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D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 조영환 옮김

太宰治 — 人間失格 (1948)

6장 · 167분

사진 석 장과 공책 세 권이 남았다. 사람이 무서워 어릴 적부터 익살로만 사람과 이어졌던 남자가 술과 여자와 약으로 무너져 가며, 끝내 스스로 사람의 자격을 잃었다고 적는다. 다자이가 죽기 한 달 전에 끝낸 마지막 완성작.

머리말

나는 그 사내의 사진을 석 장 본 적이 있다.

한 장은 그 사내의 어린 시절이라고 해야 할까, 열 살 안팎으로 짐작되는 무렵의 사진인데, 그 아이가 여자들에게 빙 둘러싸여 (그것은 그 아이의 누나들, 여동생들, 그리고 사촌 누이들이 아닐까 싶다) 정원 연못가에 굵은 줄무늬 바지를 입고 서서, 고개를 삼십 도쯤 왼쪽으로 기울이고 흉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흉하게? 그러나 무딘 사람들은 (그러니까 곱고 흉한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귀여운 도련님이네요"

하고 대충 인사치레를 해도 영 빈말로만 들리지는 않을 만큼, 말하자면 흔한 「귀여움」 같은 그림자가 그 아이의 웃는 얼굴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곱고 흉한 것을 조금이라도 가려 본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눈에 곧,

"이 무슨 밉살스러운 아이인가"

하고 몹시 언짢은 듯 중얼거리며, 송충이라도 털어 내는 손짓으로 그 사진을 내던질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은 보면 볼수록 뭐라 알 수 없이 언짢고 으스스한 것이 느껴져 온다. 애초에 그것은 웃는 얼굴이 아니다. 이 아이는 조금도 웃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 증거로 이 아이는 두 주먹을 꽉 쥐고 서 있다. 사람은 주먹을 꽉 쥔 채로 웃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숭이다. 원숭이의 웃는 얼굴이다. 그저 얼굴에 흉한 주름을 잡고 있을 뿐인 것이다. 「주름투성이 도련님」이라고나 하고 싶어질 만큼, 참으로 묘하고 그러면서 어딘가 더럽고 이상하게 사람을 메스껍게 하는 표정의 사진이었다. 나는 여태 이런 이상한 표정의 아이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둘째 장의 사진 속 얼굴은 이번에는 또 놀랄 만큼 크게 달라져 있었다. 학생의 모습이다. 고등학교 때 사진인지 대학 때 사진인지 또렷하지 않지만, 아무튼 무섭도록 잘생긴 학생이다. 그러나 이것도 또 이상하게도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교복을 입고 가슴 주머니에서 흰 손수건을 내보이며 등의자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고, 그러고는 역시 웃고 있다. 이번 웃는 얼굴은 주름투성이 원숭이의 웃음이 아니라 제법 능란한 미소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사람의 웃음과는 어딘가 다르다. 피의 무게라고나 할까, 목숨의 떫음이라고나 할까, 그런 채워진 느낌은 조금도 없고, 그야말로 새 같은 것이 아니라 깃털처럼 가볍게, 그저 흰 종이 한 장으로 그러고는 웃고 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낸 물건이라는 느낌인 것이다. 느끼하다고 해도 모자란다. 가볍다고 해도 모자란다. 간드러진다고 해도 모자란다. 멋 부린다고 해도 물론 모자란다. 게다가 가만히 보고 있으면 역시 이 잘생긴 학생에게서도 어딘가 귀신 이야기 같은 으스스한 것이 느껴져 오는 것이다. 나는 여태 이런 이상하게 잘생긴 젊은이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또 한 장의 사진은 가장 괴이한 것이다. 이제는 아예 나이를 알 수 없다. 머리는 다소 흰머리가 섞인 듯하다. 그것이 몹시 더러운 방 (방 벽이 세 군데쯤 허물어져 떨어진 것이 그 사진에 또렷이 찍혀 있다) 한구석에서 작은 화로에 두 손을 쬐고 있고, 이번에는 웃고 있지 않다. 아무런 표정도 없다. 말하자면 앉아서 화로에 두 손을 쬐면서 저절로 죽어 가고 있는 듯한, 참으로 꺼림칙하고 불길한 냄새가 나는 사진이었다. 괴이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 사진에는 얼굴이 비교적 크게 찍혀 있어서 나는 그 얼굴의 생김새를 꼼꼼히 뜯어볼 수 있었는데, 이마는 흔하고 이마의 주름도 흔하고 눈썹도 흔하고 눈도 흔하고 코도 입도 턱도, 아아, 이 얼굴에는 표정이 없을뿐더러 남는 느낌조차 없다. 특징이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이 사진을 보고 눈을 감는다. 벌써 나는 이 얼굴을 잊고 있다. 방의 벽이나 작은 화로는 떠올릴 수 있지만, 그 방 주인공의 얼굴에서 받은 느낌은 스르르 안개처럼 사라져 아무리 해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림이 되지 않는 얼굴이다. 만화도 무엇도 되지 않는 얼굴이다. 눈을 뜬다. 아, 이런 얼굴이었나, 생각났다, 하는 기쁨조차 없다. 심하게 말하면 눈을 뜨고 그 사진을 다시 보아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고는 그저 언짢고 짜증이 나서 그만 눈을 돌리고 싶어진다.

이른바 「죽을상」이라는 것에도 무언가 표정이든 남는 느낌이든 더 있을 법한데, 사람의 몸에 짐말의 머리라도 붙여 놓으면 이런 느낌이 되려나, 아무튼 어디라고 꼬집을 수 없이 보는 사람을 오싹하게 하고 언짢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여태 이런 이상한 사내의 얼굴을 본 적이, 역시 한 번도 없었다.

첫 번째 수기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저는 사람의 생활이라는 것이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저는 동북 지방 시골에서 태어난 터라 기차를 처음 본 것은 꽤 큰 뒤였습니다. 저는 역의 구름다리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그것이 선로를 건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데는 전혀 생각이 미치지 않고, 그저 그것은 역 구내를 외국의 놀이터처럼 복잡하고 즐겁고 세련되게 하기 위해서만 놓아둔 것이라고만 여기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꽤 오랫동안 그렇게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름다리를 오르내리는 일은 저에게는 오히려 퍽 세련된 놀이여서, 그것은 철도가 베푸는 것 가운데서도 가장 멋을 아는 하나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나중에 그것이 그저 손님이 선로를 건너기 위한 지극히 실용적인 계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대번에 흥이 깨졌습니다.

또 저는 어릴 적에 그림책에서 지하철이라는 것을 보고, 이것도 역시 실용적인 필요에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땅 위의 차를 타기보다 땅 밑의 차를 타는 편이 색다르고 재미있는 놀이라서 그런 것이라고만 여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자주 앓아누웠는데, 누운 채로 홑이불이며 베갯잇이며 이불잇을 곰곰이 보면서 시시한 장식이라고 여겼고, 그것이 뜻밖에도 쓸모 있는 물건이었다는 것을 스무 살이 다 되어서야 알고는 사람의 궁색함에 마음이 어두워져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저는 배고픔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아니, 그것은 제가 먹고 입고 사는 데 어려움이 없는 집에서 자랐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바보 같은 뜻이 아니라, 저에게는 「배고픔」이라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상한 말이지만 배가 비어 있어도 스스로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소학교, 중학교, 제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둘레 사람들이 자 배고프겠구나, 우리도 겪어 봐서 안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의 배고픔은 정말 대단하지, 설탕에 조린 콩은 어떠냐, 카스텔라도 빵도 있다, 하며 법석을 떨었으므로, 저는 타고난 비위 맞추기를 발휘해 배가 고프다고 중얼거리며 조린 콩을 열 알쯤 입에 털어 넣었지만, 배고픔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조금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도 물론 많이 먹기는 합니다만, 배가 고파서 무언가를 먹은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진귀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먹습니다. 호화롭다고 여겨지는 것을 먹습니다. 또 남의 집에 가서 내온 것도 무리를 해서까지 대개 먹습니다. 그러니 어릴 적 저에게 가장 괴로운 시간은 실로 우리 집 밥때였습니다.

제 시골집에서는 열 명쯤 되는 식구 전부가 저마다 밥상을 두 줄로 마주 보게 놓고, 막내인 저는 물론 맨 아랫자리였는데, 그 밥 먹는 방은 어둑해서, 점심때 같은 때 열몇 명의 식구가 그저 묵묵히 밥을 먹고 있는 꼴에 저는 늘 오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시골의 옛날식 집이라 반찬도 대개 정해져 있어서 진귀한 것, 호화로운 것 따위는 바랄 수도 없었으므로, 저는 더욱 밥때가 무서웠습니다. 저는 그 어둑한 방의 끝자리에서 추위에 덜덜 떠는 심정으로 입에 밥을 조금씩 나르고 밀어 넣으며, 사람은 어째서 하루에 세 번씩 밥을 먹는 것일까, 정말 다들 엄숙한 얼굴로 먹고 있다, 이것도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어서 식구가 하루 세 번씩 때를 정해 어둑한 방 하나에 모여 밥상을 차례대로 늘어놓고, 먹고 싶지 않아도 말없이 밥을 씹으며 고개를 숙이고, 집 안에 우글거리는 넋들에게 비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은 제 귀에는 그저 언짢은 으름장으로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미신은 (지금도 저에게는 어쩐지 미신처럼 여겨져 견딜 수 없습니다만) 그러나 늘 저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사람은 밥을 먹지 않으면 죽으니 그래서 일을 해서 밥을 먹어야 한다는 말만큼 저에게 알아듣기 어렵고 껄끄럽고, 그러면서 협박처럼 울리는 말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저에게는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이 아직도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행복과 세상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행복이 아예 어긋나 있는 듯한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마다 뒤척이고 신음하고 미쳐 버릴 뻔한 적까지 있습니다. 저는 대체 행복한 것일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참으로 자주 복 받은 아이라는 말을 들어 왔지만, 스스로는 늘 지옥 같은 심정이어서, 오히려 저를 복 받은 아이라고 말한 사람들 쪽이 견줄 것도 없이 훨씬 훨씬 편안해 보이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재앙 덩어리가 열 개 있어서, 그중 하나만이라도 이웃이 짊어진다면 그 하나만으로도 넉넉히 이웃의 목숨을 앗아 가지 않을까 하고 여긴 적조차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르겠는 것입니다. 이웃이 겪는 괴로움의 성질도 정도도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괴로움, 그저 밥을 먹을 수 있으면 풀리는 괴로움,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가장 센 아픔이어서, 제가 말한 열 개의 재앙 따위는 날아가 버릴 만한 끔찍한 아비지옥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면 어떻게 자살도 하지 않고 미치지도 않고 정당을 논하고 절망하지 않고 굽히지 않으며 삶의 싸움을 이어 갈 수 있을까, 괴롭지 않은 것 아닐까? 완전히 이기주의자가 되고, 게다가 그것을 마땅한 일이라 믿으며 한 번도 자기를 의심한 적이 없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편하겠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것은 다들 그런 것이고 또 그러면 만점인 것이 아닐까, 모르겠다, …… 밤에는 푹 자고 아침에는 상쾌한 것일까,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길을 걸으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돈? 설마 그것만은 아니겠지, 사람은 밥을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은 들어 본 것 같기도 한데 돈을 위해 산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아니 그렇지만 어쩌면, …… 아니, 그것도 모르겠다, …… 생각하면 할수록 저에게는 알 수 없어지고, 저 혼자만 아주 별난 사람인 듯한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힐 뿐인 것입니다. 저는 이웃과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못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익살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향한 저의 마지막 구애였습니다. 저는 사람을 지독히 두려워하면서도 그러면서 사람을 도무지 단념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익살이라는 한 가닥 줄로 겨우 사람과 이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끊임없이 웃는 얼굴을 지으면서도 속은 필사적인, 그야말로 천 번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한 아슬아슬함으로 진땀을 흘리며 하는 시중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제 식구들에게조차 그들이 얼마나 괴로운지, 또 어떤 것을 생각하며 사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아 그저 무서웠고, 그 어색함을 견딜 수 없어 이미 익살에 능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어느새 한마디도 참말을 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무렵 식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같은 것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저 혼자만 반드시 묘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웃고 있습니다. 이것도 또한 어리고 슬픈 저의 익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또 저는 집안 어른들에게 무슨 말을 들어도 말대꾸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 사소한 꾸지람이 저에게는 벼락처럼 세게 느껴져 미칠 것 같아졌고, 말대꾸는커녕 그 꾸지람이야말로 말하자면 만고에 변하지 않는 사람의 「진리」라는 것임에 틀림없다, 나에게는 그 진리를 행할 힘이 없으니 이제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고 믿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다툼도 변명도 하지 못했습니다. 남에게 나쁜 말을 들으면 과연 그렇다, 내가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늘 그 공격을 잠자코 받으며 속으로 미칠 듯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누구든 남에게 나무람을 받거나 성난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을 리 없겠지만, 저는 성난 사람의 얼굴에서 사자보다도 악어보다도 용보다도 더 무서운 짐승의 본성을 봅니다. 여느 때는 그 본성을 감추고 있는 듯하지만, 어떤 기회에, 이를테면 소가 풀밭에서 느긋한 모습으로 누워 있다가 문득 꼬리로 배의 등에를 철썩 때려잡듯이, 느닷없이 사람의 무서운 본모습을 노여움으로 드러내는 꼴을 보고 저는 늘 머리카락이 곤두설 만큼 떨었고, 이 본성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자격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여기면 저 자신에게 거의 절망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에 대해 늘 두려움에 떨고, 또 사람으로서 제가 하는 말과 행동에 조금도 자신을 갖지 못하고, 그러면서 저 혼자의 번민은 가슴속 작은 상자에 감추고, 그 우울과 예민함을 꽁꽁 숨긴 채 오로지 천진난만한 낙천가인 척 꾸미며, 저는 익살맞은 괴짜로 차츰 완성되어 갔습니다.

무엇이든 좋으니 웃겨 놓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내가 그들이 말하는 「생활」 바깥에 있어도 그다지 마음 쓰지 않는 것 아닐까, 아무튼 그들 사람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 나는 없는 것이다, 바람이다, 하늘이다, 하는 생각만 커져서, 저는 익살로 식구들을 웃기고, 또 식구들보다 더 알 수 없고 무서운 머슴과 하녀에게까지 필사적으로 익살을 부려 시중을 들었던 것입니다.

저는 여름에 유카타 밑에 빨간 털실 스웨터를 입고 복도를 걸어 온 집안 사람을 웃겼습니다. 좀처럼 웃지 않는 큰형도 그것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며,

"그건, 요조야, 안 어울린다"

하고 귀여워 못 견디겠다는 말투로 말했습니다. 아니, 저라고 한여름에 털실 스웨터를 입고 다닐 만큼,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더위와 추위를 모르는 괴짜는 아닙니다. 누나의 각반을 두 팔에 끼워 유카타 소매 끝으로 내보여, 그것으로 스웨터를 입은 것처럼 보이게 했던 것입니다.

제 아버지는 도쿄에 볼일이 많은 분이어서 우에노 사쿠라기초에 별장을 두고 한 달의 태반을 도쿄의 그 별장에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돌아올 때면 식구들에게, 또 친척들에게까지 참으로 어마어마하게 선물을 사 오는 것이 뭐랄까, 아버지의 취미 같은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아버지가 도쿄로 가기 전날 밤, 아버지는 아이들을 손님방에 모아 놓고 이번에 돌아올 때 어떤 선물이 좋겠느냐고 하나하나 웃으며 물었고, 그에 대한 아이들의 대답을 일일이 수첩에 적어 두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아이들과 가까이 구는 것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요조는?"

하고 물으시자 저는 말을 더듬고 말았습니다.

무엇을 갖고 싶으냐는 물음을 받으면 그 순간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좋다, 어차피 나를 즐겁게 해 줄 것 따위는 없다는 생각이 언뜻 스치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남이 주는 것을 아무리 제 취향에 맞지 않아도 물리치지도 못했습니다.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또 좋아하는 것도 주뼛주뼛 훔치듯이 지극히 쓰디쓰게 맛보며, 그러고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에 몸부림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에게는 둘 중 하나를 고를 힘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뒷날에 이르러 이른바 저의 「부끄러움 많은 생애」의 중대한 원인이 되는 버릇 가운데 하나였던 듯싶습니다.

제가 잠자코 머뭇거리고 있으니 아버지는 조금 언짢은 얼굴이 되어,

"역시 책이냐. 아사쿠사 나카미세에 설날 사자춤 탈, 아이가 쓰고 놀기에 알맞은 크기의 것을 팔던데, 갖고 싶지 않으냐"

갖고 싶지 않으냐는 말을 들으면 이제 틀린 것입니다. 익살맞은 대답도 무엇도 하지 못합니다. 익살꾼으로서는 완전히 낙제였습니다.

"책이 좋겠지요"

큰형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러냐"

아버지는 흥이 깨진 얼굴로 수첩에 적지도 않고 탁 수첩을 덮었습니다.

이 무슨 실수인가, 나는 아버지를 성나게 했다, 아버지의 앙갚음은 틀림없이 무서울 것이다,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되돌릴 수 없을까, 하고 그날 밤 이불 속에서 덜덜 떨며 생각하다가, 살며시 일어나 손님방에 가서 아버지가 아까 수첩을 넣어 두었을 책상 서랍을 열고 수첩을 집어 들어, 팔랑팔랑 넘겨 선물 주문을 적어 둔 자리를 찾아, 수첩에 딸린 연필을 핥아 「사자탈」이라고 적고 잤습니다. 저는 그 사자춤 탈을 조금도 갖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책 쪽이 나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가 그 탈을 저에게 사 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아버지의 그 뜻에 맞추어 아버지의 기분을 풀어 드리고 싶은 마음 하나로 한밤중에 손님방에 숨어드는 모험을 굳이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저의 비상수단은 과연 바라던 대로 큰 성공으로 갚아졌습니다. 이윽고 아버지가 도쿄에서 돌아와 어머니에게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저는 아이들 방에서 듣고 있었습니다.

"나카미세의 장난감 가게에서 이 수첩을 펴 보았더니, 이것 봐, 여기 사자탈이라고 적혀 있어. 이건 내 글씨가 아니야. 어라? 하고 고개를 갸웃하다가 짚이는 게 있었지. 이건 요조의 장난이오. 그 녀석은 내가 물었을 때는 히죽히죽 웃으며 잠자코 있더니, 나중에 아무래도 사자탈이 갖고 싶어 못 견디게 되었던 게지. 아무튼 참, 그 애는 별난 놈이니까. 모르는 척하고 제대로 적어 놓았단 말이오. 그렇게 갖고 싶었으면 말을 하면 좋았을 것을. 나는 장난감 가게 앞에서 웃었소. 요조를 어서 이리 부르시오"

또 한편으로 저는 머슴과 하녀들을 서양식 방에 모아 놓고 머슴 하나에게 마구잡이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게 하고 (시골이기는 했지만 그 집에는 웬만한 것은 다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엉터리 곡에 맞추어 인디언 춤을 추어 보여 모두를 크게 웃겼습니다. 둘째 형이 플래시를 터뜨려 제 인디언 춤을 찍었는데, 그 사진이 나온 것을 보니 제 허리에 두른 천 (그것은 무명 보자기였습니다) 사이로 작은 고추가 비죽 보여, 이것이 또 온 집안의 큰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이것도 뜻밖의 성공이라고 해야 할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달마다 새로 나온 소년 잡지를 열 권도 넘게 받아 보았고, 그 밖에도 갖가지 책을 도쿄에서 들여와 잠자코 읽고 있었으므로, 메차라쿠차라 박사니 난자몬자 박사니 하는 이들과는 아주 친했고, 또 괴담, 만담, 라쿠고, 에도 우스개 같은 것에도 제법 밝았으니, 익살스러운 말을 진지한 얼굴로 해서 집안사람들을 웃기는 데는 거리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아, 학교!

저는 거기서 존경을 받을 참이었습니다. 존경받는다는 생각 또한 저를 몹시 겁나게 했습니다. 거의 완전에 가깝게 사람을 속이고, 그러다 어느 한 사람 전지전능한 이에게 들켜 산산조각이 나고 죽는 것보다 더한 망신을 당한다, 그것이 「존경받는다」는 상태에 대한 저의 정의였습니다. 사람을 속여 「존경받아」도 누군가 한 사람은 알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도 이윽고 그 한 사람에게 듣고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때 사람들의 노여움과 앙갚음은 대체 어떨까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심정입니다.

저는 부잣집에 태어났다는 것보다 흔히 말하는 「공부를 잘한다」는 것으로 학교 전체의 존경을 받을 참이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한두 달, 또 한 학년 가까이 앓아누워 학교를 쉰 적조차 있었지만, 그래도 병을 앓고 난 몸으로 인력거를 타고 학교에 가서 학년말 시험을 쳐 보면 반의 누구보다도 이른바 「잘하는」 것 같았습니다. 몸이 좋을 때에도 저는 도무지 공부를 하지 않고, 학교에 가서도 수업 시간에는 만화 따위를 그리고, 쉬는 시간에는 그것을 반 아이들에게 설명해 들려주며 웃겨 주었습니다. 또 작문에는 우스운 이야기만 써서 선생님께 주의를 받아도 저는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실은 남몰래 제 그 우스운 이야기를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저는 여느 때처럼, 제가 어머니를 따라 도쿄로 가던 길의 기차에서 객차 통로에 있는 가래통에 오줌을 누어 버린 실수담을 (그러나 그 도쿄행 때 저는 가래통인 줄 모르고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천진함을 뽐내려고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일부러 슬픈 듯한 글투로 써서 냈는데, 선생님은 틀림없이 웃으리라는 자신이 있었으므로 교무실로 물러가는 선생님 뒤를 살며시 따라가 보았더니, 선생님은 교실을 나서자마자 제 그 작문을 다른 반 아이들의 작문 가운데서 골라내 복도를 걸으며 읽기 시작해 킥킥 웃고, 이윽고 교무실에 들어가 다 읽었는지 얼굴이 새빨개져 큰 소리로 웃으며 다른 선생님에게 곧바로 그것을 읽히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고, 저는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장난꾸러기.

저는 이른바 장난꾸러기로 보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존경받는 데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습니다. 성적표는 모든 과목이 십 점이었지만 품행이라는 것만은 칠 점이거나 육 점이거나 해서, 그것도 또 온 집안의 큰 웃음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본바탕은 그런 장난꾸러기 따위와는 아주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이미 하녀와 머슴에게서 슬픈 일을 배웠고, 범해져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죄 가운데 가장 추하고 낮고 모진 죄라고 저는 지금은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참았습니다. 이것으로 또 하나 사람의 됨됨이를 보았다는 느낌마저 들어, 그러고는 힘없이 웃고 있었습니다. 만약 저에게 참말을 하는 버릇이 들어 있었다면 기죽지 않고 그들의 죄를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고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저는 그 아버지나 어머니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에게 호소한다, 저는 그 방법에는 조금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에게 호소해도, 어머니에게 호소해도, 순사에게 호소해도, 나라에 호소해도, 결국은 세상을 사는 데 능한 사람의, 세상에 잘 통하는 말에 눌리고 마는 것 아닐까.

반드시 한쪽으로 기울게 마련이라는 것을 뻔히 알겠다, 어차피 사람에게 호소하는 것은 헛일이다, 나는 역시 참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참으며 익살을 이어 가는 수밖에 없다는 심정이었습니다.

뭐야, 사람을 믿지 못하겠다는 소리인가? 허, 너는 언제 기독교인이 되었느냐, 하고 비웃는 사람도 혹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이 반드시 곧바로 종교의 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저에게는 여겨집니다만. 실제로 그렇게 비웃는 사람까지 포함해 사람들은 서로 믿지 못하는 가운데 여호와도 무엇도 마음에 두지 않고 태연히 살고 있지 않습니까. 역시 제 어릴 적 일이었는데, 아버지가 속해 있던 어느 정당의 유명한 이가 이 고을에 연설을 하러 와서 저는 머슴들을 따라 극장에 들으러 갔습니다. 자리는 꽉 찼고, 이 고을에서 특히 아버지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보였으며 크게 손뼉을 치기도 했습니다. 연설이 끝나고 듣던 사람들은 눈 오는 밤길을 삼삼오오 무리 지어 집으로 돌아가며 오늘 밤 연설회를 욕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아버지와 특히 가까운 사람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개회사도 서툴고, 그 유명한 이의 연설도 뭐가 뭔지 알 수 없다고, 그 이른바 아버지의 「동지들」이 성난 소리에 가까운 말투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그 사람들이 우리 집에 들러 손님방에 올라앉아, 오늘 밤 연설회는 큰 성공이었다고 진심으로 기쁜 얼굴을 하며 아버지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머슴들까지도 오늘 밤 연설회는 어땠느냐고 어머니가 묻자 아주 재미있었다고 말하고는 태연한 것입니다. 연설회만큼 재미없는 것은 없다고 돌아오는 길 내내 머슴들이 서로 한탄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아주 사소한 한 가지 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서로 속이면서, 게다가 어느 쪽도 이상하게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서로 속이고 있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한, 참으로 선명하고 그야말로 맑고 밝고 쾌활한 불신의 예가 사람의 생활에 가득 차 있는 듯이 여겨집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서로 속인다는 것에는 그다지 특별한 흥미도 없습니다. 저 또한 익살로 아침부터 밤까지 사람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정의니 뭐니 하는 도덕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못합니다. 저에게는 서로 속이면서도 맑고 밝고 쾌활하게 살고 있는, 혹은 살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진 듯한 사람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끝내 저에게 그 묘한 이치를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것만 알았다면 저는 사람을 이토록 무서워하지도, 또 필사적으로 시중을 들지도 않아도 되었겠지요. 사람의 생활과 맞서게 되어 밤마다 지옥 같은 이만한 괴로움을 맛보지 않아도 되었겠지요. 그러니까 제가 머슴과 하녀들의 그 미워할 죄조차 아무에게도 호소하지 않은 것은 사람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고, 또 물론 그리스도의 가르침 때문도 아니며, 사람들이 요조라는 저에게 믿음의 껍데기를 단단히 닫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어머니조차 저에게 알 수 없는 것을 이따금 보이는 일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아무에게도 호소하지 않는 저의 외로운 냄새를 많은 여자가 본능으로 맡아 내어, 뒷날 여러모로 제가 파고들림을 당하는 빌미 가운데 하나가 된 듯한 느낌도 듭니다.

그러니까 저는 여자에게는 사랑의 비밀을 지켜 줄 수 있는 남자였다는 셈인 것입니다.

두 번째 수기

바다의 물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바다에 가까운 기슭에, 새까만 껍질의 산벚나무가 제법 큰 것으로 스무 그루 넘게 늘어서 있어, 새 학년이 시작되면 산벚나무는 갈색의 끈적한 듯한 어린잎과 함께 푸른 바다를 등지고 그 눈부신 꽃을 피우고, 이윽고 꽃보라가 일 때면 꽃잎이 어마어마하게 바다로 흩어져 들어가 물 위를 수놓으며 떠다니다 물결에 실려 다시 물가로 밀려 돌아오는, 그 벚나무의 모래밭이 그대로 운동장으로 쓰이는 동북 지방의 어느 중학교에 저는 시험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그럭저럭 무사히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중학교의 교모 표장에도, 교복 단추에도 벚꽃이 도안으로 새겨져 피어 있었습니다.

그 중학교 바로 가까이에 우리 집과 먼 친척뻘 되는 이의 집이 있었으므로, 그 까닭도 있어 아버지가 그 바다와 벚꽃의 중학교를 저에게 골라 주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집에 맡겨졌고, 어쨌든 학교가 바로 가까이라 조례 종이 울리는 것을 듣고서야 뛰어서 등교하는, 제법 게으른 중학생이었지만, 그래도 그 익살로 하루하루 반의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말하자면 낯선 고장에 나온 셈인데, 저에게는 그 낯선 고장 쪽이 제가 태어난 고향보다 훨씬 마음 편한 자리로 여겨졌습니다. 그것은 저의 익살도 그 무렵에는 더욱 몸에 딱 붙어, 사람을 속이는 데 전처럼 애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풀이해도 좋겠지만, 그러나 그보다도 핏줄과 남, 고향과 낯선 고장, 거기에는 뽑아낼 수 없는 연기의 어려움 차이가 어떤 천재에게도, 설령 신의 아들 예수에게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배우에게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자리는 고향의 극장이고, 더구나 온 일가붙이가 다 모여 앉은 방 안에서는 아무리 이름난 배우라도 연기고 뭐고 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저는 연기해 왔습니다. 게다가 그것이 제법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만한 능구렁이가 낯선 고장에 나와서 만에 하나라도 연기에 실패하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저의 두려움은 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만큼 세차게 가슴 밑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그러나 연기는 참으로 거침없어져서, 교실에서는 늘 반 아이들을 웃겼고, 선생도 이 반은 오바만 없으면 아주 좋은 반인데, 하고 말로는 한탄하면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습니다. 저는 그 벼락 같은 거친 목소리를 지르는 배속 장교조차 참으로 손쉽게 웃음을 터뜨리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제 본모습을 온전히 감출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하고 한숨 놓으려던 참에 저는 참으로 뜻밖에도 등 뒤에서 찔렸습니다. 그것은 등 뒤에서 찌르는 사내가 으레 그렇듯, 반에서 가장 몸이 빈약하고 얼굴도 푸르뎅뎅하게 부어 있으며, 게다가 분명 집안 어른이 입던 헌 옷인 듯 소매가 쇼토쿠 태자의 소매처럼 지나치게 긴 웃옷을 입고, 학과는 조금도 못하고 교련이나 체조는 늘 견학인 바보 같은 학생이었습니다. 저도 과연 그 학생에게까지 조심할 필요는 느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날 체조 시간에 그 학생 (성은 지금 기억나지 않지만 이름은 다케이치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다케이치는 여느 때처럼 견학이었고, 저희는 철봉 연습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일부러 될 수 있는 대로 엄숙한 얼굴을 하고 철봉을 겨누어 얍 하고 소리치며 뛰어, 그대로 멀리뛰기처럼 앞으로 날아가 모랫바닥에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모두 계획된 실수였습니다. 과연 다들 크게 웃었고, 저도 쓴웃음을 지으며 일어나 바지의 모래를 털고 있는데, 언제 거기 왔는지 다케이치가 제 등을 찌르며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일부러. 일부러"

저는 몸이 떨렸습니다. 일부러 실수했다는 것을 하필이면 다케이치에게 들키다니 전혀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세상이 한순간에 지옥의 불길에 싸여 타오르는 것을 눈앞에 보는 심정이 되어, 와아! 하고 소리치며 미쳐 버릴 듯한 기색을 필사적인 힘으로 눌렀습니다.

그로부터 하루하루의 저의 불안과 두려움.

겉으로는 여전히 슬픈 익살을 부려 모두를 웃기고 있었지만, 문득 저도 모르게 무거운 한숨이 새어 나오고, 무엇을 해도 죄다 다케이치에게 산산조각으로 들켜 있고, 그리고 저 녀석은 머지않아 틀림없이 누구에게든 그것을 퍼뜨리고 다닐 것이 분명하다, 하고 생각하면 이마에 끈적하게 진땀이 배어 나와, 미친 사람처럼 묘한 눈빛으로 둘레를 헛되이 두리번거리기도 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아침 낮 저녁 온종일 다케이치 곁을 떠나지 않고 그가 비밀을 입 밖에 내지 않도록 지켜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에게 들러붙어 있는 동안에 저의 익살은 이른바 「일부러」가 아니라 진짜였다고 여기게 만들려고 온갖 애를 쓰고, 잘하면 그와 둘도 없는 벗이 되어 버리고 싶다, 만약 그 일이 다 안 된다면 이제 그의 죽음을 비는 수밖에 없다, 하고까지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를 죽이겠다는 마음만은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태 살아오면서 남에게 죽고 싶다고 바란 적은 몇 번이나 있었지만, 남을 죽이고 싶다고 여긴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무서운 상대에게 도리어 행복을 주는 일일 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를 길들이려고 먼저 얼굴에 가짜 기독교인 같은 「상냥한」 아첨의 웃음을 띠고, 고개를 삼십 도쯤 왼쪽으로 기울여 그의 작은 어깨를 가볍게 안고, 그러고는 고양이를 어르는 듯한 달콤한 목소리로 그에게 제가 묵는 집에 놀러 오라고 자주 꾀었지만, 그는 늘 멍한 눈빛을 하고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느 날 방과 후, 아마 초여름 무렵이었습니다, 소나기가 허옇게 쏟아져 학생들이 집에 가지 못해 애를 먹는 듯했는데, 저는 집이 바로 가까이라 태연히 밖으로 뛰쳐나가려다 문득 신발장 그늘에 다케이치가 풀 죽어 서 있는 것을 보고, 가자, 우산 빌려줄게, 하고 말하며 머뭇거리는 다케이치의 손을 잡아끌고 함께 소나기 속을 달려, 집에 닿아 둘의 웃옷을 아주머니에게 말려 달라고 부탁하고, 다케이치를 이 층 제 방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집에는 쉰 넘은 아주머니와, 서른쯤 되고 안경을 쓴 병약해 보이는 키 큰 큰딸 (이 딸은 한 번 시집을 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람을 그 집 사람들을 따라 아네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여학교를 갓 나온 듯한, 셋짱이라는 언니와 달리 키가 작고 얼굴이 둥근 작은딸, 이렇게 셋뿐인 식구였고, 아래층 가게에는 문방구며 운동 용품을 조금 늘어놓고 있었지만, 주된 벌이는 돌아가신 주인이 지어 남긴 대여섯 채의 셋집 세인 듯했습니다.

"귀가 아파"

다케이치는 선 채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비에 젖었더니 아파졌어"

제가 보니 양쪽 귀가 몹시 곪아 있었습니다. 고름이 금방이라도 귓바퀴 밖으로 흘러나오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거 안 되겠다. 아프겠구나"

하고 저는 짐짓 크게 놀란 시늉을 하고,

"빗속에 끌고 나오고, 미안해"

하고 여자 같은 말씨를 써서 「상냥하게」 사과하고, 그러고는 아래층에 가서 솜과 알코올을 얻어 와, 다케이치를 제 무릎에 뉘어 정성껏 귀를 닦아 주었습니다. 다케이치도 과연 이것이 위선의 계략이라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한 듯,

"너는 틀림없이 여자들에게 반해질 거야"

하고 제 무릎을 베고 누운 채 무지한 인사치레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마 그 다케이치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만큼 무서운 악마의 예언 같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저는 뒷날에 이르러 뼈저리게 알았습니다. 반한다고 하고 반해진다고 하고, 그 말은 몹시 품위 없고 장난스러워, 어쩐지 히죽거리는 느낌이라, 아무리 이른바 「엄숙한」 자리라 해도 거기에 이 말이 한마디라도 불쑥 얼굴을 내밀면 삽시간에 우울의 큰 절집이 무너져 그저 밋밋해져 버리는 심정이 드는 법이지만, 반해지는 괴로움 따위의 속된 말이 아니라 사랑받는 불안이라는 문학투의 말을 쓰면 꼭 우울의 큰 절집을 부수는 일은 아닌 듯하니, 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케이치가 저에게 귀 고름을 닦게 하고 너는 반해질 거라는 바보 같은 인사치레를 했을 때, 저는 그저 얼굴을 붉히고 웃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실은 어렴풋이 짚이는 데도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반해진다」는 야비한 말로 생기는 히죽거리는 분위기에 대해, 그런 말을 들으니 짚이는 데도 있다, 따위로 적는 것은 거의 라쿠고에 나오는 도련님의 대사도 못 될 만큼 어리석은 감상을 드러내는 일이니, 설마 제가 그런 장난스럽고 히죽거리는 마음으로 「짚이는 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는 사람 가운데 여자 쪽이 남자보다 몇 곱절 더 알 수 없었습니다. 저희 집안은 여자가 남자보다 수가 많고, 또 친척에도 여자아이가 많고, 또 그 「죄」의 하녀 같은 이도 있어서, 저는 어릴 때부터 여자하고만 놀며 자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여기지만, 그것은 또 그러나 참으로 살얼음을 밟는 심정으로 그 여자들과 사귀어 온 것입니다. 거의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 것입니다. 오리무중이고, 그러다 이따금 범의 꼬리를 밟는 실수를 해서 심한 상처를 입는데, 그것이 또 남자에게서 받는 매와 달리 속으로 피가 나듯 지독히 언짢게 안으로 곪아 좀처럼 낫기 어려운 상처였습니다.

여자는 끌어당겼다가 내팽개친다, 혹은 또 여자는 사람이 있는 데서는 저를 깔보고 모질게 굴다가 아무도 없어지면 꼭 끌어안는다, 여자는 죽은 듯이 깊이 잠든다, 여자는 자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닐까, 그 밖에 여자에 대한 갖가지 살핌을 저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얻고 있었지만, 같은 사람인 듯하면서도 남자와는 또 아주 다른 생물 같은 느낌이었고, 그리고 또 이 알 수 없고 방심할 수 없는 생물은 묘하게 저를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반해진다」는 말도, 또 「좋아한다」는 말도 제 경우에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고, 「챙김을 받는다」고 하는 편이 그나마 실상을 설명하는 데 알맞을지도 모릅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더욱 익살에 마음을 놓는 듯했습니다. 제가 익살을 부리면 남자는 그래도 언제까지나 껄껄 웃고 있지는 않고, 게다가 저도 남자에게는 신이 나서 익살을 너무 부리면 실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반드시 알맞은 데서 그치도록 마음을 쓰고 있었지만, 여자는 알맞음이라는 것을 몰라서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저에게 익살을 요구했고, 저는 그 끝없는 앙코르에 응하다 녹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잘도 웃습니다. 대체로 여자는 남자보다 즐거움을 더 많이 입에 물 수 있는 듯합니다.

제가 중학 시절 신세를 진 그 집의 큰딸도 작은딸도, 틈만 나면 이 층 제 방에 찾아왔고, 저는 그때마다 펄쩍 뛸 만큼 흠칫하며 그저 겁을 먹은 채,

"공부해요?"

"아니요"

하고 웃으며 책을 덮고,

"오늘 말이죠, 학교에서 곤보라는 지리 선생이 말이죠"

하고 술술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마음에도 없는 우스운 이야기였습니다.

"요조, 안경 한번 써 봐"

어느 날 밤, 작은딸 셋짱이 아네사와 함께 제 방에 놀러 와 실컷 저에게 익살을 부리게 한 끝에 그런 말을 꺼냈습니다.

"왜요?"

"됐으니까 써 봐. 아네사 안경을 빌려."

언제나 이런 거친 명령 투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익살꾼은 순순히 아네사의 안경을 썼습니다. 그 순간 두 처녀는 자지러지게 웃었습니다.

"똑같아. 로이드랑 똑같아"

그 무렵 해럴드 로이드라는 외국 영화의 희극 배우가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일어나 한 손을 들고,

"여러분"

하고 말하고,

"이번에 일본의 팬 여러분께, ……"

하고 한바탕 인사를 해 보여 더욱 크게 웃기고, 그 뒤로는 로이드의 영화가 그 고을 극장에 올 때마다 보러 가서 남몰래 그의 표정 같은 것을 살폈습니다.

또 어느 가을밤, 제가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데 아네사가 새처럼 재빨리 방에 들어와 대뜸 제 이불 위에 엎어져 울며,

"요조가 나를 구해 주는 거지. 그렇지. 이런 집, 함께 나가 버리는 게 나아. 구해 줘. 구해 줘"

하며 격한 말을 쏟아 내고는 또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여자에게서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므로 아네사의 지나친 말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고, 오히려 그 낡아 빠지고 속 빈 말에 흥이 깨진 심정으로 슬며시 이불에서 빠져나와 책상 위의 감을 깎아 그 한 조각을 아네사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네사는 흐느끼면서 그 감을 먹고,

"뭐 재미있는 책 없어? 빌려줘"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책을 책꽂이에서 골라 주었습니다.

"잘 먹었어"

아네사는 부끄러운 듯 웃으며 방에서 나갔는데, 이 아네사만이 아니라 대체 여자는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를 생각하는 일은 저에게는 지렁이의 속을 더듬는 것보다 까다롭고 성가시고 으스스한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다만 저는 여자가 그렇게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거나 했을 때 무언가 단것을 건네주면 그것을 먹고 기분이 풀린다는 것만은 어릴 때부터 제 경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또 작은딸 셋짱은 자기 동무까지 제 방에 데려와, 제가 여느 때처럼 고루 모두를 웃기고 동무가 돌아가면 셋짱은 반드시 그 동무를 흉보는 것이었습니다. 저 애는 불량소녀니까 조심하라고 으레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거면 일부러 데려오지 않으면 좋을 것을, 덕분에 제 방 손님의 거의 전부가 여자라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케이치의 인사치레인 「반해진다」는 일의 실현은 아직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일본 동북 지방의 해럴드 로이드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케이치의 무지한 인사치레가 꺼림칙한 예언으로 생생하게 살아나 불길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은 그로부터 다시 몇 해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다케이치는 또 저에게 또 하나 중대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도깨비 그림이야"

언젠가 다케이치가 제 이 층에 놀러 왔을 때, 들고 온 원색판 삽화 한 장을 자랑스레 저에게 보이며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어라?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 제가 떨어져 갈 길이 정해진 것이라고, 뒷날에 이르러 그런 느낌이 들어 견딜 수 없습니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고흐의 그 자화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희 소년 시절에는 일본에서 프랑스의 이른바 인상파 그림이 크게 유행해서, 서양화 감상의 첫걸음을 대개 이 언저리에서 시작했으므로, 고흐, 고갱, 세잔, 르누아르 같은 이의 그림은 시골 중학생이라도 대개 그 사진판을 보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도 고흐의 원색판을 꽤 많이 보고 붓 자국의 재미, 빛깔의 선명함에 흥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러나 도깨비 그림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 이런 건 어떨까. 역시 도깨비일까"

저는 책꽂이에서 모딜리아니의 화집을 꺼내, 불에 그을린 붉은 구리 같은 살빛의 그 벌거벗은 여인의 그림을 다케이치에게 보였습니다.

"굉장하다"

다케이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했습니다.

"지옥의 말 같아"

"역시 도깨비인가"

"나도 이런 도깨비 그림을 그리고 싶어"

사람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이들은 도리어 더욱더 무서운 요괴를 이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다고 바라게 되는 마음, 신경질이고 잘 겁먹는 사람일수록 폭풍우가 더 세지기를 비는 마음, 아아, 이 한 무리의 화가들은 사람이라는 괴물에게 시달리고 위협받은 끝에 마침내 헛것을 믿게 되어, 대낮의 자연 속에서 또렷이 요괴를 본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그것을 익살 따위로 얼버무리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 나타내려 애쓴 것이다, 다케이치의 말대로 당당히 「도깨비 그림」을 그려 버린 것이다, 여기에 앞으로의 내 동무가 있다, 하고 저는 눈물이 날 만큼 들떠,

"나도 그릴래. 도깨비 그림을 그릴래. 지옥의 말을 그릴래"

하고, 어쩐 일인지 몹시 목소리를 낮추어 다케이치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저는 소학교 때부터 그림은 그리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린 그림은 제 작문만큼 둘레의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애초에 사람의 말을 도무지 믿지 않았으므로 작문 따위는 저에게는 그저 익살로 드리는 인사 같은 것이어서, 소학교 중학교 내내 선생들을 미칠 듯이 기쁘게 해 왔지만, 정작 저로서는 도무지 재미가 없었고, 그림만은 (만화 따위는 별개입니다만) 그 대상을 나타내는 데 어설픈 제 나름으로나마 다소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학교의 도화 본보기는 시시하고 선생의 그림은 서툴러서, 저는 아주 제멋대로 갖가지 표현법을 스스로 궁리해 보아야 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 저는 유화 도구도 한 벌 갖추었지만, 그 붓 자국의 본보기를 인상파의 화풍에서 찾아도 제가 그린 것은 마치 색종이 공작처럼 밋밋해서 그럴듯해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케이치의 말을 듣고 그때까지 제가 그림에 대해 지녔던 마음가짐이 아주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아름답다고 느낀 것을 그대로 아름답게 나타내려 애쓰는 안이함, 어리석음. 거장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제 주관으로 아름답게 지어내고, 혹은 흉한 것에 구역질을 하면서도 그에 대한 흥미를 감추지 않고 나타내는 기쁨에 잠겨 있다, 그러니까 남의 눈치에 조금도 기대지 않는 모양이다, 하는 그림의 초보적인 비결을 다케이치에게 배워, 그 여자 손님들에게는 감추고 조금씩 자화상 만들기에 손을 대 보았습니다.

저 스스로도 흠칫할 만큼 음침한 그림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가슴 밑바닥에 꽁꽁 감추고 있는 내 본모습이다, 겉으로는 밝게 웃고 또 남을 웃기고 있지만 실은 이런 우울한 마음을 나는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하고 남몰래 받아들였지만, 그 그림은 다케이치 말고는 그래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 익살 밑의 음침함을 들켜서 갑자기 좀스럽게 경계당하는 것도 싫었고, 또 이것을 제 본모습인 줄도 모르고 역시 새로 짜낸 익살로 여겨 큰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어, 그것은 무엇보다 괴로운 일이었으므로 그 그림은 곧 벽장 깊숙이 넣어 두었습니다.

또 학교의 도화 시간에도 저는 그 「도깨비 수법」은 감추고, 여태까지처럼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그리는 식의 평범한 붓 자국으로 그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케이치에게만은 전부터 상처 입기 쉬운 제 신경을 태연히 보여 주고 있었으므로 이번 자화상도 마음 놓고 다케이치에게 보였고, 크게 칭찬을 받아 다시 두 장 세 장 도깨비 그림을 이어 그려, 다케이치에게서 또 하나,

"너는 훌륭한 화가가 될 거야"

라는 예언을 얻었던 것입니다.

반해질 것이라는 예언과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이라는 예언, 이 두 가지 예언을 바보 다케이치에게 이마에 새겨 받고, 이윽고 저는 도쿄로 나왔습니다.

저는 미술 학교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전부터 저를 고등학교에 넣어 나중에 관리로 만들 생각이었고 저에게도 그렇게 일러 두었으므로, 말대꾸 하나 못 하는 성미의 저는 멍하니 그에 따랐던 것입니다. 사 학년에서 시험을 쳐 보라고 하시기에, 저도 벚꽃과 바다의 중학은 이제 웬만큼 싫증이 나 있었으므로 오 학년으로 올라가지 않고 사 학년 수료인 채로 도쿄의 고등학교에 시험을 쳐 붙었고, 곧 기숙사 생활에 들어갔지만, 그 지저분함과 거침에 질려 익살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의사에게 폐침윤 진단서를 써 달라고 해서 기숙사에서 나와 우에노 사쿠라기초의 아버지 별장으로 옮겼습니다. 저에게는 단체 생활이라는 것이 도무지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또 청춘의 감격이라느니 젊은이의 자랑이라느니 하는 말은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쳐, 도저히 그 하이스쿨 스피릿이라는 것에는 따라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교실도 기숙사도 비뚤어진 성욕의 쓰레기장 같은 느낌마저 들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저의 익살도 거기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의회가 없을 때는 한 달에 한 주나 두 주밖에 그 집에 머물지 않았으므로, 아버지가 없을 때는 제법 넓은 그 집에 별장지기 노부부와 저 셋뿐이어서, 저는 걸핏하면 학교를 쉬면서도 그렇다고 도쿄 구경을 할 마음도 나지 않아 (저는 끝내 메이지 신궁도, 구스노키 마사시게의 동상도, 센가쿠지의 사십칠 인 무덤도 보지 못한 채 끝날 것 같습니다) 집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했습니다. 아버지가 상경하시면 저는 아침마다 부랴부랴 학교에 가는 척했지만, 실은 혼고 센다기초의 서양화가 야스다 신타로 씨의 화숙에 가서 서너 시간씩 데생 연습을 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빠져나오고 나니 학교 수업에 나가도 저는 마치 청강생처럼 특별한 자리에 있는 듯한, 그것은 제 비뚤어진 마음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어쩐지 저 자신이 겸연쩍은 느낌이 들어 더욱 학교에 가는 것이 귀찮아졌던 것입니다. 저에게는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통틀어 끝내 애교심이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은 채 끝났습니다. 교가 같은 것도 한 번도 외우려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윽고 화숙에서 어느 화학생에게 술과 담배와 창녀와 전당포와 좌익 사상을 배웠습니다. 묘한 짝 맞춤이었지만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 화학생은 호리키 마사오라고 했고, 도쿄 변두리에서 태어나 저보다 여섯 살 위였으며, 사립 미술 학교를 나왔지만 집에 화실이 없어 이 화숙에 다니며 서양화 공부를 이어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오 원, 빌려주지 않겠나"

서로 그저 얼굴만 알 뿐 그때까지 한마디도 나눈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허둥지둥 오 원을 내밀었습니다.

"좋아, 마시자. 내가 너에게 한턱내는 거다. 괜찮은 녀석이군"

저는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그 화숙 가까이의 호라이초 카페로 끌려간 것이 그와 사귀게 된 시작이었습니다.

"전부터 너를 눈여겨보고 있었지. 그래 그거, 그 수줍어하는 듯한 미소, 그게 될성부른 예술가 특유의 표정이야. 가까워진 기념으로, 건배! 기누 씨, 이 녀석 미남이지? 반하면 안 돼. 이 녀석이 화숙에 오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나는 둘째 미남이 되고 말았어"

호리키는 살빛이 거무스름하고 반듯한 얼굴이었으며, 화학생으로는 드물게 제대로 된 양복을 입고 넥타이 취향도 수수했으며, 머리털도 포마드를 발라 가운데서 착 갈라 놓고 있었습니다.

저는 낯선 자리이기도 해서 그저 무섭기만 해 팔짱을 꼈다 풀었다 하며, 그야말로 수줍어하는 듯한 미소만 짓고 있었지만, 맥주를 두세 잔 마시는 사이에 묘하게 풀려난 듯한 가벼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미술 학교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만, ……"

"아니, 시시해. 그런 데는 시시해. 학교는 시시해. 우리의 스승은 자연 속에 있다! 자연을 향한 파토스!"

그러나 저는 그가 하는 말에 조금도 존경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바보 같은 사람이다, 그림도 서툰 게 틀림없다, 그러나 놀기에는 좋은 상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때 태어나 처음으로 진짜 도회의 건달을 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저와 모양은 달라도 역시 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일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와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점에서만은 분명 같은 무리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익살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 채 부리고, 게다가 그 익살의 비참함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저와 근본에서 다른 데였습니다.

그저 놀 뿐이다, 놀이 상대로 사귀고 있을 뿐이다, 하고 늘 그를 업신여기며 때로는 그와 사귀는 것을 부끄러워하기까지 하면서도, 그와 함께 어울려 다니는 사이에 결국 저는 이 사내에게마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 사내를 좋은 사람, 보기 드문 호인이라고만 믿어 버려, 사람을 그토록 무서워하는 저도 아주 마음을 놓고 도쿄의 좋은 길잡이가 생겼다 정도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실은 혼자서는 전차를 타면 차장이 무섭고, 가부키자에 들어가고 싶어도 그 정면 현관의 붉은 융단이 깔린 계단 양옆에 늘어서 있는 안내 아가씨들이 무섭고, 식당에 들어가면 제 등 뒤에 조용히 서서 접시 비기를 기다리는 급사가 무섭고, 특히 셈을 치를 때, 아아, 어설픈 제 손짓, 저는 물건을 사고 돈을 건넬 때는 인색해서가 아니라 너무 긴장되고 너무 부끄럽고 너무 불안하고 무서워서 어질어질 어지럽고 세상이 캄캄해져 거의 반쯤 미친 심정이 되어, 값을 깎기는커녕 거스름돈 받는 것을 잊을 뿐 아니라 산 물건을 들고 오는 것을 잊은 적조차 자주 있을 정도였으니, 도저히 혼자서 도쿄 거리를 걸을 수 없어,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하루 종일 집 안에서 뒹굴고 있었다는 속사정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호리키에게 지갑을 맡기고 함께 다니면, 호리키는 값을 크게 깎고, 게다가 노는 데 밝다고 할까, 적은 돈으로 가장 큰 효과를 내는 셈치르기 솜씨를 보였고, 또 비싼 일 원 택시는 멀리하고 전차, 버스, 통통배 따위를 알맞게 나누어 써서 가장 짧은 시간에 목적지에 닿는 수완도 보였으며, 창녀 집에서 아침에 돌아오는 길에는 아무개라는 요릿집에 들러 아침 목욕을 하고 두부 냄비에 가볍게 술을 마시는 것이 값에 비해 호사스러운 기분이 든다고 몸소 가르쳐 주기도 하고, 그 밖에 포장마차의 규메시와 꼬치구이가 값싸면서도 자양이 풍부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취기가 빨리 오르는 데는 덴키브랑을 따를 것이 없다고 보증했으며, 아무튼 그 셈에 대해서는 저에게 한 번도 불안이나 두려움을 느끼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또 호리키와 사귀어 구원이 되는 것은, 호리키가 듣는 사람의 눈치 따위는 아예 무시하고 그 이른바 정열이 솟구치는 대로 (혹은 정열이란 상대의 처지를 무시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만) 온종일 시시한 수다를 이어 가서, 그 둘이 걷다가 지쳐 어색한 침묵에 빠질 걱정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그 무서운 침묵이 그 자리에 나타날까 봐 조심하느라, 본래 말수가 적은 제가 이때다 싶어 필사적으로 익살을 부려 왔는데, 이제 이 호리키라는 바보가 저도 모르게 그 익살 몫을 스스로 나서서 해 주고 있으니, 저는 대꾸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저 흘려들으며 이따금 설마, 따위로 말하며 웃고 있으면 되었던 것입니다.

술, 담배, 창녀, 그것은 모두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비록 한때나마 잊게 해 주는 꽤 좋은 수단이라는 것을 이윽고 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수단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제가 가진 것을 전부 팔아도 아깝지 않다는 마음까지 품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창녀라는 것이 사람도 여자도 아닌, 바보나 미친 사람처럼 보여, 그 품 안에서 저는 오히려 아주 마음을 놓고 푹 잘 수 있었습니다. 다들 슬플 만큼 참으로 티끌만큼도 욕심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같은 무리끼리의 친근함 같은 것을 느끼는지, 저는 늘 그 창녀들에게서 거북하지 않을 만큼의 자연스러운 호의를 받았습니다. 아무 셈속도 없는 호의, 강요가 아닌 호의,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베푸는 호의, 저에게는 그 바보나 미친 사람 같은 창녀들에게서 마리아의 둥근 빛을 실제로 본 밤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어렴풋한 하룻밤의 쉼을 구하러 거기에 가서, 그야말로 저와 「같은 무리」인 창녀들과 놀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저도 모르게 어떤 꺼림칙한 기운을 늘 몸에 감돌게 하게 된 모양으로, 이것은 저도 전혀 생각지 못한 이른바 「덤으로 붙은 것」이었는데, 차츰 그 「덤」이 또렷이 겉으로 떠올라 호리키에게 그것을 짚이고 나서 깜짝 놀랐고, 그러고는 언짢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곁에서 보고 속되게 말하자면, 저는 창녀에게서 여자 수업을 하고 게다가 요즘 부쩍 솜씨가 늘었다, 여자 수업은 창녀에게 받는 것이 가장 혹독하고 또 그만큼 효과가 오르는 법이라는데, 이미 저에게는 그 「여자에 능하다」는 냄새가 따라다니고, 여자는 (창녀만이 아니라) 본능으로 그것을 맡아 내고 다가온다, 그런 음란하고 떳떳지 못한 기운을 「덤으로 붙은 것」으로 받았고, 그러고는 그쪽이 제 쉼 따위보다 훨씬 눈에 띄어 버린 모양이었습니다.

호리키는 그것을 반은 인사치레로 말했겠지만, 그러나 저에게도 무겁게 짚이는 데가 있어, 이를테면 찻집 여자에게서 서툰 편지를 받은 기억도 있고, 사쿠라기초 집 옆의 장군네 스무 살쯤 되는 딸이 아침마다 제가 학교에 가는 시각에 볼일도 없어 보이는데 제집 대문을 옅은 화장을 하고 드나들었으며, 쇠고기를 먹으러 가면 제가 잠자코 있어도 그 집 하녀가, …… 또 늘 사 피우는 담뱃가게 딸이 건네준 담뱃갑 속에, …… 또 가부키를 보러 가서 옆자리 사람에게, …… 또 깊은 밤 시내 전차에서 제가 취해 잠들어 있는데, …… 또 뜻밖에 고향 친척 딸에게서 골똘한 듯한 편지가 오고, …… 또 누구인지 모를 처녀가 제가 없는 사이에 손수 만든 듯한 인형을, …… 제가 지극히 소극적이어서 어느 것이나 그것으로 끝난 이야기였고 그저 조각일 뿐 그 이상의 진전은 하나도 없었지만, 무언가 여자에게 꿈을 꾸게 하는 기운이 제 어딘가에 따라다닌다는 것은, 그것은 자랑이니 뭐니 하는 실없는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호리키 따위에게 짚이고 모욕에 가까운 씁쓸함을 느끼는 동시에, 창녀와 노는 일에도 갑자기 흥이 깨졌습니다.

호리키는 또 그 허세에서 나온 유행 좇기로 (호리키의 경우 그 밖의 까닭은 저로서는 지금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만) 어느 날 저를 공산주의 독서회라던가 하는 (R·S라고 했던가, 기억이 또렷하지 않습니다) 그런 비밀 연구회에 데려갔습니다. 호리키 같은 사람에게는 공산주의 비밀 모임도 그 「도쿄 안내」의 하나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른바 「동지」에게 소개되고 소책자를 한 부 사게 되었으며, 그러고는 윗자리의 몹시 못생긴 청년에게서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것이 뻔한 일처럼 여겨졌습니다. 그것은 그러하겠지만, 사람의 마음에는 더 알 수 없고 무서운 것이 있다. 욕심이라고 해도 모자라고, 허영이라고 해도 모자라고, 색과 욕이라고 둘을 나란히 놓아도 모자란다, 무엇인지 저도 모르지만 사람의 세상 밑바닥에 경제만이 아닌, 이상하게 귀신 이야기 같은 것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 귀신 이야기에 잔뜩 겁먹은 저로서는 이른바 유물론을 물이 낮은 데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으로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서 풀려나 푸른 잎을 향해 눈을 뜨고 희망의 기쁨을 느끼는 따위의 일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그 R·S (라고 했던 것 같은데 틀렸을지도 모릅니다) 라는 것에 나갔고, 「동지」들이 몹시 큰일이라도 난 듯 굳은 얼굴로 일 더하기 일은 이, 같은 거의 초보 셈법 같은 이론을 파고들고 있는 것이 우스워 견딜 수 없어, 그 저의 익살로 모임을 누그러뜨리려고 애썼고, 그 덕인지 차츰 연구회의 딱딱한 기색도 풀려, 저는 그 모임에 없어서는 안 될 인기인이라는 꼴까지 되어 갔던 모양입니다. 이 단순해 보이는 사람들은 저를 역시 자기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하고 낙천적인 익살꾼 「동지」쯤으로 여겼을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렇다면 저는 이 사람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속이고 있었던 셈입니다. 저는 동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임에 늘 빠지지 않고 나가 모두에게 익살로 시중을 들어 왔습니다.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그 사람들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마르크스로 맺어진 친근함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비합법. 저에게는 그것이 어렴풋이 즐거웠던 것입니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합법이라는 것이 도리어 무섭고 (거기에서는 밑을 알 수 없이 센 것이 느껴집니다) 그 속내가 알 수 없어, 도저히 그 창문 없는 밑바닥이 서늘한 방에는 앉아 있을 수 없고, 바깥이 비합법의 바다라 해도 거기에 뛰어들어 헤엄치다 이윽고 죽는 편이 저에게는 차라리 홀가분할 듯했습니다.

그늘진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세상에서 비참한 패배자, 못된 자를 가리켜 이르는 말인 듯한데, 저는 저 자신을 태어날 때부터 그늘진 사람인 듯이 여기고 있어서, 세상에서 저 사람은 그늘진 사람이라고 손가락질받는 이를 만나면 저는 반드시 마음이 상냥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저의 「상냥한 마음」은 스스로도 넋을 잃을 만큼 상냥한 마음이었습니다.

또 죄인 의식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저는 이 사람의 세상에서 한평생 그 의식에 시달리면서도, 그러나 그것은 저의 조강지처 같은 좋은 길동무여서, 그놈과 단둘이 쓸쓸히 놀며 장난치는 것도 제가 살아가는 몸가짐 가운데 하나였는지도 모르고, 또 흔히 정강이에 상처를 지닌 몸이라는 말도 있는 듯한데, 그 상처는 제가 갓난아이 때부터 저절로 한쪽 정강이에 나타나 자라면서 낫기는커녕 점점 깊어지기만 해 뼈에까지 이르렀고, 밤마다의 아픔은 천 가지로 바뀌는 지옥이라고는 하지만, 그러나 (이것은 몹시 묘한 말입니다만) 그 상처는 차츰 제 살과 피보다 가까워져, 그 상처의 아픔은 곧 상처가 살아 있는 느낌, 또는 애정의 속삭임처럼 여겨지기까지 하는, 그런 사내에게 그 지하 운동 무리의 기운이 이상하게 마음 놓이고 편안해서, 그러니까 그 운동의 본디 목적보다 그 운동의 살결이 저에게 맞는 느낌이었던 것입니다. 호리키의 경우는 그저 얼간이의 놀림거리로, 한 번 저를 소개하러 그 모임에 간 것이 전부였고, 마르크스주의자는 생산 쪽 연구와 함께 소비 쪽 살핌도 필요하다느니 하는 서툰 말장난을 하고는 그 모임에 얼씬도 하지 않았으며, 걸핏하면 저를 그 소비 쪽 살핌으로만 꾀어내려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무렵에는 갖가지 유형의 마르크스주의자가 있었습니다. 호리키처럼 허영에서 나온 유행 좇기로 그것을 자칭하는 자도 있었고, 또 저처럼 그저 비합법의 냄새가 마음에 들어 거기 눌러앉은 자도 있었으니, 만약 이런 속내가 마르크스주의를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 들켰다면 호리키도 저도 불같은 노여움을 사서 비열한 배신자로 그 자리에서 쫓겨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도, 또 호리키조차도 좀처럼 제명 처분을 당하지 않았고, 특히 저는 그 비합법 세계에서는 합법인 신사들의 세계에서보다 오히려 거침없이 이른바 「건강하게」 굴 수 있었으므로, 될성부른 「동지」로서 웃음이 날 만큼 지나치게 비밀스러운 갖가지 심부름을 맡게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또 실제로 저는 그런 심부름을 한 번도 마다한 적이 없고 태연히 무엇이든 맡았으며, 이상하게 굳어져서 개 (동지들은 경찰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에게 수상히 여겨져 검문을 받고 그르치는 일도 없었고, 웃으면서 또 남을 웃기면서 그 위험한 (그 운동의 무리는 큰일이라도 난 듯 긴장하고 탐정 소설을 서툴게 흉내 내는 짓까지 하며 지나치게 조심했고, 그러면서 저에게 맡기는 일은 참으로 어이가 없을 만큼 시시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그 심부름을 한껏 위험하게 여기며 힘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일을 아무튼 정확히 해냈습니다. 그 무렵 제 심정으로는 당원이 되어 붙잡히고 설령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살게 된다 해도 태연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실생활」이라는 것을 무서워하며 밤마다 잠 못 드는 지옥에서 신음하기보다 차라리 감옥 쪽이 편할지도 모른다고까지 여기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사쿠라기초 별장에서 손님이니 외출이니 해서, 같은 집에 있어도 사나흘씩 저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아무래도 아버지가 거북하고 무서워서 이 집을 나가 어디 하숙이라도, 하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말하지 못하고 있던 참에, 아버지가 그 집을 팔아 버릴 모양이라는 것을 별장지기 영감에게서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의원 임기도 슬슬 끝나 가고 여러 까닭이 있었겠지만, 이제 더는 선거에 나설 뜻도 없는 듯했고, 게다가 고향에 한 채 은거할 집을 짓기도 해서 도쿄에 미련도 없는 듯했으며, 고작 고등학교 학생 하나에 지나지 않는 저를 위해 저택과 부리는 사람을 마련해 두는 것도 헛일이라고 여기셨는지 (아버지의 마음 또한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저에게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그 집은 곧 남의 손에 넘어갔고, 저는 혼고 모리카와초의 센유칸이라는 낡은 하숙의 어둑한 방으로 옮겨, 그러고는 이내 돈에 쪼들렸습니다.

그때까지는 아버지에게서 다달이 정해진 액수의 용돈을 받았고, 그것은 이삼 일이면 없어지곤 했지만 담배도 술도 치즈도 과일도 늘 집에 있었으며, 책이며 문방구며 그 밖에 옷차림에 관한 것 일체를 언제든 근처 가게에서 이른바 「외상」으로 구할 수 있었고, 호리키에게 메밀국수나 튀김덮밥을 대접해도 아버지가 잘 봐주는 동네 가게라면 저는 잠자코 그 가게를 나와도 괜찮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갑자기 하숙에서 혼자 사는 처지가 되어 무엇이든 다달이 부쳐 오는 정해진 돈으로 꾸려야 하게 되니 저는 쩔쩔맸습니다. 부쳐 온 돈은 역시 이삼 일이면 사라져 버려 저는 소름이 끼치고 막막함에 미칠 지경이 되어, 아버지, 형, 누나 들에게 번갈아 돈을 부탁하는 전보와 「자세한 건 편지로」 하는 편지 (그 편지에서 호소한 사정은 죄다 익살로 지어낸 것이었습니다. 남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려면 먼저 그 사람을 웃기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를 잇달아 보내는 한편, 또 호리키에게 배워 부지런히 전당포를 드나들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늘 돈에 쪼들렸습니다.

결국 저에게는 아무 연고도 없는 하숙에서 혼자 「생활」해 갈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하숙의 그 방에 혼자 가만히 있는 것이 무서워, 금방이라도 누군가에게 덮쳐져 한 대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거리로 뛰쳐나가서는 그 운동의 심부름을 하거나, 혹은 호리키와 함께 싼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거나 하며, 학업도 그림 공부도 거의 내팽개쳤고, 고등학교에 들어간 지 두 해째 십일월에 저보다 나이 많은 유부녀와 동반 자살 사건을 일으켜 제 신세는 온통 달라졌습니다.

학교는 빠지고 학과 공부도 조금도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묘하게 시험 답안에 요령이 있는 데가 있어 그럭저럭 그때까지는 고향의 집안사람들을 속여 넘겨 왔지만, 그러나 이제 슬슬 출석 일수가 모자란다는 것 따위가 학교에서 남몰래 고향의 아버지께 알려지고 있는 모양으로, 아버지를 대신해 큰형이 위엄 있는 문장의 긴 편지를 저에게 보내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제가 곧바로 겪는 괴로움은 돈이 없다는 것과, 그리고 그 운동의 심부름이 도저히 놀이 삼아서는 할 수 없을 만큼 거세고 바빠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중앙 지구라고 했던가, 무슨 지구라고 했던가, 아무튼 혼고, 고이시카와, 시타야, 간다, 그 언저리 학교 전부의 마르크스 학생 행동대장이라는 것이 저였던 것입니다. 무장봉기라는 말을 듣고 작은 칼을 사서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연필 깎기에도 모자랄, 가냘픈 칼이었습니다) 그것을 레인코트 주머니에 넣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이른바 「연락」을 대는 것이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푹 자고 싶다, 그러나 돈이 없습니다. 게다가 P (당을 그런 은어로 불렀다고 기억합니다만 혹 틀렸을지도 모릅니다) 쪽에서는 숨 돌릴 틈도 없을 만큼 잇달아 심부름 부탁이 옵니다. 제 병약한 몸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본디 비합법이라는 흥미만으로 그 무리의 심부름을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그야말로 농담이 참말이 되듯 몹시 바빠지니, 저는 남몰래 P의 사람들에게 그건 사람을 잘못 짚은 것 아닙니까, 당신들 직계인 사람들에게 시키면 어떻습니까, 하는 언짢은 마음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어 달아났습니다. 달아나 놓고도 그래도 기분이 좋지는 않아 죽기로 했습니다.

그 무렵 저에게 각별한 호의를 보이는 여자가 셋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가 묵는 센유칸의 딸이었습니다. 이 처녀는 제가 그 운동 심부름으로 녹초가 되어 돌아와 밥도 먹지 않고 잠들어 버리면, 반드시 편지지와 만년필을 들고 제 방에 와서,

"미안해요. 아래층에서는 동생들이 시끄러워서 편지도 느긋이 못 쓰겠어요"

하며 무언가 제 책상에 앉아 한 시간 넘게 쓰는 것입니다.

저도 모르는 척하고 자고 있으면 좋을 것을, 아무래도 그 처녀가 저에게 무언가 말해 주기를 바라는 낌새여서, 그 받아 주는 시중의 정신을 발휘해, 정말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지만 녹초가 된 몸에 으랏차 기합을 넣어 엎드려 누워 담배를 피우며,

"여자에게서 온 러브레터로 목욕물을 데워 목욕한 남자가 있다더군요"

"어머, 싫어라. 당신이죠?"

"우유를 데워 마신 적은 있습니다"

"영광이네요, 마셔 줘요"

어서 이 사람 안 가려나, 편지라니 뻔히 보이는데. 낙서나 하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보여 줘요"

하고 죽어도 보고 싶지 않은 심정으로 그렇게 말하면, 어머 싫어요, 어머 싫어요, 하며 그 기뻐하는 꼴이 몹시 꼴사나워 흥이 깨질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심부름이라도 시켜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전찻길 약국에 가서 칼모틴을 좀 사다 주지 않겠어요? 너무 지쳐서 얼굴이 달아올라 오히려 잠이 안 오는군요. 미안해요. 돈은, ……"

"괜찮아요, 돈 따위"

기뻐하며 일어섭니다.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 결코 여자를 풀 죽게 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여자는 남자에게 부탁을 받으면 기뻐한다는 것도 저는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여자고등사범 문과생인 이른바 「동지」였습니다. 이 사람과는 그 운동의 심부름으로 싫어도 날마다 얼굴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의논이 끝난 뒤에도 그 여자는 언제까지나 저를 따라다니며 마구 저에게 물건을 사 주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진짜 누나라고 여겨도 좋아"

그 느끼함에 몸서리치며 저는,

"그럴 생각입니다"

하고 시름을 머금은 미소를 지어 대답합니다. 아무튼 성나게 하면 무섭다, 어떻게든 얼버무려야 한다, 하는 생각 하나 때문에 저는 더욱 그 못생기고 언짢은 여자에게 시중을 들었고, 그러고는 물건을 얻어서는 (그 물건들은 정말이지 취향이 나쁜 것뿐이어서 저는 대개 그것을 곧 꼬치구이집 주인 같은 이에게 줘 버렸습니다) 기쁜 얼굴을 하고 농담을 해서 웃겼는데, 어느 여름밤 아무래도 떨어지지 않기에 거리의 어두운 데서 그 사람이 돌아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입을 맞춰 주었더니, 딱하게도 미친 듯이 달아올라 자동차를 불러, 그 사람들이 운동을 위해 비밀리에 빌려 둔 듯한 빌딩 사무실 같은 좁은 서양식 방으로 데려가 아침까지 큰 소동이 벌어져, 어이없는 누나로군, 하고 저는 남몰래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하숙집 딸이며 이 「동지」며, 어떻게 해도 날마다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형편이었으므로, 여태까지의 갖가지 여자들처럼 잘 피하지 못하고 그만 질질 끌려, 그 불안한 마음에서 이 둘의 비위를 그저 애써 맞추느라 이제 저는 꽁꽁 묶인 꼴이 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무렵 또 저는 긴자의 어느 큰 카페 여급에게서 뜻밖의 은혜를 입어, 딱 한 번 만났을 뿐인데도 그 은혜에 매여 역시 꼼짝 못 할 만큼 걱정과 까닭 모를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이 되자 저도 굳이 호리키의 안내에 기대지 않아도 혼자 전차도 탈 수 있고 또 가부키자에도 갈 수 있으며, 혹은 무늬 있는 기모노를 입고 카페에도 들어갈 만큼의 얼마간 뻔뻔함을 꾸밀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마음으로는 여전히 사람의 자신감과 폭력을 수상히 여기고 무서워하고 괴로워하면서도, 겉으로만은 조금씩 남과 정색한 인사를, 아니 아닙니다, 저는 역시 패배한 익살의 괴로운 웃음을 곁들이지 않고는 인사할 수 없는 성미입니다만, 아무튼 정신없이 허둥거리는 인사나마 그럭저럭 할 수 있을 만큼의 「재주」를 그 운동으로 뛰어다닌 덕? 아니면 여자의? 아니면 술? 그러나 무엇보다 돈에 쪼들린 덕에 익히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디에 있어도 무서워서, 차라리 큰 카페에서 많은 취객이며 여급이며 급사들에게 부대끼며 섞여 들 수 있다면 늘 쫓기는 듯한 이 마음도 가라앉지 않을까, 하고 십 원을 들고 긴자의 그 큰 카페에 혼자 들어가 웃으며 상대 여급에게,

"십 원밖에 없으니까, 그런 줄 알아요"

하고 말했습니다.

"걱정 없어예"

어딘가 간사이 사투리가 섞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마디가 묘하게 떨고 있던 제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습니다. 아니요, 돈 걱정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사람 곁에 있는 일에 걱정이 필요 없을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저는 술을 마셨습니다. 그 사람에게 마음을 놓고 있었으므로 오히려 익살을 부릴 마음도 나지 않아, 제 본바탕의 말 없고 음침한 데를 감추지 않고 드러낸 채 잠자코 술을 마셨습니다.

"이런 거, 좋아하시능교?"

여자는 갖가지 요리를 제 앞에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술만? 나도 마실래예"

가을의 추운 밤이었습니다. 저는 쓰네코 (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기억이 흐려져 확실하지 않습니다. 함께 죽으려던 상대의 이름조차 잊어버리는 저인 것입니다) 가 이른 대로 긴자 뒷골목의 어느 포장마차 초밥집에서 조금도 맛없는 초밥을 먹으며 (그 사람의 이름은 잊어도 그때 초밥의 맛없음만은 어쩐 일인지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구렁이 얼굴을 닮은 얼굴에 빡빡 깎은 머리의 주인이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자못 솜씨 좋은 척 얼버무리면서 초밥을 쥐던 모습도 눈앞에 보이듯 또렷이 떠올라, 뒷날 전차 같은 데서 어라 본 얼굴인데 하고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뭐야 그때 그 초밥집 주인을 닮은 거로군, 하고 깨닫고 쓴웃음을 지은 적도 두세 번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도, 또 얼굴 생김새마저 기억에서 멀어진 지금도 그 초밥집 주인의 얼굴만은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만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어지간히 그때 초밥이 맛없고 저에게 추위와 괴로움을 준 모양입니다. 애초에 저는 맛있는 초밥을 낸다는 가게에 남에게 이끌려 가서 먹어도 맛있다고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너무 큰 것입니다.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로 야무지게 쥘 수는 없는 걸까, 하고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혼조의 목수 집 이 층을 그 사람이 빌려 쓰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이 층에서 평소의 제 우울한 마음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심한 치통에 시달리기라도 하듯 한 손으로 뺨을 누른 채 차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그런 꼴이 오히려 그 사람 마음에 든 듯했습니다. 그 사람도 몸 둘레에 차가운 늦가을 바람이 불고 낙엽만이 어지러이 날리는, 아주 홀로 떨어져 있는 느낌의 여자였습니다.

함께 누워 그 사람은, 저보다 두 살 위라는 것, 고향은 히로시마, 나한테는 남편이 있어예, 히로시마에서 이발소를 했지예, 지난해 봄 함께 도쿄로 도망쳐 나왔는데 남편은 도쿄에서 변변한 일도 하지 않다가 사기죄로 걸려 형무소에 있어예, 나는 날마다 이것저것 넣어 주러 형무소에 다녔는데 내일부터는 그만둘랍니더, 하고 이야기하는 것이었지만, 저는 어쩐 일인지 여자의 신세 이야기라는 것에는 조금도 흥미를 갖지 못하는 성미라, 그것은 여자가 이야기를 서툴게 하는 탓인지, 그러니까 이야기의 무게를 두는 자리를 잘못 잡는 탓인지, 아무튼 저에게는 언제나 마이동풍이었던 것입니다.

쓸쓸하다.

저에게는 여자의 천만 마디 신세 이야기보다 그 한마디 중얼거림 쪽이 마음에 와닿으리라고 기대하고 있어도, 이 세상 여자에게서 끝내 한 번도 저는 그 말을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을 괴이하다고도 이상하다고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말로 「쓸쓸하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말 없는 지독한 쓸쓸함을 몸 바깥에 한 치쯤 되는 너비의 기류처럼 두르고 있어서, 그 사람에게 다가붙으면 이쪽 몸도 그 기류에 감싸여, 제가 지닌 다소 가시 돋친 우울의 기류와 알맞게 녹아들어 「물 밑 바위에 내려앉는 마른 잎」처럼 이 몸은 두려움에서도 불안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바보 같은 창녀들의 품 안에서 마음 놓고 푹 자던 느낌과는 또 아주 달리 (무엇보다 그 창부들은 쾌활했습니다) 그 사기죄 죄인의 아내와 지낸 하룻밤은 저에게 행복한 (이런 엄청난 말을 아무 망설임 없이 받아들여 쓰는 일은 이 수기 전체에서 다시는 없을 작정입니다) 풀려난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단 하룻밤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 벌떡 일어나서는 저는 본래의 경박하고 꾸며 낼 수 있는 익살꾼이 되어 있었습니다. 겁쟁이는 행복조차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에도 다치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있는 것입니다. 상처 입기 전에 어서 이대로 헤어지고 싶다고 조바심이 나서, 그 익살의 연막을 둘러쳤던 것입니다.

"돈 떨어지면 인연도 끝이라는 말 있잖아, 그건 말이야, 풀이가 거꾸로야. 돈이 없어지면 여자에게 차인다는 뜻이 아니란 말이지. 남자에게 돈이 없어지면 남자는 그저 저절로 기가 죽어서 못 쓰게 되고, 웃는 소리에도 힘이 없어지고, 그러고는 묘하게 비뚤어지기도 해서, 끝내는 막가게 되어 남자 쪽에서 여자를 찬다, 반쯤 미쳐서 차고 차고 끝까지 찬다는 뜻이란 말이야, 가나자와 대사전이라는 책에 따르면 말이지, 딱하게도. 나도 그 심정은 알겠지만"

아마 그런 식의 바보 같은 소리를 해서 쓰네코를 웃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래 있어 봐야 소용없다, 위험하다 싶어 세수도 하지 않고 얼른 물러 나왔는데, 그때 제가 한 「돈 떨어지면 인연도 끝」이라는 엉터리 소리가 뒷날에 이르러 뜻밖의 걸림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고서 한 달, 저는 그날 밤의 은인과 만나지 않았습니다. 헤어지고 날이 갈수록 기쁨은 옅어지고, 잠깐의 은혜를 입은 것이 오히려 까닭 없이 두려워, 제멋대로 심한 얽매임을 느끼게 되어, 그 카페의 셈을 그때 전부 쓰네코가 물게 해 버렸다는 속된 일마저 차츰 마음에 걸리기 시작해, 쓰네코도 역시 하숙집 딸이나 그 여자고등사범과 마찬가지로 저를 협박할 뿐인 여자처럼 여겨져,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쓰네코에게 겁을 먹고 있었으며, 게다가 저는 함께 잔 적이 있는 여자를 다시 만나면 그때 대뜸 무언가 불같이 성을 낼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견딜 수 없어 만나는 것을 몹시 귀찮아하는 성미였으므로, 더욱 긴자는 멀리하는 꼴이 되었지만, 그러나 그 귀찮아하는 성미는 결코 저의 교활함이 아니라, 여자라는 것은 잔 뒤의 일과 아침에 일어난 뒤의 일 사이에 티끌만 한 이어짐도 두지 않고 아주 잊어버린 듯 두 세계를 깔끔하게 끊어 놓고 산다는 이상한 일을 아직 잘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십일월 말, 저는 호리키와 간다의 포장마차에서 싼 술을 마셨는데, 이 못된 벗은 그 포장마차를 나서고도 또 어딘가에서 마시자고 우기며, 이제 우리에게는 돈이 없는데도 그래도 마시자, 마시자고, 하고 끈질기게 구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취해서 대담해져 있기도 했지만,

"좋아, 그러면 꿈의 나라로 데려가지. 놀라지 마라, 주지육림이라는, ……"

"카페냐?"

"그래"

"가자!"

하는 식이 되어 둘이 시내 전차를 탔는데, 호리키는 들떠서,

"나는 오늘 밤 여자에 목말라 있단 말이다. 여급에게 입 맞춰도 되나"

저는 호리키가 그런 취한 짓을 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호리키도 그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저에게 그렇게 다짐을 두는 것이었습니다.

"괜찮지? 입 맞춘다. 내 옆에 앉은 여급에게 꼭 입 맞춰 보이겠다. 괜찮지?"

"상관없겠지"

"고맙다! 나는 여자에 목말라 있단 말이다"

긴자 사초메에서 내려 그 이른바 주지육림의 큰 카페에 쓰네코를 동아줄 삼아 거의 빈털터리로 들어가, 비어 있는 자리에 호리키와 마주 앉은 순간 쓰네코와 또 한 사람의 여급이 달려와, 그 또 한 사람의 여급이 제 곁에, 그리고 쓰네코는 호리키 곁에 털썩 앉았으므로 저는 흠칫했습니다. 쓰네코는 이제 곧 입맞춤을 당한다.

아깝다는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는 본디 무엇을 가지려는 욕심이라는 것이 옅고, 또 이따금 어렴풋이 아까워하는 마음이 있어도 그 소유권을 당당히 주장하며 남과 다툴 만한 기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뒷날 저는 저의 사실혼 아내가 범해지는 것을 잠자코 보고 있은 적조차 있었을 정도입니다.

저는 사람들의 다툼에 될 수 있는 대로 닿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쓰네코와 저는 하룻밤만의 사이입니다. 쓰네코는 제 것이 아닙니다. 아깝다느니 하는 주제넘은 욕심을 제가 가질 수 있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흠칫했습니다.

제 눈앞에서 호리키의 맹렬한 입맞춤을 받을 그 쓰네코의 신세를 딱하게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호리키에게 더럽혀진 쓰네코는 저와 헤어져야 하게 되겠지, 게다가 저에게도 쓰네코를 붙들어 둘 만한 적극적인 열은 없다, 아아, 이제 이것으로 끝이구나, 하고 쓰네코의 불행에 한순간 흠칫했지만, 곧 저는 물처럼 순순히 단념하고 호리키와 쓰네코의 얼굴을 견주어 보며 히죽히죽 웃었습니다.

그러나 일은 참으로 뜻밖에도 더 나쁘게 굴러갔습니다.

"그만두겠다!"

하고 호리키는 입을 일그러뜨리며 말하고,

"나도 이런 궁상맞은 여자에게는, ……"

하고 아주 질렸다는 듯 팔짱을 끼고 쓰네코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술을. 돈은 없어"

저는 낮은 소리로 쓰네코에게 말했습니다. 그야말로 흠뻑 마셔 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른바 속물의 눈으로 보면 쓰네코는 취객의 입맞춤에도 값하지 않는, 그저 초라하고 궁상맞은 여자였던 것입니다. 뜻밖이라고도 의외라고도 할, 저에게는 벼락에 맞아 부서지는 심정이었습니다. 저는 여태 없었을 만큼 얼마든지 얼마든지 술을 마시고 흐물흐물 취해 쓰네코와 얼굴을 마주 보며 슬프게 마주 웃었고, 과연 그런 말을 듣고 보니 이 사람은 묘하게 지치고 궁상맞을 뿐인 여자로군, 하고 생각하는 동시에 돈 없는 자들끼리의 친근함이 (가난과 부의 어긋남은 낡은 듯해도 역시 이야기의 영원한 주제 가운데 하나라고 저는 지금은 여깁니다만) 그놈이, 그 친근한 느낌이 가슴에 북받쳐 올라 쓰네코가 애틋해져, 태어나 이때 처음으로 제 쪽에서 앞장서서, 미약하나마 사랑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게웠습니다. 앞뒤를 잃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이렇게 넋을 잃을 만큼 취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눈을 떠 보니 머리맡에 쓰네코가 앉아 있었습니다. 혼조의 목수 집 이 층 방에 누워 있었던 것입니다.

"돈 떨어지면 인연도 끝이라 하시길래 농담인 줄 알았더니 진짜였능교. 와 주지도 않고. 참 까다로운 끝이네예. 내가 벌어 주면 안 되겠능교"

"안 돼"

그러고서 여자도 자리에 누웠고, 새벽녘 여자의 입에서 「죽음」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왔는데, 여자도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던 듯했고, 또 저도 세상에 대한 두려움, 성가심, 돈, 그 운동, 여자, 학업, 생각하면 도저히 이 위로 더 견디며 살아갈 수 없을 듯해 그 사람의 제안에 선선히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아직 실감으로서 「죽자」는 각오는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딘가에 「장난」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날 오전, 둘은 아사쿠사 로쿠쿠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찻집에 들어가 우유를 마셨습니다.

"당신이 내 주이소"

저는 일어나 소맷자락에서 동전 지갑을 꺼내 열었는데, 동전이 세 닢, 부끄러움보다 참담함에 사로잡혀 이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센유칸의 제 방, 교복과 이불만이 남아 있을 뿐 그 밖에는 이제 저당 잡힐 만한 것 하나 없는 황량한 방, 그 밖에는 제가 지금 입고 다니는 무늬 옷과 망토, 이것이 제 현실이다, 살아갈 수 없다, 고 똑똑히 깨달았습니다.

제가 쩔쩔매고 있으니 여자도 일어나 제 지갑을 들여다보고,

"어머, 겨우 그것뿐잉교?"

아무 뜻 없는 목소리였지만 이것이 또 뼛속에 사무칠 만큼 아팠습니다. 처음으로 제가 사랑한 사람의 목소리였던 만큼 아팠던 것입니다. 그것뿐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동전 세 닢은 애초에 돈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가 여태 맛본 적 없는 묘한 모욕이었습니다. 도저히 살아 있을 수 없는 모욕이었습니다. 결국 그 무렵의 저는 아직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무리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겠지요. 그때 저는 스스로 나서서라도 죽자고 실감으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그날 밤 저희는 가마쿠라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여자는 이 허리띠는 가게 동무에게 빌린 것이라면서 띠를 풀어 개어 바위 위에 놓았고, 저도 망토를 벗어 같은 자리에 놓고 함께 물에 들어갔습니다.

여자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저만 살아났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학생이기도 했고 또 아버지 이름에도 얼마간 이른바 뉴스 가치가 있었는지, 신문에도 제법 크게 다루어진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바닷가 병원에 들여보내졌고, 고향에서 친척 한 사람이 달려와 이런저런 뒤처리를 해 주었으며, 그러고는 고향의 아버지를 비롯해 온 집안이 몹시 노했으니 이것으로 본가와는 의절이 될지도 모른다고 저에게 이르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일보다 죽은 쓰네코가 그리워 훌쩍훌쩍 울기만 했습니다. 정말로 여태까지의 사람 가운데 그 궁상맞은 쓰네코만을 좋아했으니까요.

하숙집 딸에게서 단카를 오십 수나 죽 적은 긴 편지가 왔습니다. 「살아 주오」라는 이상한 말로 시작하는 단카만 오십 수였습니다. 또 제 병실에 간호사들이 밝게 웃으며 놀러 와, 제 손을 꼭 쥐고 돌아가는 간호사도 있었습니다.

제 왼쪽 폐에 탈이 있다는 것이 그 병원에서 발견되었고, 이것이 저에게 몹시 다행한 일이 되어, 이윽고 제가 자살 방조죄라는 죄명으로 병원에서 경찰로 끌려갔을 때 경찰에서는 저를 환자로 다루어 특별히 보호실에 넣어 주었습니다.

깊은 밤, 보호실 옆 숙직실에서 밤새워 지키던 늙은 순사가 사이의 문을 살며시 열고,

"이봐!"

하고 저를 부르더니,

"춥겠구나. 이리 와서 쬐어라"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일부러 풀이 죽은 척 숙직실에 들어가 의자에 걸터앉아 화로를 쬐었습니다.

"역시 죽은 여자가 그립겠지"

"예"

일부러 꺼질 듯한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게 바로 인정이라는 것이지"

그는 차츰 거드름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여자와 관계를 맺은 것은 어디냐"

거의 재판관처럼 무게를 잡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저를 어린아이로 얕보고, 가을밤의 심심풀이로 마치 자기가 조사의 책임자라도 되는 양 꾸미며 저에게서 음담 같은 이야기를 끌어내려는 속셈인 듯했습니다. 저는 재빨리 그것을 알아차리고,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그런 순사의 「비공식 심문」에는 일절 대답을 거부해도 괜찮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긴 가을밤에 흥을 돋우려고 저는 끝까지 얌전하게, 그 순사야말로 조사의 책임자이고 형벌의 가볍고 무거움을 정하는 것도 그 순사의 뜻 하나에 달려 있다는 것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 듯한 이른바 성의를 겉에 드러내며, 그의 음탕한 호기심을 어지간히 채워 줄 만큼의 적당한 「진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음, 그것으로 대충 알았다. 무엇이든 정직하게 대답하면 우리 쪽에서도 그만큼 봐준다"

"고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거의 신들린 연기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에게는 아무것도, 하나도 득이 되지 않는 열연이었습니다.

날이 밝고 저는 서장에게 불려 갔습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조사인 것입니다.

문을 열고 서장실에 들어선 순간,

"오, 잘생긴 사내로군. 이건 네가 나쁜 게 아니다. 이렇게 잘생기게 낳은 네 어미가 나쁜 거지"

살빛이 거무스름하고 대학을 나온 듯한 느낌의 아직 젊은 서장이었습니다. 대뜸 그런 말을 들으니 저는 제 얼굴 한쪽에 큼직한 붉은 점이라도 있는 듯한, 흉한 불구자라도 된 듯한 비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유도나 검도 선수 같은 서장의 조사는 참으로 시원시원해서, 그 깊은 밤 늙은 순사의 은밀하고 지독히 끈질긴 호색의 「조사」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심문이 끝나고 서장은 검사국에 보낼 서류를 쓰면서,

"몸을 튼튼히 해야겠어. 피 섞인 가래가 나오는 모양이던데"

하고 말했습니다.

그날 아침 묘하게 기침이 나서 저는 기침이 날 때마다 손수건으로 입을 가렸는데, 그 손수건에 붉은 싸라기가 내린 듯 피가 묻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목에서 나온 피가 아니라, 어젯밤 귀밑에 난 작은 종기를 만지작거려 그 종기에서 나온 피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밝히지 않는 편이 편할 것 같은 느낌이 문득 들었으므로 그저,

"예"

하고 눈을 내리깔고 얌전한 척 대답해 두었습니다.

서장은 서류를 다 쓰고,

"기소가 될지 어떨지, 그것은 검사님이 정할 일이지만, 네 신원을 맡아 줄 사람에게 전보나 전화로 오늘 요코하마 검사국에 와 달라고 부탁하는 편이 좋겠다. 누군가 있겠지, 네 보호자라든가 보증인이라든가 하는 사람이"

아버지의 도쿄 별장에 드나들던 서화 골동품상 시부타라는, 저희와 같은 고장 사람이고 아버지의 알랑쇠 노릇도 하던 땅딸막한 마흔 살 독신 남자가 제 학교 보증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 남자의 얼굴이, 특히 눈매가 넙치를 닮았다고 해서 아버지는 늘 그 남자를 넙치라고 불렀고, 저도 그렇게 부르는 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저는 경찰의 전화번호부를 빌려 넙치네 집 전화번호를 찾아 나오기에 넙치에게 전화를 걸어 요코하마 검사국에 와 달라고 부탁했더니, 넙치는 사람이 달라진 듯 으스대는 말투였지만 그래도 아무튼 맡아 주었습니다.

"이봐, 그 전화기는 곧 소독하는 게 좋겠어. 아무래도 피 섞인 가래가 나온다니까"

제가 다시 보호실로 물러난 뒤, 순사들에게 그렇게 이르는 서장의 큰 목소리가 보호실에 앉아 있는 제 귀에까지 들려왔습니다.

한낮이 지나 저는 가느다란 삼끈으로 허리가 묶였고, 그것은 망토로 가리는 것을 허락받았지만, 그 삼끈 끝을 젊은 순사가 단단히 쥐고 둘이 함께 전차로 요코하마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조금의 불안도 없었고, 그 경찰의 보호실도 늙은 순사도 그립기만 했으니, 아아 저는 어째서 이럴까요, 죄인으로 묶이면 오히려 마음이 놓이고 느긋해져서, 그때의 일을 이렇게 적으면서도 정말 후련하고 즐거운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절의 그리운 기억 가운데에도 딱 하나, 식은땀이 서 말 나는, 한평생 잊을 수 없는 비참한 실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검사국의 어둑한 방에서 검사의 간단한 조사를 받았습니다. 검사는 마흔쯤 되는 조용한 (만약 제가 잘생겼다 해도 그것은 말하자면 음탕한 잘생김이었을 것이 틀림없지만, 그 검사의 얼굴은 올바른 잘생김이라고나 하고 싶은, 총명하고 고요한 기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자잘하게 굴지 않는 사람 같았으므로 저도 아주 마음을 놓고 멍하니 진술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기침이 나와 저는 소맷자락에서 손수건을 꺼냈고, 문득 그 피를 보고는 이 기침도 또 무언가 쓸모가 있을지 모른다는 야비한 수를 내어 콜록, 콜록 두 번쯤 덤으로 가짜 기침을 요란하게 덧붙이고,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검사의 얼굴을 힐끔 본 순간,

"정말인가?"

조용한 미소였습니다. 식은땀이 서 말, 아니요, 지금 떠올려도 빙글빙글 돌고 싶어집니다. 중학 시절 그 바보 다케이치에게 일부러, 일부러, 하는 말과 함께 등을 찔려 지옥으로 걷어차인 그때의 심정 이상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은 기분입니다. 그것과 이것, 둘이 제 평생 연기의 큰 실패 기록입니다. 검사의 그런 조용한 업신여김을 당하느니 차라리 저는 십 년 형을 선고받는 편이 나았겠다고 여기는 일마저 이따금 있을 정도인 것입니다.

저는 기소 유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기쁘지 않고 세상에 다시없이 비참한 심정으로 검사국 대기실 긴 의자에 걸터앉아, 저를 데려갈 넙치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등 뒤 높은 창으로 저녁놀 진 하늘이 보이고, 갈매기가 「女」라는 글자 같은 모양으로 날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 수기 1

다케이치의 예언은 하나는 맞고 하나는 빗나갔습니다. 반해진다는 명예롭지 못한 예언 쪽은 맞았지만, 틀림없이 훌륭한 화가가 된다는 축복의 예언은 빗나갔습니다.

저는 겨우 조잡한 잡지의 이름 없는 서툰 만화가가 될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가마쿠라 일로 고등학교에서는 쫓겨났고, 저는 넙치네 집 이 층 세 첩 방에서 먹고 자며, 고향에서는 다달이 지극히 적은 돈이, 그것도 저에게 곧바로가 아니라 넙치에게 남몰래 보내져 오는 모양이었는데 (게다가 그것은 고향의 형들이 아버지 몰래 보내 주는 형식이었던 듯합니다) 그뿐, 그 밖에는 고향과의 이어짐이 아주 끊겨 버렸고, 그러고는 넙치는 늘 기분이 언짢아 제가 알랑거리며 웃어도 웃지 않았으니, 사람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쉽게, 그야말로 손바닥 뒤집듯 달라질 수 있는 것인가 하고 어이가 없다 못해 오히려 우습게 여겨질 만큼 심하게 달라진 모습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아무튼 나가지 말아 주세요"

그 말만 저에게 하고 있었습니다.

넙치는 저에게 자살할 낌새가 있다고 노려보고 있는 듯, 그러니까 여자 뒤를 따라 또 바다에 뛰어들 위험이 있다고 보고 있는 듯, 제가 밖에 나가는 것을 굳게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술도 못 마시고 담배도 못 피우고, 그저 아침부터 밤까지 이 층 세 첩 방의 고타쓰에 파묻혀 헌 잡지 따위나 읽으며 바보나 다름없이 지내는 저에게는 자살할 기력조차 사라져 있었습니다.

넙치네 집은 오쿠보의 의학전문학교 가까이에 있었고, 서화 골동품상 세이류엔이라느니 하고 간판 글자만은 제법 힘을 주었어도, 한 채에 두 집인 그 한쪽이었고, 가게 앞면도 좁고 가게 안은 먼지투성이에 되는대로 주워 모은 잡동사니만 늘어놓았을 뿐 (하기야 넙치는 그 가게의 잡동사니에 기대어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쪽 이른바 나리의 아끼는 물건을 저쪽 이른바 나리에게 소유권을 넘기는 자리 같은 데서 움직여 돈을 버는 모양이었습니다) 가게에 앉아 있는 일은 거의 없었고, 대개 아침부터 어려운 얼굴을 하고 부랴부랴 나갔으며, 빈집은 열일고여덟 된 심부름꾼 아이 하나가 지켰는데 이것이 저의 감시꾼인 셈이어서, 틈만 나면 이웃 아이들과 밖에서 공놀이 따위를 하면서도 이 층의 얹혀사는 이를 아주 바보나 미친 사람쯤으로 여기는 듯, 어른의 설교 같은 말까지 저에게 들려주었고, 저는 남과 말다툼을 못 하는 성미라 지친 듯한, 또 감탄한 듯한 얼굴로 거기에 귀를 기울이며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 심부름꾼 아이는 시부타의 숨겨 놓은 자식으로, 그런데도 이상한 사정이 있어 시부타는 이른바 부자 사이임을 밝히지 않았고, 또 시부타가 내내 홀몸인 것도 무언가 그 언저리에 까닭이 있어서인 듯, 저도 예전에 집안사람들에게서 그에 대한 소문을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하지만, 저는 아무래도 남의 신세에는 그다지 흥미를 갖지 못하는 편이라 자세한 것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눈매에도 묘하게 물고기의 눈을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었으니, 혹 정말로 넙치의 숨겨 놓은 자식, …… 하지만 그렇다면 둘은 참으로 쓸쓸한 부자였습니다. 밤늦게 이 층의 저 몰래 둘이서 메밀국수 따위를 시켜 말없이 먹는 일이 있었습니다.

넙치네 집에서 밥은 늘 그 아이가 지었고, 이 층의 군식구 밥만은 따로 상에 얹어 아이가 세 끼 이 층으로 날라다 주었으며, 넙치와 아이는 계단 아래 눅눅한 네 첩 반 방에서 무언가 달그락달그락 그릇 부딪는 소리를 내며 바쁘게 밥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삼월 말 어느 저녁, 넙치는 뜻밖의 벌이라도 걸렸는지, 또는 무언가 다른 속셈이라도 있었는지 (그 두 가지 짐작이 다 맞았다 해도 아마 그 밖에도 저 따위로서는 도저히 짐작이 닿지 않는 자잘한 까닭이 몇 가지 더 있었겠지만) 저를 아래층의, 드물게 술병까지 놓인 밥상에 불러, 넙치 아닌 참치 회에 대접하는 주인이 몸소 감탄하고 칭찬하며 멍하니 있는 군식구에게도 술을 좀 권하고는,

"어쩔 생각입니까, 대체, 앞으로"

저는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 상 위 접시에서 눌러 말린 멸치를 집어 그 작은 물고기들의 은빛 눈알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취기가 어슴푸레 올라와, 놀며 다니던 무렵이 그립고 호리키조차 그리워져 사무치게 「자유」가 갖고 싶어지고, 문득 가냘프게 울 것 같아졌습니다.

제가 이 집에 온 뒤로는 익살을 부릴 보람조차 없어, 그저 넙치와 심부름꾼 아이의 업신여김 속에 몸을 누이고 있었고, 넙치 쪽에서도 저와 마음을 터놓고 긴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리는 낌새였으며, 저도 그 넙치를 쫓아가 무언가 하소연할 마음 따위는 나지 않아, 저는 거의 얼빠진 낯짝의 군식구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기소 유예라는 것은 전과 몇 범이라든가 그런 것에는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뭐, 당신 마음가짐 하나로 다시 설 수 있는 셈입니다. 당신이 만약 뉘우치고 당신 쪽에서 진지하게 저에게 의논을 걸어 준다면 저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넙치의 말하는 방식에는, 아니 세상 모든 사람의 말하는 방식에는 이렇게 까다롭고 어딘가 어슴푸레하고 발뺌하는 듯한 미묘한 복잡함이 있어서, 그 거의 쓸모없다 싶을 만큼의 삼엄한 조심과 수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의 자잘한 수 겨루기에 저는 늘 당황해서, 아무래도 좋다는 기분이 되어 익살로 얼버무리거나 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전부 맡긴다는, 말하자면 패배의 태도를 취하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도 넙치가 저를 향해 대체로 다음과 같이 간단히 알려 주었으면 그것으로 끝날 일이었다는 것을 저는 뒷날에 이르러 알았고, 넙치의 쓸데없는 조심, 아니 세상 사람들의 알 수 없는 허영과 체면에 뭐라 말할 수 없이 우울해졌습니다.

넙치는 그때 그저 이렇게 말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관립이든 사립이든 아무튼 사월부터 어느 학교든 들어가세요. 당신 생활비는 학교에 들어가면 고향에서 더 넉넉히 보내오게 되어 있습니다."

한참 뒤에야 알았지만, 사실은 그렇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도 그 말에 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넙치가 몹시 조심스럽게 빙빙 돌려 말한 탓에 묘하게 꼬여, 제가 살아갈 방향도 아주 달라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진지하게 저에게 의논을 걸어 줄 마음이 없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만"

"어떤 의논요?"

저에게는 정말 아무 짐작도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거야 당신 가슴속에 있는 것 아닙니까?"

"이를테면?"

"이를테면이라니, 당신 자신 앞으로 어쩔 생각입니까"

"일하는 편이 좋습니까?"

"아니, 당신 마음은 대체 어떻습니까"

"그렇지만, 학교에 들어간다고 해도, ……"

"그거야 돈이 듭니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 아니에요. 당신 마음입니다"

돈은 고향에서 오게 되어 있으니까, 하고 왜 한마디 하지 않았을까요. 그 한마디로 제 마음도 정해졌을 텐데, 저에게는 그저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무언가 앞날의 희망, 그런 것이 있습니까? 대체 사람 하나를 돌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돌봄을 받는 사람은 모르겠지요"

"죄송합니다"

"그거 정말이지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저도 일단 당신을 돌보기로 맡은 이상, 당신도 어정쩡한 마음으로 있지 말아 주었으면 합니다. 훌륭하게 다시 설 길을 걷겠다는 각오를 보여 주었으면 합니다. 이를테면 당신의 앞날의 방침, 그에 대해 당신 쪽에서 저에게 진지하게 의논을 걸어온다면 저도 그 의논에는 응할 생각입니다. 그거야 어차피 이런 가난한 넙치의 도움이니 예전 같은 호사를 바란다면 어긋납니다. 그러나 당신 마음이 야무지고 앞날의 방침을 똑똑히 세워서 저에게 의논해 준다면, 저는 비록 조금씩이라도 당신이 다시 서는 데 도움을 드릴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제 마음을. 대체 당신은 앞으로 어쩔 생각입니까"

"여기 이 층에 있게 해 주지 않으신다면, 일을 해서, ……"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지금 이 세상에 설령 제국대학을 나왔다 해도, ……"

"아니요, 봉급쟁이가 되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럼 뭡니까"

"화가입니다"

마음먹고 그 말을 했습니다.

"허어?"

저는 그때 목을 움츠리고 웃던 넙치의 얼굴에 서린, 자못 교활해 보이는 그림자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업신여김의 그림자와도 비슷하면서 그것과도 다른, 세상을 바다에 견주면 그 바다의 천 길 깊이 되는 데에 그런 묘한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을 듯한, 무언가 어른의 삶의 밑바닥을 언뜻 들여다보게 한 듯한 웃음이었습니다.

그런 걸로는 이야기도 뭣도 되지 않는다, 조금도 마음이 야무지지 못하다, 생각해 보세요, 오늘 밤 하룻밤 진지하게 생각해 보세요, 하는 말을 듣고 저는 쫓기듯 이 층으로 올라가 누웠지만 딱히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새벽녘이 되어 넙치네 집에서 달아났습니다.

저녁에 틀림없이 돌아옵니다. 아래 적은 벗에게 앞날의 방침에 대해 의논하러 가는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정말입니다.

하고 편지지에 연필로 큼직하게 쓰고, 그러고는 아사쿠사의 호리키 마사오의 주소와 이름을 적어 놓고 슬며시 넙치네 집을 나왔습니다.

넙치에게 설교를 들은 것이 분해서 달아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말이지 저는 넙치의 말대로 마음이 야무지지 못한 사내였고, 앞날의 방침이고 뭐고 저로서는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으며, 이 위에 더 넙치네 집에 신세를 지는 것은 넙치에게도 딱한 일이고, 그러다가 만에 하나 저에게 분발할 마음이 일어 뜻을 세운다 해도 그 다시 서는 밑천을 저 가난한 넙치에게서 다달이 받아야 하는가 생각하니 도무지 마음이 괴로워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른바 「앞날의 방침」을 호리키 따위에게 의논하러 가겠다고 진심으로 여겨 넙치네 집을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저 조금이라도, 잠깐이라도 넙치를 안심시켜 두고 싶어서 (그사이에 제가 조금이라도 멀리 달아나 있고 싶다는 탐정 소설 같은 꾀에서 그런 쪽지를 썼다, 고 하기보다는, 아니 그런 마음도 어렴풋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지만, 그보다도 역시 저는 대뜸 넙치에게 충격을 주어 그를 어지럽고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하는 편이 얼마간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들통날 것이 뻔한데도 곧이곧대로 말하는 것이 무서워 반드시 무언가 꾸밈을 붙이는 것이 저의 슬픈 버릇 가운데 하나로,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며 낮추어 보는 성격과 닮았으면서도, 그러나 저는 저에게 이익을 가져오려고 그 꾸밈을 붙인 적은 거의 없고, 그저 분위기가 흥이 깨져 확 달라지는 것이 숨 막힐 만큼 무서워서, 나중에 저에게 불리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저의 「필사적인 시중」, 그것이 비록 비뚤어지고 미약하고 어리석은 것이라 해도 그 시중의 마음에서 그만 한마디 꾸밈을 붙여 버리는 경우가 많았던 듯한 느낌도 들지만, 그러나 이 버릇 또한 세상의 이른바 「정직한 이」들에게 크게 이용당하는 빌미가 되었습니다) 그때 문득 기억 밑바닥에서 떠오른 대로 호리키의 주소와 이름을 편지지 끝에 적었을 뿐인 일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넙치네 집을 나와 신주쿠까지 걸어가 품속의 책을 팔고, 그러고는 역시 갈 바를 잃고 말았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나 살갑게 구는 대신 「우정」이라는 것을 한 번도 실감한 적이 없고, 호리키 같은 노는 동무는 따로 치고 모든 사귐은 그저 괴로움을 느끼게 할 뿐이어서, 그 괴로움을 풀어 보려고 죽을힘을 다해 익살을 부리다 오히려 녹초가 되었고, 조금 아는 사람의 얼굴을, 그와 닮은 얼굴조차 길에서 보면 흠칫해서 한순간 어지러울 만큼 언짢게 떨리는 지경이었으니, 남에게 좋아하게 하는 것은 알아도 남을 사랑하는 능력에서는 모자란 데가 있는 듯했습니다. (하기야 저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과연 「사랑」의 능력이 있는지 어떤지 몹시 의심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른바 「벗」 따위가 생길 리 없고, 게다가 저에게는 「찾아가는」 능력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남의 집 대문은 저에게 저 신곡의 지옥문 이상으로 으스스했고, 그 문 안쪽에는 무서운 용 같은 비린내 나는 괴이한 짐승이 꿈틀거리고 있는 낌새를 과장이 아니라 실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와도 사귐이 없다. 어디로도 찾아갈 수 없다.

호리키.

그야말로 농담이 참말이 된 꼴이었습니다. 그 쪽지에 쓴 대로 저는 아사쿠사의 호리키를 찾아가기로 한 것입니다. 저는 여태 제 쪽에서 호리키네 집을 찾아간 적이 한 번도 없고 대개 전보로 호리키를 제 쪽으로 불러들였는데, 지금은 그 전보 값조차 아까웠고, 게다가 몰락한 처지의 비뚤어진 마음에서 전보만 쳐서는 호리키가 와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여겨, 무엇보다 제가 질색인 「찾아가기」를 마음먹고 한숨을 쉬며 시내 전차를 탔는데, 저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의 동아줄이 저 호리키인가 하고 깨닫자 어쩐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무시무시한 기운에 사로잡혔습니다.

호리키는 집에 있었습니다. 지저분한 골목 안쪽의 이 층집으로, 호리키는 이 층의 단 한 칸 여섯 첩 방을 쓰고, 아래층에서는 호리키의 늙은 부모와 그리고 젊은 직공 셋이서 게다 끈을 꿰매거나 두드리거나 하며 만들고 있었습니다.

호리키는 그날 도시 사람으로서의 새로운 한 면을 저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약삭빠름이었습니다. 시골 사람인 제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뜰 만큼 차갑고 교활한 이기심이었습니다. 저처럼 그저 하염없이 흘러가기만 하는 사내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너한테는 정말 어이가 없다. 아버님께서 허락이 나셨느냐. 아직인가"

달아나 왔다고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여느 때처럼 얼버무렸습니다. 곧 호리키에게 들킬 것이 틀림없는데도 얼버무렸습니다.

"그거야 어떻게든 되겠지"

"이봐, 웃을 일이 아니야. 충고하는데 바보짓도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아. 나는 오늘 볼일이 있단 말이다. 요즘 되게 바쁘거든"

"볼일이라니, 어떤?"

"이봐 이봐, 방석 실을 끊지 말아 줘"

저는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깔고 있는 방석의 매듭실이라고 할지 묶음 끈이라고 할지, 그 술 같은 네 귀퉁이의 실 하나를 무심코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쭉 잡아당기거나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호리키는 제집 물건이라면 방석 실 한 올도 아까운 듯,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그야말로 눈을 부릅뜨고 저를 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호리키는 여태 저와 사귀면서 무엇 하나 잃은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호리키의 늙은 어머니가 단팥죽 두 그릇을 쟁반에 받쳐 들고 왔습니다.

"아, 이거"

하고 호리키는 진심으로 효자라도 되는 양 늙은 어머니에게 송구스러워하며, 말씨도 어색할 만큼 정중하게,

"죄송합니다, 단팥죽입니까. 대단하시네. 이런 신경은 안 쓰셔도 되는데요. 볼일이 있어 곧 나가야 하거든요. 아니, 그래도 모처럼 자랑거리인 단팥죽을 아깝게. 먹겠습니다. 너도 하나 어때. 어머니가 일부러 만들어 주신 거야. 아아, 이거 맛있군. 대단하시네"

하고, 아주 연기만은 아닌 듯이 몹시 기뻐하며 맛있게 먹는 것입니다. 저도 그것을 떠먹었지만 맹물 냄새가 났고, 그리고 떡을 먹어 보니 그것은 떡이 아니라 저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결코 그 가난함을 업신여긴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때 그것을 맛없다고 여기지도 않았고, 또 늙은 어머니의 정성도 몸에 사무쳤습니다. 저에게는 가난에 대한 두려움은 있어도 업신여김은 없는 줄로 압니다) 그 단팥죽과, 그리고 그 단팥죽을 기뻐하는 호리키를 통해 저는 도시 사람의 알뜰한 본바탕, 또 안과 밖을 제대로 가려 살아가는 도쿄 사람 집안의 실상을 보았고, 안도 밖도 다를 것 없이 그저 끊임없이 사람의 삶에서 달아나기만 하는 얼뜨기인 저 혼자만 온전히 남겨져 호리키에게마저 버림받은 듯한 낌새에 허둥대며, 단팥죽의 칠이 벗겨진 젓가락을 놀리면서 견딜 수 없이 쓸쓸했다는 것을 적어 두고 싶을 뿐인 것입니다.

"안됐지만 나는 오늘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호리키는 일어나 웃옷을 입으며 그렇게 말하고,

"실례하겠네, 안됐지만"

그때 호리키에게 여자 손님이 찾아와, 제 신세도 갑자기 뒤바뀌었습니다.

호리키는 갑자기 생기를 띠고,

"이야, 죄송합니다. 지금 말이죠, 그쪽으로 찾아뵈려던 참이었는데요, 이 사람이 갑자기 와서, 아니 괜찮습니다. 자, 어서 들어오세요"

어지간히 당황한 듯, 제가 깔고 있던 방석을 빼내 뒤집어 내민 것을 낚아채더니 다시 뒤집어 그 여자에게 권했습니다. 방에는 호리키의 방석 말고는 손님 방석이 딱 한 장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자는 야위고 키가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 방석은 곁으로 밀어 놓고 입구 가까운 구석에 앉았습니다.

저는 멍하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잡지사 사람인 듯했고, 호리키에게 삽화인지 무엇인지를 전부터 부탁해 두었던 모양으로 그것을 받으러 온 듯한 낌새였습니다.

"바빠서요"

"다 됐습니다. 벌써 진작에 됐어요. 이겁니다, 받으시죠"

전보가 왔습니다.

호리키가 그것을 읽더니 기분 좋던 얼굴이 순식간에 험악해져,

"쳇! 너 이거 어찌 된 거냐"

넙치에게서 온 전보였습니다.

"아무튼 당장 돌아가 다오. 내가 너를 바래다주면 좋겠지만, 나는 지금 그럴 틈이 없어. 집을 나왔다면서 그 태평한 낯짝이라니"

"댁이 어디신가요?"

"오쿠보입니다"

불쑥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저희 회사 근처네요"

여자는 고슈에서 태어났고 스물여덟이었습니다. 다섯 살 난 딸과 고엔지의 아파트에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과 사별한 지 삼 년이 된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퍽 고생하며 자란 사람 같네요. 눈치가 빨라요. 가여워라"

처음으로 남첩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시즈코 (라는 것이 그 여기자의 이름이었습니다) 가 신주쿠의 잡지사로 일하러 나간 뒤에는 저와 시게코라는 다섯 살 난 딸 둘이서 얌전히 집을 보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어머니가 없는 동안 시게코는 아파트 관리인 방에서 놀았던 모양인데, 「눈치 빠른」 아저씨가 놀이 상대로 나타났으므로 아주 기분이 좋은 듯했습니다.

한 주쯤 저는 멍하니 거기에 있었습니다. 아파트 창 바로 가까이 전깃줄에 사람 모양 연이 하나 얽혀 있어, 봄의 흙먼지 바람에 불려 찢기면서도 그래도 좀처럼 끈질기게 전깃줄에 얽힌 채 떨어지지 않고 무언가 고개를 끄덕이기라도 하는 듯해서, 저는 그것을 볼 때마다 쓴웃음을 짓고 얼굴을 붉혔으며, 꿈에까지 보고 가위에 눌렸습니다.

"돈이 있었으면 좋겠어"

"……얼마쯤?"

"많이. …… 돈 떨어지면 인연도 끝이라는 말, 정말이야"

"바보 같긴. 그런 케케묵은, ……"

"그래? 하지만 너는 몰라. 이대로면 나는 달아나게 될지도 몰라"

"대체 어느 쪽이 가난한 거야. 그리고 어느 쪽이 달아난다는 거야. 이상하네"

"내가 벌어서 그 돈으로 술, 아니 담배를 사고 싶어. 그림도 나는 호리키 따위보다 훨씬 잘 그리는 셈이란 말이야"

이런 때 제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르는 것은 그 중학 시절에 그린, 다케이치가 말한 「도깨비」 자화상 몇 장이었습니다. 잃어버린 걸작. 그것은 여러 번 이사하는 사이에 없어지고 말았는데, 그것만은 분명 뛰어난 그림이었던 듯한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그 뒤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 보아도 그 기억 속의 빼어난 작품에는 아득히 미치지 못해, 저는 늘 가슴이 텅 비는 듯한 나른한 상실감에 시달려 왔던 것입니다.

마시다 남긴 한 잔의 압생트.

저는 그 영원히 갚을 수 없을 듯한 상실감을 남몰래 그렇게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림 이야기가 나오면 제 눈앞에 그 마시다 남긴 한 잔의 압생트가 어른거려, 아아 저 그림을 이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다, 그래서 내 그림 솜씨를 믿게 하고 싶다, 하는 조바심에 몸부림치는 것이었습니다.

"후후, 글쎄. 당신은 진지한 얼굴로 농담을 하니까 귀여워"

농담이 아니다, 정말이다, 아아 저 그림을 보여 주고 싶다, 하고 헛도는 번민을 하다가 문득 마음을 바꾸어 단념하고,

"만화 말이야. 적어도 만화라면 호리키보다는 잘 그리는 셈이야"

그 얼버무리는 익살의 말 쪽이 오히려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 나도 실은 감탄하고 있었어. 시게코에게 늘 그려 주는 만화, 나까지 그만 웃음이 터지는걸. 해 보면 어때? 우리 회사 편집장에게 부탁해 봐 줄 수도 있어"

그 회사에서는 아이들을 상대로 한 그리 이름나지 않은 월간 잡지를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을 보면 웬만한 여자들은 무언가 해 주고 싶어 견딜 수 없어져. ……늘 쭈뼛거리면서도 그러면서 우스운 사람이니까. ……이따금 혼자 몹시 가라앉아 있지만, 그 모습이 더욱 여자 마음을 근질거리게 해.

시즈코에게 그 밖에 갖가지 말을 듣고 추어올려져도, 그것이 곧 남첩의 더러운 됨됨이인 것이라고 여기면 그야말로 더욱 「가라앉을」 뿐이어서 도무지 기운이 나지 않았고, 여자보다는 돈, 아무튼 시즈코에게서 벗어나 제힘으로 살고 싶다고 남몰래 바라며 궁리하면서도, 오히려 차츰 시즈코에게 기대야 하는 처지가 되어, 집 나온 뒤처리며 무엇이며 거의 전부를 이 사내 못지않은 고슈 여자의 도움으로 해결했고, 더욱 저는 시즈코에게 이른바 「쭈뼛거려야」 하는 결과가 되었던 것입니다.

시즈코가 주선해서 넙치, 호리키, 그리고 시즈코 세 사람의 이야기가 이루어졌고, 저는 고향과 아주 끊기게 되었으며, 그러고는 시즈코와 「떳떳하게」 함께 사는 일이 되었고, 이 또한 시즈코가 뛰어다녀 준 덕에 제 만화도 뜻밖에 돈이 되어 저는 그 돈으로 술도 담배도 샀지만, 제 막막함과 답답함은 더욱 심해지기만 했습니다. 그야말로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아」, 시즈코네 잡지에 다달이 이어 싣는 만화 「긴타 씨와 오타 씨의 모험」을 그리고 있으면 문득 고향 집이 떠올라, 너무 쓸쓸한 나머지 펜이 움직이지 않아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떨군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때 저에게 어렴풋한 구원은 시게코였습니다. 시게코는 그 무렵이 되어 저를 아무 거리낌 없이 「아빠」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아빠. 기도하면 하느님이 뭐든지 주신다는 거, 정말이야?"

저야말로 그 기도를 하고 싶다고 여겼습니다.

아아, 나에게 차가운 뜻을 주소서. 나에게 「사람」의 본바탕을 알게 하소서. 사람이 사람을 밀치는 것이 죄가 아닌지요. 나에게 노여움의 탈을 주소서.

"응, 그래. 시게짱에게는 뭐든지 주시겠지만 아빠에게는 안 될지도 몰라"

저는 하느님에게조차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믿지 못하고 하느님의 벌만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 그것은 그저 하느님의 매를 맞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심판대로 나아가는 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지옥은 믿을 수 있어도 천국이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째서 안 되는데?"

"부모 말을 거슬렀으니까"

"그래? 아빠는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다들 말하던데"

그것은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 사람들 모두가 나에게 호의를 보이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나는 얼마나 모두를 무서워하고 있는가, 무서워할수록 좋아함을 받고, 그리고 이쪽은 좋아함을 받으면 받을수록 무서워져 모두에게서 떨어져 가야 한다, 이 불행한 버릇을 시게코에게 설명해 들려주는 일은 지극히 어려웠습니다.

"시게짱은 대체 하느님에게 무엇을 조르고 싶은데?"

저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시게코는 말이야, 시게코의 진짜 아빠가 갖고 싶어"

흠칫해서 어질어질 어지러웠습니다. 적. 내가 시게코의 적인가, 시게코가 내 적인가, 아무튼 여기에도 나를 위협하는 무서운 어른이 있었던 것이다, 남, 알 수 없는 남, 비밀투성이의 남, 시게코의 얼굴이 갑자기 그렇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시게코만은, 하고 여기고 있었는데 역시 이 아이도 그 「느닷없이 등에를 때려잡는 소의 꼬리」를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때부터 시게코에게조차 쭈뼛거려야 하게 되었습니다.

"색마! 있나?"

호리키가 다시 제가 있는 데로 찾아오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집 나오던 날 그토록 저를 쓸쓸하게 만든 사내인데도, 그런데도 저는 마다하지 못하고 어렴풋이 웃으며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네 만화는 제법 인기가 있다더구나. 아마추어에게는 무서운 것을 모르는 뱃심이 있으니 당해 낼 수가 없지. 하지만 방심하지 마라. 데생이 전혀 되어 있지 않으니까"

스승 같은 태도까지 보이는 것입니다. 나의 그 「도깨비」 그림을 이놈에게 보이면 어떤 얼굴을 할까, 하고 늘 하던 헛도는 몸부림을 하면서,

"그 말은 하지 말아 줘. 으악 하고 비명이 나오니까"

호리키는 더욱 우쭐해져서,

"세상 사는 재주만으로는 언젠가 밑천이 드러나는 법이니까"

세상 사는 재주. …… 저로서는 정말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세상 사는 재주라니! 그러나 저처럼 사람을 무서워하고 피하고 얼버무리는 것은 그 속담의 「건드리지 않으면 탈도 없다」던가 하는 약고 교활한 처세훈을 받들어 지키는 것과 같은 꼴이라는 말이 되는 것일까요. 아아, 사람은 서로 상대를 전혀 모르고, 아주 잘못 보면서도 둘도 없는 벗인 줄 알고 한평생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상대가 죽으면 울면서 조사 따위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호리키는 아무튼 (그것은 시즈코가 밀어붙여 부탁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맡은 것이 틀림없지만) 제가 집을 나간 뒤처리에 함께한 사람이므로, 아주 제가 다시 서게 해 준 큰 은인이나 중매인이라도 되는 양 굴며, 그럴듯한 얼굴로 저에게 설교 같은 말을 하기도 하고, 또 깊은 밤 술에 취해 찾아와 자고 가기도 하고, 또 오 원 (꼭 오 원이었습니다) 을 꾸어 가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네 여자놀음도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아. 이 위로는 세상이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세상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사람의 복수형일까요. 어디에 그 세상이라는 것의 실체가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아무튼 세고 엄하고 무서운 것이라고만 여기며 여태 살아왔는데, 호리키에게 그런 말을 듣자 문득,

"세상이라는 건 자네 아닌가"

하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다가, 호리키를 성나게 하는 것이 싫어 도로 넣었습니다.

(그건 세상이 용서하지 않아)

(세상이 아니다. 당신이 용서하지 않는 것이겠지?)

(그런 짓을 하면 세상에서 혼쭐이 난다)

(세상이 아니다. 당신이겠지?)

(이러다 세상에서 묻혀 버린다)

(세상이 아니다. 묻는 것은 당신이겠지?)

너는 너 개인의 무서움, 괴이함, 악랄함, 늙은 너구리 같음, 요망한 늙은이 같음을 알라! 하는 따위의 갖가지 말이 가슴속을 오갔지만, 저는 그저 얼굴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식은땀, 식은땀"

하고 말하며 웃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저는 (세상이란 개인 아닌가) 하는, 생각 비슷한 것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이라는 것은 개인이 아닐까 하고 여기기 시작한 뒤로, 저는 여태까지보다는 다소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즈코의 말을 빌리면 저는 조금 제멋대로가 되었고 쭈뼛거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호리키의 말을 빌리면 묘하게 인색해졌습니다. 또 시게코의 말을 빌리면 시게코를 그다지 귀여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말없이 웃지도 않고 날마다 시게코를 돌보면서 「긴타 씨와 오타 씨의 모험」이며, 또 「느긋한 아버지」의 뻔한 아류인 「느긋한 스님」이며, 또 「성급이 핀짱」이라는 저 스스로도 뭔지 모를 자포자기 제목의 이어 싣는 만화며를 여러 회사의 주문에 따라 (드문드문 시즈코네 회사가 아닌 데서도 주문이 오게 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죄다 시즈코네 회사보다 더 천한, 말하자면 삼류 출판사의 주문뿐이었습니다) 참으로 참으로 우울한 심정으로 느릿느릿 (제 그림의 붓놀림은 몹시 느린 편이었습니다) 이제는 그저 술값이 아쉬워서 그렸고, 그러고는 시즈코가 회사에서 돌아오면 그와 엇갈려 휙 밖으로 나가 고엔지 역 가까운 포장마차나 스탠드바에서 싸고 독한 술을 마시고, 좀 흥이 나서 아파트로 돌아가,

"보면 볼수록 이상한 얼굴이야, 당신은. 느긋한 스님의 얼굴은 실은 당신 자는 얼굴에서 힌트를 얻은 거야"

"당신 자는 얼굴이야말로 퍽 늙으셨어요. 마흔 먹은 남자 같아"

"네 탓이야. 빨아먹혔거든. 물의 흐름과 사람의 몸은 말이야. 무얼 그리 끙끙 강가에서어 말이야"

"떠들지 말고 어서 주무세요. 아니면 밥을 드시겠어요?"

차분해서 아예 상대해 주지 않습니다.

"술이라면 마시지. 물의 흐름과 사람의 몸은 말이야. 사람의 흐름과, 아니, 물의 흐으름과 물의 몸은 말이야"

노래하면서 시즈코에게 옷을 벗겨지고, 시즈코의 가슴에 제 이마를 파묻고 잠들어 버리는, 그것이 제 하루하루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도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어제와 다르지 않은 관례를 따르면 된다.

곧 거칠고 큰 기쁨을 피하기만 하면

자연히 또 큰 슬픔도 오지 않는 것이다.

앞길을 막는 성가신 돌을

두꺼비는 돌아서 지나간다.

우에다 빈이 옮긴 기 샤를 크로라는 사람의 이런 시구를 찾아냈을 때, 저는 혼자 얼굴이 타오를 만큼 붉어졌습니다.

두꺼비.

(그것이 나다. 세상이 용서하고 말고도 없다. 묻고 말고도 없다. 나는 개보다도 고양이보다도 못한 짐승이다. 두꺼비. 굼뜨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제 음주는 차츰 양이 늘어 갔습니다. 고엔지 역 부근뿐 아니라 신주쿠, 긴자 쪽까지 나가 마시고 외박하는 일까지 있었으며, 그저 「관례」를 따르지 않으려고 바에서 무뢰한 행세를 하거나 닥치는 대로 입을 맞추거나, 그러니까 또 그 동반 자살 이전의, 아니 그 무렵보다 더 거칠고 야비한 술꾼이 되어, 돈이 궁해 시즈코의 옷가지를 들고 나갈 지경이 되었습니다.

여기 와서 그 찢어진 연에 쓴웃음을 지은 지 한 해 넘게 지나, 벚꽃 지고 잎 난 무렵, 저는 또 시즈코의 허리띠며 속옷이며를 몰래 들고 나가 전당포에 가서 돈을 만들어 긴자에서 마시고, 이틀 내리 외박하고 사흘째 밤 그래도 겸연쩍은 마음에 저도 모르게 발소리를 죽이고 아파트의 시즈코 방 앞까지 오니, 안에서 시즈코와 시게코의 이야기가 들립니다.

"왜 술을 마시는 거야?"

"아빠는 말이야, 술을 좋아해서 마시는 게 아니란다.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그래서, ……"

"좋은 사람은 술을 마셔?"

"그런 것도 아니지만, ……"

"아빠는 틀림없이 깜짝 놀라겠지"

"싫어할지도 몰라. 어머, 어머, 상자에서 뛰쳐나왔네"

"성급이 핀짱 같네"

"그러게"

시즈코의 진심으로 행복한 듯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제가 문을 조금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흰 토끼 새끼였습니다. 깡충깡충 방 안을 뛰어다니고, 모녀는 그것을 쫓고 있었습니다.

(행복한 것이다, 이 사람들은. 나라는 바보가 이 둘 사이에 끼어들어 이제 둘을 엉망으로 만들 것이다. 조촐한 행복. 좋은 모녀. 행복을, 아아 만약 하느님이 나 같은 자의 기도라도 들어주신다면, 딱 한 번, 한평생에 딱 한 번만이라도 좋다, 빈다)

저는 거기 웅크리고 앉아 두 손 모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살며시 문을 닫고 저는 또 긴자로 가서, 그 뒤로 그 아파트에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교바시 바로 가까이의 스탠드바 이 층에 저는 또다시 남첩 꼴로 드러눕게 되었습니다.

세상. 그럭저럭 저에게도 그것이 어렴풋이 알릴 듯한 느낌이 들고 있었습니다. 개인과 개인의 다툼이고, 게다가 그 자리에서의 다툼이며, 게다가 그 자리에서 이기면 되는 것이다, 사람은 결코 사람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종조차 종다운 비굴한 앙갚음을 하는 법이다, 그러니 사람에게는 그 자리의 단판 승부에 기대는 것 말고는 살아남을 꾀가 없는 것이다, 대의명분 같은 것을 내세우면서도 애쓰는 과녁은 반드시 개인, 개인을 넘어서 다시 개인, 세상의 알 수 없음은 개인의 알 수 없음, 큰 바다는 세상이 아니라 개인인 것이다, 하고 세상이라는 큰 바다의 헛것에 겁먹는 데서 다소 풀려나, 예전만큼 이것저것 끝없이 마음 쓰는 일 없이, 말하자면 당장의 필요에 따라 얼마간 뻔뻔하게 굴 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엔지의 아파트를 버리고 교바시의 스탠드바 마담에게,

"헤어지고 왔어"

그것만 말하고 그것으로 충분히, 그러니까 단판 승부는 끝나서 그날 밤부터 저는 난폭하게도 그 집 이 층에 눌러앉게 되었는데, 그러나 무서울 터인 「세상」은 저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고, 또 저도 「세상」에 대해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담이 그럴 마음이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좋았던 것입니다.

저는 그 가게의 손님 같기도 하고 주인 같기도 하고 심부름꾼 같기도 하고 친척 같기도 해서, 곁에서 보면 몹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였을 터인데도 「세상」은 조금도 이상히 여기지 않았고, 그러고는 그 가게 단골들도 저를 요조야, 요조야 하고 부르며 몹시 상냥하게 대해 주었고 술을 사 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세상에 대해 차츰 조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이라는 데는 그렇게 무서운 데가 아니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여태까지 제가 느끼던 두려움은, 봄바람에는 백일해 균이 몇십만, 목욕탕에는 눈이 머는 균이 몇십만, 이발소에는 대머리 병 균이 몇십만, 전철 손잡이에는 옴 벌레가 우글우글, 또는 회며 덜 익힌 소고기 돼지고기에는 촌충의 애벌레며 디스토마며 무엇의 알 따위가 반드시 숨어 있고, 또 맨발로 걸으면 발바닥으로 유리 조각이 들어가 그 조각이 몸속을 돌아다니다 눈알을 찔러 눈이 멀게 하는 일도 있다던가 하는, 말하자면 「과학의 미신」에 겁먹고 있던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몇십만의 균이 떠다니고 헤엄치고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정확한 일이겠지요. 그와 동시에 그 있음을 온전히 못 본 척하기만 하면 그것은 저와 티끌만큼의 이어짐도 없어져 이내 사라져 버리는 「과학의 유령」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저는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도시락에 남긴 밥 세 알, 천만 사람이 하루에 세 알씩 남기면 그것만으로 이미 쌀 몇 가마를 헛되이 버린 셈이 된다든가, 혹은 하루에 휴지 한 장을 아끼는 일을 천만 사람이 한다면 얼마만큼의 펄프가 남는가 하는 「과학적 통계」에 저는 얼마나 겁을 먹고, 밥을 한 알이라도 남길 때마다, 또 코를 풀 때마다 산더미 같은 쌀, 산더미 같은 펄프를 헛되이 쓰는 듯한 착각에 시달리며 제가 지금 중대한 죄를 저지르고 있는 듯한 어두운 심정이 되었지만,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과학의 거짓」 「통계의 거짓」 「수학의 거짓」으로, 세 알의 밥은 모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곱하기 나누기의 응용 문제로서도 참으로 원시적이고 모자란 주제이고, 전기가 켜지지 않은 어두운 뒷간의 그 구멍에 사람이 몇 번에 한 번 한쪽 다리를 헛디뎌 빠뜨리는가, 또는 전철 출입구와 승강장 가장자리의 그 틈에 손님 몇 사람 가운데 몇 사람이 발을 빠뜨리는가, 그런 확률을 셈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어이없는 것이며, 그것은 자못 있을 법한 일 같으면서도 뒷간 구멍을 잘못 디뎌 다쳤다는 예는 조금도 들은 적이 없으니, 그런 가정을 「과학적 사실」로 배워 넣고 그것을 온전히 현실로 받아들여 무서워하던 어제까지의 저를 가엾게 여기고 웃고 싶어질 만큼, 저는 세상이라는 것의 실상을 조금씩 알게 되었던 셈입니다.

그렇게 말해도 역시 사람이라는 것이 아직도 저에게는 무서워서, 가게 손님을 만나는 데도 술을 잔으로 한 잔 쭉 들이켜고 나서가 아니면 안 되었습니다. 무서운 것을 보고 싶은 마음. 저는 밤마다 그래도 가게에 나가, 아이가 실은 조금 무서워하는 작은 짐승 따위를 오히려 세게 꽉 쥐어 버리듯이, 가게 손님을 향해 취해서 서투른 예술론을 늘어놓게까지 되었습니다.

만화가. 아아, 그러나 저는 큰 기쁨도 또 큰 슬픔도 없는 이름 없는 만화가. 아무리 큰 슬픔이 나중에 와도 좋으니 거칠고 큰 기쁨이 갖고 싶다고 속으로 조바심을 내면서도, 제 지금의 즐거움이라고는 손님과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고 손님의 술을 마시는 것뿐이었습니다.

교바시에 와서 이런 시시한 생활을 벌써 한 해 가까이 이어, 제 만화도 아이들 상대의 잡지뿐 아니라 역에서 파는 조잡하고 음란한 잡지 같은 데도 실리게 되어, 저는 조시 이쿠타 (情死, 살아남다) 라는 실없기 짝이 없는 가명으로 지저분한 벌거벗은 그림 따위를 그렸고, 거기에 대개 루바이야트의 시구를 끼워 넣었습니다.

쓸데없는 기도 따위는 그만두라니까

눈물을 자아내는 것 따위는 내던져 버려라

자 한잔하자 좋은 일만 떠올리며

쓸데없는 걱정 따위는 잊어버려라

불안과 두려움으로 사람을 위협하는 무리는

제가 지은 엄청난 죄에 겁먹고

죽은 자의 앙갚음에 대비하겠다고

제 머리에 끊임없이 꾀를 낸다

어젯밤 술이 차서 내 마음은 기쁨에 찼는데

오늘 아침 깨고 보니 그저 황량할 뿐

이상하구나 하룻밤 사이에

이토록 달라진 이 마음이여

앙갚음이니 하는 생각은 그만두어 다오

멀리서 울리는 북소리처럼

어쩐지 그놈은 불안하다

방귀 뀐 것까지 하나하나 죄로 셈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지

정의는 삶의 길잡이라고?

그렇다면 피로 물든 싸움터에

암살자의 칼끝에

무슨 정의가 깃들어 있느냐?

어디에 이끄는 이치가 있느냐?

어떤 슬기의 빛이 있느냐?

아름답고도 무서운 것이 이 덧없는 세상

가냘픈 사람의 자식은 짊어질 수 없는 짐을 지고

어쩔 수 없는 욕정의 씨를 심어 놓았을 뿐인데

선이다 악이다 죄다 벌이다 저주만 받는다

어쩔 수도 없이 그저 허둥거릴 뿐

누르고 꺾을 힘도 뜻도 받지 못했을 뿐인데

어디를 어떻게 헤매고 다녔단 말이냐

뭐라고 비판 검토 재인식?

헤, 헛된 꿈을, 있지도 않은 헛것을

에헤, 술을 잊었으니 죄다 헛된 궁리지

어떠냐 이 끝도 없는 하늘을 보아라

이 속에 조그맣게 떠 있는 점이로다

이 땅이 왜 도는지 알 게 무언가

자전 공전 뒤집히든 제 마음대로지

가는 데마다 더없이 높은 힘을 느끼고

온 나라 온 겨레에서

한가지 사람됨을 찾아낸다

나는 이단자라고들 하는가

다들 거룩한 책을 잘못 읽은 게야

아니면 상식도 슬기도 없는 게지

산 몸의 기쁨을 막고 술을 그만두게 하고

됐어 무스타파 나는 그런 거 딱 질색이야

그러나 그 무렵 저에게 술을 끊으라고 권하는 처녀가 있었습니다.

"안 돼요, 날마다 한낮부터 취해 계시고"

바 건너편의 작은 담뱃가게의 열일고여덟 된 딸이었습니다. 요시짱이라고 했고, 살빛이 희고 덧니가 있는 아이였습니다. 제가 담배를 사러 갈 때마다 웃으며 타이르는 것이었습니다.

"왜 안 되지. 뭐가 나쁘단 말이야. 있는 술을 다 마시고, 사람의 자식이여 미움을 지워라 지워라 지워라, 라고 말이야, 옛날 페르시아에서 말이지, 아 그만두자, 슬픔에 지친 마음에 희망을 가져다주는 것은 오직 은근히 취하게 하는 구슬 잔뿐이라고 말이야. 알겠어?"

"모르겠어요"

"이 녀석. 입 맞춰 준다"

"해요"

조금도 기죽지 않고 아랫입술을 내미는 것입니다.

"바보 같은 것. 정조 관념이, ……"

그러나 요시짱의 얼굴에는 분명 누구에게도 더럽혀지지 않은 처녀의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해가 바뀌어 몹시 추운 밤, 저는 취해서 담배를 사러 나갔다가 그 담뱃가게 앞의 맨홀에 빠져, 요시짱, 살려 줘어, 하고 외쳐 요시짱에게 끌어올려졌고, 오른팔의 상처를 요시짱이 치료해 주었는데, 그때 요시짱은 가만히,

"너무 마시시네요"

하고 웃지 않고 말했습니다.

저는 죽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다쳐서 피를 흘리고 그러다 불구자 따위가 되는 것은 딱 질색인 쪽이어서, 요시짱에게 팔의 상처를 치료받으며 술도 이제 웬만큼 그만둘까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만둘게. 내일부터 한 방울도 안 마셔"

"정말요?"

"꼭 그만둘 거야. 그만두면 요시짱, 내 색시가 되어 줄 거야?"

그러나 색시 이야기는 농담이었습니다.

"몰이죠"

몰이란 「물론」을 줄인 말이었습니다. 모보니 모가니, 그 무렵 온갖 줄임말이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좋아. 손가락 걸자. 꼭 그만둔다"

그리고 이튿날 저는 역시 한낮부터 마셨습니다.

저녁에 비틀비틀 밖에 나가 요시짱의 가게 앞에 서서,

"요시짱, 미안해. 마셔 버렸어"

"어머, 싫어라. 취한 척이나 하시고"

흠칫했습니다. 취기도 깨는 심정이었습니다.

"아니, 정말이야. 정말로 마신 거야. 취한 척하는 게 아니야"

"놀리지 마세요. 짓궂으셔"

도무지 의심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보면 알 만한 일이잖아. 오늘도 한낮부터 마신 거야. 용서해 줘"

"연기를 잘하시네요"

"연기가 아니야, 이 바보야. 입 맞춰 준다"

"해요"

"아니, 나에게는 자격이 없어. 색시로 맞는 것도 단념해야 해. 얼굴을 봐, 빨갛지? 마신 거야"

"그건 저녁 해가 비쳐서 그렇죠. 속이려 해도 안 돼요. 어제 약속했는걸요. 마셨을 리가 없잖아요. 손가락도 걸었는걸요. 마셨다니,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어둑한 가게 안에 앉아 미소 짓고 있는 요시짱의 흰 얼굴, 아아, 더러움을 모르는 순결은 귀한 것이다, 나는 여태 나보다 어린 처녀와 잔 적이 없다, 결혼하자, 아무리 큰 슬픔이 그 때문에 나중에 와도 좋다, 거칠 만큼 큰 기쁨을 한평생에 한 번이라도 좋다, 처녀다움의 아름다움이란 어리석은 시인의 달콤한 감상이 빚은 헛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역시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이로구나, 결혼해서 봄이 오면 둘이 자전거로 푸른 잎의 폭포를 보러 가자, 하고 그 자리에서 마음먹고, 이른바 「단판 승부」로 그 꽃을 훔치는 데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윽고 결혼했고, 그로써 얻은 기쁨은 꼭 크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 뒤에 온 슬픔은 참혹하다는 말로도 모자랄 만큼 참으로 상상을 넘어서 크게 닥쳐왔습니다. 저에게 「세상」은 역시 밑을 알 수 없는 무서운 데였습니다. 결코 그런 단판 승부 따위로 무엇 하나까지 다 정해져 버리는, 그렇게 만만한 데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 수기 2

호리키와 나.

서로 업신여기면서 사귀고, 그러면서 서로 스스로를 시시하게 만들어 가는, 그것이 이 세상의 이른바 「사귐」이라는 것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저와 호리키의 사이도 틀림없이 「사귐」이었습니다.

저는 그 교바시 스탠드바 마담의 의협심에 기대어 (여자의 의협심이라니 말을 묘하게 쓰는 것입니다만, 그러나 제 경험에 따르면 적어도 도시의 남녀의 경우 남자보다 여자 쪽이 그 의협심이라고나 할 것을 듬뿍 지니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대개 겁이 많아 벌벌 떨고 체면만 차리고, 그러면서 인색했습니다) 그 담뱃가게의 요시코를 사실혼 아내로 삼을 수 있었고, 그러고는 쓰키지, 스미다강 가까이의 나무로 지은 이 층짜리 작은 아파트 아래층 한 칸을 빌려 둘이 살며, 술은 끊고 슬슬 제 정해진 직업이 되어 가던 만화 일에 힘을 쏟았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둘이 영화를 보러 나갔으며 돌아오는 길에는 찻집 같은 데 들르고 또 꽃 화분을 사기도 하고, 아니 그보다도 저를 진심으로 믿어 주는 이 작은 새색시의 말을 듣고 몸짓을 보는 것이 즐거워, 이러다 나도 어쩌면 차츰 사람다운 것이 될 수 있어 비참한 죽음 따위를 맞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 하는 달콤한 생각을 어렴풋이 가슴에 데우기 시작하던 참에, 호리키가 또 제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야! 색마. 어라? 이래 봬도 제법 철든 얼굴이 되었구나. 오늘은 고엔지 여사의 심부름으로 온 건데 말이야"

하고 말을 꺼내다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부엌에서 차를 준비하고 있는 요시코 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괜찮으냐? 하고 묻기에,

"상관없어. 무슨 말을 해도 돼"

하고 저는 차분히 대답했습니다.

실제로 요시코는 믿음의 천재라고 하고 싶을 만큼, 교바시 바의 마담과의 사이는 물론이고 제가 가마쿠라에서 일으킨 사건을 알려 주어도 쓰네코와의 사이를 의심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제가 거짓말을 잘해서가 아니라 때로는 있는 그대로 말하는 일조차 있었는데도 요시코에게는 그것이 죄다 농담으로만 들리는 눈치였습니다.

"여전히 우쭐대는군. 뭐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가끔은 고엔지 쪽에도 놀러 와 달라는 전갈이야"

잊을 만하면 괴이한 새가 날갯짓하며 와서 기억의 상처를 그 부리로 쪼아 헤집습니다. 이내 지난날의 부끄러움과 죄의 기억이 또렷이 눈앞에 펼쳐져, 와아 하고 외치고 싶을 만큼의 두려움으로 앉아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마실까"

하고 저.

"좋지"

하고 호리키.

저와 호리키. 모양은 둘이 닮아 있었습니다. 똑같은 사람인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싼 술을 여기저기 마시고 다닐 때만의 일이었지만, 아무튼 둘이 얼굴을 마주하면 순식간에 같은 모양 같은 털빛의 개로 바뀌어 눈 내리는 거리를 뛰어다니는 꼴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저희는 다시 옛 사귐을 데운 꼴이 되어 교바시의 그 작은 바에도 함께 갔고, 그러고는 끝내 고엔지의 시즈코 아파트에도 그 만취한 두 마리 개가 찾아가 자고 오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잊지도 않습니다. 무더운 여름밤이었습니다. 호리키는 해 질 무렵 후줄근한 유카타를 입고 쓰키지의 제 아파트에 와서, 오늘 어떤 일이 있어 여름옷을 잡혔는데 그것이 늙은 어머니에게 알려지면 참으로 곤란하다, 곧 찾아오고 싶으니 아무튼 돈을 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공교롭게 저에게도 돈이 없었으므로 여느 때처럼 요시코에게 일러 요시코의 옷가지를 전당포에 가져가게 해 돈을 만들었고, 호리키에게 빌려주고도 조금 남기에 그 남은 돈으로 요시코에게 소주를 사 오게 해서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스미다강에서 이따금 희미하게 불어오는 시궁창 냄새 나는 바람을 맞으며 참으로 꾀죄죄한 더위 식히기 잔치를 벌였습니다.

저희는 그때 희극 명사, 비극 명사 알아맞히기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생각해 낸 놀이로, 명사에는 모두 남성 명사, 여성 명사, 중성 명사 따위의 구별이 있지만 그와 함께 희극 명사, 비극 명사의 구별이 있어 마땅하다, 이를테면 기선과 기차는 다 비극 명사이고 시내 전차와 버스는 다 희극 명사다, 왜 그런가, 그것을 모르는 자는 예술을 논할 자격이 없다, 희극에 하나라도 비극 명사를 끼워 넣은 극작가는 이미 그것만으로 낙제, 비극의 경우도 또한 그렇다, 하는 식이었습니다.

"알겠나? 담배는?"

하고 제가 묻습니다.

"비. (비극의 줄임)"

하고 호리키가 대뜸 대답합니다.

"약은?"

"가루약인가? 알약인가?"

"주사"

"비"

"그럴까? 호르몬 주사도 있잖나"

"아니, 단연 비다. 바늘이 무엇보다, 자네, 훌륭한 비 아닌가"

"좋아, 져 주지. 그렇지만 자네, 약이나 의사는 말이야, 그게 뜻밖에 희(희극의 줄임)라네. 죽음은?"

"희. 목사도 스님도 그렇고말고"

"잘했네. 그러면 삶은 비겠군"

"아니야. 그것도 희"

"아니 그러면 무엇이든 죄다 희가 되어 버리네. 그럼 말이야, 하나 더 물어보겠는데, 만화가는? 설마 희라고는 못 하시겠지?"

"비, 비. 크나큰 비극 명사!"

"뭐야, 크게 비극인 건 자네 쪽이지"

이런 서툰 말장난 같은 것이 되어 버리면 시시합니다만, 그러나 저희는 그 놀이를 세계의 살롱에도 일찍이 없던 아주 멋들어진 것이라고 우쭐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 이와 비슷한 놀이를 그때 저는 생각해 냈습니다. 그것은 반대말 알아맞히기였습니다. 검정의 반(반대말의 줄임)은 하양. 그러나 하양의 반은 빨강. 빨강의 반은 검정.

"꽃의 반은?"

하고 제가 물으니 호리키는 입을 비죽이고 생각하다,

"그러니까, 가게쓰(花月)라는 요릿집이 있었으니 달이지"

"아니, 그것은 반이 되지 않아. 오히려 비슷한말이지. 별과 제비꽃도 비슷한말 아닌가. 반이 아니야"

"알았다, 그건 말이야, 벌이야"

"벌?"

"모란에, ……개미인가?"

"뭐야, 그건 그림 제목이지. 얼버무리면 안 되네"

"알았다! 꽃에 조각구름, ……"

"달에 조각구름이겠지"

"그래, 그래. 꽃에 바람. 바람이야. 꽃의 반은 바람"

"시원찮군, 그건 나니와부시 가사 아닌가. 밑천이 드러나네"

"아니야, 비파야"

"더 안 되겠네. 꽃의 반은 말이야, …… 무릇 이 세상에서 가장 꽃답지 않은 것, 그것을 들어야지"

"그러니까, 그, …… 가만있자, 뭐야, 여자인가"

"내친김에, 여자의 비슷한말은?"

"내장"

"자네는 아무래도 시를 모르는군. 그러면 내장의 반은?"

"우유"

"이건 제법 그럴듯한데. 그 가락으로 하나 더. 부끄러움. 그 반대말"

"뻔뻔함이지. 잘나가는 만화가 조시 이쿠타"

"호리키 마사오는?"

이 언저리부터 둘은 차츰 웃지 못하게 되어, 소주 취기 특유의 그 유리 조각이 머릿속에 가득 찬 듯한 우울한 기분이 되어 갔던 것입니다.

"건방진 소리 마라. 나는 아직 너처럼 오라에 묶이는 창피 따위는 당한 적이 없단 말이다"

흠칫했습니다. 호리키는 속으로 저를 제대로 된 사람으로 치지 않았던 것이다, 저를 그저 죽다 만, 뻔뻔하고 얼빠진 괴물, 말하자면 「살아 있는 송장」으로밖에 여겨 주지 않았고, 그러고는 제 즐거움을 위해 저를 써먹을 수 있는 데까지만 써먹는, 그뿐인 「사귐」이었던 것이다, 하고 생각하니 과연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러나 또 호리키가 저를 그렇게 보는 것도 마땅한 일이고, 나는 옛날부터 사람의 자격이 없는 것 같은 아이였다, 역시 호리키에게조차 업신여김을 받아 마땅한지도 모른다, 하고 고쳐 생각하며,

"죄. 죄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이건 어렵겠는걸"

하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꾸미며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법률이지"

호리키가 태연히 그렇게 대답하기에 저는 호리키의 얼굴을 다시 보았습니다. 가까운 빌딩의 깜박이는 네온사인의 붉은 빛을 받아 호리키의 얼굴은 귀신 형사처럼 위엄 있어 보였습니다. 저는 아주 어이가 없어,

"죄라는 건 말이야, 자네, 그런 게 아니잖나"

죄의 반대말이 법률이라니!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다들 그 정도로 쉽게 여기고 태연히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형사가 없는 데에야말로 죄가 꿈틀거린다, 고.

"그러면 뭐냐, 하느님이냐? 너에게는 어딘가 예수쟁이 냄새가 나니까 말이야. 아니꼽구나"

"그렇게 가볍게 치워 버리지 말게. 좀 더 둘이 생각해 보세. 이건 그래도 재미있는 주제 아닌가. 이 주제에 대한 대답 하나로 그 사람 전부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

"설마. …… 죄의 반은 선이지. 선량한 시민. 그러니까 나 같은 것 말이야"

"농담은 그만두세. 그렇지만 선은 악의 반이야. 죄의 반이 아니고"

"악과 죄는 다른 건가?"

"다르다고 생각하네. 선악의 개념은 사람이 만든 것이야. 사람이 제멋대로 만든 도덕의 말이지"

"시끄럽구나. 그러면 역시 하느님이겠지. 하느님, 하느님. 뭐든지 하느님으로 해 두면 틀림없어. 배가 고프군"

"지금 아래에서 요시코가 잠두콩을 삶고 있네"

"고맙군. 좋아하는 거야"

두 손을 머리 뒤로 깍지 끼고 벌렁 누웠습니다.

"자네에게는 죄라는 것이 도무지 흥미가 없는 모양이군"

"그야 그렇지, 너처럼 죄인이 아니니까. 나는 놀아나기는 해도 여자를 죽게 하거나 여자에게서 돈을 우려내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죽게 한 것이 아니다, 우려낸 것이 아니다, 하고 마음 어딘가에서 희미한, 그러나 필사적인 항의의 소리가 일어도, 그러나 또 아니 내가 나쁜 것이라고 이내 고쳐 생각해 버리는 이 버릇.

저는 아무래도 정면으로 맞서는 다툼을 하지 못합니다. 소주의 우울한 취기 때문에 시시각각 마음이 험해지는 것을 애써 누르며 거의 혼잣말처럼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감옥에 갇히는 것만이 죄는 아니야. 죄의 반을 알면 죄의 실체도 잡힐 듯한 느낌이 드는데, …… 하느님, …… 구원, …… 사랑, …… 빛, …… 그렇지만 하느님에게는 사탄이라는 반이 있고, 구원의 반은 괴로움일 테고, 사랑에는 미움, 빛에는 어둠이라는 반이 있고, 선에는 악, 죄와 기도, 죄와 뉘우침, 죄와 고백, 죄와, …… 아아, 죄다 비슷한말이다, 죄의 짝말은 무엇이냐"

"쓰미(죄)를 뒤집으면 미쓰(꿀)지. 꿀처럼 달다는 거야. 배가 고프군. 뭐 먹을 것 좀 가져오라니까"

"자네가 가져오면 되잖나!"

거의 태어나 처음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거센 노여움의 소리가 나왔습니다.

"좋아, 그러면 아래에 내려가서 요시짱하고 둘이서 죄를 저지르고 오지. 따지느니 몸소 살펴보는 게 낫지. 죄의 반은 꿀단팥, 아니 잠두콩인가"

거의 혀가 돌아가지 않을 만큼 취해 있었던 것입니다.

"멋대로 하게. 어디로든 꺼져 버려!"

"죄와 배고픔, 배고픔과 잠두콩, 아니 이건 비슷한말인가"

되는대로 지껄이며 일어섭니다.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 언뜻 그것이 머릿속 한구석을 스치고 지나가 흠칫했습니다. 만약 그 도스토 씨가 죄와 벌을 비슷한말로 여기지 않고 반대말로 나란히 놓은 것이라면? 죄와 벌, 절대로 서로 통하지 않는 것, 얼음과 숯처럼 함께 있을 수 없는 것. 죄와 벌을 반대말로 여긴 도스토의 푸르뎅뎅한 이끼, 썩은 못, 어지러이 엉킨 삼실 그 밑바닥의, …… 아아, 알 듯도 하다, 아니 아직, …… 하고 머릿속에 주마등이 빙글빙글 돌고 있을 때,

"이봐! 엄청난 잠두콩이다. 와 봐!"

호리키의 목소리도 낯빛도 달라져 있습니다. 호리키는 방금 비틀비틀 일어나 아래로 내려갔다 싶더니 다시 되돌아온 것입니다.

"뭔가"

이상하게 살기를 띠고 둘이 옥상에서 이 층으로 내려가, 이 층에서 다시 아래층 제 방으로 내려가는 계단 중간에서 호리키는 멈춰 서서,

"봐라!"

하고 낮은 소리로 말하며 손가락질합니다.

제 방 위의 작은 창이 열려 있어 거기로 방 안이 보입니다. 불이 켜진 채로 짐승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질어질 어지러워하면서, 이것도 또한 사람의 모습이다, 이것도 또한 사람의 모습이다, 놀랄 것 없다, 하고 거친 숨과 함께 가슴속으로 중얼거리며, 요시코를 구할 생각도 잊고 계단에 선 채로 있었습니다.

호리키는 크게 헛기침을 했습니다. 저는 혼자 달아나듯 다시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드러누워 비를 머금은 여름 밤하늘을 우러렀고, 그때 저를 덮친 감정은 노여움도 아니고 미움도 아니고 또 슬픔도 아닌, 무시무시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것도 무덤의 귀신 따위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신사의 삼나무 숲에서 흰옷 입은 신령을 만났을 때 느낄 법한, 이러쿵저러쿵 따질 틈도 없는 아득한 옛날의 거친 두려움이었습니다. 제 새치는 그날 밤부터 시작되었고, 더욱 모든 것에 자신을 잃었으며, 더욱 사람을 밑도 끝도 없이 의심하게 되었고, 세상살이에 대한 일체의 기대, 기쁨, 공감 따위에서 영영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그것은 제 한평생에서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정면으로 미간이 갈라졌고, 그리고 그 뒤로 그 상처는 어떤 사람에게든 가까이 갈 때마다 아팠던 것입니다.

"딱하게는 여기지만, 그래도 너도 이걸로 좀 알았겠지. 이제 나는 두 번 다시 여기 오지 않겠다. 아주 지옥이야. …… 그렇지만 요시짱은 용서해 줘라. 너도 어차피 변변한 놈은 아니니까. 실례하겠다"

거북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을 만큼 눈치 없는 호리키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일어나 혼자 소주를 마시고, 그러고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얼마든지 얼마든지 울 수 있었습니다.

어느새 등 뒤에 요시코가 잠두콩을 수북이 담은 접시를 들고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아무 짓도 안 한다고 하기에, ……"

"됐어. 아무 말도 하지 마. 너는 남을 의심할 줄 몰랐던 거야. 앉아. 콩을 먹자"

나란히 앉아 콩을 먹었습니다. 아아, 믿음은 죄인가? 상대 남자는 저에게 만화를 그리게 하고는 얼마 안 되는 돈을 거드름 피우며 놓고 가는 서른 안팎의 무식한 작은 상인이었습니다.

과연 그 상인은 그 뒤로 오지 않았지만, 저는 어쩐 일인지 그 상인에 대한 미움보다, 처음 보았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큰 헛기침도 무엇도 하지 않고 그대로 저에게 알리러 다시 옥상으로 되돌아온 호리키에 대한 미움과 노여움이 잠 못 드는 밤이면 불끈불끈 일어나 신음했습니다.

용서하고 말고도 없습니다. 요시코는 믿음의 천재인 것입니다. 남을 의심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온 비참함.

하느님께 묻습니다. 믿음은 죄입니까.

요시코가 더럽혀졌다는 것보다 요시코의 믿음이 더럽혀졌다는 것이 저에게 그 뒤 오래도록 살아 있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움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저처럼 추레하게 쭈뼛거리며 남의 낯빛만 살피고, 사람을 믿는 능력이 금이 가 버린 자에게 요시코의 순진한 믿음은 그야말로 푸른 잎의 폭포처럼 맑게 여겨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룻밤에 누런 구정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보십시오, 요시코는 그날 밤부터 제 낯빛 하나에도 마음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봐"

하고 부르면 움찔하고, 벌써 눈 둘 데를 몰라 하는 꼴입니다. 아무리 제가 웃기려고 익살을 부려도 허둥거리고 흠칫거리며 저에게 함부로 높임말을 쓰게 되었습니다.

과연 순진한 믿음은 죄의 근원입니까.

저는 남의 아내가 범해지는 이야기의 책을 이것저것 찾아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요시코만큼 비참하게 범해진 여자는 하나도 없다고 여겼습니다. 애초에 이것은 아예 이야기도 무엇도 되지 않습니다. 그 작은 상인과 요시코 사이에 조금이라도 사랑 비슷한 감정이라도 있었다면 제 마음도 오히려 나았을지 모르지만, 그저 여름 하룻밤 요시코가 믿었고 그러고는 그뿐, 그런데도 그 때문에 제 미간은 정면으로 갈라져 목소리가 쉬고 새치가 나기 시작했으며, 요시코는 한평생 허둥거려야 하게 된 것입니다. 웬만한 이야기들은 그 아내의 「행위」를 남편이 용서하느냐 마느냐, 거기에 무게를 두고 있는 듯했지만, 그것은 저에게는 그렇게 괴로운 큰 문제가 아닌 듯이 여겨졌습니다. 용서한다, 용서하지 않는다, 그런 권리를 쥐고 있는 남편이야말로 복 있도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여겼다면 굳이 그렇게 큰 소동을 벌이지 않아도 얼른 아내와 갈라서고 새 아내를 맞으면 어떨까, 그것이 안 된다면 이른바 「용서하고」 참으면 되지, 어느 쪽이든 남편 마음 하나로 사방팔방이 둥글게 마무리될 텐데, 하는 느낌마저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일은 분명 남편에게 큰 충격이더라도, 그러나 그것은 「충격」이지, 언제까지나 그침 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물결과 달리 권리 있는 남편의 노여움으로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는 말썽처럼 저에게는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의 경우 남편에게 아무런 권리도 없고, 생각하면 무엇이나 다 제가 나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성내기는커녕 꾸지람 한마디도 하지 못했고, 또 그 아내는 그가 지닌 드문 아름다운 바탕 때문에 범해진 것입니다. 게다가 그 아름다운 바탕은 남편이 오래 그리던, 순진한 믿음이라는 견딜 수 없이 가여운 것이었습니다.

순진한 믿음은 죄입니까.

오직 하나 의지하던 아름다운 바탕에까지 의심을 품고, 저는 이제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 향하는 데라고는 오직 술뿐이었습니다. 제 얼굴은 더없이 상스러워졌고, 아침부터 소주를 마셨으며, 이가 너덜너덜 빠졌고, 만화도 거의 음란한 그림에 가까운 것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아니요, 똑똑히 말하겠습니다. 저는 그 무렵부터 춘화를 베껴 몰래 팔았습니다. 소주 살 돈이 갖고 싶었던 것입니다. 늘 저에게서 눈길을 돌린 채 허둥거리는 요시코를 보면, 이 사람은 아주 경계를 모르는 여자였으니 그 상인과 한 번뿐이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 또 호리키는? 아니 혹 내가 모르는 사람과도? 하고 의심은 의심을 낳았고, 그렇다고 마음먹고 그것을 따져 물을 용기도 없어, 그 불안과 두려움에 몸부림치는 심정으로 그저 소주를 마시고 취해서는 겨우 비굴하게 떠보는 물음 같은 것을 조마조마 시도하며 속으로 어리석게 울고 웃고, 겉으로는 함부로 익살을 부리고, 그러고는 요시코에게 꺼림칙한 지옥의 애무를 퍼붓고 진흙처럼 곯아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해 섣달, 저는 밤늦게 만취해 돌아와 설탕물이 마시고 싶었는데 요시코는 자고 있는 듯했으므로 제가 부엌에 가서 설탕 단지를 찾아내 뚜껑을 열어 보니 설탕은 하나도 들어 있지 않고 검고 가느다란 종이 상자가 들어 있었습니다. 무심코 손에 들고 그 상자에 붙어 있는 상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상표는 손톱으로 반 넘게 긁어 벗겨져 있었지만 서양 글자 부분이 남아 있어 거기에 또렷이 적혀 있었습니다. DIAL.

다이알. 저는 그 무렵 오로지 소주뿐이어서 수면제를 쓰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잠 못 드는 것은 제 고질 같은 것이었으므로 웬만한 수면제에는 낯이 익었습니다. 다이알의 이 상자 하나는 분명 죽을 만큼의 양이 넘을 터였습니다. 아직 상자의 봉인을 뜯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언젠가는 할 작정으로 이런 데에, 게다가 상표를 긁어 벗기기까지 해서 숨겨 두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딱하게도 그 아이는 상표의 서양 글자를 읽지 못하니 손톱으로 반쯤 긁어 내고 이러면 괜찮겠지 하고 여겼겠지요. (너에게 죄는 없다)

저는 소리가 나지 않게 살며시 컵에 물을 채우고, 그러고는 천천히 상자의 봉인을 뜯어 전부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고, 컵의 물을 차분히 들이켠 뒤 전등을 끄고 그대로 잤습니다.

사흘 밤낮을 저는 죽은 듯이 있었다고 합니다. 의사는 실수로 보아 경찰에 알리는 것을 미뤄 주었다고 합니다. 깨어나면서 맨 먼저 중얼거린 헛소리는 집에 간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집이란 어디를 가리켜 한 말인지 정작 저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말하고 몹시 울었다고 합니다.

차츰 안개가 걷히고 보니, 머리맡에 넙치가 몹시 언짢은 얼굴로 앉아 있었습니다.

"지난번에도 섣달 일이었지요. 서로 눈이 핑핑 돌 만큼 바쁜데, 늘 섣달을 골라 이런 일을 당하고 보면 이쪽 목숨이 견딜 수가 없어요"

넙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은 교바시 바의 마담이었습니다.

"마담"

하고 저는 불렀습니다.

"응, 왜? 정신이 들었어?"

마담은 웃는 얼굴을 제 얼굴 위에 덮듯이 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뚝뚝 눈물을 흘리며,

"요시코와 헤어지게 해 줘"

저 자신도 뜻밖인 말이 나왔습니다.

마담은 몸을 일으켜 희미한 한숨을 흘렸습니다.

그러고서 저는 이것도 또 참으로 뜻밖인, 우습다고도 어리석다고도 뭐라 이름 붙이기 어려울 만큼의 실언을 했습니다.

"나는 여자가 없는 데로 갈 거야"

우와하하, 하고 먼저 넙치가 큰 소리로 웃었고 마담도 킥킥 웃기 시작했으며, 저도 눈물을 흘리면서 얼굴을 붉힌 꼴이 되어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응, 그편이 낫지"

하고 넙치는 언제까지나 실없이 웃으면서,

"여자가 없는 데로 가는 편이 좋아요. 여자가 있으면 아무래도 안 되지. 여자가 없는 데라니, 좋은 생각입니다"

여자가 없는 데. 그러나 이 저의 어리석은 헛소리는 뒷날에 이르러 몹시 참담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요시코는 무언가 제가 요시코를 대신해 독을 마셨다고 믿어 버린 듯, 전보다 더욱더 저에게 허둥거렸고,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웃지 않았으며 그러고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꼴이어서, 저도 아파트 방 안에 있는 것이 답답해 그만 밖으로 나가 여전히 싼 술을 들이켜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이알 일 이후로 제 몸이 부쩍 야위었고 팔다리가 나른해 만화 일도 게을리하기 일쑤여서, 넙치가 그때 병문안이라며 놓고 간 돈 (넙치는 그것을 시부타의 성의입니다, 하고 자못 제 주머니에서 나온 돈처럼 내밀었지만 이것도 고향의 형들이 보낸 돈인 듯했습니다. 저도 그 무렵에는 넙치네 집에서 달아나던 그때와 달리 넙치의 그런 거드름 피우는 연극을 어렴풋이나마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어 있었으므로, 이쪽도 능청스레 전혀 눈치채지 못한 척하고 얌전히 그 돈에 대해 넙치에게 고맙다고 인사했지만, 그러나 넙치들이 왜 그런 까다로운 꾸밈을 하는지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여 아무래도 저에게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 돈으로 마음먹고 혼자 미나미이즈의 온천에 가 보기도 했지만, 도저히 그런 느긋한 온천 순례 따위를 할 주제가 못 되어, 요시코를 생각하면 쓸쓸함이 끝이 없어 여관방에서 산을 바라보는 따위의 차분한 심경과는 몹시 멀었고, 두툼한 잠옷으로 갈아입지도 않고 목욕도 하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가서는 꾀죄죄한 찻집 같은 데 뛰어들어 소주를 그야말로 흠뻑 마시고, 몸 상태를 한층 나쁘게 해서 도쿄로 돌아왔을 뿐이었습니다.

도쿄에 큰 눈이 내린 밤이었습니다. 저는 취해서 긴자 뒷골목을, 여기는 고향에서 몇백 리, 여기는 고향에서 몇백 리, 하고 낮은 소리로 되풀이 되풀이 중얼거리듯 노래하며, 더 쌓여 가는 눈을 구둣발로 걷어차며 걷다가 갑자기 토했습니다. 그것이 제 첫 각혈이었습니다. 눈 위에 커다란 일장기가 생겼습니다. 저는 한참 웅크리고 있다가, 더럽혀지지 않은 자리의 눈을 두 손으로 퍼 얼굴을 씻으며 울었습니다.

여기는 어디로 가는 좁은 길이냐?

여기는 어디로 가는 좁은 길이냐?

가여운 계집아이의 노랫소리가 헛것처럼 희미하게 멀리서 들립니다. 불행. 이 세상에는 갖가지 불행한 사람이, 아니 불행한 사람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겠지만, 그러나 그 사람들의 불행은 이른바 세상에 대고 당당히 따질 수 있고, 또 「세상」도 그 사람들의 따짐을 쉽게 이해하고 가엾게 여깁니다. 그러나 제 불행은 죄다 제 죄악에서 나온 것이라 누구에게도 따질 길이 없고, 또 더듬거리며 한마디라도 따지는 듯한 말을 꺼내면 넙치가 아니라도 세상 사람들 모두가 용케도 그런 말이 나오는구나 하고 어이없어할 것이 틀림없으며, 저는 대체 흔히 말하는 「제멋대로인 자」인지 아니면 그 반대로 마음이 너무 약한 것인지 저 스스로도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죄악의 덩어리인 듯하니 어디까지고 스스로 점점 불행해질 뿐 막아 낼 구체적인 수 따위는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일어나 우선 무언가 알맞은 약을 하고 생각하여 가까운 약국에 들어갔는데, 그 집 부인과 얼굴이 마주친 순간 부인은 플래시라도 받은 듯 고개를 들고 눈을 크게 뜨더니 꼿꼿이 선 채 굳었습니다. 그러나 그 크게 뜬 눈에는 놀라움의 빛도 미워하는 빛도 없이, 거의 구원을 바라는 듯한, 그리워하는 듯한 빛이 떠올라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이 사람도 틀림없이 불행한 사람이다, 불행한 사람은 남의 불행에도 민감한 법이니까, 하고 여겼을 때 문득 그 부인이 목발을 짚고 위태롭게 서 있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여전히 그 부인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사이에 눈물이 났습니다. 그러자 부인의 커다란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넘쳐 나왔습니다.

그뿐,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저는 그 약국에서 나와 비틀거리며 아파트로 돌아가, 요시코에게 소금물을 만들게 해 마시고 잠자코 잤으며, 이튿날도 감기 기운이라고 거짓말하고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밤에 제 숨겨 둔 각혈이 아무래도 불안해 견딜 수 없어 일어나 그 약국에 가서, 이번에는 웃으며 부인에게 참으로 솔직하게 여태까지의 몸 상태를 털어놓고 의논했습니다.

"술을 끊지 않으시면"

저희는 핏줄 같았습니다.

"알코올 중독이 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마시고 싶어요"

"안 됩니다. 제 남편도 폐병이면서 균을 술로 죽이는 거라느니 하며 술독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줄였습니다"

"불안해서 못 견디겠습니다. 무서워서 도저히 안 됩니다"

"약을 드리겠습니다. 술만은 그만두세요"

부인은 (홀몸이었고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아이는 지바던가 어딘가의 의대에 들어갔다가 얼마 안 되어 아버지와 같은 병에 걸려 휴학하고 입원 중이었으며, 집에는 중풍에 걸린 시아버지가 누워 있었고, 부인 자신은 다섯 살 적에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아주 못 쓰는 것이었습니다) 목발을 또각또각 짚으며 저를 위해 저쪽 선반, 이쪽 서랍에서 이런저런 약품을 챙겨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피를 만드는 약.

이것은 비타민 주사액. 주사기는 이것.

이것은 칼슘 알약. 위와 장이 상하지 않도록 소화제.

이것은 무엇, 이것은 무엇, 하고 대여섯 가지 약품의 설명을 애정을 담아 해 주었는데, 그러나 이 불행한 부인의 애정 또한 저에게는 너무 깊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인이, 이것은 아무래도 도저히 술을 마시고 싶어 견딜 수 없어졌을 때의 약, 하고 말하며 재빨리 종이에 싼 작은 상자.

모르핀 주사액이었습니다.

술보다는 해가 되지 않는다고 부인도 말했고 저도 그것을 믿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술 취기도 과연 더럽게 느껴지기 시작하던 참이기도 했고, 오랜만에 알코올이라는 사탄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기쁨도 있어, 아무 망설임 없이 저는 제 팔에 그 모르핀을 주사했습니다. 불안도 조바심도 부끄러움도 말끔히 사라지고, 저는 몹시 쾌활한 달변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사를 맞으면 저는 몸의 쇠약함도 잊고 만화 일에 힘이 나서, 제가 그리면서도 웃음이 터질 만큼 별난 착상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대이던 것이 두 대가 되고 네 대가 되었을 무렵에는 저는 이제 그것이 없으면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안 됩니다, 중독이 되면 그건 정말 큰일입니다"

약국 부인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저는 이제 상당한 중독 환자가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저는 남의 암시에 참으로 쉽게 걸리는 성미인 것입니다. 이 돈은 쓰면 안 돼요, 하고 말해도 너니까 뻔하지, 하는 말을 들으면 어쩐지 쓰지 않으면 나쁜 듯한, 기대를 저버리는 듯한 이상한 착각이 일어나 반드시 곧 그 돈을 써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독의 불안 때문에 오히려 약품을 많이 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부탁합니다! 한 상자만 더. 값은 월말에 꼭 치르겠습니다"

"값이야 언제든 괜찮습니다만, 경찰 쪽이 성가셔서요"

아아, 언제나 제 둘레에는 무언가 흐리고 어둡고 수상쩍은 그늘진 자의 기운이 따라다닙니다.

"거기를 어떻게든 얼버무려 주세요, 부탁이에요, 부인. 입 맞춰 드릴게요"

부인은 얼굴을 붉힙니다.

저는 더욱 파고들어,

"약이 없으면 일이 조금도 진척되지 않는단 말입니다. 나에게 그건 기운을 내게 하는 약 같은 것이에요"

"그러면 차라리 호르몬 주사가 좋겠지요"

"놀리지 마세요. 술이 아니면 그 약, 둘 중 하나가 아니면 일을 할 수 없단 말입니다"

"술은 안 됩니다"

"그렇지요? 나는 말이죠, 그 약을 쓰게 된 뒤로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어요. 덕분에 몸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나도 언제까지나 서툰 만화 따위나 그릴 생각은 없어요, 이제부터 술을 끊고 몸을 고치고 공부해서 반드시 훌륭한 화가가 되어 보이겠습니다. 지금이 중요한 고비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네, 부탁합니다. 입 맞춰 드릴까요"

부인은 웃음을 터뜨리고,

"난처하네요. 중독이 되어도 몰라요"

또각또각 목발 소리를 내며 그 약품을 선반에서 꺼내,

"한 상자는 드릴 수 없어요. 금방 다 써 버리는걸요. 절반만"

"인색하시네, 뭐 어쩔 수 없지"

집에 돌아와 곧바로 한 대 주사합니다.

"아프지 않으세요?"

요시코가 쭈뼛거리며 저에게 묻습니다.

"그야 아프지. 하지만 일의 능률을 올리려면 싫어도 이걸 해야 하는 거야. 나 요즘 아주 기운이 좋지? 자, 일이다. 일, 일"

하고 신이 나 떠드는 것입니다.

깊은 밤 약국 문을 두드린 적도 있었습니다. 잠옷 차림으로 또각또각 목발을 짚고 나온 부인에게 대뜸 매달려 입을 맞추고 우는 시늉을 했습니다.

부인은 말없이 저에게 한 상자를 건네주었습니다.

약품도 또한 소주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보다 더 꺼림칙하고 더러운 것이라고 사무치게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저는 완전한 중독 환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참으로 뻔뻔함의 끝이었습니다. 저는 그 약품을 얻고 싶은 마음 하나로 다시 춘화 베끼기를 시작했고, 그러고는 그 약국의 다리 성치 않은 부인과 글자 그대로 추한 관계까지 맺었습니다.

죽고 싶다, 차라리 죽고 싶다, 이제 되돌릴 수 없다, 무슨 짓을 해도 무엇을 해도 못 쓰게 될 뿐이다, 부끄러움 위에 부끄러움을 덧칠할 뿐이다, 자전거로 푸른 잎의 폭포 따위는 나에게 바랄 수도 없다, 그저 더러운 죄에 추한 죄가 겹치고 괴로움이 커지고 거세질 뿐이다, 죽고 싶다, 죽어야 한다, 살아 있는 것이 죄의 씨앗이다, 하고 골똘히 생각해도, 역시 아파트와 약국 사이를 반쯤 미친 꼴로 오갈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일을 해도 약을 쓰는 양도 따라서 늘었으므로 약값 외상이 무서울 만큼의 액수에 이르렀고, 부인은 제 얼굴을 보면 눈물을 글썽였으며 저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옥.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수단, 이것이 안 되면 그다음은 목을 매는 수밖에 없다, 하는 하느님의 있고 없음을 거는 만큼의 각오로 저는 고향의 아버지 앞으로 긴 편지를 써서 제 실정 일체를 (여자 일은 차마 쓰지 못했지만) 털어놓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더 나빠서, 기다리고 기다려도 아무 답이 없었고, 저는 그 조바심과 불안 때문에 오히려 약의 양을 늘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밤 열 대를 한꺼번에 주사하고 그러고는 오카와에 뛰어들자고 남몰래 각오를 굳힌 그날 오후, 넙치가 악마의 촉으로 냄새라도 맡은 듯 호리키를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너 각혈했다면서"

호리키는 제 앞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그렇게 말하며, 여태 본 적도 없을 만큼 상냥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그 상냥한 미소가 고맙고 기뻐서 저는 그만 얼굴을 돌리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 상냥한 미소 하나에 저는 완전히 무너지고 묻혀 버린 것입니다.

저는 자동차에 태워졌습니다. 아무튼 입원해야 한다, 나머지는 우리에게 맡기라고 넙치도 차분한 말투로 (그것은 자비롭다고나 하고 싶을 만큼 조용한 말투였습니다) 저에게 권했고, 저는 뜻도 판단도 무엇도 없는 자처럼 그저 훌쩍훌쩍 울며 고분고분 두 사람이 이르는 대로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요시코까지 넷이서 저희는 퍽 오래 자동차에 흔들렸고, 둘레가 어둑해질 무렵 숲속의 큰 병원 현관에 닿았습니다.

요양원이려니만 여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젊은 의사의 유난히 부드럽고 정중한 진찰을 받았고, 그러고서 의사는,

"뭐, 한동안 여기서 요양하시지요"

하고 마치 수줍어하듯 미소 지으며 말했고, 넙치와 호리키와 요시코는 저 혼자만 두고 돌아가게 되었는데, 요시코는 갈아입을 옷을 넣은 보자기를 저에게 건네주고, 그러고는 말없이 허리띠 사이에서 주사기와 쓰다 남은 그 약품을 내밀었습니다. 역시 기운 내게 하는 약이려니만 여겼던 것일까요.

"아니, 이제 필요 없어"

참으로 드문 일이었습니다. 권하는 것을 마다한 것은 제 그때까지의 한평생에 그때 단 한 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인 것입니다. 저의 불행은 마다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 것을 마다하면 상대의 마음에도 제 마음에도 영영 고칠 수 없는 서먹한 금이 갈 듯한 두려움에 쫓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그토록 반쯤 미쳐 구하던 모르핀을 참으로 자연스럽게 마다했습니다. 요시코의 말하자면 「하느님 같은 무지」에 얻어맞았던 것일까요. 저는 그 순간 이미 중독이 아니게 되어 있었던 것 아닐까요.

그러나 저는 그 뒤 곧바로 그 수줍어하는 듯한 미소를 짓는 젊은 의사의 안내를 받아 어느 병동에 들여보내졌고, 철컥 자물쇠가 잠겼습니다. 정신병원이었습니다.

여자가 없는 데로 간다는, 그 다이알을 마셨을 때의 저의 어리석은 헛소리가 참으로 묘하게 이루어진 셈이었습니다. 그 병동에는 남자 미친 사람들뿐이었고 간병인도 남자였으며, 여자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죄인이기는커녕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아니요, 단연코 저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한순간도 미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아, 미친 사람은 대개 자기 일을 그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병원에 들어온 자는 미치광이, 들어오지 않은 자는 정상이라는 셈이 되는 모양입니다.

하느님께 묻습니다. 맞서지 않는 것은 죄입니까?

호리키의 그 이상하게 아름다운 미소에 저는 울었고, 판단도 맞섬도 잊고 자동차에 탔으며, 그러고는 여기 끌려와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여기서 나가도 저는 역시 미친 사람, 아니 폐인이라는 낙인을 이마에 찍히겠지요.

인간, 실격.

이제 저는 완전히 사람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여기 온 것은 초여름 무렵으로, 쇠창살 창으로 병원 뜰의 작은 못에 붉은 수련이 피어 있는 것이 보였는데,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나 뜰에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하자 뜻밖에 고향의 큰형이 넙치를 데리고 저를 데리러 왔고, 아버지가 지난달 말 위궤양으로 돌아가셨다는 것, 우리는 이제 네 지난 일을 묻지 않겠다, 먹고사는 걱정도 끼치지 않을 생각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 여러 미련도 있겠지만 곧 도쿄를 떠나 시골에서 요양 생활을 시작해 다오, 네가 도쿄에서 저지른 일의 뒤처리는 대체로 시부타가 해 주었을 터이니 그것은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 하고 그 예의 고지식하고 긴장한 듯한 말투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고향의 산과 강이 눈앞에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저는 어렴풋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야말로 폐인.

아버지가 죽은 것을 알고부터 저는 더욱 얼이 빠진 듯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이제 없다, 제 가슴속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던 그 그립고 무서운 존재가 이제 없다, 제 괴로움의 단지가 텅 빈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 괴로움의 단지가 유난히 무거웠던 것도 그 아버지 탓이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아주 맥이 빠졌습니다. 괴로워할 능력조차 잃었습니다.

큰형은 저에 대한 약속을 정확히 지켜 주었습니다. 제가 나고 자란 고을에서 기차로 네댓 시간 남쪽으로 내려간 데에 동북 지방에서는 드물 만큼 따뜻한 바닷가 온천 마을이 있어, 그 마을 끝의, 방은 다섯 칸이나 되지만 꽤 낡은 집인 듯 벽은 벗겨져 떨어지고 기둥은 벌레가 먹어 거의 손볼 수도 없을 만한 초가를 사서 저에게 주었고, 예순에 가까운 머리털이 몹시 붉고 못생긴 하녀를 하나 붙여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삼 년 남짓 지났고, 저는 그사이 데쓰라는 그 늙은 하녀에게 몇 번인가 이상하게 범해졌으며, 이따금 부부 싸움 비슷한 것을 벌이기도 하고, 가슴의 병은 나았다 나빠졌다 하며 야위었다 살쪘다 하고 피 섞인 가래가 나오기도 했는데, 어제 데쓰에게 칼모틴을 사 오라고 해서 마을 약국에 심부름을 보냈더니 여느 상자와 다른 모양의 상자에 든 칼모틴을 사 왔고, 저도 딱히 마음에 두지 않고 자기 전에 열 알을 먹었는데도 조금도 졸리지 않아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이에 배 속이 이상해져 서둘러 뒷간에 갔더니 지독한 설사였고, 게다가 그 뒤로 잇달아 세 번이나 뒷간을 드나들었던 것입니다. 수상해 견딜 수 없어 약 상자를 잘 보니 그것은 헤노모틴이라는 설사약이었습니다.

저는 반듯이 누워 배에 탕파를 얹고 데쓰에게 잔소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말이야, 칼모틴이 아니야. 헤노모틴이라는 거야"

하고 말하려다 우후후후 하고 웃고 말았습니다. 「폐인」은 아무래도 이것은 희극 명사인 모양입니다. 자려고 설사약을 마시고, 게다가 그 설사약의 이름은 헤노모틴.

이제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제가 여태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이른바 「인간」의 세계에서 딱 하나 진리처럼 여겨진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저는 올해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부쩍 늘어 웬만한 사람들에게는 마흔 넘게 보입니다.

맺음말

이 수기를 적어 내려간 미친 사람을 나는 직접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수기에 나오는 교바시의 스탠드바 마담인 듯한 인물을 나는 조금 알고 있다. 몸집이 작고 낯빛이 좋지 않으며 눈이 가늘게 치켜 올라가고 코가 높은, 미인이라기보다 미남 청년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만큼 단단한 느낌의 사람이었다. 이 수기에는 아무래도 1930년 앞뒤, 그 무렵 도쿄의 풍경이 주로 담겨 있는 듯한데, 내가 그 교바시의 스탠드바에 벗에게 이끌려 두세 번 들러 하이볼 따위를 마신 것은 그 일본의 「군부」가 슬슬 노골적으로 날뛰기 시작한 1935년 앞뒤의 일이었으니, 이 수기를 쓴 사내를 만날 수는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올해 이월, 나는 지바현 후나바시시로 피난해 있는 어느 벗을 찾아갔다. 그 벗은 내 대학 시절의 말하자면 학우로 지금은 어느 여자대학 강사를 하고 있는데, 실은 내가 이 벗에게 내 집안사람의 혼담을 부탁해 두었으므로 그 볼일도 있고, 겸사겸사 무언가 싱싱한 해산물이라도 구해다 우리 집 식구들에게 먹이려고 배낭을 메고 후나바시시로 나섰던 것이다.

후나바시시는 흙탕 바다에 면한 제법 큰 고을이었다. 새로 들어온 주민인 그 벗의 집은 그곳 사람에게 주소를 대고 물어도 좀처럼 알 수 없었다. 추운 데다 배낭을 멘 어깨가 아파, 나는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소리에 이끌려 어느 찻집 문을 밀었다.

그 집 마담이 낯익어 물어보았더니, 바로 십 년 전 그 교바시의 작은 바 마담이었다. 마담도 나를 곧 떠올려 준 눈치여서 서로 요란하게 놀라고 웃었으며, 그러고는 이런 때의 정해진 순서인 그 공습으로 집을 잃은 서로의 경험을 묻지도 않았는데 자못 자랑스레 주고받다가,

"그런데 당신은 변하지 않았군요"

"아니에요, 이제 할머니예요. 몸이 삐걱거립니다. 당신이야말로 젊으시네요"

"당치도 않아요, 아이가 벌써 셋이나 있는걸요. 오늘은 그놈들 먹일 것을 사러 나온 겁니다"

하는 따위로, 이것 또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끼리의 정해진 인사를 나누고, 그러고는 둘 다 아는 이들의 그 뒤 소식을 서로 묻기도 하다가, 그러던 중에 문득 마담은 말투를 고쳐, 당신은 요조를 아셨던가요, 하고 말한다. 그건 모른다고 대답하니 마담은 안으로 들어가 공책 세 권과 사진 석 장을 가지고 나와 나에게 건네주며,

"무언가 소설 재료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하고 말했다.

나는 남에게 떠맡겨진 재료로 글을 쓰지 못하는 성미라 곧 그 자리에서 돌려줄까 했지만 (사진 석 장, 그 괴이함에 대해서는 머리말에도 적어 두었다) 그 사진에 마음이 끌려 아무튼 공책을 맡아 두기로 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여기 들르겠습니다만 몇 정 몇 번지의 아무개 씨, 여자대학 선생을 하는 이의 집을 아시느냐고 물으니, 역시 새로 들어온 주민끼리라 알고 있었다. 이따금 이 찻집에도 오신다고 한다. 바로 가까운 곳이었다.

그날 밤 벗과 조금 술잔을 나누고 하룻밤 묵기로 하여, 나는 아침까지 한숨도 자지 않고 그 공책에 빠져 읽었다.

그 수기에 적혀 있는 것은 옛날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요즘 사람들이 읽어도 제법 흥미를 가질 것이 틀림없다. 어설피 내 붓을 대기보다 이것은 이대로 어느 잡지사에 부탁해 내보내는 편이 더 뜻있는 일로 여겨졌다.

아이들에게 줄 해산물 선물은 말린 것뿐. 나는 배낭을 메고 벗의 집을 나와 그 찻집에 들러,

"어제는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

하고 곧바로 말을 꺼내,

"이 공책은 한동안 빌려주실 수 없을까요"

"예, 그러시지요"

"이 사람은 아직 살아 있습니까?"

"글쎄요, 그게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십 년쯤 전에 교바시 가게 앞으로 그 공책과 사진 소포가 왔는데, 보낸 이는 요조가 틀림없지만 그 소포에는 요조의 주소도 이름조차도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공습 때 다른 것들에 섞여 이것도 이상하게 살아남아서, 저는 요전에 처음으로 전부 읽어 보았는데, ……"

"우셨습니까?"

"아니요, 운다기보다, …… 안 되겠더군요, 사람도 저렇게 되면 이제 글렀어요"

"그로부터 십 년이라면 이제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르겠군요. 이건 당신에게 고마움을 표할 셈으로 보내온 것이겠지요. 다소 부풀려 쓴 데도 있는 듯하지만, 그러나 당신도 꽤 심한 해를 입은 모양이군요. 만약 이것이 전부 사실이었다면, 그리고 내가 이 사람의 벗이었다면 역시 정신병원에 데려가고 싶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 아버지가 나빠요"

아무렇지 않은 듯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하고 눈치도 빨라서, 술만 마시지 않았으면, 아니 마셔도, …… 하느님 같은 착한 아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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