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D

산월기

나카지마 아쓰시 · 조영환 옮김

中島敦 — 山月記・名人伝・文字禍・狐憑・木乃伊 (1942)

5장 · 69분

시인이 되지 못한 사내가 호랑이가 되어 옛 벗 앞에 목소리로만 나타나는 「산월기」, 천하제일의 활 명인이 끝내 활을 잊어버리는 「명인전」, 글자를 오래 들여다보다 글자의 넋에게 홀린 학자의 「글자의 재앙」. 서른셋에 세상을 떠난 나카지마 아쓰시가 마지막 해에 남긴 옛이야기 다섯 편.

산월기

농서 사람 이징은 학식이 넓고 재주가 빼어나, 천보 연간 말엽 젊은 나이에 진사 급제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이어 강남위 벼슬을 받았다. 그러나 성미가 꼿꼿하고 스스로를 믿는 마음이 몹시 두터워, 하찮은 벼슬아치 자리에 만족하는 것을 떳떳하지 않게 여겼다. 얼마 안 가 벼슬을 내놓고 고향 괵략으로 돌아가 틀어박혀 사람과의 사귐을 끊고 오로지 시 짓기에 빠졌다. 낮은 관리가 되어 속된 높은 벼슬아치 앞에 오래도록 무릎을 굽히느니, 시인으로서의 이름을 죽은 뒤 백 년까지 남기려 한 것이다. 그러나 글로 이름을 떨치기는 쉽지 않았고 살림은 날로 쪼들렸다. 이징은 차츰 초조해졌다. 이 무렵부터 얼굴도 날카롭게 깎여 살이 빠지고 뼈가 불거졌으며, 눈빛만 헛되이 번득여, 일찍이 진사에 급제하던 무렵 볼이 통통하던 미소년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길이 없었다. 몇 해 뒤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처자식의 입을 것 먹을 것을 위해 마침내 뜻을 굽혀 다시 동쪽으로 가서 한 지방 관리 자리를 받들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제 시 짓는 일에 반쯤 절망한 탓이기도 했다. 예전의 동료들은 벌써 훨씬 높은 자리에 올라 있었고, 그가 옛날 둔한 놈들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 무리의 명령을 받들어야 한다는 것이 한때의 수재 이징의 자존심을 얼마나 상하게 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는 늘 불만에 차서 즐거운 날이 없었고, 미친 듯 사나운 성미는 갈수록 누르기 어려워졌다. 한 해 뒤 공무로 길을 떠나 여수 가에 묵던 때, 그는 마침내 미쳐 버렸다. 어느 한밤중, 갑자기 낯빛이 변하더니 잠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면서 그대로 뛰어내려 어둠 속으로 달려 나갔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근처 산과 들을 뒤졌지만 아무 실마리도 없었다. 그 뒤 이징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듬해, 감찰어사로 있는 진군 사람 원참이란 이가 황제의 명을 받들어 영남으로 가는 길에 상어 땅에 묵었다. 이튿날 아침 아직 어두울 때 떠나려 하는데, 역참 관리가 말하기를, 이 앞길에 사람 잡아먹는 호랑이가 나오니 나그네는 한낮이 아니면 지나갈 수 없습니다, 지금은 아직 이른 아침이니 조금 더 기다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하였다. 그러나 원참은 거느린 사람이 많은 것을 믿고 관리의 말을 물리친 채 길을 나섰다. 새벽달 빛에 기대어 숲속 풀밭을 지나갈 때, 과연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가 풀숲에서 튀어나왔다. 호랑이는 금방이라도 원참에게 덤벼들 듯하더니, 순식간에 몸을 돌려 도로 풀숲에 숨었다. 풀숲 속에서 사람 목소리로 「큰일 날 뻔했다」 하고 되풀이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를 원참은 들은 적이 있었다. 놀라고 두려운 가운데서도 그는 퍼뜩 짚이는 데가 있어 소리쳤다. 「그 목소리는 내 벗 이징 자네가 아닌가?」 원참은 이징과 같은 해에 진사에 급제했고, 벗이 적던 이징에게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온화한 원참의 성품이 날카로운 이징의 성정과 부딪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풀숲에서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숨죽여 우는 듯한 희미한 소리가 이따금 새어 나올 뿐이었다. 이윽고 낮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렇네, 나는 농서의 이징일세」

원참은 두려움을 잊고 말에서 내려 풀숲으로 다가가, 반가운 마음으로 오랜만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고는 왜 풀숲에서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징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나는 이제 사람 아닌 것의 몸이 되었네. 어찌 뻔뻔스레 옛 벗 앞에 이 흉한 꼴을 드러내겠는가. 게다가 내가 모습을 드러내면 틀림없이 자네에게 두렵고 역겨운 마음을 일으키게 할 것이고. 하지만 지금 뜻밖에 옛 벗을 만나고 보니, 부끄러움도 잊을 만큼 반갑네. 부디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지금 내 흉한 겉모습을 꺼리지 말고, 한때 자네의 벗 이징이었던 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어 주지 않겠나.

나중에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지만, 그때 원참은 이 초자연의 괴이한 일을 참으로 순순히 받아들여 조금도 의심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부하들에게 명해 행렬을 멈추게 하고, 자신은 풀숲 곁에 서서 보이지 않는 목소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성의 소문, 옛 친구들의 소식, 원참의 지금 지위, 그에 대한 이징의 축하. 젊은 시절 가까웠던 사이끼리의 그 스스럼없는 말투로 그런 이야기들이 오간 뒤, 원참은 이징이 어떻게 해서 지금의 몸이 되었는지를 물었다. 풀숲의 목소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지금부터 한 해쯤 전, 내가 길을 떠나 여수 가에 묵은 밤의 일일세. 한잠 자고 문득 눈을 뜨니, 문밖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네. 부르는 소리에 이끌려 밖에 나가 보니,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자꾸만 나를 부르는 것이었네. 나도 모르게 나는 그 소리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지. 정신없이 달려가는 사이 어느새 길은 산속으로 들어섰고, 게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두 손으로 땅을 움켜쥐며 달리고 있었네. 온몸에 힘이 넘쳐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 가볍게 바위를 뛰어넘어 갔지. 정신을 차려 보니 손끝이며 팔꿈치 언저리에 털이 난 것 같았네. 날이 조금 밝은 뒤 골짜기 시냇물에 모습을 비춰 보니, 나는 이미 호랑이가 되어 있었네. 나는 처음엔 눈을 믿지 않았네. 다음엔 이건 꿈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지. 꿈속에서 이건 꿈이라고 알고 있는 그런 꿈을, 나는 그 전에도 꾼 적이 있었으니까. 아무리 해도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했을 때, 나는 멍해졌네. 그러고는 두려웠네. 정말로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거로구나 싶어 깊이 두려웠네. 하지만 어째서 이런 일이 되었을까. 모르겠네. 정말이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네. 까닭도 모른 채 떠맡겨진 것을 얌전히 받아 들고, 까닭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살아 있는 것들의 운명일세. 나는 곧바로 죽음을 생각했네. 그런데 그때 눈앞으로 토끼 한 마리가 달려 지나가는 것을 본 순간, 내 안의 사람은 금세 자취를 감추었네. 다시 내 안의 사람이 눈을 떴을 때, 내 입은 토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주위에는 토끼털이 흩어져 있었네. 이것이 호랑이로서의 첫 경험이었지. 그 뒤로 지금까지 어떤 짓을 해 왔는지는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네. 다만 하루 가운데 꼭 몇 시간은 사람의 마음이 돌아오네. 그럴 때는 예전과 똑같이 사람의 말도 할 수 있고, 복잡한 생각도 해낼 수 있고, 경서의 구절을 외울 수도 있지. 그 사람의 마음으로 호랑이로서 저지른 내 잔악한 짓의 자취를 보고 내 운명을 돌아볼 때가 가장 한심하고, 무섭고, 분하네. 그런데 그 사람으로 돌아오는 몇 시간도 날이 갈수록 점점 짧아져 가네. 여태까지는 어째서 호랑이 따위가 되었나 하고 괴이하게 여겼는데, 요전에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어째서 전에 사람이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네. 이건 무서운 일일세. 조금만 더 지나면 내 안의 사람의 마음은 짐승의 버릇 속에 완전히 파묻혀 사라져 버리겠지. 마치 오래된 궁전의 주춧돌이 차츰 흙모래에 묻혀 버리듯이. 그렇게 되면 끝내 나는 내 과거를 까맣게 잊고 한 마리 호랑이로 미쳐 날뛰며, 오늘처럼 길에서 자네를 만나도 옛 벗인 줄 모르고 자네를 찢어 먹고도 아무 뉘우침을 느끼지 않겠지. 대체 짐승이든 사람이든 본디는 무언가 다른 것이었을 거야. 처음에는 그걸 기억하지만 차츰 잊어버려, 처음부터 지금 모습이었다고 믿어 버리는 게 아닐까?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네. 내 안의 사람의 마음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면, 아마 그편이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 걸세. 그런데도 내 안의 사람은 그 일을 더없이 무섭게 느끼고 있네. 아아, 정말이지 얼마나 무섭고, 슬프고, 애달프게 여기고 있는지! 내가 사람이었던 기억이 없어지는 것을. 이 마음은 아무도 모르네. 아무도 몰라. 나와 같은 처지가 된 자가 아니고서는. 그런데, 그래. 내가 완전히 사람이 아니게 되어 버리기 전에 한 가지 부탁해 두고 싶은 게 있네.

원참을 비롯한 일행은 숨을 죽이고 풀숲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신기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목소리는 이어서 말했다.

다른 게 아닐세. 나는 본디 시인으로 이름을 이룰 작정이었네. 그런데 그 일을 미처 이루지 못한 채 이런 운명에 이르고 말았네. 예전에 지은 시 수백 편은 물론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네. 남긴 원고가 어디 있는지도 이제는 알 수 없겠지. 그런데 그 가운데 지금도 외우고 있는 것이 수십 편 있네. 이걸 나를 위해 받아 적어 전해 주었으면 하네. 이것으로 한 사람 몫의 시인 행세를 하고 싶은 게 아닐세. 잘 지었는지 못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살림을 거덜 내고 마음을 미치게 하면서까지 내가 평생 매달렸던 것을 일부나마 뒷세상에 전하지 않고서는, 죽어도 죽을 수가 없네.

원참은 부하에게 명하여 붓을 들고 풀숲의 목소리를 따라 받아 적게 했다. 이징의 목소리는 풀숲 속에서 낭랑하게 울렸다. 길고 짧은 것 모두 서른 편 남짓, 격조가 높고 우아하며 뜻이 빼어나, 한 번 읽기만 해도 지은이의 재주가 범상치 않음을 느끼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원참은 감탄하면서도 막연히 이렇게 느끼고 있었다. 과연 지은이의 바탕이 첫째가는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대로는 첫째가는 작품이 되기에 어딘가(아주 미묘한 점에서) 모자란 데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옛 시를 다 읊고 난 이징의 목소리는 갑자기 가락을 바꾸어, 스스로를 비웃듯 말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지금도, 이런 흉한 몸이 되어 버린 지금도, 나는 내 시집이 장안의 풍류 선비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모습을 꿈에 볼 때가 있네. 바위굴 속에 드러누워 꾸는 꿈에서 말일세. 비웃어 주게. 시인이 되다 만 채 호랑이가 된 가련한 사내를. (원참은 옛날 젊은 이징의 스스로를 비웃던 버릇을 떠올리며 슬프게 듣고 있었다.) 그래. 웃음거리 삼은 김에, 지금의 심정을 즉석에서 시로 읊어 볼까. 이 호랑이 속에 아직 예전의 이징이 살아 있다는 표시로.

원참은 또 아랫사람에게 명해 이것을 받아 적게 했다. 그 시는 이러하다.

偶因狂疾成殊類
어쩌다 미친 병에 걸려 짐승이 되니
災患相仍不可逃
재앙이 거듭 닥쳐 피할 길이 없구나

今日爪牙誰敢敵
오늘 이 발톱과 이빨에 누가 감히 맞서랴
当時声跡共相高
그 시절엔 우리 둘 다 이름이 높았건만

我為異物蓬茅下
나는 짐승 되어 쑥대 풀숲 아래 엎드렸고
君已乗軺気勢豪
그대는 이미 수레에 올라 기세가 드높구나

此夕渓山対明月
이 저녁 골짜기 산에서 밝은 달을 마주하나
不成長嘯但成嘷
시를 길게 읊지 못하고 그저 울부짖을 뿐

그때, 새벽달은 빛이 차갑고, 흰 이슬은 땅에 흥건하며, 나무 사이를 건너오는 찬 바람은 벌써 새벽이 가까웠음을 알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일의 기이함도 잊고, 숙연히 이 시인의 박복함을 탄식했다. 이징의 목소리는 다시 이어졌다.

어째서 이런 운명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아까는 말했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짚이는 데가 전혀 없지도 않네. 사람이었을 때 나는 애써 남과의 사귐을 피했네. 사람들은 나를 거만하다, 오만하다고 했지. 실은 그것이 거의 수치심에 가까운 것이었음을 사람들은 몰랐네. 물론 한때 고향에서 귀재라 불리던 나에게 자존심이 없었다고는 하지 않겠네. 하지만 그건 겁 많은 자존심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었네. 나는 시로 이름을 이루려 하면서도, 스스로 나서서 스승을 찾아가거나 시 벗을 구해 사귀며 서로 갈고닦는 데 힘쓰지 않았네. 그렇다고 또 속물들 사이에 끼는 것도 떳떳하지 않게 여겼지. 둘 다 내 겁 많은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 탓일세. 내가 구슬이 아닐까 봐 두려운 나머지 굳이 애써 갈고닦으려 하지도 않았고, 또 내가 구슬일 거라고 반쯤 믿었기에 그저 그런 기왓장들 틈에 섞여 지낼 수도 없었네. 나는 차츰 세상과 떨어지고 사람에게서 멀어져, 울분과 부끄러움과 성냄으로 내 안의 겁 많은 자존심을 점점 더 살찌우고 말았네. 사람은 누구나 맹수를 부리는 조련사이고, 그 맹수에 해당하는 것이 저마다의 성정이라고들 하지. 내 경우엔 이 거만한 수치심이 맹수였네. 호랑이였던 걸세. 이것이 나를 망치고, 처자식을 괴롭히고, 벗들을 상처 입히고, 끝내는 내 겉모습을 이처럼 속마음에 걸맞은 것으로 바꾸어 버린 걸세. 지금 생각하면 정말이지 나는 내가 가졌던 얼마 안 되는 재능을 헛되이 써 버린 셈이네. 인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너무 길지만 무언가를 이루기엔 너무 짧다느니 하는 입에 발린 경구를 늘어놓으면서, 실은 재능이 모자란다는 게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애써 고생하기 싫어하는 게으름이 나의 전부였던 걸세. 나보다 훨씬 모자란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한결같이 갈고닦은 덕에 당당한 시인이 된 사람이 얼마든지 있네. 호랑이가 되어 버린 지금에야 나는 겨우 그것을 깨달았네. 그걸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타는 듯한 뉘우침을 느끼네. 나는 이제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가 없네. 설령 지금 내가 머릿속으로 아무리 뛰어난 시를 짓는다 한들 무슨 수로 세상에 내놓겠는가. 더구나 내 머리는 날마다 호랑이에 가까워져 가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헛되이 써 버린 내 지난날은? 나는 견딜 수가 없어지네. 그럴 때면 나는 저 건너 산꼭대기 바위에 올라, 텅 빈 골짜기를 향해 울부짖네. 가슴을 태우는 이 슬픔을 누구에게든 하소연하고 싶은 걸세. 나는 어젯밤에도 저기서 달을 향해 울부짖었네. 누군가 이 괴로움을 알아주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짐승들은 내 소리를 듣고 그저 두려워 엎드릴 뿐이네. 산도 나무도 달도 이슬도, 호랑이 한 마리가 성이 나 미쳐 날뛰며 으르렁거린다고밖에 여기지 않네. 하늘로 뛰어오르고 땅에 엎드려 탄식해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네. 마치 사람이었을 때 상처 입기 쉬운 내 속마음을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았던 것처럼. 내 털가죽이 젖은 것은 밤이슬 때문만은 아닐세.

차츰 사방의 어둠이 옅어져 왔다. 나무 사이를 타고 어디선가 새벽 뿔피리 소리가 구슬프게 울리기 시작했다.

이제 작별을 고해야 하네. 취해야 할 때가(호랑이로 돌아가야 할 때가) 다가왔으니, 하고 이징의 목소리가 말했다. 하지만 헤어지기 전에 부탁이 하나 더 있네. 내 처자식 일일세. 그들은 아직 괵략에 있네. 물론 내 운명에 대해서는 알 리가 없지. 자네가 남쪽에서 돌아가거든, 나는 이미 죽었다고 그들에게 전해 주지 않겠나. 오늘 일만은 절대 밝히지 말아 주게.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그들의 외롭고 약한 처지를 가엾게 여겨, 앞으로도 길바닥에서 굶주리고 얼어 죽는 일이 없도록 보살펴 준다면, 나에게는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없겠네.

말을 마치자 풀숲에서 목 놓아 우는 소리가 들렸다. 원참도 눈물을 머금고, 기꺼이 이징의 뜻을 따르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징의 목소리는 금세 또 아까의 스스로를 비웃는 가락으로 돌아가 말했다.

사실은 먼저 이 일부터 부탁했어야 했네, 내가 사람이었다면. 굶주리고 얼어 가는 처자식보다 제 보잘것없는 시 짓는 일을 더 마음에 두는 그런 사내니까, 이런 짐승으로 떨어지는 걸세.

그러고는 덧붙여 말하기를, 원참이 영남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절대 이 길로 지나가지 말아 달라, 그때 자신은 취해 있어서 옛 벗을 알아보지 못하고 덤벼들지도 모르니까. 또 지금 헤어진 뒤 앞으로 백 걸음 되는 곳에 있는 저 언덕에 오르거든 이쪽을 돌아보아 달라. 자신은 지금 모습을 한 번 더 보여 주겠다. 용맹을 뽐내려는 게 아니다. 내 흉한 모습을 보여서, 다시 이곳을 지나며 나를 만나 보려는 마음을 자네가 품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하고.

원참은 풀숲을 향해 정성껏 작별의 말을 하고 말에 올랐다. 풀숲 속에서는 또 견딜 수 없다는 듯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원참도 몇 번이고 풀숲을 돌아보며 눈물 속에 길을 떠났다.

일행이 언덕 위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들은 대로 뒤돌아 아까의 숲속 풀밭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호랑이 한 마리가 풀숲에서 길 위로 뛰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호랑이는 이미 하얗게 빛을 잃은 달을 올려다보며 두세 번 포효하는가 싶더니, 다시 원래의 풀숲으로 뛰어들어 가고는 두 번 다시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명인전

조나라 서울 한단에 사는 기창이라는 사내가 천하제일의 활 명인이 되겠다고 뜻을 세웠다. 스승으로 모실 만한 사람을 찾아보니, 지금 세상에서 활을 잡는 사람으로는 명궁 비위를 따를 자가 있을 성싶지 않았다. 백 걸음 떨어진 곳에서 버들잎을 쏘아 백 번 쏘면 백 번 다 맞힌다는 달인이라고 한다. 기창은 먼 길을 찾아가 비위의 문하에 들었다.

비위는 새로 들어온 제자에게 먼저 눈을 깜빡이지 않는 법부터 배우라고 일렀다. 기창은 집에 돌아가 아내의 베틀 밑으로 기어 들어가 거기에 벌렁 드러누웠다. 눈에 닿을락 말락 하게 베틀의 발판 줄이 바쁘게 오르내리는 것을 깜빡이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겠다는 궁리였다. 까닭을 모르는 아내는 몹시 놀랐다. 무엇보다 이상한 자세로 이상한 각도에서 남편이 들여다보면 곤란하다고 했다. 싫어하는 아내를 기창은 꾸짖어 억지로 베를 계속 짜게 했다. 날이면 날마다 그는 이 우스꽝스러운 꼴로 깜빡이지 않는 수련을 거듭했다. 두 해 뒤에는 바삐 오가는 베틀 막대가 속눈썹을 스쳐도 전혀 깜빡이지 않게 되었다. 그는 그제야 베틀 밑에서 기어 나왔다. 이제는 날카로운 송곳 끝으로 눈꺼풀을 찔러도 깜빡이지 않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느닷없이 불티가 눈에 튀어 들어와도, 눈앞에 갑자기 잿가루가 피어올라도 그는 결코 눈을 끔벅이지 않았다. 그의 눈꺼풀은 이제 눈을 감는 데 쓰는 근육의 쓰임새를 아주 잊어버려서, 밤에 깊이 잠들어 있을 때에도 기창의 눈은 부릅뜬 채로 크게 열려 있었다. 마침내 그의 속눈썹과 속눈썹 사이에 조그만 거미 한 마리가 줄을 치기에 이르러서야, 그는 겨우 자신을 얻어 스승 비위에게 이를 알렸다.

그 말을 듣고 비위가 말했다. 깜빡이지 않는 것만으로는 아직 활쏘기를 가르치기에 모자란다. 다음에는 보는 법을 배워라. 보는 데 익숙해져서, 작은 것을 큰 것처럼 보고 희미한 것을 뚜렷한 것처럼 보게 되거든 그때 와서 나에게 알려라, 하고.

기창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 속옷 솔기에서 이 한 마리를 찾아내어 제 머리카락으로 묶었다. 그리고 그것을 남쪽으로 난 창에 매달아 놓고 온종일 노려보며 지내기로 했다. 날마다 날마다 그는 창에 매달린 이를 지켜보았다. 처음엔 물론 그것은 이 한 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삼 일이 지나도 여전히 이였다. 그런데 열흘 남짓 지나자 기분 탓인지 그것이 아주 조금이나마 커 보이기 시작한 듯했다. 석 달째 끝 무렵에는 분명히 누에만 한 크기로 보였다. 이를 매단 창밖의 풍경은 차츰 바뀌어 갔다. 화창하게 비치던 봄볕은 어느새 뜨거운 여름 햇살로 바뀌었고, 맑은 가을 하늘 높이 기러기가 건너가는가 싶더니, 벌써 을씨년스러운 잿빛 하늘에서 진눈깨비가 떨어져 내렸다. 기창은 끈기 있게 머리카락 끝에 매달린 주둥이 달린 가려움 유발성 소형 절지동물을 계속 들여다보았다. 그 이도 몇십 마리나 갈아 치우는 사이 어느덧 삼 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창의 이가 말만 한 크기로 보이고 있었다. 됐다 하고 기창은 무릎을 치며 밖으로 나갔다. 그는 제 눈을 의심했다. 사람은 높은 탑이었다. 말은 산이었다. 돼지는 언덕 같고, 닭은 성루처럼 보였다. 뛸 듯이 기뻐하며 집으로 되돌아온 기창은 다시 창가의 이와 마주 서서, 연나라 소뿔로 만든 활에 북녘 쑥대로 만든 화살을 메겨 쏘았다. 화살은 보기 좋게 이의 심장을 꿰뚫었고, 게다가 이를 묶은 머리카락조차 끊어지지 않았다.

기창은 곧장 스승에게 가서 이를 아뢰었다. 비위는 펄쩍 뛰며 가슴을 치고, 처음으로 「잘했다」 하고 칭찬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활쏘기의 깊은 비법을 남김없이 기창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눈의 기초 훈련에 다섯 해나 들인 보람이 있어, 기창의 솜씨는 놀랄 만큼 빨리 늘었다.

비법 전수가 시작되고 열흘 뒤, 시험 삼아 기창이 백 걸음 떨어져 버들잎을 쏘아 보니 벌써 백 발 백중이었다. 스무 날 뒤, 물을 가득 채운 잔을 오른쪽 팔꿈치 위에 얹고 센 활을 당겨도 겨냥이 어긋나지 않는 것은 물론, 잔 속의 물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한 달 뒤, 화살 백 대로 빨리 쏘기를 시험했더니, 첫 화살이 과녁에 맞으면 뒤이어 날아온 둘째 화살은 어김없이 첫 화살의 오늬에 맞아 박히고, 또 틈을 두지 않고 셋째 화살의 촉이 둘째 화살의 오늬에 콱 박혔다. 화살과 화살이 이어지고 쏘는 족족 서로 닿아, 뒤 화살의 촉이 반드시 앞 화살의 오늬에 박히므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화살 백 대는 한 대처럼 이어져, 과녁에서 한 줄로 뻗은 그 마지막 오늬는 아직도 시위를 물고 있는 듯이 보였다. 곁에서 보고 있던 스승 비위도 저도 모르게 「좋다!」 하고 말했다.

두 달 뒤, 마침 집에 돌아가 아내와 다툰 기창이 아내를 겁주려고 오호의 활에 기위의 화살을 메겨 팽팽히 당겨서 아내의 눈을 쏘았다. 화살은 아내의 속눈썹 세 가닥을 끊고 저편으로 날아갔지만, 맞은 당사자는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남편을 계속 욕했다. 생각건대 그의 지극한 재주로 쏜 화살의 빠르기와 겨냥의 정묘함은 실로 이 경지에까지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이제 스승에게서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 기창은 어느 날 문득 좋지 않은 생각을 품었다.

그때 그가 홀로 곰곰이 생각하기를, 이제 활로 나와 맞설 자는 스승 비위 말고는 없다. 천하제일의 명인이 되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비위를 없애야 한다고. 몰래 그 기회를 엿보던 중, 하루는 마침 들판에서 맞은편으로부터 혼자 걸어오는 비위와 마주쳤다. 순간 마음을 정한 기창이 화살을 집어 겨누자, 그 낌새를 알아챈 비위도 활을 잡고 맞섰다. 두 사람이 서로 쏠 때마다 화살은 한가운데서 맞부딪쳐 함께 땅에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화살이 먼지 한 톨 일으키지 않은 것은 두 사람의 재주가 모두 신의 경지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비위의 화살이 다 떨어졌을 때 기창에게는 아직 한 대가 남아 있었다. 됐다 하고 기세 좋게 기창이 그 화살을 쏘자, 비위는 순간 곁에 있던 들찔레 가지를 꺾어 그 가시 끝으로 딱 하고 화살촉을 쳐서 떨어뜨렸다. 마침내 분에 넘친 야망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달은 기창의 마음에, 성공했더라면 결코 생기지 않았을 도의적인 부끄러움이 이때 홀연히 솟아올랐다. 비위 쪽에서도 위기를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제 솜씨에 대한 만족감이 적에 대한 미움을 깡그리 잊게 했다. 두 사람은 서로 달려가 들판 한가운데서 부둥켜안고, 한동안 아름다운 사제의 정에 겨워 눈물에 젖었다. (이런 일을 오늘날의 도덕관으로 보는 것은 맞지 않다. 미식가인 제나라 환공이 아직 맛보지 못한 진미를 찾았을 때, 요리를 맡은 역아는 제 아들을 쪄서 바쳤다. 열여섯 살 소년 진시황은 아버지가 죽은 그날 밤 아버지의 애첩을 세 번 덮쳤다. 모두 그런 시대의 이야기다.)

눈물에 젖어 서로 부둥켜안으면서도, 제자가 다시 이런 음모를 품는 일이 있으면 몹시 위험하다고 여긴 비위는, 기창에게 새로운 목표를 주어 마음을 돌리게 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위험한 제자에게 말했다. 이제 전할 만한 것은 모두 전했다. 네가 만약 이 이상 이 길의 깊은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고 싶거든, 서쪽으로 가서 태항산의 험한 벼랑을 기어올라 곽산 꼭대기까지 가거라. 거기에는 감승 노사라는, 예나 지금이나 견줄 이가 없는 이 길의 대가가 계실 것이다. 노사의 재주에 비하면 우리의 활쏘기 따위는 거의 어린애 장난이나 다름없다. 네가 스승으로 모실 분은 이제 감승 노사밖에 없을 것이다, 하고.

기창은 곧 서쪽으로 길을 떠났다. 그분 앞에서는 우리의 재주 따위 어린애 장난이나 마찬가지라고 한 스승의 말이 그의 자존심을 찔렀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천하제일을 노리는 그의 소망도 아직 갈 길이 한참 먼 셈이다. 제 재주가 어린애 장난인지 아닌지, 아무튼 어서 그분을 만나 솜씨를 겨루고 싶어 조바심치며 그는 오로지 길을 서둘렀다. 발바닥이 터지고 정강이를 다치며, 험한 바위를 기어오르고 벼랑길을 건너, 한 달 뒤에 그는 마침내 목적한 산꼭대기에 다다랐다.

기세등등한 기창을 맞은 것은 양처럼 순한 눈을 한, 그러나 몹시 쇠약한 늙은이였다. 나이는 백 살도 넘었으리라. 허리가 굽은 탓도 있어 흰 수염이 걸을 때도 땅에 끌렸다.

상대가 귀가 먹었을지도 모른다 싶어 기창은 큰 소리로 바삐 찾아온 뜻을 아뢰었다. 제 솜씨를 보아 주었으면 한다는 뜻을 말하자, 조바심이 난 그는 상대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대뜸 등에 멘, 버드나무 몸통에 삼 힘줄을 먹인 활을 벗겨 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돌촉 화살을 메겨, 마침 하늘 높이 날아 지나가는 철새 떼를 향해 겨냥했다. 시위 소리와 함께 화살 한 대에 큰 새 다섯 마리가 선명하게 푸른 하늘을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제법 하는구먼, 하고 노인이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쏘는 활쏘기일세. 자네는 아직 쏘지 않는 활쏘기를 모르는 모양이군.

발끈한 기창을 이끌고, 늙은 은자는 거기서 이백 걸음쯤 떨어진 절벽 위로 데려갔다. 발밑은 말 그대로 병풍 같은 천 길 낭떠러지, 까마득히 바로 아래 실처럼 가늘게 보이는 시냇물을 잠깐 내려다보기만 해도 금세 어지러움을 느낄 만한 높이였다. 그 벼랑에서 반쯤 허공으로 튀어나온 위태로운 바위 위로 노인은 성큼성큼 뛰어올라, 돌아보며 기창에게 말했다. 어떤가. 이 바위 위에서 아까 그 재주를 한 번 더 보여 주지 않겠나. 이제 와서 물러설 수도 없다. 노인과 자리를 바꾸어 기창이 그 바위를 밟았을 때, 바위는 희미하게 기우뚱 흔들렸다. 억지로 마음을 다잡아 화살을 메기려 하는데, 마침 벼랑 끝에서 작은 돌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그 돌이 가는 곳을 눈으로 좇았을 때, 저도 모르게 기창은 바위 위에 엎드렸다.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땀은 흘러 발뒤꿈치까지 이르렀다. 노인이 웃으며 손을 내밀어 그를 바위에서 내려 주고, 스스로 대신 그 위에 올라서더니, 그럼 활쏘기라는 걸 보여 드릴까, 하고 말했다. 아직 가슴이 두근거려 파랗게 질린 얼굴이었지만, 기창은 곧 알아채고 말했다. 그런데 활은 어찌하십니까? 활은? 노인은 맨손이었던 것이다. 활? 하고 노인은 웃었다. 활과 화살이 있어야 하는 동안은 아직 쏘는 활쏘기일세. 쏘지 않는 활쏘기에는 검은 옻칠 활도 숙신의 화살도 필요 없네.

마침 그들 바로 위, 하늘 아주 높은 곳에서 솔개 한 마리가 유유히 원을 그리고 있었다. 깨알만큼 작게 보이는 그 모습을 한동안 올려다보던 감승이, 이윽고 보이지 않는 화살을 형체 없는 활에 메겨 보름달처럼 당겼다가 휙 놓았다. 보라, 솔개가 날갯짓도 없이 허공에서 돌멩이처럼 떨어져 내리지 않는가.

기창은 오싹했다. 이제야 비로소 재주의 길이 얼마나 깊은지 그 깊은 못을 들여다본 심정이었다.

아홉 해 동안 기창은 이 늙은 명인 곁에 머물렀다. 그동안 어떤 수련을 쌓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홉 해가 지나 산에서 내려왔을 때, 사람들은 기창의 얼굴이 바뀐 것을 보고 놀랐다. 전의 지기 싫어하던 사납고 날랜 얼굴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아무 표정 없는, 나무 인형 같고 바보 같은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옛 스승 비위를 찾아갔을 때, 비위는 이 얼굴을 한 번 보자마자 감탄하여 외쳤다. 이래야 비로소 천하의 명인이다. 우리 같은 사람은 발밑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고.

한단의 도성은 천하제일의 명인이 되어 돌아온 기창을 맞아, 곧 눈앞에 보여 줄 것이 틀림없는 그 신묘한 재주에 대한 기대로 들끓었다.

그런데 기창은 도무지 그 바람에 응하려 하지 않았다. 아니, 활조차 아예 손에 잡으려 하지 않았다. 산에 들어갈 때 가지고 갔던 버드나무 몸통에 삼 힘줄 먹인 활도 어딘가에 버리고 온 모양이었다. 그 까닭을 묻는 한 사람에게 기창은 나른하게 대답했다. 지극한 행위는 함이 없고, 지극한 말은 말을 버리며, 지극한 활쏘기는 쏘는 일이 없다, 하고. 과연 그렇구나 하고, 더없이 이해가 빠른 한단의 도성 사람들은 곧 알아들었다. 활을 잡지 않는 활의 명인은 그들의 자랑이 되었다. 기창이 활에 손을 대지 않으면 않을수록 그가 무적이라는 평판은 더욱더 널리 퍼졌다.

온갖 소문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밤마다 삼경이 지날 무렵, 기창의 집 지붕 위에서 누가 내는지 모를 활시위 소리가 난다. 명인 안에 깃든 활쏘기의 신이 주인이 잠든 사이 몸 밖으로 빠져나와, 요사스러운 마귀를 쫓으려고 밤새 지키고 있는 것이라 했다. 그의 집 근처에 사는 한 장사꾼은, 어느 밤 기창의 집 위 하늘에서 구름을 탄 기창이 드물게도 활을 손에 들고, 옛 명인 예와 양유기 두 사람을 상대로 솜씨를 겨루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고 떠들었다. 그때 세 명인이 쏜 화살은 저마다 밤하늘에 푸르스름한 빛줄기를 그으며 삼성과 천랑성 사이로 사라졌다고. 기창의 집에 몰래 들어가려다가 담장에 발을 거는 순간 한 줄기 살기가 고요한 집 안에서 내달아 나와 정통으로 이마를 치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밖으로 굴러떨어졌다고 털어놓은 도둑도 있었다. 그 뒤로 나쁜 마음을 품은 자들은 그의 집 둘레 사방 1킬로미터 남짓을 피해 돌아서 다니고, 영리한 철새들은 그의 집 위 하늘을 지나가지 않게 되었다.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명성 한가운데서 명인 기창은 차츰 늙어 갔다. 일찍이 활쏘기를 떠난 그의 마음은 점점 더 담백하고 텅 비어 고요한 경지로 들어간 듯했다. 나무 인형 같던 얼굴은 더욱 표정을 잃고, 말하는 일도 드물어져, 마침내는 숨을 쉬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나와 남의 구별도, 옳고 그름의 분별도 모르겠다. 눈은 귀 같고, 귀는 코 같고, 코는 입 같이 여겨진다.」 이것이 늙은 명인이 만년에 털어놓은 말이다.

감승 노사 곁을 떠난 지 사십 년 뒤, 기창은 조용히, 참으로 연기처럼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 사십 년 동안 그는 활쏘기를 입에 올리는 일이 전혀 없었다. 입에조차 올리지 않았으니 활과 화살을 잡고 무슨 활약을 했을 리가 없다. 물론 우화를 쓰는 사람으로서는 여기서 늙은 명인에게 마지막 한바탕 큰 활약을 시켜, 명인이 참으로 명인인 까닭을 밝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한편으로 또 옛 책에 적힌 사실을 무슨 일이 있어도 굽힐 수는 없다. 실제로 늙은 뒤의 그에 대해서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저절로 세상을 감화했다고만 되어 있을 뿐, 다음과 같은 이상한 이야기 말고는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으니까.

그 이야기란 그가 죽기 한두 해 전의 일인 듯하다. 어느 날 늙은 기창이 아는 사람 집에 초대받아 갔는데, 그 집에서 어떤 기구 하나를 보았다. 분명히 본 기억이 있는 물건인데, 아무리 해도 그 이름이 생각나지 않고 쓰임새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노인은 그 집 주인에게 물었다. 저것은 무엇이라 부르는 물건이며, 또 무엇에 쓰는 것이냐고. 주인은 손님이 농담을 하는 줄로만 알고, 싱긋 시치미를 떼는 웃음을 지었다. 늙은 기창은 진지해져서 다시 물었다. 그래도 상대는 애매한 웃음을 띠며 손님의 속을 헤아리지 못하는 눈치였다. 세 번째로 기창이 진지한 얼굴로 같은 물음을 되풀이했을 때, 비로소 주인의 얼굴에 놀라는 빛이 나타났다. 그는 손님의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상대가 농담을 하는 것도 아니고, 미친 것도 아니며, 또 자기가 잘못 들은 것도 아님을 확인하자, 그는 거의 공포에 가까운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말을 더듬으면서 외쳤다.

「아아, 선생께서, ─ 고금에 둘도 없는 활의 명인이신 선생께서 활을 잊어버리셨단 말입니까? 아아, 활이라는 이름도, 그 쓰임새도!」

그 뒤 한동안 한단의 도성에서는 화가는 붓을 감추고, 악사는 거문고 줄을 끊고, 목수는 자와 컴퍼스를 손에 쥐는 것을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1942년 12월)

글자의 재앙

글자의 정령 따위가 대체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아시리아 사람들은 수많은 정령을 알고 있다. 밤에 어둠 속을 날뛰는 릴, 그 암컷 릴리투, 역병을 흩뿌리는 남타르, 죽은 자의 넋 에티무, 사람을 채 가는 라바스 등, 셀 수 없이 많은 악령들이 아시리아의 하늘에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글자의 정령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 무렵 ─ 이라는 것은 아슈르바니팔 대왕이 다스린 지 스무 해째 되던 무렵이지만 ─ 니네베의 궁정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밤마다 도서관의 어둠 속에서 소곤소곤 수상한 말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왕의 형 샤마시슘우킨의 반란이 바빌론 함락으로 겨우 가라앉은 직후인지라, 혹시 또 불온한 무리의 음모가 아닌가 하고 살펴보았지만 그럴 만한 낌새도 없었다. 아무래도 무슨 정령들의 말소리가 틀림없었다. 얼마 전 왕 앞에서 처형된 바빌론 포로들의 원혼의 목소리일 거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았다. 천 명이 넘는 바빌론 포로는 모두 혀를 뽑힌 채 죽임을 당했고, 그 혀를 모았더니 작은 흙더미 동산이 하나 생겼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실이다. 혀가 없는 원혼이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별점이나 양의 간을 보는 점으로 헛되이 찾아본 끝에, 이건 아무래도 책들이나 글자들의 말소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만 글자의 넋(이라는 것이 있다고 치고)이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 그것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슈르바니팔 대왕은 눈이 크고 머리가 곱슬곱슬한 늙은 박사 나부아헤에리바를 불러, 이 미지의 정령에 대해 연구하라고 명하셨다.

그날부터 나부아헤에리바 박사는 날마다 문제의 도서관(그곳은 그 뒤 이백 년 만에 땅속에 묻혔다가 다시 이천삼백 년 만에 우연히 발굴될 운명을 지닌 곳이지만)에 다니며 수만 권의 책을 훑어보면서 연구에 몰두했다. 두 강 사이의 땅에서는 이집트와 달리 파피루스가 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점토판에 딱딱한 붓으로 복잡한 쐐기 모양의 기호를 새겨 넣었다. 책은 기와였고, 도서관은 그릇 가게 창고와 비슷했다. 늙은 박사의 탁자(그 다리에는 진짜 사자의 발이 발톱까지 그대로 쓰였다) 위에는 날마다 기와 더미가 수북이 쌓였다. 그 무거운 옛 지식들 속에서 그는 글자의 넋에 관한 학설을 찾아내려 했지만 헛일이었다. 글자는 보르시파에 계신 나부 신이 다스리는 것이라는 말 말고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던 것이다. 글자에 넋이 있는가 없는가를 그는 제 힘으로 풀어내야 했다. 박사는 책을 떠나, 단 한 글자를 앞에 두고 온종일 그것과 눈싸움을 하며 지냈다. 점쟁이는 양의 간을 뚫어지게 들여다봄으로써 모든 일을 꿰뚫어 본다. 그도 이를 본받아 뚫어지게 보고 고요히 살핌으로써 참된 것을 찾아내려 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한 글자를 오래 들여다보고 있는 사이, 어느덧 그 글자가 흩어져서 뜻 없는 선 하나하나가 얽힌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저 선을 모아 놓은 것이 어째서 그런 소리와 그런 뜻을 가질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늙은 학자 나부아헤에리바는 난생처음 이 이상한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 지금까지 칠십 년 동안 당연하다고 여기며 지나쳐 온 일이 결코 당연하지도 필연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눈에서 비늘이 떨어진 심정이었다. 그저 뿔뿔이 흩어진 선에 일정한 소리와 일정한 뜻을 갖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늙은 박사는 망설임 없이 글자의 넋이 있음을 인정했다. 혼이 다스리지 않는 손·발·머리·손톱·배 따위가 사람이 아니듯이, 하나의 넋이 이를 다스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저 선을 모아 놓은 것이 소리와 뜻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이 발견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글자의 넋의 성질이 차츰 조금씩 밝혀졌다. 글자의 정령의 수는 땅 위 사물의 수만큼 많다. 글자의 정령은 들쥐처럼 새끼를 낳아 불어난다.

나부아헤에리바는 니네베 거리를 돌아다니며 최근에 글자를 익힌 사람들을 붙잡고는 끈기 있게 하나하나 물었다. 글자를 알기 전과 비교해서 무언가 달라진 데는 없느냐고. 이로써 글자의 넋이 사람에게 미치는 작용을 밝혀내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상한 통계가 만들어졌다. 그에 따르면 글자를 익힌 뒤로 갑자기 이를 잡는 데 서툴러진 사람, 눈에 먼지가 더 잘 들어가게 된 사람, 전에는 잘 보이던 하늘의 독수리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사람, 하늘빛이 예전만큼 푸르지 않게 되었다는 사람 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글자의 정령이 사람의 눈을 파먹는 것은, 마치 구더기가 호두의 단단한 껍데기를 뚫고 속살을 교묘히 다 먹어 치우는 것과 같도다.」 하고 나부아헤에리바는 새 점토 비망록에 적었다. 글자를 익힌 뒤로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는 사람, 재채기가 나게 되어 곤란하다는 사람, 딸꾹질이 자주 나게 된 사람, 설사를 하게 된 사람 등도 꽤 많았다. 「글자의 정령은 사람의 코·목구멍·배 따위도 해치는 것 같도다.」 하고 늙은 박사는 또 적었다. 글자를 익힌 뒤로 갑자기 머리숱이 적어진 사람도 있었다. 다리가 약해진 사람, 손발이 떨리게 된 사람, 턱이 잘 빠지게 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나부아헤에리바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적지 않을 수 없었다. 「글자의 해로움은 사람의 머리를 해치고 정신을 마비시키기에 이르러 곧 극에 달하도다.」 글자를 익히기 전에 비해 장인은 솜씨가 무뎌지고, 전사는 겁이 많아지고, 사냥꾼은 사자를 놓치는 일이 잦아졌다. 이것은 통계가 똑똑히 보여 주는 바였다. 글자와 가까워진 뒤로 여자를 안아도 도무지 즐겁지 않게 되었다는 하소연도 있었다. 하기야 이렇게 말한 사람은 일흔이 넘은 노인이니 이건 글자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부아헤에리바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집트 사람들은 어떤 사물의 그림자를 그 사물의 혼의 일부로 여기는 모양인데, 글자란 그 그림자 같은 것이 아닐까.

사자라는 글자는 진짜 사자의 그림자가 아닐까. 그래서 사자라는 글자를 익힌 사냥꾼은 진짜 사자 대신 사자의 그림자를 겨누고, 여자라는 글자를 익힌 사내는 진짜 여자 대신 여자의 그림자를 안게 되는 게 아닐까. 글자가 없던 옛날, 피르나피슈팀의 홍수 이전에는 기쁨도 지혜도 모두 곧바로 사람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 우리는 글자라는 얇은 껍질을 뒤집어쓴 기쁨의 그림자와 지혜의 그림자밖에 알지 못한다. 요즘 사람들은 기억력이 나빠졌다. 이것도 글자 정령의 장난이다. 사람들은 이제 적어 두지 않으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옷을 입게 되면서 사람의 살갗이 약하고 흉해졌다. 탈것이 발명되면서 사람의 다리가 약하고 흉해졌다. 글자가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의 머리는 이제 일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나부아헤에리바는 책에 미친 어떤 노인을 알고 있다. 그 노인은 박학한 나부아헤에리바보다도 더 박학하다. 그는 수메르 말이나 아람 말뿐 아니라, 파피루스나 양가죽에 적힌 이집트 글자까지 술술 읽는다. 무릇 글자로 적힌 옛일 가운데 그가 모르는 것은 없다. 그는 투쿨티니닙 1세 왕 치세 몇 년째 몇 월 며칠의 날씨까지 안다. 그러나 오늘 날씨가 맑은지 흐린지는 알아채지 못한다. 그는 소녀 사비투가 길가메시를 위로한 말도 외우고 있다. 그러나 아들을 잃은 이웃을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는 모른다. 그는 아다드니라리 왕의 왕비 삼무라마트가 어떤 옷을 좋아했는지도 안다. 그러나 자기가 지금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는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그는 얼마나 글자와 책을 사랑했던가! 읽고, 외우고, 쓰다듬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는 길가메시 전설의 가장 오래된 판본 점토판을 씹어 부수어 물에 녹여 마셔 버린 일도 있다. 글자의 정령은 그의 눈을 사정없이 파먹어, 그는 지독한 근시다. 너무 눈을 바짝 대고 책만 읽는 바람에, 매부리코 끝이 점토판과 스쳐서 딱딱한 굳은살이 박였다. 글자의 정령은 또 그의 등뼈도 갉아먹어서, 그는 턱이 배꼽에 닿을 것 같은 꼽추다. 그러나 그는 아마 자기가 꼽추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 꼽추라는 글자라면 그는 다섯 나라의 서로 다른 글자로 쓸 수 있지만. 나부아헤에리바 박사는 이 사내를 글자 정령의 희생자 첫째로 꼽았다. 다만 이런 겉모습의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이 노인은 참으로 ─ 정말이지 부러울 만큼 ─ 늘 행복해 보였다. 이것이 수상하다면 수상한 일이었지만, 나부아헤에리바는 그것도 글자 넋의 미약 같은 간사한 마력 때문이라고 보았다.

마침 아슈르바니팔 대왕이 병에 걸리셨다. 시의 아라드나나는 이 병이 가볍지 않다고 보고 대왕의 옷을 빌려 스스로 걸치고 아시리아 왕으로 꾸몄다. 이렇게 하여 죽음의 신 에레시키갈의 눈을 속이고 병을 대왕에게서 제 몸으로 옮기려는 것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의원들의 이 흔한 방법에 대해, 젊은이들 가운데 일부는 믿지 못하겠다는 눈길을 보냈다. 이건 분명 이치에 맞지 않는다, 에레시키갈 신쯤 되는 분이 저런 어린애 속임수에 넘어갈 리가 있느냐고 그들은 말했다. 큰 학자 나부아헤에리바는 이를 듣고 언짢은 얼굴을 했다. 젊은이들처럼 무슨 일이든 앞뒤를 맞추려 드는 데에는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 온몸이 때투성이인 사내가 한 군데만, 이를테면 발톱 끝만 쓸데없이 곱게 꾸미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이상한 구석이. 저들은 신비의 구름 속에서 사람이 어떤 자리에 있는지를 모르는 게야. 늙은 박사는 얕은 합리주의를 일종의 병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 병을 퍼뜨린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글자의 정령이다.

어느 날 젊은 역사가(또는 궁정의 기록 담당) 이슈디나부가 찾아와 늙은 박사에게 말했다. 역사란 무엇입니까? 하고. 늙은 박사가 어이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젊은 역사가는 설명을 덧붙였다. 얼마 전 바빌론 왕 샤마시슘우킨의 최후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든 것만은 확실하지만, 마지막 한 달쯤 동안 절망한 나머지 말로 다 할 수 없는 음탕한 생활을 했다는 설도 있고, 날마다 오로지 몸을 깨끗이 하고 샤마시 신께 기도만 드렸다는 설도 있습니다. 첫째 왕비 단 한 사람과 함께 불에 들어갔다는 설도 있고, 수백 명의 시녀와 첩을 장작불에 던져 넣은 다음 자기도 불에 들어갔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쨌든 말 그대로 연기가 되어 버린 일이라 어느 것이 옳은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머지않아 대왕께서는 그 가운데 하나를 골라 제게 기록하라고 명하실 겁니다. 이건 한 가지 예에 불과하지만, 역사란 이래도 되는 것일까요.

현명한 늙은 박사가 현명한 침묵을 지키는 것을 보고, 젊은 역사가는 물음을 이렇게 바꾸었다. 역사란 옛날에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점토판의 글자를 말하는 것입니까?

사자 사냥과 사자 사냥을 새긴 부조를 혼동하는 듯한 데가 이 물음 속에 있었다. 박사는 그것을 느꼈지만 똑똑히 말로 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대답했다. 역사란 옛날에 있었던 일이면서 점토판에 적힌 것일세. 이 둘은 같은 것 아닌가.

빠뜨리고 안 적은 것은요? 하고 역사가가 물었다.

빠뜨린 것? 농담 말게. 적히지 않은 일은 없었던 일일세. 싹이 트지 않은 씨앗은 결국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라네. 역사란 말일세, 이 점토판을 말하는 걸세.

젊은 역사가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가리킨 기와를 보았다. 그것은 이 나라 최고의 역사가 나부샬림슈누가 적은, 사르곤 왕의 할디아 정벌기 한 장이었다. 이야기하면서 박사가 뱉어 버린 석류 씨가 그 겉면에 지저분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보르시파에 계신 지혜의 신 나부께서 부리시는 글자 정령들의 무서운 힘을, 이슈디나부여, 자네는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글자 정령들이 한번 어떤 일을 붙잡아 그것을 제 모습으로 나타내면, 그 일은 이제 죽지 않는 생명을 얻는 걸세. 반대로 글자 정령의 힘센 손에 닿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그 존재를 잃을 수밖에 없네. 아득한 옛날부터 내려오는 아누 엔릴의 책에 올라 있지 않은 별은 어째서 존재하지 않는가? 그건 그 별들이 아누 엔릴의 책에 글자로 실리지 않았기 때문일세. 큰 마르두크 별(목성)이 하늘의 양치기(오리온)의 경계를 범하면 신들의 노여움이 내리는 것도, 달 윗부분에 월식이 나타나면 후모르 사람들이 재앙을 입는 것도, 모두 옛 책에 글자로 적혀 있기 때문일세. 옛 수메르 사람들이 말이라는 짐승을 몰랐던 것도 그들 사이에 말이라는 글자가 없었기 때문이지. 이 글자 정령의 힘만큼 무서운 것은 없네. 자네나 우리가 글자를 써서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일세. 우리야말로 저 글자 정령들에게 혹사당하는 종들이지. 하지만 또 저 정령들이 가져오는 해로움도 꽤 지독하네. 나는 지금 그걸 연구하고 있네만, 자네가 지금 역사를 적은 글자에 의심을 품게 된 것도 결국은 자네가 글자와 너무 가까이 지내서 그 넋의 독기에 쐰 탓일 게야.

젊은 역사가는 묘한 얼굴을 하고 돌아갔다. 늙은 박사는 한동안 더, 글자 넋의 해독이 저 쓸모 있는 젊은이마저 해치려 하는 것을 슬퍼했다. 글자와 너무 가까이 지내다가 도리어 글자에 의심을 품는 것은 결코 모순이 아니다. 얼마 전 박사는 타고난 먹성대로 양고기 구이를 거의 한 마리 분이나 먹어 치웠는데, 그 뒤 한동안 살아 있는 양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싫어진 적이 있었다.

젊은 역사가가 돌아가고 얼마 지나, 문득 나부아헤에리바는 숱이 적어진 곱슬머리를 짚고 생각에 잠겼다. 오늘 아무래도 나는 저 젊은이에게 글자 넋의 위력을 찬미한 게 아닌가? 괘씸한 일이다 하고 그는 혀를 찼다. 나까지 글자의 넋에게 홀려 있구먼.

실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 글자의 넋이 어떤 무서운 병을 늙은 박사에게 가져다주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글자 넋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한 글자를 며칠이고 가만히 노려보며 지낸 때부터였다. 그때 지금까지 일정한 뜻과 소리를 지니고 있던 글자가 홀연 흩어져서 그저 직선들의 모임이 되어 버렸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인데, 그 뒤로 그와 같은 현상이 글자 말고 모든 것에 대해서도 일어나게 되었다. 그가 집 한 채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집은 그의 눈과 머릿속에서 나무와 돌과 벽돌과 회반죽의 뜻 없는 모임으로 둔갑해 버렸다. 이것이 어째서 사람이 사는 곳이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의 몸을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뜻 없는 기괴한 모양의 부분 부분으로 쪼개져 버렸다. 어째서 이런 꼴을 한 것이 사람으로 통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었다. 사람의 나날의 일, 모든 습관이 이 기묘한 쪼개기 병 때문에 지금까지의 뜻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이제는 사람 삶의 모든 뿌리가 의심스러워 보였다. 나부아헤에리바 박사는 미칠 것만 같았다. 글자 넋의 연구를 이 이상 계속했다가는 끝내 그 넋에게 목숨을 빼앗기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겁이 나서 서둘러 연구 보고서를 정리해 아슈르바니팔 대왕에게 바쳤다. 다만 그 안에 약간의 정치적 의견을 덧붙인 것은 물론이다. 무력을 자랑하던 나라 아시리아는 이제 보이지 않는 글자 정령 때문에 완전히 좀먹어 버렸다. 게다가 이를 알아챈 자는 거의 없다. 지금 글자에 대한 맹목적 숭배를 고치지 않으면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운운.

글자의 넋이 이 헐뜯는 자를 그냥 둘 리가 없다. 나부아헤에리바의 보고서는 대왕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했다. 나부 신을 열렬히 우러르는, 당대 제일의 교양인인 대왕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늙은 박사는 그날로 근신을 명령받았다. 대왕의 어린 시절부터 스승이던 나부아헤에리바가 아니었다면, 아마 산 채로 가죽을 벗기는 형벌을 받았을 것이다. 뜻밖의 노여움에 깜짝 놀란 박사는 곧 이것이 간교한 글자 넋의 복수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며칠 뒤 니네베와 아르벨라 지방을 덮친 큰 지진 때, 박사는 마침 자기 집 서고 안에 있었다. 그의 집은 낡아서 벽이 무너지고 책장이 쓰러졌다. 엄청난 책들이 ─ 수백 장의 무거운 점토판이, 글자들의 무시무시한 저주의 목소리와 함께 이 헐뜯는 자 위로 쏟아져 내려, 그는 무참하게 깔려 죽었다.

(1942년 2월)

여우가 씐 사내

네우리 부족의 샤크에게 무언가가 씌었다는 소문이다. 온갖 것이 이 사내에게 옮겨붙는다고 한다. 매며 늑대며 수달 따위의 넋이 가엾은 샤크에게 옮겨붙어 신기한 말을 쏟아 내게 한다는 것이다.

훗날 그리스 사람들이 스키타이 사람이라고 부른 미개한 인종 가운데서도 이 종족은 유난히 별났다. 그들은 호수 위에 집을 짓고 산다. 들짐승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서다. 통나무 수천 개를 호수의 얕은 곳에 박아 넣고 그 위에 널빤지를 걸쳐, 거기에 그들의 집들이 서 있다. 바닥 여기저기에 만든 뚜껑 문을 열고 바구니를 매달아 그들은 호수의 물고기를 잡는다. 통나무배를 부려 물너구리나 수달을 잡는다. 삼베 짜는 법을 알아서 짐승 가죽과 함께 이것을 몸에 두른다. 말고기, 양고기, 산딸기, 마름 열매 따위를 먹고, 말젖과 말젖술을 즐긴다. 암말의 배에 짐승 뼈로 만든 관을 꽂아 넣고 노예에게 이것을 불게 해서 젖이 흘러내리게 하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기묘한 방법이 전해지고 있다.

네우리 부족의 샤크는 이런 호수 위 사람들 가운데 가장 평범한 한 사람이었다.

샤크가 이상해지기 시작한 것은 작년 봄 동생 데크가 죽은 뒤부터였다. 그때 북쪽에서 사납고 날랜 유목민 우그리족 한 무리가 말 위에서 초승달 모양의 칼을 휘두르며 질풍처럼 이 부족을 덮쳐 왔다. 호수 위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막았다. 처음에는 호숫가로 나가 침략자를 맞아 싸우던 그들도, 이름난 북방 초원의 기마병을 당해 내지 못해 호수 위 보금자리로 물러났다. 호숫가와 이어진 다리 판자를 걷어 내고, 집집마다 창을 총구멍 삼아 돌팔매와 활로 맞섰다. 통나무배를 다루는 데 서툰 유목민들은 호수 위 마을을 쓸어버리는 것을 단념하고, 호숫가에 남겨진 가축만 빼앗아 다시 질풍처럼 북쪽으로 돌아갔다. 뒤에는 피가 스민 호숫가 흙 위에 머리와 오른손이 없는 시체만 몇 구 남아 있었다. 머리와 오른손만은 침략자들이 잘라서 가져가 버렸다. 두개골은 바깥쪽에 금을 입혀 해골 술잔을 만들려고, 오른손은 손톱을 붙인 채로 가죽을 벗겨 장갑으로 삼으려고. 샤크의 동생 데크의 시체도 그런 욕을 당한 채 버려져 있었다. 얼굴이 없으니 옷차림과 지닌 물건으로 알아볼 수밖에 없었는데, 가죽 띠의 표시와 도끼의 장식으로 틀림없는 동생의 시체를 찾아냈을 때, 샤크는 한동안 멍하니 그 비참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무래도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과는 어딘가 달라 보였다고, 나중에 그렇게 말한 사람이 있다.

그 뒤 얼마 안 가 샤크는 이상한 헛소리를 하게 되었다. 무엇이 이 사내에게 옮겨붙어 괴상한 말을 쏟아 내게 하는지 처음에 이웃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말투로 미루어 보면 그것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진 짐승의 넋인 것 같았다. 모두가 궁리한 끝에, 그것은 야만인들에게 잘려 간 그의 동생 데크의 오른손이 말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너덧새 지나자 샤크는 또 다른 넋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것이 무슨 넋인지 곧 알 수 있었다. 싸움 운이 없어 싸움터에서 쓰러진 경위부터, 죽은 뒤 허공의 큰 넋에게 목덜미를 붙잡혀 끝없는 어둠 저편으로 내던져지는 사정까지 구슬프게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히 동생 데크 바로 그 사람이라고 모두 수긍했다. 샤크가 동생의 시체 곁에 멍하니 서 있을 때, 몰래 데크의 혼이 형 안으로 숨어들었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그와 가장 가까운 피붙이와 그 오른손의 일이니 그에게 옮겨붙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그 뒤 한때 가라앉았던 샤크가 다시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이번에는 샤크와는 아무 상관 없는 짐승이며 사람들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무언가 씐 남자나 여자는 있었지만, 이렇게 온갖 잡다한 것이 한 사람에게 옮겨붙은 예는 없었다. 어떤 때는 이 부족 아래 호수를 헤엄쳐 다니는 잉어가 샤크의 입을 빌려 비늘 가진 무리의 삶의 슬픔과 즐거움을 이야기했다. 어떤 때는 토라스산의 송골매가, 호수와 초원과 산줄기와, 또 그 너머 거울 같은 호수가 어우러진 웅대한 풍경을 이야기했다. 초원의 암늑대가 허옇게 바랜 겨울 달 아래서 굶주림에 시달리며 밤새 얼어붙은 땅 위를 헤매는 괴로움을 이야기할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샤크의 헛소리를 들으러 왔다. 우스운 것은 샤크 쪽에서도(아니면 샤크에게 깃든 넋들 쪽에서도) 많은 청중을 기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샤크의 청중은 차츰 늘어 갔는데, 어느 때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샤크의 말은 씐 것이 하는 말이 아니야, 저건 샤크가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닐까, 하고.

듣고 보니 그랬다. 보통 무언가 씐 사람은 좀 더 황홀하게 넋이 나간 상태에서 말하는 법이다. 샤크의 태도에는 그다지 미친 구석이 없었고, 그 이야기는 너무 조리가 서 있었다. 좀 이상한데, 하는 사람이 늘어 갔다.

샤크 자신도 요즘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뜻을 알지 못했다. 물론 보통 말하는 씐 것과는 다른 듯하다는 것은 샤크도 알아채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자기가 이런 괴상한 짓을 몇 달씩이나 계속하면서도 싫증을 내지 않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으니, 역시 이것은 일종의 씐 것 탓으로 여겨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분명히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 머리와 손이 어디로 갔을까 분하게 그려 보는 사이에 그만 이상한 소리를 내뱉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그가 꾸민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일은 본디 공상하기를 좋아하는 샤크에게, 자기 상상으로 자기 아닌 것에 옮겨붙는 재미를 가르쳐 주었다. 차츰 청중이 늘고, 그들의 얼굴이 자기 이야기가 느슨해지고 팽팽해지는 데 따라 때로는 안도의, 때로는 공포의 거짓 없는 빛을 띠는 것을 볼 때마다, 이 재미는 누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지어낸 이야기의 짜임새는 날이 갈수록 교묘해졌다. 상상으로 그리는 광경은 더욱더 생생해졌다. 자기도 뜻밖일 만큼 온갖 장면이 선명하고도 세밀하게 상상 속에 떠올랐다. 그는 놀라면서도 역시 이것은 무언가가 자기에게 씌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이렇게 까닭도 모르게 잇달아 태어나는 말들을 훗날까지 전할 글자라는 도구가 있어도 좋을 텐데 하는 데까지는 그는 아직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지금 자기가 맡고 있는 역할이 후세에 어떤 이름으로 불릴지도 물론 알 턱이 없었다.

샤크의 이야기가 아무래도 그가 지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뒤에도 청중은 결코 줄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잇달아 새 이야기를 지어 달라고 졸랐다. 그것이 샤크가 지어낸 이야기라 해도, 본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저 샤크에게 저런 멋진 이야기를 짓게 하는 것은 틀림없이 씐 것이라고, 그들도 지은이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씌지 않은 그들로서는 실제로 보지도 않은 일을 그렇게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 따위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호숫가 바위 그늘이나 가까운 숲의 전나무 밑, 또는 염소 가죽을 매단 샤크의 집 문간 같은 데서, 그들은 샤크를 반원으로 둘러싸고 앉아 그의 이야기를 즐겼다. 북쪽 산지에 사는 도적 서른 명 이야기며, 숲속 밤의 괴물 이야기며, 초원의 젊은 수소 이야기 같은 것을.

젊은이들이 샤크의 이야기에 넋을 잃고 일을 게을리하는 것을 보고 부족의 원로들은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다. 샤크 같은 사내가 나온 것은 불길한 징조다. 만약 무언가 씐 것이라면 이런 괴상한 씐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일이고, 만약 씐 것이 아니라면 이런 터무니없는 엉터리 이야기를 잇달아 생각해 내는 미치광이는 아직 본 적이 없다. 어느 쪽이든 이런 놈이 튀어나온 것은 무언가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불길한 일이다, 하고. 이 원로가 마침 집안의 표시로 표범 발톱을 지닌, 가장 세력 있는 집안 사람이었으므로, 이 노인의 말은 원로 모두의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몰래 샤크를 몰아낼 궁리를 했다.

샤크의 이야기는 차츰 주변 사람들 사회에서 재료를 가져오는 일이 많아졌다. 언제까지나 매나 수소 이야기만으로는 청중이 만족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샤크는 아름답고 젊은 남녀 이야기며, 인색하고 질투 많은 노파 이야기며, 남에게는 으스대면서도 늙은 아내에게만은 고개를 못 드는 추장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털갈이 철의 대머리독수리 같은 머리를 하고서는 젊은이와 아리따운 처녀를 두고 다투다가 처참하게 진 노인 이야기를 했을 때 청중이 와 하고 웃었다. 너무 웃기에 그 까닭을 물으니, 샤크를 몰아내자고 처음 꺼낸 그 원로가 최근 그와 비슷한 처참한 일을 겪었다는 소문이 있어서라고 했다.

원로는 더욱 화가 났다. 흰 뱀 같은 간교한 꾀를 짜내어 그는 계략을 꾸몄다. 최근 아내를 빼앗긴 한 사내가 이 계략에 가담했다. 샤크가 자기를 빗대는 이야기를 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온갖 수를 다 써서, 샤크가 늘 부족민으로서의 의무를 게을리하고 있다는 데 모두의 눈길을 돌리려 했다. 샤크는 낚시를 하지 않는다. 샤크는 말을 돌보지 않는다. 샤크는 숲의 나무를 베지 않는다. 수달 가죽을 벗기지 않는다. 한참 전, 북쪽 산들에서 매서운 바람이 거위 털 같은 눈송이를 실어 온 뒤로, 누구든 샤크가 마을 일을 하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는가?

사람들은 과연 그렇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샤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겨울나기에 필요한 물건들을 나눌 때가 되자 사람들은 특히 뚜렷이 그것을 느꼈다. 가장 열심히 샤크의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까지도. 그래도 사람들은 샤크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마음이 끌렸으므로, 일하지 않는 샤크에게도 마지못해 겨울 먹을거리를 나누어 주었다.

두꺼운 털가죽 그늘에서 북풍을 피하고, 짐승 똥이나 마른나무를 때는 돌 화덕 곁에서 말젖술을 홀짝이며 그들은 겨울을 난다. 물가의 갈대가 싹트기 시작하자 그들은 다시 밖으로 나가 일하기 시작했다.

샤크도 들에 나갔지만, 어딘가 눈빛도 흐리고 얼이 빠진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그가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 것을 알아챘다. 억지로 이야기를 졸라도 전에 했던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밖에 못 했다. 아니, 그것조차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말투도 생기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사람들은 말했다. 샤크에게 씐 것이 떨어졌다고. 많은 이야기를 샤크에게 들려주게 하던 씐 것이 이제 분명히 떨어진 것이다.

씐 것은 떨어졌지만 예전의 부지런한 버릇은 돌아오지 않았다. 일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샤크는 날마다 멍하니 호수를 바라보며 지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예전의 이야기 청중들은 이 멍청한 얼굴의 게으름뱅이에게 귀한 자기들의 겨울 먹을거리를 나누어 준 것을 분하게 떠올렸다. 샤크에게 앙심을 품은 원로들은 속으로 웃었다. 부족에 해롭고 쓸모없다고 모두가 인정한 자는 의논을 거쳐 처분할 수 있는 것이다.

비취 목걸이를 건 수염 덥수룩한 유력자들이 모여 몇 번이고 의논했다. 피붙이가 없는 샤크를 위해 변호하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마침 천둥 치는 철이 찾아왔다. 그들은 천둥소리를 가장 꺼리고 두려워한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외눈박이 거인의 성난 저주의 목소리다. 한번 이 소리가 울리면 그들은 모든 일을 멈추고 삼가며 나쁜 기운을 쫓아내야 한다. 간교한 노인은 점쟁이를 소뿔 잔 두 개로 매수해, 불길한 샤크의 존재와 요즘 잦은 천둥을 엮어 붙이는 데 성공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정했다. 어느 날, 해가 호수 한가운데 바로 위를 지나서 서쪽 기슭의 큰 너도밤나무 우듬지에 걸릴 때까지 사이에 천둥이 세 번 넘게 울리면, 샤크는 이튿날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관습에 따라 처분될 것이다.

그날 오후, 어떤 사람은 천둥소리를 네 번 들었다. 어떤 사람은 다섯 번 들었다고 했다.

다음 날 저녁, 호숫가 모닥불을 둘러싸고 성대한 잔치가 열렸다. 큰 솥 안에서는 양고기며 말고기에 섞여 가엾은 샤크의 살도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먹을거리가 그리 넉넉지 않은 이 지방 사람들에게, 병으로 쓰러진 자 말고 모든 새 시체는 당연히 먹을거리로 쓰이는 것이다. 샤크의 이야기를 가장 열심히 듣던 곱슬머리 청년이 모닥불에 얼굴을 달구며 샤크의 어깨 살을 입 안 가득 넣었다. 그 원로가 미운 원수의 넓적다리뼈를 오른손에 쥐고 뼈에 붙은 살을 맛있게 빨았다. 다 빨고 나서 뼈를 멀리 던지자 물소리가 나고, 뼈는 호수로 가라앉아 갔다.

호메로스라 불린 눈먼 마이오니데스가 저 아름다운 노래들을 부르기 시작하기 훨씬 전에, 이렇게 한 사람의 시인이 먹혀 버렸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1942년 7월)

미라

큰 키루스와 카산다네의 아들,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가 이집트에 쳐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그의 휘하 장수 가운데 파리스카스라는 자가 있었다. 조상은 훨씬 동쪽 박트리아 언저리에서 온 모양으로, 언제까지고 도성 풍습에 물들지 않는 몹시 음울한 시골뜨기였다. 어딘가 꿈꾸는 듯한 데가 있어서, 꽤 높은 자리에 있었는데도 늘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페르시아군이 아라비아를 지나 드디어 이집트 땅에 들어섰을 무렵부터, 이 파리스카스의 이상한 모습이 동료와 부하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파리스카스는 낯선 주변 풍경을 유난히 신기한 듯한 눈으로 바라보고는, 무언가 안절부절못하는 불안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무언가 떠올리려 하면서도 아무래도 떠오르지 않는지 초조해하는 모습이 뚜렷이 보였다. 이집트군 포로들이 진중에 끌려왔을 때, 그 가운데 어떤 자가 하는 말이 그의 귀에 들어왔다. 한동안 묘한 얼굴로 그것을 귀 기울여 듣더니, 그는 어쩐지 저들의 말뜻을 알 것 같다고 곁에 있던 사람에게 말했다. 자기가 그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저들이 하는 말만은 아무래도 알아들을 수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파리스카스는 부하를 보내 그 포로가 이집트 사람인지 아닌지(라는 것은, 이집트군의 대부분은 그리스인과 그 밖의 용병이었으니까)를 알아보게 했다. 분명히 이집트 사람이라는 대답이었다. 그는 또 불안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집트에 발을 들인 적이 없었고, 이집트 사람과 사귄 적도 없었던 것이다. 격렬한 싸움 한가운데서도 그는 여전히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패한 이집트군을 쫓아 옛 흰 성벽의 도성 멤피스에 들어갔을 때, 파리스카스의 가라앉은 흥분은 더욱 두드러졌다. 간질 환자가 발작하기 직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할 때도 잦았다. 전에는 비웃던 동료들도 조금 섬뜩해지기 시작했다. 멤피스 변두리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 앞에서, 그는 그 겉면에 새겨진 그림 같은 글자를 낮은 목소리로 읽었다. 그러고는 동료들에게 그 비를 세운 왕의 이름과 그 공적을 역시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동료 장수들은 모두 이상한 기분이 되어 얼굴을 마주 보았다. 파리스카스 자신도 몹시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구도(파리스카스 자신도) 지금까지 파리스카스가 이집트 역사에 밝다거나 이집트 글자를 읽을 줄 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 무렵부터 파리스카스의 주군 캄비세스 왕도 차츰 사나운 광기에 사로잡히기 시작한 듯했다. 그는 이집트 왕 프삼메니토스에게 소의 피를 먹여 죽였다.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이번에는 반년 전에 세상을 떠난 선왕 아마시스의 시신을 욕보이려 했다. 캄비세스가 원한을 품은 쪽은 오히려 아마시스 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몸소 한 무리의 군사를 이끌고 아마시스 왕의 무덤이 있는 사이스로 향했다. 사이스에 이르자 그는 죽은 아마시스 왕의 무덤을 찾아내 그 시신을 파내서 자기 앞에 가져오라고 모두에게 명령했다.

일찍부터 이런 일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아마시스 왕의 무덤이 있는 곳은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었다. 페르시아군 장병들은 사이스 성 안팎의 수많은 무덤을 하나하나 파헤쳐 살피며 돌아다녀야 했다.

그런데 파리스카스도 이 무덤 수색대에 끼어 있었다. 다른 자들은 이집트 귀족의 미라와 함께 무덤에 넣어진 수많은 보석, 장신구, 세간 따위를 약탈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파리스카스만은 그런 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여전히 음울한 얼굴로 무덤에서 무덤으로 돌아다녔다. 이따금 그 어두운 얼굴 어딘가에 흐린 날의 엷은 햇살 같은 밝음이 비치기도 했지만, 그것은 곧 사라지고 다시 원래의 불안한 어둠으로 돌아가 버렸다. 마음속에 무언가, 풀릴 듯하면서도 풀리지 않는 것이 걸려 있는 모양이었다.

수색을 시작한 지 며칠째 되던 어느 오후, 파리스카스는 혼자서 몹시 오래되어 보이는 어느 땅속 무덤 방 안에 서 있었다. 언제 동료나 부하와 떨어져 버렸는지, 이 무덤이 성의 어느 쪽에 있는 것인지, 그런 것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늘 하던 공상에서 깨어나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혼자서 오래된 무덤 방의 어스름 속에 있었다, 라고밖에 할 수 없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안에 흩어진 조각상이며 기물 따위와 주위의 부조, 벽화 같은 것이 어렴풋이 눈앞에 떠올랐다. 관은 뚜껑이 벗겨진 채 내던져져 있었고, 흙 인형의 머리 두세 개가 곁에 굴러다녔다. 이미 다른 페르시아 병사들의 약탈을 당한 뒤라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오래된 먼지 냄새가 차갑게 코를 찔렀다. 어둠 저편에서 커다란 매 머리 신의 입상이 굳은 얼굴로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가까운 벽화를 보니, 승냥이며 악어며 왜가리 같은 괴상한 짐승의 머리를 단 신들의 우울한 행렬이었다. 얼굴도 몸통도 없는 커다란 눈 하나가 가늘고 긴 다리와 팔을 달고 그 행렬에 끼어 있었다.

파리스카스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발을 옮겨 안쪽으로 나아갔다. 대여섯 걸음 가다가 그는 발이 걸렸다. 보니 발밑에 미라가 굴러 있었다. 그는 또 거의 아무 생각 없이 그 미라를 안아 일으켜 신상의 받침대에 기대 세웠다. 며칠 동안 질리도록 보아 온 평범한 미라였다. 그는 그대로 지나가려다가 문득 그 미라의 얼굴을 보았다. 그 순간 차가운지 뜨거운지 모를 무언가가 그의 등골을 달렸다. 미라의 얼굴에 쏟은 눈길을 이제 돌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는 자석에 끌려가듯 꼼짝도 않고 그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는 거기서 그러고 있었을까.

그동안 그의 안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았다. 그의 몸을 이루는 온갖 원소들이 그의 살갗 밑에서 무시무시하게(마치 훗날의 화학자가 시험관 속에서 해 보는 실험처럼) 거품을 일으키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그 끓음이 한참 뒤 가라앉고 나서는 이전의 성질과는 아주 딴판으로 바뀌어 버린 것 같았다.

그는 몹시 평온한 기분이 되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이집트에 들어온 뒤로 마음에 걸려 어쩔 줄 모르던 것 ─ 아침에 떠올리려 애쓰는 간밤의 꿈처럼, 알 듯하면서도 아무리 해도 생각나지 않던 것이 이제는 참으로 또렷이 알 수 있었다. 뭐야. 이런 거였나. 그는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말했다. 「나는 원래 이 미라였어. 틀림없이.」

파리스카스가 이 말을 입에 올렸을 때, 미라가 살짝 입술 끝을 일그러뜨린 것처럼 보였다. 어디서 빛이 떨어지는지, 미라의 얼굴 언저리만 어슴푸레 밝게 떠올라 똑똑히 보였다.

이제 어둠을 찢는 번갯불 한 줄기 속에서, 먼 옛 세상의 기억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그의 혼이 일찍이 이 미라에 깃들어 있던 때의 온갖 기억이. 모래땅에 내리꽂히는 타는 듯한 햇볕이며, 나무 그늘에 살랑이는 산들바람이며, 강물이 넘친 뒤의 진흙 냄새며, 번화한 큰길을 오가는 흰옷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며, 목욕한 뒤의 향유 냄새며, 어스름한 신전 깊숙이 무릎 꿇었을 때의 차가운 돌의 감촉이며, 그런 생생한 감각의 기억들이 망각의 못 밑바닥에서 한꺼번에 되살아나 밀어닥쳤다.

그 무렵 그는 프타 신전의 제사장이라도 되었던 것일까. 되었던 것일까, 라고 하는 것은, 그가 일찍이 보고 만지고 겪은 것들이 지금 그의 눈앞에 되살아날 뿐, 그 무렵의 그 자신의 모습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문득 자기가 신 앞에 제물로 바친 수소의 구슬픈 눈이 떠올랐다. 누군가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의 눈을 닮았구나 싶었다. 그래. 분명히 그 여자다. 금세 한 여자의 눈이, 공작석 가루를 엷게 바른 얼굴이, 가냘픈 몸매가, 그에게 익숙한 몸짓과 함께 그리운 체취까지 거느리고 눈앞에 나타났다. 아아 그립구나 싶었다. 그런데 해 질 녘 호수의 홍학처럼 어쩌면 이리도 쓸쓸한 여자일까.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의 아내였던 여자다.

이상하게도 이름은 무엇 하나, 사람 이름도 땅 이름도 물건 이름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이름 없는 모양과 빛깔과 냄새와 몸짓이, 거리와 시간의 개념이 기묘하게 뒤집힌 이상한 고요 속에서, 그의 앞에 문득 나타났다가 문득 사라져 갔다.

그는 이제 미라를 보고 있지 않았다. 혼이 그의 몸을 빠져나가 미라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일까.

또 한 장면이 나타났다. 자기는 지독한 열로 자리에 누워 있는 모양이다. 곁에서는 아내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들여다보고 있다. 그 뒤에는 또 누군가 노인인 듯한 사람과 아이인 듯한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몹시 목이 마르다. 손을 움직이자 곧 아내가 와서 물을 먹여 준다. 그러고는 한동안 꾸벅꾸벅 존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열이 말끔히 내려 있다. 실눈을 뜨고 보니 곁에서 아내가 울고 있다. 뒤에서 노인들도 우는 것 같다. 갑자기, 비구름 그림자가 호수 위를 눈 깜짝할 사이에 어둡게 물들여 가듯이, 푸르고 커다란 그늘이 자기 위로 덮쳐 온다. 눈앞이 아찔해지는 떨어지는 느낌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감는다. ──

거기서 그의 옛 세상의 기억은 뚝 끊겨 있다. 그러고 나서 몇백 년 동안 의식의 어둠이 이어졌는지,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곧 그것은 지금의 일이지만) 한 사람의 페르시아 군인으로서(페르시아 사람으로 수십 년을 산 뒤에) 자기가 일찍이 지녔던 몸의 미라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괴이한 신비가 드러난 데 몸서리치면서, 지금 그의 혼은 북쪽 나라 겨울 호수의 얼음처럼 더없이 맑고 더없이 팽팽하게 긴장해 있었다. 그것은 여전히 파묻힌 전생의 기억 밑바닥을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깊은 바다의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눈먼 물고기들처럼, 그의 옛 세상의 숱한 경험들이 소리 없이 잠들어 있었다.

그때 어둠 밑바닥에서 그의 혼의 눈은 전생의 자기의 괴이한 모습 하나를 찾아냈다.

전생의 자기가 어느 어스름한 작은 방 안에서 미라 하나와 마주 서 있다. 떨면서 전생의 자기는 그 미라가 전전생의 자기 몸이라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지금과 똑같은 어스름, 으스스한 냉기, 먼지 냄새 속에서, 전생의 자기는 홀연 전전생의 자기 삶을 떠올린다……

그는 오싹했다.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이 무서운 일치는. 겁먹지 말고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전생에 불러낸 그 전전생의 기억 속에서 아마 전전전생의 자기의 같은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마주 세운 거울처럼 끝없이 안으로 접혀 들어가는 섬뜩한 기억의 이어짐이 끝없이 ─ 눈앞이 아찔할 만큼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파리스카스는 온몸의 살갗에 소름이 돋아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그의 발은 얼어붙어 버렸다. 그는 아직 미라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얼어붙은 듯한 자세로 호박색의 바싹 마른 몸과 마주 서 있었다.

이튿날 다른 부대의 페르시아 병사들이 파리스카스를 찾아냈을 때, 그는 미라를 꼭 껴안은 채 옛 무덤의 지하실에 쓰러져 있었다. 돌봐 준 덕에 겨우 숨을 되찾기는 했지만, 이미 뚜렷이 미친 징후를 보이며 엉뚱한 헛소리를 떠들기 시작했다. 그 말도 페르시아 말이 아니라 모두 이집트 말이었다고 한다.

(194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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