로 나 말고는 누구도 사랑한 적이 없소!"

이때 조던과 나는 자리를 뜨려 했지만, 톰과 개츠비가 서로 질세라 단호하게 우리를 붙잡았다—둘 중 누구도 감출 게 없고, 제 감정을 대신 나누어 느끼는 것이 우리에게 특권이라도 된다는 듯이.

"앉아, 데이지." 톰의 목소리가 아버지 같은 어조를 찾아 더듬었지만 잘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다 듣고 싶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내가 말했소." 개츠비가 말했다. "오 년 동안 있었던 일이오—그리고 당신은 몰랐지."

톰이 날카롭게 데이지에게로 돌아섰다.

"오 년 동안 이 작자를 만나 왔다고?"

"만난 게 아니오." 개츠비가 말했다. "아니, 우리는 만날 수 없었소. 하지만 우리 둘은 그동안 내내 서로 사랑했소, 친구. 그리고 당신은 몰랐지. 가끔 웃음이 나오곤 했소"—그러나 그의 눈에는 웃음기가 없었다—"당신이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아—그게 다요?" 톰은 목사처럼 두툼한 손가락 끝을 서로 톡톡 맞대고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당신 미쳤어!" 그가 폭발했다. "오 년 전 일은 말할 수 없지. 그땐 내가 데이지를 몰랐으니까—그런데 당신이 뒷문으로 식료품 배달이라도 하지 않은 담에야 어떻게 데이지한테 일 마일 안으로라도 다가갔는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군. 하지만 나머지는 다 빌어먹을 거짓말이야. 데이지는 나와 결혼할 때 나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해."

"아니오." 개츠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도 사랑해. 문제는 가끔 데이지가 머리에 어리석은 생각을 넣고는 자기가 뭘 하는지 모른다는 거지." 그가 현자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나도 데이지를 사랑해. 가끔 한바탕 흥청대며 바보짓을 하기도 하지만, 나는 언제나 돌아오고, 마음속으로는 내내 데이지를 사랑해."

"당신 역겨워." 데이지가 말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돌아섰는데, 한 옥타브 낮아진 그의 목소리가 짜릿한 경멸로 방을 채웠다. "우리가 왜 시카고를 떠났는지 알아? 그 작은 흥청거림 얘기를 아직 아무도 안 들려줬다니 놀랍네."

개츠비가 걸어가 데이지 곁에 섰다.

"데이지, 그건 이제 다 끝났소." 그가 간절하게 말했다. "이제 더는 중요하지 않소. 그냥 이 사람한테 사실대로 말하시오—한 번도 사랑한 적 없다고—그럼 모든 게 영원히 지워지오."

데이지는 멍하니 그를 보았다. "아니—내가 어떻게 저 사람을—사랑할 수가 있겠어요?"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소."

데이지가 머뭇거렸다. 그의 눈이 호소하듯 조던과 나에게 떨어졌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마침내 깨달은 것처럼—그리고 처음부터 내내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이제는 벌어진 일이었다. 너무 늦었다.

"저 사람을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어요." 데이지가 눈에 띄게 마지못해 말했다.

"카피올라니에서도?" 톰이 불쑥 물었다.

"네."

아래층 연회장에서 먹먹하고 숨 막히는 화음이 뜨거운 공기의 물결을 타고 올라왔다.

"당신 신발 젖지 말라고 내가 펀치볼에서 안고 내려왔던 그날도?" 그의 목소리에 쉰 듯한 다정함이 있었다… "데이지?"

"제발 그러지 마요." 데이지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원한은 가시고 없었다. 그는 개츠비를 보았다. "됐죠, 제이." 데이지가 말했다—그러나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담배와 타는 성냥을 카펫에 내던졌다.

"아, 당신은 너무 많은 걸 바라요!" 데이지가 개츠비에게 외쳤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잖아요—그걸로 부족해요? 지나간 일은 나도 어쩔 수 없어요." 그가 속수무책으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저 사람을 사랑한 적도 있어요—하지만 당신도 사랑했어요."

개츠비의 눈이 떠졌다 감겼다.

"나도 사랑했다고?" 그가 되뇌었다.

"그것도 거짓말이야." 톰이 사납게 말했다. "데이지는 당신이 살아 있는 줄도 몰랐어. 그리고—데이지하고 나 사이에는 당신이 영영 모를 일들이 있어. 우리 둘 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일들이."

그 말이 개츠비의 몸을 물어뜯는 것 같았다.

"데이지하고 따로 얘기하고 싶소." 그가 우겼다. "지금 너무 흥분해서—"

"따로 있어도 톰을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다고는 말 못 해요." 데이지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털어놓았다.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

"물론 아니지." 톰이 맞장구쳤다.

데이지가 남편에게 돌아섰다.

"당신한테 그게 중요하기라도 한 것처럼." 데이지가 말했다.

"물론 중요하지. 이제부터는 당신을 더 잘 돌볼게."

"모르는군." 개츠비가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말했다. "당신은 이제 데이지를 돌보지 않게 될 거요."

"내가 안 돌본다고?" 톰이 눈을 크게 뜨고 웃었다. 이제는 자제할 여유가 있었다. "그건 왜지?"

"데이지가 당신을 떠나니까."

"말도 안 돼."

"그래도 떠날 거예요." 데이지가 눈에 띄게 애쓰며 말했다.

"데이지는 나를 안 떠나!" 톰의 말이 문득 개츠비 위로 몸을 숙였다. "당연히 안 떠나지. 반지를 끼워 주려면 그 반지부터 훔쳐야 할 흔해 빠진 사기꾼 때문에는."

"못 참겠어!" 데이지가 외쳤다. "아, 제발 나가요."

"대체 당신 누구야?" 톰이 터뜨렸다. "마이어 울프심하고 어울려 다니는 패거리 가운데 하나지—그 정도는 나도 어쩌다 알게 됐어. 당신 일을 좀 캐 봤지—내일은 더 캐 볼 거야."

"그건 마음대로 하시오, 친구." 개츠비가 흔들림 없이 말했다.

"당신 「약국」이 뭐였는지 알아냈지." 그가 우리에게 돌아서서 빠르게 말했다. "이 작자하고 울프심이 여기하고 시카고에서 뒷골목 약국을 잔뜩 사들여서 계산대 너머로 곡물 알코올을 팔았어. 이 작자의 작은 재주 가운데 하나지. 처음 봤을 때부터 밀주업자로 찍었는데 크게 틀리지 않았군."

"그게 어쨌다는 거요?" 개츠비가 정중하게 말했다. "당신 친구 월터 체이스도 거기 끼는 걸 그리 부끄러워하지는 않던데."

"그리고 당신은 그 친구를 곤경에 내버려 뒀지, 안 그래? 뉴저지에서 한 달 동안 감옥에 가게 놔뒀잖아. 맙소사! 월터가 당신 얘기 하는 걸 들어 봐야 하는데."

"그 친구는 빈털터리로 우리한테 왔소. 돈을 좀 만지게 되어 무척 기뻐했지, 친구."

"나한테 '친구'라고 하지 마!" 톰이 외쳤다. 개츠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월터는 도박법 위반으로도 당신을 걸 수 있었는데, 울프심이 겁을 줘서 입을 다물게 했지."

그 낯설면서도 알아볼 수 있는 표정이 다시 개츠비의 얼굴에 돌아와 있었다.

"그 약국 장사는 푼돈에 지나지 않았어." 톰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이 벌이고 있는 일은 월터가 나한테 말하기도 겁을 내더군."

나는 개츠비와 제 남편 사이를 겁에 질려 번갈아 보고 있는 데이지를 흘끗 보았고, 보이지는 않지만 몰두할 만한 무언가를 턱끝에 올려놓고 균형을 잡기 시작한 조던을 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개츠비에게로 돌아섰다—그리고 그의 표정에 흠칫 놀랐다. 그는—그의 정원에서 지껄여지던 중상모략을 한껏 경멸하며 하는 말이지만—「사람을 죽인」 사람처럼 보였다. 한순간 그의 얼굴 생김새는 딱 그 터무니없는 말로밖에 묘사할 수 없었다.

그 표정은 지나갔고, 그는 흥분해서 데이지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부인하며, 아직 제기되지도 않은 혐의들에 맞서 제 이름을 변호하며. 그러나 한마디 할 때마다 데이지는 점점 더 제 안으로 물러났고, 그래서 그는 그것을 그만두었다. 오후가 미끄러져 가는 동안 오직 죽은 꿈만이 계속 싸웠다. 이제는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만지려 애쓰며, 방 건너편의 그 잃어버린 목소리를 향해 불행하게, 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몸부림치며.

그 목소리가 다시 가자고 애원했다.

"제발, 톰! 더는 못 참겠어요."

겁에 질린 그의 눈이 말해 주었다. 어떤 뜻을 품었든, 어떤 용기를 냈든, 그것은 이제 확실히 사라지고 없다고.

"둘이 먼저 집에 가, 데이지." 톰이 말했다. "개츠비 씨 차로."

데이지가 이제는 놀라서 톰을 보았지만, 그는 너그러운 경멸을 담아 우겼다.

"가. 이 사람이 당신을 성가시게 하지 않을 거야. 제 주제넘은 장난 같은 연애가 끝났다는 걸 알았을 테니까."

두 사람은 한마디 없이 가 버렸다. 뚝 끊겨서, 우연한 것이 되어, 유령처럼 따로 떨어져서. 우리의 동정으로부터도.

잠시 뒤 톰이 일어나 따지 않은 위스키 병을 수건에 싸기 시작했다.

"이거 좀 마실 사람? 조던?… 닉?"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닉?" 그가 다시 물었다.

"뭐?"

"좀 마실 텐가?"

"아니…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게 방금 생각났어."

나는 서른이었다. 내 앞에는 새로운 십 년의 불길하고 위협적인 길이 뻗어 있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쿠페를 타고 롱아일랜드로 출발한 것은 일곱 시였다. 톰은 쉴 새 없이 떠들며 우쭐해하고 웃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조던과 나에게서 보도의 낯선 소란이나 머리 위 고가 철도의 굉음만큼이나 멀었다. 사람의 공감에는 한계가 있고, 우리는 그들의 모든 비극적인 말다툼이 도시의 불빛과 함께 뒤로 흐려지게 두는 것으로 만족했다. 서른—외로움의 십 년에 대한 약속, 알고 지낼 독신 남자들의 명단이 얇아지고, 열정의 서류 가방이 얇아지고, 머리숱이 얇아지는. 그러나 내 곁에는 조던이 있었다. 데이지와 달리, 잘 잊힌 꿈을 이 나이에서 저 나이로 짊어지고 다니기에는 너무나 현명한 조던이. 어두운 다리를 건널 때 그의 창백한 얼굴이 나른하게 내 윗옷 어깨에 기대 왔고, 서른이라는 무시무시한 종소리는 안심시키듯 쥐어 오는 그의 손길 속에 잦아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식어 가는 땅거미를 뚫고 죽음을 향해 달렸다.

* * *

잿더미 옆에서 커피 가게를 하는 젊은 그리스인 마이클리스가 검시 심문의 주요 증인이었다. 그는 더위 속에서 다섯 시가 넘도록 자다가 정비소로 어슬렁어슬렁 건너갔는데, 조지 윌슨이 사무실에서 앓고 있었다—정말 앓고 있었다. 제 창백한 머리칼만큼이나 창백한 얼굴로 온몸을 떨면서. 마이클리스는 가서 누우라고 권했지만 윌슨은 그러면 장사를 많이 놓친다며 거절했다. 이웃이 그를 설득하려는데 위층에서 사나운 소동이 터졌다.

"아내를 저 위에 가둬 놨어요." 윌슨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모레까지 저기 있게 할 거고, 그다음엔 이사 갈 거예요."

마이클리스는 깜짝 놀랐다. 사 년 동안 이웃으로 지냈지만 윌슨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대개 그는 그런 닳아 빠진 남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일하지 않을 때는 문간 의자에 앉아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차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가 말을 걸면 언제나 기분 좋고 빛깔 없이 웃었다. 그는 제 아내의 남자였지 제 자신의 남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마이클리스는 당연히 무슨 일인지 알아내려 했지만 윌슨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대신 방문객에게 묘하게 의심스러운 눈길을 던지며 어느 날 어느 때에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묻기 시작했다. 방문객이 불안해지기 시작하던 참에 인부 몇이 그의 식당 쪽으로 문 앞을 지나갔고, 마이클리스는 그 틈에 빠져나왔다. 나중에 다시 오려고 했다. 그러나 오지 않았다. 잊어버렸던 것 같다, 그뿐이다. 일곱 시 조금 넘어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그는 그 대화를 떠올렸다. 아래층 정비소에서 윌슨 부인이 크게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때려 봐!" 그 여자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날 넘어뜨리고 때려 봐, 이 더러운 겁쟁이야!"

잠시 뒤 그 여자가 두 손을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며 어스름 속으로 뛰쳐나왔다—그가 제 문간에서 움직이기도 전에 일은 끝나 있었다.

신문들이 「죽음의 차」라고 부른 그 차는 멈추지 않았다. 짙어 가는 어둠 속에서 나와 잠깐 비극적으로 휘청이더니 다음 굽잇길을 돌아 사라졌다. 마브로 마이클리스는 그 차의 색깔조차 확신하지 못했다—처음 온 경찰관에게는 연초록이라고 말했다. 다른 차, 뉴욕 쪽으로 가던 차는 백 미터쯤 지나서 멈췄고, 운전자가 서둘러 되돌아왔다. 머틀 윌슨이 사납게 꺼져 버린 목숨으로 길에 무릎을 꿇은 채 걸쭉하고 검은 피를 먼지에 섞고 있는 곳으로.

마이클리스와 그 남자가 가장 먼저 그 여자에게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 땀에 젖어 있는 블라우스를 찢어 열었을 때, 그들은 왼쪽 가슴이 덮개처럼 덜렁거리는 것을 보았고, 그 밑의 심장 소리를 들어 볼 필요도 없었다. 입은 크게 벌어져 가장자리가 조금 찢겨 있었다. 그토록 오래 쌓아 온 엄청난 생명력을 내어놓으면서 조금 숨이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 * *

아직 한참 떨어진 곳에서 우리는 자동차 서너 대와 사람들 무리를 보았다.

"사고로군!" 톰이 말했다. "잘됐네. 윌슨이 마침내 일감 좀 생기겠어."

그는 속도를 늦췄지만 여전히 설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가까워지면서 정비소 문간 사람들의 숨죽이고 골똘한 얼굴들을 보자 저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한번 보자고." 그가 미심쩍게 말했다. "그냥 보기만."

이제 나는 정비소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공허한 울부짖음을 알아차렸다. 우리가 쿠페에서 내려 문 쪽으로 걸어가자 그 소리는 헐떡이는 신음 속에서 되풀이되는 "아, 하느님!"이라는 말로 풀려났다.

"뭔가 큰일이 났나 봐." 톰이 흥분해서 말했다.

그는 발돋움을 하고 둥글게 모인 머리들 너머로 정비소 안을 들여다보았다. 머리 위에서 흔들리는 쇠바구니 안의 노란 불빛 하나만 켜진 곳이었다. 그러고는 목구멍에서 거친 소리를 내더니, 억센 두 팔로 사납게 밀쳐 헤치고 들어갔다.

둥근 무리가 항의하는 웅얼거림과 함께 다시 닫혔다. 한동안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러다 새로 온 사람들이 줄을 흐트러뜨렸고, 조던과 나는 갑자기 안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머틀 윌슨의 시신은 담요에 싸이고, 그 위에 또 담요에 싸여—뜨거운 밤에 오한이라도 드는 듯이—벽 옆 작업대 위에 누워 있었고, 톰이 우리에게 등을 돌린 채 그 위로 몸을 숙이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옆에는 오토바이 경찰관 하나가 서서 땀을 뻘뻘 흘리며 몇 번이고 고쳐 가며 작은 수첩에 이름들을 적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휑한 정비소에 요란하게 울리는 그 높고 신음하는 말이 어디서 나오는지 찾지 못했다—그러다 사무실의 높은 문턱에 서서 두 손으로 문설주를 붙잡고 앞뒤로 흔들리는 윌슨을 보았다. 어떤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며 이따금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 했지만, 윌슨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그의 눈은 흔들리는 불빛에서 벽 옆의 짐 얹힌 작업대로 천천히 떨어졌다가 다시 불빛으로 홱 돌아갔고, 그는 끊임없이 그 높고 끔찍한 부르짖음을 토해 냈다.

"아, 하느-님! 아, 하느-님! 아, 하느-님! 아, 하느-님!"

이윽고 톰이 홱 고개를 들더니, 흐릿한 눈으로 정비소를 둘러보고는 경찰관에게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게 웅얼거렸다.

"M-a-v—" 경찰관이 말하고 있었다. "—o—"

"아니, r—" 남자가 고쳐 주었다. "M-a-v-r-o—"

"내 말 좀 들어!" 톰이 사납게 중얼거렸다.

"r—" 경찰관이 말했다. "o—"

"g—"

"g—" 톰의 넓적한 손이 제 어깨에 탁 떨어지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뭘 원하쇼, 당신?"

"무슨 일이 있었소?—그걸 알고 싶소."

"차가 치었소. 즉사했소."

"즉사했다고." 톰이 멍하니 되뇌었다.

"길로 뛰어나왔는데. 개새끼가 차도 안 세웠소."

"차가 두 대 있었어요." 마이클리스가 말했다. "하나는 오고, 하나는 가고, 아시겠어요?"

"어디로 가고?" 경찰관이 날카롭게 물었다.

"하나씩 반대로 가고 있었다고요. 그런데 이 여자가"—그의 손이 담요 쪽으로 올라가다가 중간에 멈추더니 옆으로 떨어졌다—"이 여자가 저기로 뛰어나갔는데 뉴욕에서 오던 차가 시속 오륙십 킬로미터로 그대로 들이받았어요."

"여기 동네 이름이 뭐요?" 경찰관이 물었다.

"이름 같은 거 없어요."

창백하고 잘 차려입은 흑인 남자 하나가 가까이 다가섰다.

"노란 차였어요." 그가 말했다. "커다란 노란 차. 새 차였고요."

"사고를 봤소?" 경찰관이 물었다.

"아니요, 그런데 그 차가 저 아래서 저를 지나쳐 갔는데 시속 육십 킬로미터보다 빨랐어요. 팔구십은 됐을 거예요."

"이리 와서 이름을 대시오. 자, 비키시오. 이 사람 이름을 받아야 하니까."

이 대화의 몇 마디가 사무실 문간에서 흔들리던 윌슨에게 가 닿은 것이 틀림없었다. 갑자기 그의 헐떡이는 부르짖음 속에서 새로운 주제가 목소리를 얻었다.

"무슨 차였는지 나한테 말할 필요 없어요! 무슨 차였는지 나는 알아요!"

톰을 지켜보던 나는 그의 어깨 뒤 근육 덩어리가 윗옷 밑에서 팽팽해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재빨리 윌슨에게 걸어가 그 앞에 서서 그의 위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정신 차려야 하네." 그가 달래는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윌슨의 눈이 톰에게 떨어졌다. 그는 발돋움하듯 벌떡 일어섰다가, 톰이 붙잡아 세워 주지 않았더라면 무릎을 꿇고 쓰러졌을 것이다.

"들어 봐." 톰이 그를 조금 흔들며 말했다. "나는 뉴욕에서 방금 일 분 전에 여기 왔네. 우리가 말하던 그 쿠페를 자네한테 가져오던 길이야. 오늘 오후에 내가 몰던 그 노란 차는 내 차가 아니야—알아듣겠나? 오후 내내 그 차는 보지도 못했어."

그가 한 말을 들을 만큼 가까이 있던 것은 그 흑인 남자와 나뿐이었지만, 경찰관이 그 어조에서 무언가를 알아채고 사나운 눈으로 건너다보았다.

"거기 무슨 얘기요?" 그가 물었다.

"이 사람 친구요." 톰이 고개를 돌렸지만 두 손은 여전히 윌슨의 몸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이 사람이 사고 낸 차를 안다는군요… 노란 차였다고."

어떤 어렴풋한 충동이 경찰관으로 하여금 톰을 의심스럽게 바라보게 했다.

"당신 차는 무슨 색이오?"

"파란 차요. 쿠페."

"우리는 뉴욕에서 곧장 왔습니다." 내가 말했다.

우리 조금 뒤에서 차를 몰고 오던 누군가가 그 말을 확인해 주었고, 경찰관은 돌아섰다.

"자, 그 이름을 다시 정확하게 불러 주면—"

톰은 윌슨을 인형처럼 들어 올려 사무실 안으로 옮기고 의자에 앉힌 뒤 돌아왔다.

"누가 여기 와서 이 사람하고 같이 좀 있어 주시오." 그가 명령하듯 딱딱하게 말했다. 그는 가장 가까이 서 있던 두 남자가 서로 눈짓을 주고받고는 마지못해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그들 뒤로 문을 닫고, 작업대를 외면한 채 계단 하나를 내려왔다. 내 곁을 바싹 지나며 그가 속삭였다. "나가자."

그의 명령하는 팔이 길을 뚫는 가운데, 우리는 남의 눈을 의식하며 여전히 모여드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왔다. 삼십 분 전에 막연한 희망으로 불러온 의사가 가방을 들고 서둘러 오는 곁을 지나쳤다.

톰은 굽잇길을 벗어날 때까지 천천히 차를 몰았다—그러고는 발을 세게 내리밟았고, 쿠페는 밤을 뚫고 질주했다. 조금 뒤 나는 낮고 쉰 흐느낌을 들었고, 그의 얼굴에 눈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았다.

"빌어먹을 겁쟁이 같으니!" 그가 훌쩍였다. "차도 안 세웠어."

* * *

어둡게 살랑이는 나무들 사이로 뷰캐넌네 집이 문득 우리 쪽으로 떠올랐다. 톰은 현관 옆에 차를 세우고 이층을 올려다보았다. 덩굴 사이로 창 두 개가 불빛으로 피어 있었다.

"데이지가 집에 있군." 그가 말했다. 차에서 내릴 때 그가 나를 흘끗 보더니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를 웨스트에그에 내려 줄 걸 그랬어, 닉. 오늘 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에게 변화가 찾아와 있었다. 그는 엄숙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달빛 어린 자갈을 밟고 현관으로 걸어가면서 그는 몇 마디 시원시원한 말로 상황을 정리했다.

"자네를 집에 데려다줄 택시를 부르겠네. 기다리는 동안 자네하고 조던은 부엌에 가서 저녁이라도 좀 차려 달라고 하게—먹고 싶으면." 그가 문을 열었다. "들어오게."

"아니, 됐네. 그래도 택시는 불러 주면 고맙겠네. 밖에서 기다리지."

조던이 내 팔에 손을 얹었다.

"안 들어올래요, 닉?"

"아니, 됐어요."

나는 조금 속이 메스꺼웠고 혼자 있고 싶었다. 그러나 조던은 잠시 더 머뭇거렸다.

"아직 아홉 시 반밖에 안 됐는데." 그가 말했다.

죽어도 들어가기 싫었다. 하루치로 그들 모두에게 질려 버렸고, 문득 거기엔 조던까지 들어 있었다. 그가 내 표정에서 그런 기색을 본 모양이었다. 그는 홱 돌아서더니 현관 계단을 뛰어올라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몇 분 동안 두 손에 머리를 묻고 앉아 있었고, 이윽고 안에서 수화기를 드는 소리와 택시를 부르는 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나는 천천히 진입로를 걸어 내려가 집에서 멀어졌다. 대문 옆에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스무 걸음도 채 가지 않았을 때 누가 내 이름을 불렀고, 개츠비가 덤불 두 개 사이에서 길로 나섰다. 그때 나는 꽤 기묘한 기분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달빛 아래 빛나는 그의 분홍 양복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으니까.

"뭐 하세요?" 내가 물었다.

"그냥 여기 서 있네, 친구."

어째서인지 그것이 비열한 짓으로 여겨졌다. 모르긴 해도 그는 곧 이 집을 털 참이었다. 그의 뒤 어두운 덤불 속에서 음험한 얼굴들, 「울프심의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오는 길에 무슨 일 못 봤나?" 잠시 뒤 그가 물었다.

"봤어요."

그가 머뭇거렸다.

"죽었나?"

"네."

"그럴 줄 알았네. 데이지한테도 그럴 거라고 했지. 충격은 한꺼번에 오는 게 낫거든. 데이지는 꽤 잘 견뎠어."

그는 데이지의 반응만이 중요한 것처럼 말했다.

"샛길로 웨스트에그에 가서 차는 내 차고에 넣어 뒀네." 그가 말을 이었다. "아무도 우리를 못 본 것 같지만, 물론 장담할 수는 없지."

이때쯤 나는 그가 너무 싫어서, 그가 틀렸다고 말해 줄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 여자는 누구였나?" 그가 물었다.

"윌슨이라는 여자예요. 남편이 그 정비소 주인이고요. 대체 어쩌다 그렇게 된 겁니까?"

"그게, 핸들을 꺾으려고 했는데—" 그가 말을 끊었고, 나는 문득 진실을 짐작했다.

"데이지가 운전했습니까?"

"그렇네." 잠시 뒤 그가 말했다. "하지만 물론 내가 몰았다고 할 거야. 그러니까, 뉴욕을 떠날 때 데이지가 몹시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운전을 하면 좀 가라앉을 것 같다고 했거든—그런데 우리가 반대편에서 오는 차와 막 엇갈리던 참에 그 여자가 우리 쪽으로 뛰어든 거야. 모든 게 한순간이었지만, 그 여자가 우리한테 무슨 말을 하려던 것 같았어. 아는 사람인 줄 알았던 것처럼. 그래서 데이지가 처음엔 여자를 피해 반대편 차 쪽으로 꺾었다가, 겁이 나서 다시 돌렸지. 내 손이 핸들에 닿는 순간 충격이 느껴졌어—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야."

"몸이 찢겨 나갔어요—"

"말하지 말게, 친구." 그가 움찔했다. "아무튼—데이지가 가속 페달을 밟았네. 세우라고 했지만 데이지는 세우지 못했고, 그래서 내가 비상 브레이크를 당겼지. 그러자 데이지가 내 무릎 위로 쓰러졌고, 내가 몰고 왔네.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야." 이윽고 그가 말했다. "나는 그냥 여기서 기다리면서 그 사람이 오늘 오후의 그 불쾌한 일로 데이지를 괴롭히려 드는지 볼 참이네. 데이지는 제 방에 문을 잠그고 있고, 그 사람이 무슨 난폭한 짓을 하려 들면 불을 껐다가 다시 켜기로 했어."

"톰은 데이지를 건드리지 않을 거예요." 내가 말했다. "지금 데이지 생각은 하지도 않아요."

"나는 그 사람을 믿지 않네, 친구."

"얼마나 기다리실 건데요?"

"필요하면 밤새도록. 아무튼 다들 잠자리에 들 때까지는."

새로운 관점 하나가 떠올랐다. 데이지가 운전했다는 것을 톰이 알아낸다면 어떨까. 그는 거기서 무슨 연관을 봤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무슨 생각이든 할 수 있었다. 나는 집을 보았다. 아래층에 환한 창이 두셋 있었고, 일층의 데이지 방에서 분홍빛이 새어 나왔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내가 말했다. "무슨 소란이 있는지 보고 올게요."

나는 잔디밭 가장자리를 따라 되돌아가 자갈을 조용히 가로질러 발끝으로 베란다 계단을 올랐다. 응접실 커튼이 열려 있었고, 방은 비어 있었다. 석 달 전 그 6월 밤에 우리가 저녁을 먹었던 현관을 가로질러 가자 작은 네모꼴 불빛이 나왔는데, 식료품실 창인 것 같았다. 차양이 내려져 있었지만 창턱에서 틈 하나를 찾아냈다.

데이지와 톰이 부엌 식탁에 마주 앉아 있었다. 둘 사이에는 차가운 닭튀김 한 접시와 에일 두 병이 놓여 있었다. 톰은 식탁 너머로 데이지에게 골똘히 말하고 있었고, 열심히 말하다가 그의 손이 데이지의 손 위에 떨어져 그것을 덮고 있었다. 이따금 데이지가 그를 올려다보며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행복하지 않았고, 둘 다 닭고기에도 에일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았다. 그 광경에는 틀림없는 자연스러운 친밀함이 감돌았고, 누가 보아도 두 사람이 함께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발끝으로 현관을 빠져나오는데 내 택시가 어두운 길을 더듬으며 집 쪽으로 오는 소리가 들렸다. 개츠비는 진입로에서 내가 두고 온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 위는 조용한가?" 그가 초조하게 물었다.

"네, 다 조용해요." 나는 머뭇거렸다. "집에 가서 좀 주무시는 게 좋겠어요."

그가 고개를 저었다.

"데이지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싶네. 잘 가게, 친구."

그는 두 손을 윗옷 주머니에 넣고, 내가 있는 것이 이 밤샘의 신성함을 해치기라도 한다는 듯 다시 간절하게 집을 지켜보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래서 나는 걸어 나왔고, 그를 달빛 속에 서 있게 두었다—아무것도 아닌 것을 지키고 있는 그를.

8장

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해협에서 무적이 쉴 새 없이 신음했고, 나는 기괴한 현실과 사납고 무서운 꿈 사이에서 반쯤 앓으며 뒤척였다. 새벽녘에 택시 한 대가 개츠비의 진입로를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곧바로 침대에서 뛰어나와 옷을 입기 시작했다—그에게 할 말이, 경고할 것이 있다고 느꼈고, 아침이면 너무 늦을 것 같았다.

그의 잔디밭을 가로지르다 보니 현관문이 아직 열려 있었고, 그는 현관 복도의 탁자에 기대 있었다. 낙담 때문인지 졸음 때문인지 무거워 보였다.

"아무 일도 없었네." 그가 힘없이 말했다. "기다렸는데, 네 시쯤 데이지가 창가에 와서 잠깐 서 있다가 불을 껐어."

그날 밤 담배를 찾아 커다란 방들을 뒤지고 다닐 때만큼 그의 집이 거대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우리는 천막 같은 커튼을 밀어젖혔고, 전등 스위치를 찾아 끝없이 이어진 어두운 벽을 더듬었다—한번은 유령 같은 피아노 건반 위로 첨벙 소리를 내며 넘어지기도 했다. 곳곳에 까닭 모를 먼지가 수북했고, 방들은 여러 날 바람을 넣지 않은 것처럼 퀴퀴했다. 낯선 탁자 위에서 담배 보관함을 찾아냈는데, 안에는 눅고 말라 버린 담배 두 개비가 들어 있었다. 우리는 응접실의 프랑스식 창을 활짝 열어젖히고 어둠 속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앉아 있었다.

"떠나셔야 해요." 내가 말했다. "그 사람들이 차를 추적할 게 거의 확실해요."

"지금 떠나라고, 친구?"

"애틀랜틱시티에 일주일쯤 가 있든가, 몬트리올로 올라가든가요."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데이지가 어떻게 할지 알기 전에는 도저히 데이지를 두고 떠날 수 없었다. 그는 마지막 희망 같은 것을 붙들고 있었고, 나는 차마 그를 거기서 떼어 낼 수 없었다.

그가 댄 코디와 함께 보낸 젊은 시절의 이상한 이야기를 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이 밤이었다—「제이 개츠비」가 톰의 단단한 악의에 부딪혀 유리처럼 깨져 버렸고, 그 길고 은밀했던 호화극이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무엇이든 거리낌 없이 털어놓았을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데이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데이지는 그가 알게 된 첫 「좋은 집안」 아가씨였다. 드러나지 않은 이런저런 처지로 그런 사람들과 닿은 적은 있었지만, 늘 보이지 않는 가시철조망이 사이에 있었다. 그는 데이지가 가슴 뛰도록 탐났다. 그는 데이지의 집에 갔다. 처음에는 캠프 테일러의 다른 장교들과 함께, 나중에는 혼자서. 그는 놀랐다—그렇게 아름다운 집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집에 숨 막히는 강렬함을 준 것은 데이지가 거기 산다는 사실이었다—데이지에게 그 집은 그에게 막사의 천막만큼이나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거기에는 무르익은 신비가 있었다. 위층에 다른 침실들보다 더 아름답고 서늘한 침실들이 있을 것 같은, 복도마다 명랑하고 빛나는 일들이 벌어질 것 같은, 벌써 퀴퀴해져 라벤더 속에 치워 둔 연애가 아니라 싱싱하게 숨 쉬며 올해의 번쩍이는 자동차와 꽃이 채 시들지도 않은 무도회의 향기를 풍기는 연애들이 있을 것 같은 암시가. 벌써 많은 남자가 데이지를 사랑했다는 것도 그를 설레게 했다—그것이 그의 눈에 데이지의 값을 올려 주었다. 그는 온 집 안에서 그들의 존재를, 아직 떨고 있는 감정들의 그림자와 메아리가 공기를 채우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엄청난 우연으로 데이지의 집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제이 개츠비로서의 앞날이 아무리 찬란하다 해도, 지금 그는 과거도 돈도 없는 젊은이였고, 군복이라는 보이지 않는 망토가 언제 그의 어깨에서 흘러내릴지 몰랐다. 그래서 그는 시간을 최대한 이용했다. 얻을 수 있는 것은 게걸스럽게, 거리낌 없이 가졌다—그리고 마침내 고요한 10월의 어느 밤 데이지를 가졌다. 데이지의 손을 만질 진짜 권리가 그에게 없었기 때문에 가진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경멸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분명히 거짓된 구실로 데이지를 가졌으니까. 있지도 않은 수백만 달러를 내세웠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일부러 데이지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자기가 데이지와 거의 같은 계층의 사람이라고—데이지를 충분히 돌볼 수 있다고 믿게 했다. 사실 그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뒤를 받쳐 줄 넉넉한 집안도 없었고, 비정한 정부의 변덕에 따라 세상 어디로든 날려 갈 수 있는 몸이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경멸하지 않았고, 일은 그가 상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아마 그는 얻을 것을 얻고 떠날 생각이었을 것이다—그런데 이제 자기가 성배를 좇는 길에 몸을 바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데이지가 비범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좋은 집안」 아가씨가 얼마나 비범할 수 있는지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데이지는 제 부유한 집 속으로, 제 부유하고 충만한 삶 속으로 사라졌고, 개츠비에게는—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는 데이지와 결혼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뿐이었다.

이틀 뒤 다시 만났을 때, 숨이 가빴던 것은, 어쩐지 배신당한 것은 개츠비 쪽이었다. 데이지의 현관은 돈으로 산 별빛의 호사로 환했다. 데이지가 그를 향해 돌아앉자 등나무 의자가 멋스럽게 삐걱거렸고, 그는 그 호기심 어린 사랑스러운 입에 입을 맞추었다. 데이지는 감기에 걸려 있었는데, 그 때문에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더 허스키하고 매혹적이었다. 개츠비는 부가 가두고 지켜 주는 젊음과 신비를, 숱한 옷들의 싱그러움을,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뜨거운 몸부림 위에서 안전하고 당당하게 은처럼 빛나는 데이지를 압도적으로 느꼈다.

* * *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말로 다 못 하겠네, 친구. 한동안은 그 사람이 나를 차 버리기를 바라기까지 했지. 그런데 그러지 않았어.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자기와 다른 것들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많이 안다고 생각했지… 그러니까, 나는 야망에서 한참 벗어나서 매 순간 더 깊이 사랑에 빠져 들었고, 갑자기 아무래도 상관없어졌어. 내가 앞으로 할 일들을 그 사람한테 이야기하는 게 더 즐거운데, 큰일을 해서 뭐 하겠나?"

해외로 떠나기 전 마지막 오후, 그는 데이지를 품에 안고 오랫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추운 가을날이었고, 방에는 불이 피워져 있었고, 데이지의 뺨은 발그레했다. 이따금 데이지가 몸을 움직이면 그는 팔을 조금 고쳐 안았고, 한번은 그의 검게 빛나는 머리칼에 입을 맞추었다. 그 오후는 이튿날이 약속한 긴 이별을 위해 깊은 기억을 남겨 주려는 듯 두 사람을 한동안 고요하게 해 주었다. 사랑했던 그 한 달 동안, 데이지가 소리 없는 입술로 그의 윗옷 어깨를 스칠 때나 그가 잠든 사람을 대하듯 조심스레 데이지의 손가락 끝을 만질 때만큼 두 사람이 가까웠던 적은, 서로 깊이 통했던 적은 없었다.

* * *

그는 전쟁에서 눈부시게 잘해 냈다. 전선에 가기 전에 대위가 되었고, 아르곤 전투 뒤에는 소령으로 진급해 사단 기관총대를 지휘했다. 휴전 뒤에 그는 미친 듯이 귀국하려 했지만, 무슨 복잡한 사정인지 착오인지 때문에 대신 옥스퍼드로 보내졌다. 이제 그는 걱정이 되었다—데이지의 편지에 신경질적인 절망의 기운이 배어 있었다. 데이지는 그가 왜 오지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데이지는 바깥세상의 압박을 느끼고 있었고, 그를 만나 제 곁에 그가 있음을 느끼고 결국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안심하고 싶어 했다.

데이지는 젊었고, 그의 인공적인 세계에는 난초의 향기와 즐겁고 명랑한 속물근성과 한 해의 박자를 정하며 새로운 가락으로 삶의 슬픔과 암시를 요약해 주는 악단들이 있었다. 밤새 색소폰이 「빌 스트리트 블루스」의 가망 없는 논평을 흐느끼는 동안 금빛 은빛 무도화 백 켤레가 반짝이는 먼지를 비볐다. 잿빛 차 마시는 시간이면 이 낮고 달콤한 열기로 쉼 없이 고동치는 방들이 늘 있었고, 싱그러운 얼굴들이 슬픈 호른 소리에 날리는 장미 꽃잎처럼 무도장을 이리저리 떠다녔다.

이 땅거미 같은 우주 속을 데이지는 계절과 함께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다시 하루에 여섯 남자와 여섯 번씩 약속을 잡았고, 새벽이면 침대 옆 바닥에 시들어 가는 난초들 사이로 야회복의 구슬과 시폰을 뒤엉키게 벗어 둔 채 곯아떨어졌다. 그러는 내내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결정을 달라고 울부짖었다. 데이지는 자기 삶이 지금, 당장 모양을 갖추기를 원했다—그리고 그 결정은 어떤 힘이—사랑이든, 돈이든, 따질 수 없는 실용성이든—가까이 있는 힘이 내려 주어야 했다.

그 힘은 봄 한가운데 톰 뷰캐넌의 등장으로 모양을 갖추었다. 그의 몸에도 그의 지위에도 건실한 묵직함이 있었고, 데이지는 우쭐했다. 틀림없이 어느 정도의 갈등과 어느 정도의 안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 편지는 개츠비가 아직 옥스퍼드에 있을 때 그에게 닿았다.

* * *

이제 롱아일랜드에 동이 트고 있었고, 우리는 아래층의 나머지 창문들을 열러 다니며 잿빛으로, 금빛으로 바뀌어 가는 빛으로 집을 채웠다. 나무 그림자 하나가 이슬 위로 불쑥 드리워졌고, 푸른 잎들 사이에서 유령 같은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공기 속에 바람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느리고 기분 좋은 움직임이 있었다. 서늘하고 아름다운 하루를 약속하는.

"데이지는 그 사람을 사랑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네." 개츠비가 창가에서 돌아서며 도전하듯 나를 보았다. "기억해야 하네, 친구. 오늘 오후 데이지는 몹시 흥분해 있었어. 그 사람이 데이지를 겁먹게 하는 식으로 그런 말들을 했지—나를 무슨 싸구려 사기꾼처럼 보이게 만들었어. 그래서 데이지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거의 몰랐던 거야."

그가 침울하게 주저앉았다.

"물론 결혼 초에 잠깐은 그 사람을 사랑했을지도 모르지—그때도 나를 더 사랑했지만, 알겠나?"

갑자기 그가 이상한 말을 꺼냈다.

"어쨌든," 그가 말했다. "그건 그냥 개인적인 일이었어."

재어 볼 수 없는 어떤 강렬함이 그가 이 일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있다고 짐작하는 것 말고, 그 말을 어떻게 달리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는 톰과 데이지가 아직 신혼여행 중일 때 프랑스에서 돌아왔고, 마지막 남은 군대 봉급으로 비참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루이빌 여행을 했다. 그는 거기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11월의 밤에 두 사람의 발소리가 나란히 울렸던 거리를 걷고, 데이지의 흰 차를 타고 갔던 외진 곳들을 다시 찾았다. 데이지의 집이 늘 다른 집들보다 더 신비롭고 명랑해 보였듯, 데이지가 떠나고 없는데도 그의 머릿속 그 도시는 서글픈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그는 더 열심히 찾았더라면 데이지를 찾아냈을지도 모른다는 기분으로—데이지를 두고 떠나는 기분으로 그곳을 떠났다. 보통 객차는—이제 그는 빈털터리였다—더웠다. 그는 트인 승강구로 나가 접이의자에 앉았고, 역이 미끄러져 멀어지고 낯선 건물들의 뒷면이 지나갔다. 그러고는 봄의 들판으로 나섰는데, 노란 전차 한 대가 잠시 기차와 나란히 달렸다. 그 안에는 무심한 거리에서 데이지 얼굴의 창백한 마법을 한 번쯤 보았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선로가 휘어지더니 이제 기차는 해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해는 낮게 가라앉으면서, 데이지가 숨 쉬었던 그 사라져 가는 도시 위에 축복처럼 제 몸을 펼치는 것 같았다. 그는 절박하게 손을 뻗었다. 공기 한 줌이라도 붙잡으려는 듯, 데이지가 자기를 위해 아름답게 만들어 준 그곳의 한 조각이라도 건지려는 듯.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그의 흐려진 눈에는 너무 빨리 지나가고 있었고, 그는 그 가장 싱그럽고 가장 좋은 부분을 영영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아침을 다 먹고 현관으로 나간 것은 아홉 시였다. 밤사이 날씨가 확 바뀌어 공기에서 가을 맛이 났다. 개츠비의 예전 하인들 가운데 마지막 남은 정원사가 계단 아래로 왔다.

"오늘 수영장 물을 빼려고 합니다, 개츠비 씨. 곧 낙엽이 지기 시작할 텐데, 그러면 늘 배관에 탈이 나서요."

"오늘은 하지 말게." 개츠비가 대답했다. 그는 미안한 듯 나에게로 돌아섰다. "있잖나, 친구, 나 여름 내내 저 수영장을 한 번도 안 썼어."

나는 시계를 보고 일어섰다.

"기차 시간까지 십이 분이네요."

나는 시내에 가고 싶지 않았다.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지만, 그 이상이었다—나는 개츠비를 두고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기차를 놓치고, 또 한 대를 놓친 뒤에야 겨우 몸을 뗄 수 있었다.

"전화할게요." 마침내 내가 말했다.

"그러게, 친구."

"정오쯤 전화할게요."

우리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데이지도 전화하겠지." 그가 불안하게 나를 보았다. 내가 맞다고 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러겠죠."

"그럼, 잘 가게."

우리는 악수를 했고 나는 걸어 나왔다. 울타리에 이르기 직전에 무언가가 떠올라 돌아섰다.

"그 사람들은 썩어 빠진 족속이에요." 내가 잔디밭 건너로 소리쳤다. "당신 하나가 그 빌어먹을 무리를 다 합친 것보다 나아요."

그 말을 한 것이 나는 늘 기뻤다. 그에게 한 유일한 칭찬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으니까. 그는 먼저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고는 얼굴 가득 그 빛나고 모든 걸 이해한다는 미소를 터뜨렸다. 우리가 내내 그 사실을 두고 황홀하게 한통속이었던 것처럼. 그의 화려한 분홍 넝마 같은 양복이 흰 계단을 배경으로 선명한 빛깔의 점이 되었고, 나는 석 달 전 처음 그의 조상 대대로의 저택에 왔던 밤을 떠올렸다. 잔디밭과 진입로는 그의 부패를 짐작하는 얼굴들로 붐볐다—그리고 그는 바로 저 계단에 서서, 썩지 않는 제 꿈을 감춘 채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했다.

나는 그의 환대에 고맙다고 했다. 우리는 늘 그에게 그 일로 고마워했다—나도, 다른 사람들도.

"잘 있어요." 내가 불렀다. "아침 잘 먹었어요, 개츠비."

* * *

시내에 올라와서 나는 한동안 끝도 없는 주식의 시세를 적어 넣으려 애쓰다가 회전의자에서 잠이 들었다. 정오 직전에 전화벨이 나를 깨웠고, 나는 이마에 땀이 솟은 채 벌떡 일어났다. 조던 베이커였다. 호텔과 클럽과 개인 저택 사이를 오가는 그의 행방이 늘 불확실해서 다른 방법으로는 연락이 어려웠기 때문에, 그는 종종 이 시각에 전화를 걸어왔다. 대개 그의 목소리는 초록 골프장에서 떠낸 잔디 조각이 사무실 창으로 날아 들어오듯 싱그럽고 서늘하게 전화선을 타고 왔는데, 이날 아침에는 거칠고 메말라 있었다.

"데이지네 집에서 나왔어요." 그가 말했다. "지금 헴프스테드에 있는데, 오후에 사우샘프턴으로 내려가요."

데이지의 집을 나온 것은 아마 눈치 있는 일이었겠지만, 그 행동이 나를 짜증 나게 했고, 그의 다음 말은 나를 굳어 버리게 했다.

"어젯밤엔 나한테 별로 다정하지 않았어요."

"그때 그게 무슨 상관이었겠어요?"

잠시 침묵. 그러고는.

"그래도—보고 싶어요."

"나도 보고 싶어요."

"사우샘프턴에 가지 말고 오후에 시내로 갈까요?"

"아니—오늘 오후는 안 될 것 같아요."

"알았어요."

"오늘 오후는 도저히 안 돼요. 여러 가지—"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문득 더는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다. 우리 둘 중 누가 딸깍 날카롭게 전화를 끊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개의치 않았다는 것은 안다. 그날은 이 세상에서 다시는 그와 이야기하지 못한다 해도 찻상을 사이에 두고 그와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몇 분 뒤 개츠비의 집에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중이었다. 네 번을 걸었다. 마침내 짜증이 난 교환원이 디트로이트에서 올 장거리 전화 때문에 선을 비워 두고 있다고 했다. 나는 시간표를 꺼내 세 시 오십 분 기차에 작은 동그라미를 쳤다. 그러고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생각을 해 보려 했다. 막 정오였다.

* * *

그날 아침 기차로 잿더미를 지날 때 나는 일부러 객차의 반대편으로 건너가 앉았다. 그 근처에는 하루 종일 구경꾼들이 몰려 있을 것 같았다. 꼬마들은 먼지 속에서 검은 얼룩을 찾고, 어떤 수다스러운 남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풀이해 이야기하다가, 마침내 그 자신에게도 그 일이 점점 덜 실감 나서 더는 이야기할 수 없게 되고, 머틀 윌슨의 비극적인 성취는 잊혀 가겠지. 이제 조금 되돌아가서, 전날 밤 우리가 떠난 뒤 정비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그들은 언니 캐서린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그날 밤 그는 술을 안 마신다는 제 규칙을 깬 것이 틀림없었다. 도착했을 때 그는 술에 취해 멍했고, 구급차가 벌써 플러싱으로 떠났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했다. 사람들이 그 사실을 이해시키자 그는 곧바로 기절했다. 그것이 이 일에서 견딜 수 없는 대목이라도 되는 것처럼. 친절해서인지 호기심 때문인지 누군가가 그를 제 차에 태워 동생의 시신이 간 길을 따라 데려갔다.

자정이 한참 지나도록 바뀌어 가는 사람들 무리가 정비소 앞으로 밀려들었고, 그동안 조지 윌슨은 안쪽 소파에서 몸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한동안 사무실 문이 열려 있어서, 정비소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저도 모르게 그 안을 흘끗 들여다보았다. 마침내 누군가가 너무한다며 문을 닫았다. 마이클리스와 다른 남자 몇이 그와 함께 있었다. 처음에는 너덧, 나중에는 두셋. 더 나중에 마이클리스는 마지막 남은 낯선 사람에게 십오 분만 더 있어 달라고 부탁하고, 자기 가게로 돌아가 커피를 한 주전자 끓여 왔다. 그 뒤로 그는 새벽까지 윌슨과 단둘이 있었다.

세 시쯤 윌슨의 두서없는 중얼거림이 달라졌다—그는 조용해지더니 노란 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노란 차가 누구 것인지 알아낼 방법이 있다고 선언하더니, 두어 달 전 아내가 얼굴에 멍이 들고 코가 부은 채 시내에서 돌아온 적이 있다고 불쑥 내뱉었다.

그러나 제가 그 말을 하는 것을 듣자 그는 움찔하더니 다시 신음하는 목소리로 "아, 하느님!" 하고 부르짖기 시작했다. 마이클리스는 서투르게 그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 했다.

"결혼한 지 얼마나 됐어, 조지? 자, 잠깐만 가만히 앉아서 내 말에 대답해 봐. 결혼한 지 얼마나 됐어?"

"십이 년."

"아이는 있었어? 자, 조지, 가만히 앉아—내가 물었잖아. 아이가 있었던 적 있어?"

단단한 갈색 딱정벌레들이 흐릿한 불빛에 계속 부딪혀 툭툭 소리를 냈고, 바깥 길로 차 한 대가 질주해 지나갈 때마다 마이클리스에게는 그것이 몇 시간 전 멈추지 않았던 그 차 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정비소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시신이 누워 있던 작업대에 얼룩이 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사무실 안을 불편하게 서성였고—아침이 오기 전에 그 안의 물건을 모조리 알게 되었다—이따금 윌슨 옆에 앉아 그를 좀 더 진정시키려 했다.

"가끔 나가는 교회 있어, 조지? 오랫동안 안 나갔더라도? 내가 교회에 전화해서 신부님을 오시라고 하면 너랑 이야기를 나눠 주실 텐데, 응?"

"다니는 데 없어."

"이런 때를 위해서라도 교회가 있어야 해, 조지. 한 번은 교회에 갔을 거 아냐. 교회에서 결혼하지 않았어? 조지, 내 말 들어 봐. 교회에서 결혼하지 않았어?"

"오래전 일이야."

대답하느라 애쓰다 보니 흔들던 박자가 끊겼다—잠시 그는 말이 없었다. 그러다 반쯤은 알고 반쯤은 어리둥절한 그 표정이 그의 빛바랜 눈에 다시 돌아왔다.

"저 서랍 좀 봐." 그가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느 서랍?"

"저 서랍—저거."

마이클리스는 손에 제일 가까운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가죽과 은실을 땋아 만든 작고 비싼 개 목줄 하나밖에 없었다. 새것인 게 분명했다.

"이거?" 그가 그것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윌슨이 멍하니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오후에 찾았어. 그 사람이 뭐라고 둘러대려 했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지."

"네 아내가 샀다는 거야?"

"화장대 위에 얇은 종이로 싸 두었더라고."

마이클리스는 거기서 이상한 점을 보지 못했고, 윌슨의 아내가 개 목줄을 샀을 만한 이유를 열두어 가지 댔다. 그러나 윌슨은 그런 설명 가운데 몇 가지를 전에 머틀에게서 들었던 모양이다. 그가 다시 속삭이듯 "아, 하느님!" 하고 부르짖기 시작했으니까—그를 달래던 사람은 설명 몇 개를 허공에 걸어 둔 채 말을 멈췄다.

"그럼 그놈이 죽인 거야." 윌슨이 말했다. 그의 입이 문득 딱 벌어졌다.

"누가?"

"알아낼 방법이 있어."

"너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는구나, 조지." 그의 친구가 말했다. "이 일로 너무 힘들어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거야. 아침까지 가만히 앉아 있어 봐."

"그놈이 살해했어."

"사고였어, 조지."

윌슨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고, 입이 조금 벌어지며 우월감이 섞인 "흠!"의 기척이 어렸다.

"나는 알아." 그가 딱 잘라 말했다. "나는 남을 잘 믿는 사람이라 누구한테도 나쁜 생각은 안 하는데, 한번 알게 된 건 알아. 그 차에 탄 남자였어. 그 사람이 그 남자한테 말을 하려고 뛰어나갔는데 그놈이 안 섰어."

마이클리스도 그 장면을 보았지만, 거기에 무슨 특별한 뜻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윌슨 부인이 어떤 특정한 차를 세우려 했다기보다 남편에게서 도망치고 있었다고 믿었다.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속을 알 수 없는 여자야." 윌슨이 그걸로 대답이 된다는 듯 말했다. "아—아—"

그는 다시 몸을 흔들기 시작했고, 마이클리스는 손에 쥔 목줄을 비틀며 서 있었다.

"내가 전화해서 부를 만한 친구 없어, 조지?"

부질없는 희망이었다—그는 윌슨에게 친구가 없다는 것을 거의 확신했다. 그에게는 아내 한 사람에게 줄 만큼도 넉넉한 몫이 없었다. 조금 뒤 방 안에 변화가, 창가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살아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동이 머지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그는 기뻤다. 다섯 시쯤 바깥이 충분히 푸르러져 불을 껐다.

윌슨의 흐릿한 눈이 잿더미 쪽으로 향했다. 작은 잿빛 구름들이 기이한 모양을 하고 희미한 새벽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었다.

"그 사람한테 말했어." 한참 침묵한 뒤 그가 중얼거렸다. "나는 속일 수 있어도 하느님은 못 속인다고. 창가로 데려가서"—그는 애써 일어나 뒤쪽 창으로 걸어가 얼굴을 유리에 대고 기댔다—"이렇게 말했지. '하느님은 네가 뭘 해 왔는지, 네가 한 짓을 전부 아신다. 나는 속일 수 있어도 하느님은 못 속여!'"

그의 뒤에 서 있던 마이클리스는 그가 T. J. 에클버그 박사의 두 눈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섬뜩했다. 스러져 가는 밤 속에서 막 떠오른, 창백하고 거대한 눈이었다.

"하느님은 다 보셔." 윌슨이 되뇌었다.

"저건 광고야." 마이클리스가 그를 안심시켰다. 무언가가 그를 창에서 돌아서서 방 안을 되돌아보게 했다. 그러나 윌슨은 오랫동안 거기 서서, 창유리에 얼굴을 바싹 댄 채, 어스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 *

여섯 시가 되자 마이클리스는 녹초가 되었고, 밖에 차 한 대가 서는 소리가 고마웠다. 전날 밤 지키던 사람들 가운데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세 사람 몫의 아침을 지었고, 그와 그 남자가 함께 먹었다. 이제 윌슨은 좀 더 조용해졌고, 마이클리스는 잠을 자러 집에 갔다. 네 시간 뒤 깨어 서둘러 정비소로 돌아왔을 때 윌슨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중에 추적해 보니 그는—내내 걸어서—포트 루스벨트로 갔다가 개즈힐로 갔고, 거기서 먹지도 않을 샌드위치 하나와 커피 한 잔을 샀다. 지쳐서 천천히 걸었던 게 틀림없다. 개즈힐에 닿은 것이 정오였으니까. 거기까지는 그의 시간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좀 미친 사람처럼 구는」 남자를 봤다는 아이들이 있었고, 길가에서 그가 이상하게 쳐다보았다는 운전자들이 있었다. 그 뒤로 세 시간 동안 그는 사람들 눈에서 사라졌다. 경찰은 그가 마이클리스에게 「알아낼 방법이 있다」고 한 말을 근거로, 그가 그 시간 동안 그 근방의 정비소를 이곳저곳 돌며 노란 차에 대해 물었으리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그를 봤다고 나선 정비소 사람은 끝내 하나도 없었으니, 어쩌면 그에게는 알고 싶은 것을 알아낼 더 쉽고 확실한 방법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두 시 반에 그는 웨스트에그에 있었고, 누군가에게 개츠비의 집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러니까 그때 그는 이미 개츠비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 *

두 시에 개츠비는 수영복을 입고, 누구든 전화를 하면 수영장으로 알려 달라고 집사에게 일러두었다. 그는 차고에 들러 여름 동안 손님들을 즐겁게 해 주던 공기 매트리스를 챙겼고, 운전기사가 바람 넣는 것을 도왔다. 그러고는 지붕 없는 차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밖으로 내가지 말라고 지시했다—이상한 일이었다. 오른쪽 앞 흙받기를 고쳐야 했는데.

개츠비는 매트리스를 어깨에 메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한 번 멈춰 서서 그것을 조금 고쳐 멨는데, 운전기사가 도와 드릴까 묻자 그는 고개를 젓더니 이내 노랗게 물들어 가는 나무들 사이로 사라졌다.

전화는 오지 않았지만, 집사는 잠도 자지 않고 네 시까지 기다렸다—전화가 온다 해도 전해 줄 사람이 없어진 지 한참 뒤까지. 나는 개츠비 자신도 전화가 오리라고 믿지 않았고, 어쩌면 더는 개의치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는 옛날의 따뜻한 세상을 잃었다고, 단 하나의 꿈을 안고 너무 오래 산 대가를 비싸게 치렀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는 무서운 나뭇잎들 사이로 낯선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것이고, 장미가 얼마나 기괴한 것인지, 이제 막 만들어진 풀 위의 햇빛이 얼마나 날것인지 깨닫고 몸을 떨었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 실재하지 않으면서 물질이기만 한 세상, 가엾은 유령들이 꿈을 공기처럼 들이마시며 우연히 떠도는 세상… 모양 없는 나무들 사이로 그를 향해 미끄러져 오던 그 잿빛의 환상 같은 형체처럼.

운전기사가—그는 울프심이 봐주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총소리를 들었다. 나중에 그는 그 소리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나는 역에서 곧장 개츠비의 집으로 차를 몰았고, 내가 불안하게 현관 계단을 뛰어오른 것이 누군가를 놀라게 한 첫 번째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 그들은 알고 있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거의 아무 말도 없이 우리 넷, 운전기사와 집사와 정원사와 나는 서둘러 수영장으로 내려갔다.

한쪽 끝에서 새 물이 흘러들어 다른 쪽 끝의 배수구로 밀려가면서 물이 희미하게, 거의 알아볼 수 없게 움직이고 있었다. 물결의 그림자라고도 하기 어려운 잔물결과 함께, 짐을 실은 매트리스가 수영장 아래쪽으로 불규칙하게 떠갔다. 수면에 주름도 거의 잡지 못하는 작은 바람 한 줄기로도 우연한 짐을 실은 그 우연한 뱃길은 흐트러졌다. 나뭇잎 한 무더기가 닿자 매트리스는 천천히 돌며, 컴퍼스의 다리처럼 물 위에 가느다란 붉은 원을 그렸다.

우리가 개츠비를 들고 집 쪽으로 가기 시작한 뒤에야, 정원사가 조금 떨어진 풀밭에서 윌슨의 시신을 보았다. 그렇게 참극은 완결되었다.

9장

두 해가 지난 지금, 그날의 나머지와 그날 밤과 이튿날은 경찰과 사진기자와 신문기자가 끝없이 개츠비의 현관문을 드나들던 훈련처럼만 기억난다. 정문에 밧줄이 쳐졌고 그 옆에 선 경찰관이 구경꾼들을 막았지만, 꼬마들은 곧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수영장 둘레에는 늘 몇몇이 입을 벌린 채 모여 있었다. 단호한 태도의 누군가가, 아마 형사였을 텐데, 그날 오후 윌슨의 시신 위로 몸을 숙이며 「미치광이」라는 말을 썼고, 그의 목소리가 우연히 지닌 권위가 이튿날 아침 신문 기사들의 논조를 정했다.

그 기사들은 대부분 악몽이었다—기괴하고, 그럴싸하게 자세하고, 들떠 있고, 사실이 아니었다. 검시 심문에서 마이클리스의 증언으로 윌슨이 아내를 의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나는 이 모든 이야기가 곧 외설스러운 풍자극으로 차려져 나오리라 생각했다—그런데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었을 캐서린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일에서 놀라울 만큼 기개를 보이기도 했다—다시 그린 그 눈썹 밑의 결연한 눈으로 검시관을 바라보며, 동생은 개츠비를 본 적도 없고, 남편과 더없이 행복하게 살았으며, 어떤 나쁜 짓에도 끼어든 적이 없다고 맹세했다. 그는 스스로 그렇게 믿어 버렸고, 그런 암시조차 견딜 수 없다는 듯 손수건에 대고 울었다. 그래서 사건을 가장 단순한 모양으로 남겨 두기 위해 윌슨은 「슬픔에 정신이 나간」 남자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었다.

그러나 이 모든 대목은 멀고 부차적으로 여겨졌다. 나는 어느새 개츠비 편에 서 있었고, 혼자였다. 웨스트에그 마을에 참사 소식을 전화로 알린 순간부터, 그에 대한 모든 억측과 모든 실무적인 물음이 나에게로 넘어왔다. 처음에는 놀랍고 어리둥절했다. 그러다 그가 제 집에 누워 몇 시간이고 움직이지도 숨 쉬지도 말하지도 않는 동안,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차츰 굳어졌다. 다른 누구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내 말은, 마지막에 이르면 누구에게나 막연히 권리가 있는 그 강렬하고 개인적인 관심 말이다.

그를 발견하고 삼십 분 뒤에 나는 데이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본능적으로, 망설임 없이 걸었다. 그러나 데이지와 톰은 그날 오후 일찍 짐을 챙겨 떠나고 없었다.

"주소를 남기지 않았나요?"

"예."

"언제 돌아온다고 하던가요?"

"아니요."

"어디 있는지 짐작 가는 데는요? 어떻게 연락할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말씀드릴 수 없어요."

나는 그를 위해 누군가를 데려오고 싶었다. 그가 누워 있는 방에 들어가서 그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누군가 데려올게요, 개츠비. 걱정 마세요. 나만 믿어요, 누군가 데려올게요—"

마이어 울프심의 이름은 전화번호부에 없었다. 집사가 브로드웨이에 있는 그의 사무실 주소를 알려 주어 안내 전화에 물었지만, 번호를 알아냈을 때는 다섯 시가 한참 지나 있었고 아무도 받지 않았다.

"다시 걸어 주시겠어요?"

"세 번 걸었습니다."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죄송합니다. 아무도 없는 것 같네요."

나는 응접실로 돌아갔고, 갑자기 그 방을 채운 이 공무원들이 우연히 들른 손님들이 아닌가 잠깐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시트를 걷고 충격받은 눈으로 개츠비를 보는 동안에도, 그의 항의는 내 머릿속에서 계속되었다.

"이보게, 친구, 나를 위해 누군가 데려와 주게. 애써 봐 주게. 이걸 혼자 겪을 수는 없네."

누군가 나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지만 나는 뿌리치고 위층으로 올라가 그의 책상에서 잠기지 않은 서랍들을 서둘러 뒤졌다—그는 부모가 죽었다고 나에게 분명히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벽에서 내려다보는, 잊힌 폭력의 증표 댄 코디의 사진뿐.

이튿날 아침 나는 울프심에게 편지를 써서 집사 편에 뉴욕으로 보냈다. 소식을 알려 주고 다음 기차로 와 달라고 재촉하는 편지였다. 그걸 쓸 때는 그 부탁이 쓸데없다고 여겼다. 신문을 보면 그가 곧바로 출발하리라고 확신했다. 정오 전에 데이지에게서 전보가 오리라고 확신했던 것처럼—그러나 전보도 울프심 씨도 오지 않았다. 더 많은 경찰과 사진기자와 신문기자 말고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집사가 울프심의 답장을 가져왔을 때, 나는 반항심 같은 것을, 그들 모두에 맞서 개츠비와 내가 한편이라는 경멸 섞인 연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캐러웨이 씨. 이건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충격 가운데 하나라서 이게 사실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소. 그 남자가 저지른 그런 미친 짓은 우리 모두를 생각하게 만들어야 하오. 나는 지금 아주 중요한 사업에 묶여 있어서 지금은 내려갈 수가 없고 지금 이 일에 얽혀 들 수가 없소. 조금 뒤에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에드거 편에 편지로 알려 주시오. 이런 일을 들으면 나는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완전히 넉다운이 되어 버리오.

당신의 진실한

마이어 울프심

그리고 그 밑에 서둘러 덧붙인 말.

장례식 같은 거 알려 주시오 그 사람 가족은 전혀 모르오.

그날 오후 전화가 울리고 장거리 교환원이 시카고에서 온 전화라고 했을 때, 나는 마침내 데이지인 줄 알았다. 그러나 연결된 것은 아주 가늘고 먼 남자의 목소리였다.

"슬레이글인데…"

"네?" 낯선 이름이었다.

"거참 큰일이야, 안 그래? 내 전보 받았어?"

"전보 같은 건 안 왔는데요."

"파크 녀석이 걸렸어." 그가 빠르게 말했다. "창구에 채권을 내밀다가 붙잡혔다고. 딱 오 분 전에 뉴욕에서 번호 적힌 회람이 내려왔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응? 이런 촌구석에선 도무지 알 수가 없다니까—"

"여보세요!" 내가 숨 가쁘게 말을 끊었다. "이봐요—여긴 개츠비 씨가 아니에요. 개츠비 씨는 죽었어요."

전화선 저편에서 긴 침묵이 흘렀고, 외마디 소리가 이어지더니… 연결이 끊기며 짧게 꽥 하는 소리가 났다.

* * *

사흘째 되던 날이었던 것 같다. 미네소타의 어느 마을에서 헨리 C. 개츠라는 이름으로 전보가 왔다. 곧바로 떠나니 자기가 갈 때까지 장례식을 미뤄 달라는 말뿐이었다.

개츠비의 아버지였다. 엄숙한 노인이었고, 몹시 무력하고 당황해 있었으며, 따뜻한 9월 날씨에 싸구려 긴 외투를 껴입고 있었다. 흥분으로 눈에서 끊임없이 물이 새어 나왔고, 내가 그의 손에서 가방과 우산을 받자 성긴 잿빛 수염을 어찌나 쉴 새 없이 잡아당기는지 외투를 벗기기가 힘들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서, 나는 그를 음악실로 데려가 앉히고 먹을 것을 가져오게 했다. 그러나 그는 먹으려 하지 않았고, 떨리는 손에서 우유 잔이 엎질러졌다.

"시카고 신문에서 봤소." 그가 말했다. "시카고 신문에 다 났더군. 곧바로 출발했지."

"어떻게 연락을 드려야 할지 몰랐습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그의 눈이 쉴 새 없이 방 안을 돌았다.

"미치광이 짓이었어." 그가 말했다. "미친 사람이었을 거야."

"커피라도 좀 드시겠어요?" 내가 권했다.

"아무것도 싫소. 이제 괜찮소, 음—"

"캐러웨이입니다."

"그래, 이제 괜찮소. 지미를 어디다 뒀소?"

나는 그를 아들이 누워 있는 응접실로 데려가 그곳에 두고 나왔다. 꼬마 몇이 계단까지 올라와 현관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누가 왔는지 말해 주자 마지못해 흩어졌다.

조금 뒤 개츠 씨가 문을 열고 나왔다. 입은 조금 벌어져 있었고, 얼굴은 살짝 붉었으며, 눈에서는 띄엄띄엄 제때를 모르는 눈물이 새어 나왔다. 그는 죽음이 더는 소름 끼치는 놀라움이 아닌 나이에 이르러 있었다. 그리고 이제 처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현관의 높이와 화려함, 그리고 거기서 다른 방들로 이어져 열린 커다란 방들을 보자, 그의 슬픔에 경외 어린 자부심이 섞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부축해 위층 침실로 데려갔다. 그가 외투와 조끼를 벗는 동안, 나는 그가 올 때까지 모든 준비를 미뤄 두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시길 원하는지 몰라서요, 개츠비 씨—"

"내 이름은 개츠요."

"—개츠 씨. 시신을 서부로 모셔 가시고 싶으실 것 같아서요."

그가 고개를 저었다.

"지미는 늘 동부를 더 좋아했소. 동부에서 제 자리까지 올라왔으니까. 우리 아이 친구였소, 음—?"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그 애 앞에는 큰 앞날이 있었소. 아직 젊었지만 여기에 머리가 아주 좋았거든."

그가 인상 깊게 제 머리를 짚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았더라면 큰 인물이 됐을 거요. 제임스 J. 힐 같은 사람이. 나라를 일으키는 데 한몫했을 거요."

"그렇지요." 내가 거북하게 말했다.

그는 수놓은 침대보를 걷어 내려고 더듬거리다가 뻣뻣하게 누웠고—곧바로 잠이 들었다.

그날 밤 누군가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와서는, 제 이름을 대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부터 알아야겠다고 했다.

"캐러웨이입니다." 내가 말했다.

"아!" 그가 안도하는 것 같았다. "클립스프링어입니다."

나도 안도했다. 개츠비의 무덤가에 친구가 하나 더 설 것 같았으니까. 신문에 나서 구경꾼들이 몰려드는 건 싫었기 때문에, 나는 몇 사람에게 직접 전화를 걸고 있던 참이었다. 그들은 찾기가 어려웠다.

"장례식이 내일입니다." 내가 말했다. "세 시, 여기 이 집에서요. 올 만한 사람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

"아, 그러지요." 그가 서둘러 말했다. "물론 제가 누굴 만날 일은 별로 없겠지만, 만나게 되면요."

그의 말투가 수상했다.

"물론 당신은 오시겠지요."

"글쎄요, 꼭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전화 드린 건—"

"잠깐만요." 내가 말을 끊었다. "온다고 말씀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글쎄요, 사실은—사실을 말씀드리면 제가 여기 그리니치에서 어떤 분들 댁에 머물고 있는데, 그분들이 내일 제가 같이 있기를 좀 바라셔서요. 실은 소풍인가 뭔가가 있거든요. 물론 빠져나가려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참지 못하고 "허!" 하고 내뱉었는데, 그가 들은 게 틀림없었다. 그는 초조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전화 드린 건 거기 두고 온 신발 한 켤레 때문인데요. 집사한테 보내 달라고 하면 너무 번거로울까요? 그게, 테니스화라서, 그게 없으면 제가 좀 곤란하거든요. 주소는 B. F. 씨 댁으로—"

나머지 이름은 듣지 못했다. 수화기를 내려놓았으니까.

그 뒤로 나는 개츠비에게 어떤 부끄러움을 느꼈다—전화를 건 한 신사는 그가 받을 만한 벌을 받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나 그건 내 잘못이었다. 그는 개츠비의 술기운을 빌려 누구보다 신랄하게 개츠비를 비웃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고,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지 말았어야 했다.

장례식 날 아침 나는 마이어 울프심을 만나러 뉴욕에 올라갔다. 달리 그에게 닿을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승강기 소년이 일러 준 대로 밀어 연 문에는 「스와스티카 지주 회사」라고 적혀 있었고, 처음에는 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헛되이 "계세요" 하고 몇 번 외치자 칸막이 뒤에서 말다툼이 벌어졌고, 이윽고 아름다운 유대인 여자 하나가 안쪽 문에 나타나 적의 어린 검은 눈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아무도 없어요." 그가 말했다. "울프심 씨는 시카고에 가셨어요."

앞의 말은 분명히 거짓이었다. 안에서 누군가가 음정도 없이 「묵주」를 휘파람으로 불기 시작했으니까.

"캐러웨이가 뵙고 싶어 한다고 전해 주세요."

"시카고에서 그분을 불러올 수는 없잖아요?"

그때 틀림없는 울프심의 목소리가 문 저편에서 "스텔라!" 하고 불렀다.

"책상에 이름을 남겨 두세요." 그가 얼른 말했다. "돌아오시면 전해 드릴게요."

"그런데 저 안에 계신 걸 아는데요."

그가 나에게 한 걸음 다가서더니 분개한 듯 두 손으로 엉덩이를 오르내리며 쓸기 시작했다.

"당신네 젊은 사람들은 아무 때나 여기 밀고 들어올 수 있는 줄 알죠." 그가 나무랐다. "우린 이제 지긋지긋해요. 시카고에 계신다면 시카고에 계신 거예요."

나는 개츠비의 이름을 댔다.

"아—아!" 그가 나를 다시 훑어보았다. "잠깐만—성함이 뭐라고 하셨죠?"

그가 사라졌다. 잠시 뒤 마이어 울프심이 문간에 엄숙하게 서서 두 손을 내밀었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슬픈 때라고 경건한 목소리로 말하며 나를 제 사무실로 끌어들이고 시가를 권했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오." 그가 말했다. "군대에서 갓 나온 젊은 소령이었지, 전쟁에서 받은 훈장을 잔뜩 달고. 어찌나 궁했던지 평상복을 살 돈이 없어서 군복을 계속 입고 다녀야 했소. 처음 본 건 그 친구가 43번가 와인브레너 당구장에 들어와서 일자리를 달라고 했을 때였소. 이틀인가 아무것도 못 먹었더군. '이리 와서 나랑 점심이나 먹세.' 내가 그랬지. 삼십 분 만에 사 달러어치가 넘게 먹어 치웠소."

"그분이 사업을 시작하게 해 주셨나요?" 내가 물었다.

"시작하게 해 줘? 내가 만들었지."

"아."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궁창에서 곧장 끌어올렸소. 보자마자 보기 좋고 신사다운 젊은이라는 걸 알았고, 옥쓰퍼드에 다녔다는 말을 듣고는 요긴하게 쓸 수 있겠다 싶었지. 재향군인회에 들게 했더니 거기서 꽤 높이 섰소. 곧바로 올버니에 있는 내 고객 하나를 위해 일을 좀 했고. 우리는 모든 일에서 이렇게 붙어 다녔소"—그가 뭉툭한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다—"늘 같이."

그 동업에 1919년 월드시리즈 거래도 들어 있었는지 궁금했다.

"이제 그분은 돌아가셨습니다." 잠시 뒤 내가 말했다. "가장 가까운 친구셨으니 오늘 오후 장례식에 오고 싶으시겠지요."

"가고 싶소."

"그럼 오세요."

그의 콧구멍의 털이 조금 떨렸고, 고개를 저으면서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못 가오—이 일에 얽혀 들 수가 없소." 그가 말했다.

"얽혀 들 게 없어요. 이제 다 끝났으니까요."

"사람이 살해당하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얽히는 게 싫소. 발을 빼지. 젊었을 때는 달랐소—친구가 죽으면, 어떻게 죽었든 끝까지 곁을 지켰지. 감상적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진심이오—쓰디쓴 끝까지."

그가 무슨 제 나름의 까닭으로 오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일어섰다.

"대학 나왔소?" 그가 불쑥 물었다.

잠깐 그가 「연쭐」을 제안하려는 줄 알았지만, 그는 고개만 끄덕이고 내 손을 잡아 흔들었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우정을 보여 주는 법을 배웁시다. 죽은 뒤가 아니라." 그가 넌지시 말했다. "그다음은 모든 걸 내버려 두는 게 내 원칙이오."

그의 사무실을 나섰을 때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고, 나는 이슬비 속에 웨스트에그로 돌아왔다. 옷을 갈아입고 옆집으로 건너가 보니 개츠 씨가 들뜬 걸음으로 현관 복도를 오가고 있었다. 아들과 아들의 소유물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끊임없이 커지고 있었고, 이제 그는 나에게 보여 줄 것이 있었다.

"지미가 이 사진을 보내 줬소." 그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지갑을 꺼냈다. "이것 좀 보시오."

모서리에 금이 가고 여러 사람 손을 타서 더러워진 그 집의 사진이었다. 그는 신이 나서 구석구석을 짚어 보였다. "이것 좀 보시오!" 그러고는 내 눈에서 감탄을 찾았다. 하도 여러 번 보여 줘서 이제 그에게는 그 집 자체보다 사진이 더 진짜 같았던 것 같다.

"지미가 보내 줬소. 아주 예쁜 사진 같소. 잘 나왔지."

"아주 잘 나왔네요. 최근에 그분을 만나셨나요?"

"두 해 전에 나를 보러 와서 지금 내가 사는 집을 사 줬소. 물론 그 애가 집을 뛰쳐나갔을 때는 우리가 갈라섰지만, 이제 보니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던 거요. 제 앞에 큰 앞날이 있다는 걸 알았던 거지. 그리고 성공한 뒤로는 나한테 아주 후했소."

그는 사진을 넣고 싶지 않은 듯 아쉬운 얼굴로 일 분쯤 더 내 눈앞에 들고 있었다. 그러다 지갑을 도로 넣고, 주머니에서 너덜너덜한 낡은 책 한 권을 꺼냈다. 「호팔롱 캐시디」라는 책이었다.

"이것 좀 보시오. 그 애가 어릴 때 가지고 있던 책이오. 이걸 보면 알 거요."

그는 뒤표지를 펼쳐 내가 볼 수 있게 돌렸다. 마지막 면지에 「일과표」라는 글자와 1906년 9월 12일이라는 날짜가 인쇄체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기상 오전 6:00
아령 운동과 담 오르기 6:15–6:30
전기 등 공부 7:15–8:15
일 8:30–오후 4:30
야구와 운동 4:30–5:00
화술과 몸가짐 연습, 그리고 그것을 익히는 법 5:00–6:00
필요한 발명 연구 7:00–9:00

전반적인 결심

* 섀프터네나 [알아볼 수 없는 이름] 집에서 시간 낭비 하지 않기

* 담배도 씹는담배도 그만

* 하루걸러 목욕

* 한 주에 유익한 책이나 잡지 한 권 읽기

* 한 주에 5달러 [지우고] 3달러 저금

* 부모님께 더 잘하기

"우연히 이 책을 찾았소." 노인이 말했다. "이걸 보면 알 거요, 안 그렇소?"

"보면 알겠네요."

"지미는 앞서 나갈 수밖에 없었소. 늘 이런 결심 같은 걸 세웠지. 정신을 가다듬는 거에 대해 적어 둔 것 보이시오? 그런 데는 늘 대단했소. 한번은 나더러 돼지처럼 먹는다고 해서 내가 때려 줬소."

그는 책을 덮기 싫어하며 한 줄씩 소리 내어 읽고는 들뜬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그 목록을 베껴서 나도 써먹기를 은근히 바라는 것 같았다.

세 시 조금 전에 플러싱에서 루터교 목사가 왔고, 나는 저도 모르게 창밖으로 다른 차들이 오는지 내다보기 시작했다. 개츠비의 아버지도 그랬다. 시간이 흐르고 하인들이 들어와 현관 복도에 서서 기다리자, 그의 눈이 불안하게 깜박이기 시작했고, 그는 걱정스럽고 자신 없는 투로 비 이야기를 했다. 목사가 몇 번이나 시계를 흘끗거려서, 나는 그를 한쪽으로 데려가 삼십 분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 * *

다섯 시쯤 차 세 대로 이루어진 우리 행렬이 묘지에 이르러 짙은 이슬비 속에 대문 옆에 섰다—맨 앞에는 끔찍하게 검고 젖은 영구차, 그다음에는 개츠 씨와 목사와 내가 탄 리무진, 조금 뒤에는 하인 너덧과 웨스트에그의 우편배달부가 개츠비의 왜건을 타고 왔는데 모두 속옷까지 젖어 있었다. 우리가 대문을 지나 묘지로 들어서기 시작할 때 차 한 대가 서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 질척한 땅 위로 물을 튀기며 우리 뒤를 따라오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았다. 석 달 전 어느 밤 서재에서 개츠비의 책들에 감탄하던, 올빼미 눈 안경을 쓴 그 남자였다.

그 뒤로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어떻게 장례식을 알았는지, 아니 그의 이름조차 나는 모른다. 빗물이 그의 두꺼운 안경 위로 흘러내렸고, 그는 개츠비의 무덤에서 걷어 내는 방수포를 보려고 안경을 벗어 닦았다.

그때 나는 잠시 개츠비를 생각해 보려 했지만 그는 이미 너무 멀리 있었고, 나는 데이지가 전갈도 꽃도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원망 없이 떠올릴 수 있었다. 누군가 "비를 맞는 죽은 이는 복되도다" 하고 웅얼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고, 이어서 올빼미 눈의 남자가 용감한 목소리로 "아멘" 하고 말했다.

우리는 빗속을 서둘러 뿔뿔이 차로 내려왔다. 대문 옆에서 올빼미 눈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집에는 못 갔소." 그가 말했다.

"아무도 못 왔어요."

"설마!" 그가 흠칫했다. "아니, 세상에! 거기엔 수백 명씩 드나들었는데."

그는 안경을 벗어 다시 안팎을 닦았다.

"가엾은 녀석." 그가 말했다.

* * *

내가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예비 학교에서, 나중에는 대학에서 크리스마스 무렵 서부로 돌아가던 일이다. 시카고보다 더 멀리 가는 사람들은 12월 저녁 여섯 시 어둑하고 낡은 유니언역에 모였고, 벌써 제 휴일의 즐거움에 들뜬 시카고 친구 몇이 서둘러 작별 인사를 하러 나왔다. 무슨무슨 양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가씨들의 모피 코트가, 얼어붙은 입김 속의 수다가, 오랜 친구들을 알아보고 머리 위로 흔들던 손들이, 초대를 서로 맞춰 보던 말들이 기억난다. "오드웨이네 가? 허시네? 슐츠네?" 그리고 장갑 낀 손에 꼭 쥔 기다란 초록 차표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찰구 옆 선로 위에서 크리스마스 그 자체만큼이나 명랑해 보이던 시카고·밀워키·세인트폴 철도의 거무스름한 노란 객차들.

기차가 겨울밤 속으로 빠져나가고 진짜 눈이, 우리의 눈이 곁으로 펼쳐지며 창에 반짝이기 시작하고 위스콘신의 작은 역들의 흐릿한 불빛이 지나가면, 날카롭고 거친 상쾌함이 문득 공기 속에 찾아왔다. 우리는 식당차에서 돌아오며 차가운 승강구를 지날 때 그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고, 이상한 한 시간 동안 이 땅과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말로 할 수 없이 느끼다가, 다시 그 속으로 구분할 수 없이 녹아들었다.

그것이 나의 중서부다—밀밭이나 대초원이나 잃어버린 스웨덴 사람들의 마을이 아니라, 내 젊은 날의 가슴 뛰던 귀향 열차와, 서리 내린 어둠 속의 가로등과 썰매 방울 소리와, 불 켜진 창이 눈 위에 드리우던 호랑가시나무 화환의 그림자. 나는 그것의 일부다. 그 긴 겨울의 느낌 때문에 조금 엄숙하고, 집들이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한 집안의 성으로 불리는 도시의 캐러웨이가에서 자라서 조금 자족적인. 이제 보니 이것은 결국 서부의 이야기였다—톰과 개츠비, 데이지와 조던과 나는 모두 서부 사람이었고, 어쩌면 우리는 동부의 삶에 미묘하게 적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어떤 결함을 함께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동부가 나를 가장 설레게 했을 때에도, 오하이오강 너머의 지루하고 제멋대로 퍼지고 부풀어 오른 마을들보다 동부가 낫다는 것을 가장 날카롭게 느꼈을 때에도—어린아이와 아주 늙은이만 빼고 모두를 끝없이 캐묻는 그 마을들보다—그때에도 동부에는 나에게 늘 어딘가 뒤틀린 기운이 있었다. 특히 웨스트에그는 아직도 내 더 환상적인 꿈에 나온다. 나는 그것을 엘 그레코가 그린 밤 풍경처럼 본다. 판에 박히면서도 기괴한 집 백 채가 뚱하게 드리운 하늘과 빛 없는 달 아래 웅크리고 있다. 앞쪽에서는 예복을 입은 엄숙한 남자 넷이 들것을 들고 보도를 걸어가는데, 들것 위에는 흰 야회복을 입은 술 취한 여자가 누워 있다. 들것 옆으로 늘어진 그의 손이 보석으로 차갑게 반짝인다. 남자들이 엄숙하게 어느 집으로 꺾어 든다—엉뚱한 집으로. 그러나 아무도 그 여자의 이름을 모르고,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개츠비가 죽은 뒤 동부는 나에게 그렇게 유령이 들린 곳이 되었다. 내 눈으로는 바로잡을 수 없을 만큼 뒤틀린 곳이. 그래서 부서지기 쉬운 낙엽의 푸른 연기가 공기에 떠돌고 바람이 빨랫줄의 젖은 빨래를 뻣뻣하게 불어 말릴 무렵,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떠나기 전에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어색하고 불쾌한, 어쩌면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나았을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을 정돈해 두고 떠나고 싶었지, 그 친절하고 무심한 바다가 내 쓰레기를 쓸어 가 주리라고 그냥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조던 베이커를 만나 우리 둘에게 일어난 일과 그 뒤 나에게 일어난 일을 이리저리 에둘러 이야기했고, 그는 커다란 의자에 꼼짝도 않고 누운 채 듣고 있었다.

그는 골프를 치러 갈 차림이었고, 나는 그가 멋진 삽화 같다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한다. 턱을 조금 경쾌하게 들고, 머리칼은 가을 잎 빛깔이고, 얼굴은 무릎 위에 놓인 손가락 없는 장갑과 같은 갈색이었다. 내가 이야기를 마치자 그는 아무 말 없이 다른 남자와 약혼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의심했다. 고개 한 번 끄덕이면 결혼할 수 있는 남자가 여럿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는 놀란 척했다. 잠깐 내가 실수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이내 모든 걸 다시 빠르게 되짚어 보고 작별 인사를 하려고 일어섰다.

"그래도 당신이 나를 찬 거예요." 조던이 불쑥 말했다. "전화로 나를 찼잖아요. 이제 당신 따위 조금도 신경 안 쓰지만, 그건 나한테 처음 겪는 일이라 한동안 좀 어지러웠어요."

우리는 악수를 했다.

"아, 그리고 기억나요?"—그가 덧붙였다—"우리가 한번 자동차 운전에 대해 이야기했던 거?"

"글쎄요—정확히는 모르겠네요."

"운전이 서툰 사람은 다른 서툰 운전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안전하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내가 다른 서툰 운전자를 만났죠, 안 그래요? 내 말은, 그렇게 잘못 짐작한 게 조심성 없었다는 거예요. 나는 당신이 꽤 정직하고 올곧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게 당신의 은밀한 자부심인 줄 알았다고요."

"나는 서른이에요." 내가 말했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걸 명예라고 부르기에는 다섯 살쯤 너무 늙었어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화가 나고, 그를 반쯤 사랑하고, 지독히 미안한 채로 나는 돌아섰다.

* * *

10월 말의 어느 오후 나는 톰 뷰캐넌을 보았다. 그는 오번가를 따라 내 앞에서 걷고 있었다. 방해를 물리치려는 듯 두 손을 몸에서 조금 떼고, 안절부절못하는 눈을 따라 고개를 이리저리 날카롭게 돌리며, 그 기민하고 공격적인 걸음으로. 내가 앞지르지 않으려고 걸음을 늦춘 바로 그때, 그가 멈춰 서서 보석 가게 진열창을 찡그린 얼굴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문득 그가 나를 보더니 손을 내밀며 되돌아왔다.

"왜 그러나, 닉? 나하고 악수하기 싫은가?"

"그래. 내가 자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잖나."

"자네 미쳤군, 닉." 그가 얼른 말했다. "완전히 미쳤어. 자네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톰," 내가 물었다. "그날 오후 윌슨한테 뭐라고 했나?"

그는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그 사라진 세 시간에 대한 내 짐작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돌아서려 하자 그가 한 걸음 따라와 내 팔을 붙잡았다.

"사실대로 말해 줬지." 그가 말했다. "우리가 떠날 채비를 하는데 그 친구가 문 앞에 왔어. 집에 없다고 전하라고 했더니 억지로 위층까지 밀고 올라오려고 하더군. 차 주인이 누군지 말해 주지 않았으면 나를 죽이고도 남을 만큼 미쳐 있었어. 집 안에 있는 내내 손을 주머니 속 권총에 대고 있었다고—" 그가 도전하듯 말을 끊었다. "내가 말해 줬으면 어쩔 건데? 그 작자는 그래도 쌌어. 데이지 눈에 먼지를 뿌렸듯이 자네 눈에도 먼지를 뿌렸지만, 그 작자는 독한 놈이었어. 개를 치듯 머틀을 치고 차도 안 세웠잖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말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사실 말고는.

"그리고 내가 괴로워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들어 보게, 그 아파트를 정리하러 갔을 때 찬장 위에 그 빌어먹을 개 비스킷 상자가 놓여 있는 걸 보고 나는 주저앉아서 아기처럼 울었어. 맙소사, 끔찍했지—"

나는 그를 용서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었지만, 그가 한 일이 그에게는 온전히 정당하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이 너무나 조심성 없고 뒤죽박죽이었다. 그들은 조심성 없는 사람들이었다, 톰과 데이지는—그들은 물건이든 생명이든 부숴 놓고는 제 돈 속으로, 제 광대한 무심함 속으로, 아니면 무엇이든 그들을 한데 묶어 두는 것 속으로 물러나서, 자기들이 어질러 놓은 것을 남들이 치우게 내버려 두었다…

나는 그와 악수했다. 안 하는 게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문득 어린애와 이야기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러고 나서 그는 진주 목걸이를—아니면 소맷단추 한 쌍을—사러 보석 가게로 들어갔다. 내 시골뜨기 결벽에서 영원히 벗어난 채로.

* * *

내가 떠날 때 개츠비의 집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그의 잔디밭 풀이 내 잔디만큼 길게 자라 있었다. 마을의 택시 기사 하나는 손님을 태우고 그 집 대문 앞을 지날 때면 꼭 잠깐 멈춰 서서 안을 가리켰다. 어쩌면 사고가 난 날 밤 데이지와 개츠비를 이스트에그까지 태워다 준 사람이 그였고, 그 일로 저만의 이야기를 지어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고, 기차에서 내리면 그를 피했다.

나는 토요일 밤이면 뉴욕에서 지냈다. 그의 번쩍이고 눈부신 파티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 그의 정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끊임없이, 그리고 그의 진입로를 오르내리는 차 소리가 아직도 들렸기 때문이다. 어느 밤에는 실제로 차 한 대가 거기 오는 소리를 들었고, 그 불빛이 그의 현관 계단 앞에서 멈추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알아보러 가지 않았다. 아마 세상 끝 어딘가에 가 있다가 파티가 끝났다는 것을 모른 채 온 마지막 손님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밤, 트렁크를 싸고 차를 식료품 가게 주인에게 판 뒤, 나는 건너가서 그 거대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실패작 같은 집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흰 계단 위에 어느 사내아이가 벽돌 조각으로 휘갈겨 쓴 상스러운 낱말 하나가 달빛 속에 또렷이 드러나 있었고, 나는 신발로 돌 위를 긁어 그것을 지웠다. 그러고는 바닷가로 어슬렁어슬렁 내려가 모래 위에 큰대자로 누웠다.

바닷가의 커다란 저택들은 이제 대부분 문을 닫았고, 해협 건너 흐릿하게 움직이는 나룻배 불빛 말고는 불빛이라고 할 것이 거의 없었다. 달이 더 높이 떠오르자 하찮은 집들이 녹아 사라지기 시작했고, 나는 차츰 한때 네덜란드 뱃사람들의 눈앞에 꽃처럼 피어났던 옛 섬을 알아보게 되었다—신세계의 싱그러운 초록 젖가슴을. 이제는 사라진 그 나무들, 개츠비의 집에 자리를 내준 그 나무들이 한때 인간의 모든 꿈 가운데 마지막이자 가장 위대한 꿈에 속삭이며 영합했던 것이다. 덧없는 마법의 한순간, 인간은 이 대륙 앞에서 숨을 죽였을 것이다. 이해하지도 바라지도 않은 미적 관조에 사로잡혀, 역사상 마지막으로 제 경이의 능력에 걸맞은 무언가와 얼굴을 마주한 채.

그리고 거기 앉아 그 오래된 미지의 세계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는 개츠비가 데이지의 부두 끝에서 처음 초록 불빛을 찾아냈을 때의 경이를 생각했다. 그는 이 푸른 잔디밭까지 먼 길을 왔고, 그의 꿈은 붙잡지 못할 리가 없을 만큼 가까워 보였을 것이다. 그는 몰랐다. 그 꿈이 이미 그의 뒤에, 도시 너머의 저 광대한 어둠 속 어딘가에, 공화국의 어두운 들판이 밤 아래 굽이치며 펼쳐지는 그곳에 있다는 것을.

개츠비는 초록 불빛을 믿었다. 해마다 우리 앞에서 뒷걸음질 쳐 멀어지는, 황홀한 미래를. 그때는 그것이 우리를 비켜 갔지만, 상관없다—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릴 것이고,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맑은 아침—

그렇게 우리는 노를 저어 간다. 물살을 거스르는 배처럼, 쉼 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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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