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Лев Толстой — Смерть Ивана Ильича (1886)
고등법원 판사 이반 일리치는 남들이 옳다고 여기는 대로, 가볍고 즐겁고 점잖게 살아왔다. 새집 커튼을 달다 옆구리를 부딪친 뒤 시작된 병 앞에서, 가족과 동료와 의사들은 모두 거짓말을 한다. 그를 가엾게 여기는 것은 하인 게라심 하나뿐. 죽음 앞에서 그는 묻는다. 내 삶 전체가 그게 아니었다면?
1장
커다란 법원 청사에서 멜빈스키 사건 공판이 잠시 쉬는 동안, 판사들과 검사가 이반 예고로비치 셰베크의 집무실에 모였고, 이야기는 이름난 크라소프 사건으로 흘러갔다. 표도르 바실리예비치는 이 사건이 관할 밖이라고 우기며 열을 올렸고, 이반 예고로비치는 제 주장을 굽히지 않았으며,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처음부터 논쟁에 끼어들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나눠 받은 「관보」를 훑어보고 있었다.
「여러분!」 하고 그가 말했다. 「이반 일리치가 죽었다는군.」
「설마?」
「자, 읽어 보게.」 그는 아직 잉크 냄새가 나는 새 신문을 표도르 바실리예비치에게 건네며 말했다.
검은 테두리 안에 이렇게 찍혀 있었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 골로비나는 사랑하는 남편, 고등법원 판사 이반 일리치 골로빈이 올해 1882년 2월 4일에 세상을 떠났음을 비통한 마음으로 친척과 지인 여러분께 알립니다. 발인은 금요일 오후 한 시.」
이반 일리치는 모인 사람들의 동료였고,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그는 벌써 몇 주째 앓고 있었고, 병이 낫기 어렵다는 말들이 돌았다. 자리는 그대로 그의 것으로 남아 있었지만, 그가 죽으면 알렉세예프가 그 자리에 앉고, 알렉세예프의 자리에는 빈니코프나 슈타벨이 앉게 되리라는 계산이 있었다. 그래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듣고 집무실에 모인 사람들 저마다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 죽음이 자기나 아는 사람들의 자리 이동이나 승진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하는 것이었다.
「이제 틀림없이 슈타벨이나 빈니코프 자리가 내게 오겠군.」 표도르 바실리예비치는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약속받은 일이고, 이번에 오르면 사무실 수당 말고도 팔백 루블이 더 붙는다.」
「이참에 처남을 칼루가에서 이리로 옮겨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생각했다. 「아내가 무척 좋아하겠지. 이제는 내가 처가 식구들을 위해 한 번도 뭘 해 준 적이 없다는 소리는 못 할 거다.」
「나도 그 사람이 일어나지 못할 줄 알았네.」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소리 내어 말했다. 「안됐어.」
「그런데 대체 무슨 병이었나?」
「의사들도 알아내지 못했다네. 아니, 알아내긴 했는데 저마다 달랐지. 마지막으로 봤을 때 나는 그 사람이 나을 줄 알았네.」
「나는 명절 이후로 한 번도 못 가 봤네. 늘 가 보려고는 했는데.」
「그런데 그 사람 재산은 좀 있었나?」
「부인 앞으로 아주 조금 있는 모양이야. 하지만 보잘것없는 정도지.」
「그래, 가 봐야겠군. 그 집은 지독히 멀리 살았지.」
「그러니까 자네 집에서 멀다는 거지. 자네 집에서는 어디든 멀어.」
「이것 보게, 내가 강 건너 산다고 두고두고 용서를 안 해 주는군.」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셰베크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도시 안 거리가 얼마나 먼지를 두고 이야기하다가 공판정으로 들어갔다.
이 죽음이 저마다에게 불러일으킨, 그로 인해 생길지 모르는 자리 이동과 직무상의 변화에 대한 계산 말고도, 가까운 지인이 죽었다는 사실 자체는 그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그렇듯 죽은 것이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라는 기쁨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그 사람이 죽었군. 그런데 나는 이렇게 멀쩡하단 말이야.」 저마다 그렇게 생각하거나 느꼈다.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 이른바 이반 일리치의 친구라는 사람들은 이제 몹시 지루한 예의상의 의무를 치러야 한다는 것, 추도 예배에 가고 미망인을 찾아가 조문해야 한다는 것도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가장 가까운 사이는 표도르 바실리예비치와 표트르 이바노비치였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법률학교 동창이었고, 자기가 이반 일리치에게 신세를 졌다고 여기고 있었다.
점심 자리에서 아내에게 이반 일리치가 죽었다는 소식과 처남을 자기네 관할로 옮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전한 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낮잠도 자지 않고 연미복을 입고 이반 일리치의 집으로 갔다.
이반 일리치네 집 현관 앞에는 사륜마차 한 대와 삯마차 두 대가 서 있었다. 아래층 현관의 옷걸이 옆에는 술이 달리고 가루로 반짝반짝 닦은 금실 테를 두른 비단 관 뚜껑이 벽에 기대어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부인 둘이 모피 외투를 벗고 있었다. 하나는 이반 일리치의 누이로 아는 사람이었고, 다른 하나는 모르는 부인이었다. 표트르 이바노비치의 동료 슈바르츠가 위층에서 내려오다가 맨 위 계단에서 들어오는 그를 보고 멈춰 서서, 「이반 일리치가 어리석게 일을 처리했군. 우리 같으면 어림도 없지.」 하고 말하는 듯이 눈짓을 했다.
영국식 구레나룻을 기른 슈바르츠의 얼굴과 연미복을 입은 마른 몸 전체에는 언제나처럼 우아한 엄숙함이 있었는데, 늘 슈바르츠의 장난스러운 성격과 어긋나던 이 엄숙함이 이 자리에서는 유난히 묘한 맛을 풍겼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그렇게 생각했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부인들을 앞세우고 천천히 그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슈바르츠는 내려오지 않고 위에서 멈춰 섰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그 까닭을 알았다. 오늘 밤 어디서 빈트(카드놀이)를 할지 약속하고 싶은 게 분명했다. 부인들은 계단을 올라 미망인에게로 갔고, 슈바르츠는 진지하게 다문 단단한 입술과 장난기 어린 눈길로, 눈썹을 까딱해 표트르 이바노비치에게 오른쪽, 죽은 사람이 있는 방을 가리켰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이런 때면 늘 그렇듯, 거기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리둥절한 채로 들어갔다. 한 가지 아는 것은, 이런 경우 성호를 긋는 것은 절대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절도 해야 하는지는 그다지 확신이 없어서 그는 중간을 택했다. 방에 들어서자 성호를 그으면서 조금 절을 하는 듯한 시늉을 한 것이다. 손과 머리의 움직임이 허락하는 만큼 그는 그러면서 방 안을 둘러보았다. 조카들인 듯한 젊은이 둘이, 하나는 김나지움 학생이었는데, 성호를 그으며 방을 나가고 있었다. 노부인 하나가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리고 눈썹을 이상하게 치켜올린 부인이 그 노부인에게 무언가 속삭이고 있었다. 프록코트를 입은 부제는 기운차고 단호하게, 어떤 반박도 허락하지 않는 투로 무언가를 소리 높여 읽고 있었다. 식당 일을 보는 머슴 게라심은 가벼운 걸음으로 표트르 이바노비치 앞을 지나며 바닥에 무언가를 뿌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곧 썩어 가는 시체의 희미한 냄새를 느꼈다. 마지막으로 이반 일리치를 찾아왔을 때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서재에서 이 머슴을 보았었다. 그는 병구완을 맡고 있었고, 이반 일리치는 그를 유난히 아꼈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관과 부제와 구석 탁자 위 성상 사이의 어중간한 방향으로 줄곧 성호를 긋고 가볍게 절을 했다. 그러다 성호 긋는 손짓이 너무 길어진 것 같아지자 멈추고 죽은 사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들이 언제나 그렇듯 유난히 무겁게, 죽은 사람답게, 뻣뻣해진 팔다리를 관 속 깔개에 파묻고, 영원히 숙여진 머리를 베개에 얹은 채 누워 있었다. 그리고 죽은 사람들이 언제나 그렇듯, 움푹 꺼진 관자놀이 위로 머리가 벗어진 누렇고 밀랍 같은 이마와, 윗입술을 짓누르는 듯한 뾰족한 코를 내밀고 있었다. 그는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못 본 사이에 많이 변했고 더 여위었지만, 모든 죽은 사람이 그렇듯 그의 얼굴은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아름다웠고, 무엇보다 더 의미심장했다. 얼굴에는 해야 할 일을 했고, 그것도 올바르게 했다는 표정이 있었다. 게다가 그 표정에는 산 사람들에 대한 꾸짖음이나 일깨움 같은 것도 있었다. 그 일깨움은 표트르 이바노비치에게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것, 적어도 자기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어쩐지 불쾌해져서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한 번 더 서둘러 성호를 긋고, 자기가 느끼기에도 너무 서둘러, 예의에 어울리지 않게 몸을 돌려 문으로 갔다. 슈바르츠는 두 다리를 넓게 벌리고 선 채 등 뒤로 두 손을 모아 실크해트를 만지작거리며 옆방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난스럽고 말끔하고 멋진 슈바르츠의 모습을 한 번 보는 것만으로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기분이 상쾌해졌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슈바르츠가 이런 일보다 한 수 위에 있어서 우울한 인상 따위에 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모습 자체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반 일리치의 추도 예배라는 사건은 결코 회의 진행 규칙이 깨졌다고 인정할 만한 충분한 사유가 될 수 없다. 즉 오늘 밤, 하인이 불을 붙이지 않은 새 초 네 자루를 세우는 동안 카드 한 벌을 뜯으며 탁 소리를 내는 일을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다. 대체로 이 사건이 오늘 밤을 즐겁게 보내는 데 방해가 될 거라고 여길 근거는 없다. 그는 지나가는 표트르 이바노비치에게 그 말을 속삭이며, 표도르 바실리예비치네 집에서 한 판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오늘 밤 빈트를 할 팔자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키가 작고 뚱뚱한 여자로, 온갖 애를 써서 그렇지 않게 꾸몄는데도 어깨에서 아래로 갈수록 퍼지는 몸매였는데, 온통 검은 옷을 입고 레이스로 머리를 덮고 관 맞은편에 서 있던 그 부인처럼 이상하게 치켜올린 눈썹을 하고, 다른 부인들과 함께 자기 방에서 나와 그들을 죽은 사람의 방 문간까지 배웅하고 말했다.
「곧 추도 예배가 시작됩니다. 들어가시지요.」
슈바르츠는 애매하게 고개를 숙이고 멈춰 섰는데, 이 권유를 받아들이지도 거절하지도 않는 것이 분명했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표트르 이바노비치를 알아보고 한숨을 쉬더니 그에게 바짝 다가가 손을 잡고 말했다.
「당신이 이반 일리치의 참된 친구였다는 걸 알아요…….」 그러고는 그 말에 걸맞은 행동을 기다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저쪽 방에서 성호를 그어야 했던 것처럼, 여기서는 손을 잡고 한숨을 쉬며 「믿어 주십시오!」 하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나니 바라던 결과가 나왔다는 것을 느꼈다. 그도 감동했고 그녀도 감동했다.
「저쪽에서 시작하기 전에 가시지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미망인이 말했다. 「팔을 좀 빌려 주세요.」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팔을 내밀었고, 두 사람은 안쪽 방으로 향했다. 슈바르츠 곁을 지나가자 그는 서글프게 표트르 이바노비치에게 눈짓을 했다. 「빈트는 글렀군! 서운해 마시게, 다른 짝을 구하지. 자네가 풀려나면 다섯이서라도 하세.」 그의 장난스러운 눈길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더 깊고 더 슬프게 한숨을 쉬었고,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고마운 듯 그의 손을 꼭 쥐었다. 분홍빛 크레톤 천을 바르고 침침한 램프가 켜진 그녀의 응접실에 들어서자 두 사람은 탁자 곁에 앉았다. 그녀는 소파에,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스프링이 망가져서 앉으면 삐딱하게 꺼지는 나지막한 푸프에 앉았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다른 의자에 앉으라고 말해 주려 했지만, 지금 자기 처지에 그런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 그만두었다. 그 푸프에 앉으면서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이반 일리치가 이 응접실을 꾸밀 때 바로 이 초록 잎사귀 무늬 분홍 크레톤 천을 두고 자기와 의논하던 일을 떠올렸다. 소파에 앉으려고 탁자 곁을 지나가다가(대체로 응접실은 자질구레한 물건과 가구로 가득했다) 미망인은 검은 망토의 검은 레이스를 탁자 조각 장식에 걸고 말았다.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그것을 떼 주려고 몸을 일으키자, 짐을 벗은 푸프가 그의 밑에서 들썩이며 그를 떠밀기 시작했다. 미망인이 직접 레이스를 떼기 시작했고,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다시 앉아 밑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푸프를 눌러 앉혔다. 그런데 미망인이 레이스를 다 떼지 못해서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또 일어났고, 또 푸프가 반란을 일으키더니 딸깍 소리까지 냈다. 이 모든 일이 끝나자 그녀는 깨끗한 마 손수건을 꺼내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레이스 사건과 푸프와의 싸움으로 마음이 식어서 얼굴을 찌푸린 채 앉아 있었다. 이 거북한 자리를 깬 것은 이반 일리치네 집사 소콜로프였다. 그는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가 정한 묘지 자리가 이백 루블이 든다고 알리러 왔다. 그녀는 울음을 그치고 희생자 같은 얼굴로 표트르 이바노비치를 보더니, 너무 괴롭다고 프랑스어로 말했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굳은 확신을 나타내는 말 없는 몸짓을 했다.
「담배 피우세요.」 그녀는 너그럽고도 넋이 빠진 목소리로 말하고는 소콜로프와 묘지 값 문제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그녀가 여러 가지 땅값을 아주 꼼꼼히 캐묻고 어느 것으로 할지 정하는 것을 들었다. 게다가 묘지 이야기를 마치자 그녀는 성가대 일까지 지시했다. 소콜로프가 나갔다.
「제가 다 직접 하고 있어요.」 그녀는 탁자 위의 앨범들을 한쪽으로 밀치면서 표트르 이바노비치에게 말했다. 그리고 담뱃재가 탁자를 위협하는 것을 보고는 지체 없이 재떨이를 그에게 밀어 주며 말했다. 「슬퍼서 실제적인 일을 못 한다고 우기는 건 위선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오히려, 무언가가 저를 위로할 수는 없어도…… 기분을 돌릴 수 있다면 그건 바로 그이를 위한 일들이에요.」 그녀는 울려는 듯 다시 손수건을 꺼냈다가, 갑자기 마음을 다잡는 듯 몸을 추스르고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신께 볼일이 있어요.」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고개를 숙였다. 그의 밑에서 곧바로 꿈틀거리기 시작한 푸프의 스프링이 풀려나지 않게 조심하면서.
「마지막 며칠 동안 그이는 지독하게 괴로워했어요.」
「많이 괴로워했습니까?」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물었다.
「아아, 지독했어요! 마지막 몇 분이 아니라 몇 시간을 그이는 쉬지 않고 소리를 질렀어요. 사흘 밤낮을 목소리 한 번 쉬지 않고 소리를 질렀어요. 견딜 수가 없었어요. 제가 그걸 어떻게 견뎌 냈는지 모르겠어요. 문 세 개 너머까지 들렸어요. 아아! 제가 무엇을 견뎌 냈는지!」
「그런데 정말 정신은 있었습니까?」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물었다.
「네.」 그녀가 속삭였다. 「마지막 순간까지요. 죽기 십오 분 전에 저희와 작별하고, 볼로댜를 데리고 나가 달라고까지 했어요.」
그렇게 가까이 알던 사람, 처음엔 명랑한 소년이자 학생이었고 나중엔 어른이 된 카드 짝이었던 사람의 괴로움을 생각하자, 자기와 이 여자의 위선을 불쾌하게 의식하고 있었는데도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갑자기 몸서리가 쳐졌다. 그는 또다시 그 이마와 입술을 짓누르던 코를 보았고, 자기 자신이 무서워졌다.
「사흘 밤낮의 지독한 고통, 그리고 죽음. 그건 지금 당장, 언제든 내게도 닥칠 수 있잖은가.」 그는 이렇게 생각했고, 한순간 무서워졌다. 그러나 곧 어떻게 된 건지 자기도 모르게, 그것은 이반 일리치에게 일어난 일이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며 자기에게는 일어나서도 안 되고 일어날 수도 없다는 익숙한 생각이 도우러 왔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우울한 기분에 굴복하는 것인데, 슈바르츠의 얼굴에서 분명히 드러나듯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그렇게 따져 보고 나자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마음이 놓였고, 마치 죽음이란 이반 일리치에게나 어울리는 모험이지 자기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인 것처럼, 이반 일리치의 임종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자세히 묻기 시작했다.
이반 일리치가 겪은, 참으로 지독한 몸의 고통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그 자세한 내용을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이반 일리치의 고통이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의 신경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미망인은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고 여긴 것이 분명했다.
「아아, 표트르 이바노비치, 얼마나 괴로운지, 얼마나 지독하게 괴로운지, 얼마나 지독하게 괴로운지.」 그러고는 그녀는 또 울기 시작했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한숨을 쉬며 그녀가 코를 풀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코를 풀자 그가 말했다.
「믿어 주십시오…….」 그러자 그녀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에게 온 진짜 볼일인 것이 분명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볼일이란 남편의 죽음을 계기로 나라에서 돈을 어떻게 받아 낼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녀는 연금에 대해 표트르 이바노비치에게 조언을 구하는 척했지만, 그는 그녀가 자기도 모르는 것까지, 이 죽음을 계기로 나라에서 뽑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아주 자세히 알고 있다는 것, 그런데도 알고 싶은 것은 어떻게든 돈을 더 뽑아낼 수는 없겠느냐는 것임을 알았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그런 방법을 궁리해 내려고 애써 보았지만, 잠시 생각한 끝에 체면상 우리 정부의 인색함을 좀 욕하고는, 더는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한숨을 쉬었고, 손님을 어떻게 돌려보낼까 궁리하기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그것을 알아채고 담배를 끄고 일어나 악수를 하고 현관으로 갔다.
이반 일리치가 골동품 가게에서 사 오고 무척 좋아하던 시계가 있는 식당에서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신부와 추도 예배에 온 몇몇 지인을 만났고, 아는 얼굴인 아름다운 아가씨, 이반 일리치의 딸을 보았다. 그녀는 온통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아주 가느다란 허리가 더 가늘어 보였다. 그녀는 어둡고 단호한, 거의 성난 모습이었다. 그녀는 마치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무언가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인사했다. 딸 뒤에는 역시 기분이 상한 얼굴로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아는 부유한 젊은이, 들은 바로는 그녀의 약혼자인 예심판사가 서 있었다. 그는 두 사람에게 침울하게 고개를 숙이고 죽은 사람의 방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계단 밑에서 이반 일리치를 몹시 닮은 김나지움 학생 아들의 작은 모습이 나타났다.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법률학교 시절 기억하는 꼬마 이반 일리치였다. 눈은 울어서 부어 있었고, 열서너 살 먹은 깨끗지 못한 소년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그런 눈이었다. 소년은 표트르 이바노비치를 보자 뚱하고도 부끄러운 듯 얼굴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죽은 사람의 방으로 들어갔다. 추도 예배가 시작되었다. 촛불, 신음, 향, 눈물, 흐느낌.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얼굴을 찌푸리고 제 앞의 발을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그는 죽은 사람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고, 끝까지 마음을 약하게 하는 영향에 굴하지 않았으며, 가장 먼저 나간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현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식당 머슴 게라심이 죽은 사람의 방에서 뛰어나오더니, 억센 두 손으로 모피 외투들을 죄다 뒤적여 표트르 이바노비치의 외투를 찾아 건넸다.
「그래, 게라심?」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무슨 말이든 하려고 말했다. 「안됐지?」
「하느님 뜻이지요. 우리도 다 그리 갈 겁니다요.」 게라심은 희고 가지런한 농사꾼의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러고는 한창 일에 바쁜 사람처럼 날쌔게 문을 열고 마부를 불러 표트르 이바노비치를 태워 주더니, 또 무슨 할 일이 없나 궁리하는 듯 현관 계단으로 뛰어 돌아갔다.
향과 시체와 석탄산 냄새를 맡은 뒤라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니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유난히 기분이 좋았다.
「어디로 모실까요?」 마부가 물었다.
「아직 늦지 않았군. 표도르 바실리예비치네 집에 들르세.」 그리고 표트르 이바노비치는 갔다. 그리고 과연 첫판이 끝날 무렵에 닿아서, 다섯 번째로 끼어들기에 딱 좋았다.
2장
이반 일리치가 살아온 이야기는 더없이 단순하고 평범하며, 더없이 끔찍했다.
이반 일리치는 마흔다섯에 고등법원 판사로 죽었다. 그는 페테르부르크의 여러 부처와 국을 돌며 출세한 관리의 아들이었다. 그런 출세는 사람을, 무언가 중요한 직무를 맡기에는 쓸모없다는 게 뻔히 드러나면서도 오랜 근무 경력과 관등 덕분에 쫓겨나지는 않는 처지로 데려간다. 그래서 그들은 지어낸 허울뿐인 자리와 허울이 아닌 수천 루블, 육천에서 일만 루블을 받으며 그것으로 늘그막까지 산다.
쓸모없는 여러 기관의 쓸모없는 위원이던 3등관 일랴 예피모비치 골로빈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고, 이반 일리치는 둘째였다. 맏아들은 아버지와 똑같은 출세 길을 걸었는데 다른 부처에서였고, 월급이 관성처럼 따라오는 근무 연한에 벌써 가까워지고 있었다. 셋째 아들은 실패자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일을 망쳐 놓고 지금은 철도에서 일했다. 아버지와 형들, 특히 형수들은 그와 마주치기를 싫어했을 뿐 아니라 꼭 필요하지 않으면 그가 있다는 것조차 떠올리지 않았다. 누이는 그레프 남작에게 시집갔는데, 그 남작도 장인과 똑같은 페테르부르크 관리였다. 이반 일리치는 사람들 말대로 집안의 자랑(le phénix de la famille)이었다. 그는 맏형처럼 차갑고 꼼꼼하지도 않았고 막내처럼 막 나가지도 않았다. 그는 그 둘의 중간, 영리하고 활달하고 호감 가는 점잖은 사람이었다. 그는 막냇동생과 함께 법률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막내는 졸업하지 못하고 5학년 때 쫓겨났지만, 이반 일리치는 과정을 잘 마쳤다. 법률학교 시절부터 그는 벌써 뒷날 평생 그러했던 사람이었다. 유능하고 명랑하고 사람 좋고 사교적이지만, 자기 의무라고 여기는 일은 엄격히 해내는 사람. 그리고 그가 자기 의무라고 여기는 것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는 모든 것이었다. 그는 소년 시절에도,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아첨꾼은 아니었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파리가 불빛에 끌리듯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끌려, 그들의 몸가짐과 삶을 보는 눈을 제 것으로 삼고 그들과 친한 사이를 맺었다.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의 열정은 모두 그에게 큰 자국을 남기지 않고 지나갔다. 그는 육욕에도 허영에도, 그리고 끝 무렵 상급반에서는 자유주의에도 빠졌지만, 모두 그의 감각이 정확히 짚어 주는 일정한 선 안에서였다.
법률학교 시절 그가 저지른 짓들 가운데에는, 저지르는 그때는 몹시 추잡하게 여겨져 스스로가 역겨워지던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런 짓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하며 그들이 그것을 나쁘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나자, 그는 그것을 좋은 일이라고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까맣게 잊어버렸고, 그 기억 때문에 조금도 괴로워하지 않았다.
10등관으로 법률학교를 나와 아버지에게서 제복 마련할 돈을 받자, 이반 일리치는 샤르메르 양복점에 옷을 맞추고, 시곗줄 장식에 「끝을 생각하라(respice finem)」라고 새긴 작은 메달을 달고, 황족 교장과 사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동창들과 도논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가장 좋은 가게에서 맞추고 사들인 유행하는 새 가방이며 속옷이며 옷이며 면도 도구며 세면도구며 무릎 담요를 들고, 아버지가 마련해 준 지사 특별 보좌관 자리로 지방에 내려갔다.
지방에서 이반 일리치는 곧바로 법률학교 시절과 똑같이 가볍고 즐거운 처지를 만들었다. 그는 일하며 출세했고, 그러면서도 즐겁고 점잖게 놀았다. 이따금 윗사람의 명을 받아 군 단위로 출장을 가서, 높은 사람에게나 낮은 사람에게나 품위 있게 처신했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정확함과 청렴함으로 맡은 일을 해냈는데, 주로 구교도 분리파 사건이었다.
직무에서 그는 젊고 가벼운 놀이를 좋아하는 데도 불구하고 몹시 신중하고 사무적이며 엄격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교 자리에서는 자주 장난스럽고 재치 있었고, 늘 사람 좋고 점잖아서, 그를 집안사람처럼 대하던 상관 부부의 말대로 좋은 녀석(bon enfant)이었다.
지방에서는 멋쟁이 법률가에게 매달린 어느 부인과의 관계도 있었고, 양장점 여자도 있었다. 지방에 들른 시종 무관들과의 술자리도 있었고, 저녁 뒤에 외딴 거리로 가는 나들이도 있었다. 상관과 상관 부인에게까지 비위를 맞추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아주 품위 있는 점잖음의 빛을 띠고 있어서 나쁜 말로 부를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은 「젊음은 지나가야 하는 법(il faut que jeunesse se passe)」이라는 프랑스 속담의 항목에만 들어맞았다. 모든 일은 깨끗한 손으로, 깨끗한 셔츠를 입고, 프랑스어를 섞어 가며,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높은 사교계에서, 그러니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인정 아래 일어났다.
그렇게 이반 일리치는 다섯 해를 일했고, 직무에 변화가 찾아왔다. 새 사법 제도가 생겨났다. 새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반 일리치는 그 새 사람이 되었다.
이반 일리치에게 예심판사 자리가 제안되었고, 이반 일리치는 그 자리가 다른 현에 있어서 자리 잡은 관계들을 버리고 새로 맺어야 했는데도 받아들였다. 친구들이 그를 배웅하며 단체 사진을 찍고 은 담배 케이스를 선물했고, 그는 새 임지로 떠났다.
예심판사로서도 이반 일리치는 특별 보좌관 시절과 마찬가지로 품위 있고(comme il faut) 점잖으며, 직무와 사생활을 가를 줄 알고, 두루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예심판사 일 자체는 이반 일리치에게 전의 일보다 훨씬 흥미롭고 매력적이었다. 전의 일에서는 샤르메르에서 맞춘 제복을 입고 벌벌 떨며 접견을 기다리는 청원자들과 그를 부러워하는 관리들 앞을 느긋한 걸음으로 지나 곧장 상관 집무실로 들어가 함께 궐련을 피우며 차를 마시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그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 사람은 출장을 갔을 때의 경찰서장과 분리파 신도들뿐이었다. 그는 그런, 자기에게 매인 사람들을 정중하게, 거의 동료처럼 대하기를 좋아했고, 자기가 짓밟을 수도 있는 사람이 이렇게 다정하고 소탈하게 대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기를 좋아했다. 그런 사람은 그때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예심판사가 되자 이반 일리치는 모든 사람, 하나도 빠짐없이, 가장 거드름 피우는 거만한 사람들까지 모두 자기 손안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머리글이 찍힌 종이에 정해진 몇 마디만 써 주면, 그 거드름 피우는 거만한 사람이 피고나 증인으로 끌려올 것이고, 그가 앉으라고 하지 않으면 그 앞에 서서 그의 물음에 대답해야 할 것이었다. 이반 일리치는 결코 이 권력을 함부로 쓰지 않았고, 도리어 그것이 드러나는 것을 누그러뜨리려 애썼다. 하지만 이 권력을 의식하는 것과 그것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새 직무의 가장 큰 재미이자 매력이었다. 직무 자체, 곧 예심에서 이반 일리치는 직무와 상관없는 모든 사정을 자기에게서 떼어 내고, 아무리 복잡한 사건이라도 겉모습만 서류에 비치게 하는 형식으로 싸는 요령을 무척 빨리 익혔다. 그 형식에서는 자기 개인의 견해가 완전히 빠지고, 무엇보다 요구되는 모든 절차가 지켜졌다. 이것은 새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1864년 법령을 실무에 적용하는 방식을 다듬어 낸 첫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새 도시로 예심판사가 되어 옮겨 가자, 이반 일리치는 새로 사람을 사귀고 연줄을 맺었으며, 자기 처신을 새로 세우고 조금 다른 말투를 택했다. 그는 현 당국과는 품위 있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도시에 사는 법조인과 부유한 귀족들 가운데 가장 좋은 무리를 골랐으며, 정부에 대한 가벼운 불만과 적당한 자유주의와 교양 있는 시민 의식의 말투를 택했다. 그러면서 옷차림의 우아함은 조금도 바꾸지 않은 채, 이반 일리치는 새 직무에서 턱을 밀지 않기로 하고 수염이 제멋대로 자라게 두었다.
새 도시에서도 이반 일리치의 삶은 무척 즐겁게 꾸려졌다. 지사에게 반기를 드는 사교계는 사이좋고 괜찮았다. 월급도 더 많았다. 그리고 그 무렵 이반 일리치가 시작한 휘스트(카드놀이)가 삶에 적지 않은 즐거움을 더했다. 그는 명랑하고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아주 섬세하게 카드를 치는 재주가 있어서, 대체로 늘 따는 쪽이었다.
새 도시에서 두 해를 일한 뒤 이반 일리치는 장래의 아내를 만났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 미헬은 이반 일리치가 드나들던 무리에서 가장 매력 있고 영리하고 빛나는 아가씨였다. 예심판사 일의 고단함을 풀어 주는 여러 오락과 휴식 가운데 하나로, 이반 일리치는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와 장난스럽고 가벼운 관계를 맺었다.
특별 보좌관이었을 때 이반 일리치는 대체로 춤을 추었다. 예심판사가 되고 나서는 예외로만 추었다. 그가 추는 춤은 이런 뜻이었다. 나는 새 제도 소속이고 5등급이지만, 춤이라면 이 방면에서도 남보다 잘한다는 걸 보여 줄 수 있다. 그렇게 그는 이따금 저녁 모임 끝 무렵에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와 춤을 추었고, 주로 그 춤을 추는 동안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반 일리치는 결혼하겠다는 뚜렷하고 확고한 생각은 없었지만, 아가씨가 자기를 사랑하게 되자 스스로에게 그 물음을 던졌다. 「정말이지, 결혼 못 할 게 뭐 있나?」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가씨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좋은 귀족 가문 출신에 얼굴도 괜찮았고, 약간의 재산도 있었다. 이반 일리치는 더 빛나는 혼처를 기대할 수도 있었지만, 이것도 좋은 혼처였다. 이반 일리치에게는 월급이 있었고, 그녀에게도 그만큼은 있으리라고 그는 기대했다. 좋은 집안이었다. 그녀는 사랑스럽고 예쁘고 아주 점잖은 여자였다. 이반 일리치가 약혼녀를 사랑했고 그녀에게서 자기 인생관에 대한 공감을 찾았기 때문에 결혼했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가 속한 사회 사람들이 그 혼처를 좋게 보았기 때문에 결혼했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옳지 않을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두 가지 이유 모두로 결혼했다. 그런 아내를 얻음으로써 자기에게 즐거운 일을 하는 동시에,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반 일리치는 결혼했다.
결혼하는 과정 자체와 결혼 생활 첫 무렵은, 부부의 애무며 새 가구며 새 그릇이며 새 리넨과 더불어 아내가 임신하기 전까지 아주 잘 흘러가서, 이반 일리치는 결혼이 그가 삶 일반에 걸맞다고 여기던 가볍고 즐겁고 명랑하며 언제나 점잖고 사교계의 인정을 받는 삶의 성격을 깨뜨리기는커녕 더 북돋아 주리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내가 임신하고 몇 달이 지나자, 기대할 수도 없었고 도저히 떨쳐 낼 수도 없는, 무언가 새롭고 뜻밖이고 불쾌하고 괴롭고 점잖지 못한 것이 나타났다.
아내는 이반 일리치가 보기에 아무 까닭도 없이, 그가 속으로 말한 대로 그저 심심풀이로(de gaieté de cœur) 삶의 즐거움과 점잖음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무 이유도 없이 그를 질투했고, 자기에게 살갑게 굴라고 요구했고, 모든 일에 트집을 잡았고, 불쾌하고 거친 소동을 벌였다.
처음에 이반 일리치는 전에 자기를 구해 주던 바로 그 가볍고 점잖은 삶의 태도로 이 불쾌한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는 아내의 기분을 모른 체하고 전처럼 가볍고 즐겁게 살아 보려 했다. 친구들을 불러 카드판을 벌였고, 혼자 클럽이나 친구 집에 가 보기도 했다. 그런데 한번은 아내가 어찌나 기세등등하게 거친 말로 그를 욕하기 시작하더니, 그가 자기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때마다 어찌나 끈질기게 욕을 계속하던지, 그가 굴복할 때까지, 곧 집에 앉아서 자기처럼 우울해할 때까지 절대 그만두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은 것이 분명해서, 이반 일리치는 소스라쳤다. 그는 부부 생활이, 적어도 자기 아내와의 부부 생활이 언제나 삶의 즐거움과 점잖음에 이바지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주 그것을 깨뜨린다는 것, 그러니 그런 침해로부터 자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반 일리치는 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직무는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를 누를 수 있는 단 하나의 것이었고, 이반 일리치는 직무와 거기서 나오는 의무를 통해 아내와 싸우며 자기만의 독립된 세계를 울타리 쳐 지켰다.
아이가 태어나고, 젖을 먹이려는 시도와 그에 따른 여러 실패가 있고, 아이와 엄마의 진짜 병과 상상 속의 병이 있어서 이반 일리치에게 관여하라고 요구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되자, 가정 밖에 자기 세계를 울타리 쳐 두어야 할 필요는 더욱 절실해졌다.
아내가 점점 더 짜증스럽고 요구가 많아질수록 이반 일리치는 자기 삶의 무게중심을 점점 더 직무로 옮겼다. 그는 전보다 직무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더 야심만만해졌다.
얼마 안 가, 결혼하고 한 해도 지나지 않아 이반 일리치는 깨달았다. 부부 생활이란 삶에 약간의 편의를 주기는 하지만 실은 아주 복잡하고 괴로운 일이며, 그에 대해 자기 의무를 다하려면, 곧 점잖고 사교계의 인정을 받는 삶을 살려면, 직무에 대해 그러하듯 일정한 태도를 다듬어 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반 일리치는 부부 생활에 대한 그런 태도를 다듬어 냈다. 그는 가정생활에 대해 그것이 줄 수 있는 집밥과 안주인과 잠자리의 편의만을, 그리고 무엇보다 여론이 정해 놓은 겉모양의 점잖음만을 요구했다. 나머지에서는 명랑한 즐거움을 찾았고, 그것을 찾으면 무척 고마워했다. 반대로 거절과 투덜거림을 만나면 곧바로 따로 울타리 쳐 둔 자기 직무의 세계로 물러나 거기서 즐거움을 찾았다.
이반 일리치는 훌륭한 관리로 인정받아 세 해 뒤 검사보가 되었다. 새 의무, 그 중요성, 누구든 재판에 넘겨 감옥에 보낼 수 있는 힘, 연설의 공개성, 이 일에서 이반 일리치가 거둔 성공, 이 모든 것이 그를 직무에 더욱 끌어당겼다.
아이들이 생겨났다. 아내는 점점 더 투덜거리고 성을 냈지만, 이반 일리치가 다듬어 낸 가정생활에 대한 태도는 그를 그녀의 투덜거림에 거의 꿈쩍도 하지 않게 만들었다.
한 도시에서 일곱 해를 일한 뒤 이반 일리치는 다른 현의 검사 자리로 옮겨졌다. 그들은 이사했다. 돈은 적었고, 아내는 옮겨 간 곳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월급은 전보다 많았지만 생활비가 더 들었다. 게다가 아이 둘이 죽어서 이반 일리치에게 가정생활은 더욱 불쾌해졌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이 새 거처에서 일어나는 온갖 불행을 두고 남편을 탓했다. 부부 사이의 이야깃거리 대부분은, 특히 아이들 교육은, 싸움의 기억이 얽힌 문제로 이어졌고, 싸움은 언제라도 불붙을 태세였다. 남은 것이라곤 이따금 부부에게 찾아오는 드문 사랑의 시기뿐이었는데,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잠시 대었다가 다시 서로 멀어지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숨은 적의의 바다로 나아가는 작은 섬들이었다. 이 멀어짐은, 이반 일리치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면 그를 슬프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이 처지를 정상일 뿐 아니라 가정에서 하는 모든 활동의 목표로까지 인정하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이런 불쾌함에서 자기를 점점 더 풀어놓고, 그것에 해롭지 않고 점잖은 성격을 입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점점 줄이고, 어쩔 수 없이 함께해야 할 때는 바깥사람을 곁에 두어 자기 처지를 지키려고 애씀으로써 그것을 이루었다. 무엇보다 이반 일리치에게는 직무가 있었다. 삶의 모든 관심이 그에게는 직무의 세계에 모였다. 그리고 그 관심이 그를 사로잡았다. 자기 권력에 대한 의식, 누구든 망치고 싶은 사람을 망칠 수 있다는 가능성, 법정에 들어설 때와 부하들을 만날 때의 겉으로라도 드러나는 위엄, 윗사람과 아랫사람 앞에서의 성공,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스스로 느끼던 사건 처리 솜씨, 이 모든 것이 그를 기쁘게 했고, 동료들과의 대화며 식사며 휘스트와 더불어 그의 삶을 채웠다. 그래서 대체로 이반 일리치의 삶은 그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여기는 대로, 즐겁고 점잖게 흘러갔다.
그렇게 그는 또 일곱 해를 살았다. 맏딸은 벌써 열여섯 살이었고, 아이 하나가 또 죽었으며, 다툼거리인 김나지움 학생 사내아이가 남아 있었다. 이반 일리치는 아들을 법률학교에 보내고 싶었지만,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그에게 앙갚음하듯 김나지움에 보냈다. 딸은 집에서 공부하며 잘 자랐고, 아들도 공부를 곧잘 했다.
3장
결혼한 뒤 열일곱 해 동안 이반 일리치의 삶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는 이제 고참 검사가 되어, 더 바라던 자리를 기다리며 몇 번의 전보를 거절하던 참이었는데, 뜻밖에 불쾌한 일이 하나 생겨 그의 평온한 삶을 뒤흔들어 놓을 뻔했다. 이반 일리치는 대학 도시의 법원장 자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고페가 어쩌다 앞질러 그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이반 일리치는 신경질이 나서 비난을 퍼붓다가 고페와도, 가까운 윗사람들과도 사이가 틀어졌다. 사람들은 그를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고, 다음 인사에서도 그는 또 밀려났다.
1880년의 일이었다. 이해는 이반 일리치의 삶에서 가장 힘든 해였다. 이해에 한편으로는 월급이 생활비에 모자란다는 것이 드러났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두가 자기를 잊었으며, 자기에게는 더없이 크고 잔인한 불의로 여겨지는 일이 남들에게는 아주 흔한 일로 보인다는 것이 드러났다. 아버지조차 그를 도울 의무가 없다고 여겼다. 그는 모두가 자기를 버렸다고 느꼈다. 모두가 월급 3500루블인 그의 처지를 아주 정상적이고, 행복하기까지 한 것으로 여겼다. 자기에게 저질러진 불의에 대한 의식과, 끝없이 바가지를 긁는 아내와, 분에 넘치게 살면서 지기 시작한 빚을 안고 있는 자기 처지가 정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 혼자뿐이었다.
이해 여름 그는 살림을 좀 덜어 보려고 휴가를 내어, 아내와 함께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의 오빠가 사는 시골에 가서 여름을 났다.
시골에서, 직무 없이 지내면서 이반 일리치는 처음으로 지루함뿐 아니라 견딜 수 없는 우울을 느꼈고, 이렇게는 살 수 없으니 무언가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밤새 테라스를 서성이며 잠 못 이룬 끝에 그는 페테르부르크에 가서 운동을 하기로, 그리고 자기를 알아보지 못한 자들을 혼내 주려고 다른 부처로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이튿날 그는 아내와 처남이 온갖 말로 말리는데도 페테르부르크로 떠났다.
그가 간 목적은 하나였다. 월급 오천 루블짜리 자리를 얻어 내는 것. 그는 이제 어느 부처든, 어느 방향이든, 어떤 종류의 일이든 가리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오직 자리, 오천 루블짜리 자리였다. 행정이든, 은행이든, 철도든, 마리야 황후 재단 기관이든, 세관이라도 좋았다. 다만 반드시 오천 루블이어야 했고, 반드시 자기를 알아보지 못한 부처에서 나가야 했다.
그런데 이반 일리치의 이 여행은 놀랍고도 뜻밖의 성공으로 끝났다. 쿠르스크에서 아는 사람인 F. S. 일린이 1등칸에 올라타더니, 쿠르스크 지사가 받은 따끈한 전보 소식을 알려 주었다. 며칠 안에 부처에 개편이 있을 것이며, 표트르 이바노비치 자리에 이반 세묘노비치가 임명된다는 것이었다.
예상되는 이 개편은 러시아에 대한 의미 말고도 이반 일리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새 인물 표트르 페트로비치와, 분명히 그의 친구인 자하르 이바노비치를 앞으로 내세우는 이 개편은 이반 일리치에게 더없이 유리했다. 자하르 이바노비치는 이반 일리치의 동창이자 친구였던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소식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페테르부르크에 닿자 이반 일리치는 자하르 이바노비치를 찾아가, 예전의 법무부에서 확실한 자리를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한 주 뒤 그는 아내에게 전보를 쳤다.
「자하르가 밀레르 자리 첫 보고 때 임명 받음.」
이 인사 개편 덕분에 이반 일리치는 뜻밖에 예전 부처에서 동료들보다 두 단계나 높은 자리에 임명되었다. 월급 오천 루블에 부임 수당 삼천오백 루블이었다. 예전 적들과 부처 전체에 대한 분노는 모두 잊혔고, 이반 일리치는 더없이 행복했다.
이반 일리치는 오랜만에 명랑하고 흡족한 모습으로 시골에 돌아왔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도 명랑해졌고, 둘 사이에 휴전이 맺어졌다. 이반 일리치는 페테르부르크에서 모두가 자기를 얼마나 떠받들었는지, 자기의 적이던 자들이 모두 얼마나 망신을 당하고 이제 자기 앞에서 비굴하게 구는지, 모두가 자기 지위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특히 페테르부르크에서 모두가 자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이야기했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그 말을 들으며 믿는 척했고, 아무것도 반박하지 않은 채 오직 이사 갈 도시에서 새 살림을 어떻게 꾸밀지 계획만 세웠다. 그리고 이반 일리치는 그 계획이 바로 자기 계획이라는 것, 둘이 뜻이 맞는다는 것, 그리고 한때 비틀거렸던 자기 삶이 다시 명랑한 즐거움과 점잖음이라는, 삶에 걸맞은 참된 성격을 되찾는다는 것을 기쁘게 바라보았다.
이반 일리치는 잠깐 다니러 온 것이었다. 9월 10일에는 직무를 맡아야 했고, 그 밖에도 새 곳에 자리 잡을 시간이 필요했다. 지방에서 모든 짐을 옮기고, 더 사고, 더 맞추고, 그 밖에도 할 일이 많았다. 한마디로, 그의 머릿속에서 정해진 대로, 그리고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의 마음속에서 정해진 것과 거의 똑같이 살림을 꾸려야 했다.
그리고 이제 모든 일이 이렇게 잘 풀리고, 아내와 목표가 일치하는 데다 함께 지내는 시간도 적어지자, 두 사람은 결혼 첫 몇 해 이후로 없었을 만큼 사이좋게 지냈다. 이반 일리치는 곧장 가족을 데려갈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이반 일리치와 그 가족에게 유난히 상냥하고 살갑게 굴게 된 처남 부부가 간곡히 만류하는 바람에 이반 일리치는 혼자 떠났다.
이반 일리치는 떠났고, 성공과 아내와의 화합이 서로를 북돋우며 만들어 낸 명랑한 기분은 줄곧 그를 떠나지 않았다. 부부가 꿈꾸던 바로 그런 멋진 집이 나타났다. 넓고 천장이 높은 옛날식 응접실들, 편리하고 웅장한 서재, 아내와 딸의 방, 아들의 공부방. 모든 것이 일부러 그들을 위해 궁리해 놓은 것 같았다. 이반 일리치는 몸소 살림 꾸미기에 나서서 벽지를 고르고, 가구를, 특히 그가 유난히 품위 있는(comme il faut) 멋을 입히던 헌 가구를 사들이고, 천을 씌웠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자라고 또 자라서 그가 그려 둔 이상에 다가갔다. 절반쯤 꾸미고 나자 그 모습은 그의 기대를 넘어섰다. 그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지면 띠게 될, 품위 있고 우아하며 천박하지 않은 성격을 알 수 있었다. 잠들면서 그는 홀이 어떻게 될지 그려 보았다. 아직 다 꾸미지 못한 응접실을 보면서, 그는 벌써 벽난로며 난로 가리개며 장식장이며 여기저기 놓인 작은 의자들이며 벽에 걸린 접시들이며 청동 장식들이 모두 제자리에 놓인 모습을 보았다. 역시 이런 데 취미가 있는 파샤와 리잔카를 얼마나 놀라게 할까 생각하니 기뻤다. 그들은 이런 걸 전혀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는 모든 것에 유난히 고상한 성격을 입혀 주는 옛 물건들을 찾아내어 싸게 사는 데 성공했다. 그는 그들을 놀라게 하려고 편지에서는 일부러 모든 것을 실제보다 못하게 그렸다. 이 모든 일에 어찌나 정신이 팔렸던지, 그 일을 좋아하는 그인데도 새 직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덜 마음을 끌었다. 법정에서 그는 멍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커튼 봉을 곧은 것으로 할지 주름 잡힌 것으로 할지 생각에 잠기곤 했던 것이다. 그는 이 일에 어찌나 몰두했던지 자주 몸소 일을 거들고, 가구를 옮기기까지 하고, 손수 커튼을 다시 달았다. 한번은 말귀를 못 알아듣는 도배장이에게 어떻게 주름을 잡고 싶은지 보여 주려고 사다리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졌는데, 힘세고 날렵한 사람이라 버티긴 했지만 옆구리를 창틀 손잡이에 부딪쳤다. 멍든 곳은 한동안 아팠지만 곧 나았다. 이반 일리치는 그동안 줄곧 유난히 명랑하고 건강하다고 느꼈다. 그는 편지에 썼다. 열다섯 살은 젊어진 것 같소. 그는 9월에 끝낼 생각이었지만 10월 중순까지 늘어졌다. 그 대신 멋졌다. 그 자신만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본 사람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실은 그 집은 그다지 부유하지는 않지만 부자처럼 보이고 싶어 하고, 그래서 서로 닮아 갈 뿐인 모든 사람들의 집에 있는 것과 똑같았다. 두꺼운 비단 천, 흑단, 꽃, 양탄자, 청동 장식. 어둡고 번쩍이는 것, 곧 어떤 부류의 모든 사람이 그 부류의 모든 사람과 닮으려고 하는 모든 것. 그의 집도 어찌나 그런 집들과 닮았던지 눈여겨볼 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그런데 그에게는 이 모든 것이 무언가 특별하게 여겨졌다. 그가 기차역에서 가족을 맞아 불이 환히 켜지고 다 꾸며진 집으로 데려오자, 흰 넥타이를 맨 하인이 꽃으로 장식한 현관문을 열었고, 이어서 가족들은 응접실과 서재에 들어가 기뻐서 탄성을 질렀다. 그는 무척 행복했다. 그는 그들을 온 집 안으로 데리고 다니며 칭찬을 빨아들였고, 기쁨으로 빛났다. 바로 그날 저녁, 차를 마시다가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가 어쩌다 떨어졌느냐고 지나가듯 묻자, 그는 웃으며 자기가 어떻게 날아가서 도배장이를 놀라게 했는지 흉내 내어 보여 주었다.
「내가 괜히 체조를 한 게 아니지. 다른 사람 같으면 죽었을 텐데, 나는 여기를 살짝 부딪쳤을 뿐이야. 만지면 아프지만 벌써 낫고 있어. 그냥 멍이야.」
그리고 그들은 새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 집은 언제나 그렇듯 제대로 살림이 자리 잡고 나니 방이 딱 하나 모자랐고, 새 수입도 언제나 그렇듯 조금, 오백 루블쯤 모자랐다. 그래도 아주 좋았다. 특히 아직 모든 것이 다 꾸며지지 않아 더 꾸밀 것이 있던 처음 무렵이 좋았다. 이걸 사고, 저걸 맞추고, 이걸 옮기고, 저걸 손보고. 부부 사이에 약간의 의견 차이는 있었지만, 둘 다 흡족했고 할 일이 많아서 모든 일이 큰 싸움 없이 끝났다. 더 꾸밀 것이 없어지자 조금 지루해지고 무언가 모자란 느낌이 들었지만, 그때는 이미 사귐이 생기고 습관이 생겨 삶이 채워졌다.
이반 일리치는 오전을 법원에서 보내고 점심때 돌아왔는데, 처음 얼마 동안은 기분이 좋았다. 다만 바로 그 집 때문에 조금 괴로웠다. (식탁보나 비단 천에 묻은 얼룩 하나, 끊어진 커튼 끈 하나가 그를 짜증 나게 했다. 살림을 꾸미느라 그토록 애를 썼으니 무엇이든 망가지는 것이 괴로웠던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이반 일리치의 삶은 그가 믿기로 삶이 마땅히 흘러가야 할 대로 흘러갔다. 가볍고 즐겁고 점잖게. 그는 아홉 시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은 다음 제복을 입고 법원에 갔다. 거기에는 그가 일하는 멍에가 벌써 몸에 맞게 길들여져 있었다. 그는 단번에 그 안으로 들어갔다. 청원자들, 사무국 문의, 사무국 자체, 공개 공판과 행정 회의. 이 모든 일에서는 언제나 직무의 올바른 흐름을 깨뜨리는 날것의, 삶에 속한 모든 것을 빼낼 줄 알아야 했다. 사람들과 직무 말고는 어떤 관계도 맺지 말아야 하고, 관계를 맺을 계기도 오직 직무여야 하며, 관계 자체도 오직 직무상의 것이어야 했다. 예를 들어 누가 찾아와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한다. 공직에 있지 않은 한 사람으로서 이반 일리치는 그런 사람과 아무 관계도 맺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 판사에 대한 관계, 머리글이 찍힌 종이에 적힐 수 있는 관계가 있다면, 그 관계의 범위 안에서 이반 일리치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정말로 모든 일을 해 주며, 그러면서 인간적인 우호 관계의 흉내, 곧 정중함을 지킨다. 직무상의 관계가 끝나자마자 다른 모든 관계도 끝난다. 직무의 측면을 떼어 내어 자기 진짜 삶과 섞지 않는 이 솜씨를 이반 일리치는 최고로 갖추고 있었고, 오랜 실무와 재능으로 그것을 어찌나 다듬었던지, 거장처럼 이따금 장난삼아 인간적인 관계와 직무상의 관계를 섞어 보기까지 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직무만 떼어 내고 인간적인 것을 내던질 힘이 자기에게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이반 일리치에게 가볍고 즐겁고 점잖을 뿐 아니라 거장다운 솜씨로까지 흘러갔다. 틈틈이 그는 담배를 피우고, 차를 마시고, 정치 이야기를 조금, 세상일 이야기를 조금, 카드 이야기를 조금, 그리고 무엇보다 인사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는 지쳤지만 오케스트라의 제1 바이올린 가운데 하나로서 제 몫을 또렷이 연주해 낸 거장의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집에서는 딸과 엄마가 어딘가 나가 있거나 누군가 손님이 와 있었다. 아들은 김나지움에 다니며 가정교사들과 숙제를 하고 김나지움에서 가르치는 것을 착실히 배웠다. 모든 것이 좋았다. 점심 뒤에 손님이 없으면 이반 일리치는 이따금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책을 읽었고, 저녁에는 일, 곧 서류를 읽고 법조문을 찾아보고 진술을 대조해 법에 맞추는 일에 앉았다. 그것은 그에게 지루하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빈트를 할 수 있을 때 이 일을 하는 것은 지루했다. 하지만 빈트가 없으면 그래도 혼자나 아내와 앉아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반 일리치의 즐거움은 사교계에서 지위가 높은 부인과 신사들을 초대하는 작은 만찬, 그리고 그들과 함께 그런 사람들이 흔히 시간을 보내는 방식과 닮은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의 응접실이 모든 응접실과 닮았듯이.
한번은 그 집에서 무도회까지 열렸다. 이반 일리치는 즐거웠고 모든 것이 좋았는데, 다만 케이크와 사탕 때문에 아내와 크게 싸웠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에게는 나름의 계획이 있었는데, 이반 일리치는 모든 것을 비싼 과자점에서 사자고 우겨서 케이크를 잔뜩 샀고, 케이크는 남았는데 과자점 계산서가 사십오 루블이 나와서 싸움이 난 것이다. 싸움은 크고 불쾌했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그에게 「바보, 칠칠이」라고 했다.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홧김에 이혼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무도회 자체는 즐거웠다. 최고의 사람들이 모였고, 이반 일리치는 「내 슬픔을 가져가 주오」라는 모임을 세워 유명해진 부인의 언니인 트루포노바 공작 부인과 춤을 추었다. 직무의 기쁨은 자존심의 기쁨이었고, 사교의 기쁨은 허영의 기쁨이었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의 참된 기쁨은 빈트를 하는 기쁨이었다. 그는 털어놓았다. 모든 일을 겪은 뒤에, 자기 삶에서 기쁘지 않은 일이 무엇이든 간에, 다른 모든 기쁨 앞에서 촛불처럼 타오르는 기쁨은 소리 지르지 않는 좋은 선수들과 빈트 판에 앉는 것이라고. 그것도 반드시 넷이서(다섯이면 한 판 빠질 때 몹시 괴롭다, 아주 좋아하는 척은 하지만), 그리고 영리하고 진지한 판을 벌이고(카드가 잘 들어올 때), 그런 다음 저녁을 먹고 포도주 한 잔을 마시는 것. 그리고 빈트를 한 뒤 자러 갈 때, 특히 조금 땄을 때면(많이 따면 불쾌하다) 이반 일리치는 유난히 좋은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살았다. 그들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가장 좋은 무리였고, 지위 높은 사람들도 젊은 사람들도 찾아왔다.
지인들의 무리를 보는 눈은 남편과 아내와 딸이 완전히 일치해서, 말하지 않아도 똑같이, 벽에 일본 접시가 걸린 응접실로 살갑게 날아드는 온갖 꾀죄죄한 친구며 친척들을 밀어내고 떨쳐 버렸다. 곧 이 꾀죄죄한 친구들은 날아들지 않게 되었고, 골로빈네 집에는 가장 좋은 사람들만 남았다. 젊은이들이 리잔카에게 구애했는데,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페트리셰프의 아들이자 그 재산의 유일한 상속자인 예심판사 페트리셰프가 리자에게 구애하기 시작하자, 이반 일리치는 벌써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와 이 일을 두고 의논할 정도였다. 두 사람을 삼두마차 나들이에 함께 보낼까, 아니면 연극을 한 편 꾸밀까. 그렇게 그들은 살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그렇게 변함없이 흘러갔고, 모든 것이 아주 좋았다.
4장
모두 건강했다. 이반 일리치가 이따금 입에서 이상한 맛이 나고 배 왼쪽이 어쩐지 거북하다고 말하는 것을 두고 병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거북함이 점점 커지더니, 아직 통증까지는 아니지만 옆구리가 늘 묵직하다는 느낌과 언짢은 기분으로 넘어갔다. 이 언짢은 기분은 점점 심해지면서, 골로빈네 가족에게 겨우 자리 잡았던 가볍고 점잖은 삶의 즐거움을 망치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내는 점점 더 자주 싸웠고, 곧 가벼움과 즐거움은 떨어져 나갔으며, 점잖음 하나만 겨우 붙들려 있었다. 소동이 다시 잦아졌다. 다시 남편과 아내가 폭발 없이 만날 수 있는 작은 섬들만 남았고, 그마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가 남편 성격이 고약하다고 말하는 데에는 까닭이 없지 않았다. 과장하는 버릇대로 그녀는, 그이는 원래부터 그렇게 끔찍한 성격이었고 그걸 스무 해나 견딘 건 자기가 착해서라고 말했다. 사실 이제 싸움은 그에게서 시작되었다. 그의 트집은 늘 점심 직전에, 그것도 자주 막 먹기 시작할 때, 수프를 먹을 때 시작되었다. 그릇이 이가 빠졌다느니, 음식이 이게 아니라느니, 아들이 식탁에 팔꿈치를 올렸다느니, 딸 머리 모양이 어떻다느니. 그리고 그는 모든 것을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 탓으로 돌렸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처음엔 반박하며 그에게 불쾌한 말을 했지만, 그가 두어 번 점심을 시작할 무렵 어찌나 미친 듯이 화를 내던지, 그녀는 이것이 음식을 먹을 때 그에게 일어나는 병적인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자기를 누그러뜨렸다. 이제 반박하지 않고 그저 점심을 서두르기만 했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자기의 이 온순함을 큰 공로로 여겼다. 남편이 끔찍한 성격이며 자기 삶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결론을 내리자, 그녀는 자기를 가엾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를 가엾게 여길수록 남편을 더 미워했다. 그녀는 그가 죽기를 바라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바랄 수는 없었다. 그러면 월급이 없어질 테니까. 그리고 그것이 그녀를 더욱 그에게 짜증 나게 했다. 그녀는 바로 그의 죽음조차 자기를 구해 줄 수 없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지독히 불행하다고 여겼고, 짜증을 내면서 그것을 숨겼으며, 그 숨긴 짜증이 그의 짜증을 더 키웠다.
이반 일리치가 유난히 부당하게 굴었던 어느 소동 뒤에, 그가 해명하면서 자기가 정말 신경질적이긴 하지만 그건 병 때문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이름난 의사에게 가 보라고 요구했다.
그는 갔다. 모든 것이 그가 예상한 대로였다. 모든 것이 언제나 하는 그대로였다. 기다림도, 그에게 익숙한, 그가 법정에서 스스로에게서 알던 바로 그 의사의 짐짓 꾸민 위엄도, 두드려 보기와 청진도, 미리 정해진, 쓸데없는 게 분명한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들도, 그리고 당신은 그저 우리에게 몸을 맡기기만 하면 우리가 다 알아서 한다, 우리는 모든 걸 어떻게 처리할지 분명히 알고 있다, 누구든 어떤 사람이든 다 같은 방식으로, 하고 일러 주는 듯한 의미심장한 모습도. 모든 것이 법정에서와 똑같았다. 그가 법정에서 피고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지었던 것과 똑같이, 이름난 의사도 그 앞에서 그런 모습을 지었다.
의사는 말했다. 이러저러한 점이 당신 몸속에 이러저러한 것이 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검사로 그것이 확인되지 않으면 당신에게 이러저러한 것이 있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것을 가정한다면 그때는……. 이반 일리치에게 중요한 물음은 하나뿐이었다. 내 상태가 위험한가, 아닌가? 그러나 의사는 이 어울리지 않는 물음을 무시했다. 의사가 보기에 그 물음은 쓸데없는 것이어서 논의할 가치가 없었다. 있는 것은 오직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일, 유주신이냐, 만성 카타르냐, 맹장 병이냐 하는 것뿐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목숨에 관한 문제는 없고, 유주신과 맹장 사이의 논쟁만 있었다. 그리고 이반 일리치가 보는 앞에서 의사는 이 논쟁을 맹장 쪽으로 멋지게 결론지으면서, 소변 검사가 새 증거를 줄 수 있으니 그때는 사건을 다시 심리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 모든 것은 이반 일리치 자신이 피고들 앞에서 그토록 멋진 솜씨로 수천 번 해 온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의사 또한 똑같이 멋지게 요지를 정리하고, 안경 너머로 의기양양하게, 즐겁기까지 한 얼굴로 피고를 내려다보았다. 의사의 정리에서 이반 일리치는 결론을 끌어냈다. 나쁘다. 그런데 그에게, 의사에게는, 아니 어쩌면 모두에게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나쁜 것은 나다. 이 결론은 이반 일리치를 아프게 찔렀고, 그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커다란 연민과, 이토록 중요한 물음에 무심한 이 의사에 대한 커다란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 탁자 위에 돈을 놓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희 환자들은 아마 선생께 자주 어울리지 않는 질문을 하겠지요.」 그가 말했다. 「대체로, 이건 위험한 병입니까, 아닙니까?」
의사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 안경 너머로 한쪽 눈으로 그를 엄하게 쳐다보았다. 피고, 제시된 질문의 범위 안에 머물지 않는다면 법정에서 퇴장을 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필요하고 적절하다고 여긴 것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나머지는 검사가 보여 줄 겁니다.」 그리고 의사는 고개를 숙였다.
이반 일리치는 천천히 나와 침울하게 썰매에 올라 집으로 갔다. 가는 내내 그는 의사가 한 말을 쉬지 않고 되짚으며, 그 뒤엉키고 불분명한 학술 용어들을 쉬운 말로 옮겨 그 속에서 물음에 대한 답을 읽으려 애썼다. 나쁜가, 아주 나쁜가, 아니면 아직 괜찮은가? 그리고 의사가 한 모든 말의 뜻은 아주 나쁘다는 것 같았다. 거리의 모든 것이 이반 일리치에게는 서글퍼 보였다. 마부들도 서글프고, 집들도 서글프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가게들도 서글펐다. 그리고 그 통증, 단 일 초도 그치지 않는 둔하고 쑤시는 통증은 의사의 불분명한 말과 이어져 다른, 더 심각한 의미를 띠는 것 같았다. 이반 일리치는 이제 새롭고 무거운 느낌으로 그 통증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집에 와서 아내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들었지만, 이야기 중간에 모자를 쓴 딸이 들어왔다. 딸은 엄마와 외출할 참이었다. 딸은 애써 앉아서 이 지루한 이야기를 들으려 했지만 오래 견디지 못했고, 엄마도 끝까지 듣지 않았다.
「그래, 정말 다행이에요.」 아내가 말했다. 「그럼 이제 약을 꼬박꼬박 먹어요. 처방전 줘요, 게라심을 약국에 보낼게요.」 그러고는 그녀는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그는 그녀가 방에 있는 동안 숨도 쉬지 않고 있다가 그녀가 나가자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가 말했다. 「어쩌면 정말 아직 아무것도 아닐지도 몰라.」
그는 약을 먹기 시작했고, 소변 검사 결과에 따라 바뀐 의사의 지시를 따랐다. 그런데 마침 이 검사와 그 뒤에 이어져야 할 일에서 무언가 혼선이 생겼다. 의사 본인에게는 닿을 수가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의사가 그에게 말한 것과 다르게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의사가 잊었거나, 거짓말을 했거나, 무언가를 그에게 숨기고 있었다.
그래도 이반 일리치는 여전히 지시를 정확히 따랐고, 처음 얼마 동안은 그렇게 따르는 데서 위안을 찾았다.
의사를 찾아간 뒤로 이반 일리치의 주된 일은 위생과 약 먹기에 관한 의사의 지시를 정확히 따르는 것, 그리고 자기 통증과 몸의 모든 작용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되었다. 이반 일리치의 주된 관심사는 사람들의 병과 사람들의 건강이 되었다. 그의 앞에서 환자나 죽은 사람이나 나은 사람 이야기가 나오면, 특히 자기 병과 비슷한 병 이야기가 나오면, 그는 흥분을 감추려 애쓰면서 귀를 기울이고 캐묻고 자기 병에 견주어 보았다.
통증은 줄지 않았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는 나아지고 있다고 억지로라도 생각하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무엇 하나 그를 흔들지 않는 동안에는 자기를 속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내와 불쾌한 일이 생기거나, 직무에서 일이 틀어지거나, 빈트에서 패가 나쁘면 곧바로 그는 자기 병의 힘을 온전히 느꼈다. 전에는 그런 실패를 견뎠다. 곧 나쁜 것을 바로잡고, 이겨 내고, 성공을, 그랜드 슬램을 기다릴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그런데 이제는 어떤 실패든 그를 쓰러뜨리고 절망에 빠뜨렸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제 막 낫기 시작했고 약이 듣기 시작했는데, 이 저주받을 불행이나 불쾌한 일이……. 그리고 그는 불행에, 또는 자기에게 불쾌한 일을 저질러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에게 화를 냈고, 이 분노가 자기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사정과 사람들에 대한 이 분노가 병을 더 키우며, 그러니 불쾌한 우연한 일들에 마음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그에게 분명해야 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정반대로 따졌다. 자기에게는 평온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그 평온을 깨뜨리는 모든 것을 살폈으며, 아주 작은 깨뜨림에도 짜증을 냈다. 그의 처지를 더 나쁘게 만든 것은 그가 의학 책을 읽고 의사들과 의논했다는 것이다. 나빠지는 것은 어찌나 고르게 진행되었던지, 하루와 다른 하루를 견주며 자기를 속일 수 있었다. 차이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과 의논하면 나빠지는 쪽으로, 그것도 아주 빠르게 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는 줄곧 의사들과 의논했다.
그달에 그는 다른 명의를 찾아갔다. 다른 명의는 첫 명의와 거의 똑같은 말을 했지만 문제를 다르게 세웠다. 그리고 이 명의와의 상담은 이반 일리치의 의심과 두려움만 더 키웠다. 친구의 친구인, 아주 훌륭한 의사는 병을 또 전혀 다르게 진단했고, 낫는다고 약속했는데도 그의 질문과 추측은 이반 일리치를 더 헷갈리게 하고 의심을 더 키웠다. 동종요법 의사는 또 다르게 진단하고 약을 주었고, 이반 일리치는 모두 몰래 그것을 한 주쯤 먹었다. 그러나 한 주가 지나도 나아진 느낌이 없자, 전의 치료에도 이 치료에도 믿음을 잃고 더 깊은 우울에 빠졌다. 한번은 아는 부인이 성상으로 병이 나은 이야기를 했다. 이반 일리치는 자기가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며 그 일이 사실인지 따져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일은 그를 놀라게 했다. 「내 정신이 정말 이렇게 약해졌나?」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말도 안 돼! 다 헛소리야. 의심병에 넘어가선 안 돼. 의사 하나를 골라 그 치료를 엄격히 따라야 해. 그렇게 할 거야. 이제 끝이다. 생각하지 않고 여름까지 치료를 엄격히 따를 거야. 그다음은 그때 보자. 이제 이런 흔들림은 끝이다!……」 말하기는 쉬웠지만 해내기는 불가능했다. 옆구리 통증은 줄곧 괴롭혔고, 줄곧 더 심해지는 것 같았으며, 한시도 떠나지 않게 되었다. 입맛은 점점 더 이상해졌고, 입에서 무언가 역겨운 냄새가 나는 것 같았으며, 식욕과 기운은 점점 약해졌다. 자기를 속일 수는 없었다. 무언가 무섭고 새롭고, 이반 일리치의 평생에 그보다 더 중대한 일은 없었을 만큼 중대한 일이 그의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 혼자뿐이었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았으며, 세상 모든 일이 전처럼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것이 무엇보다 이반 일리치를 괴롭혔다. 집안 식구들, 무엇보다 사교계 나들이가 한창인 아내와 딸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마치 그가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그가 명랑하지 않고 까다롭다고 짜증을 냈다. 그들은 그것을 숨기려 애썼지만, 그는 자기가 그들에게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아내가 그의 병에 대해 어떤 태도를 다듬어 내어, 그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이 그 태도를 지키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 태도는 이러했다.
「있잖아요.」 그녀는 지인들에게 말했다. 「이반 일리치는 다른 착한 사람들처럼 처방받은 치료를 엄격히 지키질 못해요. 오늘은 물약을 먹고 먹으라는 것만 먹고 제때 잠자리에 들어요. 그런데 내일은 제가 조금만 한눈을 팔면 약 먹는 걸 잊고, 철갑상어를 먹고(먹지 말라고 했는데), 빈트를 하느라 한 시까지 앉아 있어요.」
「아니, 언제 그랬다고?」 이반 일리치가 짜증스럽게 말한다. 「표트르 이바노비치네서 딱 한 번이야.」
「어제도 셰베크랑 그랬잖아요.」
「어차피 아파서 잠을 못 잤을 거야…….」
「무엇 때문이든, 그렇게 해서는 절대 낫지 못하고 우리만 괴롭히는 거예요.」
남들에게, 그리고 그에게 드러내 보이는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의 겉 태도는, 남편의 병은 이반 일리치 탓이며 이 병 전체가 그가 아내에게 저지르는 또 하나의 불쾌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이반 일리치는 그녀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법원에서도 이반 일리치는 자기에 대한 똑같이 이상한 태도를 알아채거나, 알아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곧 자리를 비워 줄 사람을 보듯 자기를 살핀다고 여겨지는가 하면, 갑자기 친구들이 그의 의심병을 두고 다정하게 놀리기 시작하기도 했다. 마치 그의 안에 자리 잡고 쉬지 않고 그를 빨아먹으며 걷잡을 수 없이 어딘가로 끌고 가는 그 무섭고 끔찍하고 듣도 보도 못한 것이 농담하기 가장 좋은 소재라도 되는 듯이. 특히 슈바르츠는 십 년 전 이반 일리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장난기와 생기와 품위로 그를 짜증 나게 했다.
친구들이 카드판을 벌이러 와서 앉았다. 패를 돌렸다. 새 카드가 손에 익어 가고, 다이아몬드가 다이아몬드끼리 모였다. 일곱 장이다. 짝이 노트럼프를 부르고 다이아몬드 둘을 받쳐 주었다. 더 바랄 게 뭔가? 즐겁고 신이 나야 할 것이다. 슬램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반 일리치는 그 빨아먹는 통증과 입안의 그 맛을 느끼고, 이런 판에 슬램을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 무언가 터무니없게 여겨진다.
그는 짝인 미하일 미하일로비치를 바라본다. 그가 혈색 좋은 손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정중하고 너그럽게 딴 패를 거두지 않고 이반 일리치 쪽으로 밀어 주는 것을. 멀리 손을 뻗는 수고 없이 패를 거두는 즐거움을 주려는 것이다. 「내가 멀리 손도 못 뻗을 만큼 약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반 일리치는 생각하다가 으뜸패를 잊고 제 편 패에 쓸데없이 한 번 더 으뜸패를 내서 슬램을 세 트릭 모자라 놓친다. 그리고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미하일 미하일로비치가 괴로워하는 것이 보이는데도 자기에게는 아무래도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 아무래도 좋은지 생각하는 것이 끔찍하다.
모두 그가 괴롭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말한다. 「피곤하시면 그만해도 됩니다. 좀 쉬세요.」 쉬라고? 아니, 그는 조금도 피곤하지 않다. 그들은 판을 마저 끝낸다. 모두 침울하고 말이 없다. 이반 일리치는 자기가 그들에게 이 침울함을 끼쳐 놓고 흩어 버릴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저녁을 먹고 흩어지고, 이반 일리치는 홀로 남아 의식한다. 자기 삶이 자기에게 독이 되었고, 남들의 삶에도 독을 끼치며, 그 독은 약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자기 존재 전체로 스며든다는 것을.
그리고 이 의식과 함께, 거기에 몸의 통증까지, 거기에 공포까지 안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고, 통증 때문에 밤의 대부분을 잠 못 이루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아침이면 다시 일어나 옷을 입고 법원에 가서 말하고 쓰거나, 가지 않더라도 집에서 하루 스물네 시간, 그 한 시간 한 시간이 모두 고통인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파멸의 가장자리에서, 자기를 이해하고 가엾게 여겨 줄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살아야 했다.
5장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흘렀다. 새해를 앞두고 처남이 그들이 사는 도시에 와서 그 집에 묵었다. 이반 일리치는 법원에 있었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장을 보러 나갔다. 서재에 들어서니 건강하고 혈색 좋은 처남이 손수 가방을 풀고 있었다. 그는 이반 일리치의 발소리에 고개를 들고 일 초쯤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이 눈길이 이반 일리치에게 모든 것을 드러냈다. 처남은 아 하고 소리를 내려고 입을 벌렸다가 참았다. 그 몸짓이 모든 것을 확인해 주었다.
「어때, 내가 변했나?」
「네…… 변하긴 했네요.」
그 뒤로 이반 일리치가 아무리 처남에게 자기 겉모습 이야기를 꺼내도 처남은 입을 다물었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가 돌아오자 처남은 그녀에게로 갔다. 이반 일리치는 문을 잠그고 거울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그다음엔 옆으로. 아내와 함께 찍은 자기 사진을 가져다 거울 속에 보이는 것과 견주어 보았다. 변화는 엄청났다. 그런 다음 그는 팔꿈치까지 팔을 걷어 보고, 소매를 내리고, 오토만 의자에 앉아 밤보다 더 어두워졌다.
「그러지 말자, 그러지 말자.」 그는 스스로에게 말하고는 벌떡 일어나 책상으로 가서 서류를 펼치고 읽으려 했지만 읽을 수가 없었다. 그는 문을 열고 홀로 갔다. 응접실 문은 닫혀 있었다. 그는 발끝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아니, 오빠가 과장하는 거예요.」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가 말하고 있었다.
「과장이라니? 너는 못 보는구나. 저건 죽은 사람이야. 눈을 봐. 빛이 없어. 대체 무슨 병이야?」
「아무도 몰라요. 니콜라예프(그것은 다른 의사였다)는 뭐라고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레셰티츠키(그것은 이름난 의사였다)는 반대로 말했고…….」
이반 일리치는 물러나 자기 방으로 가서 누워 생각하기 시작했다. 「콩팥, 떠돌이 콩팥.」 그는 의사들이 한 말을 모두 떠올렸다. 콩팥이 어떻게 떨어져 나와 어떻게 떠돌아다니는지. 그리고 그는 상상의 힘으로 그 콩팥을 붙잡아 멈추고 단단히 붙들어 매려고 애썼다. 아주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아니, 표트르 이바노비치한테 한 번 더 가 봐야지.」(의사 친구가 있는 바로 그 친구였다.) 그는 종을 울려 말을 매라고 이르고 나갈 채비를 했다.
「어디 가요, 장?」 아내가 유난히 서글프고 여느 때와 달리 상냥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여느 때와 다른 상냥함이 그를 화나게 했다. 그는 침울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표트르 이바노비치한테 가야 해.」
그는 의사 친구가 있는 친구에게 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의사에게 갔다. 그는 의사를 만나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사의 생각으로 그의 몸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해부학적으로, 생리학적으로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 그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맹장에 조그만 것, 아주 조그만 것 하나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나을 수 있었다. 한 기관의 힘을 북돋우고 다른 기관의 활동을 누그러뜨리면 흡수가 일어나고 모든 것이 나아질 것이다. 그는 점심에 조금 늦었다. 점심을 먹고 명랑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한참 동안 자기 방으로 일하러 가지 못했다. 마침내 그는 서재에 가서 곧바로 일에 앉았다. 그는 서류를 읽고 일했지만, 다 끝나면 붙들고 앉을 미뤄 둔 중요하고 은밀한 일이 있다는 의식이 그를 떠나지 않았다. 일을 마치자 그는 그 은밀한 일이 맹장에 대한 생각이었음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는 그 생각에 빠지지 않고 차를 마시러 응접실로 갔다. 손님들이 있었고, 이야기를 나누고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딸이 바라는 신랑감인 예심판사도 있었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의 말로는 이반 일리치가 누구보다 명랑하게 저녁을 보냈지만, 그는 맹장에 대한 중요한 생각을 미뤄 두었다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열한 시에 그는 인사를 하고 자기 방으로 갔다. 병이 난 뒤로 그는 서재 옆 작은 방에서 혼자 잤다. 그는 가서 옷을 벗고 졸라의 소설을 집었지만 읽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의 상상 속에서 맹장이 바라던 대로 고쳐지고 있었다. 흡수되고, 내보내지고, 올바른 활동이 되살아났다. 「그래, 모두 그렇게 되는 거야.」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저 자연을 도와야 해.」 그는 약이 생각나서 몸을 일으켜 약을 먹고, 약이 얼마나 이롭게 작용하며 통증을 없애는지 귀를 기울이며 반듯이 누웠다. 「그저 꼬박꼬박 먹고 해로운 것을 피하기만 하면 돼. 벌써 조금 나아진 것 같아, 훨씬 나아졌어.」 그는 옆구리를 만져 보았다. 만져도 아프지 않았다. 「그래, 느껴지지 않아. 정말 훨씬 나아졌어.」 그는 촛불을 끄고 모로 누웠다……. 맹장이 고쳐지고 흡수되고 있다. 갑자기 그는 익숙한 오래된, 둔하고 쑤시는 통증을 느꼈다. 끈질기고 조용하고 심각한 통증을. 입안에는 똑같은 익숙한 역겨움. 심장이 조여들고 머리가 흐려졌다. 「맙소사, 맙소사!」 그가 중얼거렸다. 「또, 또야. 절대 그치지 않을 거야.」 그러자 갑자기 이 일이 전혀 다른 쪽에서 보였다. 「맹장? 콩팥?」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맹장이나 콩팥이 문제가 아니야. 삶과…… 죽음이 문제야. 그래, 삶이 있었는데 이제 떠나간다, 떠나간다. 그리고 나는 그걸 붙잡을 수 없어. 그래. 왜 나를 속이지? 나만 빼고 모두에게 뻔하지 않은가, 내가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는 몇 주냐 며칠이냐 하는 것뿐이라는 것이. 어쩌면 지금 당장. 빛이 있었는데 이제는 어둠이다. 나는 여기 있었는데 이제는 저기로! 어디로?」 온몸에 찬 기운이 끼쳤고 숨이 멎었다. 그에게는 심장 뛰는 소리만 들렸다.
「내가 없어진다, 그러면 무엇이 있지? 아무것도 없을 거야. 그러면 내가 없어지면 나는 어디 있게 되지? 정말 죽음인가? 아니, 싫어.」 그는 벌떡 일어나 촛불을 켜려고 떨리는 손으로 더듬다가 촛대째 초를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다시 베개 위로 쓰러졌다. 「무엇 하러? 어차피 마찬가지야.」 그는 어둠을 뜬눈으로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죽음. 그래, 죽음. 그런데 저들은 아무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가엾게 여기지도 않아. 저들은 연주를 하고 있어.」(그에게는 문 너머 멀리서 목소리가 울리고 반주 가락이 들렸다.) 「저들에겐 아무래도 좋지. 그렇지만 저들도 똑같이 죽을 거야. 바보들. 나는 먼저고 저들은 나중일 뿐, 저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닥칠 거야. 그런데 저들은 즐거워하고 있어. 짐승들!」 분노가 그의 목을 졸랐다. 그리고 그는 고통스럽게, 견딜 수 없이 괴로워졌다. 모든 사람이 언제나 이 끔찍한 공포를 짊어지게 되어 있을 리는 없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뭔가 잘못됐어. 진정해야 해. 처음부터 다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해.」 그리고 그는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 병의 시작. 옆구리를 부딪쳤지. 그래도 나는 오늘도 내일도 여전했어. 조금 쑤시다가, 더 쑤시고, 그다음엔 의사들, 그다음엔 침울함, 우울, 다시 의사들. 그러는 동안 나는 줄곧 벼랑으로 가까이, 가까이 다가갔어. 기운이 줄고. 가까이, 가까이. 그리고 이제 나는 말라 버렸고, 눈에 빛이 없어. 그리고 죽음인데, 나는 창자 생각을 하고 있어. 창자를 고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건 죽음이야. 정말 죽음인가?」 또다시 공포가 덮쳐 와서 그는 숨을 헐떡이며 몸을 굽혀 성냥을 찾다가 팔꿈치로 협탁을 눌렀다. 협탁이 거치적거리고 아프게 해서 그는 협탁에 화가 나서 짜증스럽게 더 세게 누르다가 협탁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절망 속에서 숨을 헐떡이며 반듯이 쓰러져, 당장 죽음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손님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가 그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 넘어지는 소리를 듣고 들어왔다.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야. 실수로 떨어뜨렸어.」
그녀는 나가서 촛불을 가져왔다. 그는 일 킬로미터쯤 달려온 사람처럼 무겁고 가쁘게 숨을 쉬며, 멈춘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왜 그래요, 장?」
「아무…것도. 떨…어…뜨렸어.」 「무슨 말을 하겠어. 이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는 생각했다.
그녀는 정말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초를 주워 불을 켜 주고 서둘러 나갔다. 여자 손님을 배웅해야 했던 것이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그는 여전히 반듯이 누워 위를 보고 있었다.
「어때요, 더 나빠요?」
「응.」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잠시 앉아 있었다. 「있잖아요, 장, 레셰티츠키를 집으로 부르면 어떨까 싶어요.」
이름난 의사를 부르고 돈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독기 어린 미소를 짓고 말했다. 「아니.」 그녀는 잠시 앉아 있다가 다가와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가 입을 맞추는 동안 그는 온 영혼을 다해 그녀를 미워했고, 그녀를 밀쳐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잘 자요. 하느님이 도우시면 잠들 거예요.」
「응.」
6장
이반 일리치는 자기가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끊임없는 절망 속에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이반 일리치는 자기가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에 익숙해지기는커녕 그것을 그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키제베터의 논리학에서 배운 삼단논법의 예, 카이우스는 사람이다, 사람은 죽는다, 그러므로 카이우스는 죽는다는 것은 평생 그에게 카이우스에게만 옳을 뿐 자기에게는 결코 옳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것은 사람 카이우스, 사람 일반이었고, 그것은 완전히 옳았다. 그러나 그는 카이우스도 사람 일반도 아니었고, 그는 언제나 다른 모든 존재와는 전혀, 전혀 다른 특별한 존재였다. 그는 엄마, 아빠와 함께, 미탸와 볼로댜와 함께, 장난감과 마부와 유모와 함께, 그다음엔 카텐카와 함께, 어린 시절과 소년 시절과 젊은 시절의 모든 기쁨과 슬픔과 환희와 함께 있던 바냐였다. 바냐가 그토록 좋아하던 줄무늬 가죽 공의 그 냄새가 카이우스에게 있었던가! 카이우스가 그렇게 엄마 손에 입을 맞추었던가, 카이우스에게 엄마 옷 주름의 비단이 그렇게 사각거렸던가? 카이우스가 법률학교에서 파이 때문에 반란을 일으켰던가? 카이우스가 그렇게 사랑에 빠졌던가? 카이우스가 그렇게 공판을 이끌 수 있었던가?
카이우스는 정말 죽는다. 그가 죽는 것은 옳다. 그러나 나, 바냐, 이반 일리치, 내 모든 감정과 생각을 지닌 나에게 그것은 다른 문제다. 그리고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건 너무 끔찍할 것이다.
그는 그렇게 느꼈다.
「나도 카이우스처럼 죽어야 한다면 나는 그걸 알았을 거야. 내 안의 목소리가 그렇게 말해 주었을 거야. 그런데 내 안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어. 나도, 내 친구들도 모두 우리는 카이우스와는 전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런데 이제 이렇게 됐어!」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있을 수 없어. 있을 수 없는데, 있어. 어떻게 된 거지? 이걸 어떻게 이해하지?」
그리고 그는 이해할 수 없어서, 이 생각을 거짓되고 틀리고 병적인 생각으로 여겨 쫓아내고, 다른 올바르고 건강한 생각으로 밀어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 생각은, 단지 생각만이 아니라 마치 현실처럼 다시 찾아와 그의 앞에 섰다.
그리고 그는 이 생각 자리에 다른 생각들을 차례로 불러들였다. 그 안에서 기댈 곳을 찾기를 바라면서. 그는 전에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가려 주던 예전의 생각의 흐름으로 돌아가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전에는 죽음에 대한 의식을 가리고 감추고 없애 주던 모든 것이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작용을 할 수 없었다. 마지막 무렵 이반 일리치는 대부분의 시간을 죽음을 가려 주던 예전의 감정의 흐름을 되살리려는 이런 시도로 보냈다. 한번은 스스로에게 말했다. 「직무에 몰두하자. 나는 그걸로 살아오지 않았나.」 그리고 그는 모든 의심을 쫓아내며 법원에 갔다.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옛 버릇대로 멍하니 생각에 잠긴 눈길로 군중을 훑어보며, 여윈 두 손으로 참나무 의자 팔걸이를 짚고 앉았다. 여느 때처럼 동료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서류를 밀어 주고, 귓속말을 하다가, 갑자기 눈을 들고 똑바로 고쳐 앉아 정해진 말을 하고 공판을 시작했다. 그러나 갑자기 한가운데서 옆구리의 통증이 공판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빨아먹는 일을 시작했다. 이반 일리치는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대한 생각을 쫓아냈지만, 그것은 제 일을 계속했고, 그것은 찾아와 그의 바로 앞에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그는 얼어붙었고, 눈에서 불이 꺼졌으며, 다시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정말 그것만이 진실인가?」 그러면 동료와 부하들은 그토록 빛나고 섬세한 판사인 그가 헷갈려 하고 실수하는 것을 놀랍고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는 몸을 추스르고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어떻게든 공판을 끝까지 이끌었고, 판사의 일이 예전처럼 자기가 숨기고 싶은 것을 자기에게서 숨겨 줄 수 없다는 것, 판사의 일로는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서글픈 의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쁜 것은, 그것이 그를 제게로 끌어당기는 것이 무엇을 하라고가 아니라 그저 자기를 바라보라고, 똑바로 제 눈을 바라보라고,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말할 수 없이 괴로워하라고 그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이반 일리치는 위안을, 다른 가리개를 찾았고, 다른 가리개가 나타나 잠시 그를 구해 주는 것 같았지만, 곧 다시 무너진다기보다는 비쳐 보였다. 마치 그것이 모든 것을 꿰뚫고 들어와 아무것도 그것을 가릴 수 없는 것처럼.
마지막 무렵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그가 손수 꾸민 응접실, 그가 떨어졌던 그 응접실, 생각하면 독기 어린 웃음이 나오지만 그것을 꾸미느라 목숨을 바친 그 응접실에 들어간다. 그는 자기 병이 그때 부딪친 데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들어가 보니 니스 칠한 탁자에 무언가에 긁힌 자국이 있다. 그는 원인을 찾았다. 그리고 가장자리가 휘어진 앨범의 청동 장식에서 그것을 찾아냈다. 그는 그가 사랑을 담아 꾸민 값비싼 앨범을 집어 들고 딸과 그 친구들의 칠칠치 못함에 짜증을 냈다. 여기는 찢어지고, 저기는 사진이 뒤집혀 있다. 그는 그것을 정성껏 바로잡고 장식을 다시 구부려 놓았다.
그러다 이 앨범들이 있는 이 진열(établissement)을 통째로 다른 구석, 꽃 옆으로 옮기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하인을 불렀다. 그러면 딸이나 아내가 도우러 왔다. 그들은 찬성하지 않고 반대했고, 그는 말다툼을 하고 화를 냈다. 그러나 다 좋았다. 그는 그것을 잊고 있었고, 그것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가 직접 옮기고 있을 때 아내가 말했다. 「그만둬요, 사람들이 할 거예요. 또 몸을 상할 거예요.」 그러자 갑자기 그것이 가리개 너머로 언뜻 비쳤고, 그는 그것을 보았다. 그것은 언뜻 비쳤고, 그는 아직 그것이 숨어 주기를 바랐지만, 저도 모르게 옆구리에 귀를 기울였다. 거기에는 여전히 똑같은 것이 앉아 있고, 여전히 똑같이 쑤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잊을 수가 없었고, 그것은 꽃 너머에서 뚜렷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인가?
「정말이지, 여기, 이 커튼에서 나는 마치 돌격하다가 그러듯 목숨을 잃었구나. 정말인가? 얼마나 끔찍하고 얼마나 어리석은가! 있을 수 없어! 있을 수 없는데, 있어.」
그는 서재로 가서 누웠고, 다시 그것과 단둘이, 그것과 마주 보고 남았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그것을 바라보며 얼어 갈 뿐.
7장
이반 일리치가 앓은 지 석 달째에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말할 수 없다. 한 걸음 한 걸음 눈치채지 못하게 그렇게 되어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아내도, 딸도, 아들도, 하인들도, 지인들도, 의사들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신도 알게 되었다. 남들에게 그에 대한 관심은 오직 그가 언제쯤 마침내 자리를 비워 줄 것인가, 자기가 있음으로써 산 사람들에게 주는 거북함에서 그들을 풀어 주고 자기도 고통에서 풀려날 것인가 하는 데에만 있다는 것을.
그는 점점 덜 잤다. 사람들은 그에게 아편을 주고 모르핀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를 편하게 해 주지 못했다. 반쯤 잠든 상태에서 느끼는 둔한 우울은 처음엔 무언가 새로운 것으로서 그를 좀 편하게 해 주었지만, 나중에는 드러난 통증만큼, 아니 그보다 더 괴로워졌다.
의사들의 지시에 따라 그를 위한 특별한 음식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음식들은 모두 그에게 점점 더 맛이 없고, 점점 더 역겨워졌다.
용변을 위해서도 특별한 장치가 마련되었는데, 그것은 매번 고문이었다. 더러움과 체면 없음과 냄새로 인한 고문, 그 일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야 한다는 의식으로 인한 고문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가장 불쾌한 일에서 이반 일리치에게 위안이 나타났다. 그의 뒤처리를 하러 오는 것은 늘 식당 머슴 게라심이었다.
게라심은 도시 밥을 먹고 살이 오른, 깔끔하고 싱싱한 젊은 농사꾼이었다. 언제나 명랑하고 맑았다. 처음에 늘 깔끔한 러시아식 차림을 한 이 사람이 이 역겨운 일을 하는 모습은 이반 일리치를 당혹스럽게 했다.
한번은 그가 변기에서 일어나 바지를 올릴 힘이 없어서 푹신한 안락의자에 쓰러져, 근육이 뚜렷이 드러난, 맥없는 제 맨 넓적다리를 두려움에 차서 바라보고 있었다.
두꺼운 장화를 신은 게라심이 장화의 기분 좋은 타르 냄새와 겨울 공기의 싱그러움을 풍기며, 깨끗한 삼베 앞치마에 깨끗한 무명 셔츠를 입고, 맨살의 억세고 젊은 팔에 소매를 걷어붙인 채 가볍고 힘찬 걸음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반 일리치를 쳐다보지 않고, 병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얼굴에 빛나는 삶의 기쁨을 누르고 있는 것이 분명한 모습으로 변기에 다가갔다.
「게라심.」 이반 일리치가 힘없이 말했다.
게라심은 무언가 실수한 게 아닌가 놀란 듯 흠칫하더니, 이제 막 수염이 나기 시작한 싱싱하고 착하고 소박한 젊은 얼굴을 재빨리 병자 쪽으로 돌렸다.
「무슨 분부십니까요?」
「이 일이 너한테는 불쾌할 것 같구나. 용서해라. 내가 할 수가 없어서.」
「원 별말씀을요.」 그러고는 게라심은 눈을 반짝이며 젊고 하얀 이를 드러냈다. 「수고 좀 하는 게 뭐 어떻다고요? 나리는 아프신걸요.」
그리고 그는 날렵하고 억센 손으로 늘 하던 일을 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나갔다. 그리고 오 분 뒤, 역시 가벼운 걸음으로 돌아왔다.
이반 일리치는 여전히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게라심.」 게라심이 깨끗이 씻은 변기를 내려놓자 그가 말했다. 「부탁이다, 좀 도와다오, 이리 오너라.」 게라심이 다가왔다. 「나를 일으켜 다오. 혼자서는 힘들구나. 드미트리는 심부름을 보냈고.」
게라심이 다가왔다. 가볍게 걷던 것과 똑같이 억센 두 팔로 그를 안아 날렵하고 부드럽게 일으켜 받쳐 들고, 다른 손으로 바지를 끌어 올리고는 앉히려 했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는 소파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게라심은 힘들이지 않고, 누르는 기색도 없이 거의 안다시피 그를 소파로 데려가 앉혔다.
「고맙다. 너는 어쩜 그렇게 날렵하게, 잘…… 모든 걸 하는구나.」
게라심은 다시 웃고 나가려 했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는 그와 함께 있는 것이 너무 좋아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저 의자를 좀 당겨 다오. 아니, 이거 말고 저거, 발밑에. 발을 높이 두면 좀 편하구나.」
게라심은 의자를 가져와 소리 나지 않게 한 번에 바닥에 반듯이 내려놓고 이반 일리치의 발을 의자에 올렸다. 이반 일리치는 게라심이 발을 높이 들어 올리는 동안 편해진 것 같았다.
「발을 높이 두면 좀 낫구나.」 이반 일리치가 말했다. 「저 베개를 받쳐 다오.」
게라심은 그렇게 했다. 다시 발을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게라심이 발을 들고 있는 동안 이반 일리치는 다시 나아졌다. 그가 발을 내려놓자 더 나빠진 것 같았다.
「게라심.」 그가 말했다. 「너 지금 바쁘냐?」
「천만에요, 나리.」 도시 사람들에게서 주인 나리들과 말하는 법을 배운 게라심이 말했다.
「또 해야 할 일이 뭐가 있느냐?」
「제가 할 일이 뭐 있겠어요? 다 해 놨습니다요. 내일 쓸 장작만 좀 패면 돼요.」
「그럼 이렇게 내 발을 좀 높이 들고 있어 줄 수 있겠느냐?」
「그럼요, 할 수 있죠.」 게라심이 발을 더 높이 들자, 이반 일리치는 이 자세에서는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장작은 어떡하고?」
「걱정 마십쇼. 시간은 충분합니다요.」
이반 일리치는 게라심에게 앉아서 발을 들고 있으라고 하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었다. 게라심이 발을 들고 있는 동안에는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 뒤로 이반 일리치는 이따금 게라심을 불러 자기 발을 그의 어깨에 얹어 들고 있게 했고, 그와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게라심은 그 일을 가볍게, 기꺼이, 소박하게, 그리고 이반 일리치를 뭉클하게 하는 착한 마음으로 해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의 건강과 힘과 삶의 활기는 이반 일리치를 모욕했다. 오직 게라심의 힘과 삶의 활기만이 그를 서글프게 하지 않고 오히려 달래 주었다.
이반 일리치를 가장 괴롭힌 것은 거짓말이었다. 어째서인지 모두가 인정하는 그 거짓말, 그는 그저 아플 뿐 죽어 가는 게 아니며 그저 마음을 편히 가지고 치료만 받으면 무언가 아주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거짓말.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무엇을 하든 더 괴로운 고통과 죽음 말고는 아무것도 생기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거짓말이 그를 괴롭혔다. 모두가 알고 그도 아는 것을 사람들이 인정하려 하지 않고, 그의 끔찍한 처지를 두고 그를 앞에 놓고 거짓말을 하려 하며, 그 자신까지 이 거짓말에 끼어들기를 바라고 억지로 끼어들게 한다는 것이 그를 괴롭혔다. 거짓말, 그의 죽음을 앞두고 그를 두고 저질러지는 이 거짓말, 그의 죽음이라는 무섭고 엄숙한 행위를 그들의 방문이며 커튼이며 점심의 철갑상어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거짓말……. 그것은 이반 일리치에게 지독히 괴로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들이 그를 두고 그런 수작을 부릴 때마다 그는 몇 번이고 그들에게 소리칠 뻔했다. 거짓말 그만해. 당신들도 알고 나도 알잖아, 내가 죽어 간다는 걸. 그러니 적어도 거짓말만은 그만해. 그러나 그는 한 번도 그럴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는 보았다. 자기가 죽어 가는 무섭고 끔찍한 행위가 주위 모든 사람에 의해 우연한 불쾌함, 어느 정도는 체면 없는 일의 수준으로(응접실에 들어서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끌어내려졌다는 것을. 그가 평생 섬겨 온 바로 그 「점잖음」에 의해서. 그는 보았다. 아무도 자기를 가엾게 여기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무도 자기 처지를 이해하려고조차 하지 않으니까. 오직 게라심만이 이 처지를 이해하고 그를 가엾게 여겼다. 그래서 이반 일리치는 게라심과 있을 때만 좋았다. 게라심이 이따금 밤을 꼬박 새우며 그의 발을 들고, 자러 가려 하지 않고 「걱정 마십쇼, 이반 일리치 나리. 잠은 나중에 실컷 잘게요.」 하고 말할 때 좋았다. 또 그가 갑자기 말을 놓으며 「아픈 사람인데, 이깟 시중 좀 드는 게 뭐 어때서.」 하고 덧붙일 때 좋았다. 게라심 한 사람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으로 보아 그 한 사람만이 무슨 일인지 이해했고, 그것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여겼으며, 그저 말라빠지고 힘없는 나리를 가엾게 여겼다. 한번은 이반 일리치가 그를 돌려보내려 하자 그는 대놓고 말하기까지 했다.
「우리 다 죽을 거잖아요. 수고 좀 하는 게 뭐 어때서요?」 그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가 이 수고를 짐스럽게 여기지 않는 것은 바로 죽어 가는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이기 때문이며, 자기 차례가 오면 누군가 자기를 위해서도 똑같은 수고를 해 주리라 바라기 때문이라는 뜻을 나타냈다.
이 거짓말 말고도, 또는 이 거짓말 때문에, 이반 일리치에게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아무도 그가 바라는 방식으로 그를 가엾게 여겨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반 일리치는 어떤 순간에는, 오랜 고통 끝에, 털어놓기는 아무리 부끄럽더라도 무엇보다 바란 것이 있었다. 아픈 아이를 가엾게 여기듯 누군가 자기를 가엾게 여겨 주기를. 아이들을 쓰다듬고 달래듯 누군가 자기를 쓰다듬고 입 맞추고 자기를 두고 울어 주기를. 그는 자기가 중요한 판사이고 수염이 세어 가고 있으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그는 그러기를 바랐다. 그리고 게라심과의 관계에는 무언가 거기에 가까운 것이 있었고, 그래서 게라심과의 관계가 그를 위로했다. 이반 일리치는 울고 싶고, 누가 쓰다듬어 주고 자기를 두고 울어 주기를 바라는데, 동료 판사 셰베크가 찾아오면, 울고 기대는 대신 이반 일리치는 진지하고 엄격하고 사려 깊은 얼굴을 하고, 관성처럼 파기원 판결의 의미에 대한 자기 의견을 말하며 끈질기게 그 의견을 고집한다. 자기 둘레와 자기 안의 이 거짓말이 무엇보다 이반 일리치의 마지막 나날에 독을 끼쳤다.
8장
아침이었다. 게라심이 나가고 하인 표트르가 와서 촛불을 끄고 커튼 하나를 열고 조용히 치우기 시작했으니 아침일 뿐이었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금요일이든 일요일이든 모두 아무래도 좋았고, 모두 똑같았다. 쑤시고, 한순간도 가라앉지 않는 괴로운 통증. 가망 없이 줄곧 떠나가지만 아직 다 떠나가지 않은 삶에 대한 의식. 다가오는, 오직 그것만이 현실인 여전히 그 무섭고 미운 죽음. 그리고 여전히 그 거짓말. 여기에 무슨 날이며 주며 하루의 시간이 있단 말인가?
「차를 드시겠습니까?」
「이 녀석한테는 주인들이 아침마다 차를 마시는 질서가 필요하지.」 그는 생각하고 그저 이렇게만 말했다.
「아니.」
「소파로 옮기시겠습니까?」
「이 녀석은 방을 치워야 하는데 내가 방해가 되는구나. 나는 더러움이고 무질서다.」 그는 생각하고 그저 이렇게만 말했다.
「아니, 나를 내버려 둬.」
하인은 조금 더 부산을 떨었다. 이반 일리치가 손을 내밀었다. 표트르가 공손하게 다가왔다.
「무슨 분부십니까?」
「시계.」
표트르는 손 닿는 데 놓인 시계를 집어 건넸다.
「여덟 시 반이군. 저쪽은 아직 안 일어났느냐?」
「예, 아직입니다. 바실리 이바노비치(아들이었다)께서는 김나지움에 가셨고,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께서는 나리가 찾으시면 깨우라고 하셨습니다. 깨울까요?」
「아니, 됐다.」 「차를 좀 마셔 볼까?」 그는 생각했다. 「그래, 차…… 가져오너라.」
표트르가 나가려고 했다. 이반 일리치는 혼자 남는 것이 무서워졌다. 「무엇으로 붙잡아 둘까? 그래, 약.」 「표트르, 약을 다오.」 「왜 안 되겠어, 어쩌면 약이 아직 도움이 될지도 몰라.」 그는 숟가락을 들어 마셨다. 「아니, 도움이 안 될 거야. 다 헛소리야, 속임수야.」 익숙한 들척지근하고 가망 없는 맛을 느끼자마자 그는 결론을 내렸다. 「아니, 이제는 믿을 수가 없어. 하지만 통증은, 통증은 왜, 한순간이라도 좀 가라앉았으면.」 그리고 그는 신음했다. 표트르가 돌아왔다. 「아니, 가거라. 차를 가져와.」
표트르가 나갔다. 혼자 남은 이반 일리치는 통증이 아무리 끔찍해도 통증 때문이라기보다 우울해서 신음했다. 「늘 똑같고 또 똑같다. 이 끝없는 낮과 밤. 차라리 빨리. 무엇이 빨리? 죽음, 어둠. 아니, 아니. 무엇이든 죽음보다는 나아!」
표트르가 쟁반에 차를 받쳐 들고 들어왔을 때, 이반 일리치는 그가 누구이며 무엇인지 모르는 채 한참을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표트르는 그 눈길에 당황했다. 그리고 표트르가 당황하자 이반 일리치는 정신을 차렸다.
「그래.」 그가 말했다. 「차…… 좋아, 놓아라. 그런데 씻는 걸 좀 도와다오. 그리고 깨끗한 셔츠도.」
그리고 이반 일리치는 씻기 시작했다. 그는 쉬엄쉬엄 손과 얼굴을 씻고, 이를 닦고, 머리를 빗기 시작하다가 거울을 보았다. 그는 무서워졌다. 특히 머리카락이 창백한 이마에 납작하게 달라붙은 모습이 무서웠다.
셔츠를 갈아입힐 때 그는 자기 몸을 보면 더 무서워지리라는 것을 알고 자기를 보지 않았다. 그러다 모든 것이 끝났다. 그는 실내복을 입고 무릎 담요를 덮고 차를 마시러 안락의자에 앉았다. 한순간 그는 상쾌해진 것 같았지만, 차를 마시기 시작하자마자 다시 똑같은 맛, 똑같은 통증이었다. 그는 억지로 차를 다 마시고 다리를 뻗고 누웠다. 그는 누워서 표트르를 내보냈다.
여전히 똑같았다. 한 방울 희망이 반짝이는가 하면 절망의 바다가 사납게 일었고, 줄곧 통증, 줄곧 통증, 줄곧 우울, 줄곧 똑같은 것. 혼자 있으면 지독히 우울해서 누구든 부르고 싶었지만, 남들이 있으면 더 나쁘다는 것을 그는 미리 알았다. 「차라리 또 모르핀을. 잊어버릴 수 있게. 의사한테 무언가 다른 걸 궁리해 달라고 해야지. 이렇게는 안 돼, 이렇게는 안 돼.」
한 시간, 두 시간이 그렇게 지나간다. 그런데 현관에서 초인종이 울린다. 혹시 의사일까. 정말 의사다. 싱싱하고 기운차고 살찌고 명랑한, 당신이 거기서 무언가에 겁을 먹었군요, 우리가 곧 다 해결해 드리지요, 하는 그 표정을 한. 의사는 이 표정이 여기서는 쓸모없다는 것을 알지만, 아침에 연미복을 입고 방문을 다니는 사람처럼 이미 한번 입은 그 표정을 벗을 수가 없다. 의사는 기운차게, 위로하듯 손을 비빈다.
「몸이 차갑군요. 바깥 추위가 대단합니다. 좀 녹이고요.」 그는 마치 몸이 녹을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면 되고, 몸이 녹으면 그때는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한다.
「자, 어떠십니까?」
이반 일리치는 의사가 「요즘 형편 어떠십니까?」 하고 말하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느끼고 「밤은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하고 말한다는 것을 느낀다.
이반 일리치는 의사를 이렇게 묻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너는 거짓말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러나 의사는 그 물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반 일리치는 말한다.
「여전히 끔찍합니다.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요, 물러서지를 않아요. 무엇이든 좀!」
「그래요, 환자분들은 늘 그러시지요. 자, 이제 몸이 녹은 것 같군요. 가장 꼼꼼한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께서도 제 체온에 이의가 없으시겠지요. 자,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의사는 악수를 한다.
그러고는 아까의 장난기를 모두 걷어 내고, 의사는 진지한 얼굴로 환자를 살피기 시작한다. 맥박, 체온. 그리고 두드리기와 청진이 시작된다.
이반 일리치는 이 모든 것이 헛소리이고 빈 속임수라는 것을 굳게, 의심 없이 안다. 그러나 의사가 무릎을 꿇고 그 위로 몸을 뻗어 귀를 위에 댔다 아래에 댔다 하며 더없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그 위에서 여러 가지 체조 같은 동작을 하면, 이반 일리치는 거기에 넘어간다. 예전에 변호사들이 모두 거짓말을 하며 왜 거짓말을 하는지 아주 잘 알면서도 그들의 변론에 넘어가던 것처럼.
의사가 소파 위에 무릎을 꿇고 아직 무언가를 두드리고 있을 때, 문간에서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의 비단옷이 사각거렸고, 의사가 왔다는 것을 왜 알리지 않았느냐고 표트르를 나무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들어와 남편에게 입을 맞추고는, 곧바로 자기는 벌써 오래전에 일어났으며 의사가 왔을 때 여기 없었던 것은 그저 착오였을 뿐이라고 증명하기 시작한다.
이반 일리치는 그녀를 바라보며 온몸을 훑어보고, 그녀의 손과 목의 희고 통통하고 깨끗함을, 머리카락의 윤기를, 삶으로 가득 찬 눈의 반짝임을 탓한다. 그는 온 영혼의 힘을 다해 그녀를 미워하고, 그녀의 손길은 밀려오는 미움 때문에 그를 괴롭게 한다.
그와 그의 병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여전하다. 의사가 환자에 대한 태도를 다듬어 이제 벗을 수 없게 되었듯, 그녀도 그에 대한 태도 하나를 다듬어 냈다. 그가 해야 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며 제 탓이라는 것, 그리고 그녀는 사랑으로 그것을 나무란다는 것. 그리고 그녀는 이제 그에 대한 그 태도를 벗을 수가 없었다.
「글쎄 이 사람이 말을 안 들어요! 약을 제때 안 먹어요. 무엇보다 틀림없이 몸에 해로울 자세로 누워요. 다리를 위로 올리고요.」
그녀는 그가 게라심에게 어떻게 자기 다리를 들고 있게 하는지 이야기했다.
의사는 경멸 섞인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어쩌겠습니까, 환자분들은 이따금 그런 어리석은 짓을 생각해 내지요. 하지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진찰이 끝나고 의사가 시계를 보자,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이반 일리치에게 선언했다. 당신이 뭐라 하든 오늘 자기가 이름난 의사를 불렀으며, 그 의사가 미하일 다닐로비치(늘 오는 의사의 이름이었다)와 함께 진찰하고 의논할 것이라고.
「제발 반대하지 마요. 이건 나를 위해서 하는 거예요.」 그녀는 비꼬듯 말했다. 자기가 모든 것을 그를 위해 하며, 오직 그 때문에 그에게는 거절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하면서. 그는 말없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자기를 둘러싼 이 거짓말이 어찌나 뒤엉켰던지 이제 무엇 하나 가려내기 어렵다고 느꼈다.
그녀는 그에게 하는 모든 일을 오직 자기를 위해서 했다. 그리고 그녀가 정말로 자기를 위해 하는 일을 두고, 자기를 위해 한다고 그에게 말하는 것이 어찌나 믿기 어려운 일처럼 들리게 하던지, 그는 그것을 거꾸로 알아들어야 했다.
정말로 열한 시 반에 이름난 의사가 왔다. 다시 청진이 시작되었고, 그의 앞에서, 그리고 다른 방에서 콩팥이며 맹장에 대한 의미심장한 대화가 오갔고, 어찌나 의미심장한 모습으로 묻고 답하던지, 이제 그의 앞에 오직 그것 하나만 서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짜 물음 대신 또다시 콩팥과 맹장의 물음이 앞에 나섰다. 해야 할 대로 하지 않고 있는 콩팥과 맹장, 그래서 곧 미하일 다닐로비치와 명의가 덤벼들어 고쳐 놓게 만들 콩팥과 맹장.
명의는 진지하지만 가망 없지는 않은 얼굴로 작별했다. 그리고 이반 일리치가 두려움과 희망으로 반짝이는 눈을 그에게 들며 쭈뼛쭈뼛 나을 가능성이 있느냐고 묻자, 장담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대답했다. 이반 일리치가 의사를 배웅하는 희망의 눈길이 어찌나 애처로웠던지, 그것을 본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명의에게 사례금을 건네려고 서재 문을 나서면서 울음까지 터뜨렸다.
의사의 희망 섞인 말이 일으킨 기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똑같은 방, 똑같은 그림들, 커튼, 벽지, 약병들, 그리고 똑같은 제 아프고 괴로운 몸. 그리고 이반 일리치는 신음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에게 주사를 놓았고, 그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가 깨어났을 때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에게 점심을 가져왔다. 그는 애써 수프를 먹었다. 그리고 다시 똑같은 것, 그리고 다시 다가오는 밤.
점심 뒤, 일곱 시에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가 저녁 외출 차림을 하고, 두툼하게 조여 올린 가슴에 얼굴에는 분 자국을 남긴 채 그의 방에 들어왔다. 그녀는 아침에 벌써 극장 나들이를 그에게 일러 두었었다. 사라 베르나르가 순회 공연을 와 있었고, 그들은 칸막이 관람석을 잡아 두었는데, 그것을 잡으라고 우긴 것이 그였다. 이제 그는 그 일을 잊고 있었고, 그녀의 차림이 그를 모욕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미적 즐거움이 되니 자리를 잡아 다녀오라고 우긴 것이 바로 자기였다는 것을 떠올리자 그는 모욕감을 숨겼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스스로 흡족하면서도 어쩐지 죄지은 듯한 모습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앉아서 건강이 어떠냐고 물었는데, 그가 보기에 그것은 알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묻기 위해 묻는 것이었다. 알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러고는 자기가 해야 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는 절대 가지 않으려 했지만 자리를 잡아 두었고, 엘렌과 딸과 페트리셰프(딸의 약혼자인 예심판사)가 가는데, 그들만 보낼 수는 없다고. 자기는 그와 함께 앉아 있는 게 훨씬 좋을 거라고. 다만 자기가 없는 동안 의사의 지시대로만 해 달라고.
「참, 표도르 페트로비치(약혼자)가 들어오고 싶어 해요. 괜찮죠? 리자도요.」
「들어오라고 해.」
딸이 한껏 차려입고, 젊은 몸을 드러낸 채 들어왔다. 그를 그토록 괴롭게 하던 바로 그 몸을. 그런데 딸은 그 몸을 내보였다. 힘차고 건강하며, 사랑에 빠진 것이 분명하고, 자기 행복을 가로막는 병과 고통과 죽음에 분개하는 딸.
표도르 페트로비치도 연미복을 입고 카풀식으로 머리를 곱슬곱슬 말고, 흰 칼라로 꽉 조인 길고 힘줄 선 목에, 커다랗고 흰 셔츠 가슴에, 몸에 붙는 검은 바지 속에 팽팽한 튼튼한 넓적다리를 하고, 한 손에는 흰 장갑을 팽팽하게 끼고 접이식 실크해트를 들고 들어왔다.
그 뒤로 김나지움 학생이 새 교복을 입고 장갑을 끼고 슬그머니 기어 들어왔다. 가엾은 아이. 눈 밑이 끔찍하게 퍼렜는데, 이반 일리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아들은 늘 그에게 가여웠다. 그리고 겁먹고 안타까워하는 아들의 눈길은 무서웠다. 게라심 말고는 바샤 하나만이 이해하고 가엾게 여긴다고 이반 일리치는 생각했다.
모두 앉아 다시 건강을 물었다. 침묵이 흘렀다. 리자가 엄마에게 오페라글라스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누가 어디에 두었느냐를 두고 엄마와 딸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불쾌해졌다.
표도르 페트로비치가 이반 일리치에게 사라 베르나르를 보셨느냐고 물었다. 이반 일리치는 처음엔 무엇을 묻는지 알아듣지 못하다가, 이윽고 말했다.
「아니요. 당신은 벌써 보았소?」
「네, 「아드리엔 르쿠브뢰르」에서요.」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가 그녀는 이러이러한 데서 특히 좋다고 말했다. 딸이 반박했다. 그녀의 연기가 얼마나 우아하고 사실적인지에 대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언제나 똑같은 바로 그 대화.
대화 중간에 표도르 페트로비치가 이반 일리치를 흘끗 보고 입을 다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이반 일리치는 반짝이는 눈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분개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것을 바로잡아야 했지만 도저히 바로잡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이 침묵을 깨야 했다. 아무도 나서지 못했고, 모두 점잖은 거짓말이 갑자기 어떻게든 깨져서 있는 그대로가 모두에게 뚜렷해질까 봐 무서워졌다. 리자가 먼저 마음을 먹었다. 그녀가 침묵을 깼다. 그녀는 모두가 느끼는 것을 감추려 했지만, 그만 말이 헛나왔다.
「그런데 갈 거면 이제 가야 해요.」 그녀는 아버지가 선물한 시계를 보며 말하고는, 그들 둘만 아는 무언가를 두고 젊은이에게 거의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의미심장하게 미소 짓더니, 옷자락을 사각거리며 일어났다. 모두 일어나 작별하고 떠났다.
그들이 나가자 이반 일리치는 편해진 것 같았다. 거짓말이 없었다. 거짓말은 그들과 함께 떠났다. 그러나 통증은 남았다. 여전히 똑같은 통증, 여전히 똑같은 공포 때문에 무엇도 더 무겁지 않고 무엇도 더 가볍지 않았다. 모든 것이 더 나빴다.
다시 일 분 또 일 분, 한 시간 또 한 시간이 흘러갔다. 여전히 똑같고, 여전히 끝이 없고, 피할 수 없는 끝은 점점 더 무서워졌다.
「그래, 게라심을 보내 다오.」 그는 표트르의 물음에 대답했다.
9장
밤늦게 아내가 돌아왔다. 그녀는 발끝으로 들어왔지만 그는 그 소리를 들었다. 눈을 떴다가 서둘러 다시 감았다. 그녀는 게라심을 내보내고 자기가 그의 곁에 앉아 있으려 했다. 그는 눈을 뜨고 말했다.
「아니. 가.」
「많이 아파요?」
「아무래도 좋아.」
「아편을 드세요.」
그는 동의하고 마셨다. 그녀는 나갔다.
세 시쯤까지 그는 괴로운 혼미 속에 있었다. 누가 그를 아프게 어딘가 좁고 검고 깊은 자루 속으로 쑤셔 넣는 것 같았다. 점점 더 깊이 밀어 넣는데 끝내 밀어 넣지 못한다. 그리고 그에게 끔찍한 이 일은 고통과 함께 벌어진다. 그는 두려워하면서도 그 속으로 빠지고 싶어 하고, 버티면서도 돕는다. 그러다 갑자기 그는 떨어져 나가 추락했고, 정신이 들었다. 여전히 그 게라심이 침대 발치에 앉아 조용히, 참을성 있게 졸고 있다. 그리고 그는 양말 신은 여윈 두 다리를 게라심의 어깨에 올린 채 누워 있다. 갓을 씌운 똑같은 촛불, 그리고 그치지 않는 똑같은 통증.
「가거라, 게라심.」 그가 속삭였다.
「괜찮습니다요, 앉아 있을게요.」
「아니. 가거라.」
그는 다리를 내리고 팔을 베고 모로 누웠다. 그러자 자기가 가여워졌다. 그는 게라심이 옆방으로 나가기만을 기다렸다가, 더 참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의 무력함을, 자기의 끔찍한 외로움을, 사람들의 잔인함을, 하느님의 잔인함을, 하느님이 없음을 두고 울었다. 「왜 이 모든 걸 하셨습니까? 왜 저를 여기로 데려오셨습니까?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에 이토록 끔찍하게 저를 괴롭히십니까?……」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고, 대답이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는 것 때문에 울었다. 통증이 다시 치솟았지만 그는 꼼짝하지 않았고 부르지도 않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래, 또, 그래, 쳐라!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내가 당신께 무엇을 했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러다 그는 조용해졌다. 우는 것만 그친 것이 아니라 숨 쉬는 것도 그치고, 온몸이 귀가 되었다. 마치 소리로 말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영혼의 목소리에, 자기 안에서 솟아오르는 생각의 흐름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너는 무엇이 필요하냐?」 이것이 그가 들은, 말로 나타낼 수 있는 첫 뚜렷한 생각이었다. 「너는 무엇이 필요하냐? 무엇이 필요하냐?」 그는 스스로에게 되풀이했다. 「무엇이?」 「괴롭지 않은 것. 사는 것.」 그가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그는 통증조차 그의 주의를 흩트리지 못할 만큼 팽팽한 귀 기울임에 온몸을 맡겼다.
「산다고? 어떻게 산다는 거냐?」 영혼의 목소리가 물었다.
「그래, 사는 거야. 내가 전에 살던 것처럼. 좋고 즐겁게.」
「네가 전에 좋고 즐겁게 살던 것처럼?」 목소리가 물었다. 그리고 그는 즐거웠던 자기 삶의 가장 좋은 순간들을 상상 속에서 하나하나 되짚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즐거웠던 삶의 그 가장 좋은 순간들이 모두 이제는 그때 여겨지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여겨졌다. 모두가. 어린 시절의 첫 기억들만 빼고. 거기, 어린 시절에는 정말로 즐거운 무언가, 그것이 돌아온다면 그것으로 살 수 있을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을 느끼던 사람은 이제 없었다. 그것은 마치 다른 누군가에 대한 기억 같았다.
지금의 그, 이반 일리치를 결과로 낳은 것이 시작되자마자, 그때는 기쁨으로 여겨지던 모든 것이 이제 그의 눈앞에서 녹아 무언가 보잘것없는 것으로, 자주 추잡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서 멀어질수록, 지금에 가까워질수록 기쁨은 더 보잘것없고 더 의심스러웠다. 그것은 법률학교에서 시작되었다. 거기에는 아직 참으로 좋은 것이 조금 있었다. 거기에는 즐거움이 있었고, 우정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상급반에서는 벌써 그런 좋은 순간이 드물어졌다. 그다음, 지사 밑에서 처음 일할 때 다시 좋은 순간들이 나타났다. 그것은 한 여자를 사랑했던 기억이었다. 그다음엔 이 모든 것이 뒤섞였고, 좋은 것은 더 적어졌다. 그 뒤로는 좋은 것이 더 적어졌고, 갈수록 더 적어졌다.
결혼…… 그렇게 어쩌다가, 그리고 환멸, 그리고 아내의 입 냄새, 그리고 육욕, 위선! 그리고 이 죽은 직무, 돈 걱정, 그렇게 한 해, 두 해, 열 해, 스무 해. 줄곧 똑같이. 그리고 갈수록 죽은 것. 나는 마치 산에 오른다고 상상하면서 고르게 산을 내려가고 있었던 것 같다. 정말 그랬다. 세상의 눈으로는 나는 산을 오르고 있었고, 꼭 그만큼 내 발밑에서 삶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다 됐다, 죽어라!
그러면 이게 뭔가? 무엇 때문인가? 있을 수 없다. 삶이 이토록 무의미하고 추잡했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정말로 삶이 그토록 추잡하고 무의미했다면, 무엇 때문에 죽어야 하는가, 그것도 괴로워하며 죽어야 하는가? 무언가 잘못됐다.
「어쩌면 내가 살아야 할 대로 살지 않았는지도 몰라.」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모든 걸 해야 할 대로 했는데 어떻게 잘못 살았다는 거지?」 그는 스스로에게 말하고는,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 전체를 풀 이 유일한 해답을 전혀 있을 수 없는 무언가로 여겨 곧바로 자기에게서 쫓아냈다.
「그러면 이제 너는 무엇을 바라느냐? 사는 것? 어떻게 사는 것? 법정에서처럼 사는 것, 정리가 「개정!」 하고 외칠 때처럼? 개정, 재판이 온다.」 그는 스스로에게 되풀이했다. 「여기 재판이 있구나! 하지만 나는 죄가 없어!」 그는 분노에 차서 외쳤다. 「무엇 때문에?」 그리고 그는 울음을 그치고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린 채 줄곧 한 가지만 생각하기 시작했다. 왜, 무엇 때문에 이 모든 끔찍한 일이?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자기가 잘못 살았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생각이 자주 그랬듯 찾아오면, 그는 곧바로 자기 삶의 모든 올바름을 떠올리고 이 이상한 생각을 쫓아냈다.
10장
두 주가 더 지났다. 이반 일리치는 이제 소파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 눕기 싫어서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거의 내내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누운 채, 홀로 여전히 똑같은 풀리지 않는 고통을 겪고, 홀로 여전히 똑같은 풀리지 않는 생각을 했다. 이게 뭔가? 정말 죽음인가? 그러면 안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래, 정말이다. 이 고통은 무엇 때문인가? 그러면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냥, 아무것 때문도 아니다. 그 너머에도, 그 밖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병이 시작된 맨 처음부터, 이반 일리치가 처음 의사에게 간 그때부터, 그의 삶은 서로 번갈아 드는 정반대의 두 기분으로 나뉘었다. 한쪽은 절망과, 알 수 없는 끔찍한 죽음에 대한 기다림이었고, 다른 쪽은 희망과, 흥미에 찬 제 몸의 활동 관찰이었다. 어떤 때는 눈앞에 잠시 제 의무에서 벗어난 콩팥이나 창자 하나만 있었고, 어떤 때는 무엇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알 수 없는 끔찍한 죽음 하나만 있었다.
이 두 기분은 병이 시작된 맨 처음부터 서로 번갈아 들었다. 그러나 병이 깊어 갈수록 콩팥에 대한 궁리는 더 의심스럽고 더 허황해졌고,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의식은 더 현실적이 되었다.
석 달 전의 자기가 어땠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지 떠올리기만 해도, 자기가 얼마나 고르게 산을 내려왔는지 떠올리기만 해도, 희망의 가능성은 모두 무너졌다.
소파 등받이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누워 있던 그 외로움, 사람 많은 도시 한가운데서, 수많은 지인과 가족 한가운데서의 그 외로움, 바다 밑바닥에서도 땅속에서도 이보다 더 온전할 수 없을 외로움. 이 무서운 외로움의 마지막 무렵, 이반 일리치는 오직 상상 속에서 지난날을 살았다. 지난날의 그림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언제나 시간상 가장 가까운 것에서 시작해 가장 먼 것, 어린 시절로 거슬러 가서 거기서 멈췄다. 오늘 먹으라고 내온 삶은 자두를 떠올리면, 이반 일리치는 어린 시절의 날것 그대로의 쭈글쭈글한 프랑스 자두를, 그 특별한 맛과 씨에 이르면 고이던 침을 떠올렸다. 그러면 이 맛의 기억과 나란히 그 시절의 기억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유모, 형, 장난감들. 「그 생각은 하지 말자…… 너무 아파.」 이반 일리치는 스스로에게 말하고 다시 지금으로 옮겨 왔다. 소파 등받이의 단추와 모로코가죽의 주름. 「모로코가죽은 비싸고 약하지. 그걸 두고 싸웠지. 하지만 다른 모로코가죽이 있었고, 다른 싸움이 있었지. 우리가 아버지 서류 가방을 찢어서 벌을 받았을 때. 그런데 엄마가 파이를 가져다주었지.」 그리고 다시 어린 시절에서 멈췄고, 다시 이반 일리치는 아파서, 그 생각을 쫓아내고 다른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다시 바로 거기, 이 기억의 흐름과 함께 그의 영혼에서는 다른 기억의 흐름이 흘렀다. 자기 병이 어떻게 심해지고 자라났는지에 대한 기억. 거기서도 거슬러 갈수록 삶이 더 많았다. 삶 속의 선함도 더 많았고, 삶 그 자체도 더 많았다. 그리고 그 둘은 하나로 녹아들었다. 「고통이 점점 더 나빠지는 것처럼 삶 전체도 점점 더 나빠졌구나.」 그는 생각했다. 저 뒤, 삶의 처음에 밝은 점 하나. 그다음엔 점점 더 검게, 점점 더 빠르게. 「죽음으로부터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서.」 이반 일리치는 생각했다. 그리고 점점 빨라지며 아래로 떨어지는 돌의 이 이미지가 그의 영혼에 박혔다. 점점 커지는 고통의 연속인 삶은 가장 무서운 고통인 끝을 향해 점점 더 빠르게 날아간다. 「나는 날아가고 있다…….」 그는 흠칫 몸을 떨고 꿈틀거리며 버티려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다시 보느라 지쳤지만 눈앞에 있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는 눈으로 소파 등받이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그 무서운 추락과 충격과 파괴를 기다렸다. 「버틸 수는 없어.」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게 무엇 때문인지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도 안 된다. 내가 살아야 할 대로 살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설명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그건 인정할 수가 없어.」 그는 자기 삶의 모든 합법성과 올바름과 점잖음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것만은 받아들일 수가 없어.」 그는 입술로 비웃으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마치 누군가 그 미소를 보고 속아 넘어갈 수라도 있는 것처럼. 「설명이 없어! 고통, 죽음……. 무엇 때문에?」
11장
그렇게 두 주가 지났다. 이 몇 주 사이에 이반 일리치와 그의 아내가 바라던 일이 일어났다. 페트리셰프가 정식으로 청혼한 것이다. 저녁때의 일이었다. 이튿날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표도르 페트로비치의 청혼을 남편에게 어떻게 알릴까 궁리하며 그에게 들어갔다. 그런데 바로 그 밤 이반 일리치에게 새로운 악화가 일어났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그가 같은 소파에, 그러나 새로운 자세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반듯이 누워 신음하며 멈춘 눈길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약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눈길을 그녀에게로 옮겼다. 그녀는 시작한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 눈길에는 바로 그녀를 향한 그런 분노가 담겨 있었다. 「제발, 조용히 죽게 내버려 둬.」 그가 말했다.
그녀가 나가려는데 그때 딸이 들어와 인사하러 다가왔다. 그는 아내를 볼 때와 똑같이 딸을 바라보았고, 건강이 어떠냐는 딸의 물음에 곧 모두를 자기에게서 풀어 주겠다고 메마르게 말했다. 둘 다 입을 다물고 잠시 앉아 있다가 나갔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요?」 리자가 엄마에게 말했다. 「마치 우리가 그렇게 만든 것처럼! 아빠가 불쌍하지만, 왜 우리를 괴롭혀요?」
늘 오는 시간에 의사가 왔다. 이반 일리치는 그에게서 성난 눈길을 떼지 않은 채 「네, 아니요」로만 대답하다가 마지막에 말했다.
「아무것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아시잖소. 그러니 그만두시오.」
「고통을 덜어 드릴 수는 있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그것도 못 하시오. 그만두시오.」
의사는 응접실로 나가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에게, 아주 나쁘며 끔찍할 게 분명한 고통을 덜어 줄 방법은 아편 하나뿐이라고 알렸다.
의사는 그의 몸의 고통이 끔찍하다고 말했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의 몸의 고통보다 더 끔찍한 것은 그의 마음의 고통이었고, 바로 거기에 그의 가장 큰 괴로움이 있었다.
그의 마음의 고통은 이런 것이었다. 그 밤, 광대뼈가 튀어나온 게라심의 졸린 듯한 사람 좋은 얼굴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정말로 내 삶 전체가, 의식이 있던 삶 전체가 「그게 아니었다」면 어떡하지.
전에는 전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지던 것, 자기가 살아야 할 대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에 맞서려던 그의 거의 알아챌 수 없는 충동들, 그가 곧바로 자기에게서 쫓아 버리던 그 거의 알아챌 수 없는 충동들, 바로 그것이 진짜였을 수 있고 나머지는 모두 「그게 아니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직무도, 그의 살림 꾸리기도, 그의 가족도, 사교와 직무의 이런 관심사도, 이 모든 것이 「그게 아니었을」 수 있었다. 그는 자기 앞에서 이 모든 것을 변호하려 했다. 그러자 갑자기 자기가 변호하는 것이 얼마나 약한지 온전히 느꼈다. 그리고 변호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가 받은 모든 것을 망쳐 버렸다는 의식을 안고, 그리고 바로잡을 수도 없이 삶을 떠난다면, 그러면 어떡하지?」 그는 반듯이 누워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자기 삶 전체를 되짚기 시작했다. 아침에 하인을, 그다음엔 아내를, 그다음엔 딸을, 그다음엔 의사를 보았을 때, 그들의 몸짓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밤에 그에게 드러난 끔찍한 진실을 확인해 주었다. 그는 그들 안에서 자기를, 자기가 살아온 모든 것을 보았고, 이 모든 것이 「그게 아니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삶과 죽음을 모두 가리는 끔찍하고 거대한 속임수였다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이 의식이 그의 몸의 고통을 키웠고, 열 배로 늘렸다. 그는 신음하며 몸부림쳤고 입은 옷을 잡아 뜯었다. 옷이 그를 조르고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는 그들을 미워했다.
사람들이 그에게 많은 양의 아편을 주었고, 그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나 점심때 다시 똑같은 것이 시작되었다. 그는 모두를 쫓아내고 이리저리 몸부림쳤다.
아내가 그에게 와서 말했다.
「장, 여보, 나를 위해 이것 좀 해 줘요(나를 위해?). 해로울 건 없고 도움이 될 때가 많아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건강한 사람들도 자주…….」
그는 눈을 크게 떴다.
「뭐? 영성체를 받으라고? 무엇 때문에? 필요 없어! 그런데 뭐…….」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그래요, 여보? 우리 신부님을 부를게요. 참 좋은 분이에요.」
「좋아, 아주 좋아.」 그가 중얼거렸다.
신부가 와서 그의 고해를 들었을 때 그는 누그러졌고, 의심에서, 그리고 그 결과 고통에서 풀려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며, 희망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는 다시 맹장과 그것을 고칠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눈에 눈물을 머금고 영성체를 받았다.
영성체 뒤에 사람들이 그를 눕히자 그는 잠시 편해졌고, 다시 삶에 대한 희망이 나타났다. 그는 사람들이 권하던 수술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살고 싶어, 살고 싶어.」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내가 축하하러 왔다. 그녀는 늘 하는 말을 하고 덧붙였다.
「어때요, 좀 나아졌죠?」
그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중얼거렸다. 응.
그녀의 옷, 그녀의 몸매, 그녀의 얼굴 표정, 그녀의 목소리, 모든 것이 그에게 한 가지를 말했다. 「그게 아니야. 네가 살아왔고 살고 있는 모든 것은 거짓말이고, 너에게서 삶과 죽음을 가리는 속임수야.」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그의 미움이 치솟았고, 미움과 함께 몸의 괴로운 고통이, 그리고 고통과 함께 피할 수 없는, 가까운 파멸에 대한 의식이 치솟았다.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 무언가가 비틀고, 쏘고, 숨을 조이기 시작했다.
그가 「응」 하고 말할 때 그의 얼굴 표정은 끔찍했다.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 「응」을 말하고 나서, 그는 몸이 약한 것에 비해 놀랄 만큼 빠르게 엎드리며 소리쳤다.
「나가, 나가, 나를 내버려 둬!」
12장
이때부터 사흘 동안 그치지 않은 그 비명이 시작되었다. 어찌나 끔찍했던지 문 두 개 너머에서도 공포 없이는 들을 수 없었다. 아내에게 대답한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자기는 끝장났다는 것을, 돌아갈 길은 없다는 것을, 끝이, 완전한 끝이 왔다는 것을. 그런데 의심은 끝내 풀리지 않고 여전히 의심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어! 어어! 어!」 그는 여러 가락으로 소리쳤다. 그는 「싫어!」 하고 외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어」 소리로 계속 외치고 있었다.
그에게는 시간이라는 것이 없었던 그 사흘 내내, 그는 보이지 않는 이길 수 없는 힘이 그를 밀어 넣는 그 검은 자루 속에서 버둥거렸다. 그는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사형 집행인의 손아귀에서 버둥거리듯 버둥거렸다. 그리고 매 순간 그는 느꼈다. 온 힘을 다해 싸우는데도 자기를 겁에 질리게 하는 그것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그는 자기의 고통이 그 검은 구멍으로 밀려 들어가는 데 있고, 그보다 더 그 구멍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데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것은 자기 삶이 좋았다는 인정이었다. 바로 자기 삶에 대한 이 정당화가 그를 붙들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고, 무엇보다 그를 괴롭혔다.
갑자기 어떤 힘이 그의 가슴을, 옆구리를 떠밀고 숨을 더 세게 조였다. 그는 구멍 속으로 떨어졌고, 거기, 구멍 끝에서 무언가가 빛났다. 기차 칸에서 앞으로 간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뒤로 가고 있었고, 그러다 갑자기 진짜 방향을 알게 될 때 같은 일이 그에게 일어났다.
「그래, 모든 게 그게 아니었어.」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괜찮아. 할 수 있어, 「그것」을 할 수 있어. 그런데 「그것」이 뭐지?」 그는 스스로에게 묻고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사흘째 끝 무렵, 그가 죽기 한 시간 전의 일이었다. 바로 그때 김나지움 학생인 아들이 가만히 아버지에게 숨어 들어와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죽어 가는 사람은 여전히 절망적으로 소리치며 두 팔을 내젓고 있었다. 그의 손이 아이의 머리에 닿았다. 아이는 그 손을 붙잡아 입술에 대고 울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이반 일리치는 떨어져 내렸고, 빛을 보았으며, 자기 삶이 마땅히 그래야 할 삶이 아니었지만 아직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 드러났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귀를 기울이며 조용해졌다. 그때 그는 누군가 자기 손에 입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눈을 뜨고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이 가여워졌다. 아내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입을 벌린 채, 코와 뺨에 닦지 않은 눈물을 묻히고, 절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가 가여워졌다.
「그래, 내가 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구나.」 그는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가엾게 여기지만, 내가 죽으면 이 사람들이 더 나아질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힘이 없었다. 「하긴, 말해서 뭘 해. 해야지.」 그는 생각했다. 그는 눈짓으로 아내에게 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데리고 나가…… 가엾어…… 당신도…….」 그는 「용서해 줘」라고도 말하고 싶었지만 「보내 줘」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고쳐 말할 힘이 없어서, 알아들어야 할 이는 알아들으리라는 것을 알고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갑자기 그에게 분명해졌다. 그를 괴롭히며 빠져나가지 않던 것이 갑자기 한꺼번에, 양쪽에서, 열 방향에서, 모든 방향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 이 사람들이 가엾다. 이 사람들이 아프지 않게 해야 한다. 이 사람들을 풀어 주고, 자기도 이 고통에서 풀려나야 한다. 「얼마나 좋고 얼마나 간단한가.」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통증은?」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통증은 어디로 갔지? 자, 어디 있니, 통증아?」
그는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래, 여기 있구나. 그래, 뭐, 통증이 있으라지.」
「그러면 죽음은? 죽음은 어디 있지?」
그는 전의 익숙한 죽음의 공포를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죽음은 어디 있지? 무슨 죽음? 공포는 조금도 없었다. 죽음도 없었으니까.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그랬구나!」 그는 갑자기 소리 내어 말했다. 「이 얼마나 기쁜가!」
그에게 이 모든 것은 한순간에 일어났고, 그 순간의 의미는 더 이상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 그의 임종은 두 시간이나 더 이어졌다. 그의 가슴속에서 무언가 그르렁거렸고, 기진한 몸이 떨렸다. 그러다 그르렁거림과 쌕쌕거림이 점점 뜸해졌다.
「끝났습니다!」 누군가 그의 머리 위에서 말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되풀이했다. 「죽음은 끝났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제 죽음은 없다.」
그는 숨을 들이쉬다가 한숨 중간에 멈추고, 몸을 쭉 뻗더니 죽었다.
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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