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
太宰治 — 斜陽 (1947)
전쟁이 끝난 해 겨울, 몰락한 화족 집안의 어머니와 딸 가즈코는 도쿄의 집을 팔고 이즈의 산장으로 옮겨 온다. 「일본의 마지막 귀부인」인 어머니는 날로 쇠약해지고, 남방에서 돌아온 동생 나오지는 술에 빠져 산다. 가즈코는 사랑과 혁명을 위해 살겠다고 마음먹는다. 다자이 오사무가 1947년에 쓴, 지는 해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1장
아침에 식당에서 수프를 한 숟가락 살짝 떠 드시던 어머니가
"아."
하고 희미한 소리를 내셨다.
"머리카락이에요?"
수프에 무언가 싫은 것이라도 들어 있었나 했다.
"아니."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사뿐히 한 숟가락 수프를 입에 흘려 넣으시고는, 새침하게 얼굴을 옆으로 돌려 부엌 창밖의 활짝 핀 산벚나무에 눈길을 보내셨다. 그리고 얼굴을 옆으로 돌린 채 또 사뿐히 한 숟가락, 수프를 작은 입술 사이로 미끄러지듯 넣으셨다. 사뿐히, 라는 말은 어머니의 경우 결코 과장이 아니다. 여성 잡지 같은 데 나오는 식사 예절과는 아예 딴판이시다. 언젠가 남동생 나오지가 술을 마시면서 누나인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작위가 있다고 귀족이라고 할 수는 없어. 작위가 없어도 하늘이 내린 작위라는 걸 지닌 훌륭한 귀족도 있고, 우리처럼 작위만 있어도 귀족은커녕 천민에 가까운 것들도 있어. 이와시마 같은 녀석은(하고 나오지는 동창인 백작의 이름을 대고) 그런 건 정말이지 신주쿠 유곽의 호객꾼보다 더 천박한 느낌이잖아. 저번에도 야나이(하고 역시 동생의 동창으로, 자작 집안 둘째 아들의 이름을 대고)네 형 결혼식에 그 자식이 턱시도 따위를 입고 왔는데, 대체 왜 턱시도를 입고 와야 하느냔 말이야. 그건 그렇다 치고, 축사 때 그 녀석이 「~하옵나이다」 하는 괴상한 말을 쓰는 데는 속이 다 메스껍더라. 점잔 빼는 건 품위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비루한 허세야. 혼고 근처엔 「고급 하숙」이라고 쓴 간판이 흔했지만, 실은 화족이라는 것들 대부분이 「고급 거지」쯤 되는 거야. 진짜 귀족은 이와시마 같은 서툰 잘난 척은 안 해. 우리 집안에서도 진짜 귀족은, 뭐, 엄마 정도겠지. 엄마는 진짜야. 당해 낼 수 없는 데가 있어."
수프 드시는 법만 해도 그렇다. 우리 같으면 접시 위로 조금 고개를 숙이고 숟가락을 옆으로 들어 수프를 떠서, 숟가락을 옆으로 한 채 입가로 가져가 먹는다. 그런데 어머니는 왼손 손가락을 가볍게 식탁 가장자리에 걸치고, 윗몸을 숙이지도 않고 얼굴을 꼿꼿이 든 채 접시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숟가락을 옆으로 해서 휙 뜨신다. 그러고는 제비처럼, 이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가볍고 산뜻하게 숟가락을 입과 직각이 되게 가져가 숟가락 끝으로 수프를 입술 사이에 흘려 넣으신다. 그리고 무심한 듯 이리저리 곁눈질까지 하시면서 사뿐사뿐, 마치 작은 날개처럼 숟가락을 다루시는데, 수프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시고, 들이마시는 소리도 접시 소리도 조금도 내지 않으신다. 그것은 이른바 정식 예법에 맞는 먹음새는 아닐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무척 사랑스럽고, 그야말로 진짜처럼 보인다. 또 실제로 마실 것은 입에 흘려 넣듯이 먹는 편이 이상하리만치 맛있다. 하지만 나는 나오지 말대로 고급 거지라서 어머니처럼 그렇게 가볍고 아무렇지 않게 숟가락을 놀리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체념하고 접시 위로 고개를 숙여 이른바 정식 예법대로 우중충하게 먹고 있는 것이다.
수프뿐 아니라 어머니의 식사법은 몹시 예법에서 벗어나 있다. 고기가 나오면 나이프와 포크로 얼른 다 잘게 썰어 놓고는 나이프를 내려놓고 포크를 오른손으로 바꿔 쥐고, 한 조각 한 조각 포크로 찍어 천천히 즐겁게 드신다. 또 뼈가 붙은 닭고기 같은 것은, 우리가 접시 소리를 내지 않고 뼈에서 살을 떼어 내느라 애쓰고 있을 때,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손끝으로 뼈를 쏙 집어 들어 입으로 뼈와 살을 발라내시고는 새침하게 계신다. 그런 야만스러운 몸짓도 어머니가 하시면 사랑스러울 뿐 아니라 묘하게 에로틱해 보이기까지 하니, 역시 진짜는 다르다. 뼈 붙은 닭고기뿐 아니라 어머니는 점심 반찬으로 나온 햄이나 소시지도 손끝으로 쏙 집어 드실 때가 가끔 있다.
"주먹밥이 왜 맛있는지 아니? 그건 말이야, 사람 손가락으로 꼭꼭 쥐어 만들기 때문이란다."
하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
정말 손으로 먹으면 맛있겠다고 나도 생각할 때가 있지만, 나 같은 고급 거지가 어설프게 흉내 냈다가는 그야말로 진짜 거지 꼴이 될 것 같아 참고 있다.
남동생 나오지조차 엄마는 당해 낼 수 없다고 하지만, 정말이지 나도 어머니를 흉내 내기란 어려워서 절망 같은 것마저 느낄 때가 있다. 언젠가 니시카타마치 집 안뜰에서, 초가을 달이 좋은 밤이었는데, 나는 어머니와 둘이서 연못가 정자에서 달구경을 하며, 여우가 시집갈 때와 쥐가 시집갈 때 신부 채비가 어떻게 다른지 따위를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불쑥 일어나시더니 정자 곁의 싸리 덤불 안쪽으로 들어가셨다. 그러고는 싸리의 흰 꽃들 사이로 꽃보다 더 선명하게 흰 얼굴을 내미시고 살짝 웃으며
"가즈코야, 어머님께서 지금 무얼 하고 계신지 맞혀 보렴."
하고 말씀하셨다.
"꽃을 꺾고 계세요."
하고 말씀드렸더니 작은 소리로 웃으시며
"쉬하는 거야."
하고 말씀하셨다.
조금도 쪼그려 앉아 계시지 않은 데는 놀랐지만,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속속들이 사랑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오늘 아침 수프 이야기에서 꽤 옆길로 새 버렸지만, 얼마 전 어떤 책에서 루이 왕조 시절의 귀부인들이 궁전 뜰이나 복도 구석 같은 데서 아무렇지 않게 소변을 보았다는 걸 알고, 그 무심함이 정말 사랑스러워서, 우리 어머니도 그런 진짜 귀부인의 마지막 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수프를 한 숟가락 드시고 아, 하고 작은 소리를 내셔서, 머리카락이에요? 하고 여쭈었더니 아니, 하고 대답하셨다.
"짰나요?"
오늘 아침 수프는 얼마 전 미국에서 배급된 통조림 완두콩을 체에 걸러 내가 포타주처럼 만든 것인데, 원래 요리에는 자신이 없어서 어머니가 아니라고 하셨는데도 여전히 조마조마해서 그렇게 여쭈었다.
"잘 만들었구나."
어머니는 진지하게 그렇게 말씀하시고 수프를 다 드신 다음 김으로 싼 주먹밥을 손으로 집어 드셨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침밥이 맛이 없고 열 시쯤 되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서, 그때도 수프만은 그럭저럭 비웠지만 먹기가 귀찮았다. 주먹밥을 접시에 올려놓고 젓가락을 꽂아 뭉개 놓고는 그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 어머니가 수프를 드실 때의 숟가락처럼 젓가락을 입과 직각으로 해서 마치 새에게 모이를 주듯이 입에 밀어 넣으며 느릿느릿 먹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어머니는 벌써 식사를 다 마치시고 살그머니 일어나 아침 해가 드는 벽에 등을 기대시고, 한동안 말없이 내가 먹는 모양을 보고 계시다가
"가즈코는 아직 멀었구나. 아침밥이 제일 맛있어져야 하는데."
하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요? 맛있으세요?"
"그럼. 나는 환자가 아닌걸."
"가즈코도 환자 아니에요."
"안 돼, 안 돼."
어머니는 쓸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으셨다.
나는 오 년 전에 폐병이라고 해서 자리보전을 한 적이 있지만, 그건 응석 병이었다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얼마 전 어머니의 병환은, 그것이야말로 정말 걱정스럽고 슬픈 병환이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내 걱정만 하신다.
"아."
하고 내가 말했다.
"왜?"
하고 이번에는 어머니가 물으셨다.
얼굴을 마주 보며 무언가 다 통한 것을 느끼고 내가 우후후 웃자 어머니도 생긋 웃으셨다.
무언가 견딜 수 없이 부끄러운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 이상한, 아, 하는 희미한 소리가 나오는 법이다. 지금 내 가슴에 느닷없이 훅, 육 년 전 이혼할 때의 일이 선명하게 떠올라 견딜 수 없어서 나도 모르게 아, 하고 말해 버렸는데, 어머니의 경우는 어떨까. 설마 어머니께 나 같은 부끄러운 과거가 있을 리는 없고, 아니, 아니면 무언가가.
"어머니도 아까 무언가 생각나신 거죠? 무슨 일이에요?"
"잊어버렸어."
"제 일이요?"
"아니."
"나오지 일이요?"
"그래."
하고 말씀하시다가 고개를 갸웃하시고
"그런지도 모르지."
하고 말씀하셨다.
남동생 나오지는 대학 중간에 소집되어 남방의 섬으로 갔는데, 소식이 끊겨 종전이 되어도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이제 나오지를 만날 수 없다고 각오하고 있다고 하시지만, 나는 그런 「각오」 따위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꼭 만날 수 있으리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체념했다고 생각했는데, 맛있는 수프를 먹으니 나오지 생각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어. 나오지한테 더 잘해 줄걸."
나오지는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무렵부터 유난히 문학에 빠져 거의 불량소년 같은 생활을 시작해서, 어머니께 얼마나 고생을 끼쳤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수프를 한 숟가락 뜨실 때마다 나오지를 생각하며 아, 하신다. 나는 밥을 입에 밀어 넣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괜찮아요. 나오지는 괜찮아요. 나오지 같은 악당은 좀처럼 죽지 않아요. 죽는 사람은 으레 얌전하고 예쁘고 상냥한 사람이에요. 나오지 같은 건 몽둥이로 때려도 안 죽어요."
어머니는 웃으시며
"그럼 가즈코는 일찍 죽는 쪽이려나."
하고 나를 놀리셨다.
"어머, 왜요? 저 같은 건 이마 툭 튀어나온 악당이라 여든 살까지는 끄떡없어요."
"그래? 그럼 어머님은 아흔 살까지는 끄떡없겠구나."
"네."
하고 말하다가 조금 난처해졌다. 악당은 오래 산다. 예쁜 사람은 일찍 죽는다. 어머니는 예쁘시다. 하지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나는 몹시 허둥댔다.
"심술궂어!"
하고 말했더니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눈물이 눈에서 넘쳐 떨어졌다.
뱀 이야기를 할까. 그보다 너덧새 전 오후에 동네 아이들이 뜰 울타리의 대숲에서 뱀 알을 열 개쯤 찾아왔다.
아이들은
"살무사 알이다."
하고 우겼다. 나는 그 대숲에 살무사가 열 마리나 태어나면 마음 놓고 뜰에도 내려갈 수 없겠다 싶어서
"태워 버리자."
하고 말했더니 아이들은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면서 내 뒤를 따라왔다.
대숲 가까이에 나뭇잎과 섶을 쌓아 불을 붙이고, 그 불 속에 알을 하나씩 던져 넣었다. 알은 좀처럼 타지 않았다. 아이들이 나뭇잎과 잔가지를 불꽃 위에 더 얹어 불길을 세게 해도 알은 탈 것 같지 않았다.
아래 농가의 딸이 울타리 밖에서
"뭘 하고 계세요?"
하고 웃으며 물었다.
"살무사 알을 태우고 있어요. 살무사가 나오면 무섭잖아요."
"크기가 얼마나 돼요?"
"메추리알만 하고 새하얘요."
"그럼 그냥 뱀 알이에요. 살무사 알은 아닐 거예요. 날알은 좀처럼 타지 않아요."
그 처녀는 몹시 우습다는 듯 웃으며 가 버렸다.
삼십 분쯤 불을 때고 있었지만 아무리 해도 알이 타지 않아서, 아이들에게 알을 불 속에서 주워 매화나무 밑에 묻게 하고 나는 조약돌을 모아 묘비를 만들어 주었다.
"자, 다들 절하자."
내가 쪼그려 앉아 합장하자 아이들도 얌전히 내 뒤에 쪼그려 앉아 합장한 것 같았다. 그러고 아이들과 헤어져 나 혼자 돌계단을 천천히 올라오는데, 돌계단 위 등나무 시렁 그늘에 어머니가 서 계시다가
"가엾은 짓을 하는 사람이로구나."
하고 말씀하셨다.
"살무사인 줄 알았는데 그냥 뱀이었어요. 그래도 제대로 묻어 줬으니까 괜찮아요."
하고는 말했지만, 이거 어머니께 들켜서 좋지 않았구나 싶었다.
어머니는 결코 미신을 믿는 분이 아니지만, 십 년 전 아버지께서 니시카타마치 집에서 돌아가신 뒤로 뱀을 몹시 두려워하신다. 아버지께서 임종하시기 바로 전에 어머니가 아버지 머리맡에 가늘고 검은 끈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시고 무심코 주우려 하셨더니 그게 뱀이었다고 한다. 뱀은 스르르 달아나 복도로 나가더니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되었는데, 그걸 본 사람은 어머니와 와다 외삼촌 두 분뿐이었다. 두 분은 얼굴을 마주 보셨지만 임종을 지키는 방이 소란스러워지지 않도록 참고 잠자코 계셨다고 한다. 우리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래서 그 뱀 일은 조금도 몰랐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그날 저녁, 뜰의 연못가 나무라는 나무에 뱀이 올라가 있었던 것은 나도 실제로 보아서 안다. 나는 스물아홉 살 할망구니까 십 년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벌써 열아홉이었다. 이미 아이가 아니었으니 십 년이 지나도 그때 기억은 지금도 또렷해서 틀림없을 것이다. 내가 영전에 바칠 꽃을 꺾으러 뜰의 연못 쪽으로 걸어가 연못가의 철쭉 앞에 멈춰 서서 문득 보니, 그 철쭉 가지 끝에 작은 뱀이 감겨 있었다. 조금 놀라서 다음의 황매화 꽃가지를 꺾으려 하니 그 가지에도 감겨 있었다. 옆의 목서에도, 어린 단풍나무에도, 금작화에도, 등나무에도, 벚나무에도, 어느 나무에나, 어느 나무에나 뱀이 감겨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리 무섭지 않았다. 뱀도 나처럼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여 구멍에서 기어 나와 아버지의 넋에 절하고 있는 것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뜰의 뱀 이야기를 어머니께 살짝 알려 드렸는데, 어머니는 침착하게 고개를 조금 갸웃하시고 무언가 생각하시는 듯한 기색이었지만 별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뱀 사건이 그 뒤로 어머니를 몹시 뱀을 싫어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었다. 뱀을 싫어한다기보다는 뱀을 우러르고 두려워하는, 그러니까 외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신 것 같다.
뱀 알을 태운 걸 어머니께 들켰으니 어머니는 틀림없이 무언가 몹시 불길한 것을 느끼셨으리라 생각하니, 나도 갑자기 뱀 알을 태운 것이 무척 무서운 짓이었던 것 같아서, 이 일이 어쩌면 어머니께 나쁜 탈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고 또 걱정되어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식당에서 예쁜 사람은 일찍 죽는다는 둥 당치도 않은 말을 그만 내뱉어 버리고 나중에 도무지 둘러댈 수가 없어서 울어 버렸다. 아침 설거지를 하면서도 어쩐지 내 가슴 깊은 곳에 어머니의 목숨을 줄이는 기분 나쁜 작은 뱀 한 마리가 들어앉은 것만 같아 싫고 또 싫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뜰에서 뱀을 보았다. 그날은 무척 온화하고 좋은 날씨여서, 나는 부엌일을 마치고 뜰 잔디밭에 등나무 의자를 내다 놓고 거기서 뜨개질을 하려고 의자를 들고 뜰로 내려갔는데, 뜰 돌 곁의 조릿대 있는 데에 뱀이 있었다. 아이, 싫어. 나는 그저 그렇게 생각했을 뿐 더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의자를 들고 되돌아와 툇마루로 올라가서, 툇마루에 의자를 놓고 거기 앉아 뜨개질을 시작했다. 오후가 되어 뜰 구석의 사당 안쪽에 넣어 둔 장서 가운데서 로랑생 화집을 꺼내 오려고 뜰로 내려갔더니, 잔디 위를 뱀이 천천히 천천히 기어가고 있었다. 아침의 그 뱀이었다. 가늘고 기품 있는 뱀이었다. 나는 암뱀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잔디밭을 조용히 가로질러 들장미 그늘까지 가더니 멈춰 서서 고개를 들고 가는 불꽃 같은 혀를 떨었다. 그러고는 주위를 둘러보는 듯한 모습을 하다가, 얼마 뒤 고개를 떨어뜨리고 몹시 나른한 듯 웅크렸다. 나는 그때도 그저 아름다운 뱀이다, 하는 생각만 강했고, 이윽고 사당에 가서 화집을 꺼내 와서 돌아오는 길에 아까 뱀이 있던 곳을 살짝 보았지만 이제 없었다.
해 질 녘 가까이 어머니와 중국식 방에서 차를 마시며 뜰 쪽을 보고 있는데, 돌계단 셋째 단의 돌 위에 아침의 그 뱀이 다시 천천히 나타났다.
어머니도 그것을 보시고는
"저 뱀은?"
하고 말씀하시자마자 일어나 내게로 달려오셔서 내 손을 잡은 채 얼어붙은 듯 서 계셨다. 그 말씀에 나도 퍼뜩 짚이는 게 있어서
"알의 엄마예요?"
하고 입 밖에 내어 말해 버렸다.
"그래, 그래."
어머니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숨을 죽인 채 말없이 그 뱀을 지켜보았다. 돌 위에 나른하게 웅크리고 있던 뱀은 비틀거리듯 다시 움직이기 시작해, 힘없이 돌계단을 가로질러 붓꽃 쪽으로 기어 들어갔다.
"아침부터 뜰을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하고 내가 작은 소리로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털썩 의자에 주저앉으시고는
"그렇지? 알을 찾고 있는 거야. 가엾게도."
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할 수 없이 후후 웃었다.
석양이 어머니의 얼굴에 비쳐 어머니의 눈이 파랗게 보일 만큼 빛났고, 희미하게 노여움을 띤 듯한 그 얼굴은 와락 끌어안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리고 나는, 아아, 어머니의 얼굴은 아까 그 슬픈 뱀과 어딘가 닮으셨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가슴속에 사는 살무사처럼 울퉁불퉁하고 추한 뱀이, 슬픔이 깊고 아름답고 아름다운 이 어미 뱀을 언젠가 물어 죽여 버리지 않을까, 왠지,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의 부드럽고 가냘픈 어깨에 손을 얹고 까닭 모를 몸부림을 쳤다.
우리가 도쿄 니시카타마치의 집을 버리고 이즈의 이 조금 중국풍인 산장으로 이사 온 것은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한 해의 십이월 초였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로 우리 집 살림은 어머니의 남동생이자 지금은 어머니의 단 하나뿐인 혈육인 와다 외삼촌이 다 돌봐 주고 계셨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세상이 바뀌자, 와다 외삼촌이 이제는 안 되겠다, 집을 팔 수밖에 없다, 하녀들도 다 내보내고 모녀 둘이서 어디 시골의 아담한 집을 사서 마음 편히 사는 게 낫겠다고 어머니께 일러두신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돈 일은 아이보다 더 아무것도 모르는 분이시니, 와다 외삼촌에게서 그런 말을 듣고 그럼 잘 부탁한다고 맡겨 버리신 것 같았다.
십일월 말에 외삼촌에게서 속달이 왔다. 슨즈 철도 연선에 가와다 자작의 별장이 매물로 나와 있는데, 집은 높은 언덕에 있어 전망이 좋고 밭도 백 평쯤 있다, 그 근방은 매화 명소로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해서 살아 보면 틀림없이 마음에 드실 곳이다, 저쪽과 직접 만나 이야기하실 필요도 있을 것 같으니 내일 어쨌든 긴자의 내 사무실로 와 주시라, 하는 내용이었다.
"어머니, 가세요?"
하고 내가 묻자
"그야, 부탁해 두었으니까."
하고 몹시도 견딜 수 없이 쓸쓸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튿날 어머니는 예전 운전사였던 마쓰야마 씨에게 동행을 부탁해서 점심때가 조금 지나 나가셨고, 밤 여덟 시쯤 마쓰야마 씨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오셨다.
"정했어."
가즈코의 방에 들어오셔서 가즈코의 책상에 손을 짚고 그대로 무너지듯 앉으시더니 그 한마디를 하셨다.
"정했다니, 뭘요?"
"전부."
"그치만"
하고 나는 놀라서
"어떤 집인지 보지도 않고……."
어머니는 책상 위에 한쪽 팔꿈치를 세우고 이마에 가볍게 손을 대시고는 작게 한숨을 쉬시며
"와다 외삼촌이 좋은 곳이라고 하시잖니. 나는 이대로 눈을 감고 그 집으로 옮겨 가도 괜찮을 것 같아."
하고 말씀하시고는 얼굴을 들어 희미하게 웃으셨다. 그 얼굴은 조금 야위었고, 아름다웠다.
"그렇네요."
하고 나도 와다 외삼촌을 믿는 어머니의 마음이 아름다워서 그만 맞장구를 치고
"그럼 가즈코도 눈을 감을게요."
둘이서 소리 내어 웃었지만 웃고 난 뒤가 몹시 쓸쓸해졌다.
그 뒤로 날마다 집에 인부들이 와서 이삿짐 꾸리기가 시작되었다. 와다 외삼촌도 오셔서 팔 것은 팔도록 하나하나 손을 써 주셨다. 나는 하녀 오키미와 둘이서 옷가지를 정리하거나 잡동사니를 마당에서 태우거나 하며 바쁘게 지냈지만, 어머니는 정리를 조금도 거들지도 지시하지도 않으시고 날마다 방에서 그저 꾸물꾸물 계셨다.
"왜 그러세요? 이즈에 가기 싫어지셨어요?"
하고 마음먹고 조금 세게 여쭈어도
"아니."
하고 멍한 얼굴로 대답하실 뿐이었다.
열흘쯤 지나 정리가 끝났다. 저녁에 오키미와 둘이서 휴지며 짚을 마당에서 태우고 있으려니, 어머니도 방에서 나오셔서 툇마루에 서서 말없이 우리 모닥불을 보고 계셨다. 잿빛 같은 차가운 서풍이 불어 연기가 낮게 땅을 기었다. 나는 문득 어머니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어머니의 안색이 지금껏 본 적 없을 만큼 나쁜 데 깜짝 놀라
"어머니! 안색이 안 좋으세요."
하고 외치자 어머니는 엷게 웃으시며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말씀하시고 살그머니 다시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날 밤, 이불은 벌써 짐을 다 꾸려 버렸으므로 오키미는 이층 양실의 소파에서, 어머니와 나는 어머니 방에 이웃집에서 빌린 이불 한 채를 깔고 둘이 함께 잤다.
어머니는 어머, 싶을 만큼 늙고 힘없는 목소리로
"가즈코가 있으니까, 가즈코가 있어 주니까 나는 이즈로 가는 거야. 가즈코가 있어 주니까."
하고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나는 가슴이 철렁해서
"가즈코가 없었다면요?"
하고 나도 모르게 여쭈었다.
어머니는 갑자기 우시며
"죽는 게 나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 집에서 어머님도 죽어 버리고 싶어."
하고 띄엄띄엄 말씀하시고는 더욱 세차게 우셨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나에게 단 한 번도 이런 약한 소리를 하신 적이 없었고, 또 이렇게 세차게 우시는 모습을 나에게 보이신 적도 없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내가 시집갈 때도, 그리고 아기를 배에 품고 어머니께 돌아왔을 때도, 그리고 아기가 병원에서 죽어서 태어났을 때도, 그리고 내가 병이 나서 자리보전을 했을 때도, 또 나오지가 나쁜 짓을 했을 때도, 어머니는 결코 이런 약한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십 년 동안 어머니는 아버지 생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느긋하고 상냥한 어머니였다. 그리고 우리도 그런 어머니께 마냥 응석을 부리며 자라 왔다. 하지만 어머니께는 이제 돈이 없어져 버렸다. 모두 우리를 위해, 나와 나오지를 위해 조금도 아끼지 않고 다 써 버리신 것이다. 그리고 이제 오랫동안 살아 정든 이 집에서 나가, 이즈의 작은 산장에서 나와 단둘이 쓸쓸한 생활을 시작해야 하게 되었다. 만약 어머니가 심술궂고 인색해서 우리를 꾸짖고, 몰래 당신 돈만 불릴 궁리를 하시는 분이었다면,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이렇게 죽고 싶어지는 심정이 되시지는 않았을 텐데. 아아, 돈이 없어진다는 건 얼마나 무섭고 비참하고 구원 없는 지옥인가, 하고 태어나 처음 깨달은 심정으로 가슴이 벅차서, 너무 괴로워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었다. 인생의 엄숙함이란 이런 때의 느낌을 말하는 것일까. 꼼짝도 할 수 없는 심정으로 반듯이 누운 채 나는 돌처럼 가만히 있었다.
이튿날도 어머니는 역시 안색이 나쁘셨고, 여전히 무언가 꾸물거리며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이 집에 계시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와다 외삼촌이 오셔서, 짐은 이제 거의 다 부쳤으니 오늘 이즈로 출발한다고 이르셨으므로, 어머니는 마지못해 코트를 입으시고, 작별 인사를 드리는 오키미와 드나들던 사람들에게 말없이 고개 숙여 인사하시고, 외삼촌과 나와 셋이서 니시카타마치 집을 나섰다.
기차는 비교적 한산해서 셋 다 앉을 수 있었다. 기차 안에서 외삼촌은 몹시 기분이 좋으셔서 요쿄쿠 같은 것을 흥얼거리셨지만, 어머니는 안색이 나쁘셨고 고개를 숙인 채 무척 추운 듯하셨다. 미시마에서 슨즈 철도로 갈아타고 이즈나가오카에서 내려, 거기서 버스로 십오 분쯤 가서 내린 다음 산 쪽으로 완만한 비탈길을 올라가니 작은 마을이 있었고, 그 마을 끝에 중국풍의 조금 공들인 산장이 있었다.
"어머니, 생각보다 좋은 곳이네요."
하고 나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렇구나."
하고 어머니도 산장 현관 앞에 서서 한순간 기쁜 듯한 눈빛을 하셨다.
"무엇보다 공기가 좋아요. 맑은 공기입니다."
하고 외삼촌은 자랑하셨다.
"정말요."
하고 어머니는 미소 지으시며
"맛있어요. 여기 공기는 맛있어요."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셋이서 웃었다.
현관에 들어서 보니 벌써 도쿄에서 부친 짐이 와 있어서 현관이며 방이며 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음은 안방에서 보는 경치가 좋지요."
외삼촌은 들떠서 우리를 안방으로 끌고 가 앉히셨다.
오후 세 시쯤이었는데, 겨울 해가 뜰 잔디에 부드럽게 비치고 있었다. 잔디밭에서 돌계단을 다 내려간 곳에 작은 연못이 있고 매화나무가 많았으며, 뜰 아래로는 귤밭이 펼쳐지고, 그다음에 마을 길이 있고, 그 너머는 논이고, 그다음 저 멀리 솔숲이 있고, 그 솔숲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바다는 이렇게 안방에 앉아 있으면 꼭 내 젖꼭지 끝에 수평선이 닿을 만한 높이로 보였다.
"부드러운 경치로구나."
하고 어머니는 나른하게 말씀하셨다.
"공기 탓일까요. 햇빛이 도쿄와는 영 다르잖아요. 햇살을 비단으로 거른 것 같아요."
하고 나는 신이 나서 말했다.
다다미 열 장짜리 방과 여섯 장짜리 방, 그리고 중국식 응접실, 그리고 현관이 석 장, 목욕탕 옆에도 석 장짜리 방이 딸려 있고, 그리고 식당과 부엌, 그리고 이층에 큰 침대가 딸린 손님용 양실이 한 칸. 그것뿐인 방 수이지만 우리 둘, 아니, 나오지가 돌아와 셋이 되어도 별로 비좁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외삼촌은 이 마을에 단 한 채뿐이라는 여관에 식사를 부탁하러 나가셨고, 이윽고 배달된 도시락을 안방에 펼쳐 놓고 가져오신 위스키를 드시며, 이 산장의 예전 주인이던 가와다 자작과 중국에서 놀던 시절의 실수담 따위를 이야기하시며 크게 신이 나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도시락에도 아주 조금 젓가락을 대셨을 뿐이었고, 이윽고 주위가 어둑해질 무렵
"잠깐 이대로 눕게 해 다오."
하고 작은 소리로 말씀하셨다.
내가 짐 속에서 이불을 꺼내 눕혀 드렸는데, 어쩐지 몹시 마음에 걸려서 짐에서 체온계를 찾아내 열을 재 보았더니 삼십구 도였다.
외삼촌도 놀라신 기색으로, 어쨌든 아래 마을까지 의사를 찾으러 나가셨다.
"어머니!"
하고 불러도 그저 꾸벅꾸벅 졸고만 계셨다.
나는 어머니의 작은 손을 꼭 쥐고 흐느껴 울었다. 어머니가 가엾고 가엾어서, 아니, 우리 둘이 가엾고 가엾어서 아무리 울어도 그치지 않았다. 울면서 정말 이대로 어머니와 함께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우리 인생은 니시카타마치 집을 나왔을 때 이미 끝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시간쯤 지나 외삼촌이 마을 의사 선생을 데려오셨다. 마을 선생은 벌써 꽤 나이가 든 분 같았고, 고급 비단 하카마를 입고 흰 버선을 신고 계셨다.
진찰이 끝나자
"폐렴이 될지도 모르겠사옵니다. 하지만 폐렴이 되더라도 걱정하실 것은 없사옵니다."
하고 어쩐지 미덥지 않은 말씀을 하시고는 주사를 놓아 주고 돌아가셨다.
이튿날이 되어도 어머니의 열은 내리지 않았다. 와다 외삼촌은 나에게 이천 엔을 건네주시며, 혹시라도 입원을 해야 할 것 같으면 도쿄로 전보를 치라고 말씀하시고는 일단 그날 도쿄로 돌아가셨다.
나는 짐 속에서 꼭 필요한 부엌살림만 꺼내 죽을 쑤어 어머니께 권했다. 어머니는 누우신 채 세 숟가락 드시고는 고개를 저으셨다.
점심 조금 전에 아래 마을 선생이 또 오셨다. 이번에는 하카마는 입지 않았지만 흰 버선은 역시 신고 계셨다.
"입원하는 편이……."
하고 내가 말씀드렸더니
"아니,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옵니다. 오늘은 한번 센 주사를 놓아 드릴 테니 열도 내리겠지요."
하고 여전히 미덥지 않은 대답을 하시고는, 이른바 그 센 주사를 놓고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 센 주사가 신통하게 들었는지 그날 점심때가 지나자 어머니의 얼굴이 새빨개지고 땀이 몹시 났다. 잠옷을 갈아입으실 때 어머니는 웃으시며
"명의인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말씀하셨다.
열은 삼십칠 도로 내려 있었다. 나는 기뻐서 이 마을에 단 한 채뿐인 여관으로 달려가 그 집 안주인에게 부탁해 달걀을 열 개쯤 얻어 와서 곧바로 반숙을 해 어머니께 드렸다. 어머니는 반숙 세 개와 죽을 반 공기쯤 드셨다.
이튿날 마을의 명의가 또 흰 버선을 신고 오셨기에 내가 어제의 센 주사에 대해 고맙다고 말씀드렸더니, 듣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로 깊이 고개를 끄덕이시고 정성껏 진찰을 하시더니 내 쪽으로 돌아앉아
"큰마님께서는 이제 병환이 아니시옵니다. 그러하오니 앞으로는 무엇을 드셔도, 무엇을 하셔도 괜찮사옵니다."
하고 역시나 이상한 말투로 말씀하셔서 나는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선생을 현관까지 배웅하고 안방으로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이부자리 위에 앉아 계시다가
"정말 명의야. 나는 이제 환자가 아니야."
하고 무척 즐거운 얼굴로 넋을 잃은 듯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어머니, 장지문을 열까요? 눈이 와요."
꽃잎 같은 커다란 함박눈이 하늘하늘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장지문을 열고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유리문 너머로 이즈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제 환자가 아니야."
하고 어머니는 다시 혼잣말처럼 말씀하시고는
"이렇게 앉아 있으니 지난 일이 다 꿈이었던 것 같구나. 나는 실은 이사할 때가 다 되어서는 이즈에 오는 게 아무리 해도, 어떻게 해도 싫어져 버렸어. 니시카타마치의 그 집에 하루라도 반나절이라도 더 오래 있고 싶었어. 기차를 탔을 때는 반쯤 죽은 것 같은 기분이었고, 여기 도착했을 때도 처음엔 조금 즐거운 기분이 들었지만 어둑해지니 벌써 도쿄가 그리워서 가슴이 타는 것 같아 정신이 아득해져 버렸어. 보통 병이 아니란다. 하느님께서 나를 한 번 죽이시고, 그다음에 어제까지의 나와 다른 나로 만들어서 되살려 주신 거야."
그 뒤로 오늘까지 우리 둘만의 산장 생활이 그럭저럭 별일 없이 평온하게 이어져 왔다. 마을 사람들도 우리에게 친절했다. 이리로 이사 온 것이 지난해 십이월, 그다음 일월, 이월, 삼월, 사월인 오늘까지, 우리는 식사 준비 말고는 대개 툇마루에서 뜨개질을 하거나 중국식 방에서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거나 하며 거의 세상과 떨어진 생활을 해 왔다. 이월에는 매화가 피어 이 마을 전체가 매화꽃에 묻혔다. 그리고 삼월이 되어도 바람 없는 온화한 날이 많아서 활짝 핀 매화는 조금도 시들지 않고 삼월 말까지 아름답게 계속 피었다.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매화꽃은 한숨이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그리고 툇마루의 유리문을 열면 언제나 꽃향기가 방 안으로 스르르 흘러들었다. 삼월 말에는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바람이 일어, 내가 해 질 녘 식당에서 밥공기를 늘어놓고 있으면 창으로 매화 꽃잎이 날려 들어와 밥공기 속에 들어가 젖었다. 사월이 되어 나와 어머니가 툇마루에서 뜨개질을 하며 나누는 이야기는 대개 밭농사 계획이었다. 어머니도 거들고 싶다고 하신다. 아아, 이렇게 써 보니 정말 우리는 언젠가 어머니가 말씀하셨듯이 한 번 죽어서 다른 우리가 되어 되살아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예수님 같은 부활은 결국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게 아닐까.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역시 수프를 한 숟가락 뜨실 때마다 나오지를 생각하며 아, 하고 외치신다. 그리고 내 과거의 상처도 실은 조금도 낫지 않았다.
아아,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또렷하게 쓰고 싶다. 이 산장의 평온은 다 거짓이고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남몰래 생각할 때조차 있다. 이것이 우리 모녀가 하느님께 받은 짧은 휴식의 시간이라 해도, 벌써 이 평화에는 무언가 불길하고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는 것만 같아 견딜 수가 없다. 어머니는 행복한 척하시면서도 나날이 쇠약해지시고, 그리고 내 가슴에는 살무사가 깃들어 어머니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살찌고, 내가 누르고 또 눌러도 살찌고, 아아, 이것이 그저 계절 탓일 뿐이라면 좋으련만. 나는 요즘 이런 생활이 도무지 견딜 수 없어질 때가 있다. 뱀 알을 태우는 따위의 천박한 짓을 한 것도 그런 내 초조한 마음이 드러난 하나였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그저 어머니의 슬픔을 깊게 하고 쇠약하게 할 뿐이다.
사랑, 이라고 쓰고 나니 더는 쓸 수가 없어졌다.
2장
뱀 알 일이 있고 열흘쯤 지나 불길한 일이 잇따라 일어나, 어머니의 슬픔을 더욱 깊게 하고 그 목숨을 더욱 엷게 했다.
내가 불을 낼 뻔한 것이다.
내가 불을 낸다. 내 평생에 그런 무서운 일이 있으리라고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꿈에서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불을 함부로 다루면 불이 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일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나는 그 이른바 「아가씨」였던 걸까.
한밤중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 현관의 가리개 곁까지 갔더니 목욕탕 쪽이 환했다. 무심코 들여다보니 목욕탕 유리문이 새빨갛고 타닥타닥 소리가 들렸다.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목욕탕 쪽문을 열고 맨발로 밖에 나가 보니, 목욕물 아궁이 곁에 쌓아 둔 장작더미가 무서운 기세로 타고 있었다.
뜰에서 이어지는 아래 농가로 날듯이 달려가 힘껏 문을 두드리며
"나카이 씨! 일어나세요, 불이에요!"
하고 외쳤다.
나카이 씨는 벌써 주무시고 계셨던 것 같았지만
"네, 곧 가요."
하고 대답하더니, 내가 부탁해요, 빨리 부탁해요, 하고 말하는 사이에 홑옷 잠옷 차림 그대로 집에서 뛰어나오셨다.
둘이서 불 곁으로 달려가 양동이로 연못물을 퍼서 끼얹고 있는데, 안방 복도 쪽에서 어머니의 아악, 하는 비명이 들렸다. 나는 양동이를 내던지고 뜰에서 복도로 올라가
"어머니, 걱정 마세요, 괜찮아요, 쉬고 계세요."
하고 쓰러지려는 어머니를 붙들어 잠자리로 모시고 가 눕혀 드리고는, 다시 불 있는 데로 날듯이 돌아가 이번에는 목욕물을 퍼서 나카이 씨에게 건넸다. 나카이 씨는 그걸 장작더미에 끼얹었지만 불길이 세서 도무지 그런 걸로는 꺼질 것 같지 않았다.
"불이다. 불이다. 별장에 불이 났다."
하는 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리더니 금세 마을 사람 너덧이 울타리를 부수고 뛰어 들어오셨다. 그리고 울타리 밑의 도랑물을 양동이로 줄지어 날라 이삼 분 사이에 불을 꺼 주셨다. 조금만 더 했으면 목욕탕 지붕으로 옮겨붙을 참이었다.
다행이다, 하고 생각한 순간 나는 이 불의 원인을 깨닫고 소스라쳤다. 정말로 나는 그때 처음으로, 이 불 소동은 내가 저녁에 목욕물 아궁이에서 타다 남은 장작을 꺼내어 끈 줄 알고 장작더미 곁에 놓아둔 데서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걸 깨닫고 울고 싶어져 우두커니 서 있는데, 앞집 니시야마 씨네 며느리가 울타리 밖에서, 목욕탕이 홀랑 탔대, 아궁이 불 뒤처리를 잘못한 거야, 하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게 들렸다.
촌장인 후지타 씨, 니노미야 순경, 경방단장인 오우치 씨 등이 오셨다. 후지타 씨는 여느 때처럼 상냥한 웃는 얼굴로
"놀라셨지요. 어떻게 된 겁니까?"
하고 물으셨다.
"제가 잘못했어요. 끈 줄 알았던 장작을……."
하고 말하다가 나 자신이 너무도 비참해서 눈물이 솟아,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경찰에 끌려가 죄인이 될지도 모른다고 그때 생각했다. 맨발에 잠옷 차림 그대로인 흐트러진 내 모습이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정말이지 영락했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어머님은요?"
하고 후지타 씨는 감싸 주는 듯한 말투로 조용히 말씀하셨다.
"안방에 쉬시게 했어요. 몹시 놀라셔서……."
"하지만 뭐,"
하고 젊은 니노미야 순경도
"집에 불이 붙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하고 위로하듯 말씀하셨다.
그러자 아래 농가의 나카이 씨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오셔서
"뭐, 장작이 좀 탔을 뿐이에요. 작은 불이랄 것도 없어요."
하고 숨을 몰아쉬며 말하고 내 어리석은 실수를 감싸 주셨다.
"그렇습니까. 잘 알겠습니다."
하고 촌장 후지타 씨는 두 번 세 번 고개를 끄덕이고, 니노미야 순경과 무언가 작은 소리로 의논하시더니
"그럼 돌아가겠습니다. 어머님께 안부 전해 주세요."
하고 말씀하시고는 그대로 경방단장 오우치 씨와 다른 분들과 함께 돌아가셨다.
니노미야 순경만 남으셔서 내 바로 앞까지 다가오시더니 숨소리 같은 낮은 목소리로
"그럼 말이죠, 오늘 밤 일은 따로 신고하지 않기로 할게요."
하고 말씀하셨다.
니노미야 순경이 돌아가시자 아래 농가의 나카이 씨가
"니노미야 씨가 뭐라고 하셨어요?"
하고 정말 걱정스럽고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신고하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하고 내가 대답하자, 울타리 쪽에 아직 이웃 분들이 계셨는지 내 대답을 알아들은 듯, 그래, 다행이다, 다행이다, 하면서 줄줄이 돌아가셨다.
나카이 씨도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돌아가시고, 뒤에는 나 혼자 멍하니 탄 장작더미 곁에 서 있었다. 눈물이 글썽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벌써 새벽이 가까운 하늘이었다.
목욕탕에서 손과 발과 얼굴을 씻고, 어머니를 뵙기가 어쩐지 무서워서 목욕탕 곁 석 장짜리 방에서 머리를 매만지며 꾸물거리다가, 부엌으로 가서 날이 완전히 밝을 때까지 부엌 그릇을 쓸데없이 정리하고 있었다.
날이 밝아 안방 쪽으로 살그머니 발소리를 죽이고 가 보니, 어머니는 벌써 옷을 다 갈아입으시고 중국식 방 의자에 몹시 지치신 듯 앉아 계셨다. 나를 보고 생긋 웃으셨지만 그 얼굴은 놀랄 만큼 창백했다.
나는 웃지 않고 말없이 어머니 의자 뒤에 섰다.
얼마 뒤 어머니가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어. 태우려고 둔 장작인걸."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갑자기 즐거워져서 후훙 웃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하는 성경의 잠언을 떠올리며, 이렇게 상냥한 어머니를 둔 나의 행복을 하느님께 깊이 감사했다. 어젯밤 일은 어젯밤 일. 이제 끙끙 앓지 말자고 생각하며 나는 중국식 방 유리문 너머로 아침의 이즈 바다를 바라보며 언제까지나 어머니 뒤에 서 있었고, 마지막에는 어머니의 조용한 숨결과 내 숨결이 꼭 맞아 버렸다.
아침 식사를 가볍게 마치고 탄 장작더미를 치우기 시작했는데, 이 마을에 단 한 채뿐인 여관의 안주인 오사키 씨가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된 거예요? 방금 처음 들었어요. 세상에, 어젯밤에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하면서 뜰의 사립문으로 종종걸음으로 달려오셨는데, 그 눈에는 눈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죄송해요."
하고 나는 작은 소리로 사과했다.
"죄송하고 뭐고. 그보다 아가씨, 경찰 쪽은요?"
"괜찮대요."
"아이고, 다행이다."
하고 진심으로 기쁜 얼굴을 해 주셨다.
나는 오사키 씨에게 마을 분들께 어떤 식으로 사례와 사과를 하면 좋을지 의논했다. 오사키 씨는 역시 돈이 좋겠다면서, 그걸 들고 사과하러 돌아야 할 집들을 가르쳐 주셨다.
"그래도 아가씨 혼자 도는 게 싫으면 나도 같이 따라가 줄게요."
"혼자 가는 게 좋겠죠?"
"혼자 갈 수 있어요? 그야 혼자 가는 게 좋지요."
"혼자 갈게요."
그러고 오사키 씨는 불탄 자리 정리를 조금 거들어 주셨다.
정리가 끝나고 나는 어머니께 돈을 받아 백 엔짜리 지폐를 한 장씩 미농지에 싸서, 봉투마다 「사과드립니다」라고 썼다.
맨 먼저 면사무소에 갔다. 촌장 후지타 씨가 안 계셔서 접수하는 아가씨에게 종이 봉투를 내밀며
"어젯밤에는 죄송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앞으로 조심할 테니 부디 용서해 주세요. 촌장님께 안부 전해 주세요."
하고 사과를 드렸다.
그다음 경방단장 오우치 씨 댁에 갔는데, 오우치 씨가 현관에 나와 나를 보시고 말없이 슬프게 미소 지으셨다. 나는 왠지 갑자기 울고 싶어져서
"어젯밤엔 죄송했어요."
하고 말하는 게 고작이었고 서둘러 물러 나왔다. 오는 길에 눈물이 넘쳐 얼굴이 엉망이 되어서 일단 집으로 돌아가 세면장에서 세수를 하고 화장을 고치고 다시 나가려고 현관에서 구두를 신고 있으려니 어머니가 나오셔서
"아직 어디 더 가니?"
하고 말씀하셨다.
"네, 이제부터예요."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대답했다.
"수고가 많구나."
하고 가만히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사랑에 힘을 얻어 이번에는 한 번도 울지 않고 모두 돌 수 있었다.
구장님 댁에 갔더니 구장님은 안 계시고 며느리가 나왔는데, 나를 보자마자 오히려 그쪽에서 눈물을 글썽였다. 또 순경 댁에서는 니노미야 순경이 다행이다, 다행이다, 해 주셨다. 모두 상냥한 분들뿐이었다. 그다음 이웃집들을 돌았는데 역시 모두에게서 동정과 위로를 받았다. 다만 앞집 니시야마 씨네 며느리, 며느리라고 해도 벌써 마흔쯤 된 아주머니인데, 그 사람에게만은 호되게 꾸중을 들었다.
"앞으로도 조심하세요. 황족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전부터 당신들 소꿉장난 같은 살림살이를 조마조마하며 보고 있었어요. 어린애 둘이 사는 것 같으니 지금까지 불을 안 낸 게 이상할 정도예요. 정말 앞으로는 조심하세요. 어젯밤도 말이에요, 바람이 셌으면 이 마을이 다 탔을 거예요."
이 니시야마 씨네 며느리는, 아래 농가의 나카이 씨 같은 분은 촌장님과 니노미야 순경 앞에 뛰어나와 작은 불이랄 것도 없다고 감싸 주셨는데, 울타리 밖에서 목욕탕이 홀랑 탔대, 아궁이 불 뒤처리를 잘못한 거야, 하고 큰 소리로 말하던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니시야마 씨네 며느리의 잔소리에서도 진실을 느꼈다. 정말 그 말대로라고 생각했다. 조금도 니시야마 씨네 며느리를 원망할 일은 없다. 어머니는 태우려고 둔 장작인걸, 하고 농담을 하시며 나를 위로해 주셨지만, 그때 바람이 셌다면 니시야마 씨네 며느리 말대로 이 마을 전체가 탔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나는 죽어서 사과해도 모자랐을 것이다. 내가 죽으면 어머니도 살아 계시지 못할 테고, 또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히게도 된다. 지금은 이제 황족이고 화족이고 없지만, 그래도 어차피 망할 거라면 과감하게 화려하게 망하고 싶다. 불을 내고 그 사과로 죽는다니, 그런 비참한 죽음으로는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리라. 어쨌든 더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나는 이튿날부터 밭일에 힘을 쏟았다. 아래 농가 나카이 씨네 딸이 가끔 거들어 주었다. 불을 내는 따위의 추태를 부린 뒤로 내 몸의 피가 어쩐지 조금 검붉어진 것 같았다. 그 전에는 내 가슴에 심술궂은 살무사가 살았고, 이번에는 핏빛까지 조금 변했으니, 점점 야성의 시골 처녀가 되어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머니와 툇마루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어도 묘하게 갑갑하고 숨 막혀서, 오히려 밭에 나가 흙을 파 일구는 편이 마음 편할 정도였다.
근육 노동이라고 하나. 이런 힘든 일이 나에게 지금이 처음은 아니다. 나는 전쟁 때 징용되어 달구질까지 해야 했다. 지금 밭일할 때 신고 나가는 지카타비, 그러니까 고무 바닥을 댄 작업용 버선도 그때 군에서 배급된 것이다. 지카타비라는 것을 그때 그야말로 태어나 처음 신어 보았는데, 놀랄 만큼 편해서 그걸 신고 뜰을 걸어 보니 새나 짐승이 맨발로 땅바닥을 걸어 다니는 홀가분함을 나도 잘 알 것 같아서 가슴이 저릴 만큼 기뻤다. 전쟁 중의 즐거운 기억은 단 그것 하나뿐. 생각해 보면 전쟁 따위는 시시한 것이었다.
작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재작년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
그 전 해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 재미있는 시가 종전 직후 어느 신문에 실렸는데, 정말 지금 떠올려 보아도 여러 일이 있었던 것 같으면서도 역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과 같은 느낌도 든다. 나는 전쟁 추억은 이야기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다.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도 진부하고 따분하다. 하지만 나는 역시 제멋대로인 걸까. 내가 징용되어 지카타비를 신고 달구질을 해야 했던 때의 일만은 그리 진부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꽤 싫은 일도 겪었지만, 나는 그 달구질 덕에 몸이 아주 튼튼해졌고, 지금도 정말 살기 어려워지면 달구질을 하며 살아가자고 생각할 때가 있을 정도다.
전세가 슬슬 절망적이 되어 갈 무렵, 군복 같은 것을 입은 남자가 니시카타마치 집에 와서 나에게 징용 서류와 노동 일정표를 건넸다. 일정표를 보니 나는 바로 이튿날부터 하루걸러 다치카와 안쪽의 산으로 다녀야 하게 되어 있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넘쳐흘렀다.
"대신 다른 사람이 가면 안 될까요?"
눈물이 그치지 않아 흐느껴 울게 되어 버렸다.
"군에서 당신에게 징용이 나왔으니 반드시 본인이어야 합니다."
하고 그 남자는 세게 대답했다.
나는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이튿날은 비가 왔는데, 우리는 다치카와 산기슭에 줄지어 세워졌고, 먼저 장교의 훈시가 있었다.
"전쟁에는 반드시 이긴다."
하고 서두를 꺼내더니
"전쟁에는 반드시 이기지만, 여러분이 군의 명령대로 일하지 않으면 작전에 지장이 생겨 오키나와 같은 결과가 된다. 반드시 시키는 만큼의 일은 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이 산에도 간첩이 들어와 있을지 모르니 서로 조심할 것. 여러분도 이제부터는 병사와 마찬가지로 진지 안에 들어가 일하는 것이니 진지의 모습은 절대로 남에게 말하지 않도록 충분히 조심해 주기 바란다."
하고 말했다.
산에는 비가 안개처럼 끼었고, 남녀 섞어 오백 가까운 대원이 비를 맞으며 서서 그 이야기를 삼가 듣고 있었다. 대원 가운데는 국민학교 남학생 여학생도 섞여 있었는데 모두 추운 듯 울상을 하고 있었다. 비는 내 비옷을 뚫고 웃옷에 스며들더니 이윽고 속옷까지 적셨다.
그날은 하루 종일 흙 짐을 날랐고, 돌아오는 전차 안에서 눈물이 나서 견딜 수 없었지만, 그다음에는 달구질 줄을 당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 일이 가장 재미있었다.
두 번 세 번 산에 가는 사이에 국민학교 남학생들이 내 모습을 유난히 힐끔힐끔 보게 되었다. 어느 날 내가 흙 짐을 나르고 있는데 남학생 두셋이 나와 엇갈려 지나가더니 그 가운데 하나가
"저 사람이 간첩이야?"
하고 작은 소리로 말하는 걸 듣고 나는 깜짝 놀라 버렸다.
"왜 저런 말을 할까요."
하고 나는 나와 나란히 흙 짐을 지고 걷던 젊은 처녀에게 물었다.
"외국 사람 같으니까요."
젊은 처녀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당신도 제가 간첩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요."
이번에는 조금 웃으며 대답했다.
"저, 일본 사람이에요."
하고 말하고 나니 그 말이 나 스스로도 바보 같은 넌센스처럼 여겨져서 혼자 킥킥 웃었다.
날씨가 좋은 어느 날, 내가 아침부터 남자들과 함께 통나무를 나르고 있는데, 감시 당번인 젊은 장교가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가리키더니
"이봐, 자네. 자네는 이리로 오게."
하고는 성큼성큼 솔숲 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슴을 두근거리며 그 뒤를 따라가니, 숲 안쪽에 제재소에서 막 온 판자가 쌓여 있었는데, 장교는 그 앞까지 가서 멈춰 서더니 휙 내 쪽으로 돌아서서
"날마다 힘들지요. 오늘은 이 목재 지키는 당번을 해 주세요."
하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여기 서 있는 건가요?"
"여기는 시원하고 조용하니까 이 판자 위에서 낮잠이라도 자고 계세요. 혹시 따분하면, 이건 읽으셨을지도 모르지만"
하고 말하며 웃옷 주머니에서 작은 문고본을 꺼내 쑥스러운 듯 판자 위에 던져 놓고
"이런 거라도 읽고 계세요."
문고본에는 『트로이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문고본을 집어 들고
"고맙습니다. 우리 집에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지금 남방에 가 있어요."
하고 말씀드렸더니 잘못 알아들은 듯
"아, 그래요. 남편분이시군요. 남방이라면 큰일이네."
하고 고개를 저으며 가만히 말하고는
"아무튼 오늘은 여기서 지키는 당번이라고 해 두고, 도시락은 나중에 내가 갖다 줄 테니 푹 쉬고 계세요."
하고 말을 던지고는 바쁜 걸음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목재에 걸터앉아 문고본을 읽었는데, 반쯤 읽었을 무렵 그 장교가 뚜벅뚜벅 구두 소리를 내며 와서
"도시락 가져왔어요. 혼자서 심심하시죠."
하고 도시락을 풀밭 위에 놓고는 다시 서둘러 돌아가셨다.
나는 도시락을 먹고 나서 이번에는 목재 위로 기어 올라가 누워서 책을 읽었고, 다 읽고 나서 꾸벅꾸벅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눈을 뜬 것은 오후 세 시가 지나서였다. 나는 문득 그 젊은 장교를 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생각해 보았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목재에서 내려와 머리를 쓰다듬고 있으려니 다시 뚜벅뚜벅 구두 소리가 들려오더니
"자, 오늘은 수고 많았어요. 이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나는 장교 쪽으로 달려가 문고본을 내밀며 고맙다고 말하려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없이 장교의 얼굴을 올려다보다가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을 때 내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러자 그 장교의 눈에도 눈물이 반짝 빛났다.
그대로 말없이 헤어졌는데, 그 젊은 장교는 그 뒤로 한 번도 우리가 일하는 곳에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날 단 하루 놀 수 있었을 뿐이고, 그 뒤로는 역시 하루걸러 다치카와 산에서 고된 일을 했다. 어머니는 내 몸을 무척 걱정해 주셨지만 나는 오히려 튼튼해져서, 지금은 달구질 장사에도 남몰래 자신이 있고, 밭일에도 별로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 여자가 되었다.
전쟁 이야기는 하기도 듣기도 싫다고 하면서 그만 나의 「귀중한 경험담」 따위를 늘어놓고 말았지만, 내 전쟁 추억 가운데 조금이라도 이야기하고 싶은 건 대강 이 정도이고, 나머지는 언젠가 그 시처럼
작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재작년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
그 전 해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
라고나 말하고 싶을 정도다. 그저 어처구니없게도 내 몸에 남은 것은 이 지카타비 한 켤레뿐이라는 덧없음이다.
지카타비 이야기에서 그만 쓸데없는 이야기를 시작해 옆길로 새 버렸지만, 나는 이 전쟁의 유일한 기념품이라고 할 지카타비를 신고 거의 날마다 밭에 나가 가슴 깊은 곳의 남모를 불안과 초조를 달래고 있다. 그런데 어머니는 요즘 눈에 띄게 나날이 약해지시는 것 같다.
뱀 알.
불.
그 무렵부터 어쩐지 어머니는 부쩍 환자 티가 나게 되셨다. 그리고 나는 그와 반대로 점점 거칠고 천한 여자가 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쩐지 내가 어머니에게서 자꾸자꾸 생기를 빨아들여 살찌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다.
불이 났을 때도 어머니는 태우려고 둔 장작인걸, 하고 농담을 하시고 그 뒤로 불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나를 감싸 주셨지만, 속으로 어머니가 받으신 충격은 나보다 열 배는 강했을 게 틀림없다. 그 불이 난 뒤로 어머니는 한밤중에 이따금 신음하실 때가 있고, 또 바람이 센 밤 같은 때는 화장실에 가시는 척하며 한밤중에 몇 번이고 잠자리에서 빠져나와 온 집 안을 둘러보신다. 그리고 안색은 늘 좋지 않고, 걷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날도 있다. 밭일도 거들고 싶다고 전에는 말씀하셨는데, 한번은 내가 그만두시라고 말씀드렸는데도 우물에서 큰 물통으로 밭에 물을 대여섯 번 나르시고는 이튿날 숨도 못 쉴 만큼 어깨가 결린다며 하루 종일 누워 계셨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는 과연 밭일은 단념하신 모양으로, 이따금 밭에 나오셔도 내가 일하는 모습을 그저 가만히 보고 계실 뿐이다.
"여름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름에 죽는다던데, 정말일까."
오늘도 어머니는 내가 밭일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 계시다가 불쑥 그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말없이 가지에 물을 주고 있었다. 아아, 그러고 보니 벌써 초여름이다.
"나는 자귀나무 꽃을 좋아하는데, 여기 뜰에는 한 그루도 없구나."
하고 어머니는 또 조용히 말씀하셨다.
"협죽도가 잔뜩 있잖아요."
나는 일부러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건 싫어. 여름꽃은 대개 좋아하지만 그건 너무 말괄량이 같아서."
"저라면 장미가 좋아요. 그런데 장미는 사철 피니까, 장미를 좋아하는 사람은 봄에 죽고 여름에 죽고 가을에 죽고 겨울에 죽고, 네 번이나 다시 죽어야 하나요?"
둘이서 웃었다.
"좀 쉬지 않을래?"
하고 어머니는 여전히 웃으시면서
"오늘은 가즈코하고 좀 의논하고 싶은 게 있어."
"뭔데요? 죽는 이야기 같은 건 딱 질색이에요."
나는 어머니 뒤를 따라가 등나무 시렁 밑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등꽃은 벌써 다 지고, 부드러운 오후 햇살이 그 잎을 뚫고 우리 무릎 위에 떨어져 우리 무릎을 초록빛으로 물들였다.
"전부터 들어 줬으면 했던 이야기인데, 서로 기분 좋을 때 이야기하려고 오늘까지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어. 어차피 좋은 이야기는 아니야. 그래도 오늘은 왠지 나도 술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너도 참고 끝까지 들어 주렴. 실은 말이야, 나오지가 살아 있단다."
나는 몸이 굳었다.
"대엿새 전에 와다 외삼촌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외삼촌 회사에 전에 다니던 분이 요즘 남방에서 돌아와서 외삼촌께 인사하러 왔대.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분이 우연히 나오지와 같은 부대였다는 것, 그리고 나오지는 무사하고 곧 돌아올 거라는 걸 알았대. 그런데 말이야, 하나 싫은 일이 있어. 그분 말로는 나오지가 꽤 심한 아편 중독에 걸린 것 같다고……."
"또!"
나는 쓴 것을 먹은 듯 입을 일그러뜨렸다. 나오지는 고등학교 때 어떤 소설가를 흉내 내어 마약 중독에 걸렸고, 그 때문에 약방에 엄청난 외상을 져서 어머니는 그 빚을 약방에 다 갚는 데 이 년이나 걸리셨던 것이다.
"그래. 또 시작한 모양이야. 하지만 그게 낫지 않으면 귀환도 허락되지 않을 테니 틀림없이 고쳐서 올 거라고 그분도 말했대. 외삼촌 편지로는, 고쳐서 돌아온다 해도 그런 마음가짐인 녀석은 곧바로 어디 직장에 다니게 할 수는 없다, 지금 이 혼란한 도쿄에서 일하면 멀쩡한 사람조차 좀 미친 듯한 기분이 되는데, 중독이 막 나은 반환자라면 금세 발광할 지경이 되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그러니 나오지가 돌아오면 곧바로 이즈 산장에 데려다가 어디에도 내보내지 말고 당분간 여기서 요양시키는 게 좋겠다. 그게 하나. 그리고 말이야, 가즈코, 외삼촌이 또 하나 이르신 게 있단다. 외삼촌 말씀으로는 이제 우리 돈이 하나도 없어져 버렸대. 예금 동결이니 재산세니 해서 외삼촌도 이제까지처럼 우리한테 돈을 보내 주기가 어려워졌다는구나. 그래서 말이야, 나오지가 돌아와서 어머님하고 나오지하고 가즈코하고 셋이 놀고먹으면 외삼촌도 그 생활비를 대느라 무척 고생하셔야 하니까, 지금 가즈코가 시집갈 데를 찾든지 아니면 일할 집을 찾든지 어느 쪽이든 하라는, 뭐 그런 말씀이셔."
"일할 집이라니, 하녀 말이에요?"
"아니, 외삼촌이 말이야, 그, 고마바의"
하고 어떤 황족의 이름을 대시고는
"그 황족 댁이라면 우리와도 핏줄이 이어져 있고, 따님의 가정교사를 겸해서 일하러 들어가도 가즈코가 그리 쓸쓸하고 갑갑한 일을 겪지 않고 지낼 수 있을 거라고 하셔."
"다른 일자리는 없을까요?"
"다른 일은 가즈코한테는 도저히 무리일 거라고 하셨어."
"왜 무리예요? 네, 왜 무리예요?"
어머니는 쓸쓸하게 미소 지으실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싫어요! 그런 이야기."
나 스스로도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제가 이런 지카타비를, 이런 지카타비를"
하고 말했더니 눈물이 나와서 나도 모르게 왁 울음을 터뜨렸다. 얼굴을 들고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어머니를 향해, 안 돼, 안 돼, 하고 생각하면서도 말이 무의식처럼, 몸과는 전혀 상관없이 줄줄이 이어져 나왔다.
"언젠가 그러셨잖아요. 가즈코가 있으니까, 가즈코가 있어 주니까 어머님은 이즈로 가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가즈코가 없으면 죽어 버리겠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그러니까 가즈코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어머니 곁에 있으면서 이렇게 지카타비를 신고 어머니께 맛있는 채소를 드리고 싶다고, 그것만 생각하고 있는데, 나오지가 돌아온다고 들으시니까 갑자기 저를 귀찮아하시면서 황족 댁 하녀로 가라니, 너무해요, 너무해요."
나 스스로도 지독한 말을 내뱉는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 다른 생물처럼 아무리 해도 멈추지 않았다.
"가난해져서 돈이 없어지면 우리 옷을 팔면 되잖아요. 이 집도 팔아 버리면 되잖아요. 저는 뭐든 할 수 있어요. 이 마을 면사무소 여사무원이든 뭐든 될 수 있어요. 면사무소에서 써 주지 않으면 달구질꾼도 될 수 있어요. 가난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머니가 저를 귀여워해 주시기만 하면 저는 평생 어머니 곁에 있으려고만 생각했는데, 어머니는 저보다 나오지가 더 귀여우신 거죠. 나갈게요. 저 나갈래요. 어차피 저는 나오지와 옛날부터 성격이 맞지 않으니까 셋이 함께 살면 서로 불행해요. 저는 이제까지 오래도록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으니 이제 미련은 없어요. 이제부터 나오지가 어머니와 둘이서 오붓하게 살면서 효도를 실컷 실컷 하면 돼요. 저는 이제 싫어졌어요. 이제까지의 생활이 싫어졌어요. 나가겠어요. 오늘 지금 당장 나가겠어요. 저한테는 갈 데가 있어요."
나는 일어섰다.
"가즈코!"
어머니는 엄하게 말씀하시고, 이제껏 나에게 보이신 적 없을 만큼 위엄 가득한 얼굴로 스윽 일어나 나와 마주 서셨는데, 나보다 키가 조금 크신 것처럼 보였다.
나는 죄송해요, 하고 곧바로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아무래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오히려 다른 말이 나와 버렸다.
"속이셨어요. 어머니는 저를 속이신 거예요. 나오지가 올 때까지 저를 이용하신 거예요. 저는 어머니의 하녀예요. 볼일이 끝났으니 이번엔 황족 댁으로 가라는 거죠."
왁 소리가 나서 나는 선 채로 실컷 울었다.
"넌 바보로구나."
하고 낮게 말씀하신 어머니의 목소리는 노여움에 떨리고 있었다.
나는 얼굴을 들고
"그래요, 바보예요. 바보니까 속는 거예요. 바보니까 귀찮아하시는 거예요. 없는 편이 낫죠? 가난이 뭐예요? 돈이 뭐예요? 저는 몰라요.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을, 그것만을 저는 믿고 살아왔어요."
하고 또 어리석은,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어머니는 훅 얼굴을 돌리셨다. 울고 계신 것이다. 나는 죄송해요, 하고 말하며 어머니께 매달리고 싶었지만 밭일로 손이 더러워진 게 어렴풋이 마음에 걸려 묘하게 쌀쌀맞아져서
"제가 없으면 되는 거죠? 나갈게요. 저한테는 갈 데가 있어요."
하고 말을 던지고는 그대로 종종걸음으로 목욕탕에 가서 흐느끼며 얼굴과 손발을 씻었다. 그러고 방에 가서 양장으로 갈아입다가 다시 왁 큰 소리가 나와 울며 무너졌고, 마음껏 더 더 울어 보고 싶어져서 이층 양실로 뛰어 올라가 침대에 몸을 던지고 담요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몸이 여윌 만큼 울었다. 그러는 사이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더니, 점점 어떤 사람이 그립고 그리워서, 그 얼굴을 보고 그 목소리를 듣고 싶어 견딜 수 없어졌고, 두 발바닥에 뜨거운 뜸을 뜨고 가만히 참고 있는 것 같은 특별한 기분이 되어 갔다.
저녁 가까이 어머니는 조용히 이층 양실에 들어오셔서 탁 전등을 켜고는 침대 쪽으로 다가오셔서
"가즈코."
하고 무척 상냥하게 부르셨다.
"네."
나는 일어나 침대 위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고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후후 웃었다.
어머니도 희미하게 웃으시고는 창 밑 소파에 몸을 깊이 묻으시고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와다 외삼촌 말씀을 거역했어. ……어머님은 말이야, 방금 외삼촌께 답장을 썼어. 제 아이들 일은 저에게 맡겨 주세요, 하고 썼어. 가즈코, 옷을 팔자. 우리 둘 옷을 자꾸자꾸 팔아서 마음껏 헤프게 쓰고 사치스럽게 살자. 나는 이제 너한테 밭일 같은 건 시키고 싶지 않아. 비싼 채소를 사 먹으면 어떠니. 그렇게 날마다 하는 밭일은 너한테 무리야."
실은 나도 날마다 하는 밭일이 조금 힘들어지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아까 그렇게 미친 듯이 울며 소란을 피운 것도 밭일의 피로와 슬픔이 뒤섞여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싫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침대 위에서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있었다.
"가즈코."
"네."
"갈 데가 있다는 건 어디니?"
나는 내가 목덜미까지 빨개진 것을 느꼈다.
"호소다 씨?"
나는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쉬시고
"옛날 이야기를 해도 될까?"
"하세요."
하고 나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네가 야마키 댁에서 나와 니시카타마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님은 너를 탓하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딱 한마디, (어머님은 너한테 배신당했다)고 했었지. 기억나니? 그랬더니 너는 울음을 터뜨려 버려서……. 나도 배신이라는 심한 말을 써서 미안했다고 생각했지만……."
하지만 나는 그때 어머니께 그 말을 듣고 어쩐지 고마워서 기뻐 울었던 것이다.
"어머님이 그때 배신당했다고 한 건 네가 야마키 댁을 나왔다는 일이 아니었어. 야마키 씨한테서, 가즈코는 실은 호소다하고 연인 사이였습니다, 하는 말을 들었을 때였지.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낯빛이 변하는 심정이었단다. 왜냐하면 호소다 씨한테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부인도 아이도 있어서, 아무리 이쪽에서 사모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고……."
"연인 사이라니, 심한 말을. 야마키 쪽에서 그저 그렇게 억측하셨을 뿐이에요."
"그럴까. 너 설마 그 호소다 씨를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갈 데라는 건 어디니?"
"호소다 씨한테는 안 가요."
"그래? 그럼 어디니?"
"어머니, 저 있잖아요, 얼마 전에 생각한 건데요, 사람이 다른 동물과 전혀 다른 점은 뭘까요. 말도, 지혜도, 생각도, 사회의 질서도, 저마다 정도 차이는 있어도 다른 동물들도 다 갖고 있잖아요? 신앙도 갖고 있을지 몰라요.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뽐내지만 조금도 다른 동물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는 것 같잖아요? 그런데요, 어머니, 딱 하나 있었어요. 모르시겠죠. 다른 생물에게는 절대로 없고 사람에게만 있는 것. 그건요, 비밀이라는 거예요. 어떠세요?"
어머니는 살짝 얼굴을 붉히시고 아름답게 웃으시며
"아아, 가즈코의 그 비밀이 좋은 열매를 맺어 주면 좋겠는데. 어머님은 아침마다 아버지께 가즈코를 행복하게 해 주십사 하고 빌고 있단다."
내 가슴에 훅, 아버지와 나스노 들판을 드라이브하다가 도중에 내렸던 일, 그때의 가을 들판 풍경이 떠올랐다. 싸리, 패랭이꽃, 용담, 마타리 같은 가을 풀꽃이 피어 있었다. 머루는 아직 파랬다.
그리고 아버지와 비와호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내가 물에 뛰어들자 물풀에 사는 작은 물고기가 내 다리에 부딪치고, 호수 바닥에 내 다리 그림자가 또렷이 비쳐 움직이던 그 모습이 앞뒤와 아무 연관도 없이 훅 가슴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나는 침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어머니의 무릎에 매달리며 비로소
"어머니, 아까는 죄송했어요."
하고 말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날쯤이 우리 행복의 마지막 남은 불빛이 빛나던 때였고, 그 뒤로 나오지가 남방에서 돌아와 우리의 진짜 지옥이 시작되었다.
3장
아무래도 이제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 이것이 그, 불안이라는 감정일까. 가슴에 괴로운 물결이 밀려와, 그것은 꼭 소나기가 그친 뒤의 하늘을 흰 구름이 잇달아 바쁘게 달려 지나가듯이 내 심장을 조였다 풀었다 하고, 내 맥은 고르지 않게 뛰고, 숨이 엷어지고, 눈앞이 뿌옇게 어두워지고, 온몸의 힘이 손가락 끝에서 훅 빠져나가는 것 같아서 뜨개질을 계속할 수가 없게 되었다.
요즘은 비가 음울하게 계속 내려 무얼 하든 나른해서, 오늘은 안방 툇마루에 등나무 의자를 내다 놓고 올봄에 한 번 뜨다가 그만둔 스웨터를 다시 떠 볼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흐릿한 듯한 연한 모란빛 털실인데, 나는 거기에 코발트블루 실을 더해 스웨터를 만들 생각이다. 그리고 이 연한 모란빛 털실은 지금으로부터 벌써 이십 년 전, 내가 아직 초등과에 다니던 무렵 어머니가 이것으로 내 목도리를 떠 주셨던 털실이었다. 그 목도리 끝이 두건으로 되어 있어서 나는 그걸 쓰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더니 꼬마 도깨비 같았다. 게다가 빛깔이 다른 학우들의 목도리 빛깔과 영 달라서 나는 싫고 또 싫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간사이의 고액 납세자 집안 학우가 「좋은 목도리 하셨네예」 하고 어른스러운 말투로 칭찬해 주었는데 나는 더욱 부끄러워져서, 그 뒤로는 한 번도 이 목도리를 두른 적이 없이 오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것을 올봄, 묵혀 둔 물건을 되살린다나 하는 뜻으로 풀어서 내 스웨터를 만들려고 시작해 보았지만, 어쩐지 이 흐릿한 빛깔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내버려 두었는데, 오늘은 너무 할 일이 없어서 문득 꺼내어 느릿느릿 떠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뜨는 사이에 나는 이 연한 모란빛 털실과 잿빛 비 오는 하늘이 하나로 녹아들어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순한 빛깔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몰랐던 것이다. 옷은 하늘빛과의 조화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조화란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일인가 하고 조금 놀라 멍해진 꼴이었다. 잿빛 비 오는 하늘과 연한 모란빛 털실, 그 둘을 함께 두면 둘 다 동시에 생기를 띠니 이상하다. 손에 든 털실이 갑자기 포근하게 따뜻해지고, 차가운 비 오는 하늘도 벨벳처럼 부드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모네가 그린 안개 속의 성당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이 털실의 빛깔 덕에 비로소 「취향」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좋은 취향. 그리고 어머니는 겨울의 눈 오는 하늘에 이 연한 모란빛이 얼마나 아름답게 어울리는지 다 알고 계셔서 일부러 골라 주셨는데, 나는 바보라서 싫어했다. 그런데도 어린 나에게 그것을 억지로 시키려고도 하지 않으시고 내가 좋을 대로 하게 두신 어머니. 내가 이 빛깔의 아름다움을 정말 알게 될 때까지 이십 년 동안이나 이 빛깔에 대해 한마디도 설명하지 않으시고 말없이 모르는 척하며 기다리신 어머니. 정말 좋은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이렇게 좋은 어머니를 나와 나오지 둘이서 괴롭히고 애태우고 약하게 만들어 머지않아 돌아가시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견딜 수 없는 두려움과 걱정의 구름이 훅 가슴에 솟아올랐다.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면 굴릴수록 앞날에 무척 무섭고 나쁜 일만 짐작되어, 이제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불안해지고, 손끝의 힘도 빠져서 뜨개바늘을 무릎에 놓고 크게 한숨을 쉬고, 얼굴을 쳐들고 눈을 감고
"어머니."
하고 나도 모르게 말했다.
어머니는 안방 구석의 책상에 기대어 책을 읽고 계셨는데
"응?"
하고 의아한 듯 대답하셨다.
나는 허둥대다가 일부러 큰 소리로
"드디어 장미가 피었어요. 어머니, 아셨어요? 저는 방금 알았어요. 드디어 피었어요."
안방 툇마루 바로 앞의 장미. 그것은 와다 외삼촌이 옛날에 프랑스였는지 영국이었는지 잠깐 잊었지만 아무튼 먼 곳에서 가져오신 장미로, 두세 달 전에 외삼촌이 이 산장 뜰에 옮겨 심어 주신 것이다. 오늘 아침 그것이 겨우 한 송이 핀 것을 나는 벌써 알고 있었지만, 쑥스러움을 감추려고 방금 알아챈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 보인 것이다. 꽃은 짙은 보랏빛으로, 늠름한 오만과 강인함이 있었다.
"알고 있었어."
하고 어머니는 조용히 말씀하시고
"너한테는 그런 게 무척 중대한 일인 모양이구나."
"그런지도 몰라요. 가엾어요?"
"아니, 너한테는 그런 데가 있다고 말했을 뿐이야. 부엌 성냥갑에 르나르 그림을 붙이거나 인형 손수건을 만들어 보거나, 그런 걸 좋아하지. 게다가 뜰의 장미 이야기도 네 말을 듣고 있으면 살아 있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아이가 없어서 그래요."
나 스스로도 전혀 뜻밖의 말이 입에서 나왔다. 말해 놓고 흠칫해서 겸연쩍은 마음으로 무릎 위의 뜨개질감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스물아홉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로 듣는 듯한 간지러운 낮은 목소리로 또렷이 들린 것 같아서 나는 부끄러움에 뺨이 타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다시 책을 읽으셨다. 어머니는 얼마 전부터 거즈 마스크를 쓰고 계셨는데, 그 탓인지 요즘 부쩍 말수가 적어지셨다. 그 마스크는 나오지가 시킨 대로 쓰고 계신 것이다. 나오지는 열흘쯤 전에 남방의 섬에서 검푸른 얼굴이 되어 돌아왔다.
아무 예고도 없이 어느 여름 해 질 녘 뒤쪽 쪽문으로 뜰에 들어와서
"와, 끔찍하다. 취미 고약한 집이네. 중국집 라이라이켄이야. 「슈마이 있습니다」라고 써 붙여."
그것이 나와 처음 얼굴을 마주했을 때 나오지의 인사였다.
그 이삼일 전부터 어머니는 혀를 앓아 누워 계셨다. 혀끝이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움직이면 아파서 견딜 수 없다고 하셔서 식사도 묽은 죽만 드셨다. 의사 선생님께 보이시면요? 하고 말씀드려도 고개를 저으시며
"웃음거리가 돼요."
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루골액을 발라 드렸지만 조금도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나는 묘하게 안달이 나 있었다.
그때 나오지가 돌아온 것이다.
나오지는 어머니 머리맡에 앉아 다녀왔습니다, 하고 절을 하고는 곧바로 일어나 작은 집 안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내가 그 뒤를 따라다니며
"어때? 어머니 변하셨지?"
"변했어, 변했어. 폭삭 야위었어. 빨리 죽으면 좋겠어. 이런 세상에 엄마 같은 사람은 도저히 살아갈 수 없어. 너무 비참해서 못 보겠어."
"나는?"
"천해졌어. 남자가 두셋은 있는 얼굴을 하고 있네. 술은? 오늘 밤엔 마신다."
나는 이 마을에 단 한 채뿐인 여관에 가서 안주인 오사키 씨에게 동생이 돌아왔으니 술을 조금 나눠 달라고 부탁해 보았지만, 오사키 씨는 공교롭게도 술이 지금 떨어졌다고 했다. 돌아와서 나오지에게 그렇게 전했더니 나오지는 본 적도 없는 남 같은 표정이 되어, 쳇, 흥정을 못 하니까 그렇지, 하고는 나에게서 여관 있는 곳을 듣고 뜰 나막신을 꿰고 밖으로 뛰쳐나가더니 그 뒤로 아무리 기다려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나오지가 좋아하던 구운 사과와 달걀 요리 같은 것을 만들고 식당 전구도 밝은 것으로 갈아 끼우고 한참 기다렸는데, 그러는 사이에 오사키 씨가 부엌문으로 불쑥 얼굴을 내밀더니
"저, 저기요. 괜찮을까요? 소주를 드시고 계신데요."
하고 예의 그 잉어 눈 같은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고 큰일이라도 난 듯 낮은 소리로 말했다.
"소주라니요. 그, 메틸이요?"
"아니요, 메틸은 아니지만요."
"마셔도 병나지는 않는 거죠?"
"네, 그래도……."
"마시게 해 주세요."
오사키 씨는 침을 삼키듯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다.
나는 어머니께 가서
"오사키 씨네서 마시고 있대요."
하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입을 조금 비틀며 웃으시고는
"그래. 아편은 그만둔 걸까. 너는 밥 먹어라. 그리고 오늘 밤엔 셋이서 이 방에서 자자. 나오지 이불을 가운데 두고."
나는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밤이 깊어 나오지는 거친 발소리를 내며 돌아왔다. 우리는 안방에서 셋이 한 모기장 안에 들어가 잤다.
"남방 이야기를 어머니께 들려 드리지 그래?"
하고 내가 누운 채 말하자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어. 잊어버렸어. 일본에 닿아서 기차를 탔는데 기차 창으로 논이 기가 막히게 예쁘게 보였어. 그것뿐이야. 불 꺼. 잠이 안 와."
나는 전등을 껐다. 여름 달빛이 홍수처럼 모기장 안에 넘쳐흘렀다.
이튿날 아침 나오지는 이부자리에 엎드려 담배를 피우며 멀리 바다 쪽을 바라보다가
"혀가 아프시다면서요?"
하고, 이제야 어머니가 편찮으신 걸 알아챈 듯한 말투로 말했다.
어머니는 그저 희미하게 웃으셨다.
"그건 틀림없이 심리적인 거예요. 밤에 입을 벌리고 주무시죠? 칠칠치 못하게. 마스크를 하세요. 거즈에 리바놀 액이라도 적셔서 그걸 마스크 안에 넣어 두면 돼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리며
"그건 무슨 요법이라고 해?"
"미학 요법이라고 해."
"그래도 어머니는 마스크 같은 건 틀림없이 싫어하실걸."
어머니는 마스크뿐 아니라 안대든 안경이든 얼굴에 그런 것을 다는 걸 몹시 싫어하셨을 터이다.
"네, 어머니. 마스크 하실 거예요?"
하고 내가 여쭈었더니
"하겠습니다."
하고 진지하게 낮은 소리로 대답하셔서 나는 흠칫했다. 나오지가 하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믿고 따르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었다.
내가 아침 식사 뒤에 아까 나오지가 말한 대로 거즈에 리바놀 액을 적셔 마스크를 만들어 어머니께 가져갔더니, 어머니는 말없이 받으시고는 누우신 채로 마스크 끈을 두 귀에 고분고분 거셨다. 그 모습이 정말 어린 계집아이 같아서 나는 슬펐다.
점심때가 지나 나오지는 도쿄의 친구들과 문학 쪽 스승 같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면서 양복으로 갈아입고 어머니께 이천 엔을 받아 도쿄로 나가 버렸다. 그 뒤로 벌써 열흘 가까이 되는데 나오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어머니는 날마다 마스크를 하시고 나오지를 기다리고 계신다.
"리바놀이란 좋은 약이구나. 이 마스크를 하고 있으면 혀 아픈 게 사라져 버린단다."
하고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나는 어머니가 거짓말을 하고 계신 것만 같아서 견딜 수가 없다. 이제 괜찮다고 하시고 지금은 일어나 계시지만 식욕은 역시 별로 없으신 듯하고 말수도 부쩍 줄어서 나는 무척 마음이 쓰인다. 나오지는 대체 도쿄에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그 소설가 우에하라 씨 같은 사람과 함께 도쿄를 온통 놀러 다니며 도쿄의 광기 어린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게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괴롭고 견디기 힘들어져서, 어머니께 느닷없이 장미 이야기 따위를 보고하고, 그러고는 아이가 없어서 그래요, 같은 나 자신도 뜻밖인 이상한 말을 내뱉고,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해서
"아."
하고 말하며 일어섰지만, 그렇다고 어디 갈 데도 없어서 몸 하나를 주체하지 못하고 비틀비틀 계단을 올라가 이층 양실에 들어가 보았다.
이곳은 이번에 나오지의 방이 될 곳으로, 대엿새 전에 내가 어머니와 의논해서 아래 농가의 나카이 씨에게 도움을 부탁해, 나오지의 양복장이며 책상이며 책장, 또 장서와 공책 따위가 가득 찬 나무 상자 대여섯 개, 아무튼 옛날 니시카타마치 집 나오지 방에 있던 것을 모두 이리로 옮겨 놓았다. 머지않아 나오지가 도쿄에서 돌아오면 나오지가 좋아하는 자리에 옷장이며 책장 따위를 저마다 놓기로 하고, 그때까지는 그냥 어수선하게 여기 내버려 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발 디딜 데도 없을 만큼 방 가득 어질러 놓은 채였다. 나는 무심코 발치의 나무 상자에서 나오지의 공책 한 권을 집어 들어 보았는데, 그 공책 표지에는
박꽃 일지
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안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가득 휘갈겨져 있었다. 나오지가 그 마약 중독으로 괴로워하던 무렵의 수기인 것 같았다.
불에 타 죽는 심정. 괴로워도 괴롭다고 한마디, 반 구절도 외칠 수 없는, 예로부터 일찍이 없던, 사람 세상이 시작된 이래 전례도 없는, 바닥 모를 지옥의 기척을, 얼버무리지 마시라.
사상? 거짓말이다. 주의? 거짓말이다. 이상? 거짓말이다. 질서? 거짓말이다. 성실? 진리? 순수? 다 거짓말이다. 우시지마의 등나무는 나이가 천 년, 구마노의 등나무는 수백 년이라 일컬어지며, 그 꽃송이도 앞의 것은 가장 긴 것이 아홉 자, 뒤의 것은 다섯 자 남짓이라 하니, 그저 그 꽃송이에만 마음이 설렌다.
저것도 사람의 자식. 살아 있다.
논리란 이른바 논리에 대한 사랑이다. 살아 있는 인간에 대한 사랑은 아니다.
돈과 여자. 논리는 수줍어하며 허둥지둥 걸어가 버린다.
역사, 철학, 교육, 종교, 법률, 정치, 경제, 사회, 그런 학문보다 한 처녀의 미소가 더 귀하다는 파우스트 박사의 용감한 실증.
학문이란 허영의 다른 이름이다.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되려는 노력이다.
괴테에게라도 맹세코 말할 수 있다. 나는 얼마든지 솜씨 좋게 쓸 수 있습니다. 한 편의 구성에 어긋남이 없고, 알맞은 우스개, 독자의 눈 뒤를 태우는 비애, 혹은 숙연함, 이른바 옷깃을 여미게 하는 완벽한 소설님, 낭랑하게 소리 내어 읽으면 이게 바로 무성영화 변사의 해설인가, 부끄러워서 쓸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애초에 그런 걸작 의식이 쩨쩨하다는 거다. 소설을 읽고 옷깃을 여미다니 미친 사람의 짓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하오리 하카마라도 차려입어야 하지 않겠나. 좋은 작품일수록 점잔을 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법인데. 나는 친구의 진심으로 즐거운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서, 한 편의 소설을 일부러 그르치고 서툴게 써서 엉덩방아를 찧고 머리를 긁적이며 달아난다. 아아, 그때 친구의 그 기뻐하는 얼굴이라니!
글도 모자라고 사람도 모자란 꼴로 장난감 나팔을 불어 들려 드리며, 여기 일본 제일의 바보가 있습니다, 당신은 그래도 나은 편이에요, 부디 건재하시라! 하고 비는 이 애정은 대체 무엇일까요.
친구는 아는 체하며, 저게 저 녀석 나쁜 버릇이야, 아깝단 말이지, 하고 술회하신다. 사랑받고 있다는 걸 모르신다.
불량하지 않은 인간이 있을까.
무미건조한 심정.
돈이 갖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잠든 채 자연사!
약방에 천 엔 가까운 빚이 있음. 오늘 전당포 지배인을 몰래 집에 데려와 내 방으로 들여서, 이 방에 뭐 쓸 만한 전당거리가 있느냐, 있으면 가져가라, 급히 돈이 필요하다, 하고 말했더니, 지배인은 방 안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만두시지요, 당신 물건도 아니면서, 하고 지껄였다. 좋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내 용돈으로 산 물건만 가져가라, 하고 기세 좋게 말하고 그러모은 잡동사니에 전당거리 자격이 있는 물건은 하나도 없음.
먼저, 한 손뿐인 석고상. 이것은 비너스의 오른손. 달리아꽃과도 닮은 한 손, 새하얀 한 손, 그것이 그저 받침대 위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걸 잘 보면, 이것은 비너스가 그 알몸을 남자에게 보이고, 어머나 놀라, 수줍음의 회오리, 가엾은 알몸, 엷은 다홍빛, 남김없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는 열기, 몸을 비틀며 이런 손짓, 그런 비너스의 숨도 멎을 만한 알몸의 부끄러움이, 손끝에 지문도 없고 손바닥에 손금 하나 없는 순백의 이 가냘픈 오른손에 의해, 보는 이의 가슴도 괴로워질 만큼 애처롭게 표현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른바 쓸모없는 잡동사니. 지배인은 오십 전이라고 값을 매김.
그 밖에 파리 근교의 큰 지도, 지름이 한 자 가까운 셀룰로이드 팽이, 실보다 가늘게 글씨를 쓸 수 있는 특제 펜촉, 모두 귀한 물건을 찾아냈다 싶어 산 것들뿐인데, 지배인은 웃으며 이만 가 보겠습니다, 한다. 기다려, 하고 붙잡고는 결국 또 책을 산더미처럼 지배인에게 지워 주고 돈 오 엔을 받는다. 내 책장의 책은 거의 값싼 문고본뿐이고, 게다가 헌책방에서 사들인 것이라 전당 값도 자연히 이렇게 싼 것이다.
천 엔의 빚을 해결하려다 오 엔. 세상에서 내 실력이 대강 이와 같다. 웃을 일이 아니다.
데카당?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 있을 수가 없단 말이다. 그런 말로 나를 비난하는 사람보다는 죽어라! 하고 말해 주는 사람이 더 고맙다. 속이 시원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죽어라! 하고는 말하지 않는다. 쩨쩨하고 조심성 많은 위선자들이여.
정의? 이른바 계급 투쟁의 본질은 그런 데 있지 않다. 인도? 농담하지 마라. 나는 알고 있다. 자기들의 행복을 위해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다. 죽이는 것이다. 죽어라! 하는 선고가 아니라면 무엇이냐. 얼버무리지 마라.
하지만 우리 계급에도 변변한 놈이 없다. 백치, 유령, 수전노, 미친개, 허풍선이, 「하옵나이다」, 구름 위에서 오줌 싸기.
죽어라! 하는 말을 주는 것조차 아깝다.
전쟁. 일본의 전쟁은 자포자기다.
자포자기에 휘말려 죽는 건 싫다. 차라리 혼자 죽고 싶다.
인간은 거짓말을 할 때 반드시 진지한 얼굴을 하는 법이다. 요즘 지도자들의 그 진지함. 푸흡!
남에게 존경받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과 놀고 싶다.
하지만 그런 좋은 사람들은 나와 놀아 주지 않는다.
내가 조숙한 척해 보이면 사람들은 나를 조숙하다고 수군거렸다. 내가 게으름뱅이인 척해 보이면 사람들은 나를 게으름뱅이라고 수군거렸다. 내가 소설을 못 쓰는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못 쓰는 거라고 수군거렸다. 내가 거짓말쟁이인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수군거렸다. 내가 부자인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부자라고 수군거렸다. 내가 냉담한 척해 보이면 사람들은 나를 냉담한 녀석이라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내가 정말 괴로워서 나도 모르게 신음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괴로운 척한다고 수군거렸다.
아무래도 어긋난다.
결국 자살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이렇게 괴로워해도 그저 자살로 끝날 뿐이라고 생각하니 소리 내어 울어 버렸다.
봄날 아침, 꽃 두세 송이 벙근 매화 가지에 아침 해가 비치고, 그 가지에 하이델베르크의 젊은 학생이 가냘프게 목을 매고 죽어 있었다고 한다.
"엄마! 나를 꾸짖어 주세요!"
"어떻게?"
"겁쟁이! 하고."
"그래? 겁쟁이. ……이제 됐지?"
엄마에게는 비할 데 없는 좋은 점이 있다. 엄마를 생각하면 울고 싶어진다. 엄마에게 사과하기 위해서라도 죽는 거다.
용서해 주세요. 지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해마다
눈먼 채로
학의 새끼
자라 가나 보다
가엾어라 살찌는 것도 (설날 시험 삼아 지음)
모르핀 아트로몰 나르코폰 판토폰 파비나르 판오핀 아트로핀
자존심이란 무엇이냐, 자존심이란.
인간은, 아니 남자는, (나는 뛰어나다) (나한테는 좋은 데가 있다) 따위를 생각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
남을 싫어하고 남에게 미움받는다.
지혜 겨루기.
엄숙 = 바보 같은 느낌
아무튼 말이야, 살아 있으니까 말이야, 사기를 치고 있는 게 틀림없어.
어떤 돈 꾸어 달라는 편지.
"답장을.
답장을 주세요.
그리고 그것이 꼭 좋은 소식이기를.
나는 갖가지 굴욕을 미리 생각하며 혼자 신음하고 있습니다.
연극을 하는 게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나는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습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날마다 날마다 답장을 기다리며 밤낮으로 덜덜 떨고 있습니다.
나에게 모래를 씹게 하지 마세요.
벽에서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려와 한밤중에 이부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습니다.
나를 부끄러운 꼴을 당하게 하지 마세요.
누나!"
거기까지 읽고 나는 그 박꽃 일지를 덮어 나무 상자에 도로 넣고, 창 쪽으로 걸어가 창을 활짝 열고, 하얀 비에 뿌옇게 잠긴 뜰을 내려다보며 그 무렵 일을 생각했다.
벌써 그로부터 육 년이 된다. 나오지의 이 마약 중독이 내 이혼의 원인이 되었다. 아니,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내 이혼은 나오지의 마약 중독이 없었더라도 다른 무슨 계기로 언젠가는 일어났을 것처럼, 그렇게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져 있던 일 같은 생각도 든다. 나오지는 약방에 갚을 돈이 없어서 자주 나에게 돈을 졸랐다. 나는 야마키 집안에 막 시집간 참이라 돈을 그리 마음대로 쓸 수 있을 리도 없었고, 또 시집의 돈을 친정 동생에게 몰래 대 주는 것도 무척 곤란한 일로 여겨져서, 친정에서 나를 따라온 유모 오세키 씨와 의논해 내 팔찌며 목걸이며 드레스를 팔았다. 동생은 나에게 돈을 달라는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썼다. 지금은 괴롭고 부끄러워서 누님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조차 도저히 할 수 없으니, 돈은 오세키에게 일러서, 교바시 ×정 ×번지 가야노 아파트에 사는, 누님도 이름만은 아실 소설가 우에하라 지로 씨에게 전하게 해 달라, 우에하라 씨는 악덕한 사람처럼 세상에서 평판이 나 있지만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니 안심하고 돈을 우에하라 씨에게 전해 달라, 그러면 우에하라 씨가 곧바로 나에게 전화로 알려 주기로 되어 있으니 꼭 그렇게 부탁한다, 나는 이번 중독을 엄마에게만은 들키고 싶지 않다, 엄마가 모르는 사이에 어떻게든 이 중독을 고쳐 버릴 생각이다, 이번에 누님에게 돈을 받으면 그것으로 약방 빚을 다 갚고 그다음 시오바라 별장에라도 가서 건강한 몸이 되어 돌아올 생각이다, 정말이다, 약방 빚을 다 갚으면 그날부터 마약은 딱 끊을 생각이다, 하느님께 맹세한다, 믿어 달라, 엄마에게는 비밀로 오세키를 시켜 가야노 아파트의 우에하라 씨에게, 부탁한다. 그런 이야기가 그 편지에 쓰여 있었고, 나는 그 지시대로 오세키 씨에게 돈을 들려 몰래 우에하라 씨의 아파트에 전하게 했다. 하지만 동생 편지의 맹세는 언제나 거짓이었고, 시오바라 별장에도 가지 않았으며 약물 중독은 점점 심해지기만 하는 모양이었다. 돈을 조르는 편지의 문장도 비명에 가까운 괴로운 투로, 이번에야말로 약을 끊겠다고 얼굴을 돌리고 싶을 만큼 애절한 맹세를 하니, 또 거짓말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만 또 브로치 따위를 오세키 씨에게 팔게 해서 그 돈을 우에하라 씨의 아파트에 전하게 하는 것이었다.
"우에하라 씨는 어떤 분이야?"
"몸집이 작고 안색이 나쁜, 무뚝뚝한 분이옵니다."
하고 오세키 씨는 대답했다.
"그런데 아파트에 계시는 일은 좀처럼 없사옵니다. 대개 부인과 예닐곱 살 된 따님, 두 분만 계십니다. 그 부인은 그리 예쁘지는 않지만 상냥하고 됨됨이가 훌륭한 분 같사옵니다. 그 부인에게라면 안심하고 돈을 맡길 수 있사옵니다."
그 무렵의 나는 지금의 나와 비교하면, 아니, 비교도 무엇도 안 될 만큼 전혀 다른 사람처럼 멍하고 태평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역시 잇달아, 게다가 점점 많은 돈을 졸리니 견딜 수 없이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어느 날 노가쿠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를 긴자에서 돌려보내고 혼자 걸어서 교바시의 가야노 아파트를 찾아갔다.
우에하라 씨는 방에서 혼자 신문을 읽고 계셨다. 줄무늬 겹옷에 감색 비백 무늬 하오리를 걸치고 계셨는데, 늙은 것 같기도 하고 젊은 것 같기도 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기이한 짐승 같은 이상한 첫인상을 나는 받았다.
"마누라는 지금 애하고 같이 배급을 타러……."
조금 콧소리로 띄엄띄엄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부인의 친구쯤으로 잘못 아신 모양이었다. 내가 나오지의 누나라고 말씀드렸더니 우에하라 씨는 흥, 하고 웃었다. 나는 왠지 섬뜩했다.
"나갈까요."
그렇게 말하더니 벌써 망토를 걸치고 신발장에서 새 나막신을 꺼내 신고는 성큼성큼 아파트 복도를 앞장서 걸어가셨다.
밖은 초겨울 해 질 녘. 바람이 차가웠다. 스미다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 같은 느낌이었다. 우에하라 씨는 그 강바람을 거스르듯 오른쪽 어깨를 조금 치켜올리고 쓰키지 쪽으로 말없이 걸어가셨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달리며 그 뒤를 쫓았다.
도쿄극장 뒤편 빌딩의 지하실로 들어갔다. 너덧 패의 손님이 다다미 스무 장쯤 되는 길쭉한 방에서 저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우에하라 씨는 컵으로 술을 드셨다. 그리고 나에게도 다른 컵을 가져오게 해서 술을 권했다. 나는 그 컵으로 두 잔을 마셨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우에하라 씨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언제까지나 말이 없었다. 나도 말이 없었다. 나는 이런 곳에 온 것이 태어나 처음이었지만 무척 마음이 차분하고 기분이 좋았다.
"술이라도 마시면 좋을 텐데."
"네?"
"아니, 동생분 말이에요. 알코올 쪽으로 바꾸면 좋아요. 나도 옛날에 마약 중독이 된 적이 있는데, 그건 사람들이 꺼림칙해하거든. 알코올도 비슷한 건데 알코올 쪽은 사람들이 뜻밖에 너그럽게 봐줘요. 동생분을 술꾼으로 만들어 버립시다. 괜찮죠?"
"저 한 번 술꾼을 본 적이 있어요. 설날에 제가 나가려는데, 우리 운전사가 아는 사람이 자동차 조수석에서 도깨비처럼 새빨간 얼굴로 쿨쿨 코를 골며 자고 있었어요. 제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더니 운전사가, 이 사람은 술꾼이라 어쩔 수가 없다면서 자동차에서 내려 어깨에 메고 어디론가 데려갔어요. 뼈가 없는 것처럼 축 늘어져서, 그래도 뭔가 중얼중얼하더라고요. 저는 그때 처음 술꾼이라는 걸 봤는데 재미있었어요."
"나도 술꾼이에요."
"어머, 그래도 다르잖아요?"
"당신도 술꾼이에요."
"그럴 리가요. 저는 술꾼을 본 적이 있는걸요. 영 달라요."
우에하라 씨는 처음으로 즐거운 듯 웃으시며
"그럼 동생분도 술꾼은 못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술을 마시는 사람이 되는 게 나아요. 돌아갑시다. 늦으면 곤란하잖아요?"
"아니요, 괜찮아요."
"아니, 실은 이쪽이 갑갑해서 못 견디겠어. 언니! 계산!"
"아주 비싼가요? 조금이라면 저 가지고 있는데요."
"그래요. 그럼 계산은 당신이에요."
"모자랄지도 몰라요."
나는 핸드백 안을 보고 돈이 얼마 있는지 우에하라 씨에게 알려 드렸다.
"그만큼 있으면 두세 집은 더 마실 수 있어. 사람을 놀리고 있네."
우에하라 씨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씀하시고는 웃었다.
"어디 또 마시러 가세요?"
하고 여쭈었더니 진지하게 고개를 저으며
"아니, 이제 됐어요. 택시를 잡아 줄 테니 돌아가세요."
우리는 지하실의 어두운 계단을 올라갔다. 한 걸음 앞서 올라가던 우에하라 씨가 계단 중간쯤에서 휙 이쪽으로 돌아서더니 재빠르게 나에게 키스를 했다. 나는 입술을 꼭 다문 채 그것을 받았다.
딱히 우에하라 씨를 좋아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래도 그때부터 나에게 그 「비밀」이 생겨 버린 것이다. 다다다닥, 우에하라 씨는 계단을 뛰어 올라갔고, 나는 이상하게 투명한 기분으로 천천히 올라가 밖으로 나갔더니 강바람이 뺨에 무척 기분 좋았다.
우에하라 씨가 택시를 잡아 주시고, 우리는 말없이 헤어졌다.
차에 흔들리며 나는 세상이 갑자기 바다처럼 넓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한테는 연인이 있어요."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서 잔소리를 듣고 쓸쓸해져서 불쑥 그렇게 말했다.
"알고 있어요. 호소다지요? 아무래도 단념할 수가 없는 겁니까?"
나는 말이 없었다.
그 문제가 무언가 언짢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 부부 사이에 꺼내지게 되었다. 이제 이건 틀렸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드레스 천을 잘못 재단했을 때처럼, 이제 그 천은 꿰매 붙일 수도 없고 다 버리고 다시 다른 새 천을 재단하기 시작해야 한다.
"설마 그, 배 속의 아이는"
하고 어느 날 밤 남편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너무 무서워서 덜덜 떨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남편도 젊었던 것이다. 나는 연애도 몰랐다. 사랑조차 알지 못했다. 나는 호소다 씨가 그리시는 그림에 푹 빠져서, 저런 분의 부인이 되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까, 저렇게 좋은 취향을 지닌 분과 결혼하는 게 아니라면 결혼 따위는 의미가 없다고 누구에게나 떠들고 다녔다. 그 때문에 모두에게 오해를 샀는데도 나는 연애도 사랑도 모른 채 아무렇지 않게 호소다 씨를 좋아한다고 공언하고 취소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묘하게 꼬여서, 그 무렵 내 배 속에서 잠들어 있던 작은 아기까지 남편이 의심하게 되었고, 누구 하나 이혼 같은 걸 드러내 놓고 꺼낸 사람도 없었는데 어느새 주위가 쌀쌀해져 가서, 나는 시중드는 오세키 씨와 함께 친정 어머니께 돌아왔고, 그다음 아기가 죽어서 태어났고, 나는 병이 나서 자리보전을 했고, 야마키와의 사이는 그것으로 끝나 버리고 말았다.
나오지는 내가 이혼하게 된 데 무슨 책임 같은 것을 느꼈는지, 나 죽을 거야, 하면서 엉엉 소리를 내어 얼굴이 썩어 버릴 만큼 울었다. 내가 동생에게 약방 빚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그건 무서울 만큼 큰 액수였다. 게다가 그건 동생이 실제 액수를 말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한 것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나중에 드러난 실제 총액은 그때 동생이 나에게 알려 준 액수의 거의 세 배 가까이 되었던 것이다.
"나 우에하라 씨를 만났어. 좋은 분이더라. 앞으로 우에하라 씨와 함께 술을 마시고 놀면 어때? 술이란 무척 싼 거잖아. 술값 정도라면 내가 언제든지 줄게. 약방 빚도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될 거야."
내가 우에하라 씨를 만나고, 그리고 우에하라 씨를 좋은 분이라고 한 것이 동생을 어쩐지 몹시 기쁘게 한 모양이어서, 동생은 그날 밤 나에게서 돈을 받아 곧장 우에하라 씨에게 놀러 갔다.
중독이란 그야말로 정신의 병인지도 모른다. 내가 우에하라 씨를 칭찬하고, 그리고 동생에게서 우에하라 씨의 책을 빌려 읽고 훌륭한 분이네, 같은 말을 하면, 동생은 누나 같은 사람이 알 리가 있나, 하면서도 무척 기쁜 듯이, 그럼 이걸 읽어 봐, 하고 또 다른 우에하라 씨의 책을 나에게 읽혔다. 그러는 사이에 나도 우에하라 씨의 소설을 진지하게 읽게 되어서 둘이서 이러쿵저러쿵 우에하라 씨 이야기를 했고, 동생은 거의 밤마다 우에하라 씨에게 큰소리치며 놀러 가서 점점 우에하라 씨의 계획대로 알코올 쪽으로 바뀌어 간 것 같았다. 약방 빚에 대해 내가 어머니께 몰래 의논드렸더니, 어머니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시고 한동안 가만히 계시다가 이윽고 얼굴을 드시고 쓸쓸하게 웃으시며, 생각해 봐야 소용없구나, 몇 해가 걸릴지 모르겠지만 다달이 조금씩이라도 갚아 나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그로부터 벌써 육 년이 된다.
박꽃. 아아, 동생도 괴로운 것이리라. 게다가 길이 막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리라. 그저 날마다 죽을 작정으로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리라.
차라리 과감하게 본격적인 불량배가 되어 버리면 어떨까. 그러면 동생도 오히려 편해지지 않을까.
불량하지 않은 인간이 있을까, 하고 그 공책에 쓰여 있었지만,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도 불량, 외삼촌도 불량, 어머니마저 불량처럼 여겨진다. 불량이란 상냥함을 말하는 게 아닐까.
4장
편지를 쓸까 말까 무척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로우라,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문득 떠올라 이상하게 기운이 나서 편지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나오지의 누나입니다. 잊으셨을까요. 잊으셨다면 떠올려 주세요.
나오지가 얼마 전 또 찾아가서 꽤 폐를 끼친 모양이라 죄송합니다. (하지만 실은 나오지 일은 나오지 마음대로 한 것이니 제가 나서서 사과하는 건 넌센스 같기도 합니다.) 오늘은 나오지 일이 아니라 제 일로 부탁이 있습니다. 교바시 아파트에서 공습 피해를 입으시고 지금 주소로 옮기셨다는 이야기를 나오지에게서 듣고, 도쿄 교외의 그 댁으로 찾아뵐까 하고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어머니가 얼마 전부터 또 조금 편찮으셔서 어머니를 두고 도쿄에 가는 건 도저히 할 수 없어서 이렇게 편지로 말씀드리기로 했습니다.
당신께 의논드려 보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제 이 의논은 지금까지의 『여대학』의 처지에서 보면 몹시 교활하고 더럽고 악질적인 범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아니, 우리는 지금 이대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동생 나오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듯한 당신께 제 거짓 없는 마음을 들려 드리고 가르침을 청할 생각입니다.
저는 지금의 생활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좋고 싫고를 넘어서, 도저히 이대로는 우리 세 식구가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제도 괴롭고 몸에 열이 있고 숨이 막혀 저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데, 점심이 조금 지나 아래 농가의 처녀가 빗속에 쌀을 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약속대로 옷가지를 내주었습니다. 처녀는 식당에서 저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아주 현실적인 말투로
"당신, 물건을 팔아서 앞으로 얼마나 살아갈 수 있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반년이나 일 년쯤."
하고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졸려. 졸려서 견딜 수가 없어."
하고 말했습니다.
"지친 거예요. 졸리는 신경쇠약이겠지요."
"그렇겠지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문득 제 가슴속에 리얼리즘이라는 말과 로맨티시즘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저에게는 리얼리즘이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니 온몸에 한기가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반쯤 환자 같으셔서 누웠다 일어났다 하시고, 동생은 아시다시피 마음의 중환자라, 여기 있을 때는 소주를 마시러 이 근처의 여관 겸 요릿집에 부지런히 출근하고, 사흘에 한 번은 우리 옷을 판 돈을 들고 도쿄 쪽으로 출장을 갑니다. 하지만 괴로운 건 이런 일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저 자신의 생명이 이런 일상생활 속에서, 파초 잎이 떨어지지도 못하고 썩어 가듯이 선 채로 저절로 썩어 가는 것이 똑똑히 예감되는 게 무섭습니다. 정말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대학』을 거슬러서라도 지금의 생활에서 빠져나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 당신께 의논드립니다.
저는 지금 어머니와 동생에게 똑똑히 선언하고 싶습니다. 제가 전부터 어떤 분을 사랑하고 있으며, 앞으로 그분의 애인으로 살아갈 생각이라는 것을 똑똑히 말해 버리고 싶습니다. 그분은 당신도 분명 아실 겁니다. 그분 이름의 머리글자는 M·C입니다. 저는 전부터 무언가 괴로운 일이 생기면 그 M·C에게 날아가고 싶어서 애가 타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지내 왔습니다.
M·C에게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부인도 아이도 있습니다. 또 저보다 더 예쁘고 젊은 여자 친구도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는 M·C에게 가는 것 말고는 제가 살아갈 길이 없는 심정입니다. M·C의 부인을 저는 아직 만나 본 적이 없지만 무척 상냥하고 좋은 분인 것 같습니다. 그 부인을 생각하면 저는 저 자신을 무서운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 생활은 그보다 더 무서운 것 같아서 M·C에게 기대는 것을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롭게, 저는 제 사랑을 이루고 싶습니다. 하지만 틀림없이 어머니도 동생도, 또 세상 사람들도 누구 하나 저에게 찬성해 주지 않겠지요. 당신은 어떠세요. 결국 저는 혼자 생각하고 혼자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태어나 처음 하는 일이니까요. 이 어려운 일을 주위의 모두에게 축복받으며 이룰 방법은 없을까, 몹시 까다로운 대수의 인수분해 같은 답안을 생각하듯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어딘가 한 군데 술술 예쁘게 풀리는 실마리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갑자기 명랑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M·C 쪽에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 그걸 생각하면 풀이 죽어 버립니다. 말하자면 저는 밀고 들어가는……, 뭐라고 할까요, 밀고 들어온 아내라고 해도 안 되고, 밀고 들어온 애인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것이니, M·C 쪽에서 아무래도 싫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래서 당신께 부탁드립니다. 부디 그분께 당신이 물어봐 주세요. 육 년 전 어느 날 제 가슴에 희미하고 엷은 무지개가 걸렸는데, 그것은 연애도 사랑도 아니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 무지개는 선명하게 빛깔이 짙어져 와서,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것을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소나기가 갠 하늘에 걸리는 무지개는 이윽고 덧없이 사라져 버리지만, 사람의 가슴에 걸린 무지개는 사라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부디 그분께 물어봐 주세요. 그분은 정말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셨을까요. 그야말로 비 갠 하늘의 무지개처럼 생각하고 계셨을까요. 그리고 진작 사라져 버린 것으로?
그렇다면 저도 제 무지개를 지워 버려야 합니다. 하지만 제 생명을 먼저 지우지 않으면 제 가슴의 무지개는 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답장을 빌고 있겠습니다.
우에하라 지로 님 (나의 체호프. 마이 체호프. M·C)
저는 요즘 조금씩 살이 찌고 있습니다. 동물적인 여자가 되어 간다기보다는 사람다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올여름에는 로런스의 소설을 딱 한 편 읽었습니다.
답장이 없어서 다시 한번 편지를 드립니다. 얼마 전 드린 편지는 무척 교활하고 뱀 같은 간계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걸 하나하나 꿰뚫어 보셨겠지요. 정말 저는 그 편지의 한 줄 한 줄에 온갖 잔꾀를 다 부려 보았습니다. 결국 제가 당신께 제 생활을 도와 달라는, 돈이 필요하다는 의도만, 그것뿐인 편지라고 생각하셨을 테지요. 그리고 저도 그걸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하지만 그저 제가 저를 돌봐 줄 후원자를 원하는 거라면 실례지만 특별히 당신을 골라 부탁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 밖에도 저를 귀여워해 줄 늙은 부자 같은 사람은 많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에도 이상한 혼담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분 이름은 당신도 아실지 모르겠지만, 예순이 넘은 독신 할아버지로 예술원인가 뭔가의 회원이라든가 하는, 그런 대가가 저를 데려가려고 이 산장에 찾아왔습니다. 이 대가는 우리 니시카타마치 집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우리도 같은 반상회의 정으로 가끔 만날 때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가을 해 질 녘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와 어머니 둘이 자동차로 그 대가의 집 앞을 지날 때 그분이 혼자 멍하니 댁 대문 곁에 서 계셨습니다. 어머니가 자동차 창으로 대가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셨더니, 그 대가의 까다로워 보이는 검푸른 얼굴이 확 단풍보다 빨개졌습니다.
"사랑일까요."
저는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어머니를 좋아하나 봐요."
하지만 어머니는 차분하게
"아니, 훌륭한 분이야."
하고 혼잣말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예술가를 존경하는 것은 우리 집안의 가풍인가 봅니다.
그 대가가 몇 해 전에 부인을 여의셨다던가 해서, 와다 외삼촌과 요쿄쿠 동호인인 어떤 황족 댁 분을 통해 어머니께 청혼을 해 오셨습니다. 어머니는 가즈코가 생각한 대로 대가께 직접 답장을 드리면 어떠냐고 하셨고, 저는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싫었으므로, 저는 지금 결혼할 뜻이 없습니다, 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술술 쓸 수 있었습니다.
"거절해도 되는 거죠?"
"그야 물론이지. ……나도 무리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
그 무렵 대가는 가루이자와 별장에 계셨으므로 그 별장으로 거절하는 답장을 드렸는데, 그로부터 이틀째 되는 날, 그 편지와 엇갈려 대가 자신이 이즈 온천에 일하러 오는 길에 잠깐 들렀다고 하시며, 제 답장은 아무것도 모르신 채 불쑥 이 산장에 오셨습니다. 예술가라는 사람은 나이가 몇이 되어도 이런 아이 같은 제멋대로인 일을 하는 모양이에요.
어머니는 편찮으셔서 제가 상대하러 나가 중국식 방에서 차를 내드리고
"저, 거절하는 편지가 지금쯤 가루이자와에 도착했을 거예요. 저 잘 생각해 보았는데요."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습니까."
하고 조급한 투로 말씀하시고 땀을 닦으시더니
"그래도 그건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나는 당신을, 뭐라고 할까, 말하자면 정신적으로는 행복을 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대신 물질적으로는 얼마든지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어요. 이것만은 똑똑히 말할 수 있습니다. 뭐, 터놓고 하는 이야기지만."
"말씀하시는 그 행복이라는 게 저는 잘 모르겠어요. 건방진 말씀을 드리는 것 같지만 죄송해요. 체호프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아이를 낳아 줘, 우리 아이를 낳아 줘, 하고 쓰여 있었지요. 니체였던가의 에세이에도 아이를 낳게 하고 싶은 여자, 라는 말이 있었어요. 저는 아이를 갖고 싶어요. 행복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요. 돈도 갖고 싶지만 아이를 키워 나갈 만큼의 돈이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요."
대가는 이상하게 웃으시며
"당신은 별난 분이군요. 누구에게나 생각한 대로 말할 수 있는 분이야. 당신 같은 분과 함께 있으면 내 일에도 새로운 영감이 내려올지 모르겠어요."
하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조금 느끼한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예술가의 일을 만약 정말로 제 힘으로 젊어지게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보람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고도 생각했지만, 저는 그 대가에게 안기는 제 모습을 아무리 해도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게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도 괜찮을까요?"
하고 제가 조금 웃으며 여쭈었더니 대가는 진지하게
"여자는 그래도 돼요. 여자는 멍하니 있어도 되는 거예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저 같은 여자는 역시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결혼을 생각할 수 없어요. 저는 이제 어른인걸요. 내년이면 벌써 서른이에요."
하고 말하고는 나도 모르게 입을 가리고 싶은 심정이 되었습니다.
서른. 여자에게는 스물아홉까지는 처녀의 냄새가 남아 있다. 그러나 서른 살 여자의 몸에는 이제 어디에도 처녀의 냄새가 없다. 옛날에 읽은 프랑스 소설 속의 그런 말이 훅 떠올라 견딜 수 없는 쓸쓸함에 사로잡혀 밖을 보니, 한낮의 햇빛을 받은 바다가 유리 조각처럼 눈부시게 번득이고 있었습니다. 그 소설을 읽었을 때는 그야 그렇겠지, 하고 가볍게 수긍하며 태연했습니다. 서른 살까지로 여자의 삶은 끝난다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던 그 무렵이 그립습니다. 팔찌, 목걸이, 드레스, 허리띠, 하나하나 제 몸 둘레에서 사라져 없어져 갈수록 제 몸의 처녀 냄새도 점점 엷어져 갔던 것이겠지요. 가난한 중년 여자. 아아, 싫어. 하지만 중년 여자의 생활에도 여자의 생활이 역시 있는 거예요. 요즘 그걸 알게 되었습니다. 영국인 여교사가 영국으로 돌아가실 때 열아홉 살의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게 기억납니다.
"당신은 사랑을 하면 안 돼요. 당신은 사랑을 하면 불행해져요. 사랑을 하려거든 더 크고 나서 하세요. 서른이 되고 나서 하세요."
하지만 그런 말을 들어도 저는 어리둥절해 있었습니다. 서른이 되고 나서의 일 따위는 그 무렵의 저에게는 상상도 뭣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별장을 파신다는 소문을 들었는데요."
대가는 심술궂은 표정으로 불쑥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웃었습니다.
"죄송해요. 『벚꽃 동산』이 생각났어요. 당신이 사 주시는 거지요?"
대가는 과연 예민하게 알아차리신 모양으로, 화난 듯 입을 일그러뜨리고 입을 다무셨습니다.
어떤 황족의 거처로 신엔 오십만 엔에 이 집을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흐지부지되었는데, 그 소문이라도 대가는 들으셨나 봅니다. 하지만 『벚꽃 동산』의 로파힌처럼 우리에게 여겨져서는 견딜 수 없다는 듯 완전히 기분이 상하신 모양으로, 그 뒤로 세상 이야기를 조금 하시고 돌아가 버리셨습니다.
제가 지금 당신께 바라는 것은 로파힌이 아닙니다. 그건 똑똑히 말할 수 있어요. 그저 중년 여자의 밀고 들어감을 받아 주세요.
제가 처음 당신을 만난 것은 벌써 육 년쯤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당신이라는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저 동생의 스승, 그것도 얼마간 나쁜 스승,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컵으로 술을 마시고, 그다음 당신은 조금 가벼운 장난을 치셨지요. 하지만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묘하게 몸이 가벼워진 정도의 기분이었습니다. 당신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동생의 비위를 맞추려고 당신 책을 동생에게서 빌려 읽었는데, 재미있기도 하고 재미없기도 하고 그리 열심인 독자는 아니었지만, 육 년 동안 언제부터인가 당신이 안개처럼 제 가슴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그날 밤 지하실 계단에서 우리가 한 일도 갑자기 생생하게 선명하게 떠올라서, 어쩐지 그것이 제 운명을 정할 만큼 중대한 일이었던 것 같았고, 당신이 그리워져서, 이것이 사랑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무척 막막하고 의지할 데 없어서 혼자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당신은 다른 남자들과 전혀 다릅니다. 저는 『갈매기』의 니나처럼 작가를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소설가 따위를 동경하지 않습니다. 문학소녀 같은 걸로 생각하신다면 저도 당황스럽습니다. 저는 당신의 아기를 갖고 싶습니다.
훨씬 더 전에, 당신이 아직 혼자이셨을 때, 그리고 저도 아직 야마키에게 시집가지 않았을 때 만나서 두 사람이 결혼했더라면 저도 지금처럼 괴로워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저는 이제 당신과의 결혼은 할 수 없는 것으로 단념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부인을 밀어내다니, 그건 비루한 폭력 같아서 저는 싫습니다. 저는 첩, (이 말은 하기 싫어서 견딜 수 없지만, 하지만 애인이라고 말해 본들 속되게 말하면 첩임에 틀림없으니 똑똑히 말할게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세상 보통의 첩 생활이라는 건 어려운 모양이에요. 사람들 말로는 첩은 보통 쓸모가 없어지면 버림받는다고 해요. 예순 가까이 되면 어떤 남자분이든 모두 본처에게 돌아간다고 해요. 그러니 첩만은 되는 게 아니라고 니시카타마치의 할아범과 유모가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건 세상 보통의 첩 이야기이고, 우리의 경우는 다른 것 같아요.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역시 당신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당신이 저를 좋아하신다면 두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는 게 일을 위해서도 좋겠지요. 그러면 당신의 부인도 우리 일을 납득해 주실 거예요. 이상한 억지 이론 같지만, 그래도 제 생각은 어디 하나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당신의 답장뿐입니다. 저를 좋아하시는지, 싫어하시는지,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으신지, 그 답장이 무척 무섭지만 그래도 여쭈어야 합니다. 지난번 편지에도 저는 밀고 들어온 애인이라고 썼고, 이 편지에도 중년 여자의 밀고 들어감이라고 썼지만, 지금 잘 생각해 보니 당신의 답장이 없으면 저는 밀고 들어가려 해도 아무 실마리가 없어서 혼자 멍하니 야위어 갈 뿐이겠지요. 역시 당신의 무슨 말씀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방금 문득 생각한 건데요, 당신은 소설에서는 꽤 연애 모험 같은 것을 쓰시고 세상에서도 지독한 악당처럼 소문이 나 있으면서, 실은 상식가이신 거지요. 저는 상식이라는 걸 모르겠어요. 좋아하는 일을 할 수만 있다면 그게 좋은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의 아기를 낳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낳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께 의논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셨으면 답장을 주세요. 당신의 마음을 똑똑히 알려 주세요.
비가 그치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오후 세 시입니다. 이제 일급주(여섯 홉) 배급을 받으러 갑니다. 럼주 병 두 개를 자루에 넣고, 가슴 주머니에 이 편지를 넣고, 십 분쯤 뒤에 아래 마을로 나갑니다. 이 술은 동생에게 먹이지 않습니다. 가즈코가 마십니다. 밤마다 컵으로 한 잔씩 마십니다. 술은 정말은 컵으로 마시는 거지요.
이리로 오시지 않겠어요?
M·C 님
오늘도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안개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날마다 밖에도 나가지 않고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끝내 오늘까지 소식이 없었습니다. 대체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고 계신 걸까요. 지난번 편지에 그 대가 이야기 따위를 쓴 게 잘못이었을까요. 이런 혼담 따위를 써서 경쟁심을 부추기려 한다고 생각하셨을까요. 하지만 그 혼담은 그걸로 끝이었어요. 아까도 어머니와 그 이야기를 하며 웃었습니다. 어머니는 얼마 전 혀끝이 아프다고 하셔서 나오지가 권한 대로 미학 요법을 하셨는데, 그 요법 덕에 혀 아픈 것도 낫고 요즘은 조금 기운이 나셨습니다.
아까 제가 툇마루에 서서 소용돌이치며 바람에 날려 가는 안개비를 바라보며 당신의 마음을 생각하고 있는데
"우유를 데웠으니 오너라."
하고 어머니가 식당 쪽에서 부르셨습니다.
"추우니까 아주 뜨겁게 해 봤어."
우리는 식당에서 김이 오르는 뜨거운 우유를 마시며 지난번 그 대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분하고 저는 애초에 하나도 안 어울리죠?"
어머니는 태연하게
"안 어울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이렇게 제멋대로고, 게다가 예술가라는 사람을 싫어하지도 않고, 게다가 그분은 수입도 많은 모양이고, 그런 분과 결혼하면 그야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안 돼요."
어머니는 웃으시며
"가즈코는 못된 아이로구나. 그렇게 안 된다면서 지난번에 그분과 느긋하게 이것저것 즐거운 듯 이야기했잖니. 네 마음을 모르겠다."
"어머, 그야 재미있었으니까요. 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어요. 저 조신하지 못하죠."
"아니, 착 달라붙는 거야. 가즈코는 착 달라붙어."
어머니는 오늘 무척 기운이 나셨습니다.
그리고 어제 처음 올림머리를 한 제 머리를 보시고
"올림머리는 말이야, 머리숱이 적은 사람이 하면 좋은 거야. 네 올림머리는 너무 훌륭해서 작은 금관이라도 얹어 보고 싶을 정도야. 실패구나."
"가즈코 실망. 그치만 어머니가 언젠가, 가즈코는 목덜미가 하얗고 예쁘니까 되도록 목덜미를 감추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런 것만은 기억하는구나."
"조금이라도 칭찬받은 건 평생 안 잊어요. 기억하는 편이 즐거운걸요."
"지난번에 그분한테서도 이것저것 칭찬을 들었지."
"그래요. 그래서 착 달라붙어 버렸어요. 저와 함께 있으면 영감이, 아아, 못 견디겠어요. 저 예술가는 싫어하지 않지만, 그렇게 인격자인 양 거드름 피우는 사람은 도저히 안 돼요."
"나오지의 스승은 어떤 사람이니?"
저는 섬뜩했습니다.
"잘 모르지만 어차피 나오지의 스승이니까 낙인찍힌 불량배인가 봐요."
"낙인찍힌?"
하고 어머니는 즐거운 눈빛을 하시며 중얼거리시고는
"재미있는 말이구나. 낙인이 찍혀 있다면 오히려 안전해서 좋지 않니. 방울을 목에 단 새끼 고양이 같아서 귀여울 정도야. 낙인이 안 찍힌 불량배가 무서운 거야."
"그럴까요."
기쁘고 기뻐서 스르르 몸이 연기가 되어 하늘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아시겠어요? 제가 왜 기뻤는지. 모르시겠다면……때려 줄 거예요.
한번 정말 이리로 놀러 오시지 않겠어요? 제가 나오지에게 당신을 모셔 오라고 이르는 것도 어쩐지 부자연스럽고 이상하니까, 당신 스스로 흥이 나서 불쑥 여기 들른 꼴로 해서 나오지의 안내로 오셔도 되지만, 되도록이면 혼자, 그리고 나오지가 도쿄에 출장 간 사이에 와 주세요. 나오지가 있으면 당신을 나오지에게 빼앗겨서, 틀림없이 당신들은 오사키 씨네로 소주 따위를 마시러 나가서 그걸로 끝날 게 뻔하니까요. 우리 집안은 대대로 예술가를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고린이라는 화가도 옛날에 우리 교토 집에 오래 머물며 맹장지에 고운 그림을 그려 주셨대요. 그러니 어머니도 당신이 찾아오시면 틀림없이 기뻐해 주실 거예요. 당신은 아마 이층 양실에서 주무시게 되겠지요. 잊지 말고 전등을 꺼 두세요. 저는 작은 촛불을 한 손에 들고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서, 그건 안 돼요? 너무 이르네요.
저 불량배가 좋아요. 그것도 낙인찍힌 불량배가 좋아요. 그리고 저도 낙인찍힌 불량배가 되고 싶어요. 그러는 수밖에 제가 살아갈 방법이 없을 것 같아요. 당신은 일본에서 제일가는 낙인찍힌 불량배지요. 그리고 요즘은 또 많은 사람이 당신을 더럽다, 불결하다 하며 몹시 미워하고 공격하고 있다고 동생에게서 듣고 당신이 더욱 좋아졌어요. 당신이니까 틀림없이 이런저런 여자 친구들이 있겠지만, 머지않아 점점 저 하나만 좋아하게 되실 거예요. 왠지 저는 그렇게 생각되어 어쩔 수가 없어요. 그리고 당신은 저와 함께 살며 날마다 즐겁게 일하실 수 있을 거예요. 어릴 때부터 저는 사람들에게 「너와 함께 있으면 고생을 잊는다」는 말을 자주 들어 왔어요. 저는 지금까지 사람에게 미움받은 경험이 없어요. 모두 저를 착한 아이라고 해 주셨어요. 그러니 당신도 저를 싫어하실 리는 결코 없다고 생각해요.
만나면 되는 거예요. 이제는 답장도 뭐도 필요 없어요. 뵙고 싶습니다. 제 쪽에서 도쿄의 당신 댁으로 찾아가면 가장 간단히 뵐 수 있겠지만, 어머니가 아무래도 반쯤 환자 같으셔서 저는 곁을 떠날 수 없는 간호사 겸 하녀니까 아무래도 그럴 수가 없어요. 부탁드립니다. 부디 이리로 와 주세요. 한 번만 뵙고 싶어요. 그리고 모든 것은 만나면 알게 될 일. 제 입 양쪽에 생긴 희미한 주름을 봐 주세요. 세기의 슬픔의 주름을 봐 주세요. 제 어떤 말보다 제 얼굴이 제 가슴의 마음을 똑똑히 당신께 알려 드릴 거예요.
처음 드린 편지에 제 가슴에 걸린 무지개 이야기를 썼는데, 그 무지개는 반딧불 같은, 또는 별빛 같은, 그런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에요. 그런 엷고 아득한 마음이었다면 저는 이렇게 괴로워하지 않고 점점 당신을 잊어 갈 수 있었겠지요. 제 가슴의 무지개는 불꽃의 다리예요. 가슴이 타서 눌어붙을 만큼의 마음이에요. 마약 중독자가 약이 떨어져 약을 찾을 때의 심정도 이만큼 괴롭지는 않을 거예요. 틀리지 않았다, 그릇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도 문득, 내가 큰일 날 바보 같은 짓을 하려는 게 아닐까 하고 오싹할 때도 있어요. 미친 게 아닐까 하고 돌아보는 그런 마음도 많이 있어요. 하지만 저도 냉정하게 계획하고 있는 것도 있어요. 정말 이리로 한번 와 주세요. 언제 오셔도 괜찮아요. 저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늘 기다리고 있어요. 저를 믿어 주세요.
한 번 더 만나서, 그때 싫으면 똑똑히 말해 주세요. 제 이 가슴의 불꽃은 당신이 붙이신 것이니 당신이 끄고 가 주세요. 저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끌 수가 없어요. 아무튼 만나면, 만나면 저는 살 수 있어요. 『만엽집』이나 『겐지 이야기』의 시절이었다면 제가 말씀드리는 일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었을 텐데요. 제 소망. 당신의 애첩이 되어 당신 아이의 어머니가 되는 것.
이런 편지를 혹시 비웃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여자가 살아가려는 노력을 비웃는 사람이에요. 여자의 목숨을 비웃는 사람이에요. 저는 항구의 숨 막힐 듯 고인 공기를 견딜 수 없어서, 항구 밖이 폭풍이라도 돛을 올리고 싶어요. 쉬고 있는 돛은 하나같이 더러워요. 저를 비웃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모두 쉬고 있는 돛이에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걸요.
곤란한 여자. 하지만 이 문제로 가장 괴로워하는 것은 저예요. 이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조금도 괴로워하지 않는 구경꾼이 돛을 흉하게 축 늘어뜨린 채 이 문제를 비판하는 건 넌센스예요. 저를 아무렇게나 무슨무슨 사상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무사상이에요. 저는 사상이나 철학 따위로 행동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세상에서 좋다고 하고 존경받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고 가짜라는 걸 저는 알아요. 저는 세상을 믿지 않아요. 낙인찍힌 불량배만이 제 편이에요. 낙인찍힌 불량배. 저는 그 십자가에만은 매달려 죽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만인에게 비난받아도 그래도 저는 되받아칠 수 있어요. 너희야말로 낙인이 안 찍힌 더 위험한 불량배가 아니냐고.
아시겠어요?
사랑에 이유는 없어요. 조금 이론 같은 말을 너무 많이 했네요. 동생 흉내였을 뿐인 것 같기도 해요.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에요. 한 번 더 뵙고 싶어요. 그것뿐이에요.
기다린다. 아아, 사람의 생활에는 기뻐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미워하는 여러 감정이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활의 겨우 일 퍼센트를 차지하는 감정일 뿐이고, 나머지 구십구 퍼센트는 그저 기다리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요. 행복의 발소리가 복도에서 들리기를 이제나저제나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으로 기다리다가, 텅 빈. 아아, 사람의 생활이란 너무 비참해요.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고 모두가 생각하는 이 현실. 그리고 날마다 아침부터 밤까지 덧없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어요. 너무 비참해요.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아아, 목숨을, 사람을, 세상을 기뻐해 보고 싶어요.
가로막는 도덕을 밀어젖힐 수는 없을까요?
M·C (마이 체호프의 머리글자가 아니에요. 저는 작가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마이 차일드)
5장
나는 올여름 어떤 남자에게 편지 세 통을 드렸지만 답장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는 그 밖에 살아갈 길이 없을 것 같아서, 편지 세 통에 내 가슴속을 적어, 곶 끝에서 성난 파도를 향해 뛰어내리는 심정으로 부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답장이 없었다. 동생 나오지에게 넌지시 그 사람의 근황을 물어보아도, 그 사람은 아무 달라진 데 없이 밤마다 술을 마시러 돌아다니고, 갈수록 부도덕한 작품만 써서 세상 어른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미움을 사는 모양이었다. 나오지에게 출판업을 시작하라고 권해서 나오지는 크게 들떠 있었고, 그 사람 말고도 소설가 두셋에게 고문을 맡아 달라고 하고, 돈을 대 줄 사람도 있다던가 어쩌던가. 나오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주변 분위기에 내 냄새는 조금도 스며들어 있지 않은 모양이어서, 나는 부끄럽다는 생각보다도 이 세상이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기묘한 생물처럼 느껴졌다. 나 혼자만 남겨져, 불러도 외쳐도 아무 반응 없는 가을 해 질 녘의 황야에 세워진 것 같은, 이제껏 맛본 적 없는 처참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이것이 실연이라는 것일까. 황야에 이렇게 그저 우두커니 서 있는 사이에 해가 완전히 저물어 밤이슬에 얼어 죽는 수밖에 없는 걸까 생각하면, 눈물도 나오지 않는 통곡으로 두 어깨와 가슴이 세차게 물결치고 숨도 쉴 수 없는 심정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내가 도쿄에 가서 우에하라 씨를 만나 뵙자, 내 돛은 이미 올라 항구 밖으로 나가 버렸으니 우두커니 서 있을 수는 없다, 갈 데까지 가야 한다, 하고 남몰래 도쿄 갈 채비를 시작한 바로 그때 어머니의 상태가 이상해지셨다.
어느 밤 기침이 심하게 나셔서 열을 재어 보았더니 삼십구 도였다.
"오늘 추워서 그런 거야. 내일이면 나을 거다."
하고 어머니는 기침을 하시며 작은 소리로 말씀하셨지만, 나에게는 아무래도 예사 기침이 아닌 것 같아서 내일은 어쨌든 아래 마을 의사를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이튿날 아침 열은 삼십칠 도로 내렸고 기침도 별로 나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마을 선생에게 가서 어머니가 요즘 갑자기 약해지셨다는 것, 어젯밤부터 또 열이 나고 기침도 그냥 감기 기침과 다른 것 같다는 것 등을 말씀드리고 진찰을 부탁했다.
선생은 그럼 나중에 찾아뵙지요, 이건 선물로 받은 것이옵니다만, 하시며 응접실 구석 찬장에서 배 세 개를 꺼내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점심때가 조금 지나 흰 비백 무늬 옷에 여름 하오리를 걸치고 진찰하러 오셨다. 여느 때처럼 정성껏 오래도록 청진과 타진을 하시더니 내 쪽으로 정면으로 돌아앉아
"걱정하실 것 없사옵니다. 약을 드시면 낫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묘하게 우스워서 웃음을 참으며
"주사는 어떨까요?"
하고 여쭈었더니 진지하게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옵니다. 감기이시니 조용히 계시면 곧 감기가 떨어질 것이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어머니의 열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도 내리지 않았다. 기침은 가라앉았지만 열은 아침에는 삼십칠 도 칠 부쯤이고 저녁이 되면 삼십구 도가 되었다. 의사는 그 이튿날부터 배탈이 났다던가 해서 쉬고 계셨고, 내가 약을 받으러 가서 어머니의 병세가 좋지 않다는 것을 간호사에게 알려 선생께 전해 달라고 해도, 보통 감기니 걱정할 것 없다는 답이 오고 물약과 가루약을 주셨다.
나오지는 여전히 도쿄 출장으로 벌써 열흘 넘게 돌아오지 않았다. 나 혼자 막막한 나머지 와다 외삼촌께 어머니의 상태가 달라졌다는 것을 엽서에 적어 알려 드렸다.
열이 난 지 열흘쯤 되는 날, 마을 선생이 겨우 배탈이 나았다며 진찰하러 오셨다.
선생은 어머니의 가슴을 주의 깊은 표정으로 타진하시다가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하고 외치시고는 또 내 쪽으로 정면으로 돌아앉아
"열의 원인을 알았사옵니다. 왼쪽 폐에 침윤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열은 당분간 계속되겠지만 조용히 계시면 걱정할 것 없사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럴까? 하고 생각하면서도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도 있어서, 마을 선생의 그 진단에 나는 조금 안심한 데도 있었다.
의사가 돌아가신 뒤
"다행이에요, 어머니. 아주 조금의 침윤 같은 건 대개 누구에게나 있는 거예요. 마음만 굳게 먹으시면 쉽게 나아 버릴 거예요. 올여름 날씨가 고르지 않은 게 나빴던 거예요. 여름은 싫어요. 가즈코는 여름꽃도 싫어요."
어머니는 눈을 감으신 채 웃으시며
"여름꽃 좋아하는 사람은 여름에 죽는다니까, 나도 올여름쯤 죽는 줄 알았는데 나오지가 돌아와서 가을까지 살아 버렸구나."
그런 나오지라도 역시 어머니께는 살아갈 버팀목이 되는가 생각하니 괴로웠다.
"그래도 이제 여름이 지나 버렸으니 어머니의 위험한 시기도 고비를 넘긴 셈이네요. 어머니, 뜰에 싸리가 피었어요. 그리고 마타리, 오이풀, 도라지, 솔새, 억새. 뜰이 완전히 가을 뜰이 되었어요. 시월이 되면 틀림없이 열도 내릴 거예요."
나는 그렇게 빌고 있었다. 이 구월의 무덥고 이른바 늦더위의 계절이 빨리 지나가면 좋겠다. 그리고 국화가 피고 화창한 가을볕 날씨가 이어지게 되면 틀림없이 어머니의 열도 내려 건강해지시고, 나도 그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어 내 계획도 큰 국화꽃처럼 멋지게 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아, 빨리 시월이 되고 어머니의 열이 내리면 좋겠다.
와다 외삼촌께 엽서를 드리고 일주일쯤 지나, 외삼촌이 손을 써 주셔서 예전에 궁중 시의를 지내셨던 미야케 노선생님이 간호사를 데리고 도쿄에서 진찰하러 오셨다.
노선생님은 돌아가신 아버지와도 교분이 있던 분이라 어머니는 무척 기뻐하시는 눈치였다. 게다가 노선생님은 옛날부터 행실이 점잖지 못하고 말투도 거칠었는데, 그게 또 어머니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어서, 그날은 진찰 같은 건 제쳐 두고 두 분이 이것저것 허물없는 세상 이야기에 빠져 계셨다. 내가 부엌에서 푸딩을 만들어 안방에 가져갔더니 그사이에 벌써 진찰도 끝난 모양으로, 노선생님은 청진기를 목걸이처럼 어깨에 아무렇게나 걸친 채 안방 복도의 등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나 같은 사람도 말이죠, 포장마차에 들어가서 우동을 서서 먹어요. 맛있고 맛없고가 어디 있습니까."
하고 태평하게 세상 이야기를 계속하고 계셨다. 어머니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천장을 보시며 그 이야기를 듣고 계셨다.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고 나는 안심했다.
"어떠셨어요? 이 마을 선생님은 가슴 왼쪽에 침윤이 있다고 하시던데요?"
하고 나도 갑자기 기운이 나서 미야케 선생님께 여쭈었더니, 노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뭐, 괜찮아."
하고 가볍게 말씀하셨다.
"어머, 다행이에요, 어머니."
하고 나는 진심으로 미소 지으며 어머니를 부르고
"괜찮대요."
그때 미야케 선생님이 등나무 의자에서 불쑥 일어나 중국식 방 쪽으로 가셨다. 무언가 나에게 볼일이 있어 보여서 나는 살그머니 그 뒤를 따라갔다.
노선생님은 중국식 방의 벽걸이 그늘에 가서 멈춰 서더니
"바삭바삭 소리가 들려."
하고 말씀하셨다.
"침윤이 아닌가요?"
"아니야."
"기관지 카타르는요?"
나는 벌써 눈물이 글썽해서 여쭈었다.
"아니야."
결핵!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폐렴이나 침윤이나 기관지 카타르라면 꼭 내 힘으로 고쳐 드릴 것이다. 하지만 결핵이라면, 아아, 이제 틀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발밑이 무너져 가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소리가 많이 나빠요? 바삭바삭 들려요?"
막막해서 나는 흐느껴 울게 되었다.
"오른쪽도 왼쪽도 다야."
"그래도 어머니는 아직 기운이 있으신걸요. 밥도 맛있다, 맛있다 하시면서……."
"어쩔 수 없어."
"거짓말이에요. 네, 그렇지 않죠? 버터랑 달걀이랑 우유를 많이 드시면 낫는 거죠? 몸에 저항력만 생기면 열도 내리는 거죠?"
"응, 뭐든 많이 먹는 거야."
"그렇죠? 그렇죠? 토마토도 날마다 다섯 개쯤은 드세요."
"응, 토마토는 좋지."
"그럼 괜찮죠? 낫는 거죠?"
"하지만 이번 병은 목숨을 앗아 갈지도 몰라. 그렇게 각오하는 게 좋아."
사람의 힘으로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이 이 세상에 많다는, 절망의 벽이 있다는 것을 태어나 처음 안 것 같았다.
"이 년이요? 삼 년이요?"
나는 떨면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
"몰라. 아무튼 이제 손쓸 방법이 없어."
그리고 미야케 선생님은 그날 이즈나가오카 온천에 숙소를 예약해 두셨다던가 해서 간호사와 함께 돌아가셨다. 대문 밖까지 배웅하고 정신없이 되돌아와 안방의 어머니 머리맡에 앉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어 보이자 어머니는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던?"
하고 물으셨다.
"열만 내리면 된대요."
"가슴은?"
"별일 아닌가 봐요. 봐요, 언젠가 편찮으셨을 때 같은 거래요, 틀림없이. 곧 선선해지면 쑥쑥 건강해지실 거예요."
나는 내 거짓말을 믿으려 했다. 목숨을 앗아 간다는 따위의 무서운 말은 잊으려 했다. 나에게 이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는 것은 내 몸도 함께 사라져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도저히 사실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부터는 다 잊고 이 어머니께 맛있는 것을 잔뜩잔뜩 만들어 드리자. 생선. 수프. 통조림. 간. 고기 국물. 토마토. 달걀. 우유. 맑은장국. 두부가 있으면 좋을 텐데. 두부 된장국. 흰쌀밥. 떡. 맛있어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내 물건을 다 팔아서 어머니께 대접해 드리자.
나는 일어나 중국식 방으로 갔다. 그리고 중국식 방의 긴 의자를 안방 툇마루 가까이로 옮겨 어머니의 얼굴이 보이게 앉았다. 쉬고 계신 어머니의 얼굴은 조금도 환자 같지 않았다. 눈은 아름답게 맑고 안색도 생기가 있으셨다.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일어나 세면장에 가시고, 그다음 목욕탕 곁 석 장짜리 방에서 손수 머리를 매만지시고 몸단장을 단정히 하신 다음 잠자리로 돌아오셔서, 이부자리에 앉으신 채 식사를 하시고, 그다음 누웠다 일어났다 하시며 오전 내내 신문이나 책을 읽으시고, 열이 나는 건 오후뿐이다.
"아아, 어머니는 기운이 있으시구나. 틀림없이 괜찮으실 거야."
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미야케 선생님의 진단을 세게 부정했다.
시월이 되고 국화꽃이 필 무렵이 되면, 따위를 생각하는 사이에 나는 꾸벅꾸벅 선잠이 들었다. 현실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인데도 꿈에서는 가끔 그 풍경을 보고, 아아, 또 여기 왔구나 싶은, 낯익은 숲속 호숫가로 나는 나왔다. 나는 기모노를 입은 청년과 발소리도 없이 함께 걷고 있었다. 풍경 전체가 초록빛 안개가 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호수 바닥에 하얗고 가녀린 다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아아, 다리가 가라앉아 있어요. 오늘은 아무 데도 갈 수 없어요. 여기 호텔에서 쉬어요. 분명 빈방이 있었을 거예요."
호숫가에 돌로 지은 호텔이 있었다. 그 호텔의 돌은 초록빛 안개에 촉촉이 젖어 있었다. 돌 대문 위에 금 글씨로 가늘게 HOTEL SWITZERLAND라고 새겨져 있었다. SWI까지 읽다가 불쑥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어떻게 하실까. 어머니도 이 호텔로 오실까? 하고 의아해졌다. 그리고 청년과 함께 돌 대문을 지나 앞뜰로 들어갔다. 안개 낀 뜰에 수국을 닮은 빨갛고 큰 꽃이 불타듯 피어 있었다. 어릴 때 이불 무늬에 새빨간 수국꽃이 흩어져 있는 걸 보고 묘하게 슬펐는데, 역시 빨간 수국꽃이란 정말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춥지 않아요?"
"네, 조금. 안개에 귀가 젖어서 귀 뒤가 차가워요."
하고 웃으며 말하고는
"어머니는 어떻게 하실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청년은 무척 슬프고 자애롭게 미소 지으며
"그분은 무덤 아래 계세요."
하고 대답했다.
"아."
하고 나는 작게 외쳤다. 그랬던 것이다. 어머니는 이제 안 계셨던 것이다. 어머니의 장례도 벌써 다 치렀잖은가. 아아, 어머니는 이제 돌아가셨구나 하고 깨닫자 말할 수 없는 처절함에 몸서리치다가 잠이 깼다.
베란다는 벌써 땅거미가 져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초록빛 쓸쓸함은 꿈 그대로 주위에 온통 떠돌고 있었다.
"어머니."
하고 나는 불렀다.
조용한 목소리로
"뭐 하니?"
하는 대답이 있었다.
나는 기뻐서 펄쩍 뛰어 안방으로 가서
"방금요, 저 자고 있었어요."
"그래. 뭘 하고 있나 했지. 긴 낮잠이로구나."
하고 재미있다는 듯 웃으셨다.
나는 어머니가 이렇게 우아하게 숨 쉬며 살아 계신다는 게 너무 기쁘고 고마워서 눈물이 글썽해지고 말았다.
"저녁 반찬은 뭘로 할까요? 바라시는 거 있으세요?"
나는 조금 들뜬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됐어. 아무것도 필요 없어. 오늘은 삼십구 도 오 부까지 올랐어."
갑자기 나는 납작하게 풀이 죽었다.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몰라 어둑한 방 안을 멍하니 둘러보다가 문득 죽고 싶어졌다.
"어떻게 된 걸까요. 삼십구 도 오 부라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열이 나기 전이 싫은 거야. 머리가 좀 아파지고 오한이 들고, 그다음에 열이 나."
밖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고, 비는 그친 것 같았지만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불을 켜고 식당으로 가려 하자 어머니가
"눈부시니까 켜지 마라."
하고 말씀하셨다.
"어두운 데서 가만히 누워 계시는 거 싫지 않으세요?"
하고 선 채로 여쭈었더니
"눈을 감고 누워 있으니 마찬가지야. 조금도 쓸쓸하지 않아. 오히려 눈부신 게 싫어. 앞으로 계속 안방 불은 켜지 말아 줘."
하고 말씀하셨다.
나에게는 그것도 불길한 느낌이어서 말없이 안방 불을 끄고 옆방으로 가서 옆방 스탠드에 불을 켰는데, 견딜 수 없이 쓸쓸해져서 서둘러 식당으로 가서 통조림 연어를 찬밥에 얹어 먹었더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바람은 밤이 되자 더욱 세게 불고 아홉 시쯤부터 비도 섞여 정말 폭풍이 되었다. 이삼일 전에 걷어 올린 툇마루 끝의 발이 덜컹덜컹 소리를 냈고, 나는 안방 옆방에서 로자 룩셈부르크의 『경제학 입문』을 이상한 흥분을 느끼며 읽고 있었다. 이건 내가 얼마 전 이층 나오지 방에서 가져온 것인데, 그때 이것과 함께 레닌 선집과 카우츠키의 『사회 혁명』 같은 것도 말없이 빌려 와서 옆방 내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침에 세수하러 가셨다가 돌아오시는 길에 내 책상 곁을 지나시다 문득 그 세 권의 책에 눈길을 멈추시고, 하나하나 손에 들고 보시고는 작게 한숨을 쉬시고 살그머니 다시 책상 위에 놓으시고, 쓸쓸한 얼굴로 나를 힐끗 보셨다. 하지만 그 눈빛은 깊은 슬픔으로 가득하면서도 결코 거부나 혐오의 눈빛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읽으시는 책은 위고, 뒤마 부자, 뮈세, 도데 같은 것인데, 나는 그런 감미로운 이야기책에도 혁명의 냄새가 있다는 것을 안다. 어머니처럼 타고난 교양, 이라는 말도 이상하지만, 그런 것을 지니신 분은 뜻밖에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한 일로 혁명을 맞이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나도 이렇게 로자 룩셈부르크의 책 따위를 읽으며 나 자신이 아니꼽게 느껴지는 일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역시 나는 나 나름대로 깊은 흥미를 느낀다. 여기 쓰여 있는 것은 경제학이라고 되어 있는데, 경제학으로 읽으면 참으로 시시하다. 정말 단순하고 뻔한 이야기뿐이다. 아니, 어쩌면 나는 경제학이라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에게는 조금도 재미가 없다. 인간이라는 것은 쩨쩨한 것이며, 영원히 쩨쩨한 것이라는 전제가 없으면 전혀 성립하지 않는 학문이어서, 쩨쩨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분배 문제든 뭐든 전혀 흥미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다른 데서 이상한 흥분을 느낀다. 그것은 이 책의 저자가 아무 망설임 없이 닥치는 대로 낡은 사상을 부수어 가는 무모한 용기다. 아무리 도덕에 어긋나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원스럽게 성큼성큼 달려가는 유부녀의 모습마저 떠오른다. 파괴 사상. 파괴는 가엾고 슬프고, 그리고 아름다운 것이다. 부수고 다시 세워서 완성하려는 꿈. 그리고 한번 부수면 영원히 완성의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그리운 사랑 때문에 부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혁명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로자는 마르크시즘에 슬프고 한결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
그건 십이 년 전 겨울이었다.
"너는 『사라시나 일기』의 소녀로구나. 이제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
그렇게 말하고 나에게서 멀어져 간 친구. 그 친구에게 그때 나는 레닌의 책을 읽지 않고 돌려주었던 것이다.
"읽었어?"
"미안해. 안 읽었어."
니콜라이 성당이 보이는 다리 위였다.
"왜? 어째서?"
그 친구는 나보다 한 치쯤 더 키가 크고 어학을 무척 잘하고 빨간 베레모가 잘 어울리고, 얼굴도 모나리자 같다는 평판이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표지 색이 싫었어."
"이상한 애. 그게 아니잖아? 실은 내가 무서워진 거지?"
"무섭지 않아. 나 표지 색을 견딜 수가 없었어."
"그래."
하고 쓸쓸하게 말하고는, 나를 『사라시나 일기』라고 하고, 그리고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고 정해 버렸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겨울 강을 내려다보았다.
"잘 있어. 만약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라면, 영원히 잘 있어. 바이런."
하고 말하고는 그 바이런의 시구를 원문으로 빠르게 읊고 내 몸을 가볍게 안았다.
나는 부끄러워서
"미안해."
하고 작은 소리로 사과하고 오차노미즈역 쪽으로 걸어가다 돌아보니, 그 친구는 여전히 다리 위에 선 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로 그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같은 외국인 교사의 집에 다녔지만 학교가 달랐던 것이다.
그로부터 십이 년이 지났지만 나는 역시 『사라시나 일기』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대체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혁명을 동경한 적도 없었고 사랑조차 몰랐다. 지금까지 세상 어른들은 이 혁명과 사랑 두 가지를 가장 어리석고 꺼림칙한 것으로 우리에게 가르쳤고, 전쟁 전에도 전쟁 중에도 우리는 그대로 믿었다. 그런데 패전 뒤 우리는 세상 어른들을 믿지 않게 되어, 무엇이든 그 사람들이 하는 말과 반대쪽에 진짜 살길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혁명도 사랑도 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맛있는 것이고, 너무 좋은 것이라서 어른들이 심술궂게 우리에게 신 포도라고 거짓말로 가르쳤던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확신하고 싶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스윽 맹장지가 열리고 어머니가 웃으시며 얼굴을 내미시더니
"아직 깨어 있구나. 졸리지 않니?"
하고 말씀하셨다.
책상 위의 시계를 보니 열두 시였다.
"네, 조금도 안 졸려요. 사회주의 책을 읽었더니 흥분해 버렸어요."
"그래. 술은 없니? 그럴 때는 술을 마시고 자면 잘 잘 수 있는데."
하고 놀리는 듯한 말투로 말씀하셨는데, 그 태도에는 어딘가 데카당과 종이 한 장 차이인 요염함이 있었다.
이윽고 시월이 되었지만 맑게 갠 가을 하늘은 되지 않고 장마철처럼 눅눅하고 무더운 날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열은 역시 날마다 저녁이 되면 삼십팔 도와 삼십구 도 사이를 오르내렸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나는 무서운 것을 보았다. 어머니의 손이 부어 있었던 것이다. 아침밥이 제일 맛있다고 하시던 어머니도 요즘은 이부자리에 앉아 아주 조금, 죽을 한 그릇 가볍게 드시고, 반찬도 냄새가 강한 것은 안 되어서, 그날은 송이버섯 맑은장국을 드렸는데 역시 송이 향조차 싫어지신 모양으로, 국그릇을 입가까지 가져가셨다가 그대로 다시 살그머니 상 위에 내려놓으셨다. 그때 나는 어머니의 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른손이 부풀어 동그랗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 손 괜찮으세요?"
얼굴마저 조금 창백하고 부은 것처럼 보였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언제부터 부었어요?"
어머니는 눈부신 듯한 얼굴을 하시고 말이 없으셨다. 나는 소리 내어 울고 싶어졌다. 이런 손은 어머니의 손이 아니다. 남의 아주머니 손이다. 우리 어머니의 손은 더 가늘고 작은 손이다. 내가 잘 아는 손. 상냥한 손. 귀여운 손. 그 손은 영원히 사라져 버린 걸까. 왼손은 아직 그리 붓지 않았지만 아무튼 애처로워 볼 수가 없어서 나는 눈을 돌리고 도코노마의 꽃바구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아 견딜 수 없어져서 불쑥 일어나 식당으로 갔더니 나오지가 혼자 반숙 달걀을 먹고 있었다. 어쩌다 이즈의 이 집에 있을 때도 밤이면 으레 오사키 씨네에 가서 소주를 마시고, 아침에는 언짢은 얼굴로 밥은 먹지 않고 반숙 달걀을 너덧 개 먹을 뿐이고, 그다음 다시 이층으로 올라가 누웠다 일어났다 하는 것이다.
"어머니 손이 부어서."
하고 나오지에게 말을 걸고 고개를 숙였다. 말을 이을 수 없어서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어깨로 울었다.
나오지는 말이 없었다.
나는 얼굴을 들고
"이제 틀렸어. 너 몰랐어? 저렇게 부으면 이제 틀린 거야."
하고 식탁 끝을 붙잡고 말했다.
나오지도 어두운 얼굴이 되어
"머지않았네, 그건. 쳇, 시시하게 돼 버렸어."
"나 다시 한번 고쳐 드리고 싶어. 어떻게든 고쳐 드리고 싶어."
하고 오른손으로 왼손을 쥐어짜며 말했더니 갑자기 나오지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더니
"아무것도 좋은 일이 없잖아. 우리한테는 아무것도 좋은 일이 없잖아."
하면서 마구잡이로 주먹으로 눈을 비볐다.
그날 나오지는 와다 외삼촌께 어머니의 병세를 알리고 앞으로의 일을 지시받으러 도쿄로 갔고, 나는 어머니 곁에 있지 않은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거의 울고 있었다. 아침 안개 속을 우유를 받으러 갈 때도, 거울을 보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도, 입술연지를 바르면서도 나는 늘 울고 있었다. 어머니와 보낸 행복한 날들의 이 일 저 일이 그림처럼 떠올라 얼마든지 울음이 나와 어쩔 수가 없었다. 저녁에 어두워진 뒤 중국식 방의 베란다로 나가 오래도록 흐느껴 울었다. 가을 하늘에 별이 빛나고, 발치에 남의 집 고양이가 웅크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이튿날 손의 부기는 어제보다 한층 더 심해져 있었다. 식사는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다. 귤 주스도 입안이 헐어서 따가워 마실 수 없다고 하셨다.
"어머니, 또 나오지의 그 마스크를 하시면 어때요?"
하고 웃으며 말할 생각이었는데, 말하는 사이에 괴로워져서 왁 소리를 내어 울고 말았다.
"날마다 바빠서 지치지. 간호사를 고용해 다오."
하고 조용히 말씀하셨는데, 당신 몸보다 가즈코의 몸을 걱정하고 계신다는 걸 잘 알 수 있어서 더욱 슬퍼서, 일어나 달려가 목욕탕 곁 석 장짜리 방에서 실컷 울었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 나오지가 미야케 노선생님과 간호사 두 사람을 모시고 왔다.
늘 농담만 하시던 노선생님도 그때는 화가 나신 것 같은 기색으로 성큼성큼 병실로 들어오셔서 곧바로 진찰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많이 약해지셨군요."
하고 한마디 낮게 말씀하시고 캠퍼 주사를 놓아 주셨다.
"선생님 숙소는요?"
하고 어머니는 헛소리처럼 말씀하셨다.
"또 나가오카입니다. 예약해 두었으니 걱정 마세요. 이 환자분은 남 걱정 같은 건 하지 마시고 더 제멋대로, 드시고 싶은 건 뭐든 많이 드시도록 해야 합니다. 영양을 취하면 좋아집니다. 내일 또 오겠습니다. 간호사를 하나 두고 갈 테니 써 보세요."
하고 노선생님은 병상의 어머니께 큰 소리로 말씀하시고는 나오지에게 눈짓을 하며 일어나셨다.
나오지 혼자 선생님과 따라온 간호사를 배웅하러 나갔는데, 이윽고 돌아온 나오지의 얼굴을 보니 그건 울고 싶은 것을 참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살그머니 병실에서 나와 식당으로 갔다.
"틀린 거지? 그렇지?"
"시시해."
하고 나오지는 입을 일그러뜨리며 웃고는
"쇠약이 엄청 급하게 왔나 봐. 오늘내일도 모른다고 하더라."
하고 말하는 사이에 나오지의 눈에서 눈물이 넘쳐 나왔다.
"여기저기 전보를 치지 않아도 될까?"
나는 오히려 차분히 가라앉아 말했다.
"그건 외삼촌하고도 의논했는데, 외삼촌은 지금은 그렇게 사람을 모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고 하더라. 와 주셔도 이렇게 좁은 집에서는 오히려 실례고, 이 근처엔 변변한 여관도 없고, 나가오카 온천에도 방을 두세 개씩 예약할 수는 없다고. 그러니까 우린 이제 가난해서 그런 높으신 분들을 부를 힘이 없다는 거야. 외삼촌은 곧 뒤따라올 거야. 그래도 그 사람은 옛날부터 쩨쩨해서 기댈 것도 뭣도 없어. 어젯밤만 해도 엄마 병은 제쳐 두고 나한테 실컷 설교였어. 쩨쩨한 놈한테 설교를 듣고 정신 차렸다는 사람은 동서고금에 한 사람도 없었어. 남매라도 엄마하고 그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니까, 정말 싫어진다."
"그래도 나는 어쨌든 너는 앞으로 외삼촌께 의지해야……."
"딱 질색이야. 차라리 거지가 되는 게 나아. 누나야말로 앞으로 외삼촌께 잘 매달려 봐."
"나는……."
눈물이 났다.
"나는 갈 데가 있어."
"혼담? 정해진 거야?"
"아니."
"자립이야? 일하는 여성. 그만둬, 그만둬."
"자립도 아니야. 나 말이야, 혁명가가 될 거야."
"뭐?"
나오지는 이상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때 미야케 선생님이 데려오신 간병 간호사가 나를 부르러 왔다.
"마님께서 무언가 볼일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서둘러 병실로 가서 이불 곁에 앉아
"왜요?"
하고 얼굴을 가까이 대고 여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무언가 말하고 싶으신 듯하면서 말이 없으셨다.
"물이요?"
하고 여쭈었다.
희미하게 고개를 저으셨다. 물도 아닌 모양이었다.
얼마 뒤 작은 목소리로
"꿈을 꿨어."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요? 무슨 꿈이요?"
"뱀 꿈."
나는 소스라쳤다.
"툇마루 댓돌 위에 빨간 줄무늬가 있는 암뱀이 있지. 봐 봐."
나는 몸이 싸늘해지는 것 같은 심정으로 불쑥 일어나 툇마루로 나가 유리문 너머로 보니, 댓돌 위에 뱀이 가을볕을 받으며 길게 뻗어 있었다. 나는 어질어질 현기증이 났다.
나는 너를 알아. 너는 그때보다 조금 커지고 늙었지만, 그래도 나 때문에 알을 태운 그 암뱀이구나. 네 복수는 이제 충분히 깨달았으니 저리 가. 어서 저쪽으로 가 줘.
하고 마음속으로 빌며 그 뱀을 바라보았지만 뱀은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나는 왠지 간호사에게 그 뱀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탁 세게 발을 구르며
"없어요, 어머니. 꿈 같은 건 믿을 게 못 돼요."
하고 일부러 필요 이상으로 큰 소리로 말하고 힐끗 댓돌 쪽을 보니, 뱀은 겨우 몸을 움직여 축 늘어지듯 돌에서 흘러내려 갔다.
이제 틀렸다. 틀린 것이다, 하고 그 뱀을 보며 체념이 비로소 내 마음 밑바닥에서 솟아났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도 머리맡에 작고 검은 뱀이 있었다고 하고, 또 그때 뜰의 나무라는 나무에 뱀이 감겨 있던 것을 나는 보았다.
어머니는 이부자리 위에 일어나 앉으실 기운도 없어지신 듯 늘 꾸벅꾸벅 졸고 계셨고, 이제 몸을 완전히 간병 간호사에게 맡기셨으며, 식사는 이제 거의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뱀을 보고 나서 나는 슬픔의 밑바닥을 뚫고 나간 마음의 평안이라고나 할까, 그런 행복감과도 닮은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이제 이렇게 된 이상 될 수 있는 대로 그저 어머니 곁에 있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이튿날부터 어머니 머리맡에 바짝 붙어 앉아 뜨개질 같은 것을 했다. 나는 뜨개질이든 바느질이든 남보다 훨씬 빠르지만 솜씨는 서툴렀다. 그래서 늘 어머니가 그 서툰 데를 하나하나 손을 잡고 가르쳐 주시곤 했다. 그날도 나는 딱히 뜨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어머니 곁에 바싹 붙어 있어도 부자연스럽지 않도록 모양을 갖추려고 털실 상자를 꺼내 무심한 듯 뜨개질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내 손을 가만히 바라보시다가
"네 양말을 뜨는 거지? 그렇다면 여덟 코는 더 늘려야 신을 때 갑갑하지 않아."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어릴 때 아무리 배워도 아무래도 잘 뜨지 못했는데, 그때처럼 허둥대며 부끄럽고 그리워서, 아아, 이렇게 어머니께 배우는 것도 이제 마지막이구나 생각하니 그만 눈물 때문에 코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는 이렇게 누워 계시면 조금도 괴로워 보이지 않으셨다. 식사는 이제 오늘 아침부터 전혀 넘어가지 않아서 거즈에 차를 적셔 가끔 입을 축여 드릴 뿐이었지만, 의식은 또렷하셔서 가끔 나에게 온화하게 말을 거셨다.
"신문에 폐하 사진이 나온 것 같던데, 한 번 더 보여 줘."
나는 신문의 그 부분을 어머니의 얼굴 위로 들어 보여 드렸다.
"늙으셨구나."
"아니요, 이건 사진이 나빠요. 얼마 전 사진 같은 건 무척 젊으시고 들떠 계셨어요. 오히려 이런 시대를 기뻐하고 계실 거예요."
"왜?"
"그야 폐하도 이번에 해방되셨으니까요."
어머니는 쓸쓸하게 웃으셨다. 그러고 얼마 뒤
"울고 싶어도 이제 눈물이 나오지 않게 됐어."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어머니가 지금 행복하신 게 아닐까 하고 문득 생각했다. 행복감이라는 것은 슬픔의 강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빛나는 사금 같은 것이 아닐까. 슬픔의 끝을 지나 이상하게 어슴푸레해진 심정, 그것이 행복감이라는 것이라면, 폐하도 어머니도, 그리고 나도 분명 지금 행복한 것이다. 조용한 가을 오전. 햇살이 부드러운 가을 뜰. 나는 뜨개질을 멈추고 가슴 높이에서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어머니. 저 지금까지 꽤 세상을 몰랐네요."
하고 말하고, 그다음 더 말하고 싶은 게 있었지만 안방 구석에서 정맥 주사 채비를 하고 있는 간호사가 들을까 부끄러워서 말하기를 그만두었다.
"지금까지라니……."
하고 어머니는 엷게 웃으시며 말꼬리를 잡으셨다.
"그럼 지금은 세상을 아니?"
나는 왠지 얼굴이 새빨개졌다.
"세상은 알 수 없어."
하고 어머니는 얼굴을 저쪽으로 돌리시고 혼잣말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몰라. 아는 사람 같은 건 없는 게 아닐까? 언제까지나 모두 아이야. 아무것도 알고 있지 않아."
하지만 나는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아이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응석만 부리고 있을 수는 없게 되었다. 나는 이제부터 세상과 싸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 아아, 어머니처럼 남과 다투지 않고,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고, 아름답고 슬프게 생애를 마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어머니가 마지막이고, 앞으로의 세상에는 있을 수 없는 게 아닐까. 죽어 가는 사람은 아름답다. 산다는 것. 살아남는다는 것. 그것은 무척 추하고 피비린내 나는 더러운 일 같은 생각도 든다. 나는 새끼를 배고 구멍을 파는 뱀의 모습을 다다미 위에 그려 보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단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비루해도 좋다, 나는 살아남아서 생각한 일을 해내기 위해 세상과 싸워 나가자. 어머니가 끝내 돌아가신다는 것이 정해지자, 내 로맨티시즘과 감상은 차츰 사라지고 무언가 나 자신이 방심할 수 없는 약삭빠른 생물로 변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날 점심때가 지나 내가 어머니 곁에서 입을 축여 드리고 있는데 대문 앞에 자동차가 섰다. 와다 외삼촌이 외숙모와 함께 도쿄에서 자동차로 달려와 주신 것이다. 외삼촌이 병실에 들어오셔서 어머니 머리맡에 말없이 앉으시자, 어머니는 손수건으로 얼굴 아래쪽 반을 가리시고 외삼촌의 얼굴을 바라보신 채 우셨다. 하지만 우는 얼굴이 되었을 뿐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인형 같은 느낌이었다.
"나오지는 어디 있니?"
하고 얼마 뒤 어머니가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나는 이층으로 가서 양실 소파에 드러누워 새로 나온 잡지를 읽고 있는 나오지에게
"어머니가 부르셔."
하고 말하자
"와, 또 눈물 바람이야. 너희는 잘도 참고 거기 버티고 있구나. 신경이 굵은 거야. 박정한 거야. 우리는 정말 괴로워서, 실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도저히 엄마 곁에 있을 기력이 없어."
따위를 말하며 웃옷을 입고 나와 함께 이층에서 내려왔다.
둘이 나란히 어머니 머리맡에 앉자, 어머니는 갑자기 이불 밑에서 손을 내미시더니 말없이 나오지 쪽을 가리키시고, 그다음 나를 가리키시고, 그다음 외삼촌 쪽으로 얼굴을 돌리시고 두 손바닥을 꼭 모으셨다.
외삼촌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아, 알았어요. 알았어요."
하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안심하신 듯 눈을 가볍게 감으시고 손을 이불 속으로 살그머니 넣으셨다.
나도 울고 나오지도 고개를 숙이고 오열했다.
그때 미야케 노선생님이 나가오카에서 오셔서 우선 주사를 놓으셨다. 어머니도 외삼촌을 만나서 이제 미련이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선생님, 빨리 편하게 해 주세요."
하고 말씀하셨다.
노선생님과 외삼촌은 얼굴을 마주 보며 말이 없었고, 두 분의 눈에 눈물이 반짝 빛났다.
나는 일어나 식당으로 가서 외삼촌이 좋아하시는 유부우동을 만들어 선생님과 나오지와 외숙모까지 네 사람 몫을 중국식 방으로 가져가고, 그다음 외삼촌이 선물로 가져오신 마루노우치 호텔의 샌드위치를 어머니께 보여 드리고 어머니 머리맡에 놓았더니
"바쁘지."
하고 어머니는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중국식 방에서 다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외삼촌과 외숙모는 오늘 밤 꼭 도쿄로 돌아가야 할 볼일이 있다며 나에게 문병 돈 봉투를 건네주셨다. 미야케 선생님도 간호사와 함께 돌아가시게 되어 간병 간호사에게 이런저런 처치 방법을 이르셨는데, 아무튼 아직 의식은 또렷하고 심장도 그리 약해지지 않았으니 주사만으로도 아직 너덧새는 괜찮을 거라고 해서, 그날 일단 모두 자동차로 도쿄로 돌아가셨다.
모두를 배웅하고 안방으로 가니 어머니가 나에게만 웃어 주시는 다정한 웃음을 지으시며
"바빴지."
하고 또 속삭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 얼굴은 생기가 있어 오히려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외삼촌을 만나셔서 기쁘셨던 거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아니요."
나도 조금 들뜬 기분이 되어 생긋 웃었다.
그리고 이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이야기였다.
그로부터 세 시간쯤 지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가을의 조용한 해 질 녘, 간호사가 맥을 짚고, 나오지와 나, 단 두 사람의 혈육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본의 마지막 귀부인이었던 아름다운 어머니가.
돌아가신 얼굴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 때는 확 얼굴빛이 변했는데, 어머니의 얼굴빛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숨만 끊어졌다. 그 숨이 끊어진 것도 언제인지 똑똑히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얼굴의 부기도 전날쯤부터 빠져 있었고, 뺨이 밀랍처럼 매끄럽고, 얇은 입술이 희미하게 일그러져 미소를 머금은 것처럼도 보여서, 살아 계신 어머니보다 요염했다. 나는 피에타의 마리아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6장
전투, 개시.
언제까지나 슬픔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에게는 꼭 싸워서 얻어 내야 할 것이 있었다. 새로운 윤리. 아니, 그렇게 말해도 위선 같다. 사랑. 그것뿐이다. 로자가 새로운 경제학에 기대지 않으면 살 수 없었듯이, 나는 지금 사랑 하나에 매달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예수가 이 세상의 종교가, 도덕가, 학자, 권위자의 위선을 들추어내고 하느님의 참된 사랑이라는 것을 조금도 주저함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그 열두 제자를 여러 곳으로 보내려 하실 때 제자들에게 일러 들려주신 말씀은, 나의 이 경우에도 전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았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라.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전투, 개시.
만약 내가 사랑 때문에 예수의 이 가르침을 그대로 고스란히 꼭 지키겠다고 맹세한다면 예수님은 꾸짖으실까. 왜 「연애」는 나쁘고 「사랑」은 좋은지 나는 모르겠다. 같은 것 같아서 어쩔 수가 없다. 무엇인지 모를 사랑을 위해, 연애를 위해, 그 슬픔을 위해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할 수 있는 자, 아아, 나야말로 그것이라고 우기고 싶은 것이다.
외삼촌네가 돌봐 주셔서 어머니의 장례를 이즈에서 조촐하게 치르고 본장례는 도쿄에서 마쳤다. 그 뒤로 다시 나오지와 나는 이즈 산장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쳐도 말을 하지 않는 까닭 모를 서먹한 생활을 했다. 나오지는 출판업 자본금이라는 명목으로 어머니의 보석을 모두 들고 나가, 도쿄에서 마시다 지치면 이즈 산장으로 중환자처럼 새파란 얼굴을 하고 비틀비틀 돌아와 잠을 잤다. 어느 때는 젊은 댄서 같은 여자를 데리고 왔는데, 역시 나오지도 조금 멋쩍은 듯하기에
"오늘 나 도쿄에 가도 될까? 친구 집에 오랜만에 놀러 가 보고 싶어. 이틀이나 사흘 자고 올 테니 네가 집 좀 봐 줘. 밥은 저분한테 부탁하면 되겠다."
나오지의 약점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말하자면 뱀같이 지혜롭게, 나는 핸드백에 화장품이며 빵 따위를 쑤셔 넣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만나러 도쿄로 갈 수 있었다.
도쿄 교외, 국철 오기쿠보역 북쪽 출구에서 내리면 거기서 이십 분쯤이면 그 사람의 전후 새 거처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전에 나오지에게서 넌지시 들어 두었다.
찬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었다. 오기쿠보역에 내렸을 때는 벌써 주위가 어둑해서, 나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그 사람의 주소를 대며 방향을 물어 가며 한 시간 가까이 어두운 교외 골목을 헤맸다. 너무 막막해서 눈물이 나고, 그러다 자갈길의 돌에 걸려 나막신 끈이 툭 끊어져 어쩌나 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데, 문득 오른편의 두 집이 붙은 연립 주택 가운데 한 집의 문패가 밤눈에도 하얗게 어렴풋이 떠올랐다. 거기 우에하라라고 쓰여 있는 것 같아서 한쪽 발은 버선발 그대로 그 집 현관으로 달려가 문패를 다시 잘 보니, 분명 우에하라 지로라고 적혀 있었는데 집 안은 캄캄했다.
어쩌나 하고 다시 잠깐 우두커니 서 있다가, 그다음 몸을 던지는 심정으로 현관 격자문에 쓰러지듯 바짝 붙어서
"실례합니다."
하고 말하고는 두 손 손가락 끝으로 격자를 쓰다듬으며
"우에하라 씨."
하고 작은 소리로 속삭여 보았다.
대답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현관문이 안에서 열리고, 갸름한 얼굴에 예스러운 분위기가 나는, 나보다 서너 살 위로 보이는 여자가 현관의 어둠 속에서 살짝 웃으며
"누구신지요."
하고 묻는 그 말투에는 아무 악의도 경계도 없었다.
"아니요, 저어"
하지만 나는 내 이름을 말할 기회를 놓쳐 버렸다. 이 사람에게만은 내 사랑도 이상하게 떳떳하지 못하게 여겨졌다. 쭈뼛쭈뼛 거의 비굴하게
"선생님은요? 안 계세요?"
"네."
하고 대답하고는 안됐다는 듯이 내 얼굴을 보며
"그래도 가는 곳은 대개……."
"멀리요?"
"아니요."
하고 우스운 듯 한 손을 입에 대시고는
"오기쿠보예요. 역 앞의 시라이시라는 어묵집에 가 보시면 대개 가신 곳을 아실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날아갈 듯한 심정으로
"아, 그래요?"
"어머, 신발이."
권하는 대로 나는 현관 안으로 들어가 마루 끝에 앉게 해 주셨고, 부인에게서 간이 끈이라고나 할까, 나막신 끈이 끊어졌을 때 손쉽게 고칠 수 있는 가죽 끈을 받아 나막신을 고쳤다. 그사이 부인은 촛불을 켜서 현관에 가져다주시거나 하면서
"공교롭게 전구가 둘 다 나가 버려서요. 요즘 전구는 터무니없이 비싼 데다 잘 나가서 안 돼요. 남편이 있으면 사 달랄 수 있는데 어젯밤도 그젯밤도 들어오지 않아서, 우리는 이걸로 사흘째 무일푼으로 일찍 자고 있어요."
같은 말을 정말 태평한 듯 웃으며 하셨다. 부인 뒤에는 열두세 살쯤 된, 눈이 크고 좀처럼 사람을 따르지 않을 것 같은 가냘픈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적.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하지만 이 부인과 아이는 언젠가는 나를 적으로 여기고 미워할 때가 있을 게 틀림없다. 그걸 생각하니 내 사랑도 한꺼번에 다 식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나막신 끈을 갈아 끼우고 일어나 탁탁 손뼉을 쳐서 두 손의 때를 털어 내면서, 쓸쓸함이 맹렬하게 몸 둘레로 밀려드는 기척을 견디지 못해 방으로 뛰어 올라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부인의 손을 붙잡고 울어 버릴까 하고 몹시 흔들렸지만, 문득 그 뒤의 나의 쑥스럽고 뭐라 꼴이 안 나는 맥 빠진 모습을 생각하니 싫어져서
"고맙습니다."
하고 지나치게 공손하게 절을 하고 밖으로 나가 찬 바람을 맞았다. 전투, 개시, 사랑한다, 좋아한다, 그리워한다, 정말 사랑한다, 정말 좋아한다, 정말 그리워한다, 그리운 걸 어떡해, 좋은 걸 어떡해, 그리운 걸 어떡해, 그 부인은 분명 보기 드물게 좋은 분, 그 따님도 예쁘다, 하지만 나는 하느님의 심판대에 세워진대도 조금도 나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하느님도 벌하실 리가 없다, 나는 조금도 나쁘지 않다, 정말 좋아하니까 큰소리칠 수 있다, 그 사람을 한 번 만날 때까지 이틀이든 사흘이든 한뎃잠을 자서라도 꼭.
역 앞의 시라이시라는 어묵집은 금방 찾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계시지 않았다.
"아사가야일 거예요, 틀림없이. 아사가야역 북쪽 출구로 곧장 가셔서, 글쎄요, 백오십 미터쯤일까? 철물점이 있으니까 거기서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오십 미터쯤일까? 야나기야라는 작은 요릿집이 있어요. 선생님은 요즘 야나기야의 오스테 씨하고 깨가 쏟아져서 아주 눌러살아요. 못 말려."
역으로 가서 표를 사고 도쿄행 국철을 타고 아사가야에서 내려, 북쪽 출구, 약 백오십 미터, 철물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오십 미터, 야나기야는 조용했다.
"방금 가셨는데요, 여럿이서 이제 니시오기의 지도리 아주머니네 가서 밤새 마실 거라고 하시던데요."
나보다 나이가 어리고 차분하고 품위 있고 친절해 보이는, 이 사람이 그 오스테 씨라는, 그 사람과 깨가 쏟아진다는 사람일까.
"지도리요? 니시오기 어디쯤이요?"
막막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지금 미쳐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문득 생각했다.
"잘은 모르는데요, 아마 니시오기역에서 내려서 남쪽 출구로 나가 왼쪽으로 들어간 데라던가요. 아무튼 파출소에서 물어보시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워낙 한 집에서 끝나는 분이 아니라서 지도리에 가기 전에 또 어디 걸려 있을지도 몰라요."
"지도리에 가 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또 되돌아갔다. 아사가야에서 국철 다치카와행을 타고 오기쿠보, 니시오기쿠보, 역 남쪽 출구로 내려 찬 바람을 맞으며 헤매다가 파출소를 찾아 지도리 쪽을 묻고, 그다음 가르쳐 준 대로 밤길을 뛰다시피 가서 지도리의 파란 등롱을 찾아내고는 망설이지 않고 격자문을 열었다.
봉당이 있고 바로 다다미 여섯 장쯤 되는 방이 있었는데, 담배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열 사람쯤이 방의 큰 탁자를 둘러싸고 와아 와아 몹시 시끄러운 술자리를 벌이고 있었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 아가씨도 셋 섞여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봉당에 서서 둘러보다가 찾아냈다. 그리고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다르다. 육 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것이 그, 나의 무지개, M·C, 내 삶의 보람인 그 사람일까. 육 년. 헝클어진 머리는 옛날 그대로지만 애처롭게 불그죽죽하고 성글어졌고, 얼굴은 누렇게 붓고, 눈가는 빨갛게 짓무르고, 앞니가 빠지고, 끊임없이 입을 우물거리며, 늙은 원숭이 한 마리가 등을 웅크리고 방구석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아가씨 하나가 나를 알아보고 눈짓으로 우에하라 씨에게 내가 와 있다는 것을 알렸다. 그 사람은 앉은 채 가늘고 긴 목을 빼고 나를 보더니 아무 표정 없이 턱으로 올라오라는 신호를 했다. 좌중은 나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 듯 와글와글 소란을 이어 가면서도, 조금씩 자리를 좁혀 우에하라 씨 바로 오른쪽 옆에 내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말없이 앉았다. 우에하라 씨는 내 컵에 술을 찰랑찰랑 가득 따라 주고, 그다음 자기 컵에도 술을 더 따르더니
"건배."
하고 쉰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두 컵이 힘없이 부딪쳐 짤그랑 슬픈 소리가 났다.
기요틴, 기요틴, 슈르르르, 하고 누군가가 말하자 그에 맞춰 또 하나가 기요틴, 기요틴, 슈르르르, 하고 말하고는 쨍 소리 높이 컵을 부딪치고 꿀꺽 마셨다. 기요틴, 기요틴, 슈르르르, 기요틴, 기요틴, 슈르르르, 하고 여기저기서 그 엉터리 같은 노래가 일어나 연신 컵을 부딪치며 건배를 하고 있었다. 그런 장난기 가득한 가락으로 기세를 올려 억지로 술을 목에 흘려 넣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실례."
하고 비틀거리며 돌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새 손님이 어슬렁 들어와 우에하라 씨에게 살짝 고개만 숙이고 좌중에 끼어들었다.
"우에하라 씨, 거기 말이에요, 우에하라 씨, 거기 말이죠, 아아아, 하는 데 있잖아요, 그건 어떤 식으로 말하면 돼요? 아, 아, 아, 예요? 아아, 아, 예요?"
하고 몸을 내밀고 묻는 사람은 분명 나도 그 무대 얼굴을 본 기억이 있는 신극 배우 후지타였다.
"아아, 아, 야. 아아, 아, 지도리 술은 싸지 않구나, 하는 식이지."
하고 우에하라 씨.
"돈 이야기만 해."
하고 아가씨.
"참새 두 마리가 한 푼이라는 건, 그건 비싼 거예요? 싼 거예요?"
하고 젊은 신사.
"한 푼도 남김없이 다 갚기 전에는, 이라는 말도 있고, 누구에게는 다섯 달란트, 누구에게는 두 달란트, 누구에게는 한 달란트 하는 무척 까다로운 비유도 있고, 그리스도도 셈은 꽤 꼼꼼하단 말이야."
하고 다른 신사.
"게다가 그 녀석은 술꾼이었어. 묘하게 성경에 술 비유가 많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보라,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비난받았다고 성경에 적혀 있어. 술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 술을 즐기는 사람이라니까 상당한 술꾼이었던 게 틀림없지. 우선 한 되는 마셨을걸."
하고 또 한 신사.
"그만둬, 그만둬. 아아, 아, 너희는 도덕에 겁먹어 예수를 핑계로 삼으려 하는구나. 지에 짱, 마시자. 기요틴, 기요틴, 슈르르르."
하고 우에하라 씨는 가장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와 쨍 세게 컵을 부딪치고 꿀꺽 마셨다. 술이 입가로 흘러내려 턱이 젖자 그걸 자포자기하듯 거칠게 손바닥으로 훔치고는 큰 재채기를 대여섯 번이나 연달아 하셨다.
나는 살그머니 일어나 옆방으로 가서, 병약해 보이게 창백하고 마른 안주인에게 화장실을 물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 방을 지나는데, 아까 그 가장 예쁘고 젊은 지에 짱이라는 아가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모양으로 서 있다가
"배고프지 않으세요?"
하고 다정하게 웃으며 물었다.
"네, 그래도 저 빵을 가지고 왔어요."
"아무것도 없지만요."
하고 병약해 보이는 안주인은 나른한 듯 옆으로 비스듬히 앉아 긴 화로에 기댄 채로 말했다.
"이 방에서 식사하세요. 저런 술꾼들 상대하고 있다간 밤새 아무것도 못 먹어요. 여기 앉으세요. 지에코 씨도 같이."
"어이, 기누 짱, 술 없어."
하고 옆방에서 신사가 소리쳤다.
"네, 네."
하고 대답하며 그 기누 짱이라는 서른 살 안팎의 멋스러운 줄무늬 기모노를 입은 여종업원이 술병을 쟁반에 열 개쯤 얹어 부엌에서 나타났다.
"잠깐."
하고 안주인은 불러 세워
"여기도 두 병."
하고 웃으며 말하고
"그리고 말이야, 기누 짱, 미안하지만 뒤의 스즈야에 가서 우동 두 그릇 아주 서둘러서."
나와 지에 짱은 긴 화로 곁에 나란히 앉아 손을 쬐고 있었다.
"방석을 대세요. 추워졌네요. 안 드시겠어요?"
안주인은 자기 찻잔에 술병의 술을 따르고, 그다음 다른 찻잔 두 개에도 술을 따랐다.
그리고 우리 셋은 말없이 마셨다.
"다들 세시네요."
하고 안주인은 왠지 가라앉은 말투로 말했다.
드르륵 바깥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선생님, 가져왔습니다."
하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나더니
"워낙 우리 사장이 짠돌이라서요, 이만 엔이라고 버텼는데 겨우 만 엔이에요."
"수표야?"
하고 우에하라 씨의 쉰 목소리.
"아니요, 현금인데요. 죄송합니다."
"뭐, 됐어. 영수증 써 주지."
기요틴, 기요틴, 슈르르르, 하는 건배 노래가 그사이에도 좌중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나오 씨는?"
하고 안주인은 진지한 얼굴로 지에 짱에게 물었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몰라요. 내가 나오 씨 파수꾼도 아니고."
하고 지에 짱은 당황해서 얼굴을 귀엽게 붉혔다.
"요즘 우에하라 씨하고 뭔가 언짢은 일이라도 있었던 거 아니야? 늘 꼭 같이 다녔는데."
하고 안주인은 차분하게 말했다.
"춤 쪽이 좋아졌대요. 댄서 애인이라도 생긴 거겠죠."
"나오 씨도 참, 술에다 또 여자까지니 골치 아프네."
"선생님한테 배운 거잖아요."
"그래도 나오 씨가 더 고약해. 그런 도련님 출신 망나니는……."
"저어."
나는 미소 지으며 말참견을 했다. 잠자코 있으면 오히려 이 두 분께 실례가 될 것 같았던 것이다.
"저 나오지의 누나예요."
안주인은 놀란 듯 내 얼굴을 다시 보았지만 지에 짱은 태연하게
"얼굴이 많이 닮으셨는걸요. 봉당 어두운 데 서 계신 걸 보고 저 깜짝 놀랐어요. 나오 씨인 줄 알고."
"그러셨어요."
하고 안주인은 말투를 고쳐
"이런 누추한 데를 다. 그래서요? 저, 우에하라 씨하고는 전부터?"
"네, 육 년 전에 만나서……."
말이 막히고, 고개를 숙이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종업원이 우동을 가져왔다.
"드세요. 따뜻할 때."
하고 안주인이 권했다.
"잘 먹겠습니다."
우동 김에 얼굴을 묻고 후루룩 우동을 들이켜며, 나는 지금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것의 쓸쓸함의 끝을 맛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기요틴, 기요틴, 슈르르르, 기요틴, 기요틴, 슈르르르, 하고 낮게 흥얼거리며 우에하라 씨가 우리 방에 들어와 내 곁에 털썩 책상다리를 하고 앉더니 말없이 안주인에게 큰 봉투를 건넸다.
"이것만 주고 나머지 얼버무리면 안 돼요."
안주인은 봉투 안을 보지도 않고 그걸 긴 화로 서랍에 넣으며 웃으며 말했다.
"갖고 올게. 나머지 지불은 내년이야."
"저런 말을."
만 엔. 그만큼 있으면 전구를 몇 개나 살 수 있을까. 나도 그만큼 있으면 일 년은 편히 살 수 있다.
아아, 무언가 이 사람들은 틀렸다. 하지만 이 사람들도 내 사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 내야 하는 것이라면, 이 사람들의 이 끝까지 살아 내려는 모습도 미워해서는 안 되는지도 모른다. 살아 있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아아, 그건 얼마나 견딜 수 없는, 숨이 끊어질 듯한 대사업인가.
"아무튼 말이야."
하고 옆방의 신사가 말씀하셨다.
"앞으로 도쿄에서 살아가려면 말이지, 안녕하쇼오, 하는 경박하기 짝이 없는 인사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어야지, 아니면 도저히 안 돼. 지금의 우리한테 진중함이니 성실함이니 하는 미덕을 요구하는 건 목맨 사람 다리를 잡아당기는 거나 마찬가지야. 진중? 성실? 퉤, 푸흡이다. 살아갈 수가 없잖아. 만약에 말이야, 안녕하쇼오를 가볍게 못 하면 남은 길은 셋밖에 없어. 하나는 귀농이고, 하나는 자살, 또 하나는 여자의 기둥서방이야."
"그 하나도 못 하는 불쌍한 놈한테는 하다못해 마지막 유일한 수단."
하고 다른 신사가
"우에하라 지로한테 빌붙어서 통음."
기요틴, 기요틴, 슈르르르, 기요틴, 기요틴, 슈르르르.
"잘 데가 없지."
하고 우에하라 씨는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저요?"
나는 나 자신에게 고개를 쳐든 뱀을 느꼈다. 적의. 그에 가까운 감정으로 나는 몸을 굳혔던 것이다.
"뒤섞여 잘 수 있어? 추워."
우에하라 씨는 내 노여움에는 아랑곳없이 중얼거렸다.
"무리겠죠."
하고 안주인이 말참견을 하며
"가엾어요."
쳇, 하고 우에하라 씨는 혀를 차며
"그럼 이런 데 안 오면 될 거 아냐."
나는 말이 없었다. 이 사람은 분명 내 그 편지를 읽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나는 그 사람의 말투가 풍기는 분위기에서 재빨리 알아차렸다.
"할 수 없네. 후쿠이 씨네라도 부탁해 볼까. 지에 짱, 데려다줄래? 아니, 여자들끼리면 가는 길이 위험한가. 성가시네. 아주머니, 이 사람 신발을 몰래 부엌 쪽으로 돌려놔 줘. 내가 데려다주고 올게."
밖은 한밤중의 기색이었다. 바람은 얼마간 잦아들었고 하늘에 별이 가득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걸으며
"저 뒤섞여 자는 것쯤 할 수 있는데요."
우에하라 씨는 졸린 목소리로
"응."
하고만 말했다.
"둘이서만 있고 싶었던 거죠. 그렇죠."
내가 그렇게 말하고 웃었더니 우에하라 씨는
"이러니까 싫다는 거야."
하고 입을 비틀며 쓴웃음을 지으셨다. 나는 내가 무척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술을 꽤 드시네요. 밤마다요?"
"그래, 날마다. 아침부터야."
"맛있어요? 술이."
"맛없어."
그렇게 말하는 우에하라 씨의 목소리에 나는 왠지 오싹했다.
"일은요?"
"안 돼요. 뭘 써도 바보 같고, 그리고 그저 슬퍼서 견딜 수가 없어. 생명의 황혼. 예술의 황혼. 인류의 황혼. 그것도 아니꼽네."
"위트릴로."
나는 거의 무의식중에 그렇게 말했다.
"아아, 위트릴로. 아직 살아 있는 모양이더군. 알코올의 망령. 송장이지. 최근 십 년 동안 그 녀석 그림은 묘하게 속되어서 다 틀렸어."
"위트릴로만이 아니죠? 다른 거장들도 다……."
"그래, 쇠약. 하지만 새싹도 싹인 채로 쇠약해 있어요. 서리. 프로스트. 온 세계에 때아닌 서리가 내린 것 같아요."
우에하라 씨는 내 어깨를 가볍게 안았고, 내 몸은 우에하라 씨의 망토 소매에 감싸인 꼴이 되었지만, 나는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바싹 붙어 천천히 걸었다.
길가 나무의 가지. 잎 한 장 붙어 있지 않은 가지가 가늘고 날카롭게 밤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나뭇가지란 아름다운 거네요."
하고 나도 모르게 혼잣말처럼 말했더니
"응, 꽃하고 새까만 가지의 조화가."
하고 조금 당황한 듯이 말씀하셨다.
"아니요, 저는 꽃도 잎도 싹도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은 이런 가지가 좋아요. 이래도 제대로 살아 있는 거잖아요. 마른 가지하고 달라요."
"자연만은 쇠약하지 않는다, 인가."
그렇게 말하고는 또 세찬 재채기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연달아 하셨다.
"감기 아니세요?"
"아니, 아니, 그렇지 않아. 실은 말이야, 이건 내 별난 버릇인데, 술기운이 포화점에 이르면 금세 이렇게 재채기가 나요. 취기의 바로미터 같은 거지."
"사랑은요?"
"뭐?"
"누가 계세요? 포화점쯤까지 나아간 분이."
"뭐야, 놀리면 안 돼. 여자는 다 똑같아. 복잡해서 못 써. 기요틴, 기요틴, 슈르르르. 실은 하나, 아니, 반 사람쯤 있어."
"제 편지 보셨어요?"
"봤어."
"답장은요?"
"나는 귀족은 싫어. 아무래도 어딘가에 역겨운 오만한 데가 있어. 당신 동생 나오 씨도 귀족치고는 아주 잘된 녀석이지만, 가끔 문득 도저히 상대해 줄 수 없는 건방진 데를 보여. 나는 시골 농사꾼 아들이라, 이런 개울가를 지나면 꼭 어릴 때 고향 개울에서 붕어를 낚고 송사리를 뜨던 일이 생각나서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돼."
어둠의 밑바닥에서 희미하게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개울을 따라 난 길을 우리는 걷고 있었다.
"그런데 당신들 귀족은 그런 우리의 감상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경멸하고 있어."
"투르게네프는요?"
"그 녀석은 귀족이야. 그래서 싫어."
"그래도 『사냥꾼의 수기』……."
"응, 그것만은 좀 잘 썼지."
"그건 농촌 생활의 감상……."
"그 녀석은 시골 귀족, 하는 데서 타협할까."
"저도 지금은 시골 사람이에요. 밭을 일구고 있어요. 시골 가난뱅이."
"지금도 나를 좋아해?"
거친 말투였다.
"내 아기를 갖고 싶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위가 떨어지는 듯한 기세로 그 사람의 얼굴이 다가와 막무가내로 나는 키스를 당했다. 성욕의 냄새가 나는 키스였다. 나는 그것을 받으며 눈물을 흘렸다. 굴욕의, 분한 눈물과도 닮은 쓴 눈물이었다. 눈물은 얼마든지 눈에서 넘쳐 흘렀다.
다시 둘이 나란히 걸으며
"그르쳤다. 반해 버렸어."
하고 그 사람은 말하고 웃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눈살을 찌푸리고 입을 오므렸다.
어쩔 수 없다.
말로 나타낸다면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내가 나막신을 질질 끌며 거칠게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르쳤다."
하고 그 남자는 또 말했다.
"갈 데까지 가 볼까."
"아니꼬워요."
"이 녀석."
우에하라 씨는 내 어깨를 툭 주먹으로 치고 또 큰 재채기를 하셨다.
후쿠이 씨라는 분의 댁에서는 모두 벌써 잠자리에 든 모양이었다.
"전보, 전보. 후쿠이 씨, 전보요."
하고 큰 소리로 말하며 우에하라 씨는 현관문을 두드렸다.
"우에하라야?"
하고 집 안에서 남자 목소리가 났다.
"그렇다. 왕자와 공주가 하룻밤 묵을 곳을 부탁하러 왔다. 아무래도 이렇게 추우면 재채기만 나와서 모처럼의 사랑의 도피행도 코미디가 되어 버려."
현관문이 안에서 열렸다. 나이가 꽤 든, 쉰 살은 넘었을 머리가 벗어진 작달막한 아저씨가 화려한 파자마를 입고 이상하게 수줍은 듯한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부탁해."
하고 우에하라 씨는 한마디 하고 망토도 벗지 않은 채 성큼성큼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아틀리에는 추워서 안 돼. 이층 빌릴게. 와."
내 손을 잡고 복도를 지나 막다른 데 있는 계단을 올라가 어두운 방에 들어가서 방구석의 스위치를 탁 돌렸다.
"요릿집 방 같네요."
"응, 벼락부자 취향이지. 하지만 저런 엉터리 환쟁이한테는 아까워. 운이 좋아서 공습 피해도 안 입었어. 이용하지 않을 수 없지. 자, 자자, 자자."
자기 집처럼 마음대로 벽장을 열고 이불을 꺼내 깔더니
"여기서 자. 나는 돌아갈게.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올게요. 화장실은 계단 내려가서 바로 오른쪽이야."
다다다닥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듯 요란하게 아래로 내려가더니 그 뒤로 조용해졌다.
나는 다시 스위치를 돌려 전등을 끄고, 아버지가 외국에서 사 오신 옷감으로 만든 벨벳 코트를 벗고 허리띠만 풀고 기모노 차림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지친 데다 술을 마신 탓인지 몸이 나른해서 곧바로 꾸벅꾸벅 잠이 들었다.
어느새 그 사람이 내 곁에 누워 있어서……. 나는 한 시간 가까이 필사적으로 말없이 저항했다.
문득 가엾어져서 그만두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되시는 거죠?"
"뭐, 그런 셈이지."
"당신 몸이 안 좋으신 거 아니에요? 피를 토하셨죠."
"어떻게 알아? 실은 얼마 전에 꽤 심하게 토했는데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았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하고 똑같은 냄새가 나는걸요."
"죽을 작정으로 마시는 거야. 살아 있는 게 슬퍼서 견딜 수가 없어. 쓸쓸함이니 외로움이니 그런 여유 있는 게 아니라 슬픈 거야. 음울한 탄식의 한숨이 사방 벽에서 들려오는데 우리만의 행복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자기의 행복도 영광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결코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사람은 어떤 기분이 될까. 노력. 그런 건 그저 굶주린 들짐승의 먹이가 될 뿐이야. 비참한 사람이 너무 많아. 아니꼬워?"
"아니요."
"사랑뿐이야. 네 편지에 쓴 말 그대로야."
"그래요."
나의 그 사랑은 사라져 있었다.
날이 밝았다.
방이 어슴푸레 밝아지고, 나는 곁에서 자고 있는 그 사람의 잠든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곧 죽을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얼굴이었다.
희생자의 얼굴. 고귀한 희생자.
나의 사람. 나의 무지개. 마이 차일드. 미운 사람. 교활한 사람.
이 세상에 다시없을 만큼 무척, 무척 아름다운 얼굴로 여겨져서, 사랑이 새로 되살아난 것 같아 가슴이 설레어, 그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쪽에서 키스를 했다.
슬프고 슬픈 사랑의 성취.
우에하라 씨는 눈을 감은 채 나를 안으시고는
"비뚤어져 있었던 거야. 나는 농사꾼 자식이니까."
이제 이 사람에게서 떠나지 않으리라.
"저 지금 행복해요. 사방 벽에서 탄식 소리가 들려와도 제 지금의 행복감은 포화점이에요. 재채기가 날 만큼 행복해요."
우에하라 씨는 후후, 하고 웃으시며
"하지만 이제 늦었어. 황혼이야."
"아침이에요."
동생 나오지는 그날 아침에 자살해 있었다.
7장
나오지의 유서.
누나.
틀렸어. 먼저 갈게.
나는 내가 왜 살아 있어야 하는지 그걸 전혀 모르겠어요.
살고 싶은 사람만 살면 됩니다.
인간에게 살 권리가 있듯이 죽을 권리도 있을 겁니다.
내 이런 생각은 조금도 새로울 것도 뭣도 없어요. 이런 당연한, 그야말로 원시적인 일을 사람들이 묘하게 무서워해서 드러내 놓고 입 밖에 내지 않을 뿐이에요.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무슨 일을 해서라도 반드시 강하게 끝까지 살아 내야 하고, 그건 훌륭한 일이고, 인간의 영관이라는 것도 틀림없이 그 언저리에 있겠지요. 하지만 죽는 것도 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나라는 풀은 이 세상의 공기와 햇빛 속에서 살기가 힘들어요. 살아가는 데 어딘가 한 가지가 빠져 있어요. 모자라요.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이래 봬도 있는 힘을 다한 거였어요.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내가 자라 온 계급과 전혀 다른 계급에서 자라 온 강하고 억센 풀 같은 친구들과 처음 사귀었고, 그 기세에 밀려 지지 않으려고 마약을 쓰며 반쯤 미쳐서 버텼어요. 그다음 군인이 되어서 거기서도 살아남을 마지막 수단으로 아편을 썼어요. 누나는 내 이런 심정 모르겠지.
나는 천해지고 싶었어요. 강해지고, 아니, 사나워지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것이 이른바 민중의 벗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술 정도로는 도저히 안 됐어요. 늘 어질어질 현기증이 나 있어야 했어요. 그러려면 마약밖에 없었어요. 나는 집을 잊어야 한다. 아버지의 피에 반항해야 한다. 어머니의 상냥함을 거부해야 한다. 누나에게 차갑게 굴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 민중의 방에 들어갈 입장권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천해졌어요. 천한 말을 쓰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건 반은, 아니, 육십 퍼센트는 가엾은 벼락치기 흉내였어요. 서툰 잔재주였어요. 민중에게 나는 역시 아니꼽게 젠체하는 거북한 남자였어요. 그들은 나와 진심으로 터놓고 놀아 주지 않아요. 그렇다고 이제 와서 버린 살롱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요. 이제 내 천함은 설령 육십 퍼센트는 인공의 흉내라 해도 나머지 사십 퍼센트는 진짜 천함이 되어 있어요. 나는 그 이른바 상류 살롱의 역겨운 고상함에는 토할 것 같아서 한순간도 참을 수 없게 되었고, 또 그 높으신 분들이니 명사들이니 하는 사람들도 내 버릇없음에 기가 막혀 당장 쫓아낼 거예요. 버린 세계로 돌아갈 수도 없고, 민중에게서는 악의 가득한 깍듯한 방청석을 받았을 뿐이에요.
어느 시대에나 나 같은, 말하자면 생활력이 약하고 결함 있는 풀은 사상이고 뭐고 없이 그저 저절로 사라질 운명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에게도 조금은 할 말이 있어요. 나는 정말 살기 힘든 사정을 느끼고 있어요.
인간은 다 똑같다.
이게 대체 사상일까요. 나는 이 이상한 말을 발명한 사람은 종교가도 철학자도 예술가도 아닌 것 같아요. 민중의 술집에서 솟아난 말이에요. 구더기가 꾀듯 어느새 누가 꺼낸지도 모르게 뭉게뭉게 솟아나 온 세상을 덮고, 세상을 서먹하게 만들었어요.
이 이상한 말은 민주주의와도 마르크시즘과도 전혀 상관없는 거예요. 그건 틀림없이 술집에서 못난 남자가 잘생긴 남자에게 던진 말이에요. 그냥 짜증이에요. 질투예요. 사상이고 뭐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그 술집의 강샘 섞인 고함이 묘하게 사상인 척하는 얼굴로 민중 사이를 휘젓고 다니더니, 민주주의와도 마르크시즘과도 전혀 상관없는 말일 터인데 어느새 그 정치사상과 경제사상에 엉겨 붙어 이상하게 저열한 꼴로 만들어 버렸어요. 메피스토라도 이런 무지막지한 막말을 사상으로 바꿔치기하는 재주는 역시 양심이 부끄러워 망설였을지도 몰라요.
인간은 다 똑같다.
이 얼마나 비굴한 말인가. 남을 깎아내리는 동시에 자기 자신도 깎아내리고, 아무 자존심도 없이 모든 노력을 내던지게 하는 말. 마르크시즘은 일하는 사람의 우위를 주장한다. 똑같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존엄을 주장한다. 똑같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오직 유곽의 호객꾼만이 그 말을 한다. 「헤헤, 아무리 잘난 척해 봤자 같은 인간 아니슈.」
왜 똑같다고 하는 걸까. 뛰어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걸까. 노예근성의 복수.
하지만 이 말은 참으로 외설하고 섬뜩해서, 사람들은 서로 겁을 먹고, 모든 사상이 능욕당하고, 노력은 비웃음을 사고, 행복은 부정당하고, 아름다움은 더럽혀지고, 영광은 끌어내려지고, 이른바 「세기의 불안」은 이 이상한 한마디에서 비롯된 거라고 나는 생각해요.
싫은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역시 이 말에 협박당해 겁먹고 떨며, 무얼 하려 해도 쑥스럽고, 끊임없이 불안하고, 두근두근해서 몸 둘 데가 없어서, 차라리 술이나 마약의 현기증으로 잠깐의 안정을 얻고 싶어서, 그렇게 엉망이 되었어요.
약한 거겠지요. 어딘가 한 가지 중대한 결함이 있는 풀이겠지요. 또 이러쿵저러쿵 그런 억지 이론을 늘어놓아 봤자, 뭐, 원래 노는 걸 좋아하는 거지, 게으름뱅이에, 호색한에, 제멋대로인 쾌락아인 거지, 하고 그 호객꾼이 비웃으며 말할지도 몰라요. 그리고 나는 그런 말을 들어도 지금까지는 그저 쑥스러워서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래도 나도 죽으면서 한마디 항의 같은 걸 해 두고 싶어요.
누나.
믿어 주세요.
나는 놀아도 조금도 즐겁지 않았어요. 쾌락의 임포텐츠인지도 몰라요. 나는 그저 귀족이라는 나 자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미치고, 놀고, 거칠어졌어요.
누나.
대체 우리에게 죄가 있는 걸까요. 귀족으로 태어난 게 우리 죄일까요. 그저 그 집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영원히, 이를테면 유다의 친척처럼 송구해하고 사죄하고 부끄러워하며 살아야 해요.
나는 더 일찍 죽었어야 했어요. 하지만 단 하나, 엄마의 사랑. 그걸 생각하면 죽을 수 없었어요. 인간은 자유롭게 살 권리를 가진 동시에 언제든 마음대로 죽을 권리도 가지고 있지만, 하지만 「어머니」가 살아 계신 동안은 그 죽을 권리는 미루어 두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그건 동시에 「어머니」도 죽이는 일이 되니까요.
이제는 내가 죽어도 몸을 상할 만큼 슬퍼할 사람도 없고, 아니, 누나, 나는 알아요, 나를 잃은 당신들의 슬픔이 어느 정도인지. 아니, 허울 좋은 감상은 그만두지요. 당신들은 내 죽음을 알면 틀림없이 우시겠지만, 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괴로움과, 그리고 그 싫은 삶에서 완전히 풀려나는 내 기쁨을 생각해 주신다면 당신들의 그 슬픔은 차츰 지워져 갈 거라고 생각해요.
내 자살을 비난하며, 끝까지 살아남았어야 했다고, 나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않고 입으로만 아는 체하며 비판하는 사람은, 천황 폐하께 과일 가게를 여시라고 아무렇지 않게 권할 수 있을 만큼의 대위인임에 틀림없겠지요.
누나.
나는 죽는 편이 나아요. 나에게는 이른바 생활 능력이 없어요. 돈 일로 남과 다툴 힘이 없어요. 나는 남에게 빌붙는 것조차 할 수 없어요. 우에하라 씨와 놀아도 내 몫의 셈은 늘 내가 치러 왔어요. 우에하라 씨는 그걸 귀족의 쩨쩨한 자존심이라며 무척 싫어했지만, 하지만 나는 자존심으로 치르는 게 아니라, 우에하라 씨가 일해서 번 돈으로 내가 시시하게 먹고 마시고 여자를 안는 게 무서워서 도저히 할 수 없어요. 우에하라 씨의 일을 존경하니까, 하고 간단히 잘라 말해 버려도 거짓말이고, 나도 실은 똑똑히 모르겠어요. 그저 남에게 얻어먹는 게 공연히 무서워요. 특히 그 사람이 자기 팔 하나로 번 돈으로 얻어먹는 건 괴롭고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저 우리 집에서 돈이며 물건을 들고 나가 엄마와 당신을 슬프게 하고, 나 자신도 조금도 즐겁지 않았고, 출판업 따위를 계획한 것도 그저 쑥스러움을 감추려는 겉치레였고, 실은 조금도 진심이 아니었어요. 진심으로 해 본들 남에게 얻어먹지도 못하는 남자가 돈벌이 같은 건 도저히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걸, 아무리 내가 어리석어도 그 정도는 알아요.
누나.
우리는 가난해져 버렸어요.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남에게 대접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남에게 얻어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게 되었어요.
누나.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왜 살아 있어야 하는 거야? 이제 틀렸어. 나는 죽어요. 편하게 죽을 수 있는 약이 있어요. 군대에 있을 때 손에 넣어 두었어요.
누나는 아름답고(나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누나를 자랑으로 여겼어요), 그리고 현명하니까 나는 누나 일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아요. 걱정할 자격조차 나에게는 없어요. 도둑이 피해자의 처지를 걱정해 주는 꼴이라 얼굴만 붉어질 뿐이에요. 틀림없이 누나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남편에게 기대어 끝까지 살아 나가리라고 나는 생각해요.
누나.
나에게 비밀이 하나 있어요.
오랫동안 감추고 또 감추어서, 전쟁터에 있으면서도 그 사람을 골똘히 생각하고, 그 사람 꿈을 꾸고, 깨어나서 울상을 지은 게 몇 번이었는지 몰라요.
그 사람 이름은 도저히 누구에게도, 입이 썩어도 말할 수 없어요. 나는 이제 죽으니까 하다못해 누나에게만이라도 똑똑히 말해 둘까 생각했지만, 역시 아무래도 무서워서 그 이름을 말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나는 그 비밀을 절대 비밀인 채로 끝내 이 세상에서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가슴 깊이 간직한 채 죽는다면, 내 몸이 화장되어도 가슴속만 비릿하게 타다 남을 것 같아서 불안해 견딜 수 없으니, 누나에게만 에둘러서 어렴풋이, 픽션처럼 해서 알려 둘게요. 픽션이라고 해도 누나는 틀림없이 금방 그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차릴 거예요. 픽션이라기보다는 그저 가명을 쓰는 정도의 얼버무림이니까요.
누나는 아실까?
누나는 그 사람을 알 테지만, 아마 만난 적은 없을 거예요. 그 사람은 누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요. 외꺼풀에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고, 머리에 파마 같은 건 해 본 적이 없이 늘 바짝 당겨 묶은 머리라고 하나, 그런 수수한 머리 모양을 하고, 그리고 무척 가난한 옷차림이지만 칠칠치 못한 차림은 아니고 늘 단정하게 입어서 깨끗해요. 그 사람은 전후 새로운 화풍의 그림을 잇달아 발표해서 갑자기 유명해진 어떤 중년 서양화가의 부인인데, 그 서양화가의 행실은 무척 난폭하고 거친데도 그 부인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늘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살고 있어요.
나는 일어서서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 사람도 일어서서 아무 경계도 없이 내 곁으로 다가와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왜요?"
하고 보통 목소리로 말하고는, 정말 의아한 듯 고개를 조금 갸웃하고 한동안 내 눈을 계속 바라보았어요. 그 사람의 눈에는 아무 사심도 꾸밈도 없었어요. 나는 여자와 눈이 마주치면 허둥대며 눈을 피해 버리는 성미인데, 그때만은 조금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두 얼굴이 한 자쯤 떨어진 채로 육십 초 넘게 무척 좋은 기분으로 그 사람의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그만 미소 짓고 말았어요.
"하지만……."
"금방 돌아올 거예요."
하고 역시 진지한 얼굴로 말했어요.
정직이란 이런 느낌의 표정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하고 문득 생각했어요. 그건 수신 교과서 냄새 나는 딱딱한 덕이 아니라, 정직이라는 말로 표현된 본래의 덕은 이렇게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또 오겠습니다."
"그래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아무것도 아닌 대화예요. 내가 어느 여름날 오후 그 서양화가의 아파트를 찾아갔는데 서양화가는 없었고, 그래도 곧 돌아올 테니 올라와서 기다리시면 어떠냐는 부인의 말을 따라 방에 올라가 삼십 분쯤 잡지 같은 걸 읽다가, 돌아올 것 같지 않아서 일어나 작별 인사를 했다, 그것뿐이었지만, 나는 그날 그때의 그 사람의 눈동자에 괴로운 사랑을 해 버리고 말았어요.
고귀함이라고나 할까요. 내 주위의 귀족 가운데는 엄마는 몰라도, 그렇게 경계 없는 「정직한」 눈빛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만은 단언할 수 있어요.
그다음 나는 어느 겨울 해 질 녘에 그 사람의 옆얼굴에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어요. 역시 그 서양화가의 아파트에서 서양화가의 상대를 하느라 고타쓰에 들어가 아침부터 술을 마시며 서양화가와 함께 일본의 이른바 문화인들을 실컷 헐뜯으며 웃고 뒹굴다가, 이윽고 서양화가는 쓰러져 크게 코를 골며 잠들었고, 나도 누워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사뿐히 담요가 덮였어요. 실눈을 뜨고 보니 도쿄의 겨울 저녁 하늘은 물빛으로 맑고, 부인은 딸아이를 안고 아파트 창틀에 아무 일도 없는 듯 걸터앉아 있었어요. 부인의 단정한 옆얼굴이 물빛의 먼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그 르네상스 시절의 옆얼굴 그림처럼 선명하게 윤곽이 그어져 떠올랐어요. 나에게 살며시 담요를 덮어 준 그 친절은 아무 교태도 아니고 욕심도 아니었어요. 아아, 휴머니티라는 말은 이런 때에야말로 쓰여서 되살아나는 말이 아닐까. 사람으로서 당연한 쓸쓸한 배려로 거의 무의식처럼 행해진 것처럼, 그림과 꼭 같은 고요한 기척으로 먼 데를 바라보고 계셨어요.
나는 눈을 감고 그립고 애가 타서 미칠 것 같은 심정이 되어, 눈꺼풀 뒤에서 눈물이 넘쳐 나와 담요를 머리까지 뒤집어써 버렸어요.
누나.
내가 그 서양화가에게 놀러 간 것은 처음에는 그 서양화가 작품의 독특한 화풍과 그 밑에 숨은 열광적인 열정에 취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사귐이 깊어질수록 그 사람의 무교양, 엉터리, 지저분함에 흥이 깨지고, 그와 반비례해서 그 사람 부인의 마음씨의 아름다움에 끌려서, 아니, 올바른 사랑을 지닌 사람이 그립고 사모해서, 부인의 모습을 한 번 보고 싶어서 그 서양화가의 집에 놀러 가게 되었어요.
그 서양화가의 작품에 조금이라도 예술의 고귀한 냄새라고나 할 만한 것이 드러나 있다면, 그건 부인의 상냥한 마음이 비친 것이 아닐까 하고까지 나는 지금 생각해요.
그 서양화가는, 이제야말로 느낀 대로 똑똑히 말하지만, 그저 술고래에 놀기 좋아하는 교묘한 장사꾼이에요. 놀 돈이 탐나서 그저 엉터리로 캔버스에 물감을 처발라 유행의 기세를 타고 거드름을 피우며 비싸게 팔고 있어요. 그 사람이 가진 건 시골뜨기의 뻔뻔함, 어리석은 자신감, 교활한 장사 수완, 그것뿐이에요.
아마 그 사람은 남의 그림은, 외국 사람 그림이든 일본 사람 그림이든 아무것도 모를 거예요. 게다가 자기가 그리는 그림도 무슨 뜻인지 스스로도 모를 거예요. 그저 놀 돈이 탐나서 정신없이 물감을 캔버스에 처바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그 사람은 자기의 그런 엉터리에 아무 의심도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없는 것 같다는 거예요.
그저 의기양양해요. 워낙 자기가 그린 그림을 자기가 모르는 사람이니 남의 일의 좋은 점 같은 걸 알 리가 없고, 아이고, 헐뜯고 또 헐뜯고.
그러니까 그 사람의 데카당 생활은 입으로는 이러쿵저러쿵 괴로운 듯한 말을 하지만, 실은 어리석은 시골뜨기가 오래 동경하던 도시에 나와 자기 자신도 뜻밖일 만큼 성공해서 우쭐해져 놀러 다니고 있을 뿐이에요.
언젠가 내가
"친구들이 다 게으름 피우며 놀고 있을 때 나 혼자 공부하는 건 쑥스럽고 무서워서 도저히 안 되니까, 조금도 놀고 싶지 않아도 나도 끼어서 논다."
하고 말했더니 그 중년 서양화가는
"뭐야? 그게 귀족 기질이라는 건가. 징그럽군. 나는 남이 노는 걸 보면 나도 놀지 않으면 손해라고 생각해서 크게 놀지."
하고 대답하며 태연했는데, 나는 그때 그 서양화가를 속속들이 경멸했어요. 이 사람의 방탕에는 고뇌가 없다. 오히려 바보 같은 놀이를 자랑으로 삼는다. 진짜 바보 쾌락아.
하지만 이 서양화가의 험담을 이 이상 이것저것 늘어놓아도 누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고, 또 나도 이제 죽으면서 역시 그 사람과의 오랜 사귐을 생각하면 그립고, 한 번 더 만나 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뿐 미운 마음은 조금도 없고, 그 사람도 외로움을 타는, 무척 좋은 점을 많이 지닌 사람이니까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요.
다만 나는 누나에게, 내가 그 사람의 부인을 그리워하며 허둥대며 괴로웠다는 것만 알아주면 돼요. 그러니 누나는 그걸 알아도 굳이 누군가에게 그 일을 하소연하거나, 동생이 살아생전의 마음을 이루게 해 주겠다거나, 그런 아니꼬운 참견은 절대로 할 필요가 없고, 누나 혼자만 알고 몰래, 아아, 그랬구나, 하고 생각해 주면 그걸로 돼요. 더 욕심을 낸다면, 이런 내 부끄러운 고백으로 하다못해 누나만이라도 내 지금까지의 목숨의 괴로움을 더 깊이 알아준다면 나는 무척 기쁘겠어요.
나는 언젠가 부인과 손을 맞잡는 꿈을 꾸었어요. 그리고 부인도 역시 훨씬 전부터 나를 좋아했다는 걸 알았는데, 꿈에서 깨어나도 내 손바닥에 부인의 손가락 온기가 남아 있어서, 나는 이제 이것만으로 만족하고 단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도덕이 무서웠던 게 아니라, 나는 그 반쯤 미친, 아니, 거의 미치광이라고 해도 좋을 그 서양화가가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단념하려고, 가슴의 불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닥치는 대로, 그 서양화가조차 어느 밤 얼굴을 찡그렸을 만큼 심하게, 엉망으로 여러 여자와 미친 듯이 놀았어요. 어떻게든 부인의 환영에서 벗어나 잊고 아무렇지 않게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안 됐어요. 나는 결국 한 여자밖에 사랑하지 못하는 성미의 남자예요. 똑똑히 말할 수 있어요. 나는 부인 말고 다른 여자 친구를 한 번도 아름답다거나 애틋하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누나.
죽기 전에 단 한 번만 쓰게 해 주세요.
……스가 짱.
그 부인의 이름이에요.
내가 어제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 댄서(이 여자에게는 본질적으로 어리석은 데가 있어요)를 데리고 산장에 온 건, 하지만 설마 오늘 아침 죽으려고 온 건 아니었어요. 언젠가 가까운 시일에 꼭 죽을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어제 여자를 데리고 산장에 온 건 여자가 여행을 조르고 나도 도쿄에서 노는 데 지쳐서, 이 어리석은 여자와 이삼일 산장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해서였어요. 누나에게는 조금 곤란했겠지만 아무튼 여기 함께 와 봤더니 누나는 도쿄의 친구에게 갔고, 그때 문득 나는 죽으려면 지금이다, 하고 생각했어요.
나는 옛날부터 니시카타마치 그 집의 안쪽 방에서 죽고 싶었어요. 길거리나 들판에서 죽어서 구경꾼들에게 시체를 이리저리 만져지는 건 아무래도 싫었어요. 하지만 니시카타마치 그 집은 남의 손에 넘어갔고, 이제는 역시 이 산장에서 죽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내 자살을 처음 발견하는 건 누나일 테고, 그러면 누나가 그때 얼마나 놀라고 무서워할까 생각하면, 누나와 단둘인 밤에 자살하는 건 마음이 무거워서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누나가 없고, 그 대신 아주 둔한 댄서가 내 자살의 발견자가 되어 준다.
어젯밤 둘이서 술을 마시고 여자를 이층 양실에 재우고, 나 혼자 엄마가 돌아가신 아래 안방에 이불을 깔고, 그리고 이 비참한 수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누나.
나에게는 희망의 땅이 없어요. 안녕.
결국 내 죽음은 자연사예요. 사람은 사상만으로 죽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하나, 무척 쑥스러운 부탁이 있어요. 엄마 유품인 삼베 기모노. 그걸 누나가 나오지가 내년 여름에 입으라고 고쳐 지어 주었지요. 그 기모노를 내 관에 넣어 주세요. 나 입고 싶었어요.
날이 밝아 오고 있어요. 오랫동안 고생을 끼쳤어요.
안녕.
어젯밤 술기운은 완전히 깼어요. 나는 맨정신으로 죽는 거예요.
다시 한번, 안녕.
누나.
나는 귀족입니다.
8장
꿈.
모두가 나에게서 떠나간다.
나오지의 죽음을 뒷수습하고, 그 뒤 한 달 동안 나는 겨울 산장에서 혼자 살았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에게, 아마 이것이 마지막일 편지를 물 같은 심정으로 써서 드렸다.
아무래도 당신도 저를 버리신 모양입니다. 아니, 점점 잊어 가시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저는 행복해요. 제 바람대로 아기가 생긴 것 같아요. 저는 지금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지만, 그래도 배 속의 작은 생명이 제 고독한 미소의 씨앗이 되고 있어요.
더러운 실수라고는 아무래도 생각되지 않아요. 이 세상에 전쟁이니 평화니 무역이니 조합이니 정치니 하는 것이 무엇을 위해 있는지, 요즘 저도 알게 되었어요. 당신은 모르시겠지요. 그래서 언제까지나 불행한 거예요. 그건 말이에요, 가르쳐 드릴게요, 여자가 좋은 아이를 낳기 위해서예요.
저는 처음부터 당신의 인격이니 책임이니 하는 것을 믿고 기댈 마음은 없었어요. 오직 제 한 줄기 사랑의 모험을 이루는 것만이 문제였어요. 그리고 제 그 마음이 이루어져서, 이제 제 가슴속은 숲속의 늪처럼 고요합니다.
저는 이겼다고 생각해요.
마리아가 설령 남편의 아이가 아닌 아이를 낳았어도 마리아에게 빛나는 자부심이 있다면 그것은 성모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낡은 도덕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고 좋은 아이를 얻었다는 만족이 있어요.
당신은 그 뒤로도 여전히 기요틴 기요틴 하면서 신사들이며 아가씨들과 술을 마시며 데카당 생활인지 뭔지를 계속하고 계시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걸 그만두라고는 말씀드리지 않겠어요. 그것 또한 당신의 마지막 투쟁의 형식일 테니까요.
술을 끊고 병을 고치고 오래 사시면서 훌륭한 일을, 같은 그런 속 보이는 건성 인사 같은 말은 이제 저는 하고 싶지 않아요. 「훌륭한 일」 같은 것보다 목숨을 버릴 각오로 이른바 악덕 생활을 끝까지 해 나가는 편이 훗날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몰라요.
희생자. 도덕의 과도기의 희생자. 당신도 저도 틀림없이 그것이겠지요.
혁명은 대체 어디서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적어도 우리 주변에서는 낡은 도덕이 역시 그대로 조금도 변하지 않고 우리 앞길을 가로막고 있어요. 바다 겉의 파도는 무언가 술렁이고 있어도, 그 밑의 바닷물은 혁명은커녕 꿈쩍도 하지 않고 자는 척하며 드러누워 있는걸요.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의 제1회전에서는 낡은 도덕을 조금이나마 밀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번에는 태어날 아이와 함께 제2회전, 제3회전을 싸울 생각이에요.
그리운 사람의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제 도덕 혁명의 완성입니다.
당신이 저를 잊으셔도, 또 당신이 술로 목숨을 잃으셔도, 저는 제 혁명의 완성을 위해 튼튼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 인격의 하찮음을 저는 얼마 전에도 어떤 사람에게서 이것저것 들었지만, 그래도 저에게 이런 강함을 주신 건 당신이에요. 제 가슴에 혁명의 무지개를 걸어 주신 건 당신이에요. 살아갈 목표를 주신 건 당신이에요.
저는 당신을 자랑으로 여기고, 또 태어날 아이에게도 당신을 자랑으로 여기게 하려고 해요.
사생아와 그 어머니.
하지만 우리는 낡은 도덕과 끝까지 싸우며 태양처럼 살아갈 생각이에요.
부디 당신도 당신의 싸움을 계속 싸워 주세요.
혁명은 아직 조금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더, 더, 아깝고 귀한 희생이 여럿 필요한 모양이에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희생자예요.
작은 희생자가 또 하나 있었어요.
우에하라 씨.
저는 이제 당신께 아무것도 부탁할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그 작은 희생자를 위해 한 가지만 허락을 구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건 제가 낳은 아이를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당신의 부인께 안게 해 드리고 싶은 거예요. 그리고 그때 저에게 이렇게 말하게 해 주세요.
"이 아이는 나오지가 어떤 여자에게 몰래 낳게 한 아이예요."
왜 그렇게 하는지 그것만은 누구에게도 말씀드릴 수 없어요. 아니, 저 자신도 왜 그렇게 하게 해 달라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어떻게든 그렇게 하게 해 주셔야 해요. 나오지라는 그 작은 희생자를 위해 어떻게든 그렇게 하게 해 주셔야 해요.
불쾌하신가요. 불쾌하셔도 참아 주셔야겠어요. 이것이 버림받고 잊혀 가는 여자의 단 하나의 희미한 심술이라고 여기시고 꼭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M·C 마이 코미디언.
1947년 2월 7일.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