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Johann Wolfgang von Goethe —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 (1774/1787)
1771년 봄, 낯선 고장에 온 젊은 베르테르는 친구 빌헬름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무도회에 가는 길에 만난 로테에게는 이미 약혼자 알베르트가 있다. 자연과 아이들과 호메로스를 사랑하던 한 청년의 마음이 걷잡을 수 없는 정열 속에 무너져 가는 1년 반의 기록. 출간되자 온 유럽을 뒤흔든 괴테의 편지 소설.
머리말
가엾은 베르테르의 이야기에 대해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정성껏 모아 여기 여러분 앞에 내놓습니다. 여러분은 내게 고마워하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은 그의 정신과 성품에 감탄과 사랑을, 그의 운명에 눈물을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처럼 가슴이 북받쳐 오르는 착한 영혼이여, 그의 괴로움에서 위안을 얻으십시오. 운명 때문이든 그대 자신의 잘못 때문이든 더 가까운 벗을 찾지 못한다면, 이 작은 책을 그대의 벗으로 삼으십시오!
제1부
1771년 5월 4일
떠나오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 친구야, 사람의 마음이란 대체 뭘까! 그토록 사랑하고 떨어져 지낼 수 없던 너를 두고 오면서 기쁘다니! 넌 날 용서해 주리라는 걸 알아. 내가 맺은 다른 인연들은 마치 운명이 나 같은 마음을 괴롭히려고 일부러 골라 놓은 것 같지 않았니? 가엾은 레오노레! 그래도 나는 잘못이 없었어. 그 아이 언니의 고집스러운 매력에 내가 즐겁게 놀고 있는 사이, 그 가엾은 마음에 열정이 자라났다고 해서 그게 내 탓일 수 있을까? 그런데—정말 내게 아무 잘못도 없을까? 내가 그 아이의 감정을 키우지 않았던가?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우리를 그렇게 자주 웃게 만들던, 그 아이의 꾸밈없는 진심 어린 표현들을 나 스스로 즐기지 않았던가? 내가 그러지 않았던가—아, 사람이란 대체 뭐길래 제 탓을 하며 한탄할 수 있단 말인가! 친구야, 약속할게, 나는 달라질 거야. 운명이 우리 앞에 내놓는 자잘한 불행을 지금까지처럼 되새김질하지 않을 거야.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누리고,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두겠어. 네 말이 맞아, 친구야. 사람들이—하느님만 아시겠지, 왜 사람이 그렇게 생겨 먹었는지!—심심한 지금을 견디기보다 지난 불행의 기억을 불러내는 데 그토록 부지런히 상상력을 쓰지 않는다면, 사람들 사이에 괴로움은 훨씬 적을 거야.
미안하지만 어머니께, 맡기신 일은 내가 잘 처리하고 되도록 빨리 소식을 드리겠다고 전해 줘. 이모를 만나 이야기해 봤는데, 우리 집에서 말하던 그런 못된 여자는 전혀 아니더라. 쾌활하고 성격이 불같지만 마음씨는 더없이 좋은 분이야. 유산 몫을 내주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불만을 전했더니, 이모는 자기 사정과 까닭, 그리고 어떤 조건이라면 전부, 아니 우리가 바란 것보다 더 많이 내줄 수 있는지 말해 주었어—간단히 말해 지금은 그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아. 어머니께 다 잘될 거라고 전해 줘. 그리고 친구야, 이번 작은 일로 나는 다시 깨달았어. 세상에서 일을 그르치는 건 간사함이나 악의보다 오해와 게으름일지도 모른다는 걸. 적어도 앞의 둘은 분명 더 드물거든.
그건 그렇고 나는 여기서 아주 잘 지내고 있어. 이 낙원 같은 고장에서 홀로 지내는 것이 내 마음에는 더없이 귀한 약이야. 젊음의 계절인 이 봄은 자주 떨리는 내 마음을 한껏 따뜻하게 데워 줘. 나무마다, 울타리마다 꽃다발이야. 풍뎅이가 되어서 향기의 바다를 떠다니며 그 속에서 먹을 것을 다 찾고 싶을 정도야.
마을 자체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둘레의 자연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 그래서 돌아가신 M 백작이 언덕 하나에 정원을 꾸몄던 거지. 이곳 언덕들은 더없이 다채롭게 엇갈리면서 정말 아늑한 골짜기들을 이뤄. 정원은 소박해. 들어서자마자 학식 있는 정원사가 아니라 이곳에서 자기 자신을 누리고 싶었던 다감한 마음이 설계를 했다는 걸 느낄 수 있어. 그분이 가장 아끼던 자리이자 이제 내가 가장 아끼는 자리인, 허물어져 가는 작은 정자에서 나는 벌써 세상을 떠난 그분을 생각하며 여러 번 눈물을 흘렸어. 머지않아 나는 이 정원의 주인이 될 거야. 정원사가 나를 좋아하거든. 겨우 며칠 사이인데 말이야. 그 사람도 손해 볼 일은 없을 거야.
5월 10일
놀라운 밝음이 내 영혼을 온통 차지했어. 내가 온 마음으로 누리는 달콤한 봄날 아침과 같아. 나는 혼자이고, 나 같은 영혼을 위해 만들어진 이 고장에서 내 삶을 기뻐하고 있어. 친구야, 나는 너무나 행복하고, 고요히 존재한다는 느낌에 너무나 깊이 잠겨 있어서 그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지금은 아무것도, 선 하나도 그릴 수 없어. 그런데도 지금보다 더 위대한 화가였던 적은 없어. 사랑스러운 골짜기가 내 둘레에서 안개를 피워 올리고, 높이 뜬 해가 꿰뚫을 수 없는 내 숲의 어둠 위에 머물고, 몇 줄기 빛만이 그 안쪽 성소로 몰래 스며들 때, 나는 흘러내리는 시냇가의 키 큰 풀밭에 누워. 땅에 더 가까이 붙으면 갖가지 작은 풀 천 포기가 눈에 띄지. 풀줄기 사이에서 우글거리는 작은 세상을, 헤아릴 수 없고 다 알 수 없는 벌레며 날벌레들의 모습을 내 가슴 가까이에서 느낄 때, 우리를 당신 모습대로 지으신 전능하신 분이 곁에 계심을 느끼고, 우리를 영원한 기쁨 속에 띄워 안아 주시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분의 숨결을 느낄 때, 친구야! 그러다 내 눈앞이 어스름해지고, 내 둘레의 세상과 하늘이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처럼 온통 내 영혼 속에 깃들면—그럴 때면 나는 자주 그리움에 젖어 생각해. 아, 이걸 다시 표현할 수 있다면, 네 안에 이토록 가득하고 이토록 따뜻하게 살아 있는 것을 종이에 불어넣을 수 있다면. 네 영혼이 무한한 하느님의 거울이듯 그 종이가 네 영혼의 거울이 될 수 있다면!—친구야—하지만 나는 그러다 무너져 버려. 이 장엄한 광경의 힘에 짓눌려 쓰러지고 말아.
5월 12일
이 고장 둘레에 사람을 홀리는 정령들이 떠도는 건지, 아니면 내 마음속의 따뜻하고 거룩한 상상력이 둘레의 모든 것을 이토록 낙원처럼 만드는 건지 모르겠어. 마을 바로 앞에 샘이 하나 있는데, 나는 멜루지네와 그 자매들처럼 그 샘에 홀려 있어.—작은 언덕을 내려가면 둥근 지붕 아래에 이르는데, 거기서 계단을 스무 개쯤 내려가면 맨 아래 대리석 바위틈에서 더없이 맑은 물이 솟아. 위쪽을 둘러싼 낮은 담, 그곳을 빙 둘러 덮은 키 큰 나무들, 그곳의 서늘함, 그 모든 게 어딘가 마음을 끌면서도 오싹해. 하루도 빠짐없이 나는 거기 한 시간씩 앉아 있어. 그러면 마을 아가씨들이 물을 길으러 와. 옛날에는 공주들도 손수 하던, 가장 순박하면서 가장 필요한 일이지. 거기 앉아 있으면 옛 족장 시대의 정경이 생생하게 내 둘레에 살아나. 옛 조상들이 모두 샘가에서 서로 알게 되고 청혼하던 일, 그리고 샘과 샘물 둘레에 착한 정령들이 떠돌던 일이 말이야. 아, 무더운 여름날 힘든 길을 걷고 나서 샘의 서늘함으로 목을 축여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걸 함께 느낄 수 없겠지.
5월 13일
내 책들을 보내 줄까 묻는 거니?—친구야, 제발 부탁이니 그것들을 내게서 치워 줘! 나는 더 이상 이끌리고 북돋워지고 불붙여지고 싶지 않아. 이 마음은 저 혼자서도 충분히 끓어오르니까. 내게 필요한 건 자장가인데, 그건 나의 호메로스 속에서 넉넉히 찾았어. 나는 얼마나 자주 들끓는 내 피를 달래 잠재우는지 몰라. 너는 이 마음처럼 들쭉날쭉하고 갈피를 못 잡는 것은 본 적이 없을 테니까. 친구야! 내가 슬픔에서 방탕으로, 달콤한 우울에서 파멸을 부르는 열정으로 넘어가는 걸 그토록 자주 지켜보며 그 짐을 함께 져 준 너한테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내 이 작은 마음을 아픈 아이처럼 다루고 있어. 바라는 건 뭐든 다 들어주지. 이건 남한테 말하지 마. 그걸 나쁘게 볼 사람들이 있으니까.
5월 15일
이곳의 가난한 사람들은 벌써 나를 알아보고 좋아해. 특히 아이들이 그래. 그런데 서글픈 일을 하나 알게 됐어. 처음에 내가 그들 사이에 끼어 다정하게 이것저것 물었더니, 몇몇은 내가 자기들을 놀리는 줄 알고 아주 퉁명스럽게 나를 쫓아 버리기까지 했어. 나는 그걸 언짢게 여기지 않았어. 다만 전부터 자주 느끼던 걸 아주 생생하게 느꼈지. 조금이라도 신분이 있는 사람들은 마치 가까이 가면 무언가를 잃는다고 여기는 듯 언제나 서민들과 차갑게 거리를 둔다는 것, 그리고 몸을 낮추는 척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기 오만을 더 따끔하게 느끼게 하는 경박한 자들과 짓궂은 익살꾼들이 있다는 것 말이야.
우리가 똑같지 않고 똑같을 수도 없다는 건 나도 잘 알아. 하지만 체면을 지키려면 이른바 천한 사람들과 거리를 둬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은, 질까 봐 두려워 적을 피해 숨는 겁쟁이와 똑같이 나무랄 만하다고 나는 생각해.
얼마 전 샘에 갔더니 젊은 하녀 하나가 물동이를 맨 아래 계단에 내려놓고, 머리에 이는 걸 거들어 줄 동무가 오지 않나 둘러보고 있더라. 나는 내려가서 그 아이를 쳐다보았어.—"도와 드릴까요, 아가씨?" 내가 말했지.—그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졌어.—"아니에요, 나리!" 그 아이가 말했어.—"사양 말아요."—그 아이가 똬리를 바로 놓았고, 나는 거들어 주었어. 그 아이는 고맙다고 하고 계단을 올라갔어.
5월 17일
이런저런 사람들을 알게 됐지만, 어울릴 만한 무리는 아직 찾지 못했어. 내게 사람을 끄는 무언가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따라. 그래서 우리가 함께 가는 길이 아주 짧을 때면 마음이 아파. 이곳 사람들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어. 어디나 똑같다고! 인간이란 참 단조로운 족속이야. 대부분은 먹고살려고 시간의 대부분을 일하는 데 쓰고, 그러고 남은 손톱만 한 자유가 오히려 두려워서 그걸 떨쳐 버릴 온갖 방법을 찾아. 아, 인간의 운명이여!
그래도 아주 좋은 사람들이야! 이따금 나를 잊고 그들과 어울려 사람에게 아직 허락된 즐거움을 누릴 때면, 이를테면 잘 차린 식탁에 둘러앉아 터놓고 진심으로 농담을 주고받거나, 마차로 나들이를 하거나, 알맞은 때에 춤 자리를 마련하거나 하면, 그게 내게 아주 좋은 효과를 내. 다만 내 안에 아직 다른 힘들이 많이 잠들어 있다는 것, 그 힘들이 모두 쓰이지도 못한 채 썩어 가고 있고 나는 그걸 조심스럽게 감춰야 한다는 생각만 떠오르지 않으면 말이야. 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온통 답답해져.—그래도 어쩌겠어! 오해받는 것, 그게 우리 같은 사람들의 운명이야.
아, 내 젊은 날의 그 여자 친구가 세상을 떠나다니, 아, 내가 그 사람을 알았었다니!—나는 이렇게 말하겠지. 넌 바보야!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을 찾고 있잖아!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가졌었어. 그 마음을, 그 큰 영혼을 느꼈어. 그 사람 곁에 있으면 나는 실제의 나보다 더 큰 사람이 된 것 같았어.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었으니까. 하느님! 그때 내 영혼의 힘 가운데 단 하나라도 쓰이지 않고 남은 게 있었던가? 내 마음이 자연을 끌어안는 그 놀라운 느낌을 그 사람 앞에서는 다 펼칠 수 있지 않았던가? 우리 사이는 더없이 섬세한 감정과 더없이 날카로운 재치가 끝없이 엮이는 것이었고, 그 재치는 짓궂음에 이르기까지 모두 천재의 도장이 찍혀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아, 나보다 앞서 산 그 세월 때문에 그 사람은 나보다 먼저 무덤으로 갔어. 나는 그 사람을 결코 잊지 못할 거야. 그 굳은 마음도, 그 거룩한 너그러움도.
며칠 전에는 V라는 젊은이를 만났어. 활달하고 생김새가 아주 복스러운 청년이야. 대학에서 막 돌아왔는데 스스로를 현명하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더 안다고 믿어. 이것저것 보니 부지런히 공부한 것 같고, 한마디로 아는 게 꽤 있어. 내가 그림을 많이 그리고 그리스어를 할 줄 안다는 말을 듣고(이 고장에서는 둘 다 별똥별 같은 일이지) 나를 찾아와서는, 바퇴에서 우드까지, 드 필에서 빙켈만까지 잔뜩 아는 걸 늘어놓더니, 줄처의 『이론』 제1부를 다 읽었고 하이네가 쓴 고대 연구 원고도 갖고 있다고 장담했어. 나는 그냥 내버려 두었지.
아주 훌륭한 사람을 하나 더 알게 됐어. 영주의 관리인데, 터놓고 진실한 사람이야. 아이가 아홉인데, 아이들 사이에 있는 그를 보면 마음이 흐뭇해진다고들 해. 특히 맏딸 이야기를 다들 많이 해. 그가 나를 초대했으니 며칠 안에 찾아가 볼 생각이야. 그는 여기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영주의 사냥 별장에 살아.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 이곳 읍내의 관사에 사는 게 너무 괴로워서 그리로 옮겨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대.
그 밖에도 괴짜 몇 명이 내 앞을 지나갔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견딜 수가 없어. 그중에서도 친한 척하는 게 가장 견딜 수 없어.
잘 있어! 이 편지는 네 마음에 들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던 일만 썼으니까.
5월 22일
사람의 삶이 한낱 꿈일 뿐이라는 생각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해 왔고, 나도 늘 그런 느낌을 품고 다녀. 사람의 일하고 탐구하는 힘이 갇혀 있는 그 좁은 테두리를 볼 때, 모든 활동이 결국 욕구를 채우는 데로 흘러가고 그 욕구는 또 우리의 가엾은 삶을 늘리는 것 말고는 아무 목적도 없다는 걸 볼 때, 그리고 어떤 탐구에 대해 마음을 놓는다는 것도 결국 우리가 갇혀 앉아 있는 감옥 벽에 알록달록한 모습과 환한 풍경을 그려 넣는 꿈같은 체념일 뿐이라는 걸 볼 때—이 모든 게, 빌헬름, 나를 말 못 하게 만들어. 나는 나 자신 속으로 돌아가고, 그러면 하나의 세상을 찾아내! 하지만 그건 또다시 생생한 힘과 표현이라기보다는 예감과 어두운 욕망 속의 세상이야. 그러면 모든 게 내 감각 앞에서 어른거리고, 나는 꿈을 꾸듯 미소 지으며 세상 속으로 걸어가.
아이들이 왜 무언가를 바라는지 스스로도 모른다는 데에는 학식 높은 선생들과 가정교사들이 모두 동의해. 하지만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이 땅 위를 비틀거리며 다니고, 아이들처럼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아이들처럼 참된 목적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며, 아이들처럼 과자와 케이크와 회초리로 다스려진다는 건 아무도 믿고 싶어 하지 않아. 그런데 내가 보기엔 그건 손에 잡힐 듯 뻔해.
네가 이 말에 뭐라고 할지 알기에 기꺼이 털어놓을게. 아이들처럼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다는 걸 말이야. 인형을 끌고 다니며 옷을 벗겼다 입혔다 하고, 엄마가 사탕을 넣고 잠근 서랍 둘레를 조심조심 맴돌다가, 마침내 바라던 걸 손에 넣으면 볼이 미어지게 먹으며 "더 줘!" 하고 외치는 사람들 말이야—그들은 행복한 존재들이야. 시시한 일이나 심지어 자기 정열에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그걸 인류의 안녕과 복지를 위한 거대한 사업이라고 내세우는 사람들도 잘 지내지.—그렇게 될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어! 그러나 겸손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게 어디로 흘러가는지 아는 사람, 잘사는 시민이 자기 작은 뜰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낙원으로 가꿀 줄 아는지, 불행한 사람도 짐을 진 채 얼마나 꿋꿋이 헐떡이며 제 길을 가는지, 그리고 모두가 똑같이 이 해의 빛을 일 분이라도 더 보고 싶어 한다는 걸 아는 사람—그래, 그런 사람은 말이 없어. 그 사람도 자기 안에서 자기 세상을 지어내고, 사람이기에 그 사람도 행복해. 그리고 그토록 갇혀 있어도 그는 언제나 마음속에 자유라는 달콤한 느낌을 품고 있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이 감옥을 떠날 수 있다는 느낌을.
5월 26일
너도 오래전부터 내 버릇을 알지. 어딘가 마음 편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작은 오두막을 지어, 아주 조촐하게 머무는 것 말이야. 여기서도 다시 마음을 끄는 자리를 하나 찾았어.
읍내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곳에 발하임이라는 마을이 있어. 언덕에 자리 잡은 모양이 아주 흥미로워. 위쪽 오솔길로 마을을 나서면 골짜기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나이가 들었어도 친절하고 쾌활한 여관 안주인이 포도주와 맥주와 커피를 내주고, 무엇보다 좋은 건 보리수 두 그루야. 그 나무들이 넓게 가지를 뻗어 교회 앞 작은 마당을 덮고 있는데, 마당은 빙 둘러 농가와 헛간과 안뜰로 에워싸여 있어. 이렇게 아늑하고 호젓한 자리는 좀처럼 찾기 힘들어. 그래서 나는 여관에서 작은 탁자와 의자를 거기로 내오게 해서, 커피를 마시고 나의 호메로스를 읽어. 어느 화창한 오후 우연히 처음 그 보리수 아래로 갔을 때, 그 자리는 아주 한적했어. 다들 들에 나가 있었거든. 네 살쯤 된 사내아이 하나만 땅바닥에 앉아서, 자기 두 다리 사이에 앉힌 반년쯤 된 다른 아기를 두 팔로 가슴에 꼭 안고 있었어. 그래서 그 아이가 아기에게 일종의 의자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까만 눈으로 사방을 활기차게 둘러보면서도 아주 얌전히 앉아 있었어. 나는 그 모습이 즐거워서 맞은편에 놓인 쟁기에 걸터앉아 형제의 그 자세를 무척 즐겁게 그렸어. 가까운 울타리와 헛간 문과 부서진 수레바퀴 몇 개도 보이는 그대로 차례차례 그려 넣었지. 한 시간쯤 지나고 보니, 내 것은 조금도 보태지 않았는데 짜임새 있고 아주 흥미로운 그림이 되어 있었어. 그 덕분에 앞으로는 오직 자연에만 매달리자는 결심을 굳혔어. 자연만이 끝없이 풍요롭고, 자연만이 위대한 예술가를 길러 내. 규칙이 좋다고 할 말은 많아. 시민 사회를 칭찬할 때 할 수 있는 말과 비슷하지. 규칙에 따라 자기를 닦은 사람은 결코 몰취미하거나 형편없는 걸 만들어 내지 않아. 법과 예절에 따라 다듬어진 사람이 결코 견딜 수 없는 이웃이나 지독한 악당이 되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남들이 뭐라고 하든 모든 규칙은 자연에 대한 참된 느낌과 그 참된 표현을 망가뜨려! 너는 이렇게 말하겠지. '그건 너무 심해! 규칙은 다만 제한하고 웃자란 덩굴을 쳐 줄 뿐이야' 등등.—친구야, 비유를 하나 들어 볼까? 사랑도 마찬가지야. 젊은 마음이 한 아가씨에게 온통 매달려서, 하루의 모든 시간을 그 아가씨 곁에서 보내고, 자기를 그 아가씨에게 온전히 바친다는 걸 매 순간 보여 주려고 온 힘과 재산을 다 쏟아붓는다고 해 봐. 그런데 거기에 관청에서 일하는 속물 하나가 와서 이렇게 말하는 거야. '훌륭한 젊은 양반! 사랑하는 건 사람다운 일이지만, 사람답게 사랑해야 하오! 시간을 나누시오. 어떤 시간은 일에 쓰고, 쉬는 시간은 그 아가씨에게 바치시오. 재산을 따져 보고, 꼭 필요한 데 쓰고 남는 것으로 그 아가씨에게 선물을 하는 것까지 막지는 않겠소. 다만 너무 자주는 말고, 이를테면 생일이나 영명 축일에나' 등등.—그 사람이 그 말을 따르면 쓸모 있는 젊은이가 하나 생기겠지. 나라도 어느 영주에게나 그를 관청에 앉히라고 권하겠어. 다만 그의 사랑은 거기서 끝나고, 그가 예술가라면 그의 예술도 거기서 끝나. 오, 친구들이여! 천재의 물줄기가 왜 그토록 드물게 터져 나오는지, 왜 그토록 드물게 높은 물결로 밀려들어 너희의 놀란 영혼을 뒤흔드는지 알아?—친구들이여, 강 양쪽 기슭에는 점잖은 양반들이 살고 있어. 물이 넘치면 그들의 정자와 튤립 꽃밭과 채소밭이 망가질 테니, 그들은 앞으로 닥칠지 모를 위험을 미리 둑을 쌓고 물길을 돌려 막을 줄 아는 거야.
5월 27일
보아하니 나는 황홀경과 비유와 웅변에 빠져서 그 아이들이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는 걸 잊었구나. 어제 편지에서 아주 토막토막 보여 준 그림 그리는 기분에 푹 빠져서, 나는 두 시간쯤 쟁기 위에 앉아 있었어. 저녁 무렵 젊은 여자 하나가 팔에 작은 바구니를 걸고 그동안 꼼짝도 않던 아이들에게 다가오며 멀리서 외쳤어. "필립스, 아주 착하구나." —그 여자는 내게 인사했고, 나도 답례하고 일어나 가까이 다가가서 아이들 엄마냐고 물었어. 그렇다고 하면서 그 여자는 큰아이에게 빵 반쪽을 주고, 아기를 안아 올려 엄마다운 사랑을 다해 입을 맞추었어.—"필립스한테 아기를 봐 달라고 맡기고, 저는 맏이를 데리고 읍내에 흰 빵이랑 설탕이랑 죽 끓일 작은 질냄비를 사러 갔다 왔어요." 그 여자가 말했어.—뚜껑이 벗겨진 바구니 안에 그것들이 다 보였어.—"저녁에 우리 한스(막내 이름이었어)한테 죽을 좀 쑤어 주려고요. 저 말썽꾸러기 큰놈이 어제 필립스하고 죽 누룽지를 두고 다투다가 냄비를 깨 버렸거든요."—내가 큰아이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풀밭에서 거위 몇 마리를 쫓아다니고 있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아이가 뛰어오는데, 둘째에게 줄 개암나무 회초리를 들고 왔어. 나는 그 여자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여자가 학교 선생의 딸이고, 남편은 사촌의 유산을 받으러 스위스에 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거기서 남편을 속이려고 했대요." 그 여자가 말했어. "편지를 보내도 답장을 안 해서 남편이 직접 갔어요. 무슨 일이나 없었으면 좋겠는데, 통 소식이 없어요."—그 여자와 헤어지기가 어려웠어. 나는 아이들에게 크로이처 동전을 한 닢씩 주고, 막내 몫으로도 한 닢을 그 여자에게 주며 읍내에 가거든 막내 죽에 넣을 빵을 사 오라고 했어.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어.
정말이야, 친구야, 내 감각이 도무지 진정되지 않을 때면, 이런 사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소란이 가라앉아. 행복한 평온 속에서 제 삶의 좁은 테두리를 걸어가고, 하루하루를 꾸려 가며, 나뭇잎이 지는 걸 보고도 겨울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밖에 하지 않는 사람 말이야.
그 뒤로 나는 자주 그리로 가. 아이들은 나한테 완전히 익숙해졌어. 내가 커피를 마시면 설탕을 받아 먹고, 저녁이면 버터 바른 빵과 신 우유를 나와 나눠 먹어. 일요일이면 크로이처 한 닢을 꼭 받고, 내가 예배가 끝난 뒤에 거기 없으면 여관 안주인이 대신 주라는 분부를 받아 놓았어.
아이들은 나와 허물없이 지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줘. 특히 마을 아이들이 더 많이 모일 때면, 그 아이들이 무언가를 열렬히 바라고 순진하게 떼쓰는 모습이 나는 무척 즐거워.
아이들이 나리를 귀찮게 할까 봐 걱정하는 엄마를 안심시키느라 무척 애를 먹었어.
5월 30일
얼마 전에 내가 그림에 대해 한 말은 분명 시에도 들어맞아. 뛰어난 것을 알아보고 그것을 감히 말로 하는 것, 그것뿐이야. 물론 짧은 말로 많은 것을 말한 셈이지. 오늘 나는 어떤 장면을 겪었는데, 그대로 옮겨 적기만 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가가 될 거야. 하지만 시니, 장면이니, 목가니 하는 게 다 뭐야? 자연의 한 장면에 마음을 함께하려면 꼭 공들여 다듬어야만 하는 걸까?
이런 서두를 듣고 뭔가 고상하고 거창한 걸 기대한다면 너는 또 단단히 속은 거야. 나를 이렇게 생생하게 사로잡은 건 시골 젊은이 하나일 뿐이야. 나는 언제나처럼 서툴게 이야기할 테고, 너는 언제나처럼 내가 과장한다고 여기겠지. 이번에도 발하임이야. 이런 보기 드문 일을 만들어 내는 건 언제나 발하임이야.
보리수 아래에 커피를 마시러 온 사람들이 있었어. 나는 그 사람들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핑계를 대고 남았지.
시골 젊은이 하나가 이웃집에서 나오더니, 얼마 전 내가 그렸던 그 쟁기를 손보기 시작했어. 그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말을 걸고 형편을 물었더니, 우리는 금세 서로 알게 되었고, 이런 사람들과 늘 그렇듯 곧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어. 그는 어느 과부 집에서 일하는데 그 집에서 아주 잘 대해 준다고 했어. 그가 그 과부 이야기를 하도 많이 하고 그렇게나 칭찬해서, 나는 곧 그가 몸과 마음을 다해 그 여자를 따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어. 그 여자는 이제 젊지 않고, 첫 남편에게 몹쓸 대접을 받아서 다시는 결혼하지 않으려 한다고 그가 말했어. 그의 이야기에서 그 여자가 그의 눈에 얼마나 아름답고 매력적인지, 그 여자가 자기를 골라 첫 남편의 잘못들을 기억에서 지워 주기를 그가 얼마나 바라는지가 너무나 뚜렷이 드러나서, 이 사람의 맑은 마음과 사랑과 진실함을 네게 생생하게 보여 주려면 그의 말을 한마디 한마디 그대로 옮겨야 할 정도야. 그래, 그의 몸짓이 드러내던 것, 그 목소리의 울림, 그 눈빛 속의 은밀한 불꽃까지 함께 생생하게 그려 보이려면 나는 가장 위대한 시인의 재능을 지녀야 할 거야. 아니, 그의 온몸과 표정에 깃든 그 다정함은 어떤 말로도 나타낼 수 없어. 내가 다시 옮길 수 있는 건 다 투박할 뿐이야. 특히 마음이 움직였던 건, 그가 혹시 내가 자기와 그 여자의 사이를 나쁘게 생각하거나 그 여자의 품행을 의심할까 봐 걱정하던 모습이야. 그가 그 여자의 모습과 몸에 대해, 젊음의 매력은 없어도 그를 거세게 끌어당기고 사로잡는 그 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얼마나 마음을 끌었는지는 내 가장 깊은 영혼 속에서나 되새길 수 있을 뿐이야. 나는 평생 이렇게 순수한 간절한 욕망과 뜨겁고 애타는 갈망을 본 적이 없어. 그래, 이렇게 순수한 것은 생각해 보거나 꿈꿔 본 적조차 없다고 말할 수 있어. 그 순결함과 진실함을 떠올리면 내 가장 깊은 영혼이 달아오르고, 그 진실하고 다정한 모습이 어디서나 나를 따라다니며, 나도 거기에 불이 붙은 것처럼 목말라하고 애태운다고 해도 나를 나무라지 마.
이제 되도록 빨리 그 여자도 만나 보려고 해. 아니, 곰곰이 생각해 보니 피하는 게 좋겠어. 그 여자를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는 편이 나아. 어쩌면 내 눈으로 직접 보면 지금 내 앞에 그려진 모습과 다를지도 모르는데, 뭐 하러 그 아름다운 모습을 망치겠어?
6월 16일
왜 편지를 안 쓰냐고?—그런 걸 묻다니, 너도 명색이 학자 아니니. 내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짐작했어야지. 그러니까—한마디로, 내 마음에 더 가까이 와닿는 사람을 알게 됐어. 나는—모르겠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 차근차근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을 거야. 나는 즐겁고 행복해. 그러니 좋은 이야기꾼은 못 돼.
천사!—에잇! 다들 자기 여자를 그렇게 말하지, 안 그래? 그래도 나는 그 사람이 얼마나 완벽한지, 왜 완벽한지 네게 말해 줄 수가 없어. 그 사람이 내 모든 감각을 사로잡았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해.
그토록 영리하면서 그토록 순박하고, 그토록 굳세면서 그토록 착하고, 참된 삶과 부지런함 속에서도 영혼은 고요해.—내가 그 사람에 대해 지금 하는 말은 모두 지저분한 수다, 그 사람의 모습을 한 군데도 담아내지 못하는 지긋지긋한 추상일 뿐이야. 다음에—아니, 다음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이야기할게.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못 할 테니까.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편지를 쓰기 시작한 뒤로 벌써 세 번이나 펜을 내려놓고 말에 안장을 얹게 해서 그리로 달려갈 뻔했어. 오늘 아침에는 가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세했는데도 줄곧 창가로 가서 해가 아직 얼마나 높이 떠 있는지 보고 있어.—결국 이겨 내지 못하고 그 사람에게 가야만 했어. 그리고 다시 돌아왔어, 빌헬름. 저녁으로 버터 바른 빵을 먹으며 네게 편지를 쓸게. 그 사람이 사랑스럽고 쾌활한 아이들, 여덟 동생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걸 보는 게 내 영혼에 얼마나 큰 기쁨인지!—이렇게 계속 쓰다가는 너는 끝에 가서도 처음처럼 아무것도 모르겠지. 그러니 들어 봐. 억지로라도 자세히 이야기해 볼게.
얼마 전에 S 관리를 알게 되었다고, 그가 자기 은거지, 아니 자기 작은 왕국으로 곧 놀러 오라고 했다고 쓴 적 있지. 나는 그걸 미뤄 두었고, 우연이 그 조용한 고장에 숨어 있는 보물을 내게 보여 주지 않았다면 어쩌면 영영 가지 않았을지도 몰라.
이곳 젊은이들이 시골에서 무도회를 열었는데, 나도 기꺼이 가기로 했어. 나는 이곳의 착하고 예쁘지만 그 밖에는 별다를 것 없는 아가씨에게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청했고, 내가 마차를 빌려서 내 파트너와 그 아가씨의 사촌 언니를 태우고 무도회장으로 가는데, 가는 길에 샤를로테 S를 함께 태우기로 했어.—"아름다운 아가씨를 알게 되실 거예요." 우리가 나무를 베어 낸 넓은 숲을 지나 사냥 별장으로 마차를 달릴 때 내 파트너가 말했어.—"조심하세요." 사촌 언니가 받았어. "사랑에 빠지지 않게요!"—"왜요?" 내가 물었지.—"그 아가씨는 벌써 짝이 있거든요." 사촌 언니가 대답했어. "아주 훌륭한 남자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일을 정리하고 그럴듯한 자리를 얻으려고 떠나 있어요."—그 소식은 내게 별 상관이 없었어.
우리가 대문 앞에 마차를 댔을 때 해는 아직 산마루에서 15분쯤 떨어져 있었어. 무척 후덥지근했고, 아가씨들은 지평선 둘레에 희뿌옇고 눅눅한 작은 구름으로 모여드는 듯한 소나기를 걱정했어. 나는 아는 척 날씨를 짚어 대며 그들의 걱정을 달랬지만, 나 스스로도 우리 잔치가 한 방 맞겠다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어.
내가 마차에서 내리자 하녀 하나가 대문으로 나와서, 로테 아가씨가 곧 나올 테니 잠깐 기다려 달라고 했어. 나는 안뜰을 지나 잘 지은 집 쪽으로 가서 앞 계단을 올라 문간에 들어섰는데, 그때 내 평생 본 것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어. 현관 마루에서 열한 살부터 두 살까지 아이 여섯이 한 아가씨를 둘러싸고 북적이고 있었어. 아가씨는 몸매가 아름답고 키는 중간쯤이었고, 팔과 가슴에 연분홍 리본을 단 수수한 흰옷을 입고 있었어. 그 사람은 검은 빵을 들고 둘러선 꼬마들에게 저마다 나이와 식성에 맞게 한 조각씩 잘라 주고 있었어. 얼마나 다정하게 건네던지. 아이들은 빵을 자르기도 전부터 작은 손을 한참 높이 뻗고 있다가 꾸밈없이 "고마워!" 하고 외치고는, 저녁 빵을 들고 신이 나서 뛰어가거나, 좀 얌전한 아이들은 차분히 대문 쪽으로 걸어가 손님들과 자기네 로테가 타고 갈 마차를 구경했어.—"들어오시게 해서 죄송해요." 그 사람이 말했어. "아가씨들도 기다리시게 하고요. 옷을 입고 제가 없는 동안 집안일을 이것저것 일러두다가 아이들 간식 주는 걸 잊었어요. 다들 저 말고는 아무도 빵을 잘라 주지 못하게 하거든요."
나는 그 사람에게 대수롭지 않은 인사말을 했지만, 내 온 영혼은 그 사람의 모습과 목소리와 몸가짐에 머물러 있었어. 그 사람이 장갑과 부채를 가지러 방으로 뛰어 들어간 사이에야 나는 놀란 마음을 겨우 가라앉혔어. 꼬마들은 조금 떨어져서 나를 곁눈질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중 가장 어린, 생김새가 아주 복스러운 아이에게 다가갔어. 아이가 뒷걸음질 치는데, 마침 로테가 문으로 나오며 말했어. "루이, 사촌 오빠한테 손 내밀어 드려야지."—그러자 아이는 아주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작은 코에 콧물이 묻어 있는데도 그 아이에게 진심으로 입을 맞추지 않을 수 없었어.
"사촌이라고요?" 나는 그 사람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어. "제가 당신과 친척이 될 만한 복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어머," 그 사람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어. "우리 사촌들은 아주 많아요. 당신이 그중에 제일 못된 사촌이라면 서운할 거예요."—나가면서 그 사람은 자기 바로 아래 동생인 열한 살쯤 된 조피에게, 아이들을 잘 돌보고 아빠가 말을 타고 산책하다 돌아오시면 안부를 전하라고 일렀어. 꼬마들에게는 조피 언니를 자기라고 생각하고 말을 잘 들으라고 했는데, 몇몇은 꼭 그러겠다고 다짐했어. 그런데 여섯 살쯤 된 당돌한 금발 꼬마 하나가 말했어. "그래도 언니는 아니잖아, 로테 언니. 우리는 언니가 더 좋아."—큰 사내아이 둘은 마차 뒤에 기어올라 있었는데, 내가 부탁하자 로테는 서로 장난치지 않고 꽉 붙잡고 있겠다고 약속하면 숲 앞까지 같이 타고 가도 된다고 허락했어.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아 아가씨들끼리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옷차림, 특히 모자에 대해 한마디씩 하고, 무도회에 올 사람들을 단단히 흉보고 나자마자, 로테는 마부에게 마차를 세우게 하고 동생들을 내리게 했어. 아이들은 한 번 더 누나 손에 입을 맞추겠다고 했는데, 큰아이는 열다섯 살 나이에 걸맞은 온갖 다정함을 담아, 다른 아이는 아주 거칠고 덜렁대며 입을 맞추었어. 로테는 꼬마들에게 한 번 더 안부를 전하라고 했고, 우리는 다시 마차를 달렸어.
사촌 언니가 얼마 전에 보낸 책을 다 읽었느냐고 물었어.—"아니요." 로테가 말했어. "마음에 안 들어요. 돌려 드릴게요. 그 전 것도 별로였어요."—무슨 책이었는지 물었다가 그 사람의 대답을 듣고 나는 놀랐어.—그 사람이 하는 말마다 개성이 가득했고, 한마디 한마디마다 그 얼굴에서 새로운 매력과 새로운 정신의 빛이 터져 나오는 게 보였어. 내가 자기 말을 알아듣는다는 걸 느꼈는지 그 얼굴이 차츰 즐겁게 피어나는 것 같았어.
"어렸을 때는요," 그 사람이 말했어. "소설만큼 좋아하는 게 없었어요. 일요일이면 구석 자리에 앉아 미스 조니 같은 사람의 행복과 불행에 온 마음으로 빠져들 때, 하느님만 아실 거예요, 얼마나 좋았는지. 지금도 그런 책에 끌리는 마음이 조금은 있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제는 책을 잡을 일이 워낙 드물어서, 정말 제 취향에 맞는 책이어야 해요.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제 세상을 다시 보여 주는 작가예요. 제 둘레와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데도, 그 이야기가 제 집안 살림만큼 재미있고 정답게 느껴지는 작가요. 제 살림이 낙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체로는 말할 수 없는 행복이 솟는 샘이거든요."
나는 이 말에 흔들린 마음을 감추려고 애썼어. 물론 오래가지 못했지. 그 사람이 지나가는 말로 『웨이크필드의 목사』며 또 무슨 책이며를 그렇게 진실하게 이야기하는 걸 듣자 나는 완전히 정신을 잃고 해야 할 말을 다 쏟아 냈고, 한참 뒤에 로테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돌린 뒤에야, 그 사람들이 그동안 마치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눈만 멀뚱히 뜨고 앉아 있었다는 걸 알았어. 사촌 언니는 몇 번이나 코웃음을 치며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어.
이야기는 춤추는 즐거움으로 넘어갔어.—"이게 흠이라면," 로테가 말했어. "기꺼이 털어놓을게요. 저는 춤보다 좋은 게 없어요. 머리가 복잡할 때 조율도 안 된 제 피아노로 콩트르당스를 한 곡 두드리고 나면 모든 게 다시 괜찮아져요."
이야기하는 동안 내가 그 까만 눈을 얼마나 실컷 바라보았는지—그 생기 있는 입술과 싱싱하고 발랄한 뺨이 얼마나 내 온 영혼을 끌어당겼는지—그 사람이 하는 말의 멋진 뜻에 푹 빠져서 그 사람이 쓰는 낱말은 아예 듣지 못한 적도 얼마나 많았는지—나를 아는 너라면 짐작이 갈 거야. 간단히 말해, 연회장 앞에 마차가 멈췄을 때 나는 꿈꾸는 사람처럼 마차에서 내렸고, 어스름해지는 세상 속에서 꿈에 빠져 있어서 불 밝힌 홀에서 우리를 맞으며 울려오는 음악 소리도 거의 듣지 못했어.
사촌 언니와 로테의 파트너인 오드랑 형제와 무슨 아무개—그 많은 이름을 누가 다 기억하겠어—가 마차 문 앞에서 우리를 맞아 자기네 아가씨들을 데려갔고, 나는 내 파트너를 데리고 올라갔어.
우리는 미뉴에트를 추며 서로 빙글빙글 돌았어. 나는 아가씨들에게 차례로 춤을 청했는데, 하필 가장 견디기 힘든 아가씨들이 손을 내밀고 끝을 내지 못하더라. 로테와 그 파트너가 영국식 춤을 시작했고, 그 사람이 줄을 따라 우리와도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 내가 얼마나 좋았는지 너는 느낄 수 있을 거야. 그 사람이 춤추는 걸 봐야 해! 봐, 그 사람은 온 마음과 온 영혼을 다해 춤을 춰. 온몸이 하나의 화음이야. 마치 그게 전부인 것처럼, 그 밖에는 아무 생각도 아무 느낌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걱정 없이, 그렇게 스스럼없이. 그 순간에는 분명 다른 모든 게 그 사람 앞에서 사라질 거야.
나는 두 번째 콩트르당스를 청했는데, 그 사람은 세 번째를 추자고 했어.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게 스스럼없는 태도로, 독일식 춤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했어.—"여기서는 짝을 지어 온 사람끼리 독일식 춤을 함께 추는 게 유행이에요." 그 사람이 말을 이었어. "그런데 제 파트너는 왈츠를 잘 못 춰서 제가 그 수고를 덜어 주면 고마워할 거예요. 당신 파트너도 못 추고 추고 싶어 하지도 않아요. 영국식 춤을 추실 때 보니 왈츠를 잘 추시더라고요. 독일식 춤을 저와 추고 싶으시면 가서 제 파트너에게 허락을 받으세요. 저는 당신 파트너에게 갈게요."—나는 그러자며 손을 내밀었고, 그동안 그 사람의 파트너가 내 파트너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어.
이제 춤이 시작됐고, 우리는 한동안 팔을 이리저리 엮는 갖가지 동작을 즐겼어. 그 사람은 얼마나 매혹적으로, 얼마나 가볍게 움직였는지! 그리고 마침내 왈츠가 시작되어 우리가 천체처럼 서로를 돌며 굴러가자, 처음에는 출 줄 아는 사람이 적다 보니 좀 뒤죽박죽이 됐어. 우리는 영리하게 그들이 실컷 떠들게 내버려 두었다가, 가장 서툰 사람들이 자리를 비우자 뛰어들어서, 오드랑과 그 파트너, 이렇게 두 쌍만 끝까지 씩씩하게 버텼어. 그렇게 몸이 가볍게 움직인 적은 처음이야.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을 품에 안고 폭풍처럼 날아다니니 둘레의 모든 게 사라지고—빌헬름, 솔직히 말하면 그때 나는 맹세했어. 내가 사랑하는 아가씨, 내가 바라볼 자격이 있는 아가씨는 내가 아무리 망가지더라도 나 말고 다른 남자와는 절대 왈츠를 추게 하지 않겠다고. 무슨 말인지 알지!
우리는 숨을 고르려고 홀을 몇 바퀴 걸었어. 그러고 나서 그 사람이 앉았는데, 내가 따로 챙겨 두었던 오렌지, 이제 그것밖에 남지 않은 그 오렌지가 아주 큰 효과를 냈어. 다만 그 사람이 염치없는 옆자리 아가씨에게 예의상 한 쪽씩 나눠 줄 때마다 내 가슴이 찔렸어.
세 번째 영국식 춤에서 우리는 두 번째 쌍이었어. 우리가 줄을 따라 춤추며 내려가고, 나는 하느님만 아실 만큼 큰 기쁨으로 그 사람의 팔과 눈에 매달려 있었어. 그 눈에는 더없이 활짝 열린 맑은 즐거움이 참되게 가득했지. 그러다 우리는 한 부인 앞에 이르렀는데, 이제 아주 젊지는 않은 얼굴에 사랑스러운 표정이 눈에 띄던 부인이었어. 그 부인은 로테를 보고 웃으며 위협하듯 손가락을 들더니, 스쳐 지나가며 알베르트라는 이름을 의미심장하게 두 번 불렀어.
"알베르트가 누구예요?" 내가 로테에게 물었어. "물어봐도 실례가 아니라면요."—그 사람이 대답하려는데 우리가 큰 8자를 그리느라 서로 떨어져야 했고, 그렇게 서로 엇갈려 지나갈 때 그 사람의 이마에 무언가 생각하는 빛이 보이는 것 같았어.—"숨길 게 뭐 있겠어요." 그 사람이 나란히 걷는 동작을 하려고 손을 내밀며 말했어. "알베르트는 훌륭한 사람이에요. 저와는 약혼한 거나 다름없어요."—그건 새로운 소식이 아니었는데(아가씨들이 오는 길에 말해 주었으니까) 그래도 완전히 새로웠어. 그 짧은 동안에 내게 그토록 소중해진 그 사람과 연결해서는 아직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야. 아무튼 나는 정신이 어지러워 넋을 놓고 엉뚱한 쌍 사이로 끼어들었고, 모든 게 엉망이 되어서 로테가 정신을 차리고 이리 당기고 저리 끌어서야 겨우 바로잡을 수 있었어.
춤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오래전부터 지평선에서 번쩍이던 번개, 내가 줄곧 마른번개라고 둘러대던 그 번개가 훨씬 세지기 시작했고, 천둥소리가 음악을 덮었어. 아가씨 셋이 줄에서 뛰쳐나갔고 그 파트너들이 뒤따랐어. 혼란이 온 데로 번졌고 음악이 멈췄어. 즐거울 때 불행이나 무서운 일이 갑자기 닥치면 평소보다 더 강한 인상을 받는 건 당연해. 그 대비가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리의 감각이 이미 활짝 열려 있어서 인상을 더 빨리 받아들이기 때문이야. 아가씨 여럿이 터뜨린 기묘한 표정들은 이런 까닭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 가장 영리한 아가씨는 창을 등지고 구석에 앉아 귀를 막았어. 다른 아가씨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 아가씨의 무릎에 머리를 묻었어. 세 번째 아가씨는 그 둘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두 동생을 끌어안았어. 몇몇은 집에 가겠다고 했고, 자기가 무얼 하는지 더 모르는 몇몇은 정신이 없어서, 우리 젊은 건달들의 뻔뻔한 짓을 막지도 못했어. 그 녀석들은 하늘에 바치는 겁먹은 기도를 아름다운 아가씨들의 입술에서 가로채느라 아주 바빠 보였거든. 우리 남자들 몇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조용히 담배를 피웠고, 나머지 사람들은 여관 안주인이 덧창과 커튼이 있는 방을 내주겠다는 영리한 생각을 해내자 마다하지 않았어. 그 방에 들어서자마자 로테는 의자를 둥글게 놓느라 바빴고, 사람들이 그 사람의 부탁대로 자리에 앉자 놀이를 하나 하자고 했어.
벌칙으로 달콤한 입맞춤이라도 기대하는지 입술을 쭉 내밀고 몸을 쭉 펴는 녀석들이 여럿 보였어.—"숫자 세기 놀이를 해요!" 그 사람이 말했어. "자, 잘 들으세요! 제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원을 따라 돌 테니, 여러분도 빙 돌아가며 차례가 된 숫자를 말하는 거예요. 불길이 번지듯 빨리 해야 하고, 머뭇거리거나 틀리는 사람은 따귀를 한 대 맞아요. 이렇게 천까지 가요."—그건 정말 볼만했어. 그 사람은 팔을 쭉 뻗고 원을 따라 돌았어. 첫 사람이 "하나" 하고 시작하자 옆 사람이 "둘", 그다음이 "셋" 하는 식이었지. 그러다 그 사람이 점점 빨리, 더욱 빨리 돌기 시작했어. 누군가 틀리자, 철썩! 따귀 한 대. 다들 웃는 통에 다음 사람도, 철썩! 그리고 점점 더 빨라졌어. 나도 두 대 맞았는데,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때리던 것보다 세게 때린 것 같아서 속으로 무척 기뻤어. 천까지 세기도 전에 모두가 웃고 떠들어 놀이가 끝났어. 가까운 사이끼리는 서로 끌고 한쪽으로 갔고, 소나기는 지나갔고, 나는 로테를 따라 홀로 갔어. 가는 길에 그 사람이 말했어. "따귀 때문에 다들 소나기도 뭐도 다 잊었네요!"—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어.—"저도요," 그 사람이 말을 이었어. "제일 겁이 많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려고 용감한 척했더니 정말 용감해졌어요."—우리는 창가로 갔어. 천둥이 멀리서 울리고, 멋진 비가 들판 위에 속삭이듯 내리고, 더없이 상쾌한 향기가 따뜻한 공기에 실려 가득 피어올랐어. 그 사람은 팔꿈치를 괴고 서서 먼 풍경을 꿰뚫어 보듯 바라보았어. 하늘을 보았다가 나를 보았는데, 그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어. 그 사람은 내 손에 자기 손을 얹으며 말했어. "클롭슈토크!"—나는 곧바로 그 사람이 떠올린 그 멋진 송가를 기억해 냈고, 그 사람이 이 한마디로 내게 쏟아부은 감정의 물결 속에 빠져들었어. 나는 견딜 수가 없어서 그 사람의 손 위로 몸을 숙여 더없이 황홀한 눈물을 흘리며 입을 맞추었어. 그리고 다시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보았어—고귀한 시인이여! 그대가 이 눈길 속에서 그대에게 바쳐지는 숭배를 보았더라면! 이제 그토록 자주 더럽혀진 그대의 이름을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아!
6월 19일
지난번 이야기를 어디까지 했는지 기억이 안 나. 기억나는 건 잠자리에 든 게 새벽 두 시였다는 것, 그리고 편지를 쓰는 대신 네 앞에서 수다를 떨 수 있었다면 아마 아침까지 너를 붙잡아 두었을 거라는 것뿐이야.
무도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 이야기 못 했는데, 오늘도 그럴 여유가 없어.
더없이 멋진 해돋이였어. 물방울 듣는 숲과 생기를 되찾은 들판! 함께 탄 아가씨들은 꾸벅꾸벅 졸았어. 그 사람은 나도 같이 눈을 붙이지 않겠느냐고, 자기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어.—"이 눈이 뜨여 있는 걸 보는 한," 나는 그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어. "아무 위험도 없어요."—그리고 우리는 둘 다 그 사람의 집 대문 앞까지 깨어 있었어. 하녀가 조용히 문을 열어 주었고, 그 사람이 묻자 아버지와 꼬마들 모두 잘 있고 아직 다들 자고 있다고 했어. 나는 그날 다시 만나러 와도 되겠느냐고 청하고 그 사람과 헤어졌어. 그 사람은 허락했고, 나는 갔어—그 뒤로 해와 달과 별은 마음 놓고 제 할 일을 해도 좋아. 나는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고, 온 세상이 내 둘레에서 사라져 버려.
6월 21일
하느님이 당신의 성인들을 위해 아껴 두시는 것 같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되든, 삶의 기쁨, 가장 순수한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거야.—너도 내 발하임을 알지. 나는 그곳에 아주 자리를 잡았어. 거기서 로테에게 가려면 반 시간밖에 안 걸려. 거기서 나는 나 자신을, 그리고 사람에게 주어진 모든 행복을 느껴.
산책할 곳으로 발하임을 골랐을 때, 그곳이 하늘과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 생각이나 했겠어! 이제 내 모든 소원을 품고 있는 그 사냥 별장을 멀리 거닐면서, 때로는 산에서, 때로는 강 건너 들판에서 얼마나 자주 바라보았는지!
빌헬름,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봤어. 사람에게는 멀리 뻗어 나가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떠돌아다니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는가 하면, 기꺼이 테두리 안에 머물며 익숙한 바퀴 자국을 따라 굴러가고 오른쪽도 왼쪽도 돌아보지 않으려는 마음속 충동도 있다는 걸.
신기하지. 내가 이곳에 와서 언덕에서 아름다운 골짜기를 내려다보았을 때, 둘레의 모든 것이 나를 얼마나 끌어당겼는지.—저기 작은 숲!—아, 저 그늘에 섞여 들 수 있다면!—저기 산꼭대기!—아, 저기서 넓은 고장을 내려다볼 수 있다면!—서로 이어진 언덕들과 아늑한 골짜기들!—아, 그 속에서 길을 잃을 수 있다면!—나는 서둘러 가 보았다가 돌아왔고, 바라던 것을 찾지 못했어. 아, 먼 곳은 미래와 같아! 어스름한 커다란 덩어리가 우리 영혼 앞에 놓여 있고, 우리의 눈처럼 우리의 감정도 그 속에서 흐려져. 그러면 우리는 그리워해, 아! 우리 존재를 통째로 바쳐, 하나의 크고 멋진 감정이 주는 모든 기쁨으로 가득 채워지기를.—그런데 아! 우리가 서둘러 가서 저기가 여기가 되면, 모든 게 그 전과 똑같고, 우리는 우리의 가난함과 우리의 좁은 테두리 속에 서 있고, 우리 영혼은 빠져나가 버린 위안을 목말라해.
그래서 가장 갈피를 못 잡는 떠돌이도 결국 고향을 다시 그리워하고, 자기 오두막에서, 아내의 품에서, 아이들 사이에서, 그들을 먹여 살리는 일 속에서, 넓은 세상에서 헛되이 찾던 기쁨을 찾게 되는 거야.
아침에 해가 뜰 때 발하임으로 나가서 여관 뜰에서 완두콩을 손수 따다가, 앉아서 꼬투리의 실을 벗기며 사이사이 나의 호메로스를 읽을 때, 작은 부엌에서 냄비를 하나 골라 버터를 떠 넣고 콩깍지를 불에 올려 뚜껑을 덮고 그 곁에 앉아 이따금 흔들어 줄 때면,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던 오만한 자들이 소와 돼지를 잡아 토막 내고 굽던 장면이 생생하게 느껴져. 옛 족장 시대 삶의 모습만큼 나를 조용하고 참된 감정으로 채워 주는 건 없어. 고맙게도 나는 그걸 꾸밈없이 내 생활 속에 엮어 넣을 수 있어.
손수 기른 양배추를 식탁에 올리는 사람이 느끼는 소박하고 순진한 기쁨을 내 마음이 느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그 사람은 양배추만이 아니라, 그 좋았던 날들, 그것을 심던 아름다운 아침, 물을 주던 사랑스러운 저녁, 그것이 자라는 걸 보며 기뻐하던 그 모든 순간을 한꺼번에 다시 누리는 거야.
6월 29일
그저께 읍내 의사가 관리 댁에 왔다가, 내가 로테의 동생들 사이에서 바닥에 뒹굴고 있는 걸 보았어. 몇몇은 내 위로 기어오르고 몇몇은 나를 놀리고, 나는 아이들을 간질이며 함께 시끌벅적 떠들고 있었지. 그 의사는 아주 독단적인 꼭두각시 같은 사람이라, 말하는 동안 소맷부리 장식을 접어 주름을 잡고 목에 두른 주름 장식을 끝도 없이 매만지는데, 그 사람은 이게 분별 있는 사람의 체면에 맞지 않는다고 여겼어. 그 사람 코만 봐도 알 수 있었지. 하지만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그 사람이 아주 이치에 맞는 말씀을 늘어놓게 내버려 두고는 아이들이 무너뜨린 카드 집을 다시 지어 주었어. 그랬더니 그 사람이 읍내를 돌아다니며, 관리 댁 아이들이 안 그래도 버릇이 없는데 베르테르가 이제 아주 망쳐 놓는다고 투덜거렸대.
그래, 빌헬름, 이 세상에서 내 마음에 가장 가까운 건 아이들이야. 아이들을 지켜보며 그 작은 것들 속에서 그 아이들이 언젠가 꼭 필요로 할 모든 덕과 모든 힘의 싹을 볼 때, 고집 속에서 장래의 꿋꿋함과 굳은 성품을, 짓궂음 속에서 좋은 유머와 세상의 위험을 가볍게 빠져나갈 힘을 볼 때, 모든 게 그토록 때 묻지 않고 그토록 온전한 걸 볼 때!—그럴 때면 나는 늘, 늘 사람들의 스승이 하신 금 같은 말씀을 되뇌어. "너희가 이 아이들 가운데 하나처럼 되지 않으면!" 그런데 친구야,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우리가 본보기로 여겨야 할 그 아이들을 우리는 아랫사람처럼 다뤄. 아이들은 제 뜻을 가지면 안 된대!—그럼 우리는 제 뜻이 없나? 그 특권은 어디서 나오는데?—우리가 나이가 많고 더 영리해서라고!—하늘에 계신 하느님, 당신 눈에는 나이 든 아이들과 어린 아이들이 보일 뿐 다른 건 없겠지요. 그리고 당신이 어느 쪽을 더 기뻐하시는지는 당신 아드님이 오래전에 이미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분을 믿으면서도 그분 말씀은 듣지 않아—이것도 오래된 이야기지!—그리고 자기 아이들을 자기처럼 만들고—잘 있어, 빌헬름! 이 이야기는 더 늘어놓고 싶지 않아.
7월 1일
로테가 아픈 사람에게 어떤 존재일지는 내 마음으로 알 수 있어. 내 마음은 병상에서 시들어 가는 많은 사람들보다 더 딱한 처지거든. 로테는 며칠 동안 읍내의 어느 훌륭한 부인 곁에서 지낼 거야. 의사들 말로는 그 부인이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운데, 이 마지막 순간에 로테를 곁에 두고 싶어 한대. 지난주에 나는 로테와 함께 St.의 목사님을 찾아갔어. 산속으로 한 시간쯤 비켜 들어간 작은 마을이야. 우리는 네 시쯤 그곳에 닿았어. 로테는 둘째 동생을 데리고 갔어. 키 큰 호두나무 두 그루가 그늘을 드리운 목사관 마당에 들어서자, 그 착한 노인은 현관 앞 벤치에 앉아 있다가 로테를 보고는 다시 살아난 것처럼 되어, 마디 굵은 지팡이도 잊고 일어나 로테를 맞으러 나섰어. 로테는 그에게 달려가 다시 앉으시라 권하며 곁에 앉았고, 아버지의 안부를 잔뜩 전하고, 늘그막에 본 목사님의 꾀죄죄하고 지저분한 막내아들을 귀여워했어. 네가 봤어야 해. 로테가 노인을 어떻게 즐겁게 해 드리는지, 반쯤 먹은 그분 귀에 들리도록 어떻게 목소리를 높이는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젊고 튼튼한 사람들 이야기와 카를스바트 온천이 얼마나 좋은지 이야기를 하며, 내년 여름에 그곳에 가시겠다는 결심을 어떻게 칭찬하는지, 지난번에 뵈었을 때보다 훨씬 좋아 보이시고 훨씬 기운이 나 보이신다고 어떻게 말하는지.—그동안 나는 목사 부인에게 인사를 드렸어. 노인은 아주 기분이 좋아졌고, 우리에게 그토록 사랑스러운 그늘을 드리워 주는 멋진 호두나무를 내가 칭찬하지 않을 수 없자, 조금 힘겨워하면서도 그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어.—"저 늙은 나무는," 그분이 말했어. "누가 심었는지 모른다오. 이 목사님이라는 사람도 있고 저 목사님이라는 사람도 있지. 하지만 저 뒤쪽의 젊은 나무는 내 아내와 나이가 같아요. 10월이면 쉰 살이오. 아내가 저녁 무렵 태어나던 날 아침에 장인어른이 심으셨지. 장인어른은 내 앞서 이 일을 맡으셨던 분인데, 그분이 저 나무를 얼마나 아끼셨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소. 나도 분명 그에 못지않게 아끼고 있소. 스물일곱 해 전 내가 가난한 학생으로 이 마당에 처음 들어섰을 때, 아내는 저 나무 아래 각목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지."—로테가 목사님 따님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슈미트 씨와 함께 풀밭에 일꾼들을 보러 나갔다고 했어. 노인은 이야기를 계속했어. 자기 앞의 목사님이 어떻게 자기를, 그리고 딸까지 함께 아끼게 되었는지, 자기가 어떻게 처음에는 그분의 보좌가 되었다가 나중에 뒤를 잇게 되었는지. 이야기가 끝나고 얼마 안 되어 목사님 따님이 이른바 슈미트 씨와 함께 정원을 지나 이리로 왔어. 그 아가씨는 로테를 정답게 맞았는데, 솔직히 말하면 꽤 마음에 들었어. 날렵하고 몸매가 좋은 갈색 머리 아가씨였는데, 시골에서 잠깐 지내는 동안이라면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낼 만한 사람이었어. 그 아가씨의 애인(슈미트 씨는 곧바로 자기가 그렇다는 걸 드러냈거든)은 점잖지만 말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로테가 줄곧 이야기에 끌어들이려 해도 우리 대화에 끼려 하지 않았어. 가장 언짢았던 건, 그의 얼굴을 보니 그가 마음을 터놓지 못하는 까닭이 머리가 모자라서라기보다 고집과 언짢은 기분 때문인 것 같았다는 거야. 안타깝게도 그건 나중에 너무나 뚜렷해졌어. 산책을 할 때 프리데리케가 로테와 함께 걷다가 이따금 나와도 함께 걸으니까, 안 그래도 거무스름한 그 양반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져서, 로테가 내 소매를 잡아당기며 내가 프리데리케에게 너무 친절하게 굴었다고 눈짓을 해야 할 지경이었어. 사람들이 서로를 괴롭히는 것만큼 나를 언짢게 하는 건 없어. 특히 모든 즐거움에 가장 활짝 열려 있을 수 있는 인생의 꽃다운 시절에, 젊은 사람들이 찡그린 얼굴로 서로의 얼마 안 되는 좋은 날들을 망치고, 그렇게 낭비한 것이 되돌릴 수 없는 것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야 깨닫는 걸 볼 때 그래. 나는 그게 속이 상해서, 저녁 무렵 목사관으로 돌아와 한 식탁에 둘러앉아 우유를 먹다가 세상의 기쁨과 슬픔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자, 그 실마리를 잡고 언짢은 기분에 대해 진심으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우리 사람들은 흔히," 내가 말을 꺼냈어. "좋은 날은 너무 적고 나쁜 날은 너무 많다고 불평하는데, 제 생각에는 대개 잘못된 불평이에요. 하느님이 날마다 우리를 위해 마련해 주시는 좋은 것을 누릴 열린 마음을 늘 가지고 있다면, 나쁜 일이 닥쳐도 그걸 견딜 힘도 넉넉할 거예요."—"하지만 마음을 우리 뜻대로 할 수는 없잖아요." 목사 부인이 받았어. "몸에 달린 게 얼마나 많은데요! 몸이 편치 않으면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지요."—나는 그 말을 인정했어.—"그럼 그걸 병으로 보고," 내가 말을 이었어. "고칠 약이 없는지 물어보면 어떨까요?"—"일리가 있어요." 로테가 말했어. "적어도 많은 게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저는 믿어요. 저 자신을 보면 알아요. 무언가가 저를 성가시게 하고 언짢게 만들려고 하면, 벌떡 일어나서 정원을 오가며 콩트르당스를 몇 곡 부르는데, 그러면 금세 사라져요."—"제가 하려던 말이 바로 그거예요." 내가 받았어. "언짢은 기분은 게으름과 꼭 같아요. 일종의 게으름이니까요. 우리 본성은 그쪽으로 많이 기울지만, 한 번만 힘을 내어 마음을 다잡으면 일이 손에서 시원하게 풀리고, 일하는 데서 참된 즐거움을 찾게 되지요."—프리데리케는 아주 열심히 귀 기울였고, 그 젊은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 아니며, 특히 자기 감정은 마음대로 다스릴 수 없다고 반박했어.—"지금 이야기하는 건 불쾌한 감정이에요." 내가 받았어. "누구나 떨쳐 버리고 싶어 하는 감정이지요. 그리고 누구도 해 보기 전에는 자기 힘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몰라요. 분명 아픈 사람은 의사란 의사는 다 찾아다니며 묻고, 바라는 건강을 얻을 수만 있다면 아무리 큰 체념도, 아무리 쓴 약도 마다하지 않을 거예요."—정직한 노인이 우리 이야기에 끼려고 귀를 기울이는 게 보여서, 나는 그분 쪽으로 말을 돌리며 목소리를 높였어. "설교에서는 그토록 많은 악덕을 나무라는데," 내가 말했어. "언짢은 기분을 설교단에서 나무랐다는 말은 아직 들어 본 적이 없어요."—"그건 도시 목사들이 할 일이지요." 그분이 말했어. "농부들은 기분이 언짢을 일이 없다오. 그래도 가끔은 해서 나쁠 것도 없겠지. 적어도 내 아내와 관리 양반에게는 좋은 교훈이 될 테니까."—다들 웃었고 그분도 진심으로 따라 웃다가 기침이 터져서 한동안 우리 이야기가 끊겼어. 그러자 그 젊은이가 다시 말을 꺼냈어. "언짢은 기분을 악덕이라고 하셨는데, 제 생각에는 지나친 말 같습니다."—"천만에요." 내가 대답했어. "자기 자신과 이웃을 해치는 것이 그런 이름을 들을 만하다면 말이에요. 우리가 서로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저마다 가끔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있는 즐거움까지 서로 빼앗아야 하나요? 기분이 언짢으면서도 그걸 감추고 혼자 견디며 둘레의 기쁨을 망치지 않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 있다면 대 보세요! 아니, 언짢은 기분이란 오히려 우리 자신이 보잘것없다는 데 대한 속에서의 불만, 우리 자신에 대한 못마땅함이 아닐까요? 어리석은 허영심에 부추겨진 시기심과 늘 얽혀 있는 그런 못마땅함 말이에요. 우리가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한 사람이 행복한 걸 보면, 그걸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내가 말하는 기세를 보고 로테가 나를 향해 미소 지었고, 프리데리케의 눈에 고인 눈물 한 방울이 나를 더 밀어붙였어.—"마음을 쥐고 있는 힘을 이용해서," 내가 말했어. "그 마음에서 저절로 싹트는 소박한 기쁨을 빼앗는 사람들은 화가 있을지어다. 세상의 어떤 선물, 어떤 친절도 우리를 휘두르는 자가 시기 어린 불쾌감으로 망쳐 버린 우리 자신의 즐거운 한순간을 대신할 수는 없어요."
그 순간 내 마음은 온통 벅차올랐어. 지난 여러 일들의 기억이 내 영혼에 밀려와서 눈에 눈물이 고였어.
"날마다 이렇게 자기에게 말할 수만 있다면," 나는 외쳤어. "너는 친구들에게 그들의 기쁨을 그대로 두고, 함께 누림으로써 그들의 행복을 늘려 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그들의 깊은 영혼이 두려운 정열에 시달리고 슬픔에 무너져 있을 때, 너는 그들에게 한 방울의 위안이라도 줄 수 있느냐고.
그리고 네가 꽃다운 시절에 망가뜨린 사람에게 마침내 마지막 가장 두려운 병이 덮쳐서, 그 사람이 더없이 비참하게 기진한 채 누워 있고, 무감각한 눈은 하늘을 향하고, 창백한 이마에는 죽음의 식은땀이 번갈아 맺히는데, 너는 저주받은 사람처럼 침대 앞에 서서, 네가 가진 모든 것으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꺼져 가는 그 사람에게 한 방울의 힘, 한 점의 용기라도 불어넣을 수 있다면 모든 걸 내주고 싶을 만큼 두려움이 속에서 너를 쥐어짤 때."
이 말을 하자 내가 직접 겪은 그런 장면의 기억이 온 힘으로 나를 덮쳤어. 나는 손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자리를 떴고, 이제 가자고 부르는 로테의 목소리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어.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로테는 모든 일에 너무 뜨겁게 마음을 쏟는다고, 그러다 내가 망가지고 말 거라고 얼마나 나무랐는지! 자기를 아껴야 한다고!—오, 천사여! 당신을 위해 나는 살아야 해!
7월 6일
로테는 늘 죽어 가는 친구 곁에 있어. 그러면서도 늘 한결같아. 늘 곁에 있어 주는 사랑스러운 사람, 눈길이 닿는 곳마다 아픔을 덜어 주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이야. 어제저녁 로테는 마리아네와 꼬마 말헨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어. 나는 그걸 알고 그들을 만나 함께 걸었지. 한 시간 반쯤 걸은 뒤 우리는 읍내 쪽으로 돌아오다가, 내가 그토록 아끼던, 이제는 천 배는 더 아끼게 된 그 샘에 이르렀어. 로테는 낮은 담에 앉았고, 우리는 그 앞에 섰어. 나는 둘레를 둘러보았는데, 아, 내 마음이 그토록 외롭던 그때가 다시 눈앞에 살아났어.—"사랑스러운 샘아," 내가 말했어. "그 뒤로 나는 너의 서늘함 속에서 쉬지 못했구나. 바삐 지나가느라 너를 쳐다보지도 않은 때가 많았지."—내려다보니 말헨이 물 한 잔을 들고 무척 조심스럽게 올라오고 있었어.—나는 로테를 바라보며 내가 로테에게서 얻은 모든 것을 느꼈어. 그때 말헨이 잔을 들고 왔어. 마리아네가 잔을 받아 들려고 하자, 아이가 더없이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외쳤어. "안 돼! 로테 언니가 먼저 마셔야 해!"—아이가 그 말을 외치던 진심과 착한 마음에 나는 너무나 황홀해져서, 그 감정을 달리 나타낼 길이 없어 아이를 번쩍 안아 올려 힘껏 입을 맞추었어. 그랬더니 아이가 곧바로 소리 지르며 울기 시작했어.—"잘못하셨어요." 로테가 말했어.—나는 당황했어.—"이리 와, 말헨." 로테는 아이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며 말을 이었어. "저기 맑은 샘물에 얼른얼른 씻으렴. 그러면 괜찮아."—나는 그 자리에 서서 지켜보았어. 꼬마가 젖은 작은 손으로 얼마나 열심히 뺨을 문지르는지, 이 신기한 샘물이 모든 더러움을 씻어 내서 보기 흉한 수염이 나는 창피를 막아 줄 거라고 얼마나 굳게 믿는지. 로테가 "이제 됐어!" 하는데도 아이는 많이 씻을수록 좋다는 듯 계속 열심히 씻었어—정말이야, 빌헬름, 나는 어떤 세례식에도 이보다 더 경건한 마음으로 참석해 본 적이 없어. 그리고 로테가 올라왔을 때, 나는 한 민족의 죄를 씻어 준 예언자 앞에 엎드리듯 로테 앞에 엎드리고 싶었어.
저녁에 나는 기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이 일을 어떤 사람에게 이야기했어. 지성이 있으니 사람다운 마음도 있으리라 믿었던 사람이야.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그 사람은 로테가 아주 잘못했다는 거야. 아이들에게 엉터리를 믿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그런 게 수많은 잘못과 미신의 씨앗이 되니 아이들을 일찍부터 그런 데서 지켜 주어야 한다고.—그때 그 사람이 여드레 전에 아이에게 세례를 받게 했다는 게 생각나서, 나는 그냥 흘려 넘기고 마음속으로 진실을 지켰어.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하시듯 아이들을 대해야 해. 하느님은 우리가 다정한 착각 속에서 비틀거리며 살아가게 두실 때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해 주시니까.
7월 8일
사람은 얼마나 어린애인지! 눈길 한 번에 얼마나 목을 매는지! 사람은 얼마나 어린애인지!—우리는 발하임에 갔었어. 아가씨들은 마차를 타고 갔는데, 산책하는 동안 나는 로테의 까만 눈에서—나는 바보야, 용서해 줘! 너도 그 눈을 봐야 해.—짧게 말할게(졸려서 눈이 감기거든). 봐, 아가씨들이 마차에 올라탔고, 마차 둘레에는 V 청년과 젤슈타트와 오드랑과 내가 서 있었어. 마차 문으로 아가씨들이 그 녀석들과 수다를 떨었지. 다들 가볍고 경박한 녀석들이야.—나는 로테의 눈을 찾았어. 아, 그 눈은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옮겨 갔어! 그런데 나한테는! 나한테는! 나한테는! 체념하고 오직 로테만 바라보며 서 있던 나한테는 그 눈길이 닿지 않았어!—내 마음은 로테에게 천 번이나 작별 인사를 했어! 그런데 로테는 나를 보지 않았어! 마차가 지나갔고 내 눈에 눈물이 고였어. 나는 마차 뒤를 바라보았고, 로테의 머리 장식이 마차 문 밖으로 내밀어지더니 로테가 뒤를 돌아보는 게 보였어. 아! 나를 보려고?—친구야! 나는 이 알 수 없음 속에 떠 있어. 그게 내 위안이야. 어쩌면 로테가 나를 돌아본 건지도 몰라! 어쩌면!—잘 자! 아, 나는 얼마나 어린애인지!
7월 10일
사람들 사이에서 로테 이야기가 나올 때 내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는지 네가 봐야 하는데! 게다가 누가 로테가 마음에 드느냐고 묻기라도 하면?—마음에 드느냐고! 나는 그 말이 죽도록 싫어. 로테가 그저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니, 로테가 모든 감각과 모든 감정을 가득 채우지 않는 사람이라니, 그건 대체 어떤 인간일까! 마음에 드느냐고! 마음에 드느냐고! 얼마 전에는 누가 오시안이 마음에 드느냐고 묻더라!
7월 11일
M 부인이 아주 위독해. 나는 그 부인이 살아나기를 기도해. 로테와 함께 견디고 있으니까. 나는 로테를 어느 친구 집에서 가끔 볼 뿐인데, 오늘 로테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어.—M 영감은 인색하고 쩨쩨한 구두쇠라서 평생 아내를 단단히 괴롭히고 옥죄었는데, 부인은 그래도 언제나 그럭저럭 꾸려 나갈 줄 알았대. 며칠 전 의사가 가망이 없다고 하자, 부인은 남편을 불러(로테도 방에 있었대) 이렇게 말했대. "내가 죽은 뒤에 혼란과 말썽을 일으킬지 모를 일을 하나 털어놓아야겠어요. 나는 지금까지 될 수 있는 한 알뜰하고 반듯하게 살림을 꾸려 왔어요. 그런데 이 서른 해 동안 당신을 속여 온 걸 용서해 줘요. 우리가 결혼할 무렵 당신은 부엌 살림과 다른 집안 씀씀이에 쓸 돈을 아주 조금 정해 주었어요. 살림이 늘고 장사가 커졌는데도 당신은 아무리 말해도 그에 맞춰 내 주급을 늘려 주지 않았지요. 간단히 말해, 살림이 가장 컸을 때에도 당신은 내가 일주일에 7굴덴으로 꾸려 가기를 바랐어요.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돈을 받고, 모자라는 건 주마다 가게 매상에서 꺼내 썼어요. 아내가 금고에서 돈을 훔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나는 아무것도 헛되이 쓰지 않았고, 털어놓지 않고도 마음 편히 영원으로 갈 수 있었을 거예요. 다만 내 뒤에 살림을 맡을 사람이 어쩔 줄 몰라 할 테고, 당신은 언제까지나 첫 아내는 그걸로 꾸려 갔다고 우길 테니까요."
나는 로테와 함께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눈이 멀 수 있는지 이야기했어. 씀씀이를 보면 두 배는 들 것 같은데 7굴덴으로 꾸려 간다면, 뒤에 무슨 다른 사정이 있겠거니 의심할 법도 한데 말이야. 하지만 나는 예언자의 마르지 않는 기름 항아리가 자기 집에 있어도 놀라지 않고 받아들였을 사람들도 알고 있어.
7월 13일
아니, 나는 착각하고 있지 않아! 로테의 까만 눈에서 나와 내 운명에 대한 참된 관심을 읽어. 그래, 나는 느껴. 그리고 이 점에서는 내 마음을 믿어도 돼. 로테가—아, 이 말로 하늘을 입에 올려도 될까, 올릴 수 있을까?—로테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나를 사랑한다니!—그 뒤로 나는 나 자신이 얼마나 소중해졌는지, 내가 얼마나—너한테는 말해도 되겠지, 너는 이런 걸 이해하니까—로테가 나를 사랑한 뒤로 내가 얼마나 나 자신을 우러러보는지!
이게 주제넘은 생각일까, 아니면 참된 관계를 느끼는 걸까?—나는 로테의 마음속에서 내가 두려워할 만한 사람을 알지 못해. 그런데도—로테가 약혼자 이야기를 할 때, 그토록 따뜻하게, 그토록 사랑을 담아 그 사람 이야기를 할 때면—나는 모든 명예와 지위를 빼앗기고 칼까지 빼앗긴 사람 같아.
7월 16일
아, 무심코 내 손가락이 로테의 손가락에 닿을 때, 식탁 밑에서 우리 발이 마주칠 때, 그 느낌이 내 온 핏줄을 타고 얼마나 흐르는지! 나는 불에 덴 듯 물러나지만, 어떤 은밀한 힘이 다시 나를 앞으로 끌어당겨—모든 감각이 아찔해져.—아! 그런데 로테의 순진함, 그 스스럼없는 영혼은 그 작은 친밀함들이 나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느끼지 못해. 이야기하다가 내 손에 자기 손을 얹고, 이야기에 열중해서 내 쪽으로 다가앉아 그 입에서 나오는 천상의 숨결이 내 입술에 닿을 정도가 되면—나는 벼락을 맞은 듯 가라앉을 것 같아.—그리고 빌헬름! 내가 만일 감히 이 하늘을, 이 믿음을—! 무슨 말인지 알지. 아니, 내 마음은 그렇게까지 타락하지 않았어! 약할 뿐이야! 너무나 약해!—그런데 그게 타락이 아닐까?—로테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야. 로테 앞에서는 모든 욕망이 잠잠해져. 로테 곁에 있으면 내가 어떤지 나도 몰라. 영혼이 내 모든 신경 속에서 뒤집히는 것 같아.—로테가 피아노로 천사 같은 힘을 담아 치는 곡이 하나 있어. 그렇게 소박하면서 그렇게 깊은 곡이야! 로테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데, 로테가 그 첫 음만 짚어도 내 모든 괴로움과 혼란과 변덕이 가라앉아.
옛 음악의 마법 같은 힘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도 거짓말 같지 않아. 그 소박한 노래가 얼마나 내 마음을 사로잡는지! 그리고 로테는 그 노래를 얼마나 알맞은 때에 칠 줄 아는지. 내가 내 머리에 총알을 박고 싶어질 때 치는 일이 많아! 그러면 내 영혼의 혼란과 어둠이 흩어지고 나는 다시 숨을 쉬게 돼.
7월 18일
빌헬름, 사랑이 없다면 세상이 우리 마음에 무엇이겠어! 불 없는 환등기와 같겠지! 작은 등잔을 넣기만 하면 흰 벽에 더없이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비치잖아! 그게 지나가는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우리가 싱그러운 아이들처럼 그 앞에 서서 그 신기한 모습에 황홀해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언제나 우리의 행복이 돼. 오늘은 로테에게 갈 수 없었어. 피할 수 없는 모임에 붙들려 있었거든. 어쩌겠어? 나는 내 하인을 그리로 보냈어. 오늘 로테 가까이에 갔던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서. 얼마나 조바심치며 그를 기다렸는지, 다시 만났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창피하지만 않았다면 그 녀석의 머리를 붙잡고 입을 맞추었을 거야.
볼로냐 돌은 햇빛에 두면 그 빛을 빨아들여 밤에도 한동안 빛난다고들 하지. 그 녀석이 내게는 그랬어. 로테의 눈길이 그 녀석의 얼굴과 뺨과 윗옷 단추와 외투 깃에 머물렀었다는 느낌 때문에, 그 모든 게 그토록 거룩하고 그토록 소중했어! 그 순간에는 천 탈러를 준다 해도 그 녀석을 내주지 않았을 거야. 그 녀석과 함께 있으니 그렇게 좋았어.—제발 이걸 비웃지는 마. 빌헬름, 우리 마음이 좋다면 그게 허깨비일까?
7월 19일
"로테를 보게 될 거야!" 아침에 잠이 깨어 아주 맑은 기분으로 아름다운 해를 바라보며 나는 외쳐. "로테를 보게 될 거야!" 그러면 하루 내내 다른 바람이 없어. 모든 것이, 모든 것이 그 기대 속으로 빨려 들어가.
공사를 따라 ***로 가야 한다는 너희 생각은 아직 내 생각이 되지 않았어. 나는 윗사람 밑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게다가 그 사람이 불쾌한 인간이라는 건 우리 모두 알잖아. 어머니가 내가 무슨 일이라도 하기를 바라신다고 했지. 그 말에 웃음이 났어. 지금 나도 무언가 하고 있지 않아? 따지고 보면 완두콩을 세든 렌즈콩을 세든 마찬가지 아니야? 세상만사는 결국 하찮은 일로 끝나고, 자기 자신의 열정이나 필요도 아닌데 남 때문에 돈이나 명예 따위를 얻으려고 애쓰는 사람은 언제나 바보야.
7월 24일
내가 그림을 소홀히 하지 않기를 네가 그렇게 바라니, 그동안 별로 그리지 못했다고 말하느니 차라리 그 이야기를 통째로 건너뛰고 싶어.
이보다 더 행복했던 적은 없고, 자연에 대한 내 감정이 작은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이보다 더 충만하고 절실했던 적도 없어. 그런데도—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 표현하는 힘이 너무 약해서, 모든 게 내 영혼 앞에서 너무 흐릿하게 어른거려서 윤곽 하나 붙잡을 수가 없어. 하지만 진흙이나 밀랍이 있다면 그걸로 빚어낼 수 있을 것 같아. 이게 더 오래가면 진흙을 가져다 주무르기라도 할 거야. 케이크가 되더라도 말이야!
로테의 초상을 세 번이나 그리기 시작했다가 세 번 다 망신만 당했어. 얼마 전까지는 꼭 닮게 그리는 데 아주 자신이 있었기에 더 속상해. 그래서 로테의 그림자 실루엣을 떴는데, 그걸로 만족해야겠어.
네, 로테, 무엇이든 다 해 드리고 맡아 드릴게요. 일을 더 많이, 아주 자주 맡겨 주세요.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제게 써 주시는 쪽지에 더는 모래를 뿌리지 말아 주세요. 오늘 얼른 입술에 갖다 댔더니 이 사이에서 모래가 서걱거렸어요.
7월 26일
로테를 이렇게 자주 보지 말자고 벌써 여러 번 다짐했어. 그래, 그걸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날마다 나는 유혹에 지고, 내일은 꼭 가지 않겠다고 거룩하게 맹세해. 그런데 막상 아침이 오면 또 뿌리칠 수 없는 핑계를 찾아내고, 정신을 차려 보면 나는 로테 곁에 있어. 로테가 저녁에 "내일 오실 거죠?" 하고 말했거나—그러면 누가 안 갈 수 있겠어? 아니면 로테가 무슨 일을 맡겨서, 대답은 직접 가서 전하는 게 예의일 것 같거나, 아니면 날씨가 너무 좋아서 발하임에 가는데, 거기 가면 로테에게까지 반 시간밖에 안 걸리잖아!—나는 너무 가까이 그 영향권 안에 있어—휙! 그러면 나는 그곳에 가 있어. 우리 할머니가 자석산 옛날이야기를 해 주신 적이 있어. 너무 가까이 다가간 배들은 순식간에 쇠붙이를 모조리 빼앗기고, 못들이 산으로 날아가서, 가엾은 사람들은 무너져 내리는 널빤지 사이에서 난파하고 말았대.
7월 30일
알베르트가 왔어. 그러니 나는 떠날 거야. 그가 아무리 훌륭하고 고귀한 사람이어서 내가 모든 면에서 그 사람보다 못하다고 기꺼이 인정한다 해도, 그 사람이 그토록 많은 완벽함을 내 눈앞에서 차지하고 있는 걸 보는 건 견딜 수 없을 거야.—차지하다니!—됐어, 빌헬름, 약혼자가 왔어!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어. 다행히 그 사람을 맞이할 때 나는 그 자리에 없었어! 있었다면 가슴이 찢어졌을 거야. 게다가 그 사람은 아주 점잖아서 내 앞에서는 아직 한 번도 로테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어. 하느님이 그 사람에게 갚아 주시기를! 그 사람이 그 아가씨를 존중하는 걸 보면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그 사람은 내게 호의를 보이는데, 그건 그 사람 자신의 감정이라기보다 로테가 그렇게 만든 것 같아. 여자들은 이런 데 영리하고 그게 옳아. 두 숭배자를 서로 사이좋게 지내게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일은 드물지만, 언제나 득을 보는 건 여자 쪽이니까.
그래도 나는 알베르트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어. 그 사람의 차분한 겉모습은 감출 수 없는 내 불안한 성격과 아주 뚜렷이 대조가 돼. 그 사람은 감정이 깊고, 자기가 로테에게서 무엇을 얻었는지 알아. 그 사람은 언짢은 기분이 별로 없는 것 같아. 너도 알지, 그건 내가 사람에게서 다른 무엇보다 미워하는 죄라는 걸.
그 사람은 나를 분별 있는 사람으로 여겨. 그리고 로테에 대한 내 애착, 로테가 하는 모든 일에 내가 느끼는 따뜻한 기쁨이 그 사람의 승리감을 키워 주고, 그 사람은 로테를 더욱 사랑해. 그 사람이 가끔 질투로 로테를 괴롭히지는 않는지는 모르겠어. 적어도 내가 그 사람 자리에 있다면 이 악마에게서 완전히 안전하지는 못할 거야.
그건 그렇다 치고, 로테 곁에 있는 내 기쁨은 사라졌어. 이걸 어리석음이라 해야 할까, 눈이 먼 거라고 해야 할까?—이름이 무슨 상관이야! 일 자체가 말해 주잖아!—알베르트가 오기 전에도 나는 지금 아는 걸 다 알고 있었어. 로테에게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는 걸 알았고, 주장하지도 않았어—그러니까 그토록 사랑스러운 사람을 앞에 두고 바라지 않는 게 가능한 한에서는 말이야—그런데 이제 다른 사람이 정말로 와서 그 아가씨를 데려가니까 이 바보가 눈을 휘둥그레 뜨는 거야.
나는 이를 악물고 내 비참함을 비웃어. 그리고 이제 달리 어쩔 수 없으니 체념하라고 말할 수도 있을 사람들은 두 배, 세 배로 비웃어.—그 허수아비들을 내 앞에서 치워 줘!—나는 숲속을 쏘다니다가 로테에게 가서, 알베르트가 작은 뜰의 정자 아래 로테 곁에 앉아 있으면, 더는 어쩔 줄을 몰라 미친 듯이 들떠서 온갖 우스꽝스러운 짓, 온갖 엉뚱한 짓을 벌여.—"제발," 오늘 로테가 내게 말했어. "부탁이에요, 어젯밤 같은 소동은 이제 그만두세요! 그렇게 들떠 계시면 무서워요."—우리끼리 이야기지만, 나는 그 사람이 바쁠 때를 노려. 휙! 그러면 나는 거기 가 있고, 로테를 혼자 만나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
8월 8일
빌헬름, 부탁이야.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순순히 따르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을 견딜 수 없다고 내가 욕했을 때, 그건 결코 너를 두고 한 말이 아니었어. 네가 그런 생각을 하리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따지고 보면 네 말이 맞아. 다만 한 가지만, 친구야! 세상일은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아주 드물어. 감정과 행동은 매부리코와 납작코 사이의 온갖 코 모양만큼이나 갖가지로 미묘하게 갈라지거든.
그러니 내가 네 논리를 다 인정하면서도 그 '이것 아니면 저것' 사이로 슬쩍 빠져나가려 해도 나쁘게 여기지 마.
로테에게 희망이 있든지 없든지 둘 중 하나라고 너는 말하지. 좋아, 희망이 있다면 끝까지 밀고 나가서 소원을 이루도록 해라. 없다면 정신을 차리고, 네 모든 힘을 갉아먹을 비참한 감정에서 벗어나도록 해라.—친구야! 그건 잘한 말이고—하기 쉬운 말이야.
그런데 소리 없이 번지는 병으로 삶이 걷잡을 수 없이 조금씩 꺼져 가는 불행한 사람에게, 단칼에 비수로 괴로움을 끝내라고 너는 요구할 수 있겠어? 그 사람의 힘을 갉아먹는 그 병이, 거기서 벗어날 용기까지 함께 빼앗지 않을까?
물론 너는 비슷한 비유로 대답할 수도 있겠지. 머뭇거리고 망설이다 목숨을 걸 바에야 차라리 팔 하나를 자르게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나는 모르겠어!—비유를 가지고 서로 물고 늘어지지는 말자. 그만하자—그래, 빌헬름, 나도 이따금 벌떡 일어나 모든 걸 떨쳐 버릴 용기가 솟는 순간이 있어. 그럴 때면—어디로 가야 할지만 안다면 아마 떠날 거야.
저녁
한동안 내버려 두었던 일기장이 오늘 다시 손에 잡혔는데, 내가 이 모든 일 속으로 그렇게 뻔히 알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갔다는 데 놀랐어! 나는 내 처지를 늘 그렇게 똑똑히 보고 있었으면서도 아이처럼 굴었고, 지금도 그렇게 똑똑히 보는데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아.
8월 10일
내가 바보만 아니라면 더없이 좋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지금 내가 처한 처지만큼 사람의 영혼을 즐겁게 할 아름다운 형편이 한데 모이기란 쉽지 않아. 아, 우리의 행복은 오직 우리 마음이 만든다는 건 이렇게나 분명해.—사랑스러운 가족의 일원이 되어, 노인에게는 아들처럼, 꼬마들에게는 아버지처럼, 그리고 로테에게는! 사랑받고—게다가 정직한 알베르트는 변덕스러운 버릇 하나 없이 내 행복을 방해하지 않고, 진심 어린 우정으로 나를 감싸 주고, 그에게 나는 로테 다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빌헬름, 우리가 산책하며 서로 로테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들으면 정말 재미있을 거야. 세상에 이보다 우스꽝스러운 관계는 없을 텐데, 그래도 나는 그 때문에 자주 눈물이 고여.
그가 로테의 훌륭한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말이야. 그분이 임종 자리에서 로테에게 집과 아이들을 맡기고 그에게 로테를 부탁했다는 것, 그 뒤로 로테에게 전혀 다른 정신이 깃들었다는 것, 살림을 걱정하고 진지하게 꾸려 가면서 로테가 참된 어머니가 되었다는 것, 한순간도 부지런한 사랑과 일 없이 흘려보낸 적이 없는데도 그 쾌활함과 가벼운 마음은 결코 잃지 않았다는 것.—나는 그 옆에서 걸으며 길가의 꽃을 꺾어 아주 정성껏 꽃다발을 만들고는—흘러가는 강물에 던지고, 꽃이 살며시 떠내려가는 걸 지켜봐.—알베르트가 이곳에 남아 궁정에서 넉넉한 보수를 받는 자리를 얻게 될 거라고 네게 썼는지 모르겠어. 그는 궁정에서 인기가 아주 좋아. 일을 반듯하고 부지런하게 하는 데서는 그만한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어.
8월 12일
분명히 알베르트는 하늘 아래 가장 좋은 사람이야. 어제 그와 놀라운 일이 있었어. 나는 작별 인사를 하러 그에게 갔어. 산속으로 말을 타고 가고 싶어졌거든. 지금 이 편지도 거기서 쓰고 있어. 방 안을 이리저리 거닐다가 그의 권총이 눈에 띄었어.—"여행하는 동안 권총 좀 빌려줘." 내가 말했어.—"그러려무나." 그가 말했어. "네가 수고스럽게 장전할 생각이라면. 나한테는 그냥 모양으로 걸어 둔 거야."—내가 하나를 내리자 그가 말을 이었어. "조심하려다 그렇게 고약한 일을 겪은 뒤로는 그런 물건과는 엮이고 싶지 않아."—나는 그 이야기가 궁금했어.—"석 달쯤 시골 친구 집에 머문 적이 있어." 그가 이야기했어. "작은 권총 두 자루를 장전하지 않은 채 두고 마음 편히 잤지. 그런데 비 오는 어느 오후, 하릴없이 앉아 있다가 어쩐 일인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 우리가 습격당할 수도 있고, 권총이 필요할 수도 있고, 어쩌면—너도 그게 어떤지 알잖아.—그래서 하인에게 권총을 닦아서 장전하라고 줬어. 그런데 그 녀석이 하녀들과 장난치다가 겁을 주려고 했는데, 무슨 일인지 꽂을대가 아직 안에 꽂혀 있는 채로 총이 발사돼서, 그 꽂을대가 한 하녀의 오른손 엄지 밑 두툼한 데로 날아들어 엄지를 박살 냈어. 그래서 나는 하소연을 들어야 했고, 치료비까지 물어야 했지. 그 뒤로 나는 총을 모두 장전하지 않은 채 둬. 친구야, 조심이란 게 다 뭐야? 위험은 끝까지 다 배울 수가 없어! 하긴 말이야."—너도 알지, 나는 이 사람이 '하긴'만 빼면 정말 좋아. 모든 일반적인 명제에 예외가 있다는 건 당연하잖아? 그런데 이 사람은 너무나 꼼꼼하게 정당화를 해! 자기가 무언가 성급하고 일반적이고 반쯤만 맞는 말을 했다고 생각하면, 제한하고 수정하고 덧붙였다 뺐다 하는 걸 그치지 않아서, 결국 그 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돼.
그러다 이번에도 그는 아주 깊이 들어갔어. 나는 결국 그의 말을 더는 듣지 않고 내 생각에 빠졌고, 벌떡 하는 몸짓으로 권총 총구를 오른쪽 눈 위 이마에 갖다 댔어.—"에잇!" 알베르트가 권총을 끌어내리며 말했어. "뭐 하는 거야?"—"장전 안 됐어." 내가 말했어.—"그래도 그렇지, 뭐 하는 거냐고?" 그가 참지 못하고 받았어. "나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어리석어서 제 몸에 총을 쏠 수 있는지 상상도 안 돼. 생각만 해도 역겨워."
"너희 사람들은 왜," 내가 외쳤어. "무슨 일을 이야기하려면 곧장 '그건 어리석다, 그건 영리하다, 그건 좋다, 그건 나쁘다!' 하고 말해야 하지? 그게 다 무슨 뜻이야? 그래서 너희는 그 행동의 속사정을 파고들어 봤어?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까닭을 확실하게 밝혀낼 수 있어?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서둘러 판단하지는 않을 거야." "너도 인정하겠지," 알베르트가 말했어. "어떤 행동들은 무슨 동기에서 비롯됐든 악덕이라는 걸."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인정했어.—"그런데 친구야," 내가 말을 이었어. "여기에도 예외가 좀 있어. 도둑질이 악덕인 건 맞아. 하지만 자기와 가족이 당장 굶어 죽는 걸 막으려고 훔치러 나선 사람은 동정을 받아야 할까, 벌을 받아야 할까? 정당한 분노로 바람난 아내와 그 몹쓸 유혹자를 죽인 남편에게 누가 첫 돌을 던지겠어? 황홀한 한때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기쁨에 몸을 맡긴 아가씨에게는? 우리 법조차, 그 냉혈한 고집쟁이들조차 마음이 움직여서 벌을 거둬들이잖아."
"그건 전혀 다른 문제야." 알베르트가 받았어. "정열에 휩쓸린 사람은 분별하는 힘을 모두 잃어서, 술 취한 사람이나 미친 사람처럼 여겨지니까." "아, 너희 분별 있는 사람들!" 나는 웃으며 외쳤어. "정열! 취기! 광기! 너희는 그렇게 태연하게, 그렇게 아무 공감도 없이 서 있지, 너희 도덕적인 사람들은. 술꾼을 꾸짖고, 정신 나간 사람을 혐오하고, 제사장처럼 지나쳐 가고, 바리사이처럼 자기를 저런 사람들처럼 만들지 않으셨다고 하느님께 감사하지. 나는 한 번 넘게 취해 봤고, 내 정열은 광기에서 결코 멀지 않았는데, 둘 다 후회하지 않아. 그 덕분에 나는 어느 만큼은 이해하게 됐거든. 위대한 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낸 비범한 사람들을 왜 예로부터 늘 취한 사람,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해야 했는지.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야. 누가 조금이라도 자유롭고 고귀하고 뜻밖의 일을 하면 거의 누구나 그 뒤에다 대고 '저 사람 취했어, 저 사람 미쳤어!' 하고 외치는 걸 듣는 건 견딜 수가 없어. 부끄러운 줄 알아, 너희 맑은 정신의 사람들아! 부끄러운 줄 알아, 너희 현명한 사람들아!" "또 네 변덕이 나오는구나." 알베르트가 말했어. "너는 모든 걸 지나치게 부풀려. 적어도 지금 이야기하는 자살을 위대한 행동에 견주는 건 분명 잘못이야. 그건 나약함일 뿐이잖아. 괴로운 삶을 꿋꿋이 견디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쉬운 건 분명하니까." 나는 거기서 말을 끊으려 했어. 내가 온 마음을 다해 말하는데 누가 하찮은 상투어를 들고 나오는 것만큼 나를 평정에서 끌어내는 논리는 없거든.
그래도 마음을 다잡았어. 그 말은 전에도 자주 들었고 그때마다 더 자주 화가 났으니까. 그래서 조금 격하게 받아쳤어. "그걸 나약함이라고? 부탁이니 겉모습에 속지 마. 폭군의 견딜 수 없는 멍에 아래 신음하던 백성이 마침내 들끓어 올라 쇠사슬을 끊는다면, 그걸 나약하다고 할 수 있어? 집에 불이 났다는 공포 속에서 온 힘이 팽팽해져, 차분할 때는 꿈쩍도 못 할 짐을 가볍게 들어 나르는 사람, 모욕에 격분해서 여섯 사람에게 덤벼 이겨 버리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나약하다고 할 수 있어? 그리고 친구야, 애쓰는 게 힘이라면, 왜 지나치게 애쓰는 게 그 반대여야 하지?"—알베르트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어. "나쁘게 듣지 마. 네가 드는 예들은 여기에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아."—"그럴지도 모르지." 내가 말했어. "내 생각을 엮는 방식이 가끔 헛소리에 가깝다는 말은 전에도 자주 들었어. 그럼 다른 방식으로, 평소에는 즐거운 삶이라는 짐을 내던지기로 결심한 사람의 심정이 어떨지 그려 볼 수 있는지 보자. 함께 느낄 수 있을 때만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으니까."
"사람의 본성에는 한계가 있어." 내가 말을 이었어.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어느 정도까지는 견딜 수 있지만, 그 선을 넘으면 무너져 버려. 그러니 여기서 물어야 할 건 그 사람이 약하냐 강하냐가 아니라, 그 괴로움이 마음의 것이든 몸의 것이든 그 사람이 그 크기를 견뎌 낼 수 있느냐는 거야. 목숨을 끊은 사람을 비겁하다고 하는 건, 지독한 열병으로 죽은 사람을 비겁하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이상하다고 나는 생각해."
"역설이야! 아주 역설이야!" 알베르트가 외쳤어.—"네 생각만큼은 아니야." 내가 받았어. "너도 인정하겠지. 몸이 공격을 받아 그 힘이 한편으로는 다 소진되고 한편으로는 작동을 멈춰서, 다시 일어설 수도 없고 어떤 다행스러운 반전으로도 삶의 평소 흐름을 되찾을 수 없게 되면, 우리는 그걸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부르잖아.
자, 친구야, 이걸 정신에 적용해 보자. 그 좁은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을 봐. 인상들이 그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생각들이 그에게 어떻게 들러붙는지, 마침내 커져 가는 정열이 그에게서 차분한 분별력을 모두 빼앗고 그를 망가뜨리기까지.
차분하고 분별 있는 사람이 그 불행한 사람의 처지를 내려다보는 것도 헛일이고, 그를 타이르는 것도 헛일이야! 병자의 침대 곁에 선 건강한 사람이 자기 힘을 조금도 불어넣어 줄 수 없는 것과 똑같아."
알베르트에게는 이게 너무 일반적인 이야기였어. 나는 얼마 전 물에 빠져 죽은 채 발견된 아가씨를 떠올리게 하고 그 아가씨 이야기를 되풀이해 들려주었어.—"착하고 어린 아가씨였어. 집안일과 주마다 정해진 일이라는 좁은 테두리 안에서 자랐고, 일요일이면 조금씩 장만한 나들이옷을 입고 또래들과 읍내 둘레를 산책하거나, 큰 명절에나 한 번 춤을 추거나, 그 밖에는 이웃 여자와 무슨 다툼이나 뒷말이 난 까닭을 두고 온 마음을 쏟아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떠는 것 말고는 다른 즐거움을 몰랐지—그런데 그 불같은 성품이 마침내 더 깊은 갈망을 느끼게 되고, 남자들의 아첨이 그걸 부추겨. 예전의 즐거움은 차츰 시들해지고, 마침내 알 수 없는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끌어당기는 남자를 만나게 돼. 그 아가씨는 이제 모든 희망을 그 남자에게 걸고, 둘레의 세상을 잊고, 그 남자, 오직 그 사람 말고는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오직 그 사람만을 그리워해. 변덕스러운 허영의 헛된 즐거움에 물들지 않은 그 아가씨의 갈망은 곧장 하나의 목적을 향해. 그 사람의 사람이 되고 싶은 거야. 영원한 결합 속에서 자기에게 모자란 모든 행복을 얻고, 그리워하던 모든 기쁨이 하나로 합쳐진 것을 누리고 싶은 거야. 모든 희망이 이루어지리라고 도장 찍어 주는 거듭된 약속, 욕망을 키우는 대담한 애무가 그 아가씨의 영혼을 온통 사로잡아. 그 아가씨는 흐릿한 의식 속에, 모든 기쁨을 미리 느끼는 속에 떠 있고, 마침내 더할 수 없이 팽팽해져서 모든 소원을 끌어안으려고 두 팔을 뻗어—그런데 그 남자가 그 아가씨를 버려.—그 아가씨는 굳어 버린 채 넋을 잃고 낭떠러지 앞에 서. 둘레는 온통 어둠이고, 아무 앞날도, 아무 위로도, 아무 예감도 없어! 오직 그 사람 안에서만 자기가 살아 있음을 느꼈는데, 그 사람이 떠났으니까. 그 아가씨에게는 앞에 펼쳐진 넓은 세상도, 그 잃음을 메워 줄 수 있는 많은 사람들도 보이지 않아. 온 세상에게 버림받아 혼자라고 느낄 뿐이야—그리고 마음의 끔찍한 고통에 눈이 멀고 궁지에 몰려, 둘레를 감싸는 죽음 속에서 모든 괴로움을 질식시키려고 몸을 던져.—봐, 알베르트, 이게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야! 말해 봐, 이게 병에 걸린 경우가 아니야? 본성이 뒤엉키고 서로 부딪치는 힘들의 미로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그래서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거야. 그걸 지켜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화가 있을지어다. '어리석은 것! 기다렸더라면, 시간이 흐르게 두었더라면, 절망은 가라앉았을 테고 위로해 줄 다른 사람도 나타났을 텐데.'—그건 이렇게 말하는 것과 똑같아. '어리석은 녀석, 열병으로 죽다니! 기운이 돌아오고, 체액이 나아지고, 피의 소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더라면 다 잘됐을 테고, 오늘날까지 살아 있을 텐데!'"
알베르트는 그 비유가 아직 와닿지 않는지 몇 가지 더 반박했는데, 그중 하나는 내가 단순한 아가씨 이야기만 했다는 거였어. 그렇게 좁은 테두리에 갇혀 있지 않고 더 많은 사정을 내다볼 줄 아는 분별 있는 사람이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는 거야.—"친구야," 내가 외쳤어. "사람은 사람이야. 누가 가졌을지 모를 조그만 분별은 정열이 날뛰고 인간의 한계가 그를 밀어붙일 때 거의, 아니 전혀 쓸모가 없어. 오히려—그건 다음에 이야기하자." 나는 그렇게 말하고 모자를 집었어. 아, 내 마음은 그토록 벅찼는데—우리는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 헤어졌어. 이 세상에서는 누구도 다른 사람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니까.
8월 15일
세상에서 사람을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만드는 건 사랑밖에 없다는 게 분명해. 로테가 나를 잃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게 느껴지고, 아이들은 내가 늘 내일 다시 올 거라는 생각밖에 없어. 오늘은 로테의 피아노를 조율하러 갔는데 손도 대지 못했어. 꼬마들이 옛날이야기를 해 달라고 나를 졸졸 따라다녔고, 로테도 아이들 소원을 들어주라고 했거든. 나는 아이들에게 저녁 빵을 잘라 주었어. 이제 아이들은 로테가 잘라 줄 때만큼이나 내가 잘라 주는 것도 좋아해. 그리고 손들이 시중드는 공주 이야기라는 으뜸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장담하는데, 나는 거기서 많은 걸 배워. 그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는지 놀라울 정도야. 내가 이따금 곁가지 줄거리를 지어냈다가 두 번째에 잊어버리면, 아이들은 지난번에는 달랐다고 곧바로 말해. 그래서 이제는 노래하듯 박자를 맞춰 줄줄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외우는 연습을 하고 있어. 그 덕분에 깨달았어. 작가가 자기 이야기를 고쳐서 두 번째 판을 내면, 문학적으로 아무리 나아졌더라도 그 책에 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첫인상은 우리를 고분고분하게 만나고, 사람은 더없이 허황된 이야기도 믿게 만들 수 있게 생겨 먹었어. 그런데 그건 또 곧바로 단단히 들러붙어서, 그걸 다시 긁어내고 지우려는 사람은 화를 당하지!
8월 18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다시 그 사람의 불행의 샘이 되어야만 했던 걸까?
살아 있는 자연을 향한 내 가슴의 충만하고 따뜻한 감정, 나를 그토록 큰 기쁨으로 넘치게 하고 둘레의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어 주던 그 감정이, 이제는 견딜 수 없는 고문자가 되어, 가는 길마다 나를 쫓아다니는 괴롭히는 귀신이 되었어. 예전에 나는 바위 위에서 강 건너 저 언덕들까지 기름진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둘레의 모든 것이 싹트고 솟아나는 것을 보았어. 저 산들이 기슭에서 꼭대기까지 높고 빽빽한 나무로 뒤덮이고, 저 골짜기들이 갖가지로 굽이치며 더없이 사랑스러운 숲 그늘에 덮이고, 잔잔한 강이 속삭이는 갈대 사이로 미끄러지며 부드러운 저녁 바람이 하늘에 흔들어 띄워 보내는 사랑스러운 구름을 비추는 걸 보았어. 그러면 내 둘레에서 새들이 숲을 생기 있게 하는 소리가 들리고, 수백만 날벌레 떼가 해의 마지막 붉은 빛 속에서 신나게 춤추고, 해의 마지막 떨리는 눈길이 윙윙거리는 풍뎅이를 풀숲에서 풀어 주었어. 둘레에서 붕붕거리고 꿈틀거리는 소리에 나는 땅에 눈길을 돌렸고, 내 단단한 바위에서 억지로 양분을 빨아들이는 이끼와, 메마른 모래 언덕을 따라 자라 내려가는 덤불이 자연의 안에서 타오르는 거룩한 생명을 내게 열어 보였어. 나는 그 모든 것을 내 따뜻한 가슴에 얼마나 끌어안았던가. 넘쳐흐르는 충만 속에서 신이 된 것 같았고, 무한한 세상의 멋진 모습들이 모든 것을 살리며 내 영혼 속에서 움직였어. 거대한 산들이 나를 에워싸고, 낭떠러지들이 내 앞에 놓이고, 거센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강들이 내 발밑으로 흐르고, 숲과 산이 울렸어. 그리고 나는 땅속 깊은 곳에서 그 헤아릴 수 없는 모든 힘들이 서로 얽혀 일하고 만들어 내는 걸 보았어. 그리고 이제 땅 위, 하늘 아래에는 갖가지 생물의 족속들이 우글거리지.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천 가지 모습으로 채워져 있어. 그런데 사람들은 작은 집 속에 함께 몸을 숨기고 둥지를 틀고는, 제멋대로 이 넓은 세상을 다스린다고 생각하지! 가엾은 바보! 너는 너무 작아서 모든 걸 그렇게 하찮게 여기는구나.—사람이 오를 수 없는 산에서, 누구의 발도 밟아 보지 못한 황야를 지나, 알려지지 않은 바다 끝까지, 영원히 창조하시는 분의 정신이 불어오고, 그분을 알아듣고 살아가는 먼지 한 톨까지도 기뻐하셔.—아, 그때 나는 얼마나 자주, 내 머리 위로 날아가는 두루미의 날개를 빌려 헤아릴 수 없는 바다의 기슭으로 가고 싶었던가. 무한의 거품 이는 잔에서 부풀어 오르는 삶의 기쁨을 마시고, 단 한순간만이라도 좁디좁은 내 가슴의 힘으로, 모든 것을 자기 안에서 자기를 통해 낳으시는 그분의 지복을 한 방울이라도 느끼고 싶었어.
형제여, 그때를 떠올리기만 해도 나는 좋아져. 그 말할 수 없는 갈망을 다시 불러내어 말로 나타내려는 이 애씀조차 내 영혼을 그 자신 위로 들어 올려. 그러고 나면 지금 나를 둘러싼 처지의 두려움이 두 배로 느껴져.
내 영혼 앞에서 마치 막이 걷힌 듯해. 그리고 무한한 생명의 무대가 내 앞에서 영원히 열려 있는 무덤의 구렁으로 바뀌어. 모든 게 지나가 버리는데 '이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어? 모든 게 번개처럼 빨리 굴러가 버리고, 제 존재의 온 힘을 끝까지 지켜 내는 일은 그토록 드물고, 아, 물살에 휩쓸려 가라앉고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는데? 너를, 그리고 네 둘레의 네 사람들을 갉아먹지 않는 순간은 하나도 없어. 네가 파괴자가 아닌, 파괴자일 수밖에 없지 않은 순간은 하나도 없어. 더없이 순진한 산책 한 번이 가엾은 벌레 천 마리의 목숨을 앗아 가고, 발걸음 하나가 개미들이 애써 지은 집을 무너뜨려 작은 세상 하나를 초라한 무덤 속에 짓밟아 버려. 하! 나를 움직이는 건 세상의 크고 드문 재난, 너희 마을을 쓸어 가는 홍수, 너희 도시를 삼키는 지진이 아니야. 내 가슴을 파헤치는 건 자연 전체 속에 숨어 있는 갉아먹는 힘이야. 이웃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파괴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만들지 않은 그 힘 말이야. 그래서 나는 두려움에 비틀거려. 하늘과 땅, 그리고 내 둘레에서 엮어 짜는 그 힘들. 나에게는 영원히 삼키고 영원히 되새김질하는 괴물밖에 보이지 않아.
8월 21일
아침에 괴로운 꿈에서 어렴풋이 깨어날 때 로테를 향해 팔을 뻗어 보지만 헛일이야. 밤에 행복하고 순진한 꿈에 속아, 풀밭에서 로테 곁에 앉아 그 손을 잡고 천 번이나 입을 맞추었다고 믿을 때, 침대에서 로테를 더듬어 찾아보지만 헛일이야. 아, 그러다 아직 반쯤 잠에 취한 채 로테를 더듬다가 정신이 들면—짓눌린 가슴에서 눈물이 강물처럼 터져 나오고, 나는 어두운 앞날을 바라보며 위로받을 길 없이 울어.
8월 22일
불행한 일이야, 빌헬름. 무언가를 하려는 내 힘이 불안한 게으름으로 뒤틀려 버렸어. 빈둥거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얼 할 수도 없어. 상상력도 없고 자연을 보아도 아무 느낌이 없고, 책은 역겨워. 우리 자신이 없으면 모든 게 없는 거야. 맹세하는데, 가끔은 날품팔이가 되고 싶어. 아침에 눈을 뜨면 다가올 하루에 대한 전망 하나,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 하나, 희망 하나라도 가질 수 있게. 서류더미에 귀까지 파묻힌 알베르트가 자주 부러워. 내가 그 사람 자리에 있다면 좋을 거라고 상상해! 벌써 몇 번이나 불쑥 마음이 들었어. 너와 장관에게 편지를 써서 공사관 자리를 달라고 하겠다고. 네 말로는 그 자리를 내게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했지. 나도 그렇게 믿어. 장관은 오래전부터 나를 아껴 주셨고, 무슨 일이든 맡아 보라고 오래 권하셨으니까. 한 시간쯤은 나도 정말 그러고 싶어. 그러다 다시 생각해 보면, 자유를 참지 못해 안장과 굴레를 얹게 했다가 녹초가 되도록 부림을 당한 말 우화가 떠올라서—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그리고 친구야! 처지를 바꾸고 싶은 내 안의 이 갈망이 어쩌면 어디를 가든 나를 따라다닐 속의 불편한 조바심은 아닐까?
8월 28일
정말이야, 내 병을 고칠 수 있다면 이 사람들이 고쳐 줄 거야. 오늘은 내 생일인데, 아침 일찍 알베르트에게서 작은 꾸러미를 받았어. 풀자마자 연분홍 리본 하나가 눈에 들어왔어. 내가 로테를 처음 알았을 때 로테가 달고 있던 리본인데, 그 뒤로 몇 번이나 달라고 졸랐던 거야. 그 안에는 작은 12절판 책 두 권도 있었어. 베트슈타인 판 작은 호메로스인데, 산책할 때 에르네스티 판을 들고 다니느라 끙끙대지 않으려고 그토록 갖고 싶었던 판이야. 봐! 이렇게 그들은 내 소원을 앞질러 알아채고, 우정의 작은 호의들을 이렇게 찾아내. 주는 사람의 허영이 우리를 낮추는 눈부신 선물보다 천 배는 더 귀한 호의들을. 나는 그 리본에 천 번이나 입을 맞추고, 숨 쉴 때마다 그 짧고 행복하고 되돌릴 수 없는 나날들이 나를 가득 채워 주던 그 지복의 기억을 들이마셔. 빌헬름, 그래, 나는 불평하지 않아. 삶의 꽃들은 한낱 겉모습일 뿐이야! 얼마나 많은 꽃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고, 얼마나 적은 꽃이 열매를 맺고, 그 열매들 가운데 또 얼마나 적은 것이 익는지! 그래도 그런 열매는 아직 넉넉히 있어. 그런데—아, 형제여!—익은 열매를 내버려 두고, 업신여기고, 맛보지도 않은 채 썩게 둘 수 있을까?
잘 있어! 멋진 여름이야. 나는 자주 로테네 과수원의 과일나무에 올라가 긴 장대 끝에 달린 과일 따개로 꼭대기의 배를 따. 로테는 아래에 서서 내가 내려 주는 배를 받아.
8월 30일
불행한 녀석! 너는 바보가 아니냐? 너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게 아니냐? 이 미쳐 날뛰는 끝없는 정열이 다 무어냐? 나는 이제 로테에게 바치는 기도밖에 없어. 내 상상 속에는 로테의 모습 말고 다른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내 둘레의 세상 모든 것을 로테와의 관계 속에서만 봐. 그래서 행복한 시간도 많아—다시 로테에게서 억지로 떨어져야 할 때까지는! 아, 빌헬름! 내 마음이 나를 어디로 자주 몰아가는지!—로테 곁에 두세 시간 앉아서 그 모습과 몸가짐과 그 말의 천상 같은 표현을 실컷 누리고 나면, 내 모든 감각이 차츰 팽팽해져. 눈앞이 캄캄해지고, 거의 들리지도 않고, 자객처럼 무언가가 내 목을 조르고, 그러면 내 심장은 거칠게 뛰며 짓눌린 감각에 숨통을 틔워 주려 하지만 오히려 혼란만 더해—빌헬름, 그럴 때면 내가 이 세상에 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아! 그리고—가끔 서글픔이 이겨서, 로테가 내 답답한 가슴을 자기 손 위에 울어서 풀어도 된다는 비참한 위로를 허락해 주지 않으면—나는 떠나야 해, 밖으로 나가야 해. 그러면 멀리 들판을 헤매고 다녀. 가파른 산을 기어오르는 게 그럴 때 내 기쁨이야. 길 없는 숲을 헤치고, 나를 할퀴는 덤불과 나를 찢는 가시를 뚫고 길을 내는 게! 그러면 조금 나아져! 조금! 그리고 지치고 목이 말라 길에 쓰러져 있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밤 높이 뜬 보름달 아래 외딴 숲에서 구부러져 자란 나무에 걸터앉아 상처 난 발바닥을 조금이라도 쉬게 하다가, 기진한 고요 속에서 어스름한 빛을 받으며 잠들기도 해! 아, 빌헬름! 독방의 외로운 거처, 거친 털옷과 가시 띠가 내 영혼이 목말라하는 위안일 거야. 잘 있어! 무덤 말고는 이 비참함의 끝이 보이지 않아.
9월 3일
떠나야 해! 고마워, 빌헬름. 흔들리던 내 결심을 굳혀 줘서. 벌써 두 주째 로테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다녀. 떠나야 해. 로테는 다시 읍내의 친구 집에 가 있어. 그리고 알베르트는—그리고—나는 떠나야 해!
9월 10일
정말 대단한 밤이었어! 빌헬름! 이제 무엇이든 견딜 수 있어. 나는 로테를 다시 보지 않을 거야! 아, 네 목에 매달려 천 줄기 눈물과 벅찬 감격으로, 친구야, 내 가슴을 휘몰아치는 감정을 다 쏟아 낼 수 없다니. 나는 여기 앉아 숨을 헐떡이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아침을 기다리고 있어. 해가 뜨면 말이 오도록 일러 두었어.
아, 로테는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는 건 생각도 못 하고 편히 자고 있겠지. 나는 억지로 몸을 떼어 냈어.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내 계획을 내비치지 않을 만큼 강했어. 그런데 하느님, 그게 얼마나 대단한 대화였는지!
알베르트는 저녁을 먹고 나서 곧 로테와 함께 정원으로 오겠다고 약속했어. 나는 키 큰 밤나무 아래 테라스에 서서, 이제 마지막으로 사랑스러운 골짜기와 잔잔한 강 위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어. 그토록 자주 로테와 함께 이곳에 서서 바로 이 멋진 광경을 바라보았는데, 이제—나는 그토록 좋아하던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거닐었어. 로테를 알기 전에도 어떤 은밀한 끌림이 나를 이곳에 그토록 자주 붙잡아 두었어.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우리가 이 자리를 서로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어 얼마나 기뻐했는지. 이곳은 정말 내가 본, 사람의 손으로 만든 곳 가운데 가장 낭만적인 곳이야.
먼저 밤나무 사이로 넓은 전망이 펼쳐져—아, 생각해 보니 이 이야기는 벌써 많이 썼지. 높은 너도밤나무 벽이 마침내 사람을 에워싸고, 거기 이어진 작은 숲 때문에 가로수 길은 점점 어두워지다가, 마침내 모든 것이 외로움의 온갖 전율이 감도는 닫힌 작은 공간에서 끝난다고. 한낮에 처음 그 안에 들어섰을 때 얼마나 아늑하고 은밀한 느낌이 들었는지 아직도 느껴져. 그곳이 앞으로 지복과 고통의 무대가 되리라는 걸 나는 아주 어렴풋이 예감했어.
헤어짐과 다시 만남이라는 애타고 달콤한 생각에 반 시간쯤 젖어 있었을 때, 두 사람이 테라스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어. 나는 그들을 맞으러 달려가서 떨리는 마음으로 로테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추었어. 우리가 막 올라섰을 때 덤불 우거진 언덕 뒤로 달이 떠올랐어.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그 어두운 정자 가까이 갔어. 로테가 들어가 앉았고, 알베르트가 그 곁에 앉았고, 나도 앉았어. 하지만 마음이 불안해서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 나는 일어나서 로테 앞에 섰다가, 이리저리 걷다가, 다시 앉았어. 조마조마한 기분이었어. 로테는 너도밤나무 벽 끝에서 우리 앞의 테라스 전체를 비추는 달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라고 했어. 둘레가 온통 깊은 어스름에 싸여 있었기에 더욱 눈부신 멋진 광경이었어. 우리는 말이 없었고, 잠시 뒤 로테가 말을 꺼냈어. "달빛 아래를 산책할 때면 언제나, 언제나 세상을 떠난 사람들 생각이 나요. 죽음과 그 뒤의 세상에 대한 느낌이 밀려오지 않은 적이 없어요." "우리는 있을 거예요!" 로테는 더없이 벅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어. "그런데 베르테르, 우리는 다시 만날까요? 서로 알아볼까요? 어떤 예감이 드세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로테," 나는 손을 내밀며 말했고,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어. "우리는 다시 만날 거예요! 이 세상에서도 저세상에서도 다시 만날 거예요!"—나는 더 말을 이을 수가 없었어—빌헬름, 이 두려운 작별을 가슴에 품고 있는 내게 로테가 그걸 물어야만 했을까!
"그리고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알까요?" 로테가 말을 이었어. "우리가 잘 지낼 때, 우리가 따뜻한 사랑으로 그들을 떠올릴 때, 그걸 느낄까요? 아! 고요한 저녁, 어머니의 아이들, 이제는 제 아이들인 그 아이들 사이에 앉아 있으면, 그리고 아이들이 어머니 둘레에 모였던 것처럼 제 둘레에 모여 있으면, 어머니의 모습이 늘 제 곁을 떠돌아요. 그럴 때 그리움의 눈물을 머금고 하늘을 바라보며,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때 제가 드린 약속, 그 아이들의 엄마가 되겠다는 약속을 제가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 잠깐만이라도 내려다보실 수 있기를 바라요. 그리고 얼마나 사무치는 마음으로 외치는지 몰라요. '용서해 주세요, 사랑하는 어머니. 제가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해 주시던 만큼 해 주지 못한다면요. 아! 그래도 저는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어요. 아이들은 입고 먹고, 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살핌과 사랑을 받고 있어요. 우리가 이렇게 사이좋게 지내는 걸 보실 수 있다면, 사랑하는 성녀시여! 아이들이 잘되기를 마지막 가장 쓰라린 눈물로 비셨던 그 하느님을 더없이 뜨거운 감사로 찬양하실 거예요.'"—로테가 그렇게 말했어! 아, 빌헬름, 로테가 한 말을 누가 다시 옮길 수 있겠어! 차갑고 죽은 글자가 어떻게 그 정신의 천상 같은 꽃을 나타낼 수 있겠어! 알베르트가 부드럽게 말을 막았어.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로테! 당신 마음이 이런 생각에 많이 기운다는 건 알지만, 부탁이에요."—"아, 알베르트," 로테가 말했어. "아빠가 여행을 떠나시고 꼬마들을 재우고 나서 우리가 작고 둥근 탁자에 함께 앉아 있던 저녁들을 너도 잊지 않았을 거야. 너는 좋은 책을 자주 가져왔지만 정작 읽을 틈은 거의 없었지—그 훌륭한 영혼과 함께하는 게 무엇보다 소중하지 않았어? 아름답고 상냥하고 쾌활하고 늘 부지런하던 그분! 제가 침대에서 몇 번이나 하느님 앞에 엎드려, 저를 그분처럼 만들어 달라고 흘린 눈물을 하느님은 아세요."
"로테!" 나는 로테 앞에 엎드려 그 손을 잡고 천 줄기 눈물로 적시며 외쳤어. "로테! 하느님의 축복과 당신 어머니의 영혼이 당신 위에 머물러 있어요!" "당신이 어머니를 아셨더라면," 로테가 내 손을 꼭 쥐며 말했어.—"어머니는 당신이 알 만한 분이셨어요!"—나는 녹아 버릴 것만 같았어.
나에 대해 이보다 더 크고 자랑스러운 말을 들은 적은 없었어—로테가 말을 이었어. "그런데 그런 분이 한창 나이에 돌아가셔야 했어요. 막내가 태어난 지 여섯 달도 안 됐을 때요! 앓으신 지 오래되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차분히 모든 걸 받아들이셨는데, 아이들, 특히 그 갓난아기 때문에만 가슴 아파하셨어요. 마지막이 가까워지자 어머니가 제게 '아이들을 데려오너라!' 하셨고, 저는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갔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것들과 넋이 나간 큰아이들이 침대 둘레에 섰지요. 어머니는 손을 들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하나씩 차례로 입을 맞추고 내보내신 뒤 제게 말씀하셨어요.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다오!'—저는 손을 잡고 약속했어요!—'많은 걸 약속하는구나, 내 딸아.' 어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엄마의 마음과 엄마의 눈을 말이야. 네가 고마워하며 흘리는 눈물을 보고, 그게 무엇인지 네가 느낀다는 걸 자주 알았단다. 동생들에게는 그 마음을, 아버지에게는 아내의 진실함과 따름을 보여 드리렴. 네가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거야.'—어머니는 아버지를 찾으셨는데, 아버지는 견딜 수 없는 슬픔을 우리에게 감추려고 나가 계셨어요. 그분은 완전히 무너져 계셨거든요.
알베르트, 너는 그 방에 있었어. 어머니는 누가 걸어가는 소리를 듣고 누구냐고 물으시더니 너를 곁으로 부르셨지. 그리고 우리가 행복할 거라고, 함께 행복할 거라고 안심하는 듯 편안한 눈길로 너와 나를 바라보셨어."—알베르트는 로테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외쳤어. "우리는 행복해요! 앞으로도 행복할 거예요!"—그 차분한 알베르트가 완전히 평정을 잃었고,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베르테르," 로테가 말을 꺼냈어. "그런 분이 돌아가셔야 했다니! 하느님! 가끔 생각해 보면, 사람은 자기 삶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을 떠메고 가게 그냥 내버려 두고, 그걸 그토록 사무치게 느끼는 건 아이들뿐이에요. 아이들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엄마를 데려갔다고 오래도록 하소연했어요!" 로테가 일어섰고, 나는 정신이 들었지만 마음이 흔들려 그대로 앉아 로테의 손을 잡고 있었어.—"이제 가요." 로테가 말했어. "시간이 됐어요."—로테가 손을 빼려 했지만 나는 더 꼭 잡았어.—"우리는 다시 만날 거예요." 나는 외쳤어. "우리는 서로를 찾아낼 거예요. 어떤 모습이 되어도 서로 알아볼 거예요. 나는 가요." 내가 말을 이었어. "기꺼이 가요. 하지만 영원히라고 말해야 한다면 견딜 수 없을 거예요. 잘 있어요, 로테! 잘 있어, 알베르트! 우리는 다시 만나요."—"내일이겠죠." 로테가 농담처럼 받았어.—나는 그 '내일'을 느꼈어! 아, 로테는 몰랐어. 내 손에서 자기 손을 뺄 때—두 사람은 가로수 길을 걸어 나갔고, 나는 선 채로 달빛 속에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땅에 몸을 던져 실컷 울고, 벌떡 일어나 테라스로 달려 나갔어. 저 아래 키 큰 보리수 그늘 속으로 로테의 흰옷이 정원 문 쪽으로 어른거리는 게 아직 보였어. 나는 두 팔을 뻗었고, 그 모습은 사라졌어.
제2부
1771년 10월 20일
어제 이곳에 닿았어. 공사가 몸이 좋지 않아서 며칠 들어앉아 있을 거래. 그 사람이 그렇게 고약하지만 않다면 다 괜찮을 텐데. 알겠어, 알겠어. 운명이 내게 혹독한 시련을 마련해 두었구나. 그래도 기운을 내자! 마음이 가벼우면 무엇이든 견딜 수 있어! 마음이 가볍다고? 그 말이 펜 끝에 떠오르니 웃음이 나네. 아, 피가 조금만 덜 뜨거웠어도 나는 해 아래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됐을 텐데. 뭐라고! 다른 사람들은 쥐꼬리만 한 힘과 재주를 가지고 내 앞에서 흐뭇하게 우쭐대며 떠벌리는데, 나는 내 힘과 재능에 절망한다고? 이 모든 걸 내게 주신 하느님, 왜 그 절반을 거두시고 대신 자신감과 만족하는 마음을 주지 않으셨나요?
참자! 참자! 나아질 거야. 친구야, 네 말이 맞아. 날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그들이 무얼 하고 어떻게 사는지 보다 보니 나 자신과 훨씬 잘 지내게 됐어. 분명 우리는 모든 걸 우리와 견주고 우리를 모든 것과 견주게 생겨 먹었으니, 행복이냐 불행이냐는 우리가 스스로를 견주는 대상에 달려 있어. 그래서 외로움만큼 위험한 건 없어. 우리의 상상력은 타고나기를 위로 솟으려 하고 시의 환상적인 모습들로 배를 불리니, 우리가 맨 아래에 있는 존재들의 사다리를 위로 쌓아 올려. 그러면 우리 바깥의 모든 것이 더 멋져 보이고, 다른 사람은 누구나 더 완벽해 보이지.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는 우리에게 무언가가 모자라다는 걸 그토록 자주 느끼고, 바로 그 모자란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진 것처럼 보이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에 어떤 이상적인 흐뭇함까지 덤으로 얹어 그 사람에게 줘 버려. 그렇게 해서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낸 행복한 사람이 완성되는 거야.
반대로 우리가 온갖 약함과 수고를 안고서도 그저 꾸준히 일해 나가면, 어슬렁거리고 이리저리 돌아가면서도 돛을 달고 노를 젓는 남들보다 더 멀리 가는 일이 아주 많다는 걸 알게 돼—그리고—남들과 나란히 가거나 남들보다 앞서 달릴 때, 그게 바로 자기 자신을 참되게 느끼는 거야.
11월 26일
이제 이곳 생활이 그런대로 견딜 만해지기 시작했어. 가장 좋은 건 할 일이 넉넉하다는 거야. 그리고 갖가지 사람들, 온갖 새로운 모습들이 내 영혼 앞에 알록달록한 연극을 펼쳐 보여. 나는 C 백작을 알게 됐는데, 날이 갈수록 더 존경하게 되는 분이야. 넓고 큰 머리를 가졌으면서도 많은 걸 내다보기에 오히려 차갑지 않은 분, 함께 지내 보면 우정과 사랑에 대한 감정이 환하게 빛나는 분이야. 내가 일 때문에 그분께 심부름을 갔는데, 첫마디에서 우리가 서로 통한다는 것, 나와는 아무하고나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걸 알아채시고 나에게 관심을 가지셨어. 나를 대하는 그분의 터놓은 태도는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라. 큰 영혼이 자기에게 마음을 여는 걸 보는 것만큼 참되고 따뜻한 기쁨은 세상에 없어.
12월 24일
공사 때문에 속상한 일이 많아. 내 예상대로야. 그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는 꼼꼼한 바보야. 한 걸음 한 걸음, 수다쟁이 할멈처럼 시시콜콜해. 자기 자신에게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아무도 그 사람 마음에 들 수가 없어. 나는 일을 가볍게 해치우는 걸 좋아하고, 된 대로 두는 편이야. 그런데 그 사람은 내 문서를 돌려주면서 이렇게 말할 위인이야. "좋소. 하지만 다시 한번 훑어보시오. 언제나 더 나은 낱말, 더 깔끔한 토씨가 있게 마련이오."—그러면 나는 미쳐 버릴 것 같아. '그리고' 하나, 접속사 하나 빠뜨려서는 안 되고, 내가 가끔 무심코 쓰는 도치법은 철천지원수로 여겨. 문장을 늘 하던 가락대로 풍금 치듯 줄줄 늘어놓지 않으면 하나도 알아듣지 못해. 이런 사람과 일해야 하는 건 고역이야.
C 백작의 신뢰만이 이 모든 걸 보상해 주는 유일한 것이야. 얼마 전 백작은 내 공사가 느려 터지고 지나치게 망설이는 데 얼마나 불만인지 아주 솔직하게 말씀하셨어. 그런 사람들은 자기도 남도 힘들게 만들지. "그래도," 백작이 말씀하셨어. "산을 넘어야 하는 나그네처럼 받아들여야 하네. 물론 산이 없다면 길이 훨씬 편하고 짧겠지. 하지만 산은 거기 있고, 넘어가야 하는 걸세!"
우리 영감도 백작이 자기보다 나를 더 아낀다는 걸 느끼는지, 그게 화가 나서 기회만 있으면 백작을 헐뜯어. 나는 당연히 맞서고, 그러면 일은 더 나빠지지. 어제는 아예 나를 발끈하게 만들었어. 나까지 겨냥한 말이었거든. 백작은 세상 일에는 아주 좋다고, 일을 가볍게 해치우고 글도 잘 쓰지만, 모든 문필가들이 그렇듯 철저한 학식이 모자란다는 거야. 그러면서 "찔리지?" 하고 말하려는 듯한 얼굴을 했어. 하지만 내게는 먹히지 않았어.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을 나는 경멸했어. 나는 버티고 서서 꽤 격렬하게 맞섰어. 백작은 그 성품으로 보나 그 학식으로 보나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라고 말했지. "저는," 내가 말했어. "자기 정신을 넓혀 수많은 대상에 펼치면서도 일상생활을 위한 부지런함을 잃지 않는 데 이렇게 성공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그 머리에는 알아듣지 못할 소리였지. 나는 그 이상 헛소리를 듣고 울화를 삼키지 않으려고 물러 나왔어.
이게 다 너희 탓이야. 나를 이 멍에 속으로 꼬드기고, 무언가 하며 살라고 그토록 노래를 불러 댄 너희 말이야. 무언가 하며 살라고! 감자를 심고 곡식을 팔러 말을 타고 읍내로 가는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 쇠사슬에 묶여 있는 이 노예선에서 10년 더 노를 젓겠어.
그리고 이곳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지내는 고약한 족속들 사이의 번지르르한 비참함과 지루함이라니! 그들 사이의 자리다툼, 서로 한 발짝이라도 앞서려고 눈을 부릅뜨고 노리는 꼴. 가장 비참하고 가련한 정열들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드러나 있어. 이를테면 어떤 여자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 가문과 자기 고향 이야기를 늘어놓아서,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생각할 거야. 쥐꼬리만 한 귀족 신분과 고향 이름을 대단한 걸로 여기는 바보 같은 여자라고.—그런데 더 기가 막힌 건 따로 있어. 바로 그 여자가 이 근처 관청 서기의 딸이라는 거야.—봐, 나는 그렇게 생각 없이 자기를 그렇게 시시하게 팔아 버리는 인간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
물론 친구야, 남을 나에 맞춰 재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나는 날마다 더 깨달아. 그리고 나는 나 자신만으로도 이렇게 벅차고 이 마음이 이토록 거세니—아, 남들이 나를 내 길로 가게 내버려 두기만 한다면 나도 기꺼이 남들이 제 길을 가게 내버려 둘 텐데.
나를 가장 성가시게 하는 건 지긋지긋한 신분 관계야. 물론 신분의 차이가 얼마나 필요한지, 그게 나 자신에게도 얼마나 많은 이득을 주는지는 나도 누구 못지않게 알아. 다만 이 땅에서 내가 아직 조금이나마 기쁨을, 행복의 희미한 빛을 누릴 수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내 길을 가로막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얼마 전 산책하다가 B 아가씨를 알게 됐어. 딱딱한 생활 한가운데서도 타고난 성품을 많이 지켜 온 사랑스러운 사람이야. 우리는 이야기하며 서로 마음이 맞았고, 헤어질 때 나는 찾아가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청했어. 아가씨가 너무나 스스럼없이 허락해서 나는 예의에 맞는 때를 기다리기가 힘들었어. 그 아가씨는 이곳 사람이 아니고 이모 댁에 살고 있어. 그 노부인의 생김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나는 그 부인에게 무척 신경을 써서 주로 그 부인에게 말을 건넸는데, 반 시간도 안 되어서, 나중에 아가씨 자신도 털어놓았던 걸 거의 다 알아챘어. 그 이모님은 그 나이에 가진 게 하나도 없어. 번듯한 재산도, 재치도 없고, 조상들의 줄줄이 이어진 이름 말고는 기댈 데가 없고, 울타리를 친 듯 틀어박힌 신분 말고는 가릴 것이 없고, 자기 층계에서 평민들의 머리 위를 내려다보는 것 말고는 낙이 없어. 젊어서는 아름다웠고 인생을 흥청망청 보냈대. 처음에는 고집으로 가엾은 젊은이 여럿을 괴롭혔고, 나이가 들어서는 늙은 장교 하나에게 고개를 숙이고 따랐는데, 그 장교는 그 대가와 그럭저럭 살 만한 생활비를 받고 그 부인과 청동의 시대를 함께 보내다가 죽었대. 이제 그 부인은 쇠의 시대에 홀로 남았고, 조카딸이 그토록 사랑스럽지 않았다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을 거야.
1772년 1월 8일
영혼이 온통 예식에 매달려 있고, 몇 년이고 오로지 식탁에서 의자 하나 더 윗자리에 끼어 앉을 궁리만 하는 사람들이라니!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야. 오히려 그런 하찮은 말썽 때문에 중요한 일을 진척시키지 못하니 일이 쌓여 가지. 지난주에는 썰매 놀이에서 말다툼이 벌어져 모처럼의 재미가 다 망가졌어.
바보들! 사실 자리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 첫째 자리에 앉은 사람이 첫째 역할을 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는 걸 모르다니! 얼마나 많은 왕이 대신에게, 얼마나 많은 대신이 비서에게 다스림을 받는지! 그럼 첫째는 누구일까? 내 생각에는, 다른 사람들을 내다보고, 그들의 힘과 정열을 자기 계획을 이루는 데 부릴 만한 힘이나 꾀를 가진 사람이야.
1월 20일
사랑하는 로테, 당신에게 편지를 써야겠어요. 지금 나는 거센 눈보라를 피해 들어온 초라한 시골 주막의 방에 있어요. 그 서글픈 동네 D에서, 낯선, 내 마음에 너무나 낯선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동안에는 한순간도, 단 한순간도 내 마음이 당신에게 편지를 쓰라고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오두막에서, 이 외로움 속에서, 이 갇힌 처지에서, 눈과 우박이 내 작은 창을 사납게 두드리는 지금, 맨 먼저 떠오른 사람이 당신이었어요.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당신의 모습이, 당신의 기억이 나를 덮쳤어요, 아, 로테! 그토록 거룩하게, 그토록 따뜻하게! 하느님! 다시 찾아온 첫 행복한 순간이에요.
사랑하는 로테, 정신없이 흩어지는 이 소용돌이 속에 있는 나를 당신이 본다면! 내 감각이 얼마나 메말라 가는지! 마음이 가득 차는 순간은 한 번도, 행복한 시간은 단 한 시간도 없어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나는 요지경 상자 앞에 서서 작은 사람들과 작은 말들이 내 앞에서 움직이는 걸 보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게 눈속임은 아닌가 자주 묻곤 해요. 나도 함께 놀아요. 아니, 꼭두각시처럼 놀림을 당해요. 그러다 가끔 옆 사람의 나무 손을 잡고는 몸서리치며 물러나요. 저녁에는 해돋이를 보자고 다짐하지만 침대에서 나오지 못하고, 낮에는 달빛을 즐기자고 마음먹지만 방에 틀어박혀 있어요. 왜 일어나고 왜 잠자리에 드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내 삶을 부풀게 하던 효모가 없어요. 깊은 밤에도 나를 깨어 있게 하던 그 설렘은 사라졌고, 아침이면 나를 잠에서 깨우던 그것도 가 버렸어요.
이곳에서 여자는 단 한 사람을 찾았어요. B 아가씨인데, 당신을 닮았어요, 사랑하는 로테. 누가 당신을 닮을 수 있다면 말이에요. "어머!" 당신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이 사람이 이제 달콤한 빈말을 다 하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에요. 얼마 전부터 나는 아주 상냥해졌어요. 달리 어쩔 수가 없으니까요. 재치도 많이 부리고, 여자들은 나만큼 섬세하게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은 없다고 해요(그리고 거짓말도요, 당신은 이렇게 덧붙이겠지요. 그게 없으면 안 되니까요, 알죠?). B 아가씨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어요. 그 아가씨는 영혼이 깊어요. 그 영혼이 파란 눈에서 가득 비쳐 나와요. 그 아가씨에게는 신분이 짐이에요. 마음의 바람을 하나도 채워 주지 못하니까요. 그 아가씨는 이 소란에서 벗어나기를 그리워하고, 우리는 티 없는 행복이 가득한 시골 풍경을 상상하며 몇 시간이고 보내요. 아! 그리고 당신 이야기를 하며! 그 아가씨는 얼마나 자주 당신을 칭송해야 하는지, 아니,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그래요. 당신 이야기를 듣는 걸 그렇게 좋아하고, 당신을 사랑해요.—아, 그 사랑스럽고 아늑한 작은 방에서 당신 발치에 앉아 있을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 귀여운 꼬마들이 내 둘레에서 서로 뒹굴고, 아이들이 너무 떠들어 당신을 성가시게 하면, 오싹한 옛날이야기로 아이들을 내 둘레에 조용히 모아 앉힐 수 있다면.
눈부시게 빛나는 눈 덮인 들판 위로 해가 멋지게 지고 있어요. 눈보라는 지나갔고, 나는—다시 내 새장에 갇혀야 해요.—안녕! 알베르트는 당신 곁에 있나요? 그리고 어떻게—? 하느님, 이런 걸 묻는 나를 용서하소서!
2월 8일
여드레째 지독한 날씨인데, 나한테는 오히려 고마워. 내가 여기 온 뒤로 하늘에 좋은 날이 떠도 누군가가 망쳐 놓거나 정떨어지게 만들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거든. 그런데 이렇게 비가 퍼붓고 눈보라가 치고 으슬으슬 춥다가 녹다가 하면, 하! 나는 생각해. 집 안이 바깥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겠지, 거꾸로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이게 낫다고. 아침에 해가 떠서 좋은 날을 약속하면, 나는 이렇게 외치지 않을 수가 없어. 저 사람들, 또 서로 빼앗을 하늘의 선물이 생겼구나! 저 사람들이 서로 빼앗지 않는 건 하나도 없어. 건강도, 좋은 이름도, 즐거움도, 쉼도! 그것도 대개는 어리석고 몰라서, 그리고 속이 좁아서, 들어 보면 더없이 좋은 뜻으로 그래. 가끔은 무릎을 꿇고 빌고 싶어. 그렇게 미친 듯이 제 오장육부를 할퀴지 말라고.
2월 17일
공사와 나는 더 오래 함께 버티지 못할 것 같아. 그 사람은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어. 일하는 방식이며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이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나는 반박하지 않을 수 없고 내 생각대로 내 방식대로 해 버릴 때가 많은데, 그게 그 사람 마음에 들 리가 없지. 그래서 얼마 전에 그 사람이 궁정에 나를 고발했고, 장관이 부드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꾸지람은 꾸지람인 꾸지람을 내렸어. 나는 사직을 청하려던 참이었는데 장관에게서 사사로운 편지를 받았어. 나는 그 편지 앞에 무릎을 꿇고 그 높고 고귀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우러렀어. 장관은 나의 지나친 예민함을 바로잡아 주면서, 일을 해내고 남에게 영향을 미치고 업무에서 내 뜻을 관철하겠다는 나의 지나친 생각들을 젊은이다운 좋은 기백으로 존중해 주었어. 그걸 뿌리 뽑으려 하지 않고, 다만 누그러뜨려서 그것이 제대로 쓰이고 힘 있게 작용할 수 있는 곳으로 이끌어 주려고 했어. 그래서 나는 여드레 동안 힘을 얻었고 마음이 하나로 모였어. 영혼의 평온과 자기 자신에 대한 기쁨은 멋진 거야. 친구야, 그 보석이 아름답고 귀한 만큼 깨지기 쉽지만 않다면 좋을 텐데.
2월 20일
하느님이 너희를 축복하시기를, 사랑하는 이들이여. 내게서 거두어 가시는 좋은 날들을 모두 너희에게 주시기를!
고마워, 알베르트. 나를 속여 줘서. 나는 너희 결혼식 날이 언제인지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어. 바로 그날 아주 엄숙하게 로테의 실루엣을 벽에서 떼어 다른 서류들 밑에 묻어 버리려고 마음먹었거든. 그런데 이제 너희는 부부가 되었고, 로테의 그림은 아직 여기 있어! 그래, 그럼 그대로 두자! 안 될 게 뭐 있어? 나도 너희 곁에 있다는 걸 알아. 너에게 해가 되지 않게 로테의 마음속에 있고, 그래, 그 안에 둘째 자리를 갖고 있어. 그 자리를 지키고 싶고, 지켜야 해. 아, 로테가 잊을 수 있다면 나는 미쳐 버릴 거야—알베르트, 그 생각 속에는 지옥이 있어. 알베르트, 잘 있어! 잘 있어요, 하늘의 천사여! 잘 있어요, 로테!
3월 15일
이곳에서 나를 쫓아낼 만한 언짢은 일을 겪었어. 이가 갈려! 제기랄! 돌이킬 수가 없어. 이게 다 너희 탓이야.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자리에 앉으라고 나를 몰아붙이고 떠밀고 들볶은 너희 말이야. 이제 나는 이 꼴이야! 너희도 이 꼴이고! 그리고 내 지나친 생각들이 모든 걸 망친다는 말을 네가 다시 하지 못하게, 친구야, 연대기 작가가 적듯 있는 그대로 깔끔하게 이야기해 줄게.
C 백작이 나를 아끼고 특별히 대해 주신다는 건 다들 아는 일이고, 너한테도 백 번은 말했지. 그런데 어제 나는 백작 댁에서 점심을 먹었어. 하필 저녁에 귀족 신사 숙녀들이 백작 댁에 모이는 날이었는데, 나는 그런 모임은 생각도 하지 않았고, 우리 같은 아랫사람들은 거기 끼지 못한다는 것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어. 좋아. 나는 백작과 식사를 하고, 식사가 끝나자 큰 홀을 이리저리 거닐며 백작과, 그리고 마침 들어온 B 대령과 이야기를 나눴어. 그러다 모임 시간이 다가왔어. 맹세하는데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 그때 지나치게 거룩하신 S 부인이 그 남편과, 납작한 가슴에 귀여운 코르셋을 조인, 잘 길러진 새끼 거위 같은 딸을 데리고 들어와서는, 지나가면서 늘 하듯 고귀하신 귀족다운 눈짓과 콧구멍을 해 보였어. 나는 그 족속이 진심으로 싫어서 막 물러가려고, 백작이 그 지긋지긋한 수다에서 벗어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 나의 B 아가씨가 들어왔어. 그 아가씨를 보면 늘 마음이 조금 열리기에 나는 그냥 남아서 그 아가씨 의자 뒤에 섰는데, 한참 뒤에야 그 아가씨가 평소보다 덜 스스럼없이, 어딘가 당황해하며 내게 말한다는 걸 알아챘어. 그게 마음에 걸렸어. 이 아가씨도 저 족속들과 다를 바 없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상해서 가려다가, 그래도 남았어. 그 아가씨를 감싸 주고 싶었고,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았고, 아직 한마디 좋은 말을 기대했고—뭐라고 해도 좋아. 그사이 모임에 사람들이 가득 찼어. 프란츠 1세 대관식 시절부터 입던 옷을 몽땅 걸친 F 남작, 이곳에서는 체면상 폰 R 씨라고 불리는 R 궁정 고문관과 귀먹은 그 부인 등등, 그리고 낡아 빠진 구식 옷의 구멍을 유행하는 헝겊으로 기운 형편없는 차림의 J도 빼놓으면 안 되지. 그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고, 나는 아는 사람 몇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다들 말수가 아주 적었어. 나는 생각했어—그러고는 나의 B 아가씨만 바라보았어. 홀 끝에서 여자들이 서로 귓속말을 하고, 그게 남자들에게 돌고, S 부인이 백작과 이야기하는 걸(이건 모두 나중에 B 아가씨가 이야기해 주었어) 나는 눈치채지 못했어. 마침내 백작이 내게 다가와 나를 창가로 데려갔어.—"자네도 알다시피," 백작이 말씀하셨어. "우리 사이의 묘한 사정이 있지 않나. 보아하니 사람들이 자네가 여기 있는 걸 언짢아하는 것 같네. 나는 결코—" "각하," 내가 말을 가로막았어. "천 번이라도 용서를 빕니다. 진작 그 생각을 했어야 했습니다. 이 앞뒤 맞지 않는 짓을 용서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까부터 물러가려던 참이었는데, 못된 수호신이 저를 붙잡아 두었나 봅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웃음 띤 얼굴로 덧붙였어.—백작은 모든 걸 말해 주는 마음을 담아 내 두 손을 꼭 잡으셨어. 나는 그 고귀한 모임에서 살그머니 빠져나와 이륜마차를 타고 M으로 갔어. 거기 언덕에서 해 지는 걸 보며 나의 호메로스에서, 오디세우스가 훌륭한 돼지치기에게 대접받는 멋진 노래를 읽었어. 거기까지는 다 좋았어.
저녁에 식사하러 돌아왔는데 식당에는 아직 사람이 몇 없었어. 그 사람들은 한쪽 구석에서 식탁보를 걷어 놓고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었어. 그때 정직한 아델린이 들어와 나를 보며 모자를 내려놓고는 내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어. "언짢은 일이 있었다며?"—"내가?" 내가 말했지.—"백작이 너를 모임에서 내보냈다던데."—"그딴 것들, 꺼지라고 해!" 내가 말했어. "나는 바깥 공기를 쐴 수 있어서 좋았어."—"다행이다." 그가 말했어. "네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다만 그게 벌써 온 데 퍼져서 속상해."—그제야 그 일이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어. 식사하러 와서 나를 쳐다보는 사람마다, 저 사람들이 그 일 때문에 너를 쳐다보는구나 싶었어. 피가 끓어올랐어.
그런데 오늘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나를 딱하게 여기고, 나를 시기하던 자들이 이제 의기양양해서 이렇게 말한다는 걸 들어. 보라고, 쥐꼬리만 한 머리를 믿고 우쭐해서 모든 관계를 넘어설 수 있다고 믿던 오만한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그 밖에 이런저런 개 짖는 소리들—그러면 칼로 내 가슴을 찌르고 싶어져. 자립에 대해서야 뭐라고 하든, 악당들이 자기보다 우위에 서서 자기를 두고 수군대는 걸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보고 싶어. 그들의 수다가 빈말이라면야, 아, 그냥 내버려 두기 쉽지.
3월 16일
모든 게 나를 몰아세워. 오늘 가로수 길에서 B 아가씨를 만났는데, 말을 걸지 않을 수 없었어. 사람들에게서 조금 떨어지자마자 나는 얼마 전 그 아가씨의 태도에 마음이 상했다는 걸 내비쳤어.—"아, 베르테르," 아가씨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어. "제 마음을 아시면서 제가 당황한 걸 그렇게 받아들이셨어요? 제가 홀에 들어선 순간부터 당신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는데요! 저는 모든 걸 내다보았어요. 백 번이나 당신에게 말하려다 말았어요. S 부인이며 T 부인이며 남편들과 함께 당신과 한자리에 있느니 차라리 자리를 뜨리라는 걸 알았어요. 백작이 그 사람들과 사이를 망칠 수 없다는 것도 알았고요—그런데 이제 이 소동이에요!"—"뭐라고요, 아가씨?" 나는 놀란 마음을 감추며 말했어. 그저께 아델린이 해 준 말이 모두 그 순간 끓는 물처럼 내 핏줄을 타고 흘렀거든.—"벌써 제가 얼마나 시달렸는지 몰라요!" 그 사랑스러운 사람이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어.—나는 더는 나를 다스릴 수 없어서 그 아가씨 발치에 엎드릴 뻔했어.—"말씀해 보세요!" 내가 외쳤어.—눈물이 그 아가씨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어. 나는 넋이 나갔어. 아가씨는 눈물을 감추려 하지 않고 닦았어.—"제 이모를 아시죠." 아가씨가 말을 꺼냈어. "이모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아, 이모가 그걸 어떤 눈으로 보았는지! 베르테르, 저는 어젯밤 시달렸고 오늘 아침에는 당신과 어울리는 일로 설교를 들었어요. 이모가 당신을 깎아내리고 낮추는 걸 들어야 했는데, 저는 당신 편을 반밖에 들 수 없었어요. 들어서는 안 됐으니까요." 그 아가씨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칼처럼 내 가슴을 꿰뚫었어. 그 아가씨는 그 모든 걸 내게 말하지 않는 게 얼마나 자비로운 일이었을지 느끼지 못했어. 그러고는 앞으로 무슨 말들이 더 떠돌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그걸 두고 의기양양해할지까지 덧붙였어.
내가 오만하고 남을 업신여긴다고 오래전부터 나를 나무라던 그 사람들이, 이제 그 벌을 받았다고 얼마나 고소해하고 기뻐할지. 이 모든 걸, 빌헬름, 그 아가씨에게서, 더없이 참된 동정이 담긴 목소리로 들어야 했어—나는 무너졌고 지금도 속이 끓어. 누가 감히 이 일로 나를 나무란다면 칼로 그놈의 몸을 꿰뚫어 버리고 싶어. 피를 보면 나아질 것 같아. 아, 나는 이 짓눌린 가슴에 숨통을 틔워 주려고 백 번이나 칼을 쥐었어. 어떤 고귀한 품종의 말은 무섭게 달아오르고 쫓기면 숨을 쉬려고 본능적으로 스스로 핏줄을 물어뜯는다고 해. 나도 그럴 때가 많아. 영원한 자유를 가져다줄 핏줄 하나를 열고 싶어.
3월 24일
궁정에 사직을 청했어. 받아들여지리라 믿어. 먼저 너희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걸 용서해 줘. 나는 어떻게든 떠나야 했고, 나를 붙잡으려고 너희가 할 말은 다 알고 있으니—어머니께는 이 일을 잘 달래서 전해 줘. 나 자신도 어쩔 수가 없고, 어머니도 내가 도와드리지 못하는 걸 받아들이셔야지. 물론 어머니는 마음이 아프시겠지. 아들이 막 추밀 고문관이며 공사 자리를 향해 순조롭게 달려 나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멈춰 서서 말머리를 돌려 마구간으로 돌아가는 걸 보시니! 이제 너희 좋을 대로 생각하고, 내가 남을 수 있었고 남아야 했던 경우들을 이리저리 따져 봐. 아무튼 나는 떠나.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려 주자면, 이곳에 ** 후작이 계신데 나와 어울리는 걸 무척 좋아하셔. 내 뜻을 들으시고는 자기 영지로 함께 가서 아름다운 봄을 거기서 지내자고 청하셨어. 나를 아무 간섭 없이 내버려 두겠다고 약속하셨고,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는 서로 마음이 통하니, 운에 맡기고 함께 가 보려고 해.
덧붙여 알림
4월 19일
편지 두 통 고마워. 답장을 안 한 건 궁정에서 사직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이 편지를 묵혀 두었기 때문이야. 어머니가 장관에게 부탁해서 내 계획을 어렵게 만드실까 봐 걱정했거든. 그런데 이제 끝났어. 사직이 받아들여졌어. 그 사람들이 얼마나 마지못해 나를 놓아주었는지, 장관이 내게 뭐라고 썼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아—너희가 또 한탄을 쏟아 낼 테니까. 왕세자는 떠나는 내게 두카트 금화 스물다섯 닢을 보내 주셨는데, 함께 보낸 한마디에 나는 눈물이 날 만큼 감동했어. 그러니 얼마 전에 썼던 그 돈은 어머니께 받지 않아도 돼.
5월 5일
내일 이곳을 떠나. 내가 태어난 곳이 가는 길에서 6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니 그곳도 다시 보고, 행복하게 꿈꾸던 옛날을 떠올려 보려고 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그 사랑스럽고 정다운 곳을 떠나 견딜 수 없는 도시에 틀어박히려고 나를 데리고 마차로 나왔던 바로 그 성문으로 들어가 보려고. 잘 있어, 빌헬름. 내 여정 소식을 들려줄게.
5월 9일
순례자다운 경건함을 다해 고향 순례를 마쳤어. 뜻밖의 감정들이 나를 여러 번 사로잡았어. 읍내에서 S 쪽으로 15분쯤 떨어진 커다란 보리수 앞에서 마차를 세우게 하고 내려서, 마부에게는 먼저 가라고 했어. 걸어서 추억 하나하나를 새롭고 생생하게,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맛보고 싶었거든. 나는 어릴 적 산책의 목표이자 끝이던 그 보리수 아래 섰어.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때 나는 행복하게 아무것도 모른 채, 알지 못하는 세상으로 나가기를 그리워했어. 거기서 내 마음을 위한 그토록 많은 양식과 그토록 많은 즐거움을 얻어, 애쓰고 그리워하는 내 가슴을 채우고 만족시키기를 바랐지. 이제 나는 넓은 세상에서 돌아왔어—아, 친구야, 얼마나 많은 빗나간 희망과 얼마나 많은 무너진 계획을 안고서!—내 앞에 산들이 놓여 있었어. 천 번이나 내 소원의 대상이던 산들이야. 나는 여기 몇 시간이고 앉아서 그 너머를 그리워하며, 내 눈에 그토록 다정하게 어스름히 보이던 숲과 골짜기 속에 온 영혼으로 빠져들곤 했어. 그러다 정해진 시간에 돌아가야 할 때면 그 사랑스러운 자리를 얼마나 마지못해 떠났던지!—읍내에 가까워지자 낯익은 옛 정원 정자들에 하나하나 인사했어. 새 정자들은 보기 싫었고, 그 밖에 바뀐 것들도 다 그랬어. 성문으로 들어서자 나는 곧바로 온전히 나 자신을 다시 찾았어. 친구야, 자세히 늘어놓고 싶지는 않아. 내게는 그토록 매혹적이었지만 이야기로 하면 그만큼 단조로울 테니까. 나는 장터에, 우리 옛집 바로 옆에 묵기로 했어. 가는 길에 보니 착한 할머니가 우리 어린것들을 우리에 가두듯 모아 놓고 가르치던 교실이 잡화점이 되어 있더라. 그 구멍 같은 곳에서 견뎌야 했던 불안과 눈물과 멍한 마음과 가슴 졸임이 기억나.—한 걸음 한 걸음이 다 의미 깊었어. 성지의 순례자도 이렇게 많은 신앙의 추억이 깃든 자리를 만나지는 못할 테고, 그 영혼도 이렇게 거룩한 감동으로 가득하지는 않을 거야.—천 가지 가운데 하나만 더 이야기할게. 나는 강을 따라 어느 농가까지 내려갔어. 예전에 늘 다니던 길이야. 우리 사내아이들이 납작한 돌로 물수제비를 누가 가장 많이 뜨나 겨루던 자리들도 있었어. 이따금 서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얼마나 신기한 예감으로 그 물을 좇았는지, 그 물이 흘러가는 고장들을 얼마나 모험처럼 상상했는지, 그러다 금세 내 상상력의 한계에 부딪혔는지 생생하게 기억나. 그래도 그 물은 더 가야 했어, 더 멀리, 마침내 나는 보이지 않는 먼 곳을 바라보는 데 완전히 빠져 버렸지.—봐, 친구야, 그 멋진 옛 조상들은 그렇게 좁은 테두리 안에서 그렇게 행복했어! 그 감정, 그 시가 그토록 어린아이 같았어! 오디세우스가 끝없는 바다와 끝없는 땅을 이야기할 때, 그건 그토록 참되고, 인간적이고, 절실하고, 좁고, 신비로워. 이제 나도 학교 다니는 아이들 누구나처럼 땅이 둥글다고 따라 말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게 무슨 소용이야? 사람에게는 그 위에서 즐길 흙 몇 덩이면 충분하고, 그 아래에서 쉴 흙은 더 적어도 돼. 이제 나는 이곳, 후작의 사냥 성에 와 있어. 후작과 지내기는 아직 아주 괜찮아. 진실하고 소박한 분이야. 그 둘레에는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 악당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정직한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아. 가끔은 정직해 보이는데도 믿을 수가 없어. 또 하나 아쉬운 건, 후작이 자기가 듣거나 읽기만 한 것들을, 그것도 남이 보여 준 관점 그대로 자주 이야기한다는 거야. 그리고 내 가장 큰 자랑이자, 모든 힘과 모든 기쁨과 모든 고통의 유일한 샘인 이 마음보다 내 지성과 재능을 더 높이 사. 아, 내가 아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어—내 마음은 나만 가졌어.
5월 25일
일이 이뤄지기 전에는 너희에게 말하지 않으려던 생각이 하나 있었는데, 이제 아무것도 안 됐으니 말해도 마찬가지야. 나는 전쟁에 나가려고 했어. 그게 오랫동안 마음에 걸려 있었어. ***국에서 장군으로 있는 후작을 따라 이곳에 온 것도 주로 그 때문이야. 산책하다가 후작께 내 뜻을 털어놓았는데, 후작은 말리셨어. 그분의 이유를 귀담아듣지 않으려 했다면 그건 변덕이라기보다 정열이었을 거야.
6월 11일
네가 뭐라고 하든 나는 더 머물 수가 없어. 여기서 내가 뭘 하겠어? 시간이 지루해. 후작은 할 수 있는 한 나를 잘 대해 주시지만, 그래도 나는 내 자리에 있는 것 같지가 않아. 우리는 따지고 보면 서로 통하는 게 없어. 후작은 분별 있는 분이지만 아주 평범한 분별이야. 그분과 어울리는 건 잘 쓴 책 한 권을 읽는 것보다 더 재미있지 않아. 여드레만 더 있다가 다시 정처 없이 떠돌 거야. 여기서 내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좋은 건 그림이야. 후작은 예술을 느낄 줄 아시고, 지긋지긋한 학문 티와 흔해 빠진 용어에 갇혀 있지만 않으면 더 깊이 느끼실 거야. 내가 따뜻한 상상력으로 그분을 자연과 예술 속으로 이끌어 가는데, 그분이 틀에 박힌 전문 용어를 들고 비틀대며 끼어들어서는 그걸로 아주 잘했다고 여기실 때면 가끔 이가 갈려.
6월 16일
그래, 나는 이 땅의 나그네, 순례자일 뿐이야! 그럼 너희는 그 이상이야?
6월 16일
어디로 가느냐고? 너한테만 털어놓을게. 어차피 두 주는 더 여기 있어야 해. 그다음엔 ***국의 광산을 둘러보고 싶다고 스스로에게 둘러댔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로테 곁에 다시 가까이 가고 싶은 것뿐이야. 그게 다야. 나는 내 마음을 비웃으면서도—하자는 대로 해 줘.
7월 29일
아니, 괜찮아! 다 괜찮아!—내가—로테의 남편이라면! 아, 나를 지으신 하느님, 당신이 내게 이 지복을 마련해 주셨다면 내 온 삶이 끝없는 기도가 되었을 텐데. 따지지 않겠어요. 이 눈물을 용서하시고, 이 헛된 바람을 용서하소서!—로테가 내 아내라면! 해 아래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을 내 품에 안았다면—빌헬름, 알베르트가 로테의 가는 허리를 감쌀 때면 온몸에 소름이 끼쳐.
그리고, 이 말을 해도 될까? 안 될 게 뭐야, 빌헬름? 로테는 그 사람보다 나와 함께였다면 더 행복했을 거야! 아, 그 사람은 이 마음의 바람을 다 채워 줄 사람이 아니야. 어떤 감수성의 모자람, 어떤 모자람이—네 마음대로 받아들여. 그 사람의 마음은 함께 뛰지 않아—아!—로테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로 만나는 사랑스러운 책의 한 대목에서. 다른 수많은 일에서도, 다른 사람의 어떤 행동에 대해 우리 감정이 소리 내어 터져 나올 때면. 빌헬름!—물론 그 사람은 온 영혼으로 로테를 사랑해. 그런 사랑이라면 무엇을 받아도 마땅하지!
—견딜 수 없는 인간 하나가 끼어드는 바람에 끊겼어. 눈물이 말랐어. 정신이 흐트러졌어. 잘 있어, 친구야!
8월 4일
이런 일을 겪는 게 나만은 아니야. 모든 사람이 희망에 속고 기대에 배신당해. 나는 보리수 아래의 그 착한 여자를 찾아갔어. 큰아이가 나를 맞으러 달려왔고, 그 아이의 반가운 외침에 엄마가 나왔는데 몹시 풀이 죽어 보였어. 그 여자의 첫마디는 이랬어. "나리, 아, 우리 한스가 죽었어요!"—막내아들 말이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그리고 남편은," 그 여자가 말했어. "스위스에서 돌아왔는데 아무것도 못 가져왔어요. 착한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구걸하며 돌아와야 했을 거예요. 오는 길에 열병까지 얻었어요."—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꼬마에게 무언가를 쥐여 주었어. 그 여자가 사과를 몇 개 받아 달라기에 받고는, 서글픈 기억이 서린 그곳을 떠났어.
8월 21일
손바닥 뒤집듯 내 마음이 바뀌어. 가끔은 삶의 즐거운 빛이 다시 어렴풋이 비쳐 오려 해. 아, 한순간뿐이지!—그렇게 꿈속에 빠져 있으면 이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 알베르트가 죽는다면? 그러면 너는! 그래, 로테는—그러면 나는 그 허깨비를 좇아가다가, 그것이 나를 낭떠러지 앞으로 데려가면 몸서리치며 물러서.
로테를 무도회에 데려가려고 처음 마차를 타고 갔던 길로 성문을 나서면, 그때와 얼마나 다른지! 모든 게, 모든 게 지나가 버렸어! 예전 세상의 눈짓 하나, 그때 내 감정의 맥박 하나 남아 있지 않아. 나는 꼭, 한창때의 영주로서 성을 짓고 온갖 영화로 꾸며서 죽을 때 사랑하는 아들에게 희망을 걸고 물려주었는데, 다 타 버리고 무너진 그 성으로 돌아온 유령 같은 기분이야.
9월 3일
내가 이토록 오롯이, 이토록 절실히, 이토록 가득 로테를 사랑하는데, 로테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고 알지도 못하고 갖고 있지도 않은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로테를 사랑할 수 있는지, 사랑해도 되는지 가끔 이해가 안 돼!
9월 4일
그래, 그렇구나. 자연이 가을로 기울듯 내 안에서도 내 둘레에서도 가을이 돼. 내 잎들은 누렇게 물들고, 이웃 나무들의 잎은 벌써 떨어졌어. 내가 이곳에 오자마자 어떤 시골 젊은이 이야기를 쓴 적 있지? 이번에 발하임에서 다시 그 사람 소식을 물었더니, 일하던 집에서 쫓겨났는데 아무도 그 뒤 일은 모르려고 한대. 어제 다른 마을로 가는 길에 우연히 그 사람을 만나서 말을 걸었더니, 그가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그 이야기에 나는 두 배, 세 배로 마음이 움직였어. 내가 다시 들려주면 너도 쉽게 이해할 거야.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나를 불안하게 하고 아프게 하는 걸 왜 나 혼자 간직하지 못할까? 왜 너까지 슬프게 할까? 왜 늘 너에게 나를 딱하게 여기고 나무랄 거리를 줄까? 그래, 그것도 내 운명의 일부겠지!
그 사람은 처음에는 조용한 슬픔 속에 어딘가 조금 머뭇거리는 듯한 태도로 내 물음에 대답했어. 그러다 금세 우리가 한꺼번에 서로를 다시 알아본 것처럼 더 터놓고 자기 잘못을 털어놓고 자기 불행을 하소연했어. 친구야,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네 앞에 내놓을 수 있다면! 그는 털어놓았어. 아니, 다시 떠올리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기라도 한 듯 이야기했어. 그 집 안주인을 향한 정열이 날마다 커져서, 마침내 자기가 무얼 하는지 몰랐다고, 그의 말대로라면 머리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고.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못했고, 목이 메었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고, 시킨 일은 잊어버렸고, 못된 귀신에게 쫓기는 것 같았대. 그러다 어느 날 그 여자가 위층 방에 있다는 걸 알고 따라갔대. 아니, 끌려가듯 따라갔대. 그 여자가 자기 애원을 들어주지 않자 억지로 차지하려 했대. 자기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그 여자를 향한 자기 뜻은 언제나 진실했다고, 그 여자가 자기와 결혼해서 함께 평생을 살아 주기를 무엇보다 간절히 바랐다고 하느님을 걸고 맹세했어. 한동안 이야기하다가 그는 머뭇거리기 시작했어. 아직 할 말이 있는데 차마 꺼내지 못하는 사람처럼. 마침내 그는 쭈뼛거리며, 그 여자가 자기에게 어떤 작은 친밀함을 허락했는지, 얼마나 가까이 다가오게 해 주었는지도 털어놓았어. 그는 두세 번 말을 끊고는, 그 여자를 나쁘게 만들려고, 그의 말대로라면 '흠잡으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고, 예전처럼 그 여자를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이런 말은 입 밖에 낸 적이 없다고, 자기가 아주 비뚤어지고 정신 나간 사람은 아니라는 걸 내게 믿게 하려고 하는 말일 뿐이라고 거듭 힘주어 말했어.
—그리고 친구야, 여기서 나는 영원히 부를 내 옛 노래를 다시 시작해. 그가 내 앞에 서 있던 모습, 아직도 내 앞에 서 있는 그 모습을 네게 그려 보일 수 있다면! 내가 그의 운명에 얼마나 마음을 쏟는지, 쏟을 수밖에 없는지 네가 느낄 수 있게 모든 걸 제대로 말할 수 있다면! 하지만 됐어. 너는 내 운명도 알고 나도 아니까, 무엇이 나를 모든 불행한 사람에게, 특히 이 불행한 사람에게 끌어당기는지 너무나 잘 알 거야.
이 편지를 다시 읽어 보니 이야기의 끝을 쓰는 걸 잊었네.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결말이지만. 그 여자는 그를 뿌리쳤어. 그 여자의 오빠가 들이닥쳤는데, 그 오빠는 오래전부터 그를 미워했고 집에서 내보내고 싶어 했어. 누이가 다시 결혼하면, 지금은 누이에게 자식이 없어서 제 아이들에게 돌아오리라 기대하는 유산을 놓칠까 봐 두려웠던 거야. 그 오빠는 당장 그를 집에서 내쫓고 이 일을 두고 어찌나 소란을 피웠는지, 그 여자가 원했더라도 그를 다시 받아들일 수 없었을 정도였대. 이제 그 여자는 다른 일꾼을 들였는데, 그 사람 때문에도 오빠와 사이가 틀어졌다는 말이 있고, 그 여자가 그 사람과 결혼할 거라고 다들 장담한대. 그런데 그는 그 꼴은 결코 보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대.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하나도 과장이 없고 하나도 꾸민 게 없어.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해. 나는 약하게, 너무 약하게 이야기했고, 우리가 늘 쓰는 도덕적인 말로 옮기면서 거칠게 만들어 버렸어.
그러니 이런 사랑, 이런 진실함, 이런 정열은 시인이 지어낸 게 아니야. 그건 살아 있어. 우리가 배우지 못했다고, 거칠다고 부르는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살아 있어. 우리 교양 있다는 사람들은—아무것도 아니도록 교양이 비틀려 버렸어! 부탁이야, 이 이야기를 경건하게 읽어 줘. 나는 이걸 쓰면서 오늘 차분해. 내 글씨를 보면 알겠지만 평소처럼 휘갈기고 끄적이지 않았어. 읽어 줘, 사랑하는 친구야. 그리고 이게 네 친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걸 생각해 줘. 그래,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런데 나는 나를 견주는 것조차 차마 하기 힘든 그 가엾은 불행한 사람의 절반만큼도 용감하지 않고, 절반만큼도 결단력이 없어.
9월 5일
로테가 볼일로 시골에 가 있는 남편에게 쪽지를 썼어. 이렇게 시작했지. "가장 소중한, 가장 사랑하는 당신, 되도록 빨리 와 줘. 천 가지 기쁨으로 기다리고 있어."—들어온 친구 하나가, 그 사람이 사정이 있어 그렇게 빨리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소식을 전했어. 쪽지는 그대로 놓여 있다가 저녁에 내 손에 들어왔어. 나는 그걸 읽고 미소 지었어. 로테가 왜 웃느냐고 물었어.—"상상력이란 얼마나 거룩한 선물인지," 내가 외쳤어. "잠깐이지만 이게 나한테 쓴 쪽지인 것처럼 꿈꿀 수 있었어요."—로테는 말을 끊었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고, 나는 입을 다물었어.
9월 6일
로테와 처음 춤을 추던 날 입었던 수수한 파란 연미복을 벗기로 마음먹기까지 무척 힘들었어. 하지만 결국 아주 볼품없어지고 말았거든. 그래서 깃이며 소맷부리며 예전 것과 똑같이 하나 지어 입었고, 노란 조끼와 바지도 다시 똑같이 맞췄어. 그래도 완전히 예전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아. 모르겠어—시간이 지나면 이 옷도 정이 들겠지.
9월 12일
로테가 알베르트를 데리러 며칠 집을 비웠어. 오늘 내가 로테의 방에 들어섰더니 로테가 나를 맞으러 나왔고, 나는 천 가지 기쁨으로 그 손에 입을 맞추었어.
카나리아 한 마리가 거울에서 날아와 로테의 어깨에 앉았어.—"새 친구예요." 로테가 새를 손으로 꾀어 앉히며 말했어. "꼬마들 주려고 데려왔어요. 정말 귀엽지 않아요! 보세요! 빵을 주면 날개를 파닥이며 아주 얌전하게 쪼아 먹어요. 저한테 뽀뽀도 해요, 보세요!"
로테가 그 작은 새에게 입을 내밀자, 새는 자기가 누리는 지복을 느낄 수라도 있다는 듯 그 달콤한 입술에 아주 사랑스럽게 부리를 갖다 댔어.
"당신한테도 뽀뽀해 줄 거예요." 로테가 새를 건네며 말했어.—그 작은 부리가 로테의 입에서 내 입으로 길을 옮겼고, 쪼는 듯한 그 닿음은 숨결 같았어. 사랑스러운 즐거움의 예감 같았어.
"이 녀석의 입맞춤은," 내가 말했어. "아주 욕심이 없지는 않네요. 먹을 걸 찾다가 빈 애무에 만족하지 못하고 돌아가요."
"제 입에서 받아먹기도 해요." 로테가 말했어.—로테는 입술로 빵 부스러기 몇 개를 새에게 건넸어. 그 입술에는 순진하게 함께 나누는 사랑의 기쁨이 한껏 황홀하게 웃고 있었어.
나는 얼굴을 돌렸어. 로테는 그러면 안 돼. 천상의 순진함과 지복이 담긴 그런 모습으로 내 상상력을 자극하면 안 되고, 삶의 무심함이 가끔 잠재워 주는 내 마음을 그 잠에서 깨우면 안 돼!—그런데 왜 안 된다는 거지?—로테는 나를 그렇게 믿는데! 내가 로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는데!
9월 15일
미칠 것 같아, 빌헬름. 이 땅에서 아직 가치 있는 얼마 안 되는 것들에 대해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는 사람들이 있다니. 너도 그 호두나무들 알지. St.의 정직한 목사님 댁에서 내가 로테와 함께 그 아래 앉았던 멋진 호두나무들 말이야. 하느님이 아시듯, 언제나 나를 더없는 영혼의 기쁨으로 채워 주던 그 나무들! 그 나무들이 목사관 마당을 얼마나 아늑하고 서늘하게 만들어 주었는지! 가지들은 또 얼마나 멋졌는지! 그리고 오래전 그 나무들을 심은 정직한 성직자들에게까지 이어지는 추억. 학교 선생님은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다는 그중 한 분의 이름을 우리에게 자주 말해 주었어. 아주 훌륭한 분이었다던데, 그분에 대한 기억은 그 나무들 아래서 언제나 거룩했어. 어제 그 나무들이 베어졌다는 이야기를 할 때 학교 선생님 눈에 눈물이 고였어—베어졌다니! 미칠 것 같아. 그 나무에 처음 도끼질을 한 개 같은 놈을 죽여 버리고 싶어. 내 뜰에 그런 나무가 두어 그루 서 있다가 그중 하나가 늙어서 죽기만 해도 슬픔에 잠길 내가, 이걸 지켜봐야 하다니. 친구야, 그래도 한 가지는 있어.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대단한지! 온 마을이 투덜대고 있어. 나는 목사 부인이 버터와 달걀과 그 밖의 신뢰에서, 자기가 마을에 얼마나 큰 상처를 냈는지 뼈저리게 느끼기를 바라. 바로 그 여자 짓이거든. 새 목사의 아내 말이야(우리 늙은 목사님도 돌아가셨어). 깡마르고 병약한 사람인데, 세상일에 마음을 쓰지 않을 만한 까닭이 충분해. 아무도 그 여자에게 마음을 쓰지 않으니까. 학식 있는 척하는 바보 여자야. 성경 정경 연구에 끼어들고, 유행하는 도덕적이고 비판적인 기독교 개혁에 열심이고, 라바터의 열광에는 어깨를 으쓱하고, 건강은 완전히 망가져서 하느님의 이 땅 위에서 아무 기쁨이 없어. 그런 인간이니까 내 호두나무를 베어 버릴 수 있었던 거야. 봐, 나는 정신을 못 차리겠어! 생각해 봐. 떨어지는 나뭇잎이 마당을 더럽히고 눅눅하게 만들고, 나무가 햇빛을 가리고, 호두가 익으면 아이들이 돌을 던져 따는데, 그게 신경을 건드리고, 케니콧과 젬러와 미하엘리스를 저울질하는 그 깊은 사색을 방해한다는 거야. 마을 사람들, 특히 노인들이 그렇게 언짢아하는 걸 보고 내가 말했어. "왜 그냥 두고 보셨어요?"—"이 고장에서는 이장이 하자면," 그 사람들이 말했어. "어쩌겠습니까?"—그래도 한 가지는 고소하게 됐어. 이장과 목사는, 목사도 아내의 변덕 덕을 좀 보고 싶었던 거야. 그렇지 않아도 그 변덕이 국을 기름지게 해 주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둘이서 나무를 나눠 가지려 했는데, 재무청이 그걸 알고 "이리 내놔!" 했대. 나무가 서 있던 목사관 땅에 대해 오래전부터 권리를 주장하던 터라, 나무를 가장 비싸게 부르는 사람에게 팔아 버렸어. 나무들은 쓰러져 있어! 아, 내가 영주라면! 나는 그 목사 부인과 이장과 재무청을—영주라니!—그래, 내가 영주라면 내 나라의 나무 따위에 무슨 신경을 쓰겠어!
10월 10일
로테의 까만 눈을 보기만 해도 나는 벌써 좋아져! 그런데 봐, 나를 언짢게 하는 건 알베르트가 그가—바랐던 만큼—내가—믿었던 만큼—만약—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나는 말줄임표를 즐겨 쓰지 않는데, 여기서는 달리 나타낼 수가 없어—내 생각엔 이 정도면 충분히 분명해.
10월 10일
오시안이 내 마음속에서 호메로스를 밀어냈어. 그 위대한 시인이 나를 얼마나 놀라운 세상으로 이끄는지! 폭풍이 휘몰아치는 황야를 떠도는 것. 그 바람은 피어오르는 안개 속에서, 어스름한 달빛 아래 조상들의 혼령을 이끌고 가지. 산에서 울리는 계곡물의 노호 속에서, 동굴에 깃든 혼령들의 반쯤 바람에 흩어진 신음을 듣는 것. 그리고 고귀하게 쓰러진 연인의 무덤, 이끼 덮이고 풀 자란 돌 네 개 둘레에서 죽도록 울부짖는 아가씨의 통곡을 듣는 것. 그러다 그를 만나게 돼. 넓은 황야에서 조상들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다가, 아, 그들의 묘비를 찾아내고는, 굽이치는 바다 속으로 숨어드는 사랑스러운 저녁별을 울며 바라보는 백발의 떠돌이 시인을. 그러면 영웅의 영혼 속에 지난 시절이 되살아나지. 다정한 별빛이 용사들의 위험을 비춰 주고, 달이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그들의 화관 두른 배를 비추던 시절이. 그의 이마에서 깊은 슬픔을 읽을 때, 버림받은 마지막 위대한 자가 기진한 채 무덤 쪽으로 비틀거리며 가는 걸 볼 때, 그가 세상을 떠난 이들의 힘없는 그림자 곁에서 늘 새로운, 아프게 타오르는 기쁨을 빨아들이며 차가운 땅과 바람에 흔들리는 키 큰 풀을 내려다보고 이렇게 외칠 때. "나그네가 오리라, 아름답던 시절의 나를 알던 이가 와서 물으리라. '노래하던 이는 어디 있는가, 핑갈의 훌륭한 아들은?' 그의 발걸음은 내 무덤 위를 지나가고, 그는 이 땅 위에서 나를 헛되이 찾으리라."—아, 친구야! 나는 고귀한 무기지기처럼 칼을 뽑아, 서서히 꺼져 가는 삶의 찌르는 고통에서 내 주군을 단번에 풀어 드리고, 자유로워진 반신(半神)의 뒤를 따라 내 영혼을 보내고 싶어.
10월 19일
아, 이 빈자리! 내 가슴속에서 느끼는 이 끔찍한 빈자리!—나는 자주 생각해. 로테를 단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 이 가슴에 안을 수 있다면 이 빈자리가 온통 채워질 거라고.
10월 19일
그래, 친구야, 나는 점점 더 확실해져. 한 존재가 있고 없고는 별것 아니라는 걸, 정말 별것 아니라는 걸. 로테에게 친구가 찾아왔고, 나는 책을 가지러 옆방으로 갔는데 읽을 수가 없어서 펜을 들고 글을 썼어. 둘이서 조용히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어. 하찮은 이야기, 읍내 소식이었지. 누구는 결혼한다더라, 누구는 아프다더라, 아주 많이 아프다더라.—"마른기침을 하고, 얼굴에 뼈가 다 드러나고, 기절도 해. 그 사람 목숨에 동전 한 닢도 못 걸겠어." 한 사람이 말했어.—"아무개 씨도 그렇게 안 좋대요." 로테가 말했어.—"그 사람은 벌써 몸이 부었대." 다른 사람이 말했어.—그러자 생생한 내 상상력이 나를 그 가엾은 사람들의 침대 곁으로 데려갔어. 그 사람들이 얼마나 마지못해 삶에 등을 돌리는지, 어떻게—빌헬름! 그런데 내 여자들은 그 이야기를, 낯선 사람이 죽는다는 이야기를 하듯 그렇게 하고 있었어.—그리고 내가 둘러보며 그 방을 보면, 내 둘레의 로테의 옷가지와 알베르트의 서류와 이제 나와 그토록 친해진 이 가구들, 이 잉크병까지 보면서 생각해. 봐, 너는 이제 이 집에서 무엇이냐! 모든 것 중의 모든 것이지. 네 친구들은 너를 소중히 여겨! 너는 자주 그들을 기쁘게 하고, 네 마음은 그들 없이는 살 수 없을 것만 같아. 그런데—네가 이제 떠난다면, 이 테두리에서 떠나간다면? 그들은, 그들은 얼마나 오래 네가 없어져 그들의 운명에 생긴 빈자리를 느낄까? 얼마나 오래?—아, 사람이란 얼마나 덧없는지. 자기 존재를 참으로 확신할 수 있는 곳, 자기가 있다는 것을 유일하게 참되게 새길 수 있는 곳, 사랑하는 이들의 기억과 영혼 속에서조차 꺼져 사라져야 하다니. 그것도 그토록 빨리!
10월 27일
사람이 서로에게 이토록 아무것도 될 수 없다니, 가슴을 찢고 머리를 부수고 싶을 때가 많아. 아, 내가 가져가지 않는 사랑과 기쁨과 따뜻함과 황홀함을 남이 내게 주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내가 지복으로 가득한 온 마음을 다 바쳐도, 차갑고 힘없이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을 거야.
나는 가진 게 많은데, 로테를 향한 감정이 모든 걸 삼켜 버려. 나는 가진 게 많은데, 로테가 없으면 모든 게 무(無)가 돼.
10월 27일 저녁
로테의 목에 매달리려던 순간이 벌써 백 번은 넘었을 거야! 그토록 많은 사랑스러움이 눈앞에서 오가는 걸 보면서 손을 뻗어서는 안 된다는 게 어떤지 위대하신 하느님은 아시겠지. 손을 뻗는 건 사람의 가장 자연스러운 충동인데. 아이들은 마음에 드는 건 무엇이든 손을 뻗잖아?—그런데 나는?
10월 30일
하느님은 아세요! 나는 다시는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그래, 때로는 그렇게 되리라 기대하며 잠자리에 드는 일이 많아.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면 해가 또 보이고, 나는 비참해. 아, 내가 변덕쟁이라서 날씨 탓이나 남 탓이나 틀어진 일 탓을 할 수만 있다면, 견딜 수 없는 불만의 짐이 절반만 내게 얹힐 텐데. 아, 슬프다! 모든 잘못이 내게 있다는 걸 나는 너무나 뚜렷이 느껴—잘못이 아니야! 예전에 모든 지복의 샘이 내 안에 있었듯, 이제 모든 비참함의 샘이 내 안에 숨어 있다는 것, 그것뿐이야. 나는 예전에 가득한 감정 속을 떠다니던, 걸음마다 낙원이 따라오던, 온 세상을 사랑으로 끌어안을 마음을 지녔던 바로 그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이 마음은 이제 죽었어. 거기서는 더 이상 황홀함이 흘러나오지 않고, 내 눈은 메말랐고, 생기를 주는 눈물로 적셔지지 못한 내 감각은 불안하게 이마를 찡그려. 나는 많이 괴로워. 내 삶의 유일한 기쁨이던 것, 내 둘레에 세상들을 지어내던 그 거룩하고 생기를 불어넣는 힘을 잃었거든. 그 힘은 사라졌어!—창밖으로 먼 언덕을 바라보면, 아침 해가 그 위로 안개를 뚫고 조용한 풀밭을 비추고, 잔잔한 강이 잎 떨어진 버드나무 사이로 내 쪽으로 구불구불 흘러오는데—아! 그 멋진 자연이 니스 칠한 그림처럼 굳어서 내 앞에 서 있고, 그 모든 기쁨도 내 가슴에서 머리로 지복 한 방울을 퍼 올리지 못하고, 나라는 녀석은 하느님 앞에 말라 버린 샘처럼, 금 간 두레박처럼 서 있어. 나는 몇 번이나 땅에 엎드려 하느님께 눈물을 달라고 빌었어. 하늘이 놋쇠처럼 굳고 둘레의 땅이 목말라 갈 때 농부가 비를 빌듯이.
하지만 아, 나는 느껴. 하느님은 우리가 조급하게 조른다고 비와 햇빛을 주시지 않아. 그 기억이 나를 괴롭히는 그 시절이 그토록 행복했던 건, 내가 참을성 있게 그분의 영을 기다리고, 그분이 내게 부어 주신 기쁨을 온 마음으로, 깊이 감사하며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겠어!
11월 8일
로테가 내 지나침을 나무랐어! 아, 그토록 사랑스럽게! 포도주 한 잔에 이끌려 가끔 한 병을 다 비우는 나의 지나침을.—"그러지 마세요!" 로테가 말했어. "로테를 생각하세요!"—"생각하라고요!" 내가 말했어. "그걸 나한테 시켜야 하나요? 나는 생각해요!—아니,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은 언제나 내 영혼 앞에 있어요. 오늘은 얼마 전 당신이 마차에서 내렸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어요."—로테는 내가 더 깊이 빠져들지 않게 다른 이야기를 꺼냈어. 친구야, 나는 끝났어! 로테는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있어.
11월 15일
고마워, 빌헬름. 진심 어린 걱정과 좋은 뜻에서 해 준 충고. 그리고 부탁인데, 마음 놓아. 끝까지 견디게 내버려 둬. 이렇게 지쳐 있어도 아직 버텨 낼 힘은 충분해. 나는 종교를 존중해. 너도 알지. 종교가 많은 지친 사람에게는 지팡이가 되고, 많은 목마른 사람에게는 위안이 된다는 걸 느껴. 다만—종교가 누구에게나 그럴 수 있을까, 그래야만 할까? 넓은 세상을 보면, 종교가 그런 것이 되어 주지 못한 수천 명, 설교를 듣든 안 듣든 앞으로도 그렇게 되어 주지 못할 수천 명이 보이는데, 꼭 나에게는 그래야만 할까? 하느님의 아들도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이들이 자기 곁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어? 그런데 내가 그분께 주어지지 않았다면? 내 마음이 말하듯, 아버지께서 나를 당신 곁에 두고 싶어 하신다면?—부탁이야, 이걸 잘못 받아들이지 마. 이 순진한 말에서 조롱을 보지는 마. 내 온 영혼을 네 앞에 내놓는 거야.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나았겠지. 누구도 나보다 더 알지 못하는 이런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으니까. 자기 몫의 괴로움을 끝까지 견디고 자기 잔을 끝까지 마시는 것, 그게 사람의 운명이 아니고 뭐겠어?—하늘에서 오신 하느님도 사람의 입술로 마신 그 잔이 너무 썼는데, 왜 내가 잘난 척하며 그 잔이 달콤한 척해야 해? 내 온 존재가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떨고, 지난날이 미래의 어두운 구렁 위에서 번개처럼 번쩍이고, 내 둘레의 모든 것이 가라앉고, 나와 함께 세상이 무너지는 그 끔찍한 순간에, 왜 내가 부끄러워해야 해? 그건 온통 자기 안으로 몰리고, 자기 자신마저 잃어버리고, 걷잡을 수 없이 곤두박질치는 피조물이, 헛되이 애쓰는 힘들의 깊은 속에서 이를 갈며 내는 목소리가 아닐까?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하늘을 천처럼 말아 접으시는 그분도 피하지 못하신 그 말을, 내가 부끄러워해야 할까? 그 순간을 두려워해야 할까?
11월 21일
로테는 보지 못해. 자기가 나와 자기 자신을 망칠 독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해. 그리고 나는 로테가 나를 파멸시키려고 건네는 그 잔을 한껏 황홀하게 들이켜. 로테가 나를 자주—자주?—아니,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따금—바라보는 그 다정한 눈길은 무슨 뜻일까? 내가 저도 모르게 감정을 드러내도 너그럽게 받아 주는 그 상냥함은? 내가 견디는 모습을 보며 그 이마에 떠오르는 연민은?
어제 내가 떠날 때 로테가 손을 내밀며 말했어. "잘 가요, 사랑하는 베르테르!"—사랑하는 베르테르! 로테가 나를 '사랑하는'이라고 부른 건 처음이었어. 그 말이 뼛속까지 스며들었어. 나는 백 번이나 그 말을 되뇌었어. 그리고 어젯밤 잠자리에 들려고 혼자 이런저런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잘 자, 사랑하는 베르테르!" 하고 말해 버렸고, 그러고는 나 자신이 우스워 웃을 수밖에 없었어.
11월 22일
"로테를 제게 남겨 주소서!"라고 기도할 수는 없어. 그런데도 로테는 자주 내 사람처럼 느껴져. "로테를 제게 주소서!"라고 기도할 수도 없어. 로테는 다른 사람의 것이니까. 나는 내 아픔을 두고 말장난을 해. 내버려 두면 반대말들로 된 긴 탄원 기도가 줄줄이 나올 거야.
11월 24일
로테는 내가 무엇을 견디는지 느껴. 오늘 로테의 눈길이 내 가슴 깊이 파고들었어. 로테가 혼자 있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로테가 나를 바라보았어. 그때 내게는 로테의 사랑스러운 아름다움도, 그 뛰어난 정신의 빛도 더는 보이지 않았어. 그 모든 게 내 눈앞에서 사라졌어. 훨씬 더 멋진 눈길이 나를 사로잡았어. 더없이 깊은 관심과 더없이 달콤한 연민이 가득한 눈길이. 왜 나는 로테 발치에 엎드리면 안 됐을까? 왜 그 목에 매달려 천 번의 입맞춤으로 대답하면 안 됐을까? 로테는 피아노로 피했고, 달콤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연주에 맞춰 화음을 불어넣었어. 그 입술이 그토록 매혹적으로 보인 적은 없었어. 악기에서 솟아 나오는 그 달콤한 소리를 목말라하며 빨아들이려고 입술이 열리는 것 같았고, 그 맑은 입에서는 은밀한 메아리만 되울려 나오는 것 같았어—아, 이걸 네게 제대로 말할 수만 있다면!—나는 더는 버틸 수 없어서 몸을 숙이며 맹세했어. 하늘의 혼령들이 떠도는 입술이여, 나는 결코 감히 너희에게 입을 맞추지 않으리라.—그런데도—나는 하고 싶어—하! 봐, 그게 칸막이처럼 내 영혼 앞에 서 있어—이 지복—그리고 그다음엔 이 죄를 씻으려고 파멸하는 것—죄라고?
11월 26일
가끔 나는 스스로에게 말해. 네 운명은 둘도 없다. 다른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여겨라—이렇게 괴로움을 당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그러다 옛 시인을 읽으면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나는 견뎌야 할 게 너무 많아! 아, 나보다 앞서도 이렇게 비참했던 사람들이 있었을까?
11월 30일
나는, 나는 정신을 차려서는 안 되나 봐! 가는 곳마다 나를 평정에서 끌어내는 일과 마주쳐. 오늘! 아, 운명이여! 아, 인간이여!
한낮에 나는 물가를 걷고 있었어. 밥 먹을 마음이 하나도 없었거든. 온통 황량했어. 축축하고 찬 저녁 바람이 산에서 불어왔고, 잿빛 비구름이 골짜기로 몰려들었어. 멀리 낡은 초록 윗옷을 입은 사람 하나가 바위 사이를 기어다니며 약초를 찾는 것 같았어. 내가 가까이 가자 그 사람은 내 발소리에 돌아섰는데, 아주 흥미로운 얼굴이었어. 조용한 슬픔이 얼굴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 밖에는 곧고 착한 마음 말고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어. 까만 머리카락은 핀으로 두 개의 말이로 꽂고, 나머지는 굵게 땋아 등 뒤로 늘어뜨렸어. 차림새로 보아 신분이 낮은 사람 같아서, 그가 하는 일에 내가 관심을 보여도 언짢아하지 않으리라 여기고 무엇을 찾느냐고 물었어.—"찾고 있어요,"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어. "꽃을—그런데 하나도 없어요."—"지금은 꽃 필 철이 아니잖소." 내가 웃으며 말했어.—"꽃은 아주 많아요." 그가 내 쪽으로 내려오며 말했어. "우리 정원에는 장미랑 인동덩굴이 두 가지나 있어요. 하나는 아버지가 주신 건데 잡초처럼 잘 자라요. 벌써 이틀째 찾는데 찾을 수가 없어요. 바깥에도 늘 꽃이 있어요. 노란 꽃, 파란 꽃, 빨간 꽃, 그리고 수레국화도 예쁜 작은 꽃이 피어요. 하나도 못 찾겠어요."—나는 무언가 섬뜩한 걸 느껴서 에둘러 물었어. "꽃으로 뭘 하려는 거요?"—그의 얼굴이 이상하게 떨리는 미소로 일그러졌어. "나를 일러바치지 않는다면요," 그가 손가락을 입에 대며 말했어. "애인한테 꽃다발을 약속했어요."—"훌륭하군요." 내가 말했어.—"아!" 그가 말했어. "그 사람은 다른 것도 많이 가졌어요. 부자거든요."—"그래도 당신 꽃다발을 좋아하겠지요." 내가 받았어.—"아!" 그가 말을 이었어. "그 사람은 보석도 있고 왕관도 있어요."—"그 사람 이름이 뭐요?"—"네덜란드 연방 의회가 나한테 돈을 갚아 준다면," 그가 받았어. "나는 딴사람이 될 텐데! 그래요, 한때는 그렇게 좋은 때가 있었어요! 이제 나는 끝났어요. 나는 이제—." 하늘을 향한 젖은 눈길이 모든 걸 말해 주었어.—"그럼 당신은 행복했었군요?" 내가 물었어.—"아, 다시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그가 말했어. "그때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그렇게 좋고, 그렇게 즐겁고, 그렇게 가뿐했어요!"—"하인리히!" 길을 따라오던 노파가 불렀어. "하인리히, 어디 있니? 온 데를 찾았잖니, 밥 먹으러 오너라."—"아드님이세요?" 나는 노파에게 다가가며 물었어.—"그래요, 불쌍한 내 아들이에요!" 노파가 받았어. "하느님이 나한테 무거운 십자가를 지우셨어요."—"언제부터 저랬나요?" 내가 물었어.—"이렇게 얌전해진 건," 노파가 말했어. "반년쯤 됐어요. 이만하길 다행이지요. 그 전에는 꼬박 일 년을 미쳐 날뛰어서 정신 병원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었어요. 지금은 아무한테도 해코지하지 않아요. 다만 늘 왕이며 황제며 하는 이들하고 볼일이 있대요. 착하고 얌전한 아이였어요. 내 살림을 거들고 글씨도 예쁘게 썼는데, 갑자기 시름에 잠기더니 오래가는 열병을 앓고 거기서 미쳐 날뛰다가 이제 보시는 대로 됐어요. 나리, 내가 이야기를 하자면—"—나는 노파의 말을 끊고 물었어. "아드님이 그렇게 행복하고 좋았다고 자랑하는 그때는 언제인가요?"—"어리석은 녀석!" 노파가 안쓰러운 웃음을 지으며 외쳤어. "제정신이 아니던 때를 말하는 거예요. 늘 그걸 자랑해요. 그건 정신 병원에 있던 때예요.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던 때요."—그 말이 벼락처럼 나를 덮쳤어. 나는 노파 손에 돈을 쥐여 주고 서둘러 그곳을 떠났어. 네가 행복했던 때라니! 나는 읍내 쪽으로 서둘러 걸으며 혼잣말로 외쳤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좋았던 때라니!—하늘에 계신 하느님! 사람들이 분별을 갖추기 전과 그걸 다시 잃은 뒤에만 행복하도록, 그걸 사람의 운명으로 정하셨습니까!—가엾은 사람! 그런데도 나는 네 우울함이, 네가 시들어 가는 그 감각의 혼란이 얼마나 부러운지! 너는 희망을 안고 네 여왕에게 줄 꽃을 꺾으러 나가—겨울에—그리고 꽃을 찾지 못해 슬퍼하면서도 왜 찾을 수 없는지는 몰라. 그런데 나는—나는 희망도 목적도 없이 나갔다가 나간 그대로 집에 돌아와.—너는 연방 의회가 돈을 갚아 준다면 네가 어떤 사람이 될지 꿈꾸지. 자기 행복이 모자란 까닭을 이 세상의 어떤 걸림돌 탓으로 돌릴 수 있는 복 받은 사람! 너는 느끼지 못해, 느끼지 못해. 네 비참함이 네 무너진 마음과 망가진 머릿속에 있다는 걸. 이 땅의 어떤 왕도 그건 도와줄 수 없다는 걸. 병을 더하고 남은 삶을 더 고통스럽게 할 머나먼 샘을 찾아 떠나는 병자를 비웃는 자는 위안 없이 죽을지어다! 양심의 가책을 덜고 영혼의 괴로움을 씻으려고 성묘로 순례를 떠나는 짓눌린 마음을 깔보는 자도! 닦이지 않은 길에서 그 발바닥을 베는 걸음 하나하나가 두려움에 떠는 영혼에 떨어지는 위안의 한 방울이고, 하루의 여정을 견뎌 낼 때마다 그 마음은 많은 짐을 덜고 더 가볍게 누워. 그런데 그걸 망상이라고 부를 수 있어? 방석 위에 앉은 말장사꾼들아?—망상이라니!—아, 하느님! 제 눈물을 보시지요! 사람을 이토록 가난하게 지으시고, 거기에 형제들까지 붙여 주셔서, 그나마 가진 조그만 가난과, 당신께 품은 조그만 믿음마저 빼앗게 하셔야 했나요?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당신께 품은 믿음을! 낫게 하는 뿌리를, 포도나무의 눈물을 믿는 것이, 당신이 우리 둘레의 모든 것에 우리가 시시각각 필요로 하는 치유와 위안의 힘을 넣어 두셨다고 믿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내가 알지 못하는 아버지! 예전에는 내 온 영혼을 채우시더니 이제 내게서 얼굴을 돌리신 아버지, 나를 당신께로 불러 주세요! 더는 침묵하지 마세요! 당신의 침묵이 이 목마른 영혼을 붙잡아 두지는 못할 거예요—뜻밖에 돌아온 아들이 목에 매달리며 이렇게 외친다면, 어떤 사람이, 어떤 아버지가 화를 낼 수 있을까요? "아버지, 저 돌아왔어요! 아버지 뜻대로라면 더 오래 견뎌야 했을 나그넷길을 그만두고 왔다고 노여워하지 마세요. 세상은 어디나 똑같아요. 수고하고 일하면 보수와 기쁨이 있지요. 하지만 그게 제게 무슨 소용이에요? 저는 아버지가 계신 곳에서만 좋아요. 아버지 앞에서 괴로워하고 즐거워하고 싶어요."—그런데 사랑하는 하늘의 아버지, 당신이 그 아들을 물리치시겠어요?
12월 1일
빌헬름! 내가 편지에 쓴 그 사람, 그 행복한 불행한 사람은 로테 아버지의 서기였어. 로테를 향한 정열을 키우고, 숨기고, 들키고, 그 때문에 일자리에서 쫓겨나 미쳐 버린 거야. 이 메마른 몇 마디로나마 느껴 줘. 알베르트가 그 이야기를, 어쩌면 네가 이걸 읽는 것만큼이나 태연하게 들려주었을 때, 그 이야기가 얼마나 정신없이 나를 사로잡았는지.
12월 4일
부탁이야—봐, 나는 끝났어. 더는 견딜 수 없어! 오늘 로테 곁에 앉아 있었어—앉아 있었어. 로테는 피아노로 갖가지 곡을 쳤어. 그 모든 표현을! 모든!—모든!—뭘 바라는 거야?—로테의 꼬마 동생이 내 무릎 위에서 인형을 꾸미고 있었어. 눈에 눈물이 고였어. 내가 몸을 숙였더니 로테의 결혼반지가 눈에 들어왔어—눈물이 흘렀어—그런데 갑자기 로테가 그 옛날의, 천상처럼 달콤한 곡을 치기 시작했어. 그렇게 갑자기. 그러자 위로의 느낌과 지난날의 기억이 내 영혼을 꿰뚫고 지나갔어. 그 노래를 듣던 시절, 그 뒤로 이어진 언짢음과 빗나간 희망의 어두운 나날들, 그리고—나는 방 안을 이리저리 걸었어. 몰려드는 감정에 내 가슴이 숨이 막혔어.—"제발," 나는 거칠게 터져 나오는 감정으로 로테에게 다가서며 말했어. "제발 그만두세요!"—로테는 손을 멈추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어. "베르테르," 로테가 내 영혼을 꿰뚫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 "베르테르, 당신은 많이 아파요. 좋아하는 음식도 넘기지 못하시네요. 가세요! 부탁이에요, 마음을 가라앉히세요."—나는 억지로 로테에게서 몸을 떼었고—하느님! 당신은 제 비참함을 보시니, 끝내 주시겠지요.
12월 6일
그 모습이 얼마나 나를 따라다니는지! 깨어 있을 때도 꿈꿀 때도 그 모습이 내 온 영혼을 채워! 여기, 눈을 감으면 여기, 마음의 눈이 모이는 내 이마 속에 로테의 까만 눈이 서 있어. 여기! 너한테 말로 나타낼 수가 없어. 눈을 감으면 그 눈이 거기 있어. 바다처럼, 구렁처럼 내 앞에, 내 안에 머물며 내 이마의 감각을 채워.
사람이란 무엇인가, 그 찬양받는 반신(半神)이란! 힘이 가장 필요할 바로 그때 힘이 모자라지 않은가? 기쁨 속에 날아오를 때나 괴로움 속에 가라앉을 때나, 무한의 충만 속에 자기를 잃어버리고 싶어 하는 바로 그때 가로막혀, 다시 무디고 차가운 의식으로 끌려 돌아오지 않는가?
엮은이가 독자에게
우리 친구의 마지막 특별한 나날에 대해 그가 손수 남긴 증거가 넉넉히 남아 있어서, 그가 남긴 편지들의 흐름을 이야기로 끊지 않아도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그의 이야기를 잘 알 만한 사람들의 입에서 정확한 소식을 모으려고 애썼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자잘한 몇 가지 말고는 모든 이야기가 서로 들어맞는다. 다만 이 일에 얽힌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판단이 갈린다.
그러니 우리에게 남은 일은, 거듭 애써서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을 성실하게 이야기하고, 세상을 떠난 이가 남긴 편지들을 사이사이 끼워 넣고, 찾아낸 가장 작은 쪽지 하나도 하찮게 여기지 않는 것뿐이다. 더구나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단 하나의 행동이라도 그 가장 깊은 참된 동기를 밝혀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불만과 언짢음이 베르테르의 영혼에 점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서로 더욱 단단히 얽혀서, 차츰 그의 온 존재를 차지해 버렸다. 그의 정신의 조화는 완전히 무너졌다. 그의 본성의 모든 힘을 뒤죽박죽 휘저어 놓는 속의 열기와 격렬함이 더없이 나쁜 결과를 낳았고, 마침내 그에게 남은 것은 기진함뿐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온갖 불행과 싸워 온 것보다 더 불안하게 그 기진함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마음의 두려움이 그의 다른 정신의 힘들, 그의 생기와 날카로운 분별을 갉아먹었다. 그는 함께 있기 서글픈 사람이 되었고, 점점 더 불행해졌으며, 불행해질수록 점점 더 부당해졌다. 적어도 알베르트의 친구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베르테르는 날마다 자기 재산을 다 써 버리고 저녁이면 괴로워하며 굶주리는 사람이나 다름없었기에, 오래 바라던 행복을 이제 막 얻은 맑고 차분한 사람과, 그 행복을 앞으로도 지키려는 그 사람의 태도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알베르트는, 그들 말로는, 그 짧은 동안에 변하지 않았다. 베르테르가 처음부터 알았고 그토록 존중하고 아끼던 바로 그 사람 그대로였다. 그는 무엇보다도 로테를 사랑했고, 로테를 자랑스러워했으며, 모든 사람이 로테를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니 그가 의심을 살 만한 낌새조차 피하고 싶어 하고, 그 순간만큼은 이 귀한 보물을 아무리 순진한 방식으로라도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아 했다고 해서 그를 나무랄 수 있겠는가? 그들은 베르테르가 로테 곁에 있을 때 알베르트가 아내의 방을 자주 나갔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친구를 미워하거나 꺼려서가 아니라, 다만 자기가 곁에 있으면 베르테르가 짓눌린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로테의 아버지가 병이 나서 방에 들어앉게 되자, 아버지는 로테에게 마차를 보냈고 로테는 그리로 갔다. 아름다운 겨울날이었다. 첫눈이 많이 내려 온 고장을 덮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베르테르는 로테를 뒤따라갔다. 알베르트가 데리러 오지 않으면 자기가 로테를 모시고 돌아오려고.
맑은 날씨도 그의 침울한 마음에는 별 힘을 쓰지 못했다. 그의 영혼은 무겁게 짓눌려 있었고, 서글픈 모습들이 마음에 들러붙어서, 그의 마음은 한 아픈 생각에서 다른 아픈 생각으로 옮겨 가는 것 말고는 움직임을 알지 못했다.
그는 자기 자신과 끝없이 불화하며 살았기에, 다른 사람들의 처지도 더 위태롭고 더 엉클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는 알베르트와 그 아내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를 자기가 어지럽혔다고 믿었고, 그 때문에 자기를 책망했는데, 그 책망에는 남편을 향한 은밀한 불만이 섞여 있었다.
가는 길에도 그의 생각은 이 일로 쏠렸다. "그래, 그래." 그는 남몰래 이를 갈며 혼잣말을 했다. "이게 바로 그 허물없고, 다정하고, 상냥하고,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사이, 그 차분하고 변치 않는 진실함이라는 거지! 싫증이고 무관심일 뿐이야! 하찮은 일거리 하나하나가 그 귀하고 소중한 아내보다 그를 더 끌어당기지 않아? 그는 자기 행복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 아내를 마땅히 받아야 할 만큼 존중할 줄 알아? 그는 로테를 가졌어. 그래, 좋아, 그는 로테를 가졌어—나도 알아. 다른 걸 알듯이 그걸 알아. 그 생각에 익숙해졌다고 믿었는데, 그 생각이 나를 미치게 만들 거야, 나를 죽이고 말 거야—그리고 그는 나에 대한 우정을 지켰나? 로테에 대한 내 애착을 벌써 자기 권리에 대한 침해로, 로테를 향한 내 정성을 말 없는 비난으로 여기지 않아? 나는 잘 알아, 느껴. 그는 나를 보는 게 싫고, 내가 멀어지기를 바라. 내가 곁에 있는 게 그에게는 거북해."
그는 자주 빠른 걸음을 멈추었고, 자주 가만히 서서 돌아서려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발길을 앞으로 돌렸고, 이런 생각과 혼잣말에 빠진 채 마침내 거의 마지못한 듯 사냥 별장에 이르렀다.
그는 문을 들어서며 노인과 로테를 찾았는데, 집 안이 어딘가 술렁이고 있었다. 큰 사내아이가, 건너편 발하임에서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고, 농부 하나가 맞아 죽었다고 말했다!—그 말은 그에게 별 인상을 주지 않았다.—그가 방에 들어가 보니, 로테가 노인을 달래느라 애쓰고 있었다. 노인은 아픈 몸인데도 현장에 가서 사건을 조사하겠다고 했다. 범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아침에 죽은 사람이 집 문 앞에서 발견되었는데, 사람들은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죽은 사람은 어느 과부의 일꾼이었고, 그 과부는 전에 다른 일꾼을 두었는데 그 일꾼이 불화 끝에 그 집에서 나갔다는 것이다.
베르테르는 이 말을 듣자 격렬하게 벌떡 일어났다.—"그럴 수가!" 그는 외쳤다. "가 봐야겠어요. 한순간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그는 발하임으로 서둘러 갔다. 모든 기억이 생생히 살아났다. 그는 그토록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누고 그토록 소중해진 그 사람이 그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다.
시체를 옮겨 둔 주막으로 가려면 보리수 아래를 지나야 했는데, 예전에 그토록 사랑하던 그 자리 앞에서 그는 소스라쳤다. 이웃 아이들이 그토록 자주 놀던 그 문지방이 피로 더럽혀져 있었다. 사람의 감정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사랑과 진실함이 폭력과 살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튼튼한 나무들은 잎 하나 없이 서리를 덮어쓰고 서 있었고, 낮은 교회 묘지 담 위로 둥글게 드리우던 아름다운 산울타리는 잎이 다 졌고, 눈 덮인 묘비들이 그 틈새로 내다보고 있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주막에 다가가자 갑자기 고함 소리가 일었다. 멀리 무장한 사내들 한 무리가 보였고, 모두들 범인을 끌고 온다고 외쳤다. 베르테르는 그쪽을 보았고, 오래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 그 과부를 그토록 사랑하던 그 일꾼이었다. 얼마 전 조용한 분노와 남모를 절망에 차서 떠돌던 그를 만났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불행한 사람아!" 베르테르는 붙잡힌 사람에게 다가가며 외쳤다.—그는 조용히 베르테르를 바라보며 말이 없다가, 마침내 아주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무도 그 여자를 갖지 못할 거예요. 그 여자도 아무도 갖지 못할 거고요."—사람들은 붙잡힌 사람을 주막으로 데려갔고, 베르테르는 서둘러 떠났다.
그 끔찍하고 강렬한 충격에 그의 존재 속에 있던 모든 것이 뒤흔들렸다. 그는 한순간 자기의 슬픔과 언짢음과 무심한 체념에서 끌려 나왔다. 걷잡을 수 없는 동정이 그를 사로잡았고, 그 사람을 구하고 싶다는 말할 수 없는 열망이 그를 붙들었다. 그는 그 사람이 너무나 불행하다고 느꼈고, 범인이라 하더라도 그토록 죄가 없다고 여겼으며, 그 처지에 너무나 깊이 자기를 두어 보았기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설득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그는 벌써 그 사람을 위해 변호하고 싶었고, 더없이 생생한 변론이 벌써 입술로 밀려왔다. 그는 사냥 별장으로 서둘러 가면서, 관리에게 할 말을 길에서 벌써 반쯤 소리 내어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방에 들어서니 알베르트가 와 있었다. 그것 때문에 그는 잠시 기분이 상했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고 관리에게 자기 생각을 뜨겁게 펼쳤다. 관리는 몇 번이나 고개를 저었다. 베르테르는 사람이 사람을 변호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더없이 생생하게, 정열적으로, 진실하게 늘어놓았지만,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관리는 그 말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관리는 우리 친구가 말을 다 하게 두지 않고 열심히 반박하며, 그가 살인자를 감싼다고 나무랐다. 그런 식이라면 모든 법이 무너지고 나라의 모든 안전이 망가진다고 일깨웠다. 그리고 이런 일에서는 자기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그랬다가는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된다고, 모든 일은 질서에 따라, 정해진 절차대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베르테르는 아직 굴하지 않고, 누가 그 사람이 달아나도록 도와준다면 관리가 눈감아 주기만이라도 해 달라고 부탁했다! 관리는 그것마저 물리쳤다. 마침내 이야기에 끼어든 알베르트도 노인 편을 들었다. 베르테르는 수에서 밀렸고, 관리가 몇 번이나 "안 돼, 그 사람은 구할 수 없네!" 하고 말한 뒤, 끔찍한 괴로움을 안고 길을 나섰다.
그 말이 그에게 얼마나 깊이 박혔는지는, 그의 서류 가운데서 발견된 쪽지 하나로 알 수 있다. 분명 바로 그날 쓴 쪽지다.
"너는 구할 수 없구나, 불행한 사람아! 우리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걸 나는 잘 알아."
알베르트가 마지막에 관리 앞에서 붙잡힌 사람의 일에 대해 한 말은 베르테르에게 몹시 거슬렸다. 그는 그 말에서 자기를 향한 어떤 날카로움을 느꼈다고 믿었다. 더 깊이 생각해 보니 두 사람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의 예리한 분별이 놓치지는 않았지만,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그는 자기의 가장 깊은 존재를 버려야 할 것만 같았다.
이와 관련된, 어쩌면 알베르트와의 관계 전체를 드러내는 쪽지 하나를 우리는 그의 서류에서 찾았다. "그가 훌륭하고 착하다고 아무리 되뇌어 봐야 무슨 소용이야. 그래도 그게 내 속을 갈가리 찢어. 나는 공정할 수가 없어."
포근한 저녁이었고 날씨가 풀리려 했기에, 로테는 알베르트와 함께 걸어서 돌아왔다. 가는 길에 로테는 마치 베르테르가 곁에 없는 것이 허전하다는 듯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알베르트가 그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베르테르를 공정하게 평가하면서도 나무랐다. 그의 불행한 정열을 건드리며, 그를 멀리 떠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우리를 위해서도 그러길 바라." 그가 말했다. "그리고 부탁이야." 그가 말을 이었다. "그가 당신을 대하는 태도를 다른 쪽으로 돌리게 해 봐. 그렇게 자주 찾아오지 않도록. 사람들이 눈여겨보기 시작했어. 여기저기서 그 이야기가 오갔다는 걸 알아."—로테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알베르트는 그 침묵을 느낀 듯했다. 적어도 그 뒤로 그는 로테 앞에서 베르테르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고, 로테가 그의 이야기를 하면 말을 흐리거나 다른 데로 돌렸다.
불행한 사람을 구하려던 베르테르의 헛된 시도는 꺼져 가는 등불이 마지막으로 확 타오른 것이었다. 그는 그 뒤로 더욱 깊이 괴로움과 무기력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제 범행을 부인하기 시작한 그 사람에게 불리한 증인으로 자기가 불려 나갈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그는 거의 넋을 잃었다.
활동하며 살던 동안 그에게 닥쳤던 온갖 불쾌한 일들, 공사관에서의 언짢은 일, 그 밖에 그가 실패했던 모든 일, 그를 상처 입혔던 모든 일이 그의 영혼 속에서 오르내렸다. 그는 이 모든 것 때문에 무기력해도 될 권리가 있는 것처럼 느꼈고, 모든 앞날에서 잘려 나가, 일상의 일을 붙잡는 손잡이 하나 붙잡을 수 없는 사람처럼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기묘한 감정과 생각과 끝없는 정열에 온통 몸을 맡긴 채, 자기가 평온을 어지럽히고 있는 그 사랑스럽고 사랑하는 사람과 서글프게 어울리는 끝없는 되풀이 속에서, 자기 힘을 향해 돌진하고 목적도 앞날도 없이 그것을 소진하며, 서글픈 끝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혼란과 정열, 그의 쉼 없는 몸부림과 애씀, 그의 삶에 대한 싫증을 가장 강하게 보여 주는 것은 그가 남긴 몇 통의 편지다. 우리는 그것들을 여기 끼워 넣으려 한다.
12월 12일
빌헬름, 나는 지금, 사람들이 못된 귀신에게 쫓겨 떠돈다고 믿었던 그 불행한 사람들이 틀림없이 겪었을 그런 처지에 있어. 가끔 무언가가 나를 붙잡아. 두려움도 아니고 욕망도 아니야—속에서 날뛰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내 가슴을 찢을 듯하고 내 목을 졸라! 아, 슬프다! 아, 슬프다! 그러면 나는 사람을 싫어하는 이 계절의 무시무시한 밤 풍경 속을 헤매고 다녀.
어젯밤에는 나가야만 했어. 갑자기 날이 풀렸는데, 강이 넘치고 시냇물이 모두 불어나서 발하임에서부터 내 사랑하는 골짜기가 물에 잠겼다는 말을 들었거든! 밤 열한 시가 넘어 나는 뛰어나갔어. 무시무시한 광경이었어. 바위 위에서 내려다보니, 달빛 속에 들끓는 물결이 소용돌이치며 밭이며 풀밭이며 산울타리며 모든 걸 덮었고, 넓은 골짜기 위아래로 바람 소리 속에 사나운 바다가 펼쳐져 있었어! 그러다 달이 다시 나와 검은 구름 위에 머물고, 내 앞에서 물결이 무섭도록 멋진 반사광 속에 굽이치며 울려 퍼질 때, 나는 몸서리가 쳐졌고, 또다시 그리움이 밀려왔어! 아, 나는 두 팔을 벌리고 구렁을 마주 보고 서서 아래로 숨을 내쉬었어! 아래로! 그리고 내 고통과 괴로움을 저 아래로 휘몰아쳐 떨어뜨리는 황홀함 속에 빠져들었어! 저 물결처럼 휘몰아쳐 가는 황홀함에! 아!—그런데 너는 땅에서 발을 떼지 못했고, 모든 고통을 끝내지 못했어!—내 시계는 아직 다 돌지 않았어. 그걸 느껴! 아, 빌헬름! 그 폭풍과 함께 구름을 찢고 물결을 움켜쥘 수 있다면, 사람이라는 걸 기꺼이 내주었을 텐데! 하! 갇힌 사람에게도 언젠가 이 황홀함이 주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서글프게 어느 작은 자리를 내려다보았을 때, 무더운 날 산책하다가 로테와 함께 버드나무 아래서 쉬던 자리인데—거기도 물에 잠겨서 버드나무조차 알아보기 힘들었어! 빌헬름! 그리고 로테의 풀밭들, 사냥 별장 둘레는, 하고 나는 생각했어! 우리 정자는 지금 세찬 물살에 얼마나 망가졌을까! 하고 생각했어. 그러자 지난날의 햇살이 들어왔어. 갇힌 사람이 가축 떼며 풀밭이며 명예로운 벼슬을 꿈꾸듯. 나는 서 있었어!—나 자신을 나무라지는 않아. 나는 죽을 용기가 있으니까.—나는 할 수 있었는데—이제 나는 여기 앉아 있어. 꺼져 가는 기쁨 없는 삶을 한순간이라도 더 늘리고 덜 고되게 하려고, 울타리에서 땔감을 줍고 집집마다 빵을 얻으러 다니는 늙은 할멈처럼.
12월 14일
이게 뭘까, 친구야? 나는 나 자신에게 놀라! 로테를 향한 내 사랑은 더없이 거룩하고 순수하고 형제다운 사랑이 아니었어? 내 영혼 속에서 벌받을 만한 바람을 한 번이라도 느낀 적이 있었어?—맹세하고 싶지는 않아—그런데 이제, 꿈이라니! 아, 그토록 모순된 일들을 낯선 힘의 탓으로 돌리던 사람들은 얼마나 참되게 느꼈던가! 어젯밤! 말하기도 떨리는데, 나는 로테를 내 품에 안고 가슴에 꼭 끌어안은 채, 사랑을 속삭이는 그 입을 끝없는 입맞춤으로 덮었어. 내 눈은 로테의 눈 속 취기에 떠 있었어! 하느님! 지금도 그 뜨거운 기쁨을 온 마음으로 되살리며 지복을 느끼는 게 벌받을 일인가요? 로테! 로테!—나는 끝났어! 정신이 어지러워. 벌써 여드레째 분별할 힘이 없고, 눈에는 눈물이 가득해. 어디에 있어도 편치 않고, 어디에 있어도 편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내가 떠나는 게 나을 거야.
세상을 떠나겠다는 결심은 이 무렵, 이런 상황에서 베르테르의 영혼 속에서 점점 힘을 얻었다. 로테에게 돌아온 뒤로 그것은 늘 그의 마지막 앞날이자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성급하고 서두른 행동이어서는 안 된다고, 가장 확고한 신념과 가장 차분한 결단으로 그 걸음을 내딛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왔다.
그의 의심과 자기 자신과의 다툼은 쪽지 하나에서 엿보인다. 아마 빌헬름에게 쓰다 만 편지인 듯하며, 날짜 없이 그의 서류 가운데서 발견되었다.
로테가 곁에 있다는 것, 로테의 운명, 내 운명에 대한 로테의 관심이 내 타 버린 머리에서 마지막 눈물을 짜내. 막을 걷고 그 뒤로 걸어 들어가는 것! 그게 다야! 그런데 왜 머뭇거리고 망설이지? 그 뒤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까? 그리고 돌아올 수 없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확실히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혼란과 어둠을 예감하는 게 우리 정신의 성질이니까.
마침내 그는 그 서글픈 생각과 점점 더 친해지고 익숙해졌으며, 그의 결심은 굳어져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그가 친구에게 쓴 다음의 모호한 편지가 그것을 증언한다.
12월 20일
고마워, 빌헬름. 네 사랑이 그 말을 그렇게 받아 주어서. 그래, 네 말이 맞아. 내가 떠나는 게 나을 거야. 너희에게 돌아오라는 네 제안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아. 적어도 한 번 에둘러 가고 싶어. 특히 추위가 계속되고 길이 좋으리라 기대되니까. 네가 나를 데리러 오겠다니 무척 반가워. 다만 두 주만 더 기다려 주고, 그 뒷일을 적은 편지를 한 통 더 기다려 줘. 무엇이든 익기 전에 따서는 안 되니까. 두 주 앞이냐 뒤냐가 큰 차이를 만들어. 어머니께는 아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그리고 내가 끼쳐 드린 모든 언짢은 일을 용서해 달라고 전해 줘. 기쁨을 드려야 할 사람들을 슬프게 하는 것, 그게 내 운명이었나 봐. 잘 있어, 가장 소중한 친구야! 하늘의 모든 축복이 너에게 있기를! 잘 있어!"
이 무렵 로테의 영혼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남편과 불행한 친구를 향한 로테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는, 우리가 로테의 성품을 알기에 조용히 짐작할 수는 있고 아름다운 여성의 영혼이라면 로테의 영혼 속으로 들어가 함께 느낄 수 있겠지만, 감히 말로 나타내기는 어렵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로테는 베르테르를 멀리 떠나게 하려고 무엇이든 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런데도 망설였다면, 그것은 그것이 그에게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할지, 아니 그에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았기에 진심 어린 우정으로 그를 아껴 준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무렵 로테는 단호하게 결단을 내리라는 압박을 더 받았다. 로테가 늘 이 관계에 대해 침묵해 왔듯이 남편도 이에 대해 완전히 침묵했기에, 로테는 자기 마음이 남편의 마음에 걸맞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했다.
베르테르가 마지막으로 끼워 넣은 편지를 친구에게 쓴 바로 그날, 성탄절 전 일요일이었는데, 그는 저녁에 로테에게 갔다가 로테가 혼자 있는 걸 보았다. 로테는 어린 동생들에게 성탄 선물로 마련해 둔 장난감 몇 가지를 정리하느라 바빴다. 그는 꼬마들이 얼마나 기뻐할지, 그리고 뜻밖에 문이 열리며 밀초와 사탕과 사과로 꾸민 나무가 나타나면 낙원에 온 듯 황홀해지던 시절을 이야기했다.—"당신도요," 로테가 당황한 마음을 사랑스러운 미소 뒤에 감추며 말했다. "당신도 착하게 굴면 선물을 받을 거예요. 작은 밀초하고 또 뭔가를요."—"착하게 군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그가 외쳤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해요? 어떻게 할 수 있어요? 사랑하는 로테!"—"목요일 저녁이," 로테가 말했다. "성탄 전야예요. 그때 아이들도 오고 아버지도 오세요. 다들 자기 선물을 받지요. 그때 당신도 오세요—하지만 그 전에는 오지 마세요."—베르테르는 멈칫했다.—"부탁이에요," 로테가 말을 이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어요. 제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부탁해요. 이대로는 안 돼요, 이대로 갈 수는 없어요."—그는 로테에게서 눈을 돌리고 방 안을 이리저리 걸으며 "이대로 갈 수는 없어요!" 하는 말을 이 사이로 중얼거렸다.—이 말이 그를 얼마나 끔찍한 처지로 몰아넣었는지 느낀 로테는 이런저런 물음으로 그의 생각을 돌리려 했지만 헛일이었다.—"아니요, 로테," 그가 외쳤다. "나는 당신을 다시 보지 않을 거예요!"—"왜요?" 로테가 받았다. "베르테르, 당신은 우리를 다시 볼 수 있어요. 다시 보셔야 해요. 다만 마음을 다스리세요. 아, 당신은 왜 한번 붙잡은 모든 것에 이토록 격렬하게, 이토록 걷잡을 수 없이 매달리는 정열을 타고나셔야 했을까요! 부탁이에요," 로테는 그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마음을 다스리세요! 당신의 정신과 학식과 재능이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줄 수 있는데요! 사나이답게 굴어요. 당신을 딱하게 여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에게서 이 서글픈 애착을 거두세요."—그는 이를 갈며 어두운 눈으로 로테를 쳐다보았다.—로테는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단 한순간만이라도 차분히 생각해 보세요, 베르테르!" 로테가 말했다. "스스로를 속이고 일부러 자기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하세요? 왜 하필 저예요, 베르테르? 하필 다른 사람의 사람인 저를요? 하필 그런 저를요? 두려워요, 두려워요. 저를 가질 수 없다는 그 불가능함 때문에 그 바람이 그토록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게 아닐까요."—그는 로테의 손에서 자기 손을 빼며 굳고 언짢은 눈길로 로테를 바라보았다. "현명하군요!" 그가 외쳤다. "아주 현명해요! 혹시 알베르트가 그렇게 말하던가요? 처세에 능하네요! 아주 능해요!"—"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에요." 로테가 받았다. "이 넓은 세상에 당신 마음의 바람을 채워 줄 아가씨가 하나도 없을까요? 마음을 다잡고 찾아보세요. 맹세하는데 찾을 거예요. 요즘 들어 당신이 스스로를 가둬 버린 그 좁은 테두리가 당신을 위해서도 우리를 위해서도 오래전부터 걱정스러웠어요. 마음을 다잡으세요. 여행을 하면 기분이 풀릴 거예요, 풀려야 해요! 사랑할 만한 사람을 찾으세요, 찾아내서 돌아오세요. 그리고 우리 함께 참된 우정의 기쁨을 누려요." "그 말은," 그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인쇄해서 모든 가정교사에게 권해도 되겠네요. 사랑하는 로테! 조금만 더 쉬게 해 주세요. 다 잘될 거예요!"—"다만 베르테르, 성탄 전야 전에는 오지 마세요!"—그가 대답하려는데 알베르트가 방에 들어왔다. 그들은 서로 쌀쌀하게 저녁 인사를 나누고, 어색하게 방 안을 나란히 오갔다. 베르테르가 하찮은 이야기를 꺼냈지만 곧 끊겼고, 알베르트도 마찬가지였다. 알베르트는 아내에게 맡긴 몇 가지 일을 물었고, 아직 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자 아내에게 몇 마디 했는데, 베르테르에게는 그 말이 차갑게, 아니 모질게까지 들렸다. 그는 가려 했지만 가지 못하고 여덟 시까지 머뭇거렸다. 그사이 그의 불만과 언짢음은 점점 커졌고, 마침내 식탁이 차려지자 그는 모자와 지팡이를 집었다. 알베르트가 함께 있자고 청했지만, 그는 그저 하찮은 인사치레로만 들었기에 차갑게 사양하고 나가 버렸다.
그는 집에 돌아와 불을 비추려던 하인의 손에서 등을 빼앗아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 소리 내어 울고, 격앙되어 혼잣말을 하고, 거칠게 방 안을 오가다가, 마침내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몸을 던졌다. 열한 시쯤 하인이 용기를 내어 들어가 나리 장화를 벗겨 드릴까 묻자 그는 그러라고 했고, 내일 아침 자기가 부를 때까지는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일렀다.
12월 21일 월요일 이른 아침, 그는 로테에게 다음의 편지를 썼다. 이 편지는 그가 죽은 뒤 봉해진 채 그의 책상 위에서 발견되어 로테에게 전해졌다. 나는 정황으로 보아 그가 쓴 순서대로 이 편지를 한 대목씩 여기 끼워 넣으려 한다.
"결심했어, 로테. 나는 죽을 거야. 이 말을 나는 낭만에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너를 마지막으로 보게 될 날 아침에 쓰고 있어. 이걸 읽을 때쯤이면, 사랑하는 로테, 차가운 무덤이 벌써 이 불안하고 불행한 사람의 굳은 몸을 덮고 있을 거야. 이 사람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너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더 달콤한 일을 알지 못해. 끔찍한 밤을 보냈어. 그리고 아, 고마운 밤을 보냈어. 그 밤이 내 결심을 굳히고 정해 주었어. 나는 죽을 거야! 어제 감각이 끔찍하게 들끓는 가운데 너에게서 억지로 떨어져 나왔을 때, 그 모든 것이 내 가슴으로 밀려들고, 네 곁에서 희망도 기쁨도 없는 내 삶이 소름 끼치는 냉기로 나를 덮쳤을 때—나는 겨우 내 방에 이르러 넋을 잃고 무릎을 꿇었어. 아, 하느님! 당신은 제게 가장 쓰라린 눈물이라는 마지막 위안을 허락하셨어요! 천 가지 계획, 천 가지 앞날이 내 영혼 속을 휘몰아쳤고, 마침내 그것이 거기 섰어. 굳게, 온전히, 마지막이자 유일한 생각이. 나는 죽을 거야!—나는 누웠어. 그리고 아침, 잠에서 깨어나는 고요 속에서도 그 생각은 여전히 굳게, 여전히 아주 강하게 내 가슴속에 있어. 나는 죽을 거야!—이건 절망이 아니야. 나는 끝까지 견뎠고, 너를 위해 나를 바친다는 확신이야. 그래, 로테! 왜 숨기겠어? 우리 셋 가운데 하나는 떠나야 하고, 그게 나이고 싶어! 아, 사랑하는 로테! 이 찢긴 가슴속에서 사나운 생각이 맴돌았어. 자주—네 남편을 죽이고 싶다는!—너를!—나를!—그러니 그렇게 하자!—아름다운 여름날 저녁 산에 오르거든, 내가 그토록 자주 골짜기를 올라오던 걸 떠올려 줘. 그리고 교회 묘지 쪽으로, 지는 햇살 속에 바람이 키 큰 풀을 이리저리 흔드는 내 무덤을 바라봐 줘.—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차분했는데, 이제, 이제 모든 게 이렇게 생생해지니 나는 아이처럼 울고 있어.—"
열 시쯤 베르테르는 하인을 불렀다. 옷을 입으며 그는 며칠 안에 여행을 떠날 테니 옷을 털고 짐 쌀 준비를 모두 해 두라고 일렀다. 또 여기저기 셈을 청구해 오라고, 빌려준 책 몇 권을 찾아오라고, 매주 무언가를 주던 가난한 사람 몇에게 두 달 치 몫을 미리 주라고 일렀다.
그는 식사를 방으로 가져오게 했고, 식사 뒤에 말을 타고 관리를 찾아갔지만 관리는 집에 없었다. 그는 생각에 잠겨 정원을 이리저리 거닐며, 마지막으로 추억의 온갖 우울을 자기 위에 쌓아 올리려는 것 같았다.
꼬마들은 그를 오래 가만두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를 졸졸 따라다니고 그에게 매달리며, 내일, 또 내일, 그리고 하루만 더 지나면 로테 언니에게서 성탄 선물을 받는다고 이야기했고, 자기들의 작은 상상력이 약속하는 신기한 일들을 늘어놓았다.—"내일!" 그가 외쳤다. "또 내일! 그리고 하루만 더!"—그는 아이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입을 맞추고 떠나려 했는데, 막내가 아직 귓속말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막내는 형들이 이만큼 큰 멋진 새해 인사 편지를 썼다고 일러바쳤다! 아빠께 한 장, 알베르트 형부와 로테 언니께 한 장, 베르테르 아저씨께도 한 장, 새해 첫날 아침에 드릴 거라고. 그 말에 그는 북받쳐서 아이들에게 하나씩 선물을 주고, 말에 올라 노인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 하고는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말을 달려 떠났다.
다섯 시쯤 그는 집에 와서 하녀에게 불을 살펴 밤까지 꺼지지 않게 하라고 일렀다. 하인에게는 책과 속옷을 트렁크 밑에 넣고 옷을 꿰매어 싸라고 했다. 그 뒤 그는 아마 로테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의 다음 대목을 썼을 것이다.
"너는 내가 오리라 생각하지 않겠지! 내가 말을 듣고 성탄 전야에야 너를 다시 보리라 믿겠지. 아, 로테!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없어. 성탄 전야에 너는 이 종이를 손에 들고 떨며 네 사랑스러운 눈물로 적시겠지. 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 그래야 해! 아, 결심하고 나니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그사이 로테는 묘한 처지에 빠져 있었다. 베르테르와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눈 뒤, 로테는 그와 헤어지는 것이 자기에게 얼마나 어려울지, 그가 로테에게서 멀어져야 한다면 얼마나 괴로워할지 느꼈다.
알베르트가 있는 자리에서 지나가는 말처럼, 베르테르는 성탄 전야 전에는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말이 나왔었다. 그리고 알베르트는 볼일이 있어 이웃 고을의 관리에게 말을 타고 갔는데, 거기서 밤을 지내야 했다.
로테는 이제 혼자 앉아 있었다. 동생들도 하나 곁에 없었다. 로테는 자기 처지를 조용히 맴도는 생각에 몸을 맡겼다. 이제 로테는 영원히 그 남자와 맺어져 있었다. 그의 사랑과 진실함을 알고, 진심으로 따르는 남자, 그 차분함과 믿음직함이 마치 하늘이 정해 준 것처럼, 착실한 여자가 평생의 행복을 그 위에 쌓을 수 있는 남자였다. 로테는 그가 자기와 자기 아이들에게 언제까지나 어떤 존재일지 느꼈다. 다른 한편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너무나 소중해져 있었다.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두 사람의 마음이 그토록 아름답게 맞았고, 오랫동안 그와 어울리며 함께 겪은 숱한 일들이 로테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겼다. 로테는 흥미롭게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그와 나누는 데 익숙했고, 그가 멀어지면 로테의 온 존재에 다시는 메울 수 없는 빈자리가 생길 것만 같았다. 아, 그 순간 그를 오빠로 바꿀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를 친구 가운데 누구에게 시집보낼 수만 있다면, 그와 알베르트의 사이도 완전히 되돌려 놓을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었다면!
로테는 친구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지만, 누구에게나 흠잡을 데가 있었고, 그를 내줄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로테는 비로소, 스스로 분명히 깨닫지는 못한 채 깊이 느꼈다. 그를 자기 곁에 두고 싶다는 것이 자기 마음속 은밀한 바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동시에, 그를 곁에 둘 수 없고 두어서도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맑고 아름답고, 평소에는 그토록 가볍게 스스로를 추스르던 로테의 마음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 막혀 버린 우울의 무게를 느꼈다. 가슴이 짓눌렸고, 흐린 구름이 로테의 눈을 덮었다.
그렇게 여섯 시 반이 되었을 때, 로테는 베르테르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고, 자기를 찾는 그 발소리와 목소리를 곧 알아들었다. 그가 왔을 때 로테의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아마 처음으로 그랬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로테는 집에 없다고 둘러대게 하고 싶었고, 그가 들어서자 정열적인 혼란 같은 것에 휩싸여 그를 향해 외쳤다. "약속을 안 지키셨네요."—"나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어요." 그의 대답이었다.—"그래도 적어도 제 부탁은 들어주셨어야죠." 로테가 받았다. "우리 둘의 평화를 위해 부탁한 거였는데요."
로테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몰랐고, 베르테르와 단둘이 있지 않으려고 친구 몇을 부르러 보낼 때도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잘 몰랐다. 그는 가져온 책 몇 권을 내려놓고 다른 책들을 물었다. 로테는 친구들이 와 주기를 바랐다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가 했다. 하녀가 돌아와서 두 사람 다 오지 못한다고 전했다.
로테는 하녀에게 일감을 들고 옆방에 앉아 있게 하려다가 다시 마음을 바꾸었다. 베르테르는 방 안을 이리저리 걸었다. 로테는 피아노 앞으로 가서 미뉴에트를 치기 시작했지만 곡이 매끄럽게 흐르지 않았다. 로테는 마음을 가다듬고, 늘 앉던 소파 자리에 앉아 있는 베르테르 곁에 차분히 앉았다.
"읽을 것 없으세요?" 로테가 말했다.—그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저기 제 서랍 안에," 로테가 말을 꺼냈다. "당신이 옮긴 오시안의 노래 몇 편이 있어요. 아직 읽지 않았어요. 늘 당신에게서 직접 듣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동안은 그럴 기회가 없었어요."—그는 미소 짓고 그 노래들을 가져왔다. 그것을 손에 쥐자 몸서리가 쳐졌고, 들여다보는 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는 앉아서 읽었다.
"어스름한 밤의 별이여, 너는 서쪽에서 아름답게 반짝이며, 빛나는 머리를 구름 위로 들고, 너의 언덕을 위엄 있게 거니는구나. 너는 황야에서 무엇을 바라보느냐? 폭풍 같던 바람은 잦아들었다. 멀리서 급류의 웅얼거림이 들려오고, 출렁이는 물결이 멀리 바위에서 노닐고, 저녁 날벌레들의 붕붕거림이 들판 위를 떠돈다. 너는 무엇을 바라보느냐, 아름다운 빛이여? 그러나 너는 미소 지으며 가는구나. 물결이 기쁘게 너를 에워싸고 너의 사랑스러운 머리카락을 씻긴다. 잘 가라, 고요한 빛이여. 나타나라, 오시안의 영혼의 찬란한 빛이여!
그러자 그 빛이 힘차게 나타난다. 나는 세상을 떠난 내 벗들을 본다. 그들은 지나간 날들처럼 로라에 모인다.—핑갈이 축축한 안개 기둥처럼 온다. 그의 둘레에는 그의 영웅들이 있고, 보라! 노래하는 시인들이 있다. 백발의 울린! 늠름한 리노! 사랑스러운 가수 알핀! 그리고 부드럽게 흐느끼는 미노나여!—내 벗들이여, 너희는 얼마나 변했느냐. 우리가 셀마에서 잔치를 벌이던 날들, 봄바람이 언덕을 따라 가냘프게 속삭이는 풀을 번갈아 눕히듯 노래의 영예를 다투던 그날들 이후로.
그때 미노나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섰다. 눈을 내리깔고 눈물 가득한 눈으로. 언덕에서 불어 내리는 변덕스러운 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무겁게 흘렀다.—그녀가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높이자 영웅들의 영혼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살가르의 무덤을, 흰 콜마의 어두운 거처를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화음 같은 목소리를 지닌 콜마는 언덕 위에 버려졌다. 살가르는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둘레에 밤이 내렸다. 언덕 위에 홀로 앉은 콜마의 목소리를 들어라.
콜마: 밤이다!—나는 혼자다, 폭풍 부는 언덕 위에 길을 잃었다. 바람은 산속에서 윙윙거린다. 급류는 바위를 타고 울부짖으며 내려간다. 폭풍 부는 언덕 위의 버림받은 나를 비로부터 지켜 줄 오두막 하나 없다. 달이여, 구름에서 나오라. 밤의 별들이여, 나타나라! 어떤 빛줄기든 나를 이끌어 다오. 사냥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내 사랑이 쉬는 곳으로. 그의 활은 시위를 풀고 그의 곁에 놓여 있고, 그의 개들은 그를 둘러싸고 씩씩거리겠지! 그러나 나는 여기 무성한 물가의 바위 위에 홀로 앉아 있어야 한다. 물살과 폭풍이 윙윙거리고, 내 사랑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나의 살가르는 왜 머뭇거리는가? 그가 약속을 잊었는가?—여기 바위와 나무가 있고, 여기 출렁이는 물살이 있다! 밤이 내리면 여기 오겠다고 너는 약속했지. 아! 나의 살가르는 어디서 길을 잃었는가? 너와 함께 달아나려 했는데. 오만한 아버지와 오빠를 버리고! 우리 가문은 오래전부터 원수지만 우리는 원수가 아니다, 아, 살가르여!
잠시 잠잠하라, 바람이여! 잠깐만 조용하라, 물살이여. 내 목소리가 골짜기를 울려 내 나그네가 나를 듣도록. 살가르! 부르는 건 나다! 여기 나무와 바위가 있다! 살가르! 내 사랑! 나 여기 있다. 너는 왜 오기를 머뭇거리는가?
보라, 달이 나타나고, 골짜기에 물살이 반짝이고, 바위들이 언덕 위로 잿빛으로 서 있다. 그러나 높은 데서 그는 보이지 않고, 앞서 달려오는 그의 개들도 그가 온다고 알리지 않는다. 여기 나는 홀로 앉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저 아래 황야에 누워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내 사랑인가? 내 오빠인가?—말하라, 오 내 벗들이여! 그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내 영혼은 얼마나 두려운가!—아, 그들은 죽었다! 그들의 칼은 싸움으로 붉다! 아, 오빠, 오빠, 왜 나의 살가르를 죽였는가? 아, 나의 살가르, 왜 내 오빠를 죽였는가? 너희 둘 다 내게 그토록 소중했는데! 아, 너는 수천 사람 가운데서도 언덕에서 아름다웠다! 그는 싸움에서 무서웠다. 내게 대답하라! 내 목소리를 들어라, 사랑하는 이들이여! 그러나 아, 그들은 말이 없다. 영원히 말이 없다! 그들의 가슴은 흙처럼 차갑다!
아, 언덕의 바위에서, 폭풍 부는 산꼭대기에서 말하라, 죽은 이들의 혼령이여! 말하라! 나는 두렵지 않으리라!—너희는 어디로 쉬러 갔는가? 산속 어느 무덤에서 너희를 찾아야 하는가?—바람 속에 희미한 목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언덕의 폭풍 속에 실려 오는 대답 하나 없다. 나는 슬픔 속에 앉아 눈물 속에 아침을 기다린다. 죽은 이들의 벗들이여, 무덤을 파라. 그러나 내가 갈 때까지 닫지 마라. 내 목숨은 꿈처럼 스러진다. 내가 어찌 뒤에 남겠는가! 여기서 나는 내 벗들과 함께 울리는 바위의 물가에 살리라—언덕에 밤이 오고 황야 위로 바람이 불면, 내 혼은 바람 속에 서서 내 벗들의 죽음을 슬퍼하리라. 사냥꾼은 자기 오두막에서 나를 듣고 내 목소리를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하리라. 내 벗들을 위한 내 목소리는 달콤하리라. 그들은 둘 다 내게 그토록 소중했으니!
그것이 너의 노래였다, 아 미노나여, 토르만의 부드럽게 얼굴 붉히는 딸이여. 우리의 눈물이 콜마를 위해 흘렀고, 우리의 영혼은 어두워졌다.
울린이 하프를 들고 나서서 알핀의 노래를 들려주었다—알핀의 목소리는 다정했고, 리노의 영혼은 불꽃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좁은 집에서 쉬고 있었고, 그들의 목소리는 셀마에서 잦아든 지 오래였다. 영웅들이 쓰러지기 전 어느 날 울린은 사냥에서 돌아오다가 언덕에서 그들이 겨루어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그들의 노래는 부드러웠으나 슬펐다. 그들은 영웅들 가운데 으뜸인 모라르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의 영혼은 핑갈의 영혼 같았고, 그의 칼은 오스카의 칼 같았다—그러나 그는 쓰러졌고, 그의 아버지는 통곡했고, 누이의 눈은 눈물로 가득했다. 멋진 모라르의 누이 미노나의 눈이 눈물로 가득했다. 미노나는 울린의 노래 앞에서 물러났다. 폭풍우가 올 것을 미리 보고 아름다운 머리를 구름 속에 감추는 서쪽 하늘의 달처럼.—나는 울린과 함께 하프를 뜯으며 슬픔의 노래를 불렀다.
리노
바람과 비는 지나갔고, 한낮은 이토록 맑고, 구름은 갈라진다. 변덕스러운 해가 달아나듯 언덕을 비춘다. 산의 물살이 골짜기 아래로 불그스름하게 흐른다. 너의 웅얼거림은 달콤하다, 물살이여. 그러나 내가 듣는 목소리는 더 달콤하다. 그것은 알핀의 목소리, 그는 죽은 이를 슬퍼한다. 그의 머리는 나이로 굽었고, 눈물 흘리는 그의 눈은 붉다. 알핀이여, 뛰어난 가수여, 왜 침묵하는 언덕 위에 홀로 있는가? 왜 숲속의 돌풍처럼, 먼 바닷가의 물결처럼 슬피 우는가?
알핀
리노여, 내 눈물은 죽은 이를 위한 것, 내 목소리는 무덤에 사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너는 언덕 위에서 늘씬하고, 황야의 아들들 가운데 아름답다. 그러나 너도 모라르처럼 쓰러지리라. 그러면 슬퍼하는 이가 네 무덤 위에 앉으리라. 언덕들은 너를 잊고, 네 활은 시위를 푼 채 홀에 놓이리라.
너는 빨랐다, 아 모라르여, 언덕 위의 노루처럼. 하늘의 밤 불꽃처럼 무서웠다. 너의 분노는 폭풍이었고, 싸움터의 네 칼은 황야 위의 번갯불 같았다. 너의 목소리는 비 온 뒤의 숲속 급류 같았고, 먼 언덕의 천둥 같았다. 많은 이가 네 팔에 쓰러졌고, 네 분노의 불길이 그들을 삼켰다. 그러나 싸움에서 돌아오면 네 이마는 얼마나 평화로웠던가! 네 얼굴은 폭풍 뒤의 해 같고, 고요한 밤의 달 같았으며, 네 가슴은 바람의 소란이 잦아든 호수처럼 고요했다.
이제 너의 거처는 좁고, 너의 자리는 어둡구나! 세 걸음이면 네 무덤을 재는구나, 아, 한때 그토록 컸던 너여! 이끼 덮인 머리를 한 돌 네 개가 너의 유일한 기념이다. 잎 떨어진 나무 한 그루, 바람에 속삭이는 긴 풀이 사냥꾼의 눈에 힘센 모라르의 무덤을 가리켜 준다. 너를 위해 울어 줄 어머니도, 사랑의 눈물을 흘려 줄 아가씨도 없다. 너를 낳은 이는 죽었고, 모르글란의 딸은 쓰러졌다.
지팡이에 기댄 저이는 누구인가? 나이로 머리가 희고, 눈물로 눈이 붉은 저이는 누구인가? 그는 네 아버지다, 아 모라르여. 너 말고는 아들이 없는 아버지다. 그는 싸움터에서 떨친 네 이름을 들었고, 흩어진 적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모라르의 영광을 들었다! 아! 그런데 그의 상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울어라, 모라르의 아버지여, 울어라! 그러나 네 아들은 너를 듣지 못한다. 죽은 이들의 잠은 깊고, 그들의 흙 베개는 낮다. 그는 결코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네가 불러도 결코 깨어나지 않는다. 아, 무덤에 언제 아침이 와서 잠든 이에게 '깨어나라!' 하고 말할 것인가?
잘 가라, 가장 고귀한 사람이여, 싸움터의 정복자여! 그러나 싸움터는 다시는 너를 보지 못하고, 어두운 숲은 다시는 네 칼날의 광채로 빛나지 않으리라. 너는 아들을 남기지 않았으나, 노래가 네 이름을 지키리라. 다가올 시대가 너에 대해 들으리라. 쓰러진 모라르에 대해 들으리라.
영웅들의 슬픔은 컸고, 아르민의 터져 나오는 한숨이 가장 컸다. 그것은 그에게 젊은 날에 쓰러진 아들의 죽음을 떠올리게 했다. 메아리치는 갈말의 영주 카르모르가 그 영웅 가까이 앉아 있었다. "아르민의 한숨은 왜 흐느끼는가?" 그가 말했다. "여기서 울 일이 무엇인가? 영혼을 녹이고 즐겁게 하는 노래와 가락이 울리지 않는가? 그것은 호수에서 피어올라 골짜기에 흩뿌리는 부드러운 안개 같아서, 피어나는 꽃들을 물기로 채운다. 그러나 해가 힘차게 다시 오면 안개는 사라진다. 바다에 둘러싸인 고르마의 다스리는 이 아르민이여, 그대는 왜 그토록 슬퍼하는가?"
"슬퍼한다고! 그래, 나는 슬프다. 내 비탄의 까닭도 작지 않다.—카르모르여, 그대는 아들을 잃지 않았고, 꽃다운 딸을 잃지 않았다. 용감한 콜가르는 살아 있고, 아가씨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안니라도 살아 있다. 그대 집안의 가지들은 꽃피고 있다, 아 카르모르여. 그러나 아르민은 제 혈통의 마지막이다. 너의 잠자리는 어둡구나, 아 다우라여! 무덤 속 너의 잠은 무겁구나—너는 언제 너의 노래와 너의 고운 목소리와 함께 깨어나려느냐? 일어나라, 가을바람이여! 일어나 어두운 황야 위로 휘몰아쳐라! 숲속 급류여, 울부짖어라! 물살이여, 떡갈나무 꼭대기에서 울어라! 달이여, 찢긴 구름 사이로 거닐며 창백한 얼굴을 번갈아 보여라! 내 아이들이 죽던 그 끔찍한 밤을, 힘센 아린달이 쓰러지고 사랑스러운 다우라가 스러지던 그 밤을 떠올리게 하라.
"다우라, 내 딸아, 너는 아름다웠다. 푸라의 언덕 위 달처럼 아름답고, 내린 눈처럼 희고, 숨 쉬는 바람처럼 달콤했다! 아린달아, 너의 활은 강했고, 들판에서 너의 창은 빨랐으며, 너의 눈길은 물결 위의 안개 같았고, 너의 방패는 폭풍 속의 불구름이었다!
"싸움으로 이름난 아르마르가 와서 다우라의 사랑을 구했다. 다우라는 오래 버티지 않았다. 그들 벗들의 희망은 아름다웠다."
오드갈의 아들 에라스는 원한을 품었다. 그의 형이 아르마르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뱃사공으로 꾸미고 왔다. 물결 위의 그의 조각배는 아름다웠고, 그의 곱슬머리는 나이로 희었고, 그의 엄숙한 얼굴은 고요했다.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 그가 말했다. "아르민의 사랑스러운 딸이여, 저기 바다에서 멀지 않은 바위, 나무에서 붉은 열매가 반짝이는 저곳에서 아르마르가 다우라를 기다리오. 나는 그의 사랑을 굽이치는 바다 건너로 데려가려고 왔소."
다우라는 그를 따라가며 아르마르를 불렀다. 바위의 메아리 말고는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르마르! 내 사랑! 내 사랑! 왜 나를 이토록 두렵게 하나요? 들어요, 아르나르스의 아들이여! 들어요! 다우라가 당신을 불러요!"
배신자 에라스는 웃으며 뭍으로 달아났다. 다우라는 목소리를 높여 아버지와 오빠를 불렀다. "아린달! 아르민! 다우라를 구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나요?"
그녀의 목소리가 바다를 건너왔다. 내 아들 아린달이 언덕에서 내려왔다. 사냥에서 잡은 짐승 가죽을 거칠게 걸치고, 그의 화살들은 옆구리에서 덜그럭거렸고, 그는 손에 활을 들었으며, 검은 잿빛 사냥개 다섯 마리가 그를 둘러쌌다. 그는 바닷가에서 뻔뻔한 에라스를 보고는 붙잡아 떡갈나무에 묶었다. 그의 허리를 단단히 동여매자, 묶인 자는 신음으로 바람을 채웠다.
아린달은 다우라를 데려오려고 자기 배를 타고 물결로 나아갔다. 아르마르가 분노에 차서 와서, 잿빛 깃 달린 화살을 쏘았다. 화살이 울리며 네 심장에 박혔다. "아, 아린달, 내 아들아! 배신자 에라스 대신 네가 죽었구나. 배는 바위에 닿았고, 그는 거기 쓰러져 죽었다. 네 발치에 네 오빠의 피가 흘렀으니, 너의 슬픔은 얼마나 컸으랴, 아 다우라여! 물결이 배를 부수었다. 아르마르는 다우라를 구하든지 죽든지 하려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갑자기 언덕에서 돌풍이 물결 속으로 몰아쳐, 그는 가라앉아 다시 떠오르지 못했다.
바다에 씻기는 바위 위에서 홀로, 나는 내 딸의 하소연을 들었다. 그 외침은 잦고 컸으나, 아버지는 딸을 구할 수 없었다. 밤새도록 나는 바닷가에 서서 희미한 달빛 속에 딸을 보았고, 밤새도록 그 외침을 들었다. 바람은 거셌고, 비는 산비탈을 따라 사납게 내리쳤다. 아침이 오기 전에 딸의 목소리는 약해졌고, 바위 틈 풀 사이의 저녁 바람처럼 스러졌다. 슬픔을 잔뜩 짊어진 채 딸은 죽었고, 아르민을 홀로 남겼다! 싸움에서의 내 힘은 사라졌고, 아가씨들 가운데 나의 자랑은 쓰러졌다.
산의 폭풍이 오고, 북풍이 물결을 높이 들어 올리면, 나는 울려 퍼지는 바닷가에 앉아 그 끔찍한 바위를 바라본다. 지는 달빛 속에 나는 자주 내 아이들의 혼령을 본다. 그들은 반쯤 어스름 속에서 서글픈 화목 속에 함께 거닌다."
로테의 눈에서 터져 나와 짓눌린 가슴에 숨통을 틔운 눈물의 강물이 베르테르의 노래를 멈추게 했다. 그는 종이를 던지고 로테의 손을 잡고 더없이 쓰라린 눈물을 흘렸다. 로테는 다른 손에 기대어 손수건으로 눈을 가렸다. 두 사람의 감정은 무서울 만큼 격했다. 두 사람은 그 고귀한 이들의 운명 속에서 자기들의 비참함을 느꼈고, 함께 느꼈으며, 그들의 눈물이 하나로 합쳐졌다. 베르테르의 입술과 눈이 로테의 팔에서 타올랐다. 로테는 몸서리가 쳐졌다. 로테는 물러나려 했지만, 아픔과 연민이 납처럼 무겁게 로테를 마비시켰다. 로테는 정신을 차리려고 숨을 고르고는, 흐느끼며 계속 읽어 달라고 했다. 하늘의 온 목소리로 청했다! 베르테르는 떨었고, 그의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그는 종이를 집어 들고 반쯤 무너진 목소리로 읽었다.
"봄바람이여, 너는 왜 나를 깨우는가? 너는 아양을 떨며 말한다. 나는 하늘의 물방울로 적셔 주리라! 그러나 내가 시들 때가 가까웠다. 내 잎들을 흩날려 떨어뜨릴 폭풍이 가까웠다! 내일 나그네가 오리라. 아름답던 시절의 나를 본 이가 오리라. 그의 눈은 들판 둘레에서 나를 찾으리라. 그러나 나를 찾지 못하리라.—"
이 말의 온 힘이 그 불행한 사람을 덮쳤다.
그는 온통 절망에 빠져 로테 앞에 엎드렸다. 로테의 손을 잡아 자기 눈에, 이마에 갖다 댔다. 그러자 그의 끔찍한 계획에 대한 예감이 로테의 영혼을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로테는 정신이 아득해져 그의 손을 쥐고 자기 가슴에 갖다 대고, 서글픈 몸짓으로 그에게 몸을 기울였다. 두 사람의 뜨거운 뺨이 맞닿았다. 세상이 그들에게서 사라졌다. 그는 두 팔로 로테를 끌어안아 가슴에 꼭 껴안고, 떨며 더듬거리는 로테의 입술을 미친 듯한 입맞춤으로 덮었다.—"베르테르!" 로테가 얼굴을 돌리며 숨 막히는 목소리로 외쳤다. "베르테르!" 그리고 힘없는 손으로 그의 가슴을 자기 가슴에서 밀어냈다. "베르테르!" 로테는 더없이 고귀한 감정이 담긴 차분한 목소리로 외쳤다.—그는 거스르지 않고 로테를 품에서 놓아주고는, 넋을 잃고 로테 앞에 몸을 던졌다.—로테는 몸을 일으켰다. 두려운 혼란 속에서 사랑과 분노 사이에 떨며 로테가 말했다. "이게 마지막이에요! 베르테르! 다시는 저를 보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그 비참한 사람에게 사랑을 가득 담은 눈길을 던지고는 옆방으로 달려가 문을 잠갔다.—베르테르는 로테를 향해 두 팔을 뻗었지만 감히 붙잡지 못했다. 그는 소파에 머리를 기댄 채 바닥에 쓰러져, 그 자세로 반 시간 넘게 있다가 어떤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식탁을 차리러 온 하녀였다. 그는 방 안을 이리저리 걷다가 다시 혼자가 되자 작은 방문 앞으로 가서 나지막이 불렀다. "로테! 로테! 한마디만! 작별 인사만!"—로테는 말이 없었다.—그는 기다리고, 빌고, 또 기다렸다. 그러다 억지로 몸을 떼며 외쳤다. "잘 있어, 로테! 영원히 잘 있어!"
그는 성문에 이르렀다. 이미 그에게 익숙한 문지기들은 말없이 그를 내보내 주었다. 비와 눈이 뒤섞여 흩날렸고, 열한 시가 다 되어서야 그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베르테르가 집에 왔을 때 하인은 주인의 모자가 없다는 걸 알아챘다. 하인은 감히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의 옷을 벗겼다. 옷은 온통 젖어 있었다. 나중에 그 모자는 언덕 비탈에서 골짜기를 내려다보는 바위 위에서 발견되었다. 어둡고 축축한 밤에 그가 떨어지지 않고 어떻게 그 바위에 올랐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잠자리에 들어 오래 잤다. 이튿날 아침 그가 불러서 하인이 커피를 가져갔을 때 그는 글을 쓰고 있었다. 그는 로테에게 쓰는 편지에 다음 대목을 썼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나는 이 눈을 떠. 아, 이 눈은 다시는 해를 보지 못할 거야. 흐리고 안개 낀 날이 해를 가리고 있어. 그러니 슬퍼하라, 자연이여! 너의 아들, 너의 벗, 너의 연인이 끝에 다가간다. 로테, 이건 비할 데 없는 느낌이야. 그런데도 '이게 마지막 아침이다' 하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건 어스름한 꿈에 가장 가까워. 마지막! 로테, 나는 '마지막'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 나는 지금 온 힘을 다해 여기 서 있는데, 내일이면 땅바닥에 축 늘어져 뻗어 있겠지. 죽는다! 그게 무슨 뜻이야? 봐, 우리는 죽음을 이야기할 때 꿈을 꾸고 있어. 나는 많은 사람이 죽는 걸 보았어. 하지만 인간은 너무나 좁아서 제 존재의 시작과 끝을 이해하지 못해. 아직은 내 것, 네 것! 네 것, 아,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런데 한순간 뒤에는—갈라지고, 떨어지고—어쩌면 영원히?—아니야, 로테, 아니야—내가 어떻게 사라질 수 있어? 네가 어떻게 사라질 수 있어? 우리는 있잖아!—사라진다!—그게 무슨 뜻이야? 그것도 그저 낱말, 내 마음에는 아무 느낌도 없는 빈소리일 뿐이야.—죽는다, 로테! 차가운 흙 속에 묻힌다, 그렇게 좁게! 그렇게 어둡게!—내게는 의지할 데 없던 어린 시절의 모든 것이던 여자 친구가 있었어. 그 사람이 죽었고, 나는 그 사람의 운구를 따라가 무덤가에 섰어. 사람들이 관을 내리고, 밧줄이 관 밑으로 스르륵 빠져나와 다시 홱 올라오고, 첫 삽의 흙이 굴러 떨어지자 겁먹은 관이 둔한 소리를 내고, 더 둔하게, 점점 더 둔하게, 마침내 다 덮였어!—나는 무덤 곁에 쓰러졌어—사로잡히고, 뒤흔들리고, 두려움에 떨고, 가장 깊은 속이 찢겼지만,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어—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죽는다! 무덤! 나는 그 말들을 이해하지 못해!
아, 용서해 줘! 용서해 줘! 어제! 어제가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이었어야 했는데. 아, 너 천사여! 처음으로, 처음으로 아무 의심 없이 내 가장 깊은 속을 그 황홀한 느낌이 타오르며 꿰뚫었어. 로테가 나를 사랑해! 로테가 나를 사랑해! 네 입술에서 흘러나온 거룩한 불이 아직 내 입술에서 타고 있어. 새롭고 따뜻한 황홀함이 내 가슴에 있어. 용서해 줘! 용서해 줘!
아, 나는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어. 영혼이 담긴 첫 눈길에서, 첫 악수에서 알았어. 그런데도 내가 다시 떠나 있을 때, 알베르트가 네 곁에 있는 걸 볼 때면 나는 다시 열병 같은 의심 속에 주저앉았어.
그 지긋지긋한 모임에서 네가 나에게 한마디도 할 수 없고 손도 내밀 수 없었을 때 네가 보내 준 꽃들 기억나? 아, 나는 그 앞에 밤새 반이나 무릎을 꿇고 있었어. 그 꽃들이 네 사랑을 내게 도장 찍어 주었어. 하지만 아! 그 인상들은 지나가 버렸어. 거룩하고 눈에 보이는 표징으로 하늘의 충만함을 다해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느낌이 신자의 영혼에서 차츰 다시 빠져나가듯이.
이 모든 건 덧없어. 하지만 어제 네 입술에서 누린 그 타오르는 생명, 내가 내 안에서 느끼는 그 생명은 어떤 영원도 꺼뜨리지 못할 거야! 로테가 나를 사랑해! 이 팔이 로테를 끌어안았고, 이 입술이 로테의 입술 위에서 떨었고, 이 입이 로테의 입에 대고 더듬거렸어. 로테는 내 사람이야! 너는 내 사람이야! 그래, 로테, 영원히.
그런데 알베르트가 네 남편이라는 게 다 뭐야? 남편! 그건 이 세상에서나 그런 거지—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게, 너를 그의 품에서 내 품으로 끌어오고 싶어 하는 게 죄일까? 죄라고? 좋아, 그 죄로 나는 나를 벌하겠어. 나는 그 죄를 하늘의 온 황홀함 속에서 맛보았고, 삶의 향유와 힘을 내 가슴에 빨아들였어. 너는 이 순간부터 내 사람이야! 내 사람이야, 아, 로테! 나는 먼저 가. 나의 아버지께, 너의 아버지께 가. 그분께 하소연하면 그분이 너 올 때까지 나를 위로해 주실 거야. 그러면 나는 너를 맞으러 날아가 너를 붙잡고, 무한하신 분의 얼굴 앞에서 영원한 포옹 속에 네 곁에 머물 거야.
나는 꿈꾸는 게 아니야, 망상하는 게 아니야! 무덤 가까이 오니 더 환해져. 우리는 있을 거야! 우리는 다시 만날 거야! 네 어머니를 만날 거야! 나는 그분을 보고, 찾아내고, 아, 그분 앞에 내 온 마음을 쏟아 놓을 거야! 네 어머니, 너를 꼭 닮은 그분 앞에."
열한 시쯤 베르테르는 하인에게 알베르트가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하인은 그렇다고, 그의 말을 끌고 가는 걸 보았다고 했다. 그러자 주인은 하인에게 봉하지 않은 쪽지 하나를 주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떠나려는 여행에 쓰게 권총을 좀 빌려주시겠어요? 부디 잘 지내세요!"
사랑스러운 부인은 지난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두려워하던 일이 결판이 났다. 예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결판이 났다. 평소 그토록 맑고 가볍게 흐르던 로테의 피는 열병처럼 들끓었고, 천 가지 감정이 그 아름다운 마음을 어지럽혔다. 로테가 가슴에서 느끼는 것은 베르테르의 포옹이 남긴 불이었을까? 그의 무모함에 대한 노여움이었을까?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고 순진하던 날들, 스스로를 걱정 없이 믿던 날들과 지금의 처지를 견주며 느끼는 언짢음이었을까? 남편을 어떻게 맞을 것이며, 털어놓아도 아무 거리낄 것 없지만 차마 털어놓을 엄두가 나지 않는 그 장면을 어떻게 고백할 것인가? 두 사람은 그토록 오랫동안 서로 침묵해 왔는데, 로테가 먼저 그 침묵을 깨고, 하필 이런 때에 남편에게 그토록 뜻밖의 일을 털어놓아야 한단 말인가? 베르테르가 다녀갔다는 소식만으로도 남편이 언짢아할까 봐 벌써 두려웠는데, 이제 이런 뜻밖의 파국까지! 남편이 자기를 온전히 바른 빛으로 보아 주고 아무 선입견 없이 받아들여 주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남편이 자기 영혼 속을 읽어 주기를 바랄 수 있을까? 그렇다고 또, 언제나 수정처럼 맑은 유리처럼 터놓고 서 있었고 자기 감정을 하나도 숨긴 적도, 숨길 수도 없었던 남편 앞에서 꾸밀 수 있을까? 이것도 저것도 로테를 걱정스럽고 당혹스럽게 했다. 그리고 로테의 생각은 자꾸만 베르테르에게로 돌아갔다. 이제 자기에게서 잃어버린 사람, 놓을 수 없는 사람, 그런데도—아아!—그 혼자에게 맡겨 둘 수밖에 없는 사람, 로테를 잃었다면 더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그 사람에게로.
그 순간에는 스스로 분명히 깨닫지 못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자리 잡은 그 막힘이 이제 얼마나 무겁게 로테를 짓눌렀는지! 그토록 분별 있고 그토록 착한 사람들이 어떤 은밀한 차이 때문에 서로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고, 저마다 자기가 옳고 상대가 그르다는 생각에 빠져, 관계가 얽히고 꼬여서, 모든 것이 걸린 바로 그 결정적인 순간에 매듭을 풀 수 없게 되었다. 행복한 허물없음이 좀 더 일찍 두 사람을 다시 가깝게 해 주었더라면, 사랑과 너그러움이 서로 사이에 되살아나 두 사람의 마음을 열어 주었더라면, 어쩌면 우리 친구는 아직 구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거기에 또 하나 묘한 사정이 더해졌다. 우리가 그의 편지들에서 알듯이, 베르테르는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것을 결코 감춘 적이 없었다. 알베르트는 자주 그와 다투었고, 로테와 남편 사이에서도 가끔 그 이야기가 나왔다. 알베르트는 그런 행동에 대해 단호한 거부감을 느꼈기에, 평소 그의 성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떤 예민함으로, 그런 결심이 진지한 것인지 몹시 의심할 까닭이 있다는 뜻을 자주 내비쳤다. 심지어 그 일을 두고 농담까지 하며 자기의 불신을 로테에게 전했다. 그 덕분에 로테는 서글픈 모습이 떠오를 때면 한편으로는 마음을 놓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순간 자기를 괴롭히는 걱정을 남편에게 털어놓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알베르트가 돌아왔고, 로테는 당황한 듯 서둘러 그를 맞으러 나갔다.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은 끝내지 못했고, 이웃 고을의 관리는 융통성 없고 속 좁은 사람이었다. 험한 길도 그를 언짢게 했다.
그는 별일 없었느냐고 물었고, 로테는 서둘러 대답했다. 베르테르가 어제저녁에 왔었다고. 그는 편지가 왔느냐고 물었고, 편지 한 통과 꾸러미들이 그의 방에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는 그리로 건너갔고, 로테는 혼자 남았다. 자기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자가 곁에 있다는 것이 로테의 마음에 새로운 인상을 남겼다. 그의 너그러움과 사랑과 선함을 떠올리자 로테의 마음은 한결 가라앉았다. 로테는 그를 따라가고 싶은 은밀한 끌림을 느끼고, 평소에도 자주 그랬듯 일감을 들고 그의 방으로 갔다. 그는 꾸러미를 뜯어 읽느라 바빴다. 몇몇은 그리 반갑지 않은 내용인 듯했다. 로테가 몇 가지를 묻자 그는 짧게 대답하고는 책상 앞에 서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 시간을 나란히 있었고, 로테의 마음은 점점 어두워졌다. 남편이 아무리 기분이 좋을 때라도 마음에 걸린 것을 털어놓기가 얼마나 어려울지 로테는 느꼈다. 로테는 서글픔에 빠졌고, 그것을 감추고 눈물을 삼키려 애쓸수록 더욱 불안해졌다.
베르테르의 하인 소년이 나타나자 로테는 몹시 당황했다. 소년은 알베르트에게 쪽지를 건넸고, 알베르트는 태연하게 아내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권총을 내줘."—"좋은 여행 되시라고 전해라." 그가 소년에게 말했다.—그 말이 벼락처럼 로테를 덮쳤다. 로테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로테는 천천히 벽 쪽으로 가서 떨리는 손으로 총을 내리고 먼지를 닦고는 머뭇거렸다. 알베르트가 묻는 듯한 눈길로 재촉하지 않았다면 훨씬 더 오래 망설였을 것이다. 로테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그 불행한 도구를 소년에게 건넸고, 소년이 집을 나가자 일감을 챙겨 자기 방으로 갔다. 말할 수 없이 불안한 상태였다. 로테의 가슴은 온갖 무서운 일을 예언했다. 남편 발치에 엎드려 모든 것을, 어제저녁의 일과 자기의 잘못과 자기의 예감을 털어놓으려다가도, 다시 그렇게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남편을 설득해 베르테르에게 가 보게 하리라는 기대는 더더욱 할 수 없었다. 식탁이 차려졌고, 무언가를 물으러 왔다가 곧 가려던—그런데 남은 좋은 친구 하나 덕분에 식탁의 대화는 견딜 만했다. 다들 억지로 말을 하고, 이야기를 하고, 자기를 잊었다.
소년이 권총을 들고 베르테르에게 갔다. 로테가 내주었다는 말을 듣자 그는 황홀해하며 권총을 받았다. 그는 빵과 포도주를 가져오게 하고, 소년에게는 식사하러 가라고 이르고는 앉아서 글을 썼다.
"이것들이 네 손을 거쳤구나. 네가 먼지를 닦았구나. 천 번 입을 맞출게. 네가 이걸 만졌으니! 그리고 하늘의 영이여, 당신은 제 결심을 도우십니다. 그리고 로테, 너는 내게 그 도구를 건네주는구나. 네 손에서 죽음을 받고 싶었던 바로 그 너가. 아! 이제 받는구나. 아, 나는 하인 아이에게 꼬치꼬치 물었어. 너는 그걸 건네며 떨었고, 작별 인사도 하지 않았다지!—아, 슬프다! 슬프다! 작별 인사도 없이!—나를 영원히 너에게 붙들어 맨 그 순간 때문에 너는 나에게 마음을 닫아 버린 걸까? 로테, 천 년이 지나도 그 인상은 지울 수 없어! 그리고 나는 느껴. 너는 너를 위해 이토록 타오르는 사람을 미워할 수 없다는 걸."
식사 뒤에 그는 소년에게 짐을 모두 마저 싸게 하고, 많은 서류를 찢고, 밖에 나가 자잘한 빚들을 정리했다. 그는 집에 돌아왔다가, 비가 오는데도 다시 성문 밖 백작의 정원으로 나가 그 일대를 더 헤매고 다니다가, 밤이 되어서야 돌아와 글을 썼다.
"빌헬름, 나는 마지막으로 들판과 숲과 하늘을 보았어. 너도 잘 있어! 사랑하는 어머니, 저를 용서하세요! 어머니를 위로해 드려, 빌헬름! 하느님이 너희를 축복하시기를! 내 일은 모두 정리했어. 잘 있어! 우리는 다시 만날 거야, 더 기쁘게."
"알베르트, 나는 너에게 나쁘게 갚았는데 너는 나를 용서하는구나. 나는 네 집의 평화를 어지럽혔고, 너희 사이에 불신을 끌어들였어. 잘 있어! 나는 끝내려고 해. 아, 내 죽음으로 너희가 행복해진다면! 알베르트! 알베르트! 그 천사를 행복하게 해 줘! 그리고 하느님의 축복이 너에게 머물기를!"
그날 저녁 그는 서류들을 많이 뒤적이며 많은 것을 찢어 난로에 던지고, 빌헬름 앞으로 주소를 적은 꾸러미 몇 개를 봉했다. 그 안에는 짧은 글들과 토막 난 생각들이 들어 있었는데, 나는 그 가운데 여러 편을 보았다. 열 시에 그는 난로에 땔감을 더 넣게 하고 포도주 한 병을 가져오게 한 뒤, 하인을 잠자리에 들게 했다. 하인의 방은 집안 사람들의 침실과 마찬가지로 저 뒤쪽 멀리 있었다. 하인은 아침 일찍 대기하려고 옷을 입은 채 누웠다. 주인이 여섯 시 전에 역마가 집 앞에 올 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열한 시가 넘어
내 둘레는 모든 게 이토록 고요하고, 내 영혼도 이토록 평온해. 고맙습니다, 하느님. 이 마지막 순간에 이 따뜻함과 이 힘을 주시니.
나는 창가로 가, 사랑하는 로테. 그리고 보아. 폭풍처럼 스쳐 달아나는 구름 사이로 영원한 하늘의 별들이 하나둘 아직 보여! 아니, 너희는 떨어지지 않으리라! 영원하신 분이 너희를 그 가슴에 품고 계시니. 그리고 나도. 나는 큰곰자리의 수레 끌채 별들을 봐. 모든 별자리 가운데 내가 가장 사랑하는 별들이야. 밤에 너에게서 떠나 네 집 대문을 나서면 그 별들이 내 맞은편에 떠 있었어. 얼마나 취한 듯 자주 그 별들을 바라보았는지. 얼마나 자주 두 손을 들어 그 별들을 지금 내가 누리는 지복의 표징으로, 거룩한 이정표로 삼았는지! 그리고 지금도—아, 로테, 너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 게 무엇이 있겠어! 너는 나를 에워싸고 있지 않아? 그리고 나는 아이처럼 만족할 줄 모르고, 거룩한 네가 만졌던 온갖 자잘한 것들을 내 곁으로 끌어모으지 않았어?
사랑하는 실루엣! 그걸 너에게 돌려줄게, 로테. 소중히 여겨 줘. 나는 거기 천 번, 천 번 입을 맞추었고, 나갈 때나 집에 돌아올 때나 천 번 손을 흔들어 인사했어. 네 아버지께 쪽지로 내 시신을 지켜 달라고 부탁드렸어. 교회 묘지 뒤쪽 들판 쪽 모퉁이에 보리수가 두 그루 있어. 거기서 쉬고 싶어. 그분은 벗을 위해 그렇게 해 주실 수 있고, 해 주실 거야. 너도 부탁드려 줘.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엾은 불행한 사람 곁에 자기 몸을 누이라고 할 생각은 없어. 아, 차라리 길가나 외딴 골짜기에 묻어 주었으면. 그러면 제사장과 레위인은 표시된 돌 앞을 성호를 그으며 지나가고, 사마리아 사람은 눈물 한 방울을 흘려 주겠지.
여기, 로테! 죽음의 취기를 마셔야 할 차갑고 무서운 잔을 잡는 데 나는 몸서리치지 않아! 네가 내게 건네주었으니 망설이지 않아.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이렇게 내 삶의 모든 바람과 희망이 이루어지는구나! 이렇게 차갑게, 이렇게 굳은 채로 죽음의 청동 문을 두드리다니.
너를 위해 죽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면! 로테, 너를 위해 나를 바칠 수 있었다면! 네 삶의 평온과 기쁨을 되찾아 줄 수만 있다면 나는 용감하게, 기쁘게 죽을 거야. 하지만 아! 제 사람들을 위해 피를 흘리고, 자기 죽음으로 벗들에게 새롭고 백배나 되는 삶을 불붙여 주는 일은 몇몇 고귀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졌어.
이 옷을 입은 채 묻히고 싶어, 로테. 네가 만졌고, 거룩하게 해 준 옷이야. 네 아버지께도 그렇게 부탁드렸어. 내 영혼은 관 위를 떠돌 거야. 내 주머니는 뒤지지 말아 줘. 내가 동생들 사이에 있던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네가 가슴에 달고 있던 이 연분홍 리본—아, 이 리본에 천 번 입을 맞추고, 아이들에게 그 불행한 친구의 운명을 이야기해 줘. 사랑스러운 아이들! 아이들이 내 둘레에 북적거려. 아, 내가 얼마나 너에게 매달렸는지! 첫 순간부터 너를 놓을 수 없었어!—이 리본은 나와 함께 묻혀야 해. 내 생일에 네가 이걸 선물해 주었지! 내가 그 모든 걸 얼마나 탐하듯 받아들였는지!—아, 그 길이 나를 여기로 데려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어!—마음을 가라앉혀! 부탁이야, 마음을 가라앉혀!
—장전되어 있어—열두 시를 치는구나! 그러면 그렇게 하자!—로테! 로테, 잘 있어! 잘 있어!"
이웃 한 사람이 화약의 섬광을 보고 총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 뒤로 모든 게 조용했기에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침 여섯 시에 하인이 등불을 들고 들어간다. 그는 주인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권총과 피를 본다. 그는 부르고, 주인을 붙잡는다. 대답이 없다. 주인은 그르렁거리는 숨만 쉰다. 그는 의사들에게, 알베르트에게 달려간다. 로테는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 온몸이 떨린다. 로테는 남편을 깨우고, 둘이 일어난다. 하인이 울부짖으며 더듬더듬 소식을 전하자, 로테는 알베르트 앞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의사가 그 불행한 사람에게 왔을 때, 그는 손쓸 수 없는 상태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맥박은 뛰었지만 팔다리는 모두 마비되어 있었다. 그는 오른쪽 눈 위로 머리를 쏘았고, 뇌가 밖으로 터져 나와 있었다. 쓸데없는 줄 알면서도 팔의 핏줄을 따 주었다. 피가 흘렀고, 그는 여전히 숨을 쉬었다.
안락의자 등받이에 묻은 피로 보아, 그는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저지른 뒤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와 경련하며 의자 둘레를 뒹군 것 같았다. 그는 창 쪽으로 기진한 채 반듯이 누워 있었다. 옷을 다 갖춰 입고 장화를 신은 채, 파란 연미복에 노란 조끼 차림이었다.
집 안이, 이웃이, 온 읍내가 들썩였다. 알베르트가 들어왔다. 베르테르는 침대에 눕혀져 이마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벌써 죽은 사람 같았고, 팔다리는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폐에서는 아직 무섭게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약해졌다가 세졌다가 했다. 다들 그의 마지막을 기다렸다.
포도주는 한 잔만 마셨다. 책상 위에는 『에밀리아 갈로티』가 펼쳐져 있었다.
알베르트의 경악에 대해서도, 로테의 비탄에 대해서도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련다.
늙은 관리는 소식을 듣고 말을 달려 들이닥쳐서, 더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죽어 가는 사람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의 큰아들들이 곧 걸어서 뒤따라와, 걷잡을 수 없는 아픔에 침대 곁에 엎드려 그의 손과 입에 입을 맞추었다. 그가 늘 가장 아끼던 맏이는 그가 숨을 거둘 때까지 그의 입술에 매달려 있다가 억지로 떼어 내졌다. 낮 열두 시에 그는 죽었다. 관리가 그 자리에 있었고 여러 조치를 해 둔 덕분에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밤 열한 시쯤 관리는 그가 스스로 골라 둔 자리에 그를 묻게 했다. 노인과 아들들이 운구를 따라갔다. 알베르트는 그럴 수 없었다. 사람들은 로테의 목숨을 걱정했다. 일꾼들이 그를 메고 갔다. 성직자는 아무도 따라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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