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Hermann Hesse — Siddhartha. Eine indische Dichtung (1922)
브라만의 아들이 고행자와 붓다와 기녀를 거쳐 강가의 뱃사공에 이른다.
브라만의 아들
집의 그늘에서, 배들이 있는 강기슭의 볕에서, 살나무 숲의 그늘에서, 무화과나무의 그늘에서 싯다르타는 자랐다. 브라만의 아름다운 아들, 젊은 매는 제 벗이자 브라만의 아들인 고빈다와 함께 자랐다. 볕이 그의 환한 어깨를 그을렸다. 강기슭에서, 미역을 감을 때, 거룩한 몸 씻음에서, 거룩한 제사에서. 그늘이 그의 검은 눈으로 흘러들었다. 망고 숲에서, 사내아이들의 놀이에서, 어머니의 노래에서, 거룩한 제사에서, 학자인 아버지의 가르침에서, 현자들의 이야기에서. 싯다르타는 진작부터 현자들의 이야기에 끼었고, 고빈다와 함께 말겨루기를 익혔고, 고빈다와 함께 바라보는 기술을, 잠겨 드는 일을 익혔다. 그는 이미 소리 없이 옴을 말할 줄 알았다. 말 중의 말을, 들이쉬는 숨과 함께 소리 없이 제 안으로 말해 넣고 내쉬는 숨과 함께 소리 없이 제 밖으로 말해 낼 줄 알았다. 영혼을 모으고, 맑게 생각하는 정신의 광채가 이마를 두른 채로. 그는 이미 제 본성의 안쪽에서 아트만을 알아볼 줄 알았다. 부술 수 없고 온 우주와 하나인 그것을.
아버지의 마음에서 기쁨이 솟았다. 잘 배우고 앎에 목마른 아들을 두고서. 아버지는 그 안에서 큰 현자이자 사제가, 브라만들 가운데 으뜸이 자라나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의 가슴에서 황홀이 솟았다. 그를 볼 때면, 그가 걷는 것을 볼 때면, 그가 앉고 일어서는 것을 볼 때면. 싯다르타, 강한 자, 아름다운 자, 늘씬한 다리로 걷는 자, 더없이 반듯한 몸가짐으로 어머니에게 인사하는 자를.
젊은 브라만의 딸들 마음에서 사랑이 움직였다. 싯다르타가 빛나는 이마로, 왕의 눈으로, 좁은 허리로 도시의 골목을 지날 때면.
그러나 그들 누구보다 그를 사랑한 것은 그의 벗이자 브라만의 아들인 고빈다였다. 그는 싯다르타의 눈과 고운 목소리를 사랑했고, 그의 걸음과 더없이 반듯한 몸짓을 사랑했고, 싯다르타가 하고 말하는 모든 것을 사랑했으며, 무엇보다 그의 정신을, 그 높고 불붙은 생각을, 그 타오르는 의지를, 그 높은 부르심을 사랑했다. 고빈다는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은 흔한 브라만이 되지 않으리라고. 게으른 제사 관리도, 주문을 파는 욕심 많은 장사꾼도, 허영에 찬 빈 말쟁이도, 악하고 음흉한 사제도, 여럿의 무리 속 착하고 어리석은 양도 되지 않으리라고. 아니, 그리고 그 자신, 고빈다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만 명이나 있는 그런 브라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싯다르타를, 사랑하는 이를, 훌륭한 이를 따르고 싶었다. 그리고 싯다르타가 언젠가 신이 된다면, 언젠가 빛나는 이들 틈으로 들어간다면, 그때 고빈다는 그를 따르고 싶었다. 그의 벗으로, 그의 길동무로, 그의 종으로, 그의 창잡이로, 그의 그림자로.
그렇게 모두가 싯다르타를 사랑했다. 그는 모두에게 기쁨을 만들어 주었고, 모두에게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그 자신, 싯다르타는 스스로에게 기쁨을 만들지 못했고, 스스로에게 즐거움이 아니었다. 무화과나무 뜰의 발그레한 길을 거닐면서, 바라봄의 숲 푸르스름한 그늘에 앉으면서, 날마다 씻음의 물에 팔다리를 담그면서, 그늘 깊은 망고 숲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더없이 반듯한 몸짓으로,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모두의 기쁨이면서도 그는 가슴에 기쁨을 지니지 못했다. 꿈이 그에게 왔고 쉼 없는 생각이 왔다. 강물에서 흘러나오고, 밤의 별에서 반짝여 나오고, 볕살에서 녹아 나온 것들이었다. 꿈이 그에게 왔고 영혼의 쉬지 못함이 왔다. 제사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리그베다의 시구에서 숨결처럼 나오고, 늙은 브라만들의 가르침에서 방울져 떨어진 것들이었다.
싯다르타는 제 안에 흡족하지 못함을 기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사랑도, 어머니의 사랑도, 벗 고빈다의 사랑도 언제까지나 그를 행복하게 하고 달래고 배부르게 하고 넉넉하게 해 주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존귀한 아버지도 다른 스승들도, 지혜로운 브라만들도 제 지혜 가운데 가장 많은 것과 가장 좋은 것을 이미 그에게 일러 주었다는 것을, 그들의 넘치는 것을 이미 그의 기다리는 그릇에 부어 주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릇은 차지 않았고, 정신은 흡족하지 않았고, 영혼은 고요하지 않았고, 가슴은 달래지지 않았다. 몸 씻음은 좋았다. 그러나 그것은 물이었고, 죄를 씻어 내지 못했고, 정신의 목마름을 낫게 하지 못했고, 가슴의 두려움을 풀어 주지 못했다. 제사와 신들을 부르는 일은 훌륭했다 — 그러나 이것이 전부인가? 제사가 행복을 주는가? 그리고 신들은 어떠한가? 세계를 지은 것이 정말로 프라자파티인가? 아트만, 그분, 홀로 계신 분, 온통 하나이신 분이 아니었던가? 신들이란 나와 그대처럼 지어진 것, 시간에 매인 것, 스러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신들에게 제사 드리는 일이 좋은 일인가, 옳은 일인가, 뜻 있고 가장 높은 행함인가? 그분, 홀로 계신 분, 아트만 말고 누구에게 제사를 드릴 것이며 누구에게 경배를 바칠 것인가? 그리고 아트만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분은 어디 사시는가, 그분의 영원한 심장은 어디서 뛰는가. 저마다 제 안에 지니고 다니는 그 자신의 나, 가장 안쪽, 부술 수 없는 것 말고 어디겠는가? 그런데 어디에, 어디에 이 나가, 이 가장 안쪽이, 이 마지막이 있는가? 그것은 살과 뼈가 아니었고, 생각도 의식도 아니라고 가장 지혜로운 이들은 가르쳤다. 그러면 어디에, 어디에 그것이 있는가? 거기로, 나에게로, 나 자신에게로, 아트만에게로 뚫고 들어가는 것 — 그것 말고 찾아 나설 만한 다른 길이 있는가? 아아, 그런데 아무도 이 길을 가리켜 주지 않았고, 아무도 그것을 몰랐다. 아버지도, 스승들과 현자들도, 거룩한 제사 노래도 몰랐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알았다. 브라만들과 그들의 거룩한 책들은 모든 것을 알았고, 모든 것에, 아니 모든 것 이상에 마음을 쏟았다. 세계를 지은 일, 말과 음식과 들숨과 날숨이 생겨난 일, 감각의 질서, 신들의 행적 — 그들은 끝없이 많은 것을 알았다 — 그러나 하나이자 오직 하나인 것을, 가장 중요한 것을, 홀로 중요한 것을 모른다면 이 모든 것을 아는 일이 값진가?
물론 거룩한 책들의 많은 시구가, 특히 사마베다의 우파니샤드에 든 시구가 이 가장 안쪽의 것과 마지막의 것을 이야기했다. 훌륭한 시구였다. 「네 영혼은 온 세계다」라고 거기 적혀 있었고, 사람은 잠 속에서, 깊은 잠 속에서 제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 아트만 안에 머문다고 적혀 있었다. 놀라운 지혜가 이 시구들에 담겨 있었고, 가장 지혜로운 이들의 온갖 앎이 마법 같은 말로 여기 모여 있었다. 벌이 모은 꿀처럼 맑았다. 아니, 셀 수 없는 브라만 세대들이 여기 모으고 지켜 온 그 어마어마한 깨달음은 가벼이 볼 것이 아니었다. — 그러나 브라만들은 어디 있었는가, 사제들은 어디 있었는가, 이 가장 깊은 앎을 알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살아 내는 데 이른 현자나 고행자는 어디 있었는가? 아트만 안에 머무는 그 집 있음을 잠에서 깨어 있음으로, 삶으로, 걸음걸음으로, 말과 행동으로 옮겨 놓을 줄 아는 이는 어디 있었는가? 싯다르타는 존귀한 브라만을 많이 알았고 그중에서도 제 아버지를 알았다. 맑은 이, 학식 있는 이, 더없이 존귀한 이였다. 아버지는 우러를 만했고, 그 몸가짐은 고요하고 고결했고, 그 삶은 맑았고, 그 말은 지혜로웠고, 곱고 귀한 생각이 그 이마에 살고 있었다 — 그러나 그토록 많이 아는 그도 복됨 속에 살고 있었던가, 그에게 평화가 있었던가, 그도 찾는 자, 목마른 자일 뿐 아니었던가? 그도 목마른 자로서 자꾸자꾸 거룩한 샘에서, 제사에서, 책에서, 브라만들이 주고받는 말에서 마셔야 하지 않았던가? 흠잡을 데 없는 그가 왜 날마다 죄를 씻어 내야 했고, 날마다 맑아지려고 애써야 했고, 날마다 새로 그래야 했는가? 그 안에 아트만이 없었던가, 그 자신의 가슴에 근원의 샘이 흐르지 않았던가? 그것을 찾아야 했다. 제 자신의 나 안에 있는 근원의 샘을. 그것을 제 것으로 지녀야 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찾아 헤맴이었고, 돌아가는 길이었고, 길 잃음이었다.
싯다르타의 생각은 그러했다. 이것이 그의 목마름이었고, 이것이 그의 괴로움이었다.
그는 자주 찬도기아 우파니샤드의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참으로, 브라만의 이름은 사티암이다 — 참으로, 이를 아는 자는 날마다 하늘의 세계로 들어간다.」 하늘의 세계는 자주 가까워 보였지만 그는 한 번도 그것에 온전히 이르지 못했고, 마지막 목마름을 끈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가 알고 그 가르침을 누린 모든 현자와 가장 지혜로운 이들 가운데 아무도 그 하늘의 세계에 온전히 이른 이가 없었고, 그 영원한 목마름을 온전히 끈 이가 없었다.
"고빈다." 싯다르타가 제 벗에게 말했다. "고빈다, 사랑하는 이여, 나와 함께 반얀나무 아래로 가자. 우리 잠겨 드는 일을 하자."
그들은 반얀나무로 갔고 앉았다. 여기에 싯다르타가, 스무 걸음 떨어져 고빈다가. 앉으면서 옴을 말할 채비를 하며 싯다르타는 중얼중얼 그 시구를 되뇌었다.
옴은 활이요, 화살은 영혼이며,
브라만은 화살의 과녁이니,
흔들림 없이 그것을 맞혀야 하리라.
잠겨 드는 일의 여느 시간이 지나자 고빈다가 일어섰다. 저녁이 와 있었고, 저녁 시각의 몸 씻음을 할 때였다. 그가 싯다르타의 이름을 불렀다. 싯다르타는 답하지 않았다. 싯다르타는 잠긴 채 앉아 있었고, 그 눈은 아주 먼 과녁을 향해 굳어 있었고, 혀끝이 이 사이로 조금 나와 있었고, 숨 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는 앉아 있었다. 잠겨 듦에 싸여, 옴을 생각하며, 제 영혼을 화살로 삼아 브라만을 향해 쏘아 보낸 채로.
언젠가 사마나들이 싯다르타의 도시를 지나간 적이 있었다. 떠도는 고행자들이었다. 비쩍 마르고 꺼져 버린 세 사내로, 늙지도 젊지도 않았고, 어깨는 먼지투성이에 피가 맺혀 있었고, 볕에 그을려 거의 벗은 몸이었고, 외로움에 둘러싸여 있었고, 세상에 낯설고 세상의 적이었으며, 사람의 나라에서 이방인이자 여윈 승냥이였다. 그들 뒤로 고요한 열정의, 부수는 섬김의, 가엾이 여김 없는 자기 버림의 냄새가 뜨겁게 불려 왔다.
저녁에, 바라봄의 시간이 끝난 뒤 싯다르타가 고빈다에게 말했다. "내일 이른 아침에, 나의 벗이여, 싯다르타는 사마나들에게 갈 것이다. 그는 사마나가 될 것이다."
고빈다는 그 말을 듣고, 그리고 벗의 흔들림 없는 얼굴에서 활에서 튕겨 나간 화살처럼 돌릴 수 없는 결심을 읽고 새파랗게 질렸다. 곧바로, 첫눈에 고빈다는 알아보았다. 이제 시작되는구나, 이제 싯다르타가 제 길을 가는구나, 이제 그의 운명이 움트기 시작하는구나, 그리고 그의 운명과 함께 내 운명도. 그리하여 그는 마른 바나나 껍질처럼 하얘졌다.
"오 싯다르타," 그가 외쳤다. "네 아버지가 그것을 허락하시겠느냐?"
싯다르타는 깨어나는 사람처럼 이쪽을 바라보았다. 화살처럼 빠르게 그는 고빈다의 영혼을 읽었다. 두려움을 읽었고, 따르려는 마음을 읽었다.
"오 고빈다," 그가 나직이 말했다. "말을 헛되이 쓰지 말자. 내일 날이 밝으면 나는 사마나의 삶을 시작할 것이다. 더는 그 이야기를 하지 말자."
싯다르타는 아버지가 야자 껍질 자리에 앉아 있는 방으로 들어가 아버지 뒤에 서서, 누가 뒤에 서 있음을 아버지가 느낄 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브라만이 말했다. "너냐, 싯다르타? 그러면 하러 온 말을 하여라."
싯다르타가 말했다. "허락해 주신다면, 아버지. 저는 내일 아버지의 집을 떠나 고행자들에게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사마나가 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아버지께서 이를 막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브라만은 잠자코 있었다. 어찌나 오래 잠자코 있었던지 작은 창에서 별들이 옮겨 가고 그 모양이 바뀌고 나서야 방 안의 침묵이 끝났다. 아들은 팔짱을 끼고 말없이 꼼짝 않고 서 있었고, 아버지는 말없이 꼼짝 않고 자리에 앉아 있었고, 별들은 하늘을 지나갔다. 그러다 아버지가 말했다. "브라만이 격하고 노여운 말을 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 그러나 못마땅함이 내 마음을 흔드는구나. 이 청을 네 입에서 두 번 듣고 싶지 않다."
브라만이 천천히 일어섰다. 싯다르타는 팔짱을 낀 채 말없이 서 있었다.
"무엇을 기다리느냐?" 아버지가 물었다.
싯다르타가 말했다. "아버지께서 아십니다."
못마땅한 채로 아버지는 방을 나갔고, 못마땅한 채로 잠자리를 찾아 누웠다.
한 시간이 지나 눈에 잠이 오지 않자 브라만은 일어나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다 집 밖으로 나갔다. 방의 작은 창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싯다르타가 팔짱을 낀 채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다. 그의 밝은 겉옷이 희끄무레하게 어른거렸다. 마음에 불안을 안고 아버지는 잠자리로 돌아갔다.
한 시간이 지나 눈에 잠이 오지 않자 브라만은 다시 일어나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다 집 앞으로 나가 달이 떠오른 것을 보았다. 방의 창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싯다르타가 팔짱을 낀 채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고, 맨 정강이에 달빛이 비쳤다. 마음에 걱정을 안고 아버지는 잠자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는 한 시간 뒤에 다시 왔고, 두 시간 뒤에 다시 왔고, 작은 창으로 들여다보며 싯다르타가 달빛 속에, 별빛 속에, 어둠 속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시간마다 다시 왔고, 말없이 방 안을 들여다보며 그 자리 그대로 서 있는 이를 보았고, 마음을 노여움으로 채웠고, 마음을 불안으로 채웠고, 마음을 망설임으로 채웠고, 마음을 아픔으로 채웠다.
그리고 날이 밝기 전 밤의 마지막 시각에 그는 다시 돌아와 방으로 들어가, 저에게 크고 낯설게 보이는 그 젊은이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싯다르타," 그가 말했다. "무엇을 기다리느냐?"
"아버지께서 아십니다."
"날이 밝고 한낮이 되고 저녁이 될 때까지 늘 그렇게 서서 기다릴 테냐?"
"저는 서서 기다릴 것입니다."
"너는 지칠 것이다, 싯다르타."
"저는 지칠 것입니다."
"너는 잠들 것이다, 싯다르타."
"저는 잠들지 않을 것입니다."
"너는 죽을 것이다, 싯다르타."
"저는 죽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에게 따르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것이냐?"
"싯다르타는 늘 제 아버지에게 따라 왔습니다."
"그러면 네 뜻을 버리겠느냐?"
"싯다르타는 제 아버지가 이르시는 대로 할 것입니다."
날의 첫 빛이 방에 들었다. 브라만은 싯다르타의 무릎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싯다르타의 얼굴에서는 떨림을 보지 못했다. 두 눈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알아보았다. 싯다르타가 이미 지금 제 곁에도 고향에도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이미 지금 저를 떠났다는 것을.
아버지가 싯다르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는," 그가 말했다. "숲으로 가서 사마나가 될 것이다. 숲에서 복됨을 찾거든 돌아와 나에게 복됨을 가르쳐라. 실망을 찾거든 돌아와 다시 함께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자. 이제 가서 네 어머니에게 입 맞추고, 어디로 가는지 말씀드려라. 나는 강으로 가서 첫 몸 씻음을 할 때가 되었다."
그는 아들의 어깨에서 손을 거두고 밖으로 나갔다. 싯다르타는 걸으려다 옆으로 휘청거렸다. 그는 제 팔다리를 다스려 아버지에게 절하고, 아버지가 이른 대로 하려고 어머니에게 갔다.
날의 첫 빛 속에서 굳은 다리로 천천히 아직 고요한 도시를 떠날 때, 마지막 오두막 옆에서 거기 웅크리고 있던 그림자 하나가 일어나 그 순례하는 이에게 붙었다 — 고빈다였다.
"네가 왔구나." 싯다르타가 말하며 웃었다.
"내가 왔다." 고빈다가 말했다.
사마나들과 함께
그날 저녁에 그들은 고행자들을, 그 비쩍 마른 사마나들을 따라잡아 동행과 복종을 청했다. 그들은 받아들여졌다.
싯다르타는 제 옷을 길에서 만난 가난한 브라만에게 주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허리에 두르는 천과 흙빛의 꿰매지 않은 겉옷뿐이었다. 그는 하루에 한 번만 먹었고 익힌 것은 결코 먹지 않았다. 그는 보름을 굶었다. 그는 스물여드레를 굶었다. 넓적다리와 뺨에서 살이 빠져나갔다. 커진 눈에서 뜨거운 꿈이 너울거렸고, 말라 가는 손가락에서 손톱이 길게 자랐고 턱에서는 마르고 덥수룩한 수염이 자랐다. 여자를 마주치면 그 눈길이 얼음처럼 되었고, 곱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있는 도시를 지날 때면 그 입이 업신여김으로 씰룩였다. 그는 장사꾼이 흥정하는 것을, 제후가 사냥 가는 것을, 유족이 제 죽은 이를 두고 우는 것을, 창녀가 몸을 내놓는 것을, 의원이 병자를 두고 애쓰는 것을, 사제가 씨 뿌릴 날을 정하는 것을, 사랑하는 이들이 사랑하는 것을, 어머니들이 제 아이에게 젖 물리는 것을 보았다 —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그의 눈길을 줄 값어치가 없었고, 모든 것이 거짓말을 했고, 모든 것이 악취를 풍겼고, 모든 것이 거짓말 냄새를 풍겼고, 모든 것이 뜻과 행복과 아름다움인 척했고, 모든 것이 인정하지 않은 썩어 감이었다. 세상은 쓴맛이 났다. 삶은 괴로움이었다.
싯다르타 앞에 목표가 하나, 오직 하나 서 있었다. 비게 되는 것. 목마름에서 비고, 바람에서 비고, 꿈에서 비고, 기쁨과 괴로움에서 비는 것. 저 자신에게서 죽어 나가는 것, 더는 나가 아닌 것, 비워진 가슴의 고요를 찾는 것, 자기를 버린 생각으로 그 기적 앞에 열려 서는 것, 그것이 그의 목표였다. 온갖 나가 이겨지고 죽었을 때, 온갖 탐닉과 온갖 충동이 가슴에서 잠잠해졌을 때, 그때 마지막 것이 깨어나야 했다. 본성 속의 가장 안쪽, 더는 나가 아닌 것, 그 큰 비밀이.
싯다르타는 곧추 내리쬐는 볕에 말없이 서 있었다. 아픔으로 타오르며, 목마름으로 타오르며. 그리고 아픔도 목마름도 더는 느끼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다. 그는 우기에 말없이 서 있었다. 머리카락에서 물이 얼어붙는 어깨로, 얼어붙는 허리와 다리로 뚝뚝 흘렀고, 그 고행자는 어깨와 다리가 더는 얼지 않을 때까지, 그것들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것들이 고요해질 때까지 서 있었다. 그는 가시덤불에 말없이 웅크렸다. 타는 살갗에서 피가 떨어졌고 헌 데에서 고름이 떨어졌고, 싯다르타는 굳은 채 머물렀고, 꼼짝 않고 머물렀다. 더는 피가 흐르지 않을 때까지, 더는 찌르지 않을 때까지, 더는 타지 않을 때까지.
싯다르타는 꼿꼿이 앉아 숨을 아끼는 법을 익혔고, 적은 숨으로 지내는 법을 익혔고, 숨을 멈추는 법을 익혔다. 그는 숨에서 시작해 제 심장의 박동을 가라앉히는 법을 익혔고, 제 심장이 뛰는 횟수를 줄여 몇 번 되지 않게, 거의 없게 만드는 법을 익혔다.
사마나 가운데 가장 나이 든 이에게 배워 싯다르타는 새로운 사마나의 규범에 따라 자기 버림을 익혔고 잠겨 듦을 익혔다. 대나무 숲 위로 왜가리 한 마리가 날았다 — 그러자 싯다르타는 그 왜가리를 제 영혼에 받아들여 숲과 산 위를 날았고, 왜가리였고, 물고기를 먹었고, 왜가리의 굶주림으로 굶주렸고, 왜가리의 울음으로 말했고, 왜가리의 죽음으로 죽었다. 죽은 승냥이 한 마리가 모래 기슭에 누워 있었고, 싯다르타의 영혼은 그 주검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죽은 승냥이가 되었고, 기슭에 누웠고, 부풀었고, 악취를 풍겼고, 썩었고, 하이에나에게 갈가리 찢겼고, 독수리에게 가죽이 벗겨졌고, 뼈만 남았고, 먼지가 되었고, 들판으로 불려 갔다. 그리고 싯다르타의 영혼은 돌아왔다. 죽었었고, 썩었었고, 흩어졌었고, 돌고 도는 것의 흐린 도취를 맛보았고, 새로운 목마름 속에서 사냥꾼처럼 틈을 노리며 기다렸다. 돌고 도는 것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틈, 원인들이 끝나는 곳, 괴로움 없는 영원이 시작되는 곳을. 그는 제 감각을 죽였고, 제 기억을 죽였고, 제 나에게서 빠져나와 천 가지 낯선 모습이 되었다. 짐승이었고, 주검이었고, 돌이었고, 나무였고, 물이었고, 그러다 깨어날 때마다 제 자신을 다시 찾아냈다. 볕이 비추거나 달이 비추었고, 다시 나였고, 돌고 도는 것 속에서 흔들렸고, 목마름을 느꼈고, 목마름을 이겼고, 새로운 목마름을 느꼈다.
싯다르타는 사마나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나에게서 벗어나는 많은 길을 걸을 줄 알게 되었다. 그는 아픔을 통해, 아픔과 굶주림과 목마름과 지침을 스스로 견디고 이겨 냄을 통해 자기 버림의 길을 갔다. 그는 명상을 통해, 온갖 떠올림에서 뜻을 비워 내는 생각을 통해 자기 버림의 길을 갔다. 이 길들과 다른 길들을 그는 걸을 줄 알게 되었고, 천 번이나 제 나를 떠났고,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나 아닌 것 속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 길들이 나에게서 벗어나 이끌어도 그 끝은 언제나 다시 나로 돌아갔다. 싯다르타가 천 번이나 나에게서 달아나 없음 속에 머물고 짐승 속에, 돌 속에 머물러도 돌아옴은 피할 수 없었고, 저 자신을 다시 찾아내는 시각은 벗어날 수 없었다. 볕 속에서든 달빛 속에서든, 그늘 속에서든 빗속에서든 그는 다시 나였고 싯다르타였으며, 지워진 돌고 돎의 괴로움을 다시 느꼈다.
그의 곁에서 그의 그림자인 고빈다가 살았고, 같은 길을 갔고, 같은 애씀을 치렀다. 섬김과 수행이 요구하는 것 말고 다른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드물었다. 이따금 그들은 둘이서 마을을 지나며 저희와 제 스승들을 위한 먹을 것을 빌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고빈다," 언젠가 이 동냥길에서 싯다르타가 말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우리가 더 나아갔느냐? 우리가 목표에 이르렀느냐?"
고빈다가 답했다. "우리는 배웠고 계속 배우고 있다. 너는 큰 사마나가 될 것이다, 싯다르타. 너는 온갖 수행을 빨리 익혔고, 늙은 사마나들이 자주 너에게 감탄했다. 너는 언젠가 성자가 될 것이다, 오 싯다르타."
싯다르타가 말했다. "나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나의 벗이여. 오늘까지 사마나들에게서 배운 것, 그것은, 오 고빈다, 더 빨리 더 쉽게 배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창녀촌의 어느 술집에서든, 나의 벗이여, 마부와 노름꾼 틈에서든 나는 그것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고빈다가 말했다. "싯다르타가 나를 두고 농을 하는구나. 잠겨 듦을, 숨 멈춤을, 굶주림과 아픔에 무디어짐을 어떻게 그 비참한 자들 틈에서 배울 수 있었겠느냐?"
그러자 싯다르타가 제 자신에게 말하듯 나직이 말했다. "잠겨 듦이란 무엇이냐? 몸을 떠남이란 무엇이냐? 굶음이란 무엇이냐? 숨 멈춤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나에게서 달아남이고, 나로 있음의 괴로움에서 잠깐 빠져나감이고, 삶의 아픔과 뜻없음에 맞선 짧은 마취다. 소몰이꾼도 주막에서 쌀술 몇 사발이나 삭힌 야자즙을 마시면 같은 달아남을, 같은 짧은 마취를 찾아낸다. 그러면 그는 제 자신을 더는 느끼지 않고, 삶의 아픔을 더는 느끼지 않고, 짧은 마취를 찾아낸다. 쌀술 사발 위로 꾸벅 졸면서 그는 싯다르타와 고빈다가 긴 수행으로 제 몸에서 빠져나가 나 아닌 것에 머물 때 찾아내는 바로 그것을 찾아낸다. 그런 것이다, 오 고빈다."
고빈다가 말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마는, 오 벗이여, 싯다르타가 소몰이꾼이 아니고 사마나가 술꾼이 아님을 너도 알지 않느냐. 술꾼이 마취를 찾아내는 것은 맞고, 짧은 달아남과 쉼을 찾아내는 것도 맞다. 그러나 그는 그 홀림에서 돌아와 모든 것이 그대로임을 보고, 더 지혜로워지지 않았고, 깨달음을 모으지 못했고, 몇 계단 더 오르지도 않았다."
그러자 싯다르타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모르겠다. 나는 술꾼이었던 적이 없다. 그러나 나, 싯다르타가 내 수행과 잠겨 듦에서 짧은 마취만을 찾아낼 뿐이고, 지혜에서, 구원에서 어머니 배 속의 아이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 그것은 안다, 오 고빈다, 그것은 안다."
또 언젠가 싯다르타가 고빈다와 함께 제 형제들과 스승들을 위해 마을에서 먹을 것을 좀 빌려고 숲을 나설 때, 싯다르타가 말을 꺼내어 말했다. "어떠하냐, 오 고빈다, 우리가 옳은 길 위에 있느냐? 우리가 깨달음에 다가가고 있느냐? 우리가 구원에 다가가고 있느냐? 아니면 우리는 돌고 있는 것이 아니냐 — 돌고 도는 것에서 빠져나가려던 우리가?"
고빈다가 말했다. "우리는 많이 배웠다, 싯다르타. 배울 것이 아직 많이 남았다. 우리는 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위로 가고 있다. 그 원은 나선이고, 우리는 이미 몇 계단을 올랐다."
싯다르타가 답했다. "우리 가운데 가장 나이 든 사마나, 우리의 존귀한 스승은 몇 살쯤이라고 보느냐?"
고빈다가 말했다. "우리 어른은 예순쯤 되셨을 것이다."
그러자 싯다르타가 말했다. "예순 살이 되도록 그분은 열반에 이르지 못했다. 그분은 일흔이 되고 여든이 될 것이고, 너와 나도 그만큼 나이를 먹을 것이고 수행할 것이고 굶을 것이고 명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열반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그분도, 우리도. 오 고빈다, 나는 있는 모든 사마나 가운데 어쩌면 하나도, 하나도 열반에 이르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위로를 찾아내고, 마취를 찾아내고, 우리 자신을 속이는 재주를 익힌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 길 중의 길은 찾아내지 못한다."
"부디," 고빈다가 말했다. "그런 무서운 말을 입에 올리지 말아라, 싯다르타! 그토록 많은 학식 있는 이들 가운데, 그토록 많은 브라만 가운데, 그토록 엄하고 존귀한 사마나들 가운데, 그토록 많은 찾는 이들, 그토록 살갑게 애쓰는 이들, 그토록 거룩한 이들 가운데 어찌 아무도 길 중의 길을 찾아내지 못한단 말이냐?"
그러나 싯다르타는 비웃음만큼이나 서글픔이 담긴 목소리로, 나직하고 조금 서글프고 조금 비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머지않아, 고빈다, 네 벗은 너와 그토록 오래 함께 걸어온 이 사마나의 오솔길을 떠날 것이다. 나는 목마르다, 오 고빈다. 그리고 이 긴 사마나의 길에서 내 목마름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나는 늘 깨달음에 목말랐고, 늘 물음으로 가득했다. 나는 브라만들에게 물었다, 해마다. 거룩한 베다에 물었다, 해마다. 경건한 사마나들에게 물었다, 해마다. 어쩌면, 오 고빈다, 코뿔새에게 묻거나 침팬지에게 물었더라도 그만큼 좋고 그만큼 슬기롭고 그만큼 이로웠을 것이다. 나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것을 배우는 데 말이다, 오 고빈다. 사람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배움'이라 부르는 그런 것은 실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 나의 벗이여, 있는 것은 오직 하나의 앎뿐이고, 그것은 어디에나 있고, 그것이 아트만이고, 그것은 내 안에도 네 안에도 모든 살아 있는 것 안에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믿기 시작한다. 이 앎에게 알고자 하는 마음보다, 배움보다 더 고약한 적은 없다고."
그러자 고빈다가 길에 멈춰 서서 두 손을 들고 말했다. "싯다르타, 부디 그런 말로 네 벗을 겁먹게 하지 말아라! 참으로 네 말이 내 가슴에 두려움을 일으킨다. 생각해 보아라. 네 말대로라면, 배움이라는 것이 없다면 기도의 거룩함은 어디에 남고, 브라만 신분의 존귀함은 어디에 남고, 사마나의 거룩함은 어디에 남겠느냐?! 오 싯다르타, 그러면 이 땅에서 거룩한 것, 값진 것, 존귀한 것이 다 어떻게 되겠느냐?!"
그러고서 고빈다는 혼자 시구 하나를 중얼거렸다. 어느 우파니샤드의 시구였다.
곰곰이 생각하며 맑아진 정신으로 아트만에 잠기는 이,
그 가슴의 복됨은 말로는 이를 수 없어라.
그러나 싯다르타는 잠자코 있었다. 그는 고빈다가 저에게 한 말을 생각했고, 그 말을 끝까지 생각했다.
그래, 하고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서서 생각했다. 우리에게 거룩해 보이던 그 모든 것에서 무엇이 남을 것인가? 무엇이 남는가? 무엇이 견디어 내는가? 그리고 그는 고개를 저었다.
두 젊은이가 사마나들 곁에서 세 해쯤 살며 그 수행을 함께한 어느 때, 이 길 저 길을 돌고 돌아 소식 하나가, 소문 하나가, 이야기 하나가 그들에게 닿았다. 어떤 이가 나타났는데 고타마라 불리고, 존귀하신 이, 붓다라 하며, 그가 제 안에서 세상의 괴로움을 이겨 내고 윤회의 바퀴를 멈추어 세웠다는 것이었다. 그는 제자들에 둘러싸여 가르치며 나라를 돌아다니는데, 가진 것도 집도 아내도 없이 고행자의 누런 옷을 걸쳤으나 이마는 환하고 복된 이이며, 브라만과 제후들이 그 앞에 몸을 굽히고 그의 제자가 된다고 했다.
이 이야기가, 이 소문이, 이 옛말 같은 것이 여기저기서 울렸고 향기처럼 피어올랐다. 도시에서는 브라만들이 그 이야기를 했고 숲에서는 사마나들이 했으며, 붓다 고타마의 이름이 자꾸자꾸 젊은이들의 귀에 닿았다. 좋게도 나쁘게도, 기림으로도 헐뜯음으로도.
어느 나라에 돌림병이 돌 때, 어디어디에 한 사람이, 한 현자가, 아는 이가 있어 그 말과 입김만으로 병에 걸린 이를 누구든 낫게 한다는 소식이 일어나고, 그 소식이 나라를 가로질러 달려 모두가 그 이야기를 하고, 많은 이가 믿고 많은 이가 의심하되 많은 이는 곧바로 길을 나서 그 현자를, 그 도와주는 이를 찾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그 이야기가, 붓다 고타마, 석가족에서 난 그 현자에 관한 그 향기로운 이야기가 나라를 가로질러 달렸다. 믿는 이들의 말로는 그에게 가장 높은 깨달음이 있고, 그는 제 지난 삶들을 기억하며, 열반에 이르러 다시는 돌고 도는 것으로 돌아오지 않고, 다시는 형상들의 흐린 물결 속으로 잠기지 않는다고 했다. 훌륭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 그에 대해 많이 전해졌다. 그가 기적을 행했고, 악마를 이겼고, 신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적들과 믿지 않는 이들은 이 고타마가 허영에 찬 꾐꾼이며, 날을 편히 먹고 지내며 보내고, 제사를 업신여기고, 학식이 없으며, 수행도 고행도 모른다고 말했다.
붓다에 관한 이야기는 달게 울렸고, 그 전해지는 말에서 마법 같은 향기가 났다. 세상은 병들어 있었고 삶은 견디기 어려웠다 — 그런데 보라, 여기 샘 하나가 솟는 듯했고, 여기 사자의 부름이 울리는 듯했다. 위로로 가득하고 부드럽고 고결한 약속으로 가득한 부름이. 붓다에 관한 소문이 울려 퍼지는 곳마다, 인도의 온 땅 어디서나 젊은이들이 귀를 기울였고, 그리움을 느꼈고, 희망을 느꼈다. 그리고 도시와 마을의 브라만 아들들 사이에서는 그 존귀하신 이, 석가모니의 소식을 가져오는 순례자와 나그네라면 누구든 반가웠다.
숲의 사마나들에게도, 싯다르타에게도, 고빈다에게도 그 이야기가 닿았다. 천천히, 방울방울, 방울마다 희망으로 무겁고 방울마다 의심으로 무겁게. 그들은 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사마나 가운데 가장 나이 든 이가 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붓다라는 자가 전에는 고행자로 숲에서 살다가 나중에 편한 삶과 세상의 즐거움으로 돌아섰다고 들었고, 그래서 이 고타마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 싯다르타." 언젠가 고빈다가 제 벗에게 말했다. "오늘 나는 마을에 있었는데 어느 브라만이 나를 제 집에 들라고 청했다. 그 집에 마가다에서 온 브라만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제 눈으로 붓다를 보았고 그가 가르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참으로 그때 내 가슴에서 숨이 아팠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아니 우리 둘, 싯다르타와 나도 그 이룬 이의 입에서 가르침을 듣는 시각을 겪을 수 있다면! 말해 다오, 벗이여, 우리도 그리로 가서 붓다의 입에서 그 가르침을 들어 보지 않겠느냐?"
싯다르타가 말했다. "오 고빈다, 나는 늘 고빈다가 사마나들 곁에 남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늘 그가 예순, 일흔이 되도록 사마나를 빛내 주는 재주와 수행을 계속 이어 가는 것이 그의 목표라고 믿었다. 그런데 보아라, 나는 고빈다를 너무 몰랐고 그 가슴에 대해 아는 것이 적었다. 그러니까 이제 너는, 더없이 귀한 이여, 새로운 오솔길로 접어들어 붓다가 제 가르침을 알리는 곳으로 가려는구나."
고빈다가 말했다. "너는 비웃기를 좋아하는구나. 마음껏 비웃어라, 싯다르타! 그러나 네 안에도 이 가르침을 들어 보고 싶은 갈망이, 마음이 깨어나지 않았느냐? 그리고 언젠가 나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사마나의 길을 오래 가지는 않으리라고?"
그러자 싯다르타가 제 나름으로 웃었다. 그 목소리의 가락에 서글픔의 그림자와 비웃음의 그림자가 어렸고, 그가 말했다. "그래, 고빈다, 잘 말했다. 옳게 기억했다. 그러나 나에게서 들은 다른 것도 기억해 다오. 내가 가르침과 배움에 대해 미덥지 않아하고 지쳤다는 것, 그리고 스승들에게서 우리에게 오는 말에 대한 내 믿음이 작다는 것 말이다. 그렇지만 좋다, 사랑하는 이여, 나는 그 가르침을 들을 채비가 되어 있다 — 우리가 그 가르침의 가장 좋은 열매를 이미 맛보았다고 가슴으로는 믿지만."
고빈다가 말했다. "네가 채비되어 있다니 내 마음이 기쁘다. 그런데 말해 다오, 그것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 우리가 아직 듣지도 않았는데 고타마의 가르침이 어떻게 벌써 우리에게 그 가장 좋은 열매를 열어 주었단 말이냐?"
싯다르타가 말했다. "그 열매를 누리고 나머지는 기다려 보자, 오 고빈다! 우리가 이미 지금 고타마에게 빚진 이 열매는, 그가 우리를 사마나들에게서 불러내 준다는 데 있다! 그가 우리에게 줄 다른 것이, 더 나은 것이 있는지는, 오 벗이여, 고요한 마음으로 기다려 보자."
바로 그날 싯다르타는 사마나 가운데 가장 나이 든 이에게 그를 떠나겠다는 제 결심을 알렸다. 그는 손아래 사람이자 제자에게 마땅한 예의와 겸손으로 그것을 알렸다. 그러나 그 사마나는 두 젊은이가 저를 떠나려 한다는 데 노여워하며 큰 소리로 말하고 거친 욕설을 썼다.
고빈다는 놀라 어쩔 줄 몰랐으나, 싯다르타는 입을 고빈다의 귀로 기울여 속삭였다. "이제 저 어른께 내가 그분에게서 무언가 배웠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다."
싯다르타는 그 사마나 앞에 바짝 다가서서 영혼을 모으고, 제 눈길로 그 노인의 눈길을 붙잡아 홀렸고, 말을 못 하게 만들었고, 뜻을 잃게 만들었고, 제 뜻에 굴복시켰고, 저가 요구하는 것을 소리 없이 하라고 명령했다. 노인은 말을 잃었고, 그 눈은 굳었고, 그 뜻은 마비되었고, 두 팔은 늘어졌고, 힘없이 싯다르타의 홀림에 넘어갔다. 싯다르타의 생각이 그 사마나를 사로잡았고, 그는 그 생각이 명령하는 것을 해내야 했다. 그리하여 노인은 여러 번 절했고, 축복하는 몸짓을 했고, 더듬거리며 경건한 여행길의 축원을 말했다. 그리고 두 젊은이는 고맙다며 절을 되돌려 주었고 축원을 되돌려 주었고 인사하며 그곳을 떠났다.
가는 길에 고빈다가 말했다. "오 싯다르타, 너는 사마나들에게서 내가 알던 것보다 많이 배웠구나. 늙은 사마나를 홀리는 것은 어렵다, 몹시 어렵다. 참으로 네가 거기 남았더라면 머지않아 물 위를 걷는 법도 배웠을 것이다."
"나는 물 위를 걷기를 바라지 않는다." 싯다르타가 말했다. "그런 재주에는 늙은 사마나들이나 흡족해하라지!"
고타마
사바티 도시에서는 아이마다 존귀하신 붓다의 이름을 알았고, 집집마다 말없이 비는 고타마의 제자들에게 바리때를 채워 줄 채비가 되어 있었다. 도시 가까이에 고타마가 가장 즐겨 머무는 곳인 제타바나 숲이 있었다. 존귀하신 이를 지극히 우러르던 부유한 상인 아나타핀디카가 그와 그 무리에게 선물한 곳이었다.
고타마가 머무는 곳을 찾는 두 젊은 고행자에게 주어진 온갖 이야기와 대답이 모두 이 고장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들이 사바티에 이르러 어느 집 문 앞에 서서 빌자, 바로 그 첫 집에서 먹을 것을 내주었고, 그들은 그것을 받았다. 그리고 싯다르타가 먹을 것을 건네준 여인에게 물었다.
"자비로운 이여, 저희는 붓다께서, 더없이 존귀하신 분께서 어디 머무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저희는 숲에서 온 두 사마나이며, 그 이룬 분을 뵙고 그 입에서 가르침을 듣고자 왔습니다."
여인이 말했다. "참으로 옳은 곳에 드셨습니다, 숲에서 오신 사마나들이여. 아십시오, 존귀하신 분은 제타바나에, 아나타핀디카의 동산에 머무십니다. 순례자들이여, 그곳에서 밤을 지내셔도 됩니다. 그분의 입에서 가르침을 들으려고 몰려드는 헤아릴 수 없는 이들을 받을 만큼 자리가 넉넉합니다."
그러자 고빈다가 기뻐하며 기쁨에 차서 외쳤다. "잘되었습니다, 우리 목표에 이르렀고 우리 길이 끝났습니다! 그런데 말씀해 주십시오, 순례자들의 어머니시여, 그분을, 붓다를 아십니까? 그분을 눈으로 뵌 적이 있습니까?"
여인이 말했다. "여러 번 그분을 뵈었습니다, 존귀하신 분을. 여러 날 그분이 골목을 지나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말없이, 누런 가사를 걸치고, 말없이 집집의 문 앞에서 바리때를 내미시고, 채워진 바리때를 들고 가시는 것을."
고빈다는 홀린 듯 귀 기울이며 더 묻고 더 듣고 싶어 했다. 그러나 싯다르타가 어서 가자고 재촉했다. 그들은 고맙다 인사하고 길을 떠났는데 길을 물을 것도 거의 없었다. 적지 않은 순례자와 고타마 무리의 수행승들이 제타바나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밤에 그곳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서는 잠자리를 청하고 얻는 이들이 끊임없이 도착하고 부르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숲의 삶에 익숙한 두 사마나는 빠르고 소리 없이 몸 뉘일 자리를 찾아 아침까지 쉬었다.
해가 뜰 때 그들은 얼마나 큰 무리가, 믿는 이들과 궁금해하는 이들이 여기서 밤을 지냈는지를 놀라며 보았다. 그 훌륭한 숲의 온갖 길에 누런 옷을 입은 수행승들이 거닐었고, 나무 아래 여기저기 앉아 바라봄에 잠기거나 도를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그늘진 동산은 하나의 도시처럼 보였다. 사람들로 가득해 벌 떼처럼 우글거렸다. 수행승 대부분은 바리때를 들고 나가 도시에서 하루 한 끼인 점심을 위한 먹을 것을 모았다. 붓다 자신도, 깨달은 이도 아침에 동냥길을 하곤 했다.
싯다르타는 그를 보았고, 마치 어떤 신이 그를 가리켜 보여 주기라도 한 듯 곧바로 알아보았다. 그는 누런 가사를 걸치고 바리때를 손에 든 채 조용히 걸어가는 수수한 사람 하나를 보았다.
"여기 보아라!" 싯다르타가 고빈다에게 나직이 말했다. "이분이 붓다다."
고빈다는 누런 가사를 걸친 그 수행승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는데, 그는 수백 명의 수행승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곧 고빈다도 알아보았다. 이분이시구나. 그리고 그들은 그를 뒤따르며 바라보았다.
붓다는 조촐하게 생각에 잠긴 채 제 길을 갔다. 그 고요한 얼굴은 즐겁지도 서글프지도 않았고, 안쪽을 향해 가만히 웃는 듯했다. 숨은 웃음을 띠고, 고요하고 잠잠하게, 건강한 아이와 다르지 않게 붓다는 거닐었고, 다른 수행승 모두와 똑같이 정해진 법도대로 옷을 걸치고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그 얼굴과 그 걸음이, 고요히 내려뜬 눈길이, 고요히 늘어뜨린 손이, 아니 그 고요히 늘어뜨린 손의 손가락 하나하나까지가 평화를 말했고 온전함을 말했다. 찾지 않았고 흉내 내지 않았고, 시들지 않는 고요 속에서, 시들지 않는 빛 속에서, 건드릴 수 없는 평화 속에서 부드럽게 숨 쉬었다.
그렇게 고타마는 동냥을 모으러 도시 쪽으로 거닐었고, 두 사마나는 오직 그 고요의 온전함으로, 그 모습의 잠잠함으로 그를 알아보았다. 그 안에는 찾음도, 바람도, 흉내도, 애씀도 알아볼 수 없었고 오직 빛과 평화뿐이었다.
"오늘 우리는 그분의 입에서 가르침을 듣게 될 것이다." 고빈다가 말했다.
싯다르타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 가르침이 그리 궁금하지 않았다. 그것이 저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치리라 믿지 않았다. 고빈다와 마찬가지로 그도 이 붓다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이미 자꾸자꾸 들었기 때문이다. 건너건너 전해진 말로였을 뿐이지만. 그러나 그는 고타마의 머리를, 어깨를, 발을, 고요히 늘어뜨린 손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고, 그에게는 이 손의 손가락마다 마디마디가 가르침으로 보였다. 그것이 말했고, 숨 쉬었고, 향기를 풍겼고, 진리를 빛냈다. 이 사람은, 이 붓다는 마지막 손가락의 몸짓에 이르기까지 참되었다. 이 사람은 거룩했다. 싯다르타는 어떤 사람도 이토록 우러른 적이 없었고, 어떤 사람도 이 사람만큼 사랑한 적이 없었다.
둘은 붓다를 따라 도시까지 갔다가 말없이 돌아왔다. 그들 자신은 그날 먹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타마가 돌아오는 것을 보았고, 제자들에 둘러싸여 끼니를 드는 것을 보았고 — 그가 먹은 것으로는 새 한 마리도 배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 망고나무 그늘로 물러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저녁에 더위가 가라앉고 야영지의 모든 것이 살아나 모여들 때, 그들은 붓다가 가르치는 것을 들었다. 그들은 그 목소리를 들었는데 그것 또한 온전했고, 온전한 고요였고, 평화로 가득했다. 고타마는 괴로움에 관한 가르침을, 괴로움이 어디서 오는가를, 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가르쳤다. 그 고요한 말은 잠잠하고 맑게 흘렀다. 삶은 괴로움이었고 세상은 괴로움으로 가득했으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이 찾아졌다. 붓다의 길을 가는 이가 벗어남을 얻었다. 존귀하신 이는 부드럽되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고, 네 가지 근본 진리를 가르쳤고, 여덟 갈래 길을 가르쳤다. 그는 참을성 있게 가르침의, 비유의, 되풀이의 익숙한 길을 갔고, 그 목소리는 듣는 이들 위로 환하고 고요하게 떠다녔다. 하나의 빛처럼, 별 뜬 하늘처럼.
붓다가 — 이미 밤이 되어 있었다 — 말을 마치자 몇몇 순례자가 앞으로 나와 무리에 받아들여지기를 청하며 그 가르침에 귀의했다. 그리고 고타마는 이렇게 말하며 그들을 받아들였다. "그대들은 가르침을 잘 들었고 가르침은 잘 알려졌다. 그러니 이리 와서 거룩함 속에 거닐며 온갖 괴로움을 끝내라."
보라, 그때 수줍은 고빈다도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저도 존귀하신 분과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그리고 제자로 받아 주기를 청하여 받아들여졌다.
곧이어 붓다가 밤 쉼으로 물러가자 고빈다가 싯다르타에게 돌아서서 간절히 말했다. "싯다르타, 내가 너를 나무랄 처지는 아니다. 우리 둘 다 존귀하신 분의 말씀을 들었고 우리 둘 다 그 가르침을 들었다. 고빈다는 그 가르침을 들었고 거기에 귀의했다. 그런데 너는, 우러르는 벗이여, 너는 벗어남의 오솔길을 가지 않겠느냐? 망설이려느냐, 더 기다리려느냐?"
싯다르타는 고빈다의 말을 듣고 잠에서 깨어나듯 깨어났다. 그는 오래 고빈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비웃음 없는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고빈다, 나의 벗이여, 이제 너는 걸음을 내디뎠고 이제 길을 골랐다. 오 고빈다, 너는 늘 내 벗이었고 늘 내 뒤에서 한 걸음 떨어져 걸었다. 나는 자주 생각했다. 고빈다도 언젠가 한 번은 나 없이, 제 영혼에서 나온 걸음을 혼자 내딛지 않을까 하고. 보아라, 이제 너는 한 사람의 어른이 되었고 스스로 제 길을 고른다. 그 길을 끝까지 가기를, 오 나의 벗이여! 벗어남을 얻기를!"
아직 온전히 알아듣지 못한 고빈다가 조바심 어린 가락으로 제 물음을 되풀이했다. "말해 다오, 부탁이다, 사랑하는 이여! 달리 될 수 없는 일이니, 너도, 나의 학식 있는 벗이여, 존귀하신 붓다께 귀의하리라고 말해 다오!"
싯다르타가 고빈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는 내 축원을 흘려들었구나, 오 고빈다. 다시 말하겠다. 이 길을 끝까지 가기를! 벗어남을 얻기를!"
그 순간 고빈다는 제 벗이 저를 떠났음을 알아보았고, 울기 시작했다.
"싯다르타!" 그가 애타게 불렀다.
싯다르타가 그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잊지 말아라, 고빈다, 너는 이제 붓다의 사마나에 든 것이다! 너는 고향과 부모를 버렸고, 태생과 가진 것을 버렸고, 네 자신의 뜻을 버렸고, 우정을 버렸다. 가르침이 그리 바라고 존귀하신 분이 그리 바란다. 너 스스로 그것을 바랐다. 내일이면, 오 고빈다, 나는 너를 떠날 것이다."
두 벗은 오래도록 숲을 거닐었고, 오래 누워서도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고빈다는 자꾸자꾸 벗을 채근했다. 왜 고타마의 가르침에 귀의하지 않으려 하는지, 이 가르침에서 대체 어떤 흠을 찾았는지 말해 달라고. 그러나 싯다르타는 그때마다 그를 물리치며 말했다. "그만해 두어라, 고빈다! 존귀하신 분의 가르침은 아주 훌륭하다. 내가 어찌 거기서 흠을 찾겠느냐?"
이른 아침에 붓다를 따르는 이 하나가, 그중 가장 나이 든 수행승 하나가 동산을 지나며 새로 가르침에 귀의한 이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그들에게 누런 옷을 입히고 제 신분의 첫 가르침과 의무를 일러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고빈다가 몸을 떼어 내어 어린 시절의 벗을 한 번 더 껴안고 행자들의 줄에 끼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생각에 잠긴 채 숲을 거닐었다.
그때 존귀하신 고타마가 그를 마주쳤다. 그가 경외를 담아 인사하자 붓다의 눈길이 어찌나 인자함과 고요로 가득했던지, 젊은이는 용기를 내어 그 존귀한 분에게 말씀드릴 것을 허락해 달라고 청했다. 존귀하신 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싯다르타가 말했다. "어제, 오 존귀하신 분이여, 저는 당신의 놀라운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벗과 함께 그 가르침을 들으려고 먼 데서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 벗은 당신의 사람들 곁에 남아 당신께 귀의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순례를 새로 시작하려 합니다."
"그대 좋을 대로 하라." 존귀한 분이 정중히 말했다.
"제 말이 너무 대담합니다만," 싯다르타가 이어 갔다. "존귀하신 분께 제 생각을 솔직히 말씀드리지 않고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존귀하신 분께서 잠깐만 더 들어 주시겠습니까?"
붓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싯다르타가 말했다. "더없이 존귀하신 분이여, 당신의 가르침에서 무엇보다 감탄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에서 모든 것이 더없이 맑고 밝혀져 있습니다. 당신은 세계를 온전한, 언제 어디서도 끊어지지 않는 사슬로 보여 주십니다. 원인과 결과로 엮인 영원한 사슬로 말입니다. 이토록 맑게 본 적이 없고 이토록 뒤집을 수 없이 내보인 적이 없습니다. 참으로 어느 브라만이든 당신의 가르침을 거쳐 세계를 온전한 이어짐으로, 틈 없이 수정처럼 맑고, 우연에 매이지도 신들에 매이지도 않은 것으로 바라볼 때 가슴이 더 높이 뛸 것입니다. 세계가 좋은지 악한지, 그 안의 삶이 괴로움인지 기쁨인지는 접어 두어도 좋겠고, 어쩌면 그것은 본질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계의 하나임, 모든 일어남의 이어짐, 크고 작은 모든 것이 같은 흐름에, 원인과 되어 감과 죽음의 같은 법에 감싸여 있다는 것 — 이것이 당신의 존귀한 가르침에서 환하게 빛납니다, 오 이룬 분이여. 그런데 바로 그 같은 가르침에 따르면, 모든 것의 이 하나임과 앞뒤 맞음이 한 자리에서 끊어집니다. 작은 틈 하나를 통해 이 하나인 세계로 낯선 것이, 새로운 것이, 전에는 없던 것이, 그리고 보여 줄 수도 밝힐 수도 없는 것이 흘러듭니다. 그것이 세계를 이겨 냄에 관한, 벗어남에 관한 당신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이 작은 틈으로, 이 작은 뚫림으로 그 영원하고 하나인 세계의 법 전체가 다시 부서지고 무너집니다. 이런 반론을 입에 올린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고타마는 잠자코, 꼼짝 않고 그의 말을 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 이룬 분이 인자하고 정중하고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가르침을 들었다, 오 브라만의 아들이여. 그것을 그토록 깊이 생각했다니 그대에게 좋은 일이다. 그대는 거기서 틈을 하나 찾아냈고 흠을 하나 찾아냈다. 계속 그것을 생각해 보아라. 다만 알고자 하는 그대여, 의견의 덤불과 말을 두고 벌이는 다툼을 조심하여라. 의견에는 걸린 것이 없다. 아름답든 추하든, 슬기롭든 어리석든, 누구든 거기 매달릴 수도 있고 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가 나에게서 들은 가르침은 의견이 아니고, 그 목표는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 목표는 다른 것이다. 그 목표는 괴로움에서 벗어남이다. 이것이 고타마가 가르치는 것이고 다른 것이 아니다."
"오 존귀하신 분이여, 저에게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젊은이가 말했다. "당신과 다투려고, 말을 두고 다투려고 이렇게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당신 말씀이 옳습니다. 의견에는 걸린 것이 적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만 더 말씀드리게 해 주십시오. 저는 한순간도 당신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붓다시라는 것을, 그토록 많은 수천의 브라만과 브라만의 아들들이 길 위에서 좇고 있는 그 가장 높은 목표에 당신이 이르셨다는 것을 저는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죽음에서 벗어남을 찾아내셨습니다. 그것은 당신 자신의 찾음에서, 당신 자신의 길에서, 생각으로, 잠겨 듦으로, 깨달음으로, 밝아짐으로 당신에게 온 것입니다. 가르침으로 온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 이것이 제 생각입니다, 오 존귀하신 분이여 — 누구에게도 가르침으로 벗어남이 오지는 않습니다! 존귀하신 분이여, 당신께서 밝아지신 그 시각에 당신에게 일어난 일을 당신은 누구에게도 말로, 가르침으로 전하고 말해 주실 수 없을 것입니다! 밝아진 붓다의 가르침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고, 많은 이에게 올바로 사는 법과 악을 피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토록 맑고 그토록 존귀한 그 가르침에 담기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에는 존귀하신 분 자신이 겪은 것의 비밀이, 수십만 사람 가운데 홀로 당신만이 겪은 것의 비밀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그 가르침을 들으며 생각하고 알아본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제 떠돌이 길을 이어 가려는 까닭입니다 — 다른 가르침, 더 나은 가르침을 찾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저는 아니까요. 온갖 가르침과 온갖 스승을 떠나 홀로 제 목표에 이르거나 죽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날을 자주 생각할 것입니다, 오 존귀하신 분이여. 그리고 제 눈이 한 성자를 본 이 시각을 자주 생각할 것입니다."
붓다의 두 눈은 고요히 땅을 보았고, 헤아릴 수 없는 그 얼굴은 온전한 평정 속에서 고요히 빛났다.
"그대의 생각이," 존귀한 분이 천천히 말했다. "그르치는 것이 아니기를! 그대가 목표에 이르기를! 그런데 말해 보아라. 그대는 내 사마나의 무리를, 가르침에 귀의한 내 많은 형제들을 보았느냐? 그리고 낯선 사마나여, 그대는 그들 모두가 가르침을 떠나 세상과 즐거움의 삶으로 돌아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느냐?"
"그런 생각은 제게서 멉니다." 싯다르타가 외쳤다. "그들 모두가 가르침 곁에 머물기를, 그들이 제 목표에 이르기를! 남의 삶을 두고 판단하는 것은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오직 저를 위해, 저 하나만을 위해 저는 판단하고 고르고 물리쳐야 합니다. 오 존귀하신 분이여, 우리 사마나는 나에게서 벗어남을 찾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당신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된다면, 오 존귀하신 분이여, 저는 이런 일이 저에게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제 나가 겉으로만, 속임수로만 고요해지고 벗어난 듯하되 실은 계속 살아남아 커져 버리는 일 말입니다. 그때는 제가 그 가르침을, 제 따름을, 당신을 향한 제 사랑을, 수행승의 무리를 제 나로 삼아 버렸을 테니까요!"
반쯤 웃으며, 흔들림 없는 밝음과 다정함으로 고타마는 그 낯선 이의 눈을 들여다보았고, 거의 보이지 않는 몸짓으로 그를 보냈다.
"그대는 슬기롭구나, 오 사마나여." 존귀한 분이 말했다.
"그대는 슬기롭게 말할 줄 안다, 나의 벗이여. 너무 큰 슬기를 조심하여라!"
붓다는 걸어서 멀어졌고, 그 눈길과 반쯤 띤 웃음은 영영 싯다르타의 기억에 새겨졌다.
이렇게 바라보고 웃고 앉고 걷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참으로 나도 이렇게 바라보고 웃고 앉고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자유롭게, 그렇게 존귀하게, 그렇게 숨은 채로, 그렇게 열린 채로, 그렇게 아이 같고 비밀스럽게. 참으로 저렇게 바라보고 걷는 사람은 제 자신의 가장 안쪽까지 뚫고 들어간 사람뿐이다. 좋다, 나도 내 자신의 가장 안쪽까지 뚫고 들어가려 하겠다.
한 사람을 보았다, 하고 싯다르타는 생각했다. 내가 눈을 내리깔아야 했던 오직 한 사람을. 다른 누구 앞에서도 다시는 눈을 내리깔지 않겠다. 누구 앞에서도 다시는. 이 사람의 가르침이 나를 꾀지 못했으니, 어떤 가르침도 다시는 나를 꾀지 못하리라.
붓다는 나에게서 빼앗아 갔다, 하고 싯다르타는 생각했다. 그는 나에게서 빼앗아 갔고, 그보다 더 많이 나에게 주었다. 그는 나에게서 내 벗을 빼앗아 갔다. 나를 믿었고 이제 그를 믿는 벗, 내 그림자였고 이제 고타마의 그림자인 벗을. 그러나 그는 나에게 싯다르타를, 나 자신을 주었다.
깨어남
싯다르타가 그 숲을, 이룬 이 붓다가 남아 있고 고빈다가 남아 있는 그 숲을 떠날 때, 그는 이 숲에 여태의 제 삶도 뒤에 남아 저에게서 떨어져 나갔음을 느꼈다. 그를 온통 채운 이 느낌을 그는 천천히 걸어가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깊이 생각했다. 깊은 물을 지나듯 이 느낌의 바닥까지, 원인들이 놓여 있는 데까지 저를 내려보냈다. 원인을 알아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생각이라고 그에게는 여겨졌고, 오직 그것으로만 느낌이 깨달음이 되어 사라지지 않고 본질을 얻어 제 안에 든 것을 뿜어내기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천천히 걸어가며 싯다르타는 생각했다. 그는 제가 더는 젊은이가 아니라 어른이 되었음을 짚어 냈다. 뱀이 제 낡은 허물에게서 벗어나듯 무언가 하나가 저에게서 떠났음을, 온 젊은 시절 내내 저를 따라다니며 저에게 속해 있던 것이 더는 제 안에 없음을 짚어 냈다. 스승을 두고 가르침을 듣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제 길에 나타난 마지막 스승을, 가장 높고 가장 지혜로운 스승이자 가장 거룩한 이인 붓다마저 그는 떠났고, 그에게서 갈라서야 했고, 그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생각하는 이는 걸음을 늦추며 제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면 네가 가르침에서, 스승들에게서 배우고자 한 것은 무엇이며, 너를 많이 가르친 그들이 그래도 너에게 가르쳐 줄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이냐?" 그리고 그는 찾아냈다. "나였다. 그 뜻과 본성을 내가 배우고자 한 것은 나였다. 내가 벗어나려 하고 이겨 내려 한 것은 나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이겨 내지 못했고, 그저 속일 수 있었을 뿐이고, 그저 그것에게서 달아날 수 있었을 뿐이고, 그저 그것 앞에서 숨을 수 있었을 뿐이다. 참으로 이 세상 어떤 것도 이 나만큼 내 생각을 차지한 적이 없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내가 하나이며 다른 모두에게서 갈라져 따로 떨어져 있다는 것, 내가 싯다르타라는 것, 이 수수께끼만큼. 그런데 이 세상 어떤 것에 대해서도 나는 나에 대해서만큼, 싯다르타에 대해서만큼 모르지 않는다!"
천천히 걸어가며 생각하던 이가 이 생각에 붙들려 멈춰 섰고, 곧 이 생각에서 또 하나의 생각이, 새로운 생각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이러했다. "내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싯다르타가 나에게 그토록 낯설고 알 수 없는 것으로 남았다는 것, 그것은 하나의 원인, 오직 하나의 원인에서 온다. 나는 나를 두려워했고, 나에게서 달아나는 중이었다! 나는 아트만을 찾았고 브라만을 찾았고, 내 나를 토막 내고 껍질을 벗겨 그 알 수 없는 가장 안쪽에서 온갖 껍질의 알맹이를, 아트만을, 생명을, 신적인 것을, 마지막 것을 찾아내려 했다. 그런데 그러다가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싯다르타는 눈을 뜨고 둘레를 둘러보았다. 웃음이 그 얼굴을 채웠고, 긴 꿈에서 깨어나는 깊은 느낌이 발끝까지 그를 흘러 지나갔다. 그리고 그는 곧 다시 걸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처럼 빠르게 걸었다.
"오," 그는 깊이 숨을 들이쉬며 생각했다. "이제 싯다르타를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 다시는 아트만과 세상의 괴로움으로 내 생각과 내 삶을 시작하지 않겠다. 잔해 뒤에서 비밀을 찾겠다고 나를 죽이고 토막 내지 않겠다. 요가베다도, 아타르바베다도, 고행자들도, 어떤 가르침도 더는 나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겠다. 나는 나 자신에게서 배우겠다, 나는 제자가 되겠다, 나는 나를 알아 가겠다, 싯다르타라는 그 비밀을."
그는 처음으로 세상을 보는 듯 둘레를 둘러보았다. 세상은 아름다웠고, 세상은 알록달록했고, 세상은 야릇하고 수수께끼 같았다! 여기 파랑이 있었고, 여기 노랑이 있었고, 여기 초록이 있었다. 하늘이 흘렀고 강이 흘렀고, 숲이 우뚝했고 산이 우뚝했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모든 것이 수수께끼로 차고 마법 같았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그가, 싯다르타가, 깨어나는 이가 저 자신에게로 가는 길 위에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이 온갖 노랑과 파랑이, 강과 숲이 처음으로 눈을 지나 싯다르타에게 들어왔다. 그것은 더는 마라의 마법이 아니었고, 더는 마야의 너울이 아니었고, 더는 여럿을 업신여기고 하나를 찾는 깊이 생각하는 브라만에게 하찮은, 뜻 없고 우연한 나타남의 세계의 여럿이 아니었다. 파랑은 파랑이었고 강은 강이었다. 그리고 그 파랑과 강 속에, 싯다르타 속에 하나이며 신적인 것이 숨어 살고 있다 해도, 여기서는 노랑이고 여기서는 파랑이며 저기서는 하늘이고 저기서는 숲이며 여기서는 싯다르타인 것이 바로 그 신적인 것의 방식이자 뜻이었다. 뜻과 본성은 사물 뒤 어딘가에 있지 않았다. 그것들 안에, 모든 것 안에 있었다.
"내가 얼마나 귀먹고 무디었던가!" 빠르게 걸어가는 이가 생각했다. "누가 뜻을 찾으려고 글을 읽을 때는 그 기호와 글자를 업신여겨 속임수라느니 우연이라느니 값없는 껍질이라느니 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읽고, 글자 하나하나를 살피고 사랑한다. 그런데 나는, 세상이라는 책과 내 자신의 본성이라는 책을 읽으려던 나는 미리 짐작해 둔 뜻을 위해 그 기호와 글자를 업신여겼다. 나는 나타남의 세계를 속임수라 불렀고, 내 눈과 내 혀를 우연하고 값없는 나타남이라 불렀다. 아니, 이것은 지나갔다. 나는 깨어났다. 나는 참으로 깨어났고 오늘에야 태어났다."
싯다르타가 이 생각을 생각하는 동안, 그는 길 위에 뱀이 놓여 있기라도 한 듯 갑자기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갑자기 이것도 그에게 또렷해졌기 때문이다. 참으로 깨어난 이나 새로 태어난 이와 같은 그는 제 삶을 새로, 온전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날 아침 그가 제타바나 숲을, 그 존귀하신 분의 숲을 떠날 때, 이미 깨어나면서 이미 저 자신에게로 가는 길 위에서 그의 뜻은 고행자로 지낸 몇 해를 뒤로하고 고향으로, 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었고 그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해 보였다. 그런데 이제, 길 위에 뱀이 놓여 있기라도 한 듯 멈춰 선 이 순간에야 그는 이 깨달음에도 눈떴다. "나는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니다. 나는 더는 고행자가 아니고, 더는 사제가 아니고, 더는 브라만이 아니다. 그러면 집에서, 내 아버지 곁에서 무엇을 하겠는가? 공부를? 제사를? 잠겨 드는 일을? 이 모든 것은 지나갔고, 이 모든 것은 더는 내 길 위에 있지 않다."
싯다르타는 꼼짝 않고 서 있었고, 한순간 숨 한 번 쉬는 동안 그의 가슴이 얼어붙었다. 제가 얼마나 혼자인지를 보았을 때, 그는 가슴 안쪽에서 작은 짐승이, 새나 토끼가 얼어붙듯 그것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여러 해 동안 그는 집 없이 지냈으면서도 그것을 느끼지 않았다. 이제 그것을 느꼈다. 여태껏 가장 먼 잠겨 듦 속에서도 그는 제 아버지의 아들이었고, 브라만이었고, 높은 신분이었고, 정신의 사람이었다. 이제 그는 깨어난 자 싯다르타일 뿐, 그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고, 한순간 얼어붙어 떨었다. 그만큼 혼자인 사람은 없었다. 귀족치고 귀족들에게 속하지 않은 이가 없었고, 장인치고 장인들에게 속하지 않아 그들에게 몸을 붙이고 그 삶을 나누고 그 말을 쓰지 않는 이가 없었다. 브라만치고 브라만들에 들지 않아 그들과 함께 살지 않는 이가 없었고, 고행자치고 사마나의 신분에서 몸 붙일 데를 찾지 못한 이가 없었으며, 숲에서 가장 외따로 사는 은자마저도 하나이고 혼자인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도 속함이 둘러 있었고, 그도 어떤 신분에 속했으며 그 신분이 그에게 고향이었다. 고빈다는 수행승이 되었고 천 명의 수행승이 그의 형제였고, 그의 옷을 입었고, 그의 믿음을 믿었고, 그의 말을 썼다. 그러나 그는, 싯다르타는 어디에 속했는가? 누구의 삶을 나눌 것인가? 누구의 말을 쓸 것인가?
세상이 둘레에서 녹아 사라지고 그가 하늘의 별처럼 혼자 서 있던 이 순간에서, 차가움과 낙담의 이 순간에서 싯다르타는 솟아올랐다. 전보다 더 나인 채로, 더 단단히 뭉친 채로. 그는 느꼈다. 이것이 깨어남의 마지막 떨림이었고, 태어남의 마지막 진통이었다고. 그리고 그는 곧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빠르고 조바심 나게 걷기 시작했다. 더는 집으로가 아니라, 더는 아버지에게로가 아니라, 더는 뒤로가 아니라.
카말라
제2부 — 빌헬름 군데르트
일본에 있는 내 사촌에게 바친다
싯다르타는 제 길의 걸음마다 새로운 것을 배웠다. 세상이 달라졌고 그의 가슴이 홀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해가 숲 덮인 산 위로 떠오르고 먼 야자수 물가 너머로 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밤하늘에 별들이 자리를 잡은 것을, 초승달이 배처럼 푸른 데를 헤엄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나무와 별과 짐승과 구름과 무지개와 바위와 풀과 꽃과 시내와 강을 보았고, 아침 덤불에서 반짝이는 이슬을, 멀리 푸르고 창백한 높은 산들을 보았다. 새들이 노래했고 벌들이 노래했고, 바람이 논에서 은빛으로 불었다. 이 모든 것이, 천 겹으로 알록달록한 이 모든 것이 늘 거기 있었고, 늘 해와 달이 비추었고, 늘 강이 소리 냈고 벌이 붕붕거렸다. 그러나 지난 시절 싯다르타에게 이 모든 것은 제 눈앞에 덧없이 걸린 속이는 너울에 지나지 않았고, 미덥지 않게 바라보던 것이었고, 생각으로 꿰뚫어 없애 버려야 할 것이었다. 그것이 본성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본성은 보이는 것 너머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풀려난 그의 눈은 이쪽에 머물렀다. 그의 눈은 보이는 것을 보고 알아보았고, 이 세상에서 고향을 찾았고, 본성을 찾지 않았고, 어떤 저쪽도 겨누지 않았다. 그렇게 바라보면, 그렇게 찾음 없이, 그렇게 단순하게, 그렇게 아이처럼 바라보면 세상은 아름다웠다. 달과 별이 아름다웠고, 시내와 기슭이, 숲과 바위가, 염소와 풍뎅이가, 꽃과 나비가 아름다웠다. 그렇게 세상을 지나가는 일이, 그렇게 아이처럼, 그렇게 깨어난 채로, 그렇게 가까운 것에 열린 채로, 그렇게 미더워하지 않음 없이 지나가는 일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볕이 머리에 닿는 것이 달랐고, 숲 그늘이 식혀 주는 것이 달랐고, 시내와 물항아리의 맛이 달랐고, 호박과 바나나의 맛이 달랐다. 낮이 짧았고 밤이 짧았다. 시간마다 바다 위의 돛처럼 빠르게 달아났고, 그 돛 아래에는 보물로 가득하고 기쁨으로 가득한 배가 있었다. 싯다르타는 원숭이 무리가 높은 숲 지붕에서, 높은 가지에서 옮겨 다니는 것을 보았고 그 사납고 탐하는 노래를 들었다. 싯다르타는 숫양이 암양을 좇아가 올라타는 것을 보았다. 그는 갈대 우거진 못에서 꼬치고기가 저녁 배고픔에 사냥하는 것을 보았고, 그 앞에서 어린 물고기들이 겁에 질려 떼 지어 파닥이고 번득이며 물 밖으로 튀어 오르는 것을 보았고, 그 거센 사냥꾼이 일으키는 급한 물살에서 힘과 열정이 짙게 풍겨 나왔다.
이 모든 것이 늘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는 거기 함께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그는 거기 함께 있었고, 거기에 속했다. 그의 눈을 지나 빛과 그늘이 흘렀고, 그의 가슴을 지나 별과 달이 흘렀다.
싯다르타는 길에서 제타바나 동산에서 겪은 모든 일도 떠올렸다. 거기서 들은 가르침을, 신 같은 붓다를, 고빈다와의 작별을, 존귀하신 분과 나눈 이야기를. 그는 존귀하신 분에게 한 제 자신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한마디 한마디를 떠올렸고, 그때는 아직 제대로 알지도 못하던 것들을 그가 말했었다는 것을 놀라며 알아차렸다. 그가 고타마에게 한 말, 곧 붓다의 보물이자 비밀은 가르침이 아니라 밝아지던 그 시각에 그가 겪은, 말로 할 수 없고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는 말 — 그것이야말로 이제 그가 겪으러 나선 것이었고, 이제 겪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제 그는 저 자신을 겪어야 했다. 물론 그는 제 자신이 아트만이며 브라만과 같은 영원한 본성이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자신을 한 번도 정말로 찾아내지 못했다. 생각의 그물로 그것을 잡으려 했기 때문이다. 몸이 자신이 아닌 것도, 감각의 놀이가 자신이 아닌 것도 분명했지만, 생각도 자신이 아니었고, 이성도, 배워 익힌 지혜도, 결론을 내고 이미 생각한 것에서 새 생각을 자아내는 배워 익힌 재주도 자신이 아니었다. 아니, 이 생각의 세계도 아직 이쪽이었고, 감각의 우연한 나를 죽이면서 그 대신 생각과 학식의 우연한 나를 살찌운다면 어떤 목표에도 이르지 못했다. 생각도 감각도 둘 다 고운 것이었고, 둘 다의 뒤에 마지막 뜻이 숨어 있었고, 둘 다를 들어야 했고, 둘 다와 놀아야 했고, 둘 다를 업신여기지도 지나치게 치지도 말아야 했고, 둘 다에서 가장 안쪽의 은밀한 목소리를 엿들어야 했다. 그는 그 목소리가 좇으라고 명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좇지 않으려 했고, 그 목소리가 권하는 곳 말고는 아무 데도 머물지 않으려 했다. 고타마는 왜 그때, 시각 중의 시각에 보리수 아래 앉았고 거기서 밝아짐이 그를 맞혔는가? 그는 목소리를 들었다. 제 가슴속의 목소리가 이 나무 아래서 쉬라고 그에게 명했고, 그는 고행도 제사도 목욕도 기도도, 먹고 마시는 것도, 잠도 꿈도 그보다 앞세우지 않았다. 그는 그 목소리에 따랐다. 그렇게 따르는 것, 바깥의 명령이 아니라 오직 그 목소리에만 따르는 것, 그렇게 채비되어 있는 것, 그것이 좋았고 그것이 꼭 필요했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강가 뱃사공의 짚 오두막에서 자던 밤에 싯다르타는 꿈을 꾸었다. 고빈다가 누런 고행자 옷을 입고 그 앞에 서 있었다. 고빈다는 서글퍼 보였고 서글프게 물었다. 왜 나를 떠났느냐? 그러자 그는 고빈다를 껴안았고, 두 팔로 그를 감았고, 제 가슴으로 끌어당겨 입 맞추는데 그것은 더 이상 고빈다가 아니라 한 여자였고, 그 여자의 옷에서 가득한 젖가슴이 솟아 나왔고, 싯다르타는 거기 기대어 마셨다. 이 젖가슴의 젖은 달고 진한 맛이 났다. 그것은 여자와 남자의 맛이, 해와 숲의 맛이, 짐승과 꽃의 맛이, 온갖 열매의 맛이, 온갖 즐거움의 맛이 났다. 그것은 취하게 하고 정신을 잃게 했다. — 싯다르타가 깨어났을 때 창백한 강이 오두막 문으로 어른거렸고, 숲에서는 깊고 고운 올빼미 소리가 어둡게 울렸다.
날이 밝자 싯다르타는 저를 재워 준 뱃사공에게 강을 건너게 해 달라고 청했다. 뱃사공은 대나무 뗏목으로 그를 강 건너로 실어다 주었다. 아침빛에 넓은 물이 불그레하게 어른거렸다.
"아름다운 강이군요." 그가 제 길동무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뱃사공이 말했다. "아주 아름다운 강이지요. 나는 이 강을 무엇보다 사랑합니다. 자주 이 강에 귀 기울였고, 자주 그 눈을 들여다보았고, 늘 이 강에게서 배웠습니다. 강에게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요."
"고맙습니다, 저를 도와주신 분." 싯다르타가 건너편 기슭에 오르며 말했다. "드릴 답례도 없고 삯도 없습니다. 저는 집 없는 사람이고, 브라만의 아들이자 사마나입니다."
"보아서 알았습니다." 뱃사공이 말했다.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삯도 답례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 선물은 다음번에 주시게 될 겁니다."
"그리 생각하십니까?" 싯다르타가 유쾌하게 말했다.
"물론이지요. 그것도 강에게서 배웠습니다. 모든 것은 다시 온다는 것을! 당신도, 사마나여, 다시 오실 겁니다. 그럼 잘 가십시오! 당신의 우정이 내 삯이 되기를. 신들에게 제사 드릴 때 나를 생각해 주시기를."
그들은 웃으며 헤어졌다. 싯다르타는 웃으며 뱃사공의 우정과 다정함을 기뻐했다. '고빈다 같은 사람이구나.' 그는 웃으며 생각했다. '내가 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고빈다 같다. 모두 고마워한다. 저희가 고마움을 받을 만한데도 그렇다. 모두 몸을 낮추고, 모두 기꺼이 벗이 되려 하고, 기꺼이 따르려 하고, 생각은 적게 한다. 사람들은 아이들이다.'
한낮 무렵 그는 어느 마을을 지났다. 흙집 앞 골목에서 아이들이 뒹굴며 호박씨와 조개껍데기를 가지고 놀았고, 소리 지르고 뒹굴다가 낯선 사마나 앞에서는 모두 겁을 내며 달아났다. 마을 끝에서 길이 시내를 지났고, 시냇가에 젊은 여자가 무릎을 꿇고 빨래를 하고 있었다. 싯다르타가 인사하자 그가 고개를 들어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았고, 그 눈의 흰자위가 번득이는 것이 보였다. 그는 나그네들 사이에 흔한 축원의 말을 건네고 큰 도시까지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가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고, 젊은 얼굴에서 촉촉한 입이 곱게 어른거렸다. 그는 그와 농담을 주고받았고, 벌써 먹었는지 물었고, 사마나들이 밤에 숲에서 혼자 자고 여자를 곁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사실인지 물었다. 그러면서 제 왼발을 그의 오른발에 올려놓고, 여자가 남자에게 교본에서 「나무 오르기」라 부르는 그 사랑의 즐거움을 청할 때 하는 몸짓을 했다. 싯다르타는 제 피가 더워지는 것을 느꼈고, 그 순간 제 꿈이 다시 떠올라 여자에게로 조금 몸을 숙여 그 젖가슴의 갈색 끝에 입술을 대었다. 고개를 들자 갈망으로 가득한 그 얼굴이 웃고 있었고 작아진 두 눈이 그리움으로 애원하는 것이 보였다.
싯다르타도 그리움을 느꼈고 성의 샘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한 번도 여자를 만져 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는 한순간 망설였고, 그동안 두 손은 이미 그를 붙잡을 채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떨면서 제 속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 목소리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자 웃고 있던 젊은 여자의 얼굴에서 온갖 홀림이 사라졌고, 그에게는 발정한 암짐승의 젖은 눈길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정하게 그 뺨을 쓰다듬고 그에게서 돌아서서, 실망한 그 앞에서 가벼운 걸음으로 대숲 속으로 사라졌다.
이날 그는 저녁이 되기 전에 큰 도시에 이르렀고 기뻐했다. 사람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그는 오래 숲에서 살았고, 이 밤을 잔 뱃사공의 짚 오두막이 오랜만에 처음으로 머리 위에 인 지붕이었다.
도시 앞, 울타리 두른 아름다운 숲가에서 나그네는 바구니를 진 하인과 하녀의 작은 무리를 마주쳤다. 그 한가운데 넷이 멘 꾸민 가마 안에, 알록달록한 양산 아래 붉은 방석 위에 한 여자가, 그 집 마님이 앉아 있었다. 싯다르타는 그 유원 입구에 서서 그 행렬을 바라보았고, 하인들과 하녀들과 바구니들을 보았고, 가마를 보았고, 가마 안의 그 부인을 보았다. 높이 틀어 올린 검은 머리 아래 아주 환하고 아주 여리고 아주 영리한 얼굴을 보았고, 막 벌어진 무화과 같은 밝고 붉은 입을, 손질해 높은 활 모양으로 그린 눈썹을, 영리하고 깨어 있는 검은 눈을, 초록과 금빛 겉옷에서 솟은 환하고 긴 목을, 손목에 넓은 금팔찌를 두른 채 길고 가늘게 놓인 환한 두 손을 보았다.
싯다르타는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았고, 그의 가슴이 웃었다. 가마가 가까이 오자 그는 깊이 절했고, 다시 몸을 일으키며 그 환하고 고운 얼굴을 들여다보았고, 한순간 그 영리하고 높이 아치진 눈에서 무언가를 읽었고, 알지 못하는 향기를 한 숨 들이쉬었다. 그 아름다운 여인이 한순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숲으로 사라졌고, 그 뒤로 하인들이 사라졌다.
'이렇게 나는 이 도시에 들어서는구나.' 싯다르타는 생각했다. '고운 징조 아래서.' 그는 곧바로 그 숲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다시 생각했고, 그제야 입구의 하인과 하녀들이 저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가 떠올랐다. 얼마나 업신여기며, 얼마나 미덥지 않아 하며, 얼마나 물리치며 보았는지가.
'나는 아직 사마나구나.' 그는 생각했다. '아직도 고행자이고 거지구나.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 이대로 저 숲에 들어가서는 안 되겠다.' 그러고서 그는 웃었다.
길을 지나가는 첫 사람에게 그는 그 숲과 그 여인의 이름을 물었고, 그곳이 이름난 기녀 카말라의 숲이며 그가 숲 말고도 도시에 집을 한 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도시로 들어섰다. 이제 그에게는 목표가 있었다.
제 목표를 좇으며 그는 도시가 저를 빨아들이게 두었고, 골목의 물결에 실려 다녔고, 광장에 서 있었고, 강가 돌계단에서 쉬었다. 저녁 무렵 그는 어느 아치 그늘에서 일하는 것을 보았던 이발사 조수와 벗이 되었다. 비슈누 사원에서 기도하는 그를 다시 만나 비슈누와 락슈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강가 배들 곁에서 밤을 잤고, 이른 아침 첫 손님이 가게에 오기 전에 그 이발사 조수에게 수염을 밀고 머리를 자르고 머리를 빗고 고운 기름을 발랐다. 그러고서 강에 가서 몸을 씻었다.
늦은 오후에 아름다운 카말라가 가마를 타고 제 숲으로 다가올 때 입구에는 싯다르타가 서 있었고, 그는 절하며 그 기녀의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행렬 맨 뒤에 오는 하인에게 손짓하여, 젊은 브라만이 마님과 이야기하기를 청한다고 아뢰어 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뒤 하인이 돌아와 기다리던 이에게 따라오라 했고, 따라오는 그를 말없이 어느 정자로 데려갔다. 거기 카말라가 긴 의자에 누워 있었고, 하인은 그를 그 곁에 혼자 두고 물러갔다.
"어제도 저 바깥에 서서 나에게 인사하지 않았느냐?" 카말라가 물었다.
"어제도 당신을 보고 인사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수염이 있고 머리가 길고 머리에 먼지가 있지 않았느냐?"
"잘 보셨습니다. 다 보셨군요. 당신이 보신 것은 싯다르타입니다. 사마나가 되려고 제 고향을 떠나 세 해 동안 사마나로 지낸 브라만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저는 그 오솔길을 떠나 이 도시로 왔고, 도시에 들어서기도 전에 처음으로 마주친 사람이 당신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드리러 당신에게 왔습니다, 오 카말라여! 당신은 싯다르타가 눈을 내리깔지 않고 말을 건네는 첫 여인입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마주칠 때 다시는 눈을 내리깔지 않겠습니다."
카말라는 웃으며 공작 깃 부채를 만지작거렸다. 그러고는 물었다. "이 말을 하려고만 싯다르타가 나에게 왔느냐?"
"이 말씀을 드리려고, 그리고 당신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에 고맙다고 하려고 왔습니다. 그리고 언짢지 않으시다면, 카말라여, 제 벗이자 스승이 되어 주시기를 청하고 싶습니다. 저는 당신이 대가이신 그 기술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자 카말라가 소리 내어 웃었다.
"벗이여, 숲에서 온 사마나가 나에게 와서 나에게 배우겠다고 한 일은 여태 없었다! 긴 머리에 낡고 해진 허리 두르개를 걸친 사마나가 나에게 온 일은 여태 없었다! 많은 젊은이가 나에게 오고 그중에는 브라만의 아들도 있지만, 그들은 고운 옷을 입고 오고 고운 신을 신고 오며 머리에 향내가 나고 주머니에 돈이 있다. 사마나여, 나에게 오는 젊은이들은 그런 사람들이다."
싯다르타가 말했다. "저는 벌써 당신에게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제도 이미 배웠습니다. 벌써 수염을 없앴고, 머리를 빗었고, 머리에 기름을 발랐습니다. 더없이 훌륭하신 분이여, 저에게 모자란 것은 몇 가지뿐입니다. 고운 옷, 고운 신, 주머니의 돈. 아십시오, 싯다르타는 그런 자잘한 것보다 어려운 일을 마음먹었고 그것을 이루었습니다. 어제 마음먹은 것을 제가 어찌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당신의 벗이 되어 당신에게서 사랑의 즐거움을 배우는 일 말입니다! 제가 잘 배우는 것을 보시게 될 겁니다, 카말라여. 저는 당신이 저에게 가르쳐 주실 것보다 어려운 것을 배워 왔습니다. 그러니 이제, 싯다르타는 이대로는, 머리에 기름은 발랐으나 옷도 신도 돈도 없는 이대로는 당신에게 모자랍니까?"
카말라가 웃으며 외쳤다. "그렇다, 귀한 이여, 아직 모자란다. 옷이 있어야 한다, 고운 옷이. 그리고 신이, 고운 신이. 그리고 주머니에 돈이 많아야 하고 카말라에게 줄 선물이 있어야 한다. 이제 알겠느냐, 숲에서 온 사마나여? 새겨 두었느냐?"
"잘 새겨 두었습니다." 싯다르타가 외쳤다. "그런 입에서 나오는 말을 어찌 새겨 두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입은 막 벌어진 무화과 같습니다, 카말라여. 제 입도 붉고 싱싱하니 당신 입에 어울릴 겁니다, 보시게 될 겁니다. — 그런데 말씀해 주십시오, 아름다운 카말라여, 사랑을 배우러 온 숲의 사마나가 조금도 무섭지 않으십니까?"
"내가 왜 사마나를 무서워하겠느냐? 승냥이들에게서 와서 여자가 무엇인지도 아직 모르는 숲의 어리석은 사마나를?"
"오, 사마나는 힘이 셉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당신을 억지로 붙들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여. 당신을 빼앗아 갈 수도 있습니다. 당신을 아프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다, 사마나여, 나는 그것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사마나든 브라만이든 누가 와서 저를 붙들고 제 학식과 경건함과 깊은 뜻을 빼앗아 갈까 봐 무서워한 적이 있느냐? 없다. 그것은 그의 것이고, 그는 주고 싶은 것만 주고 싶은 사람에게만 주기 때문이다. 카말라도, 사랑의 즐거움도 꼭 그와 같다. 카말라의 입은 곱고 붉다. 그러나 카말라의 뜻을 거슬러 그 입에 입 맞추려 해 보아라. 그토록 단것을 줄 줄 아는 그 입에서 단맛 한 방울도 얻지 못할 것이다. 너는 잘 배우는구나, 싯다르타. 그러니 이것도 배워라. 사랑은 빌 수도 있고 살 수도 있고 선물로 받을 수도 있고 길에서 주울 수도 있지만, 빼앗을 수는 없다. 너는 잘못된 길을 생각해 냈다. 아니다, 너처럼 고운 젊은이가 그렇게 잘못 손대려 한다면 아까운 일이다."
싯다르타가 웃으며 절했다. "아까운 일이지요, 카말라여, 당신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더없이 아까운 일이지요. 아닙니다, 당신 입에서 단맛 한 방울도 제가 잃지 않을 것이고, 제 입에서 당신도 잃지 않으실 겁니다! 그러니 이렇게 하지요. 싯다르타는 아직 모자란 것을 갖추면 다시 오겠습니다. 옷과 신과 돈을요. 그런데 말씀해 주십시오, 고운 카말라여, 작은 조언 하나 더 주실 수 없겠습니까?"
"조언이라? 어찌 아니겠느냐? 숲에서 승냥이들에게서 온 가난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마나에게 조언 하나 주고 싶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사랑하는 카말라여, 그러면 일러 주십시오. 그 세 가지를 가장 빨리 얻으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벗이여, 그건 많은 이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너는 네가 배운 것을 해서 그 값으로 돈과 옷과 신을 받아야 한다. 가난한 자가 돈을 얻는 다른 길은 없다. 그래, 너는 무엇을 할 줄 아느냐?"
"저는 생각할 줄 압니다. 저는 기다릴 줄 압니다. 저는 굶을 줄 압니다."
"그 밖에는 없느냐?"
"없습니다. 아, 시도 지을 줄 압니다. 시 한 편에 입맞춤을 주시겠습니까?"
"네 시가 마음에 들면 그러겠다. 어디 어떤 시냐?"
싯다르타는 한순간 생각하고 나서 이 시구를 읊었다.
그늘진 제 숲으로 아름다운 카말라가 들어섰네,
숲 어귀에는 볕에 그은 사마나가 서 있었네.
연꽃을 보자 그는 깊이,
몸을 숙였고, 카말라는 웃으며 고마워했네.
신들에게 제사 드리기보다, 젊은이는 생각했네,
아름다운 카말라에게 제사 드리는 것이 더 사랑스럽다고.
카말라가 손뼉을 크게 쳐서 금팔찌가 울렸다.
"네 시가 곱구나, 볕에 그은 사마나여. 참으로 그 값으로 입맞춤 하나 준다고 내가 잃을 것은 없다."
그가 눈으로 그를 제게 끌어당겼고, 그가 제 얼굴을 그의 얼굴 위로 숙여 막 벌어진 무화과 같은 그 입에 제 입을 얹었다. 카말라는 오래 그에게 입 맞추었고, 싯다르타는 그가 어떻게 저를 가르치는지, 얼마나 슬기로운지, 어떻게 저를 다스리고 물리치고 꾀는지를 깊이 놀라며 느꼈다. 그리고 이 첫 입맞춤 뒤에 길고 잘 짜이고 잘 익은 입맞춤의 줄이, 서로 저마다 다른 입맞춤들이 아직 저를 기다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깊이 숨 쉬며 서 있었고, 그 순간 제 눈앞에 열리는 앎과 배울 것의 넉넉함에 아이처럼 놀랐다.
"네 시가 아주 곱구나." 카말라가 외쳤다. "내가 넉넉했다면 그 값으로 금붙이를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로 네가 필요한 만큼 돈을 벌기는 어려울 것이다. 카말라의 벗이 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니까."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입 맞추십니까, 카말라여!" 싯다르타가 더듬거렸다.
"그래, 그건 내가 할 줄 안다. 그래서 나에게 옷도 신도 팔찌도 온갖 고운 것도 모자라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되겠느냐? 너는 생각하고 굶고 시 짓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느냐?"
"제사 노래도 할 줄 압니다." 싯다르타가 말했다. "그러나 그것을 더는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주문도 할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을 더는 외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경전을 읽었습니다 —"
"잠깐." 카말라가 그의 말을 끊었다. "너 읽을 줄 아느냐? 그리고 쓸 줄도?"
"물론 압니다. 아는 사람이 더러 있지요."
"대부분은 못 한다. 나도 못 한다. 네가 읽고 쓸 줄 안다니 아주 좋다, 아주 좋아. 주문도 앞으로 쓸 데가 있을 것이다."
그 순간 하녀가 달려와 마님의 귀에 소식을 속삭였다.
"손님이 온다." 카말라가 외쳤다. "서둘러 사라져라, 싯다르타. 아무도 너를 여기서 보아서는 안 된다, 명심해라! 내일 다시 보자."
그러면서 하녀에게는 그 경건한 브라만에게 흰 겉옷을 하나 주라고 일렀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는 채 싯다르타는 하녀에게 끌려 나갔고, 빙 돌아 정원의 작은 집에 이르렀고, 겉옷을 선물로 받았고, 덤불로 안내되었고, 곧바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숲을 빠져나가라는 다급한 당부를 들었다.
그는 흡족한 마음으로 이르는 대로 했다. 숲에 익숙한 그는 소리 없이 그 숲을 빠져나와 울타리를 넘었다. 흡족한 마음으로 그는 옷을 말아 겨드랑이에 끼고 도시로 돌아왔다. 나그네들이 드는 어느 주막 문가에 서서 말없이 먹을 것을 빌었고, 말없이 쌀떡 한 조각을 받았다. '어쩌면 내일이면,' 그는 생각했다. '나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먹을 것을 빌지 않겠구나.'
문득 그의 안에서 자랑이 타올랐다. 그는 더 이상 사마나가 아니었고, 더 이상 비는 것이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그 쌀떡을 개에게 주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여기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은 단순하구나.' 싯다르타는 생각했다. '어려울 것이 없다. 내가 아직 사마나였을 때는 모든 것이 어려웠고 고되었고 끝내는 가망이 없었다. 이제 모든 것이 쉽다. 카말라가 나에게 주는 입맞춤 수업만큼이나 쉽다. 나에게는 옷과 돈이 필요하고 그 밖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그것은 작고 가까운 목표라서 사람의 잠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는 진작 카말라의 시내 집을 알아 두었고, 이튿날 그리로 찾아갔다.
"잘되어 간다." 그가 그를 맞으며 외쳤다. "카마스와미가 너를 기다린다. 이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상인이다. 네가 마음에 들면 그가 너를 부릴 것이다. 슬기롭게 굴어라, 볕에 그은 사마나여. 나는 다른 사람들을 시켜 네 이야기를 그에게 전하게 해 두었다. 그에게 다정하게 굴어라, 그는 몹시 힘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너무 굽히지는 말아라! 나는 네가 그의 종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너는 그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너에게 흡족하지 않을 것이다. 카마스와미는 늙고 편한 것만 찾기 시작했다. 네가 마음에 들면 그는 너에게 많은 것을 맡길 것이다."
싯다르타는 고마워하며 웃었고, 그가 어제도 오늘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카말라는 빵과 과일을 가져오게 하여 그를 대접했다.
"너는 운이 좋았다." 그가 헤어지며 말했다. "문이 하나씩 하나씩 너에게 열린다. 어찌 된 일이냐? 너에게 무슨 마법이 있느냐?"
싯다르타가 말했다. "어제 저는 생각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굶을 줄 안다고 말씀드렸는데, 당신은 그것이 아무 쓸모도 없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그것은 많은 데 쓸모가 있습니다, 카말라여, 보시게 될 겁니다. 숲의 어리석은 사마나들이 당신들은 못 하는 고운 것을 많이 배우고 할 줄 안다는 것을 보시게 될 겁니다. 그저께만 해도 저는 덥수룩한 거지였고, 어제는 벌써 카말라에게 입 맞추었고, 머지않아 저는 상인이 되어 돈과 당신이 값지게 여기는 그 온갖 것을 갖게 될 겁니다."
"그렇지." 그가 인정했다. "그런데 내가 없었다면 너는 어떠했겠느냐? 카말라가 너를 돕지 않았다면 너는 무엇이었겠느냐?"
"사랑하는 카말라여," 싯다르타가 몸을 곧게 세우며 말했다. "제가 당신의 숲으로 당신에게 갔을 때 저는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었습니다. 그 더없이 아름다운 여인에게서 사랑을 배우는 것이 제 뜻이었습니다. 그 뜻을 품은 그 순간부터 저는 제가 그것을 이루리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저는 당신이 저를 도우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숲 어귀에서 당신이 처음 저를 보던 그 눈길에서 이미 알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원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카말라여. 돌을 물에 던지면 돌은 가장 빠른 길로 물 밑바닥으로 서두릅니다. 싯다르타에게 목표가, 뜻이 있을 때가 그렇습니다. 싯다르타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기다리고, 생각하고, 굶습니다. 그러나 그는 돌이 물을 지나가듯 세상의 일들을 지나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은 채로. 그는 끌려가고, 저를 떨어지게 둡니다. 그의 목표가 그를 제게로 끌어당깁니다. 그가 그 목표를 거스를 만한 것은 아무것도 제 영혼에 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싯다르타가 사마나들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이 마법이라 부르며 악령이 부린 일이라 여기는 것이 이것입니다. 악령이 부리는 일은 없습니다. 악령이란 없습니다. 누구든 마법을 부릴 수 있고, 누구든 제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생각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굶을 줄 안다면."
카말라는 그의 말을 들었다. 그는 그의 목소리를 사랑했고 그 눈의 눈길을 사랑했다.
"어쩌면 네 말대로일지도 모르겠다, 벗이여." 그가 나직이 말했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르지. 싯다르타가 잘생긴 남자이고, 그 눈길이 여자들 마음에 들어서 그래서 행운이 그에게 마주 온다는 것 말이다."
싯다르타는 입맞춤으로 작별했다. "그렇기를 바랍니다, 나의 스승이여. 제 눈길이 늘 당신 마음에 들기를, 늘 당신에게서 저에게 행운이 마주 오기를!"
어린애 같은 사람들 틈에서
싯다르타는 상인 카마스와미에게 갔다. 그는 부유한 집으로 안내되었고, 하인들이 값진 양탄자 사이로 그를 어느 방에 데려갔으며, 거기서 그는 주인을 기다렸다.
카마스와미가 들어왔다. 재빠르고 나긋한 사람으로, 머리가 몹시 세었고, 아주 영리하고 조심스러운 눈에, 탐하는 입을 하고 있었다. 주인과 손님은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듣자 하니," 상인이 말을 꺼냈다. "그대는 브라만이고 학식 있는 사람인데 상인 밑에서 일자리를 구한다더군. 브라만이 일자리를 구하다니, 어려운 처지에 빠진 것인가?"
"아닙니다." 싯다르타가 말했다. "저는 어려운 처지에 빠지지 않았고 한 번도 어려운 처지였던 적이 없습니다. 아십시오, 저는 오랫동안 지낸 사마나들에게서 왔습니다."
"사마나들에게서 왔다면 어찌 어렵지 않을 수 있는가? 사마나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저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싯다르타가 말했다.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요. 물론 저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그리한 것이니 어려운 처지는 아닙니다."
"그런데 가진 것이 없으면 무엇으로 살려는가?"
"저는 그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리. 저는 세 해 넘게 가진 것 없이 지냈고, 무엇으로 살아야 할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남의 것으로 산 것이군."
"아마 그럴 겁니다. 상인도 남의 것으로 살지 않습니까."
"잘 말했군. 그러나 상인은 남에게서 그 사람 것을 거저 받지 않네. 그 값으로 제 물건을 주지."
"참으로 그런 듯합니다. 저마다 받고 저마다 줍니다. 삶이란 그런 것이지요."
"그런데 말해 보게. 가진 것이 없다면 그대는 무엇을 주겠는가?"
"저마다 제가 가진 것을 줍니다. 전사는 힘을 주고, 상인은 물건을 주고, 스승은 가르침을 주고, 농부는 쌀을 주고, 어부는 물고기를 줍니다."
"좋아. 그러면 그대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대가 배운 것, 그대가 할 줄 아는 것은 무엇인가?"
"저는 생각할 줄 압니다. 저는 기다릴 줄 압니다. 저는 굶을 줄 압니다."
"그것이 전부인가?"
"그것이 전부인 듯합니다!"
"그것이 무슨 쓸모가 있는가? 이를테면 굶는 것 —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큰 소용이 있습니다, 나리. 사람이 먹을 것이 없을 때 굶는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슬기로운 일입니다. 이를테면 싯다르타가 굶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그는 오늘 어떤 일자리든 받아들여야 했을 겁니다. 나리 밑에서든 어디서든 말입니다. 배고픔이 그를 그리 몰았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러하기에 싯다르타는 잠잠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는 조바심을 모르고 급한 사정을 모릅니다. 오래도록 배고픔에 에워싸이게 두고도 그것을 두고 웃을 수 있습니다. 나리, 굶는 것은 그런 데 소용이 있습니다."
"그대 말이 옳군, 사마나여. 잠깐 기다리게."
카마스와미는 밖으로 나갔다가 두루마리 하나를 들고 돌아와 손님에게 건네며 물었다. "이것을 읽을 수 있는가?"
싯다르타는 매매 계약이 적힌 그 두루마리를 살펴보고 그 내용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훌륭하군." 카마스와미가 말했다. "그럼 이 종이에 뭐라도 써 주겠는가?"
그가 종이와 철필을 주었고, 싯다르타는 써서 종이를 돌려주었다.
카마스와미가 읽었다. "쓰는 것은 좋고 생각하는 것은 더 좋다. 슬기로운 것은 좋고 참을성 있는 것은 더 좋다."
"글을 아주 잘 쓰는군." 상인이 칭찬했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할 것이 아직 많겠어. 오늘은 부탁이니 내 손님이 되어 이 집에 머물게."
싯다르타는 고맙다 하고 받아들였고, 이제 그 장사꾼의 집에 살게 되었다. 옷과 신이 그에게 왔고, 하인이 날마다 목욕물을 마련해 주었다. 하루 두 번 넉넉한 상이 차려졌지만 싯다르타는 하루 한 번만 먹었고, 고기도 먹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 카마스와미는 제 장사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물건과 창고를 보여 주었고, 셈을 보여 주었다. 싯다르타는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되었고, 많이 듣고 적게 말했다. 그리고 카말라의 말을 새겨 그는 결코 그 상인 아래에 서지 않았고, 그가 저를 같은 자리의 사람으로, 아니 같은 자리 이상으로 대하게 만들었다. 카마스와미는 제 일을 조심스럽게, 자주 열을 올려 꾸려 갔지만, 싯다르타는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놀이로 바라보았다. 그 규칙은 정확히 익히려 애썼으나 그 내용은 그의 가슴에 닿지 않는 놀이였다.
카마스와미의 집에 온 지 오래지 않아 그는 벌써 주인의 장사에 끼었다. 그러면서 날마다 그가 일러 준 시각에 고운 옷을 입고 고운 신을 신고 아름다운 카말라를 찾아갔고, 곧 선물도 들고 갔다. 그의 붉고 영리한 입이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다. 그의 여리고 나긋한 손이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다. 사랑에서는 아직 아이였고 바닥없는 데로 뛰어들듯 눈감고 물릴 줄 모르게 즐거움에 뛰어들려 하던 그에게, 그는 즐거움을 주지 않고는 즐거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몸짓 하나하나, 쓰다듬음 하나하나, 닿음 하나하나, 눈길 하나하나, 몸의 가장 작은 자리 하나하나가 저마다 비밀을 지니고 있어서 아는 이가 그것을 깨우면 행복이 된다는 것을 바닥부터 가르쳤다. 그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사랑의 잔치를 치른 뒤에 서로에게 감탄하지 않고, 이긴 만큼 진 것이 되지 않고서 헤어져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래야 어느 쪽에도 물림과 삭막함이, 남을 함부로 썼거나 함부로 쓰였다는 고약한 느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아름답고 영리한 기예가 곁에서 놀라운 시간을 보냈고, 그의 제자가 되었고, 그의 연인이 되었고, 그의 벗이 되었다. 지금 그의 삶의 값과 뜻은 카마스와미의 장사가 아니라 여기 카말라 곁에 있었다.
상인은 그에게 중요한 편지와 계약서 쓰는 일을 맡겼고, 중요한 일은 모두 그와 의논하는 버릇이 들었다. 그는 곧 싯다르타가 쌀이나 양모에 대해, 뱃길이나 장사에 대해 아는 것이 적다는 것을, 그러나 그 손이 복된 손이라는 것을, 그리고 싯다르타가 고요함과 평정에서, 그리고 남의 말을 듣고 남의 속으로 파고드는 재주에서 상인인 자기를 앞선다는 것을 보았다. "저 브라만은," 그가 어느 벗에게 말했다. "제대로 된 상인이 아니고 결코 되지도 못할 걸세. 그 영혼이 장사에 열을 올리는 법이 없거든. 그런데 그에게는 성공이 저절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비밀이 있어. 타고난 복된 별이든, 마법이든, 사마나들에게서 배운 무엇이든 말일세. 그는 늘 장사를 가지고 놀기만 하는 것 같고, 장사가 그의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는 법이 없고, 장사가 그를 다스리는 법이 없고,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법이 없고, 손해에 마음 쓰는 법이 없어."
그 벗이 장사꾼에게 일러 주었다. "그가 자네를 위해 하는 장사에서 이익의 삼분의 일을 그에게 주게. 다만 손해가 나면 그 손해도 같은 몫으로 그가 지게 하게. 그러면 더 열심이 될 걸세."
카마스와미는 그 말을 따랐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그것에 별로 마음 쓰지 않았다. 이익이 나면 평정한 마음으로 받았고, 손해가 나면 웃으며 말했다. "허, 이건 잘못됐군!"
정말로 그에게는 장사가 아무래도 좋은 듯했다. 한번은 큰 쌀 수확을 사들이러 어느 마을로 갔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쌀은 이미 다른 장사꾼에게 팔린 뒤였다. 그런데도 싯다르타는 그 마을에 며칠을 머물며 농부들을 대접했고, 그 아이들에게 동전을 나눠 주었고, 혼례에 함께했고, 더없이 흡족한 마음으로 길에서 돌아왔다. 카마스와미는 그가 곧바로 돌아오지 않고 시간과 돈을 헛되이 썼다고 나무랐다. 싯다르타가 답했다. "나무라지 마시게, 벗이여! 나무라서 무언가 이루어진 적은 없네. 손해가 났다면 그 손해는 내가 지겠네. 나는 이번 길이 아주 흡족하네. 여러 사람을 알게 되었고, 브라만 한 사람이 내 벗이 되었고, 아이들이 내 무릎에서 말타기를 했고, 농부들이 저희 밭을 보여 주었고, 아무도 나를 장사꾼으로 여기지 않았네."
"다 아주 곱기도 하군." 카마스와미가 못마땅해하며 외쳤다. "그런데 실은 자네는 장사꾼이잖은가! 아니면 그저 재미로 다녀온 것인가?"
"물론이지." 싯다르타가 웃었다. "물론 나는 재미로 다녀왔네. 달리 무엇 때문이겠나? 나는 사람과 고장을 알게 되었고, 다정함과 믿음을 누렸고, 우정을 얻었네. 보게, 벗이여. 내가 카마스와미였다면 사려던 것이 어그러진 것을 보자마자 화가 나서 서둘러 돌아왔을 테고, 그러면 시간과 돈이 정말로 사라졌겠지. 그런데 이렇게 하여 나는 좋은 날을 보냈고, 배웠고, 기쁨을 누렸고, 화와 서두름으로 나도 남도 해치지 않았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다시 그리로 가면, 나중 수확을 사러 가든 무슨 일로 가든, 다정한 사람들이 나를 다정하고 환하게 맞아 줄 걸세. 그러면 나는 그때 서두름과 언짢음을 보이지 않은 것을 두고 나를 칭찬하겠지. 그러니 그만 두게, 벗이여, 나무라서 자네를 해치지 말게! 이 싯다르타가 나에게 해를 끼치는구나 하고 자네가 보게 되는 날이 오면 한마디만 하게. 그러면 싯다르타는 제 길을 가겠네. 그때까지는 서로에게 흡족해하기로 하세."
싯다르타가 제 밥을, 카마스와미의 밥을 먹고 있다고 그를 납득시키려던 상인의 시도도 헛되었다. 싯다르타는 제 밥을 먹었고, 아니 그보다 둘 다 남들의 밥을, 모두의 밥을 먹었다. 싯다르타는 카마스와미의 걱정에 귀를 준 적이 없었고, 카마스와미는 걱정이 많았다. 실패가 닥칠 듯한 장사가 있을 때, 실어 보낸 물건이 사라진 듯할 때, 빚진 이가 갚지 못할 듯할 때, 카마스와미는 시름이나 노여움의 말을 늘어놓고 이마를 찌푸리고 잠을 설치는 것이 쓸모 있는 일이라고 제 동료를 납득시킬 수 없었다. 언젠가 카마스와미가 그에게 자네가 아는 것은 다 나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따지자 그가 답했다. "그런 우스갯소리로 나를 놀리지 말게! 나는 자네에게서 물고기 한 바구니가 얼마인지, 빌려준 돈에 이자를 얼마나 물릴 수 있는지를 배웠네. 그것이 자네의 학문이지. 생각하는 법은 자네에게서 배우지 않았네, 귀한 카마스와미. 그건 자네가 나에게서 배우려고 해 보게."
정말로 그의 영혼은 장사에 있지 않았다. 장사는 카말라에게 쓸 돈을 벌어다 주기에 좋았고, 그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벌어다 주었다. 그 밖에 싯다르타의 관심과 궁금함은 오직 사람들에게 있었다. 그들의 장사와 수공과 걱정과 즐길 거리와 어리석음은 전에는 달처럼 그에게 낯설고 멀었던 것이다. 모두와 이야기하고 모두와 함께 살고 모두에게서 배우는 일이 그토록 쉬웠는데도, 그는 저와 그들을 갈라놓는 무언가가 있음을 그만큼 또렷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가르는 것은 그의 사마나 됨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어린애처럼 또는 짐승처럼 살아가는 것을 보았고, 그것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업신여겼다. 그는 그들이 애쓰는 것을 보았고, 그가 보기에는 그럴 값어치가 조금도 없는 것들을 두고 그들이 괴로워하고 늙어 가는 것을 보았다. 돈을 두고, 자잘한 즐거움을 두고, 자잘한 명예를 두고. 그는 그들이 서로 꾸짖고 헐뜯는 것을 보았고, 사마나라면 웃고 말 아픔을 두고 울부짖는 것을, 사마나라면 느끼지도 못할 궁핍 아래서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다.
이 사람들이 그에게 가져오는 모든 것에 그는 열려 있었다. 아마포를 사라고 내미는 장사꾼도 반가웠고, 돈을 꾸러 온 빚진 이도 반가웠고, 한 시간 내내 제 가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지도 반가웠다. 그 거지는 어느 사마나의 절반만큼도 가난하지 않았다. 그는 부유한 외국 장사꾼을 제 수염을 밀어 주는 하인과 다르게 대하지 않았고, 바나나를 사면서 잔돈을 속게 두었던 길거리 장수와도 다르게 대하지 않았다. 카마스와미가 제 걱정을 하소연하러 오거나 어떤 장사 때문에 그를 나무라러 오면, 그는 궁금해하며 환하게 들었고, 그를 신기해했고, 그를 이해하려 했고, 꼭 필요해 보이는 만큼만 그를 옳다고 해 주었고, 그러고는 그에게서 돌아서서 저를 찾는 다음 사람에게로 갔다. 그리고 많은 이가 그에게 왔다. 많은 이가 그와 거래하러, 많은 이가 그를 속이러, 많은 이가 그를 떠보러, 많은 이가 그의 가엾이 여김을 얻으러, 많은 이가 그의 조언을 들으러 왔다. 그는 조언했고, 가엾이 여겼고, 베풀었고, 조금씩 속아 주었다. 그리고 이 놀이 전체와 모든 사람이 이 놀이를 벌이는 그 열정이, 예전에 신들과 브라만이 그랬던 만큼이나 그의 생각을 차지했다.
이따금 그는 가슴 깊은 데서 죽어 가는 나직한 목소리를 느꼈다. 나직이 일깨우고 나직이 하소연하는, 그가 겨우 알아들을 만한 목소리였다. 그러면 한 시간쯤 그는 제가 야릇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여기서 하는 일이 온통 놀이일 뿐이라는 것을, 제가 환하고 이따금 기쁨을 느끼기는 하나 정작 참된 삶은 저를 스쳐 흘러가며 저에게 닿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했다. 공놀이하는 사람이 제 공을 가지고 놀듯 그는 제 장사를 가지고, 둘레의 사람들을 가지고 놀았고, 그들을 바라보았고, 그들에게서 재미를 찾았다. 가슴으로는, 제 본성의 샘으로는 거기 있지 않았다. 그 샘은 어딘가에서, 저에게서 먼 어딘가에서 흘렀고, 보이지 않게 흐르고 또 흘렀고, 그의 삶과는 더 이상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몇 번인가 그는 그런 생각에 놀랐고, 저에게도 그 어린애 같은 하루하루의 일에 열정을 담아 가슴으로 함께하는 것이, 그저 구경꾼처럼 곁에 서 있는 대신 정말로 살고 정말로 하고 정말로 누리며 사는 것이 주어졌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그는 늘 다시 아름다운 카말라에게 갔고, 사랑의 기술을 배웠고, 어디서보다 주는 것과 받는 것이 하나가 되는 그 즐거움의 예를 익혔고, 그와 재잘거렸고, 그에게서 배웠고, 그에게 조언했고, 조언을 받았다. 그는 예전에 고빈다가 그를 이해했던 것보다 그를 잘 이해했고, 그와 더 닮아 있었다.
한번은 그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나와 같습니다. 당신은 대부분의 사람과 다릅니다. 당신은 카말라이지 다른 무엇이 아니고, 당신 안에는 고요와 피난처가 있어서 언제든 그리로 들어가 제집에 있을 수 있습니다. 나도 그럴 수 있듯이. 그것을 지닌 사람은 적은데, 실은 모두가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슬기롭지는 않으니까." 카말라가 말했다.
"아닙니다." 싯다르타가 말했다.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카마스와미는 나만큼 슬기롭지만 제 안에 피난처가 없습니다. 반대로 머리로는 어린아이인 사람들이 그것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카말라여, 대부분의 사람은 떨어지는 잎사귀 같습니다. 공중에서 불려 다니고 맴돌다가 흔들리며 땅으로 떨어지지요. 그러나 다른 이들은, 몇 안 되는 이들은 별과 같습니다. 정해진 길을 가고, 어떤 바람도 그들에게 닿지 못하고, 제 안에 제 법과 제 길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많은 학자와 사마나 가운데 그런 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온전한 이였고, 나는 결코 그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 가르침을 알리는 이, 존귀하신 고타마입니다. 날마다 천 명의 제자가 그 가르침을 듣고 시각마다 그 계율을 따르지만, 그들은 모두 떨어지는 잎사귀입니다. 제 안에 가르침과 법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카말라가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또 그 사람 이야기를 하는구나." 그가 말했다. "또 사마나의 생각을 하는구나."
싯다르타는 잠자코 있었고, 그들은 사랑의 놀이를 했다. 카말라가 아는 서른 가지인지 마흔 가지인지 되는 놀이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몸은 표범의 몸처럼, 사냥꾼의 활처럼 낭창거렸다. 그에게서 사랑을 배운 사람은 많은 즐거움과 많은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오래 싯다르타와 놀았고, 그를 꾀었고, 물리쳤고, 억눌렀고, 감쌌다. 그의 능숙함을 기뻐하다가 마침내 그가 져서 지친 채 제 곁에 누울 때까지.
그 기녀가 그에게 몸을 숙이고 오래 그 얼굴을, 지쳐 버린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너는 내가 본 가운데 가장 좋은 연인이다." 그가 골똘히 말했다. "너는 다른 이들보다 세고, 더 낭창거리고, 더 잘 따른다. 너는 내 기술을 잘 배웠다, 싯다르타. 언젠가 내가 더 나이 들면 너에게서 아이를 하나 얻고 싶다. 그런데도, 사랑하는 이여, 너는 사마나로 남았고, 그런데도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너는 어떤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냐?"
"그럴지도 모르지요." 싯다르타가 지친 채 말했다. "나는 당신과 같습니다. 당신도 사랑하지 않지요 —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사랑을 기술로 부리겠습니까? 우리 같은 사람은 어쩌면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린애 같은 사람들은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비밀입니다."
산사라
싯다르타는 오랫동안 세상과 즐거움의 삶을 살았으면서도 그것에 속하지는 않았다. 뜨거운 사마나 시절에 죽여 두었던 그의 감각이 다시 깨어났고, 그는 넉넉함을 맛보았고, 육욕을 맛보았고, 힘을 맛보았다. 그런데도 그는 오랫동안 가슴으로는 여전히 사마나로 남아 있었고, 영리한 카말라는 그것을 옳게 알아보았다. 여전히 그의 삶을 이끄는 것은 생각하는 재주, 기다리는 재주, 굶는 재주였고, 여전히 세상 사람들은, 어린애 같은 사람들은 그에게 낯선 채였다. 그가 그들에게 낯선 것과 마찬가지로.
세월이 흘러갔고, 넉넉함에 싸인 싯다르타는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는 부자가 되었고, 진작 제집과 제 하인들을 두었고, 도시 앞 강가에 정원을 두었다.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고, 돈이나 조언이 필요하면 그에게 왔다. 그러나 카말라 말고는 아무도 그와 가깝지 않았다.
젊음의 꼭대기에서 언젠가 겪었던 그 높고 환한 깨어 있음, 고타마의 설법 뒤 며칠, 고빈다와 갈라선 뒤 며칠 동안의 그 팽팽한 기다림, 가르침도 스승도 없이 홀로 서던 그 자랑스러움, 제 가슴속 신의 목소리를 들으려던 그 나긋한 채비는 차차 기억이 되었고 덧없는 것이 되었다. 한때 가까웠던, 한때 제 안에서 소리 내던 거룩한 샘이 멀리서 나직이 소리 냈다. 물론 사마나들에게서 배운 것, 고타마에게서 배운 것, 브라만인 제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 가운데 많은 것이 오랫동안 그 안에 남아 있었다. 알맞게 사는 삶, 생각하는 기쁨, 잠겨 드는 시간, 몸도 의식도 아닌 자신에 대한, 영원한 나에 대한 은밀한 앎. 그중 얼마는 그 안에 남았지만 하나씩 하나씩 가라앉아 먼지를 뒤집어썼다. 도공의 물레가 한번 돌기 시작하면 오래 돌다가 천천히 지쳐 멎듯이, 싯다르타의 영혼에서도 고행의 바퀴가, 생각의 바퀴가, 가려냄의 바퀴가 오래 계속 돌았고 여전히 돌고 있었지만, 느리고 머뭇거리며 돌았고 멈추기 직전이었다. 축축함이 죽어 가는 나무 밑동에 스며들어 천천히 그것을 채우고 썩게 만들듯, 세상과 게으름이 천천히 싯다르타의 영혼에 스며들었고, 천천히 그의 영혼을 채웠고, 그것을 무겁게 만들었고, 지치게 만들었고, 잠재웠다. 그 대신 그의 감각은 살아났고, 많이 배웠고, 많이 겪었다.
싯다르타는 장사하는 법을, 사람을 다스리는 법을, 여자와 즐기는 법을 배웠고, 고운 옷을 입는 법을, 하인에게 명하는 법을, 향내 나는 물에 몸을 씻는 법을 배웠다. 그는 여리고 정성 들여 지은 음식을 먹는 법을 배웠다. 생선도, 고기도 새도, 향신료와 단것도. 그리고 사람을 게으르고 잊게 만드는 술을 마시는 법을 배웠다. 그는 주사위와 장기판으로 노는 법을, 춤추는 여자를 구경하는 법을, 가마에 실려 다니는 법을, 부드러운 침대에서 자는 법을 배웠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제가 남들과 다르고 남들보다 위에 있다고 느꼈고, 늘 얼마쯤 비웃음을 담아, 얼마쯤 비웃는 업신여김을 담아, 사마나가 세상 사람들에게 늘 품는 바로 그 업신여김을 담아 그들을 보았다. 카마스와미가 골골할 때, 언짢아할 때, 모욕당했다고 여길 때, 장사 걱정에 시달릴 때, 싯다르타는 늘 그것을 비웃음으로 바라보았다. 다만 추수철과 우기가 지나가는 사이에 천천히, 알아채지 못하게 그의 비웃음은 지쳐 갔고 그의 우월함은 잠잠해져 갔다. 늘어 가는 재산 사이에서 천천히 싯다르타 자신도 어린애 같은 사람들의 방식을 얼마쯤 받아들였다. 그들의 어린애다움과 겁 많음을 얼마쯤. 그러면서도 그는 그들을 부러워했고, 그들과 닮아 갈수록 더 부러워했다. 그는 저에게 없고 그들에게 있는 그 하나를 부러워했다. 그들이 제 삶에 부여할 줄 아는 중요함을, 그 기쁨과 두려움의 열정을, 늘 무언가에 반해 있는 그 불안하면서도 달콤한 행복을 부러워했다. 이 사람들은 늘 무언가에 반해 있었다. 저 자신에게, 여자에게, 제 아이들에게, 명예나 돈에, 계획이나 희망에.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서 이것을 배우지 못했다. 바로 이것을, 이 어린애 같은 기쁨과 어린애 같은 어리석음을 배우지 못했다. 그는 그들에게서 하필 고약한 것을, 제가 업신여기던 것을 배웠다. 사람들과 어울린 저녁 다음 날 아침이면 오래 누운 채 멍하고 지친 느낌으로 있는 일이 점점 잦아졌다. 카마스와미가 제 걱정으로 지루하게 굴면 언짢고 조바심 나는 일이 생겼다. 주사위 노름에서 지면 너무 크게 웃는 일이 생겼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남들보다 영리하고 정신이 담겨 있었지만 웃는 일이 드물었고, 부유한 사람들 얼굴에서 그토록 자주 보이는 그 표정을 하나씩 하나씩 띠어 갔다. 흡족하지 못함의, 골골함의, 언짢음의, 게으름의, 사랑 없음의 표정을. 천천히 부자들의 영혼병이 그를 붙들었다.
너울처럼, 얇은 안개처럼 지침이 싯다르타 위로 내려앉았다. 천천히, 날마다 조금씩 짙어지고, 달마다 조금씩 흐려지고, 해마다 조금씩 무거워지며. 새 옷이 세월이 가면 낡고, 세월이 가면 고운 빛깔을 잃고, 얼룩이 지고, 주름이 지고, 단이 닳고, 여기저기 실이 성글어진 데를 드러내기 시작하듯, 고빈다와 갈라선 뒤에 시작한 싯다르타의 새 삶도 낡아 갔다.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빛깔과 광채를 잃었고, 그 위에 주름과 얼룩이 쌓였고, 바닥에 숨은 채 여기저기 이미 추하게 내다보며 실망과 역겨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가 알아챈 것은 다만, 한때 제 안에서 깨어나 빛나던 시절에 이따금 저를 이끌어 주던 그 밝고 확실한 속의 목소리가 말이 없어졌다는 것뿐이었다.
세상이 그를 사로잡았다. 즐거움이, 탐함이, 게으름이, 그리고 마침내 그가 늘 가장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 가장 많이 업신여기고 비웃던 그 악덕까지도. 곧 돈 욕심이. 재산과 소유와 넉넉함도 끝내 그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더 이상 그에게 놀이나 장난감이 아니라 사슬이자 짐이 되었다. 야릇하고 교활한 길로 싯다르타는 이 마지막이자 가장 천한 얽매임에 빠져들었다. 주사위 노름을 통해서였다. 가슴으로 사마나이기를 그친 그때부터, 예전에는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어린애 같은 사람들의 풍속으로 여겨 어울려 주던 돈과 값진 것을 건 노름을 싯다르타는 점점 더 사나운 열정으로 벌이기 시작했다. 그는 무서운 노름꾼이었고, 그와 붙을 엄두를 내는 이가 드물었다. 그만큼 그가 거는 돈이 높고 뻔뻔했다. 그는 제 가슴의 곤경에서 노름을 벌였고, 그 하찮은 돈을 잃고 뿌려 버리는 일이 그에게 노여운 기쁨을 만들어 주었다. 넉넉함이라는 상인들의 우상에 대한 제 업신여김을 그보다 더 또렷하고 더 비웃듯이 보일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높이, 사정없이 노름했다. 저 자신을 미워하며, 저 자신을 비웃으며, 수천을 긁어모으고 수천을 내던졌고, 돈을 잃고, 패물을 잃고, 별장을 잃고, 다시 따고, 다시 잃었다. 주사위를 던지는 동안, 높이 건 돈을 두고 마음 졸이는 동안 느끼던 그 두려움, 그 무섭고 숨 막히는 두려움을 그는 사랑했고 늘 새로 하려 했고 늘 키우려 했고 늘 더 높이 자극하려 했다. 물리고 미지근하고 밍밍한 제 삶 한복판에서 이 느낌에서만은 그래도 행복 같은 것을, 도취 같은 것을, 높아진 삶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게 잃을 때마다 그는 새 재산을 궁리했고, 더 열심히 장사에 매달렸고, 빚진 이들에게 더 엄하게 갚기를 다그쳤다. 계속 노름하고 싶었고, 계속 탕진하고 싶었고, 계속 넉넉함에게 제 업신여김을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잃을 때의 평정을 잃었고, 늦게 갚는 이에 대한 참을성을 잃었고, 거지에 대한 너그러움을 잃었고, 청하는 이에게 돈을 주고 꾸어 주는 즐거움을 잃었다. 한 번 던져 만을 잃고도 웃던 그가 장사에서는 더 엄하고 더 잘아졌고, 밤에 이따금 돈 꿈을 꾸었다! 그리고 이 추한 홀림에서 깨어날 때마다, 침실 벽 거울에서 제 얼굴이 늙고 추해진 것을 볼 때마다, 부끄러움과 역겨움이 그를 덮칠 때마다 그는 더 멀리 달아났다. 새로운 노름으로 달아났고, 육욕과 술의 마취로 달아났고, 거기서 다시 쌓고 벌려는 충동으로 달아났다. 이 뜻 없는 돌고 돎 속에서 그는 달리다 지쳤고, 달리다 늙었고, 달리다 병들었다.
그러다 언젠가 꿈 하나가 그를 일깨웠다. 그는 저녁나절을 카말라 곁에서, 그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보냈다. 그들은 나무 아래 앉아 이야기했고, 카말라는 골똘한 말을 했다. 그 뒤에 서글픔과 지침이 숨은 말이었다. 그는 고타마 이야기를 해 달라고 청했고, 그 눈이 얼마나 맑았는지, 그 입이 얼마나 고요하고 아름다웠는지, 그 웃음이 얼마나 인자했는지, 그 걸음이 얼마나 평화로웠는지를 아무리 들어도 모자라 했다. 그는 오래 그에게 존귀하신 붓다 이야기를 해 주어야 했고, 카말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언젠가, 어쩌면 머지않아 나도 그 붓다를 따를 것이다. 내 정원을 그에게 바치고 그 가르침에 귀의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를 자극했고, 사랑의 놀이에서 아프도록 뜨겁게 그를 제게 붙들어 맸다. 물고 눈물 흘리면서, 이 헛되고 스러지는 즐거움에서 마지막 단 방울까지 한 번 더 짜내려는 듯이. 육욕이 죽음과 얼마나 가까운 친척인지가 싯다르타에게 그토록 야릇하게 또렷해진 적은 없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의 곁에 누웠고, 카말라의 얼굴이 그에게 가까웠고, 그 눈 아래와 입가 옆에서 그는 여태 없이 또렷하게 불안한 글씨를 읽었다. 가는 선으로, 나직한 고랑으로 쓰인 글씨, 가을과 나이를 떠올리게 하는 글씨였다. 이제 겨우 마흔 줄에 든 싯다르타 자신도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 여기저기 센 것이 있음을 이미 알아챈 터였다. 카말라의 아름다운 얼굴에 지침이 쓰여 있었다. 기쁜 목적지가 없는 긴 길을 걸어온 지침이, 지침과 시들기 시작함이, 그리고 숨겨진, 아직 말해지지 않은, 어쩌면 아직 알아채지도 못한 불안이. 늙음에 대한 두려움, 가을에 대한 두려움, 죽어야 함에 대한 두려움이. 한숨을 쉬며 그는 그에게 작별했다. 마음이 내키지 않음으로 가득한 채, 숨겨진 불안으로 가득한 채.
그러고 나서 싯다르타는 제집에서 춤추는 여자들과 술로 밤을 보냈고, 이제는 아닌 우월한 사람인 척 제 또래들 앞에서 굴었고, 술을 많이 마셨고, 자정이 훨씬 지나 잠자리를 찾았다. 지치고도 들떠서, 울음과 절망에 가까운 채로. 그리고 오래도록 헛되이 잠을 찾았다.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비참함으로 가슴이 가득했고, 미지근하고 역겨운 술맛처럼, 너무 달고 삭막한 음악처럼, 춤추는 여자들의 너무 무른 웃음처럼, 그 머리카락과 젖가슴의 너무 단 냄새처럼 제 안에 배어든 역겨움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역겨운 것은 저 자신이었다. 향내 나는 제 머리카락이, 제 입의 술 냄새가, 제 살갗의 늘어진 지침과 내키지 않음이. 너무 많이 먹거나 마신 사람이 괴로워하며 그것을 토해 내고도 그 후련함을 기뻐하듯, 잠 못 이루는 그는 엄청난 역겨움의 물결 속에서 이 즐길 거리를, 이 버릇을, 이 뜻 없는 삶 전체와 저 자신을 벗어 버리기를 바랐다. 아침빛이 들고 제 시내 집 앞 거리에 첫 부산함이 깨어날 무렵에야 그는 얼핏 잠들었고, 잠깐 반쯤 마취된 상태를, 잠의 기척을 얻었다. 그 잠깐 동안 그는 꿈을 꾸었다.
카말라는 금빛 새장에 작고 귀한 노래하는 새를 기르고 있었다. 그는 이 새의 꿈을 꾸었다. 그는 꿈꾸었다. 늘 아침이면 노래하던 이 새가 말이 없어졌고, 그것이 눈에 띄어 새장 앞으로 가서 들여다보니 그 작은 새가 죽어 바닥에 뻣뻣이 놓여 있었다. 그는 그것을 꺼내어 한순간 손에 얹어 무게를 가늠하고는 내던졌다. 골목 밖으로.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무섭게 놀랐고 가슴이 아팠다. 이 죽은 새와 함께 온갖 값진 것과 온갖 좋은 것을 제게서 내던져 버리기라도 한 듯이.
이 꿈에서 벌떡 깨어나며 그는 깊은 서글픔에 감싸이는 것을 느꼈다. 값없이, 그에게는 그렇게 여겨졌다, 값없고 뜻 없이 그는 제 삶을 끌고 왔다.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어떻게든 값지거나 간직할 만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그의 손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혼자였고 텅 비어 있었다. 물가에 밀려 나온 난파한 사람처럼.
싯다르타는 침울하게 제 소유인 정원으로 가서 문을 잠그고 망고나무 아래 앉았다. 가슴에는 죽음을, 안에는 소름을 느끼며 앉아, 제 안에서 무언가가 죽어 가고 시들어 가고 끝나 가는 것을 느꼈다. 차차 그는 제 생각을 모았고, 떠올릴 수 있는 첫날부터 제 삶의 온 길을 마음속으로 다시 걸었다. 대체 언제 그는 행복을 겪었던가, 참된 황홀을 느꼈던가? 아 그렇다, 여러 번 그런 것을 겪었다. 소년 시절에 브라만들에게서 칭찬을 얻었을 때 그것을 맛보았다. 또래들 앞에서 거룩한 시구를 외는 데서, 학자들과의 논쟁에서, 제사를 돕는 일에서 뛰어났을 때 맛보았다. 그때 그는 가슴에서 이렇게 느꼈다. "네 앞에 길이 하나 놓여 있고 너는 그 길로 부름받았다. 신들이 너를 기다린다." 그리고 다시 젊은이가 되어, 온갖 생각의 목표가 점점 더 높이 달아나며 저를 같이 애쓰는 무리에게서 끌어내어 위로 채갈 때, 브라만의 뜻을 두고 아프게 씨름할 때, 얻어 낸 앎마다 새로운 목마름만 지필 때, 그때 다시 그는 목마름 한복판에서, 아픔 한복판에서 바로 이것을 느꼈다. "더 나아가라! 더 나아가라! 너는 부름받았다!" 이 목소리를 그는 고향을 떠나 사마나의 삶을 골랐을 때 들었고, 사마나들을 떠나 그 이룬 이에게 갔을 때, 그리고 그에게서도 떠나 알 수 없는 곳으로 갔을 때 다시 들었다. 얼마나 오래 이 목소리를 듣지 못했던가, 얼마나 오래 어떤 높은 데도 이르지 못했던가, 그의 길은 얼마나 밋밋하고 삭막하게 흘러왔던가. 여러 긴 세월을, 높은 목표도 없이, 목마름도 없이, 드높여짐도 없이, 자잘한 즐거움에 만족하면서도 결코 흡족하지 못한 채! 이 모든 세월 동안 그는 저도 모르는 채, 저 숱한 사람들처럼, 저 어린애들처럼 되려고 애쓰고 그것을 그리워했다. 그러면서 그의 삶은 그들의 삶보다 훨씬 비참하고 가난했다. 그들의 목표도 그들의 걱정도 그의 것이 아니었고, 이 카마스와미 사람들의 세계 전체가 그에게는 하나의 놀이였고, 구경하는 춤이었고, 희극이었을 뿐이니까. 오직 카말라만이 그에게 정다웠고 값졌다 — 그런데 지금도 그러한가? 그가 아직 그를 필요로 하는가, 아니면 그가 그를? 그들은 끝없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위해 사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인가? 아니다, 꼭 필요하지 않다! 이 놀이의 이름은 산사라였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 어쩌면 한 번, 두 번, 열 번은 곱게 놀 만한 놀이 — 그러나 자꾸자꾸 되풀이해서?
그때 싯다르타는 그 놀이가 끝났다는 것을, 제가 더는 그것을 놀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몸에 소름이 돋았고, 제 안에서 무언가가 죽었다고 그는 느꼈다.
그날 온종일 그는 망고나무 아래 앉아 제 아버지를 생각했고, 고빈다를 생각했고, 고타마를 생각했다. 카마스와미가 되려고 그들을 떠나야 했던가? 밤이 되어서도 그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별들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여기 나는 내 망고나무 아래, 내 정원에 앉아 있구나." 그는 조금 웃었다 — 망고나무를 가지고 정원을 가진다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었던가, 옳은 일이었던가, 어리석은 놀이가 아니었던가?
그것과도 그는 끝을 맺었다. 그것도 그의 안에서 죽었다. 그는 일어나 망고나무에 작별했고 정원에 작별했다. 하루를 먹지 않고 지냈으므로 그는 심한 배고픔을 느꼈고, 도시의 제집을, 제 방과 침대를, 음식이 차려진 상을 떠올렸다. 그는 지친 채 웃으며 몸을 흔들고는 이것들에게도 작별했다.
바로 그날 밤 시각에 싯다르타는 제 정원을 떠났고 도시를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카마스와미는 오래 그를 찾게 했다. 그가 도둑 손에 떨어진 줄로 여겼던 것이다. 카말라는 그를 찾게 하지 않았다. 싯다르타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놀라지 않았다. 그가 늘 그것을 기다리지 않았던가? 그가 사마나이자 집 없는 이이자 순례자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께 있을 때 그것을 가장 많이 느꼈고, 잃음의 아픔 한복판에서 그는 기뻐했다. 그 마지막 한 번 그를 그토록 살갑게 제 가슴에 끌어당겼다는 것을, 한 번 더 그토록 온전히 그에게 안기고 그가 제 안에 스몄다는 것을.
싯다르타가 사라졌다는 첫 소식을 받았을 때 그는 창가로 갔다. 거기 금빛 새장에 귀한 노래하는 새를 가두어 두고 있었다. 그는 새장 문을 열고 새를 꺼내어 날려 보냈다. 그는 오래도록 그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았다. 그날부터 그는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았고 제집을 닫아걸었다. 그러나 얼마 뒤 그는 싯다르타와 마지막으로 함께한 데서 아이를 배었음을 알게 되었다.
강가에서
싯다르타는 숲을 걸었다. 이미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오직 한 가지만 알 뿐이었다. 이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여러 해 동안 이끌어 온 이 삶이 지나갔고 사라졌으며 역겨워질 때까지 맛보고 빨아 먹혔다는 것. 그가 꿈꾼 그 노래하는 새는 죽었다. 그의 가슴속 새는 죽었다. 그는 깊이 산사라에 얽혀 있었고, 스펀지가 물을 가득 찰 때까지 빨아들이듯 사방에서 역겨움과 죽음을 제 안으로 빨아들였다. 그는 물림으로 가득했고, 비참함으로 가득했고, 죽음으로 가득했다. 세상에는 더 이상 그를 꾈 것도, 그를 기쁘게 할 것도, 그를 위로할 것도 없었다.
그는 저에 대해 더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를, 고요를 얻기를, 죽기를 간절히 바랐다. 벼락이라도 내려 그를 쳐 주었으면! 호랑이라도 와서 그를 먹어 주었으면! 그에게 마취를, 잊음과 잠을 가져다주고 다시는 깨어나지 않게 할 술이나 독이라도 있었으면! 대체 그가 제 몸에 묻히지 않은 더러움이, 그가 저지르지 않은 죄와 어리석음이, 그가 제 위에 지지 않은 영혼의 삭막함이 아직 남아 있는가? 대체 아직도 살아 있을 수 있는가? 다시 또다시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배고픔을 느끼고, 다시 먹고, 다시 자고, 다시 여자 곁에 눕는 일이 가능한가? 이 돌고 돎이 그에게는 다 소진되고 끝나지 않았는가?
싯다르타는 숲속 큰 강에 이르렀다. 젊은이였을 때 고타마의 도시에서 오던 그를 뱃사공이 건네주었던 바로 그 강이었다. 이 강에서 그는 걸음을 멈추고 기슭에 머뭇거리며 섰다. 지침과 배고픔이 그를 약하게 했고, 게다가 더 가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 어디로, 어떤 목표로? 아니, 더는 목표가 없었다. 이 거친 꿈 전체를 제게서 털어 내고, 이 김빠진 술을 뱉어 내고, 이 가엾고 부끄러운 삶에 끝을 내고 싶은 깊고 괴로운 그리움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강기슭 위로 나무 한 그루가 굽어 있었다. 야자나무였다. 그 줄기에 싯다르타는 어깨를 기대고 팔로 줄기를 감고 아래 푸른 물을 내려다보았다. 그 물이 그 아래로 흐르고 또 흘렀다. 그는 내려다보았고, 저를 놓아 이 물속으로 가라앉고 싶다는 바람으로 온통 채워진 저를 발견했다. 소름 끼치는 텅 빔이 물에서 그를 마주 비추었고, 그 텅 빔에 그의 영혼 속 무서운 텅 빔이 답했다. 그렇다, 그는 끝에 와 있었다.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저를 지워 버리는 일, 실패한 제 삶의 형상을 부수어 비웃는 신들의 발 앞에 내던지는 일뿐이었다. 이것이 그가 그리워하던 그 큰 토함이었다. 죽음, 그가 미워하던 그 형상을 부수는 일! 물고기들이 그를 먹어 치우라지, 이 싯다르타라는 개를, 이 미친 자를, 이 썩고 상한 몸뚱이를, 이 늘어지고 함부로 쓰인 영혼을! 물고기와 악어가 그를 먹어 치우라지, 악령들이 그를 갈가리 찢으라지!
일그러진 얼굴로 그는 물을 뚫어지게 보았고, 비친 제 얼굴을 보고 거기 침을 뱉었다. 깊은 지침 속에서 그는 나무줄기에서 팔을 풀고 몸을 조금 돌렸다. 곧게 아래로 떨어지려고, 마침내 가라앉으려고. 그는 눈을 감은 채 죽음을 향해 내려앉았다.
그때 그의 영혼의 외딴 구역에서, 지쳐 버린 제 삶의 지난날에서 하나의 소리가 떠올랐다. 그것은 한 낱말, 한 음절이었다. 그가 생각 없이 혀 꼬인 목소리로 혼자 내뱉은 것, 모든 브라만 기도의 오래된 첫 말이자 끝말, 거룩한 「옴」이었다. 「온전한 것」 또는 「이룸」이라는 뜻인 그 말이었다. 그리고 「옴」이라는 소리가 싯다르타의 귀에 닿는 순간, 잠들어 있던 그의 정신이 갑자기 깨어나 제가 하는 짓의 어리석음을 알아보았다.
싯다르타는 깊이 소스라쳤다. 제 형편이 그러했구나, 제가 그토록 잃어버린 사람이었구나, 그토록 길을 잃고 온갖 앎에게 버림받아 죽음을 찾을 수 있었구나, 제 몸을 지워 고요를 얻겠다는 이 바람이, 이 어린애 같은 바람이 제 안에서 자랄 수 있었구나! 요 근래의 온갖 괴로움도, 온갖 깨어남도, 온갖 절망도 이루지 못한 것을 옴이 제 의식으로 파고든 이 한순간이 이루었다. 제 비참함과 제 길 잃음 속에서 저를 알아본 것이다.
옴! 그는 혼자 말했다. 옴! 그리고 브라만을 알았고, 삶의 부술 수 없음을 알았고, 잊고 있던 온갖 신적인 것을 다시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 한 번의 번개일 뿐이었다. 야자나무 밑동에서 싯다르타는 지침에 쓰러져 주저앉았고, 옴을 중얼거리며 나무뿌리에 머리를 얹고 깊은 잠에 빠졌다.
그의 잠은 깊었고 꿈이 없었다. 오랫동안 그런 잠을 알지 못했다. 몇 시간 뒤 깨어났을 때 그에게는 열 해가 지난 듯했다. 그는 물이 나직이 흐르는 소리를 들었고, 제가 어디 있는지, 누가 저를 여기 데려왔는지 몰랐고, 눈을 떠 제 위의 나무와 하늘을 놀라며 보았고, 제가 어디 있으며 어떻게 여기 왔는지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러기까지 한참이 걸렸고, 지나간 일은 너울에 덮인 듯 한없이 멀고 한없이 저편에 놓이고 한없이 아무래도 좋은 것으로 보였다. 그가 아는 것은 다만, 제가 예전 삶을 떠났다는 것(정신이 들던 첫 순간에 그 예전 삶은 한참 뒤에 놓인 지난 몸, 지금의 나보다 앞선 태어남처럼 보였다), 역겨움과 비참함에 차서 제 목숨마저 내던지려 했다는 것, 그러나 어느 강가 야자나무 아래서 입술에 거룩한 말 옴을 얹은 채 정신이 들었고, 그러고 나서 잠들었고, 이제 새사람이 되어 깨어나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뿐이었다. 그는 잠들며 얹었던 그 말 옴을 나직이 혼자 읊었고, 그 길고 긴 잠이 다름 아닌 길고 잠긴 옴 읊기였고 옴 생각이었고 옴 속으로, 이름 없고 이룬 것 속으로 잠겨 온전히 들어간 일이었다고 여겨졌다.
이 얼마나 놀라운 잠이었던가! 어떤 잠도 그를 이토록 새로 하고 이토록 되살리고 이토록 젊게 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는 정말로 죽었고, 가라앉았고, 새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일까? 그러나 아니었다. 그는 저를 알았고, 제 손과 발을 알았고, 저가 누운 자리를 알았고, 제 가슴속의 이 나를, 이 싯다르타를, 제 고집대로 하는 이 야릇한 자를 알았다. 그러나 이 싯다르타는 그런데도 달라져 있었고 새로워져 있었고 야릇하게 푹 자고 난 상태였고 야릇하게 깨어 있었고 기뻐하고 궁금해하고 있었다.
싯다르타가 몸을 일으키자 맞은편에 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낯선 사내였다. 누런 옷을 입고 머리를 민 수행승이 생각에 잠긴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는 머리카락도 수염도 없는 그 사내를 바라보았고, 오래 바라보지 않아 그 수행승에게서 고빈다를, 제 젊은 시절의 벗을, 존귀하신 붓다께 귀의한 고빈다를 알아보았다. 고빈다도 늙어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여전히 옛 모습을 지녀 열심과 충실함과 찾음과 겁 많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빈다가 그 눈길을 느끼고 눈을 떠 그를 바라보았을 때, 싯다르타는 고빈다가 저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보았다. 고빈다는 그가 깨어난 것을 기뻐했다. 그를 알지도 못하면서 오래 여기 앉아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린 것이 분명했다.
"제가 잤군요." 싯다르타가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 오셨습니까?"
"주무셨습니다." 고빈다가 답했다. "이런 데서 자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뱀이 자주 있고 숲짐승들이 다니는 길이 있으니까요. 나리, 저는 존귀하신 고타마, 붓다, 석가모니의 제자이고, 우리 일행 여럿과 이 길을 순례하다가 자다가는 위험한 곳에서 나리가 누워 주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리를 깨우려 했는데, 잠이 몹시 깊은 것을 보고 일행을 뒤로하고 나리 곁에 앉았습니다. 그러다 나리의 잠을 지키려던 제가 그만 저도 잠들었던 모양입니다. 제 몫을 잘못 해냈군요, 지침이 저를 이겼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리가 깨셨으니 저는 가게 해 주십시오. 제 형제들을 따라가야 합니다."
"제 잠을 지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마나여." 싯다르타가 말했다. "존귀하신 분의 제자들은 다정하시군요. 그럼 가 보십시오."
"가겠습니다, 나리. 나리께서 늘 평안하시기를."
"고맙습니다, 사마나여."
고빈다가 인사의 표시를 하고 말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잘 가게, 고빈다." 싯다르타가 말했다.
수행승이 걸음을 멈추었다.
"실례지만 나리, 어떻게 제 이름을 아십니까?"
그러자 싯다르타가 웃었다.
"나는 자네를 아네, 오 고빈다. 자네 아버지의 오두막에서, 브라만 학교에서, 제사에서, 우리가 함께 사마나들에게 가던 길에서, 그리고 자네가 제타바나 숲에서 존귀하신 분께 귀의하던 그 시각에서."
"자네 싯다르타로구나!" 고빈다가 크게 외쳤다. "이제 알아보겠네. 어떻게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는지 이제는 모르겠군. 반갑네, 싯다르타. 자네를 다시 보니 내 기쁨이 크네."
"나도 자네를 다시 보니 기쁘네. 자네가 내 잠의 파수꾼이었군. 다시 한번 고맙네. 파수꾼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어디로 가는 길인가, 벗이여?"
"아무 데도 가지 않네. 우리 수행승들은 우기가 아닌 동안에는 늘 길 위에 있어. 늘 이 고장 저 고장을 옮겨 다니며 계율대로 살고, 가르침을 알리고, 동냥을 받고, 다시 떠나지. 늘 그러하네. 그런데 자네는, 싯다르타, 어디로 가는가?"
싯다르타가 말했다. "나도 자네와 같네, 벗이여. 나도 아무 데도 가지 않네. 그저 길 위에 있을 뿐이야. 순례하는 중이지."
고빈다가 말했다. "순례한다고 하니 자네 말을 믿겠네. 그런데 미안하지만, 오 싯다르타, 자네는 순례자처럼 보이지 않아. 부자의 옷을 입었고, 귀한 사람의 신을 신었고, 향내 나는 물 냄새가 나는 그 머리카락은 순례자의 머리도 사마나의 머리도 아니야."
"그렇지, 벗이여. 잘 보았네. 자네의 날카로운 눈은 다 보는군. 그런데 나는 자네에게 내가 사마나라고 말하지 않았네. 순례한다고 말했지. 그리고 그러하네. 나는 순례하는 중이야."
"순례한다고." 고빈다가 말했다. "그런데 그런 옷으로 순례하는 이는 드물고, 그런 신으로 순례하는 이도 드물고, 그런 머리로 순례하는 이도 드물어. 나는 벌써 여러 해 순례했지만 그런 순례자를 만난 적이 없네."
"자네 말을 믿네, 나의 고빈다. 그런데 오늘 자네는 바로 그런 순례자를 만난 걸세. 그런 신을 신고 그런 옷을 걸친 순례자를. 기억하게, 벗이여. 형상의 세계는 덧없고, 우리 옷과 우리 머리 모양과 우리 머리카락과 몸뚱이 자체가 덧없고 더없이 덧없네. 나는 부자의 옷을 입고 있지, 자네가 옳게 보았네. 내가 부자였기에 그것을 입고 있고, 세상 사람과 색을 탐하는 자들처럼 머리를 하고 있지. 내가 그들 가운데 하나였으니까."
"그러면 지금은, 싯다르타, 지금 자네는 무엇인가?"
"모르겠네. 자네가 모르는 만큼 나도 모르네. 나는 길 위에 있어. 나는 부자였고 이제는 아니야. 내일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네."
"재산을 잃었나?"
"내가 그것을 잃었거나 그것이 나를 잃었지. 그것이 나에게서 없어졌네. 형상의 바퀴는 빨리 돌아, 고빈다. 브라만 싯다르타는 어디 있나? 사마나 싯다르타는 어디 있나? 부자 싯다르타는 어디 있나? 덧없는 것은 빨리 바뀌네, 고빈다, 자네도 알잖은가."
고빈다는 젊은 시절의 벗을 오래 바라보았다. 눈에 의심을 담고서. 그러고는 귀한 사람에게 하듯 그에게 인사하고 제 길을 갔다.
싯다르타는 웃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그를 사랑했다. 이 충실한 이를, 이 겁 많은 이를. 그리고 이 순간에, 놀라운 잠에서 깨어 옴이 스민 이 훌륭한 시각에 그가 어찌 누구든 무엇이든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잠 속에서, 그리고 옴을 통해 그에게 일어난 홀림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가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기쁜 사랑으로 가득해졌다는 것. 그리고 이제 그가 보기에는 바로 그것 때문에 전에 그토록 병들어 있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아무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싯다르타는 웃는 얼굴로 멀어져 가는 수행승을 바라보았다. 잠이 그를 몹시 튼튼하게 해 주었지만 배고픔이 그를 몹시 괴롭혔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배고픔에 단단하던 시절은 지나간 지 오래였다. 그는 시름과 함께, 그러면서도 웃음과 함께 그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 그는 카말라 앞에서 세 가지를 자랑했고, 세 가지 고결하고 꺾을 수 없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굶기 — 기다리기 — 생각하기. 그것이 그의 재산이었고, 그의 힘이자 기운이었고, 그의 단단한 지팡이였다. 젊은 시절의 부지런하고 고된 세월에 그는 이 세 가지 재주를 배웠고 다른 것은 배우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것들이 그를 떠났고, 어느 것도 더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굶기도, 기다리기도, 생각하기도. 가장 하찮은 것을 얻으려고 그것들을 내주었다. 가장 덧없는 것, 감각의 즐거움, 편한 삶, 재산을 얻으려고! 그에게 참으로 야릇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가 보기에 이제 그는 정말로 어린애 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싯다르타는 제 형편을 곰곰이 생각했다. 생각하는 일이 힘겨웠다. 사실 그럴 마음이 없었지만 억지로 저를 몰았다.
'자, 이제 이 더없이 덧없는 것들이 다시 내게서 미끄러져 나갔으니, 이제 나는 다시 볕 아래 서 있구나. 언젠가 어린아이로 서 있었듯이.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니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아무 힘도 없고,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이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이제 더는 젊지 않고, 머리가 이미 반쯤 세었고, 기운이 빠지는 지금, 이제 나는 다시 처음부터, 어린아이에서부터 시작하는구나!' 그는 다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그의 운명은 야릇했다! 그는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고, 이제 다시 텅 비고 벌거벗고 어리석은 채로 세상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시름을 느낄 수는 없었다. 아니, 그는 오히려 웃고 싶은 큰 이끌림을 느꼈다. 저를 두고 웃고 싶고, 이 야릇하고 어리석은 세상을 두고 웃고 싶었다.
"너는 아래로 내려가는구나!" 그는 저 자신에게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서 그의 눈길이 강에 닿았고, 그 강도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늘 아래로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서 노래하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것이 마음에 들어 그는 강에게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 이 강이 언젠가, 백 년 전에 그가 빠져 죽으려던 그 강이 아니던가? 아니면 그것을 꿈꾸었던가?
'내 삶은 참으로 기이했구나.' 그는 생각했다. '기이하게 먼 길을 돌아왔구나. 소년일 때 나는 신들과 제사만 상대했다. 젊은이일 때는 고행과 생각과 잠겨 듦만 상대했고, 브라만을 찾아다녔고, 아트만 속의 영원한 것을 우러렀다. 그러다 청년이 되어서는 고행자들을 뒤따라 숲에서 살았고, 더위와 추위를 겪었고, 굶는 법을 배웠고, 내 몸을 죽이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고 나서 위대한 붓다의 가르침에서 깨달음이 놀랍게 나를 마주 왔고, 세계가 하나라는 앎이 내 피처럼 내 안에서 도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붓다에게서도, 그 큰 앎에게서도 나는 다시 떠나야 했다. 나는 가서 카말라에게 사랑의 즐거움을 배웠고, 카마스와미에게 장사를 배웠고, 돈을 쌓았고, 돈을 흩뿌렸고, 내 배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내 감각에 아첨하는 법을 배웠다. 정신을 잃는 데, 생각하는 법을 도로 잊는 데, 하나임을 잊는 데 여러 해를 써야 했다. 내가 천천히, 먼 길을 돌아 어른에서 아이가 되고 생각하는 자에서 어린애 같은 사람이 된 것 아닌가? 그런데도 이 길은 아주 좋았고, 그런데도 내 가슴속 새는 죽지 않았다. 그러나 이 무슨 길이었던가! 나는 그토록 많은 어리석음을, 그토록 많은 악덕을, 그토록 많은 그르침을, 그토록 많은 역겨움과 실망과 비참을 지나와야 했다. 그저 다시 아이가 되어 새로 시작할 수 있기 위해서. 그러나 그것은 옳았다. 내 가슴이 거기에 그렇다고 하고, 내 눈이 거기에 웃는다. 나는 절망을 겪어야 했고, 온갖 생각 가운데 가장 어리석은 생각인 자살의 생각까지 가라앉아야 했다. 은총을 겪을 수 있기 위해, 다시 옴을 들을 수 있기 위해, 다시 제대로 자고 제대로 깨어날 수 있기 위해. 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 했다. 내 안에서 아트만을 다시 찾기 위해. 나는 죄를 지어야 했다. 다시 살 수 있기 위해. 내 길은 나를 또 어디로 이끌까? 이 길은 어리석은 길이고, 굽이돌고, 어쩌면 원을 그린다. 제 가고 싶은 대로 가라지. 나는 그 길을 가겠다.'
그는 제 가슴에서 기쁨이 솟구치는 것을 놀랍게 느꼈다.
'대체 어디서 왔는가.' 그는 제 가슴에게 물었다. '이 즐거움이 어디서 왔는가? 나를 그토록 어루만져 준 이 길고 좋은 잠에서 왔는가? 아니면 내가 소리 내어 말한 그 말 옴에서? 아니면 내가 빠져나왔다는 것에서, 내 달아남이 이루어졌다는 것에서, 내가 마침내 다시 자유로워져 아이처럼 하늘 아래 서 있다는 것에서? 아, 이 달아나 있음이, 이 자유로워져 있음이 얼마나 좋은가! 여기 공기는 얼마나 맑고 아름다우며 숨 쉬기에 얼마나 좋은가! 내가 달아나 온 저곳에서는 모든 것이 향유 냄새, 향신료 냄새, 술 냄새, 넘침 냄새, 게으름 냄새가 났다. 나는 부자들과 먹보들과 노름꾼들의 그 세계를 얼마나 미워했던가! 그 끔찍한 세계에 그토록 오래 머문 나 자신을 얼마나 미워했던가! 나는 나를 얼마나 미워했고, 나에게서 빼앗았고, 나를 독으로 채웠고, 나를 괴롭혔고, 나를 늙고 악하게 만들었던가! 아니, 다시는 예전에 그토록 즐겨 하던 것처럼 싯다르타가 지혜롭다고 여기지 않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잘했고, 이것은 마음에 들고, 이것은 칭찬해야겠다. 나 자신에 대한 그 미움이, 그 어리석고 삭막한 삶이 이제 끝났다는 것. 너를 칭찬한다, 싯다르타. 그토록 여러 해 어리석음을 지낸 끝에 너는 다시 한번 생각을 하나 떠올렸고, 무언가를 했고, 네 가슴속 새가 노래하는 것을 들었고, 그것을 따랐다!'
그렇게 그는 저를 칭찬했고, 저를 기뻐했고, 배고픔에 꼬르륵거리는 제 배에 궁금해하며 귀 기울였다. 얼마간의 괴로움을, 얼마간의 비참을 그는 이제 요 근래와 요 며칠 사이에 남김없이 맛보고 뱉어 냈다고, 절망까지 죽음까지 파먹었다고 느꼈다. 그것으로 좋았다. 그는 오래도록 카마스와미 곁에 머물러 돈을 벌고 돈을 뿌리고 제 배를 살찌우고 제 영혼을 목말라 죽게 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래도록 그 부드럽고 푹신하게 덧댄 지옥에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오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완전한 막막함과 절망의 그 순간, 흐르는 물 위에 매달려 저를 없애 버릴 채비가 되었던 그 마지막 순간이. 그가 이 절망을, 이 가장 깊은 역겨움을 느꼈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 그 새가, 제 안의 그 기쁜 샘이자 목소리가 그래도 아직 살아 있다는 것 — 그 때문에 그는 이 기쁨을 느꼈고, 그 때문에 웃었고, 그 때문에 센 머리카락 아래서 그 얼굴이 빛났다.
'좋은 일이다.' 그는 생각했다. '알아야 할 것을 스스로 다 맛보는 것은. 세상의 즐거움과 재산이 좋은 것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릴 때 이미 배웠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겪은 것은 이제야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것을 안다. 기억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내 눈으로, 내 가슴으로, 내 배로 안다. 그것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그는 오래 제 달라짐을 곰곰이 생각했고, 그 새가 기쁨에 겨워 노래하는 것에 귀 기울였다. 이 새가 제 안에서 죽지 않았던가, 제가 그 죽음을 느끼지 않았던가? 아니었다. 제 안에서 죽은 것은 다른 무엇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죽기를 그리워하던 무엇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언젠가 타오르던 고행의 세월에 죽이려 하던 것 아니었던가? 그것이 그의 나, 그토록 여러 해 그와 싸웠고 번번이 그를 이겼고 죽일 때마다 다시 나타나 기쁨을 금하고 두려움을 느끼던 그 작고 불안하고 자랑스러운 나 아니었던가? 오늘 마침내 제 죽음을 찾아낸 것이 바로 그것 아니었던가? 여기 숲에서, 이 사랑스러운 강가에서? 그가 지금 아이처럼 그토록 믿음으로 가득하고 그토록 두려움 없고 그토록 기쁨으로 가득한 것이 바로 그 죽음 때문 아니었던가?
이제 싯다르타는 왜 저가 브라만으로서, 고행자로서 이 나와 싸우면서 헛되었는지도 어렴풋이 알았다. 너무 많은 앎이 그를 막았던 것이다. 너무 많은 거룩한 시구가, 너무 많은 제사 규칙이, 너무 많은 고행이, 너무 많은 함과 애씀이! 그는 오만으로 가득했다. 늘 가장 영리했고, 늘 가장 열심이었고, 늘 모두보다 한 걸음 앞섰고, 늘 아는 자이자 정신의 사람이었고, 늘 사제이거나 현자였다. 이 사제 노릇 속으로, 이 오만 속으로, 이 정신다움 속으로 그의 나가 기어들어 갔고, 거기 단단히 자리 잡고 자라났다. 그가 굶기와 속죄로 그것을 죽인다고 여기는 동안에. 이제 그는 그것을 보았고, 그 은밀한 목소리가 옳았다는 것을, 어떤 스승도 그를 구원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세상으로 들어가야 했고, 즐거움과 힘에, 여자와 돈에 저를 잃어야 했고, 장사꾼이 되고 노름꾼이 되고 술꾼이 되고 돈 욕심 많은 자가 되어야 했다. 제 안의 사제와 사마나가 죽을 때까지. 그래서 그는 이 추한 세월을 더 견뎌야 했고, 역겨움을 견디고, 텅 빔을, 삭막하고 잃어버린 삶의 뜻없음을 견뎌야 했다. 끝까지, 쓰라린 절망까지, 색을 탐하던 싯다르타와 돈을 탐하던 싯다르타마저 죽을 수 있을 때까지. 그는 죽었고, 새로운 싯다르타가 잠에서 깨어났다. 그도 늙을 것이고, 그도 언젠가 죽어야 할 것이다. 싯다르타는 덧없었고 온갖 형상이 덧없었다. 그러나 오늘 그는 젊었고, 아이였고, 새로운 싯다르타였고, 기쁨으로 가득했다.
이런 생각을 하며 그는 웃는 낯으로 제 배에 귀 기울였고, 붕붕거리는 벌 한 마리에게 고맙게 귀 기울였다. 그는 환하게 흐르는 강을 바라보았다. 어떤 물도 이 물만큼 마음에 든 적이 없었고, 흘러가는 물의 목소리와 비유를 이토록 세고 아름답게 들은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이 강이 저에게 무언가 남다른 것을, 아직 저가 알지 못하고 아직 저를 기다리는 무언가를 말해 주려는 것 같았다. 이 강에서 싯다르타는 빠져 죽으려 했고, 이 강에서 늙고 지치고 절망한 싯다르타가 오늘 빠져 죽었다. 그러나 새로운 싯다르타는 이 흐르는 물에 깊은 사랑을 느꼈고, 이 물을 그리 쉬이 다시 떠나지 않겠다고 속으로 마음먹었다.
뱃사공
'이 강가에 머물겠다.' 싯다르타는 생각했다. '언젠가 어린애 같은 사람들에게로 가는 길에 건넜던 바로 그 강이다. 그때 다정한 뱃사공이 나를 건네주었지. 그에게 가겠다. 그의 오두막에서 내 길이 새로운 삶으로 이어졌고, 그 삶은 이제 낡고 죽었다. 지금 내 길도, 지금의 새로운 삶도 거기서 시작되기를!'
그는 흐르는 물을, 비쳐 보이는 초록을, 그 비밀 많은 무늬의 수정 같은 선을 다정하게 들여다보았다. 밝은 진주가 깊은 데서 올라오는 것을, 고요한 물방울이 수면에 떠다니는 것을, 그 안에 하늘빛이 비치는 것을 보았다. 강이 천 개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초록 눈으로, 흰 눈으로, 수정 같은 눈으로, 하늘빛 눈으로. 그가 이 물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 물이 그를 얼마나 홀렸는지, 그가 이 물에 얼마나 고마웠는지! 가슴에서 새로 깨어난 그 목소리가 말하는 것을 그는 들었고, 그 목소리가 그에게 말했다. 이 물을 사랑하여라! 이 물 곁에 머물러라! 이 물에게서 배워라! 아 그렇다, 그는 이 물에게서 배우고 싶었고 이 물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이 물과 그 비밀을 알아듣는 사람이라면 다른 많은 것도, 많은 비밀도, 모든 비밀도 알아들으리라고 그에게는 여겨졌다.
그러나 강의 비밀 가운데 그가 오늘 본 것은 하나뿐이었고, 그것이 그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그는 보았다. 이 물이 흐르고 또 흐르고 끊임없이 흐르는데도 늘 거기 있고, 늘 언제나 같은 것이면서도 순간마다 새롭다는 것을! 아, 이것을 붙잡는 사람이라면, 이것을 알아듣는 사람이라면! 그는 그것을 알아듣지도 붙잡지도 못했고, 다만 예감이 움직이는 것을, 먼 기억이, 신들의 목소리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싯다르타는 일어섰다. 몸속에서 배고픔이 설쳐 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사로잡힌 채 그는 더 걸었다. 기슭길을 따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며, 흐름에 귀 기울이고 제 몸속에서 꼬르륵거리는 배고픔에 귀 기울이며.
나루에 이르자 마침 배가 채비되어 있었고, 언젠가 젊은 사마나를 강 건너로 실어다 준 바로 그 뱃사공이 배에 서 있었다. 싯다르타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도 몹시 늙어 있었다.
"저를 건네주시겠습니까?" 그가 물었다.
뱃사공은 그토록 귀해 보이는 사람이 혼자 걸어 다니는 것에 놀라며 그를 배에 태우고 물가를 밀어냈다.
"아름다운 삶을 고르셨군요." 손님이 말했다. "날마다 이 물가에 살면서 이 물 위를 다니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겠습니다."
노 젓는 이가 웃으며 몸을 흔들었다. "아름답지요, 나리.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어느 삶인들, 어느 일인들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당신 것은 부럽습니다."
"아이고, 나리는 곧 그 재미를 잃으실 겁니다. 이건 고운 옷 입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싯다르타가 웃었다. "오늘 벌써 한 번 제 옷 때문에 남의 눈길을 받았습니다. 미덥지 않다는 눈길이었지요. 뱃사공님, 저에게 성가신 이 옷을 받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저는 뱃삯으로 드릴 돈이 없습니다."
"나리께서 농을 하시는군요." 뱃사공이 웃었다.
"농이 아닙니다, 벗이여. 보십시오, 당신은 이미 한 번 저를 당신 배로 이 물을 건네주셨습니다. 삯 없이요. 그러니 오늘도 그렇게 해 주시고 그 값으로 제 옷을 받아 주십시오."
"그러면 나리는 옷도 없이 더 가시렵니까?"
"아이고, 저는 더 가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뱃사공님, 저에게 낡은 앞치마를 하나 주시고 저를 당신 조수로, 아니 그보다 당신 제자로 곁에 두어 주시면 제일 좋겠습니다. 먼저 배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하니까요."
뱃사공은 오래 그 낯선 이를 바라보았다. 찾는 눈으로.
"이제 알아보겠습니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언젠가 제 오두막에서 주무셨지요. 오래됐습니다, 스무 해도 더 됐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강을 건네 드렸고, 우리는 좋은 벗처럼 헤어졌지요. 사마나가 아니셨습니까? 성함은 이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 이름은 싯다르타이고, 마지막으로 저를 보셨을 때 저는 사마나였습니다."
"그러면 잘 오셨소, 싯다르타. 내 이름은 바주데바요. 오늘도 내 손님이 되어 내 오두막에서 자면서, 어디서 오는 길인지, 그 고운 옷이 왜 그리 성가신지 이야기해 주기 바라오."
그들은 강 한복판에 이르렀고, 바주데바는 물살을 거스르려고 노에 더 힘을 실었다. 그는 뱃머리에 눈을 두고 억센 팔로 잠잠히 일했다. 싯다르타는 앉아 그를 바라보았고, 언젠가 사마나 시절의 그 마지막 날에도 이 사람을 향한 사랑이 제 가슴에서 움직였던 것을 떠올렸다. 그는 고맙게 바주데바의 청을 받아들였다. 기슭에 배를 대자 그는 말뚝에 배를 매는 것을 도왔고, 그러자 뱃사공이 그를 오두막으로 들라 청하며 빵과 물을 내주었다. 싯다르타는 맛있게 먹었고, 바주데바가 내준 망고 열매도 맛있게 먹었다.
그러고 나서 해가 질 무렵에 그들은 기슭의 통나무에 앉았고, 싯다르타는 뱃사공에게 제 내력과 제 삶을 이야기했다. 오늘 그 절망의 시각에 제 눈앞에 보았던 그대로. 그의 이야기는 밤 깊도록 이어졌다.
바주데바는 큰 주의로 귀 기울였다. 내력과 어린 시절을, 온갖 배움을, 온갖 찾음을, 온갖 기쁨을, 온갖 곤경을 그는 듣고 제 안에 받아들였다. 이것이 뱃사공의 덕 가운데 가장 큰 것에 들었다. 그는 드물게도 듣는 법을 알았다. 그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하는 이는 바주데바가 제 말을 제 안에 들이는 것을 느꼈다. 고요히, 열린 채로, 기다리며,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한마디도 조바심으로 기다리지 않고, 칭찬도 나무람도 덧붙이지 않고 오직 들을 뿐이었다. 싯다르타는 그런 듣는 이에게 제 이야기를 털어놓는 일이, 그 가슴에 제 삶을, 제 찾음을, 제 괴로움을 잠기게 하는 일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느꼈다.
그러나 싯다르타의 이야기가 끝에 다다라 강가의 그 나무를, 제 깊은 떨어짐을, 거룩한 옴을,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뒤 강에 느낀 그 사랑을 말할 때, 뱃사공은 곱절의 주의로 귀 기울였다. 온전히 남김없이 내맡긴 채, 눈을 감고서.
싯다르타가 말을 그치고 긴 고요가 흐른 뒤에 바주데바가 말했다. "내가 생각한 그대로군. 강이 그대에게 말을 걸었소. 강은 그대에게도 벗이고, 그대에게도 말을 하는군. 좋은 일이오, 아주 좋은 일이오. 내 곁에 머무시오, 싯다르타, 나의 벗이여. 나에게도 한때 아내가 있어 잠자리가 내 곁에 있었지만 죽은 지 오래되었고, 나는 오래 혼자 살았소. 이제 그대가 나와 함께 사시오. 둘이 지낼 자리도 먹을 것도 있소."
"고맙습니다." 싯다르타가 말했다. "고맙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고맙습니다, 바주데바. 제 말을 그토록 잘 들어 주신 것 말입니다! 들을 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리고 당신처럼 아는 이는 만난 적이 없습니다. 이것도 당신에게서 배우겠습니다."
"배우게 될 거요." 바주데바가 말했다. "그러나 나에게서가 아니오. 듣는 법은 강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고, 그대도 강에게서 배우게 될 거요. 강은 다 알고 있소. 강에게서 무엇이든 배울 수 있소. 보시오, 그대는 벌써 물에게서 이것도 배웠소. 아래로 향하는 것이, 가라앉는 것이, 깊은 데를 찾는 것이 좋다는 것을. 부유하고 귀하던 싯다르타가 노 젓는 일꾼이 되고, 학식 있는 브라만 싯다르타가 뱃사공이 되는 것. 이것도 강이 그대에게 일러 준 것이오. 그대는 나머지도 강에게서 배우게 될 거요."
긴 침묵 뒤에 싯다르타가 말했다. "나머지라니요, 바주데바?"
바주데바가 일어섰다. "늦었소." 그가 말했다. "자러 갑시다. 나머지가 무엇인지 나는 그대에게 말해 줄 수 없소, 벗이여. 그대가 배우게 될 거요.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르고. 보시오, 나는 학식 있는 사람이 아니오. 말할 줄도 모르고 생각할 줄도 모르오. 나는 그저 들을 줄 알고 경건할 줄 알 뿐, 그 밖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소. 그것을 말하고 가르칠 수 있다면 나는 어쩌면 현자겠지요. 그러나 나는 그저 뱃사공이고, 내 할 일은 사람들을 이 강 건너로 실어다 주는 것이오. 나는 많은 사람을 건네주었소, 수천 명을.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내 강은 제 여행길의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소. 그들은 돈과 장사를 좇아, 혼례에, 순례에 떠났고, 강이 그들 앞을 가로막았고, 뱃사공은 그들을 그 장애물 너머로 빨리 데려다주려고 있는 것이었소. 그러나 그 수천 가운데 몇몇은, 아주 적은 넷이나 다섯은 강이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게 되었소. 그들은 강의 목소리를 들었고, 강에 귀 기울였고, 강이 그들에게 거룩해졌소. 나에게 그리 된 것처럼. 이제 쉬러 갑시다, 싯다르타."
싯다르타는 뱃사공 곁에 머물며 배 다루는 법을 배웠고, 나루에 할 일이 없을 때는 바주데바와 함께 논에서 일하고 나무를 모으고 바나나 열매를 땄다. 그는 노 깎는 법을 배웠고, 배 고치는 법과 바구니 엮는 법을 배웠고, 배우는 모든 것을 즐거워했고, 날과 달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러나 바주데바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을 강이 그에게 가르쳤다. 그는 강에게서 쉬지 않고 배웠다. 무엇보다 그는 강에게서 듣는 법을 배웠다. 고요한 가슴으로, 기다리는 열린 영혼으로, 열정 없이, 바람 없이, 판단 없이, 의견 없이 귀 기울이는 법을.
그는 바주데바 곁에서 다정하게 살았고, 이따금 그들은 말을 주고받았다. 적고 오래 헤아린 말이었다. 바주데바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싯다르타가 그를 말하게 만드는 일은 드물었다.
"당신도," 언젠가 그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도 강에게서 그 비밀을 배웠습니까? 시간이란 없다는 것을?"
바주데바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그렇소, 싯다르타." 그가 말했다. "그대가 말하는 것은 이것이겠지요. 강은 어디에나 동시에 있다는 것. 근원에도 어귀에도, 폭포에도 나루에도, 여울에도 바다에도 산에도, 어디에나 동시에 있고, 강에게는 오직 지금만 있을 뿐 지나감의 그림자도 다가옴의 그림자도 없다는 것 말이오."
"바로 그것입니다." 싯다르타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배우고 나서 저는 제 삶을 들여다보았는데, 제 삶도 하나의 강이었습니다. 소년 싯다르타와 어른 싯다르타와 노인 싯다르타는 그림자로만 갈려 있을 뿐 실제로 갈려 있지 않았습니다. 싯다르타의 지난 태어남들도 지나간 것이 아니었고, 그의 죽음과 브라흐마에게로 돌아감도 다가올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있었던 것이 아니고 아무것도 있을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이 본성과 지금을 지닙니다."
싯다르타는 황홀하게 말했다. 이 밝아짐이 그를 깊이 행복하게 했다. 아, 온갖 괴로움이 시간 아니었던가, 온갖 자기 괴롭힘과 자기 두려워함이 시간 아니었던가, 세상의 온갖 무거운 것과 적대적인 것이 시간을 이겨 내는 순간, 시간을 생각에서 지워 버릴 수 있는 순간 사라지고 이겨지는 것 아니었던가? 그는 황홀하게 말했지만, 바주데바는 그를 향해 빛나게 웃으며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끄덕이고 손으로 싯다르타의 어깨를 쓸고는 제 일로 돌아갔다.
또 언젠가, 마침 우기에 강이 불어 세차게 소리 낼 때 싯다르타가 말했다. "그렇지요, 벗이여, 강에는 목소리가 많지요, 아주 많지요? 강에는 왕의 목소리와 전사의 목소리와 황소의 목소리와 밤새의 목소리와 아이 낳는 여자의 목소리와 한숨짓는 이의 목소리와, 그 밖에 천 가지 목소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소." 바주데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온갖 살아 있는 것의 목소리가 그 목소리 안에 있소."
"그러면 아십니까?" 싯다르타가 이어 말했다. "그 만 가지 목소리를 한꺼번에 듣는 데 성공하면 강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바주데바의 얼굴이 행복하게 웃었다. 그는 싯다르타 쪽으로 몸을 기울여 그 귀에 거룩한 옴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싯다르타도 들은 것이었다.
그리고 갈수록 그의 웃음은 뱃사공의 웃음과 닮아 갔다. 거의 그만큼 빛났고, 거의 그만큼 행복이 배어 빛났고, 그만큼 천 개의 잔주름에서 반짝였고, 그만큼 아이 같았고, 그만큼 노인 같았다. 많은 나그네가 두 뱃사공을 보고 형제인 줄 알았다. 그들은 저녁이면 자주 함께 기슭의 통나무에 앉아 말없이 둘 다 물에 귀 기울였다. 그들에게 그것은 물이 아니라 삶의 목소리, 있는 것의 목소리, 영원히 되어 가는 것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따금 둘이 강에 귀 기울이다가 같은 것을 생각하는 일이 있었다. 그저께의 어떤 이야기를, 얼굴과 운명이 마음에 걸리던 어떤 나그네를, 죽음을, 저희 어린 시절을. 그러다 강이 그들에게 좋은 것을 말해 주면 둘이 같은 순간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 다 꼭 같은 것을 생각하며, 같은 물음에 대한 같은 답에 둘 다 행복해하며.
그 나루에서, 그 두 뱃사공에게서 무언가가 나왔고 더러 나그네들이 그것을 느꼈다. 이따금 어떤 나그네가 두 뱃사공 중 하나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나서 제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일이 있었다. 괴로움을 이야기하고, 악한 일을 털어놓고, 위로와 조언을 청했다. 이따금 누가 강에 귀 기울이려고 저녁 한때 그들 곁에 머물게 해 달라고 청하는 일도 있었다. 이 나루에 현자가, 아니면 마법사가, 아니면 성자가 둘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하는 이들이 오기도 했다. 궁금해하는 이들은 많은 것을 물었지만 아무 답도 얻지 못했고, 마법사도 현자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들이 찾아낸 것은 말이 없고 얼마쯤 야릇하고 얼빠져 보이는 다정한 늙은이 둘뿐이었다. 그러면 궁금해하던 이들은 웃으며,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잘 속아서 그런 헛소문을 퍼뜨리는지 이야기했다.
세월이 흘렀고 아무도 그것을 세지 않았다. 그러다 언젠가 수행승들이 순례하다 와서 강을 건네 달라고 청했다. 붓다 고타마를 따르는 이들이었다. 뱃사공들은 그들에게서, 그들이 서둘러 제 큰 스승에게 돌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귀하신 분이 위독하여 머지않아 마지막 사람의 죽음을 죽고 벗어남으로 드실 것이라는 소식이 퍼졌기 때문이었다. 오래지 않아 새 수행승 무리가 순례해 왔고, 또 한 무리가 왔다. 수행승들도, 다른 나그네와 떠도는 이들도 대부분 고타마와 그 가까운 죽음 말고는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길에 나서듯, 왕의 대관식에 가듯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개미 떼처럼 모이듯, 그들은 마법에 끌리듯 그리로 몰려갔다. 위대한 붓다가 제 죽음을 기다리는 곳으로, 그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한 시대의 그 위대한 이룬 이가 영광으로 들어가는 곳으로.
이 무렵 싯다르타는 죽어 가는 그 현자를, 그 위대한 스승을 많이 생각했다. 그 목소리가 백성을 일깨우고 수십만을 깨어나게 했고, 그 목소리를 그도 언젠가 들었고, 그 거룩한 얼굴을 그도 언젠가 경외로 바라보았다. 그는 다정하게 그를 생각했고, 그 이룸의 길을 눈앞에 보았고, 젊은이였을 때 존귀하신 그분에게 했던 말을 웃으며 떠올렸다. 그것은 자랑스럽고 어른인 척하는 말이었다고 그에게는 여겨졌고, 그는 웃으며 그것을 떠올렸다. 그는 진작부터 저를 고타마와 갈라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으면서도. 아니, 참으로 찾는 사람은, 참으로 찾아내려는 사람은 어떤 가르침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찾아낸 사람은 어떤 가르침이든, 어떤 길이든, 어떤 목표든 옳다 할 수 있었다. 그를 영원한 것 속에 살며 신적인 것을 숨 쉬는 저 수천의 다른 이들과 갈라놓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그토록 많은 이가 죽어 가는 붓다에게 순례하던 그 무렵 어느 날, 한때 가장 아름다운 기녀였던 카말라도 그에게 순례했다. 그는 진작 예전 삶에서 물러났고, 제 정원을 고타마의 수행승들에게 바쳤고, 그 가르침에 귀의했고, 순례하는 이들의 벗이자 도와주는 이에 들어 있었다. 고타마의 죽음이 가깝다는 소식에 그는 제 아들인 소년 싯다르타와 함께 수수한 옷차림으로 걸어서 길을 나섰다. 어린 아들과 함께 강가를 가고 있었는데, 아이는 곧 지쳐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고, 쉬자고 하고, 먹자고 하며 떼를 쓰고 울먹였다.
카말라는 자주 아이와 함께 쉬어야 했다. 아이는 어미에게 제 뜻을 우기는 데 익숙했고, 그는 아이를 먹여야 했고 달래야 했고 꾸짖어야 했다. 아이는 왜 어미와 함께 이 고되고 서글픈 순례를 나서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거룩하다는 낯선 사내에게, 죽어 간다는 사내에게 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죽든 말든 그것이 아이와 무슨 상관인가?
순례하는 두 사람이 바주데바의 나루에서 멀지 않은 데 이르렀을 때, 어린 싯다르타가 또 어미에게 쉬자고 졸랐다. 카말라 자신도 지쳐 있었고, 아이가 바나나를 씹는 동안 그는 땅에 웅크려 눈을 조금 감고 쉬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하소연하는 비명을 질렀고, 아이가 놀라 바라보니 그 얼굴이 소름으로 하얘져 있었으며, 그 옷 밑에서 작고 검은 뱀 한 마리가 빠져나갔다. 카말라가 그 뱀에게 물린 것이었다.
이제 둘은 사람이 있는 데까지 가려고 서둘러 길을 달렸고, 나루 가까이까지 왔다. 거기서 카말라가 주저앉아 더는 갈 수 없었다. 아이는 애처롭게 울부짖었고, 그 사이사이 어미에게 입 맞추고 목을 끌어안았다. 어미도 아이의 큰 도움 청하는 소리에 함께 소리를 냈고, 마침내 그 소리가 나루에 서 있던 바주데바의 귀에 닿았다. 그가 빠르게 걸어와 여자를 팔에 안아 배로 옮겼고, 아이도 따라 달렸고, 곧 그들 모두가 오두막에 이르렀다. 거기서 싯다르타가 화덕에 서서 막 불을 지피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먼저 아이의 얼굴을 보았는데, 그 얼굴이 그를 야릇하게 일깨워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고 나서 카말라를 보았고, 뱃사공의 팔에 정신을 잃고 안겨 있었는데도 곧바로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저를 그토록 일깨우던 그 얼굴이 제 아들의 얼굴임을 알았고, 가슴속에서 심장이 움직였다.
카말라의 상처를 씻었으나 이미 검어져 있었고 몸이 부어 있었다. 약을 달여 먹였다. 그의 의식이 돌아왔고, 그는 오두막의 싯다르타 잠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 위로 한때 그를 그토록 사랑했던 싯다르타가 몸을 숙이고 서 있었다. 그에게는 꿈인 듯했다. 그는 웃으며 제 벗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천천히서야 제 형편을 알아차렸고, 물린 일을 떠올렸고, 겁먹은 소리로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당신 곁에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싯다르타가 말했다.
카말라가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독에 마비되어 혀가 무거운 채로 그가 말했다. "늙었구나, 사랑하는 이여." 그가 말했다. "머리가 세었구나. 그런데 너는 언젠가 옷도 없이 먼지투성이 발로 내 정원에 왔던 그 젊은 사마나를 닮았다. 나와 카마스와미를 떠나던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그를 닮았다. 눈이 그를 닮았다, 싯다르타. 아아, 나도 늙었구나, 늙었어 — 그런데도 나를 알아보았느냐?"
싯다르타가 웃었다. "곧바로 알아보았습니다, 카말라, 사랑하는 이여."
카말라가 제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아이도 알아보았느냐? 네 아들이다."
그의 눈이 흐려지며 감겼다. 아이가 울었고, 싯다르타는 아이를 제 무릎에 앉히고 울게 두었고, 그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 아이 얼굴을 보다가, 저도 어린 소년이었을 때 배웠던 브라만의 기도 하나가 떠올랐다. 천천히 노래하는 목소리로 그는 그것을 읊기 시작했고, 지난날과 어린 시절에서 그 말이 흘러나왔다. 그 읊조림 아래서 아이는 잠잠해졌고, 이따금 한 번씩 흐느끼다가 잠들었다. 싯다르타는 아이를 바주데바의 잠자리에 뉘었다. 바주데바는 화덕에 서서 쌀을 안치고 있었다. 싯다르타가 그에게 눈길을 던지자 그가 웃으며 되돌려 주었다.
"이 사람은 죽을 겁니다." 싯다르타가 나직이 말했다.
바주데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정한 얼굴 위로 화덕의 불빛이 흘렀다.
카말라가 다시 한번 정신을 차렸다. 아픔이 그 얼굴을 일그러뜨렸고, 싯다르타의 눈은 그 입에서, 핏기 잃은 뺨에서 괴로움을 읽었다. 그는 고요히, 주의 깊게, 기다리며, 그 괴로움에 잠겨 그것을 읽었다. 카말라가 그것을 느꼈고, 그 눈길이 그의 눈을 찾았다.
그를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이제 보니 네 눈도 달라졌구나. 아주 달라졌다. 그런데도 네가 싯다르타라는 것을 내가 무엇으로 알아보는 것일까? 너는 싯다르타이면서 싯다르타가 아니구나."
싯다르타는 말하지 않았다. 그의 눈이 고요히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이루었느냐?" 그가 물었다. "평화를 찾았느냐?"
그는 웃으며 그 손 위에 제 손을 얹었다.
"보인다." 그가 말했다. "보인다. 나도 평화를 찾겠구나."
"당신은 이미 찾았습니다." 싯다르타가 속삭이며 말했다.
카말라는 그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이룬 이의 얼굴을 보려고, 그 평화를 숨 쉬려고 고타마에게 순례하려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 대신 이제 이 사람을 찾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좋다는 것을, 그 사람을 보았을 때만큼이나 좋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것을 그에게 말하고 싶었으나 혀가 더는 제 뜻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그 눈에서 생명이 꺼지는 것을 보았다. 마지막 아픔이 그 눈을 채우고 부서질 때, 마지막 떨림이 그 팔다리를 지나갈 때, 그의 손가락이 그 눈꺼풀을 닫아 주었다.
그는 오래 앉아 잠든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래 그 입을 들여다보았다. 늙고 지친 입, 얇아진 입술을. 그리고 언젠가 제 세월의 봄에 이 입을 막 벌어진 무화과에 견주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는 오래 앉아 그 창백한 얼굴을, 지친 주름을 읽었고, 그 모습으로 저를 채웠고, 제 얼굴도 똑같이 누워 있는 것을, 똑같이 희고 똑같이 꺼진 것을 보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제 얼굴과 그의 얼굴이 젊은 것을, 붉은 입술과 타는 눈을 한 것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 여기 있음과 함께 있음의 느낌이, 영원의 느낌이 그를 온통 꿰뚫었다. 그는 이 시각에 어느 때보다 깊이, 모든 생명의 부술 수 없음을, 모든 순간의 영원함을 느꼈다.
그가 몸을 일으켰을 때 바주데바는 그를 위해 쌀을 지어 두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먹지 않았다. 염소가 있는 우리에 두 늙은이는 잠자리를 마련했고, 바주데바는 누워 잠들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밖으로 나가 밤새 오두막 앞에 앉아 강에 귀 기울였다. 지난날에 씻기며, 제 삶의 온 시간에 동시에 닿고 감싸인 채로. 그러면서도 이따금 일어나 오두막 문가로 가서 아이가 자는지 귀 기울였다.
이른 아침, 아직 해가 보이기 전에 바주데바가 우리에서 나와 제 벗에게 왔다.
"자지 않았군." 그가 말했다.
"예, 바주데바. 여기 앉아 강에 귀 기울였습니다. 강이 저에게 많은 것을 말해 주었고, 저를 그 낫게 하는 생각으로, 하나임의 생각으로 깊이 채워 주었습니다."
"괴로움을 겪었는데도, 싯다르타, 그대 가슴에 서글픔이 들지 않은 것이 보이는군."
"예, 벗이여. 제가 어찌 서글프겠습니까? 넉넉하고 행복하던 제가 이제 더 넉넉하고 더 행복해졌습니다. 아들이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대 아들은 나에게도 반갑소. 그러면 이제, 싯다르타, 일을 하러 갑시다. 할 일이 많소. 내 아내가 죽은 그 자리에서 카말라가 죽었소. 내가 언젠가 아내의 화장 장작을 쌓았던 그 언덕에 카말라의 화장 장작도 쌓읍시다."
아이가 아직 자는 동안 그들은 화장 장작을 쌓았다.
아들
아이는 겁먹고 울면서 제 어미의 장례를 지켰고, 침울하고 겁먹은 채로 저를 아들이라 맞으며 바주데바의 오두막에 온 것을 반긴다는 싯다르타의 말을 들었다. 아이는 며칠씩 창백하게 죽은 이의 언덕에 앉아 먹으려 하지 않았고, 제 눈길을 닫았고, 제 가슴을 닫았고, 운명에 맞서 버티고 뻗댔다.
싯다르타는 아이를 아껴 하는 대로 두었고, 그 슬픔을 존중했다. 싯다르타는 제 아들이 저를 알지 못하며 아버지로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들었다. 그는 그 열한 살짜리가 응석받이이고 어미 품에서 자란 아이이며 넉넉함의 버릇 속에서 컸다는 것을, 고운 음식과 부드러운 침대에 익숙하고 하인에게 명하는 데 익숙하다는 것을 차차 보고 알아들었다. 싯다르타는 슬퍼하고 응석받이인 아이가 낯선 곳의 가난에 갑자기 기꺼이 만족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들었다. 그는 아이를 몰아붙이지 않았고, 아이 몫의 일을 여럿 대신 해 주었고, 늘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주었다. 다정한 참을성으로 천천히 아이의 마음을 얻기를 그는 바랐다.
아이가 저에게 왔을 때 그는 저를 넉넉하고 행복하다고 불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이는 낯설고 침울한 채로 있었고, 자랑스럽고 고집스러운 가슴을 드러냈고, 아무 일도 하려 하지 않았고, 늙은이들에게 아무 경외도 보이지 않았고, 바주데바의 과일나무를 털었다. 그러자 싯다르타는 제 아들과 함께 저에게 온 것이 행복과 평화가 아니라 괴로움과 걱정이라는 것을 알아듣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아이를 사랑했고, 아이 없이 누리던 행복과 기쁨보다 사랑의 괴로움과 걱정이 그에게 더 정다웠다. 어린 싯다르타가 오두막에 온 뒤로 두 늙은이는 일을 나누었다. 바주데바가 다시 혼자 뱃사공 일을 맡았고, 싯다르타는 아들 곁에 있으려고 오두막과 밭일을 맡았다.
오랫동안, 긴 여러 달 싯다르타는 제 아들이 저를 알아주기를, 제 사랑을 받아 주기를, 어쩌면 돌려주기를 기다렸다. 바주데바도 긴 여러 달을 지켜보며 기다렸고, 기다리며 잠자코 있었다. 어느 날 어린 싯다르타가 또 뻗댐과 심술로 제 아비를 몹시 괴롭히고 밥그릇 두 개를 다 깨뜨린 뒤, 저녁에 바주데바가 제 벗을 옆으로 데려가 이야기했다.
"미안하오." 그가 말했다. "다정한 마음으로 하는 말이오. 그대가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 보이고, 시름이 있는 것이 보이오. 벗이여, 그대 아들이 그대에게 걱정을 만들고, 나에게도 걱정을 만드는군. 저 어린 새는 다른 삶에, 다른 둥지에 익숙하오. 그대처럼 역겨움과 물림에서 넉넉함과 도시를 벗어나 달아난 것이 아니라, 제 뜻과 달리 이 모든 것을 뒤에 두고 와야 했소. 나는 강에게 물었소, 벗이여, 여러 번 물었소. 그런데 강은 웃소. 나를 비웃고, 나와 그대를 비웃고, 우리 어리석음을 두고 몸을 흔드오. 물은 물에게 가려 하고 젊음은 젊음에게 가려 하오. 그대 아들은 제가 잘 자랄 수 있는 곳에 있지 않소. 그대도 강에게 물어보시오, 그대도 강의 말을 들어 보시오!"
싯다르타는 시름에 잠겨 그 다정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 많은 잔주름 속에 한결같은 환함이 살고 있었다.
"제가 아이와 떨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가 부끄러워하며 나직이 말했다. "저에게 시간을 좀 더 주십시오, 벗이여! 보십시오, 저는 아이를 두고 싸우고 있고 그 마음을 얻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사랑과 다정한 참을성으로 그 마음을 붙잡으려 합니다. 언젠가 그 아이에게도 강이 말을 걸 것입니다. 그 아이도 부름받았습니다."
바주데바의 웃음이 더 따뜻하게 피어났다. "아 그렇소, 그 아이도 부름받았고, 그 아이도 영원한 삶의 것이오. 그러나 그대와 나, 우리가 그 아이가 무엇으로 부름받았는지, 어떤 길로, 어떤 행함으로, 어떤 괴로움으로 부름받았는지 알겠소? 그 아이의 괴로움은 작지 않을 것이오. 그 가슴이 자랑스럽고 단단하니 말이오. 그런 사람은 많이 괴로워하고, 많이 그르치고, 많이 옳지 못한 일을 하고, 많은 죄를 제 위에 짊어져야 하오. 말해 보시오, 벗이여. 그대는 아들을 가르치지 않소? 몰아붙이지 않소? 때리지 않소? 벌하지 않소?"
"예, 바주데바. 그런 일은 하나도 하지 않습니다."
"그럴 줄 알았소. 그대가 아이를 몰아붙이지 않고 때리지 않고 명하지 않는 것은, 무른 것이 단단한 것보다 세고 물이 바위보다 세고 사랑이 힘보다 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아주 좋소, 나는 그대를 칭찬하오. 그런데 그대가 아이를 몰아붙이지도 벌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 그르침 아니겠소? 그대는 사랑으로 아이를 묶고 있지 않소? 그대의 인자함과 참을성으로 날마다 아이를 부끄럽게 하고 그 처지를 더 힘들게 하고 있지 않소? 그 오만하고 응석받이인 아이를 쌀도 별미로 여기는 늙은 바나나쟁이 둘이 사는 오두막에 억지로 살게 하고 있지 않소? 그들의 생각은 아이의 생각일 수 없고, 그들의 가슴은 늙고 고요하여 아이의 가슴과 걸음이 다른데 말이오. 이 모든 것으로 아이는 몰아붙여지고 벌받고 있는 것 아니오?"
싯다르타는 뜨끔해서 땅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나직이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바주데바가 말했다. "아이를 도시로 데려가시오. 제 어미의 집으로 데려가시오. 아직 하인들이 있을 테니 그들에게 맡기시오. 아무도 남지 않았거든 어느 스승에게 데려가시오. 가르침 때문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 여자아이들에게, 그리고 제 것인 세상으로 가게 하려는 것이오. 그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소?"
"제 마음속을 보시는군요." 싯다르타가 서글프게 말했다. "여러 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가뜩이나 부드러운 가슴을 지니지 못한 저 아이를 어떻게 그 세상에 내주겠습니까? 방탕해지지 않겠습니까, 즐거움과 힘에 저를 잃지 않겠습니까, 제 아비의 온갖 그르침을 되풀이하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산사라에 아주 잃어버려지지 않겠습니까?"
뱃사공의 웃음이 환하게 빛났다. 그가 싯다르타의 팔을 부드럽게 건드리며 말했다. "그것을 강에게 물어보시오, 벗이여! 강이 그것을 두고 웃는 소리를 들어 보시오! 그대가 저지른 어리석음이 아들에게 그것을 덜어 주려고 한 일이라고 정말로 믿소? 그대가 아들을 산사라에게서 지킬 수 있소? 어떻게 말이오? 가르침으로, 기도로, 타이름으로? 벗이여, 그대가 언젠가 바로 이 자리에서 나에게 들려준 그 이야기를, 브라만의 아들 싯다르타에 관한 그 가르침 많은 이야기를 아주 잊었소? 사마나 싯다르타를 산사라에게서, 죄에게서, 욕심에게서, 어리석음에게서 지켜 준 것이 무엇이었소? 제 아비의 경건함이, 스승들의 타이름이, 제 앎이, 제 찾음이 그를 지켜 줄 수 있었소? 어느 아비가, 어느 스승이 그가 스스로 삶을 살고, 스스로 삶으로 저를 더럽히고, 스스로 죄를 제 위에 지고, 스스로 쓴 잔을 마시고, 스스로 제 길을 찾는 일을 막아 줄 수 있었소?
벗이여, 이 길이 누군가에게는 면제되리라고 정말 믿소? 어쩌면 그대 어린 아들에게는? 그대가 그 아이를 사랑하니까, 그 아이에게 괴로움과 아픔과 실망을 덜어 주고 싶으니까? 그러나 그대가 그 아이를 위해 열 번을 죽는다 해도 그것으로 그 아이 운명의 가장 작은 몫도 덜어 줄 수 없을 것이오."
바주데바가 이토록 많은 말을 한 적은 여태 없었다. 싯다르타는 다정하게 고마워하고 시름에 잠겨 오두막으로 들어갔고, 오래 잠들지 못했다. 바주데바는 그가 스스로 이미 생각하고 알고 있지 않은 것은 하나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행할 수 없는 앎이었다. 앎보다 강한 것이 아이를 향한 그의 사랑이었고, 더 강한 것이 그의 다정함이었고, 아이를 잃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가 여태 무엇에든 이토록 마음을 잃은 적이 있었던가, 어떤 사람을 이토록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이토록 눈멀게, 이토록 괴로워하며, 이토록 보람 없이, 그러면서도 이토록 행복하게?
싯다르타는 제 벗의 조언을 따를 수 없었다. 아들을 내줄 수 없었다. 그는 아이가 저에게 명하게 두었고, 아이가 저를 업신여기게 두었다. 그는 잠자코 기다렸고, 날마다 다정함의 말 없는 싸움을, 참을성의 소리 없는 전쟁을 시작했다. 바주데바도 잠자코 기다렸다. 다정하게, 알면서, 너그럽게. 참을성에서는 둘 다 대가였다.
언젠가 아이의 얼굴이 카말라를 몹시 떠올리게 했을 때, 싯다르타는 문득 카말라가 오래전 젊은 시절에 저에게 했던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너는 어떤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가 그렇게 말했고, 그는 그것이 옳다고 인정했으며, 저를 별에, 어린애 같은 사람들을 떨어지는 잎사귀에 견주었다. 그러면서도 그 말에서 나무람도 느꼈다. 정말로 그는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저를 온전히 잃고 내줄 수 없었고, 저를 잊을 수 없었고, 남을 위해 사랑의 어리석은 짓을 저지를 수 없었다. 한 번도 그러지 못했고, 그때 그가 보기에는 그것이 저를 어린애 같은 사람들과 가르는 큰 차이였다. 그런데 이제 제 아들이 오고 나서, 이제 그 자신 싯다르타도 온전히 어린애 같은 사람이 되었다. 한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고, 한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에 저를 잃고, 사랑 때문에 어리석은 자가 되었다. 이제 그도 늦게나마 살면서 한 번 이 가장 세고 가장 야릇한 열정을 느꼈고, 그것에 괴로워했고, 가엾게 괴로워했고, 그러면서도 복되었고, 무언가로 새로워졌고, 무언가로 넉넉해졌다.
제 아들을 향한 이 사랑, 이 눈먼 사랑이 하나의 열정이며 몹시 사람다운 것이라는 것을, 그것이 산사라이며 흐린 샘이자 어두운 물이라는 것을 그는 잘 느꼈다. 그런데도 그는 동시에 그것이 값없지 않으며 꼭 있어야 할 것이고 제 본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느꼈다. 이 즐거움도 갚아야 하고, 이 아픔도 맛보아야 하고, 이 어리석음도 저질러야 했다.
그러는 동안 아들은 그가 제 어리석음을 저지르게 두었고, 제 마음을 얻으려 애쓰게 두었고, 날마다 제 심술 앞에서 저를 낮추게 두었다. 이 아비에게는 저를 홀리는 것도, 저가 무서워할 것도 없었다. 좋은 사람이었다, 이 아비는. 좋고 인자하고 부드러운 사람, 어쩌면 몹시 경건한 사람, 어쩌면 성자 — 그러나 이런 것은 아이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저를 이 비참한 오두막에 가두어 둔 이 아비가 아이에게는 지루했다. 지루했고, 온갖 버릇없음을 웃음으로, 온갖 욕설을 다정함으로, 온갖 심술을 인자함으로 받아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늙은 능구렁이의 가장 미운 수작이었다. 아이는 차라리 그에게 으름장을 듣고 두들겨 맞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어린 싯다르타의 마음이 터져 나와 아비에게 드러내 놓고 맞선 날이 왔다. 아비가 그에게 일을 하나 시켜 잔가지를 모아 오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는 오두막에서 나가지 않았다. 고집을 부리고 성이 나서 선 채로 땅을 구르고 주먹을 쥐고, 엄청난 터짐으로 제 아비의 얼굴에 미움과 업신여김을 소리쳤다.
"당신 잔가지는 당신이 가져와!" 아이가 거품을 물고 외쳤다. "나는 당신 종이 아니야. 당신이 나를 때리지 못하는 거 알아, 그럴 엄두도 못 내잖아. 당신이 그 경건함과 그 너그러움으로 나를 계속 벌주고 작게 만들려는 것도 알아. 당신은 내가 당신처럼 되기를 바라지, 그렇게 경건하고 그렇게 부드럽고 그렇게 지혜롭게! 그런데 나는, 들어, 나는 당신을 괴롭히려고 차라리 노상강도가 되고 살인자가 되어 지옥에 가겠어, 당신처럼 되느니! 나는 당신이 미워. 당신은 내 아버지가 아니야, 당신이 열 번을 내 어머니의 정부였다 해도!"
노여움과 원통함이 그 안에서 넘쳐, 백 가지 거칠고 악한 말이 되어 아비에게로 거품처럼 쏟아졌다. 그러고 나서 아이는 달아났고 저녁 늦게야 돌아왔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아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두 빛깔 야자 껍질로 엮은 작은 바구니도 사라졌다. 뱃사공들이 뱃삯으로 받은 동전과 은전을 담아 두던 바구니였다. 배도 사라졌다. 싯다르타는 그것이 건너편 기슭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가 달아난 것이었다.
"아이를 따라가야 합니다." 어제 아이의 욕설 뒤로 비참함에 떨고 있던 싯다르타가 말했다. "아이가 혼자 숲을 지날 수는 없습니다. 죽고 말 겁니다. 뗏목을 만들어야겠습니다, 바주데바. 물을 건너야 합니다."
"뗏목을 만듭시다." 바주데바가 말했다. "아이가 가져간 우리 배를 도로 가져오려면요. 그러나 아이는 가게 두시오, 벗이여. 이제 아이가 아니고 제 앞가림을 할 줄 아오. 도시로 가는 길을 찾고 있고, 그것이 옳소, 그것을 잊지 마시오. 아이는 그대가 스스로 하기를 미룬 일을 하고 있소. 제 앞가림을 하고 제 길을 가고 있소. 아아, 싯다르타, 그대가 괴로워하는 것이 보이오. 그러나 그대가 겪는 아픔은 웃어 주고 싶은 아픔이고, 머지않아 그대 스스로 웃게 될 아픔이오."
싯다르타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도끼를 손에 들고 대나무로 뗏목을 만들기 시작했고, 바주데바가 풀 밧줄로 대를 묶는 것을 도왔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건너갔고, 멀리 떠내려갔고, 건너편 기슭에서 뗏목을 물살을 거슬러 끌어 올렸다.
"왜 도끼를 가져오셨습니까?" 싯다르타가 물었다.
바주데바가 말했다. "우리 배의 노가 없어졌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싯다르타는 제 벗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았다. 아이가 앙갚음하려고, 그리고 그들이 뒤쫓지 못하게 하려고 노를 던져 버렸거나 부러뜨렸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배에는 노가 없었다. 바주데바는 배 바닥을 가리키며 웃음을 담아 벗을 바라보았다. 마치 이렇게 말하려는 듯이. "그대 아들이 그대에게 무엇을 말하려는지 보이지 않소? 뒤쫓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 보이지 않소?" 그러나 그는 그것을 말로 하지 않았다. 그는 새 노를 깎기 시작했다. 싯다르타는 달아난 아이를 찾으러 가려고 작별했다. 바주데바는 그를 막지 않았다.
숲에서 한참을 간 뒤에 싯다르타에게 제 찾음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진작 앞서가 이미 도시에 이르렀거나, 아직 길 위에 있다 해도 뒤쫓는 저에게서 숨어 있으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더 생각해 보니 저 자신이 아들을 걱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아이가 죽지도 않았고 숲에서 위험에 놓이지도 않았다는 것을 가장 깊은 데서 알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쉬지 않고 달렸다. 이제는 아이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움에서, 그저 한 번 더 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는 도시 앞까지 달렸다.
도시 가까이 넓은 길에 이르렀을 때 그는 걸음을 멈췄다. 한때 카말라의 것이던 그 아름다운 정원 입구였다. 언젠가 가마에 탄 그를 처음 보았던 곳이었다. 그때의 일이 그의 영혼에서 일어섰다. 그는 다시 저가 거기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젊고, 수염 기른 벗은 사마나였고, 머리에 먼지가 가득했다. 싯다르타는 오래 서서 열린 문으로 정원 안을 들여다보았다. 누런 가사를 입은 수행승들이 아름다운 나무 아래를 걷는 것이 보였다.
그는 오래 서서 생각했고, 그림들을 보았고, 제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그는 오래 서서 수행승들을 바라보다가 그들 대신 젊은 싯다르타를 보았고, 젊은 카말라가 높은 나무 아래를 걷는 것을 보았다. 카말라에게 대접받던 일이, 그 첫 입맞춤을 받던 일이, 자랑스럽고 업신여기는 마음으로 제 브라만 시절을 돌아보던 일이, 자랑스럽고 갈망하며 제 세상살이를 시작하던 일이 또렷이 보였다. 카마스와미가 보였고, 하인들이, 잔치가, 노름꾼들이, 악사들이 보였고, 새장 속 카말라의 노래하는 새가 보였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다시 한번 살았고, 산사라를 들이쉬었고, 다시 한번 늙고 지쳤고, 다시 한번 역겨움을 느꼈고, 다시 한번 저를 지워 버리고 싶은 바람을 느꼈고, 다시 한번 거룩한 옴으로 나았다.
정원 문가에 오래 서 있고 나서 싯다르타는 알아보았다. 저를 이 자리까지 몰아온 그 갈망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제가 아들을 도울 수 없다는 것을, 아들에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는 달아난 아이를 향한 사랑을 상처처럼 가슴 깊이 느꼈고, 동시에 그 상처가 그 안을 후비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꽃이 되어 빛나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 상처가 이 시각에 아직 꽃피지 않았고 아직 빛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를 서글프게 했다. 저를 여기까지, 달아난 아들을 뒤따르게 한 그 바람의 목표 자리에 이제 텅 빔이 서 있었다. 그는 서글프게 주저앉았고, 제 가슴에서 무언가가 죽는 것을 느꼈고, 텅 빔을 느꼈고, 더는 기쁨도 목표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잠긴 채 앉아 기다렸다. 이것을 그는 강에게서 배웠다. 이 한 가지를. 기다리는 것, 참는 것, 귀 기울이는 것을. 그리고 그는 길바닥 먼지 속에 앉아 귀 기울였다. 제 가슴이 지치고 서글프게 뛰는 것에 귀 기울이며 목소리 하나를 기다렸다. 여러 시간 그는 웅크린 채 귀 기울였고, 더는 그림이 보이지 않았고, 텅 빔으로 가라앉았고, 길이 보이지 않는 채로 저를 가라앉게 두었다. 그리고 상처가 타는 것이 느껴지면 소리 없이 옴을 읊었고, 옴으로 저를 채웠다. 정원의 수행승들이 그를 보았고, 그가 여러 시간을 웅크리고 있어 센 머리에 먼지가 쌓이자 하나가 다가와 그 앞에 바나나 두 개를 놓아 주었다. 노인은 그를 보지 못했다.
이 굳어 있음에서 그를 깨운 것은 그 어깨를 건드린 손이었다. 그는 곧바로 그 닿음을, 그 여리고 부끄럼 많은 닿음을 알아보고 정신을 차렸다. 그는 일어나 저를 뒤따라온 바주데바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바주데바의 다정한 얼굴을, 온통 웃음으로 채워진 듯한 잔주름을, 환한 눈을 들여다보자 그도 웃었다. 이제 그는 제 앞에 놓인 바나나를 보고 집어 들어 하나를 뱃사공에게 주고 하나는 제가 먹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바주데바와 함께 말없이 숲으로 돌아갔고, 나루로 돌아왔다. 오늘 있었던 일을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았고, 아무도 아이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아무도 그 달아남을 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 상처를 말하지 않았다. 오두막에서 싯다르타는 제 잠자리에 누웠고, 얼마 뒤 바주데바가 야자즙 한 사발을 권하러 갔을 때 그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옴
그 상처는 오래도록 탔다. 싯다르타는 아들이나 딸을 데린 나그네를 여럿 강 건너로 실어다 주어야 했고, 그들 가운데 누구를 보아도 부러워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저토록 많은 이가, 저토록 수천이 이 더없이 고운 행복을 지녔는데 — 왜 나는 아닌가? 악한 사람도, 도둑도, 강도도 자식이 있고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에게 사랑받는데 나만 아니구나.' 그는 이제 그토록 단순하게, 그토록 헤아림 없이 생각했다. 그만큼 그는 어린애 같은 사람들과 닮아 있었다.
이제 그는 예전과 다르게 사람들을 보았다. 덜 영리하게, 덜 자랑스럽게, 그 대신 더 따뜻하게, 더 궁금해하며, 더 함께하며. 여느 나그네를, 어린애 같은 사람들을, 장사치를, 군인을, 아낙네들을 건네줄 때 이 사람들이 예전처럼 낯설어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들을 알아들었고, 생각과 깨달음이 아니라 오직 충동과 바람에 이끌리는 그들의 삶을 알아듣고 함께 나누었고, 저도 그들과 같다고 느꼈다. 이룸에 가까웠고 제 마지막 상처를 지고 있으면서도, 그에게는 이 어린애 같은 사람들이 제 형제로 여겨졌다. 그들의 허영과 탐냄과 우스꽝스러움이 그에게 우스꽝스럽기를 그쳤고, 알아들을 만한 것이 되었고, 사랑할 만한 것이 되었고, 나아가 우러를 만한 것이 되었다. 제 아이를 향한 어머니의 눈먼 사랑, 하나뿐인 아들을 두고 우쭐대는 아비의 어리석고 눈먼 자랑, 젊고 허영에 찬 여자가 패물과 남자들의 감탄하는 눈길을 좇는 눈멀고 사나운 애씀, 이 모든 충동, 이 모든 어린애 짓, 이 모든 단순하고 어리석지만 엄청나게 세고 세게 살아 있고 세게 저를 밀고 나가는 충동과 탐냄이 이제 싯다르타에게는 더 이상 어린애 짓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사는 것을 보았고, 그것 때문에 끝없는 일을 해내고 여행을 하고 전쟁을 벌이고 끝없이 괴로워하고 끝없이 견디는 것을 보았고, 그 때문에 그들을 사랑할 수 있었다. 그는 그들의 열정 하나하나, 행함 하나하나에서 삶을, 살아 있는 것을, 부술 수 없는 것을, 브라만을 보았다. 이 사람들은 그 눈먼 충실함에서, 그 눈먼 힘과 끈덕짐에서 사랑스럽고 감탄스러웠다. 그들에게 모자란 것은 없었다. 아는 자와 생각하는 자가 그들보다 앞선 것이라고는 오직 자잘한 것 하나, 아주 조그마한 것 하나뿐이었다. 곧 의식, 모든 삶이 하나라는 의식된 생각이었다. 그리고 싯다르타는 이따금 이 앎을, 이 생각을 그토록 높이 쳐야 하는지, 그것 또한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하는 어린애 같은 사람들의 어린애 짓은 아닌지 의심하기까지 했다. 다른 모든 것에서 세상 사람들은 현자와 어깨를 나란히 했고, 자주 그보다 훨씬 앞섰다. 짐승도 꼭 해야 할 일을 끈덕지고 흔들림 없이 해내는 데서 어떤 순간에는 사람보다 앞서 보일 수 있듯이.
싯다르타 안에서 깨달음이 천천히 피어나고 천천히 익어 갔다. 지혜란 실은 무엇인가, 제 긴 찾음의 목표가 무엇인가에 대한 앎이었다. 그것은 영혼의 채비, 하나의 능력, 은밀한 기술에 지나지 않았다. 삶 한복판에서 순간마다 하나임의 생각을 생각하고, 하나임을 느끼고 들이쉴 수 있는 능력이었다. 이것이 그 안에서 천천히 피어났고, 바주데바의 늙은 아이 얼굴에서 그에게로 마주 빛났다. 어울림, 세계가 영원히 온전하다는 앎, 웃음, 하나임이.
그러나 그 상처는 아직 탔다. 싯다르타는 애타고 쓰라리게 제 아들을 생각했고, 가슴에 제 사랑과 다정함을 품었고, 아픔이 저를 파먹게 두었고, 사랑의 온갖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 이 불꽃은 저절로 꺼지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상처가 세차게 타오르자 싯다르타는 그리움에 쫓겨 강을 건넜고, 배에서 내려 도시로 가서 제 아들을 찾을 생각이었다. 강은 부드럽고 나직이 흘렀다. 마른 철이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야릇하게 울렸다. 강이 웃고 있었다! 뚜렷이 웃고 있었다. 강이 웃었다. 늙은 뱃사공을 환하고 맑게 비웃었다. 싯다르타는 걸음을 멈추고 더 잘 들으려고 물 위로 몸을 숙였다. 그러자 고요히 흐르는 물에 제 얼굴이 비쳐 보였고, 그 비친 얼굴에 무언가 저를 일깨우는 것이, 잊고 있던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것을 찾아냈다. 이 얼굴은 언젠가 알고 사랑하고 또 두려워했던 다른 얼굴을 닮아 있었다. 브라만인 제 아버지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떠올렸다. 오래전 젊은이였을 때 아버지에게 고행자들에게 가게 해 달라고 우겼던 일을, 아버지에게 작별했던 일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던 일을. 그의 아버지도 그를 두고, 지금 제가 아들을 두고 겪는 그 괴로움을 겪지 않았던가? 그의 아버지는 제 아들을 다시 보지 못한 채 혼자 죽은 지 오래지 않은가? 저 자신도 이 똑같은 운명을 맞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되풀이가, 운명 지어진 원 안을 도는 이 달림이 희극이 아닌가, 야릇하고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강이 웃었다. 그렇다, 그러했다. 끝까지 겪어 풀리지 않은 것은 모두 다시 왔고, 같은 괴로움이 자꾸자꾸 겪어졌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다시 배에 올라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제 아버지를 생각하고 제 아들을 생각하며, 강에게 비웃음당한 채, 저 자신과 다투며, 절망으로 기울면서도 그에 못지않게 저와 온 세상을 두고 소리 내어 함께 웃고 싶은 쪽으로도 기울면서. 아아, 상처는 아직 꽃피지 않았고, 그의 가슴은 아직 운명에 맞서 버티고 있었고, 그의 괴로움에서 아직 환함과 이김이 빛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희망을 느꼈고, 오두막에 돌아오자 바주데바에게 저를 열어 보이고 싶은, 그에게 모든 것을 보여 주고 싶은, 듣기의 대가인 그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싶은 이길 수 없는 갈망을 느꼈다.
바주데바는 오두막에 앉아 바구니를 엮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나룻배를 몰지 않았다. 눈이 약해지기 시작했고, 눈만이 아니라 팔과 손도 그러했다. 달라지지 않고 피어 있는 것은 그 얼굴의 기쁨과 환한 너그러움뿐이었다.
싯다르타는 그 노인 곁에 앉아 천천히 말을 꺼냈다. 여태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을 이제 이야기했다. 그때 도시로 갔던 일을, 타는 상처를, 행복한 아비들을 볼 때의 시샘을, 그런 바람이 어리석다는 제 앎을, 그것에 맞선 제 헛된 싸움을. 그는 모든 것을 알렸고,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었다. 가장 거북한 것까지도. 모든 것이 말해졌고, 모든 것이 보여졌고, 모든 것을 그는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는 제 상처를 드러내 보였고, 오늘의 달아남도 이야기했다. 어린애 같은 도망자가 되어 물을 건넜던 일, 도시로 가려 했던 일, 강이 웃었던 일을.
그가 말하는 동안, 오래 말하는 동안, 바주데바가 고요한 얼굴로 귀 기울이는 동안, 싯다르타는 바주데바의 그 들음을 여태 느껴 본 어느 때보다 세게 느꼈다. 제 아픔이, 제 겁먹음이 저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제 은밀한 희망이 흘러갔다가 저쪽에서 다시 저에게로 마주 오는 것을 느꼈다. 이 듣는 이에게 제 상처를 보이는 것은 그것을 강에 담가 서늘해지고 강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것과 같았다. 그가 여전히 말하는 동안, 여전히 털어놓고 고백하는 동안, 싯다르타는 점점 더 느꼈다. 저에게 귀 기울이는 이가 더 이상 바주데바가 아니라는 것,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 꼼짝 않고 귀 기울이는 이 사람이 나무가 비를 빨아들이듯 제 고백을 제 안에 빨아들인다는 것, 이 꼼짝 않는 이가 강 자체이고 신 자체이고 영원 자체라는 것을. 그리고 싯다르타가 저와 제 상처를 생각하기를 그치는 동안, 바주데바의 달라진 본성에 대한 이 깨달음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것을 느끼고 그 안으로 파고들수록 그것은 덜 기이해졌고, 모든 것이 온당하고 자연스럽다는 것을, 바주데바가 진작부터, 거의 늘 그러했다는 것을, 다만 저 자신이 그것을 온전히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을, 아니 저 자신도 그와 거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점점 더 알아보았다. 그는 제가 이제 늙은 바주데바를 백성이 신들을 보듯 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이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마음속으로 바주데바에게 작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계속 말했다.
그가 말을 마치자 바주데바는 다정하고 얼마쯤 약해진 눈길을 그에게 두었다. 말하지 않고, 말없이 사랑과 환함을, 알아들음과 앎을 그에게 마주 뿜었다. 그는 싯다르타의 손을 잡아 기슭의 자리로 데려가 함께 앉았고, 강을 향해 웃었다.
"강이 웃는 것을 들었군." 그가 말했다. "그러나 다 듣지는 못했소. 함께 귀 기울입시다. 더 듣게 될 거요."
그들은 귀 기울였다. 강의 여러 목소리로 된 노래가 부드럽게 울렸다. 싯다르타가 물을 들여다보자 흐르는 물에서 그림들이 나타났다. 아버지가 나타났다. 혼자서, 아들을 두고 슬퍼하며. 그 자신이 나타났다. 혼자서, 그도 그리움의 끈으로 먼 아들에게 묶인 채. 그의 아들이 나타났다. 그도 혼자서, 그 아이는 탐하며 제 젊은 바람의 타는 궤도 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저마다 제 목표를 향하고, 저마다 목표에 사로잡히고, 저마다 괴로워하며. 강은 괴로움의 목소리로 노래했다. 애타게 노래했고, 애타게 제 목표를 향해 흘렀고, 그 목소리는 하소연처럼 울렸다.
"들리오?" 바주데바의 말 없는 눈길이 물었다. 싯다르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잘 들어 보시오!" 바주데바가 속삭였다.
싯다르타는 더 잘 들으려고 애썼다. 아버지의 그림, 제 자신의 그림, 아들의 그림이 서로 흘러들었다. 카말라의 그림도 나타났다가 흘러 풀렸고, 고빈다의 그림도, 다른 그림들도 나타나 서로 흘러들었고, 모두가 강이 되었고, 모두가 강이 되어 목표를 향해 애타게, 탐하며, 괴로워하며 나아갔다. 강의 목소리는 그리움으로 가득했고, 타는 아픔으로 가득했고, 달랠 수 없는 갈망으로 가득했다. 강은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싯다르타는 그것이 서두르는 것을 보았다. 저와 제 사람들과 저가 여태 본 모든 사람으로 이루어진 그 강을. 온갖 물결과 물이 괴로워하며 목표를 향해 서둘렀다. 여러 목표를 향해. 폭포로, 호수로, 여울로, 바다로. 그리고 모든 목표에 이르렀고, 목표마다 새 목표가 뒤따랐다. 그리고 물에서 김이 되어 하늘로 올랐고, 비가 되어 하늘에서 쏟아졌고, 샘이 되었고, 시내가 되었고, 강이 되었고, 새로 나아갔고, 새로 흘렀다. 그러나 그 애타는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아직 괴로워하며 찾으며 울리기는 했지만, 다른 목소리들이 거기 어울렸다. 기쁨의 목소리와 괴로움의 목소리, 좋은 목소리와 악한 목소리, 웃는 목소리와 슬퍼하는 목소리, 백 가지 목소리, 천 가지 목소리가.
싯다르타는 귀 기울였다. 그는 이제 온전히 귀 기울이는 자였고, 온전히 들음에 잠겼고, 온전히 비었고, 온전히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제가 이제 귀 기울이는 법을 끝까지 배웠다고 느꼈다. 그는 진작 이 모든 것을, 강의 이 많은 목소리를 자주 들었지만 오늘은 새롭게 울렸다. 이제 그는 그 많은 목소리를 가려낼 수 없었다. 기쁜 목소리와 우는 목소리를, 어린 목소리와 어른의 목소리를 가려낼 수 없었다. 그것들은 모두 하나로 어울렸다. 그리움의 하소연과 아는 이의 웃음, 노여움의 외침과 죽어 가는 이의 신음이 모두 하나였고, 모두가 서로 얽히고 묶여 천 겹으로 감겨 있었다. 그리고 그 모두가, 온갖 목소리가, 온갖 목표가, 온갖 그리움이, 온갖 괴로움이, 온갖 즐거움이, 온갖 좋은 것과 악한 것이 다 함께 세계였다. 그 모두가 함께 일어남의 강이었고 삶의 음악이었다. 그리고 싯다르타가 이 강에, 이 천 가지 목소리의 노래에 주의 깊게 귀 기울일 때, 괴로움에도 웃음에도 귀를 두지 않을 때, 제 영혼을 어느 한 목소리에 묶어 제 나를 데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모두를 들을 때, 전체를 들을 때, 하나임을 알아들을 때, 그때 천 가지 목소리의 그 큰 노래는 오직 한 낱말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은 옴, 곧 이룸이었다.
"들리오?" 바주데바의 눈길이 다시 물었다.
바주데바의 웃음이 환하게 빛났다. 그 늙은 얼굴의 온갖 주름 위로 그것이 빛나며 떠 있었다. 강의 온갖 목소리 위로 옴이 떠 있듯이. 벗을 바라보는 그 웃음이 환하게 빛났고, 이제 싯다르타의 얼굴에도 그 같은 웃음이 환하게 빛나 올랐다. 그의 상처가 꽃피었고, 그의 괴로움이 빛났고, 그의 나가 하나임 속으로 흘러들었다.
이 시각에 싯다르타는 운명과 싸우기를 그쳤고 괴로워하기를 그쳤다. 그의 얼굴에 앎의 환함이 피었다. 더는 어떤 뜻도 그것에 맞서지 않고, 이룸을 알고, 일어남의 강에, 삶의 흐름에 동의하며, 함께 아파함으로 가득하고 함께 즐거워함으로 가득한 채 그 흐름에 저를 내맡기고 하나임에 속하는 앎의 환함이.
바주데바가 기슭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싯다르타의 눈을 들여다보고 거기 앎의 환함이 빛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조심스럽고 여린 제 방식대로 손으로 그 어깨를 가만히 건드리며 말했다. "나는 이 시각을 기다렸소, 벗이여. 이제 그것이 왔으니 나를 가게 해 주시오. 오래 이 시각을 기다렸고, 오래 뱃사공 바주데바로 살았소. 이제 되었소. 잘 있어라, 오두막아. 잘 있어라, 강아. 잘 있으시오, 싯다르타!"
싯다르타는 작별하는 이에게 깊이 절했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나직이 말했다. "숲으로 가시렵니까?"
"나는 숲으로 가오. 나는 하나임으로 가오." 바주데바가 빛나며 말했다.
빛나며 그는 걸어갔다. 싯다르타는 그를 바라보았다. 깊은 기쁨으로, 깊은 진지함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평화로 가득한 그 걸음을 보았고, 광채로 가득한 그 머리를 보았고, 빛으로 가득한 그 모습을 보았다.
고빈다
언젠가 고빈다는 다른 수행승들과 함께 쉬는 철에, 기녀 카말라가 고타마의 제자들에게 바친 그 유원에 머물렀다. 그는 그 숲에서 하룻길 떨어진 강가에 늙은 뱃사공 하나가 사는데 많은 이가 그를 현자로 여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길을 계속 갈 때 고빈다는 그 뱃사공을 보고 싶어 나루로 가는 길을 골랐다. 평생 계율대로 살았고 나이와 겸손함 때문에 젊은 수행승들에게 경외를 받기는 했지만, 그의 가슴에서 불안과 찾음은 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강에 이르러 그 늙은이에게 건네주기를 청했고, 건너편에서 배를 내리며 늙은이에게 말했다. "당신은 우리 수행승과 순례자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군요. 우리 가운데 많은 이를 이미 건네주셨습니다. 뱃사공이여, 당신도 옳은 오솔길을 찾는 사람 아닙니까?"
싯다르타가 늙은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존귀한 이여, 스스로를 찾는 사람이라 하십니까? 이미 나이가 많이 드셨고 고타마 수행승의 옷을 걸치셨는데도요?"
"늙기는 했지요." 고빈다가 말했다. "그러나 찾기를 그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결코 찾기를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내 정해진 몫인 듯합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도 찾아온 사람 같군요. 나에게 한마디 해 주시겠습니까, 우러르는 이여?"
싯다르타가 말했다. "존귀한 이여, 내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어쩌면 당신이 너무 많이 찾는다는 말쯤일까요? 찾느라 찾아냄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쯤일까요?"
"어떻게 그렇습니까?" 고빈다가 물었다.
"누가 찾을 때는," 싯다르타가 말했다. "그 눈이 오직 저가 찾는 그것만 보게 되기 쉽습니다.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고 아무것도 제 안에 들이지 못하게 되기 쉽습니다. 늘 찾는 것만 생각하기 때문이고, 목표가 있기 때문이고, 목표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찾는다는 것은 목표를 지닌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찾아낸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뜻이고, 열려 있다는 뜻이고, 목표가 없다는 뜻입니다. 존귀한 이여, 당신은 어쩌면 정말로 찾는 사람이겠지요. 제 목표를 좇느라 눈앞에 바짝 서 있는 여러 가지를 보지 못하니까요."
"아직 온전히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 고빈다가 청했다. "무슨 뜻입니까?"
싯다르타가 말했다. "존귀한 이여, 언젠가, 여러 해 전에 당신은 이미 이 강가에 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강가에서 잠든 사람을 하나 발견하고, 그 잠을 지켜 주려고 곁에 앉았지요. 그런데 고빈다여, 당신은 그 잠든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수행승은 홀린 사람처럼 놀라며 뱃사공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싯다르타인가?" 그가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번에도 자네를 알아보지 못했구나! 진심으로 반갑네, 싯다르타. 자네를 다시 보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네! 많이 달라졌군, 벗이여. — 그래서 이제 뱃사공이 된 건가?"
싯다르타가 다정하게 웃었다. "뱃사공이지, 그래. 고빈다, 어떤 사람들은 많이 달라져야 하고 온갖 옷을 걸쳐야 하네. 나도 그중 하나야, 벗이여. 잘 왔네, 고빈다. 오늘 밤은 내 오두막에 묵게."
고빈다는 그 밤을 오두막에서 묵으며 한때 바주데바의 잠자리였던 자리에서 잤다. 그는 젊은 시절의 벗에게 많은 것을 물었고, 싯다르타는 제 삶에서 많은 것을 그에게 이야기해야 했다.
이튿날 아침 하루 길을 나설 때가 되자 고빈다가 머뭇거리며 이 말을 했다. "내 길을 이어 가기 전에, 싯다르타, 한 가지만 더 묻게 해 주게. 자네에게 가르침이 있는가? 자네가 따르는 믿음이나 앎이, 자네가 살고 바르게 행하도록 돕는 것이 있는가?"
싯다르타가 말했다. "알잖은가, 벗이여. 나는 젊은이였을 때, 우리가 숲에서 고행자들과 살던 그 시절에 이미 가르침과 스승을 미덥지 않게 여기고 등을 돌리게 되었네. 나는 거기 머물렀지. 그런데도 그 뒤로 스승을 많이 두었네. 아름다운 기녀 하나가 오래도록 내 스승이었고, 부유한 상인이 내 스승이었고, 노름꾼 몇이 그러했네. 언젠가는 떠도는 붓다의 제자 하나도 내 스승이었지. 순례길에 숲에서 잠든 나를 곁에 앉아 지켜 준 사람 말일세. 그에게서도 나는 배웠고 그에게도 고맙네, 몹시 고맙네. 그러나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여기 이 강에게서, 그리고 내 앞의 뱃사공 바주데바에게서네. 아주 단순한 사람이었어, 바주데바는.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꼭 필요한 것을 고타마만큼 잘 알았네. 그는 온전한 이였고 성자였네."
고빈다가 말했다. "싯다르타, 자네는 여전히 비웃기를 조금 좋아하는군. 자네가 어떤 스승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믿고 아네. 그러나 가르침은 아니더라도, 자네 것이면서 자네가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떤 생각이나 깨달음을 자네 스스로 찾아내지 않았는가? 그중 얼마를 나에게 말해 준다면 내 마음이 기쁘겠네."
싯다르타가 말했다. "생각을 해 왔지, 그래. 그리고 깨달음도 이따금 있었네. 어떤 때는 한 시간쯤, 어떤 때는 하루쯤 내 안에서 앎을 느꼈네. 가슴에서 생명을 느끼듯이. 여러 생각이 있었네만 그것을 자네에게 전하기는 어렵겠네. 보게, 나의 고빈다, 내가 찾아낸 생각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네. 지혜는 전할 수 없다는 것. 현자가 전하려고 애쓰는 지혜는 언제나 어리석은 소리로 들린다는 것."
"농담인가?" 고빈다가 물었다.
"농담이 아니네. 내가 찾아낸 것을 말하는 거야. 앎은 전할 수 있지만 지혜는 전할 수 없네. 지혜는 찾아낼 수 있고, 살아 낼 수 있고, 그것에 실려 갈 수 있고, 그것으로 기적을 행할 수 있지만,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이것이 젊은이였을 때 내가 이따금 어렴풋이 느낀 것이고, 나를 스승들에게서 몰아낸 것이야. 고빈다, 나는 생각을 하나 찾아냈는데 자네는 또 농담이나 어리석은 소리로 여기겠지만 그것이 내 가장 좋은 생각이네. 이런 것이야. 어떤 진리든 그 반대도 똑같이 참이다! 그러니까 이렇다네. 진리란 한쪽으로 치우쳤을 때에만 말로 옮겨져 낱말에 싸일 수 있어. 생각으로 생각되고 말로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모두 한쪽으로 치우쳤고, 모두 반쪽이고, 모두 온전함이, 둥긂이, 하나임이 없네. 존귀하신 고타마가 가르치며 세계를 이야기할 때 그는 세계를 산사라와 열반으로, 속임과 진리로, 괴로움과 벗어남으로 나눌 수밖에 없었네. 달리 할 수가 없어. 가르치려는 사람에게 다른 길은 없네. 그러나 세계 자체는, 우리 둘레와 우리 안에 있는 것은 결코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아. 어떤 사람도 어떤 행함도 온전히 산사라이거나 온전히 열반인 적이 없고, 어떤 사람도 온전히 거룩하거나 온전히 죄스러운 적이 없네. 그렇게 보이는 것은 우리가 시간이 실제라는 속임에 매여 있기 때문이야. 시간은 실제가 아니네, 고빈다. 나는 이것을 자꾸자꾸 겪었네. 그리고 시간이 실제가 아니라면, 세상과 영원 사이에, 괴로움과 복됨 사이에, 악과 선 사이에 놓인 듯 보이는 그 사이도 속임이네."
"어떻게 그런가?" 고빈다가 겁먹은 듯 물었다.
"잘 듣게, 벗이여, 잘 듣게! 나이자 자네인 그 죄인은 죄인이지만 언젠가 다시 브라흐마가 될 것이고, 언젠가 열반에 이를 것이고, 붓다가 될 것이네 — 그런데 보게. 이 '언젠가'가 속임이고 비유일 뿐이야! 죄인은 붓다가 되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자라남 속에 있는 것이 아니네. 우리 생각이 달리 그려 볼 줄 모를 뿐이지. 아니야, 그 죄인 안에는 지금 오늘 이미 앞으로 될 붓다가 있고, 그 앞날이 이미 다 거기 있네. 자네는 그 안에서, 자네 안에서, 누구 안에서든 되어 가는 붓다를, 있을 수 있는 붓다를, 숨은 붓다를 우러러야 하네. 벗 고빈다여, 세계는 온전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온전함으로 가는 느린 길 위에 있는 것도 아니야. 아니야, 세계는 순간마다 온전하네. 온갖 죄가 이미 제 안에 은총을 지녔고, 온갖 어린아이가 이미 제 안에 노인을 지녔고, 온갖 젖먹이가 죽음을, 온갖 죽어 가는 이가 영원한 삶을 지녔네. 어떤 사람도 남이 제 길에서 얼마나 왔는지 볼 수 없어. 강도와 노름꾼 안에서 붓다가 기다리고, 브라만 안에서 강도가 기다리네. 깊은 명상에는 시간을 걷어 내고, 있었던 삶과 있는 삶과 있을 삶을 동시에 보는 길이 있네. 그러면 모든 것이 좋고, 모든 것이 온전하고, 모든 것이 브라만이야. 그래서 나에게는 있는 것이 좋아 보이네. 죽음도 삶처럼, 죄도 거룩함처럼, 슬기로움도 어리석음처럼. 모든 것이 그러해야 하고, 모든 것은 오직 내 동의를, 내 기꺼움을, 내 사랑하는 받아들임을 바랄 뿐이야. 그러면 나에게 좋고, 나를 밀어 줄 뿐이고, 결코 나를 해칠 수 없네. 나는 내 몸과 내 영혼으로 겪었네. 나에게 죄가 몹시 필요했다는 것을. 나에게 육욕이, 재물을 좇는 애씀이, 허영이 필요했고, 더없이 부끄러운 절망이 필요했다는 것을. 거스르기를 그만두는 법을 배우기 위해, 세계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세계를 내가 바라는 어떤 세계와, 내가 상상한 어떤 세계와, 내가 지어낸 어떤 온전함과 더 이상 견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고 사랑하고 기꺼이 거기 속하기 위해서 말이네. — 고빈다여, 이것이 내 마음에 떠오른 생각 가운데 몇 가지네."
싯다르타는 몸을 굽혀 땅에서 돌 하나를 집어 손에 얹고 무게를 가늠했다.
"여기 이것은," 그가 놀이하듯 말했다. "돌이네. 그리고 어느 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흙이 되겠지. 그리고 흙에서 풀이 되거나 짐승이나 사람이 될 걸세. 예전 같으면 나는 이렇게 말했겠지. 이 돌은 그저 돌일 뿐이고 값이 없으며 마야의 세계에 속한다. 그러나 뒤바뀜의 돌고 돎 속에서 어쩌면 사람도 되고 정신도 될 수 있으니 그래서 이 돌에도 값을 준다고. 예전에는 어쩌면 그렇게 생각했을 걸세. 그러나 오늘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이 돌은 돌이고, 짐승이기도 하고, 신이기도 하고, 붓다이기도 하다고. 내가 이 돌을 우러르고 사랑하는 것은 언젠가 이것저것이 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늘 모든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바로 이것이, 곧 이것이 돌이라는 것이, 지금 오늘 나에게 돌로 나타난다는 것이 바로 그 때문에 내가 이것을 사랑하는 까닭이고, 나는 그 결 하나하나와 구멍 하나하나에서, 그 노랑에서, 그 잿빛에서, 그 단단함에서, 두드릴 때 내는 소리에서, 그 겉면의 마름과 젖음에서 값과 뜻을 보네. 기름이나 비누처럼 만져지는 돌이 있고, 잎사귀처럼, 모래처럼 만져지는 돌이 있지. 저마다 남다르고 저마다 제 방식으로 옴을 외네. 저마다 브라만이고, 그러면서 동시에 그만큼 돌이고, 기름지거나 물기 있네. 바로 그것이 내 마음에 들고, 나에게 놀랍고 우러를 만해 보이네. — 그러나 그 이야기는 더 하지 않겠네. 말은 그 은밀한 뜻에 좋지 않아. 입에 올리면 늘 모든 것이 곧 조금 달라지고, 조금 어긋나고, 조금 어리석어지네 — 그래, 그것도 아주 좋고 내 마음에 아주 들어. 어떤 사람의 보물이자 지혜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늘 어리석은 소리로 들린다는 것, 그것에도 나는 아주 동의하네."
고빈다는 말없이 귀 기울였다.
"왜 나에게 그 돌 이야기를 했는가?" 그가 잠시 뒤 머뭇거리며 물었다.
"뜻이 있어서 한 것은 아니네. 아니면 이런 뜻이었는지도 모르지. 내가 바로 그 돌과 강과, 우리가 바라보고 배울 수 있는 이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뜻. 나는 돌을 사랑할 수 있네, 고빈다. 나무나 나무껍질 한 조각도. 그것들은 사물이고, 사물은 사랑할 수 있네. 그러나 말은 사랑할 수 없어. 그래서 가르침은 나에게 맞지 않네. 가르침에는 단단함도 무름도 없고, 빛깔도 모서리도 없고, 냄새도 맛도 없고, 말밖에 없어. 어쩌면 이것이 자네가 평화를 찾지 못하게 막는 것인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 많은 말이. 벗어남도 덕도, 산사라도 열반도 다 그저 말일세, 고빈다. 열반인 사물은 없네. 열반이라는 말이 있을 뿐이야."
고빈다가 말했다. "열반은 그저 말이 아니네, 벗이여. 그것은 하나의 생각이야."
싯다르타가 이어 말했다. "생각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 자네에게 털어놓아야겠네, 벗이여. 나는 생각과 말을 그리 갈라 보지 않아. 솔직히 말하면 생각도 대단하게 여기지 않네. 나는 사물을 더 대단하게 여겨. 이를테면 이 나룻배에 내 앞사람이자 스승이 있었네. 거룩한 사람이었는데 여러 해 동안 그저 강을 믿었고 그 밖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네. 그는 강의 목소리가 저에게 말한다는 것을 알아챘고, 그것에게서 배웠고, 그것이 그를 기르고 가르쳤고, 그에게 강은 신 같았네. 여러 해 동안 그는 바람 하나하나, 구름 하나하나, 새 하나하나, 벌레 하나하나가 꼭 그만큼 신적이고 그 우러르는 강만큼 많이 알고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네. 그런데 이 거룩한 사람이 숲으로 갈 때 그는 모든 것을 알았고, 자네와 나보다 많이 알았네. 스승도 책도 없이, 그저 강을 믿었기 때문에."
고빈다가 말했다. "그런데 자네가 '사물'이라 부르는 것이 정말 실제인가, 본성이 있는 것인가? 그것은 마야의 속임일 뿐, 그림이자 허깨비일 뿐 아닌가? 자네의 돌, 자네의 나무, 자네의 강 — 그것들이 실제인가?"
"그것도," 싯다르타가 말했다. "나는 그리 마음 쓰지 않네. 사물이 허깨비이든 아니든, 그렇다면 나도 허깨비이고 그러면 그것들은 늘 나와 같은 것이니까. 바로 그것이 그것들을 나에게 그토록 정답고 우러를 만하게 만드는 것이네. 그것들이 나와 같다는 것.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사랑할 수 있네. 그리고 이것이 이제 자네가 웃을 가르침일세. 고빈다여, 나에게는 사랑이 무엇보다 으뜸으로 보이네. 세계를 꿰뚫어 보고, 설명하고, 업신여기는 것은 큰 생각가들의 일이겠지. 그러나 나에게 걸린 것은 오직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것, 세계를 업신여기지 않는 것, 세계와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세계와 나와 온갖 살아 있는 것을 사랑과 감탄과 경외로 바라볼 수 있는 것뿐이네."
"그건 알겠네." 고빈다가 말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을 존귀하신 분께서 속임으로 알아보셨네. 그분은 너그러움과 아낌과 가엾이 여김과 참음을 명하셨지 사랑을 명하지 않으셨어. 우리 가슴을 사랑으로 땅의 것에 매지 말라 하셨네."
"나도 아네." 싯다르타가 말했다. 그 웃음이 금빛으로 빛났다. "나도 아네, 고빈다. 그런데 보게, 우리가 의견의 덤불 한복판에, 말을 두고 벌이는 다툼 한복판에 들어와 있군. 사랑에 대한 내 말이 고타마의 말과 어긋난다는 것을, 어긋나 보인다는 것을 나는 부인할 수 없네. 바로 그래서 나는 말을 그토록 미덥지 않게 여겨. 이 어긋남이 속임이라는 것을 내가 아니까. 나는 내가 고타마와 하나임을 아네. 어찌 그분이 사랑을 모르시겠는가? 사람됨이 온통 덧없고 헛되다는 것을 알아보시고도 사람을 그토록 사랑하시어, 길고 고된 한평생을 오직 사람을 돕고 가르치는 데 쓰신 분인데! 그분에게서도, 자네의 그 위대한 스승에게서도 나에게는 말보다 사물이 정답고, 말씀보다 그 행함과 삶이 중요하고, 의견보다 그 손짓이 중요하네. 나는 그분의 큼을 말함에서도 생각함에서도 보지 않네. 오직 행함에서, 삶에서 보네."
두 늙은이는 오래 잠자코 있었다. 그러고 나서 고빈다가 작별의 절을 하며 말했다. "고맙네, 싯다르타. 자네 생각을 얼마쯤 말해 주어서. 더러는 야릇한 생각이고 다 곧바로 알아들어지지는 않았네. 그것이야 어떠하든 나는 자네에게 고맙고, 자네에게 고요한 나날이 있기를 바라네."
(그러나 속으로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싯다르타는 기이한 사람이구나. 기이한 생각을 말하고, 그 가르침은 어리석게 들린다. 존귀하신 분의 맑은 가르침은 다르게 들린다. 더 또렷하고 더 맑고 더 알아듣기 쉽고, 야릇하거나 어리석거나 우스운 것이 하나도 담겨 있지 않다. 그런데 싯다르타의 손과 발은, 그 눈은, 그 이마는, 그 숨결은, 그 웃음은, 그 인사는, 그 걸음은 그 생각과 다르게 보인다. 우리 존귀하신 고타마께서 열반에 드신 뒤로 나는 이 사람은 성자다 하고 느낀 사람을 다시 만난 적이 없다. 오직 그 한 사람, 이 싯다르타만을 그렇게 보았다. 그 가르침이 야릇하다 해도, 그 말이 어리석게 들린다 해도, 그 눈길과 그 손이, 그 살갗과 그 머리카락이, 그의 모든 것이 맑음을 뿜고, 고요를 뿜고, 환함과 부드러움과 거룩함을 뿜는다. 우리 존귀하신 스승의 마지막 죽음 뒤로 다른 어떤 사람에게서도 보지 못한 것이다.)
고빈다가 그렇게 생각하며 가슴에 다툼이 이는 동안, 그는 사랑에 이끌려 다시 한번 싯다르타에게 몸을 기울였다. 그는 고요히 앉은 이에게 깊이 절했다.
"싯다르타." 그가 말했다. "우리는 늙은이가 되었네. 우리 가운데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이 모습으로 다시 보기는 어려울 걸세. 사랑하는 이여, 자네가 평화를 찾은 것이 보이네. 나는 찾지 못했음을 고백하네. 우러르는 이여, 한마디만 더 해 주게. 내가 붙잡을 수 있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무언가를 주게! 내 길에 지니고 갈 무언가를 주게. 내 길은 자주 고되고, 자주 어둡네, 싯다르타."
싯다르타는 잠자코 늘 한결같은 고요한 웃음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고빈다는 굳은 눈으로 그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두려움을 담고, 그리움을 담고. 그 눈길에는 괴로움과 영원한 찾음이, 영원히 찾아내지 못함이 쓰여 있었다.
싯다르타는 그것을 보고 웃었다.
"나에게 몸을 기울이게!" 그가 고빈다의 귀에 나직이 속삭였다. "나에게로 몸을 기울이게! 그래, 더 가까이! 아주 가까이! 내 이마에 입 맞추게, 고빈다!"
그런데 고빈다가 놀라면서도 큰 사랑과 예감에 이끌려 그 말에 따라 그에게 가까이 몸을 기울이고 입술로 그 이마에 닿는 동안, 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의 생각이 아직 싯다르타의 기이한 말에 머물러 있는 동안, 아직 헛되이 그리고 고집스럽게 시간을 생각에서 지워 보려고, 열반과 산사라를 하나로 그려 보려고 애쓰는 동안, 나아가 벗의 말에 대한 어떤 업신여김이 그 안에서 엄청난 사랑과 경외와 다투는 동안, 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는 제 벗 싯다르타의 얼굴을 더는 보지 않았다. 그 대신 다른 얼굴들을 보았다. 많은 얼굴, 긴 줄, 흐르는 얼굴의 강을. 수백의, 수천의 얼굴이 모두 왔다가 스러지면서도 모두 동시에 거기 있는 듯했고, 모두 끊임없이 달라지고 새로워지면서도 모두 싯다르타였다. 그는 물고기의 얼굴을, 잉어의 얼굴을 보았다. 한없이 아프게 벌린 입, 죽어 가는 물고기, 부서지는 눈을. 그는 갓 태어난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붉고 주름지고 울음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그는 살인자의 얼굴을 보았고, 그가 사람의 몸에 칼을 찔러 넣는 것을 보았다. 그는 같은 순간에 이 죄인이 묶여 무릎 꿇고 그 머리가 사형 집행인의 칼에 잘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남자와 여자의 몸이 벗은 채로 미친 사랑의 자세와 다툼 속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주검들이 뻗은 채 고요하고 차갑고 텅 빈 것을 보았다. 그는 짐승의 머리를 보았다. 멧돼지의, 악어의, 코끼리의, 황소의, 새의 머리를. 그는 신들을 보았고, 크리슈나를 보았고, 아그니를 보았다. 그는 이 모든 모습과 얼굴이 천 가지 사이로 서로 얽힌 것을 보았다. 저마다 남을 돕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없애고, 새로 낳고 있었다. 저마다 죽고자 함이었고, 덧없음에 대한 열정 어린 아픈 고백이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죽지 않았다. 저마다 달라질 뿐이었고, 늘 새로 태어났고, 늘 새 얼굴을 얻었다. 그러면서 한 얼굴과 다른 얼굴 사이에 시간이 놓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모습과 얼굴이 쉬었고, 흘렀고, 저를 낳았고, 떠갔고, 서로에게 흘러들었다. 그리고 그 모두 위로 무언가 얇고 본성 없으면서도 있는 것이 끊임없이 덮여 있었다. 얇은 유리나 얼음처럼, 비쳐 보이는 살갗처럼, 물로 된 껍데기나 꼴이나 가면처럼. 그리고 이 가면이 웃고 있었고, 이 가면이 싯다르타의 웃는 얼굴이었으며, 바로 그 순간 그가, 고빈다가 입술로 닿은 그 얼굴이었다. 그리고 고빈다는 보았다. 가면의 이 웃음, 흐르는 형상들 위의 이 하나임의 웃음, 천 번의 태어남과 죽음 위의 이 동시에 있음의 웃음, 싯다르타의 이 웃음이 붓다 고타마의 그 웃음과 꼭 같다는 것을. 저 자신이 백 번이나 경외로 보았던, 고요하고 곱고 꿰뚫을 수 없고 어쩌면 인자하고 어쩌면 비웃는, 지혜롭고 천 겹인 그 웃음과 똑같다는 것을. 이룬 이들은 저렇게 웃는구나, 하고 고빈다는 알았다.
시간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이 봄이 한 순간이었는지 백 년이었는지도 더는 알지 못한 채, 싯다르타라는 것이 있는지, 고타마라는 것이 있는지, 나와 너라는 것이 있는지도 더는 알지 못한 채, 가장 깊은 데를 신의 화살에 맞은 듯 상하고 그 상함이 달게 느껴지는 채, 가장 깊은 데가 홀려 풀어진 채, 고빈다는 방금 입 맞춘 싯다르타의 고요한 얼굴 위로 몸을 숙이고 잠시 더 서 있었다. 방금 온갖 형상과 온갖 되어 감과 온갖 있음의 무대였던 그 얼굴 위로. 그 얼굴은 달라지지 않은 채였다. 그 겉면 아래서 천 겹의 깊이가 다시 닫힌 뒤에도 그는 고요히 웃고 있었다. 나직하고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어쩌면 몹시 인자하게, 어쩌면 몹시 비웃듯이. 존귀하신 그분이 웃던 그대로.
고빈다는 깊이 절했다. 저도 알지 못하는 눈물이 그 늙은 얼굴을 타고 흘렀고, 더없이 살가운 사랑의, 더없이 낮추는 우러름의 느낌이 그 가슴에서 불처럼 탔다. 그는 꼼짝 않고 앉은 이 앞에 땅에 닿도록 깊이 절했다. 그 웃음이 그에게, 제 삶에서 여태 사랑한 모든 것을, 제 삶에서 여태 값지고 거룩했던 모든 것을 떠올려 주었다.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